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 : 피터 스탠퍼드 / 차백만
원제 : Judas
출판 : 미래의창
출간 : 2016.12.26
제목이 너무 도발적이라 읽어 보았다. 학자라기보다는 저널리스트라고 보아야 할 저자의 이력 중 눈에 띄는 다른 저작으로 <악마: 일대기 The Devil: A Biography>, <여자 교황 The She-Pope> 등이 있다.
저자는 학술서 같은 무게감 있는 전개보다는 편안하게 흘러가는 스토리텔링적인 글로 각 시대에 따른 '유다'를 짚어냈다. 시대상과 필요성에 따라 달라진 해석이 회화나 문학, 음악과 영화 등의 2차 창작물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까지 다루고 있어 관심이 간다면 풍부하게 뻗어나갈 여지도 남겨두고 있다. 직접 예루살렘과 하켈다마, 또 노퍽과 모어튼을 방문해 유다의 흔적들을 더듬어나가며 느낀 점들, 실제로 본 감상들을 함께 남긴다.
용서받을 수 없는 죄인 중의 죄인으로 낙인찍힌 유다.
과연 그의 죄는 그만의 것일까? 그가 아니었어도 예수는 인간을 위해 희생 제물이 되어야 했던 게 아닐까?
그렇다면 누구라도 선택되어야 했을 그 무게를 거룩한 계획 속에서 그가 짊어지게 된 것은 아니었을까?
모든 것이 그의 악함으로 인한 것이라면, 회개하는 자는 모두 받아주시는 사랑의 품 안에 그의 영혼도 안겨야 하는 것은 아닐까?
한 번쯤 품어볼 법한 의문을 하나하나 따라가며 비슷한 시각을 가졌던 사람들의 저작을 다루어주는 <예정된 악인, 유다>는 가볍다고만 말할 수 없는 재미난 책이었다. (그렇다고 상당한 권위나 무게를 가진 글이라고 할 수도 없지만. 한 번쯤 읽어보는 것도 괜찮았다고 생각한다.)
- 문화역사학자이자 인류학자 르네 지라르의 대단히 우수한 학술서 <희생양 Le Bouc emissaire>은 사회적 희생양 -가족이나 공동체, 사회에서 일어나는 불운이나 재앙의 원인으로 내몰려 억울하게 사람들의 지탄을 받게 된 이들로서, 대체로 구성원들의 귀책을 전가하기 위한 방편으로 이용된다- 에게서 발견되는 공통적인 특징을 나열한다. 지라르의 핵심 주장은, 사회적 희생양의 공통적 특질들이 원래 그들이 지니고 있던 특질이 아니라 사회가 그들에게 투영한 특질로 이 과정이 바로 희생양을 진정한 희생양으로 만드는 과정이라는 것이다. 특히 사대 복음서처럼 특정 사건을 서술할 때, 이런 특질들이 특정 인물에게 입혀지면 그 사람은 희생양이 된다. 지라르가 나열한 사회적 희생양의 특질 중 두드러지는 것 하나가 바로 희생양은 처음부터 명백하게 조금 특이한 사람, 즉 아웃사이더로 묘사된다는 점이다.
- 당시의 유대인 풍속에서 사내들 간의 입맞춤은 친한 사이에서 흔한 인사였다. 물론 이후로 이 흔한 인사의 입맞춤은 세월을 거치면서 더 큰 의미를 부여받지만, 아무튼 이 대목에서 상징하는 것은 보편적인 우정의 표시인 이 입맞춤의 뒤에 숨은 배신이다. 사실 만약 유다가 평상시에 예수에게 자주 입을 맞추지 않았다면, 군이 칼과 몽둥이 들든 무리들에게 예수가 누구인지를 알려주는 신호로 입맞춤을 선택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따라서 유다의 입맞춤은 일상적인 행위였고, 당연히 다른 이들도 특별하게 생각하지 않았을 것이기에 유다가 스승을 배신하는 죄책감을 감추기에도 안성맞춤이었다. 하지만 종종 계획은 예상과는 다른 방향으로 전개된다.
(리뷰자 주 : <가윈 경과 녹색 기사>에서 가윈 경의 입맞춤 또한 연결해서 생각해 볼 수 있다. 그가 거짓말을 해 주인을 속였다는 점에서도 그렇다. 이런 시각에서 본다면 <그린나이트>에서 가웨인의 노란색과 붉은색은 또 다른 의미를 가진다.)
- 16세기 초 작품인 뵐러슬레벤 삼면회화 Wüllersleben Triptych는 원래 독일 동부에 위치했던 교구교회의 제단에 그려진 그림인데 겟세마네에서 예수가 겪은 수난을 묘사하고 있다. 겟세마네 동산으로 다가가는 유다는 다른 제자들보다 유달리 눈에 띄는데, 그가 밝은 노란색 옷을 입고 있기 때문이다. 중세의 상징체계에서 노란색은 배반의 색이면서, 동시에 처음에는 북부 유럽 지역에서 출발해 이후 이탈리아에 이르기까지 교회가 발표한 다양한 반유대주의 칙령을 통해 (이슬람교도들과 함께) 유대인들에게 지정된 색상이었다. 노란색은 단번에 눈에 띄고, 어지간해선 혼동되지 않는 색상이다. 제4차 라테라노 공의회는 칙령을 통해 노란색을 입은 자들을 이방인이자 아웃사이더, 다시 말해 가까이해서도 신뢰해서도 안 될 이들로 지정했다.
