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 : 신기율
출판 : 웅진지식하우스
출간 : 2021.03.10
도서관의 서가를 훑다가 익숙한 저자명이 눈에 띄어 대출해왔다.
조용한 목소리와 찻물 따르는 소리가 좋아 저자의 영상을 몇 개쯤 보았었다.
육효나 기문이 잘 어울릴 분위기에서 고전 점성술이 언급되어서 다소 특이하다는 생각도 했었다.
(주역과 적천수를 읽으셨다니 내가 못 봤을 뿐인지도 모른다)
어조에 '마땅히'라는 강경함이 없어서 상당히 편안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담담하게 풀어나가는 이야기들을 듣고 있으면 어쩐지 따라서 차분해지는 느낌이 좋았다.
이 책도 그렇다.
독자와 대화하는 느낌으로 조용조용히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나가기도 하고,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전하기도 한다.
답할 때까지 계속해서 파고드는 듯한 부담스러움이 없다.
이야기해준다면 들어줄게.
내키지 않는다면 그대로 있어도 좋아.
따뜻한 차 한 잔을 대접받는 기분으로 읽었다.
- 은둔은 그 시간을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 때로는 불행을 건너는 다리가 되기도 하고, 삶의 역할을 바꿔주는 신비한 터널이나 나를 충전하고 위로해주는 안식처가 되기도 한다. 이때 느끼는 '혼자'라는 감정은 내가 점점 고립되어가는 외로움이 아니라, 삶의 좀 더 깊은 본질을 경험하게 하는 더 '좋은 고독'에 다가가게 한다. 좋은 고독은 내 삶의 면역을 키우는 가장 훌륭한 치료제이기도 하다.
- 그날 달빛은 깊은 자책에 빠져 있던 나를 위로해주는 유일한 온기가 되어주었다. 달에게 아픈 마음을 치유해주는 힘이 있음을 나는 그날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 사람은 누구나 사람에 빠지는 순간부터 언젠가는 그 사랑을 잃어야 한다는 두려움을 동시에 짊어지게 된다. 사랑이라는 기쁨과 충만함을 얻는 대신에 치러야 할 대가처럼 운명이 내게 영수증을 내미는 것이다. 사랑하면 사랑할수록 지불해야 할 아픔은 커지지만 사람의 단맛에 취해, 혹은 일상이 된 사랑에 익숙해져, 우리는 다가올 아픔에 관한 어떤 준비도 하지 못한 채 그날을 맞이하게 된다.
- 언제나 무기력한 고립에 이르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짧은 휴식에도 내가 지금 무엇을 해야 하고 그것을 통해 어떤 상태에 이르게 될지를 알고 있어야 한다. 명확한 목적과 이유가 있을 때 휴식은 나를 위한 은둔의 시간이 될 수 있다.
- '하필이면 왜 오늘 이런 내용을 읽게 된 걸까?' 잠시 망설이던 나는 나에게 찾아온 우연을 의미 없이 흘려보내지 않고 꼭 붙잡기로 했다. 틀림없이 오늘 내가 이런 내용을 읽은 데에는 이유가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 이런 시각은 치워도 치워도 쓰레기가 쌓여가는 집을 단순한 게으름이 아닌 정리되지 않은 마음의 문제와 연결해 생각할 수 있게 해 준다. 그리고 이런 식의 생각을 하게 만든다. 내가 지금 공간을 정리하는 방식이 내가 살아가는 삶의 방식과 연결되어 있다면, 반대로 내가 공간을 정리하고 정돈하는 방식을 바꿈으로써 내 삶이 새롭게 정돈될 수 있지 않을까,라고. 보이는 것을 정리하면 보이지 않는 것도 정리된다는 믿음을 가질 수 있게 되는 것이다.
- 나에게 맞는 선택을 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내가 지금 무엇을 해야 하고, 할 수 있는지를 판단하는 자기 자신에 대한 안목이 있어야 한다. 그 안목이란 대단한 것이 아니다. 내가 선택할 그 무엇이 나를 괴롭히지 않고 우울하게 하지 않는다면 나는 이미 스스로에 대한 탁월한 안목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 하지만 그 망토는 내가 원한다면 언제든지 벗을 수 있는 나의 소유물일 뿐이다. 망토를 벗지 못하는 일 따위는 절대 일어나지 않는다. 고독 역시 마찬가지다. 투명 망토를 입고 벗는 것처럼 내가 그 감정의 주도권을 쥐고 있을 때 고독이 주는 외로움보다 고독이 주는 자유로움을 만끽할 수 있게 된다. 나는 그런 자유로운 고독의 시간이 바로 즐거운 은둔의 시간이라고 생각한다.
