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 : 마이클 A. 싱어 / 김정은
원제 : The Surrender Experiment
출판 : 정신세계사
출간 : 2016.06.22
종교적인 삶에 대해서는 이미 예전에 떠나온 길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다른 방향을 바라보는 지금에서야 상당히 많은 영향력을 받아왔음을 느낀다. 태어날 때부터 접했기 때문에 거부감이 없다는 것, 그것은 강한 영향을 미친다.
어떤 길을 갈 것인가, 혹은 가게 될 것인가에 대해 생각해보곤 한다. 미리 알 수 있는 일도 아니고 스스로 정할 수 있는지도 미심쩍은 일이긴 하지만 어떤 길이건 쉽지 않을 것이라는 것은 확실하다.
저자의 '내맡기기'란 삶에 대한 무한한 신뢰로 스스로를 내려놓고 주어지는 대로의 상황에 충실히 사는 것이다. 이성을 최강의 무기로 믿고 있는 현대인들에게 본성을 찾고 저항을 멈추라는 이야기는 멀게만 느껴질 지도 모르겠다.
많은 이들이 스스로를 무신론자라고 칭하곤 하지만,
나는 그들에게도 신이 존재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이 시대의 신의 이름은 '과학'과 '이성'이다.
- 헤라클레스가 강물을 흘려보내어 아우게아스 왕의 외양간을 청소했던 것처럼, 삶의 세찬 흐름이 내게 남아 있던 모든 불순물을 깨끗하게 씻어내주고 있었다. 내게 일어나는 일이 마음에 들건 안 들건 상관하지 않고 나는 그저 끊임없이 내려놓으며 무저항을 실천했다.
- 하지만 한 가지 분명하게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다. 여기서 말하는 내맡기기란 의지 없이 넋 놓고 사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40년에 걸친 나의 이야기는 결국, 내가 하고 싶은 일이 아니라 삶이 펼쳐내는 일들을 안내자로 삼아 내 의지를 발휘했을 때 일어난 일들에 대한 이야기다.
- 이 실험은 속세를 떠나자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삶 속으로 뛰어들어 더 이상 개인적인 욕망과 두려움에 좌지우지되지 않는 자리에서 살자는 것이다. 더 나은 이름이 없었기 때문에 나는 이것을 내맡기기 실험(surrender experiment)이라고 불렀다.
- 삶이 우리에게 주려는 것이 우리가 스스로 얻어낼 수 있는 것보다 더 많을 수도 있지 않을까?
- 내가 허구한 날 매사를 통제하려 들고만 있으면 삶이 날 위해 무엇을 해줄 수 있을지를 어떻게 알 수 있겠는가?
- 정신이 제대로 박힌 사람이라면 '이제부터 앉아서 의료비 청구 시스템을 내 힘으로 다 만들어야지' 하고 생각하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정신이 제대로 박힌 사람이 아니었다.
- 일단 당신이 스스로를 놓아 보낼 준비가 된다면 삶은 당신의 친구이자 스승이자 은밀한 연인이 된다. 삶의 길이 당신의 길이 될 때, 모든 잡음은 멎고 위대한 평화만이 남는다.
삶이라 불리는 모든 경험에 무한한 감사를 올리며.
2015년 3월, 마이클 A. 싱어
- 삶에 좀더 멀쩡한 정신으로 다가가는 길이 분명히 있을 것이다. 가령, 삶에 대항하는 대신 그 흐름을 존중하고자 신의 자유의지로써 그 속으로 뛰어든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저절로 펼쳐지는 삶의 질은 어떠할까? 무질서하고 의미 없는 사건이 무작위로 일어날까, 아니면 우주의 완벽한 질서와 의미가 우리의 일상 속에도 강림할까?
- 매우 내성적이지만 대단히 교양 있었던 스페인어 교수님과의 일화가 생각난다. 하루는 쉬는 시간에 교수님에게 달려가서 언어를 유창하게 구사한다는 게 어떤 것인지를 드디어 알게 되었다며 잔뜩 신이 나서 얘기했다. '우리 머릿속에는 내가 뭘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지금 당장 해야 하는 일이 무엇이고, 과거에 어떤 잘못을 했는지, 거의 모든 것에 대해 시시콜콜 얘기하는 목소리가 있지 않느냐, 이 내면의 목소리가 스페인어로 얘기할 수도 있고, 그것이 하는 말을 내가 즉시 알아들을 수 있으면 나는 스페인어에 유창한 것이다. 하지만 스페인어 단어를 머리로 번역하는 작업을 거쳐 내면의 목소리가 영어로 되풀이해줘야만 비로소 그 말의 뜻이 이해된다면 나는 스페인어에 유창한 게 아니다.' 완벽하게 말이 되는 소리였다. 적어도 나에게는. 나는 교수님에게 내가 언어학을 전공했더라면 저 주제로 박사논문을 썼을 것이라고 말했다. 당연히 스페인어 교수님은 아주 이상하다는 듯 나를 쳐다봤고 예의 바른말을 몇 마디 건넨 뒤 자리를 뜨셨다.