- 그 당시 사도교회 -오늘날 조직화된 기독교 종파의 선구자로 보면 된다- 를 비롯해 여러 종파가 난립해 있었다. 그중 두드러진 것이 앞에서 언급한 유대인 기독교다. 예수의 형제 야고보가 이끌던 유대인 기독교는 원래 예루살렘을 근거지로 출발했으나, 당시에는 이미 시리아 동부까지 퍼져 있었다. 유대인 기독교도들은 시리아 동부지역에서 금욕하며 빈궁한 삶을 살았는데, 그 때문에 에비온 파 Ebionite로 알려지기도 했다(에비온 ebyon은 '가난'을 뜻하는 히브리어다). 에비온 파의 금욕적인 생활양식은 오늘날 기독교 수도원과 수녀원에서도 계속 이어지고 있다. 다만 에비온파가 오늘날의 기독교 금욕주의와 다른 점은 그들이 여전히 유대교 전통과 예수의 삶이 조화될 수 있다는 희망을 품고 있다는 것이다. 사도교회는 이런 가능성을 거부했다. 그렇다고 해서 예수와 유대교 간의 관련성을 모두 부정하지는 않았다(적어도 아직까지는 그렇지만, 향후 어떻게 바뀔지는 모를 일이다). 하지만 마르키온 파 Marcionite는 이런 식의 단호한 입장을 취했다. 마르키온 파는 2세기 신학자 마르키온의 이름을 딴 종파로, 로마에서 사도교회 신도들과 함께 공부했지만 이후 히브리 성서(구약성경)를 부정했다. 그들은 신약성경이 구약성경을 대체해야 한다고 믿었다. 종파 중에는 신비주의 경향이 강한 몬타누스 파 Montanists도 있었다. 지금은 터키의 일부인 프리지어 지역에서 번성했던 몬타누스 파는 지도층에 두 명의 여성 프리실라와 맥시밀라가 포함되어 있기도 했다. 이와 대조적으로 사도교회는 예수의 사후 수십 년 동안 활동했던 여성 지도자들을 밀어내고 대신에 미혼 엘리트 남성을 지도자로 세웠다. 그노시스파 Gnostics도 있다. 이레네우스 주교가 분명하게 언급한 것처럼, 유다복음이 등장한 것도 그노시스파로부터였다.
- "그는 그 앞에 설 수 있었지만, 그러나 눈으로 똑바로 볼 수는 없어 얼굴을 돌렸다. 유다는 그에게 (말했다) '나는 당신이 누구이며 어디로부터 왔는지 압니다. 당신은 바벨로의 불멸의 세계로부터 왔습니다. 그리고 나는 당신을 보내신 분의 이름을 언급할 자격조차 없습니다." 그노시스파의 세계관에서 바벨로 Barbelo는 여신이 지배하는신계이자 최고신의 권능이 발현된 세계를 말한다. 굳이 이 대목이 등장한 이유는 유다만이 하나님의 참모습을 알고 있음을 보여주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 "놀라운 하나님은 놀라운 행위를 하사 유다의 외모와 말투를 예수와 똑같이 바꾸셨고, 그 결과 사람들은 유다를 예수라고 착각하고 의심치 않게 될 정도였다." 유다가 예수를 체포하기 위해 겟세마네 동산으로 끌고 온 로마병사들은 오히려 예수와 똑같이 생긴 유다를 예수로 착각해서 체포한다. 유다는 계속해서 자신이 예수가 아니라고 주장했지만, 끝내 재판을 거쳐 예수를 대신해 십자가에 못박혀 죽는다. 이 대목에서 저자는 유다가 계속해서 도망치려 했기에 그의 죽음이 결코 고귀한 회생이 아니었음을 강조한다. 오히려 진짜 예수를 배신하려 했던 유다를 처벌하기 위한 신의 계책이었던 것이다. "그(하나님)는 유다가 십자가에서 죽게 함으로써 유다가 팔아넘긴 이가 맞이한 비참한 죽음을 유다 자신도 겪게 하셨다."
(리뷰자 주 : 겟세마네에서의 열 세명이 모두 같은 모습이었다면 어떨까.)
- 8세기에 콥트어로 쓰인 그노시스파의 문헌인 <그리스도의 삶과 수난에 대한 설교 Homily on the Life and Passion of Christ>는 4세기 기독교의 수장인 예루살렘의 시릴이 성모 마리아의 집에서 찾아냈다고 주장한 내용을 토대로, 예수에게는 하나님의 아들이기에 자유자재로 변신하는 능력이 있었다고 주장한다. 그렇다면 그날 밤 유다가 겟세마네에서 예수에게 입을 맞춘 것은 예수가 모습을 바꾸는 것을 막기 위함이었다. (하지만 이 논리가 사실이라면, 예수는 유다가 입을 맞추기 전에 미리 변신을 해서 유다가 못 알아보게 했을 것이다.)
- 토마스 드퀸시는 유다가 유대인의 봉기를 촉발하길 원했고, 그러려면 억지로라도 예수를 지도자로 나서게 해야 했기 때문에 예수를 배신했다고 설명한다. 드퀸시는 유다를 배신자로 낙인찍기보다는 '매우 대범한' 인물로 묘사했다. 유다가 예수가 체포되도록 계략을 꾸민 이유는, 예수가 로마에 맞서는 유대인 반란의 지도자로 나서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유다는 예수가 체포되면 유대인들이 거리로 뛰쳐나올 것이라 믿었다. 아니면 유대교 대제사장들과 만나서 자연스럽게 예수가 유대인들의 지도자로 추대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스가리옷 유다의 죄가 중대하기는 해도 지나치게 과장된 측면이 있다. 유다의 범죄는 그리스도가이 세상에 온 목적을 배반한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리스도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 기독교의 가르침과 반대되는 무장폭력을 야기하려 했던 단순하고 세속적인 계약이 유다의 죄다."
- 친드레퓌스파가 승리하기까지는 10년이 넘는 세월이 걸렸다. 결국 1906년이 되어서야 드레퓌스는 누명을 벗을 수 있었다. 드레퓌스의 승리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은 1898년 1월 <로로르 L'Aurore> 신문에 실린 에밀 졸라의 서한 <나는 고발한다 J'accuse>였다.
(리뷰자 주 : '베르나르 베르베르'는 자신과 유대인과의 연결을 의식했던 것이 틀림없다. 자신을 투사한 것으로 보이는 미카엘 팽송의 수호천사를 에밀 졸라로 설정한 것, 그가 팽송을 변호하기 위해 "나는 고발한다!"고 외쳤던 것을 보면.)
