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저자 : 전혜연
출판 : 산지니
출간 : 2019.06.04
macrobiotic. 스펠링만 읽으면 매크로바이오틱이 되겠지만, 저자의 용어인 '마크로비오틱'을 그대로 따라 표기한다.
식재료의 전체를 활용하며 그 성질을 깊이 이해하고 가장 적절한 때에, 적절한 방식으로 내 몸에 맞추어 조리해 먹는 식습관을 말한다고 한다. 하지만 본문 내에서 저자도 표현하듯이, 딱 잘라 이것은 되고 저것은 안된다는 지침이 아닌 '조화와 균형'을 회복하는 하나의 가이드이자 '삶의 방식'에 관한 가치관이기도 하다.
조금 더 '자연스럽게'라는 말은 조금 덜 '인공적이게'이기도 하며, 그에는 가공물과 부산물, 합성재나 포장재를 배제하는 것에 가치를 두고 그로 인한 가벼운 불편을 감수하겠다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사실 음식을 음과 양의 성질로 바라보는 것은 조금 낯설기도 했는데, 한여름의 제철 작물들은 뜨거움을 식히기 위한 음의 성질을 띤다는 저자의 말이 한편으론 일리가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개인적으로는 사상체질이 떠올라 조금 당황했었는데, 식자재뿐 아니라 조리법과 손질법에도 음양이 있으며 최대한 조화로운 균형과 리듬을 찾는 것이 '마크로비오틱'이라는 설명에 관심이 간다. 어쩌면 이 시기쯤 크게 관심을 끌었던 미니멀리즘, 슬로우푸드, 내 몸 챙기기, 집밥, 채식, 일회용품 줄이기 등등의 다양한 키워드들이 하나의 가치관으로 집약된 것이 '마크로비오틱'이 아닌가 싶다. 조금 거창하게 말하자면, '나만의 리듬'으로 살아가는 방식이라고도 생각할 수 있겠다.
지금 내 몸이 무엇을 원하는지를 관심을 가지고 살피고, 지금 시기에 가장 좋은 선택지를 선택해 정성을 다해 스스로를 대접하는 삶. 손이 많이 가고 알아주는 사람이 없어도, 가장 행복한 시간들을 보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아직 삶의 양식을 급변시켜야 할 정도의 질환이나 이유는 없지만, 조금씩 내가 더 편안해하는 방식으로 살아가는 법을 터득해가는 건 좋은 일이라 생각한다. 그럼에도 여러 이유와 상황들로 리듬이 흔들리는 날들이 생기겠지만, 그럴 때는 그런 것도 즐기는 기분으로 지나갈 수 있었으면 좋겠다.
부담 없이, 하나씩 시도해보는 것도 좋지 않을까.
당장 나만해도 바로 채식의 비중을 늘린다거나 자투리 없이 식재료의 전체를 모두 먹겠다는 각오를 다지고 있는 건 아니니까. 가능하면 조금씩 내가 선택하고 관여하는 영역을 늘려나가고, 그 과정에서 내 몸과 마음의 반응을 살피고, 지금 제철을 맞은 가장 맛있는 식재료는 무엇인지와 그 맛과 성질이 어떤지 살펴 좋아하는 요리를 만들어나가는 과정. 그게 삶이 되었으면 좋겠다. 예전에 이상으로 생각하며 몇 번이고 돌려봤던 '모리 준이치' 감독의 <리틀 포레스트> 영화들처럼.
사족. 현재 팝업 식당이었던 "오늘"은 운영을 하지 않는 것 같지만, 저자분의 쿠킹 클래스는 진행 중인 듯하다.
책날개의 저자 소개에 인스타 계정을 추가했으니 관심이 있는 분들은 클래스를 신청하시는 것도 좋을 것 같다.
- 전혜연 (인스타 @hy_green)
일본 교토에서 공부하고 도쿄에서 회사를 다녔다. 워커홀릭으로 살다가 건강을 잃고 휴직을 하면서 마크로비오틱을 만났고 채식주의자가 되었다. 그러나 타고난 모범생 기질은 바꾸질 못하여 일본의 마크로비오틱 쿠킹 스쿨 리마에서 최상위 코스인 사범 과정을 마쳤다. 지금은 마크로비오틱의 대중화를 위해 메뉴와 커리큘럼을 개발하면서, 팝업 식당 '오늘'과 마크로비오틱 쿠킹 클래스를 운영하고 있다. 언젠가 차근차근 쌓은 경험을 나누고 함께 즐길 수 있는 공간인 마크로비오틱 쿠킹 스튜디오를 열 꿈을 꾸고 있다.
