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자가 흐르는 이야기/Book1

[베르나르 베르베르] 타나토노트 2 (완)

일루젼 2021. 11. 4. 2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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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베르나르 베르베르 / 이세욱
출판 :  열린책들
출간 :  1994.09.01


 

내가 시간을 잊고 몰입해서 읽을 수 있는 책은 소설 정도인 것 같다. 한 번 재미있었던 글은 다시 읽어도 재미있다.

 

불가능을 가능으로 바꾼 사람들의 이야기. 

사후 세계에 대한 탐사와 집념, 그리고 그것이 성공했을 때 발생한 사회적 부작용 등에 관해서는 생각해 볼 점이 많다.

현재 일어나고 있는 많은 부딪침들과 충분히 겹쳐볼 수 있는 설정이었다. 시간과 배경을 아무리 바꾸어도 비슷한 문제가 발생한다는 점에서, 어떤 면에서 분란과 갈등은 인류의 특성이 현상으로 나타나는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어째서 지식들이 어느 정도는 숨겨져야 하는지, 혹은 시기를 기다려야 하는지에 관한 위트 있는 꼬집음도 유쾌했다.

 

'옳다고 느껴서' 행한 행동과 '그렇다고 알기 때문에' 행한 행동의 차이에 대해 말하고 싶어한 듯 한데, 개인적으로는 카르마적 점수 체계를 알고 난 이후 그것에 맞춰 행동하게 되는 부분을 인상깊게 읽었다. 행동의 결과보다는 당시의 감정과 동기에 초점을 맞춰 살펴본다면, 그에 맞춰 '선한' 행동을 한 경우는 과연 어떤 점수가 나올 것인가? 진정으로 '안다'는 것이 무엇인지, 또한 다시 잊는다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보게 된다.

 

아무리 선한 행위라고 하더라도 그 기반이 나의 이득을 위한 이기심에서 피어났다면, 그것은 어떠한 가치가 있는가?

나보다 타인을 우선하여 희생한다는 것이, 내가 곧 남이라는 인식 없이 가능한 일인가? 고귀한 가치를 위해서라면 일종의 자해가 숭고한 희생이 될 수 있는가? 너와 나 모두를 위한 최선의 선택을 위해 우리는 근원을 찾아 헤매야만 하는가? 

해서, 신념으로 가득찬 악한 행위보다 이기심에 기반한 위- 선한 행위가 더 나은 행동인가? 

 

이에 관해서는 철학과 경험을 통해 스스로의 답을 찾는 수밖에 없을 것이다. 

죽기 전에는, -혹은 죽어서도- 알 수 없는 일인 듯 하므로.

그 답을 더듬기 위해 종교의 가르침을 뒤적이는 게 아닐까.  

 

 


   

- 중심이 <원천>을 낳고 더할 나위 없이 신비로운 빛을 발한다. 그 빛은 순수하고 투명하고 은은해서 감지할 수가 없다. 그 광점이 퍼져 나가 궁전이 되고 그 궁전이 중심을 덮는다. <불가지한 광점>의 원천인 그 궁전 역시 맑고 투명하나 태초의 광점보다는 덜 투명하다. 그러나 그 궁전으로부터 우주 창생의 빛이 퍼져 나온다. 거기에서 나온 빛 하나하나가 뇌를 싸고 있는 박처럼 먼저 나온 빛을 겹겹이 감싸버린다. - <조하르>

 

- 하시디즘 설화. 노인이 춤을 추고 있었다. 언제까지라도 춤을 출 것 같은 노인을 보고 아이가 물었다.

"할아버지, 왜 그렇게 춤을 추세요?"

"얘야, 그건 말이다, 사람은 팽이와 같은 것이기 때문이란다. 존엄성과 고귀함과 평형을 잃지 않으려면 끊임없이 움직여야만 하지. 사람은 스스로를 해체함으로써 자기를 만들어 가는 거란다. 그 점을 명심하거라."

 

- "라메드 바브란 모든 것을 다 이루고 길굴림, 즉 지루한 환생의 순환에서 벗어났으면서도 오로지 이승 사람들을 향한 연민 때문에 환생한 사람을 가리키는 말이라네. 라메드 바브는 유대교의 성자들일세. 선행과 자비심으로 세계를 선하게 만드는 데에 기여하는 사람들이지. 그들은 이전에 자기들이 살았던 삶들을 훤히 알고 있고, 개인적인 야심은 전혀 갖지 않은 채 사람들의 무지를 깨뜨리기 위해 싸운다네."

"티베트 불교에도 그런 사람들이 있어요. 산스크리트어로 보디사트바, 흔히 보살이라고 부르는 사람들이 그들이에요. 그들 역시 윤회에서 벗어나 해탈을 이루었음에도 중생을 제도하기 위해 이승으로 돌아온 사람들이에요. 카르마의 사슬에 묶여 있는 중생들을 향한 지순한 사랑 하나로 이승에 돌아온다는 것은 더할 나위 없이 위대한 자비행이지요." 

 

- 사실 이름은 블랙홀이지만 그 입구는 오히려 빛이 가득하다. 블랙홀에 빨려 들어온 떠돌이별과 붙박이별이 서로 부딪치면서 불꽃놀이를 벌인다. 아직 삼켜지지 않은 별들은 블랙홀 안쪽에서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그것들을 끌어당기기 때문에 하양, 분홍, 빨강, 보라로 색깔이 변하다가 마침내 장미꽃 모양을 이루며 폭발하고 이슬방울처럼 흩어진다. 빛이 그렇게 빨라도 그곳을 무사히 통과할 수는 없다. 빛은 휘어지고 구부러진 채 춤을 추다가 자석에 끌리듯 빨려 들어간다. 황홀한 장관이다. 그러나 그것을 즐길 겨를이 없다. 

 

- "저는 두려움을 느끼지 않을 것입니다. 두려움은 죽음과 같아서 우리를 완전한 소멸로 이끕니다. 저는 두려움에 맞설 것입니다. 그것이 저를 밟고 지나가도록 내버려 두겠습니다. 그런 다음 두려움이 지나간 뒤에, 내면의 눈을 돌려 그것의 자취를 보겠습니다. 두려움이 모든 것을 휩쓸어 가도, 저는 남아 있을 것입니다."

 

- 나는 고향에 돌아와 있다. 진정한 태양을 보았다. 내가 본 태양에 비해 지구인들이 보는 태양은 노란빛이 많이 들어 있다. 참다운 태양, 흰 태양, 순백의 태양은 천국에만 있다. 