- 아르헨티나 출신의 수필가이자 단편소설 작가인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는 제2차 세계대전 이전과 이후는 물론이고, 전쟁 중에도 많은 작품을 발표했다. 특히나 제2차 세계대전 중 독일이 "암흑으로의 혼란스런 추락"을 했다면서 나치의 인종차별적 이념과 반유대주의를 조장하는 문화적 타락을 강력하게 비난했다. 그 일환으로 1944년에 등장한 것이 수수께끼로 가득한 단편소설 <유다에 관한 세 가지 이야기 Tres versiones de Judas>이다. 이 소설은 보르헤스 특유의 구조를 그대로 따르고 있다. 즉, 한 작가가 실제 있었던 일을 학술적으로 기록해둔 작품의 형식을 띠지만, 실은 허구다. "아주 신앙심이 깊은" 신학자 닐스 루네베리는 20세기 초에 스웨덴의 룬드에 살면서 "뛰어난 지적 열정으로" 유다에 대한 복음서 기록을 연구한다. 이 연구는 학자로서의 명성을 가져다줄 중대한 작업이다. 루네베리는 유다의 동기를 설명하기 위해 세 개의 가설을 제기한다. 이전에 자신이 연구했던 가설을 재구성함으로써 모두가 인정할 수 있는 결론을 도출하려 애쓰는데, 보르헤스에 의하면 그 시도는 애당초 불가능했다.
- Yellow 노란색. 유행하는 페인트 가운데 '유다의 노란색'이란 페인트가 있다. 이 정도로 노란색은 유다와 밀접한 관계가 있고, 그 까닭을 설명하는 수많은 이론이 있다. 먼저 13세기부터 유대인들은 노란색 별 모양의 천 조각을 달고 다녀야 했는데, 기독교에서 유다를 전형적인 유대인으로 내세웠기 때문이라는 주장이 있다. 또는 노란색이 부와 탐욕을 상징하는 금색, 다시 말해 유다의 죄를 상징하는 색깔과 비슷하기 때문이라는 주장도 있다. 그도 아니면 매혹적인 샛노란 꽃송이를 피우지만 실제로는 독을 감추고 있는 래버넘 Laburnum처럼 원래 노란색이 배신을 상징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 복음서의 유다를 더욱 진화시킨 또 다른 거대한 요소는 예수 신화를 유대교 전통의 일부로 보는 이들, 반대로 예수 신화가 유대교에서 파생되긴 했지만 오히려 유대교에 대항하는 전혀 다른 새로운 종교로 보는 이들 간의 갈등이었다. 사실 열두 제자 모두가 유대인이었다는 점을 고려할 때, '유대인 유다'는 아주 특이한 주장이다. 하지만 초기 기독교도들이 유대교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를 확산시키는 데 있어서 이 주장은 매우 효과적이었다.
- 다시 말해, 유다는 우리 모두가 익히 경험해 본 배신자의 감정에 호소하면서, 동시에 배신을 당하는 쓰라린 감정에도 호소한다. 유다는 배신을 상징하면서, 한편으론 진전 progress을 상징한다. 유다는 교회는 물론이고, 그 반대파도 각자의 목적을 위해 휘둘렀던 무기이자 희생양이다. 또한 유다는 사탄의 도구이면서 동시에 신의 대리인이다. 이런 유다의 양면성 덕분에 그의 일생은 수많은 사건으로 점철되었다. 나아가 앞으로도 수많은 사건이 벌어질 것이다.
- 한발 더 나아가 바울은 이후 로마서에서 예수를 배신한 건 성부 하나님이었다고 못을 박는다.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않으시고, 우리 모두를 위하여 내주신 분이..." 이 구절에 등장하는 파라디도미는 대체로 '내어주다' 또는 '건네주다'로 번역된다. 어쩌면 하나님을 배신자로 모는 것은 좀 지나치다는 생각에 더 순화된 표현을 사용한 것으로 보인다. 신자들은 나쁜 일이 벌어지더라도 자신들의 신을 탓하지 않는다. 특히나 기독교, 유대교, 이슬람교처럼 좋건 나쁘건 만사를 오직 하나뿐인 유일신이 주관한다고 믿는 일신교에서는 더더욱 이런 성향이 강한데, 대체로 나쁜 일은 악마나 악령 -기독교에서는 특히 사탄- 의 행위이기에 신을 비난하는 경우는 드물다. 바울보다 더 자세하게 예수의 삶을 기록하려 한 마가복음의 저자는 예수의 배신자 역할을 할 사람이 필요하다고 느꼈던 게 틀림없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복음서 저자들이 하나같이 이야기꾼이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배신자가 분명하게 등장해야 이야기가 더 재밌어지기 때문이다. 게다가 죄가 생기면 누군가를 죄인으로 몰아야 하고, 죄를 저지르게 된 환경적 요소는 외면한 채 오로지 죄를 지은 한 개인만의 책임으로 몰아가는 것이 자연스런 인간의 본성이다. 왜냐하면 인간은 이도 저도 아닌 회색보다는 흑과 백처럼 선명한 해답을 더 선호하기 때문이다. 결국 이로 인해 희생양이 필요하게 된다.
- 마가와 마찬가지로 마태와 누가도 열두 제자를 소개하면서 유다를 배신자로 묘사한다. 학자들은 마태복음과 누가복음 내용의 일부는 마가복음을 참조했고, 일부는 'Q'라는 문헌을 참조했다고 본다(Q'는 퀄레 qelle라는 독일어 단어로 '원전'이라는 뜻이며, 학자들이 부여한 명칭이다). 참고로 마태와 누가는 이 문헌을 인용했지만, 마가와 요한은 이 문헌을 인용하지 않았다. 성경의 출처에 대한 다른 수많은 논란과 마찬가지로, 'Q'를 둘러싼 논란도 무수하다. 대표적인 지적은 이렇다. 만약 이 문헌이 신약의 중요한 출처라면, 어째서 초기 기독교의정경 복음서와 외경 복음서에서 언급조차 찾을 수 없는가? 요한복음의 저자는 나머지 세 복음서와는 달리 예수의 열두 제자를 소개할 때 일일이 이름을 나열하지 않는다. 대신에 유다가 제자들중에서 아웃사이더였다는 점을 다른 복음서는 암시하는 정도로 그쳤다면, 요한복음은 유다를 처음 소개하는 대목에서부터 단언한다. 다른 열한 명의 제자들이 모두 예수와 동향인 갈릴리 출신인 데 반해, 유다만 가롯 시몬의 아들임을 밝히면서 (이스가리옷이 '케리옷 출신사내'를 의미한다는 전통적인 의견이 옳다는 가정 아래) 다른 지역 출신임을 강조한다.