- 그들 모두 몸과 마음이 편안한 상태일까? 아마도 아닐 것이다. 닭가슴살에 풀과 슈퍼푸드를 잔뜩 올린 밥상을 떠올리며 '건강을 위한 식생활'로 마크로비오틱에 접근한다면 기대를 충족할 수 없을 것이다. 몇 주 만에 건강에 대한 고민을 해결하는 것이 목적이라면 더더욱 그 기대에 맞지 않다. 조급하게 그 몹쓸 '건강미'를 원하는 분이 있다면 자신의 몸과 마음이 편안한 때와 상태를 먼저 생각해보기를 권하고 싶다.
- "다들 지금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네요. 식생활에 굉장히 예민해지기도 하고요. 하지만 음식으로 자신을 괴롭히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무작정 안 된다고 생각하고 음식 앞에서 죄책감을 느끼는 건 마크로비오틱 답지 않아요." 그러고 나서 선생님은 가족 이야기를 들려주셨다.
- 많은 이들이 '건강한 음식'에 관심을 갖지만 자신을 괴롭히면서 '건강한 생활'을 추구하려는 경우가 있다. 어젯밤 치킨을 먹은 것을 후회하기도 하고, 케이크를 먹고 나서 죄책감을 느끼기도 한다. 길트 프리 (guilt free) 혹은 길티 플레저 (guilty pleasure)라는 단어도 자주 듣게 되었다. 기무라 선생님은 몸의 건강을 넘어 마음의 건강과 마크로비오틱을 즐기는 자세를 강조하셨다. 마크로비오틱한 라이프 스타일은 몸의 건강을 위해 먹어서는 안 될 것을 정하고 참는 것이 아니다.
- 거짓말로 자기 자신을 속이거나 겉만 꾸미지 않고, 바른 판단력으로 자기 다운 삶을 살아갈 때, 비로소 건강한 몸과 마음으로 자유롭고 조화롭게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이 마크로비오틱이 생각하는 '건강한 삶'이다. 마크로비오틱은 겉보기엔 '요리' 공부인 듯했지만, 판단력을 익히며 자기 삶을 만들어가는 '인생' 공부에 가까운 것이었다. 퇴사 후 일본으로 돌아가 마크로비오틱을 익히며 내가 얻은 소중한 가르침은, 현미밥 짓기나 체질에 맞춘 식단 구성이 아니라, 바로 '나다운 삶'이었다. '누군가의 기대에 부응'하며 이른바 '있어 보이는 삶'을 살고 있던 나는 마크로비오틱을 만나며 조금 더 스스로 주도하는 삶을 살게 되었다.
- 내 나이는 앞으로도 위로 위로 올라가겠지만 할 줄 아는 것이 많아지고 동경하던 것을 이루어내며 나이 들고 싶다.
- 손님들이 자리를 비운 브레이크 타임. 뒤늦은 점심 식사를 하고 상수동의 오후 햇살을 즐겼다. 서쪽으로 창이 나 있어 늦은 오후면 사람을 졸리게 하는 햇살이 비치는 '프로젝트 하다'의 공간. 12월과 1월에는 세 시쯤 햇살이 가장 좋았다. 이 햇살이 2월이 되니 네 시쯤 들어오는 듯하다. 이 짧은 세 달 동안에도 햇살을 받는 시간이 바뀌고 있다. 내가 이곳에 돌아올 때에는 더 늦은 시간에 이 햇살을 쬐겠거니, 하는 생각을 하며 잠시 나른해졌다.
- 선풍기 앞에 앉아 시원한 보리차와 함께 먹는 찐 감자는 소금만 찍어도 맛있었다. 엄마가 집에 돌아오면 낮에 먹은 감자 자랑을 했는데, 그럴 때면 엄마는 어릴 적 얘기를 해주셨다. 할머니는 가장 맛있는 감자 칩을 만들기 위해, 한 장 한 장 얇게 저며 끓는 물에 데친 감자를 햇살에 보송보송하게 말린 뒤에 튀겼다. 오랫동안 할머니와 감자는 우리 집 여름철 간식을 책임져왔다.
