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제 : Sylvie and Bruno
저자 : 루이스 캐럴 / 이화정
출판 : 페이퍼하우스
출간 : 2011. 04. 08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와는 완전히 다른 이야기이면서도 그만큼-혹은 그 이상- 우아하고 매력적인 이야기였다.
환상 세계과 현실 세계가 '소리'를 통해 연결 되는데, '어느 쪽이 꿈일까?'라는 '나'의 질문에 선뜻 답하기가 어렵다. 처음에는 환상 세계와 현실 세계가 완연히 분리된 것처럼 느껴졌으나 나중에는 환상 세계 쪽이 더 현실에 가까운 듯하다. 그 교차가 무척 자연스럽다.
어느 순간부터는 '으스스한 fairyish' 느낌과 함께 환상 속의 아이들이었던 실비와 브루노가 요정으로 등장하는데 그들은 다른 사람들과도 교류가 가능하다. 이 즈음에서는 환상 세계 속 인물들도 '나'를 인지하는 모습을 보이는데, 두 세계의 융합이 일어나고 있다고도 볼 수 있겠다.
일종의 타임슬립 장치라거나, 할아버지의 죄과를 손자가 받게 된다거나, 원과결 법칙의 역전 등 현대 SF/환상 문학에서 다룰 법한 이야기들을 조근조근한 설명과 함께 풀어나가는 역설이 놀랍다.
역자 후기에서도 말하고 있지만 캐럴의 언어유희는 사실상 번역이 거의 불가능한 것이므로, 한국어 번역본에서는그 점을 감안해야 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충분히 매력적인 글이었지만 말이다. 앨리스 때와 달라진 점으로는 확실히 좀 더 직접적인 어투로 사냥이나 자본주의, 무신론을 풍자 비판하고 있다는 점인데 아이들을 대상으로 썼다고 보기에는 메시지가 뚜렷하고 날카롭다.
1890년대 전후로 쓰여진 글을 백년도 더 넘은 현 시대에 대입해봐도 크게 이상할 것이 없다는 것이, 희소식인지 아닌지 잘 모르겠다.
즐거웠다.
- 그러나 일단 인생의 진정한 목적을 -그것은 즐거움도, 지식도, '고결한 인물의 마지막 약점'인 명성 그 자체도 아닙니다. 그것은 인격의 개발을 통해 더 높고, 고매하고, 순수한 수준으로 도달하여 완벽한 인간이 되는 데 있습니다- 깨닫고 이 과정이 진행 중이라는 점을 느끼는 한, 우리는 계속해서 정진할 것이고(최소한 그렇다고 우리는 믿는 것이지요), 죽음은 우리에게 아무런 공포를 주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이제 죽음은 그림자가 아니라 빛이며, 끝이 아니라 시작이 되니까요!
- 만일 죽음이 조용히 실현되고 꾸준히 다가오는 것이라면, 옳든 그르든 관계없이 나는 죽음의 가능성에 대한 생각이 어떤 즐거움의 장면으로 향해 가는 가장 그럴듯한 시험 중 하나가 될 것이라 믿습니다. 그런데 극장에서의 갑작스러운 죽음을 상상했을 때 그 생각이 여러분에게 특별한 공포감을 자아낸다면, 극장이 설령 다른 사람들에게는 해롭지 않다고 해도 여러분에게는 틀림없이 해로운 것이며, 연극 관람은 여러분에게 치명적인 위험을 초래할 것입니다. 우리가 죽고 싶지 않은 인생의 장면 속에 감히 들어가서 살지 않는 것이 가장 안전한 방책이라는 점을 명심하십시오.