- 상당히 모호한 대목이다. 게다가 요한은 이 대목에서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으려 하고 있다. 즉, 유다가 천성적으로 악인(돈에 눈이 먼 구두쇠 자금관리인)이라는 점을 강조하면서, 동시에 유다가 악마에 사로잡힌 꼭두각시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재차 말하지만, 이처럼 사대 복음서는 결코 의미가 분명하지 않다. 물론 이 두 가지 상반된 시각은 기독교 기본 교리에서는 하나로 융합된다. 사탄은 특별히 악인에게 잘 들어가는데, 악한 자일수록 사탄에게 쉽게 넘어가기 때문이란 것이다. 그렇다면 유다는 배신이 본인의 책임이기에 오랜 세월을거치도록 저주를 받아 마땅한가? 아니면 유다는 신이 예비한 계획과 사탄의 계약에 의해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선과 악의 대결에서 희생된 꼭두각시에 불과한 것인가? 이에 대해 요한복음은 명확한 결론을 내리지 않고 다양한 해석의 가능성을 열어둔다.
- 유다가 겟세마네 동산에서 로마병정들에게 예수를 넘겨주는 배신을 저질렀다면, 다른 열한 명의 제자들도 예수를 도우려 발 벗고 나섰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마가는 예수가 체포된 뒤 "제자들은 모두 예수를 버리고 달아났다"고 적었다. 심지어 그중 한 명은 너무나 급하게도망간 나머지 벌거벗은 채로 달아나기까지 했다. 이 또한 일종의 배신이다. 그나마 베드로는 예수를 따라가긴 했지만, 그마저도 "멀찍이 떨어져서" 따라갔다.
- Fig 무화과. 르네상스 시대의 그림에는 사소한 것일지라도 모두 까닭이 있기에 그려졌다는 말이 있다. 최후의 만찬을 그린 르네상스 시대의 그림들을 보면 식탁 위에 여러 과일이 놓여 있다. 그중 석류의 씨앗은 부활을 상징하며, 붉은 체리는 이후 예수가 십자가에서 흘릴 피를 의미하고, 무화과나무에 매달려 있는 무화과열매는 배신자 유다의 죽음을 암시하는데, 이는 모두 초기 기독교 전통을 따른다.
- 그렇다면 유다는 어디로 갔을까? 마가, 누가, 요한은 이에 대해 침묵할 뿐이다. 그러나 인간은 호기심의 동물이다. 따라서 유다는 겟세마네 동산에서 시온산을 잇는 길목 어딘가에 숨어 있다가 자신이 야기한 일의 결말을 직접 두 눈으로 확인하려고 경비병에 끌려가는 예수의 뒤를 멀리서나마 쫓았을 것이다. 물론 이를 확신하기란 나무가 말을 하는 것만큼 불가능하다. 그런데 길을 되돌아가기 위해 휴식을 취하던 의자에서 몸을 일으키는 순간 결정적인 단서가 머리를 스친다. 내가 지금 서 있는 이곳 겟세마네 동산에서 가야바의 집이 있었던 장소까지 일직선을 그으면, 그 너머로 언덕이 보인다. 바로 하켈다마다.
- 사대 복음서가 먼저 쓰인 책을 이어받아 이야기를 확장한 것처럼, 사도행전도 이전에 쓰인 기록에서 이상한 부분을 바로잡으려 노력한 혼적이 보인다. 대다수 학자가 서기 90년에 쓰인 것으로 추정하는 사도행전은 시기적으로 사대 복음서 가운데 세 권보다 앞서고, 누가복음과 저자가 동일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사도행전은 열두 제자의 자리 중 유다의 퇴출로 공석이 된 자리에 투표를 통해 맛디아가 선출되었다고 기록했다. 맛디아는 대체로 풍성한 살이 덧붙여지는 기독교 신화에서도 방금 언급한 내용 말고는 그다지 알려진 것이없는 인물이다. 사도행전에서 베드로는 배신자 유다가 사도의 직분을 "버리고 제 갈 곳으로 갔습니다"라고 설교한다. 사실 이는 부활한 예수가 열두 제자들과 재회했다는 바울의 기록과는 위배된다. 아무튼 누가가 유다와 사탄을 함께 언급했다는 점을 고려할 때, 유다의 제 갈 곳은 아마도 지옥이 아닌가 싶다.
- 베르메스는 저서 <예수의 진정한 복음서 The Authentic Gospel of Jesus>(2003)에서 일종의 '신호등 체계'를 선보인다. 사해 두루마리부터 시작된 자신의 연구를 집대성한 결과를 바탕으로, 사대 복음서에 기록된 예수의 말을 '진실', '진실로 추정', '편집(예를 들어, 후세에 다른 이가 내용을 첨가)'으로 분류한 것이다. 신호등의 파란불, 노란불, 빨간불을 사대 복음서에 적용한 셈이다.
- 그리고 지금 이 여정에서 나는 한 권의 복음서를 더 살펴보려 한다. 바로 2,000년 가까이 숨어 있다가 2006년에 등장해 전 세계를 강타한 복음서, 바로 유다의 이름을 딴 유다복음이다.
- 하지만 이 구절 바로 뒤에 마치 유다가 갖지 못할 것을 두고 약이라도 올리는 것처럼, 예수는 유다에게 그노시스파의 시각이 가득 담긴 신의 창조론을 설명한다. 신은 지구가 아닌 천사를 창조했고, 이후 그로부터 수많은 천사가 나왔다. 반면에 지구는 네브로 Nebro라고 불리는 잔혹하고 사악한 존재와 그의 어리석은 조수 사클래스 Saklas에 의해 만들어졌다. 예수가 유다에게 말한다. "(오라), 내가 너에게 어느 누구도 본 적이 없는 (비밀)에 대하여 가르쳐주마. 왜냐하면 위대하고 끝없는 세계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 세계의 크기는 천사의 세대들도 보지 못했고, 거기에는 눈으로는 볼 수 없는 위대한 (영)이 있다." 천지창조에 대한 이 이야기 안에는 아담과 이브의 아들인 셋seth과 '타락하지 않은 세대'에 대한 언급도 등장한다.