- 지금도 힘들고 지칠 때면 나는 조용히 나만의 공간에서 지친 몸과 마음을 회복하는 시간을 갖는다. 그 시간의 안온함은 언제나 내 삶을 무너지지 않게 하는 단단한 장막이 되어준다. 내가 겪었던 은둔의 즐거움이 독자 여러분에게도 거친 세상의 풍랑을 막아주는 삶의 장막이 될 수 있기를 바라본다
- 이런 위태로운 곳에서 광부가 할 수 있는 일은 두 가지다. 앞으로 더 나아갈 것인지 아니면 멈출 것인지를 결정하는 일이다. 만약 멈추기를 결정했다면 곡괭이를 내려놓고 내가 파 놓은 길을 따라 지상으로 되돌아가면 된다. 하지만 더 깊은 곳으로 들어가고 싶다면 다시 곡괭이를 들고 단단한 벽을 파내기 시작해야 한다. 앞으로 얼마를 더 파내고 어떤 방향으로 팔 것인지를 생각하고 판단해야 한다. 그래서 막장에는 '더는 갈 곳이 없다'라는 숨 막히는 절망과 '이제 그만 멈춘다'라는 포기, 그리고 '갱도를 개척한다'라는 희망이 공존한다.
- 뚜렷한 목적을 가지고 읽는 책은 부담스러울 때가 많다. 하지만 휴식과 위안을 위해 읽는 책은 부담스럽지 않아 좋다. 시험을 치를 필요도 없고, 실천을 염두에 두지 않아도 되니 책을 잘 읽어야 한다는 강박감이 들지도 않는다. 풍경을 감상하듯 아름답게 펼쳐진 언어를 즐기며 잔잔히 풍기는 문자 향만을 느끼면 된다.
- 동양의 자연철학은 이런 절실한 질문에 대해 나름의 명쾌한 해답을 내놓는다. 모든 사람은 일생을 통해 운명적으로 채워야 할 불행과 고독의 양을 가지고 태어난다는 것이다. 고독의 양이 정해져 있다는 것은 만약 내가 지금까지 단 한 번도 고독한 삶을 살아보지 않았다면 언젠가는 내가 채워야 할 '절대 고독의 시간'을 갖게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 은둔의 처세는 내가 잘하고 즐거워하는 것을 통해 은둔하는 소은, 또 다른 기회를 기다리며 위기를 인내하는 중은, 그리고 불행을 통해 삶의 성찰을 이루는 대은으로 크게 구분해 설명할 수 있다.
- 자세히 풀이하자면, 가게로 상징되는 속세에 들어와 사람들과 함께 춤추고 노래 부르며 어울린다는 의미다. 언뜻 경건해야 할 불자의 모습과는 상반되는 것 같지만, 입전수수의 마음에는 수행자가 사람들의 일상으로 들어갈 때 진정으로 그들에게 다가갈 수 있다는 '활인'의 뜻이 담겨 있다. 대신 수행자는 사람들과 함께 뒤섞이면서도 자신의 맑은 마음, 이루고자 하는 뜻이 흔들리지 않는 경지를 체득하고 있어야 한다.
- 그래서 대은의 삶은 희생과 헌신의 삶이기도 하다. 세상으로부터 거리를 두는 것이 아니라 내가 마땅히 누릴 수 있는 삶의 안락함으로부터 거리를 두고 고단한 '세상 속에서' 은둔하는 것이다. 전혀 다른 차원의 삶을 만들어내는 대은의 삶은 불행을 건너 안락한 삶의 양지로 가는 것을 목표로 하지 않는다. 그 대신 불행을 껴안으며 더 높은 삶의 성찰에 이르게 하는 가장 숭고한 삶을 살게 한다.