 

- 주요 천사들의 이름을 열거해 보면 다음과 같다. 이 명칭들의 출처는 성서이지만, 그리스어나 중국어나 힌디어 등에도 대응하는 명칭이 있을 수 있다.

제1천사 베후이아. 묵상과 영적인 계시를 주관하는 천사.

제2천사 젤리엘. 부당한 반란을 진압하는 천사.

제3천사 시타엘. 재난을 막아 주는 천사.

제4천사 엘레미아. 배신자들을 폭로해 주는 천사.

제5천사 마하아시아. 주위 사람들과 평화롭게 살도록 도와주는 천사.

제6천사 렐라헬. 병을 고쳐 주는 천사.

제7천사 아카이아. 자연의 비밀을 알게 해주고 새로운 기술을 개발하도록 도와주는 천사.

제8천사 카헤텔. 악령을 쫓아 주는 천사.

제9천사 하지엘. 거물들의 총애를 받게 하고 약속을 잘 지키도록 도와주는 천사.

제10천사 알라디알. 자기의 비밀을 발견하는 것에 두려움을 갖는 사람들을 지켜 주는 천사. 

 

- "당신이 여기 천국에 있어도 되는 건가요?"

그가 큰 소리를 내며 웃는다.

"물론이지요. 천국과 지옥은 같은 거예요. 저 아래, 여러분의 세계에서 나를 받아주듯이 이곳에서도 나를 받아주지요. 그뿐이 아니에요. 나는 그 어떤 천사보다도 중요한 임무를 맡고 있어요. 나는 무지한 사람들을 유혹해서 그들의 나쁜 성향을 부추겨요. 그럼으로써 그들로 하여금 자기들의 무지를 깨닫게 해 주지요. 물론 이승 사람들이 나에 대해 나쁜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는 걸 알아요. 하지만 무지한 사람들을 개선시키려면 자기들이 무지하다는 것을 입증해 보이는 방법밖에 없어요. 내 덕분에 온갖 잘못을 범하는 사람들이 정신을 차리고 새롭게 시작할 수 있는 거예요. 여러분 속담에 바닥에 닿은 다음에야 다시 올라갈 수 있다는 말이 있잖아요? 말하자면 나는 사람들이 바닥에 닿았다가 다시 올라갈 수 있도록 도와주는 거지요."

그의 표정에 <사탄 같은> 구석은 전혀 보이지 않는다.

"사실 나는 선을 위해 일하는 것이지만 그 방식이 너무 독특해서 여러분이 이해하기 어려울지도 몰라요."

스테파니아는 깊은 생각에 잠겼다. 나는 그 천사의 말을 금방 이해할 수 있었다. 선과 악은 별개의 것이 아니다. 큰 전쟁일수록 명분은 언제나 더 그럴싸하지 않던가? 선의 이름을 내걸고 악을 행하는 일이 얼마나 많은가! 거꾸로 악에서 선이 나올 수도 있다. 사마엘 천사가 인용한 속담이 바로그 점을 일깨우고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사마엘 천사가 우리 곁을 떠날 즈음에 다른 천사가 나타난다. 그는 성 베드로이자 헤르메스이자 아니엘이자 메르쿠리우스라고 자기를 소개한다. 그는 우리의 이해를 도우러 온 것 같다. "악마는 천사의 그림자일 뿐이지요." 

 

- "천사들이 모두 그렇듯이, 주요 천사들도 저마다 자기의 어두운 이면을 지니고 있어요. 따라서 일흔둘의 주요 악마가 있는 셈이지요. 그들은 모두 자기의 궁전을 가지고 있어요. 여기에서는 그것을 영역이라고 불러요. 그러니까 통틀어 144개의 영역이 있는 것이지요." 

 

- 우리는 우리의 욕망 때문에 삶에 집착한다. 우리 주위에는 모든 것을 끌어당기되 아무거나 마구잡이로 끌어당기지는 않는 정신적인 분위기가 존재한다. 그 정신적인 분위기는 우리의 욕망으로 이루어진 것이다. 그것은 또한 우리 욕망의 부정적인 측면인 두려움으로 이루어진 것이기도 하다. 욕망과 두려움은 동전의 양면이다. 우리가 의식할 수 있는 욕망 이상으로 의식하지 못하는 욕망과 두려움이 존재한다. 그러기에 우리는 우리 삶의 씨줄을 형성하는 사람들과 사건들을 우리 쪽으로 끌어당기는 것이다. 행동은 그저 욕망이 구체화한 것일 뿐이다. 우리는 과거와 현재에 대한 감정의 매듭을 풀지 않고서는 우리 자신을 해방시킬 수 없다. - 막스 하이델, <장미 십자단의 우주 생성론> 

 

- "세계는 그 자체로만 보면 선하지도 악하지도 않습니다. 자연이나 신, 또는 우리 삶의 방향을 규제하는 어떤 원리는 우리에게 보상도 벌도 내리지 않습니다. 우리가 할 일은 우리의 경험을 통해서 배우는 것입니다. 우리가 범할 수 있는 잘못은 오직 하나, 무지뿐입니다. 인류의 역사는 온통 혐오스러운 일과 잔학한 행위로 점철되어 있습니다. 그런 역사에서 교훈을 끌어내는 것 역시 우리가 할 일입니다. 고통 속에서 얻은 깨달음이 즐거움 속에서 배운 교훈보다 언제나 더 효과적입니다. 지구는 경험의 장소입니다. 마지막 심판의 시간에 여러분이 심판받는 것은 여러분의 모든 경험에 대해서입니다. 나는 그것을 분명히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여러분이 이웃에게 주었던 모든 즐거움과 모든 고통을 다시 만나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이 이승에서 행한 모든 행위가 중요합니다. 여러분은 죽음의 순간에 그것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심판의 순간에 대천사들은 여러분에게 저지른 행동 가운데 가장 비난받을 만한 것이 어느 정도인지를 가르쳐 줄 것입니다. 그러나, 그때에 대천사들은 여러분에게 화를 내거나 여러분을 비난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들은 오로지 여러분의 어리석음만을 비웃을 것입니다. 보르자 가문이 이탈리아를 지배하고 있던 30년을 생각해 보십시오. 그 기간에 이탈리아는 전쟁, 공포, 살인, 독살 따위를 경험했지만, 레오나르도 다빈치, 미켈란젤로 같은 천재와 르네상스라는 사조를 만들어 냈습니다. 그에 비해, 스위스는 어떻습니까? 스위스인들은 5세기 동안 평화와 민주주의와 형제애를 향유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만들어낸 게 무엇입니까? 그들은 끝없는 권태의 시간을 정확하게 재려고 시계를 만들어 냈을 뿐입니다. 태초부터 선은 악과, 아름다움은 추함과, 진실은 거짓과, 양은 음과 투쟁해 왔습니다. 지식과 진보는 언제나 바로 그 끊임없는 대립으로부터 나왔습니다. 어느 한쪽이 없으면 다른 쪽도 온전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의 상황은 어떻습니까? 영계에 관한 지식이 모두에게 알려졌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은 언제나 모든 것을 단순화하고 싶어 하는 성향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 두 가지가 겹쳐서, 사람들은 이제 삶의 목적을 오직 한 가지 책무로 귀결시키고 있습니다. 그 한 가지 책무란 바로 선입니다. 이것은 대단히 잘못된 생각입니다. 세상에 악이 없으면 안 됩니다. 악이 없으면 만물이 평형을 이룰 수 없습니다." 