- 나는 이렇게 저렇게 했으면 대화가 좋게 마무리됐을 것이라고 상상하는 그 목소리를 지켜보았고, 거부와 배척에 대한 얼마나 많은 두려움이 그 같은 머릿속의 지껄임을 통해 표현되는지를 깨달을 수 있었다. 가끔 압도된다 싶을 만큼 버거울 때도 있었지만 그 말하는 목소리를 지켜보는 시선만큼은 한 번도 놓치지 않았다. 분명히 그 목소리는 내가 아니었다. 그것은 내가 지켜보는 대상이었다.
- 나중에 나는 삶의 모든 경험에는 배울 게 있고 모든 것은 성장을 위해 존재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될 것이었다. 하지만 그때는 아직 그것을 깨달을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당시 내 인생은 명상이 전부였고 나머지는 그저 부수적인 일일 뿐이었다. 이령듯 나는 학교 공부를 내면의 성장과 관련 있는 것으로 보지 않았지만 그래도 한 과목을 수강하던 중에 그 생각이 와장창 깨지는 경험을 한 적이 있다.
- 어느 순간에 이르자 어떤 번뜩이는 영감이 내 안에 차올랐다. 직전까지만 해도 보고서로 무슨 내용을 써야 할지 감도 오지 않았건만 이제는 어떻게 써야 할지를 완벽하게 알 것 같았다. 고요한 마음 뒤로 지식의 구름이 순식간에 형성된 것 같은 느낌이었다. 마치 번개 치듯이 찰나에 일어난 일이었다. 처음에는 생각이 전혀 끼어들지 않았다. 그것은 오히려 느낌에 가깝다. 이 보고서가 어디를 향해 갈 것이고 어떻게 거기에 도달할 것인지를 이제 알겠다는 어떤 확실한 앎의 상태 말이다. 생각은 그 이후에야 형성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하나둘 떠오르던 생각들이 곧 마음속으로 쏟아지기 시작했다. 어쨌건 그것들을 논리적 흐름에 맞게 조율하는 과정은 남아 있었지만 씨앗은 모두 그곳에 있었다. 참으로 놀라운 과정이었다.
- 나는 삶의 주도권을 잡고 싶은 게 아니었다. 나의 자아 저 너머로 자유롭게 솟아오르고 싶었다.
- 이제부터 삶이 특정한 방향으로 펼쳐지는 것에 대해 내가 저항하고 있다면, 그리고 그 유일한 이유가 나 자신의 호불호라면 나는 그 호불호를 내려놓고 삶에 주도권을 넘기겠노라고 결심했던 것이 생생히 기억난다.
- 이 모든 저항의 한가운데에서 나는 삶이 가져다주는 모든 일에 자신을 내맡기겠다고 했던 내 최근의 맹세를 떠올렸다. 내가 지켜보는 머릿속 목소리는 영적인 조언가가 아니었다. 그것은 나의 영적 짐이었다. 짐 덩어리를 내 삶의 운전석에서 쫓아버릴 절호의 기회가 온 것이다.
- 나는 내가 세 번째 시험 보는 것을 왜 그렇게 꺼려 하는지를 관찰했다. 어차피 학위를 마칠 생각이 없다면 무엇이 문제인가? 나는 그것이 사람들 앞에서 실패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임을 알게 되었다. 준비가 전혀 안 된 상태에서 시험을 치면 비참할 정도로 형편없이 실패할 게 분명했다. 실패에 대한 예감이 나를 불편하게 했고, 이 불편함이 내면의 목소리를 작동시켜 시험을 어떻게 하면 피할 수 있는지에 대해 계속 지껄이도록 만든 것이다. 바로 그런 나를 없애버릴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나는 행정실의 실수를 더 이상 문제로 바라보지 않게 되었다. 그것은 나를 한층 더 내려놓을 수 있는 도전이었다. 나는 세 과목의 시험을 모두 치르고 세 번째 시험의 실패를 기꺼이 받아들이기로 마음먹었다.
- 이 성장단계에서 나는 내맡기기 수행이 실제로는 확연히 구별되는 두 단계로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첫째, 가슴과 머리에서 형성되는 호불호 반응을 내려놓는다. 둘째, 그렇게 얻어진 명료한 시선으로 내 앞에 펼쳐지고 있는 상황을 바라봄으로써 지금 삶이 내게 무엇을 요청하는지를 본다. 호불호의 반응에 영향받지 않는다면 당신은 무엇을 하겠는가? 그 심오한 안내를 따라가다 보면 삶은 개인적인 호오를 따를 때와는 매우 다른 방향으로 나아갈 것이다. 그것만은 분명하게 말할 수 있다. 이 깨달음은 내 영적인 삶과 세속적인 삶 모두의 굳건한 기반이 되었다.
