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자가 흐르는 이야기/Book1

[장용민] 귀신나방

일루젼 2021. 8. 31. 04: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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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장용민

출간 :  엘릭시르
출판 :  2018.09.05


 

장용민의 신작이 나왔다는 소식에 직전작을 찾아보았다.

나는 저자의 <궁극의 아이>와 <불로의 인형>을 괜찮게 읽었던 기억이 있었다. 

그런데 몇 장 읽지 않아서 강한 기시감이 들었다. 읽었던 책인 것 같은데...?

 

핸드폰을 교체하며 이전 폰에서 쓰던 'IReadItNow' 어플이 먹통이 되었었다. 

이전에 읽었던 책들의 기록이 사라진 셈인데, 그렇다해도 아예 읽었다는 사실 자체를 잊었을 줄이야. 블로그 기록이 나름대로의 의미를 가질 수 있겠다는 안도감으로 충격을 달래본다.

 

<귀신나방>은 뇌 이식을 통해 존재가 완전히 사라지지 않고 자아를 이어나간다는 설정을 가지고 있다. '전이', '뇌이식', '빙의'. 사실 어떤 표현을 쓰더라도 크게 문제는 없으리라 본다. 그중 작품에서 선택한 뇌 이식 수술이 그나마 가장 현실적으로 느껴지는 설정이라고 볼 수는 있다. 집도가 가능한 전문의가 필요하고, 뇌 세포의 텔로미어로 인한 절대 시간적 한계가 존재하며, 이식 거부 반응이나 뇌 자체의 상해로 인한 실패 가능성이 있다는 제한 사항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실 이 소설 내에서는 그런 점들에 크게 구애받지는 않으므로, 개인적으로는 전생물에 가깝다고 본다. 

 

히틀러가 여전히 존재하며, 승리 전략을 자본주의화했다면-그 사실을 알게 되었다면-당신은 그의 뇌를 가진 아이를 살해할 수 있는가?

 

'시간 여행이 가능하다면 어린 시절의 그를 살해할 것인가' 라는 질문과 비슷한 맥락이다. 다만 시간여행의 경우에는 우리가 알고 있는 '히틀러'로 자라지 않을 가능성이 있지만, 소설에서는 이미 히틀러가 자신의 성인 자아를 유지하고 있므로 정확히 하자면 '히틀러가 살아있다면'에 가깝다. 

 

이 소설에서는 육체와 뇌의 주도권 다툼은 없다. 너무나 자연스럽게 뇌가 육체를 지배하고, 오히려 영향을 미치는 것은 그를 둘러싼 문화적 환경이다. 따라서 존재의 연속성과 가능성에 대해 고민할 여지는 적다. 그렇기에 독자들은 자연스럽게 주 화자인 '보우만'에 몰입할 수 있다. - 나는 대부분의 독자들이 책을 덮기까지 '보우만의 행동은 옳지 않은 살인이다' 라는 명제보다는 '히틀러를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라는 명제에 더 집중했을 것이라 확신한다.- 

 

'죄를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

 

이 말이 무겁게 다가오게 만드는 소설이다.

두 번이나 읽었지만, 글쎄, 읽었던 걸 잊어버릴 수도 있겠다... 싶기도 하다.


- "귀신나방이라는 나방이 있다. 이놈은 인적이 드문 산속, 벼락을 맞고 부러진 나뭇등걸에 서식하지. 전 세계적으로 버마 북쪽 산림 지역에서만 발견되는 희귀종이다. 사람들은 이놈을 끔찍하게 생각해. 몰골이 흉측하거든. 날개는 지저분하고 더듬이는 소름 끼칠 만큼 커다랗지. 몸에서는 찐득한 점액질이 흘러내리고 거기에 역겨운 냄새까지 나지. 귀신 나방에게는 신비한 습성이 있다. 귀신나방은 우기에 산란하는데 산란기가 되면 변신을 한다. 날개를 덮고 있던 지저분한 감색은 비단처럼 반짝이는 보랏빛으로 바뀌지. 최고의 아름다움을 뽐내며 귀신나방은 산란을 시작한다. 그리고 이때 녀석의 괴이한 능력이 나타난다. 산란을 마친 귀신나방은 하늘이 먹구름으로 뒤덮이면 숲 속을 분주하게 날아다니기 시작한다. 정말 굉장한 광경이야. 보랏빛 요정들이 추는 춤처럼 아름답지. 그렇게 무리 지어 날던 귀신나방은 천둥이 가까워오면 약속이 나한 것처럼 한 나무에 내려앉는다. 그러면 놀랍게도 그 나무에 벼락이 치는 거야. 꽈르릉, 녀석들은 벼락을 예측할 수 있는 능력을 지녔고 마지막 순간 죽음을 향해 비행한다. 그리고 우기가 끝나면 아침 햇살과 함께 부화한 유충들이 나타난다. 녀석들은 어미 가생을 마감했던 나뭇등걸로 모여든다. 그리고 그곳에 둥지를 틀지. 또다시 반복될 생애 가장 아름다운 죽음을 준비하며."