 

- 그렇듯, 우리는 또 다른 차원을 넘나듦으로써 언뜻 보기에 불가능한 일을 가능한 일로 만들 수 있는 것이다. 라울이 옳았다. 어떤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무슨 일이든 할 수 있는 또 다른 세계를 상정하고 우리 가 그 세계에 들어갈 수 있다는 것을 받아들여야 한다. 그것은 신비주의하고는 다르며, 오히려 모든 신비주의를 넘어서는 것이다. 자기의 정신을 넓히는 것, 정신의 자유를 마음껏 구가하는 것, 바로 그것이다. 막심 빌랭이 말한 것처럼, 작가는 자기의 목표를 <더 멀리 꿈꾸게 하는 것>에 두어야 한다. 종이의 이면을 꿈꾸게 하는 것, 죽음의 이면을 꿈꾸게 하는 것, 그런 것이 작가의 유일한 목표가 되어야 한다. 문학에서는 모든 일이 가능하다. 우리는 당연히 그 점을 활용해야 한다. 나는 단지 글을 쓰거나 읽는 것만으로도 다른 차원 속으로 들어갈 수 있다는 것을 이따금 느끼곤 한다. 나는 이제 줄곧 나를 따라다니던 물음들, 즉 <나는 어디에서 왔는가?>, 〈나는 누구인가?>, <나는 어디로 가는가?>에 어느 정도는 답할 수 있을 것 같다. 나는 지금 여기에 살고 있는 한 인간이다. 무엇을 위해 사는가? 나는 영계를 발견하는 일에 참여하기 위해 살고 있다. 인간의 생각이 무한한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인간의 생각은 날기도 하고 물질을 통과하기도 한다. 또 책 속에 저장되기도 하고, 모든 것을 만들고 바꿀 수 있으며, 모든 것을 죽일 수도 있다. 나는 시간, 공간, 지식, 아름다움 등 모든 것이 내부에 있음을 안다. 만물은 중심에 있다. 외부에는 그저 반영이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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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게다가 블랙홀은 관측하기가 어려워요. 어떤 별이 증발하는 것을 보고서야 블랙홀의 존재를 인지할 수 있어요. 별이 증발하는 순간에 엑스선을 방출하는데, 그것을 통해 별들의 무덤인 블랙홀이 있다고 추정할 수 있게 되는 거예요. 그 엑스선은 말하자면 별들이 내지르는 단말마의 비명인 셈이지요. 그런데 우리 은하의 한가운데에도 엑스선을 방출하는 구멍이 있다는 것이 확인되었어요. 천문학자들은 그곳에 <궁수자리 A-서>라는 이름을 붙였지요." 

 

- "이 악절을 들어 보게. 두 가지 성부를 느낄 수 있을 걸세."

나는 더 잘 듣기 위해 눈을 감았다. 그렇게 집중하고 들으니, 아닌 게 아니라 두 가지 성부가 포개져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메예르의 설명이 이어졌다.

"바흐는 엮기의 천재였네. 두 가지 성부를 엮어서, 존재하지는 않지만 두 성부를 합친 것보다 더 풍부한 제3의 성부를 만들어 내는 듯한 느낌을 갖게 한다네. 그 기법은 음악뿐만 아니라 문학, 회화 등 모든 분야에 활용할 가치가 있네. 눈을 감고 계속 들어 보게."

 

- 문득 나를 공격하던 어떤 수도자의 심령체를 혼내 주었던 일이 떠올랐다. 그때 나는 눈을 감아야 비로소 심령체의 모습이 제대로 보이는 것을 경험했었다. 눈은 때로 제대로 보는 데 장애가 될 수 있다. 나는 눈을 감음으로써 랍비가 한 말을 더 잘 이해할 수 있었다. 그가 계속 건반을 두드리고 있었다. 두 성부가 나란히 달리는데, 내 귀에는 그 두 성부와는 전혀 다른 곡조가 들리고 있었다. 그때까지 나는 음악은 존재의 가장 내밀한 곳에서 우러나오는 희로애락의 표현이라고만 생각해 왔었다. 음악을 순수한 과학으로 이해한다는 것은 도저히 생각할 수 없었던 일이다. 나는 소리를 귀청으로만 느꼈을 뿐 듣는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몰랐다. 프레디 메예르를 통해서 나는 비로소 듣는 법을 배우고 있는 셈이었다. 

 

- "그 비밀이 바로 자네가 받은 유산이라고 생각하는 게 좋을 게야. 자네를 의문 속에 남겨 둠으로써, 그분은 자네들의 사업을 이끌어 갈 원동력을 자네에게 주신 거라네."

"정말 그렇게 생각하세요?"

프레디는 다시 웃음을 터뜨렸다.

"물론이지. 때때로 나는 정신 분석과 유대교 신비주의 카발라의 가르침이 하나라는 생각을 한다네. 그 두 가지가 하나로 결합되는 일이 가끔 있지. 그것에 대해서는 나보다 자네가 더 정통할 거라고 믿네."

 

- 그러나 그녀의 생각은 달랐다. 티베트 불교의 명상법으로 수련을 쌓은 스테파니아는 스트라스부르의 현자를 나보다 잘 이해하고 있었다.

