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 : 맨리 P. 홀 /윤민
출판 : 마름돌
출간 : 2021.07.23
잠시 쉬는 동안 이런저런 개인사가 있었다. 우선 부스터 샷을 접종했고, 본업 관련 사안으로 협상 진행 중이다.
이번 주는 유독 여러 책들을 오가며 읽게 되었는데 그러다 보니 완독이 늦어졌다. <천사가 된 악마>는 약 일주일에 걸쳐 끊어 읽었는데 잠깐씩 책을 덮을 때마다 얼굴이 화끈거렸다. 저자가 내 상황을 콕 꼬집어 타이르고 있는 것 같았다.
예전에 열심히 전도하는 이를 보며, 믿는 바가 있다면 그의 삶으로 먼저 증명하는 것이 옳지 않은가 생각했던 적이 있다. 좋은 삶과 자세를 보면 자연스레 그를 따라 하게 되지 않겠는가 하고. 그리고 그 말을 그대로 내게 돌이켜 보니, 부끄러운 바가 많다. 그런 책들을 읽었다는 사람이 이런 생각과 행동을 한단 말인가라고 되묻는다면 나는 정말 할 말이 없다. 특히나 협상 중이다 보니 나의 이익을 최선으로 이끌어내기 위해 상대의 약점을 파고들 계획을 세우게 되는데, 곧바로 후회하면서도 또다시 득실을 따지고 있다. 합리적인 논의와 조율은 당연히 필요한 부분이지만, 거기에 감정적인 반응이나 비열한 생각이 들어가서는 안되는데 스스로 부끄러울 생각과 행동을 하고 만다.
한 번 더 웃어주고, 기분좋은 하루가 될 수 있도록 배려해주는 게 옳다고 생각하면서도 순간적으로 '이렇게 하는 게 조금 더 편하니까'라는 나의 편의를 위주로 선택하게 된다. 왜 매번 부끄러워하고 후회하면서도 기회가 오면 실수하는 걸까. 이게 이렇게 어려운 것인 줄 몰랐다. 심지어 내가 꽤 잘하고 있다고 생각했던 때도 있었는데.
항상 자신을 돌아볼 것. 매몰되지 말 것. 사로잡히지 말 것.
가야 할 방향을 바라보고 성급하지 않게 나아갈 것.
그것이 현실로 증거되도록 할 것.
특히나 정말 사랑하는 것이라면, 나로 인해 내가 사랑하는 것이 손가락질 받게 되지 않도록 주의할 것.
아프게 읽었다.
- 인간은 누구나 현실을 직면하고 자기의 결점을 정복하는 지혜와 용기를 계발해야 합니다. 이 기본적인 삶의 책무를 낡은 격언과 확언으로 덮어버리면 시간과 기회만 낭비하게 됩니다.
- 그 결과 신도들은 감각기관이 전하는 메시지와 상반되고 누구나 상식으로 알고 있는 사실을 무시하는 모순적인 세계관을 갖게 됩니다. 이들은 상상 속에서 만들어낸 꿈의 세상에 살면서 존재하지도 않는 장애물을 상대로 용감하게 싸우고, 존재하지도 않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하고, 존재하지도 않는 실망감과 고통에 일상적으로 시달립니다. 망상은 아무리 우아하고 선량해 보여도 위험합니다.
- 신비주의와 종교적 철학의 가르침을 깊게 연구하고 싶다면 일단 어느 정도의 기초 지식을 습득한 상태에서 접근해야 합니다. 단순히 헌신하는 마음만으로 종교를 이해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종교는 예술이자 과학입니다. 종교를 공부하기 위해서는 우선 종교의 역사부터 배워야 합니다. 제가 이렇게 얘기하면 역사학자는 물리적인 사건을 기록하는 사람에 불과하다고 말하며 반발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맞는 말이긴 하지만, 역사 공부는 분별력을 계발하는 도구이기도 하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과거를 공부하면 현재를 측정할 수 있고, 미래의 가능성도 어느 정도 예측할 수 있습니다. 종교의 역사를 공부하면 특정 교리의 장점과 약점, 그리고 그 교리에 대한 믿음이 인간 사회에 작용하면서 어떤 결과를 불러왔는지 확인할 수 있습니다.
- 우주의 심오하고 아름다운 원칙을 신봉한다고 말하면서 일상에서 이를 전혀 실천하지 않는 사람이 많은 이유는 무엇인가요?
- 게다가 제가 언급한 사례들은 독특한 것이 아닙니다. 인간의 기본적인 본성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사례 중 나에게 해당하는 것이 있다면 내가 현재 겪고 있는 문제의 해결에 도움이 되는지 생각해 보고 적용하면 됩니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대부분 사람은 부정적인 생각과 행동을 바꾸지 않고 지속시키려는 성향을 어느 정도 가지고 있습니다. 이런 습관이 행복을 가로막습니다. 이 사실을 염두에 두고 나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점검해보시기 바랍니다.
