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자가 흐르는 이야기/Book2

[맨리 P. 홀] 환생, 카르마 그리고 죽음 이후의 삶

일루젼 2021. 10. 23. 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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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맨리 P. 홀 / 윤민 / 남기종
출판 : 마름돌
출간 : 2019.04.01 


 

짐들을 많이 덜어냈는데, 앗하는 사이 택배가 다시 조금씩 늘어난다. 

어떤 걸 쉬면 어떤 상태로 돌아가는지 체감 중이다.

퇴보하지 않는 전진이 가능할까? 아마 대부분의 경우에는 어느 정도의 요요를 겪으며 나아가게 되지 않을까 위안해본다. 

 

나아가고 또 나아가다 보면 언젠가는 목표점에 닿게 된다는 위로.

다다를 때까지 더 고생스러워질지언정 기회는 무한하다는 격려.

그리고 거기에서부터 다시 다음 여정을 시작해야 한다는- 

결국 끝은 없다는 절망. 

하지만 지금보다는 나아져있을 거라는 희망. 

 

마지막 생명이 열반에 들 때까지 탈세를 뒤로 미룬 관세음보살의 이야기가 미묘하게 읽힌다.

그런데도 '늘어지지 않도록' 힘을 내야하는 이유는 뭘까. 

'루돌프 슈타이너'의 <천사는 우리의 아스트랄체 속에서 무엇을 하는가>가 떠오른다. 

'맨리 P. 홀'의 책을 읽고 있자면 어떻게든 쉽게 설명하며 희망을 주고 싶어 한다는 느낌을 받는다. 

 

알게 됨으로써 새로이 적용되는 제약들이 있다는 점에서, 모른다는 것은 참으로 속 편한 일이다.

모르기 때문에 두려운 것은 알기 때문에 두려운 것으로 상쇄되지 않는다. 

그러나, 그러므로.


 

- 나와 같은 학년에 머무르고 있는 사람들은 다 나와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습니다. 인간은 자기 수준에서 볼 수 있는 범위 내에서만 주어진 문제를 해결할 수 있습니다. 문제를 바라보는 통찰력의 수준과 한계는 사람마다 다다릅니다. 

 

- 다시 본론으로 돌아갑시다. 사후세계에 입성한 인간은 그곳에서 자신의 지난 삶을 되돌아보는 시간을 갖게 됩니다. 바다에 빠져 죽어가는 사람의 눈앞에 삶이 파노라마처럼 스쳐 지나가는 것과 비슷한 체험입니다. 피타고라스학파는 이 원리를 일상적인 수련과정에 포함했습니다. 그들은 매일 밤 잠들기 전에 하루 동안 있었던 일들의 의미를 이해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왜 그 일에 대한 책임이 나에게 있는 것일까?' '그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은 무엇인가?' '그 상황에서 나는 어떻게 행동했어야 했나?' '왜 그렇게 행동하면 안 되는 것이었을까?' 종교 단체에서 행하는 무미건조한 요식행위보다는 이런 식의 자기 성찰이 영혼의 계발에 훨씬 큰 도움이 됩니다. 

 

- 계속 실수하고 고통스러운 대가를 치르면서 교훈을 얻는 간접적인 방법으로도 성장할 수 있지만, 처음부터 올바르게 행동하면서 직접 성장하는 것도 얼마든지 가능합니다. 삶의 나쁜 것들을 좋은 것으로 변환시키기 위해 내가 매일 할 수 있는 일은 아주 많습니다. 꾸준히 하면 삶도 저절로 나아지고 행복도 자연스럽게 찾아옵니다. 

 

- 우리는 성장해야 하고, 성장하기 위해 태어났습니다. 성장의 과정은 얼마든지 즐거울 수 있습니다. 성장이 즐겁지 않다면 변화가 필요하다는 뜻입니다. 뭔가 잘못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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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양철학 역시 모든 인간이 고유의 개성을 가진 하나의 개체로 태어난다는 기본적인 사상에서 출발합니다. 하지만 이 개성은 신이 우리에게 부여한 특권이 아니라, 우리가 아직 마무리하지 못한 일의 상태를 상징한다는 점에서 동양의 시각은 약간 다릅니다. 인간의 개성은 진리로부터 얼마나 멀리 떨어져 있느냐를 측정하는 기준입니다.