- 나그함마디에서 발견된 그노시스파의 영향을 받은 고대 문서들가운데 <베드로 계시서 Mevelation of Peter>와 <셋의 두 번째 논서Second Diecourse of Seth>가 십자가에서 죽은 것은 진정한 예수, 또는 '성령'이 아니라는 유다복음과 같은 주장을 제기한다. 한편 이레네우스 주교의 <이단에 대항하여>에서 비난받은 그노시스파인 알렉산드리아의 바실리데스는 십자가에 매달린 사람이 예수의 외모로 변한 키레네 사람 시몬이라고 주장한다. 시몬은 십자가를 걸쳐 메고 골고다 언덕을오르는 예수를 도와줬다고 공관복음서에 기록된 사람이다. 또 다른 나그함마디 문서이자 그노시스파의 영향을 받아 2세기에 작성된 <예수언행집 lalogue of the Savior>에도 유다가 등장한다. 이 책에서 유다는 예수가 따로 불러낸 세 명중 한 명이다(나머지 둘은 막달라 마리아와 이후 유다를 대신해서 열두 제자의 자리를 차지하게 되는 맛디아다). 하지만 학자들은 여기에 등장하는 유다를 제자 유다가 아닌 예수의 형제 유다, 즉 주드로 본다. 다만 유다복음이 발견되면서 이런 주장에 반론이 제기되었다. 마틴 마이어 교수는 이렇게 썼다. <예수언행집>에 등장하는 유다는 유다복음에 묘사된 제자 유다와 대체로 일치한다.
- 볼테라의 거리는 높고 기다란 오래된 중세 시대 건물들로 이뤄진 미로와도 같다. 건물들은 해발 550미터 높이에 있는 방어용 성벽과 성문 뒤에 위치하고 있다. 볼테라는 비록 이탈리아 중부로 향하는 주요 교역로이자 순례자들의 경로에서 약간 벗어나 있긴 했지만, 이미 기원전 7세기 에트루리아 시대부터 번성한 곳이었다. 도시의 번성은 성벽 너머 땅속에 묻혀 있는 구리, 소금 그리고 무엇보다도 석고에서 비롯되었다. 결이 있고, 석회질 느낌이 나면서, 하얀색을 띄는 볼테라의 설화석고는 반투명해서 조각에 사용하면 마치 사람의 피부처럼 보인다. 이런 특질로 인해 다른 지역의 석고들보다 훨씬 귀한 대접을 받았다. 에트루리아는 장례문화가 발달했는데, 그래서인지 에트루리아 장인들은 설화석고로 제기와 유골함을 빚기 시작했다. 그들의 손에서 설화석고는 죽은 자의 비석으로 변모했다.
- 최후의 만찬에 참석한 유다의 모습을 그린 작품 가운데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작품은 6세기 이탈리아 남부 칼라브리아에 있는 동네의 이름을 따온 로사노 복음서다. 화려한 장식(삽화도 있다)과 함께 마태복음, 마가복음 일부가 기록되어 있는 로사노 복음서는 가장 오래된복음서 사본 가운데 하나로, 비잔틴 제국의 기독교 황제가 보낸 군대가 이탈리아를 재탈환한 것을 축하하기 위해 완성되었다. 붉은 자주 색깔의 종이 때문에 '로사노의 자주색 고문서 Codex Purpureus Rossanensis'라고도 불리는 로사노 복음서에는 예수의 일대기를 그린 성냥갑만큼 자그마한 삽화들이 여럿 수록되어 있다.
- 유다는 또한 붉은 머리카락을 길게 기르고 있다. 중세의 색상분류 체계에서 붉은색은 유다의 성격을 잘 드러내는 색상이자, 사악한 인간의 상징이었다. 특히나 붉은색은 악마의 그림자 색깔 중 하나였고, 죄악을 상징하기도 했다. 사대 복음서에 회개한 창녀로 등장하는 막달라 마리아도 대체로 붉은색 옷을 입었다. 붉은색은 또한 유다 때문에 흘려야 했던 예수의 피를 의미했고, 유다 자신이 하케다마의 땅에 뿌렸던 피를 상징하기도 했다. 중세 시대의 영어 민요인 '유다의 노래'도 유다의 머리를 붉은색으로 묘사했다. 그리고 유다는 사악한 여동생에게 속아 은화 30냥을 빼앗기자 "머리가 온통 피로 물들 정도로 자신의 머리칼을 뽑아내며" 괴로워했다. 마지막으로 붉은색은 당시 신흥 부유층만의 전유물이었던 부의 과시를 상징하는 색상이기도 했다.
- 하지만 성베드로와 성바울 교회에서 가장 주목할 만한 것은 다름 아닌 성단소를 장식하고 있는 15세기의 스테인드글라스다. 이는 노퍽은 물론이고 영국을 통틀어 원형을 거의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가장 큰 규모의 스테인드글라스이기도 하다. 그리고 바로 이 스테인드글라스 안에 이스가리옷 유다가 서 있다.
- 스테인드글라스의 주제는 중세에 이미 널리 알려진 이야기인 성모 마리아의 일생이다. 성당에서 북쪽으로 약간 떨어진 월싱엄에 성모마리아 성지가 있는데, 이곳은 종교개혁 이전에 유럽에서 가장 규모가 컸던 성지로, 에드워드 1세부터 헨리 8세까지 영국 왕들이 한 명도 빠짐없이 방문했던 곳이다. 신도들의 일상을 세세히 통제하길 원했던 중세 성직자들은 예수의 어머니도 다양한 형태로 묘사하는 방식을 고안해냈다. 여기에는 다섯 개의 '행복한' 생애극과 다섯 개의 '슬픈' 생애극 그리고 다섯 개의 '영광스런' 생애극이 포함된다. 모두가 성모 마리아의 일생을 토대로 한 일화들이다. 신도들은 기도할 때 반복적으로 이 일화들을 묵상해야 했고, 일일이 손가락으로 묵주를 세어가며 진도를 확인해야 했다.
- 하지만 그 중간에 마치 아픈 손가락처럼 유다의 입맞춤이 등장한다. 스테인드글라스의 중요한 유리창 그림 중에서 성모 마리아가 등장하지 않는 것은 이것이 유일하다. 도대체 유다의 입맞춤을 그린 유리창이 뜬금없이 왜 여기에 박혀 있는 걸까?