- 좋은 철학을 발견하고 앞으로 실천하겠다고 마음먹으면 어떤 식으로든 그 철학을 비비고 꼬아서 '지금 이대로가 좋다. 바꿀 필요 없다.'라는 식으로 자기를 합리화하려 합니다. 주변 사람들의 말과 행동이 다르고 자신의 신념을 지키며 살고 있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면, 일부만 보고 전체를 판단해서는 안 된다는 점을 상기하시기 바랍니다. 대다수 사람은 자기의 신념에 따라 살고 보다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제삼자가 보기에는 변화가 더디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 모든 추상적, 이상적 감정은 인간의 감정에서 태어납니다. 따라서 눈으로 볼 수 있는 형제를 사랑하지 못하는 사람은 눈으로 볼 수 없는 신도 사랑할 수 없습니다. 이 기본적인 법칙을 우회하려고 시도하는 사람도 많습니다. 가까이 있는 사람에 대한 인간적인 감정 표현은 하지 못하면서 신의 사랑 또는 인도주의적이고 이타식인 명분에 대한 애정을 체험함으로써 현실로부터 도피하고 위안을 얻으려 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런 꼼수는 마음을 채워주지 못합니다. 사랑하고 사랑받는 체험이 기반이 되지 않은 상태에서는 신의 사랑도, 이타주의도 머릿속에서만 존재하는 이론과 개념에 불과합니다. 내가 실질적으로 느낄 수 있는 감정이 아니라는 얘기입니다.
- 진정으로 진리를 사랑하는 사람은 그것이 나에게 절실하게 필요하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이에 따라 진리를 구해야겠다는 자연스러운 충동이 솟아난 사람입니다. 단순히 내가 가지고 있다는 이유로 진리를 사랑하는 것이 아닙니다. 다른 것을 모두 버리는 한이 있더라도 선한 것을 움켜쥐겠다는 자발적인 선택이 이루어져야 합니다.
- 아름다움에 공감하는 것도 다년간의 노력이 필요한 일입니다.
- 전보다 더 명랑하고, 다정하고, 독립적인 사람으로 변했다는 것입니다.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부인이 변하는 모습을 보면서 저도 그녀가 공부하는 분야에 관심을 가져볼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한 사람이 모범을 보이자 다른 사람에게도 기회의 문이 열리는 아주 좋은 사례입니다. 이 이야기에는 우리가 기억해야 할 아주 중요한 개념이 담겨 있습니다. 내 생각과 사상을 타인에게 전파하는 가장 쉽고 확실한 방법은, 그 생각과 사상이 나에게 준 긍정적인 영향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친구들이 더 진실해지고, 생각이 깊어지고, 어울리기 쉽고, 모든 면에서 나아진 나의 모습을 발견하면 내가 좋은 의도로 하는 말을 곡해할 소지도 줄어듭니다. 인격의 발전이라는 결과를 보여주지 못하는 신앙은 가족과 친구들에게 매력적으로 비칠 수 없습니다. 신앙을 가진 후 상대하기 더 어려운 사람이 되었다면, 나와 함께 살아야 하는 사람은 그 신앙을 원망할 수밖에 없습니다.
- 종교가 나를 행복하고 정상적인 사람으로 바꿔주지 않으면 없느니만 못합니다.
- 프랑스의 신비주의자 엘리파스 레비는 '악마(The Devil)'라는 제목이 붙은 타로의 메이저 아르카나 15번 카드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악마는 신이다. 다만 사악한 자들의 눈에는 신이 악마의 형상으로 보일 뿐이다."
- 그럴 자격도 없으면서 나도 얼마든지 그들처럼 보상을 누릴 권리가 있다고 착각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인간은 '나는 그들보다 우월한 존재인데 내 능력을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라는 식으로 자기를 합리화합니다. 직장에서 성공하지 못하면 내가 우월감을 느낄 수 있는 다른 분야를 찾아 헤맵니다. 이 딜레마를 해소하고 자존심을 회복하기 위해 경쟁이 심하지 않은 분야를 택하여 우월감을 과시합니다. 타인이 내가 최고라는 사실을 입증할 수도, 부정할 수도 없는 분야를 파고드는 것입니다. 대표적인 사례로 종교 분야를 들 수 있습니다. 우월감을 느끼고 싶은 사람에게 있어 종교는 최상의 솔루션입니다. 종교를 에고의 안식처로 삼은 사람은 나는 다양한 초능력을 가지고 있고, 신 또는 천사들과 소통할 수 있고, 태양 아래 존재하는 모든 사안에 대해 궁극의 해답을 제시할 수 있는 놀라운 사람이라고 엄숙하게 선언합니다.
- 종교에 빠진 노이로제 환자는 거짓 심령 현상도 종종 체험합니다. 그들은 이 '놀라운 체험'이 상위 차원의 의식에서 나왔다고 철석같이 믿습니다. 심리가 불안정한 상태에서 꾼 꿈을 거론하며 자기는 보통 사람은 인지하지 못하는 상위 차원에 이르러 깨달음을 얻은 사람이라고 확신합니다. 이 현상에 대한 합리적 설명을 제시하는 자연의 법칙은 안중에도 없습니다. 그는 자기에게 벌어지는 모든 일을 자기에게 만족스러운 방향으로 해석합니다. 하지만 그의 주장을 곧이곧대로 믿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 자기 합리화는 상황을 명료화하기보다는 더 혼란스럽게 만드는 경향이 있습니다. 지능을 동원하여 논리적으로 상황을 분석하는 과정에서 상식을 무시하기 때문입니다. 말은 사실 관계를 대체할 수 없습니다. 세상에 말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는 그리 많지 않습니다. 적절한 단어를 골라 세련되게 표현한다고 해서 고통을 유발하는 문제가 사라지는 것이 아닙니다. 매일 삶을 경험하고 문제에 부딪히면서 실질적으로 배워야 할 교훈을 편리한 공식으로 대체하려는 사람이 많습니다. 좋은 문구를 반복적으로 되뇌면서 확언하는 습관을 들이면 정신은 기뻐할지 몰라도, 내 손으로 판 구덩이에서 나를 꺼내 주는 데 직접적인 도움이 되지는 않습니다. 사실이 아닌 것을 확언하거나 명백한 사실을 부정하는 것은 바보짓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내 생각이 옳다며 끝까지 고집을 피웁니다.
