원제 : The Order of Time
저자 : 카를로 로밸리 / 이중원
출판 : 쌤앤파커스
출간 : 2019.06.10
아주 즐겁게 읽었다. 물론 주관적으로 재미있었다는 말이고 전부 이해했다는 의미는 아니다.
시간은 한 방향으로 일정하게 흐르는가?
우주 전체에서 절대적으로 동일한 순간이란 존재하는가?
등의 궁금증이 한 번이라도 일었던 사람들에게는 매우 추천할 만한 책이다.
이 책은 크게 3부로 나뉘어 있는데 이미 검증된 내용들을 기반으로 한 굳건한 대지가 1부, 그를 기반으로 한 믿을 만한 이론적 설명이 2부, 그리고 저자의 주전공인 '루프양자중력'의 이론을 바탕으로 접근하는 엔트로피와 우리의 관계에 관한 고찰이 3부다.
각 부는 적당히 위트 있게 구성된 세부 장으로 나뉘는데 이 책의 백미는 마지막 주석이다. 보통은 레퍼런스를 밝히는 용도 정도로 사용되는 공간을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부연 설명과 수식 설명을 첨가하는 용도로 사용했는데, 본문 내의 하단 주석과는 별개다. 이 부분도 재미있으니 놓치지 말고 읽어볼 것.
이해도가 얕으니 깊게 이야기할 거리가 별로 없다.
시간은 상대적이며 중첩 가능한 계로, 상호작용을 통해 결정된다. 즉 관계성 안에서 존재한다는 이야기인데 따라서 측정에 영향을 받는다. 우리가 가지는 대부분의 의문은 질문 자체가 잘못된 경우가 많다. 인상 깊었던 부분은 '지금'을 설정하기 위해 든 지구에서 4광년 떨어진 프록시마b 행성에 간 여동생과의 예시이다. 이 예시는 꼭 주석 부분까지 함께 읽어보시길 바란다. 나의 '지금'과 연결된 여동생의 순간은 그녀의 '지금'이 아니다. 이는 내가 보는 모습뿐 아니라 여동생의 현재도 아니다. '지금' 그녀가 프록시마b에서 하는 행동은 나의 '지금'에서 4년 후 그녀가 하고 있을 행동일까? 그것도 아니다. '지금'은 미래에 있을 수 없다.
그리고 여기서 각 행성들의 움직임까지 고려하기 시작하면 더 흥미진진 -이라 쓰고 이해불가라고 읽는다- 해진다.
내가 이 책을 읽는 내내 머리를 싸매고 생각했으나 현재 내 머리에 남아있는 과학 지식으로는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는 부분은 속도와 열에 관한 부분이다. 책에서 설명한 속도와 열적 속도 및 엔트로피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아마 내가 어디선가 정의가 꼬여서 잘못 생각하고 있는 것 같다.
높은 곳보다 낮은 곳에서 시간이 느리게 흐른다는 부분은 일단 ok.
속도가 빠르게 움직이는 경우가 느린 경우보다 시간이 느리게 흐른다는 부분도 ok.
엔트로피는 낮은 상태에서 높은 상태로만 변화할 수 있으며 이 경우의 전환은 열이라는 부분도 ok.
그러나 엔트로피의 낮음이란 측정 기준에서 발생하는 특수 상태일 수 있음이라는 부분도 ok.
우리가 엔트로피가 높아지는 방향으로만 작동하는 계 안에 존재하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말하는 '시간'의 방향성이 생길 뿐이라는 이론까지도 ok.
내가 꼬이기 시작하는 것은 온도가 낮아져 운동성이 저하된 경우이다.
이 경우 운동성이 저하된 분자들의 시간은 활발한 분자들보다 느리게 가야 하는가?라는 꼬임이 발생했다. 아마도 1부에서의 속도에 따른 시간 예시는 동일 상태 동일 조건에서 이동 속도만이 변수일 경우를 가정했을 것이다. 하지만 여기에 온도가 들어가면 어떻게 되지? 엔트로피가 응축된 상태에서 열평형으로 도달해 갈수록 운동성은 증가하는데.... 각 상태에서의 시간은 어떻게 되는 걸까. 엔트로피가 과거를 결정하는 것이라면 얼음과 냉동인간은 '시간'은 빠르게 가지만 '열적 시간'은 달라지는 것인가?
