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 : 줄리언 제인스 / 김득룡 / 박주용
원제 : The Origin of Consciousness in the Breakdown of the Bicameral Mind
출판 : 연암서가
출간 : 2017.06.20
제목에 끌려 집어들었다가 600 페이지가 넘는 쪽수를 보고 시일 안에 읽을 수 있을지 조금 걱정했었다.
(다행히 아슬아슬하게 발췌문 확인까지 마치고 잘 반납했다.)
찾아서 읽은 책은 아니고 서가에 꽂힌 책등을 훑다가 재미있어 보여서 선택했던 책인데 상당히 놀라웠다.
이 판본은 1960년 후반부터 집필되어 70년 후반에 발표되었던 책을 연암서가에서 재번역해 내놓은 것으로, 처음에는 3권으로 나뉘어 출간되었던 것인지 전체의 구성을 3부라고 표현하지 않고 3권으로 표기한다.
저자는 아주 놀라운 주장을 펼치는데, 초기 인류는 개인마다 자신의 머릿속에 들리는 '목소리'를 가지고 태어났다는 것이다. 그것을 양원적 정신이라고 표현하는데, 이것이 가능했던 것은 당시 인류는 지금처럼 '의식'을 가지고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런 접근을 통해서만 어째서 당대의 사료들에는 정신, 의식, 자의식(유사 '나') 등이 등장하지 않는지를 설명할 수 있다는 것인데, 저자는 이에 이어서 현대인의 시각에서 보기에는 당황스러운 각종 의례와 유적, 장례 풍습들을 증거로 설명해 나간다.
그것을 위해 1권에서는 크게 '의식'이란 철학에서 흔히 예로 드는 '자각'과는 사실 분리되어야 하며, 그것을 '어떤 것'으로 정의하기는 극도로 어려우므로 '~이 아닌 것'을 통해 경계를 짓고자 한다. 해서 초반부에 낯선 언어들의 폭격으로 다소 현학적인 느낌을 받을 수도 있으나, 은유가 은유체와 피은유체를 가지며 그것이 내포하는 관념들까지 껴안은 석의체와 피석의체와 분리해서 본다는 핵심만 이해하면 따라가기 어렵지는 않다. 이후 어째서 저자가 기원전 5세기 전후까지는 '목소리'가 존재했다고 생각하는가 -양원적 정신의 시대였는가- 에 대한 역사적, 문화적 추론이 이어진다. 그에 따르면 의식은 목소리가 사라진 빈 자리를 대체하기 위해, 인류가 살아남기 위해 만들어낸 정신적 대체물이라는 것이다.
2권에서는 그 목소리란 시, 운문이나 노래의 형태였다는 주장이 이어진다. 저자는 자신이 어째서 당대 인류에게는 의식이 없었다고 생각하는지에 관한 근거로 <일리아드>와 <오디세이아>를 드는데, 그에 필연적으로 이어지는 주제이다. 그들은 '상상'한 것이 아니라 '경험'했으나 함께 대화할 수 있었던 개인 신들은 서서히 멀어지고 침묵한다. 명료함이 사라져가는 옷자락 끝을 붙들기 위해 각종 '광기'와 '흥분'들이 필요해졌다. 이제 신탁의 시대가 오는 것이다. 저자는 생리학적, 해부학적 근거까지 더하며 자신의 주장을 강하게 설하는데 그 내용들은 아직 뇌과학이 지금처럼 발전하지 못했던 70년대의 저작이라고 생각하기 어려울 정도다.
'정답'을 잃은 인류는 스스로 생각해야만 했고, 그 '의사 결정 행위'의 중압감을 덜기 위해 들리지 않는 목소리를 '점술'로 보려 했다. 문자의 발명이 영향을 주었을 것이라는 앞선 주장에 이어 아직 양원적 사회의 잔재들 속에 '우연'이라는 개념이 존재하지 않았던 사회상을 그린다. 구약에서의 점술 뿐 아니라 당시에 점차 만연하게 되었던 각종 점술 -저자는 이를 크게 네 가지로 분류한다- 과 우상 숭배, 그것이 어째서 등장할 수 밖에 없었으며 그 이전에는 존재하지 않았음을 -적어도 그런 의미의 행위가 아니었음을- 기록된 문헌들을 예시로 들어 주장한다. 저자는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 더는 들리지 않는 신의 공백과 침묵이 '악'의 개념을 낳았다고 주장한다.
3권에서는 1권에서 제시한 '양원적 정신'은 최면, 현대의 신들림이나 정신분열증과 다름을 비교해 풀어나간다. 후자들 역시 양원적 현상이며 형태와 관련이 깊음은 확실하지만, 의식을 잃는다는 점에서 양자가 자유롭게 대화하던 상태와는 구분된다는 것이다.
인간의 의식의 출현과 의식의 정의를 설명하려 한 안토니오 다마지오의 <느끼고 아는 존재>와 상반된 주장이 등장하는 점도 흥미로웠다. 양자는 양립이 가능해보이는데, 저자가 그것이 불가능함을 설하기 위해 든 것이 다마지오가 주장의 핵심 근거로 드는 시작점이기 때문이다. 분기점이 되는 지점이 일치한다는 점에서 아주 인상적이었다.
우연한 기회로 이 책을 알게 되고 읽게 된 것에 감사하며, 조금 버거웠지만 아주 즐거운 시간이었다.
하루만 더 여유가 있었다면 좋았겠다 싶기도 하지만- 적절했다.
- "의식은 모두 언어는 아니지만 언어로 생성되고 언어로 접근된다."
- 줄리언 제인스
양원적 정신 구조의 폐허 속에서 행동 방향을 결정하기 위해 점치던 일이
이제는 사실이라는 신화들 속에서 완전한 확실성을 추구하는 일이 되었을 뿐이다.
- 이 드라마, 인간이 지난 4000년 이상을 이 항성에서 공연해왔던 이 장대한 시나리오는 세계사의 핵심적인 지적 경향을 거시적으로 조망해볼 때 분명하게 그 모습이 드러난다. 기원전 2000년경부터 우리는 신의 목소리를 듣지 못하게 된다. 기원전 1000년경 신탁이나 예언을 통해 그 목소리를 듣던 사람들이 있었지만 그들마저 다 죽었다. 기원후 첫 1000년경, 그들의 말과 그들이 들은 이야기를 보존해온 성경을 통해 우리는 우리의 잃어버린 신에 복종했다. 기원후 두 번째 1000년경 이 성경들마저 그 권위를 잃자, 우리는 과학혁명을 통해 예전의 기록 대신 자연에서 잃어버린 권위를 찾는 방향으로 선회했다. 지난 4000년 동안 우리가 경험한 것은 느리지만 꾸준한 인간의 타락이었던 것이다. 기원후 두 번째 천년의 끝부분에 이르러 이 과정은 분명히 완결되고 있다. 권한 위임을 찾으려고, 자연에서 신의 언어를 읽으려고 분투해 오던 중에 분명히 깨닫게 된 것은 우리가 아주 잘못 들어섰다는 것이다. 이는 지상에서 가장 고귀하고 위대한 시도가 당면한 최대의 인간 아이러니다.
- 언어를 사용하고, 문명화되어 있으며, 윤리적이고 지적인 이 인간들과 원숭이 사이에 존재하는 이런 현격한 단절을 중시하는 많은 과학자들은 다시금 형이상학적 관점에 끌리게 되었다. 의식의 내면성은 어떤 의미에서도 단지 분자와 세포들의 조합이나 자연도태로는 진화될 수 없는 것이다. 인간의 진화에는 단지 물질이나 우연이나 생존의 문제 이상의 무엇이 있지 않으면 안 된다. 의식과 같이 전혀 다른 것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이 폐쇄 체계 밖에서 무언가를 더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러한 생각은 특히 자연 도태설의 공동 주창자이기도 한 윌리스(Alfred Russel Wallace)의 저술에 현대 진화론이 등장하면서 시작되었다.
- 물론 이런 예들에서 당신은 경험으로 추론에 따라 주관적 관점을, 그것도 그것이 실제 기억이었다고 확신할 수 있을 정도로, 만들어낼 수 있기는 하지만 말이다.
- 이처럼 의식은 학습과정에서 필수 부분이 아니며, 이는 신호 학습이든 기술 학습이든 문제 해결 학습이든 마찬가지다. 물론 이 매혹적인 주제에 대하여 할 말은 훨씬 더 많이 있다. 왜냐하면 행동변화를 연구해 내놓은 현대의 모든 비판이 이 노선상에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책의 목적을 위해서는 단지 의식적 경험이 모든 학습의 실체라는 낡은 학설이 명백하고도 절대적으로 허위임을 입증한 것으로 족하다. 이쯤에서 우리가 내릴 수 있는 결론은, 우리는 적어도 의식하지 않으면서 학습할 수 있고 문제를 풀 수 있는 인간을 생각할 수 있다는 점이다.
- 인간은 이성적 동물이라는, 그리하여 자기에게 호모 사피엔스라는 작위를 수여한 오랜 전통은 인간이 독단적으로 일반화한 것 중 하나로, 의식이 이성의 거처라는 우아한 가설에 근거하고 있다. 이런 가설에 관한 모든 논의는 이성이라는 용어의 모호성 때문에 쉽지 않다. 이러한 모호성은 이성의 '재능'(faculty)을 논하는 낡은 '재능' 심리학에서 내려온 유산인데, 이 이성의 재능이란 것은 두말할 것 없이 의식 '안에 있는 것'으로 여겨졌다. 이성과 의식을 이처럼 억지로 함께 묶어두었기 때문에 진리라는 개념과, 우리가 어떻게 추리해야 하는지를 알려주는 논리의 개념이 -이들은 모두 전혀 다른 것들임에도- 뒤섞이게 되었다. 이리하여 비록 3단 논법이 내성될 수 없다는 것을 오래전부터 잘 알고 있는 가련한 학자들을 혼란스럽게 하면서까지, 논리는 의식적 이성의 구조로 생각되었다.
- 이 모든 구체적인 은유는 우리 주변 세계에 대한 우리의 지각력과 이해를 엄청나게 향상시키며, 문자 그대로 새로운 대상을 창조하고 있다. 실로 언어는 지각력이 있는 기관이다. 단순히 의사소통 수단이 아니다.
- 이에 대한 대답은 현기증이 날 만큼 흥미롭다. 일반적으로 말해서 <일리아스>에 의식이란 없다. '일반적으로'라는 단서를 단 까닭은, 뒤에 언급하겠지만 몇몇 예외가 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다시 말하거니와 일반적으로 거기엔 의식이나 정신적 활동에 해당하는 어떤 단어도 없다. <일리아스>에 나오는 말로써 후대에 정신적인 어떤 것을 의미하게 된 말들은 전혀 의미가 다르며, 모두 훨씬 구체적인 것들이었다. 후대에 가서 영혼(soul)이나 의식적 정신을 의미하게 된 프시케(psyche)라는 말은 대부분 피나 호흡 같은 생명의 실체(life-substance)를 의미했다. 죽어 가는 전사는 자신의 사이키(psyche)를 땅 위에 쏟았으며, 자신의 사이키를 헐떡거리는 마지막 숨으로 몰아쉬었다.
- 이와 유사하게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는 신체에 대한 단어가 일리아스 언어에는 없다. 기원전 5세기에 와서 신체를 의미하게 된 소마(soma)라는 단어는 호메로스에서는 언제나 복수로 쓰이며, 그것도 죽은 사지들이나 시체를 의미했다. 이 말은 사이키의 반대말이었다. 신체의 여러 부위를 나타내는 말들이 몇몇 있었고, 호메로스에서는 이 부분들만이 언급될 뿐 전체로서의 신체는 결코 지칭되지 않았다.
- 그런데 그런 환청은 도대체 어떤 것인가? 어떤 사람은 정신적인 목소리를 우리가 실제 목소리를 듣는 것처럼 또렷이 들을 수 있다는 것을 상상하기조차 어렵다. 사실, 뇌에는 입이나 후두 같은 기관이 없지 않은가? 뇌의 어떤 영역이 사용되든 간에, 그런 목소리가 존재하고 그 소리는 실제 소리를 듣는 것과 같다는 것은 분명하다. 더구나 고대인의 양원적 목소리는 현대인의 환청과 질적으로 유사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이들은, 정도의 차이가 있지만, 극히 정상적인 사람들에게도 들린다. 때때로 스트레스를 받으면 부모님이 위로하는 소리를 들을 수 있다.
- 다른 설형문자 자료들에는 사람은 자신의 개인 신인 일리(ili)의 그늘 아래서 사는 것이라고 적혀 있다. 인간과 그의 개인 신의 관계는 아주 복잡하게 묶여 있어서 사람이 자신의 이름을 지을 때 대개의 경우 (자기 이름 안에) 자기 개인 신의 이름을 포함시키는데, 이는 인간의 양원적 속성을 분명히 보여주는 대목이다. 왕의 이름이 개인 신 즉 림-신-일리(Rim-Sin-ili)로 표시되는 것은 특히 흥미롭다. 그 뜻은 "림-신이 나의 신이다"인데, 이 림-신은 라사의 왕이다. 또는 아예 샤루-일리(Sharru-ili)라고도 짓는데 그것은 "왕은 나의 신이다”라는 뜻이다. 이러한 사례들은 우리에게 때로 관리인-왕 자신이 환각의 대상이 됨을 암시해 준다.
- 성용문자로 된 문서에 나오는 증거는 혼란스럽다. 사람마다 자신의 카를 가지고 있으며, 우리가 우리의 의지력에 관해 말하듯이, 그것에 관해 말한다. 그러나 우리가 죽을 때 자신의 카로 돌아가게 된다. 기원전 2200년경의 한 유명한 피라미드 문서에서는 망자들을 '신들이 카의 주인들'이라고 부른다. 상형문자에서 카를 나타내는 기호는 권면을 나타내는 한 방법인데, 손을 펼친 채로 두 팔을 들어 올리며, 상형문자에서는 스탠드 위의 모든 것은 신성의 상징을 거들 목적으로만 쓴다. 앞의 논의로 미루어보건대, 이 카는 양원성의 목소리를 의미하는 것이라고 재해석될 필요가 있다. 내 생각에 이것은 바로 메소포타미아에서의 일리나 개인 신을 의미하던 것으로 보인다. 한 사람의 카는 그에게 내면적으로 뚜렷이, 아마도 부모나 권위자의 음성으로 들리는, 그러나 자신이 죽은 뒤 친구들이나 친척들이 듣게 될 때는 당연히 자기 자신의 목소리로서 환각되는, 지시의 목소리였다.
- 신-왕의 카는 특히 흥미롭다. 왕은 선왕의 말씨로 카를 듣는 것으로 생각된다. 그러나 그 카는 대신들의 환각 속에서 왕 자신의 목소리로 들렸을 것이며, 이 사실은 실제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텍스트들은 왕께서 식탁에 앉아 식사를 하게 되면 그의 카도 같이 앉아 식사한다고 기록했다. 피라미드들에는, 때로 회벽에 그려 넣었을 뿐인 가짜 문들이 허다한데, 이 문들을 통해 고인이 된 신-왕의 카가 세상으로 나가기도 하고 그의 목소리가 들리기도 한다. 기념비에 그려 넣는 것은 오직 왕의 카뿐인데, 그것은 어떤 때는 왕의 머리를 받혀주는 지지목이나 깃털을 붙드는 권위자로 또는 왕의 머리 뒤편에 앉아 있는 새로 나타난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왕의 카를 출생 장면에서 그의 쌍둥이로 표상하는 점이다. 이런 장면에는 크늄(Khnum) 신께서 (도공처럼) 자기의 물레 작업대 위에서 왕과 그의 카를 빚어내는 모습이 등장한다. 이 쌍둥이들은 똑같이 생긴 작은 인형들의 모습이다. 단지 카는 자신의 왼손으로 자기 입을 가리키고 있는 점이 다를 뿐인데 이는 그가 바로 말을 담당한 인격(persona of speech)이라고 우리가 부르려고 했던 존재임을 암시하는 것임이 틀림없다.
- 고대 이집트의 정신구조에서 이와 관련되어 있는 또 하나의 개념은 바(ba)라는 것이다. 그러나 적어도 옛 왕국에서 이 바는 카와 같은 수준의 것은 아니었다. 그것은 우리가 일상적으로 귀신이라고 부르는 것에 더 가까운 것으로, 청각적으로 카에 해당되는 것이 시각적으로 현현한 것이다. 장례식장에서 통상적으로 이 바는 작은 인간의 모습을 한 새로 묘사되는데, 이는 아마도 시각적 환각이 종종 훨훨 날거나 새의 움직임을 하기 때문일 것이다. 대개 이것은 시신이나 그의 조상에 덧붙여지거나 그들과 관계가 있을 때 그려진다. 왕이 주도적으로 지배하는 왕국이 몰락한 후 바는 카가 행하던 양원적 기능의 일부를 떠맡게 되었다는 것이, 작은 새에서 (길을 인도하기 위해) 등불 곁에 앉아 있는 어떤 것으로 변모하는 상형문자의 변화로, 그리고 기원전 1900년경으로 알려진 베를린 파피루스 3024에 나오는 청각적 환각의 역할로 입증되었다. 이 놀라운 텍스트에 대한 모든 번역들은, 그렇지 않았더라면 멋진 학문적 업적이 될 수도 있었을 가장 최근의 것까지를 포함하여, 현대적 정신의 견강부회들로 가득 차 있다. 그리고 어떤 주석가도 감히 '한 인간의 자기 바와 하는 논쟁'을 액면 그대로 환청이라든지 오늘날 정신분열증 환자의 환청으로 다룰 엄두를 내지 못했다.
- <일리아스>에 나오는 인물들은 무엇을 할 것인지 앉아서 곰곰이 생각하는 법이 없다. 그들에게는 우리 자신은 갖고 있다고 생각하는 의식적인 정신이 없으며, 내성이란 것은 말할 나위도 없다. 우리의 경험을 바탕으로 그것이 어떤 상태인지를 가늠해 보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아가멤논(Agamemnon)이 아킬레우스에게서 연인을 빼앗아 갈 때, 아킬레우스의 노란 머리채를 움켜쥐며 아가멤논을 치지 말라고 경고한 자는 바로 신이었다(1권, 197쪽 이하). 자신의 검은 배가 정박해 있는 해안에서 분노의 눈물을 뿌리는 아킬레우스를 위로하기 위해 잿빛 바다를 가르고 나타난 자는 신이었다. 헬레네(Helene)에게 다가가 그녀의 가슴을 향수로 달래주는 나직한 목소리의 주인공도 신이었다. 공격해오는 메넬라오스(Menelaos) 왕의 면전에서 파리스(Paris)를 안개 속에 감추어주던 자도 신이었다. 글라우코스에게 금 대신 구리를 취하라고 말한 자도 신이었다(6권, 234쪽 이하). 군대를 전쟁터로 영솔하는 자도, 고비고비마다 병사들 한 명 한 명에게 말해주는 자도, 헥토르와 논쟁하며 그가 무엇을 해야 할지를 가르치는 이도, 병사들을 독려하기도 하고 그들을 주문 속으로 내몰거나 안개를 덮어 그들의 시계를 가려버림으로써 패망케 하는 이도 모두 신이었다. 사람들 사이에 다툼을 일으키고 전쟁을 일으킨 뒤 전략을 짜는 자도 신이었다.
