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자가 흐르는 이야기/Book1

[소설가9인] 다행히 졸업 - 소설가 9인의 학교 연대기

일루젼 2021. 6. 17. 1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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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장강명, 김아정, 우다영, 임태운, 이서영, 정세랑, 전혜진, 김보영, 김상현
출판 :  창비
출간 :  2016.10.21


 

시작하는 말

 

굳이 말해두자면, 이 책은 오늘 집었으며 정말 우연히 읽게 되었다. 읽어보고 싶다고 생각해서 구매했던 책은 맞지만 어떤 책인지 알고 샀던 책은 아니었다. 장강명, 정세랑, 김보영의 이름을 보고 구매를 결정했고, 에세이 글인가 싶었다. 

 

내가 이 블로그에서 장강명에 대해 이야기했던 적은 없는 것 같다. 

사실 내가 뭐라고 한 사람에 대해 이야기를 하겠는가. 그만큼 그를 잘 아는 것도 아니고, 전 작품을 모두 읽은 것도 아니다. 단지 접했던 작품에서 느낀 '장강명'에 대한 이미지는 '무서운 사람'이다. 

 

내가 제대로 그 이름을 기억한 것은 <그믐, 또는 당신이 세계를 기억하는 방식>이란 책을 읽고서였다. 삶이란 책 등을 잘라내고 뒤섞은 책의 각 페이지를 집어 읽는 것과도 같다는, 일어나야 할 것은 일어나게 되어있지만 모든 것이 시간 순서대로 배열된 것은 아니라는 설정. 나는 '이 부분을 제일 좋아한다, 이 장면을 위해 다른 부분을 겪어야만 한다고 해도'라는 취지의 주인공의 대사가 너무 인상 깊었다. (그런데 외우지도 못하고 있다...)

 

그리고 그가 <댓글부대>를 쓴 장강명이라는 것을 알고서는 확연히 다른 글 스타일에 놀랐다. 또한 그가 필요하다면 공모전에 당선'될' 글을 써낼 수 있는 작가라는 것을 알게 되고나서부터는 '무섭다'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필요할 때 필요한 글을 써낼 수 있는 사람은 무섭다. 

 

내가 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사실, 그래서 나는 이 책을 오늘 읽을 계획이 전혀 없었다는 말이다. 그래서 개인적으로는 읽는 내내 소름이 끼쳤다.

 

<디앤서> 이후로 학창 시절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정말 오래도록 잊고 있었던, 지금 떠올려보면 꿈인가 싶은 기억들이 생생해진다. 그러던 참에 이 소설집을 읽으니 너무 많은 것들이 덮쳐와 혼미할 지경이다. 각각의 소설은 모두 다른 시대, 다른 사람의 이야기인데도 어느 정도 나의 학창 시절과 시기가 일치하기 때문일까? 모든 글들이 나의 이야기 같고, 몇몇 문장들은 아프도록 찔러온다. '학창 시절'이란 누구에게나 이런 것일지도 모른다. 

 

마침, 나는 당시 라이징하던 사인이 다시 라이징 중이다.  

 

 

 

책 정보

 

당신의 학창 시절은 거지 같았습니까?

 

2015년부터 1990년까지, 9인의 작가가 자신의 학창 시절을 르포처럼 녹여낸 단편 소설 9편을 엮었다. 어떤 한 시기에, 그 한 복판에 존재했던 사람들만이 공유하는 체험이 있다. 거창하게 말하면 일종의 시대정신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거기서 단 몇 걸음 떨어진 이들은 결코 알 수 없는, 오로지 그 해에 그 나이였던 이들만이 공유할 수 있는 기억이다.

그렇게 서로가 서로를 모르기에 나눌 수 없었던, 서로의 불행을 비교하고 경쟁하려 하게 되는 '나 때는 말이야'를 이해하기 위해 각자의 시대를 시간대 별로 엮어보았다고 한다. 하지만 완독한 입장에서 보자면, 모두가 공감할 수 있을 것 같다.