- Simnel Cake 심넬 케이크. 13세기부터 전해져 내려오는 두겹으로 된 과일 케이크인 심넬 케이크는 부활절 무렵에 먹는데,만들 때 쓰는 다양한 밀가루 종류에서 이름을 따왔다. 전통적으로 부활절 주일에 만든다. 빅토리아 시대에는 아몬드와 설탕, 달걀을 섞어 만든 과자인 마지팬 11개로 장식하는 것이 유행했는데, 11이란 숫자는 예수를 배신하지 않은 열한 명의 제자를 상징한다. 그리고 유다의 배신을 상징하기 위해 심넬 케이크의 한쪽칸은 일부러 비워둔다.
(리뷰자 주 : 찾아보니 현재는 그냥 11개를 둘러 장식하는 듯 하다.)
- 누가복음에서는 유다가 예수에게 입을 맞추는 데 실패하지만, 마가복음과 마태복음에서는 입을 맞춘다. 마가와 마태는 이를 그리스어 카타필레오 kataphileo로 표현했는데, 이 단어는 대체로 애정 어린 또는 격렬한 입맞춤으로 번역된다. 다시 말해, 소위 현대적 의미에서 '진한 키스'를 의미하는데, 인사의 의미를 담은 입맞춤이나 소리만 내는 입맞춤을 의미하는 그리스어 필레오 phileo 와는 전혀 다르다. 그렇다면 이런 격렬한 입맞춤을 나누는 예수와 유다는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던 걸까?
- 1986년 데렉 자만 감독의 유명한 영화에서도 묘사된 것처럼, 카라바조는 양성애자였다. 그 때문에 그림 속의 예수와 유다, 요한 간의 삼각관계는 동성애를 암시한다는 주장도 있다. 유다와 예수의 머리 위에 그려진 아치 모양의 천은 유대인의 전통혼례에서 신랑과 신부의 머리 위에 치는 덮개처럼 보인다.
(리뷰자 주 : 틸다 스윈튼, 사랑합니다.)
- 스위프트의 눈에 유다의 '범죄'는 그가 '새롭게 등장한 이스가리옷들'이라고 지칭한 성직자 계층의 죄와 비교하면 별것 아니었다. 이 시는 스위프트에게 피해를 입힌 주교에 대한 개인적인 공격이 아니라 교회 지도층 전체의 행동에 대한 비난이다. 그런 면에서 이 시는 모든 형태의 조직화된 기독교에 대한 의구심을 담고 있으면서 더욱 직설적인 토머스 페인의 글과도 비슷하다. 페인은 <인간의 권리 The Rights of Man>(1791), 나아가 1793년에 발표한 소책자 <이성의 시대 The Age of Reasonon>에서 이런 주장을 한층 더 발전시켰다. 후자에서 페인은 모든 계시종교학 Revealed Religion는 가짜이며, 넓은 의미의 이신론 Deism으로 대체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 별 굴곡 없이 순탄하게 이어지는 인생을 사는 사람을 찾기란 쉽지 않다. 사람은 누구나 상반되는 성격을 동시에 지니고 있기 마련이며,유다 또한 예외가 아니다. 계몽주의와 혁명, 낭만주의 덕분에 유다는 19세기가 저물고 20세기가 태동하는 무렵부터 사탄의 도구라는 오래된 오명에서 벗어났다. 나아가 기독교의 반유대주의 선동 도구로 사용되는 관행에서도 벗어날 수 있었다. 심지어 유다는 일부 무신론자들 사이에서는 역사상 처음으로 급진적인 영웅으로 추앙되기도 했다. 하지만 과거의 망령은 언제든 되살아나서 사람을 괴롭히기 마련이다.
- Ullulaq 울룰라. 오늘날 유다라는 이름은 유대교와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밀접한데, 유다 울룰라만큼은 예외다. 유다 울룰라는 조국 캐나다와 그 밖의 지역에서 상당히 유명한 이누이트족 출신의 예술가다. 그는 조각가로 명성을 떨친 세 형제 가운데 하나로, 돌과 무늬를 새겨넣은 동물 뼈(가끔씩 뽑아낸 자신의 치아도 포함된다)를 이용해 북극 동물들, 누나부트 준주 Nunavut Territory의 톰베이 지역에서 자라면서 익숙하게 들어온 무속신화에 등장하는 존재를 조각한다. 그의 작품들은 캐나다 국보로 지정되었다. 유다 울룰라는 1999년에 사망했다.
- Valentine 벨런타인. 14세기부터 유래된 독일 설화에는 유다의 생일이 나오는테, 이른바 유다스타크 Judastag다. 대체로 유다스타크는 4월 1일(기독교 달력에서 꼽는 3대 불운의 날 가운데 하나로, 나머지 둘은 사탄이 천국에서 추방된 8월 1일, 소돔이 망한 12월이다), 또는 벨런타인 데이인 2월 14일 중 하나로 결정된다. 굳이 밸런타인 데이를 유다의 생일로 삼게 된 이유에 대해서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아마도 비극으로 끝나버린 예수에 대한 유다의 사랑과 연관이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 하지만 유다에 대한 관심이 지속된 배경에는 유다를 공격 수단으로 사용하려는 의도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유다의 이야기는 2,000년 전에 작성된 사대 복음서에 담긴 고리타분한 이야기가 아니다. 오히려 유다의 이야기에는 좋은 쪽이든 나쁜 쪽이든 오늘날 일상에서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요소가 있다. 다른 열한 명의 제자들과는 달리, 유다는 흥미로운 인물이다. 유다와 더불어 악한 제자 대 선한 제자, 합리적 의심 대 용서치 못할 배신의 대립 구도를 형성했던 성 베드로도 유다만큼 지속적으로 사람들의 호기심을 자극하지는 못했다. 유다의 이야기에는 인간의 복잡한 심리가 담겨 있다. 합리적 동기와 직감적 본능 간의 대립도 드러난다. 또한 예수의 삶에서 유다의 역할에 대한 해결되지 않는 의문도 남아 있다.