- "신속히 행동하여, 너의 신을 기쁘시게 하라 (Act promptly, make your god happy)"는 뜻으로 영역되어온 옛 수메르 속담이 있다. 이 현대적인 영어 단어들이 수메르어의 의역에 지나지 않는다는 점을 잠시 접어두기로 한다면, 호기심을 자아내는 이 명령은 우리의 주관적 정신구조에도 다음과 같이 말하는 것 같다. "생각을 하지 말라. 양원적 목소리를 듣는 것과 그에 따라 행하는 것 사이에 어떤 시간 간격(time space)이 없게 하라." 안정적인 위계적 조직 내에서는 그렇게 하는 것에 아무 문제가 없었다. 목소리들이 언제나 옳았을 뿐만 아니라 그것이 그 체계의 핵심적 부분이었고, 인간에 대한 신의 명령은 자유재량이 허용되지 않는 의식에 꽁꽁 동여 매여 있으며, 큰 사회적 혼란에도 영향받지 않았다. 그러나 기원전 2000년대에는 이것이 통용되지 않았다.
- 그러나 천사들만으로는 퇴각해버린 신들 때문에 생긴 주도권의 공백을 메울 수 없었다. 게다가 위대하신 신들에게서 온 이 천사들은 대개의 경우 왕과 그의 군주들과 연관되어 있다. 일반인들의 경우, 그들의 개인 신들이 더는 도움을 주지 않기 때문에, 전혀 다른 종류의 준-신적 존재가 그들의 일상생활에 무시무시한 그림자를 드리우게 된다. 왜 이 특정 시기의 인간 역사 속에 악의적 악마들이 등장해야 했을까? 언어는, 그것이 비록 알아들을 수 없는 것이 되었을지라도, 인간들이 타인에게 인사하는 주요 방식이다. 그런데 한쪽이 인사를 건넸는데도 상대방에게서 반응이 없다면, 즉각 그 상대방의 적개심이 뒤따라 확인될 것이다. 개인 신들이 침묵하는 한 그 신들 역시 적개심과 분노를 품고 있음이 틀림없다. 이런 논리가 양원 정신의 붕괴 기간 중 인류 역사에 최초로 등장한 악 개념의 기원인 것이다. 신들이 자신들이 원하는 대로 우리를 지배한다고 생각할 때, 우리로서는 우리를 해치겠다는 그들의 의지를 잠재우고 그들의 비위를 맞추어 다시 우정을 회복하기 위 해 무엇을 할 수 있는가? 이 장 앞에서 언급했던 기도와 제물 그리고 신 앞에서 겸양지덕 이외에 무엇이 있으랴. 신들이 예언자나 신탁이라고 불리는 특별한 사람들에게로 퇴각해버리고, 천사들과 징조를 통해서만 사람들과 교신하는 어둠의 대화 속으로 틀어박히자, 악마들에 대한 신앙이 이 힘의 공백 속으로 밀려들어갔다. 이들과 함께 메소포타미아의 공기가 어둠에 잠기게 된 것이다. 자연 현상들은 인간을 향한 악마들의 적개심의 발로인 것이다. 사막을 휩쓸고 지나가는 모래 폭풍 속의 분노한 악마, 불의 악마, 산 너머에서 솟아오르는 태양을 지키는 전갈-인간, 파주주(Pazuzu)의 광풍을 몰고 오는 악마, 악의에 찬 크라우처(Croucher), 질병의 악마, 개들에게만 격퇴될 수 있는 사나운 아사퍼 (Asapper) 등. 악마들은 인간이 잠들거나 음식을 먹거나 음료를 마시거나, 특히 아이를 낳을 때, 그리고 적막한 곳에 있을 때 금세 포위해버릴 태세를 취하고 있다. 놈들은 온갖 질병으로 인간에게 들러붙는다. 심지어 신들조차 이들에게 공격당할 수 있다. 신들이 인간사를 통제하지 못하는 것은 이 공격 때문이라고 설명되기도 했다.
- 이제까지 우리는 양원 정신의 붕괴를 입증하는 것들을 살펴보았다. 나는 이런 증거들이 상당히 설득력이 있다고 느낀다. 얕은 양각과 기둥 도장에 신들이 보이지 않는 것, 침묵의 설형문자들 속에서 잃어버린 신들을 향해 소리치는 울부짖음, 기도의 강조, 천사나 악귀 같은 새로운 종류의 말없는 신적 존재들의 등장, 천국에 대한 새로운 개념, 이 모든 것들은 신들로 알려진 환각적 목소리들이 더는 인간들을 가까이에서 인도해주지 못했다는 것을 웅변으로 증명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제 무엇이 이들의 기능을 대신했을까? 행동은 어떻게 개시되었을까? 점점 더 복잡해지는 행위들에게 환각적 목소리가 더 적절치 못하게 되었다면, 결정은 어떻게 내려질 수 있었을까? 언어적 은유에 근거하여 (심리적) 조작 공간(operation space)이 발달하고 그 속에서 '내'가 (각각의) 대안적 행동의 결과적 추이까지 이야기로 엮을 수 있게 된 것인 주관적 의식, 이것이야말로 이 갈등 상황이 양산해낸 위대한 세계다. 그러나 좀 더 원시적인 해결 방안이자, 의식보다 앞서 존재했지만 의식 출현 이후 계속 공존해왔던 것은 점이라고 알려진 복합적 행동 양식이다. 침묵하는 신들의 말을 점치는 이 시도들은 엄청난 다양성과 복잡성을 띠며 나타났다. 이 다양성은, 이들이 역사 속에서 시작된 시기에 따다 배열하고 의식을 향한 순차적 접근으로 해석할 수 있는 네 가지 주요 유형으로 이해하면 가장 좋을 듯하다. 이 네 가지 점들은 징조술(omen), 제비뽑기(sortilege), 복점(augury), 즉흥적 점술(spontaneous divination)들이다.
- 말없는 신들의 의중을 발견해내는 가장 원시적이고 어설픈, 그럼에도 끈질기게 사용되어온 방식은 단지 중요하거나 이상한 사건들의 연쇄를 기록하는 행위다. 다른 종류의 점치기와 대조적으로 이것은 전적으로 수동적이다. 이것은 포유류의 신경체계에 공통된 것으로 단지 무엇이든 확장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한 유기체가 A에 이어 B를 경험했다면 그는 다음에도 A가 발생한 뒤에는 B를 기대하는 경향을 갖게 될 것이다. 징조는 이런 것이 언어로 표현되어 나온 특정한 예에 지나지 않는 것이기 때문에, 징조술은 문명화된 문화에서보다 단지 동물적 본성에서 기원한다고 할 수 있겠다. 재발이 기대되는 사건의 연쇄 또는 징조술은 아마도 양원 시대 내내 평범한 방식으로 존재해왔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의 중요성은 그리 크지 않았다. 신들의 환각적 음성이 내리는 결정은 이상한 상황들로 이루어지는 것이기 때문에 이러한 연쇄를 따로 연구할 필요성도 없었다. 예를 들어 수메르의 징조 텍스트 같은 것은 없다. 징조의 첫 번째 흔적은 셈족 계열의 아카드 인들에게서 나타난 반면, 이러한 징조술 텍스트들이 도처에 넘쳐나면서 있을 수 있는 모든 삶의 양식에 걸쳐 간섭하는 현상은 실제로 오직 기원전 2000년 말경 양원 정신을 상실한 후에 일어난 일이다. 기원전 1000년경에 이들에 대한 방대한 수집이 이루어졌다. 기원전 650년경 니네베에 관한 아슈르바니팔 왕립도서관에 있는 2만 내지 3만에 이르는 석판들의 최소 30퍼센트는 징조 문헌의 범주에 속한다. 이 자질구레하고 비이성적인 자료 모음의 기록은 저마다 '만약에'라는 조건절과 뒤따르는 '그러면'이라는 귀결절들로 구성되어 있다. 징조술에도 일상사를 다루는 지상의 징조술 등 분류가 많이 있다.
- 아주 최근에 이르기까지도, 우연이라는 개념은 어떤 방식으로든 존재하지 않았다는 점을 알아두는 것이 도움이 될 것이다. 그러므로 땅바닥에 지팡이를 던지거나 콩알을 던져서 어떤 문제를 결정하는 법을 발견한 (이 일을 하나의 발견으로 생각한다는 것 자체가 얼마나 어색하게 들리는가!) 것은 미래에 엄청나게 중요한 발견이었다. 왜냐하면 우연이란 없었기 때문에 결과라는 것도 신의 의도에 따라 예견되지 않으면 안 되었기 때문이다.
- 메소포타미아에서 복점은 늘 예배에서 중요한 부분이었다. 이것은 바루(baru)라고 불리는 특별한 사제가 수행했는데 이때는 으레 특정한 의식이 곁들여지며, 매체가 기름이든 어떤 것이든 그것을 통해 신들이 자신들의 속내를 드러내도록 하는 기도가 선행되었다. 기원전 1000년에 들어서면서 바루의 방식과 기술들은 놀라우리만큼 다양한 은유체들을 동원하여 신의 의도를 나타낸다. 기름에 국한되지 않고, 점술가의 무릎에 놓인 향로의 향에서 피어오르는 연기의 움직임이나, 물 위에 떨어뜨린 뜨거운 촛농의 모양, 무심코 만들어지는 점들의 모양, 재가 만드는 모양들이나 모형들, 그리고 동물 희생 제물들도 쓰였다. 엑스티스피시 (Extispicy)라고 불리는 동물 제물의 엑스타(exta)로 점을 치는 방식은 기원전 1000년 동안에 유도된 유사 복점 중 가장 중요한 것이었다. 제물에 대한 생각은 물론, 제2권 2장에서 본 것처럼, 환각을 불러일으키는 우상들에게 먹을 것을 주던 관행에서부터 연유된다. 양원 정신의 붕괴와 함께 이 우상들은 환각을 불러일으키는 속성을 상실하고 한낱 석상으로 전락했다. 그러나 부재중인 신들에게 음식을 먹이는 의식은 제물 드리기 같은 다양한 의식에 여전히 잔존했다. 그러므로 신들과 대화하기 위해서는 기름이나 촛농, 연기 따위보다 동물이 더 중요한 매체로 여겨지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 수면 위의 기름에 대한 언급이 후기의 설형문자 석판에서 없어지는 것을 보면, 이 관행은 꽤 일찍부터 사용되지 않은 듯하다. (구약의) <창세기> 44장 5절에서 요셉이 마시거나 사적으로 점괘를 보기 위해 사용하며 소중히 여기던 은잔에 대한 언급은 하나의 예외적인 경우다. 이때의 시기는 대략 기원전 600년이다.
- 즉흥적 점술은 자발적이며 어떤 특정 매체에 얽매이지 않고 이루어진다는 점에서 앞서 언급한 세 가지 유형들과 다르다. 이것은 실제로 모든 유형을 일반화한 것이다. 앞에서 말한 바와 같이 신들의 명령, 의도, 목적 등은 피은유체며, 그 순간에 볼 수 있거나 점술가의 관심과 관련되어 있는 것은 은유체가 된다. 그러므로 점술가는 사업의 결과나 신의 의도를 그가 우연히 보거나 듣는 대상에게서 읽어낸다. 독자들은 혼자서 이것을 시도해볼 수 있다. 어떤 문제나 관심거리를 막연하게 생각해보라. 그런 다음 갑자기 창밖을 보거나 자신이 있는 곳의 주변을 보면서 첫 번째로 당신의 눈에 들어오는 것을 택한 다음, 그것에서 당신이 당면한 문제와 관련지어 무언가를 '읽어 '보라. 때로는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어떤 때는 당신의 마음속에 메시지가 불쑥 떠오를 것이다. 지금 나는 글을 쓰면서 북쪽 유리창을 통해 석양을 배경으로 서 있는 텔레비전 안테나를 보면서 이런 일을 했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내게는 불행한 일이겠지만, 나는 이 점괘가 내 주장이 너무 사변적이고 실바람으로부터 어떤 순간적인 암시를 포착하려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나는 다시 한번 막연하게 관심거리를 생각하며 거닐다가 갑자기 이어져 있는 방바닥에 시선을 던졌다. 거기에는 한 조교가 실험장치를 설치하고 있었고, 바닥에는 끝이 몇 가닥으로 갈라져 있는 한 개의 전선이 있었다. 나는 이 장에서 나의 문젯거리는 여러 가지 상이하고 분명하지 않은 증거를 한데 묶으려는 것이라고 이것을 해석한다. 이런 예는 수없이 많다. 메소포타미아의 텍스트에서는 이런 식의 예언을 본 적이 없다. 그럼에도 이것은 일상적인 관행이었음이 틀림없다고 확신한다. 이는 오직 즉흥적 점술이, 앞으로 보겠지만 구약에서 일상적이었으며 동시에 중요했다는 이유 때문이다. 그리고 이것은 중세에서도 여전히 많은 부류의 예언자들이 사용한 방법이었다. 이것들이 네 가지 주요 점술 유형들인데, 징조술, 제비뽑기, 복점, 그리고 즉흥적 점술이다. 이들이 사유와 결정 과정의 심리 외적 방식으로 이해될 수 있다는 점과, 점차적으로 의식의 구조에 조금씩 근접해가고 있다는 점을 유념하기 바란다. 이들 모두 저 멀리 양원 시대에 뿌리를 두고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이 장 첫 부분에서 기술한 것처럼 양원 정신이 붕괴한 후에야 비로소 이들이 중요한 결정 매체가 되었다는 일반적 결론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 나는 참으로 만족할 만한 해답을 제시할 자신은 없다. 그러나 피사의 사탑에 관련된 옛 전설의 주인공 피타고라스가 준 영향은 분명히 해답의 한 부분일 것이다. 번성 일로에 있던 기원전 6세기 중엽에 살던 그는, 솔론이 그랬던 것처럼 소아시아 여러 나라들, 특히 이집트를 방문한 적이 있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여행에서 돌아온 그는 남부 이탈리아 크로토나(Crotona)에 일종의 신비한 비밀 조직을 구성했다. 그들은 수학연구와 채식주의와 확고한 문맹 주의를 실천했다 -(그들에게)- 무언가를 적어두는 일은 오류의 근원일 뿐이었다. 적어도 몇 차례 후대 작가들의 손을 거쳐 우리에게 이른 것이지만, 이 가르침들 중에는 혼의 윤회설도 있었다. 인간의 혼은 사후에 신생아의 몸이나 동물의 몸에 들어가 또 다른 삶을 살게 된다는 것이다. 헤로도토스는 피타고라스가 이것을 이집트에서 배워왔다고 말했다가 비웃음을 받은 적이 있다. 그러나 양원 정신 이론에 동의하는 사람이라면 이집트 사상 안에서 혼 윤회설의 기원을 추적하는 일은 어려운 일이 아닐 것이다. 나는 이것은 바(ba)의 기능들에 대한 그리스인의 오해였다고 생각한다. 이런 것은 우리가 제2권 2장에서 본 것처럼 종종 카(ka)의 물리적 구체화처럼 또는 죽음 뒤에 들리는 환각적 목소리로 들리는 것이었다. 바는 종종 새의 형상을 했다. 그러나 그리스인은 카에 해당하는 단어나 (분명히 부적절한 단어인 신이라는 말 이외에는) 바에 해당하는 단어를 갖고 있지 않았다. 실제로 한 물체에서 다른 물체로 이전해갈 수 있는 '생명'에 해당하는 단어도 없었다. 이런 까닭에 사이키가 이 역할을 맡도록 했던 것이다. 이러한 피타고라스의 가르침을 담고 있는 모든 전거물들은 사이키를 이와 같이 새로운 의미로 사용하여, 마치 이집트에서 환각 목소리가 그랬던 것처럼 한 몸에서 다른 몸으로 이주해 들어갈 수 있는 확실히 분리 가능한 혼을 의미하도록 했다.
- 실제로 이것이 우리 문제를 해결해주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여기에는, <오디세이아> 제2권에 첨가된 생생한 장면들, 즉 자신의 힘을 다시 얻기 위해 뜨거운 피를 벌컥벌컥 마셔대고 저승을 떠돌며 울기만 할 뿐인 무력한 죽은 혼에 관한 이야기는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기서 사이키는 죽을 때 인간의 몸을 떠나는 어떤 것으로서 거의 동일하다. 또한 명부(롯)에서의 사이키 모습이 어떤 것이든 간에 그것은 그리스 고전에 나오는 죽은 자들의 모습과 피타고라스의 가르침이 섞여 만들어진 것이다. 기원전 6세기에 발달된 이 기이한 현상은 심리학에 극히 중요하다. 왜냐하면 사이키가 이처럼 뒤틀린 것은 사이키 너머의 생명을 뜻하게 되고 그것은 바로 혼이 됨으로써, 어휘에 거대한 내적 긴장이 발생할 때 으레 그렇듯이, 사이키의 균형에도 또 하나의 변화가 닥쳐왔기 때문이다. 소마(soma)라는 말은 시체 또는 죽음을 뜻했다. 생명성을 나타내는 사이키의 반대다. 그리하여 사이키가 혼이 되자 소마는 그 반대인 신체가 된다. 혼과 육의 분리를 가정하는 이원론이 시작된 것이다. 문제는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기원전 500년경의 핀다로스, 헤라클레이토스, 그 외 다른 사람들의 글에서 사이키와 누스가 하나로 합쳐진다. 이것이 오늘의 의식적 ·주관적 정신-공간이자 신체에 반대되는 자아인 것이다. 예배의식은 경이를 유발하는 사이키와 소마 간의 새로운 분할 주변에서 발생하는 것이다. 이 분할은 새로운 의식적 경험을 자극하기도 하고 설명해주기도 함으로써 그것의 존재를 강화시켜준다. 의식적 사이키는 무덤에 갇히듯 신체 속에 갇힌다. 이것은 순진하기 짝이 없는 논쟁의 대상이 된다. 사이키는 어디에 존재하는가? 그것의 처소라는 것이 몸 안팎 이곳저곳으로 바뀐다. 그것은 무엇으로 만들어진 것인가? (탈레스는) 물, 피, (아낙시메네스(Anaximenes)는) 공기, (크세노파네스(Xenophanes)는) 호흡, (헤라클레이토스는) 불 등인가? 모든 것들에 대한 과학은 잘못된 질문(pseudoquestion)의 늪에서 시작되었다. 이 의식의 문제에 내재하는 중심적 난점인 이원론은 역사 속에 끈질기게 출몰해온 그 거대한 경력을 시작한다. 이것은 플라톤에 의해 사유의 하늘에 굳게 정착하게 되고, 불가지론을 통해 대형 세계 종교들 속으로 이주해 들어간 다음, 데카르트의 오만한 확신을 거쳐 현대 심리학이 처해 있는 크나큰 곤경이 된 것이다.