 

나의 학창 시절을 되돌아 볼 수 있는 배짱이 있다면 강력 추천.

아주 재미있고, 매력적이다.

 

 

 

 

 

 


 

- 기준이는 그냥 멋있는 녀석이었다. NGO 학과 얘기가 나왔을 때 그 녀석이 왜 울컥했는지도 알 것 같았다.

 

- "모르겠어. 세상은 참 복잡하다는 생각이 들어. 사람마다 다 각자의 사정이 있어. 나도 만약.... " 

 

- 엄마는 이제 내 감정, 성격까지 멋대로 주무르려 들었다. 나는 씩씩하지도 웃음이 많지도 않았다. 나는 그냥 조용하고 말이 없는 아이였다. 내가 왜 씩씩하고 웃음이 많은 아이가 되어야 하는지 알 수 없었다. 나는 엄마의 꽃이 아니었다.

 

- "길을 찾고 있는 거야. 원래 달빛을 쫓아가고 있었는데 가로등 불빛이 자꾸 밝아지면서 길을 잃고 만 거야. 다시 달빛을 쫓아 헤매다가 결국 가로등 불빛을 달빛으로 착각하고 저렇게 되어 버렸지."

"다시 달빛을 찾을 수 있을까?"

"사실 찾을 수 없지. 가로등 불빛이 꺼질 일도 없겠지만 애초에 달빛이라는 건 찾을 수 없어. 그냥 계속 찾아다니는 거지."

 

- "너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어."

엄마의 퀭한 두 눈동자를 보며, 엄마가 뜬 눈으로 지새웠을 지난밤을 떠올렸다. 엄마가 나의 지난밤을 알지 못하듯, 나 역시 엄마의 지난밤을 알지 못했다. 엄마의 말은 내가 하고 싶은 말이기도 했다. 나는 엄마의 시간들에 대해 아무것도 알지 못했다.

 

- 나는 경진이가 속마음을 잘 표현하지 않는 게 실은 섬세하고도 심성 있는 성정 때문이며 상대에게 무해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그런 비밀스러운 기질이 다른 애들에게는 상처를 주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미움을 산다고, 상처와 미움의 연쇄에 대해 골똘히 생각하면 답답해졌다.

 

- 어쩌면 대수롭지 않은 일이었다. 그 시기에는 누구나 아무 노력 없이 몸이 자랐고, 이해하지 않아도 조금씩 어른이 됐다. 매일 모르는 사이애 무언가를 잃어버리고 그것을 잃었다는 사실도 쉽게 잊었다.

 

- "여서 배율을 쪼까 조종해 불면 말여. 배꼽시계 가게 안에 달린 티브이를 볼 수 있어야." 

.... 그렇게 먼 곳의 벽에 붙어 있는 화면을 볼 수 있단 말인가! 나는 내심 별바라기를 샌님들의 동아리라며 비웃었던 과거를 반성했다.

 

- 엄마 아빠는 조용한 활자 중독자들이었다. ... 부모님의 오래된 전집이 있긴 있었지만, 세로 쓰기여서 멀미가 났기에 용돈을 모아 한 권씩 새로 샀다.

 

-  이렇게 계속할 수는 없어. ... 나는 탈출할 거야.

 

- 그렇지만 창우가 축하하면서 하는 말에는 축하 말고 다른 게 섞여 있지 않아서 가영은 살짝 놀랐다.

 

- 고등학교는 신기했다. 신기하다, 말고는 다른 말로 설명하기 힘들었다. 정말로 다른 환경을 만났다는 걸 가영은 입학 후 매일 깨달았다. 

