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자가 흐르는 이야기/Book1

[댄 히스] 업스트림 - 반복되는 문제의 핵심을 꿰뚫는 힘

일루젼 2021. 11. 24. 1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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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댄 히스 /박선령
출판 : 웅진지식하우스 
출간 : 2021.06.25 


눈에 띄는 신간이라 호기심으로 읽어보았는데 아주 마음에 들었다.

 

유사한 문제가 반복되고 있다면, 문제가 발생하는 사적 지점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본문에서는 대응과 대처라는 단어를 유사한 의미로 사용하고 있지만, 개인적으로는 이를 "대응만 하지 말고 대처하라"라고 표현하고 싶다.

 

저자는 왜 조금 더 큰 시야에서 살펴보는 것이 중요한지, 보다 근본적인 해결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이점은 무엇인지를 예시를 들어가며 알기 쉽게 설명해준다. 당연한 소리를 듣기 좋게 되풀이하는 게 아니다. 몇몇 사례들에서는 당황스러울 정도로 실생활과 밀접한 예시들이 등장하는데, 당장 내 세금이 헛되게 쓰이는 것 같은 복지 사업이 어떻게 혜택으로 돌아올 수 있는지를 읽으면 남을 돕는 것이 나를 돕는 것이라는 말이 현실적으로 와닿는다.(그와 더불어 사실은 혜택이 없더라도 도의적으로 옳은 선택이라는 부연 설명도 덧붙이긴 하지만.) 

 

아마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런 당장 눈에 보이지 않는 연결성에 대한 투자를 꺼릴 것이다. 상관관계를 이해하기도 힘들고, 예상되는 문제점을 애초에 생기지 않도록 예방한다는 목적 상 성공했을 때 가시적인 성과물이 나타나지 않는다는 점에서도 그럴 것이다. 그렇기에 지금까지 '업스트림'적인 접근을 주장했던 사람들이 설득을 위해 '수치와 데이터'라는 무기, 그리고 '실질적인 이익'이라는 열매를 기꺼이 사용해 왔음을 부인하지 않는다. 하지만 저자는 한 발 더 나아가 그렇다 하더라도 그 이익은 부산물적인 것이며, 진정한 가치는 보다 상류를 지향하는 '업스트림' 그 자체임을 강조한다. 

 

저자가 어찌나 사람의 심리를 잘 읽고 찌르는지, (얼마나 논쟁에 단련이 되어 있는 걸까 생각했다) 본문을 읽다가 떠오르는 문제점이나 반론을 정확히 그다음 문단이나 주석으로 보강, 파훼해서 읽는 동안 움찔한 적이 여러 번이었다. 정말 흥미롭게 읽었다. 이 한 권만으로, 또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모은 자료들만을 기반으로 하나의 시각을 형성해서는 안 되겠지만- 적어도 이런 관점도 있다는 것을 기억하고 정책이나 사회 현상을 살펴본다면 지금까지와는 다른 관점을 가질 수 있게 되지 않을까 기대해 본다. 

  


 

- 자, 잠깐 자리에 그대로 멈춰 서서 인간에 대해 한번 생각해보자. 주어진 상황에 '반응'하도록 진화한 이 가련한 종에 대해서 말이다. 우리 인간은 포식자가 쫓으면 도망가고, 폭풍우가 몰아치면 대피할 곳을 찾았다. 아주 오랫동안 인류의 목표는 당장 오늘 하루를 아무 일 없이 잘 보내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제 우리는 오늘 하루가 아니라 내일의 문제에 대해 걱정해야 한다. 팬데믹, 기후변화, 테러리즘, 경제 위기 등으로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세계에서 이는 필수다. 그러나 우리는 아직도 맹수에게 뒤쫓기는 시대에 살고 있는 것처럼 행동하고는 한다. 그것이 바로 내가 이 책을 쓴 이유다. 이 책에서 우리는 문제에 반응하는 데서 벗어나 예방하고 방지하는 법에 대해 이야기할 것이다.     

 

- 이런 모습은 사회의 많은 부분에서 찾아볼 수 있다. 살다 보면 우리는 종종 대응만 반복하는 사이클에 갇히고는 한다. 불이 나면 불을 끈다. 비상사태가 발생하면 대처한다. 문제가 생기면 해결한다. 하지만 문제를 발생시킨 시스템을 고치려는 시도는 절대 하지 않는다. 

 

- 자원이 부족한 세상에서 개입할 지점을 하나만 선택해야 한다면 마음 불편한 답이 나올 수밖에 없다. 우리는 어떤 방법이 옳은지 모른다. 세상은 아직 범죄 및 모든 주요 문제의 어느 지점에서 개입해야 하는지 증거를 충분히 모으지 못했다. 어떤 면에서는 그게 이 책을 쓰게 된 주요 이유 중 하나다. 우리는 세상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광범위한 선택권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대부분 대응이라는 작은 영역 안에 자신을 가두고 있다. 그냥 반응하고 대응하는 것. 그게 다다. 허리케인과 지진 피해를 복구하는 데에는 수십억 달러를 쓰지만, 재난대비 업무 분야는 늘 지원이 부족하다. 노숙자를 돕기 위한 기관과 단체는 수백 개에 이르지만 노숙자가 되는 걸 막는 단체는 몇 개나 될까? 

 

- 다시 한번 말하자면, "모든 시스템은 특정한 결과를 얻도록 완벽하게 설계되어 있다." 

 

- 포레스트는 자기가 문제를 전적으로 통제할 수 있다는 자명한 사실을 깨닫기까지 그렇게 오랜 시간이 걸렸다는 것에 좌절했다. 그리고 의자를 옆으로 옮기는 순간에 대한 기억은 그녀에게 일종의 교훈적인 은유가 됐다. "어떤 무의미한 문제 때문에 짜증이 나기 시작하면 '이봐, 의자를 옮겨야지. 왜 그러고 있는 거야?'라고 생각한다. 이건 새로운 접근을 시도하기 위한 내면의 암호다." 

 

- 항상 존재해왔지만 묻혀 있던 인과관계의 가닥이 표면화되는 것이다. 

 

- 어린 물고기 두 마리가 헤엄을 치다가 우연히 반대 방향으로 헤엄치는 나이 든 물고기를 만났다. 나이 든 물고기는 고개를 끄덕여 인사하며 "안녕, 얘들아. 물은 괜찮니?”라고 물었다. 어린 물고기들은 잠시 더 헤엄을 쳐 갔다. 그러던 중 한 마리가 다른 친구를 쳐다보면서 물었다.

"아니, 근데 물이란 게 대체 뭐야?" 
시스템은 물이다. 

