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 : 사이 몽고메리 / 최로미
원제 : The Soul of an Octopus - A Surprising Exploration into the Wonder of Consciousness
출판 : 글항아리
출간 : 2017.06.16
이런 장르는 과학 에세이라고 해야 할까?
비문학적인 정보 전달을 목적으로 하는 것도 아니고, 저자의 체험을 공감하며 따라가기만 하는 감상을 목적으로 하는 것도 아니다.
<랩 걸>도 상당히 즐겁게 읽은 바 있는데 어떤 점에서는 유사하고, 또 어떤 점에서는 완전히 다르다.
뉴잉글랜드 수족관을 거쳐간 문어들과 저자가 직접 야생에서 만난 문어들에 관한 이야기이다.
저자가 직접 느끼고 경험한 문어들과의 교류, 거기에서 뻗어나가는 영혼과 의식에 관한 이야기.
곁다리처럼 언급되는 다른 생물들에 대한 내용들도 아주 흥미롭다.
아귀의 알이 수면 위로 떠올라 펼쳐지면 그 어떤 신부의 베일보다도 아름답다는 표현이 궁금해 찾아보니, 거의 곧바로 해당 수족관의 홈페이지에 접근할 수 있었다. 책에서 언급된 이외의 아름다운 사진과 영상들도 많으니 한 번 구경해보는 것도 좋을 듯 하다.
문어 - 너무 영리한 존재들.
기네비어, 아테나, 조지, 옥타비아, 칼리, 카르마.
만나서 반가웠다.
- 경외라는 감정은 인간 경험의 시간적 한계를 확장한다고 알려져 있다. 완전히 집중하고 열중하며 즐기는 상태도 마찬가지로 "흐른다". 명상과 기도 역시 시간 지각을 바꾼다.
- "포유류와 조류뿐 아니라 거의 모든 동물은 개개인을 익히고 인식하며 공감에 반응할 줄 압니다."
- 문어든 아나콘다든, 동물과 함께 일하는 방법을 제대로 터득하기만 하면, 프란체스코 성인도 기적이라고 여겼을 만한 일을 이룩할 수 있다.
- 자연 상태에서 이보다 더 꿈 같은 광경은 본 적이 없었다. 난 기쁨이 극에 달해 황홀의 경지에 이르며 묘한 느낌을 경험했다. 숨을 쉴 때마다 머릿속이 울리고 아득한 소리들이 가슴을 울리며 사물들은 실제보다 더 가깝고 크게 보였다. 꿈에서처럼, 불가능한 일들이 눈앞에 펼쳐지지만 난 그것들을 당연하게 받아들였다. 물속에서 난 변성 의식을 경험했는데, 변성 의식 상태에서는 인식의 초점과 범위, 명료성은 극적으로 변화한다. 칼리와 옥타비아는 늘 이런 상태에 빠져 있는 걸까? 나에게 대양은 티머시 리리에게 있어서의 LSD와 같았다. 티머시는 환각제와 현실의 관계는 현미경과 생물학의 관계와 같다고 주장했다. 환각제가 현실에 대한 인식을 이전에는 접근할 수 없었던 수준까지 끌어올리는 까닭이라고 했다. 주술사와 구도자들은 평상시에는 경험할 수 없는 세계에 들어가려고 버섯을 먹고 묘약을 마시며 두꺼비를 핥고 연기를 들이마시며 코담배를 피운다. (인간만 이런 시도를 하는 것은 아니다. 코끼리에서 원숭이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종들이 취하겠다고 발효 과일을 먹으며, 최근 밝혀진 바로, 돌고래들은 사람들이 마리화나 담배를 나눠 피듯 이 주둥이에서 저 주둥이로 건네 가며 특정 종류의 독성 복어를 나눠 먹는데, 그런 후에는 일종의 최면 상태에 빠져드는 듯 보인다.)
- 정상적이며 일상적인 의식을 바꾸고 싶은 욕망이 모든 사람을 사로잡는 것은 아니지만, 인간 문화에서 끈질기게 유지되어온 주제다. 정신이 자아를 초월해 확장하면, 융이 이야기한 보편 의식, 곧 모든 정신이 공유하고 있는 원초적이며 대대로 유전되어온 형태와 연결되어 외로움으로부터 해방되며, 플라톤이 우주 혼이라 부른 대상, 곧 모든 생명이 공유하는 포괄적 세계의 영혼과 결합하게 된다. 특정 문화에서는 동물의 혼과 소통하려고 명상이나 약물, 육체적 시련을 통해 변성 상태에 이르고자 애쓰는데, 동물의 지혜는 평범한 삶으로는 파악할 수 없다고 보는 까닭인 듯하다.
