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자가 흐르는 이야기/Book1

[데이비드 버코비치] 모든 것의 기원

일루젼 2021. 8. 9. 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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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데이비드 버코비치 / 박병철
출판 :  책세상
출간 :  2017.10.25


   

아주 재미있게 읽었다. 유쾌하고 명확하다.

읽는 도중 저 멀리로 날아가버렸던 고등학교 과학 지식들을 떠올리느라 중간 중간 책을 덮어야 하긴 했지만.

 

이 책은 예일대학교 학부생들을 대상으로 한 학기 동안 진행되었던 세미나를 정리한 것으로 해당 세미나는 일종의 교양 강좌였다. 그것을 일반인들을 위해, 즉 '누구나 읽을 수 있는 교양과학서'로 출간하고 싶었던 편집자와 '말랑말랑한 과학책'은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는 저자가 함께 정리해 출간했다. 

 

저자는 우주 최초의 탄생부터 지금까지를 24시간이라고 가정한다면 인류가 등장하는 것은 1초도 되지 않는다는 설명으로(4/100초) 시작한다. 그리고 각각의 비중에 맞게 발생에 관한 이론들을 설명해나가는데, 상당히 재미있다. 다만 저자의 판단에 기본적이라고 생각하는 듯한 기초 과학적 지식은 깊게 설명해주지 않으므로 잠깐씩 생각을 해봐야 한다.

(그것도 재미라면 재미겠지만, 개인적으로 두 포인트에서 누구라도 붙잡고 물어보고 싶었다. 검색으로도 잘 나오지 않아서.)   

 

대류 부분에서는 적도를 중심으로 설명하며 남반구와 북반구의 차이에 대해서도 다루므로, 관련해서 살펴보고 싶다면 좀 더 살펴봐도 좋을 것 같다. 동쪽은 어디서나 동쪽이지만, 태양이 뜨고 지는 방향이 달라지는 것은 지구가 구형이기 때문이다. 자전축 등등을 모두 생략하고 아주 간략히 설명하자면, 태양은 나를 기준으로 반원형으로 움직이므로 반구에 따라 동-남-서이냐 동-북-서이냐가 달라진다. 

 

더 직관적인 예시를 들자면.

마주 보고 선 두 사람이 태양이 떠오르는 방향의 팔을 든다고 해보자. 

한 사람은 왼팔, 한 사람은 오른팔일 것이다.

즉, 뜨는 지점은 변하지 않지만 관측자의 입장에서는 방향이 달라지는 것이다.

 

등등 생각해 볼 거리가 많아 아주 즐거웠고 개인적으로는 반물질 부분과 힘의 4분화가 흥미로웠다. 

 


 

- 종교적이건 과학적이건 간에, 사람들이 우주 창조설에 관심을 갖는 이유는 나라는 존재의 기원이 궁금하기 때문이다.

 

-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브루노가 "우주는 변하지 않으며 크기와 나이가 무한하다"고 주장했다는 점이다.

 

- 그러나 우주의 크기와 나이가 무한대라는 브루노의 주장은 현대에 와서 틀린 것으로 판명되었다. 특히 시간은 무한히 긴 세월 동안 흘러온 것이 아니라, 명백한 '시작'이 존재했다. 어두운 밤하늘이 바로 그 증거다.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냐고?

 

- 시간과 공간까지 작은 영역에 똘똘 뭉쳐 있었기 때문에 내부와 외부의 기압차라는 것이 아예 존재하지 않았다. 그냥 우주가 팽창하기 시작하여 경계선이 점차 확장된 것이다. 우주의 경계면 바깥에는 빛도, 물질도, 에너지도 없고 시간과 공간도 존재하지 않는다. 세상에 그런 공간이 어디 있냐고? 물론 없다. '세상'이란 우주의 내부에 존재하기 때문이다. 경계 바깥이 어떤 곳인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러니 애써 상상하려고 애쓸 필요 없다.