- 이 장은 하나의 은유로 간략히 요약될 수 있는, 그러나 길고 기술적인 장이었다. 우리는 우선 도리아인의 침공 시기에서 나온 깨진 도자기 조각들에 묻어 있는 세월의 먼지를 털어냄으로써, 유적지에서 유적지로 이어지는 연속성과 그 사이의 변화를 들추어내고, 그리하여 민족들의 복잡한 이주 행렬이 있었던 것을 밝혀내는 고고학자들을 지켜보았다. 어떤 의미에서는 우리도 이 장에서 언어로 똑같은 일을 해온 것이다. 우리는 모종의 정신적 기능을 지칭하게 된 깨진 어휘의 파편들을 취하여 텍스트에서 텍스트로 이어지는 그것들의 맥락을 연구했고, 이로써 일련의 거대한 정신구조상의 변화가 도리아인의 그리스 침공 이후 암흑기 내내 지속되었음을 밝히려고 노력했다. 단어들의 변화일 뿐이라고 생각해서는 절대 안 된다. 단어의 변화는 개념의 변화요, 개념의 변화는 행동의 변화다. 종교사 전체와 정치사 전체, 그리고 심지어 과학사 전체는 이것에 대한 강력한 증인들이다. 혼이라는 단어가 없었더라면, 자유나 진리나 이러한 인간 조건의 화려한 행렬은 다른 역할과 상이한 토양으로 채워졌을 것이다.
- 진정한 양원적 시대에는 대개의 경우 환각적 목소리에 시각적 요소가 동반되었는데, 이들은 환각이거나 아니면 목소리를 듣는 사람의 앞에 있는 상이었다. 시각 요소의 속성이나 출현 빈도는 문화에 따라 확연히 달랐다. 환각을 유발하는 상이 있던 문화도 있고 그렇지 않은 문화도 있다. 모세 5경이 이 시각적 요소의 상실을 일관성 있게 차례차례로 기술해내고 있는 것은 그 근거 자료들이 연대기적으로 다양하다는 것을 고려한다면 상당히 놀라운 일이다. 태초에 스스로-존재하는-자는 시각적 존재, 즉 자기가 창조한 것의 복사물이었다.
- 나비임의 이야기는 두 가지 방식으로 이루어질 수 있다. 그 하나는 외적으로 나타나는 것으로서 초기에 이들의 역할과 지도력의 수용에서부터 기원전 4세기경에 있었던 이들에 대한 철저한 탄압과 대량 학살에 이르기까지를 추적해보는 것이다. 그러나 이 책의 이론을 뒷받침하는 증거로는 내적 관점에서, 즉 양원적 경험 자체 내의 변화라는 관점에서 이 문제들을 보는 것이 더 유익할 것이다. 이 변화들은 엘로힘의 목소리가 역사에서 사라져 버릴 때까지 시각적 요소가 점진적으로 상실되어가는 것, 목소리들이 사람에 따라 점차 일관성을 상실해가는 것, 한 사람 안에서도 비일관성이 증가되는 것이다. 이것들을 하나씩 다루어보자.
- 모세 5경 이후 양원적 목소리는 훨씬 더 퇴각했다. <신명기>의 저자가 '스스로-존재하는-자가 얼굴을 마주 보며 사귀는"(<신명기> 34장 10절) 모세 같은 사람은 그 후 존재하지 않았다고 말할 때, 그는 양원 정신의 상실을 지적하는 것이다. 그 목소리들은 전에 비해 자주 들리지도 않았고 대화하는 투가 아니었다. 여호수아는 그 목소리와 더불어 말하기보다는 그의 목소리를 그저 듣는 편이었다. 양원성과 주관성의 중간 지점에 있었던 그는 결정을 내리기 위해서는 주사위를 던지지 않으면 안 되었다.
- 이들은 유명한 나비임이어서 이들의 양원적 메시지에 대해서는 이미 선택적으로 다룬 바 있다. 무화과 열매를 채집하는 아모스 마을에서 마을로 멍에를 메고 다니는 예레미야, 구름 속으로 다가오는 바퀴 달린 높은 보좌의 환상을 보는 에스겔, 이사야에게서 연원하는 종교적 고뇌에 빠진 몇몇 나비임, 이들은 <신명기>에 완벽히 일치하는 것으로 보이는 수많은 양원적 목소리 중 단지 일부일 뿐이다. 그러고 나서 일반적으로 이 목소리들은 더는 실제로 들리지 않았다. 도덕적 선생들이 고심한 주관적 사유가 이들의 자리를 대신하게 되었다. 인간들은 아직도 꿈에 환상을 보며 때로 어둠의 소리를 듣기도 한다. 그러나 <전도서>와 <에즈라서>는 신(a god)이 아니라 지혜를 찾는다. 이들은 법을 연구한다. 이들은 '야훼를 찾아'(inquiring of Yahweh) 광야에 나가 떠도는 게 아니다. 기원전 400년경에 이르러 양원적 예언은 죽고 말았다. "나비임은 모든 사람들에게 그들 자신의 환상을 부끄러워하게 할 것이다." "자녀들이 나바 행위를 하거나 양원적 목소리와 대화하는 장면을 포착하면 부모는 당장에 그들을 죽이지 않으면 안 된다(<즈가리야> 13장 3~4절)" 이것은 가혹한 명령이다. 만일 이대로 수행되었다면 그것은 주관성을 향한 인간 유전자 풀(gene pool)의 이동을 도운 진화적 선택일 것이다. 학자들은 (바빌론) 포로 이후 유대 문화에 예언이 감소되고 사라져 버린 이유를 오랫동안 토론했다. 그들은 나비임이 소임을 다했고 더 필요 없어졌다고 주장한다. 또는 그것이 예배 속으로 침투해 들어올지도 모를 위험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또 어떤 학자들은 당시 그 어느 나라보다도 요람에서 무덤까지 점술에 사로잡혀 있던 바빌론인들에게 이스라엘인들이 타락되었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이 모든 것은 부분적으로 사실이다. 그러나 좀 더 분명한 사실은 예언의 쇠퇴가 당시 모든 곳에서 진행되던 양원 정신 상실이라는 거대한 현상의 일부였다는 점이다. 이런 관점으로 구약을 읽어 내려가노라면, 경전들의 연속 과정 전체가 우리의 주관적 의식이 태어나기 위한 장엄하고 놀라운 산고였음을 알 수 있게 된다. 그 어떤 문헌도 절대적 중요성을 지닌 이 사건을 이처럼 길고 완전하게 기록해낸 것은 없었다. 이보다 조금 앞서 중국 문헌들은 공자의 가르침 속에서 주관성으로 뛰어든다. 인도인들도 양원적인 베다(Veda)에서 초주관적 우파니샤드(Upanishads)로 돌진했다. 그렇지만 둘 다 역사적 신뢰성이 떨어진다. 그리스 문헌들은 <일리아스>에서 <오디세이아>에 이르기까지, 그리고 사포와 솔론의 파편들을 건너 플라톤에까지 이르는 징검다리들처럼, 비록 너무 불완전하기는 하나 차선의 기록물들이 아닐 수 없다. 이와는 상대적으로 이집트는 침묵 속에 있다. 구약은 정확성이 떨어져 사료로서 문제가 있지만, 여전히 과도기의 모습에 관한 지식을 제공하는 가장 풍요로운 보고다. 이 책은 본질적으로 양원 정신의 상실에 관한 이야기다. 잔존하는 엘로힘의 침묵을 향한 느린 걸음의 퇴각이다. 이것의 결과로 일어나는 혼란과 비극적 폭력의 이야기며, 올바른 행위 속에서 대안을 발견하게 될 때까지 신을 찾아 헛되이 예언자들 속을 헤매는 이야기다.
- 야원성의 가장 직접적인 잔재는 단지 특정인, 특히 제2권 6장에서 논 이하 떠돌이 예언자들에게 영속되어 나타나거나 이 장에서 다룰 신탁 같은 것에 제도화되어 나타난다. 7세기 아시리아의 신탁과 그 이전 이집트의 테베에 있는 아몬(Amon) 신탁을 묘사한 설형문자 석판들이 있지만, 우리는 그리스에 이르러서야 신탁제도를 잘 알게 된다. 그리스의 신탁은 양원 정신이 붕괴된 후 1,000년 이상이나 중요한 결정을 내리는 주요 방법이었다. 이 사실은 현대 역사가들의 과도한 합리주의에 가려져왔다. 신탁은 비주관적인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는 주관성의 탯줄과도 같다.
- 이것은 진정으로 놀라운 일이다! 우리는 교과서를 보면서 델포이 신탁을 너무도 오래 알아온 탓에, 그럴 수 없는데도 지극히 평범하다고 생각한다. 단순한 시골 처녀들이 훈련을 받아 이 세상을 지배할 결정을 즉각 즉각 내리는 심리적인 상태가 되게 할 수 있다는 것이 말이 되는가? 완고한 합리주의자는 '단순히 신령이 충만하다(plena deo)'라니! 하며 비웃을 것이다. 우리 시대의 영매들이 사기꾼이라는 것이 밝혀지듯, 이른바 신탁받는 사람들이 정치적이거나 경제적인 목적 때문에 무식한 농부들 앞에서 다른 사람들에게 조종받아 공연하는 것이었다고 할 것이다. 그러나 이와 같은 현실적인 태도는 기껏해야 공론일 뿐이다. 신탁의 마지막 시절에는 어쩌면 약간의 속임수가 있었는지도 모른다. 여사제들(prophetes)과 신탁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해석하던 보조 사제들을 매수하는 일이 있었을 수도 있다. 그러나 1,000년 동안이나 지금까지 세상에 있었던 가장 훌륭하고 지적인 문명을 거치면서, 이처럼 대규모 사기를 유지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정말 불가능하다. 로마시대에 이르기 전에는 신탁에 대한 비판이 전혀 없었음을 생각할 때 그렇고, 정치적인 감각이 있으며 많은 경우 냉소적이던 플라톤이 델포이를 '온 인류에 대한 종교 해석자'라고 존경심을 갖고 불렀던 것을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 나는 일반적 양원 패러다임의 이 네 가지 측면이, 유도와 환각 상태는 대부분 잇따라 일어나기는 하지만, 꼭 시간적으로 잇따라 일어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렇지만 인지 규범과 고대적 권한 위임은 전체 패러다임에 골고루 영향을 미친다. 또한 이 요소들 사이에는 일종의 균형 또는 총합(summation)이 존재하기 때문에, 그중 한 요소가 약하면 다른 요소가 강해야 현상이 일어난다. 그래서 시간이 지나면서, 특히 의식이 생긴 후 1,000년 동안 집단적 인지 규범이 약해지면서(즉 일반인이 고대적 권한 위임에 회의적이 되면서), 유도 절차가 강화되고 그 절차가 더 복잡해지며, 환각 상태는 더 깊어졌다. 일반적 양원 패러다임을 하나의 구조라고 할 때, 그것은 이런 현상들을 분석할 수 있는 논리적 구조라는 의미뿐 아니라, 현재 명시되지 않은 신경학적 구조 또는 뇌의 영역들 사이의 관계라는 의미도 담고 있다. 이는 어쩌면 제1권 5장에 제시된 양원적 정신을 위한 모델일 수 있다. 제3권에 언급된 모든 현상이, 보통 의식이 있는 생활과 다른 방식으로 우반구 기능과 연관이 있다고 예상해볼 수 있다. 이 현상 중 일부에 부분적인 주기적 우반구 우세가 나타나는데, 이는 9,000년에 걸쳐 양원 정신이 선택되면서 갖게 된 신경학적인 잔여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일반적 양원 패러다임이 델포이의 신탁에 적용된다는 사실은 명확하다. 복잡한 유도 절차, 의식을 잃는 환각 상태, 아폴론의 위임을 간절히 추구하는 것에서 나타난다.
- 여기서 다시 우리는 집단적인지 규범, 유도, 환각 상태 그리고 원천적 위임권자의 특징을 보이는 보편적인 양원적 패러다임의 세계로 들어간다. 좀 더 불안정한 국가들보다 양원성과 주관성 사이의 분기점이 훨씬 더 불명확했던 이집트에서는 이른바 신비 문학이 발달했다. 이것은 양원적 확실성의 경계에서 탄생하여, 의식 세계 전역으로 확산된 다양한 유도 절차들을 묘사하는 일련의 파피루스 고문서였다. 그중 하나에는 그리스의 치유의 신을 따라 아스클레피오스(Asklepios)라고 불리는 대화체 작품에 써 있는데, 그것은 약초, 보석 그리고 냄새를 사용해 악마나 천사의 영혼을 조각에 감금시켜, 조각이 말하고 예언하게 하는 기술을 설명했다. 다른 파피루스 고문서에는 이러한 조각을 만들고 생기를 불어넣는 다른 방법이 적혀 있다. 예를 들면 마술 이름을 새긴 금으로 된 나뭇잎을 넣기 위해 조각 속을 비우고 만들라는 경우도 있다. 1세기에 이르러서는 이러한 관습이 문명 세계 대부분 지역으로 확산되었다. 그리스에서는 공공장소에 있는 우상의 기적적인 행동에 대한 소문이 전설이 되어버렸다. 로마에서는 네로(Nero)가 자신에 대한 음모를 경고해주는 입상을 무척 아꼈다. 아풀레이우스(Apuleius)도 이런 조각을 소유했다고 비난받았다. 기원후 2세기에 이르러서는 환상을 일으키는 우상이 너무도 흔해져서 루키아노스는 그의 <필로수데스>(Philopseudes)란 책에서 우상들에 대한 믿음을 풍자했다. 그리고 신플라톤 학파의 한 사람인 이암블리코스(lamblichos)는 <페리아갈마톤>(Periagalmaton)이란 그의 책에서, 우상숭배술(theurgy)이라 부르는 것을 전파했다. 그는 "우상들은 신적이고 신적인 존재로 가득 찼다"는 것을 증명하려고 했으며, 크리스천 비평가들의 분노에 찬 혐오를 불러일으키면서도 이런 우상들을 유행시켰다. 그의 제자들은 우상들에게서 각종 전조를 받아냈고 이를 판별했다. 환각을 일으키게 하는 한 제자는 헤카테(Hecate)의 조각을 웃게 하고, 그녀가 손에 든 횃불에 불이 붙게 할 수 있다고 자랑했다. 또 한 제자는 우상이 전달하는 감각을 통해 그 우상이 살았는지 죽었는지 알 수 있다고 말했다. 심지어는 카르타고의 선한 늙은 주교였던 키프리아누스(Cyprianus)도 3세기에 '조각과 신성한 그림들 밑에 도사리고 있는 영들'에 대해 불평했다. 신탁과 예언이 실패한 다음, 양원적 정신을 떠올리려는 문명 세계 전체는 신에 대한 갖가지 종류와 여러 형태의 조각으로 가득 찼고, 우상숭배가 놀라울 정도로 부흥되었다. 이 모든 것을 어떻게 믿을 수 있었을까? 이것이 인간이 자신의 이성과 상식에 자신감을 갖게 되고 마침내 가짜 환각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된 주관적 시대에 일어났다는 것을 생각해보라.
- 여러분은 분명히 앞서 말한 신탁 이론에서, 내 논의가 건너뛰는 깊은 틈새를 보았을 것이다. 나는 일반적 양원 패러다임을 양원 정신의 한 혼적이라고 했다. 그러나 적어도 제4기 신탁 시대나 그 후 관점에서 볼 때 의식이 축소되거나 멍한 환각 상태(trance state of narrowed or absent consciousness)는 양원 정신의 복제라 할 수 없다. 그럼에도 그 후 신탁 과정에서 신탁받는 사람과 그가 하는 말은 신에게 완전히 지배되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때 신이 그 사람을 통해 이야기하지만, 나중에 그는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기억하지 못한다. 이 현상은 신들림 (possession)이라고 알려져 있다. 신들림 현상이 제기하는 문제는 먼 고대의 신탁에만 국한되어 있지 않고, 오늘날에도 일어난다. 이 현상은 역사를 통해 지속되어왔다. 신들림의 부정적인 형태는, 신약성서의 갈릴리 지방에서 흔한 질병 중 하나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그리고 메소포타미아, 이스라엘, 그리스 등지의 떠돌이 예언자들 중 적어도 일부는 단지 그들이 환청을 사람들에게 전달하는 게 아니었다고 할 수 있다. 오히려 이런 사례들은 신의 계시가 직접 예언자의 발성 기관을 통해 나왔던 것이며, 이때 그 예언자는 자신이 말하면서도 '자신은' 무엇을 하는지 의식하지 못하고 이후에도 기억하지 못한 경우들이다. 만일 이것을 의식의 상실이라고 부른다면 문제가 있다. 신들림을 의식의 상실이라고 하는 대신 새로운 다른 의식으로 대체된 것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러나 그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아니면 이른바 신들린 상태의 인간을 통해 말하는 그 언어 조직은, 제1권 2장에서 설명한 정신-공간 내에서의 이야기 엮기라는 의미에서 의식적이 아닌가? 이러한 질문들은 간단한 답으로 해결할 수 없다. 형이상학적 실체에 따른 신들림 현상은 존재론적으로 터무니없는 일이다. 그렇지만 역사와 신앙 속에서 나타나는 이러한 독특한 현상을 연구함으로써 얻을 수 있는 심리학적, 역사학적 통찰을 놓쳐서는 안 될 것이다. 의식과 그 기원에 대한 이론이라면, 결국은 이러한 불분명한 현상을 다뤄야 할 것이다. 시간과 정신의 이러한 어두운 구석을 밝히는 데, 이 책에 소개된 이론이 다른 이론보다 더 나은 횃불이 되리라고 믿는다.
- 정신 현상의 이해를 위한 첫걸음은 역사적인 시간 속에서 그 현상의 발생 범위를 정하는 것이다. 그 현상이 언제 처음 일어났는가? 그리스에서 그 답은 매우 분명하다. <일리아스>나 <오디세이아> 또는 그 밖의 초기 시에는 신들림이나 이와 조금이라도 비슷한 것이 언급되지 않았다. 진정한 양원 시대에서는 그 어떤 '신'도 인간의 입술을 통해 말하지 않았다. 그러나 기원전 400년에 이르렀을 때 요즘의 우리 주위에 많은 교회가 있듯이, 신들림은 그리스 전역에 흩어져 있는 신탁들과 개개인에게 빈번히 나타났다. 양원적 정신은 사라지고 신들림이 그 흔적으로 남았던 것이다. 기원전 4세기에 플라톤은 소크라테스가 정치 토론 중 "신들린 사람들은 많은 진리를 이야기하지만 자신이 무슨 말을 하는지 알지 못한다"고 말한 것을 기록했다. 마치 이러한 예언자들이 하는 말을 아테네 시내에서 매일 들을 수 있었다는 것 같다. 그리고 플라톤은 그가 살던 시대의 신탁에 의식이 상실되어 있음을 분명히 밝혔다.
"왜냐하면 예언은 광적인 행위다. 그리고 델포이의 여자 예언자와 도도나의 여사제들은 의식을 잃은 상태에서는 헬라스(Hellas)의 생활에 큰 혜택을 주었지만 의식이 돌아왔을 때는 별 도움을 주지 못했다."
- 필론은 다른 곳에서 "실제로 영감을 받고 신의 영향으로 가득 찬 사람은 그가 말하는 것을 자신의 지능으로는 이해할 수 없다. 그는 마치 다른 사람이 강요한 것처럼 그에게 주어진 것만을 반복할 뿐이다"라고 말한다.
