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 : 최혜미
출판 : 푸른숲
출간 : 2019.10.30
새로 추가된 읽기 목록과 기존에 쌓아둔 책들 사이에서 균형을 잡기가 쉽지 않다. 그냥 닥치는 대로 많이, 빠르게 읽는 것만이 능사는 아닌 듯싶은데 나름대로 고민 중이다. 포기할 것은 포기해야 할지, 우선순위만 잘 지킨다면 병행이 가능할지 여전히 고민스럽다. 욕심이 많다.
떠나보낼 책들을 골라내다가 문득 책등이 눈에 들어와 꺼내 읽었다. 에디터에서 한의사로 전직했다는 저자 소개와 임신이라는 변화를 겪으며 보다 관심을 갖게 된 스스로의 몸 -여성의 몸- 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는 말이 인상적이었다.
기존과는 거리가 있는 새로운 영역으로 뛰어드는 사람들을 보면 성과 여부와는 관계없이 존경스럽다. 이미 손에 쥔 것을 놓치지 않으면서 매끄럽게 새로운 것으로 이착륙하는 경우는 내적 박수를 열렬히 보내기도 한다. 그것에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적어도 내게는- 알기 때문이다.
여성의 생애 주기라는 큰 틀에 맞춰 일어날 수 있는 신체적 변화와 그 이유, 대처방안이나 기억해두었으면 좋을 점들을 조곤조곤한 문장으로 풀어나간다. 저자의 손그림인 듯한 일러스트들도 귀엽다. 나만의 문제라고 생각하지도, 다들 그런 거라니까 별 게 아니라고 생각하지도 말고 스스로의 몸을 잘 관찰하고 살피자는 메세지는 여성에만 국한되는 이야기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 그래서 여자들이 이 글을 차례로 읽으며 자신이 겪어 온 사소한 불편함을 무시하지 말고 한 번 더 돌아보기를 바랐습니다. 삶의 질은 무시무시한 질병보다 일상에 파고든 흔한 질환과 증상으로 더 쉽게 손상된다는 것을 잊지 않았으면 했지요.
- 우리가 겪는 모든 증상은 몸이 우리에게 걸어오는 말입니다. 몸은 기막히게 정교한 기계로, 비효율적인 일은 하지 않도록 설계되어 있습니다. 아무런 의미 없는 증상은 없습니다. 예를 들어 아프고 붓고 열이 나는 것은 그 자체로 없애야 할 대상이 아니라 감염과 세포 손상 같이 몸에 일어난 진짜 문제를 해결하는 데 반드시 필요한 과정일지도 모릅니다.
- 하루하루가 노화의 나날입니다. 이 글을 쓰고 있는(혹은 읽고 있는) 지금 이 순간이 우리의 남은 인생에서 가장 젊은 날입니다. 무심하게 흘러가는 세월은 내버려 둡시다. 대신 시간이 흘러도 덜 늙는 법을 익히면 됩니다. 덜 늙으려면 하루하루 내 몸을 돌아보면서 오늘 쌓인 피로를 오늘 풀고 세포 노화를 촉진하는 산화 스트레스를 그때그때 효과적으로 해소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이를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요?
- <중앙일보> 권석천 논설위원의 칼럼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세상을 바꾸는 건 반짝이는 아이디어가 아니라 '이 대론 못 살겠다'는 생활의 감각들이다."
- 물론 그런 경우는 극히 일부일 겁니다. 그래도 만약 내게 그런 일이 일어난다면 내게는 전부인 일이 됩니다. '극히 일부'라는 확률 논리가 나를 보호해주지는 않지요. 우리가 기댈 진짜 울타리는 내가 내 몸을 알고 스스로 결정하는 뿐입니다. 잘 모르겠다면 적어도 여러 명의 전문가를 만나 의견을 들어보세요.
- "나는 이렇게 성공했다"가 주는 힘은 대단합니다. 나와 전혀 다른 환경에 있는 사람의 경험이 나에게 적용될 확률은 크지 않은데도 말이죠.
- 정보가 넘쳐날 때는 증거를 찾는 습관을 들여야 합니다. 가장 명확한 증거는 해당 내용을 연구한 논문일 겁니다. 신뢰성 있는 기관의 통계 결과도 좋습니다. 해당 분야 전문가의 말도 그런 증거를 기반으로 하므로 가치가 있습니다. 로또 맞는 정보라도 나의 상황에 맞게 따져보는 것이 좋습니다. 이를테면 내게 적용 가능한 것인지, 80퍼센트에게 맞더라도 내가 나머지 20퍼센트에 속할 확률이 더 높지 않은지, 이미 반론이 등장한 낡은 사실이 아닌지, 혹시 불완전한 진실의 일부만 알고 있는 건 아닌지 등을 따져봐야 합니다.
- 넘치는 정보에서 옥석을 가려내는 법도 함께 알려드립니다.
- 스스로 덥거나 춥다고 느끼는 열과 체온계로 직접 측정할 수 있는 열은 분명 별개입니다. 열증의 진짜 의미는 둘 중에 한쪽만 파악하는 걸로는 부족합니다. 희한하게도 어떤 열중은 실제로는 냉증에 가깝고 어떤 냉증은 본질이 열증에 해당하기도 합니다. 그 때문에 한의학에서는 열을 진짜 열인 실열과 가짜 열인 허열로 나눠서 보기도 하는데, 이 구분은 의외로 쉽지 않습니다.
- 한의학에는 '수승화강'이라는 개념도 있습니다. 이는 '물은 올라가고 불은 내려온다'는 뜻으로 몸이 건강을 유지하는 원리 중 하나지요. 언뜻 '물은 아래로 흐르고 불길은 위로 치솟는' 자연 섭리와 정반대 개념이 아닌가 싶지만 반대되는 조화의 기운이 없었다면 물은 아래로만, 불은 위로만 올라가 자연은 진작 물과 불로 양극화했을 거라고 보는 개념입니다. 몸이 차가워졌을 때 아랫배를 따뜻하게 하는 것이나 '머리는 차갑게, 발은 따뜻하게 하라'는 두한족열 등의 전통 건강 지침도 모두 이 원리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실제로 자율신경장애, 스트레스, 호르몬 불균형에 따른 순환장애를 해소하는 데 매우 중요한 개념이기도 하지요.
- 난임 클리닉에 방문할 때는 이전 월경 시작일이 언제였는지 적어도 3주기 이상 파악한 뒤 월경 시작 후 2~3일 내에 방문하는 게 좋습니다. 월경주기로 배란기도 파악할 수 있거니와 그때가 혈액검사를 하기에도 적절한 시기거든요. 월경주기가 불규칙하거나 월경이 아예 없거나 주기가 지나치게 길면 배란 유도를 시도해보는 게 좋습니다.
- 여자의 건강을 위해 글을 쓴다고 하면 여자가 건강할 수 있는 '비법'을 묻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타임>이 선정한 '올해의 슈퍼푸드'나 배우들 사이에 유행하는 운동법 같은 것을 말하면 눈을 반짝이면서 듣지만 '잘 먹고 잘 소화시키고 잘 배변하며 푹 잘 자는 것'이 비법이라고 하면 맥 빠진 반응을 보이지요. 그러나 '기본'을 지키는 것이야말로 최고의 비법입니다. 넘쳐나는 자극적인 정보 사이에서 이 책은 '기본'을 지키는 일의 시작이 되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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