- "네가 따라온 길이 왕의 길이어서 그렇단다, 귀여운 우리 딸, 왕족의 피를 지닌 사람들만이 그 길을 따라올 수가 있지. 아버지가 한 달 전에 엘프랜드의 왕이 되었으니 너도 왕족이 된 것이야. 엘프랜드에서는 새 왕으로 추대하기 위해 나를 초청했고, 초청에 만전을 기하고자 대사를 두 명 보냈지. 한 명은 왕자라 왕의 길을 따라올 수 있었는데, 나 말고는 아무도 그를 볼 수가 없었단다. 또 한 명은 남작이었어. 그래서 그는 일반 길로 와야만 했기 때문에 아직 도착하지 않았단다."
- "그 방은 원래 문이 없는 방이야." 교수님이 말했다. "우린 창문으로 기어 올라가서 방 안으로 들어가야 해."
- 자네가 아무리 그래도
비록 위대한 고귀함까지 가질 순 없다 해도
공정함으로 가는 길은 명백해.
아무리 불편하다 해도!
- 그는 아이들의 손을 잡고 문이 열리면 다 함께 나갈 준비를 했다. 그러나 정원사가 참을성 있게 작은 열쇠를 하나하나 꺼내어 문의 열쇠 구멍에 맞춰보는데도 문은 전혀 열리지 않았다. 마침내 교수가 정원사에게 슬쩍 제안을 했다.
"큰 열쇠로 한번 열어보는 게 어떤가? 문은 문에 맞는 열쇠로 열면 훨씬 더 쉽게 열리는 걸 종종 보았네."
큰 열쇠로 시도하자마자 정원사는 문을 여는 데 성공했다. 그는 문을 열어주고 돈을 달라고 손을 내밀었다. 교수는 고개를 저었다.
"내게 문을 열어주는 건 규칙에 따른 행동이지 않나. 그리고 이젠 문이 열렸으니 우린 규칙에 따라, 그러니까 삼인조 규칙 Rule of Three에 따라나가는 거라네."
- '달 얼굴이 매일 밤 점점 더 더러워디거든요. 그러다가 완전히 까맣게 돼요. 그럼 전부 더러워딘 거죠. 그래서- (그는 손으로 뺨을 쓱쏙 쓸며 말했다) 그때가 되면 달이 세수를 하는 거예요."
"그럼 다시 달이 깨끗해지는 거네?"
"바로는 아니에요. 아저씨는 너무 많은 걸 알고 싶어 하네요! 달은 조금씩 조금씩 씻어요. 다른 쪽 끝에서부터 씻기 시작하거든요."
- How many miles to Babylon?
Three-score miles and ten,
Can I get there by candlelight?
Yes, and back again!
- "제게 떠오른 생각인데 말이죠." 아서가 말했다.
"목적론에서 흥미로운 문제로 궁극적 원인학이라는 게 있답니다."
뮤리엘 백작 영애의 호기심 띤 표정에 응답해 그가 말을 이었다.
"궁극적 원인이란-?"
"그러니까 일련의 연결된 사건에서 보자면 각각의 사건은 바로 다음 사건을 초래하는데, 그렇게 해서 마지막 사건은 첫 번째 사건이 일어나는 원인이 되는 겁니다."
"하지만 마지막 사건은 실제적으로 최초 사건의 결과이지 않나요? 그런데 마지막 사건을 최초 사건의 원인이라고 말씀하시다뇨!"
"다소 혼란스럽다는 점은 인정합니다. 이러면 어떨까요? 마지막 사건은 최초 사건의 결과지만, 바로 그 마지막 사건이 일어나야 할 필요성은 최초 사건이 일어나야 할 필요성의 원인이 되는 거죠."
- "시계가 시간을 따라 움직이는 게 아니라 시간이 시계를 따라 움직이는 기묘한 특성을 가졌지요. 이제 이해가 되십니까?"
"그다지요." 내가 말했다.
"설명해 드리죠. 그냥 내버려두는 한 이것은 자기만의 흐름으로 가니까 시간이 아무런 영향을 끼치지 못해요."
"그런 시계를 알고 있습니다." 내가 말했다.