- 3세기 초 가장 유명한 신플라톤 학파 학자인 이암블리코스는 신들림이 신성에 "참여하는" 것이고 신과 "공동 에너지"를 갖는 것이며 "진정 우리 안의 모든 것을 이해하되 우리 고유의 의식과 움직임을 없애버리는 것이다"라고 강변한다. 그렇다면 이러한 신들림은 양원적 정신으로 복귀한 것이라고 말할 수 없다. 왜냐하면 1,000년 전 아킬레우스가 아테나 여신의 음성을 들었을 때, 그는 분명 그녀가 무엇이라고 말하는지 알았다. 그것이 양원적 정신의 기능이었다.
- 다시 말하면 광란 상태에서 델포이의 신탁을 받는 한 여자의 두피에 전극을 갖다 댈 수 있다면, 신들린 상태에 있을 때 우반구에서 상대적으로 빠른 EEG를 (즉 더 활발한 운동을) 측정할 수 있을까? 그리고 특히 우측 측두엽에서 더 높을까? 나는 그러리라고 생각한다. 적어도 두 반구의 우열관계가 바뀔 수 있을 가능성이 있고, 신탁을 받는 사람들이 어려서부터 받는 훈련은, 유도 절차의 복합적인 자극에 반응하여 좌반구에 비해 우반구의 활동을 더 촉진하는 훈련이었을 수도 있다. 이러한 가설로 일그러진 표정, 광란 상태로 보이는 모습, 사시 등이 나타나는 것을 설명할 수 있다. 이러한 모습은 비정상적인 우반구의 간섭 또는 좌반구의 억제에서 벗어나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여기서 남성과 여성의 차이를 언급할 필요가 있다. 여자들이 생물학적으로 남자들보다 뇌 기능이 덜 편중되어 (less lateralized) 있다는 것은 이제 잘 알려진 사실이다. 이것은 여자들의 심리적 기능은 남자만큼 뇌의 이쪽 또는 저쪽 반구에 지정되어 있지 않다는 것을 의미한다. 여자들에게 정신 능력은 양쪽 반구에 걸쳐 더 광범위하게 퍼져 있는 것이다. 예를 들면 6세만 되어도 남자아이들은, 물체를 만져보기만 하고 무엇인지 알아맞히라고 하면, 오른손보다 왼손으로 더 잘 알아맞힌다. 여자아이들은 양손 다 마찬가지다." 이것은 이른바 촉각 인식 능력(haptic recognition)이 남자아이들에게는 주로 우반구에 집중되어 있지만, 여자아이들에게는 그렇지 않다는 것을 나타낸다.
- 이것이 일상생활과 매우 다른 어려운 신경학적인 상태를 배우는 것이므로, 유도하는 암시가 매우 색다르고 일상생활과 극단적으로 달라야 하는 것이 놀랄 만한 일은 아니다. 실제로 암시들은 완전히 달랐다. 특이하고 이상한 것이라면 무엇이든 유도 암시물이 되었다. 연기나 성스러운 물에 목욕하는 것, 마술 키톤을 입고 마술 장식 띠를 두르는 것, 이상한 화환 또는 신비로운 상징을 두르는 것, 중세 마법사들처럼 마법의 동그라미에 서 있는 것, 파우스트가 메피스토펠레스(Mephistopheles)를 환각 하기 위해 했듯이 기호(charakteres) 위에서 있는 것, 이집트에서처럼 환상을 보기 위해 눈에 스트리크닌(strychnine)을 바르는 것, 또는 유황과 바닷물에 목욕하는 것 등등이다. 2세기경 포르피리(Porphyry)에 따르면, 유황과 바닷물에 목욕하는 것은 그리스에서 시작한 매우 오래된 방법으로 상위 존재를 영접하기 위해 영적 아니마(anima)를 준비했다. 이 모든 것은 효능이 있다고 믿지 않을 때는 아무 효능이 없었다. 마치 오늘날 우리가 자신이 '자유 의지'를 갖고 있다고 믿지 않을 때는 '자유 의지'가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 그리고 이러한 유형의 신들림이 정신분열증과 관련이 있다는 것도 분명하다. 정신분열증처럼 부정적인 신들림은 주로 어떤 환상으로 시작한다. 그것은 스트레스가 어느 정도 심하게 지속되었을 때, '악령'이나 다른 존재의 징계하는 '목소리'를 듣는 것으로 시작될 때가 많다. 그러나 정신분열증과는 달리, 이 목소리는 강한 집단 인지적 규범 때문에 이차적인 인격 체계로 발전하게 되고, 신들린 사람은 의식을 잃고 주기적으로 환각 상태에 빠지는데, 이때 인성의 '악령적' 측면(the 'demon' side of the personality)이 지배하게 된다. 환자들은 항상 교육을 받지 못한 사람들이고 대부분 글을 모른다. 이런 이들은 모두 영이나 악령 또는 이와 비슷한 존재들을 믿고, 또 이런 존재들을 믿는 사회에 살고 있다. 발작은 주로 몇 분에서 한두 시간 지속되고, 발작이 멈추면 환자는 비교적 정상으로 되면서 발작에 대해 거의 기억하지 못한다. 괴기소설들에서와는 달리, 부정적인 신들림은 주로 언어적인 현상이고 어떤 행동을 동반하지 않는다. 내가 연구한 신들린 사례에서도 다른 사람들에게 범죄행위를 하는 사람은 드물었다. 사람은 악령처럼 행동하지 않는다. 다만 악령처럼 말할 뿐이다.
- 좀 더 가능성이 높은 것은, 양원 정신과 현대의 신들림 상태 사이에 다음과 같은 신경학적인 차이가 있다는 가설이다. 그것은 양원적 정신에서는 환상이 우반구에서 만들어져 그곳에서 들리고, 신들린 상태에서 하는 말은 정상적인 경우에서처럼 좌반구에서 생성되지만 우반구에 의해 조종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우반구의 베르니케 영역에 대응하는 영역이 좌반구의 브로카 영역을 사용한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최면상태와 비인격화가 나타난다. 이러한 교차 지배가 정상적인 의식 상실의 신경학적 기제일 수 있다.
- 그런데 이 모든 것이 양원적 정신과 어떤 연관이 있는가? 오랫동안 알려져 왔듯이 언어 기능은 주로 좌반구에서 담당한다. 그러나 최근 발견한 바에 따르면 노래는 우반구에서 다룬다. 이에 대한 증거는 다양하지만 일관성이 있다.
- 여기서 뮤즈는 그 누군가의 상상력의 산물이 아니란 것을 강조하고 싶다. 헤시오도스의 <신통기> 첫 부분의 몇 쪽을 훑어보면, 이 모든 것이 환상 상태에서 듣고 본 것임을 알 수 있다. 오늘날 정신분열증이나 일부 마약으로 일어나는 현상과 비슷하다. 양원적 인간들은 상상하지 않았다. 그들은 경험했다. 목소리가 '백합 같은' 아름다운 뮤즈는 밤의 어두운 안개에서 춤을 추며 나와 황홀경에 빠진 외로운 양치기 주위를 돌며 부드럽고 강하게 발을 구른다. 이러한 극도의 섬세함은 후기 양원적 인간에게 기억의 환상적인 근원이었다. 이들은 과거라는 시간들을 갖지 않았고, 우리와 같은 의미의 '일생'이 없으며, 충분히 의식적이지 않아서 회상할 수 없었다. 이것은 그들이 선택한 매개체인 헬리콘(Helicon)의 양치기를 따라 신화의 일부가 되었다. 헬리콘의 양치기에 따르면, 뮤즈 여신들은 항상 같은 프레네스를 가지고 '끊임없이 흐르는' 노래를 불렀다고 한다. 인간에게 무엇을 하라고 지시하기보다는, 어떤 사람들에게 이미 일어난 일을 알려주었던 이 특별한 신의 집단인 뮤즈 여신들은 므네모시네의 딸들이었다. 므네모시네는 타이탄족으로 그 이름은 이후에 '기억'(memory)을 의미하게 되었는데 그것은 이 세상에서 그런 의미가 있는 첫 번째 단어였다. 이렇게 뮤즈에 호소하는 것은 우리가 기억에 호소하는 것과 같은 기능이 있다. 무엇인가를 떠올릴 때 갖는 설단 현상도 그중 하나다. 이 현상들은 자신이 무엇을 하는지 모르는 의식이 없는 사람에게는 나타나지 않는다. 일리아스의 어느 대목에서, 시인이 어려움을 느끼기 시작하자 뮤즈 여신들에게 다음과 같이 간청했다.
"올림푸스에 사는 뮤즈 여신이여. 내게 말하소서. 그대들은 여신들이며 현재에 있고 모든 것을 압니다. 그러나 우리들은 소문만을 들을 뿐 아는 것이 없습니다. 제게 그리스인의 지도자들과 통치자들이 누구였는지 알려주소서.(2권, 483~487쪽)"
- 만일 내가 여러분에게 식초를 샴페인처럼 마시고, 바늘로 팔을 찌르면서 쾌감을 느끼라고 한다면, 또는 어둠 속을 주시하면서 상상의 빛을 보기 위해 동공을 줄이라거나, 평상시 결코 믿지 않는 어떤 것을 의도적으로 그것도 진심으로 믿으라고 한다면, 그렇게 하기가 불가능한 것은 아닐는지 모르나, 결코 쉽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그렇지만 만일 내가 당신에게 최면을 건다면, 당신은 그리 어렵지 않게 내가 요구한 것들을 해낼 수 있다. 왜 그런가? 어떻게 그런 기이한 일이 가능해지나? 친숙한 시 이야기를 하다가 최면 같은 이상한 주제로 넘어가는 것 자체가 생소할 수 있다. 사실 최면은 심리학의 여러 문제들 중 지극히 이상한 주제다. 최면은 환영받지 못하는 돌연변이처럼 실험실, 사육제, 정신과 치료소와 공회당을 들락거리느라 어떻게든 정리되거나 과학적 이론으로서 어떤 확고한 속성을 가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 이 장에서 나는 내 이론 외에 다른 어떤 이론도 이 근본적인 문제를 제대로 다루지 못한다고 주장할 것이다. 만일 우리의 현대적 정신 체계가, 대부분의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포유류나 그전의 진화 과정에서 생긴 유전적으로 결정된 불변의 특성이라면, 최면을 통해 정신이 어떻게 그렇게 변할 수 있을까? 그것도 다른 사람의 얼토당토않은 지시에 따라 어떻게 그렇게 변할 수 있을까? 최면에 따른 정신의 변화를 제대로 보기 위해서는 우선 유전학적 가설을 기각해야 하며, 의식을 더 권위적인 옛적 행동 통제 방식의 기저를 이루던 흔적에서 오는 학습된 문화적 능력이라고 보지 않으면 안 된다.
(리뷰자 주 : 이 부분이 내게는 급작스러운 전개로 느껴지는데, 이는 저자가 의식을 복합체가 아닌 단일체로 보고 접근하고 있다는 느낌을 준다. 약 12년 뒤에 후술로 추가된 후기에서 저자는 만약 그렇지 않다면 모든 세포마다 의식이 존재해야 한다는 근거로 반박하는데, 그를 근거로 의식의 출현을 주장한 자가 '안토니오 다마지오'다. 그는 의식을 복합체적인 관점에서 보았으며, 따라서 척수 이상의 진화적 구조가 뒷받침되어야 하긴 하지만 의식은 각각을 종합하여 구성되는 '통일적 자기상'의 일종으로 본다. 그가 최면을 다루지는 않았지만, 그의 이론에 따르자면 최면은 '중심점의 이동일 뿐'이 될 것이다.)
- 지각은 자극을 감지하고 그에 적절하게 반응하는 것이다. 이것은 내가 운전하는 것을 기술하려고 했던 것처럼, 무의식 수준에서 일어난다. 이 문제를 보는 또 다른 방법은, 박테리아를 지각하고 적절하게 반응하여 이를 먹어치우는 백혈구의 행동을 기억하는 것이다. 의식을 지각과 동일시하는 것은 우리 순환계를 도는 혈액의 1세제곱 밀리미터마다 6,000개의 의식적 실체가 있다고 말하는 것과 마찬가지인데, 이는 말도 안 되는 결론이다. 의식이 모두 언어는 아니지만 의식은 언어로 생성되고 언어로 접근된다. 그리고 우리가 언어가 의식을 어떻게 생성하는지에 대한 복잡한 실타래를 풀려고 하면 이론화하기 어려운 상황에 처하게 된다. 나는 역사적으로 어떤 원시적 기제에 따라 이 일이 일어났는지를 간략히 기술한 다음, 제2권 5장에서 그리스에서 의식이 발달할 때 이 기제가 어떻게 작용했는지를 보여주려고 노력했다. 그 후 의식은 언어 속으로 편입되어 아이들에게 의해서도 쉽게 학습되었다. 이를 하나의 일반적인 규칙으로 표현하면, 행동에서 먼저 일어나지 않은 조작이 의식에서 일어날 수 없다는 것이다. 간략히 복습해보면, 이 책 71쪽에 있는 원과 세모 문제를 보고 이 원지시를 풀 때, 우리는 비록 우리가 실제로는 어떤 것도 보지 않으면서도, "나는 그것이 삼각형임을 본다"라고 말한다. 이런 문제풀이의 표현방법을 찾는 원지시에서, 실제 보는 과정에 대한 은유가 우리 마음속에 떠오른다. 다른 은유체가 있을 수 있고 의식에 다른 느낌을 줄 수 있겠지만 서구문화에서 우리가 심적 사건을 포착하려 할 때 사용하는 '보다'(see)나 다른 단어들은 시각적이다.
(리뷰자 주 : 이 책이 처음 발표된 것이 1976년 경임을 생각해볼 때, 45년 여가 흐른 지금 '안토니오 다마지오'의 <느끼고 아는 존재>가 주장-반박하고 있는 내용을 이미 다루고 있음은 매우 놀랍다. 다마지오는 저자가 말한 '6천 개의 의식적 실체', -의식의 요구 조건- 그것의 종합적 총합이 '의식'이라고 대담하게 주장한다.)
- 또 다른 수준에서 우리는 왜 우리의 일상 삶에서 우리 자신을 뛰어넘어 우리가 진정으로 원하는 존재가 되도록 자신에게 권한을 부여할 수 없을까? 최면 상태에서 우리의 정체감과 행동에 변화를 일으킬 수 있다면, 왜 혼자 힘으로, 최면 유도자가 최면에 걸린 사람에 대해서 갖는 권위로, 우리가 의지라고 부르는 우리 안의 어떤 것이 행동의 주인이자 선장이 되어 우리 결정이 어떤 절대적 연결 속에서 행동으로 이어지도록 할 수 없을까?
(리뷰자 주 : 명상을 셀프 유도-최면의 한 기법으로 볼 수 있을까?)
- 왜냐하면 우리의 이론에 따르면 기원전 2000년경에는 모든 사람이 정신분열증 환자라고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둘째로, 위의 가설에 근거하면, 의식의 시대에 들어 광기가 처음으로 언급되었을 때 그것은 양원적 용어로 언급되었으리라고 예상할 수 있다. 이것은 훨씬 더 강력한 경우가 될 텐데, <파이드루스>(Pbaednus)에서 플라톤은 광기를 "신의 선물이요, 인간에게 주어진 가장 고귀한 축복의 근원"이라고 부른다. 이 구절은 네 유형의 광기를 구분하는 대화편 가운데 가장 아름답고 매끄러운 서곡이다. 네 유형의 광기에는 아폴론에서 비롯되는 예언자적 광기, 디오니소스의 의식적 광기. 섬세하고 순수한 영혼을 움켜쥐고 그들에게 광기를 불어넣어 서정시를 포함한 모든 시상을 일깨우는 뮤즈에게 신들린 사람들이 보이는 시적 광기와, 에로스와 아프로디테의 정열적 광기다. 예언적인 것을 나타내는 단어인 'mantike'과 정신병적으로 미친 것을 나타내는 'manike'는 젊은 플라톤에게는 같은 말이었고, 그에게 t자는 '현대적이고 특별한 의미 없는 첨가'였다. 내가 여기서 주장하려는 요점은 우리가 정신분열증이라 부르는 형식과 우리가 양원적이라고 불렀던 현상이 연결된다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는 것이다.
- 옛날에는 광기에 대한 가장 일반적인 용어였던 'paranoia'는 앞장에서 기술한 다른 양원적 흔적들과 함께 사용되다가, 2세기경 그들과 함께 언어적으로 사라졌다. 그러나 플라톤 시대에서조차 전쟁, 기근, 전염병이 많았던 탓인지 네 가지 신적 광기들은 점진적으로 현명한 사람의 시와 보통 사람들의 미신을 지칭하는 두 영역으로 변화되었다. 정신분열증의 병적 측면이 표출되기 시작한 것이다. 대화편의 후반부에서 이제 나이가 든 플라톤은 더 조심스러워져, 우리가 정신분열증이라 부르는 것을 지속적인 꿈으로 구분했다. 이 꿈에서 어떤 사람들은 "자신들이 신이라고 생각하고 다른 사람들은 날 수 있다고 믿는데," 그런 증세를 보이는 사람들의 가족은 그들을 집에 있게 하지 않으면 벌금을 물게 했다. 사람들은 이제 미친 사람들을 멀리하게 되었다. 아리스토파네스(Aristophanes)의 기괴한 희극에서조차 그들을 멀리하기 위해 돌을 던졌다. 우리가 오늘날 정신분열증이라고 부르는 것은 인간 역사에서 신과의 관계로 시작되었고, 기원전 400년경에야 비로소 오늘날 우리가 아는 치명적인 병으로 간주되기 시작했다. 이런 발달은 이 책이 주장하는 정신 체계의 변화 이론이 아니면 이해하기 어렵다.
- 환각은 때때로 환자 자신보다 -마치 옛날의 신이 그랬던 것처럼- 더 많은 기억과 지식에 근접할 수 있는 것처럼 보인다. 병이 진행되면서 환자들은 자신이 생각해보기도 전에 그 목소리들이 자신의 생각을 표현한다고 자주 불평한다. 자신의 생각을 예상하고 이를 자신에게 말해주는 과정은 임상적 문헌에서는 'Gedankenlautwerden'이라 하는데, 이는 양원적 정신과 아주 흡사하다. 어떤 사람들은 그들을 대신하여 사고되고 그들에게 사고가 주어지기 때문에, 스스로 생각할 기회가 더 없다고 말한다. 그들이 읽으려고 하면 목소리가 그들보다 먼저 읽는다. 그들이 말하려고 하면 그들의 사고가 그들보다 먼저 말하는 것을 듣게 된다. 또 다른 환자는 자신의 의사에게 이야기하기를 "생각하는 게 고통스러워요. 그는 혼자 생각할 수 없기 때문이지요. 그가 생각하려고 할 때마다, 그의 모든 사고가 그에게 명령을 내려요. 그는 사고의 흐름을 바꾸려고 애쓰지만, 그의 사고가 다시 그를 대신해요."
