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저자 : 한동원
출판 : 웅진지식하우스
출간 : 2014.04.21
오후 작가의 <믿습니까? 믿습니다> 이전에는 똥꼬 발랄한 <나의 점집 문화 답사기>가 있었다. 제목과 기획부터 어딘가 묘하게 딴지의 냄새가 난다 싶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그 계보의 한동원 저자였다.
밀란 쿤데라 이야기가 나와서 말인데, 그의 <농담>을 읽고 한동안 절망의 폭풍 속을 헤매었던 한 마리 슬픈 양으로써 고백하건대 나는 내게 부족한 이런 적당한 B급 감성의 발랄한 개그를 좋아한다. 지금의 나는 여전히 가볍게 웃어넘길 수 있는 여유와 해학이 한참 부족했던, 매사가 무겁고 진지했던 그때로부터 겨우 한 두 발짝 정도 떨어진 지점에 있다. 간단히 말해 그다지 재미가 없고 따분한, 농을 즐기지 못하는 사람이다 이 말이다.
그나마 다행인 건 글로 읽는 건 싫어하지 않는다는 것. 해서 풍자와 디스의 경계를 아슬아슬하게 누비는 이 책을 나름대로 즐겁게 읽었다.
(왜 저자의 사계절이 거꾸로 흘렀는지에 대해 말해주고 싶어 들썩거리면서. 그건 당신이 남성 음일간이라 대운의 방향이 거꾸로 흘렀기 때문입니다. 그것을 다시 조후로 접근하면...)
신점, 사주, 성명학, 관상, 손금, 타로의 다양한 장르를 모두 답사하느라 진이 빠졌을 저자에게 심심한 위로의 박수를 보내며.
연말연시에는 어쩐지 토정비결, 신년운세 같은 단어들이 눈에 더 띄는 것 같은 느낌적 느낌(이 아니라 사실이겠지만)이 드신다면.가볍게 기분전환을 하는 것도 좋지만 무엇보다 현재의 나를 정확하게 보는 것부터가 시작이라는 것도 기억하시면 좋겠다. '어떻게 될까'보다는 '어떻게 해야 할까'의 자세로 방향성을 찾아나갈 수 있었으면 하고 감히 끄적여본다. (그렇다. 이미 눈치채셨겠지만 사실 스스로에게 하는 말이다.)
- 특히 참신하게도 관련자들의 금전운 상승이나 해외진출운을 토대로 축구 경기 결과를 예상했다는 대목이 가장 결정적이라 생각된다. 왜냐하면 사주의 기본 매뉴얼인 주역이 오천 년 이상 묵은 고문서인 관계로 점괘 그 자체보다는 그것을 현재에 맞춰 해석하는 과정이 훨씬 중요하며, 이에 따라 점의 완성도 자체가 확연히 달라지고, 따라서 점술자의 해석 능력과 사회 전반에 대한 지식이 중요하다는 마니아들의 일관된 주장 때문이다.
- 그렇다면 결국 우리 삶은 성명-생년월일시로 만들어진 운명의 거푸집에 부어진 쇳물에 불과하단 말인가?
- "재능 있는 연금술사가 19세기로 이주해오면 무엇을 할까? 수백의 운송업자들이 해상 운송을 주무르는 오늘날이라면 크리스토퍼 콜럼버스는 무엇이 되었을까? 연극이 아직 존재하지 않거나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시대라면 셰익스피어는 무엇을 쓸까?" - 밀란 쿤데라 소설 중
- "누구라도 만일 내가 다른 곳, 다른 나라에서 다른 때에 태어났다면 내 삶은 어떻게 되었을까라는 질문을 던지는 법이다. (중략) 자신의 다른 삶, 여남은 개 되는 가능한 다른 삶을 상상하는 것은 얼마나 아름다운 일인가! 그러나 몽상은 그만! 우리 모두는 출생의 날짜와 장소에 절망적으로 못 박혀 있다. 우리의 '자아'는 우리 삶의 구체적이고 유일한 상황을 벗어나서 생각할 수 없으며, 이러한 상황에서'만' 그리고 그를 통해서'만' 이해될 수 있다. (강조는 필자)" - 밀란 쿤데라 소설 중
- "제가 좋아하는 주역의 글귀 중에 낙천지명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자신의 명을 알고 나면 그걸 즐긴다는 거죠. 그런데 이건 굉장히 무서운 얘기도 될 수 있어요. 그 명이 나에게 좋지 않더라도 그걸 즐길 수 있어야 된다는 거거든요. 내 목에 칼이 들어오게 되더라도 웃으면서 그 칼을 받는 거예요. 그게 군자의 도리인 거죠."