"물론 속도는 보통으로 갑니다. 시간이 따라가는 것뿐이지요. 그래서 제가 시곗바늘을 움직이면 시간도 같이 바뀝니다. 진짜 시간보다 앞으로 이동하는 건 불가능합니다만 한 달까지 뒤로 돌릴 순 있지요. 그게 한계예요. 그러고 나면 모든 게 약간의 변동 사항만 빼고 그대로 다시 일어납니다."
나는 '그런 시계를 실제로 갖고 있다니 대단한 축복이로군' 하고 혼자 생각하며 물었다.
...
"이 작은 핀이 보이십니까? '역회전 핀'이라고 부르는데요, 이걸 눌러 넣으면 다음 시간에 일어날 사건이 순서가 거꾸로 되어 일어납니다. 지금 시험해보진 마시구요, 제가 며칠 시계를 빌려드릴 테니 혼자 실험해보시면서 즐거운 시간 보내십시오."
- 내가 이 시계를 시험해볼 기회는 얼마 지나지 않아 찾아왔다. 시험해보고 싶은 생각이 내 뇌리를 스치는 그 순간, 내가 바라고 있던 사고가 일어났기 때문이다.
- 브루노가 우리를 보고는 뛰어와서 대단히 자랑스러워하며 길에서 주운 접는 칼 손잡이를(칼날은 부러지고 없었다) 보여주었다.
"브루노, 그걸 어디다 쓰려고 하니?" 내가 물었다.
"몰라요. 브루노가 건성으로 대답했다.
"생각해봐야 돼요."
"삶에 대해 어린아이가 최초로 갖는 시각은 말이오," 백작이 감미로우면서도 서글픈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휴대용 재산을 축적하면서 보내는 기간이 삶이라고 보는 것이라오. 그러한 시각은 여러 해가 지나면서 수정되게 되지."
-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
힘찬 홍수처럼 떠오르고 넓어지고 굽이쳐 오르기를!
동쪽을 보라! 오오, 동쪽을 보라!
- 물론 팀 버튼 감독에 국한된 건 아니지만, 불행히도 이 영화뿐만 아니라 앨리스 각색 작품 대부분이 원작의 참맛인 언어유희와 각종 레퍼런스들은 고스란히 떼어버리고 괴이하고 질서가 뒤집힌 사건이 몽환적으로 펼쳐지는 부분만 갖고 이리저리 재창작을 시도하고 있어, 앨리스의 재탄생이라기보다 재사망이라고 해야 맞지 않나 싶기도 하다. 이것을 모두 각색자의 책임이라고 다그치기에는 불공평한 데가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원작의 난센스와 언어유희를 언어 이외의 매체로 담아낸다는 것이 대단한 난관인 데다가, 이 각색 작업이 원작의 언어인 영어를 넘어서 이루어지는 경우에는 난관이 아니라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벽에 부딪히게 되기 때문이다.
- 이렇게 여러 가지 형태로 오랫동안 대중의 사랑과 각광 속에서 재탄생-또는 재사망-을 거듭해온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및 <거울 나라의 앨리스>와 비교할 때, 동일 작가 루이스 캐럴 Lewis Caroll의 세 번째 대작인 <실비와 브루노>는 처참하게 대중의 외면을 받은 작품이라 할 수 있다.
- 앨리스 시리즈와 달리 <실비와 브루노>가 세인의 주목을 거의 받지 못해왔다는 점은 아이러니하다. 왜냐하면 루이스 캐럴이 자신의 작품 인생에서 가장 많은 심혈을 기울여 -장장 20년간 공을 들여-창작한 작품은 다름 아닌 <실비와 브루노>이고, 이 작품에서 캐럴은 앨리스 시리즈보다 더 깊은 실험성으로 앨리스 시리즈를 변증법적으로 극복하는 데 성공했기 때문이다. 질 들뢰즈 역시 <실비와 브루노>를 앨리스 시리즈와 동등한 걸작이라고 칭한 바 있다. "<실비와 브루노> 안에서 동시에 펼쳐지는 두 스토리는 캐럴의 3부작의 마지막 작품이 되며, 이것은 나머지 두 작품과 동등한 걸작이다."