 

- 가영은 한 학기 만에 자신의 한계를 인정해야 했다. 공부를 잘하는 게 아니었다. 샴푸 성분표나 관리비 명세서 같은 텍스트라 해도 몇 번이고 몇 번이고 흥미를 가지고 읽을 수 있는 성격이어서 지금껏 버텨 온 것뿐이었다. 가영은 특별히 머리가 비상하거나 이해력이 뛰어나지 않았다. 모의고사 전국 1등을 번갈아 하는, 각종 경시대회를 격주로 휩쓸고 오는 아이들과 학교를 같이 다니면 그런 건 아주 빨리 깨달을 수 있었다. ...... 그러니까 이런 괴물 같은 아이들이 수천수만 명이나 된단 말이지, 가영은 게시판 앞에 서서 생각했다.

 

- 전혀 섭섭하지 않았다. 오히려 기분이 좋았다. 입학하고 나서 처음으로 자기 유능감을 느꼈다. 그것은 발견에 가까웠다. 석일고에 오지 않았다면 하지 못했을 발견 말이다. 보통 학교에 가서 이것저것 다 잘한다고 착각하고 지냈으면 몰랐을 터였다. 무지막지하게 사방으로 뛰어난 아이들 속에서 무언가 하나라도 잘한다면, 그건 정말 잘하는 거니까.

 

- 가영은 옷차림을 두고 그렇게 말하는 게 비열하다고 느꼈다. 그랬다. 공부를 잘하는 아이들은 쉽게 폭력을 쓰진 않았다. 하지만 다른 면으로 비열했다. 정교한 방식으로 비열했다. 대놓고 물건을 훔치진 않지만 체육대회 반티를 맞추면서 횡령을 했다. 횡령이 발각되어 전교생 앞에서 사과를 하는 동급생들의 뻔뻔한 얼굴을 보며 가영은 깨달았다. 이 학교 아이들은 폭력배가 되진 않아. 하지만 화이트 컬러 범죄자는 분명 몇이든 되고 말 거야. 

 

- 세상이 어떤 방식으로 움직이는지 어렴풋이 알 것도 같았다.

 

- 학부모 네트워크도 대단했는데, 가영은 그 틈에 엄마도 아빠도 전혀 어울리지 못하고 있다는 걸 파악했다. 

"너 친구들 사이에 어느 학원이 유행인지 그런 거 아니?"

"왜?"

"모임 나가면 그런 이야기하던데, 나만 못 따라가겠더라. 요즘 학원들은 이름도 다 너무 어렵고, 좋다는 데가 금방 바뀌고."

"괜찮아."

"괜찮다니?"

"엄마, 너무 무리하지 마. 학원은 내가 알아서 할게. 모임도 안 나가고 싶으면 안 나가도 돼."

"정말?"

엄마가 너무 반기는 게 보여서 가영은 조금 웃었다.

 

- 눈 앞에서 간발의 차로 놓쳤다는 느낌만큼 사람을 오래 괴롭히는 것은 없을 것이다. 그 마음 자체는 이해가 갔다.

 

- 고교 평준화에 대한 사설이 신문에 자주 실렸는데, 가영은 어느 쪽이든 불공평하게 느껴져서 기분이 이상했다. 평준화 고교에 진학했더라면 중학교에 다니던 것과 비슷하게 불행했을 것 같았고, 그렇다고 비평준화가 답인 것 같지도 않았다. 분리해서 계급을 만드는 건 절대 다수에게 나빴다. 계급이었다. 그게 계급이란 걸 배우고 있었다.

 

- "그렇게 펜을 매주 사는 건 이상해." 아름이 말했을 때, 가영은 좀 뜨끔했다. .... 펜을 산 김에 필기를 열심히 하긴 했다. 중지의 옹이가 커지고 커질 때까지 쓰면서 공부했다. 가영이 공부하는 방식은 텍스트의 압축에 가까웠다. 일단 수업 시간에 모든 것을 받아 적는다. 농담이나, 가영 본인의 생각까지 모두 적어 그걸 깃발로 만든다. 깃발은 그 자체는 중요한 정보가 아니지만 연상 작용에 필요했다. 그리고 시험 기간이 되면 교과서, 참고서, 필기 노트 중 가장 적합한 걸 골라 나머지들을 거기에 합친다. 그렇게 정리한 하나의 완벽한 텍스트를 시험 전날까지 다시 한 장으로 압축한다. 평범한 지능으로 석일고에서 해나가려면 그 정도 노력은 필요했다.