- 스쿠버다이빙 동안 일어난 변성 상태는 내가 약물에 취해서 생긴 현상이 아니었다. 정신이 멀쩡한 상태로 황홀경에 빠져서 자발적으로, 대양 자체가 꾸는 꿈같다고 느껴지는 무언가의 일부가 된 셈이었다. 꿈이 실제가 아니라고 누가 장담할 수 있는가?
- 시간이 느리게 흘러가기를 바랐지만 빨리도 흘러갔다. 바다에서는 어쩌면 시간이 물의 무게와 점도에 따라 느려지는 건지도 모르겠다. 칼리나 옥타비아의 수조에 손을 집어넣는 것만으로도 시간은 다른 속도로 흘렀다. 어쩌면, 난 생각에 잠겼다. 옥타비아 수조에서 느끼는 속도가 바로 창조주가 사고하는 속도일지 모른다. 묵직하고 우아하게 물 흐르듯 말이다.
- "두족류는 우리와는 생판 다른 정신 조직으로 구성되어 있을 수도 있다. 어쩌면 우리가 문어에게서 확인하는 지능에는 하나로 집중된 자아가 없을 수도 있다."
- "내가 깨달은 점을 이야기해줄게요. 오늘 무슨 일을 하든지 어제를 바꾸지는 못해요. 과거는 완벽한 모습으로 남아 있는 거예요."
우리는 칼리가 죽었다는 사실을 바꿀 수는 없었다. 하지만 설령 죽음이라 할지라도 전날의 기쁨을 아주 없애버릴 수는 없었다.
- 그녀는 수면을 따라 멜론만 한 머리를 깐닥대면서 눈구멍 안에서 왼쪽 눈알을 굴리며 내 눈을 바라보았다. (사람에게는 주로 쓰는 손이 있는 데 비해, 아테나의 왼쪽 눈처럼 문어에게는 주로 쓰는 눈이 있다.)
- 거대 문어와 그 친척인, 거대 오징어에 대한 공포는 13세기 아이슬란드 전설에서부터 20세기 미국 영화에 이르기까지 서양 예술 형식에 영감을 제공해왔다. 고대 아이슬란드 영웅 전설인 오르바르오즈에 나오는 "사람이든 배든 고래든 닿을 수 있는 건 무엇이든 집어삼킨다는 거대 괴물인 '하프구파'는 틀림없이 촉수 달린 연체동물의 일종에서 영감을 얻었으며 이후 크라켄을 탄생시켰다.
- 문어를 쓰다듬으면서 몽상에 젖어들기는 쉽다. 다른 존재, 특히 문어처럼 우리와 다른 존재와 그처럼 깊은 평온의 순간을 공유한다는 건 겸허해질 수 있는 특권이다. 달콤함의 공유이자 온화한 기적으로, 저 위에 존재하는 보편의식과의 연결이다. 보편 의식과의 연결이라는 개념은 소크라테스 이전 철학자 아낙사고라스가 서기 전 480년 처음 제기했으며, 모든 생명체에 생명을 불어넣어 조직하는 지성을 공유한다는 개념이다. 보편 의식 개념은 심리학자 카를 융의 '집단 무의식'에서부터, 통일장 이론과 1973년 아폴로 14호 우주비행사 에드거 미첼이 설립한 지력과학연구소의 연구들에 이르기까지 동서양을 아우르는 사상과 철학에 널리 퍼져있다.
- 보라성게는 30년 가까이 살 수 있고 남색꽃갯지렁이는 100년을 생존하며, 말미잘은 포식자가 괴롭히거나 질병에 걸리지 않는다면 이론적으로는 거의 영원히 살 수 있는데, 과학자들에 따르면 말미잘한테서는 노화의 징후가 안 보이는 듯하다고 한다.
- 부채뿔산호는 섬세하기 그지없는 레이스보다도 더 미묘하게 펄럭였다. 모래는 뉴햄프셔 백설이며, 물은 투명한 터키옥이요, 주변의 모든 야생동물은 마치 우리가 거기 없는 듯 옆을 헤엄쳐 지나갔다. 다른 행성으로 시간여행을 떠난 투명인간이 된 기분이었다. 하지만 이곳은 다름 아닌, 남극 대륙을 제외하고 모든 대륙을 방문해가며 내가 반백 년 이상을 살아온 바로 그 행성이었다. 그럼에도 이 행성의 대부분은 나에게 아득한 신비로 남아 있었던 셈이다. 지금까지 말이다. 물고기가 도처에 널려 있으며 시야는 그야말로 무한했다. 두려움은 감쪽같이 사라지고 없었다.