 

- 분노한 학생들은 로체티에게 이메일을 보내 왜 자신들을 그곳으로 보내 시간을 낭비하게 했느냐고 항의했다. 학생들은 그런 일을 하려고 의대에 온 게 아니었다. 그런데 이상한 얘기지만, 그들이 이메일을 보낸 그 일만 빼면 그들이 의대에 온 이유가 바로 그 때문이었다. 로체티 생각에 의사의 소명은 사람들을 건강하게 하는 것이다. 그러려면 의학의 기술적인 측면뿐 아니라 사회적인 측면도 알아야 한다. 우리 삶의 모든 복잡한 부분과 우리가 살아가는 시스템의 복잡성을 배우고 이해해야 한다. 예약한 시간에 병원에 가는 것처럼 아주 간단한 일도 수많은 요인 때문에 어긋날 수 있다는 걸 깨달아야 한다. 시내버스가 늦게 오거나, 악천후 때문에 버스정류장까지 걸어갈 수 없거나, 병원 밖에 차를 세우고 주차비를 낼 돈이 없거나, 안내문을 인터넷으로 받았는데 확인할 수 있는 컴퓨터가 없거나, 그날 아침에 너무 우울해서 번거로운 일은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거나 하는 수많은 이유로 말이다. 만약 손쉬운 흑백 판단에 빠지고 싶은 유혹이 든다면('힘들겠지만 그래도 본인 건강에 신경을 쓴다면 제시간에 병원에 왔어야지! 와서 인슐린을 맞고 처방전을 다시 받았어야 해.), 중요한 논의는 전혀 진행되지 않던 2시간짜리 학교 이사회 회의를 회상하거나 당뇨병이 있는 남자 대신 식료품을 사다 주던 이웃 사람을 떠올리면서 심호흡을 해야 한다('그래, 세상에 쉬운 일은 없지. 모든 게 다 복잡하고 그걸 해결할 즉효약 같은 건 없어. 하지만 내가 팔짱을 풀고 손을 내미는 방법을 배운다면, 세상의 고통을 무시하지 않고 덜어주는 사람이 될 수도 있을 거야.'). 

 

- 경고 신호에 유의하라는 메시지를 널리 퍼뜨리기 위해 샌디 혹 프로미스는 2016년에 <에반(Evan)>이라는 동영상을 공개했다. 

(리뷰자 주 : https://youtu.be/A8syQeFtBKc)

 

- 이런 사건이 발생한 뒤에는 관련자 대다수가 그건 '거짓 양성'이라고 강력하게 주장할 것이다. 아이는 정말 그러려던 건 아니었다고 할 것이고, 부모들은 골치 아픈 애지만 폭력적이지는 않다며 그 말에 동의할 것이다. 학교 관리자들은 언론의 포화를 피하는 쪽을 선호할 것이다. 공정하게 말하자면, 그들 모두 진실을 말하고 있는 걸지도 모른다. 이 프로그램 자체가 과잉 반응을 하거나 악의적인 장난에 이용당하기 쉽게 설계되어 있다. 진짜 위협을 피하기 위해서는 수많은 거짓 양성을 밝혀내야 한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행여 문제를 방지하는 데 성공했다 하더라도 자기가 성공했다는 사실을 알 수 없다. 이 또한 희귀한 문제를 막는 일의 저주다. 헤이즐턴의 그 아이가 학살을 저질렀을 거라고 어떻게 단정적으로 증명할 수 있겠는가? 하지만 학교 총기 사건의 경우, 학부모들은 수많은 거짓 양성 때문에 실수를 저지르는 편이 경고 신호를 놓치는 것보다 낫다는 데에 확실히 동의할 것이다. 신호를 놓쳤을 때의 대가가 너무 크기 때문이다. 

 

- '무엇을 성공으로 간주하는가?'라는 질문 때문에 수많은 업스트림 활동이 방해받는다. 다운스트림 활동의 성공은 놀라울 정도로 구체적일 수 있다. 이는 다운스트림 활동에는 복구 과정이 수반되기 때문이다. 다운스트림 활동은 이전 상태를 회복시킨다(발목이 아픈데 나을 수 있을까요? 노트북이 고장 났는데 고칠 수 있어요? 결혼 생활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데 예전으로 돌아가도록 도와주실 수 있나요?). 이런 상황에서는 무엇이 성공으로 여겨지는지 고민할 필요가 별로 없다. 노트북이 다시 작동하기 시작한다면, 그게 곧 성공이다. 그러나 업스트림 활동에서는 성공이 자명하지만은 않다. 성공을 직접적으로 느낄 수 없는 경우가 많으므로, 성공과 관련이 있을 거라고 추정되는 빠르고 간단한 측정법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우리가 성공을 측정하는 방식과 세상에서 보고자 하는 실제 결과(성공)가 분리되어 있는 것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실패를 감추고 표면만 성공으로 두르는 '허깨비 승리(ghost victory)'의 위험에 빠질 수 있다. 

 

- 하지만 마이클 조던의 말처럼 "하루 8시간씩 슛 연습을 할 수도 있지만, 기본적인 기술이 잘못됐다면 잘못된 방법으로 슛 하는 데만 능숙해진다." 

 

- '선지자의 딜레마'라는 말이 있다. 무언가를 예측함으로써 예측한 일이 일어나지 않는 상황을 일컫는 말이다. 스스로의 실현을 방해하는 예측이다. 실은 비관론자들의 경고가 실제로 하늘이 무너지는 걸 막은 것일 수도 있지 않을까? 

 

- '네가 처음 왔을 때보다 이 세상을 조금 더 나은 곳으로 만들어놓고 떠나라.'라는 유명한 말이 있다. 하지만 조사를 해보기 전까지는 이 말을 처음 한 사람이 보이스카우트, 걸스카우트의 창시자이자 여러 세대의 아이들에게 준비에 대해 가르친 로버트 베이든 파월(Robert Baden-Powell)이라는 걸 몰랐다. 여기서 '준비'란 미래를 예측하고 그걸 구체화할 준비를 하는 것을 뜻한다. 

    

 

더보기

 - 출산 뒤에는 엄마, 아빠 모두 15주간의 출산휴가를 받을 수 있다. 그 기간이 끝난 뒤에도 엄마와 아빠 중 적합하다고 생각되는 쪽이 나눠 쓸 수 있는 16주의 휴가가 추가로 남아 있다. 그리고 (이 얘기를 듣고 충격을 받을지도 모르니 앉아서 듣는 게 좋을 텐데) 이 모두가 유급휴가다. 총 49주의 유급휴가(만약 엄마나 아빠가 근무기간 요건을 충족하지 못하면 유급휴가는 받지 못하고, 9천 달러 정도의 수표를 일시불로 받는다). 아이가 한 살이 되면 온종일 아이를 돌봐주는 수준 높은 어린이집에 자리를 보장받는다. 부모들은 매달 차등제로 부과되는 요금을 내는데, 아무리 비싸도 몇백 달러를 넘지 않는다. 또한 각 가정은 매달 백 달러가 조금 넘는 돈을 받는데, 이 돈은 아이가 18세가 될 때까지 계속 지급된다. 부모는 그 돈으로 기저귀나 음식, 학용품을 살 수 있다. 대학 학자금을 마련하는 데 사용할 수도 있겠지만, 노르웨이에서는 등록금이 무료이기 때문에 무의미하다.