 

- 이 작은 나라에 똑똑한 아이들이 이렇게 많다면 나중에 어른이 되어서 가영이 설 자리가 있을까, 할 수 있는 일이 있을까, 낙관적으로 전망할 수가 없었다. 한국은 중간쯤 똑똑한 사람들한테 별로 친절한 나라가 아니라는 걸 희미하게나마 이미 깨닫고 있었다.

 

- "너 나한테 그런 말들 얼마나 오래 전부터 하고 싶었어? 얼마나 참았어?"

"너희 같은 애들 욕심 부리는 거 맞잖아. 남들보다 훨씬 많이 가졌으면서도 더 원하지. 대충 좀 하면 안 돼? 보통으로 살면 안 돼?"

...

"그게 아니잖아. 내가 겁쟁이고 비겁하다는 거지. 겁에 질려서 이러고 있는 걸 너는 이해해줬으면 했어. .... 그게 죽을 것 같이 무서워. 거짓말과 거짓말 사이에 서 있는 게 무서워. 그래서 아등바등할 뿐이라고."

"말장난하지 마. 누가 거짓말을 한다는 거야? 그리고 네가 뭐라고 거짓말을 다 안다는 거야? 사람들 그렇게 무시하는 거 아냐. 너, 내가 그렇게 멍청해 보여? 나도 너만큼 열심히 해, 너랑 나랑 원래 가진 게 다른 거야. 네가 노력해서 얻은 게 아닌 것들 가지고 잘난 척 좀 하지 마."

 

- "엄마가 자퇴하래." 

캔 홍차를 홀짝이는 나를 옆에 두고, 운동장을 건너다보며 덕화가 말했다. 덕화가 우리 학년 최초의 자퇴생이 될 줄은 몰랐다. 상상도 하지 못했다.

"어차피 여자애들은 동문 덕 볼 일 거의 없다고, 그냥 깔끔하게 자퇴하고 검정고시 보래."

"그렇구나."

나는 이별의 아쉬움과, 나 자신에 대한 연민으로 울지 않으려 애쓰며 물었다.

 

- 하지만 고등학교에 들어오기도 전에 수능 범위를 다 배워 놓은 아이들, 본고사 수준의 미적분도 척척 풀어내는 애들과 경쟁하려면, 내 인생은 청춘 드라마가 되어서는 곤란했다.

 

- 벽이 느껴졌다. 아무리 노력해도 따라잡을 수 없을 것만 같은 벽이. 

문득 덕화가 부러웠다. 입시에 필요한 모든 것을 알고, 자식을 서울대 정문으로 데려가기 위해 무슨 일이라도 할 준비가 되어 있는 엄마의 딸로 사는 것은 어떤 기분일까. 늘 세련되고 고상한 데다 명문대를 나온 전문직 출신인 덕화 엄마는, 학원 한 번 안 보내 주면서 내가 시험을 잘 봐도 못 봐도 타박만 늘어놓는 우리 엄마와는 본질적으로 달랐다. 

어쩔 수 없다.

아무리 부러워도, 그건 내 인생이 될 수 없다. 종생부가 당장 앞길을 막는다고 해도, 앞으로 이년 반 동안 교육부가 또 무슨 변덕을 부릴지는 아무도 모른다. 어쩌면 여기 남아있는 것이 더 현명한 선택일 수도 있다. 

지금 이 순간, 분명한 것은 하나 뿐이었다. 이 수업을 들으면 다른 아이들을 간신히 따라잡을 수 있겠지만, 이 수업을 듣지 않고 나가서 슬퍼하면 뒤처지고 만다는 것. 수업을 메꿀 방법은 어디에도 없다. 나를 걱정해 줄 사람도 없다. 나는 수업에 집중하려 애썼다.