유다가 스승을 배신한 것은 유다의 사악함을 보여주는 것일까? 아니면 유다는 그저 신이 예정해둔 계획의 일환에 불과했던 것일까?
- 얼핏 보기에 엘가가 묘사한 유다는 이전과 별다른 차이점이 없어 보인다. 특히나 은화 30냥의 무게를 잴 때 차갑게 울려퍼지는 글로켄슈필 연주가 매우 인상적이다.
- 제퍼스, 그 밖에 많은 이가 유다의 이야기를 새로운 시각에서 탐구했다. 그들은 평범한 고정관념에 의존하기보다는 유다의 심리에 대한 통찰력 있는 분석을 내놓았다. 하지만 과거의 유다는 결코 쉽게 부정되지도 사라지지도 않았다. 드레퓌스 사건에서 본 것처럼, 유다는 상황이 나쁘게 흘러갈 때면 늘재 등장하곤 했다. 미국에서 로빈슨 제퍼스가 유다의 갱생을 위해 애썼다면, 1930년대 독일에서는 나치가 나서서 독일 내 소수민족인 유대인을 말살하기 위해 중세의 산물인 '유대인 유다', 그리고 내부의 배신자란 이미지를 야심차게 꺼내들었다.
- 유다에 대한 나치의 미묘한 시각은 오버라머가우 oberammergau 수난극에도 잘 드러난다. 오버라머가우 수난극은 문맹이 보편적이던 중세 시대에 매우 인기가 많았던 예수 수난극을 계승한 연극으로, 독일 바이에른 지역의 오버라머가우라는 곳에서 10년마다 상연되었다. 오버라머가우 수난극은 1634년 전염병을 피한 것을 신에게 감사드리기 위해 시작되었다고 전해진다. 다만 현대 역사학자들은 정확한유래에 대해 의구심을 품고 있다. 오버라머가우 수난극은 1860년에 이르러 더 많은 방문객을 끌어모으기 위해 시대상에 맞게 극본을 수정했는데, 처음에는 전직 수도사였던 오트마르 바이스가, 이후로는 오랫동안 동네 신부로 재직했던 요제프 알로이스 다이젠베르거가 고쳤다(이는 효과가 있었는데, 1900년에 오버라머가우에 기차역이 생기자 토머스 쿡은 단체관광을 조직하기도 했다).
- 카잔차키스의 소설에서 가장 논란이 된 부분은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히기 전에 꿈을 꾸는 장면으로, 1988년에 마틴 스콜세지 감독이 소설을 영화화하면서 논란은 극대화되었다. 기독교는 예수가 완전한 인간이면서 동시에 완전한 신이라고 가르친다. 그리고 카잔차키스는 예수의 꿈에서 이 두 가지 성향이 내면에서 갈등을 빚어내는과정을 깊게 파고든다. 꿈속에서 예수는 신이 정해준 운명을 거부하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를 상상한다.
- 유다에 대한 또 다른 흥미로운 해석은 엔도 슈사쿠가 1966년에 발표해 아주 높은 평가를 받은 소설 <침묵>에서 찾아볼 수 있다. 종종 카잔차키스나 그레이엄 그린과 비교되는 엔도 슈사쿠는 평생 종교를 핵심적인 주제로 소설을 써왔다. 세계적인 존경을 받았으며 1994년에 노벨 문학상을 안타깝게 놓친 것으로 알려진 그는 극소수에 불과한 일본 내 가톨릭 신자 중 한 명이기도 하다(일본 가톨릭 신도는 전체 인구의 1 퍼센트 미만이다).
- 5년 뒤, 기념비적인 제2차 바티칸 공의회에서 가톨릭교회를 현대화하기 위한 조치의 일환으로 교황 바오로 6세는 <비기독교에 관한 선언 Nostra Actate>을 발표했고, 공식적으로 유대교와 기독교 간의 밀접한 연관성을 인정했다. 사실 초기 교회는 이런 연관성을 부정하면서 기독교의 출발점을 유대교로부터 분리하기 위해 애썼다. 그리고 이를 위해 유다를 희생양으로 삼아 유대인 전체를 싸잡아 공격했다. 따라서 거의 2,000년이 지나고 나서야 가톨릭은 과거에 대한 속죄로 유대인이 예수의 죽음에 대해 집단적 책임이 없다고 선언한 것이다. 유다가 기독교의 반유대주의의 선봉에서 매우 해로운 역할을 수행했다는 점을 고려할 때, <비기독교에 관한 선언>에 유다에 대한 언급이 없는 것은 아주 당연하다. 그 밖의 경우에도 기독교 지도층이 유다에 대해 언급하는 경우는 매우 드물었다.
- 베네딕토 교황이 유다의 역할을 재고해달라는 요청을 거절한 것과는 달리, '교황궁 설교자'는 이 요청을 수락했다. 전통적으로 성베드로 대성당에서 열리는 성금요일 예배는 교황궁 설교자가 주재한다. 교황청 설교자는 언제나 프란치스코회의 카푸친회 수도사 출신에서 배출되는데, 지난 30년 동안에는 라니에로 칸탈라메사 신부가 맡았다(칸탈라메사라는 성은 '미사를 노래하다'라는 의미다). 그리고 2014년 칸탈라메사 신부의 설교 주제는 '왜 유다는 배신자가 되었는가?'였다.
- '유다 화형식'은 거리에서 열리는 공연이었다. 그러다가 유다는 1970년에 앤드류 로이드 웨버와 팀 라이스를 만나 <지저스 크라이스트 슈퍼스타>에서 새 생명을 얻게 된다. 이 뮤지컬은 여러 스타를 거치면서 지금까지도 공연될 정도로 폭발적인 인기를 누리고 있다.(지저스 크라이스트 슈퍼스타> 속의 유다는 19세기와 20세기의 유다에 대한 해석이 적절하게 섞인 인물로서, 복음서의 내용에 충실하지만 동시에 사람들의 오해를 받는 반영웅으로 그려진다. 유다는 반란을 꿈꾸는 자로서, 예수가 정치적 목표를 달성하기보다는 신의 계획을 따르려 하자 실망한다. 또한 그는 예수와 사랑에 빠지며, 막달라 마리아가 극 초반에 부르는 '어떻게 그를 사랑해야 하나 Don't Know How To Love Him'를 반복해서 부르기도 한다. 끝까지 자신의 양심을 따르려는 유다는 악당이 아닌 피해자로 그려지며 나무에 목을 매고 외롭게 죽어가지만, 되살아나서 마지막 코러스를 함께 부르며 훈훈하게 마무리된다.