 

- 그럼 과연 어느 나라 사람이 더 건강할까? 미국? 노르웨이? 양국의 수치는 비슷하다고 말할 수조차 없는 수준이다. 노르웨이는 전 세계에서 5번째로 유아 사망률이 낮다. 미국은 34번째다. 노르웨이의 기대수명은 5위, 미국은 29위다. 스트레스를 가장 적게 받는 나라는 노르웨이 1위, 미국은 21위다. 행복한 정도? 이 분야는 그래도 미국이 확실히 앞서지 않을까? 아니다. 노르웨이가 3위, 미국은 19위다. GDP를 따져봤을 때 두 나라가 보건의료에 쓴 지출은 비슷했다는 사실을 기억하라. 노르웨이가 더 많이 쓴 게 아니다. 단지 쓴 방식이 달랐을 뿐이다. 

 

- 이렇게 다양한 척도로 비교해 본 이유는 지나치게 단순한 시선으로 상황을 바라보는 걸 피하기 위해서다. 사실 미국이 업스트림 지출 수준을 노르웨이 수준으로 맞춘다 한들 두 나라가 비슷한 결과를 얻으라는 보장은 없다. 국민 전체를 건강하게 만드는 건 복잡한 일이기 때문이다. 또한 미국은 전부터 겪고 있는 평등과 인종차별 문제 때문에 인구 구성이 균질한 노르웨이보다 상황이 어렵다. 이런 업스트림 대다운스트림 지출 비율은 신성불가침 한 것이 아니다(예컨대 다운스트림 의료비 지출을 줄이면 미국의 지출 비율이 더 좋아 보이겠지만, 그런다고 해서 건강해지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여기서 말하고자 하는 바는 다음과 같다. 의료비에 쓰는 돈이 거대한 항아리에 들어 있다고 생각한다면, 미국은 그 항아리를 타국과는 다른 방법으로 쓰고 있다. 그러므로 미국이 국민들의 건강을 증진시키고 싶다면 업스트림을 늘리거나 다운스트림 지출을 업스트림으로 바꾸는 편이 현명할 것이다. 

 

- 섬뜩한 광경이지만 캠벨의 관심을 끄는 세부사항이 있었다. 여자는 팔에 깁스를 하고 있었다. 사건 파일에는 피해자의 팔뚝에 있는 두 개의 평행한 뼈인 척골과 요골 중 척골이 부러진 채였다고 기록되어 있었다. 일반적으로 사고를 당하면 두 뼈가 모두 부러지거나 요골만 부러진다. 척골만 부러지는 건 이례적인 일이고 자신을 방어하다가 다친 것임을 암시한다. 그 여자는 뼈가 부러질 만큼 단단한 물건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팔을 들고 있었던 것이다. 

- 과거에도 가끔씩은 이런 회의가 있기는 했지만, 이름별 목록을 사용하면서부터 회의 패턴이 완전히 바뀌었다. 모리시 시장에 따르면 예전에는 회의가 고충 전달을 위한 시간이었다. "다들 둘러앉아서 무엇이 문제인지에 대해서만 이야기하곤 했다." 하지만 제니퍼 재거의 말에 따르면 이제는 회의가 생동감 있게 느껴진다고 한다. "데이터 자체가 일종의 살아 있는 생명체 같은 느낌이다. 우리에게 말을 걸고 이야기를 들려준다. 데이터가 우리에게 '이걸 봐야 하고, 이걸 생각해야 한다.'라고 알려준다."


- 이턴은 특정한 한 가지 요소가 이런 기대수명 차이를 낳은 게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모든 요소가 같이 작용했다. 그는 한 라디오 인터뷰에서 "근본적으로 사람들이 병에 걸리고 아픈 건 자기에게 생기는 일을 통제하지 못한다는 기분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들은 말 그대로 포위 공격을 받고 있다. 그들은 살 곳을 구하려고 고군분투하고, 좋은 교육을 받기 위해, 범죄를 피하기 위해, 직업을 갖기 위해, 몸에 좋은 음식을 구하기 위해, 때로는 마실 물을 찾기 위해 애쓴다. 그러니 기본적으로 이 나라의 저소득층은 수많은 공을 가지고 저글링을 하듯이 아슬아슬하게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끊임없이 저글링을 하다 보면 스트레스를 받을 수밖에 없다. 그는 TED 강연에서 이런 지역사회가 바로 "만성적인 스트레스를 키우는 인큐베이터"라고 말했다. "저소득자는 고소득자와 생리적으로 다르다. 그렇게 태어났기 때문이 아니라 우리가 그들을 그렇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만성 스트레스는 다양한 건강상의 문제, 특히 심혈관 질환, 당뇨병, 염증과 확실한 연관관계가 있다." 

 

- 매년 우리는 온갖 역경을 다 겪고도 하버드에 입학한 학생에 관한 기사를 읽는다. 그런 소식을 들으면 다들 크게 기뻐한다. 하지만 꼭 그래야만 할까? 이턴은 "그런 기사를 읽을 때마다 짜증이 난다."고 말했다. "물론 빈민지역에도 똑똑한 유색 인종 아이들이 있다. 사실은 수백만 명이나. 하지만 우리는 축하받을 자격이 있는 한 아이는 축하하면서 정작 꼭 필요한 진짜 질문은 던지지 않는다. '왜 이런 사례가 그토록 드문 것일까?' 시스템은 확률을 결정하는 기계다. 가장 훌륭하게 설계된 시스템 하에서는(기대수명이 가장 높은 지역처럼) 성공할 확률이 압도적으로 높고 유리하다." 

 

- 빈민 지역에서 하버드에 입학한 아이를 칭찬하는 것은 사실 그 애가 맞선 역경에 감탄하는 행위다. 하지만 우리는 그 애를 축하하면서도 우리가 그 애를 그런 환경에 집어넣었다는 사실은 인정하지 않는다. '우리는 네가 성공하려면 에베레스트에 올라야 한다고 강요했고, 넌 해냈어! 축하해!'라고 하는 것과 같다. 코네티컷주 그리니치 같은 부자 동네에 사는 헤지 편드 사업가의 자녀가 하버드 대학에 입학한 이야기를 읽으면서 눈시울을 붉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업스트림 작업은 문제가 발생할 확률을 줄이는 행위다. 그러므로 그 작업을 통해 결국 시스템을 변화시켜야 한다. 시스템은 확률의 원천이기 때문이다. 시스템을 바꾼다는 것은 곧 우리를 지배하는 규칙이나 우리에게 영향을 미치는 문화를 바꾼다는 것이다. 