- 기왕이면 전자보다는 후자 쪽이 낫겠지만, 아니라면 또 어쩔 것인가. 결국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어쨌든 살아가는 것이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들을 우리가 할 수 있는 만큼 해내면서.
- 그렇다. <서칭 포 슈가맨>에서 가장 멋지고 아름다운 대목은 세상이 '성공'이라고 부르는 것을 로드리게즈가 손에 넣은 순간이 아니다. 그가 손안에 날아든 그 '성공'을 몇 차례 만져보고 음미한 다음, 그것을 다시 놓아주며 손을 비우는 순간이다.
- 나를 가장 잘 아는 것은 나 자신이다. 적어도 생판 모르는 남인 점술가가 무작위로 뒤집힌 카드를 보면서 가닿을 수 있는 깊이라면, 나 자신의 시선은 가닿고도 남는다. 사실 우리가 가지지 못한 것은 천체 운행의 기운과 조화를 머금은 신통력이 아니다. 우리가 가지지 못한 것은 시력이다. 나 자신을 향한. 외부 또는 타인의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데 익숙해져 버린 우리에게 내적 시신경의 퇴화는 필연적인지 모른다.
- 그들 중 이 소설의 작가인 팀 오브라이언이 포함되어 있었던 것은 물론이다. 그는 이 상황을 다음과 같은 문장 하나로 정리한다.
"사실을 의심할 수는 없잖은가 You don't dispute facts."
점집에 대한 나의 태도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세상의 모든 팬티스타킹이 방탄 부적으로서의 기능성이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좀 더 정확히 말해, 원칙적으로 세상에 그런 팬티스타킹은 없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눈앞에서 그러한 팬티스타킹을 목격했다면 얘기가 달라진다. 그것을 직접 목격했음에도 설명할 '합리적' 이론이 없다고 해서 그 존재를 애써 부정하는 것 또한 비합리적이다. '몇천억 분의 일 확률의 우연'이라든가 하는 각종 논리와 이론으로 실재하는 것을 어떻게든 부정하려고만 드는 '과학적' 태도야말로 오히려 미신의 또 다른 모습에 다름 아니다. 믿는 것이 팬티스타킹이든 점집이든 과학이든 신이든, 맹신은 필연적으로 미신으로 귀결된다. 그리고 미신이 존재하는 것을 없애지는 못한다. 그 반대 또한 마찬가지이고.
- ㄱ보살 코멘트의 구체적 내용을 적는 대신 그 적중 여부를 집중적으로 파고들기로 한다. 뭐, 사실 궁금하신 건 그거잖아. 단, 이를 위해 ㄱ보살 멘트들 중 조금이라도 그럴싸하다 싶은 것들을 모두 추린 다음, 이를 다음과 같은 기준으로 한 번 더 걸러내는 필터링을 시행한다.
우선 점집 고객이라면 보통 품고 있을 법한 갈등이나 고민에 대한 멘트, 예컨대 "지금 아주 갈피를 못 잡고 있어. 머릿속에 오만 잡것들이다 들어와서 시끄럽게 떠드네. 잘 왔어. 지금 타이밍 딱 맞춰 온 거야."라든가 "지금 답답하지? 큰 문제는 없는데, 뭔가 밑도 끝도 없이 허전하고, 갑자기 왠지 모르게 울컥해. 근데 그거 알아주는 사람 하나 없고." 등등의 멘트는 모두 적중에서 제외시킨다.
- 두 번째, 누구에게나 있거나 누구나 겪을 법한 일, 예컨대 "친척, 친지 중에 젊어 돌아가신 분이 계시네? 안 계셔? 아냐. 분명히 있어. 집에 돌아가면 어머니나 고모 이모께 꼭 여쭤봐."라든가 누구나 자신은 그렇다고 생각하게 할 법한 멘트, "지금까지 맘고생이 심했네. 근데 걱정 마. 이제 점점 나아지고 있어."라든가 "인생을 순전히 자기 힘으로만 살아왔네. 외로웠지? 그런데 기특하다, 기특해. 지금까지 불평 한번 제대로 안 했네" 등등의 어루만져 주기성 멘트도 제외다.
- 세 번째, 대충 그 연령대의 남녀가 일반적으로 할 법한 고민에 대한 멘트도 탈락이다.
