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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 퀸시의 '어느 영국인 아편쟁이의 고백' 혹은 '어느 영국인 아편 중독자의 고백'.
Confessions of an English Opium-Eater.
이쪽으로 빠지게(?) 된 계보를 간략히 설명하자면, 이 모든 건 여기에 올리지는 않았지만 얼마전 읽은 페이건 케네디의 "멤"에서 시작된 일이었다.
"멤"의 원제는 "Confessions of a memory eater".
드 퀸시의 원제에서 따온 제목이라는 말에 이 작품이 목록에 올라가고, 유사 장르로(?) 버로스에 손을 뻗치게 된...
자. 그래서.
초반부에 관한 나의 감상은, 좀 괴로웠다는 것.
중반부에 들어 그는 자신은 기득권층이 아니었으며 일개 상인의 아들이었다고 말하지만,
초반부터 뚜렷하게 드러나는 그의 은근한 자부심과 깜짝 놀랄 정도의 특권 의식이 불편했다.
또한 워즈워스와 밀턴(실낙원)에 대한 숭배에 가까운 그의 애정 또한!!!
그렇게 밑도 끝도 없이 자꾸 끌어넣지 마!!
라고 하고 싶었지만 워즈워스야 당대에 워낙 유명했던 낭만파니까...
개인적으로 교분도 쌓고 싶어 노력한 끝에 실제로도 어느 정도 친분이 있었다니 참... 아야지.
그가 고통에 대해 말하려 한다는 부분으로 들어서기까지는, 내게는 그냥 그런 글이었다.
하지만 후반부. 그가 완전히 중독이 되고 난 이후와 양을 줄이기 위해 겪었던 고통에 대해 쓴 부분은.
실로 아름답다.
번역자의 역량으로 인한 문제도 있겠지만 사실 그 전까지 아름다운 문장이라는 생각은 크게 들지 않았다.
호흡이 길고 수식이 많은 문체. 조금 허례 허식이 묻어나는 그런 느낌이었는데.
글쎄, 문장이 담은 내용이 달라서이기도 하겠지만, 결론적으로 나는 후반부에 강하게 매료되었다.
관심이 없던 사람에게도 아편에 대한 호기심이 생기게 만들 정도라고 본다.
(그런 점에서 비난은 정당했다. 뭐 당시는 아스피린 대용으로 아편 팅크라는 분위기였다는 점이 참작되어야 하겠지만)
버로스가 묘사한 아편은 (코데인, 마리화나, 그가 말했던 것은 총체적인 "중독성 물질"들이었지만) 두렵고 진득한 하나의 생명체. 기생충 같은 느낌이었다면.
드 퀸시의 아편은 한 번 친해지면 헤어지기 어렵지만 조금 곤란한, 때로는 영감을 주는 지인 같은 느낌?ㅋ
아편을 바라보는 자세, 또한 천성적인 성격에서 나오는 차이라고 본다.
내게 버로스는 금욕적이고 건조한, 거기서 나오는 네온사인 같은 형광의 총천연색이었다면 드 퀸시는 목가적인 환경에서 따뜻하고 진한, 조금은 이질적인 우유의 뿌연 유백색의 느낌.
결론적으로 만족했으니 다행.
이제 좀 정화와 치유의 글들에 도전해야겠다.
[발췌]
이것을 비롯하여 내 꿈속에서 일어난 모든 변화는 말로는 완전히 표현할 수 없는 뿌리 깊은 불안과 암담한 우울을 수반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밤마다 깊이 갈라진 틈과 햇빛이 닿지 않는 심연 속으로, 깊은 곳보다 밑에 있는 더 깊은 곳으로, 비유적으로가 아니라 문자 그대로 내려가는 것 같았다. 그 깊은 곳에서 다시 올라올 가망은 없어 보였다. 나는 잠에서 깨어남으로써 그 심연에서 다시 올라왔다고 느끼지도 못했다. 여기에 대해서는 자세히 말하지 않겠다. 이런 멋진 광경에 수반되는 암흑 상태는 자포자기하여 낙심했을 때처럼 마침내 완전한 어둠이 되면, 도저히 말로 접근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 나는 적어도 여기에 대해서는 확신하고 있다. 마음이 '잊을' 수 있는 일 따위는 존재하지 않고, 수많은 사건이 우리의 현재 의식과 마음에 새겨진 비밀 기록 사이에 베일을 칠 수도 있고 앞으로도 베일을 치겠지만, 같은 종류의 사건들이 이 베일을 찢어버리기도 할 것이다. 하지만 베일이 쳐졌든 벗겨졌든, 마음에 새겨진 기록은 영원히 남는다. 그것은 별들이 낮의 햇빛 앞에서는 물러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햇빛이 베일처럼 별들을 가리고 있을 뿐이고, 별들을 별빛을 가리는 햇빛이 물러가면 자기 모습을 드러내려고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우리는 모두 알고 있다.