 

- 하지만 활동가인 샌드라 셀레던 같은 사람들은 기나긴 게임을 벌이고 있다. 셀레던은 말한다. "메디케어(Medicare, 미국 정부가 시행하는 사회보장 제도로, 65세 이상 혹은 소정의 자격을 갖춘 사람들에게 의료보험을 제공한다-옮긴이) 제도가 생기기까지 50년이 걸렸다. 결승선에 도착할 그 누군가가 출발할 때의 그 사람은 아닐 것이다. 우리 대부분은 이 일의 결과를 보지 못할 것이다." 셀레던은 이런 변화의 혜택을 누리는 것은 자신의 자녀, 아니면 손자 세대일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 

 

- 하지만 그는 그런 나에게 밀어붙이고 집중하고 전력을 다하는 방법을 가르쳐줬다. 평생 느끼던 마음속의 허전함을 채워준 남성 롤모델이 생긴 것은 삶의 의미와 정체성을 찾아 나서는 계기가 됐다. 그는 거대한 의문과 맞서 싸우는걸 두려워하지 않게 됐다. '남자가 된다는 건 무얼 의미할까? 어린 시절의 상처를 어떻게 극복해나가야 할까? 정직하게 산다는 건 무슨 뜻일까?'

 

- 토니 D는 각 세션 초반에 '체크인'이라는 관행을 도입했다. 청소년들은 둥그렇게 둘러선 다음(학생 수는 일반적으로 8~10명 정도였다), 각자 그날 하루를 신체적, 감정적, 지적, 영적으로 어떻게 보냈는지 간단히 얘기했다. 처음에는 다들 꺼리면서 회의적인 태도를 보였지만 토니 D가 '화났다.'슬펐다', '기뻤다' 같은 하나의 단어로 간단히 답해도 된다고 설득하자 서서히 마음을 열기 시작했다. 자기 문제를 털어놓고 본인의 고통이나 분노를 얘기해도 안전하다고 여긴 것이다. 학기 말이 되자 '체크인'은 아이들이 가장 좋아하는 활동 중 하나가 됐다. 학교에 있는 동안 단 한번, 긴장을 풀고 자기의 본모습을 그대로 내보일 수 있는 시간이었기 때문이다. 한 아이는 BAM(Becoming a Man)의 성과를 측정하는 연구진에게 이렇게 말하기도 했다. "서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는 게 좋아요. 기분이 차분해져요." 

 

- 분노 조절은 이 세션에서 계속 반복되는 주제로 자리 잡았다. 토니 D는 아이들에게 분노에 휩싸여서 '야만인'처럼 행동할 수도 있고, 분노를 잘 조절해서 '전사'가 될 수도 있다고 가르쳤다. 분노는 파괴적인 힘이 될 수도 있고 건설적인 힘이 될 수도 있는데, 어느 쪽이 될지는 우리가 직접 선택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 위험 요소와 보호 요소에 초점을 맞추는 대신 특정한 소집단을 지렛대로 삼을 수도 있다. 성공한 업스트림 개입은 대부분 소규모 집단을 대상으로 진행하는 매우 값비싼 프로그램이다. 언뜻 보기에 이는 바람직하지 않은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왜 소수의 사람들을 위해 그렇게 많은 돈을 씨야 하는 걸까? 시스템에 과도한 부담을 주는 것은 그 매우 적은 수의 사람들인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영역에서 그렇다. 시카고 대학 범죄연구소는 그 도시에서 총기를 이용한 강력범죄 혐의로 체포되거나 그 범죄의 희생자가 될 수 있는 위험도가 가장 높은 사람 5천 명을 예측하는 모델을 개발했다. 5천 명은 시카고 전체 인구의 약 0.2퍼센트다. 1년 뒤, 범죄 연구소는 이 도시에서 살해당한 이들을 조사했다. 그들 중 17 퍼센트가 미리 예측했던 5천 명에 속해 있었다. 가장 큰 위험에 처한 사람들은 항상 소수다. 범죄 연구소의 다른 연구에 따르면 총상 한 번으로 발생하는 사회적 비용은 150만 달러 가량이라고 한다. 이 수치들이 시사하는 바는 사회가 이 집단의 암울한 전망을 바꾸기 위해 엄청난 비용을 들이는 게 나쁜 선택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런 시각을 바탕으로 범죄 연구소는 유죄판결을 받은 강력 범죄자 가운데 재범 가능성이 있는 이들을 직장에 취직시키고 인지 행동치료를 받게 해 새로 출발할 기회를 주는 프로그램을 시험하고 있다. 이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비용은 1인당 연 2만 2천~2만 3천 달러 정도다. 

 

- 왜 가해자에게만 집중하지 않고 피해자와 가해자 모두에게 집중하는 걸까? 그들은 같은 사람인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폭력 범죄를 저지르는 사람 대부분은 결국 폭력 범죄에 희생당한다. 

 

- 물론 이것들이 관련 없는 질문인 것은 아니다. 하지만 꼭 필요한 질문도 아니다. 의료 분야에서 이런 시각은 유독 예방적 조치에만 적용된다. 매일 베이컨만 먹는 용감무쌍한 식습관을 가진 사람이 심혈관 우회 수술을 받아야 한다고 해보자. 그가 수술을 받을 자격이 있는지 혹은 그 수술이 장기적으로 시스템을 유지하는 데 드는 비용을 절약하는지 묻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수술이 필요하다면 그냥 진행할 것이다. 하지만 아이들이 배를 곯지 않게 할 방법을 논의하면 갑자기 그 일을 통해 이익을 얻어야 한다는 얘기가 나온다. 말도 안 되는 일이다. 노숙자에게 거처를 제공하거나 질병예방 활동을 하거나 굶주린 이들에게 음식을 주는 이유는 재정적인 이익 때문이 아니다. 도덕적 이익 때문이다. 다운스트림 활동에는 절대 묻지 않는 질문으로 업스트림 활동을 방해해서는 안 된다. 

 

- 스티븐슨은 2018년에 '포춘 CEO 이니셔티브 콘퍼런스(Fortune's CEO Initiative Conference)'에서 "더 건강한 공동체, 더 건강한 사회, 더 건강한 국가, 결국 더 건강한 경제를 만들기 위해서는 가난한 사람들과 취약계층에 가까이 다가갈 방법을 찾아야 한다."라고 연설했다. "스스로를 고립시키면, 그러니까 취약하고 소외된 사람들로부터 자신을 방어하고 단절시키면 이런 문제들이 지속되는 원인이 될 것이라는 확실한 믿음이 있다. 그들과 가까운 곳에 있어야 세상을 변화시키는 방법을 배울 수 있다는 걸 납득하게 됐다." 물론 가까이 있다고 해서 발전이 보장되는 건 아니다. 그건 시작이지 끝이 아니다. 업스트림적인 변화는 머뭇머뭇 앞으로 나아가며 무엇이 효과적이고 무엇이 그렇지 않은지 알아내는 과정인 경우가 많다. 그러니 이런 맥락에서 보면 패배도 사실은 승리라고 할 수 있다. 세상을 움직일 수 있는 지렛대를 찾아다니면서 뭔가를 배울 때마다 지도의 빠진 조각을 하나씩 채워나가게 되기 때문이다. 