- 이것이 과연 그리 쉬운 일일 것인가. 더구나 '이 횟수'는 이미 말했듯이 각종 찍어 맞히기나 미루어 짐작하기의 가능성이 있는 멘트들은 모두 제외한 횟수다. 더구나 하루 평균 여섯 명의 손님을 받고, 손님 1인당 평균 일곱 회 정도 '찍기'를 한다고 해보자. 그럼 하루에 약 마흔 건 정도의 찍기를 해야 하는데, 전국 규모의 심령 에너지 활용 능력 검증의 장이기도 한 수능시험에서의 평균적 찍기 성공률로 미루어볼 때, 그 보살의 멘트가 오로지 찍기에만 의존했다면 그녀의 점술자로서의 평판은 한 달도 채 못가 완전히 궤멸되었을 것이다. 게다가 점 보기라는 분야는 시험과는 또 달라 '전부 아니면 전무'인 분야다. 아홉 번 정답에 한 번 오답이면 90점을 얻는 게 아니라 결정적 삑사리 한 번에 모든 밑천을 날려먹는 분야인 것이다. 따라서 난생처음 보는 사람을 일대일로 마주 보고 앉아서 2, 30분가량 고독하게 뭔가를 떠들어야 하는 점술자는 거의 월드컵에서 개최국 대표팀과의 일전에 나서는 원톱 스트라이커에 필적하는 부담과 리스크를 안을 것임은 자명하다.
(리뷰자 주 : 적당히 방심하고 있다가 빵 터져 두세 번 더 훑게 되는 이런 개그.)
- 이윽고 마우스에서 손을 떼며 고개를 든 ㄴ소장. 그는 날씨 얘기라도 하듯 아무렇지도 않은 말투로 필자의 기질, 성격, 과거 이력, 그리고 인생의 큰 흐름에 대한 이야기를 풀기 시작한다. 일단 확실히 해두자. 나는 이러한 사안을 논할 때 합리와 논리를 앞세워 회의론자스러운 태도를 취하는 편이 최소한 본전은 건지는 안전한 길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그리고 뭔가 난처한 사안에 대해서는 이도 저도 아닌 애매모호한 표현으로 은근슬쩍 넘어가거나 대략 뭉개는 테크닉 또한 얼마든지 알고 있다. 하지만 서두에서도 밝혔듯이 사실만을 적겠다.
- "그래서 한동원 님의 사주 구조를 알려드리면, 상당히 일반적이지 않다, 그러니까, 평균적인 구조에서 훨씬 열외 되어 있어요. 이걸로 통 우리는 '편인격' 이라고 합니다. '편인' 이라고 하는 것은 논리성보다는 창의성이 더 강한 사주입니다. 그래서 '편인격'은 문화적인 일, 남들이 하지 않는 일, 이런 것들을 통해 커리어를 발전시켜야 하는 거죠. 같은 일이라도 남들과는 다른 각도로 어프로치 하는 창의적인 밸류로 승부를 거는...(중략). 그래서 모든 일에서 누군가에 의해 주어진 방법이 아니라 본인만의 각도로 어프로치 하게 되고, 따라서 글을 쓴다거나, 미디어와 관련된 일을 한다거나, 문화 콘텐츠 쪽 일을 하고 있거나... (후략)."
이 대목에서 당신 너무하는 거 아냐, 대체 ㄴ소장이라는 사람한테 얼마나 금품 및 향응을 수수했길래 이런 말도 안 되는 소설을, 이라고 항의하시려는가.
- "옛날에는 이런 공부가 필수였죠. 주역, 논어, 공부 안 한 사람이 어디 있었겠어요. 다만 너무 틀에 갇혀버린 게 문제였죠. 공자의 논어가 아니라 주자의 논어를 공부하는 바람에 유학이 틀에 갇혀서 더 이상 발전하지 못했던 거지, 공자님의 잘못은 아니었던 겁니다. (중략)
그런데 공부하는 방향이 기, 그러니까 사주를 잘 풀어서 백 퍼센트 맞추려는 기술 쪽으로 자꾸 치우치게 되면 그 지점('점쟁이'를 넘어서 더 큰 시야를 가지게 되는 단계)까지 도달하지 못하는 겁니다. 하지만 이쪽 방향으로(사서오경으로 대표되는 고전에 대한 공부) 공부를 넓혀가게 되면 누구든지 이 정도의 시야는 갖추게 돼요. 한 선생님의 사주를 보고 누구나 이 정도는 읽어낼 수 있다는 거죠. 어느 정도의 원리를 알면요. 그러니까 제가 특별한 건 아니에요. 단지 세상에서 이 분야의 공부가 그만큼 낙후된 겁니다. 옛날에는 저 정도로 풀 수 있는 사람이 엄청나게 많았죠. 그런데 그 사람들이 지금은 없습니다. 현대에는 이 공부가 도태됐으니까요."