Confessions of an English Opium-Eater.
이쪽으로 빠지게(?) 된 계보를 간략히 설명하자면, 이 모든 건 여기에 올리지는 않았지만 얼마전 읽은 페이건 케네디의 "멤"에서 시작된 일이었다.
"멤"의 원제는 "Confessions of a memory eater".
드 퀸시의 원제에서 따온 제목이라는 말에 이 작품이 목록에 올라가고, 유사 장르로(?) 버로스에 손을 뻗치게 된...
자. 그래서.
초반부에 관한 나의 감상은, 좀 괴로웠다는 것.
중반부에 들어 그는 자신은 기득권층이 아니었으며 일개 상인의 아들이었다고 말하지만,
초반부터 뚜렷하게 드러나는 그의 은근한 자부심과 깜짝 놀랄 정도의 특권 의식이 불편했다.
또한 워즈워스와 밀턴(실낙원)에 대한 숭배에 가까운 그의 애정 또한!!!
그렇게 밑도 끝도 없이 자꾸 끌어넣지 마!!
라고 하고 싶었지만 워즈워스야 당대에 워낙 유명했던 낭만파니까...
개인적으로 교분도 쌓고 싶어 노력한 끝에 실제로도 어느 정도 친분이 있었다니 참... 아야지.
그가 고통에 대해 말하려 한다는 부분으로 들어서기까지는, 내게는 그냥 그런 글이었다.
하지만 후반부. 그가 완전히 중독이 되고 난 이후와 양을 줄이기 위해 겪었던 고통에 대해 쓴 부분은.
실로 아름답다.
번역자의 역량으로 인한 문제도 있겠지만 사실 그 전까지 아름다운 문장이라는 생각은 크게 들지 않았다.
호흡이 길고 수식이 많은 문체. 조금 허례 허식이 묻어나는 그런 느낌이었는데.
글쎄, 문장이 담은 내용이 달라서이기도 하겠지만, 결론적으로 나는 후반부에 강하게 매료되었다.
관심이 없던 사람에게도 아편에 대한 호기심이 생기게 만들 정도라고 본다.
(그런 점에서 비난은 정당했다. 뭐 당시는 아스피린 대용으로 아편 팅크라는 분위기였다는 점이 참작되어야 하겠지만)
버로스가 묘사한 아편은 (코데인, 마리화나, 그가 말했던 것은 총체적인 "중독성 물질"들이었지만) 두렵고 진득한 하나의 생명체. 기생충 같은 느낌이었다면.
드 퀸시의 아편은 한 번 친해지면 헤어지기 어렵지만 조금 곤란한, 때로는 영감을 주는 지인 같은 느낌?ㅋ
아편을 바라보는 자세, 또한 천성적인 성격에서 나오는 차이라고 본다.
내게 버로스는 금욕적이고 건조한, 거기서 나오는 네온사인 같은 형광의 총천연색이었다면 드 퀸시는 목가적인 환경에서 따뜻하고 진한, 조금은 이질적인 우유의 뿌연 유백색의 느낌.
결론적으로 만족했으니 다행.
이제 좀 정화와 치유의 글들에 도전해야겠다.
[발췌]
이것을 비롯하여 내 꿈속에서 일어난 모든 변화는 말로는 완전히 표현할 수 없는 뿌리 깊은 불안과 암담한 우울을 수반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밤마다 깊이 갈라진 틈과 햇빛이 닿지 않는 심연 속으로, 깊은 곳보다 밑에 있는 더 깊은 곳으로, 비유적으로가 아니라 문자 그대로 내려가는 것 같았다. 그 깊은 곳에서 다시 올라올 가망은 없어 보였다. 나는 잠에서 깨어남으로써 그 심연에서 다시 올라왔다고 느끼지도 못했다. 여기에 대해서는 자세히 말하지 않겠다. 이런 멋진 광경에 수반되는 암흑 상태는 자포자기하여 낙심했을 때처럼 마침내 완전한 어둠이 되면, 도저히 말로 접근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 나는 적어도 여기에 대해서는 확신하고 있다. 마음이 '잊을' 수 있는 일 따위는 존재하지 않고, 수많은 사건이 우리의 현재 의식과 마음에 새겨진 비밀 기록 사이에 베일을 칠 수도 있고 앞으로도 베일을 치겠지만, 같은 종류의 사건들이 이 베일을 찢어버리기도 할 것이다. 하지만 베일이 쳐졌든 벗겨졌든, 마음에 새겨진 기록은 영원히 남는다. 그것은 별들이 낮의 햇빛 앞에서는 물러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햇빛이 베일처럼 별들을 가리고 있을 뿐이고, 별들을 별빛을 가리는 햇빛이 물러가면 자기 모습을 드러내려고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우리는 모두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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