- 제인은 숭고한 계시를 받드는 신도들의 놀라운 간증에 사로잡혔습니다. 아우라를 볼 줄 안다는 한 점잖은 노인은 제인을 감싸고 있는 초능력의 빛을 대번에 알아봤다고 그녀에게 얘기했습니다. 사람의 전생을 볼 줄 아는 특기를 가진 신도는 놀란 표정을 지으며 제인이 전생에서 캐서린 디 메디치였다고 선언했습니다. 지금껏 별 볼 일 없는 인생을 살았던 제인의 영혼을 채워주는 놀라운 계시였습니다. '영감의 원천'에 가까이 접근할 수 있고 우주적 깨달음에 도달하기 일보 직전의 상태라는 어느 신도는 경이로운 별들의 세계에 관한 이야기를 공유하는 특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언제나 싱글벙글 웃고 있는 한 중년의 여성은 육신을 떠나 영계를 탐험할 수 있고, 요즘엔 대부분 시간을 제7의 진동계를 유영하는 일에 소비하고 있다고 제인에게 몰래 귀띔해줬습니다. 하지만 낙원에는 뱀도 있기 마련인 법. 어느 날 독신의 여신도가 제인에게 비밀 유지를 당부하며 충격적인 사실을 폭로했습니다.
- 제인을 말로 설득하려는 노력은 별다른 효과를 발휘하지 못했습니다. 그녀는 자기가 남보다 뛰어난 사람이라는 확신을 버리지 못했습니다. 제인은 지금까지 살면서 솔직한 자기 성찰을 해본 적이 없었습니다. 그럴만한 기회가 있을 때마다 외면하고 도망치며 살았습니다. 현재로서는 고차원의 신비주의 지식을 이해할 능력이 부족하고, 내면에서 이미 높은 수준의 안전을 확보한 사람에게나 적합한 종교적 수련을 시작하기에는 준비가 되어있지 않았다는 뉘앙스의 말조차 용납하지 않았습니다. 노력도 기울이지 않으면서 대단한 사람이 되겠다는 엉뚱한 야망으로 인해 망상에 빠지게 되었다는 현실을 인정하려면 굉장한 도덕적 용기가 필요한데, 제인은 그런 힘을 내기에는 역부족이었습니다. 본인의 망상과 곁에서 부추기는 동료들로 인해 발생한 허위 심령 현상은 어느새 제인에게 현실이 되어버렸고, 그녀는 그 체험을 통해 의식이 진짜로 크게 확장되었다는 믿음을 버리지 못했습니다. 이 놀라운 체험을 허위로 규정하는 것은 감각기관이 전달한 객관적 정보를 부정하는 것이나 다름없었습니다. 그녀는 감정의 압력이 강해지면 감각을 통해 인지한 정보가 왜곡되고 자신을 속일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습니다. 인간의 심리에 대해 아는 것도 없고, 고차원의 신비주의 철학에 관해 한 번도 공부해본 적이 없는 그녀는 위기가 닥쳤을 때 활용할 수 있는 기초적이고 필수적인 지식을 전혀 보유하고 있지 않았습니다.
- 이 딱한 여인은 엉뚱한 일에 빠져 헤매는 동안 단순하고 쓸모 있는 삶의 목표에 관한 감각을 대부분 잃었습니다. 수년간 걱정과 불안감에 사로잡혀 꼼짝도 못 하고, 본인에게도, 세상에도 도움이 안 되는 사람으로 변해 갔습니다. 냉정하게 말해, 지금까지의 삶을 정당화할 만한 일도 해낸 것이 없었습니다. 사회에 적응하며 소박하게 사는 것의 중요성을 일찌감치 알았더라면 그녀도 열심히 일하며 얼마든지 건설적이고 행복한 사람이 될 수 있었습니다. 자연스럽고 낙천적인 관점을 유지하면서 살면 인생에서 닥치는 부정적인 일도 대부분 극복할 수 있다는 사실을 기억했더라면 불만과 억압을 키우는 대신 꿈과 소망을 성취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제인이 삶을 바로잡는 방법은 하나밖에 없습니다. 지금 당장 정신 차리고 신변을 정리하는 것입니다.
- 동봉된 신청서를 작성하여 10달러만 보내면 이 모든 것을 손에 넣을 수 있었습니다. 의욕에 넘친 존은 매일 밤늦게까지 공부에 공부를 거듭했습니다. 기초적인 학습 능력도 없으면서 난해하고 추상적인 카발라의 미스터리와 브라만의 수련 기법을 이해하기 위해 수험생처럼 매달렸습니다. 나는 고급 지식을 받을 자격이 있는 사람이라는 확신을 얻기 위해 존은 먼지 쌓인 사전까지 책장에서 꺼내 들었습니다. 그 운명의 편지를 받기 전까지는 카발라에 대해 들어본 적도 없고, 브라만이 어느 나라에 사는 사람들 인지도 몰랐기 때문입니다.
- 종교의 역사를 공부한 후에는 비교종교학을 공부해야 합니다. 이를 통해 인류가 영성 분야에서 계발한 다양한 개념을 접할 수 있고, 오늘날 새롭게 주목받고 있는 사상이 대부분 인류 역사 초기부터 존재했었다는 사실도 알게 됩니다. 비교종교학 공부를 완전히 마치기 전에 기본만 습득해도 전 세계 종교 지도자들의 90%보다 더 많은 식견을 보유하게 될 것입니다. 이 공부를 통해 경전 해석의 오류와 의도적인 왜곡의 사례를 식별하는 안목도 기를 수 있습니다. 분별력이 강해지면서 속임수에 쉽게 넘어가지도 않고, 컬트가 난무하는 세상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생존할 수 있습니다.