- 현실계에서는 주로 아서의 말을 통해 모든 비판이 이루어지는데, 어떤 의미에서 이 아서 포레스터는 찰스 도지슨 교수의 대변인 역할을 하는 듯하다. 계속해서 25장에서 아서는 운명과 자유 의지를 논하면서 고정적, 외적 물질세계를 움직이는 그 기저에 자유 의지가 있다는 말로 시작하여 거의 베르그송의 물질론과 유사한 관점으로 철학적 논의를 펼친다.
- 이런 식으로 하다 보니, 결국 저는 't'자가 하나 들어가는 문학이 아니라 잡동사니 찌꺼기 문학이라 할 수 있는 't자가 두 개 들어가는 잡소리 문학 litterature의 비대한 덩어리 하나를 소유하게 되었음을 알아차렸습니다. 독자 여러분께서는 이 'litterature'라고 쓴 철자를 좀 양해해 주시길 바랍니다. 사실 제가 쓰고자 했던 책을 만들어나가려면, 위의 't'자 두 개는 스토리라는 일련의 실을 갖고 한데 꽁꽁 묶어 하나의 't'로 만들어야 하는 부분입니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페어리랜드 Fairyland의 궁정에서 여러 해를 보내면서 다섯 음절을 두 음절로 줄여 발음하는, 보통 사람으로서는 거의 구사하기가 불가능한 기술을 습득한 이 사람의 말투에 대해 양해를 구하지 않을 수 없다.
- 마침내 나의 생각을 통해 베일을 완전히 없애버렸을 때 나타난 것은, 분명히 영락없는 어린 실비의 깜찍한 얼굴이 아닌가!
"그렇다면, 내가 실비의 꿈을 꾸고 있었나." 나는 혼자 중얼거렸다.
"그게 현실이거나, 아니면 내가 실제로 실비와 함께 있었고 이것이 꿈인 것인가! 삶 자체가 꿈이려나?"
- "아시다시피, 최소공배수를 구할 때, 우리는 가장 높은 차수의 항을 제외하고는 나머지는 없애지요. 그래서 가장 고도로 집중된 표현의 문장 외에, 나머지 모든 기록된 사고를 지울 수 있게 되는 거죠. 우리가 그 규칙을 책에 적용시킬 수만 있다면, 얼마나 대단한 게 되겠습니까?"
- "대법관님께서는 아이들을 다루시는 수단이 좋으셔요! 우리 귀여운 어걱이를 대법관님만큼 쉽게 구슬릴 수 있는 사람이 또 있을 리 만무하죠!" 총독 대리 부인의 이 말은 완전히 멍청한 여자가 하는 말치고는 신기하게도 여러 가지 뜻으로 가득 차 있었는데, 정작 그녀 스스로는 그 뜻을 의식도 하지 못하고 있었다. 이에 대법관은 허리를 굽혀 절을 했지만 그에게서는 어딘가 불편한 심기가 느껴졌다. "총독 각하께서 무슨 말씀을 하시려 했던 것 같습니다만." 하는 그의 말에는 화제를 전환하고자 하는 마음이 역력히 드러나 있었다.
- 내가 무슨 말을 하면서 잠에서 깨어났다는 느낌만은 확실히 들었다. 같은 객실의 승객이 대경실색한 표정을 짓고 있다는 사실만 갖고 내가 무슨 말을 했을 것이라는 사실의 충분한 증거로 삼아 속단할 수는 없지만, 억누른 듯한 허스키한 고함 소리는 아직도 내 귓전에 울리고 있었다. 이 상황에서 내가 어떤 말로 사과를 해야 한단 말인가?