어느 지점에선가 꼬였는데... 아니면 아예 이해를 못한 것이거나. 으으. 갑갑한데 일단 여기서 덮고 <만약 시간이 존재하지 않는다면>으로 넘어간다.
서로 다른 다양한 근사치들에서 파생된
확연히 구분되는 수많은 특성들이 겹겹이 쌓인 다층 구조의 복잡한 개념,
이것이 우리의 시간이다.
- 믿기 힘든가? 그럴 수 있다. 하지만 세상은 그렇게 만들어져 있다. 어떤 곳에서는 시간이 천천히 흐르고, 어떤 곳에서는 빨리 흐른다.
- '시간의 구조를 변경한다'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 앞에서 설명한 시간의 자연을 뜻한다. 모든 물체는 자기 주위의 시간을 더디게 한다. ... 이러한 이유로 평지에 사는 친구는 덜 늙는 것이다.
- 두 개의 시간만 있는 것이 아니라, 거의 군단을 이룰 정도로 많은 시간이 존재한다. 공간 속의 모든 지점마다 다른 시간이 적용되기 때문이다. 특별한 시계가 특별한 현상 속에서 측정한 시간을 물리학에서는 '고유시간proper time'이라고 부른다. 모든 시계에는 각자의 고유한 시간이 있다. 세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현상에도 고유 시간, 고유의 리듬이 있다.
- 많이 움직이면 많이 움직일수록 시간은 더 천천히 흐른다.
- 여러 장소에서의 시간도 하나로 공통적이지 않지만, 한 장소에서의 시간도 하나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기간은 정해진 궤적을 지나는 어떤 사물의 움직임과만 관련이 있을 수 있다.
- 우리의 '현재'는 우주 전체에 적용되지 않는다. 현재는 우리와 가까이에 있는 거품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그렇다면 이 거품의 적용 범위는 얼마나 될까? 이는 우리가 시간을 얼마나 정확하게 규정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 행성 사이의 우주 공간에서 이런 질문을 한다고 해보자. 두 개의 돌이 이 공간 속에서 '같은 높이'에 있는가?
이 질문의 타당한 답은 '우주에는 같은 높이라는 통합된 개념이 없기 때문에 잘못된 질문'이라는 것이다. 혹은 이런 질문을 한다고 생각해보자. 지구에서의 사건과 프록시마b에서의 사건, 두 사건이 '같은 순간'에 발생했는가? 이 질문에 대한 타당한 답도 '우주에는 같은 순간이라고 규정된 시간이 없기 때문에 잘못된 질문'이다. '우주의 현재'는 아무 의미가 없다.
- 이는 우주의 시간 구조와 아주 흡사하다. 우주의 시간 구조 역시 원뿔형으로 이루어져 있다. '시간적인 선행' 관계도 원뿔형으로 이루어진 부분의 순서 관계를 형성하고 있다.
- 즉, 공통적인 현재는 존재하지 않는다.
- 현재가 아무 의미 없다면 우주에는 무엇이 '존재'할까? '존재'하는 것이 '현재 속에' 있는 것 아닌가? 우주가 어떤 특별한 구성으로 '지금' 존재하며 시간의 흐름에 따라 변화한다는 생각은 이제 더는 타당하지 않다.
- 시공간은 전자와 같은 물리적 물체다. 시공간도 파동처럼 흔들리며 다양한 형태로 '중첩'될 수 있다.