- 20년 남짓한 시간이 지나 적지 않은 충격을 안겨준 동화 속 그 음식을 이제는 입맛에 맞춰 만들어내는 어른이 되었다. 미국 엄마들만이 만들 수 있는 음식을 만드는 어른이 될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는데 말이다. 심지어 책과 영화에서나 보던 채식주의자가 되어 파이를 버터와 달걀 없이 만들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지금까지 먹어온 미국식 체리파이보다 훨씬 덜 달고 가벼운 파이를 만들기 때문에, 미국 어린이가 먹으면 어릴 적 내가 느꼈던 충격을 반대로 받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미국에서 먹었던 체리파이는 내가 상상으로 그려온 동화 속 그 맛이 아니었다. 누구에게나 그런 기억은 있지 않을까? 상상 속 음식의 맛이 상상과 너무 달랐던 기억. 처음 마셔본 '와인'의 맛이 상상하던 '포도주' 맛이 아니었던 것처럼. 동화 속 음식의 현실 속 맛은 동심을 파괴하기도 하지만, 그러면서 우리는 어른이 되어간다.
- 마크로비오틱은 탄수화물은 절대 먹어서는 안 된다거나, 치아시드는 영양소가 풍부하니 꼭 챙겨 먹어야 한다는 획일적인 건강법이 아니다. 스스로 체질과 컨디션에 맞는 것을 취하도록 권한다. 먹어도 되는 것과 먹어서는 안 되는 것이 정해진 지침서가 없으니 더 어려울 수 있다. 이점이 마크로비오틱과 비건의 차이점 중 하나다. 비건은 육류는 물론 유제품과 난류를 포함한 동물성 식품을 철저하게 섭취하지 않는다. 마크로비오틱은 원칙상으로는 '곡물 채식'을 권장하지만, 자신의 체질과 컨디션에 맞게 필요한 것을 취하고 불필요한 것은 취하지 않도록 가르친다. 마크로비오틱은 조금은 까다로울 수 있는 개개인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다. 이제 막 마크로비오틱의 문을 두드린 사람에게 요구하는 것은 자신의 몸에 충분히 집중하고, 스스로를 소중히 여기는 마음가짐이다.
- 하지만 대화를 통해 자신의 철학을 나누지 않는 이상, 그 첫 발걸음조차 내딛을 수 없다. 함께 식탁을 나누는 사이인 만큼 나로 인해 식탁의 구성이 달라지는 점에 대해 상대방에게 충분히 설명하지 않는 것은 무조건 나를 이해하라는 무언의 강요와도 같다. 반대로 내 식생활을 숨기고 다른 사람들을 위한 식탁에 억지로 동참하는 것은 내 스스로를 억압하는 일이어서 지속될 수 없다. 억압과 강요는 마크로비오틱과는 거리가 멀다. 마크로비오틱에는 '절대' 먹어서는 안 될 것 도 없고, '꼭' 먹어야 할 슈퍼 푸드 같은 것도 없다. (치료를 목적으로 식이 조절을 하는 경우에는 다르다.) 그래서 동물성 식품을 사용한 메뉴를 가르치는 마크로비오틱 요리 교실도 있다. 나 또한 주변의 소중한 사람들과의 즐거운 식사도 중요하기에, 주변 사람들에게 내가 채식을 하고 있다는 점을 알리고, 함께 외식을 할 때에는 육류를 제외한 동물성 식품을 먹기도 한다. 나로 인해 그들에게 불편한 기억을 남기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주변 사람들, 환경과의 조화로운 삶을 위한 선택은 오롯이 자신에게 달렸다. 식생활에서는 내 몸에 필요한 것을 스스로 판단해서 선택하면 된다. 마크로비오틱은 무슨 주의와 같은 절대적인 이념이나 신념이 아니다. 자신의 삶을 만들어나가는 데 지침이 되는, 응용 가능한 하나의 기준이다.
- 생각대로 완성된 모습을 볼 때 더 큰 기쁨을 느낄 수 있는 베이킹의 세계. 머핀을 식히는 동안 온 집안에 상큼한 레몬향이 퍼진다.