 

- 탄생 직후의 우주는 초고온, 초고밀도의 작은 공이었으나 급속한 팽창과 함께 온도가 낮아지면서 다양한 상태의 물질과 에너지가 만들어졌고, 원래 하나였던 힘은 네 종류로 분리되었다.  

 

- 자연에 존재하는 기본 힘은 입자의 교환을 통해 작용하며, 이때 교환되는 입자를 매개 입자라 한다. 

 

- 빅뱅 직후에 이 매개 입자들이 한 종류였다면 현존하는 4개의 힘들은 하나의 통일된 힘으로 존재했을 것이다. 물리학자들은 하나의 힘이 4개로 분리된 과정을 수학적으로 설명하기 위해 1950년대부터 "통일장이론 Unified Field Theory, UFT" "Theory of Everything, TOE"을 구해왔는데...

 

- 최초의 물질은 쿼크 quark라는 소립자로 이루어진 수프 형태였다. 쿼크는 양성자 proton와 중성자 neutron를 구성하는 입자이고, 양성자와 중성자는 원자핵을 이루는 입자이다. 이외에 엄청난 양의 에너지가 질량이 훨씬 작은 렙톤 lepton과 질량이 아예 없는 광자 형태로 등장했다. 

 

-  뉴트리노는 질량이 거의 0에 가깝고 다른 입자와 상호작용을 거의 하지 않기 때문에 지구만한 행성 수십 개를 일렬로 세워놓아도 가볍게 통과한다. 지금도 태양에서 날아온 뉴트리노가 당신의 몸을 수시로 관통하고 있다. 

 

- 여기서 잠깐, 돌발 퀴즈: 반물질이 물질보다 많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답: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는다. 다만 별과 행성, 그리고 우리의 몸을 비롯한 모든 것이 반물질로 이루어졌을 것이다. 

 

- 섭입대에서 바위가 녹는 과정은 해령이나 하와이의 핫스팟에서 바위가 녹는 과정보다 복잡하다(무언가가 '녹는다'고 하면 흔히 얼음이나 밀람에 열을 가하여 녹는 과정을 떠올리지만, 섭입대나 해령에서는 바위가 뜨거워져서 녹는 게 아니다). 중앙해령 mid-ocean ridge과 핫스폿의 맨틀 바위는 위로 떠오르면서 압력이 낮아졌기 때문에 쉽게 용해된다. 그러나 섭입대에서 바위를 녹이는 주요인은 '물'이다.

 

- 우리가 땀으로 체온을 조절하게 된 이유 중 하나는 호모 사피엔스가 빙하기에 태어났기 때문이다. 대기가 뜨겁고 습했던 5천만 년~3천만 년 전에 태어났다면 다른 방식으로 체온을 조절했을 것이다. 사람의 땀은 춥고 건조한 날씨에 제 기능을 발휘할 수 있다. 만일 인간의 사회활동이 온난화를 초래한다면 땀의 기능은 그만큼 저하될 것이다. 다른 질병에 비하면 별로 대수롭지 않은 문제 같지만, 가장 위협적인 기상 현상은 허리케인이나 토네이도가 아니라 "장기간에 걸친 폭염"이다.

 

 

더보기

- 우주가 무한히 크고 무한히 오래되었다는 가정하에, 밤하늘을 바둑 판처럼 작은 영역으로 세분해보자. 그러면 모든 영역에는 별들이 존재할 테고, 이들이 방출한 빛은 이미 지구에 도달했을 것이다(우주의 나이를 무한대로 가정했으므로, 아무리 멀어도 도달할 시간은 충분하다). 그렇다면 밤하늘은 별빛으로 가득 차서 대낮처럼 환하게 밝아야 한다. 독일의 수학자이자 천문학자였던 요하네스 케플러 Johannes Kepler와 영국의 철학자 토머스 디기스 Thomas Digges(브루노와 동시대에 살았음)도 이 역설을 인식하고 있었지만, 18~19세기 독일의 천문학자 하인리히 빌헬름 올베르스 Heinrich Wilhelm Olbers가 공식석상에서 이 문제를 처음 제기한 후 이는 '올베르스의 역설'로 알려지게 된다.  