- 여기서도 관찰되듯이, 피점술자가 점술 결과를 평가할 때는 평소 자신의 바람이나 희망사항 등에 따라 주관적인 오차를 보이는 경향이 있다. 원하는 점술 결과를 내놓은 점술자에게는 호감을 품고 후하게 평가하며, 반대의 경우 혹평을 하는 경향 또한 보인다. 이것은 가방끈길이나 평균 독서량 등과는 관계없이 나타나는 경향으로, 특히나 ㄷ할머니처럼 살가운 점술자와 가성명 씨처럼 여린 감성의 피점술자가 만날 때 폭발적인 심령 화학적 결합력을 보인다. 따라서 이 오차의 수정을 위해 철저한 관찰자적 시점을 가진 냉성한 제3자의 투입이 반드시 필요해진다.
- 하지만 때는 이미 늦었다. 구수한 하우스명과 지긋하신 생년월일시로 인해 ㄷ할머니를 과소평가한 것이 가장 큰 패인이었다. 더불어 피점술자를 노련하게 매만지는 점술 운영 능력 역시 적중 능력 못지않은 역술 파워임을 미처 간파하지 못했던 짧은 식견 또한 이번 답사의 큰 패인이었다.
- 요컨대 꼭 타로점에서만 이런 함량 미달의 경험이 있었던 게 아니라, 다른 장르의 점집들에서도 얼마든지 있었다는 얘기다. 이 책에서 다룬 점집들은 그중에서 가장 적을 만한 가치가 있었거나 재미가 있었던 점집, 또는 답사해볼 만큼 높은 대중적 인지도가 있는 점집들이었다. 다만 타로점은 다른 전통 점술 장르에 비해 비교적 다채롭고도 화려한 삽질의 경험을 안겼기 때문에, 그중 몇 가지를 추려 답사기에 포함시킨 것이다. 아마도 타로 업계에 이렇게 다양한 면면의 함량 미달들이 존재하는 것은 타로점이 다른 동양계 점술들에 비해 신생 장르이고, 작금의 트렌드와 부합하는 요소가 많아 우후죽순으로 생기고 없어지며, 또한 진입 장벽도 낮은 점술 장르이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그런 만큼 라일러 씨처럼 별 뜻 없이 아마추어로 시작했다가 취미가 깊어져 주위 사람들의 칭찬 및 감탄을 자주 듣게 되어 좋아, 이참에 나도, 라는 식으로 프로로 나선 '진지한 아마추어'들 또한 많아서일 것이다. 대략 그런 점을 생각해보면, 현재 한국의 타로 업계는 신생 업계인 만큼 '프로페셔널'을 발견해 낼 확률이 매우 낮아 보인다. 특정 장소에 축적된 역사란 우리 생각보다 훨씬 강한 영향력을 그 특정 장소에서 행사하는 것이다. 그것이 비록 점술판이라 할지라도. 만에 하나 '프로페셔널'이라고 부를 수 있는 점술자가 있다손 치더라도, 나는 기본적으로 '프로페셔널'의 개입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물론 타로점에서는 카드 뒤집기보다 뒤집힌 카드에 대한 해석이 더 중요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그 해석은 '프로페셔널' 점술자가 아닌 본인이 직접 하는 편이 옳아 보인다.
- 사실 합리의 세계에서 미신과 무지와 비합리로 규정하는 것, 즉 '어둠'은 빛만큼이나 우리에게 필요하고 유용하다. 예전의 우리가 알지 못했던 것들, 그리하여 경외와 경계 어린 상상력으로 채워 넣었던 그 어둠이 우리에게 얼마나 유용한 것들이었는지는, 모든 것이 과학과 합리의 이름으로 낱낱이 비춰지고 측량되고 파헤쳐지고 아스팔트 포장되어 '개발' 되어버린 지금, 더할 나위 없이 명확해 보인다. 과도한 멸균과 위생이 아이들을 원인 불명의 질병으로 몰아넣듯이 합리주의의 폭주는, 오로지 '더 밝게', '더 강하게'만을 추구하는 빛은 우리의 시력을 점점 퇴화시켜 간다. 그리고 그럴수록 우리의 눈은 점점 더 강한 빛을 필요로 하게 된다. <눈먼 자들의 도시 Ensaio sobre acegueira>의 장님들이 보았던 환한 빛만 가득한 세계처럼 모든 곳이 하얀 어둠으로 가득 차 버릴 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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