- 최근에 유다가 등장하는 작품은 한 페이지를 꼬박 할애해야 할 정도로 많다. 뉴질랜드의 순수문학 소설가 C. K. 스테드의 2006년 작품 <내 이름은 유다였다 My Name Was Judas>에서 유다는 죽지 않고 살아남아 노인이 되어 예수의 신성에 대해 의문을 제기한다. 이듬해에는 대중 작가인 제프리 아처가 (바티칸 고위 성직자와의 공저를 통해) 유다의 이야기를 유다의 아들 벤저민의 시선으로 재창조해냈다. 그밖에도 예수를 조롱하는 몬티 파이튼의 1979년 영화 <브라이언의 삶 Life of Brian>에는 주디스라고 불리는 성전환자 유다가 등장하고, 테런스 맥낼리의 1998년 연극 <성체 Corpus Christi>에서는 예수와 열두 제자가 모두 동성애자로 등장해서 현대의 텍사스에서 박해를 당하는 모함이 그려진다. 이런 작품들은 하나같이 일정 부분 복음서 기록을 토내로 유다를 그려냈고, 제각각의 결론을 도출해냈다. 이 작품들이 그린 유다의 모습은 논란을 불러일으키거나 대단한 화제가 되긴 했지만, 한 가지 요소만은 끝까지 변하지 않았다. 바로 유다의 이야기가 흥미롭고 무수한 재해석이 가능하다는 점이다. 그렇게 유다는 또다시 시대상에 맞추어 변신한다.
- The Zodiac 조디악. 조디악의 열두 궁과 열두 좌 때문에 (가톨릭이 공식적으로 점성술을 인정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점성술사들은 종종 조디악이 열두 제자들을 상징한다고 믿었다. 열두 궁 가운데 유다는 쌍어궁(물고기자리)에 해당되는데, 유다가 쉽게 유혹에 빠지고 나중에 회개하지만 끝내 체념했기 때문이다.
- 그 자의 말은 마치 그의 피가 불꽃이기라도 한 것처럼 유대인들의 가슴속을 끓어오르게 했다. - 나오미 앨더먼, <거짓말쟁이들의 복음서The Liars Gospel>(2012)
- 유다의 여러 초상 가운데 유대인이란 초상은 역사적으로 가장 큰 관심을 끌었고, 20세기에 들어서도 아주 처참한 결과를 가져온다. 하지만 복음서에 기록된 유다에 대한 22번의 언급은 유대인 유다 이외에도 수없이 많은 유다의 모습을 창조해내게 된다. 실제로 유다에 대한 복음서의 기록은 비록 간략하긴 해도 그 안에 수많은 의문과 다양한 해석의 여지가 담겨 있다. 이후 시대마다 당시의 시대상에 맞게 유다에 대한 새로운 해석이 등장한 것도 이 때문이다. 그렇게 2,000년 역사 동안 수많은 유다가 등장했다. 돈주머니를 움켜쥔 금융가 유다도 있었고, 예수에게 격정적으로 입을 맞추는 동성애자 유다도 있었으며, 공처가 유다도, 섹스중독자 유다도 있었다. 타락한 주교 유다, 예수 수난극에 등장하는 어릿광대 유다, 변화를 거부하는 수구주의자 유다, 지상낙원을 추구하는 혁명가 유다도 있었다.
- 하지만 10년 뒤 지역 주민들의 열정과 전후 복구자금 덕분에 성니콜라우스 교회는 재건되어 재차 축성된다. 기본적인 형태와 설계는 이전과 동일했지만, 19세기의 붉은색, 파란색, 초록색의 스테인드글라스는 지금은 예술가 로런스 휘슬러 경이 무늬를 새긴 대단히 독창적인 다섯 개의 투명한 창문으로 대체되었다. 더 유명한 렉스 휘슬러와 형제지간인 로런스 휘슬러 경은 17세기와 18세기에는 보편적이던 섬세한 유리음각 기법(널리 활용되는 부식제를 이용하는 방식이 아니라 장비를 사용해 유리에 직접 무늬를 새기는 방식)을 1930년대 말부터 부활시키는데 독보적인 공헌을 했다. 로런스휘슬러는 자신보다 앞서 엘리자베스 1세 시대의 영국 신사들이 그랬던 것처럼, 젊은 시절에 자신이 머물던 주택의 창문에 뾰족한 다이아몬드를 이용해서 자신의 시를 새겨 넣으면서 유리음각 기법에 대해 처음으로 애정을 느꼈다고 한다. 그리고 2000년에 사망하기 전까지 60년 동안, 그는 유리음각 기법에 대한 열정을 예술의 형태로 끌어올렸고, 펜이나 연필로도 표현할 수 없을 만큼 섬세한 유리 창작품을 창작해냈다. "유리 음각에서는 어둠이 아닌 빛을 새겨 넣는다. 연필이나 잉크로 그림을 그릴 때에는 하얀 색이나 밝은 색의 표면에 어두운 선을 그리지만, 유리 음각에서는 어둠을 배경으로 했을 때 보이는 이미지를 상상하고 그림을 새겨야 한다. 그건 빛으로 그림을 그리는 것과 같다."
- 그노시스파의 대표적인 학자인 일레인 페이겔스와 캐런 킹은 저서 <Reading Judas: The Gospel of Judas and the Shaping of Christianity> (London, 2007) 에서 유다복음의 기록에 따르면 유다가 천국에 간 게 분명하다고 주장한다.
- 유다의 일생은 결국 사대복음서에 뿌리를 내리고 있다. 그래서 내가 보기에 유다의 삶을 가장 생생하게, 가장 일상적인 용어로, 가장 원전에 가깝게 해석한 성경판본을 선택했다. 이 책에서 인용된 모든 성경구절은 1974년에 다턴 롱맨 앤드 토드 Darton Longman and Todd 출판사가 출간한 <새 예루살렘 성경 New Jerusalem Bible>에서 가져왔음을 밝혀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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