- 종교적 환각은 일종의 각성 상태에서의 꿈인 이른바 황혼 상태(twilight states)에서 특히 자주 관찰된다. 이 상태는 많은 환자에게 몇 분에서 몇 년에 걸쳐 지속되지만 가장 흔하게는 6개월 정도 지속된다. 그런 상태는 종교적 환상, 자세, 의식, 예배 등으로 특징지어지며, 환자는 환각으로 이루어진 환경 속에 살고 있어서 병원 환경 역시 지워버리는 점을 제외하면, 양원 상태 같은 환각 속에 산다. 환자는 천국의 성인들과 접촉할 수 있다. 그는 자신의 주위에 있는 의사나 간호사를 제대로 알아볼 수 있지만, 그들은 신이나 천사가 변장한 것이라고 믿고 있을 수 있다. 그런 환자들은 천국에 사는 사람들과 직접 이야기하면서 기쁨으로 소리칠 수도 있고, 신의 목소리와 대화하고 또는 밤에 별을 불러 별과 대화할 때는, 두 역할을 왔다 갔다 할 수도 있다. 편집증 환자는 다른 사람들과 잘 지내지 못하는 기간이 길어지면서, 환각 속에서 천사나 예수나 하나님이 환자에게 양원적 방식으로 이야기를 걸어오면서 어떤 새로운 방식을 알려주는 종교적 경험을 하는 따위의 정신분열적 증세를 보일 수 있다. 그는 우주의 권력자와 특별한 관계가 있음을 확신하게 되고, 자기 주변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과 자신을 병적으로 관련짓고, 환자는 더 따져볼 수도 없게 되어 몇 년 동안 그것에 사로잡히는 망상 속으로 빠져들게 된다.
- 증세가 심한 정신분열증 환자면 누구나 어느 정도는 이런 증세를 보인다.
"내가 아플 때면 나는 내가 어디에 있는지를 잊는다. 나는 '내'가 의자에 앉을 수 있다고 느끼지만 내 몸은 밀쳐져서 내 앞에서 90센티미터가량 공중제비를 한다. 다른 사람과 대화를 지속하기는 정말로 힘이 드는데, 왜냐하면 나는 다른 사람이 정말로 이야기하고 있는지를 확신할 수 없고 또 내가 제대로 대답하는지도 확신할 수 없기 때문이다. 나는 점점 나의 얼마만큼이 내 안에 있으며, 나의 얼마만큼이 다른 사람 안에 있는지 구분할 수 없다. 나는 매일 뒤죽박죽으로 다시 구성되는 괴물 덩어리다. 생각하고 결정하는 내 능력과 뭔가 하고자 하는 의욕은 스스로 사분오열이 된다. 결국 그것은 내동댕이쳐져 일상의 다른 부분들과 뒤섞이고, 남은 것들이 무엇인지나 판단한다. 어떤 일들을 해보려고 애쓸 필요도 없다. 그 일들은 깜짝 놀랄 만한 기계적인 어떤 것에 수행되어 버린다. ... 사람의 내부에 있어야만 하는 느낌이 밖에 있어 다시 안으로 되돌아오려고 하나, 이미 돌아갈 힘을 빼앗긴 상태다."
- 이상은 이 정도라도 서술할 수 있는 환자들이 상실된 자아를 묘사한 다양한 방식이다. 또 다른 환자는 '자신의 생각을 다시 발견하기 위해' 한 번에 몇 시간씩 조용히 앉아 있어야만 했다. 또 다른 환자는 '자신이 죽어가는 것처럼' 느꼈다. 우리가 앞에서 본 것처럼 슈레버는 '영혼-살해자'를 이야기했다. 아주 지적인 한 환자는 '잠시 동안이나마 자아를 발견하기 위해' 몇 시간씩 애써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자아는 우주의 힘, 선이나 악의 힘, 또는 신에게 빨려 들어가는 것을 느낀다. 실제로 정신분열증이라는 용어는 정신분열증으로 확인되는 핵심 경험을 표시하기 위해 블로일러(Bleuler)가 만든 말인데, 이 경험은 '자신의 정신을 상실하는' 느낌, 더 존재하지 않거나 정상적인 방식으로 행동이나 삶에 연결되지 않을 때까지 자아가 '단절되는' 느낌, 그리고 결과적으로 유발되는 '정서 결핍'이나 의지 결여 같은 더 서술적인 여러 증세를 가리킨다.
- 세 번째의 일반적 가정은, 의식은 양원적 정신이 붕괴한 후에 비로소 나타났다는 것이다. 이것이 옳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신을 잃어버린 데서 오는 혼돈으로 인간은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게 되고, 이 고통은 이전의 정신 체계를 대신할 수 있는 어떤 새로운 정신 체계를 만들어낼 사회적 여건을 제공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실제로 여기에는 두 가지 가능성이 있다. 약한 형태의 이론은 의식이 언어에 근거하지만 의식이 존재하게 된 것은 최근이 아니라 언어가 막 등장하던 문명 시작 이전 시기로 대략 기원전 1만 2000년 경이며, 목소리를 듣는 양원 정신의 출현 시기라는 것이다. 두 정신적 체계들이 공존하다가 양원 정신이 쓸모없어져 떨어져 나가고, 의식만이 인간의 결정 수단으로 남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것은 거의 모든 것을 설명할 수 있고 거의 반론의 여지가 있을 수 없기 때문에 극도로 약한 주장이다. 좀 더 흥미로운 강력한 형태의 이론은 내가 양원적 정신 개념을 소개할 때 언급했던 것이다. 이 가설에서는 우리가 의식이라고 부르는 이 극히 사적이고 내면적인 사건들의 세계가 존재하게 된 것은 아주 최근으로 본다. 그 연대는 세계의 여러 지역에 따라 조금씩 다른데, 양원적 문명이 시작되었던 중동의 경우 대략 기원전 1000년 경이다. 이 연대는 기원전 1200년경부터 양원적 정신의 붕괴가 분명히 드러나는 메소포타미아 유물들에서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의식은 혼란스러운 사회적 해체와 인구 과밀 그리고 아마도 청각적 명령 형식을 대신하는 문자 기록의 사용과 함께 시작되었다. 이 붕괴로 오늘날 우리가 종교적이라고 부르는 관습들이 생겼다. 이것들은 기도, 종교적 예배, 그리고 특별히 다룬 바 있는 다양한 형태의 점술들, 즉 단순한 유사로 다시 신의 지시에 따르는 것이라고 믿어버리는 새로운 결정 방식 등 잃어버린 신의 목소리로 돌아가려는 노력인 것이다.
- 이 결론은 잘못된 것이다. 자기-자각은 대개 시간에 걸쳐 존재하는 자신의 고유한 모습(persona), 즉 우리가 다른 사람과의 관계 속에 있는 자신을 꿈꿀 때, 내가 누구인가에 대한 감각이나 자신의 희망이나 두려움에 대한 감각을 의미한다. 우리는 거울을 볼 때, 비록 거울에 비친 모습이 많은 경우 자아에 대한 표식이 되기는 하지만, 거기서 우리의 의식적 자아를 보는 것은 아니다. 이 실험에서 침팬지와 두 살배기 아이는 신체와 거울 이미지 간의 놀라우리만치 정확한 대응관계를 학습한다. 거울을 통해 발견한 어떤 점을 만지는 것은 거울 없이 신체에서 발견된 점을 만지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 동물은 그 어디에서도 자신에 대해 상상한다거나, 시간을 경과하며 자신의 삶에 대해 사고한다거나, 어떤 의미에서건 내성한다는 것이 입증된 적이 없다. 이것들은 모두 의식적 자아만이 보일 수 있는 일들이다.
- 이 책은 20세기가 산출한 가장 의미 있는 학문적 성과물로 꼽힐 뿐 아니라 그만큼 많은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이 책에서는 의식에 대한 기존의 여러 견해들, 즉 의식이 물질의 속성이라거나, 원형질의 속성이라거나, 아니면 경험, 학습, 추론, 판단의 다른 이름이라는 견해는 물론 의식을 인과적 영향력이 없는 단순한 부수 현상으로 보는 견해가 모두 기각된다. 그 대신 인간의 옛 정신 체계는 양원적(bicameral)이었다는 주장과 함께, 의식은 인류 역사의 한 특정 기점이 었던 정신의 양원적 구조의 소멸 시기와 연계되어 있다는 파격적인 주장이 제기된다. 저자는 심리학, 문학, 인류학, 철학 등 다양한 학문분야에서 끌어낸 논거들을 유기적으로 연계함으로써 이러한 주장의 근거를 제시했다. 이 때문에 이 책은 다양한 학문분야에서 근본적인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고, 그 영향력은 프로이트에 비견되기도 한다. 고대 문헌을 분석하고, 고고학적 성과물을 분석하며 이상심리학적 증거들을 들이대 옛 인류의 양원적 정신 역량은 '신의 음성'을 들을 수 있었다고 주장하는 대목에 이르면, 이 책은 학자들의 학문적 관심을 넘어 세인의 지적 호기심을 자극하기에 충분하다.
- 이 책은 3부로 구성되어 있다. 인간의 정신(또는 마음)을 다루는 제1권에서는 서론에서 문제 제기했던 의식의 문제를 논쟁적으로 심화한다. 제1권 중반 이후부터 이어지는 흥미진진하면서도 설득력 있는 논증들에 비해 다소 산만하고 불만스럽게 느껴지기까지 하는 제1권 초반은 "의식은 ~이 아니다"는 도전적인 접근으로 시작한다. 살아 있는 한, 언제나 '의식'이 있는 것이라고 믿는 우리에게 그는 그것이 의식이 아닐 뿐만 아니라, 역사적으로 장구한 세월 동안 역사 초기의 옛 인류는 의식을 갖지 않은 채 삶을 성공적으로 영위할 수 있었다고 주장한다. 그들은 우리와 다른 정신적 기능에 의거하여 삶을 살았다는 것이다. 의식과 지각, 반응성(reactivity), 인지(cognition) 등을 구별하는 저자는, 의식보다는 반응성이 우리의 행동을 유발하는 모든 자극들을 관장하는 정신기능이며, 이에 비해 의식은 훨씬 더 국소적인 현상일 뿐이라고 주장한다. 우리는 우리가 반응하고 있는 것들을 단지 이따금씩만 의식할 뿐이라는 것이다. "당신을 보고 있는 나는 지금 당신을 의식하고 있지 않은가?"라고 묻는 반론자에게 그는 "당신이 지금 의식하는 것은 내가 아니라 당신의 논증일 것이다"라고 답한다. 이로써 그는 "적어도 나에 대해서 말하는 한, 당신은 의식이 없다고 말할 수 있으며, 그때 당신의 정신기능은 '의식'이 아니라 '지각'일 것이다"라고 말하는 셈이다. 그는 의식 없이 살던 시대가 있었다는 사실을 문헌적으로 고증하기 위해 <일리아스>를 분석한다. 행동을 급박하게 결정 내리기 위해 수많은 판단을 해야 했을 일리아스 전사들을 묘사할 때 의식에 상당하는 단어가 전혀 나타나지 않았다는 사실을 지적한다. <2중 뇌>(double brain)에서 다룬 뇌에 대한 심리학적, 생리학적 논의에서도 제인스는 우리의 정신이 양원적 구조를 이루고 있다는 것을 입증하는 데 초점을 둔다. 두뇌의 어느 곳에 의식이 숨어 있다든가 하는 데카르트식 추측이나, 두뇌 속에서 의식을 담당할 어느 부위를 찾으려는 노력을 일축한다. 그는 두뇌에 대한 지식만으로는 결코 두뇌가 의식을 담고 있는지 알아낼 수 없다고 결론짓는다.
- 그렇다면 우리는 어디에서 의식의 근거를 찾아야 하는가? 제인스에 따르면 의식은 언어에 근거를 두고 있다. "의식이 모두 언어는 아니지만 의식은 언어로 생성되고 언어로 접근된다”(이 책 590쪽). 이때 그에게 중요한 것은 언어의 은유 기능이다. 그는 이 과정에서 네 가지 새로운 용어를 주조해내며 다소 복잡한 논증을 펼친다. 그는 은유체들의 단순한 연합을 석의체(paraphier)라 하고 석의체의 대상이 된 것을 피석의체(paraphrand)라고 부른다. 이때 피석의체는 원래 피은유체들의 연합으로서 이 연합 과정에서 새로운 의미를 생성해낸다. 언어는 이러한 은유 과정에서 성장하는 것이다.
- 제목이 <역사의 증언>인 제2권에서 심리학자 제인스는 놀랍게도 제1권과는 전혀 다른 시각에서 양원성에 역사적, 고고학적, 문화적 접근을 시도하는 박학을 과시한다. 여기서 관심 주제는 양원성과 신이다. 양원 시대의 인류는 신의 음성을 들었다. 중요한 순간마다 들려오는 그 음성에 따라 결정하고 행동했다. 고대 그리스 민족의 <일리아스>에 나오는 전사들이 그렇게 했고, 히브리 민족의 성서에 나오는 선지자들이 그렇게 했다. 앞에서 문학적 문헌으로 고증하던 제인스는 이번에는 양원적 인류가 살던 고대 문명의 현장을 찾아다니며 돌기둥에 적힌 양각, 음각의 글줄과 그림을 살피고 온갖 종류의 신상을 조사하며 허물어진 사원을 탐방한다. 신의 영향력을 보기 위해서 말이다. 이신은 대개 양원적 인류에게 목소리로 찾아왔다. 그러나 두뇌를 심리학적으로 연구해온 제인스에 따르면 신의 목소리는 통합적인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우반구 기능이 ... 언어적으로 암호화되었다"(이 책 323쪽), 다시 말해 그 목소리들은 이러한 우반구 활동이 활발하던 양원 시대에 어떤 사람의, 특히 왕과 같은 권위적 인물의 죽음은 그들의 육체적 죽음을 의미하는 게 아니었다. 그 대신 그들의 음성이 그들이 죽은 다음에도 누군가에 의해 계속해서 들리는 한, 그들은 죽은 게 아니고 산 자들과 더불어 살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현상을 입증한다고 여길 수 있는 수많은 사례들이 제2권에 담겨 있다. 이런 시각에서 다시 생각해보면, 죽은 자들이 '살고 있는' 무덤이 왜 그런 식으로 만들어질 수밖에 없는지를 이해할 수 있게 된다. 그들을 마치 살아 있는 듯이 매장하는 방식은 거의 모든 고대문화에 공통으로 나타난다. 망자들은 먹을 음식, 마실 물, 사용할 집기, 가구 등과 함께 묻힌다. 이런 것들이 메소포타미아와 올멕과 마야와 고대 중국과 이집트 등지의 무덤에서 흔하게 발견되고, 망자에게 '넣어드려야 할' 이런 물품명세서들이 장례절차에 관한 문헌에서 발견된다. 요컨대 양원 시대의 사람들에게 죽은 자들은 죽은 것이 아니다. 제인스는 고대의 여러 문화에 걸쳐 이런 관습이 보편적으로 관찰되는 이유는 권위적 망자들이 여전히 산 자들에게 환청으로 명령했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명령하는 권위적 망자들이 곧 신이다(이 책 219~220쪽). 그들은 "그가 죽었다"고 말하는 대신 "그는 신이 되었다"고 말했다. 이러한 개념은 심지어 의식의 시대에 들어서도 전수되어서인지 플라톤조차 <국가론>에서 죽은 영웅들은 죽은 후에도 인간에게 할 일을 지시하는 신이 된다고 말했다(이 책 224~225쪽). 신의 근원은 죽은 인간이며 그들이 환각적 목소리의 주인공이다. 그러나 여러 가지 원인으로 더는 신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게 되자 신의 입을 열기 위해 그들은 신상의 입을 씻어주는 의식을 거행하는 등 애를 태운다. 홍수나 화산 폭발 같은 자연 재앙, 사회적 복잡성의 증가, 이민족 간의 교역, 그리고 문자 쓰기의 도입 등으로 신-인 관계가 느슨해지면서 (이 책 282~283쪽), 살아 있는 인간에게 이래라저래라 명하는 신의 음성이 지상에서 더는 들리지 않게 되자, 그 대안으로 의식이 생성되었다는 것이 제인스의 주장이다. 그는 역사적 추론으로 의식이 발생한 이유를 몇 가지로 설명했다. 문자 쓰기의 시작과 함께 듣는 일의 중요성이 감소되었고, 따라서 환각적 통제력이 약화되었으며, 역사적 대격변기의 혼돈 속에서 신의 말이 먹혀들지 않았을 것이다. 또 유입된 타민족의 차이점을 관찰할 때 자기 내부의 주관적인 원인들을 적용하기 시작했을 것이며, 서사시에서 이야기를 엮어내는 능력이 개발되기 시작했고, 타인을 속이고 사기 치는 머리가 생겨났으며, 자연선택이 일어났던 것 등이 그것이다. 한 가지 흥미로운 것은 이러한 제인스의 주장은 실제로 신(god이든 God이든)의 부재(신의 등돌림)의 원인이 인간 자신들의 죄악 때문이라고 믿는 오늘날의 많은 사람들의 생각과는 사뭇 다른 점인데, 제임스에 따르면 오히려 인간들의 정치적, 윤리적 삶이 잔악해진 것은 어떤 신의 음성이 들리지 않게 된 결과다. 그는 양원 시대에는 어떤 사적인 야심도, 탐욕도, 갈등도, 포악성도 없었다고 한다. 왜냐하면 양원적 인간은 사적으로 존재할 내적 '공간'도, 그런 공간에 있을 유사 '나'도 없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당시 사람들은 오늘날의 우리보다 더 평화스러웠고 친절한 인간 종이었다고 주장한다(이 책 278쪽).
- 양원성과 종교적 신의 문제를 다룬 제2권에 이어, 제3권에서는 양원성과 정신병의 관련성을 논의한다. 그는 "정신병으로 심리적 변화를 일으키는, 신경계에 내재하는 태양숭배나 신은 결코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하면서 양자의 연관성을 부인한다. 양자 간에 때때로 환각이라는 공통 현상이 등장하기는 하지만, 원칙적으로 그것은 교육과 종교적 역사에 대한 친숙함 때문이라고 본다. 그는 두뇌 속에는 바로 그러한 환각이 존재하기 위한 소질 구조들이 있으며, 이 구조들은 발전하여 일반적인 종교적 특성을 결정하고, 이들 소질 구조 배후의 패러다임은 인류의 초기 문명화 과정에서 자연적 또는 인간적 선택에 따라 두뇌 구조로 진화되었으며, 정신분열증은 대부분 이 소질 구조들이 비정상적인 생화학적 작용으로 자신들의 정상적인 억제에서 풀려나게 되고, 독특한 경험으로 개별화된다고 정리했다(이 책 548~550쪽).
- 그에 따르면 과학적 탐구는 양원적 정신이 와해된 직접적 결과였다. 물리학, 심리학과 생물학의 토대를 만든 사람들은 모두 17세기 말엽의 영국 프로테스탄트들로 이들은 지극히 경건했다. 그에 따르면 현대 과학도 종교적인 형식이 있다. 예를 들어 그가 과학주의라 부르는 것 역시 이 시대에 과학과 종교가 분리되면서 남은 공허함을 채우기 위해 급격히 신앙적 신조로 굳은 과학적 신화다. 따라서 현대 과학 역시 그것이 대신하려는 종교가 했던 것과 똑같은 특징이 있다. "모든 것을 설명하는 합리적 우수성, 카리스마가 있는 지도자와 두드러져 비판받지 않는 지도자의 계승, 과학적 비판이 허용되지 않는 경전 같은 일련의 텍스트들, 특정한 사고방식과 해석 방식, 그리고 완전한 헌신의 요구 등이다. 이에 대한 보상으로 추종자들은 한때 종교가 제공했던 것을 그대로 받는다. 세계관, 중요성의 위계 체계, 그가 무엇을 하고 생각할지를 알려줄 복점 치는 장소, 요컨대 인간에 대한 총체적 설명을 제공받는다"(이 책 580쪽). 결국 과학이 자신은 사실에 근거를 두고 있다고 주장할지라도 근원에 있어 의사 종교의 발흥과 크게 다를 바가 없다는 것이다. 제인스는 자신의 학문적 연구를 포함하여 모든 과학 행위를 이렇게 일갈하며 방대한 글을 끝맺는다. "양원적 정신구조의 폐허 속에서 행동 방향을 결정하기 위해 점치던 일이 이제는 사실이라는 신화들 속에서 완전한 확실성(an innocense of certainty)을 추구하는 일이 되었을 뿐이다"(이 책 586쪽).