- 종교에 관한 어느 정도의 지식기반을 갖춘 후에는 다양한 단체와 종파들이 내세우는 주장과 허세를 종교학 분야 전문가들의 설명과 비교해볼 수 있습니다. 이처럼 간단한 절차만으로 거짓 단체들의 대부분을 솎아내고 속임수로부터 자신을 보호할 수 있습니다.
- 분별력이 좋아져 지혜로운 선택을 내릴 수 있을 때까지는 시간이 곧 생명이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에게는 물질 세상에서 활동할 수 있는 일정한 시간이 주어졌습니다. 이 소중한 기회를 쓸모없는 일에 집중하면서 버리지 않도록 주의해야 합니다. 확실하지도 않은 희한한 교리를 내세우는 것 외에 다수의 영성 단체와 종파가 인간 사회의 발전에 공헌하는 것이 뭐가 있습니까? 단체에 속한 신도들은 한동안 에고의 갈증을 충족시키며 하늘을 걷듯 둥둥 떠다니지만, 이들이 타인에게 감사받을 만한 일을 성취한 것이 과연 얼마나 될까요? 이런 단체에 속한 신도들은 삶의 기본적인 책무를 외면하고 영적 야망의 실현에만 사로잡히는 경향이 있습니다.
- 내가 전생에서 무슨 일을 하는 사람이었는지 알면 재미는 있겠지만, 그보다는 이번 생에서 내가 뭘 해야 하는지 아는 것이 더 중요하고 쓸모 있는 일입니다. 종교는 이론보다 실천이 훨씬 더 어럽습니다.
- 종교적인 삶을 사는 사람들이 신념을 실용적인 능력으로 변환하는 일의 중요성을 깨달을 수 있다면 세상이 진보하는 것은 물론이고, 자기의 신념이 옳았다는 확신도 얻게 될 것입니다. 의료 선교단을 대표적인 예로 들 수 있습니다. 종교적 신념을 확장함으로써 쓸모 있는 일에 헌신한 가장 성공적인 사례가 아닐까 생각됩니다. 악조건에서도 인내심을 발휘하며 문명의 혜택을 받지 못하는 전 세계 오지의 마을에 의료, 위생, 청결 서비스를 제공한 의료진에게 수천여 공동체가 진심이 담긴 감사와 애정을 표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이타적으로 봉사하는 의료 선교사는 이상주의를 추구하는 모든 종교와 단체에서 공통으로 발견할 수 있습니다. 의료 선교사는 자신의 영적 신념과 실용적으로 쓸모 있는 기술을 결합하고 조화시키는 방법을 터득한 사람입니다. 종교의 가르침을 통해 자기가 해야 할 일을 알게 되고, 자기에게 주어진 전문가적 소양을 실생활에 적용하고 실천함으로써 진정으로 종교적인 삶을 사는 사람입니다. 형이상학의 이상은 학교, 비즈니스, 상거래에서도 필요합니다. 하지만 말로만 형이상학을 외치는 사람이 아니라 이를 현실에 적용할 능력이 있는 사람이 주도해야 의미 있는 변화가 일어날 수 있습니다. 종교적, 영적 신념을 실행으로 옮기는 전문 능력 계발의 필요성에 공감할 수 있다면 형이상학적 소화불량과 종교적 질병에 시달리는 일도 큰 폭으로 줄어들 것입니다. 인간이 세상에서 해야 할 일에 관한 의지를 강화하지 않는 교리는 위험합니다. 행동하기 싫어하는 다수에게 말로 열심히 교리를 전파하는 것보다는 솔선수범으로 가르침을 보여줬을 때 교리도 의미를 지닐 수 있습니다.
- 인간이 더 많이 알았더라면 더 낫게 행동했으리라는 주장은 어리석은 생각입니다. 인간은 오래전부터 올바른 행동규범을 진리로 인정하고 이론적으로 존중했습니다. 하지만 이를 실천하기 위한 에너지와 정직성은 부족했습니다. 이 현상을 사회적 관점에서 설명하는 것도 무리가 있습니다. 불평등한 소득의 분배, 문화를 누릴 특권의 부재 또는 열악한 근로 환경 때문에 인간이 부패하는 것이 아닙니다. 똑똑하고 교육을 많이 받은 계층일수록 올바르게 행동하지 않는 사람의 비중이 더 높습니다. 이기적인 사람이 공부를 많이 하면 자기에게 주어진 기회와 특권을 남용하는 기술과 잔머리가 늡니다. 우리의 인생철학에 큰 오류가 있다고 지적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잘못된 사상과 개념에 길든 사람을 오히려 피해자라고 여기는 분위기도 있는데, 이건 나와 이웃의 비행을 눈감아주자는 얘기나 다름없습니다.
- 그는 형이상학의 전문가가 되면 과거에 잠겨 살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희한한 생각에 빠졌습니다. 성공학에 관한 책도 쓰고 싶다고 했습니다. 제발 인류가 레지로부터 보호되었으면 하는 바람인데, 저의 바람이 과연 이루어질지는 의문입니다. 레지 같은 사람의 생각이 영성계에서는 '계시'로 둔갑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 그녀는 인도주의의 전사라는 어려운 책무를 자청하기 전에 내면의 충동을 점검하고 본인의 인격부터 계발해야 했습니다. 누군가에게 필요한 존재가 되고 인생의 목표를 찾고 싶다는 이기적인 욕망이 어우러진 그녀의 숨은 동기는 오히려 역효과를 발휘하면서 끝없는 슬픔과 어려움을 유발하는 결과로 이어졌습니다.