"프레디는 윤회의 마지막 단계에 와 있는 분이에요. 현생이 그분에겐 마지막 삶이죠. 현생이 끝나면 그분은 순수한 정신이 되어 모든 고통으로부터 해방될 거예요. 그러니 더 이상 이루어야 할 일이 없지요. 그분은 지금 평온해요. 영혼이 수많은 전생을 옮겨 다니는 동안에 이미 사랑이며 예술, 과학, 연민 등을 다 경험했고, 이젠 거의 절대지의 상태에 도달했어요. 영혼이 한없이 고요하기에 착하고 어진 분위기가 저절로 우러나오는 거지요. 그분의 농담에서 당신이 충격을 받는다면, 그건 당신의 마음이 금기로 가득 차 있기 때문이에요." 

 

- 랍비의 주위에 상서로운 파동으로 이루어진 영기가 서려 있는 것은 사실이었다. 스테파니아의 말대로라면 나는 그를 시샘하고 있는 거였다. 나도 그처럼 윤회를 끝내고 싶어 하고, 현상 너머에서 본질을 깨닫고 영혼이 평온해지기를 바라지만, 유감스럽게도 내 영혼은 아직 어리다는 얘기였다.

"미카엘, 당신은 아마 백 번째에서 2백 번째 사이의 환생을 살고 있을 거예요. 당신의 카르마는 아직 지식과 성취에 목말라 있어요."

 

- 다행히 프레디는 자기 지식을 우리에게 전수하는 일을 마다하지 않았다. 우리는 밤마다 펜트하우스에서 그를 둘러싸고 앉았다. 그는 카발라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주고 카발라 문헌에 따라 말과 숫자의 신비로운 의미를 가르쳐 주었다. 그럴 때의 그는 아주 진지한 모습이었다.

"카발라의 가르침에 따르면, 우리는 영원히 죽지 않는다네. 죽음은 단지 내적인 발전 단계의 하나일 뿐이네. 그 단계를 거쳐 우리 삶의 다음 지평이 열리는 것이지. 말하자면 죽음은 하나의 문턱인 셈이네. 그 문턱을 넘어서면 또 다른 삶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지. 우리는 되도록 냉철하고 평온하게 죽음을 맞아야 하네. 죽는다는 걸 두려워하고, 그 때문에 마음이 혼란에 빠지고, 죽음을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 것은 가장 나쁜 태도일세. 평정을 잃지 않아야 순조롭게 다른 세계로 넘어갈 수 있는 거지. <조하르>에 이르기를, <청정한 의식을 지닌 채 죽는 사람은 행복하다. 죽음은 한 집에서 다른 집으로 옮겨 가는 것일 뿐이다. 슬기로운 사람들이라면 마땅히 다음에 살 집을 더욱 아름다운 곳으로 만들기 위해 애쓸 것이다>라고 했네. 또, 언제나 쾌활했던 랍비, 엘리멜렉 드 리젠스크는 이렇게 말했지. <곧 이 세상을 떠나 더 높은 영원의 세계로 들어가리라는 것을 알고 있는데, 내 어찌 즐겁지 않겠는가?>라고 말일세"

아망딘은 영계에 가장 깊숙이 들어갔다 온 그 타나토 노트에게서 한순간도 눈을 떼지 않았다. 환생에 대한 믿음이 유대교의 일부를 이룬다는 사실에 무척 놀라고 있는 눈치였다. 

 

- "이건 나의 영적인 스승인 랍비 나슈만 드 브라츨라프께서 가르쳐 주신 경구일세, 들어 보게."

프레디의 주름진 얼굴에 천진한 미소가 환하게 번졌다.

"온 힘을 기울여 슬픔과 괴로움을 멀리하고 항상 기쁨 속에 사는 것은 우리의 크나큰 의무이다. 사람에게 생기는 모든 병은 기쁨이 훼손되는 데서 비롯된다. 기쁨이 훼손되는 것은 신명(니군)과 열 가지 생체 리듬(데피킴)이 비틀리기 때문이다. 기쁨과 신명을 잃으면 사람에게 질병이 닥친다. 기쁨은 모든 처방 가운데 으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 안에서 오로지 긍정적인 요소만을 찾고 그것에 애착을 가져야 하느니라."

 

- "명상을 잘하려면 관자놀이에 맥이 뛰는 것을 느껴야 한다고 했어요. 난 그걸 느끼고 있어요."

 

- 인간이 점점 더 성스러워지거나 점점 더 영리해지거나 점점 더 행복해진다고 해서 그걸 진보라고 말할 수는 없다. 진보의 요체는 깨달음이 점점 더 깊어지는 데에 있다. 현생 이전에 살았던 삶에 대한 진실을 감당할 수 있기까지는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이 삶에서 저 삶으로 옮겨가면서 우리의 영혼은 점점 성장해 가고, 전생에 대한 기억은 점점 또렷해진다. 찡그린 데스마스크를 보면 우리에겐 전생도 내생도 없다는 느낌이 들 터이지만 죽음은 그와 같은 고통스러운 종말이 아니다. 오히려 죽음은 하나의 경험 양식에서 다른 경험 양식으로 조용히 옮아가는 과정이다. 그 이행을 되풀이하는 동안, 우리 영혼이 자라 깨달음이 충만해지면, 마침내 우리 정신은 불멸의 것이 될 것이다. - 사프 트렘, <스리 오로빈도 또는 의식의 모험>

 

- 옛날에 지상 낙원을 찾아냈다고 믿은 사람들이 있었다. <해시시를 피우는 자들>을 뜻하는 아랍어 <하샤신>으로 불리던 사람들이 그들이다. <하샤신>은 시아파 이슬람교 이스마일파에서 갈라져 나온 교단으로서, 하산 이븐 알 사바의 개혁을 추종했던 니자르파 신도를 가리킨다. 그들이 그런 이름으로 불리게 된 사정은 이러했다. 그들은 반대파의 요인을 암살하는 전술을 많이 사용했다. 그런데, 그 암살 임무는 자살 행위나 다름없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들은 임무를 수행하기에 앞서 해시시를 많이 피웠다. 그 이름이 십자군에 의해 유럽에 전해졌고, 그들의 암살 행위가 유럽인들에게 강한 인상을 심어 줌에 따라 하샤신은 <암살자>라는 뜻을 담게 되었고 assassin이라는 말로 프랑스어를 비롯한 유럽인들의 언어에 들어왔다. 