 

- 역설의 해결책을 알아낸 주인공은 19~20세기 영국의 물리학자 윌리엄 톰슨 William Thomson (켈빈 경 Lord Kelvin이라는 별칭이 더 유명하다)이었다. 그의 논리에 의하면 우주는 나이가 유한하거나(그래야 멀리 있는 별에서 방출된 빛이 아직 지구에 도달하지 않아서 밤하늘이 어두울 수 있다), 크기가 유한하거나(그래야 하늘을 바둑판처럼 작은 구획으로 나눴을 때 별이 하나도 없는 부분이 존재하여 밤하늘이 어두울 수 있다), 나이와 크기가 둘 다 유한해야 한다(미국의 작가 에드거 앨런 포 Edgar Allan Poe도 거의 비슷한 답을 생각해냈다). 이것은 우주가 거대한 폭발에서 시작되었다는 빅뱅 가설의 확실한 근거가 되었다. 우주의 나이가 유한하다는 것은 과거의 어느 한 시점에 우주가 탄생했음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  요즘은 초끈이론 superstring theory이나 고리 양자중력이론 loop quantum gravity이 통일장이론의 대안으로 떠오르는 중이다. 그렇다고 통일장 이론이 실패한 이론이라는 뜻은 아니다. 중력을 제외한 세 종류의 힘을 하나로 통일하는 작업은 이론과 실험에서 커다란 성공을 거두었다. 이것이 바로 입자물리학의 "표준 모형 Standard Model"으로, 전자기력과 약력, 강력의 작용 원리 및 이들이 하나로 통일되는 원리를 수학적으로 설명하는 이론이다. 게다가 지난 2012년에 이론물리학의 최대 현안이었던 힉스 입자 Higgs particle(모든 입자에 질량을 부여하는 입자. 영국의 물리학자 피터 힉스 Peter Higgs의 이름에서 따온 용어)가 발견되어 표준 모형의 입지가 한층 더 탄탄해졌다.

   

- 여기서 한 가지 짚고 넘어갈 것은 인플레이션 시대의 팽창 속도가 빛보다 훨씬 빨랐다는 점이다. 인플레이션은 하나의 역장기 force field에 저장되어 있던 에너지가 방출되면서 일어났으며, 이 에너지는 훗날 우주에 존재하게 될 모든 물질과 에너지의 원천이 되었다.

 

- 특히 입자들이 결합하면서 물질과 반물질이 거의 비슷한 양만큼 형성되었다. 모든 입자는 자신과 질량이 같고 전하의 부호가 반대인 파트너를 갖고 있는데, 이들을 반입자 antiparticle라 한다. 예를 들어 전자의 반입자는 양전자 positron이고, 뉴트리노의 반입자는 반뉴트리노 anti-neutrino이다. 일반적인 입자로 이루어진 물질을 그냥 '물질'이라 하고, 반입자로 이루어진 물질을 반물질 antimatter이라 한다. 물질과 반물질이 따로 존재할 때는 아무 일도 안 일어나지만, 둘이 접촉하면 복사에너지를 방출하면서 순식간에 사라진다. 이 과정을 쌍소멸 pair-annihilation이라 하는데, 이때 방출된 복사에너지의 양은 E=mc^2를 통해 결정된다(여기서 m은 물질과 반물질의 질량의 합이다). 빅뱅 후 10^-5초가 지났을 때 이들은 짧은 시간 동안 공존하다가 서로 만나면서 다량의 복사에너지를 남기고 사라졌다. 그러나 다행히도 물질이 반물질보다 조금 많았기 때문에 별과 은하, 행성 등 다양한 천체들이 존재할 수 있었다. 