- '이 백작 영애의 눈은 영락없는 실비의 눈이군!' 나는 혼자 생각했다. 그때 내가 꿈에서 제대로 깨어나기는 했었는지, 지금 생각해봐도 아리송하다. '저 천진난만하고 귀여운, 놀란 표정도 모두 실비의 표정이야, 그런데 저 백작 영애의 고요하면서도 결연해 보이는 입 모양이나, 또 깊은 슬픔을 오래전에 겪은 사람이 짓는 듯한 어딘가 아득한 꿈결 같은 슬픈 표정은 실비에겐 없지.'
- "그러면 쾌락이란 어떤 것인지 알게 될 거야. 우리가 그렇게 미친 듯이 아서 괴롭게 즐기는 쾌락 말이다!"
브루노는 힘차게 벽을 향해 달려가서 모양은 바나나와 유사하지만 색은 딸기색을 내는 열매를 하나 집어 들고 먹기 시작했다.
- "사랑받는 것도 아주 좋은데요. 하지만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게 더 좋아요! 아버지, 제가 빨간 걸 가져도 될까요?"
노인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가 머리를 숙여 실비의 이마에 입술을 갖다대고 사랑이 담긴 입맞춤을 오랫동안 남길 때 그의 눈에 눈물이 괴어 있는 걸 나는 볼 수 있었다. 노인은 체인을 풀어 실비의 목에 걸어주고는 체인을 잠그는 방법과 로켓을 그녀의 프록코트 끝단 밑에 숨기는 방법을 가르쳐주었다.
"너만 간직하고 있어라." 노인은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이 목걸이는 다른 사람에게 보이기 위한 것이 아니란다. 어떻게 사용하는지 기억하고 있을 거지?"
- 사자는 보통 걷는 정도로 편안하게 달렸고, 어느새 우리는 숲 속 깊숙이 들어와 있었다. 내가 '우리'라고 말하는 것은 내가 이 아이들과 같이 갔다고 확신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내가 어떻게 이 넘리는 사자를 따라잡았는지 설명할 길이 전혀 없다.
- "신경의 작용은 어떤 사람에게는 신기하게도 느리게 일어나지요. 한때 제 친구 한 명은 제가 빨갛게 달궈진 부지깽이로 화상을 입혀도 몇 년이 지나야 뜨거움을 느꼈다니까요!"
"그럼 그 친구분을 그냥 꼬집기만 하시면요?" 실비가 물었다.
"그러면 당연히 훨씬 더 오래 걸리겠지. 사실, 그 친구가 아예 감각이라는 걸 스스로 느끼기나 하는지도 의심스럽네. 그 친구의 손자 손녀 대에 가서나 느끼려나."
"전 꼬집힌 할아버지의 손자가 되고 싶디는 않아요. 아저씨 선생님도 그렇됴?"
(리뷰자 주 : 기분 탓일까, 전생의 업보라고 해도 이상하지 않은 단락이다.)
- "정원사 아저씨가 저희에게 따로 문을 열어주실 필요가 전혀 없어요. 저희가 교수님과 함께 나가면 되거든요."
(리뷰자 주 : 체험이 하고 싶을 때는 선배를 찾아야 한다.)
- "글쎄 아니, 피곤하지 않을 거야, 애야, 있잖니, 자신을 업고 가면서 생기는 피로란 말이야, 업히는 동안 줄어드는 거란다. 그럼, 애들아 안녕! 안녕히 가십시오, 선생님!"
- "그녀는 순정파거든요. 그것만은 확실합니다. 그런데 만일 그녀가 저 말고 다른 남자를 사랑한다면, 그렇다면 좋습니다! 제가 그녀의 행복을 망쳐선 안되죠. 저의 비밀스런 사랑은 제가 죽을 때까지 간직해야겠지요. 하지만 그녀는 저의 첫사랑이자 유일한 사랑입니다!"
"그 모든 게 아주 아름다운 감정일세. 그런데 현실적이진 않네. 아서 자네 답지가 않아."
He either fears his fate too much,
Or his desert is small,
Who dares not put it to the touch,
To win or lose it all.
그는 자신의 운명에 대한 두려움이 지나치게 많거나
아니면 자신의 공적이 적을까 두려워한다.