 

- 따라서 나의 개성에 카르마가 담겨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나의 개성, 나의 성향에 의해 세상 모든 것과 나 사이의 관계가 정해지고, 나 자신과의 관계도 성립되기 때문입니다. 

 

- 전생에서 어떤 일을 했든, 원칙과 이익 중 하나를 택해야 하는 상황이 찾아올 때마다 망설여진다면 옛날에도 정직함보다는 세속적인 성공을 더 중시했던 사람이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워낙 오랫동안 원칙과 타협하는 삶을 살았기 때문에 그 습성이 몸에 완전히 밴 상태로 다시 환생한 것입니다. 내가 정직하지 않은 성품을 가진 이유는, 여태껏 정직하지 않게 살아왔기 때문입니다. 다음에 같은 문제로 결정을 내려야 하는 상황이 찾아왔을 때 또 갈등하게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 이처럼 우리는 노년에 이르러 두 개의 벽에 부딪히게 됩니다. 첫째는 그동안 돈을 올바르게 관리하지 않아 주머니가 비었다는 것이고, 둘째는 65세 이후의 인생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이 없다는 점입니다. 늙으면 대충 안락하게 생활하며 물 흐르듯이 허송세월 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많습니다. 그런데 노년의 기간이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길어질 수도 있고, 이 시기에 적절하게 쓸 수 있는 돈도 없고 관심 있는 분야도 없어 인생의 가장 소증한 시기를 걷어차 게 될 수 있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지긋지긋하고 고통스러웠던 직장생활이 끝났으니 앞으로는 집에서 뒹굴면서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을 궁극의 보상이라 여기는 시대는 이미 끝났습니다. 이제는 은퇴 이후의 생활에 대해 깊게 고민해봐야 합니다. 

 

- 경험이 무조건 배움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그 경험이 의미하는 바를 이해해야 배움을 얻을 수 있습니다. 내 삶에서 일어난 일과 사건 자체는 별 의미가 없습니다. 그 일에 대한 내 생각, 반응, 감정, 이해가 성장의 밑거름이 되는 것입니다. 사후에 더 높은 관점에서 내 삶에서 일어났던 일들을 조명해볼 수 있어야 합니다.  

- 노년에 이르면 전보다 풍요로운 종교적 삶을 영위할 수도 있습니다. 은퇴 후에는 산업사회의 요구를 따를 의무가 사라지기 때문에 전보다 자유롭게 하고 싶었던 일을 할 기회가 많아집니다.  30~40대부터 준비하면 노년에 이르러 자연의 법칙, 성장의 법칙을 따르고 실현하는 충만한 삶을 누릴 수 있습니다. 

 

- 현재까지의 삶을 종합하여 자서전을 써보는 것도 아주 좋은 생각입니다. 과거에 있었던 중요한 순간과 사건을 모두 취합하여 체계적으로 정리해보는 것입니다. 

 

- 내가 과거에 행했던 선과 악을 분별하고, 그 일에서 교훈을 얻어 성장하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나의 삶 자체를 하나의 연구실로 개조하여 각종 데이터와 실험 결과를 기록해볼 수 있습니다. 이렇게 지난 삶을 정산하다 보면 은퇴 후 20년의 세월이 주어진다고 하더라도 전생에서 끝내지 못한 일을 모두 마무리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시간이라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동시에 산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도 새삼 깨닫게 됩니다. 린위탕(임어당)이 <생활의 발견 The Importance of Living>이라는 저서에서 다룬 개념입니다만, 인생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든, 산다는 것 자체가 아주 소중하고 신비스러운 체험입니다. 