 

- "우리는 수정구슬이 아니라 과거 기록을 바탕으로 응급상황을 예측한다." 노스웰 응급의료센터 조너선 와시코(Jonathan Washko) 부소장의 말이다. 응급상황은 예측 가능한 패턴을 따른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시간상의 패턴(밤보다 낮에 전화가 많이 온다)과 지리적인 패턴(젊은이들보다 노년층이 많이 사는 지역에서 전화가 많이 온다)이 있었다. 미국 독립기념일과 한 해의 마지막 날에는 통화량이 증가하는(술에 취해 바보짓을 하는 사람들 때문에) 반면, 크리스마스와 추수감사절에는 통화량이 감소한다(가족끼리의 애정? 그냥 좀 더 차분히 술을 마시기 때문에?). 금요일과 토요일 밤은 바쁘고, 일요일은 한가한 편이다. 독감이 유행하는 계절에는 정신이 하나도 없다. 좀 더 미묘한 차이도 존재했다. 신기하게도 요양원 식사 시간에 긴급출동 전화가 급격히 늘어났다. 음식이 너무나 형편없어서? 그게 아니라 그 시간에 간병인이 환자 상태를 확인하고 안 좋은 일이 일어났다는 걸 알게 되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이유로 요양원 직원들이 근무 교대를 할 때도 신고가 급증했다. 이 패턴은 날씨에 따라서도 달라졌다. 와시코는 폭설이 내릴 때 심근경색 환자가 증가한다는 걸 알고 있다. 사람들이 눈을 너무 힘차게 퍼내다가 그런 일이 생기는 것이다. 

 

- 심리학자 대니얼 카너먼은 우리 뇌는 복잡한 문제에 직면할 때 종종 눈에 보이지 않는 대체를 진행해 어려운 질문을 쉬운 질문으로 바꾼다고 썼다. "오래전에 포드 자동차 주식에 수천만 달러를 투자했다는 한 대형 금융회사의 최고 투자 책임자를 찾아간 적이 있다. 그에게 어떻게 그런 결정을 내렸느냐고 물었더니, 최근에 자동차 전시회에 갔다가 깊은 감명을 받았다고 말했다. '그 사람들, 차를 만들 줄 알더라고요!' 경영자가 직면한 질문(포드 주식에 투자해야 하는가?)은 어렵지만, 그보다 쉽고 관련성 있는 질문(나는 포드 자동차를 좋아하는가?)에 대한 답은 쉽게 떠올랐기에 어떤 선택을 할지가 결정된 것이다. 이것이 '직관에서 나온 어림짐작(intuitive heuristics)'의 본질이다. 어려운 문제에 직면하면 그보다 쉬운 부분에 답을 하곤 하는데, 이때 자기가 어려운 문제을 쉬운 것으로 대체했다는 사실은 알아차리지 못한다." 

 

- 잘못된 단기 대책은 업스트림 활동을 망칠 수도 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단기 대책이 없으면 안 된다. 단기 대책은 중요한 항해 보조 장치다. 

 

- 다들 이런 식의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사람들이 이런 식으로 측정기준을 '유희화'하는 건 익숙한 현상이다. 하지만 장난스러운 태도로 얘기하는 이런 유희화의 이면에는 흥미로운 사실이 숨겨져 있다(위에서 성경에 관한 일화를 유희적으로 표현한 것도 당혹감을 감추기 위해서다). 많은 업스트림 개입에 있어서 유희화는 인간 행동의 변덕스럽고 장난스러운 측면에 불과한 사소한 문제가 아니다. 허용할 경우 목표를 파멸로 이끌 수도 있는 파괴적인 힘이다. 이런 행동은 결국 특정 기준을 유희화하는 게 아니라 목표 달성을 방해한 것이다. 

(리뷰자 주 : 예를 들면, 아예 신고를 하지 않으면 범죄도 없는 것이 된다는 식으로.)

 

- 매쿼리 섬(Macquarie Island)은 호주와 남극대륙 북동쪽 해안 사이, 그 중간쯤에 있다. 그 지역에서 동물이 번식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섬 중 하나로, 철새들의 소중한 휴식처와 번식지 역할을 한다. 가끔 들르는 관리원과 연구원을 제외하면 인간이 전혀 살지 않는 자연보호 구역이기도 하다. 이렇게 외딴곳에 멀리 떨어져 있고 인간이 없다는 점 때문에 이 섬에는 많은 희귀종, 특히 날아오르기 전에 속도를 내려고 물 위를 성큼성큼 달리는 파란 바다제비(blue petrel) 같은 바닷새들이 많이 살고 있다(이 새의 이름은 예수에 대한 믿음으로 물 위를 걸은 사도 성 베드로(peter)의 이름을 따서 지었다고 한다). 그 외에도 엄청나게 많은 펭귄과 물개가 이 섬을 차지하고 있다. 

 

- 시스템은 복잡하다. 토끼를 죽이면 고양이들이 바닷새 잔치를 벌인다. 고양이를 죽이면 토끼들이 너무 많아진다. 둘 다 죽이면 잡초가 급속히 퍼져 섬을 뒤덮는다. 업스트림 개입은 시스템에 복잡한 영향을 미친다. 그렇기에 우리가 하는 활동의 직접적인 범위를 넘어서는 반응과 결과를 예상해야 한다. 물에 형태를 부여하려다 보면 그로 인한 파급 효과가 생길 수밖에 없다. 세상을 더 좋은 곳으로 만들려고 노력하다가 자기도 모르는 새에 피해를 끼치지 않는다고 어떻게 보장할 수 있을까? 

 

- 생물 물리학자 겸 시스템 이론가 도넬라 메도스(Donella Meadows)는 한 에세이에서 "시스템에 대해 생각할 때는, 애초에 그 시스템에 집중하게 만든 문제뿐만 아니라 시스템 전체를 바라보기에 좋은 위치에서 시간을 보내야 한다.”고 말했다(이 장을 쓰는 동안 몇 번이나 메도스의 연구에 의지했다). 또 메도스는 "단기적으로는 전체의 이익을 위한 변화가 시스템 일부의 이익에 반하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는 걸 알아야 한다."고도 썼다. 