 

-그러나 암흑물질과 암혹 에너지는 은하와 같이 큰 규모의 우주에서 작용하기 때문에, 인간의 한정된 감각으로는 그들의 존재를 느낄 수 없다. 우리는 그저 침대에서 일어나거나 계단을 올라갈 때, 또는 커피를 따를 때 작용하는 중력을 느낄 뿐이다. 만일 우리의 몸이 벌레나 미생물만큼 작아진다면 중력보다 전자기력을 강하게 느끼며 살아갈 것이다. 작은 세계를 지배하는 정전기력과 마찰력, 표면장력 등은 모두 전자기력에 속하기 때문이다(벽을 타고 올라가거나 천장에 붙은 채 기어가는 개미에게 중력은 있으나마나한 힘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암흑에너지와 암혹물질을 전혀 느끼지 못하는 우리는 거시적 규모에서 볼 때 벌레와 비슷한 존재이다.

 

- 그러나 질량이 엄청나게 큰 구름은 위에 열거한 부수적 도움 없이도 자체 중력만으로 충분히 수축될 수 있다. 구성 원소가 수소와 헬륨뿐이었던 최초의 구름은 태양의 수천 배, 또는 수백만 배에 달하는 질량에서 출발하여 태양보다 질량이 수백 배 큰 별이 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이 시기에 형성된 별을 'III 종족 별 Population Ⅲ stars'이라 하는데, 망원경으로 발견된 사례는 없다). 질량이 작은 구름이 수축하면 작은 별이 될 수밖에 없으므로, 위상 변화라는 장벽을 극복하고 계속 수축되려면 수축을 유발하는 다른 요인이 있어야 한다.

 

- 무거운 원소를 생산하는 핵융합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헬륨 원자핵인 알파 입자(앞서 말한 대로 양성자 2개와 중성자 2개로 이루어져 있다)의 융합이다. 그중에서도 3개의 알파 입자가 두 차례의 반응을 거쳐 탄소로 변환되는 '3중 알파 입자 반응 triple-alpha process' 은 매우 드물게(그리고 어럽게) 일어나는 사건이어서, 탄소보다 무거운 원소가 생성되기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할 필수 과정이자 반드시 넘어야 할 장벽이기도 하다.

 

- (단, 철은 한 번에 만들어지지 않고 불안정한 니켈Ni이 먼저 생성되었다가 방사능 붕괴를 일으켜 철로 변환된다).

 

- 그러나 별의 내부에서 진행되는 '무거운 원소 생산 공정'은 이것으로 끝이다. 철보다 무거운 원소를 생산하려면 일단 질량부터 만들어내야 한다. 별이 보유한 질량만으로는 철보다 무거운 원소를 더 이상 만들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새로운 원소가 만들어지려면 에너지를 방출하는 대신 흡수해야 하는데, 이런 핵융합은 반응을 촉진하는 대신 오히려 온도를 낮춰서 반응을 중단시킬 것이다.

 

- 이처럼 우리의 태양계는 회전원반이론으로 설명할 수 없는 희한한 특성을 갖고 있다. 수축되는 과정에서 회전운동에너지 (또는 각운동량)의 상당 부분을 잃어버린 듯한데, 자세한 내막은 아직도 오리무중이다(이 문제를 '각운동량 역설 angular momentum paradox'이라 한다). 

 

- 예를 들어 대부분의 질량이 테두리(타이어)에 집중되어 있으면서 1분당 100번씩 회전하는 질량 1kg짜리 자전거 바퀴는 동일한 속도로 회전하는 1kg 짜리 차축보다 각운동량이 크다. 두 물체가 당신을 향해 굴러오고 있을 때, 맨손으로 운동을 저지한다고 상상해보라. 어느 쪽이 더 만만하게 보이는가?

(리뷰자 주 : 순간 각운동량의 보존 법칙이 더 강하게 떠올라 혼란스러웠다. 동일한 속도로 회전하고 있다는 가정을 상기할 것.)