- 상호작용이 분자의 '위치'를 고정시키면, 분자의 상태가 변화한다. 분자의 '속도'에서도 마찬가지다. 속도가 '먼저' 고정되고 그 '이후에' 위치가 고정되면, 분자의 상태는 두 사건이 역순으로 발생할 때와 '다른 방식으로' 변화한다. 순서가 중요하다. 만약 내가 전자의 위치를 먼저 측정하고 속도를 그 후에 측정하면, 속도를 먼저 측정하고 그다음에 위치를 측정했을 때와 다른 방식으로 전자의 상태를 바꾸게 되는 것이다.
- 세상을 돌아가게 하는 것은 에너지원이 아니라 낮은 엔트로피의 근원들이다. 낮은 엔트로피가 없으면 에너지는 균일한 열로 약해지고, 세상은 열평형 상태에서 잠들 것이다. 과거와 미래의 구분도 사라지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 우리는 과정이자, 사건들이며, 구성물이고 공간과 시간 안에서 제한적이다. 그런데 우리가 개별적인 실체가 아니라면, 우리의 정체성과 유일성의 기반은 무엇일까? 무엇이 내가 카를로이게 만들고, 나의 분노와 꿈과 마찬가지로 내 머리카락과 내 손톱, 내 발이 나의 일부라고 느끼게 하고, 생각하고 고통스러워하고 인지하는 어제의 카를로와 내일의 카를로가 나 자신이라 느끼게 하는 걸까?
- 그렇다면, '시물들'은 '개념들'처럼 감각적인 입력 정보의 반복된 패턴과 이에 대한 연속적인 정교화 작업이 만들어낸 산물, 곧 신경 동역학계의 고정점이다. '사물들'은 세상의 양상들의 결합을 반영한 것이다.
- 물리학은 사물이 '시간 속에서' 어떻게 진화하는지를 설명하지 않는다. 모든 사물이 각자의 시간 속에서 어떻게 진화하는지, '시간들'이 서로 어떻게 다르게 진화하는지를 설명한다.
- 모든 아담의 후예는 한 몸을 형성하며 동일한 존재다. 시간이 고통으로 그 몸의 일부를 괴롭게 할 때 다른 부분들도 고통스러워한다. 그대가 다른 이들의 고통을 느끼지 못한다면 인간이라 불릴 자격이 없다. -Sa' di
- "열은 차가운 물체에서 뜨거운 물체로 이동할 수 없다."
여기서 핵심은 이 열의 특징과 낙하하는 물체와의 차이점이다. 공을 예로 들면 공은 낙하하기도 하지만, 반동으로 원래의 자리로 되돌아갈 수 있다. 하지만 열은 그럴 수 없다. 물리학에서 과거를 미래와 구분하는 일반 법칙은 클라우지우스 교수가 발표한 이 법칙뿐이다. 다른 데서는 이를 다룬 적이 없다.
- 19세기 말까지도 분자와 원자가 실제로 존재한다는 것을 대부분 믿지 않았다. 그러나 루트비히는 이들의 실체를 확신했고, 이 사실을 세상에 알리기 위해 치열하게 싸웠다. 그가 원자의 존재를 믿지 않는 자들과 벌인 논쟁들은 세기의 사건으로 남아 있다. ... 비엔나에서 개최한 한 회의의 치열한 논쟁에서 어느 유명한 물리학자는 물질의 법칙들이 시간의 방향성에 의존하지 않기에 과학적 유물론은 죽었다며 루트비히를 비판했다. 물리학자들도 말도 안 되는 말을 한다.
- 과거와 미래의 차이는 이 희미함과 깊이 연결돼 있다. 그런데 만일 우리가 이 세상의 정확한, 미시적인 상태에 대한 모든 상세한 내용을 고려할 수 있다면, 시간의 흐름에 관한 특징적인 부분들이 사라질까?
그렇다. 사물의 미시적인 상태를 관찰하면, 과거와 미래의 차이가 사라진다. 예를 들어 이 세상의 미래는 현재 상태에 따라, 즉 과거의 상태에서 더하지도 덜하지도 않은 현재에 의해 결정된다. 우리는 원인이 결과보다 앞선다는 말을 자주 하지만, 사물의 기본 문법에서는 '원인'과 '결과'의 구분이 없다. 대신 서로 다른 시간에서의 사건들을 연결하는, 물리 법칙들에 의해 표현되는 규칙성이 있는데, 여기서 미래와 과거는 서로 대칭이다.