- 사람을 돕는 것보다는 원칙을 위해 봉사하는 것이 훨씬 더 효과적입니다. 하지만 추상적인 개념인 원칙을 직접적인 방식으로 섬기기는 어려우므로, 현실적으로는 원칙을 실천하고 섬기는 사람을 돕는 것이 가장 실용적입니다. 모든 인간의 내면에 잠재된 강인함을 밖으로 끄집어낼 수 있도록 돕는 것입니다. 부처가 불교의 공덕 체계를 설명하면서 이 개념을 아주 잘 요약했습니다. "사람이 자기 자신을 도울 수 있도록 돕는 사람은 공덕을 쌓고, 많은 사람을 돕고 있는 사람을 도우면 더 큰 공덕을 쌓는다." 사람을 도울 때 상대방에게 집착하지 않는 것도 중요합니다. 도운 것에 대한 보상을 기대하지도, 필요로 하지도, 요구하지도 않으면 상대방은 자발적으로 감사를 표시합니다. 하지만 보상을 기대하고 요구하면 나의 그런 마음이 무의식적으로 전해져 상대방의 자연스럽고 자발적인 감사 표시를 차단해버리는 결과를 낳을 수도 있습니다. 선행은 그 자체로서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뭔가를 바라고 하는 선행은 진짜 선행이 아닙니다. 물질적 보상이 아니라 단지 개인적인 만족감을 바라는 것이라고 해도 마찬가지입니다.
- 인간이 가끔 체험하는 '놀라운 비전'은 대부분 일종의 심리 현상으로 판단하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그럴 수밖에 없습니다. 신비스러운 체험을 한 후에는 사람의 행동이 근본적으로 바뀌고 새로운 능력도 생겨나야 하는데, 아무런 변화도 없다면 그건 진짜 체험도 아니고 '깨달음'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지적으로 많이 발달한 사람일수록 신비체험을 하는 경우가 드물다는 점도 기억해야 합니다. 초월적인 현실을 체험하기 위해 천재이거나 학식이 풍부해야 할 필요는 없습니다. 지능보다는 사람의 기본적인 정직성이 훨씬 더 중요합니다. 역사적으로 많은 신비주의자가 자기의 체험을 공유했는데, 이들은 모두 행동을 통해 단순하고 강력한 신념을 실천으로 옮기며 헌신했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 이 성자들은 불굴의 의지로 자기를 통제하고 억제하여 미덕의 경지에 도달한 사람들이 아닙니다. 날마다 내면의 파괴적 성향과 이기적 본능을 상대로 전쟁을 치른 사람들도 아닙니다. 이들은 자애롭고 진심 어린 자세로 삶의 고난을 받아들였습니다. 불평하지도, 항변하지도 않았습니다. 그저 내면에 깃든 신념을 따르며 삶에 임했을 뿐입니다. 영혼에서 진정한 힘의 원천을 발견하고 이에 의지했던 이들은 어려움이 찾아올 때마다 영혼의 도움을 받았고, 큰 축복을 받고도 겸손을 잃지 않았습니다. 진정한 깨달음을 얻은 사람들의 인격 패턴이 이렇다면, 인격이 그리 훌륭하지도 좋지도 않은 사람이 했다는 신비체험은 일단 의심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나 자신을 솔직하게 평가했을 때 인격 면에서 여러 하자가 있고, 나만의 확신 외에는 내가 남보다 뛰어나다는 근거를 발견할 수 없다면 아직은 놀라운 깨달음에 이를 준비가 되지 않았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 초감각적인 체험의 속성을 보면 그 체험의 대략적인 수준도 파악할 수 있습니다. 결과를 보면 더욱 명확해집니다. 환영은 거의 항상 문제를 일으킵니다. 환영은 대체로 의미가 없고 어떠한 실질적인 결과로도 귀착되지 않는다는 속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반평생 동안 거의 하루도 빠지지 않고 정체를 알 수 없는 유사 심리적 현상을 체험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 많은 체험에도 불구하고 그의 삶에는 큰 변화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전보다 지혜롭고 선량한 사람으로 변신한 것도 아니고, 그의 삶을 지배한 각종 비전, 꿈, 심볼이 일상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된 적도 없었습니다. 오히려 그는 삶의 자연스러운 방향성을 상실하며 더욱 궁핍해졌습니다. 온갖 신기한 체험으로 무장한 그는 자기가 '한때 속해 있던 옛 세상'은 너무 초라하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더 나은 세상'에서 정상적으로 기능할 역량을 가진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날이 갈수록 인격은 허물어졌고, 그는 마치 중독증 환자처럼 심리 현상에 매달리며 하루하루를 버텼습니다. 그가 받는 새로운 '계시'는 이전에 받은 계시보다 항상 더 화려했고, 내용은 이에 반비례하여 갈수록 속 빈 강정이 되어갔습니다.
