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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미나] 미쳐있고 괴상하며 오만하고 똑똑한 여자들 - 이해받지 못하는 고통, 여성 우울증

일루젼 2021. 9. 17. 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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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하미나
출판 :  동아시아
출간 :  2021.09.15

이 책은 동아시아로부터 제공받았습니다.


 

만약 과거 세대의 고통의 영역이 현 세대의 것과 다르다면, 그것은 환경과 사회가 변화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다음 세대가 자신과 다르게 상대적으로 가벼워 보이는 것을 고통으로 느낀다면, 사실 과거 세대는 그것을 자랑스러워해야 한다. 괴로웠던 순간, 틀림없이 내 자식에게는 나와 같은 고통을 느끼지 않게 해주리라 결심했을 그들의 다짐이 성공했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만약 그들의 눈에 젊은 세대들이 별 것 아닌 것으로 괴로워한다면, 질문은 '어째서 그들은 나약해졌는가'가 아니라 '어째서 고통은 근절되지 않는가'와 '그 다음 세대에게 닥칠 고통은 무엇이 될 것이며 그것를 줄이기 위해 현재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는가'가 되어야 할 것이다. 

어쩌면 과거 세대의 '세상 좋아졌다'는 말에는 자신이 사회가 다른 고통을 느끼도록 기여했음을 알아달라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을지도 모른다. 적어도 타인에게 자신과 똑같은 괴로움을 느껴봤으면 좋겠다는 폭력적인 의도는 없으리라 믿는다. 

각 세대는 '고통의 크기'를 비교하려는 형태의 접근을 내려놓고 '고통을 느끼는 영역'에 대한 고찰을 시작해볼 필요가 있다. 
전쟁과 살육이라는 고통은 현 시대에도 완전히 사라지지는 못했지만, 그것을 전 생애 동안 경험하지 않은 시대적 집단이 존재하게 되었다. 그럼에도 '고통' 자체는 여전히 존재하며, 그것을 감각하는 괴로움 역시 실재한다. 

그것을 보다 덜 괴로운 방향으로 개선해 나가는 것.
그 방향에서 새롭게 생겨나는 고통들에 관해 관심을 가지는 것. 

그것이 보다 나은 세상으로 가기 위한 방향성이 아닌가 싶다. 현존하는 고통을 과거에는 없었으므로 '존재하지 않아야 할 것'으로 덮는 것이 아니라, 감각하지 못했던 것을 인지하는 기회로 받아들이는 것만이 우리가 품을 수 있는 희망이다.

 

 


   

- 자기 삶의 저자인 여자는 웬만큼 다 미쳐 있다.

 

- 글은 아름다웠고 또 날이 서 있었다. 누구와도 닮지 않은 글을 썼다. 그의 글을 통해서는 한 번도 서본 적 없던 자리에서 세상을 바라볼 수 있었다. 

 

- 앎의 기본은 자기 자신을 아는 것이다. 특히 사회 속에서 나 자신이 어느 위치에 서 있는지를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 내게 익숙한 지식은 무엇이고, 그것은 어디에서 왔는지, 또 내가 말하는 진실이 특정 집단에 더 호소력을 갖는다면 왜 그런 것인지를 돌이켜 보아야 한다. 어떤 지식이 다른 집단의 고통을 설명하는 데에 계속해서 실패해 왔다면 스스로 물어야 한다. 지금 이 지식은 누구를 위해 봉사하고 있는가? 

 

- 나는 사람들이 고통과 공포, 그리고 혼란을 마주했을 때 그걸 어떤 방식으로 풀어내는지에 관심이 있다. 사람들이 세계를 이해하는 방식과, 그에 따라 실제로 다르게 존재(재현이 아니라)하는 세계 사이에 어떤 관계가 있는지를 들여다보고 싶다. 

 

- 고통을 해석하는 방식은 한 개인이 지닌 문화적·지적 자원에 따라 달라진다. 고통의 표현 역시 가족, 학교, 미디어 등 일상에서 마주하는 여러 개념이 작용한 결과이다. 

 

- 특정 사회에서 사람들이 호소하는 고통은 그 사회가 강요하는 정상성과 관련이 있다. 이들이 고통을 표현하고 해석하는 방식을 들여다보면, 사람들의 심적인 고통이 어떤 맥락에서 기인한 것인지를 탐구할 수 있다. 커 메이어는 '우울증'이라는 진단 역시 아주 미국적인, 독특한 형태라고 말한다. 

 

- "나는 지금 아프다고 말하는데 "아니야, 너는 아프지 않고 유별난 거야" 이렇게 말한 거니까요. 저는 정말 해서는 안 되는 말은 상대방이 느끼는 걸 부정하는 말이라고 생각해요."

 

- '누가 제일 아픈 사람인가?'로 논의가 흘러가선 안 된다. 고통을 비교하는 일은 불가능할뿐더러 해롭다. 끊임없이 피해의 연대기를 나열하게 된다. 모두가 피해자라고 목소리를 높이는 곳에선 어디로도 나아갈 수 없다.  

 

  

    

 

더보기

 

 - 약과 함께하는 삶이 시작되면 이후 찾아오는 수많은 감정과 몸의 반응을 약과 관련지어 생각하게 된다. 간만에 평온함을 느낄 땐 되묻는다. 이건 약의 효과일까? 나의 반응일까? 이전에는 자연스러운 감정의 반응이라고 느낄 만한 문제도 쉽게 병리적으로 여긴다. 불안이나 우울을 느낄 때는 묻는다. 약이 잘 안 맞나? 