- 수업의 전제는 이러했다. '우주에는 단 하나의 근원적인 진리가 존재하고, 인간의 모든 지식은 이 진리를 다양한 시각에서 바라본 것에 지나지 않는다.' 이 전제를 탐구하기 위해 물리학과 생물학과 심리학과 종교가 동원되었다. 그 모든 것이 말하는 바가 결국 같은 것일 수 있는가?
- 나는 숨을 깊게 들이쉬고 암릿이 있는 객실로 들어갔다. 그가 명상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에 나도 조용히 그의 곁으로 가서 나란히 앉았다. 그의 옆에 앉는 순간 그가 느끼는 것이 내게도 그대로 느껴지는 것 같았다. 내 안에서 흐르는 에너지가 큰 폭으로 증가했고 나는 사랑의 바다에 빠져버린 것 같은 기분에 휩싸였다. 그렇게 한동안 고요히 앉아 있는데 잠시 후 그가 내 쪽으로 돌아앉으며 이렇게 말했다. "이런 일은 더 이상 하지 않지만." 그가 오른쪽 손을 내 이마에 살짝 댔고, 그 순간 따스한 에너지가 내 몸을 부드럽게 통과하는 게 느껴졌다. 그 흐름은 압도적일 만금 강렬했고 나는 그 황홀한 경험에 완전히 얼어붙었다.
- 경비가 그토록 삼엄한 곳에 갇혀 있는 수감자들이 얼마나 진지한 자세로 내면의 자유를 추구하게 되었는지는 설명하기 어려울 정도다. 벽은 그들의 신체를 가둬 놓을 수 있었지만, 그들의 영혼을 감금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오직 그들 자신의 마음만이 그렇게 할 수 있었다. 수감자들은 이 사실을 아주 깊은 차원에서 자각했다. 나는 그들에게 명상과 약간의 요가를 가르쳐주었다. 하지만 우리가 나눈 대부분의 대화는 내려놓음에 관한 것이었다. 그들은 머릿속의 목소리를 지켜보는 법에 대해 배웠고, 그것이 말하는 온갖 쓰레기들에 귀 기울이지 않는 법을 배웠다. 강의가 끝나면 우리는 그룹으로 모여 경험과 소감을 나누는 시간을 가졌다. 때때로 사람들은 주중에 있었던 일을 떠올리며 그 목소리가 어떻게 어리석은 짓을 하라고 자신을 부추겼는지에 대해 얘기하곤 했다. 그리고 그 말을 들을 것인지 아니면 그저 내려놓을 것인지를 선택할 수 있는 찰나의 의식에 대해 얘기했다.
- 인생을 돌이켜보다가 우리의 운명을 결정짓는 것이 사실은 한 줌의 순간들이었음을 깨달을 때, 우리는 얼마나 큰 영감을 얻곤 하는가. 혹여 삶이 그런 순간들을 나에게 주지 않았더라면, 혹은 내가 그 순간에 다른 식으로 반응했더라면? 시간이 지남에 따라 모든 것은 완전히 달라졌으리라.
- 그즈음 나는 세속과 영성을 구분하는 나의 정신적 관념들이 마침내 사라졌음을 깨달았다. 모든 것이 놀랍도록 완벽한 삶의 흐름으로 보이기 시작했다.
- '나의' 길이란 것이 있었다면 나는 아마 그 방향으로 계속 살아갔을 것이다. 하지만 어찌 된 일인지 나는 내맡기기 실험을 하면서부터 나의 길이라는 것을 가져본 적이 없는 것 같다.
- 우리는 어떻게든 우리끼리 방법을 알아내야 했다. 그리고 해냈다. 도대체 어떻게 해냈느냐고 내게 묻는다면, 다년간의 명상 결과 우리가 '마음'이라고 부르는 것에는 완전히 다른 두 가지 측면이 있음을 알게 되었다고 말하련다. 하나는 논리적이고 사고중심적인 마음으로서 우리가 이미 아는 것들을 복잡한 사고 패턴으로 연결해 논리적인 해결책을 생각해내는 측면이다. 다른 하나는 문제를 보는 즉시 창조적인 해결책을 떠올리는 직관적이고 영감 중심적인 마음이다. 머릿속의 목소리를 조용해지게 만들기 위해 여러 해 동안 내가 행해온 수행이 거의 끊임없이 샘솟는 영감의 문을 활짝 열어젖힌 것 같았다. 마음이 조용해질수록 더욱더 자명한 해결책이 나왔다.
