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자가 흐르는 이야기/Book1

[루추차] 원년 봄의 제사 - 무녀주의 살인사건

일루젼 2021. 6. 21. 04: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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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루추차 / 한수희
출판 :  스핑크스
출간 :  2019.03.25


 

 

컨디션 난조로 가볍게 읽을 책을 골랐다.

나는 추리소설을 골랐는데 읽다 보니 어째 또 방향이 묘하게 흘러간다. 

이제는 그냥 그러려니 하고 잡히는 대로 읽기로 했다. 읽어야 할 책이 잡히겠지. 잘 읽히면 잘 읽히는 대로, 안 읽히면 또 안 읽히는 대로.

 

이 책은 중국 경서 위주의 중심 설정에 약간의 비틀린 유머와 서양 사상이 섞인 책이다. 소녀들과 여성에 관한 시각이 두드러지며, 중심인물들은 각자가 처한 환경과 권리와 책임이라는 제약 속에서 자신을 찾기 위해서 고민하는 모습들로 그려진다. 각 인물들의 생각도 결정도 행동도 모두 달랐지만 어쩌면 결국은 '생각하고 번뇌하며 계속 행동하라'는 하나의 목소리인 것도 같다. 

 

중국 문화에 익숙하지 않은 입장에서는 작가가 규의 입을 빌어 설명해준다 해도, 인용된 시구나 경전문이 직관적으로 와닿지는 않아 호불호가 갈릴 듯하다. 특정 설정이나 대사는 무리수로 느껴지는 부분도 있었고, 개인적으로 추리소설이라고 말하기에는.... 꽤 거리가 있다고 본다. 

 

초반부에서 특이하게 느낀 점이 있다. 한국인들은 잘 모르지만 중국에서는 '한국인들은 굴원이 한국인이라고 주장한다'는 루머가 있다는 썰이 있었는데, 그 굴원이 등장한다. 다만 작중 인물은 굴원이 여성, 그것도 무녀였을 것이라고 주장하는데 어떤 의미에서는 중국에서는 상당히 파격적인 소설일 수도 있겠다. 잘은 모르지만 <바람의 화원> 같은 느낌일까? 중국 내에서의 평가를 몰라 더 말하기 어렵다. 굴원은 극 초반에 기본 설정에 양념을 더하는 정도로 다뤄진다. 아마 작가가 방점을 두고 싶었던 것은 굴원이 아니라 '무녀'였던 듯하다.

 

딴 소리지만 한자를 잘 안다면 하이쿠나 중국 시가를 즐기는 재미가 있다고 하는데, 나로서는 미지의 영역이다. 해설된 국어 자료를 보는 것만도 따라가기 버겁다. 언젠가 기회가 된다면 즐기며 읽어보고 싶은 마음은 있지만, 아마 상당한 후일-노후에나 여흥으로 도전하게 되지 않을까 싶다. 다만 싼마오는 원문으로 읽어보고 싶은 욕심이 조금 있다.  

 

다시 돌아와서, 결론적으로 이 책은, 잘 모르겠다. 

어떤 한 영역에 확실히 발을 담그고 있는 것도 아니고 본격 추리나 신비, 미스터리라기에도 묘하지만 아주 재미가 없는 것도 아니다. 작가가 후기에 동일 등장인물이 등장하는 후속작을 쓰고 있다고 했으니 캐릭터가 흔들리는 것처럼 느껴진 부분은 더 지켜봐야 할 것 같다.

음. 

 

 


 

 

 - 앞으로 노신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끝없는 좌절과 열등감이다.

 

- "네가 얘기한 것과 정반대로 궁술은 살육만 하는 기술이 아니야. 예서에 따르면 '활을 쏘는 것은 인의 길이다. 활쏘기는 자기 자신을 올바르게 할 것을 요구하고 몸을 바르게 한 후에야 발사하며, 쏜 화살이 과녁에 적중하지 못하면 나를 이긴 자를 원망하지 말고 돌이켜 자신에게서 잘못을 구할 따름이다'라고 되어 있어. 호전성이 강한 격투술에 비해 궁술은 상대와 겨룬다기보다 자기 자신과 겨루는 성격이 강해. 그래서 자신의 약점을 극복하고 '인'의 경지에 이르는 거지."

 

- 자신의 학식과 기예가 확실히 선조를 모욕하는 수준이란 것을 노신도 잘 알았다.