그래서 그것을 온전히 얻거나 잃어버리기까지
감히 손길조차 내밀지 못한다.
- 첫 번째 규칙은 날씨가 몹시 더워야만 한다는 것이다. 그건 별로 어렵지 않게 해결할 수 있는 부분이라고 봐도 좋다. 또한 아주 약간 졸린 상태가 아니면 안 된다. 염두에 둘 건 그렇다고 너무 졸려서 눈도 못 뜰 정도가 되면 안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약간 '페어리시 fairyish' 한 느낌이어야 한다. 이것을 스코틀랜드 사람들은 '으스스하다'고 말하는데, '페어리시'가 듣기에 좀 더 예쁜 말이긴 하다. 무슨 뜻인지 모르겠다면, 안타깝게도 이 말은 내가 설명할 수 없을 것 같다. 요정을 만날 때까지 기다리는 방법밖에 없다. 그러면 알게 될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 규칙은 귀뚜라미가 울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 이유를 설명하기 위해 하던 이야기를 중단할 수는 없으니, 지금 당장은 무조건 내 말을 믿는 수밖에 없겠다.
- 자 이제 난 여러분에게 귀뚜라미에 관한 규칙을 이야기해줄 시간이 좀 생겼다. 귀뚜라미들은 요정이 지나가면 우는 걸 멈춘다. 왜냐하면 요정은 일종의 귀뚜라미를 다스리는 여왕과 같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어쨌든 귀뚜라미보다 훨씬 더 위대한 존재인 것이다. 그러니 밖을 걸어가는데 갑자기 귀뚜라미들이 울기를 그친다면 귀뚜라미들이 요정을 봐서라고 추측해도 틀리지 않다.
- 예를 들어 내가 만일 나방이라면 촛불을 피하는 것과 촛불 속으로 돌진해 타버리는 것 중 뭐가 더 나은 결정인지 확실히 결론을 내릴 수없을 것이다.
- 바로 그 순간, 내 내면의 섬광이 내 인생 가운데 망각 속으로 시들어 사라진 부분을 비추는 듯 했다. 엘버스턴으로 오던 중에 겪은 기묘한 환상들이 떠올랐다. 나는 즐거운 전율과 함께 생각했다. '이 환상들은 나의 의식 속 삶과 운명적으로 연결되어 있구나!'
이 무렵 '으스스한' 느낌이 다시 찾아왔고, 난 불현듯 귀뚜라미가 울지 않는 것을 알아챘다. 그래서 '브루노가 이 근처 어딘가에 있는 게' 확실하다고 느꼈다.
- 내가 낼 수 있는 가장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을 걸었다. 그건 그렇고, 우린 어린아이들과 이야기할 때면 왜 항상 이름을 먼저 물어보는 것일까? 이름을 들으면 그 아이들이 조금 더 커진다고 생각하기 때문일까? 진짜 몸집이 큰 왕을 만났을 때 그의 이름을 물어보는 건 생각조차 못하지 않는가? 그러나 어떻든 간에, 나는 그 애의 이름을 꼭 알아야 했다. 아이는 내 질문에 대답하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좀 더 큰 소리로 다시 물었다.
- 한동안은 놀라운 일 신비한 일들이 모두 내 삶에서 비껴나 있었다. 평범한 일들만이 내 삶을 지배하고 있었다. 어느덧 '마녀가 날뛰는 시간'인 5시가 되었고 이때쯤이면 백작의 집에 티타임이 준비되었으리란 걸 알기에 나는 백작의 집을 향해 발걸음을 돌렸다.
- "누나가 안 봐더 그래. 난 보고 있었거든. 악어가 살금살금 자기 등으로 걸어갔더. 그래야 잠든 자신을 안 깨우니까 그때 악어는 자기가 자고 있는 줄 알았거든 악어는 꼬리에 앞발을 다 올려놓고는 등줄기를 따라 끝까지 계속 계속 걸어갔더. 그러더니 다시 자기 이마 위를 걸어가다가 이마에 난 조그만 내리막길을 따라 코로 갔더. 그렇게 해더 다온 거야!"