 

- 기말고사는 전쟁이었다. 한 문제 맞히고 틀리는 일로 더러는 울음을 터뜨리고, 더러는 커터 칼을 목에 들이대며 칵 죽어 버린다고 요란을 떨었다. 코앞을 스치고 지나갔어도, 죽음은 여전히 농담거리가 될 수 있었다.

 

- 정확한 타이밍에 끼어든 거야. 일은 더 커지지 않고, 윤리 주임 감정은 상할 대로 상한 다음에. 어떻게든 화만 돋우면 나머진 필요 없어. 일은 다 파투 나는 거야. 

부회장은 한숨을 쉬었다.

네가 이런 걸 너무 몰라서 걱정이다.

 

- 선도부장이 하기 쉬운 실수 중 하나가 머릿속으로 중재안을 구상한 다음 그것을 일방적으로 당사자들에게 강요하는 것이다. 얼굴을 직접 보지 않고 생각한 중재안은 언제나 문제가 생기기 마련이다. 왜냐하면 중재안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 빠지기 때문이다.

잘 모르는 사람들은 중재안이라고 하면 서로의 이득과 손해만을 생각하곤 한다. 하지만 중재안에서 가장 중요한 건 감정이다. 자존심, 고집, 호감, 적대심, 이런 것들. 많은 경우 타협을 위해 던지는 아주 상투적인 사과나 감사 표시가 결정적으로 작용하는 게 바로 중재안이다. 나는 그것을 선임자에게 배우기 전부터 알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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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가 고등학생이었을 때 수능이라는 제도가 처음 생겼고, 사교육과 교복이 부활했습니다. 그것은 그 해에만 체험할 수 있었던 이야기였습니다. 어떤 이야기들은 한 해에는 모든 아이들이 체험하지만 다음 해에는 거짓말처럼 사라져 버리고, 어른들은 누구도 체험하지 않기에 아무도 기록하지 않은 채 잊히고 맙니다.

서로의 이야기를 모르기에 우리는 '나 때는 더했다', '너는 좋은 시대에 태어났다'며 세대 간에 불행 경쟁을 하는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모든 시대에는 그 시대만의 슬픔이 있고, 이는 우열을 가리거나 비교할 수 없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 아주 오랫동안 왜 그런 꿈을 꾸는지 궁금해 한 적이 있습니다. 영화 <인셉션>이 유행했을 때는 교탁 위에 팽이를 두고 꿈속 친구들에게 선언하기도 했죠. '미안, 나 이제 이 꿈으로 안 돌아올 거야' 하고. 하지만 몇 달 가지 않아 다시 그 꿈을 꿨습니다. 아마 앞으로도 종종 꿀 것 같아요. 정확히는 모르지만 그 시절, 그 좁은 공간에 속해 있었던 시절이 제 인생에서 아주 강력한 뿌리가 돼 지금의 저를 지탱하고 있기 때문이겠죠. 

 

- 그런 일이 있을 것 같지는 않지만 어떤 영험한 존재가 나타나 열 몇 살로 돌아가 너의 실수들을 바로잡지 않겠니, 하고 물어 온다면 나는 싫다고 대답하겠다. 아무리 생각해도 학교를 다시 다니기 싫다. 초등학교도, 중학교도, 고등학교도, 심지어 대학교도 다시 다니기 싫다. 바로잡고 싶은 실수는 꽤 많지만 돌아가지 않겠다. 밀집 사육당하는 닭처럼 불행했다. 그 불행을 반복해서 경험하고 싶은 마음은 조금도 들지 않는다. 

그러니 누군가가 당신에게 제일 좋은 나이네, 하고 웃으며 말을 걸어온다면 그 사람은 거짓말을 하고 있을 확률이 높다. 그럴리가, 제일 좋은 나이 일리가. 알고 하는 거짓말인지 모르고 하는 거짓말인지 몰라도 거짓말이다.

 

- 설마 이대로 죽을 때까지 이런 꿈들을 꿔야 하는 걸까? 학교가 무의식 깊이 꾹 누른 자국을 만들어 두었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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