 

- 내가 보기에 굴원의 신분은 단순한 사대부가 아니라 초나라 국가 제사에 참여한 무녀였어. ... 또 글의 의미를 자세히 뜯어보면 굴원이 사실 자신을 무녀로 묘사한 것을 발견할 수 있어. '팽함이 남긴 법도를 따르리라'든지 '내 장차 팽함이 있는 곳을 찾아가리라' 등이 그 예야. 여기서 '팽함'은 본문 중 '무함이 저녁에 내려오면' 구절에 따르면 <세본>에 기록된 무팽과 무함이야. 무팽과 무함은 전설 속의 무당으로, 무팽은 의술을 발명했고 무함은 점술을 발명했어. 이것이 굴원이 자신을 무녀로 묘사한 첫 번째 증거야. <이소>와 다른 작품에서 굴원은 자주 자신이 향초를 채집했다고 설명해. 실제로 그건 무녀가 하는 일이거든.

 

- "관사부는 이 문제를 논증할 때 특별히 '무'의 개념을 설명했어요. '백성 중 정신이 맑고 마음이 딴 곳에 가있지 않으면서 엄숙하고 치우치지도 않는 사람은 그 지혜로 천지 만물이 마땅한 자기 자리를 찾도록 하고 그 총명함이 멀리까지 빛나며, 눈이 밝아 모든 것을 통찰하고 귀가 예민하여 사방에 정통한다. 이와 같이 신명이 그에게 내리니 남자는 박수라 하고 여자는 무당이라 한다'. 즉 관사부는 여성도 신명과 소통하는 능력이 있음을 인정했고, 이것은 관사부가 세운 학설의 전제예요. ..."

 

- "약영 언니의 생각에 감탄했어요. 그런 관점은 분명 즉석에서 만들어낸 게 아니라 여러 해 동안 심사숙고해서 형성된 것이니까요. 다만 그런 생각은 보통 사람은 받아들이기 어렵죠. ..."

 

- "관가는 초나라 국가 제사를 관장했고, 제사의 주요 대상은 초나라 지역에서 신봉하던 신들이었습니다. 그중 동황태일이 제일 높은 신이고 다음은 동군, 사명, 운중군 등의 천신이며 그 다음은 상군, 상부인, 산귀 등의 산천의 신명, 또 그 다음은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국상과 같은 사람의 귀신입니다. 굴원의 <구가>는 바로 초나라 지역의 신들 체계에 따라 쓰였지요. 저는 동황태일이 초나라 고유의 신인 줄 알고 있었는데, 현재 한나라 왕조의 국가 제사도 태일을 주신으로 삼는다고 들었습니다. 또 장안에서 동군과 운중군의 제사를 주관하는 이가 초나라 무당이 아니라 진 나라 지역 무속인이라 해서 참으로 의아했고, 그래서 두 분께 여쭙고 싶은데.... "

 

- "네가 이 방면에 특별한 소질이 있다고 생각하진 않지만, 그런 마음가짐은 아주 좋아. 세상에서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시도해보기 전엔 자신의 재능을 부정할 자격이 없으니까. 과도한 자기비하는 사실 일종의 과대망상이야. 네가 아무 쓸모가 없다고 말할 때, 그 속엔 몸을 던져볼 수 있는 일은 다 해봤다는 의미가 은연중 내포되어 있는 거거든. 그렇게 해보지 않았으면 아직은 네 자신에게 기대를 걸어보도록 해." 

 

- "난 <주역>을 연구한 경학자만 점술을 아는 줄 알고 있었어." 

"경전까지 두루 읽어야 해. 이미 작고한 <시> 학의 종사 한영 화투는 <역>을 깊이 연구했고, <한씨역전>도 남겼어. 물론 그건 '한시' 일파의 학설이고 백 선생님이 공부한 건 제시이지만, '제시'에도 독특한 점술법이 있고 '오제 육정'으로 요약할 수 있어."

 

- 난 유년시절이 아예 없었을지도 몰라. 기억이 날 때부터 천간이 양에 해당하는 강일에는 예를 공부하고 음에 해당하는 유일에는 악을 익히는 생활을 했으니까. 또 아버지가 엄하셔서 암송이든 연주든 조금만 틀려도 때리셨어. 하지만 좀 전에 말했듯이 그건 다 권력을 얻기 위해 반드시 치러야 하는 대가였지. 게다가 어릴 때는 어리석고 무지해서 희희낙락하며 보냈다면 지금 아무 기억도 남지 않고 인생을 허비하기만 했을 거야. 난 오히려 그렇게 고생하며 때때로 아팠던 날들이 꽤 그리워."