- 시간은 또 다른 중요한 부분을 잃었다. 바로 과거와 미래 사이의 본질적인 차이이다. 볼츠만은 시간의 흐름에는 본질적인 어떤 것도 없으며, 과거의 어느 한 지점에서 우주의 불가사의한 불가능성이 희미하게 반영된 것일 뿐이라고 생각했다.
- 우리의 개인적인 경험에서도 시간은 탄력적이다.
- 결국 1883년도에 전 세계에 '시간대'를 설정하고 각 시간대 내에서만 동일한 시간을 표준화하기로 타협했다.
- 젊은 시절의 아인슈타인은 대학에 자리를 얻기 전에 스위스 베른의 특허사무소를 다녔다. 그가 여기서 기차역들의 시계 조율과 관련한 특허 업무를 담당했던 것은 어쩌면 운명이었을지 모른다! 그가 시계를 조율하는 일이 궁극적으로 해결될 수 없는 문제라는 생각을 하게 된 곳이 바로 그 특허사무소였을 것이다.
- 현재까지 우리가 아는 최선의 지식에 따르면, 이 세상의 물리적 현실의 씨실을 구성하는 물질들을 물리학자들은 '장 field'이라고 부른다. ... '중력장'이라는 것도 있다. 이것은 중력의 근원이지만, 뉴턴의 공간과 시간을 형성하고 이 세상의 나머지 부분이 그려지는 직물이기도 하다. 시계는 이러한 중력장의 외연 크기를 측정하는 메커니즘이다. 길이 측정에 사용되는 미터는 중력장 외연의 다른 측면을 측정하는 물질의 일부다.
- 세계는 미묘하게 분리돼 있으며 연속적이지 않다.
- 그러나 이러한 전자의 구체화에는 묘한 측면이 있다. 전자는 그것과 상호 작용하는 다른 물리적인 물체와의 관계 하에서만 구체화된다. 물리적인 물체가 아닌 다른 모든 것들과의 상호 작용은 미결정성을 오직 확산시킬 뿐이다. 구체성은 물리적 체계와의 관계에서만 발현된다. 나는 이것이 양자역학의 가장 급진적인 발견이라고 생각한다.
- 시간은 유일하지 않다. 궤적마다 다른 시간의 기간이 있고, 장소와 속도에 따라 다른 리듬으로 흐른다. 방향도 정해져 있지 않다. 과거와 미래의 차이는 세상의 기본 방정식에서는 존재하지 않으며, 단지 우리가 세부적인 것들은 간과하고 사물을 바라볼 때 나타나는 우발적인 양상일 뿐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우주의 과거는 신기하게도 '특별한' 상태에 있었다. '현재'라는 개념은 효력이 없다. 광활한 우주에 우리가 합리적으로 '현재'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시간의 간격(기간)을 결정하는 토대는 세상을 이루는 다른 실체들과 다른 독립적인 존재가 아니다. 그것은 역동적인 장의 한 양상이다. 이 역동적인 장은 도약하고 요동치며 상호 작용할 때만 구체화되며, 최소 크기 아래에서는 발견되지 않는다. 그렇다면 결국 시간과 관련하여 남는 것은 무엇인가?
- 세상의 사건들은 변화하고 우연히 벌어진다. 이 우연한 발생은 무질서하게 확산되고 흩어진다. 이동 속도가 다른 시계들은 동일한 시간을 표시하지 않는다. 한 시계의 바늘은 다른 시계와의 관계에서 볼 때 다르게 움직인다. 기본 방정식들에 하나의 시간 변수는 포함되지 않지만, 서로의 관계 안에서 변화하는 시간 변수들은 포함된다. 아리스토텔레스에 따르면 시간은 변화의 척도다.