 

- 타나토노트들이 자기들 신앙을 구실로 삼아 서로 매복하고 죽이고 하는 동안에, 나는 라울이 세계의 모든 종교와 신화에 대해 꼼꼼하게 정리해 놓은 노트를 다시 읽으면서, 따지고 보면 종교들 사이에 많은 공통점이 있다는 것을 확인했다. 내가 보기엔 모든 종교가 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었고, 똑같은 지혜를 각기 다른 비유와 말로써 전달하려는 것 같았다. 얼마 안 가서 하늘을 소란스럽게 만들던 싸움의 여파가 지상에까지 미치게 되었다. 하샤신 테러리스트들이 자동차에 폭약을 가득 채워 우리 타나토드롬을 향해 돌진시켰다. 폭탄을 다루던 자가 서툴렀던 덕분에 우리는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 그가 폭탄이 터지는 순간을 잘못 맞추는 바람에, 폭탄은 우리 건물에서 1백 미터쯤 떨어진 곳에서 터졌다. 그 폭탄에 희생된 것은 결국 그 사람 자신이었다. 

 

- "환생을 거듭하는 동안 고통스러운 삶을 숱하게 경험했음에도 이승으로 돌아오는 그런 성자들은 어느 종교에나 있을 테지. 우리 종교의 하시디즘적인 전통에서는 그런 이들을 라메드 바브라고 부르는 게야. 한 세대마다 그런 소수의 의인들이 모든 인류를 구원하려고 남모르게 자기를 바친다네. 그들은 오만함을 모르고 명성을 구하지 않지만, 사람들은 그들의 영적인 권능을 기리고 삶과 죽음에 대한 지혜를 찬양하지. 나는 가끔 예수 그리스도 역시 라메드 바브 가운데 하나였을지 모른다는 생각을 하곤 한다네."

 

- 잘랄 알 딘 알 루미, 페르시아의 시인(1210~1273). 수피즘의 교리를 비유로 설명한 그의 <마스나비>라는 작품은 신비주의 문학의 걸작으로 평가받고 있다. 

 

- 하극이 대답했다.

"발해 동쪽으로 몇억만 리나 되는지 알지 못하지만 그곳에 거대한 구렁이 있습니다. 그 아래엔 바닥이 없으며 그곳을 흔히 <귀허>라고 부릅니다. 온 세상 팔방의 물과 은하수에 흐르는 물이 모두 그곳으로 흘러들지만, 물은 늘지도 않거니와 줄지도 않습니다. 그 가운데에 다섯 개의 산이 있는데, 첫째는 대여, 둘째는 원교, 셋째는 방호, 넷째는 영주, 다섯째는 봉래입니다. 그 산들은 높이와 둘레가 삼만 리이며, 그 꼭대기에는 지름이 구천 리인 넓은 평원이 있습니다. 산들 사이의 거리는 칠만 리입니다. 그곳에서는 모두가 이웃처럼 지내고 있습니다. 그위의 누대와 궁궐들은 모두가 금과 구슬로 되어 있고, 그 위의 새와 짐승들은 모두가 순백색입니다. 주옥으로 된 나무들이 떨기로 자라고, 꽃과 열매는 모두 맛이 좋아서 그것을 먹으면 누구나 늙지도 않고 죽지도 않는다 합니다. 그곳에 사는 사람들은 모두가 신선과 성인의 무리입니다. 하루 낮이나 하루 저녁에 날아서 서로 왕래하는 사람들이 이루 헤아릴 수 없을 정도입니다." - <열자> 

 

- 알려고 애쓰지도 않았는데, E=mc^2이라는 공식이 어떻게 나왔는지 저절로 이해된다. 참으로 멋진 일이다. 인류가 왜 끊임없이 편을 갈라 전쟁을 벌이는지도 알았고, 내가 찾다 찾다 못 찾아서 포기해 버린 자동차 열쇠가 어디에 숨어있는지도 알아냈다. 무심코 지나쳐 버린 많은 문제들에 대한 해답이 절로 주어진다. 예를 들어, 마개를 연 샴페인 병 속에 거품이 계속 남아 있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해답은 간단하다. 병목에 은수저를 집어넣으면 된다(그건 내가 줄곧 궁금하게 여겨 왔던 문제이다). 

 

- 나는 삶과 사람과 사물에 대한 모든 것을 깨달았다. 모든 것을 안다는 것은 얼마나 기분 좋은 일인가! 아담은 지혜의 열매를 깨물면서 행복했을 것이고 뉴턴 역시 떨어지는 사과에 머리를 맞으면서 기쁨을 느꼈을 것이다. 정말이지 절대지와의 만남은 영계에서 만나는 모든 시련 중에서 가장 저항하기 어려운 시련일 것 같다. 나는 절대지의 천계 속을 나아갔다. 가장 큰 지혜와 가장 작은 지혜가 나란히 있고, 절대적인 지식과 상대적인 지식이 공존한다. 나는 문득 어떤 깨달음을 얻고 발길을 멈추었다. 나는 이제껏 아무도 사랑해 본 적이 없다는 깨달음이다. 물론 동정과 연민을 가져 본 적은 있었다. 또, 나에겐 함께 이야기하고 함께 즐거움을 나눌 수 있는 벗과 친지들이 있고 나는 그들 덕분에 따사로움을 느끼며 살아왔다. 그러나 내가 진정으로 그들을 사랑한 적이 있는가? 나는 사람들을 사랑할 줄이나 아는가? 나는 나 아닌 어떤 사람을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일까? 대답은 아니다였다. 나만 그럴 거라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세상엔 나 같은 사람이 참 많을 것이다. 진정으로 남을 사랑해 본 적이 없는 사람들이 말이다. 그러나 그게 이유가 될 수는 없다. 다른 사람도 그러니까 나도 그럴 수 있다는 것은 변명도 위안도 되지 못한다. 영계의 경험을 통해 나는 적어도 한 가지 깨달음은 분명히 얻었다. 예전 같으면 그런 생각은 어리석은 감상벽의 소치라고 거들떠보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 깨달음이란 바로 행복하기 위해서는 남을 사랑해야 한다는 것이다. 남을 사랑하는 것은 자기를 가장 이롭게 하는 행위이고, 자기 자신에게 줄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선물이다. 이제껏 나는 그런 위대한 행위를 한 적이 없다. 

 

- 나는 사람들을 평가하려 하지 말고 있는 그대로 불평 없이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인간이 가져야 할 야심은 오로지 자신을 개선하려고 노력하는 것뿐이라는 것도 깨달았다. 나의 지식이 갑자기 늘어나서 뇌가 폭발할 지경이다. 