- 메도스의 주장을 뼈 아프게 예시하는 사례가 있다. 2009년 7월, 구글에서 일하는 한 젊은 엔지니어가 뉴욕 센트럴파크를 지나던 중 갑작스레 떨어진 참나무 가지에 머리를 부딪쳐 뇌를 다치고 전신이 마비되는 사고가 발생했다. 이 일은 비극적이면서 우발적인 사고처럼 보였다. 그런데 뉴욕시 감사관인 스콧 스트링어(Scott Stringer)가 소송 처리를 위해 시에서 지불한 보상금을 분석하던 중 떨어진 나뭇가지로 인한 보상금 합의 사건이 의외로 많다는 걸 알게 됐다(1,150만 달러에 합의된 구글 엔지니어와의 소송도 그중 하나였다). 호기심을 느낀 스트링어는 추가 조사를 진행했고, 돈을 절약하기 위해 예년에 뉴욕시 가지치기 예산이 삭감됐다는 걸 알아냈다. 뉴욕시의 정책 담당 부감사관인 데이비드 살튼스톨(David Saltonstall)은 "유지보수 분야에서 절약했다고 생각한 돈을 전부 소송 배상액으로 지불하고 있었다."고 말했다. 

 

- 메도스가 말한 '부분'과 '전체'의 이익이 갈라지는 경우가 바로 이런 것이다. 가지치기 예산을 줄이면 돈을 절약할 수 있고 공원 관리팀에도 좋다. 하지만 결국 나뭇가지가 떨어져서 다친 무고한 사람들에게 보상금을 지급하게 된다. 그러나 관계자들은 이 연결고리를 보지 못했다. 스트링어의 팀이 데이터를 편집하고 연구하기 시작하고 난 뒤에야 비로소 이 패턴이 보이기 시작했다. 업스트림 활동을 계획할 때는 자신의 업무 범위 바깥을 봐야 한다. 렌즈를 줌아웃하고 좌우를 살펴야 한다. '적절한 수준에서 시스템에 개입하고 있는가? 지금 진행 중인 활동의 2차 효과는 무엇인가?' 만약 특정 요소(생태계 교란종이나 약물, 프로세스, 제품 등)를 제거한다면 그 공백을 무엇으로 메울 것인가? 특정한 문제에 시간과 에너지를 더 투자할 경우 결과적으로 관심이 줄어드는 부분은 어디이고 그런 무관심은 시스템 전체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 

 

- 이런 상황에서 혼란스러운 건 모순된 상식의 가닥을 풀어야 한다는 사실이다. 한편으로는 '당연히 사람들이 가까이 있어야 협업이 늘어나지! 그게 사회학의 기본이야.'라고 생각할 것이다. 반면 '아니, 지하철이나 비행기를 봐. 사람들은 빽빽하게 몰려 있으면 헤드폰을 쓰거나 책을 본다고, 달갑지 않은 시선으로 내쫓아버리고 프라이버시를 유지하는 방법을 택하거나.'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어떤 생각을 믿어야 할지 어떻게 알 수 있을까? 보통은 미리 알 수 없다. 따라서 실험을 해야 한다. 시스템 이론가인 도넬라 메도스는 이렇게 말한다. "여러분이 아는 모든 것, 그리고 모든 사람이 알고 있는 모든 것은 단지 '모델'일 뿐이라는 사실을 기억하라. 모델을 많은 이들의 표적이 되는 곳으로 내보내라. 다른 이들에게 여러분의 가설에 도전하고 그들의 가설을 추가해 달라고 부탁하라. 모를 때 해야 하는 일은 허세를 부리거나 얼어붙는 게 아니라 배우는 것이다. 여러분은 실험을 통해, 혹은 벅민스터 풀러(Buckminster Fuller. 20세기 후반 미국에서 활동한 건축가이자 발명가.' 지오데식 돔'이라는 구조물을 고안한 것으로 특히 유명하다-옮긴이)의 말처럼 시행착오와 실수, 실수, 실수를 통해 배울 수 있다. 

 

- 기업들은 이런 정보를 활용해 더 나은 자동차를 만들어야 한다는 압박감을 느낀다. 폰티액 아즈텍(Pontiac Aztek, 미국 GM에서 만들었던 크로스오버 SUV 차량-옮긴이)까지 단종된 요즘은 형편없는 차를 사기가 정말 힘들다. 

(리뷰자 주 : 펄프픽션들에서 자주 언급되는 폰티악을 찾았다.)

 

- 그런데 정말 예상치 못한 결과가 나타났다. 몇몇 사람들은 2017년 미국 샌디에이고에서 발생한 치명적인 A형 간염의 원인이 비닐봉지 부족 때문이라고 말한다. 왜일까? 노숙자들은 쓰레기 처리를 위해 비닐봉지를 사용하는 습관이 있었다. 그런데 비닐봉지가 부족해지자 찾은 대안들이 별로 위생적이지 않았던 것이다. 여러분도 내가 이 연구에 대한 자료를 처음 읽기 시작했을 때 느낀 감정, 즉 압도되고 기가 꺾이고 짜증스러운 감정을 느끼고 있는지 궁금하다. 겨우 비닐봉지 정책 하나로도 이렇게 복잡한 문제가 계속 일어나는데, 우리가 직면한 가장 어려운 문제들은 대체 어떻게 해결할 수 있단 말인가? 나를 궁지에서 끌어낸 건 허세 부리지 말고 얼어붙지도 말고 계속 배우라는 도넬라 메도스의 말이었다. 메도스가 한 말의 요점은, 물론 힘들지만 우리는 계속 배우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 사회 전체는 계속해서 배우고 있다. 비닐봉지 금지 같은 정책을 분석하는 데 필요한 요소들을 생각해보라. 컴퓨터 시스템과 그것을 통한 데이터 수집, 네트워크 인프라, 그리고 도시와 주 전체의 정책을 위한 실험을 설계할 줄 아는 똑똑한 사람들... 이런 인프라가 생긴 것은 인류 역사상 최초에 가깝다. 업스트림 활동에 관한 한, 우리는 이제 막 발을 들여놓은 것뿐이다. 

 

- 공중보건 활동은 사실상 성공에 대한 처벌 때문에 고통받고 있다. 글로벌 보건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육군에서 감염병을 퇴치한 경험이 있는 의사 줄리 파블린(Julie Pavlin)은 이렇게 말했다. "공중보건 분야에서는 담당자들이 해야 할 일을 하고 나면 예산이 줄어든다. 왜냐하면 아픈 사람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파블린의 논평은 문제의 핵심을 찌른다. 의료 부문의 행위별 수가 모델은 예방보다 대응을 선호한다.

 

- 그들에게는 업계 전반에서 도출된 증거와 보다 광범위한 관점이 필요했다. '이봐, 이 장비는 그만한 가치가 있어.'라고 말해주는 증거 말이다. 투자를 하기만 하면 좋은 결과가 기다리고 있는 이처럼 단순한 사례에서도 관성이 예방을 밀어낸 것이다.  

 

- 올즈는 만약 자기가 아이들의 삶에 더 일찍 개입했다면 아이들을 더 많이 도울 수 있었으리라는 걸 깨달았다. 그리고 올즈는 아이들에게 가장 큰 도움이 되는 방법은 바로 그들의 어머니를 돕는 것이라고 믿었다. 그가 목격한 학대는 잔인함보다 무지에서 비롯된 게 많았다. 간단히 말해, 이 엄마들에게는 좋은 엄마가 되기 위해 필요한 지식이나 기술이 없었다. 적절한 지원 제도나 역할 모델도 없었고, 아이들을 키우면서 느끼는 좌절과 분노를 어떻게 해야 할지도 몰랐다. 