- 뮤리엘 백작 영애와 아서는 누가 봐도 매우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듯했다. 그러니까 말 한마디 하고 나서 '이 말은 별로 안 좋아할 말이지', '이 말은 기분을 상하게 할 거야', '이 말은 지나치게 심각하게 들리진 않을까', '이 말을 하면 가벼워 보이겠지' 등등 끊임없이 자기의 말을 점검하며 말할 필요가 없는 아주 오랜 친구 사이처럼, 서로 전심으로 공감하며 계속 이야기가 흘러가고 있었다.
- "자연을 확정적이고 일관된 동종에서 비확정적이고 일관성 없는 이종으로 넘어가는 '퇴화'의 한 과정으로 보는 데 논리적인 어려움이 정말 없으십니까?"
- 이때까지 에릭 린던이 내 존재를 전혀 의식하지 못했다는 사실은 분명해 보였다. 심지어 교수와 아이들 눈에도 내가 보이지 않는 것 같았다. 나는 다른 사람을 보지만 다른 사람은 나를 볼 수 없는 투명한 유령이 된 듯 이들 가운데 아무런 관심도 받지 못한 채 서 있었다.
- "우리도 맨 처음 아이들을 지도할 때 그렇게 하지 않습니까. 그러나 우리는 가능한 한 빨리 옳고 그름에 대한 아이들의 타고난 감각에 호소하고, 그 단계를 무사히 지나면 모든 동기 중 가장 높은 동기인 지고지선의 하느님을 닮고 일체가 되고자 하는 욕구에 호소하지요. 이것이 바로 성서 전체를 통해 가르치는 내용입니다."
- "만일 반대파의 설교가 사실상 금지되지 않았다면 -프랑스인들이 '은둔의 의무라고 부르는 상황 아래에 놓였겠죠?- 어느 강연장에서나 사교 모임에서나 그런 가르침이 야유의 소리 앞에서 짓눌렸을 테니까요."
- "올고 있는 애는 브루노예요, 제 동생이라고요. 제발, 저희 둘 다 가고 싶은데, 아저씨가 견지를 못해요. 있잖아요, 사실 저 아저씨는 꿈을 꾸고 계시거든요. (내게 상처를 줄까 봐 이 말은 작게 속삭였다) 꼭 상아 문을 통과해서 가도록 해요!"
- "우린 여기서 이십 분밖에 안 있었는데, 그동안 저는 선생님과 뮤리엘 백작 영애가 얘기하는 것만 하릴없이 듣고 있었거든요. 그런데 이상하게 제가 뮤리엘 백작 영애와 적어도 한 시간은 이야기를 나눈 것같이 느껴집니다!"
사실 아서가 그랬었다는 걸 나는 분명히 느꼈다. 다만, 시간이 그가 말하는 둘만의 대화의 시작 시점으로 되돌려졌기에 모든 것이 무릎 내지는 무의식 속으로 사라져 버린 것이다! 그렇지만 나는 나의 높은 평판을 소중히 여겼기에 감히 아서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설명해줄 엄두가 나지 않았다.
- "셰익스피어가 '모든 인생이 한 편의 연극'이라고 썼을 때 말입니다."
노인이 한숨을 내쉬었다.
"그렇소, 인생을 보고 싶은 대로 보시오. 인생은 진정 한 편의 연극이지. 앙코르와 꽃다발만 없다 뿐이지 그 자체가 연극이라오!"
그가 몽환적인 어조로 덧붙였다.
"우린 인생의 절반을 나머지 절반의 인생 동안 한 일로 후회하며 보낸다오!"
"그리고 인생을 제대로 즐기는 비결은 말이오."
그가 쾌활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그 치열함에 있다오!"