- 심리적 황홀감도 습관이 될 수 있습니다. 이게 중독이 되면 다음번 체험만을 학수고대하며 살아가는 딱한 처지에 놓이게 됩니다. 신비체험이 내게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궁금하다면 친구들과 가족에게 한번 물어보시기 바랍니다. 내가 그 체험 이후 한층 더 성숙한 사람이 되었는지, 아니면 삶이 이상한 방향으로 흘러가기 시작하면서 괴팍하고 우스꽝스러운 사람이 되었는지 얘기해줄 것입니다. 그들이 나의 놀라운 초자연적 능력을 이해하지 못해서 무턱대고 욕하는 것이라고 섣불리 판단해서는 안 됩니다. 이번에도 언제 어디서나 완벽하게 작동하는 인과관계의 법칙을 생각해봐야 합니다. 내면에서 어떤 깨달음을 얻으면 일련의 새로운 원인이 생성되며, 이에 상응하는 결과가 행동으로 나타나게 되어 막상 나는 전보다 더 못난 사람이 되어가고 있다면 뭔가 큰 문제가 있다는 뜻입니다. 신비체험을 통해 얻은 내면의 지침이 내가 '깨달음'을 얻기 전부터 간절히 전했던 방향으로 나아가라고 부추기고 있다면, 이것 역시 좋지 않은 징후입니다. 신비체험을 했다고 주장하며 은근히 자기의 행동을 정당화하는 사례도 심심찮게 볼 수 있습니다. 바뀐 것이 하나도 없다는 뜻입니다. 부적절한 것에다가 멋대로 신성을 부여하여 나를 정당화하려는 시도에 지나지 않습니다. 일반적인 분노를 '정당한 분노'로 포장한 것과 다를 바 없습니다. 분노하는 마음이 여전히 남아있다는 사실에는 변화가 없습니다. 전보다 나아진 것은 하나도 없는 셈입니다.
- 본래의 질문으로 돌아가 제가 제안하고 싶은 것은 지금 당장 쓸모가 있는 직관적, 영적 메시지만 받아들이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도저히 헤아릴 수 없는, 매우 추상적이고 이상적인 곳에 오르는 운명을 타고났다는 식의 체험에 깊게 빠져 명상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인간은 누구나 남보다 잘난 사람이 되고 싶은 본능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내가 우월하다는 증거를 찾아내지 못하면 속이 답답하고, 평범함에서 탈출하기 위해 내 머릿속에서만 존재하는 환상의 세계를 만들어낼 수도 있습니다. 사람들이 나를 이해하지 못해서 나에게 감사할 줄 모르는 것이고, 나의 내면에는 남에게는 없는 놀라운 선물과 깨달음이 있으므로 불공평한 처사를 버텨내는 수밖에 없다는 식으로 자기를 세뇌하는 것입니다. 이런 심리적 압력을 해소하지 않으면 서서히 두려움과 불안의 원인으로 변합니다. 아름답고 황홀했던 환상의 세계도 서서히 악몽으로 둔갑합니다. 증오로 가득한 목소리가 들려오면서 평온을 깨고, 소름 끼치는 귀신들이 꿈에 나타나 나를 괴롭힙니다. 상식이 마비되면서 범죄를 저지르거나 자살하고 싶은 충동이 생겨날 수도 있습니다. 환상의 압박에 짓눌리면서 정상적인 삶을 영위하는 역량이 약해지고, 심리적으로 병들어 의식이 정상보다 낮은 수준으로 퇴화한 결과입니다. 제가 지금까지 관찰한 바에 따르면, 아름다운 비전과 꿈이 시간이 흐르면서 마수를 드러내고 비도덕적인 행동을 부추기는 사례가 많은 것 같습니다. 상상의 노예가 되어 나를 지배하도록 허용하면 그동안 숨겨져 있던 나의 결점들이 정당화라는 갑주를 걸치고 그 모습을 드러냅니다.
- 사도 바울은 "영을 시험해 보라."라고 조언했습니다. 객관적인 수단으로 주관적인 체험의 유효성을 검증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삶을 충분히 경험하고 분별력을 키우지도 못한 상태에서 내 이해력을 초월하는 개념과 교리를 이해하려 들면 기준점과 중심을 잃고 사실관계에 대한 감각도 무뎌집니다. 존재하지 않는 환상의 세계로 진입하는 첫걸음입니다. 이정표를 상실한 상태로 추상적인 세상에서 방랑하다가 '미지의 것'이 내뿜는 치명적인 매력에 푹 빠져버립니다. 하지만 이 '미지의 것'은 당사자의 내적 압력을 비추는 거울에 불과합니다. 내 안의 어지러운 심리 상태를 재료로 신기한 미스터리를 만들어내고, 결국에는 내 안의 끔찍한 모습을 보고 공포에 시달리게 되는 것입니다. 영적이면서 동시에 합리적인 인간은 자연스럽고 단순한 성장의 과정을 거치면서 객관적/주관적인 자각의 힘과 사색의 역량이 발전하는 경험을 합니다. 이런 역량이 정상적인 방법으로 계발되면 규율 잡힌 정신과 잘 다스려진 감정에 의해 든든하게 지탱되며, 이런 상태에서는 자기기만에 빠질 가능성도 적습니다. 이해력이 높아졌기 때문에 성숙하지 않은 감정과 정신이 모의하여 불순한 동기를 품지 못하게 되고, 상상의 산물을 제멋대로 왜곡하는 힘도 잃습니다. 심리적 체험이 나는 물론이고 주변 사람들에게까지 피해를 주는 지경까지 이르렀다면, 망상은 내가 진실로 믿으며 힘을 실어줘야만 생존할 수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환상은 무관심을 견뎌내지 못합니다. 자기 망상에 빠진 피해자가 이 사실을 명확하게 인지하고 건설적인 활동으로 눈길을 돌리면 자기를 괴롭혔던 비전들도 점차 사라집니다. 망상의 악순환에서 해방되기 위한 첫 번째 조건은 정직함입니다. 정직하면 모든 것이 가능해지지만, 정직하지 않았을 때 돌아오는 결과는 비극뿐입니다.