 

- 사람은 하나의 베갯잇에 비유할 수 있다. 베갯잇의 빛깔은 빨간색, 검은색 등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지만 천으로 되어 있다는 점에는 차이가 없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잘난 사람, 못난 사람, 착한 사람, 악한 사람 등 여러 종류가 있지만 모든 사람의 내부에는 똑같은 신이 머물고 있다. - 라마크리슈나 

 

- 타로 카드의 열세 번째 것은 죽음을 나타낸다. 그 카드에는 이름이 붙어 있지 않다. 그도 그럴 것이 카드에 죽 그림이 나오다가 열세 번째 와서는 빠져 있다. 처음 열두 장의 카드는 하루 중 오전의 열두 시간과 같다. 그것은 열두 가지의 <작은 신비>이다. 열두 번째 시간, 즉 정오가 지나면 흘연 죽음이 나타나고, 하루 중의 다른 열두 시간이 시작된다. <위대한 신비>라는 다른 차원이 열리는 것이다. 어떤 비교에서는 죽음을 상징하는 비밀 의식을 열세 번째로 행한다. 그 죽음이란 비신자가 신자로 거듭나는 죽음이다. 그렇듯 타로의 열세 번째 카드는 불길한 것이 아니다. 사람이 죽음의 단계를 넘어서지 못하면, 더 이상 진보할 수가 없다. - <마르세유 타로 카드의 의미>

 

- 어머니는 1층 가게에서 완전한 영계 지도를 상품화하여 팔기 시작하셨다. 여섯 군데의 장벽과 일곱 천계로 이루어진 영계의 모습은 입구가 넓게 벌어지고 끝이 뾰족해서 전체적으로 보면 트럼펫과 비슷했다. 파랑, 검정, 빨강, 주황, 노랑, 초록, 하양의 순서로 색깔도 들어가 있었다. 지도가 예쁘장하게 생겨서 과학자 지망생이나 몽상가의 벽을 장식하기에 안성맞춤이었다. 

 

- 영혼은 세 등급으로 나뉘는데, 그 세 영혼은 다음과 같이 뇌의 세 부분에 해당한다. 

 

시상 하부 : 네페슈 : 먹고 마시고 잠자고 구합하는 생존의 욕구와 같은 수준의 영혼. 
주변 조직 : 루아크 : 두려움, 욕망, 시샘 따위의 감정과 같은 수준의 영혼. 
대뇌 피질 : 네카마 : 논리, 전략, 철학, 미학 및 다른 뇌들을 통제하는 능력과 관련된 영혼.

 

카발라에 따르면 육체적인 죽음과 때를 같이해서 정신적이고 생리적인 몇 가지 변화가 일어난다고 한다. <조하르>에 나온 설명을 보면, 시체가 썩기 시작하면서 우리의 생체 에너지인 네페슈가 떨어져 나간다고 한다.루아크는 생체 에너지의 흐름과 관련을 맺고 있지만 조금 더 머물다가 육신을 떠난다. 영혼의 초월적인 부분인 네카마가 마지막으로 육체를 떠난다. 그러면 이승에 사는 동안 그를 사랑했던 사람들의 영혼이 그 네카마를 맞아 준다. 아버지와 이미 고인이 된 가족의 다른 구성원들이 그 네카마 주위에 모여들면 네카마도 이승에서 만났을 때처럼 그들을 알아본다. 그 영혼들이 새로운 영혼을 머물 곳으로 데려간다. 사람은 죽음의 순간에 저승의 자기 부모와 친구들을 만날 수 있다. 죽은 이가 고결한 사람이면 그 영혼들이 그를 기쁘게 맞아 준다. 그러나 죽은 이가 악행을 많이 한 사람이면 게히놈(연옥)에 떨어진 사람들만이 그를 맞아 준다. 게히놈에서 그 영혼은 자기의 때를 씻어 내야 한다. 게히놈은 육신이 죽은 다음에야 나타난다. 

 

- 천사가 환하게 웃는다. 처음 천국에 들어왔을 때 천사들이 내게 별로 질문을 하지 않았던 이유를 나는 비로소 깨달았다. 옛날부터 <깨 달은 이>들이 이곳에 왔을 것이다. 그런 일이 빈번하지는 않았더라도 천사들은 그들을 맞이하는 일에 익숙해져 있음에 틀림없다. 

 

- 우리를 맞아들인 천사의 이름은 프랑스어로 생 제롬, 히브리어로는 아살리아로서 <진리를 알려 주는 자>라는 뜻이 담겨 있다. 다른 많은 언어에도 그를 부르는 이름이 있다. 고대 이집트인들은 그를 프타라고 불렀고, 수메르인들은 엔키, 로마인들은 아폴론, 갈리아인들은 마파노스, 아일랜드의 켈트인들은 디안세트, 게르만인들은 프레이르, 슬라브인들은 스바로크, 인도인들은 사비트르, 아즈텍인들은 크소시필리, 잉카인들은 일라파 등으로 불렀다. 백색 천계에서 그가 맡은 일은 진리를 드러내고 영혼들이 영적으로 드높아지도록 도와주는 것이다. 

 

- "주요 천사가 일흔둘이 있고, 보조 천사가 70만이 있지요. 위계 제도는 간단해요. 상급에는 치품천사, 지품천사, 좌품천사가 있고, 중급에는 권품천사, 능품천사, 역품천사가 있으며, 하급에는 주품천사, 대천사, 천사가 있어요. 대천사 가운데 대표적인 셋을 들자면, 예고자이며 선도자인 가브리엘과 괴물의 처단자인 미카엘, 그리고 의사와 여행자의 수호자인 라파엘이 있어요."

그들을 부르는 이름은 우리가 선택하기 나름이다. 다시 말하면 우리는 천사를 성인이나 라메드 바브로 생각할 수도 있고, 보살이나 부처, 선민이나 차딕으로 볼 수도 있다. 종교에 따라서 그들은 여러 가지로 불릴 수 있다. 그들은 이승의 삶을 훌륭하게 산 덕분에 윤회에서 벗어난 해탈자들이다. 그럼에도 그들은 떠도는 영혼을 계도하는 일에 헌신하는 쪽을 택한 것이다. 우리는 우리에게 익숙한 대로 그들을 <천사>라는 호칭으로 부르기로 했다. 

 

- 그밖에 우리에게 많은 도움을 주는 천사들을 나열하면 다음과 같다.

 

제12천사 하하이아. 꿈의 세계를 다스리고 거룩한 신비를 이따금 꿈의 형태로 드러내 보이는 천사.

제13천사 이에잘렐. 우정과 화해와 부부간의 정절을 다스리는 천사.