 

 - 그러나 행성이 만들어지려면 초기에 형성된 먼지 덩어리들(광물질 또는 얼음 알갱이)이 점점 크게 자라서 주변 알갱이를 잡아당길 정도로 강한 중력을 행사해야 한다. 일단 어느 정도의 크기가 확보되면, 그다음부터는 빈익빈 부익부 원칙에 따라 일사천리로 진행된다. 말로 하면 간단하지만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 목성은 처음 형성되기 시작할 때부터 자신뿐만 아니라 토성과 같은 주변 행성의 성장까지 촉진했다. 특히 목성의 중력은 자신보다 바깥 궤도를 도는 물체를 가속시켜서 그들의 궤도 반지름을 키워놓았다. 한편, 먼 궤도에서 나선을 그리며 다가오던 먼지와 얼음 알갱이들은 목성 때문에 밖으로 밀려가던 입자들과 만나서 또 하나의 거대 행성을 만들었는데, 이것이 바로 태양계 행성 중 '넘버 투'인 토성이다.

(리뷰자 주 : 특정 거리에서는 목성과의 인력이 더 강해지므로 궤도가 휘게 된다. 이때 안쪽이 아닌 외부계로 향하게 되는 포인트도 존재하는데, 따라서 '해머질'을 하는 셈이다.)

 

- 달이 지구에 조력 tidal force을 발휘하면 해수면이 달 쪽으로 높아지는데 지구는 자전하고 있으므로 높아진(정확하게 말하면 달에 더 가까워진) 부분이 달보다 앞서가게 되고, 이 부분과 달 사이에 작용하는 중력이 달의 속도를 조금 증가시켜서 더 큰 궤도를 돌게 되는 것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달도 높아진 해수면에 중력을 행사하여 지구의 자전 속도를 조금씩 늦추고 있다. 간단히 말해서, 지구가 달에 각운동량을 조금씩 나눠주고 있는 형국이다. 그러나 주어진 계(지금의 경우는 지구와 달)의 총 각운동량은 보존되는 양이므로, 지구와 달의 각운동량을 합한 값은 변하지 않는다.

 

- 지구는 왜 덩치가 유별나게 크면서 구조까지 특이한 위성을 거느리게 되었을까? 이것은 지난 수백년 동안 행성학자들을 난처하게 만들었던 대표적 질문이다. 내가 어렸을 때에는(1960년대) 학교 선생님들이 "지구에서 큰 덩어리가 떨어져 나가 달이 되었고, 떨어져 나간 자리는 태평양이 되었다”고 가르쳤다. 이것 이소 위 말하는 '분열이론 Fission Theory'인데, 지금은 완전히 틀린 이론으로 판명되었다. 생각해보라. 멀쩡한 행성에서 느닷없이 거대한 덩어리가 빠져나가다니, 지구가 무슨 알이라도 낳았단 말인가?

 

- 지구 내부를 관통하는 다양한 탄성파를 이용하면 각 충의 밀도를 알아낼 수 있다. 지진파 중 속도가 가장 빠른 것은 임의의 매질 안에서 압축과 감압이 반복되면서 생성된 음파이며, 둘째로 빠른 지진파는 진동하는 끈처럼 물질이 휘어졌다가 펴지기를 반복하면서 생성된 파동이다. 단, 액체는 외부로부터 변형력이 가해졌을 때 원래 형태로 돌아가려는 탄성력을 발휘할 수 없기 때문에, 둘째 파동은 고체 안에서만 발생할 수 있다. 방금 언급한 두 파동의 속도 차이를 이용하면 극도로 높은 압력하에서 매질이 얼마나 쉽게 압축되는지 알 수 있고, 이로부터 매질의 밀도를 계산할 수 있다(이외에 지표면 근처를 느린 속도로 진행하는 두 종류의 지진파가 추가로 존재하는데, 이들이 바로 지진 피해를 일으키는 주범이다).

