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 : 조현행
출판 : 생애
출간 : 2020.06.01
멋대로 끄적끄적 해두는 정도의 공간이지만 조금은 제대로 서평을 써볼까 싶어서 읽어보았다.
'궁극'이라는 단어는 대개의 경우에 조금 과하다 싶은 인상을 주게 마련이다.
그럼에도 이 책을 선택했던 것은, '서평'이라는 주제를 다루는 이상 저자가 그 단어의 어감을 모를 리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 자신감이 궁금했다.
(개인적으로 '궁극'은 '장용민'의 <궁극의 아이>를 무척 재미있게 읽었었으므로 좋은 기억으로 떠올리는 단어이다.)
책을 다 읽은 지점에서 말하자면, 도움을 받았다. 유의미한 책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내가' '서평 쓰기'에서 도움을 받았는가를 묻는다면 애매하다.
확실히 저자의 문장은 깔끔하고 읽기 좋았고, 담고 있는 내용들도 좋았다. 하지만 저자가 생각하는 '좋은' 서평과 내가 생각하는 '좋은' 서평이 달랐다. 저자가 주장하는 글쓰기가 중요한 이유, 서평이 기본적으로 갖추어야 할 부분들과 훈련법 모두 동의하지만 그가 잘못된 서평이라고 깎아내린 예시들이 내게는 더 크게 다가왔다. 그가 높이 사는 가치와 내 그것이 달랐을 뿐이다.
읽음으로 끝내지 말 것, 씀으로 생각하고 고침으로 다듬을 것, 그리하여 삶에 녹여낼 것.
이에 대해서는 완전히 동의한다.
최종적으로 '좋은 서평이란 무엇인가'에서 생각이 달랐을 뿐, 저자의 독서 철학들에는 깊은 감명을 받았다.
간결하고 명료한 문장, 바른 주어와 술어의 사용, 구조적 짜임새 등은 모두 갖추면 좋은 부분들이므로 신경을 써보려 한다.
... 내킬 때...
- 읽기만 하면 책으로부터 받은 모든 감동들은 흔적도 없이 사라집니다. 그러나 글쓰기를 하면 그것은 정신에 지문을 남기고 이윽고 내 삶의 재산이 됩니다.
- 문학을 통해 인간과 세계를 이해하는 시도를 성실하게 하려고 한다. 그리하여 "읽었으면 달라져야 한다."라고 생각한다. 읽는데서 그치는 독서가 아닌 삶이 변화되는 독서를 지향한다. 앎과 삶을 일치시키느라 사는 게 고달프다.
- 흔히들 글을 잘 쓰고 싶다면 '많이 써보라'라고 조언한다. 그렇다. 글쓰기는 많이 써봐야 한다. 아무리 글재주가 좋아도 많이 써본 사람을 넘어설 수 없다. 하지만 글쓰기 초보자가 무작정 글을 쓴다는 것은 그렇게 쉬운 일도 아닐뿐더러, 무턱대고 많이 쓴다고 글쓰기 실력이 느는 것은 아니다. 또 그것은 자신의 글쓰기 습관에서도 벗어나기 어렵다는 한계가 있다. 늘 비슷하고 똑같은 내용의 글만 주구장창 쓴다. 글에서 사용하는 주어, 목적어, 서술어를 사용하는 방식도 매번 똑같다. 글쓰기 역량을 개발하기 위해서는 무조건 많이 쓰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다른 훌륭한 글을 따라 써보면서 어떤 글이 좋은 글인지를 배우는 것이 중요하다.
- 초보자가 갖는 글쓰기에 대한 과한 욕심은 자신에 대한 높은 기대치를 가진 사람에게 많이 나타난다. 그러니까 '자의식'이 강한 사람은 글쓰기를 상당히 어려워한다. '자의식'이 강하다는 것은 현대인들에게서 나타나는 공통된 특징이기도 하다.
- 명심해야 할 것은 출처는 꼭 밝혀야 한다는 점이다. 다른 사람의 글을 자신의 글처럼 쓰는 것은 일종의 도둑 행위이기 때문이다. 이 자료 파일이 서평 쓰기에만 필요한 것은 당연히 아니다. 그 자체로도 훌륭한 공부가 되지만 서평 이외의 글쓰기로 칼럼이나 비평, 논설, 에세이에서도 활용 가능하다.