 

- 2010년에 건강보험 개혁법에 도입된 모델 가운데 하나인 책임 의료조직(Accountable Care Organization, ACO)을 만나보자. 유형 가운데 하나를 아주 간단하게 설명해보겠다(사실 그 너머에는 끝없는 복잡성의 웜홀이 존재한다). 많은 1차 진료의들이 모여서 함께 ACO를 결성하면 메디케어는 그 ACO에 이렇게 말한다. '당신들이 진료하는 환자들과 관련해, 우리는 올해 얼마나 많은 병원 진료가 예상되고 그로 인해 얼마나 많은 비용을 지급해야 하는지 알고 있다. 그러니 환자들의 건강을 잘 관리해서 병원 방문 횟수를 줄인다면, 절감한 금액을 나눠 가지겠다.' ACO를 구성한 의사들을 도와주는 회사인 알레다데(Aledade)의 공동 설립자 파르자드 모스타샤리 (Farzad Mostashari)는 이렇게 말했다. "ACO가 생기기 전에는 의사들이 환자를 병원에 못 오게 하면 돈을 한 푼도 벌지 못했다. 그러나 이 모델을 이용하면 의사들이 시간당 더 많은 환자를 진료할 방법을 궁리하지 않아도 된다. 환자나 그 가족과 함께 더 많은 시간을 보낼 수 있다."  

 

- 균일 할당제 모델을 활용하면 예방에 돈을 쓰는 것이 쉽게 정당화되므로 업스트림 개입의 문이 활짝 열린다. 펜실베이니아에 본부를 둔 가이징거 헬스 시스템(Geisinger Health System)은 카이저 퍼머넌트 같은 통합 의료 시스템으로, 이들은 당뇨병 환자들에게 '푸드 파머시(Food Farmacy)'를 이용하도록 한다. 이곳은 기본적으로 건강식품이 가득한 식료품점인데, 이곳에 있는 식료품은 무료로 가져갈 수 있다. 가이징거는 왜 공짜로 식료품을 나눠주는 걸까? 당뇨병 환자에게는 음식이 곧 약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가이징거 입장에서는 훨씬 비용이 많이 들 수도 있는 다운스트림 합병증에서 환자를 구할 수만 있다면 건강에 좋은 식료품값을 지불할 가치가 있다. 

 

- 2000년 1월 6일, 그는 <글로브 앤 메일(Globe and Mail)》에 '너 사기당할 거라고 내가 말했잖아(You Got Conned and I Told You So)'라는 제목의 기사를 썼다. "엄청난 히스테리의 원인으로 작용한 전기나 항공 교통관제 같은 시스템도 그렇지만, 애초에 역년에 의존하는 시스템은 거의 없다." 그러나 Y2K 대비 업무를 맡았던 이들 가운데 상당수는 그 일이 사기였다고 말하는 걸 들으면 지금도 격분한다. 당시 딜로이트(Deloitte)의 컨설턴트 겸 국제 파트너로 영국 내의 Y2K 관련 문제를 처리했던 마틴 토머스(Martyn Thomas)는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은 이유는 사람들이 엄청난 소란을 피운 탓에 엄청난 양의 작업이 이루어졌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일촉즉발의 상황에서 Y2K 버그를 피했다고 생각한다. 전 세계가 재능과 에너지를 성공적으로 동원한 덕분에 간신히 재앙을 피했다는 것이다. 

 

- 과학자와 기술자는 '이걸 꼭 발명해야 하는가?'라고 자문하는 공식적인 과정을 거치는 일이 거의 없다. 발명할 수 있다면 발명될 것이다. 호기심과 야망과 경쟁심이 그들을 앞으로 밀어낸다. 혁신에 관한 한 가속 페달은 있어도 브레이크는 없다. 

 

- 보스트롬은 이렇게 어설프게 앞으로 나아가는 습관에 대한 비유를 든다. 인류가 거대한 항아리에서 공을 꺼내고 있다고 상상해보자. 여기서 공은 발명품이나 기술을 나타낸다. 항아리에는 항생제 같은 유익한 기술을 나타내는 흰 공과 은총인 동시에 저주이기도 한 기술을 나타내는 회색 공이 들어 있다. 요컨대 항아리에 손을 넣으면서 자기가 어떤 색 공을 꺼내게 될지는 알 수 없는 것이다. 하지만 계속해서 항아리를 향해 손을 뻗고 있다. 그 충동에서 벗어날 수가 없다. 그런데 만약 그 공들 중 하나가 재앙을 불러오는 것으로 밝혀지면 어떻게 될까?

 

- 보스트롬은 '취약한 세계의 가설(The Vulnerable World Hypothesis)'이라는 논문에서, 항아리 안에 기술을 발명한 문명 그 자체를 파괴할 검은 공이 존재할 가능성을 고려한다. 보스트롬은 지금까지 검은 공을 꺼낸 적이 없는 이유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우리가 기술 정책을 만들 때 각별히 신중하거나 현명했기 때문이 아니다. 그저 운이 좋았을 뿐이다. 우리 문명은 공을 뽑는 능력이 상당히 뛰어나다. 하지만 그걸 다시 항아리에 넣을 능력은 없다. 발명은 할 수 있지만 발명한 걸 없앨 수는 없다. 검은색 공이 없기를 바라는 것이 전략이다." 

 

- 보스트롬이 말하려는 요점은, 우리가 계속 같은 방법으로 행운을 누릴 것이라는 보장이 없다는 것이다. 이미 기업들이 연구 목적으로 DNA를 빠르고 저렴하게 생산할 수 있는 DNA '복제기'가 존재한다. 언젠가 이 DNA 복제기가 가정에 반입되어(아마 본래는 유전적으로 맞춤화된 약을 만들기 위한 목적으로), 1918년에 유행한 스페인 독감의 복제품을 집에서도 만들 수 있게 된다고 상상해보라. 한 인간이 우리 모두에게 종말을 가져올 수도 있다. 

 

- 앞서 네트워크 보안의 '가장 취약한 연결고리' 문제를 얘기하며 언급한 컴퓨터 보안 전문가 브루스 슈나이어가 쓴 <모두를 죽이려면 여기를 클릭하세요(Click Here to Kill Everybody)> 같은 책은 네트워크 기술과 관련된 정책이나 규범을 정하는 모든 사람이 꼭 읽어봐야 한다. 