 

- 지금 우리가 쓰는 약들 중 우연히 발견된 것이 부지기수로 많다. 정확한 작용기전을 밝혀낸 후사 용한 것이 아니라, 특정 증상에 효과가 있다는 것을 경험적으로 알게 된 후 치료에 쓰이는 식이다. 가령 조현 증상을 다스리는 데에 탁월한 효과를 보인 최초의 정신과 약 클로르프로마진(소라진)'은 염색약으로 쓰이는 화합 물인 메틸렌블루 methylene blue에서 기원했다. 초기 항우울제인 이미프라민 역시 서머블루, 스카이블루라는 염료에서 탄생했다. 모노아민 산화효소는 세로토닌, 도파민 등 신경전달물질을 산화시켜 분해해 버리는 효소인데, 이를 억제하는 모노아민 산화효소 억제제 MAO inhibitor는 원래 로켓 연료에 쓰이던 물질이었다. 이들은 모두 진정제나 마취제, 심장 수술에 쓰일 신약 등 다른 목적을 위해 개발되었다가, 우연히 다른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이 발견되어 정신과 약으로 쓰이게 됐다. 곧 약이 먼저 개발된 후, 뜻밖에 쓰임새를 발견하게 되면 기존에 있는 정보를 바탕에 두고 연역적으로 연구를 진행한다는 이야기이다. 과거에 수많은 약에서 애초에 기대했던 목적과는 다른 쓰임새가 발견된 것처럼, 지금 우리가 사용하는 약 또한 의도와 다른 방식으로 우리 몸에 작용할 수 있다. 우리는 그것을 부작용이 라고 부른다. 

      

- 리튬은 정신의학사에 큰 업적을 남기며 많은 사람을 살렸다. 역사도 길고, 화학적으로도 단순하며 효과적이고, 무엇보다 다른 정신과 약과는 달리 자연 상태에서 인위적인 합성을 거치지 않고 얻을 수 있다. 그러나 우리는 리튬이 어떻게 해서 인간이 느끼는 감정에 영향을 주는지 여전히 알지 못한다. 리튬이 뇌 안에서 어떤 작용을 하는지를 연구하는 학자도 소수이다. 로런 슬레이터는 그 이유를 "리튬이 수익성이 없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그는 리튬이 "정신의학과 자본주의 사회에 속한 기업 이익의 밀접한 관계를 가장 잘 보여주는 약"이라고 보면서 많은 사람에게 효과를 보인 리튬이 있었음에도, 제약회사들은 특허권과 수익을 위해 신약 개발에 몰두한다고 지적한다. 

 

- 실로시빈과 LSD를 경험한 인터뷰이들의 중언이 있었으나 이들의 경험을 글로 전달하기는 다소 어렵다. 경험 자체가 언어 너머의 것이라고 느껴진다. 공통적인 증언은 "자연과의 합일", "수많은 생명과의 연결감", "거대한 시간의 흐름 속 일부” 그리고 "사랑" 등이다. 

 

- 법무부에서 설립한 범죄피해 트라우마 통합지원기관인 스마일센터에서 내담자들을 만나온 임민경 임상심리 전문가와의 만남도 기억에 남는다. 그에게 우울증을 겪는 사람에게 주변인들이 해야 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을 묻자, 두 가지가 실은 같은 질문이라고 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이 사람의 감정을 수용하고 인정하는 것이다. 반드시 하지 말아야 할 것은 감정을 수용하지 않고 인정하지 않는 것이다. 누군가 "나 너무 힘들어"라고 말했을 때 "그렇구나. 많이 힘들었구나"하고 말해주면 된다. "그 정도가 뭐가 힘드냐", "나 때는 더 심했다", "그만해", "왜 그렇게 부정적으로 생각해?" 등등 다양한 말로 누군가의 기분이나 감정을 수용하지 않고 고통을 비교하거나 부정하는 것이 가장 해서는 안될 일이다. 

 

- "나는 지금 아프다고 말하는데 "아니야, 너는 아프지 않고 유별난 거야" 이렇게 말한 거니까요. 저는 정말 해서는 안 되는 말은 상대방이 느끼는 걸 부정하는 말이라고 생각해요." 

 

- 그는 스캇 펙 Scott Peck의 사랑의 개념을 빌려 와 사랑을 "자기 자신과 다른 사람의 영적인 성장을 위해 자아를 확장 하려는 의지"로 다시 정의한다. 그리고 이렇게 정의될 때,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주고 학대하는 것은 결코 사랑이라고 불릴 수 없다. 그는 다음과 같이 썼다.

 

"사람들은 스캇 펙이 정의한 사랑의 개념을 받아들이기를 두려워한다. 그 정의를 받아들이게 되면 우리 사회 대부분의 가정에 사랑이란 존재하지 않는 셈이기 때문에 그런 현실을 받아들이기가 무서운 것이다. 따라서 학대나 모욕을 좀 당하더라도 그것이 그다지 나쁜 것은 아니라고 믿게 만드는, 잘못된 사랑의 개념을 고수하는 쪽을 택하는 것이다." 

 

- 내가 발견한 것은 그보다는 어떤 모순, 혼란, 복잡성, 양가성 등이다. 나는 사람들이 명료해지기보다 함께 흔들리길 바란다. 연루되길 바란다. 선 긋고 피해자와 자신을 분리하는 대신 자신이 이미 선 안에 있던 존재임을 깨닫기를 바란다. 이것은 더 어려운 일이겠지만, 세상에 많은 좋은 것들이 그렇듯 더 보람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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