- 나의 느낌과 생각만으로 된 글은 일기에 불과하다. 진짜 글이 되기 위해서는 사람들의 공감을 얻어내야만 한다. 그럴 때 필요한 것이 인용이라 할 수 있다.
- 독서를 위한 뇌 기관이 따로 있는 것은 아니지만, 책을 읽지 않은 사람의 뇌와 숙련된 독서가의 뇌는 다르다고 한다. "능숙하게 독서하는 뇌는 망막을 통해 정보가 들어가면 문자들의 물리적 속성을 특화된 일련의 뉴런으로 처리하며 이 뉴런은 문자에 대한 정보를 자동적으로 더 깊숙한 곳에 있는 다른 시각 프로세싱 영역으로 들여보낸다." (메리언 울프 <책 읽는 뇌>). 다시 말해, 독서를 할수록 뇌의 시각 피질이 달라지고, 문자나 문자 패턴, 단어 등 시각적 이미지를 담당하는 세포망이 가득 채워져 자극에 대한 반응을 효율적인 신경 회로망으로 보낼 수 있다는 것이다. 숙련된 독서가의 뇌는 이렇게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뇌 전체에 퍼져 있는 네트워크 시스템을 가동시키면서 지적 능력을 발휘하게 된다. 책 읽기가 뇌를 바꾸는 것이다. 책을 읽는 동안 우리의 뇌는 언어적, 인지적 프로세스의 기반 위에서 주의력, 통찰력, 사고력을 폭발시키며 확장하는 것이다. (장석주 <글쓰기는 스타일이다>)
- 우리는 책을 통해 자신을 비추어 볼 수 있다. 인간은 자신이 어떤 존재인지 혼자만의 힘으로는 알기 어렵다. 그래서 자신을 알게 해 줄 무엇이 필요한데, 그것이 책인 것이다.
- 그렇다면 자신을 알고 이해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모든 것의 시작은 자신을 아는 일로부터 시작한다. 내가 나라는 존재가 어떤 존재인지 모르면 어떻게 될까?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무엇을 어려워하고 힘들어하는지, 무엇에 삶의 기준을 삼고 열정을 쏟아야 하는지를 모르면 타인의 말과 행동에 휘둘리면서 살게 된다. 세상의 잣대에 자신을 평가하며 따라가는데 급급한 삶이 된다. 주체적인 삶을 위해서라도 자신이 누구인지 아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다. 이렇게 자신을 더 잘 알게 해주는 수단이 바로 글쓰기이다. 우리는 글을 씀으로써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더 잘 알게 된다. 자신도 몰랐던 자신을 발견하기도 하고, 잘 안다고 생각했던 자신의 일부분이 사실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는 경우도 있다. 알게 되면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이해할 수 있으면 인간과 세계를 바라보는 시선도 달라진다. 러시아의 대문호 톨스토이는 <전쟁과 평화>에서 "모든 것을 이해하는 사람은 모든 것을 용서하는 법이다”라고 말했다. 나를 이해하지 못하면 결코 타인을 이해할 수 없고, 이해하지 못하면 갈등이 생겨난다. 타인에 대한 이해도 나를 이해해야 가능한 일이다.
- 따라서 이 글은 좋은 서평에 요건에는 턱없이 부족한 서평이라고 밖에 볼 수 없다.
- 이렇게 '쓰기'를 강조하게 된 계기는, 독서 행위 전반에 대한 의문에 생기면서부터입니다. 제가 만난 독서가들 중에는 엄청난 독서이력을 자랑하는 사람들이 꽤 있습니다. 그런데 그들 중 일부의 삶은 책이 주는 메시지와는 상당히 달랐습니다. 자타가 공인하는 독서가임에도 성공을 위한 수단으로 책을 읽거나, 자신의 이익만을 위해서 혹은 자신의 지식을 뽐내고 다른 사람을 무시하기 위한 도구로써 책을 읽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들에게 독서는 목적을 이루기 위해 필요한 수단일 뿐이었습니다. 그들을 보면서 저는 생각했습니다. "아, 책을 많이 읽는다고 해서 무조건 좋은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니구나.",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지?"라는 의문이 들었던 것이죠.