 

- 휘슬러는 학생들 말대로 전문가 수준의 경제학 서적을 읽고 있었다. 양도 엄청났다. 한 학기 동안만 빌린 책이 무려 백팔십여 권에 달했다. 따분한 학술 서적을 하루에 한 권 독파한 것이다. 게다가 모두 미국 자본주의에 관한 책들이었다. 그는 마치 한이라도 맺힌 듯 자본주의를 파고 있었다. 이후 바우만은 휘슬러가 지냈던 아파트 이웃들을 탐문했지만 건질 만한 건 없었다. 그는 유령처럼 조용히 지냈고 소리 없이 사라졌다.

(리뷰자 주 : 부러운 독서 속도다.)

 

- "공부라는 건 목표가 있어야 합니다. 그게 생기면 모든 게 바뀝니다. 월마는 나중에 뭐가 되고 싶니?”

 

- 첫 번째 실험 : 자본은 자본을 인식하는 사람들에게만 영향력을 발휘한다.

 

- "어떻게 당신들과 연락할 수 있지? 우리는 정보를 공유해야 하오." 바우만이 차에서 내리며 말했다.

"우리가 접촉할 거요." 이 말을 남기고 모사드는 사라졌다.

 

- 하지만 진짜 목적은 연방준비은행의 이목을 끄는 것이었다. 무엇보다도 연방준비은행 대주주 3인의 관심을 집중시키는 것이었다. 그 세 명은 고든 체이서, 윌리엄 사울레스, 그리고 밀턴 프리드먼이었다. 이들이 소유한 주식은 미국 정부보다도 많은 오십일 퍼센트였다. 연방준비은행은 이들 세 명에 의해 움직이고 있었다.

 

- "도산한 기업은 언제든 다시 세울 수 있다. 민초들이 길바닥에 나앉는다 해도 살아남을 놈은 살아남을 거야. 언제나 그래 왔고 앞으로도 그럴 거야. 지금 중요한 건 힘의 과시다. 누구에게 힘이 있는지 깨닫게 해주는 게 중요해."

 

- 맞는 말이다. 연방준비은행은 달러를 찍어내는 공장이었다. 그리고 밀턴은 공장을 운영하는 공장장이었다.

 

- 이제까지와는 사뭇 달랐다. 그는 오래된 스승을 만난 듯 깍듯했다. 이들은 서로의 안부를 물었다. 마치 신들의 동창회에 참석한 듯 화기애애한 모습이었다. 하지만 휘슬러는 이들의 대화를 알아들을 수 없었다. 어떤 이는 불어로 이야기했고 어떤 이는 러시아어를 사용했다. 심지어 히브리어를 쓰는 이도 있었다. 그들은 각자의 언어를 사용하고 있었지만 모두 한 언어를 쓰듯 완벽하게 소통하고 있었다. 그렇게 한동안 이들은 이질적이면서 평온한 대화를 이 어갔다.

     

 

더보기

 - 종전 후 치명적 생체 실험을 한 나치 전범들은 뉘른베르크 재판에서 실형을 선고받고 복역 중이었다. 그중 실험을 주도했던 '죽음의 천사' 요제프 멩겔레와 하인리히 융케만 종적이 묘연한 상태였다. 이미 재판이 끝난 증거물을 없애기 위해 융케가 나타난다는 건 이상했다. 다른 뭔가가 있었다.

 

- "현대 의학으로도 성공 못한 뇌 이식 수술을 몇십 년 전에 성공했다고요? 말도 안 돼요."

크리스틴이 단호하게 말했다. 면회실 철창밖에는 현대 뉴욕이 서 있었다.

"당신은 나치가 어떤 실험을 했는지 전혀 모르고 있소. 당시 외과 수술 기술은 현재에 비해 전혀 떨어지지 않았소. 오히려 전쟁이라는 극한 상황 때문에 엄청나게 발전했지. 현대 외과술은 그때 완성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오. 그중에도 요제프 멩겔레는 당대 최고의 외과의였소. 그는 쌍둥이를 반으로 절개한 후 서로 이어 붙이는 수술을 집도하기도 했소. 놀랍게도 쌍둥이들은 열흘 넘게 생존했소. 의식이 있는 상태로 말이오. 그런 멩겔레가 뇌 이식 실험만 삼백여 차례나 집도했소."