- "내가 말하는 건 사고의 격렬함이자 주의가 집중된 상태를 말하오. 우린 제대로 주의를 기울이지 않아서 인생에서 얻을 즐거움의 절반을 잃어버리니까. 원하는 예를 아무거나 들어보시오. 아무리 사소한 즐거움이라 해도 상관없소 그 원칙은 똑같으니까. A와 B가 똑같은 이류의 회람 문고를 읽는다고가 정해 봅시다. A는 귀찮아서 인물들의 관계를 완전히 파악하려 들지 않고 대충 읽소. 그런데 이 인물 간의 관계에 따라 스토리의 재미가 좌우되는 거요. 그는 장면 묘사는 전부 '뛰어넘고' 좀 지루해 보이는 단락은 다 빼먹고 읽는다오. 말하자면 이 사람은 자신이 읽는 글에 절반만 주의를 기울이며 읽는 거요. 책을 한쪽으로 치우고 나서도 몇 시간 동안 계속 이 소설을 해석하긴 하지만 어디까지나 시간을 때울 방법을 찾으려는 것뿐이라오. 결국 '끝까지 읽어도 완전히 노곤하고 우울한 상태'일 뿐이오. 반면 B는 혼신을 다한다오. '할 가치가 있는 건 잘할 가치가 있다'는 원칙에 의거해서 말이오. 이 사람은 인물 계보를 마스터하고 장면 묘사를 읽어가며 '마음의 눈' 앞에 그림을 떠올리지요.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 사람은 한창 흥미를 느끼는 도중에도 결단력을 갖고 챕터의 끝에서 책을 덮고 나서 다른 주제로 옮겨간다오. 그래서 다음번에 한 시간 동안 이 책을 읽게 될 때는 굶주린 자가 저녁 식탁 앞에 앉은 상태처럼 되지, 그래서 책을 다 읽고 나면 '재충전된 거인'이 되어 일상의 일과로 돌아가는 거요!"
- "그런데 그 책이 정말로 쓰레기이면 어떡합니까? 전혀 주의를 기울일 가치가 없는 책 말입니다."
"글쎄, 그런 경우를 생각해보자면, " 백작이 말했다.
"내 이론은 그런 경우에도 부합하지. 정말이오! A는 결코 그 책이 쓰레기라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끝까지 배회할 거요. 즐겁게 시간을 보낸다고 착각하면서 말이오. 반면에 B는 한 열두 페이지 읽고 나면 책을 조용히 덮고 도서관에 가서 더 나은 책으로 바꿀 거요! 나에게는 인생의 즐거움을 더 해줄 이론이 하나 더 있소. 그건 선생의 인내심이 아직 바닥나지 않았다면 설명하겠습니다만. 나를 너무 수다스런 노인네라고 볼까봐 말이오."
(리뷰자 주 : 읽어야 할 것을 읽기에도 모자란 삶이다. 그러나 낭비의 파괴적인 기쁨 또한 크다! 나는 A다!)
- "즐거움은 빨리, 고생은 천천히 취하는 방법이라오."
"아니, 왜요? 그 반대가 맞을 것 같은데요."
"굉장히 사소한 인위적인 고통을 천천히 겪음으로써, 진짜 고통이 닥쳤을 때 그저 평상시의 속도로 지나가게 내버려 두면 그것이 아무리 심각한 것이더라도 순식간에 끝나버리는 듯하다오!"
"정말 지당하신 말씀입니다." 내가 말했다.
"하지만 즐거움의 경우는 어떤가요?"
"즐거움을 빨리 즐겨버리면 인생에서 훨씬 더 많이 누릴 수 있지 않겠소. 선생이 오페라를 듣고 즐기는 데는 세 시간 반이 걸리지요. 예를 들어 내가 오페라를 삼십 분 만에 듣고 즐길 수 있다고 가정해봅시다. 그럼 선생이 오페라 한 편을 듣는 동안 나는 일곱 편을 즐길 수 있지 않겠소!"
- "그렇지만 알다시피, 나는 그런 종류의 음악에 대해 훈련을 받은 적이 없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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