다행스럽게도 "결국 아무 소용없으니, 앞으로 책을 읽지 말자."라는 결론에 이르지는 않았습니다. 책이 분명 인간의 생각과 행동을 변화시킬 수 있는 아주 중요한 도구라는 믿음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문제는 책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읽어도 변하지 않는 인간에게 있다고 생각합니다. 책은 아무 잘못이 없습니다.
- 이런 불상사를 없애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언어감각을 기르는데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인간의 언어는 말과 글밖에 없으니, 말하고 쓰는 법을 배워서 익히는 것은 당연하다. 말과 글은 어떻게 배우는가? 글은 읽기와 쓰기로 배우지만 말은 말을 많이 한다고 배워지는 게 아니라 훌륭한 문장을 소리 내어 읽는 것으로 배울 수 있다. 언어감각을 키운다는 것은 몸에 맞는 옷을 입은 것처럼 좋은 언어가 입에 착 달라붙게 한다는 의미이다. 언어가 물 흐르듯이 자연스럽게 흘러간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훌륭한 텍스트를 선정해서 천천히 음미하면서 소리 내어 읽는 것만으로도 우리의 언어 감각은 좋아질 수 있다. 이러한 낭독 능력은 그대로 글쓰기의 능력으로 이어진다. 좋은 글은 마치 입에서 술술 말하듯이 읽히는 글이기 때문이다.
- 가령, 서평에다가 '농담'을 쓰는 경우는 주의해야 한다. 독자가 '농담'으로 읽지 않을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농담'을 '농담'으로 읽지 않고 있는 그대로 읽었을 때 일어날 수 있는 불상사를 생각해보라. 자신의 글을 이해 못하는 독자를 탓할 것이 아니라 '혼자만 이해할 수 있는 글'을 썼는지 돌이켜 봐야 한다. 서평가는 불특정 대상을 상대로 글을 쓰는 사람이다. 그렇다면, 글로써 모든 것을 이해시키고 설득시켜야 하는 것이 서평가의 첫 번째 임무이다. '이해받지 못한 글'은 독자 탓이 아니라 글을 쓴 사람 탓이다!
- 큰마음을 먹었어도 서평을 쓰기가 어려운 이유 중 하나는, 글을 쓰는 사람들의 반드시 넘어야 할 난관인 '자기 검열' 때문이다.
- 좋은 서평은 서술어 사용에 따라 갈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 퇴고의 1단계에서는 한 문단 안에서 사용된 명사와 형용사, 접속사 등이 적절하게 사용되었는지 살펴본다. 접속사는 되도록 사용하지 않는 것이 매끄러운 글이 된다. 맞춤법과 오탈자의 여부도 확인한다. 2단계에서는 범위를 넓혀 문단에서 사용된 문장들을 살펴본다. 문장에서 주술 호응이 맞는지, 비문은 없는지, 문장과 문장의 연결은 자연스러운지를 체크한다. 3단계에서는 한 문단을 중점적으로 살펴본다. 한 문단에는 하나의 주장과 그에 관한 근거만 담아야 한다. 한 문단에 여러 개의 생각과 주장이 담기면 뒤죽박죽 알 수 없는 글이 되기 때문에 이 점을 유의해야 한다. 마지막 단계에서는 글의 전체 흐름을 살펴보면서 글쓴이의 주장이 잘 전달되고 있는지 꼼꼼히 살펴본다.
- 인간은 자유롭기 위해서 지성의 작업을 발전시켜야 하는 노정에 놓여있다. 인간이 삶에서 추구하는 궁극의 목표 중 하나가 자유라고 할 때, 우리는 이 자유를 얻기 위해서, 이 세상에 대해 알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알고 이해하면 자유를 얻을 수 있다. 이 세상이 무엇으로 이루어져 있고, 그것이 어떤 방식으로 작동되는지 모르면, 이 세계를 알 수 없고, 알 수 없으면 이해할 수 없다. 이해할 수 없고, 알지 못하면 두려움에 갇히게 된다. 인간이 느끼는 두려움과 불안의 원인은 그 대상을 잘 알지 못하는 '무지'에서 온다. 그래서 두려움에 갇힌 사람은 결코 자유를 얻을 수 없다.
- "지성이 능숙하게 작동하는 곳 이상으로 그것이 고장나는 지점이 자유의 장소가 된다. 그 이해할 수 없는 것을 통해 자신이 생각지 못한 것을 생각하려 할 때, 지성은 자유를 향해 나아간다." -사회학자, 이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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