제14천사 메바헬. 재산을 강탈하는 자들로부터 사람들을 지켜 주는 천사.

제16천사 하카미아. 배신자들을 악의로부터 사람들을 지켜 주는 천사.

제17천사 라우비즈. 어둠에 대한 두려움과 슬픔을 몰아내 주는 천사.

제18천사 칼리엘. 뜻하지 않은 재난이 닥칠 때 신속하게 구원의 손길을 내밀어 주는 천사.

제20 천사 파할리알. 성직자와 마법사를 보호해 주는 천사.

제23천사 멜라헬. 사고 없이 여행할 수 있게 해주는 천사.

제26천사 하아이아. 송사에서 이기게 해주는 천사.

제38 천사 하하미아. 보물을 찾도록 도와주는 천사.

제42 천사 미가엘, 정치인과 통치자들을 보호해주는 천사.

제50천사 다니엘. 선택 가능한 몇 가지를 앞에 두고 망설이는 사람들에게 영감을 주는 천사.

제53천사 나나엘. 과학자들을 도와주는 천사.

제59천사 하라엘. 자녀들이 부모들을 더욱 공경하도록 타이르는 천사.

제69천사 로켈. 잃어버린 물건이나 물건을 훔쳐간 사람들을 찾도록 도와주는 천사.

제72천사 무미아. 사업이 성공하고 사람들이 더 오래 살도록 도와주는 천사. 

 

- "사람이 태어나는 날, 각자의 수호천사와 악마가 결정돼요. 나중에 영혼이 이곳에 올라와 대천사들로부터 심판을 받을 때, 수호천사와 악마가 그 영혼 편에 서서 중재를 하지요. 천사들에게 도움을 청하는 방법은 아주 간단해요. 기도를 하거나 어떤 천사의 활동 영역과 관련된 감정을 발하면 되는 거예요. 그러면 어떤 파동이 천사에게 전달되고 천사는 자기가 개입할 여지가 있는지를 판단하러 내려가지요. 우리 천사들은 각자 정해진 영역 안에서만 활동해요. 우리가 맡고 있는 감정의 영역도 각자 다르지요. 분노를 맡은 천사도 있고, 평화나 조화를 맡은 천사도 있어요. 자기 영역을 임의대로 바꿀 수는 없어요. 예를 들어 나는 알고 싶어 하는 사람들만을 도와줄 수 있어요. 나는 성 베드로이자 헤르메스로서 이해의 열쇠를 주고 의혹을 풀어 주는 천사이니까요."

요컨대, 천사의 도움을 받는 것은 간단한 일이고, 천사들의 역할 분담은 아주 체계적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이다. 

 

- 나는 비로소 기도의 위력과 유용성을 깨달았다. 기도란 아주 구체적으로 천사의 개입을 요청하는 것이다.

"물론 그 대가는 치러야 돼요."

천사의 설명이 이어진다. 나는 뜻밖의 말에 영혼의 눈썹을 찌푸리며 물었다.

"아니, 천사들의 도움이 공짜가 아니란 말인가요? 그럼 천사들에게 어떻게 대가를 지불하지요?"

"카르마, 즉 업으로 보상하지요. 일종의 거래예요. 드문 일이긴 하지만, 아무런 대가를 치르지 않고도 천사의 도움을 받을 수 있어요. 그러려면 내면의 순수성을 지니고 있어야 해요. 그렇지 않다면 어떤 소원이 이루어진 대가로 자기 능력의 일부를 포기해야 돼요."

천사의 도움을 받는 것이 일종의 거래란다. 괴테의 <파우스트>에 나오는 이야기와 비슷한 구석이 있다. 힘을 얻기 위해서는 자기 영혼을 팔아야 한다. 나는 성 베드로이자 헤르메스가 알려 준 것을 내 영혼 속에 다음과 같이 기록해 두었다. 

 

- 1. 언제나 천사들을 존중하고 조금이라도 그들에 대해 부정적인 생각을 갖지 말 것.

2. 천사의 도움을 청할 때는 언제나 계통을 밟아할 것. 총괄적인 역할을 맡은 천사에게 도움을 청해서 그가 전문적인 역할을 맡은 하급 천사에게 일을 위임할 수 있게 할 것.

3. 성인처럼 행동하지 않는 이상, 각각의 소원은 힘의 상실, 업의 훼손, 인격의 손상이라는 대가를 치러야 한다.

4. 천사뿐만 아니라 악마에게도 소원을 빌 수 있다. 그 효과는 동일하나, 치러야 할 대가는 다르다. 따라서 누구에게 앙갚음을 하려는 경우라면, 분노의 악마보다는 정의의 천사에게 도움을 청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5. 한 천사에게는 한 번에 한 가지 일만 부탁할 수 있다. 한 천사는 주어진 기간에 한 가지 임무만 감당할 수 있다.

6. 소원이 성취되면, <나는 이제 당신을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라고 생각함으로써 천사를 보내 주어야 한다. 천사는 지상에 너무 오래 머물지 말고 될 수 있는 대로 빨리 자기 궁전으로 되돌아가야 한다. 지상의 질서를 깨뜨릴 염려가 있을 뿐만 아니라, 자기 궁전을 너무 오래 비워 두면 비슷한 영역을 가진 하급 천사들이 그를 대신하여 부정적인 힘을 행사할 염려가 있기 때문이다. 미움은 하급 천사들을 움직이고, 사랑은 상급 천사들을 움직인다. 

 

- 그들이 시간을 지각하는 방법은 우리와 다르다. 인간은 과거와 미래의 틈바구니에 갇힌 채, 과거를 어쩔 수 없었던 일로 받아들여야 하고 미래를 두려워한다. 그러나 천사들은 현재와 과거와 미래를 투시한다. 그들은 우리에게 <현재-미래>라는 완전히 새로운 개념을 제공한다. 천사는 언제나 자기의 행동 하나하나에 대해서 단기적이고 중기적이고 장기적인 결과를 헤아리며 <현재-미래> 속에서 행동을 결정한다. 그것은 마치 우리가 뷔페식당에서 어떤 음식을 골라 먹는 것과 비슷하다. 우리는 그 음식을 먹어 보기 전에, 그것이 우리 입 안에서 어떤 맛을 낼 것인지를 알고 있다. 마찬가지로 천사는 어떤 행동을 할 때마다 이미 그 결과를 알고 있다. 