- 인간은 환경과 역사 인식의 강한 영향을 받습니다. 자기가 속한 세대의 편견과 선입견으로부터 완전하게 자유로운 사람은 없습니다. 나에게 익숙한 삶의 패턴이 영속될 것이고, 내가 받아들인 교리가 먼 미래의 세대에게도 절대적인 영향을 줄 것으로 생각하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오래전에 살았던 조상들도 지금의 우리와 비슷한 문제를 겪었습니다. 전쟁은 끊이지 않았고, 지도자는 대부분 독재자였고, 상인들은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으며 상대방을 속였고, 종교는 생존하기 위해 본래의 가르침보다는 당대의 대세를 따르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슬픔으로 점철된 인류의 오랜 역사 동안 인간이 신으로부터 영감을 받아 제정했다는 도덕과 윤리의 법칙을 온전하게 따르며 실천했던 적은 한 번도 없습니다.
- 세계의 모든 주요 종교는 아시아 대륙에서 유래되었습니다. 지형, 기후, 그리고 농업의 생산성은 인간의 신앙심과도 직결됩니다. 먹거리가 풍부한 지역의 신은 자애로운 존재로 묘사됩니다. 반면 매일 생존을 위해 투쟁해야 하는 악천후 조건에서 사는 민족의 신은 강인한 모습을 띠고 있습니다. 즉, 인간의 경험이 초기 종교의 개넘에도 많이 투영되었다는 얘기입니다. 예를 들어, 중앙아시아의 어떤 부족은 죽음의 신이 네 개의 얼굴을 가지고 있다고 믿었습니다. 독실한 신자들은 이 개념을 당연안 상식으로 받아들였고, 죽음의 신이 네 갈래의 길을 감시하고 보호할 수 있도록 교차로마다 신의 형상을 만들어 세웠습니다. 당시 교차로는 죽음의 상징물로 여겨졌습니다. 교차로를 통과하여 공동체를 방문하는 여행객들이 전염병을 옮기는 사례가 많았기 때문입니다. 현대인의 관점에서는 우스꽝스러운 미신으로 들릴 수 있겠지만, 주기적으로 흑사병이 창궐했던 시대에 유럽에서는 모든 교차로마다 주변 마을을 보호하기 위한 목적으로 도로변에 성지를 지었습니다. 초기 종교에 내포되어 있었던 많은 개념이 현대인의 시각에서는 와닿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수천 년 전에 살았던 조상들이 정확히 어떤 생각을 하며 살았는지 우리가 완전하게 이해하기란 아마 불가능할 것입니다. 우리는 그들을 이해하기 위해 새로운 관점에서 경전의 해석을 시도했습니다. 문자 그대로 해석했을 때 이해가 안 되는 내용에는 상징적인 의미가 담겨 있을 수 있다는 가설을 세웠고, 이 전략을 통해 많은 오해와 논란을 해소하기도 했습니다.
- 아크나톤(Akhenaten)이라는 이름으로 더 잘 알려진 이집트의 파라오, 아멘호테프 4세(Amenhotep IV)는 약 기원전 1388년에 태어났습니다. 찰스 프란시스 포터는 저서 <종교의 역사>에서 이 위대한 신비주의자를 다음과 같이 평가했습니다. "아크나톤은 세계 최초의 평화주의자, 최초의 현실주의자, 최초의 일신교도, 최초의 민주주의자, 최초의 이단자, 최초의 인도주의자, 최초의 국제주의자, 그리고 최초로 종교의 창시를 시도했던 사람이었다. 그는 시대를 잘못 타고 태어난 사람이었다. 수천 년을 앞서 갔던 사람이었다." 아크나톤이 현대를 사는 우리만큼 아는 것이 많지 않았고, 다양한 주제에 관해 잘못된 지식을 가지고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은 전혀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는 매우 헌신적이고 훌륭한 인간이었습니다. 그는 모든 인간이 평등하며, 신은 아군과 적군을 구분하지 않고 모두 사랑한다고 믿었습니다. 그는 적을 죽이기 위해 전쟁을 치르기보다는 자신의 제국이 붕괴하는 편을 택했습니다. 아크나톤의 미라가 모셔진 관의 받침대에는 다음과 같은 기도문이 새겨져 있습니다.
"나는 신의 입에서 나오는 달콤한 숨결을 마십니다. 나는 신의 아름다운 모습을 매일 봅니다. 나는 신의 달콤한 음성을 듣고 싶습니다. 북풍일지라도 괜찮습니다. 신의 사랑으로 나의 사지에 생명이 깃들기를 바랍니다. 신이시여, 내게 손을 뻗어주소서. 내가 당신의 손을 잡고 일어설 수 있도록 허락해 주소서. 내 이름을 불러 영원으로 인도해 주소서."
- 신도들의 혼란을 유발할 수 있는 미심쩍은 계시를 모두 통합하여 교통정리해주는 것이 바로 산상수훈(Sermon on the Mount)입니다. 기독교 신앙의 핵심을 완벽하게 표현한 가르침이라 할 수 있습니다. 현대 크리스천이 산상수훈에 포함된 팔복(Beatitudes)을 다 지키며 사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얘기하는 목사들도 있습니다. 이것 역시 많은 사람이 경전의 가르침에 항의하는 이유 중 하나입니다. 내가 실천하고 싶은 수준보다 더 많은 것을 요구하고 있기 때문에 부정하는 것입니다. 부담스러워서 싫다고 솔직하게 인정하는 것보다는 좋은 가르침이라도 깎아내리는 것이 훨씬 편합니다.
- "진리란 무엇인가?"라는 기본적인 질문에 관해서도 사람마다 의견이 다릅니다. 하지만 인간의 가슴속 깊은 곳에 이집트인들이 '문을 여는 자(The Opener of the Door)'라 칭했던 신비스러운 힘이 있다는 사실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습니다. 종교는 많은 사람이 '신'이라 부르는 신비스러운 원천에서 비롯되어 인간의 가슴을 통해 세상에 나왔습니다. 시대를 거치면서 인간은 경전을 다른 언어로 번역하고 재번역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본래의 의미가 퇴색되기도 하고, 독실한 편집자들에 의해 내용이 변형되기도 했습니다. 지금 남아있는 것은 고대 원본의 그림자에 불과합니다. 하지만 그 그림자와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한껏 풍요로워집니다. 바쁘고 혼란스러운 일상 중에서도 잠시나마 나의 약점을 초월하고 영원한 진리의 토대를 어렴풋이나마 체험할 수 있습니다. 그게 중요한 것입니다.