- 나는 제철 채소를 어떻게 해서든 밥반찬으로 올리려고 한다. 우리 집 입맛에는 생소하더라도 토마토를 제철 부추와 간장, 참기름에 버무려 밥반찬으로 내었다. 언니는 진한 입맛의 소유자여서 미소 소스에 버무린 마늘종을 가장 좋아했다. 챙겨줄까 하여 밀폐 용기에 담다가 더운 날씨에 상할 것 같아 조용히 냉장고에 넣었다.
- 채소 요리는 같은 재료를 쓰더라도 조리 방법에 따라 전혀 다른 느낌의 결과물로 완성된다. 쉽게는 채소를 어떻게 썰어야 맛이 어울리고, 먹기 편할지를 생각하는 것부터 시작한다. 그리고 채소의 조리는 수분 조절을 어떻게 할 것인가에서 정점을 찍는다. 최대한 수분을 제거해야 할지, 소금 혹은 식초에 절여 요리 전체에 적당히 수분을 남기면서도 채소의 식감은 아삭하게 살릴지, 수분감의 정도에 따라 드레싱을 버무려 낼지 아니면 드레싱과 샐러드를 따로 낼지 등, 샐러드는 맛과 함께 식감을 즐기는 요리이기 때문에 채소의 수분을 어떻게 다뤄 식감을 살릴 것인지가 상당히 중요하다. 최고의 식감을 내기 위해 시간과 싸워야 할 때도 많다. 이 점이 다른 요리와 가장 큰 차이점이기도 하고, 개인적으로 샐러드가 어려운 요리라고 생각하는 이유다.
- 마트에 가면 사시사철 원하는 채소가 있는데, 왜 굳이 지금이 아니면 안 되는지 그때는 몰랐다. 하지만 요즘은 나에게서 그 시절 할머니의 모습이 보인다. 맛있는 오이소박이, 오이지를 만들려면 장마가 오기 전, 씨앗이 무르기 전에 싱싱한 오이를 손에 넣어야만 한다. 계절만 따지는 것이 아니라 직접 눈으로 보고 상인들과 대화하며 '전혜연 주최 경동시장 배 소박이용 오이 대회'에서 1등을 할 오이를 엄선해 온다. 집으로 돌아오면 곧바로 오이를 갈라 내 마음에 쏙 드는 오이를 골랐는지 확인한다. 내가 원하는 적당한 수분감과 씨를 가진 오이임을 확인했을 때는 이번 소박이는 대성공이라는 확신에 차서 마음이 들먹들먹 들뜨는 것이다. 황금 레시피, 비법 소스는 필요 없다. 계절에 맞게 잘 장만한 재료가 김치 성공률 80퍼센트를 보장한다는 것이 나의 지론이다. 그러니 나도 할머니처럼 바쁘게 살 수밖에 없다. 이 계절이 지나면 못 먹는 것들이 반드시 있기에. 호박, 깻순, 오이... 다들 잠시 지나가는 시기에 가장 맛있는 아이들이다.
- 마크로비오틱은 자기 몸의 소리에 귀 기울이며, 몸 상태와 그 순간 필요한 것을 파악하는 판단력의 공부이기도 하다. 좀처럼 쉽지 않다. 지금까지 먹어온 음식에 입맛이 길들여져 있기에, 내 몸에 귀 기울이려 해도 불쑥불쑥 판단력을 흐리게 하는 극음성 또는 극양성의 음식이 떠오르곤 한다. 하지만 음성 또는 양성 어느 쪽으로도 치우치지 않은 순수한 입맛을 가졌다면, 머리로 애써 생각하며 판단할 필요가 없다. 그때 먹고 싶은 음식이 곧 그때 내 몸에 필요한 음식이기 때문이다. 눈앞에 고로케를 두고도 단호박 팥 조림만 먹고, 어른들이 과자를 줘도 호기심에 한두 개만을 집어 먹는 조카를 보며, 길들여지지 않은 순수한 입맛이 내리는 바른 판단력에 내심 감탄을 금치 못했다.
- 11월의 마지막 주는 팝업 식당 준비로 꽉 채워 보냈다. 바쁘게 지내면 식생활이 엉망이 되기가 쉽다. 직장 생활을 하던 시절에는 프로젝트 진행으로 바빠서 끼니를 챙길 시간조차 없었고, 식사할 짬이 나도 편의점 도시락으로 대충 때웠다.