- 1장에서 언급한 아낙시만드로스의 말은 우리로 하여금 '시간의 순서에 따른' 세상에 대해 생각해보게 한다. 우리가 시간의 순서가 무엇인지 안다고 선험적으로 가정하지 않는다면, 즉 우리에게 익숙한 선형적이고 보편적인 순서를 전제하지 않는다면, 아낙시만드로스의 조언은 유효하다. 사물을 연구하는 것이 아니라 변화를 연구하면 세상을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다.
- 이처럼 시간의 부재가 모두 얼어붙어 꼼짝도 하지 않는다는 의미는 아니다.
- 20세기의 물리학은 나에게 분명하게 우리 세상이 '현재주의'라는 방식으로 제대로 설명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객관적이고 범세계적인 현재는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최대한 우리가 말할 수 있는 것은 움직이는 관찰자의 관점에서 보는 현재이다. 그런데 이 경우 나에게 실제인 것과 여러분에게 실제인 것이 다르다. 우리는 객관적인 의미로 '실제'라는 표현을 되도록 쓰고 싶어 함에도 불구하고, 실은 그렇지 않은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세상을 현재들의 연속이라고 생각하면 안 된다.
- 철학자들은 흐름과 변화가 환상이며, 현재와 과거, 미래가 모두 똑같은 실제이고 똑같이 존재하는 것이라고 보는 생각을 '영원주의'라고 부른다. 영원주의는 앞의 그림들에서 도식화된 시공간 전체가 그 어떤 변화도 없이 온전히 그대로 존재한다는 생각이다. 아무것도 흐르지 않는 것이다.
- 하나의 계의 엔트로피는 확실히 희미함에 달려 있다. 엔트로피가 내가 '알아채지 못한 것'에 영향을 받는 이유는 '구별할 수 없는' 무수한 배열들에 의해 엔트로피가 결정되기 때문이다. '동일한' 미시적 배열이 어떤 희미함에 대해선 엔트로피가 높을 수 있고, 또 다른 희미함에 대해선 낮을 수 있다. 이는 희미함이 정신적인 구조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이 희미함은 실제로 존재하는 물리적 상호 작용의 영향을 받는다. 엔트로피는 임의의 주관적인 양이 아니다. 속도처럼 '상대적인' 양이다.
- 우리는 '외부에서 본' 세계의 시간 구조와 우리가 보는 세상의 측면, 즉 우리가 세상 안에 세상의 일부로 존재함에 따라 달라지는 세상의 측면을 혼동해서는 안 된다.
- 왜냐면 우리가 다루는 것이 고정 규칙이 아니라 확률이기 때문이다.
- 오직 사건들과 관계들만이 존재한다. 기초 물리학의 시간은 세상에 없다.
- 왜냐하면 시간에 따른 변화를 다루는 방정식들이 에너지의 형식으로부터 따라 나오기 때문이다.
- 열평형 상태나 순수한 기계 시스템에서는 인과관계에 의해 규정되는 시간의 방향이란 없다.
- 우리는 언제나 하나의 순간에 있지, 두 순간에 존재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현재 속에서 현재만 본다. 과거의 '흔적'이라고 해석되는 것들은 볼 수 있지만, 과거의 흔적을 보는 것과 시간의 흐름을 인지하는 것에는 큰 차이가 있다.
- 아마도 우리는 나머지 세상과 상호 작용하면서 열적 시간의 한 방향으로 엔트로피가 낮아지는 특별한 부분계에 속하는 것 같다. 따라서 시간의 방향성은 실제적이지만 관점적이다. 그리고 우리의 관점에 달려 있는 것이다.
- 우리의 일상생활은 빛에 비해 매우 낮은 속도로 움직이기 때문에, 우리는 시계마다 서로 다른 고유한 시간이 있음을 차이를 인지하지 못하며, 또한 어떤 물질로부터 떨어진 거리에 따라 다르게 흐르는 시간의 속도 차이도 너무 작아 식별하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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