 

- 고체가 유체처럼 행동하는 것은 우리의 직관과 상반된다. 그러나 이 책의 서문에서 말한 대로 나는 '말랑말랑한' 과학 책을 쓸 생각이 없기 때문에, "너무 복잡하므로 생략한다"는 무책임한 말 대신 간단한 모형을 상정하여 독자들의 이해를 돕고자 한다(여기서 또 한가지 짚고 넘어갈 것이 있다. 사람들은 '유체 fluid'와 '액체 liquid'를 동의어로 취급하는 경향이 있는데, 물질이 취할 수 있는 상태는 고체와 액체, 기체, 그리고 플라즈마 plasma 뿐이다. '유체'는 물질의 상태가 아니라 '특정 방향으로 흐르거나 모양이 쉽게 변형될 수 있는 물질"을 통칭하는 용어이다. 유체가 아닌 고체에 변형을 가하면 휘어지거나 부러진다. 그러므로 빙하나 맨틀의 변형은 긴 시간 규모에서 볼 때 유체로 간주할 수 있으며, 기체와 액체는 그 안으로 음파가 통과할 때 탄성체처럼 행동한다).

 

- 함수광물이 맨틀의 특정 깊이에 도달하면(약 100km) 온도와 압력이 너무 높아서 수분을 밖으로 토해내고, 이 수분은 섭입판의 윗부분으로 올라왔다가 근처에 있는 뜨거운 맨틀 바위로 유입된다. 이렇게 수화된 바위는 마른 바위보다 쉽게 녹기 때문에(물은 광물 사이의 결합을 약화시킨다) 수분을 머금은 맨틀에 용해된다(이 맨틀은 온도가 특별히 높지 않은데도 표면으로 떠오른다). 맨틀에 녹아 있는 용해 물질은 하와이 용암보다 차갑지만 기본적으로는 유동성이 큰 현무암 용암과 비슷하여 위로 떠오르다가 표면에 도달하면 지각의 가장 취약한 부분을 녹이는데, 이때 녹은 바위는 실리카 silica(규소의 산화물, 또는 규산염)를 다량 함유하고 있어서 지각의 다른 부분과 분리되려는 경향이 있다. 실리카를 가장 많이 함유한 마그마는 화강암으로, 이는 "차가운" 용해 과정의 전형적 산물이다.

 

- 그러나 광물 알갱이는 혼자 있을 때 서서히 커지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거품 덩어리 안에서 거품 알갱이가 점점 커지는 것과 비슷하다) 시간이 지나면 바위는 일종의 치유 과정을 거쳐 다시 견고해지고, 이 과정은 온도가 높을수록 빠르게 진행된다. 그러므로 지구의 표면은 액체 상태의 바다를 유지할 정도로 차가웠을 뿐만 아니라, 판의 경계면 깊은 곳에 난 상처가 치유될 수 없을 정도로 차가웠을 것이다. 금성은 표면이 뜨겁기 때문에 치유가 빠르게 진행되어 판의 경계면이 견고하게 유지되었다. 금성에 지질구조 판이 존재하지 않는 이유는 이런 논리로 설명할 수 있지만, '손상과 치유'가설만으로는 지구 대륙의 형성 과정을 완전하게 설명할 수 없다.

  

- (화성의 평균 표면 온도는 -60°C이다).

 

- 최초의 생명체는 인간보다 수십억년 먼저 등장한 미생물이었는데, 이들은 지금도 100℃가 넘는 고온 지대나 산도가 매우 높은 화산 연못 속에서 태연하게 살아가고 있다. 그러므로 '서식 가능성'이라는 용어는 가능한 한 넓은 의미에서 정의돼야 한다. 예를 들어 다른 행성에서 살아 있는 생명체나 과거에 살았던 생명체의 흔적을 찾고 싶다면 서식 환경이 지구의 가장 극단적인 환경과 비슷한 행성까지 뒤질 필요가 있다. 생명체에게 가장 필수적인 요소는 물이므로 지구 이외에 서식 가능한 행성 후보 1순위는 화성이며, 얼음으로 덮여 있는 유로파 Europa (목성의 위성)와 엔셀라두스 Enceladus (토성의 위성)도 강력한 후보이다.

 

- 그래서 나 같은 지질학자들은 틈날 때마다 동료 기후학자들에게 “기후과학의 가장 중요한 요인은 지질구조판"이라며 그들의 성질을 돋우는 취미가 있다(사실 크게 틀린말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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