- 원초적인 의식을 찾아내려는 노력은 끊이지 않았다. <동물의 마음>이라든지 <미생물의 정신생활>이라는 표제를 단 책들이 열심히 씌어지고 열심히 탐독되었다. 아메바가 식물을 사냥하거나 여러 가지 자극에 반응하는 장면이나, 짚신벌레가 장애물을 피해 가고 접합하는 장면을 본 사람은 누구나, 그런 행동을 인간 행동의 범주로 서술하려는 강한 유혹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은 우리를 문제의 가장 중요한 부분, 즉 타 생명체를 우리의 공감과 동일시하는 문제로 인도한다. 물질에 대해 어떤 결론을 내리든, 타인의 의식을 '들여다보거나' 친구나 가족이 무엇을 생각하고 느끼는지를 가늠해보기 위하여 그들과 동일시하는 것은 분명히 우리 의식의 한 부분이다. 우리가 의인화하는 데 너무 익숙하기 때문에, 만일 동물이 우리와 유사한 상황에 처했을 때 우리가 행동할 법한 방식으로 행동하면, 그렇게 할 근거는 없는데도 동일시하려는 성향을 억제하기 어렵다. 원형 동물에게 의식을 귀속시키려는 성향은, 우리가 아무 때나 엉뚱하게 동일시하려는 성향으로 간단히 설명할 수 있다. 그러나 이들(원생동물들)의 행동은 물리, 화학 수준에서 완벽하게 설명할 수 있고 내성적 심리학이 필요하지 않다. 신경원 연접 체계가 있는 동물의 행동에서 의식을 읽어내려는 성향은 우리가 관찰한 것이 아니라 우리 자신에게서 비롯된 성향에서 나온다.
- 시각장애인은 자신의 어두움을 본다. 그러나 당신은 당신 시야에서 어떤 구멍도 볼 수 없으며, 어떤 방식으로도 그것을 의식하지 못한다는 것은 말할 필요조차 없다. 그 맹점을 둘러싼 주변 공간이 한 치의 구멍도 없이 연결되어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의식도 시간의 구멍을 스스로 채워 넣어 연속성의 환상을 갖게 된다. 일상으로 하는 행동 중 얼마나 적은 부분만을 우리가 의식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예는 도처에 부지기수로 널려 있다. 그중에서도 피아노 연주는 참으로 특이한 예다.
- 우리는 이제 우리의 논의를 전개하는 데 있어 상당히 흥미로운 지점에 당도했는데, 이는 앞서 서론에서 소개한 의식의 기원 문제에 대한 여러 해답들과는 전혀 상반되는 것이다. 왜냐하면 의식이 언어에 근거를 둔 것이라면, 그 말은 곧 의식은 이제까지 주장되어온 것보다 훨씬 더 최근에야 모습을 나타낸 것이라는 말이 되기 때문이다. 의식이 언어 이후에 나타난 것이라니! 이 주장이 함의하는 바는 지극히 심각하다.
- 현재로는 우리가 어떤 가설을 받아들여야 하는지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 두 가설의 핵심적 특징은 훈계적 경험의 합성은 우반구의 기능이고 신의 소리는 베르니케 영역에 해당하는 우반구 영역이 흥분할 때 들린다는 것이다. 이 가설을 지지하는 증거로 다음의 다섯 가지 관찰을 제시할 수 있다. ① 통상적으로는 좌반구만이 말을 할 수 있지만 두 반구 모두 언어를 이해할 수 있고, ② 우측 베르니케 영역이 신의 소리와 유사한 방식으로 기능하는 흔적이 남아 있고, ③ 두 반구의 관계는 양원 시대의 인간과 신의 관계에 상응하는 관계이지만, 어떤 조건에서는 두 반구가 거의 서로 완전히 다른 사람처럼 행동하며, ④ 오늘날 두 반구가 나타내는 적어도 인지적 기능의 차이는 양원 시대의 문학작품에서 나타나는 인간과 신 간의 기능의 차이를 반영하고 있으며, ⑤ 뇌는 우리가 지금까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환경에 따라 조직화될 수 있고, 따라서 학습과 문화에 근거를 두고 양원적 인간에서 의식적 인간으로 변화될 수 있었다는 것이다.
- 이러한 횡교연 절제 환자들이 받는 검사 중 다음과 같은 것이 있다. 환자에게 반투명 화면의 중앙에 주의하여 시선을 집중하게 한다. 그리고 화면의 왼편에 여러 물체의 사진 슬라이드를 보여주면 우반구만 볼 수 있으나 말로써 표현할 수는 없다. 그러나 환자는 우반구가 조종하는 왼손을 사용하여 똑같은 그림을 가리키거나 여러 물체 중 그 물체를 찾아낼 수 있다. 그러면서도 말로는 보지 못했다고 주장한다. 오른편의 우세하지 않은 반구만이 본 이러한 자극은 두 반구 사이의 연결이 끊겼기 때문에 우반구에 갇혀 있고, 언어 능력을 주관하는 좌반구에 '전달될' 수 없다. 우반구가 이 정보를 가지고 있음을 알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우반구에게 왼손을 사용하여 그 정보를 지적하게 하는 것이다. 우반구는 이것을 거뜬히 해낸다. 만일 오른편과 왼편 시야에 동시에 두 개의 다른 그림(예를 들면 왼쪽에는 달러 부호, 오른쪽에는 물음표)을 잠깐 보여준 다음, 가리개 뒤에 있어 자신의 눈으로 볼 수 없는 왼손으로 본 것을 그려달라고 하면 피험자는 달러 부호를 그린다. 그러나 보이지 않는 곳에서 자신이 그린 것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피험자는 물음표라고 주장한다. 다시 말하면 한 반구는 다른 반구가 무엇을 했는지 알지 못한다. 또한 어떤 물체의 이름, 예를 들면 '지우개'란 단어를 왼편 시야에 비추면 피험자는 왼손을 사용하여 가리개 뒤에 있는 여러 물체 중에서 지우개를 찾아낼 수 있다. 만일 제대로 찾아낸 후에 피험자에게 가리개 뒤의 물체가 무엇이냐고 물으면 좌반구의 '사람'은 벙어리인 우반구의 '사람'이 왼손에 들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말하지 못한다. 마찬가지로 '지우개'란 단어를 말로 하면 왼손이 이 과제를 수행할 수 있지만, 말하는 반구는 왼손이 물체를 언제 찾았는지 알지 못한다. 이것은 예전에 언급했던 대로 두 반구가 모두 언어를 이해한다는 사실을 증명한다. 그러나 그 이전에는 우반구가 어느 정도 언어를 이해하는지 알 수 없었다.
- 기원전 1250년경의 야질리카야에 있는 바위 양각. 샤루마(Sharruma) 신이 그의 관리인 격인 히타이트 왕 투드할리이스(Tudhaliys)를 자신의 품에 붙들고 있다. 신성을 의미하는 프레첼 과자처럼 생긴 상형문자가 왼쪽 위 편에 머리 대신 신의 표의문자로 그려져 있으며, 동시에 신의 관에도 반복해서 그려져 있다. 이것은 또한 오른쪽 위로 왕의 표의문자에도 나타나는데, 내 생각에는 이것은 왕 역시 자신의 신하들에게 환각으로 '들리고 있음'을 가리키고 있는 듯하다.
- 종종 양원적 행위에 대한 사실적인 묘사도 나타난다. 과테말라의 태평양 연안에 있는 마야문명권이 아닌 유적지인 산타 루치아 코츠 움알하우파(Santa Lucia Cotz umalhaupa)에서 출토된 두 개의 돌 양각에 관한 한, 이것은 명백한 사실이다. 한 사나이가 풀밭에 엎드려서 두 신에게, 즉 절반은 인간이고 절반은 사슴인 한 신과 죽은 자의 모습을 한 다른 신에게서 말을 듣는다. 이것이 실제의 양원적 장면이 분명한 것은 이른바 칠란(chilans)이나 그 지역의 예언자들에 대한 현대적 관찰에서 드러난다. 이러한 현대적 환각은 페요테 (peyote)를 먹음으로써 촉진된다는 주장도 있기는 하나, 그들은 오늘날에도 이와 같은 자세로 얼굴을 땅에 대고 음성을 환각적으로 듣는다.
- 많은 양의 소규모 조상들이 라가시, 우루크(Uruk), 니푸르(Nippur), 수사(Susa) 등지의 거의 대부분 메소포타미아 문화에서 출토되었다. 우르 지역에서는 검은색과 붉은색으로 채색된 점토 조상들이 발견되었다. 이들은 구운 벽돌 상자에 넣어져 벽 쪽 바닥 아래에 놓여 있었는데 한쪽 끝은 열린 채로 방의 중앙을 향해 있었다. 그러나 이들 소규모 조상들의 기능은 고고학의 다른 모든 것들처럼 여전히 신비로 남아 있다. 가장 인기 있는 견해는, 프레이저(Frazer)를 좇아 음각을 새긴 조약돌을 던져 넣는데서 다산 의식을 찾으며 무비판적으로 민속학을 애호하는 사람들에게서 볼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조상들이 프레이저식 다산에 관해 무언가를 말하는 것이라면, 다산성이 문제가 되지 않는 곳에서는 그러한 것들이 발견되지 않아야 할 것이다. 그러나 사실은 그렇지가 않다. 멕시코에서 가장 비옥한 곳인 올멕 문명권에서도 이 조상들은 놀라울 만큼 다양하게 존재할 뿐만 아니라, 이들의 입은 벌린 채로 있고 귀는 과장되어 있다. 마치 자신이 대화를 나누는 자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을 형상화하여 만들어지기를 고대하기라도 하는 듯이. 그러나 설명이 간단하지만은 않다. 소규모 조상들은 그들이 속해 있는 문화가 그렇듯이 진화되어왔다. 동일한 예를 들어 이야기하면, 초기 올멕 조상들은 거의 동물처럼 보일 만큼 턱을 과장하는 관행(prognathism)이 있었다.
- 이 우상들이 양원적 의미로 '말했다'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을까? 이제까지 나는 이러한 입상들이나 소규모 초상들의 존재는 이전의 지각 방식과는 다른 새로운 방식의 설명이 필요하다는 점을 제시하려 해왔다. 양원적 정신에 대한 가설은 이러한 설명을 가능케 한다. 종교적 장소에 이러한 우상들을 세워놓는 것, 모든 문명의 초기엔 눈을 크게 과장해놓는 것, 몇몇 문명권에서 안강에 반짝이는 보석류를 박아놓는 관행, 가장 중요한 두 문명권에 등장한 새로운 신상들이 입을 벌린 채로 있게 하는 정성스런 의식((이 점은 다음 장에서 볼 것이다), 이 모든 것은 적어도 하나의 일관된 증거를 제시한다. 설형문자로 된 문서들은 종종 신상들이 말을 했다고 전한다.
- 문자 기록(writing)이란 무엇인가? 문자 기록은 시각적 사건을 그림으로 나타낸 것(pictures of visual events)에서 출발하여 음성적 사건을 상징으로 나타낸 것(symbols of phonetic events)으로 발전했다. 후자는, 지금 우리가 보는 이 책장에서처럼, 독자가 알지 못하는 무언가를 그에게 말하려고 한다. 그러나 문자 기록이 전자에 가까워질수록, 그것은 일차적으로 독자가 이미 알고 있는 정보를 끌어내기 위한 기억장치에 가깝다. 우루크의 원시 문자인 그림문자, 초기에 신을 묘사하는 데 쓰이던 도해(iconography), 마야의 상형문자, 아스텍의 그림 사본들, 그리고 현재 우리가 사용하는 문장들이 모든 것이 다 이 부류에 속한다. 이 문자들이 독자들에게서 끌어내려는 정보들은 어쩌면 영구히 잃어버려서 영원히 번역이 불가능할지도 모른다. 이 두 가지 양 극단 사이에 존재하는 두 종류의 문자 기록, 즉 절반은 그림이고 절반은 상징인 문자 기록이 이 장의 논의다. 이들은 '신의 글씨(writing of gods)'라는 뜻의 성용문자(hieratic)로 되어 있는 축약하여 흘려 쓴 이집트 상형문자와, 이보다 좀 더 널리 쓰이던 글자로서 그 모양이 쐐기 같아 후기 학자들이 설형문자(cuneiform)라고 부르는 글자다. 우리에게는 후자가 아주 중요한데, 남아 있는 자료도 훨씬 더 많다. 수천 개의 석판들이 번역되기를 기다리고 있으며, 훨씬 더 많은 석판들이 발굴될 것이다. 석판에서 사용된 언어들은 적어도 네 가지로 수메르어(Sumerian), 아카드어(Akkadian), 후르리어(Hurrian) 그리고 이들보다 더 늦게 사용된 히타이트어(Hittite)다. 이들은 우리와 같이 26자의 알파벳이거나 또는 (종교적 텍스트를 제외하고는, 기원전 200년경에 설형문자들을 교체해버린) 아람어(Aramaic)와 같이 22자의 알파벳이 아니라 600개가 넘는 기호(signs)들로 이루어진 모호하고 투박한 의사소통 체계다. 이들은 대부분 표의문자들로 하나의 표식은 그것이 속한 군집에 따라 한 가지 이상의 의미가 있는 한 음절일 수도, 한 개념일 수도, 한 이름일 수도, 한 단어일 수도 있으며, 이 군집은 특별한 표식에 따라 몰 규칙적으로 나타난다. 이들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오직 문맥을 보고 해결할 수 있을 뿐이다.
- 다른 맥락에서 나오기는 했지만 이 점을 잘 보여주는 한 문구는 밤중에 석판 읽는 모습을 다음과 같이 기술했다.
"잘 닦인 석판 표면이 그의 소리를 들리게 한다. 음각된 그 글씨가 그의 소리를 들리게 한다. 횃불의 불빛이 그의 소리를 듣게 해 준다."
이처럼 기원전 3000년경의 읽기는 설형문자에 기록된 내용을 들은 것이었다. 즉 음절들을 시각적으로 읽는 것이 아니라, 그림-상징물을 바라봄으로써 말을 환각 해내는 행위인 것이다. 여기서 '듣기'에 해당하는 말은 기스-툭-피 (GIS-TUG-PI)를 음역한 수메르 기호다. 왕이나 특정 인사가 위대한 일을 할 자격을 부여받게 되는 이 기스-툭-피 듣기가 어떻게 신에게서 하사되는지에 대해서는 다른 많은 왕정 비문들도 기술하고 있다. 기원전 1825년까지도 라사왕 와라드 신(Warad-Sin)은 자신의 에아(수메르어로는 엔키(Enki)) 신의 음성이 어느 곳에서나 들려옴으로써, 기스-툭-피를 통해 그 도시를 재건했다고 한 원추형 토기 비문에 기록했다.
- 이로써 우리는 관리인-왕 유형과 신-왕 유형의 구별이 절대적일 수 없음을 알 수 있다. 더구나 몇몇 설형문자 석판에 나타나는 초기의 많은 메소포타미아 왕들은 자기들의 이름 곁에 일곱 모서리진 별을 그려 넣었는데 이것은 결정적으로 신성을 의미하는 표식이다. 한 초기자료에는 우르지역과 이신(Isin)지역의 많은 왕들 중 11명에게 이런 유의 것이거나 또는 다른 종류의 신성 표식이 있었다.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수많은 이론들이 제시되었으나 어느 것도 흥미를 끌 만한 것은 없다.
- 기원전 1792년 이런 민간의 문자 사용을 통해 극히 새로운 정부형태를 탄생시킨 것은 메소포타미아 역사에 등장하는 위풍당당한 인물, 바빌론의 신 마르두크의 관리인, 모든 관리인 왕 중 가장 위대한 왕이던 함무라비(Hammurabi) 때였다. 기원전 1750년까지 계속되었던 그의 오랜 직무 기간에, 그는 메소포타미아의 거의 모든 도시국가들을 바빌론 마르두크 신의 장악권 내로 끌어들였다. 이러한 정복과 영향력 행사가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이전에 일찍이 없었던 방대한 양의 문자와 석비들 때문이었다. 심지어 함무라비는 글을 읽을 수 있었고 서기를 따로 둘 필요가 없었던 최초의 왕으로 여겨진다. 왜냐하면 그의 모든 설형문자 문서들은 동일한 손으로 진흙에 선명하게 각인되어 있기 때문이다. 문자는 민간에 대한 하나의 새로운 지시 방법이었다. 실제로 이것은 오늘날 우리가 보는 메모로 하는 의사전달 방식을 따른 정부의 효시였다. 이것이 없었다면 메소포타미아의 통일 같은 사건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이것은 우리가 나중에야 알게 된 것이긴 하지만, 양원적 정신구조를 대신하게 될 하나의 사회통제 방식이다.
- 그 석비의 상단에는 그 판결을 하달하는 장면이 조각되어 있다. 신은 메소포타미아 도형에서는 산을 상징하는 돋우어 올린 단에 앉아 있다. 신이 말할 때면 그의 어깨에서 불꽃같은 기운이 번쩍였다(어떤 학자는 이것을 태양신 샤마시를 뜻한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함무라비는 신 아래에 서서 열심히 듣고 있다('under-stand' 하고 있는 것이다). 신은 오른손에 권력의 상징을 들고 있는데, 봉과 원은 흔히 신성을 기술하는 데 사용되었다. 이 상징물들로 신은 자신의 관리인 함무라비의 왼쪽 팔꿈치를 건드리는 것이다. 이 장면이 담고 있는 한 가지 엄청난 일은 신과 그의 관리인-왕이 무감각한 채로 당당히 서서 서로를 열심히 바라보며, 관리인-왕의 오른손은 관찰하는 우리와의 사이를 막아 세운 채로 대화를 나누는 장면의 최면적 확신(hypnotic assurance)이다. 여기에는, 수 세기 후에 일어나는 바와 같은, 신 앞에 선 (인간의) 겸손이나 구걸이란 없다. 함무라비는 그러한 관계 속에 자신을 서술해 넣을 어떤 주관적 자아 같은 것이 없다. 단지 복종이 있을 뿐이다. 마르두크가 구술하는 것은 일련의 매우 특정한 사건에 관한 판결이다.