 

- 누구나 배우고, 깨닫고, 진보하고, 자기를 개선하는 일에 전념했다. 각종 교육 기관에서 학생을 모집할 때는 한결같이 <영혼의 아름다움을 유지하세요. 정원을 가꾸듯 당신의 영혼을 가꾸세요.>라는 식으로 광고를 냈다. 기업주들은 자기 사원들에게 임금 인상을 받아들여 달라고 애원했다. 하지만 사원들은 그것을 거절했다. 그들이 원하는 것은 돈이 아니라 자기들의 재능을 계발하는 데 필요한 여가였다. 노조에서는 <돈이 아니라 도서관을> 요구했다. 그러자 건축업자들은 기꺼이 도서관을 세워 주었다. 사정이 그러하니, 영계 탐사에 관한 관심이 되살아나는 것은 당연했다. 

 

- 영생을 얻기 위한 주문(매일 잠자기 전에 28번씩 외울 것).

나는 <눈>에서 나온 <레>의 영혼이고, <후>를 낳은 신의 영혼입니다. 나는 그릇된 행동을 극도로 혐오합니다. 나는 그릇된 일을 마음속에 품지 않습니다. 나는 마트를 믿으며 마트의 가르침으로 삽니다. 나는 <후>이며 그 영혼의 이름으로 영원히 살 수 있습니다. 나는 〈눈>과 함께 있던 삶에서 <케프리>의 이름으로 나왔고, 그 이름으로 매일 삶에 이릅니다. 나는 빛의 주인이고 죽음을 극도로 혐오합니다. 나는 <눈>이며 누구도 나를 해칠 수 없습니다. 나는 원초신 가운데 맏이이며, 내 영혼은 신들의 영혼, 영원의 영혼이고, 내 육신은 소멸하지 않습니다. 세월의 주인으로서, 억겁의 시간을 다스리는 자로서 나는 영원히 발현하기 때문입니다. 나는 내 죄를 씻었고, 나의 아버지, 밤의 지배자, 육신이 헬리오폴리스에 있는 그분을 보았습니다. 나는 황혼에 일어나는 자로서 동방의 따오기 언덕에 있는 황혼의 거주자들을 책임지고 있습니다. 

 

- 죽는 순간의 정신 상태가 어떠하냐에 따라 내 생의 형태가 달라진다. 물론 평생토록 악에 빠져 지낸 자의 정신에 고결한 희원이 생겨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렇기는 해도 이전의 여러 삶을 사는 동안에는 억눌린 채 움츠리고 있던 좋은 성품이 평생 잘못을 저지르며 살아온 사람의 영혼을 죽는 순간에 완전히 뒤바꾸어 버리는 경우가 있다. - 마 아난다 모이, 기쁨의 성녀. 

 

- "아니, 괜한 소리가 아니에요. 예전에도 착한 사람들은 있었어요. 그들은 자기가 그것을 원하기 때문에 착한 일을 했어요. 그들은 착한 것과 악한 것 중에서 착한 것을 자유롭게 선택할 권리가 있었어요. 그러나 지금은 달라요. 모두가 착해요. 그건 순전히 맹목적인 집착 때문이에요. 사람들은 모두 저승에서 치를 시험에 떨어질까 봐 전전긍긍하고 있어요. 그건 아무 의미가 없어요."

 

- <위대한 연구>를 뜻하는 <탈무드>는 <미슈나>와 <게마라>를 집대성한 것이다. <미슈나>는 토라에 대한 구전의 해석이나 주석을 랍비들이 편집한 것이며, <게마라>는 <미슈나>에 대한 여러 가지 해석을 모은 것이다. 이 두 가지를 집대성하는 과정은 팔레스타인과 바빌로니아에서 각각 4세기 말과 6세기에 이루어졌다. 후자 쪽이 분량도 많고 더 중요하게 여겨져 왔기에 보통 <탈무드>라 할 때는 이 <바빌로니아 탈무드>를 가리킨다. <탈무드>는 전 20권, 1만 2천 쪽, 250만 단어가 넘는 방대한 성전이며, <산헤드린>은 그중 한 권이다. 

 

- 충실한 삶을 살고자 하면 다음과 같은 다섯 가지 사항을 준수해야 한다.


건강. 맑은 의식을 유지하자면 몸이 언제나 건강해야 한다. 몸을 정결히 해야 하고 포만감이 들 정도로 많이 먹는 일이 없어야 한다.
지분 안족. 지금 자기가 가진 것을 소중하게 생각할 것.
의연함. 사소한 감정에 휘말리지 말 것. 즉 불의의 사태나 장애를 두려워 말고 덧없이 사라지는 즐거움에 혹하지 말 것.
공부. 성전을 읽고 명상을 하면서 깨달음을 향해 정진할 것.
봉헌. 사람은 자기를 위해 사는 게 아니라 자기 안에 있는 어떤 초월적인 것을 위해 사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겸허해야 한다. 

 

- "여러분, 이렇게 와주셔서 고맙습니다. 나는 자기의 업을 더럽힐 각오를 하고 악에 헌신하겠다고 약속하기까지 얼마나 많은 용기가 필요한지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행동하는 것은 전 인류의 행복을 위해서입니다."

 

- 사람에게는 천 개의 머리, 천 개의 눈이 있고, 세상 구석구석을 누비는 천 개의 다리가 있다. 사람은 열 손가락으로 현세를 벗어난다. 사람은 이 우주 그 자체이며 과거이고 미래이다. 사람은 멸하지 않는 세계의 주인이다. 그는 양식이 없이도 자랄 수 있기 때문이다. - <리그베다>

 

- <진정으로 사랑하기란 아주 어려운 일이다. 수많은 환생을 거치지만 우리가 진정으로 사랑할 수 있는 삶은 대개 한 번밖에 주어지지 않는다. 그 한 번의 기회를 놓치면 안 된다>고 메예르는 말했다. 

 

- "당신은 전생들을 살면서 선업을 많이 쌓았기 때문에 등에 도끼를 맞고 그렇게 빨리 죽을 수 있었던 거예요. 그 선업 덕분에 당신이 원하는 지식을 모두 얻을 수 있었고 깨달은 이까지 될 수 있었지요. 하지만 아직 순수한 정령이 될 때는 오지 않았어요. 당신은 오만함 때문에 너무 많은 죄를 지었고, 음주벽에 빠졌고, 복수심을 품었어요. 그래도 당신이 깨달은 이라는 점과 그런 수준에 오를 수 있었던 능력을 생각해서 관습에 따라 우리의 심판권을 포기하는 거예요. 따라서 당신 스스로 다음 환생을 결정해야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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