- 꿈이 실제가 아니라고 누가 장담할 수 있는가? 힌두 신화에 따르면 나라다가 비슈누의 은혜를 입어 비슈누와 함께 걷는 영광을 얻었다고 한다. 갈증을 느끼자 비슈누가 나라다에게 물을 좀 가져오라고 시켰다. 나라다는 어느 집에 갔고 한 여인을 만났는데 여인이 너무 아름다운 나머지 왜 왔는지 잊어버렸다. 나라다는 이 여인과 결혼했고 함께 땅을 일구고 가축을 기르며 세 자녀를 낳았다. 그러던 중 지독한 우기가 찾아왔다. 홍수로 마을의 집이며 가축, 주민들이 다 떠내려갈 위험에 처했다. 나라다는 아내의 손을 잡고 아이들도 챙겼다. 하지만 물살이 몹시 거센 바람에 모두 흩어졌다. 나라다는 파도 아래로 휩쓸려 내려갔다. 바다 기슭으로 떠밀려 와서 눈을 떠보니, 거기에는 비슈누가 그가 물을 가져오기를 여태 기다리고 있었다. 이 신은 종종 깊이를 헤아릴 수 없는 대양 위에 잠들어 있는 모습으로 그려지는데, 신이 꿈을 꾸는 동안 보글보글 포말이 일며 우주를 창조한다.
- 방사능에 오염된 갑오징어들을 실은 화물이 로건 공항에 도착하자 세관 직원들은 어찌할 바를 몰라 사흘 동안 방치해두었고 그 바람에 이 민감한 동물들은 다 죽어버렸다. (이곳 아쿠아리움에서는 이제 갑오징어들이 뉴욕으로 발송되게 조치해두고 직원이 차로 가져오게 하는데, 뉴욕 세관 직원들이 별난 화물에 더 익숙하기 때문이었다.)
- 서양 사회에서 흔히 나누는 대화 속에서 카르마는 운명, 숙명, 운수, 팔자와 똑같은 말이다. 이 이름을 택한 것을 보면 빌은 여전히 셰익스피어 작품에 나오는 것과 같은 점성적 비극에 사로잡혀 있었던 셈이다. 엘리자베스 1세 시절에 유럽인 대부분은 사람의 운명은 저마다 행성과 별들의 위치에 따라 미리 정해진다고 믿었다. 여태 그렇게 믿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카르마의 개념은 운명의 개념보다 한층 더 깊으며 미래 지향적이다. 카르마는 우리가 지혜와 연민을 키우도록 도와줄 수 있다. 힌두교에서 카르마는 최고신이자 우주 자아, 세계정신의 상태에 이르는 길이다. 우리의 카르마는 운명과 달리 분명 스스로 통제할 수 있다. "자유의지가 곧 카르마다", 부처는 이렇게 말했다고 전해진다. 힌두교와 불교 전통에서 카르마는 의식적 행동이다. 카르마는 운명이 아닐 뿐 아니라 사실 그 반대다. 카르마는 선택이다.
- 파리들은 무작위로 움직이지 않았다. 레비 분포라고 불리는 양상으로 수학적 알고리즘을 형성했다. 이러한 탐색 양상은 먹이를 찾는 효과적인 방법으로 앨버트로스와 원숭이, 사슴도 사용한다고 알려져 있으니 초파리들 역시 무작위적이 아닌 합리적인 선택을 한 셈이었다. 과학자들은 이메일이나 편지, 돈의 흐름에서와 같은 인간 행동에서도 비슷한 양상을 발견해왔다. (그리고 브렘즈는 잭슨 폴록의 그림에서도 이 같은 양상을 목격했다.)
- 국제적으로 저명한 과학자들은 또한 2012년 영국 케임브리지대에 모여 역사적 선언문인, 의식에 관한 케임브리지 선언을 작성했다. 물리학자 스티븐 호킹을 포함한 과학자들은 시사 프로그램 <60미니츠> 카메라 앞에서 서명하며 주장했다. “의식을 생성하는 신경 기질이 인간에게만 있는 것은 아니다. 조류와 포유류를 포함한 인간 이외의 동물들과 문어를 포함한 다른 여러 생물에게도 역시 이러한 신경 기질이 있다."