- 이렇듯 역할 전환은 리추얼이 되었을 때 더욱더 명확한 효과를 발휘한다. 역할 전환, 리추얼, 길지 않은 시간, 이 복합적인 공간과 시간의 활용을 나는 ‘10분의 은둔'이라는 말로 통칭해 부른다. 은둔이란 표현을 쓴 건 이 시간은 오직 나에게만 의미 있는 은밀한 개인의 시간이기 때문이다. 10분의 은둔은 여러 가지 역할을 동시에 해내는 우리에게 이곳에서는 내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역할을 선명하게 상기시켜준다. 그 시간을 통해 나는 이전과는 다른 새로운 역할로 다시 태어나는 것이다.
- 이렇게 감정을 전환할 때 가장 중요한 점은 역할 전환의 공간에 '일과 가정이라는 별개의 영역을 이어주는 다리'라는 의식적인 설정을 해놓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 다리를 건너면 나는 조금 전과는 다른 사람이 된다는 의미 부여가 확고할수록 그 공간은 실제로 내가 원하는 힘과 의지를 불러일으켜준다. 평온한 일상을 만들어주는 긍정의 변화는 내가 만들어놓은 습관의 설계로부터 시작되는 것이다.
- 이렇듯 실력이 부족한 열정은 마음을 초조하게 한다. 그런 초조함은 시야를 좁히고 생각을 편협하게 만든다. 그러다 보면 자꾸 실수하게 되고 실수가 반복되면 내가 좋아하는 일에 무기력함을 느끼게 되는 악순환이 만들어진다. 악순환의 고리를 끊기 위해 사람들이 선택하는 가장 일반적인 방법은 공부다. 부족한 실력을 채우기 위해 책을 읽거나 전문 강사의 강의를 들으며 쳇바퀴 같은 사고 회로를 벗어나 보려고 노력한다. 하지만 노력한 만큼 성과를 내는 사람은 드물다. 초조해질수록 새로운 정보를 받아들이는 지적 감수성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어느 정도 범위를 정해놓고 내가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으면 좋은 내용이고, 그렇지 않으면 엉터리라고 생각해버린다.
- 공부할 때 빠지기 쉬운 함정이 바로 이 지점이다. 나도 모르게 잘 알고 있거나 쉬운 문제만 찾으며 모르거나 어려운 문제는 보지 않는 식으로 공부하는 것이다. 이렇게 한쪽으로 치우친 공부는 오히려 내 생각을 가두는 두꺼운 벽이 되어버린다. 나는 그 단단한 벽을 '익숙함'이라고 부른다.
- 공부할 때도 이런 여행자의 마음을 가져야 할 필요가 있다. 입시나 고시 같은 정답이 있는 시험을 준비하는 게 아니라면, 성장을 위한 새로운 시각은 내가 바라보지 못하던 새로운 방향을 볼 때 만들어진다. 그러니 내 전공, 내 분야를 더 깊이 파고드는 공부에 한계를 경험하고 초조함을 느낀다면 내가 경험하지 못한 분야를 느슨하게 둘러보는 공부가 오히려 내게 영감을 주고 새로운 돌파구를 발견하게 해 줄 것이다.
- 익숙한 곳을 떠나 낯선 곳으로 간다는 것은 생각보다 큰 용기와 결심이 필요한 일이기도 하다. 그리고 무조건 낯선 영역으로 들어간다고 해서 갑자기 시야가 트이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더 많은 사람이 낯선 곳을 고독하게 느끼며, 그곳에서 빠져나와 다시 익숙한 곳으로 돌아가려 한다. 낯선 것을 시도해야 하는 필요성을 알더라도 우리의 본능은 언제나 불편한 곳보다는 편한 곳을, 낯선 것보다는 익숙한 것과 함께하기를 원한다.
- '마음 출구'란 마음에 쌓인 감정의 찌꺼기를 마음 밖으로 내보내는 마음의 문을 말한다. 음식을 먹으면 몸속에서 흡수와 배출이라는 자연스러운 대사가 일어나듯이 마음에서도 비슷한 과정을 거쳐 감정을 처리한다. 감정이 들어오면 긍정적인 감정은 받아들여 충만함과 행복함을 느끼게 하고 부정적인 감정은 내보내 앙금이 남지 않게 한다.
- 타인에게 줄 기쁨을 생각하는 마음은, 그러면서도 대가를 바라지 않는 마음은 고독 속에서 충만함을 느끼는 헌신의 은둔자로 만들어 줄 것이다. 그랬을 때 고독은 나의 충실한 반려 감정이 되어 '좋은 고독'의 즐거움이라는 기쁨이 되어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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