- 처음에는 대재앙처럼 보였던 것이 결국에는 긍정적인 결과를 낳았다. 지금 불어닥치고 있는 폭풍우에 잘 대처하다 보면 결국 그것이 큰 선물을 불쑥 가져다준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목격한 것이다. 나는 이 폭풍우를 변성의 전조로 보기 시작했다. 어쩌면 변화는 일상의 관성을 넘어설 이유가 충분히 있을 때만 발생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힘든 상황은 변화를 일으키는 데 필요한 힘을 창조한다. 문제는, 우리가 변화를 일으키기 위해 끌어올린 이 모든 에너지를 대개는 변화에 저항하는 데에다 써버리고 말게 된다는 것이다. 나는 우짖는 폭풍의 한가운데에 고요히 앉아서 지금 내게 요구되는 건설적인 행동은 무엇인지를 지켜보는 법을 배우고 있었다.
- 이때쯤 되자 나는 자기중심적인 생각과 감정을 끊임없이 내려놓는 것만이 개인적, 직업적, 영적 성장에 필요한 것의 전부임을 철저히 확신하게 되었다.
- 처음에는 문제로밖에 보이지 않았던 것이 사실은 우리를 앞으로 이끌어주는 변화의 동력이었음을 나는 거듭거듭 경험했다.
- 숨이 턱 막힐 정도의 고강도 업무가 우릴 기다리고 있었지만 개인적으로 나는 이때 정말 많은 것을 배웠다. 나와 한배를 탄 경영진들은 불평불만을 늘어놓는 대신 소매를 걷어붙이고 이 엄청난 난관을 돌파하기 위해 묵묵히 나아갔다. 가라앉는 배를 어떻게든 살리기 위해 그들은 밤낮으로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했다. 수년간 나는 일이 꼭 자기가 원하는 대로 되어야 직성이 풀리는 내면의 약한 인간으로부터 해방되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다. 그리고 지금, 상황은 어느 한 가지도 원하는 대로 흘러가지 않았다. 그럼에도 모든 사람이 숨을 크게 한 번 들이쉬고는 자신에게 주어진 일을 마다하지 않고 해냈다. 그런 현장을 함께하는 것 자체가 나에게는 놀라운 경험이었고, 덕분에 내면의 힘이 무엇인지를 배운 나는 아주 깊은 수준에서 영원히 다른 사람이 될 수 있었다.
- 문제는 "명령이 떨어졌다" 부분을 증명할 방법이 없다는 것인데 만일 그가 정부 수사관들에게 앞으로 어떤 자료들을 발견하게 될 것이라고 얘기한다면, 그리고 수사관들이 실제로 그것을 계속 발견하게 된다면 그의 나머지 이야기에 믿음이 생길 것이고 결국 그는 정부의 신뢰를 얻게 될 것이었다. 지식이 힘이라면 바비 데이비즈는 모든 힘을 가진 자였다. 정부와 접촉하던 이 시기에 그는 모든 지식을 가진 자였다. 랜디는 이런 일이 흔치 않게 일어난다고 설명했다. 정부는 먼저 입장을 정한 뒤 그것을 뒷받침하는 증거를 찾으려고 하며, FBI가 급습을 통해 확보한 서류더미로 현재 하고 있는 일이 바로 그것이라고 했다.
- 그것은 다른 모든 일이 그러하듯이 왔다가 사라져갔다. 그 길을 가는 매 순간 나는 자신을 내맡겼기 때문에 내 정신에는 그 어떤 상흔도 남지 않았음을 분명히 확인했다. 그것은 물 위에 글씨를 쓰는 것과도 비슷했다. 인상은 사건이 실제로 벌어지는 그동안만 남아 있었다. 하지만 실제로 사건을 경험하는 순간에는 모든 우여곡절이 내 깊은 곳을 흔들어, 나로 하여금 근본적인 두려움과 개인적인 한계를 놓아 보내게 만들었다. 내가 삶의 흐름에 몸을 맡기고 정화의 힘을 기꺼이 받아들이는 한, 나는 늘 변성된 존재로 새롭게 태어났다.
- 그 모든 시련 덕분에 내 안에 그토록 큰 아름다움과 자유가 꽃을 피웠는데 어떻게 그것을 나쁜 경험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오히려 반대다. 나는 수용과 내맡김이라는 이 엄청난 실험을 시작한 이래 내게 일어난 모든 일을 경외감 속에서 지켜보았다. 한 가지만은 확실하다. 이 여정을 떠났던 그 사람은 결코 돌아오지 않았다. 마치 사포와도 같았던 삶의 흐름 덕분에 나는 어마어마할 정도로 스스로에게서 벗어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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