- 이제까지의 이야기를 요약해보자. 두 장에 걸쳐 나는 방대한 세월 동안 기록한 것을 조사하려고 애썼다. 이는 초기 문명과 당시 인간은 우리와는 정신구조가 전혀 달랐을 개연성이 있음을 보이기 위한 것이었고, 당시 인간은 우리처럼 의식이 없었기에 그들의 행위에 책임지지 않았으며, 따라서 방대한 수천 년 세월에 이루어진 것으로 그들은 비난받을 일도 칭찬 들을 일도 없게 되어있다는 것, 각인은 자신의 신경구조 속에 성스러운 부분을 지니고 있어서 이것을 통해 마치 노예처럼 우리가 의지력(volition)이라고 부르는 것에 해당하는 목소리 또는 목소리들에서 실제로 명령을 받았으며, 그 목소리들은 자신들이 명령한 것에 권위를 부여했다는 것, 이 목소리형은 정교하게 조직된 위계질서 상의 타인들의 환각 된 목소리와 관련되어 있다는 것 등을 밝히려는 것이었다.
- 내가 보기에는 전체적 패턴은 이러한 견해와 일치한다. 그러나 이집트에서 페루, 우르에서 유카탄에 이르기까지 어떤 문명이 일어나든, 장례행사와 우상 제작, 신정 정부와 환각 목소리에서 놀라운 일치를 보이며, 이 모든 것들은 오늘날의 우리와는 다른 정신구조라는 생각을 뒷받침한다. 그러나 앞서 지적했던 바와 같이, 양원적 정신을 정태적인 어떤 것으로 보는 것은 잘못된 견해다. 그것이 기원전 9000년에서부터 기원전 2000년에 이르는 기간에 걸쳐 발달해 온 것이기 때문에, 어느 한 세기를 두고 보면 (아시리아의) 지구라트나 신전처럼 굳어 있는 듯이 보일 정도로 느린 발달이다. 1000년이 이 시대의 시간 단위다. 그러나 적어도 근동지역에서의 발달 속도는 기원전 2000년경에 이르렀을 때 빨라지기 시작했다. 이집트의 카의 신처럼 아카드의 신들은 그 수가 불어나 더 복잡해졌다. 이처럼 복잡해지자 최초로 불확실성이 생기고, 상위의 신들과 중재할 개인의 신들이 필요하게 되었다. 이런 과정에서 신들은 하늘로 그 자리를 옮겨가게 되었고, 그 후 1000년이라는 짧은 시간에 그 하늘도 사라지게 되었다. 여전히 신하들의 환각을 통해 나투피아 마을을 통치하는, 아이 난의 붉은 난간 밑 돌 위에 받쳐둔 왕족 시체에서 천둥을 일으키고 전쟁을 일으키고 드디어는 하늘로 사라져 버린 전능한 존재에 이르기까지, 신들은 언어 진화 과정에서 파생된 한낱 부수효과였고 동시에 호모 사피엔스 탄생 이래 삶의 진화에서 가장 괄목할 만한 특징이기도 한 가공물이 아니었다. 나는 신이 하나의 허구라고 주장하는 것이 아니다. 신은 누군가의 상상이 만들어낸 가공물이 아니었다. 그들은 인간의 의지력이었다(They were man's volition).
- 이 중부 아시리아의 가장 강력한 왕은 티그라트 필레세르(Tiglath-Pileser) 1세(기원전 1115-1077)였다. 그가 자신의 이름에 자기 신의 이름을 연관시키지 않았음을 눈여겨보라. 그의 공적은 그의 가공할 자랑을 기록한 거대한 진흙 기둥에 잘 알려져 있다. 그의 칙령은 잔인한 '내용으로 가득 찬' 석판 수집물들 속에서 오늘날 우리에게까지 전해진다. 학자들은 그의 정치를 '공포의 정치'라고 부른다. 사실 그러했다. 아시리아인은 순진한 마을 주민들에게 백정 행세를 했고 모든 난민을 노예로 삼았으며 수천 명의 다른 사람들을 살육했다. 바스 양각(Bas-relief)은 도시 전체가 어떠했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가랑이에서 어깨로 백성을 산 채로 말뚝에 꿰어놓기도 했다. 그의 법은 심지어 사소한 잘못에도 역사상 유례가 없는 피비린내 나는 벌을 가했다. 이 법률들은 600년 전 바빌론의 신이 양원적 함무라비에게 구술했던 더욱 공정했던 훈계와 극적인 대조를 보인다. 왜 이렇게 가혹해졌을까? 그것도 문명사에서 최초로? 그 이유는 이전의 사회통제 방식이 완전히 무너졌기 때문이다. 이전의 사회통제 형식은 바로 양원적 정신이었다. 겁을 주어 통치하려는 시도에서 이 잔인함이 행사된 것은 주관적 의식이 막 생겨난 때라고 생각된다. 혼돈은 광범위하게 지속적으로 번져나간다. 그리스의 혼돈은 도리아인의 침공으로 생긴 암흑기로 알려져 있다.
- 급기야 이 모든 압박은 잔악한 아시리아에게조차 큰 부담이 아닐 수없었다. 기원전 10세기에는 아시리아도 이 상황을 통제할 수 없게 되어 티그리스 강 뒤편으로 보잘것없게 오그라들고 말았다. 그러나 이것은 숨고르기였을 뿐이다. 왜냐하면 바로 다음 세기에 아시리아는 유례없는 사디즘적 잔악성으로 세계 재정복에 나섰기 때문이다. 살육과 공포로 과거의 제국 탈환에 나섰을 뿐만 아니라 그것을 넘어 이집트에까지 이르렀다. 비옥한 나일 강 지역은 물론 마치 2500년 후 지구의 반대편 쪽에서 피사로가 성스런 잉카인들을 노예로 잡아들였듯이 성스러운 태양신에까지 손길을 뻗쳤다. 이즈음 인간 정신구조에 엄청난 비약이 발생했다. 인간이 자신과 세계를 의식하게 되었던 것이다.
- 기원전 1230년경 아시리아의 독재자 투쿨티 니누르타(Tukulti-Ninurta) 1세는 역사상 그 어느 것과도 현격하게 다른 돌 제단을 만들게 했다. 그 제단의 전면에 새긴 그림에 투쿨티의 모습이 두 번 등장하는데, 하나는 그가 자기 신의 보좌 앞을 향해 나가는 모습이고, 다른 하나는 그가 신 앞에 무릎을 꿇고 있는 모습이다. 이 두 상은 역사상 들어본 적이 없는 구걸하는 왕의 모습을 잘 보여준다. 서 있는 왕에서 바로 앞에 있는 무릎 꿇은 왕에게로 눈길을 옮기면, 그 모습이 하나의 활동사진처럼 뚜렷해지는데, 이것만으로도 놀라운 예술적 발견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더욱 놀라운 것은 잔인하기 짝이 없는 아시리아 정복자들 중에서도 으뜸인 이 왕이 그 앞에 엎드려 있는 보좌가 텅 비어 있다는 사실이다. 그전의 역사상 어느 왕도 무릎 끓은 채로 나타난 적은 없었고 역사상 어느 그림도 신이 부재중인 장면을 그려 놓은 적이 없었다. 양원적 정신의 몰락을 의미하는 것이다. 제2권 2장에서 본 것처럼, 함무라비는 언제나 바로 현존하는 신에게 온통 귀를 기울이며 서 있는 모습으로 새겨져 있다. 그 시대에 나온 수많은 원통형 도장은 아주 실재적으로 인간의 모습을 한 신 앞에 있는, 또는 눈과 눈을 마주 보며 듣는 인간을 보여준다. 투쿨티의 아슈르 제단은 인간과 신의 관계를 그려놓은 이전의 모든 그림과 충격적일 정도로 대조를 보인다. 이것은 어떤 단순한 예술적 상상을 드러내는 것이 아니다. 투쿨티의 다른 제단들도 유사하게 신이 없기 때문이다. 투쿨티 시기의 원통형 도장들 역시 또 다른 부재중인 신에게 다가가는 왕을 그렸다. 이것은 때로 어떤 상징으로 표상되기도 한다. 이러한 비교는 메소포타미아의 경우, 함무라비와 투쿨티 사이의 어느 때쯤에 양원적 정신이 깨진 것임을 강력히 암시한다. 이런 가설은 투쿨티와 그의 시대에 나온 설형문자 유적들에서 확증되었다. 투쿨티니누르타의 서사시로 알려진 한 자료는 함무라비 이후에 나온 것으로는 두 번째로 명확하게 연대가 기록된 것으로, 잘 보존된 설형문자 문서다. 함무라비 시대의 신들은 인간들 가운데 영원히 존재하면서 인간들의 행동을 지시했다는 사실을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그러나 투쿨티의 다소 선전문구 같은 이 서사시의 서두에서는 바빌론 도성의 신들이 자기네에게 귀 기울이지 않는 바빌론 왕에게 화를 내고 있다. 그리하여 신들은 그들의 도시를 버리고 그곳 주민들에게 아무런 계시도 남기지 않은 채 떠나버렸으며, 따라서 투쿨티가 이끄는 아시리아 군의 승리는 확실한 것이 된다. 신이 인간 충복들을 저버린다는 생각은 함무라비의 바빌론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 흥미로운 문제 하나는 이 시기에 신들을 지칭하는 말은 단수 동사를 취할 때에도 왜 복수인가 하는 것이다. 이런 일은 앞서의 자료에서처럼 그것이 개인의 신을 의미하는 상황에서 발생한다. 이것은 신정론을 통해서만 아니라 루들롤 11장 12, 25, 33절에서도, 즉 양쪽 모두에서 발생했으며 나중에 복수형 엘로힘 (elohim)을 사용한 엘로이스트가 구약성서에 기여하기에 이른다. (엘로이스트는 구약의 첫 6권(Hexateuch)을 기록한 사람으로 히브리인들의 신 야훼의 이름을 부르는 대신 엘로힘이라는 말로 대신했다-옮긴이) 여기서 우리는 그리스인의 뮤즈 신과 히타이트 석판의 판쿠시를 기억해야 할 것이다. 환각은 과거에나 현재에나 그 신뢰성이 신경적으로 약해짐에 따라서 합창처럼 들리는가?
- 기원전 3000년 말경의 이른바 신-수메르 시대의 도안들, 특히 기둥 모양의 도장은 '알현(presentation)'하는 장면으로 가득 차 있다. (예를 들면) 한 하급 신(minor god), 주로 여성 신이 아마도 도장의 주인인 어떤 개인을 상급의 주신(major god)에게 소개하는 장면 등이다. 이것은 양원적 왕국에서 일어났을 것이라고 주장하는 장면, 즉 개인은 저마다 자기의 개인 신이 있어서 그 신이 개인을 위해 상급 신에게 중재해주는 장면과 유사하다. 이런 형태의 소개나 중재는 기원전 2000년에까지 이어진다. 그러다가 한 가지 극적인 변화가 발생한다. 주신이 투쿨티니누르타주의 제단에서 없어져버린 것 같이, 주신들이 이 알현 장면에서 사라져 버린 것이다. 그런 다음에 개인의 신이 그 개인을 (주)신의 상징에게만 소개할 뿐인 시대가 온다. 그 후 기원전 2000년 말경 이 잃어버린 신들과 그들의 버림받은 추종자들 사이에 인간-동물의 잡종인 혼합체가 중재자로서 또는 사자로서 나타나는 시기가 온다. 이 사자들은 언제나 일부분은 새로, 일부분은 인간으로, 그리고 어떤 때는 두 쌍의 날개를 단 수염 기른 사람처럼, 때로는 신처럼 관을 쓰고 나타나며, 종종 정화 의식에 쓰일 재료들이 담긴 듯한 주머니를 들고 나타난다. 천상의 궁전에서 일하는 존재들로 알려진 이들은 아시리아의 도장 기둥과 명각에서 발견되는 빈도가 점차 많아진다. 초기엔, 흔히 아시리아 연구가들 이 천사 또는 수호신이라고 부르는 이 존재들은 이전의 알현 장면에서와 같이 개인들을 신의 상징물에게 소개하는 모습으로 나타난다. 그러나 이것조차 곧 없어져버리고 만다. 기원전 1000년 초까지, 우리는 이런 천사들의 모습을 수많은 다양한 장면에서 발견하게 되는데 때로는 사람들과 함께 나오기도 하고 때로는 다른 혼합체들과 여러 모양으로 다투는 모습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때로는 새 머리를 하고 나타나기도 하고, 때로는 인간의 머리에 날개 달린 황소나 날개 달린 사자로 나타나 기원전 9세기의 니므롯 궁전 관리자로 또는 기원전 8세기 코르사바드(Khorsabad)의 문을 지키는 자로 행동한다. 또는 독수리의 머리나 큰 날개를 달고 나타나 왕의 뒤를 돌며 따르는데, 기원전 9세기 아슈르나시르팔 성벽의 그림에 나오는 세례 의식(anointing of baptism) 장면처럼 작은 물통 속에 잠긴 원뿔을 지니고 있기도 한다. 이들 그림 중 어느 것에서도 천사가 말하거나 인간은 듣고 있는 것 같지 않다. 이들 그림은 침묵의 시각적 장면이어서 이전의 양원적 행동이 지니는 청각적 실재성은 단지 가정된 침묵의 관계가 되었다. 이른바 신화적인 것이 되었다.
- 기원전 8세기경 사르곤(Sargon)이 자신의 거대한 신도시 코르사바드(Khorsabad)를 위해 건축한 지구라트는, 최근의 발굴 자료를 바탕으로 계산한 바에 따르면, (당시의) 주변 도시들 위로 총 42미터나 솟아오르는 일곱 개의 계단으로 되어 있었고 꼭대기에는, 아는 이들은 아시겠지만 여전히 아시리아를 소유하는, 아슈르 신에게 봉헌된 사원이 빛을 발하며 서 있다. 코르사바드에는 아슈르에게 봉헌된 또 다른 사원은 없다. 사원에서 내려오는 길은 결코 이전의 지구라트들에 있었던 것과 같은 평범한 계단이 아니라, 아슈르 신이 혹 그 도시에 다시 내려온다면 그때 걸어 내려올 수 있도록 한 탑의 중심을 감아 도는 긴 나선형 경사로다.
- 두 번째 문헌 비교는 건물에 새겨진 명각들에 나타난 시간 감각에 대해서다. 제1권 2장에서 나는 의식의 본질적인 속성의 하나는 시간을 영역으로 나타낼 수 있는 공간으로 은유하는 것이며, 이로써 그 안에서 사람이나 사건들의 위치를 파악하게 하고, 과거, 현재, 미래 감각을 줌으로써 이야기로 엮을 수 있게 하였다고 주장했다. 의식이 이런 특성을 갖기 시작한 것은 기원전 1300년 경이라고 약간의 확신을 갖고 추정할 수 있다. 우리는 앞에서 징조술과 제비뽑기의 발달이 어떻게 이것을 암시하는지 추론을 통해 살펴보았다. 그러나 좀 더 정확한 증거가 건물에 새겨진 명각에서 발견되었다. 이 시기보다 앞서는 전형적인 명각에서 왕은 자신의 이름과 관직을 밝히고, 자신의 특정 신 또는 신들에게 아낌없는 찬사를 보낸 다음, 짤막하게 그 건물의 착공시기와 당시의 정황을 언급한다. 그런 다음에야 그 건물의 운용에 대하여 기술한다. 기원전 1300년 이후에는 그 건물 건축 직전에 있었던 사건에 대한 언급뿐만 아니라, 당시까지의 왕의 과거, 모든 군사적 업적들도 요약했다. 그다음 세기들에는 이런 정보들이 일련의 연도별 군사작전에 따라 체계적으로 정리되기에 이른다. 그러고는 드디어 기원전 1000년 동안의 아시리아 통치자들에 대한 기록들에 거의 보편적으로 나타나는 정교한 연대기 형식이 등장하게 된다. 이러한 연대기는 계속되어 사실 그대로 하나씩 기록해나가는 선을 넘어 행동의 동기에 대한 언급과, 행동과정에 대한 비판과, 인물에 대한 평가로까지 넓혀나간다. 그다음에는 나아가 정치적 변화, 군사 작전, 특정 지역에 대한 역사적 기록을 포함한다. 이 모든 것들은 내 생각에는 바로 의식의 발명을 증거 한다. 이런 특징들 중 그 어느 것도 이전의 명각들에서는 발견되지 않는다. 물론 이것은 왕에 관한 명각의 발달과 함께 시작된 역사의 발명이기도 하다. 역사가 발명되었다는 생각을 품는 것이 얼마나 이상하게 들리는가! 일반적으로 '역사의 아버지'로 유명한 헤로도토스는 기원전 5세기의 메소포타미아를 둘러보고 나서야 그의 역사를 썼으며, 아마 이러한 아시리아의 자료들을 보면서 역사라는 개념 자체를 얻어냈을 것이다. 이러한 추론과정에서 내 흥미를 끄는 것은, 의식은 그 발달과정에서 약간씩 다른 방식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헤로도토스의 글이 그 후 그리스 의식의 발달에 미친 중요성은 흥미로운 연구과제가 될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 내 생각의 요지는, 역사는 의식의 특징인 시간의 공간화가 없이는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 여기서 우리 관심은 더 오래된 이들 석판과 기원전 650년 아시리아판 사이에서 일어난 변화다. 가장 흥미진진한 비교는 석판 X에 있다. 옛 판(현재 소장되어 있는 곳의 이름을 따서 예일 석판이라고 부르는데)에서, 거룩한 길가메시 왕은 친구 엔키두(Enkidu)의 죽음을 애도하며, 샤마시 신과 대화를 나누고 그다음엔 여신 시두리(Siduri)와 대화한다. 거룩한 술집 여인(divine barmaid)이라고 불리는 후자가 길가메시에게 인간에게 죽음은 불가피한 일임을 이야기한다. 이러한 대화들은 비주관적(nonsubjective)이다. 그러나 그 후에 나온 아시리아판에서는 샤마시와 대화하는 것은 아예 포함되지도 않았으며, 예의 술집 여인 여신은 극히 지상의 인간적인 용어로, 심지어는 자기-의식적으로 베일을 걸쳐 입은 모습으로 기술되었다. 의식적 정신의 소유자들을 위하여 이야기가 인간화되어버린 것이다. 후기의 아시리아 석판 어느 곳에서는, 그 술집 여인은 길가메시가 접근해오는 것을 바라보기도 한다. 그녀는 멀리 밖을 바라보며 그녀 자신의 가슴을 향해, 즉 자신에게 "정녕 이자는 살인자다. 이자가 어디를 향해 가고 있는가?"라고 말하는 모습이 묘사되어 있다. 이것은 주관적 사고다. 이런 말은 이전의 석판에는 전혀 나오지 않는다.
- 고고학적 증거 자료에 따르면, 기원전 1000년 이후 어간에, 정확하게는 기원전 800년 이전에는 오디세우스에 대하여 중요한 봉헌이 행해졌다. 이 봉헌들은 삼발이 달린 큰 청동 냄비를 사용하여 행했는데 이것은 예배와 연결되어 있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이것은 이전에는 신들에게 드리던 봉헌 양식이었다. 이타카(Ithaca)에서는 적어도 기원전 9세기부터 그를 경배하는 경연대회가 개최되었고, 이것은 그 섬이 코린트(Corinth)에서 새로운 민족이 유입되어 짓밟힐 위기에 처할 때조차 계속되었다. 요컨대 계략이 많은 사나이 오디세우스는 신의 목소리가 쇠약해진 황폐한 세계를 살아나갈 방법에 대하여 전혀 새로운 정신을 지닌 사람들의 영웅이었다.