 

- ".... 난 내 인생이 내 것이 아니고, 뭘 하든 다른 사람의 기대에 끊임없이 부응해야 한다는 사실을 일찌감치 깨달았거든요. 장녀와 '무아'로서 내게 거는 아버지 세대의 기대에 하마터면 죽을 뻔했어요. 하지만 대처 방법을 알아냈어요. 내 인생을 '되찾는' 방법을 생각했다고 할 수도 있고요. ... 모든 일을 그분들 기대를 넘어서게 해내면 돼요. 그러면 넘어선 부분은 바로 내 인생이 되지요. 오랫동안 내게 허락된 일은 아주 제한적이긴 했지만, 어느 정도까지 해낼 것인가는 나 스스로 결정하고 그건 거의 제한이 없었어요."

 

- "그렇지 않을 거예요. 무녀는 원래 두 종류가 있거든요. 하나는 제사에 참여하는 무녀예요. 제사 전에 향초를 채집하고 목욕재계한 다음, 제사 때 음악과 춤을 공연하며 신명께 바치죠. 또 다른 무녀는 민간을 떠돌고 시장에 출몰하며 사람들을 위해 점을 쳐서 병을 물리쳐주고 혼을 불러주며 비용을 받아 자신을 부양해요. 앞으로 사라질 건 첫 번째 무녀뿐일 거예요. 두 번째 무녀는 자력갱생이 가능해 일반 백성부터 고관과 귀인까지도 그들을 벗어날 수 없기에, 신명이 인간을 버리는 그날까지 계속 존재할 수 있을 거예요."

"전에는 나도 그런 무녀로 전락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 의서들을 섭렵했어. 지금 생각하면 내가 쓸데없이 걱정이 많았지. 오릉 군은 점도 잘 친다고 하던데."

 

- "천하의 이치는 하나이지만 백 가지 생각이 있고, 다 같은 곳으로 귀결되지만 저마다의 길이 있다. 제자백가가 논하는 이치는 사실 다 같아요. 유교에서도 '중생은 반드시 죽고, 죽으면 흙으로 돌아간다'고 했고 이걸 귀라고 했죠. '뼈와 살은 아래로 쓰러지고' 땅에서 부패해 흙이 되고요. '그 기운은 위에서 발양해' 눈으로 볼 수 있는 빛이 되고, 맡을 수 있는 냄새를 발산해 사람을 슬프게 해요. 이것이 바로 생물의 정기이고, 신이 구체적으로 드러난 것이에요. ..."

 

- "선대 유학자의 이해와 조금 차이가 있어요. 난 사람이 죽으면 개체의 영혼은 존재하지 않고, 어떤 여정을 거친 후 영혼이 하늘로 올라가 그전에 죽은 모든 이의 영혼에 녹아들어 하나의 '전체'로 합쳐진다고 생각해요. 거기에선 자아와 타인의 경계가 사라지고, 옛사람과 지금 사람의 구별도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아요. 거기에 녹아든다는 것은 언니가 모든 사람이 되고, 모든 사람은 언니가 된다는 것을 의미해요."

 

- "아니, 삶의 의미는 노력을 통해 자신의 고통을 줄이고 다른 사람의 고통도 줄여서, 모든 사람이 받는 고난의 총합을 최소한으로 줄이는 거지요."

 

- "... 즉 살아있을 때 사람이 해탈을 얻을 수 없고 여러 한계를 제거할 수 없는 이유는 모두 육체의 속박 때문이에요. '나의 큰 병은 내게  몸이 있기 때문'이라는 말이 곧 그 뜻이죠. 그래서 살아 있을 때 사람의 영혼이 최대한 육체 밖으로 동떨어질 수 있는 방법이 뭐가 있을지 생각했어요. 나중에 방법이 떠올랐죠. 약영 언니는 예를 집행하거나 음악을 연주할 때 너무 몰입해서 자아를 잃는 것 같았던 경험 없어요? 아니면 명상 중에 신명, 옛사람과 교류를 한다든가..."