- 팝업 식당을 준비하며 고민이 많았다. 마크로비오틱 자체가 일반 대중에게는 아직 낯설기도 하며, 그동안 마크로비오틱으로 외식업은 성립할 수 없다는 것이 나의 지론이기도 했다. 그 음식을 먹는 사람의 체질과 컨디션에 맞춰 메뉴를 구성하고, 조리법을 바꾸는 것이 마크로비오틱다운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맞는 이야기일 수도 있지만, 고지식한 철학 때문에 마크로비오틱의 문을 여는 것조차 망설이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라는 우려를 했다.
- 겨울에 우리는 따뜻한 계절에 재배한 채소를 말려두었다가 나물로 먹는다. 이러한 말리는 조리 역시 양의 조리의 한 가지다. 음의 성질이 강한 겨울철에 먹는 말린 나물은 몸속 음양의 밸런스를 잡기에 딱이다. 이런 말린 나물들은 맛있게 먹으려면 꽤나 신경을 써야 한다. 물에 불리는 시간과 삶는 시간 등 집집마다 그 방법은 다르지만, 하나같이 다들 시간이 걸리고, 그다음 조리 과정으로 넘어가는 타이밍 또한 다르다. 시간을 들여 손질했다고 해서 다 맛있는 것도 아니다. 자칫 잘못 삶으면 무르고 향이 없으며, 반대로 손질이 부족하면 질기다. 이 때문에도 마른 나물을 맛있게 하는 밥집을 발견했을 때에는 명인의 집으로 인정하곤 한다.
- 마크로비오틱의 기본이 가득한 한상이다. 마크로비오틱 채수, 된장, 마늘, 알배추만으로 끓여낸 된장국은 마크로비오틱의 기본 중의 기본이자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음식 중 하나다. 요즘 알배추는 어찌 그리 보드랍고 달콤한지 입에서 살살 녹았다. 이틀 연달아 만들며 틈틈이 먹어 질릴 법도 한데 질리지가 않는다.
(리뷰자 주 : 앗. 이건 내가 몸이 아플 때 먹는 메뉴인데.... 채수조차 생략하고 미소된장만 풀어서 알마늘과 알배추, 가끔 팽이버섯 추가.)
- 나이가 들면 카페나 식당을 열어 자신이 좋아하는 것들로 공간을 채우고, 같은 취향을 가진 손님들과 매일 이야기를 나누며 즐겁게 살아가는 삶을 꿈꾸는 사람들을 보아왔다. 나는 그들을 보면서 '정작 그런 공간을 갖게 되면 즐겁게 요리하고 손님들과 대화하기는커녕, 화장실 청소와 진상 손님들 대응으로 곤혹스러운 시간을 견뎌야 할 거야'라며 내심 비관적인 입장을 취했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들의 꿈을, 어쩌다 보니 담담하게 내가 이루고 있었다. 그 저녁의 파티는 내게 선물 같은 시간이었다. 사람들과 아늑한 공간에 모여 앉아 요리를 하고 수다 꽃을 피우는 추운 겨울밤은 참 낭만적이었다.
- 이틀 동안 파티를 즐기고 난 다음 날은 하루 종일 이제 슬슬 적게 먹어도 되지 않겠냐며 몸이 신호를 보내온다. 그래서 12월 25일 크리스마스를 맞이한 아침 식탁에는 달랑 현미밥과 깨소금, 무말랭이 조림만 올렸다.
- 새해가 밝았다. 2018년 마지막 날에 차린 술상은 연두부 크림과 우메보시와 말린 토마토를 얹은 브루스케타(bruschetta, 빵에 채소와 고명을 올린 이탈리아식 전채 요리) 그리고 시원한 라거 한잔. 요리를 하다가 요가를 가고, 글을 쓰다가 어둑한 방에서 책을 읽으며 맥주 한 잔을 마셨다. 2018년은 내가 좋아하는 것들로 가득 채워 보냈다. 훌륭한 한 해였다.