 

- 소련의 스푸트니크 프로그램이 시작되기 직전인 1950년대에 일부 과학자들은 우주탐사로 인한 오염 위험에 대해 경고하기 시작했다. 생물학자인 J. B. S. 홀데인(J. B. S. Haldane)과 노벨상 수상자인 멜빈 캘빈(MehvinCalvin), 조슈아 레더버그(Joshua Lederberg)를 비롯한 과학자들은 전방과 후방, 두 종류의 오염을 경고했다. '후방 오염 (backward contamination)'은 귀환한 우주선에 의한 지구 오염이고(이를 다른 말로는 '안드로메다 시나리오'라고도 한다), '전방 오염 (forward contamination)'은 지구에서 유래된 유기체로 인한 다른 행성의 오염이다(전방 오염에서는 훨씬 앞선 업스트림 영역을 다루는 셈이다). 

 

- 이 직책은 지금도 존재한다. 2019년의 행성 보호 책임자는 리사 프랫(Lisa Pratt)이었다. 프랫의 전임자 중 한 명인 캐서린 콘리(Catharine Conley)는 이 직책의 역사와 관련해 놀라운 사실을 털어놓았다. "내가 알기로, 이는 지구에 사는 생물 종인 인간이 인류 역사상 차음으로 무언가를 저지르기 전에 피해를 막겠다고 결심한 일이다." 앞으로 두 번째 기회가 있기를 바란다. 

 

- 행동은 서두르고 결과는 인내하라. 이는 브라질 의료 개선 연구소의 명예 회장인 모린 비소그나노(Maureen Bisognano)에게서 인용한 것이다. 이 말은 업스트림 활동에 대한 완벽한 모토다. 세상에는 고상한 토론에 참여하면서 자기가 고결한 사람인 양 우쭐대지만, 정작 의미 있는 변화는 이루지 못하는 이들이 매우 많다. 행동 없이는 변화도 없다. 행동이 결실을 맺기까지는 시간이 꽤 걸릴 수도 있다.

 

- 생각해보라. 헌든의 팀이 주 교육구의 10분의 1을 금연 구역으로 만드는 성공을 거두는 데까지 꼬박 10년이 걸렸다. 쉬운 싸움이 되리라고 생각했는데도 말이다. 결국 지구력의 승리였다. 그러나 그 후 일은 빠르게 진행됐다. 2000년부터 2010년까지, 즉 헌든의 팀이 이 일을 진행한 두 번째 10년 사이에 상황과 역학관계가 그들에게 유리하게 돌아갔다. 주 전체에서 학교 금연법이 통과됐다. 그리고 병원과 감옥에서 흡연이 금지됐고, 마침내 2009년에는 식당과 술집에서의 흡연도 금지됐다. 조금씩, 조금씩, 아주 조금씩. 이게 바로 업스트림 활동으로 승리하는 방법이다. 한 번에 1센티미터, 그다음에 1미터, 그리고 다시 1킬로미터를 가다 보면 결국 결승점에 다다라 시스템이 바뀌게 된다. 명심하라. 행동은 서두르고, 결과는 인내해야 한다. 

 

- 그래도 관료주의는 어쩔 수 없는지라, CMMI는 자체적인 방법을 이용해 이 프로그램을 재시험하기로 했고 2015년 말에 마침내 결과가 나왔다. 그들이 예상했던 대로 이 프로그램은 환자들이 당뇨병에 걸리는 것을 막거나 지연시켰다. 이 결과는 DPP가 돈을 절약하면서 품질도 높여야 하는 힘겨운 이중 난관을 통과할 수 있음을 시사한다. 이제 상하비와 그의 동료들은 이러한 프로그램이 비용을 절감해준다고 인증하는 업무를 위임받은 CMS의 보험계리인들을 설득해야 했다. 그들이 승인만 해주면 이 프로그램을 전국으로 확대해 시행할 수 있었다. 상하비는 의기양양했다. 마침내 중요한 예방 사례가 성공을 거둘 참이었다. 하지만 그 후 벌어진 운명적인 회의에서, 보험계리사들은 DPP를 비용절감 프로그램으로 인증해줄 수 없다고 말했다. 이유는? 이 프로그램은 사람들이 더 오래 살도록 돕기 때문이었다. 사람들이 오래 살면 의료비가 더 많이 든다는 것이다. 이건 블랙 유머가 아니다. 이것이 미국에서 가장 많은 의료비를 지불하는 기관인 연방정부의 공식적인 논지였다(이런 논리라면 사람들이 줄담배를 피우고, 교통신호를 어기고, 스카이다이빙을 하도록 가르치는 프로그램이 모든 개입 방법 가운데 최고점을 받을 것이다). 

 

- "의학의 첫 번째 원칙인 프리뭄 논노체레(Primum non nocere), 즉 '무엇보다, 해를 끼치지 말아야 한다.'는 원칙은 의사뿐만 아니라 보험계리사를 비롯해 의료분야에 종사하는 모든 사람이 져야 하는 의무입니다. 나쁜 의사는 소수의 사람에게만 해를 끼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나쁜 보험계리사는 수백만 명의 사람에게 해를 끼칠 수 있기에 특히 계리사들은 이 원칙을 명심해야 합니다. 우리는 한 사람의 생명을 구하는 데 따르는 추가 비용을 추정치에 포함시키지 않는다는 엄격한 규칙을 정해야 합니다. 의사와 병원에 지급할 급여를 정할 때는 계산기가 적절한 도구일지 모르지만, 사람들이 얼마나 오랫동안 살 것인지를 정하는 데는 적합하지 않습니다." 

 

- 결국 정의가 승리했다. 이 보험계리사의 편지, 그리고 상하비와 콘웨이의 항의가 합쳐진 결과 정부 규정에 다음과 같은 법적 용어가 추가됐다. '메디케어 & 메디케이드 서비스 센터는 프로그램 순 지출액을 평가할 때 예상되는 수명 증가와 관련된 비용을 고려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는 결론을 내렸다.'

 

- 이 조직들이 학습과 개선을 중시하는 문화를 구축할 수 있게 도와준 MIT 부교수 Steve Spear에게 감사한다. 개선 노력은 '참을 수 없는 좌절'에서 시작되어야 한다는 그의 말이 계속 기억에 남는다. 

 

- <살해당한 여성은 한 명도 없었다: Kely Durne과의 인터뷰 및 대화>

2019년 6월에 Durne이 보낸 이메일: "팀이 만들어지기 전에는 10년 동안 가정폭력 관련 사망자가 8명 있었다. 이 사망자들은 모두 매사추세츠주 에임즈버리에서 발생했다. 에임즈버리는 뉴베리포트와 인접해 있고 DVHRT에 속한 커뮤니티 중 하나다. 팀 창설 후, DVHRT 소속 커뮤니티에서는 가정폭력과 관련된 살인이 한 건도 발생하지 않았다(에임즈버리 포함). 가정폭력과 관련된 살인으로 보기는 어렵지만, 2014년에 매사추세츠주 솔즈베리에서 한 경찰관이 자기 아내를 살해하려던 용의자를 사살한 적은 있다." 

(리뷰자 주 : 어째서 가정폭력과 관련된 살인으로 보기 어렵다고 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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