 

- "제사에 참여하고 음악을 연주하며 춤을 추는 무녀는 한때 존재하는 무녀일 뿐이지만 내가 되고 싶은 건 영원한 무녀예요. 유교에선 공자를 '소왕'이라고 불러요. 공자는 제왕의 지위를 얻진 못했지만 후대를 위해 제왕의 법을 만들었기 때문이죠. 내가 하고 싶은 일도 마찬가지예요. 다시 제사에 참여할 수 없고 춤을 추지 못하고, 늙어 죽어 명성은 사라져도 내가 만든 '법'이 계속 존재하면, 내 시대와 미래의 전 시대를 향한 내 '소원'이 계속 존재하면, 내가 세상에 보급한 '가르침'도 사라지지 않으면, 그래서 계속 사람들에게 읽히면, 난 신 앞에서 영원히 끝나지 않는 춤을 추는 영원한 무녀가 되는 거예요. 이것이 내 바람, 내 야심이고 내가 범할 죄업이에요."

 

- "우리는 진정한 의미에서 타인이 죽는 과정을 경험하는 것이 아니라, 기껏해야 '그 자리에' 있을 뿐이다. 무엇보다 어느 누구도 타인에게서 그의 죽음을 빼앗을 수는 없다. 물론 누군가가 '타인을 위해 죽을 수는' 있다. 그렇지만 이것은 '어떤 특정한 일에서' 타인을 위하여 자신을 희생한다는 말이다. 이렇게 타인을 위해 죽는다고 해서 타인의 죽음을 아주 조금이라도 덜어줄 수 있다는 의미는 결코 아니다. 사람은 각자 자신의 죽음을 받아들여야 한다." - 하이데거

 

- 이 세상에 나와 같은 지식 구조와 악취미가 있는 사람이 또 있으리라고 생각하지 않기에, 이 세상에 <원년 봄의 제사>와 같은 소설이 또 없을 것이라는 것을 자부한다. <한서> 및 여러 경서에 조금 공을 들이고, 서구 철학에 약간 흥미를 두는 한편, 미쓰다 신조와 마야 유타카 작품을 추리소설의 최고 준칙이라 믿다가 결국 (그러면서 결정적이고 치명적인) 고전학과 고전 본격의 광신자는 다시 일본 애니메이션(A.C.G) 문화에 영혼을 팔았다. 이 세상에 나 같은 폐인이 또 있다면 그 사람은 나의 분신(도플갱어) 일 것이고, 내 평생 친구가 되거나 같은 하늘 아래 살 수 없는 적이 될 운명일 것이다. 

 


 

- 리뷰자 주 : 중국인으로서 환경적으로 일본 문화에 심취하기가 쉽지 않을 텐데 싶었는데 작가는 현재 일본 거주 중이라고 한다.

'같은 하늘 아래 살 수 없음'은 도플갱어는 마주치면 어느 한쪽이 죽어야 한다/혹은 죽는다는 말이 있기도 하고, 서로가 같으니 합쳐지면 지음 밀어내면 불구대천지원수가 되리라는 말이기도 하고, 같은 하늘 아래 뛰어난 자는 둘일 수 없으니 주유가 제갈량을 두고 했던 말이기도 하다.

'마야 유타카'의 글은 한 편도 읽어본 적이 없어 모르겠으나, '미쓰다 신조'의 글은 한국어로 번역된 작품은 모두 읽었다.
그런데 내게 저자의 글은 '미쓰다 신조'와는 지향점이 무척 다르게 느껴진다. 의문을 해박한 지식으로 풀어 설명한다는 점에서는 유사할 수도 있겠지만, '미쓰다 신조'는 현상이 먼저 존재하고 그것을 설명하는 느낌이라면 '루추차'는 설명을 하기 위해 현상을 만든 느낌.

'미쓰다 신조'는 그렇게 풀어간 설명으로 해결되지 않은 찐득한 공포가 남는 것이 매력이라고 생각하던 터라 작가 후기를 읽고 잠시 당황했다.

 

다소 산뜻하고 교훈적인(?) 느낌의 <원년 봄의 제사>와는 잘 매치가 되지 않지만, 첫 작품인 데다 번역작을 읽은 것이고, 내가 시가에 무지하니 다른 작품을 더 읽기 전에는 추가적인 판단은 보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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