- 마감을 넘긴 시간에 손님이 뒤늦게 가게를 찾아왔다. 숨 가쁘게 들어와서 챙겨 온 밀폐 용기들을 꺼내 놓는다. '내일이 생일이라 맛있는 음식이 먹고 싶었거든요'라는 말과 함께. 생일날 먹고 싶은 음식으로 나의 음식을 선택했다니, 요리를 하는 사람에게는 최고의 평가가 아닐까. 그제야 여러 번 가게를 들렀던 그 손님과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러면서 이곳을 떠나 어딘가로 향할 음식들을 포장했다. 부디 즐겁고 따뜻한 생일상이 되기를 간절히 바라며.
- 매일 집에서 먹는 음식이 아닌 다른 음식을 먹어보고 싶은 욕구를 이해 못 하는 건 아니다. 하지만 집 밖에서는 근사한 브런치를 사 먹지만, 집에서는 냉장고 속 락앤락에 들어 있는 반찬을 꺼내 그대로 내거나, 전자레인지에 급히 데운 음식을 먹는 사람들이 많지 않을까. 직접 만든 음식이라면 그나마 낫지만, 재료의 출처나 조리 과정을 알기 어려운 음식들이 식탁에 올라오는 경우가 많을 것이다. 우리의 전형적인 집밥과는 조금 다른 밥상이지만, 내가 공부하고 연구하며 개발한 밥상에 자부심을 느낀다. 식탁에 올릴 음식에 스스로 자부심을 갖지 못한다면 주방에서 멀어지기 마련이고, 어디에서 오고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알 수 없는 먹을거리에 삶은 압도될 것이다. 집밥 한 끼 차리는데 뭘 그리 대단하게 생각하느냐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집에서 먹는 밥인 만큼 조금 더 가치 있는 한 끼를 만드는 데 자부심을 갖는 개인이 늘어나기를 기대해본다.
- 채소로 밥상을 차려 낸다는 것은 드라마나 공연을 올리는 것에 비유할 수 있다. 전달하고 싶은 메시지를 표현하기 위해 각본을 쓰고 배역을 정하고 그 배역에 맞는 배우를 정하고 이들이 최상의 컨디션에서 연기를 할 조건을 갖추어주는 것처럼, 밥상을 차리는 것도 마찬가지다. 식사를 하는 사람의 컨디션을 생각해 식단을 구성하고 그 식단에 맞는 조리법과 재료를 고른다. 그리고 채소가 최고의 맛과 영양을 담아낼 수 있도록 계절과 재료의 상태에 맞춰 밑 작업을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요리사가 무엇을 하고 싶은지도 중요하지만, 먼저는 공연을 할 배우인 재료의 성질을 이해해야 한다. 이 재료가 열을 만나면 어떻게 되는지, 기름을 만나면 어떻게 되는지, 어떻게 손질되기를 원하는지 등 재료의 목소리를 들으면서 요리를 시작한다. 요리는 재료와의 커뮤니케이션이다.
- 그리고 추운 날씨에 밭으로 나가 냉이를 캐어준 누군가를 생각한다. 음과 양의 조화, 신토불이 같은 마크로비오틱의 원칙 중 가장 중요한 것은 '고마운 마음'을 갖는 것이다. 하지만 매일 너무나 당연하게 돌아오는 식사 시간을 보내다 보면 이 마음에 소홀해진다. 2월의 냉이는 내가 잠시 잊고 지낸, 소중한 생명력을 고맙게 여기는 마음을 되새겨준 재료다.
- 현대미술 작품을 관람할 때에는 우선 내 나름대로 작품을 느끼고, 작가가 전달하고 싶었던 것을 추측해본다. 그러고 나서 리플릿이나 안내문을 읽으며 이해하는 시간을 가진다. 작가가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 그것을 표현하기 위해 선택한 참신한 수단에 흥미로움을 느끼면서 다른 한편으로 그들의 고집에 혀를 내두르기도 한다. 실내 전시장에 작은 호수를 만들고, 호수에 그릇들을 띄운 뒤 그릇들이 서로 부딪혀 소리를 낼 수 있게끔 호수 안에 모터 장치를 설치한 작가, 오키나와 해변에서 수년간 모은 쓰레기로 작품을 만드는 작가 등 그들이 선택한 수단과 표현 방법은 일반적이고 평범한 관점을 깨뜨렸다. 나는 누군가가 전달하고 싶은 이야기와 그의 고집을 말이 아닌 다른 수단으로 경험하는 것을 좋아했고, 이런 취향은 요리에도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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