"정말 뇌 이식 수술이 성공했다는 말인가요?"

 

- "계획을 말하기 전에 나를 믿는 게 먼저야. 자,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묻겠네. 내가 총통이라는 걸 믿나?"

(리뷰자 주 : 육신의 부활을 믿는가?)

 

- "내가 말하는 자본주의는 인간 본성에 가까운, 동물 같은 자본주의다. 바로 미국의 자본주의지."

      

- "당신은 저의 총통이자 아버지였고, 제 스승이자 친구였습니다. 그리고 제 유일한 사랑입니다."

그녀의 눈망울이 일말의 거짓도 없음을 증명하고 있었다.

 

- "늑대의 눈물'이라고 들어본 적 있소?"

"아니요."

"늑대의 눈물은 나치가 전쟁 동안 긁어모은 어마어마한 양의 보물을 하는 말이오."

 

- 휘슬러가 엄청난 손실을 감당하면서도 고든을 만나려는 데는 이유가 있었다. 그는 일종의 문지기였다. 3인의 이사회 중 최고 결정권자인 밀턴 프리드먼을 만나기 위해선 그의 추천이 있어야만 했다.

 

- "왜 연방준비은행을 노리는 거냐?" 고든이 날카롭게 물었다.

"우리는 세상의 중심의 일원이 되고 싶은 것뿐입니다. 당신들은 세상을 움직이는 사람들이고요."

고든이 매섭게 휘슬러를 노려봤다.

"너희가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나?"

"당신들은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당신들이 세상을 지배하게 된 이유는 하나입니다. 바로 자본 그것이 자격을 결정합니다. 지금 당신이 보고 있는 금이 우리가 갖고 있는 전부라고 생각하면 오산입니다. 우리는 당신의 생각 그 이상입니다. 중요한 건 당신들도 우리를 비난할 만큼 순결하지 않다는 거죠. 당신들과 우리의 차이는 하나뿐입니다. 우리는 손에 피을 묻혔고 당신들은 돈으로 피를 샀다는 거죠."
 

- "이 자리에 계신 여러분은 이 나라를 만든 초석이었습니다. 여러분이 있었기에 이 나라가 위대해진 것입니다. 하지만 이 나라는 여러분이 생각하는 것처럼 공개적이고 자유롭지 않습니다. 이 나라에는 우리가 알지 못하는, 알아서도 안 되는 비밀들이 존재하며 전 세계적으로 치밀하게 뭉친 '비정한 음모'로부터 위협받고 있습니다. 비밀이란 용어는 우리처럼 자유롭고 개방된 사회에서는 혐오스러운 단어입니다."

 

- "난 너희 같은 자본가들을 혐오한다. 목적도 이념도 없이 맹목적으로 돈을 긁어모으는 것들. 걸신이 들린 것처럼 닥치는 대로 먹어치우는 식충들. 내가 꿈꾸는 세상에 너희 같은 것들은 없다."

 

-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바우만은 점점 늙어갔다. 마치 죽음을 향해 달려가는 자명종 시계처럼.

 

- 나에게 능력을 주시는 자 안에서 모든 걸 할 수 있으리라.

 

- "대체 어떤 방법으로 연쇄살인범을 알아낸다는 거지?" 

"소문에 의하면 이상한 수학 공식을 사용한대. 운명을 계산하는 공식이라나. 하지만 구체적인 건 아무도 몰라."

 

- "미드타운 이스트 34번가에 가면 '챠퍼펠'이라는 독일식 바가 있어요. 거기에 '기억상실증'이라는 칵테일이 있는데 그걸 한 잔 마시고 싶소."

"알았어요."

이 말을 남기고 바우만은 사라졌다. 그날 밤 크리스틴은 한잠도 잘 수 없었다. 바우만의 이야기는 너무도 사실적이었고 뇌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그의 말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크리스틴은 본능적으로 이 이야기에 끌리고 있었다.

 

- "챠퍼펠이 무슨 뜻인지 아쇼?" 택시 기사가 대뜸 물었다.

"착한 소녀. 독일인인가요?"

"오스트리아요. 그런데 챠퍼펠에는 또 다른 뜻이 숨어있어요."

"뭐죠?"

"가장한 마녀."

이 말을 남기고 택시는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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