- 대부분 경전은 도면의 형식으로 가르침을 전달합니다. 이 가르침은 우리의 인격을 계발하는 열쇠입니다. 경전에는 우리가 꼭 알아야 할 가르침도 있고, 알면 좋은 내용도 있고, 몰라도 사는 데 큰 지장이 없는 내용도 있습니다. 전 세계 주요 종교들의 가르침을 합치면 그 안에서 우리가 오늘날 겪고 있는 거의 모든 문제에 관한 해법을 찾아낼 수 있습니다. 중국에서도 배울 것이 있고, 페르시아에서도 배울 것이 있습니다. 부처는 팔정도를 전수했고, 조로아스터는 아베스타(Hymns of the Avesta)를 남겼습니다.
- 아버지에게 순종한 큰아들의 이야기는 힌두교 철학에도 등장합니다. 쿠마라들은 영원히 동정을 지키는 신의 아들들로, 창조 활동을 거부하고 육신을 걸치며 여러 차례 물질 세상에서 환생하는 윤회의 프로그램에 참여하지 않습니다. 둘째 아들(탕아)이 아버지를 졸라서 물려받은 재산에는 물질뿐 아니라 영적 자산도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그는 재산을 챙겨 들고 어둠과 죄악이 지배하는 지역으로 모험을 떠납니다. 그는 아버지로부터 행복을 성취하고 깨달음을 얻을 수 있는 능력을 유산으로 받았지만, 가진 것을 다 낭비하고 나쁜 짓을 일삼는 삶을 택했습니다. 그는 결국 모든 것을 잃고 영적으로, 물질적으로 파산에 이릅니다. 태초의 인간이 부패하고 타락하는 과정을 다룬 전설과 일맥상통하는 이야기입니다.
- <돌아온 탕아>는 결국 인간이 성장하는 순환의 과정을 이야기의 형식으로 표현한 우화입니다. 영지주의 철학에도 같은 메시지를 전하는 이야기가 등장합니다. <영광의 예복(The Hymn of the Robe of Glory)>은 생성의 미스터리에 빠진 인간의 영혼이 자신의 원천과 기원을 망각하게 된 이야기를 다룬 우화입니다. 인간의 역량이 물질의 늪에 잠기면 통찰력을 상실하게 됩니다. 그래서 인간은 속수무책의 상태로 물질 세상에 태어납니다. 하지만 자기의 기원과 운명에 관한 직관적 느낌은 희미하게 남아있습니다.
- 이집트 전통에서 심판을 받는 망자의 영혼은 마아트 여신의 깃털 맞은편에 있는 저울의 접시 위에 놓입니다. 마아트의 깃털은 평소에는 무게가 없지만, 저울 위에 놓이면 영혼의 미덕과 악덕을 두루 고려하여 저울을 움직입니다. "나는 ~하지 않았습니다. "의 형식으로 되어있는 42가지의 부정 고해는 입이 아니라 가슴에서 나와야 합니다. 내가 지은 죄에 대한 진실하고 완전한 속죄이자 잘못을 바로잡겠다는 확고한 의지의 표현이어야 합니다. 잘못을 바로잡는다는 것은 가볍게 여길 일이 아닙니다. 겟세마네의 동산을 통과하는 고동스러운 경험일 수도 있습니다. 오래된 습관을 끊어버리는 일에는 큰 고통이 뒤따릅니다.
- 진보는 천연자원을 얼마나 많이 고갈시켰느냐가 아니라 인격을 얼마큼 계발했는지를 기준으로 평가해야 합니다. 지금과 같은 식으로 계속 가다가는 '미덕이 강요되는' 날이 올 것입니다. 환경을 파괴하고 천연자원을 거덜 낸 후, 생존하기 위해 내면의 자원을 끄집어내고 다듬어야만 하는 날이 올 것입니다. 내가 더 부자가 되려면 다른 누군가가 더 가난해져야 합니다. 하지만 더 지혜로워지는 것은 타인의 생존과 안전을 위협하지 않으면서도 얼마든지 가능합니다.
- 하지만 뜬금없이 종교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한 사람 중에는 내적으로 불안한 사람이 많습니다. 좌절감, 노이로제, 콤플렉스로부터 도피하기 위해 영적 위안을 추구한 것이라면 '새로운 사람'이 된 후에도 얼굴에서 우울한 표정이 지워지지 않습니다. 어떤 종교 단체에 소속된다고 해서 자동으로 치유가 일어나는 것이 아닙니다. 내면의 압력을 분출할 수 있는 새로운 통로가 생겨난 것뿐입니다. 대화할 때 사용하는 단어가 달라지고, 기존의 변명이 각색되고, 내 부정적 관점을 새로운 각도에서 조명하기 시작했을 뿐, 본질은 바뀌지 않은 것입니다. 남을 비판하는 성향은 나쁜 버릇입니다. 그런데 이 나쁜 버릇에 종교라는 가면을 씌우면 미덕으로 보일 수 있습니다. 심지어 타인의 영혼을 구원하기 위해 열성적으로 헌신하는 사람이라는 평판을 얻게 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근본적으로 바뀐 것은 없습니다. 남을 비판하기 좋아하는 고약한 성격의 소유자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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