 

- 환생의 원리를 깊게 연구한 학자들의 설명에 따르면 인간은 평균적으로 800회 정도 환생을 한 후 에 비로소 해야 할 일을 모두 마치고 카르마의 굴레에서 벗어난다고 합니다. 

 

- 기원전 10세기 이전의 서양은 문화 발전의 적기가 아니었습니다. 비교종교학에 의하면 문명이 진보하기 위해서는 인간은 불멸의 존재라는 믿음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고 합니다. 불멸에 대한 믿음이 없으면 인간의 삶이 피폐해집니다. 죽음 이후에 아무것도 없다면 살 이유도 없습니다. 이게 사실이라면 물질주의자의 관점에서는 불리할 수밖에 없습니다. 물질주의는 그 어떤 문제도 해결할 수 없습니다. 

 

- 우리가 앞으로 언제, 어디서 다시 태어나든, 궁극적인 목표는 항상 같습니다. 내면의 잠재력을 밖으로 표현하고 세상에서 실현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 속도가 너무 빠르면 육신이 파괴될 수 있으니 주의해야 합니다. 자기 계발 목적으로 섣불리 고차원의 형이상학적 기법을 수련하다가 육신의 진동수가 필요 이상으로 높아져 육신이 망가지는 것은 물론이고, 정신적, 감정적 불균형 상태에 이르는 사람도 많습니다. 

 

- 세상에서 가장 위험한 것은 숨은 저의를 품는 것입니다. 영혼의 계좌를 바닥내고 큰 카르마의 채무를 만들어내는 제일 확실한 방법입니다. 인간은 무언가를 성취하기 위해 헌신하겠다는 의지가 솟아나는 순간부터 성장합니다. 새로 태어날 때마다 조금 더 나은 사람이 되겠다는 마음가짐으로 살 시 않으면 성장이 정체됩니다. 

 

- 피타고라스와 동양 사상에 따르면 일반적으로 인간은 육신의 사망 후 대략 600~1,200년마다 환생한다고 합니다. 여기에는 크게 두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첫 번째 이유는, 이전 생과 거의 같은 환경에 다시 태어나면 문제를 풀기가 훨씬 더 어렵고 성장에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그보다는 인류문명이 큰 진보를 이루며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는 시기에 다시 태어나 성장의 물결에 참여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별다른 이유 없이 금세 환생하여 똑같은 시대, 똑같은 상황에 부닥치면 필요한 경험을 할 기회가 많지 않습니다. 

 

- 몇 분간 장수를 바라보던 부처가 입을 열었습니다. "왕에게 충성을 맹세했다고 하셨죠? 그 순간에 새로운 카르마를 만들어냈다는 사실은 모르셨던 것 같습니다. 당신은 반드시 약속을 지켜야 하는 입장이고, 전쟁터에 나가면 살생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따라서 나중에 살생에 대한 빚을 갚아야 합니다. 군의 지휘권을 얻은 순간에 업을 쌓은 것입니다. 전쟁에서 승리한다고 빚이 갚아지는 것이 아닙니다. 모든 형태의 파괴적인 행동은 이유를 불문하고 대가가 따르게 되어 있습니다. 어떤 신념을 따르기 위해, 또는 누군가에 대한 신의를 지키기 위한 행동이었다 하더라도 카르마가 생깁니다. 왕을 섬기기 위한 목적이라 해도 잘못된 행동을 했다면 언젠가는 대가를 치러야 합니다." 

 

- 우리가 이 시점에서 떠올릴 수 있는 질문이 있습니다. '악이라는 것은 과연 실체를 가지고 있나?' 파라켈수스 21)는 악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대답했을 것 같습니다. 그는 악을 일종의 '기적'으로 여겼습니다. 기적이란 우주의 법칙이 작용하는 현상에 불과합니다. 우리가 악이라 여기는 것은 우주의 법칙이 작용한 결과물입니다. 악마가 악을 만들어낸 것이 아닙니다. 악마라는 존재가 따로 있는 것도 아닙니다. 우리가 잘못했을 때 받는 고통이 바로 악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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