- 누군가는 영혼이 내면 가장 깊숙이 자리 잡은 존재로 우리에게 감각 지능, 감정, 욕망, 의지, 성격, 정체성을 부여한다고 말한다. 영혼을 "마음이 오고 가는 모습을 지켜보는, 세상이 흘러가는 모습을 지켜보는 내재 의식"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어쩌면 이러한 정의들은 다 참이 아닐지도 모른다. 어쩌면 다 참일지도 모르고. 하지만 신도석에 앉아 있던 그때 난 한 가지만은 확신했다. 만약 나에게 영혼이 있다면, 물론 난 있다고 생각하는데, 문어한테도 영혼이 있다. 교회 안에는 십자가상도 십자가도 없었다. 오로지 물고기와 배 조각이 있을 뿐이었는데, 내게 자유롭고 용서받은 기분을 느끼게 했다. 타히티어 모음들의 파도 같은 흐름에 몸을 맡긴 채 난 목사의 설교를 타고 어딘가로 이동하고 있었다. 길버트 제도로, 그곳에서는 문어 신 나키카가 태초 존재들의 아들로, 여덟 개의 강한 팔을 써서 이 제도를 태평양 바닥에서 떠밀어 올렸다고 여겨졌다. 그리고 브리티시 컬럼비아 서북 해안과 알래스카로, 그곳에서 원주민들은 문어가 날씨를 주관하며 질병과 건강을 지배한다고 여겼다. 이어 하와이로, 그곳 고대 신화에 따르면 우리 현 우주는 더 오래된 우주의 잔존물에 불과한데, 그 오래된 우주의 유일한 생존자가 문어로 두 세계 사이에 난 좁은 틈새를 빠져나오는 데 용케 성공했다.
- 어이없지만 이번에도 마찬가지로 문어가 대번에 보이지는 않았다. 내 눈은 분명 영상을 받아들이고 있었지만 머리로 이해하기까지는 시간이 걸렸던 셈이다.
- 윌슨은 우리와 달리 전통문화에서 자라서 노인을 공경했다. <오래된 길>에서 저자인 친구 리즈가 말하기를 부시먼들은 사자가 다가오면 "n!a"라는 말로 존경을 표하곤 하는데, "나이가 든"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신을 언급할 때에도 사용하는 용어"라고. 문어한테 쓰이는 경우는 드물지만 부인이라는 단어 역시 의미가 깊다. 조금만 움직이려 해도 분명히 애를 먹었을 텐데, 친구를 맞이하려고 몸을 일으키는 모습은 고상하고도 사려 깊었던 까닭이다. 진정한 부인이었다.
- 난 통 위로 몸을 구부려 경외심과 고마움을 담아 그녀를 바라보았다.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고이더니 물속으로 한 방울 떨어졌다. 기쁨과 슬픔의 눈물에는 프로락틴이 들어 있다. 프로락틴은 남녀 공히 성교와 꿈, 발작 시 절정에 이르는 호르몬이며 여성에게서는 젖의 합성에 관계한다. 난 옥타비아가 내 감정을 맛볼 수 있었을지 궁금했다. 맛을 인식했을 수도 있다. 물고기에게도 프로락틴이 있다. 옥타비아에게도 마찬가지다.
- 역자 : 문어에게도 영혼이 있다. 혹은 마음이라고 할까. 모든 생명에게는 다 저 나름의 생각과 기분과 판단이 있어서 우리가 아무런 망설임 없이 죽이곤 하는 초파리조차 수컷이 암컷에게 성적으로 거절당하면 알코올을 찾는다고 한다. 심지어 뇌가 없는 불가사리도 기계처럼 행동하지는 않는다. 단지 육신과 정신의 다름이 있어 우리와는 다른 행동양식을 보일 뿐이라고 저자는 말하고 있다. 하지만 인간은 왜 인정하지 않으려는 것일까. 그렇게 되면 동물을 이용해 더 이상 우리 욕구를 만만하게 충족시킬 수 없으리라는 두려움에서 아닐까. 거리낌이라곤 없이 행하던 일들에 죄책감이라는 불편한 감정이 끼어들까 봐 애초에 동물은 그저 하등하니 우리가 느끼는 것들을 느끼지 못하리라고 편리하게 단정 지어버리는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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