- <오디세이아>에서 주관적 의식의 성장은 선의식적 원질의 사용 빈도 증가, 공간적 내면성, 의인화 등에서뿐만 아니라 사건들과 사회적 상호관계에서 더욱 선명하게 드러난다. 이들에는 이미 언급한 속임수와 교활성이 강조되는 것도 포함된다. <일리아스>에서는 시간에 대한 언급이 있다 하더라도 엉성하거나 정확하지 못하다. 그러나 <오디세이아>에서는 시작한다거나, 서두른다거나, 빨리, 견디다 등과 같은 시간에 관한 언어 사용에서 시간의 공간화가 증가하고 미래에 관한 언급이 더욱 빈번해진다. 또한 구체적인 용어에 대한 추상적인 용어, 특히 영어에서 '성'(ness)으로 끝나는 명사의 비율이 증가한다. 그리고 이와 함께 예상할 수 있는 것은 직유법이 눈에 띄게 줄어든다. 그럴 필요가 없어졌기 때문이다. 오디세우스가 자신을 언급하는 빈도와 방식 모두 <일리아스>에서 자기를 언급하는 경우와는 전혀 다른 차원에서 이루어진다. 이 모든 것은 새로운 정신 구조의 성장과 관련된 것이다. 한 가지 수수께끼를 소개하는 것으로 장대한 의미를 지닌 시 속으로 진입하는 데 필요했던 이 짤막한 글을 마치려고 한다. 그것은 이 이야기의 전체적 윤곽 자체가 바로 우리 관심 주제에 관한 하나의 불가사의라는 점이다. 이것은 양원 정신의 붕괴 속에서 창조되는 자아를 향한 항해의 이야기며, 정체성의 이야기인 것이다. 왜 이렇게 되지 않으면 안 되었는가? 왜 이런 시적 영감들, 즉 아오이도이들을 통해 이 서사시를 읊게 하는 우측두엽의 패턴화 하는 일은 주관적 사유 속으로 시들어가는 자기 자신의 몰락을 서술하지 않으면 안 되었는가? 왜 그것들은 자신들의 음송 행위 자체를 압도해버리는 이 새로운 정신구조의 탄생을 축하하지 않으면 안 되었는가? 나는 지금 이 심오한 질문들에 대한 대답을 하려는 척하지 않을 것이다. 그렇지만 그런 일들이 실제로 일어난 것처럼 보인다. 나 자신도 (믿기 어려워) 믿으려면 작업이 필요하겠지만, 나는 지금 고도로 패턴화 된 이 모든 전설은, 분명히 의식을 향한 거대한 변화의 은유라고 볼 수 있는데, 결코 지어낸 것이거나, 계획된 것이거나, 자신들이 하는 일들을 의식하는 시인들이 붙여놓은 것들이 아니라고 말하는 것이다. 이것은 마치 양원적 인간의 신적 기능(god-side)이 그의 인간적 기능(man-side)보다 먼저, 그러니까 좌반구보다 우반구가 먼저 의식에 접근해가고 있는 듯이 보인다.
- 이것이 현실이다. 아름다운 칼립소(Calypso)의 양원적 노예가 되어, 반신반인(demigods)과 시험과 기만의 세계를 헤매다가, 어느 낯선 해안에서 흐느끼는 길 잃은 영웅에서부터, 경쟁자에게 짓밟힌 자신의 가정에서(in a rival-routed home) 그가 울부짖는 전투의 함성에 이르기까지, 변장을 통한 황홀경에서 발각되기까지, 바다에서 땅에 이르기까지, 동에서 서까지, 패배에서 제왕의 자리까지 이 일련의 이야기들이 모든 것을 두루 꿰고 있을 때, 이 기나긴 모든 노래는 주관적 정체성을 향한 그리고 과거의 환각적 노예상태에서부터의 승리의 확인을 향한 하나의 긴 여정(odyssey)이다. 신에 매달려 사는 의지력 없는 기둥서방(gigolo)에서 피투성이가 된 채로 돌아와 안방에 누운(on his own hearth) 사자가 되면서 오디세우스는 '오디세우스'가 된다.
- 7세기의 일곱 시인들 속에서 우리는 눈에 띄는 발전을 보게 된다. 즉 주제가 군사적인 충고에서 개인적 사랑의 표현으로 변함에 따라, 정신적 원질들이 사용되는 방식이 더욱더 우리가 주관적 의식이라고 생각하는 방식으로 발전했다. 이것들이 어슴푸레한 역사의 바다다. 그 수면 위로 깜박거리며 떠 있던 몇 개의 유고들과 함께 나온 기원전 7세기의 이 일곱 시인들은 아마도 우리가 의식이라고 부르는 새로운 정신구조의 발달에 도움을 준, 당시에 살았던 많은 사람들 중 몇 명일 것이다.
- 나는 이 일곱 시인들이 당시를 대표할 수 없다는 강한 느낌을 가지고 있다. 왜냐하면 연대기적으로 다음에 등장하는 것으로 알려진 한 시인은 이전의 시인들과 극적인 차이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그는 그리스 지성계에 떠오른 샛별이었다. 우리가 아는 한, 그는 진정으로 정의의 이념을 확장시킨 사람이다. 그는 아테네의 솔론(Solon)으로서 탈레스(Thales), 아낙시만드로스(Anaximandros), 피타고라스(Pythagoras) 등이 등장하는 위대한 시대인 기원전 6세기 초엽에 등장한다. 이 시대는 어떻게든 우리가 생각하는 방식과 같은 방식으로 생각하는 사람들 속에 있기에 최초로 정신적 편안함을 느낄 수 있는 그런 시대다. 이 위대한 그리스 문화가 펼쳐지는 속도는 놀랄 만하다. 그리고 만약 다른 이유가 없다면, 누스라는 단어를 사용한다는 점에서 솔론은 놀랍다. 이 단어는 우리가 앞에서 보았던 다른 시인들도 거의 사용하지 않았다. 그러나 우리에게 전수된 고작 (개략적으로) 280행 속에서 그는 누스라는 단어를 8번 사용했다. 이것은 1만 단어당 44번이라는 아주 높은 빈도인 것이다. 이것은 여러 가지 원질들이 하나로 결합되는 제4단계를 가리키고 있다. 투모스는 단지 두 번, 그리고 프레네스와 에토르는 각각 한 번씩 사용되었다.
- 의식과 도덕은 하나로 발달해왔다. 왜냐하면 신들이 없을 때 도덕이 행동 결과에 대한 의식에 근거하여 인간들에게 무엇을 하라고 말하지 않으면 안 되었기 때문이다. <일과 날>에 나오는 디케나 정의는 솔론에게서 좀 더 발전하게 된다. 이제 도덕적 권리는 정부의 권력과 맞아떨어져야 하며(유고 36), 법률과 적법한 행위의 근거가 된다. 때때로 '모든 것에서의 절제'에 대한 그의 권고 같은 기타의 특정 명령들이 솔론의 것이라고 알려져 있다. 그러나 우리의 주제에 더 적법한 것은 그 유명한 "너 자신을 알라"다. 이것은 그가 한 말로 알려졌으나 이 시대의 다른 사람이 한 말일는지 모른다. 이것 역시 호메로스 류의 영웅들에게는 생각조차 불가능한 말이다. 인간은 어떻게 자신을 알 수 있는가? 홀로 자기 행위와 감정에 대한 기억을 불러일으키고, 그것들을 유사 '자아'와 함께 바라보고, 개념화하고, 특징별로 분류하고, 그가 할 법한 일이 무엇인지를 알 수 있도록 서술화하는 등의 과정에 따라서다. 우리는 '자신'을 상상의 '공간' 안에 있는 듯이 '바라보지' 않으면 안 된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앞장에서 자기 관찰적 환각(autoscopic illusions)이라고 부르려 했던 것이기도 하다.
- 자신의 누스의 눈으로 자신과 자신의 세계를 '바라볼' 수 있게 되자, 적어도 일상생활에서는 신의 음성이 불필요해지게 된다. 이제 신들의 소리는 사원이라는 특별한 장소로, 또는 신탁이라는 특별한 인물들에게로 밀려나게 되었다. ('noos가 아니라' 'nous'로 철자하게 된) 이 새로운 단일체 누스(nous)가 다른 원질들의 기능들을 흡수하면서 성공적으로 기능했다는 사실은, 행동과 사회의 재조직은 물론 그 뒤에 등장하는 문헌들에서도 입증되었다. 그러나 우리는 다소 앞질러 나간 감이 없지 않다. 왜냐하면 기원전 6세기라는 이 중요한 시기에 또 다른 발달, 즉 미래에 엄청난 복잡성을 안겨줄 하나의 발달을 보게 되기 때문이다. 그것은 바로 예기치 않았던 새로운 방식으로 사용되는 옛 용어, 사이키다. 이 사이키는 조만간 누스(nous)와 나란히 쓰이거나 또는 상호 치환되게 되는 반면, 동시에 제1권 앞부분에서 오류로 지목되었던 이른바 의식에 대한 의식을 낳게 된다. 나는 이 새로운 개념은 그리스 문화와 이집트 문화의 만남에서 이루어진 거의 인위적 가공물이라는 점을 주장하려 한다.
- 기원전 5세기까지도 에우리피데스(Euripides)는 생명에 달라붙어 있다는(Iphigenia at Aulis, 1385) 것을 뜻하는 '자신의 사이키를 좋아함'이라는 어구를 사용한다. 아리스토텔레스의 몇몇 글들 역시 사이키를 생명이란 뜻으로 사용하며, 이런 용법은 신약성서의 많은 부분으로 확장되었다. "나는 선한 목자라. 선한 목자는 자기 양을 위하여 자기 목숨(psyche)을 바친다."(<요한복음>, 10장 11절). 예수는 (이 말을 할 때) 자신의 정신(mind)이나 혼(soul)을 의미하지 않았다. 그러나 <일리아스> 제23권 초두에 나오는 아킬레우스의 꿈에서 고인이 된 파트로클로스의 사이키가 그를 찾아왔을 때, 그가 그것을 껴안으려 하자 그것은 알 수 없는 말을 웅얼거리며 땅 속으로 잦아들어 버린다. <오디세이아> 제11권과 24권에 나오는 지하계의 회색빛 장면들 역시 사이키를 유사한 방식으로 사용한다. 이 예들에 나오는 용어들은 <일리아스>와 <오디세이아> 나머지 부분에 나오는 의미들과는 거의 정반대 의미로 쓰이고 있다. 결코 생명이 아니다. 생명이 멈추고 난 뒤에 존재하는 무엇이다. 전장에서 혈관으로부터 흘리는 무엇이 아니라, 지하계로 내려갈 혼령(ghost) 또는 혼인 것이다. 이것은 기원전 500년경 핀다로스까지만 해도 그리스 문학에서 들리지 않던 개념이다. 이제까지 우리가 살펴본 기원전 7세기와 8세기 사이에 끼여 있는 모든 작가들에게 사이키는 혼령(ghost-soul)이 아닌, 언제나 생명이나 생명성을 뜻하는 자체의 고유한 의미가 있었다. 어의론적 기원을 뒤지며 아무리 짜 맞추어 보려고 한다 해도, 하나는 생명에 다른 하나는 죽음에 관련되어 있는, 사이키의 이 곤혹스럽고 상이한 두 의미를 화해시킬 수가 없다. 호메로스에 나타나는 이 낯선 부조화들은 이 시들이 표면상의 기간보다 훨씬 나중에 삽입된 것이라는 명백한 암시를 얻게 된다. 그리고 실제로 이것이 대부분의 학자들이 우리가 접할 수 있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근거들에 의거하여 확신하는 것이다. 사이키의 이러한 의미가 핀다로스 때까지는 나타나지 않았기 때문에 우리는 지하계에 관한 이런 구절과 그 어두운 곳에 거하는 죽은 자 들의 혼이라고 하는 것은 핀다로스 직전에, 때로는 기원전 6세기경에, 호메로스 류의 시들에 첨가된 것이라는 확신을 갖게 된다. 그렇다면 왜, 어떻게 이런 극적인 차이를 드러내는 사이키의 개념이 나타나게 된 것일까 하는 것이 문제다. 여기서 우리가 말하려는 것은 단지 생명을 나타내던 옛 개념이 죽은 다음에도 존재하는 어떤 것에도 적용되고 있다는 것, 그리고 그것은 육체와 분리될 수 있는 것임을 분명히 해두어야겠다. 우리가 앞장에서 보았던 것처럼 실제적인 생존 여부는 문제 되지 않는다. 양원 정신 이론에 따르면, 특정한 권위직에 있던 사람에 대한 환각은 그의 사후에도 일상적인 일로 계속된다. 그 때문에 사후의 시체에게 먹을 것을 제공하는 것이나 그들과 함께 생활집기를 매장하는 것이 거의 보편적인 관습이었다.
- 전체적으로는 오늘날의 베두인 유목민들이 종종 그렇게 하듯이 가축과 곡물들을 약탈하기 위해 도시 변두리를 공격하는 부족이었다. 아카드(Akkad) 언어로 방랑자들에 해당하는 언어, 또는 바빌론 언어로 방랑자를 뜻하는 언어는 카비루(khabiru)며, 설형문자 석관에는 이 사막의 난민도 그렇게 불린다. 그리고 사막의 공기 속에서 다소 부드러워진 카비루의 발음이 히브루(hebrew)가 되었다. 후대의 카비루나 히브루에 관한 이야기 또는 이에 관한 상상의 이야기가 구약성경이라는 이름으로 우리에게 전해졌다. 이 장에서 우리가 관심을 집중하려는 논지는, 역사와 장광설, 노래와 설교, 그리고 이야기 등의 이 엄청난 모음집인 구약은, 그 방대한 전체적 모양에 있어 양원 정신의 상실과 기원전 1000년 기간에 이루어진 주관성에 따른 대체과정을 그린 것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즉각 아주 심각한 정론법적(orthological) 문제에 봉착해 있다. 왜냐하면 구약의 많은 부분 특히 우리의 주제에 매우 중요한 의미가 있는 첫 부분의 기록들은 잘 알려진 바와 같이 여러 시기와 장소에 흩어져 있는 것들에서 모은 영롱한 빛깔의 실줄들을 멋지게 엮어놓은 기원전 5, 6, 7세기의 위조물들이다. 한 예로 <창세기>의 제1, 2장은 각기 다른 창조 이야기를 한다. 홍수 이야기는 수메르의 명각을 일신론적으로 개작한 것이며, 야곱 이야기는 기원전 1000년 이전으로 추정하는 것이 당연하나 바로 다음 쪽에 나오는 그의 아들로 알려진 요셉 이야기는 적어도 500년 이상 지난 이야기에서 가져온 것이다.
- 앞서 말했듯이 구약은 대부분 잡다한 시기와 잡다한 자료들로 엮은 것이다. 그러나 몇몇 글들은, 엮은 것이 아니고 하나의 전체인 점에서, 그리고 이것은 대부분 그들이 말하는 그대로 사실이며 이들에 대해 철저히 정확한 연대를 매길 수 있다는 점 등에서 순수하다. 당분간 이런 글들에 국한하여 이들 중 가장 오래된 것과 가장 최근의 것을 비교하기로 한다면, 우리는 모종의 변화에 대한 증거를 찾아낼 수 있는 참된 비교를 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이런 순수한 글들 중 가장 오래된 것은 기원전 8세기의 <아모스서>며 가장 최근의 것은 기원전 2세기의 <전도서>다. 양자는 모두 짤막한 글들이다. 독자께서는 이 책을 계속 읽어나가기 전에 먼저 그 글들을 읽어봄으로써 여러분 스스로 거의 양원적이랄 수 있는 한 사람과 주관적, 의식적인 한 사람 간의 차이점을 진솔하게 보기 바란다. 왜냐하면 이 증거 자료들은 우리의 가설과 극적으로 일치하기 때문이다. <아모스서>는 광야에서 생활하는 한 문맹인 목동에게 들려온 것을 서기관에게 구술한 것으로서 거의 순수한 양원적 연설이다. 이와 대조적으로 <전도서>에서 신은 학식이 풍부한 저자에게 말한 적이 없는 것은 물론이고, 거의 언급조차 되지 않는다. 신에 관한 언급은 이 중요한 글들을 정경에 포함하기 위해 추후에 삽입한 것으로 학자들은 간주한다.
- <아모스서>에는 정신, 생각하다, 느끼다, 이해하다 또는 이와 유사한 어떤 말도 등장하지 않는다. 아모스는 마음속에서 무언가를 숙고한 적이 없다. 아니할 수가 없다. 그는 이 말이 무슨 말인지조차 모를 것이다. 한두 번 그가 자신을 언급할 때에도 그는 갑작스럽고 무조건적으로 소식을 알린다. 그는 결코 선지자가 아니다. 단지 '무화과 열매를 줍는 자'일뿐이다. 그는 말하기 전에 의식적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사실 그는 결코 우리가 생각하는 식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그의 사유는 다른 것이 대신해준다. 그는 자신의 양원적 목소리가 말하려는 것을 느끼면, "주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는 말로 자기 주변의 소리를 조용히 하게 한 후, 아마 자신도 알아들을 수 없는 강력하고 성난 말씀을 따라서 외친다. <전도서>는 이 모든 면에서 정반대다. <전도서>의 저자는 사물에 대해 될 수 있는 대로 자기 원질적 가슴의 피석의체 깊은 곳에서 숙고한다. 아주 주관적인 사람이 아니고는 그 누가 "헛되고 헛되니 세상만사 헛되다"(1장 2절)고 말하거나, "지혜가 어리석음보다 낫다"(2장 13절)고 말할 수 있는가?
- 구약 가운데 더 오래전에 씌인 부분에서는 다른 옐로힘이 종종 언급되고 있다. 이들 중 가장 중요한 것은 바알(Ba'al) 신으로서 소유자로 번역된다. 당시의 가나안에는 많은 소유자들이 있었다. 마치 오늘날 많은 가톨릭 도시들이 그들만의 성모 마리아를 가지고 있으나 여전히 같은 성모 마리아이듯이 마을마다 하나의 소유자가 있었다. 실낙원, 인류의 대타락에 대해서, 그리고 어떻게 그것을 양원 정신의 붕괴에 관한 신화로 볼 수 있는지에 대해서 더 많은 관찰이 필요할 것이다. 분명히 의식적·주관적인 단어, 교활한 또는 기만적인을 뜻하는 히브리어 아룸(arum)은 구약 전체를 통해서 고작 서너 번 쓰인다. 여기서 그것은 유혹의 원천을 기술하기 위해 사용된다. 우리가 기억하는 것처럼, 속이는 능력은 의식의 징표들 중에 하나다. "너희는 엘로힘처럼 되어 선과 악을 알게 될 것이다"(<창세기> 3장 5절)라고 뱀이 약속하는 것은 오직 주관적, 의식적 인간의 역량이다. 이 최초의 인간들이 지식의 나무 열매를 먹었을 때, 갑자기 그들 두 사람의 눈이 열리었다". 은유된 정신-공간 속의 유사 눈이 생겨 "그들은 자기가 알몸인 것을 알게 되었다"(<창세기> 3장 7절). 또는 그들은 자기 관찰적 시각(autoscopic visions)을 갖게 되어 서술하게 되고 타인들이 자기들을 보듯 자신들을 보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하여 그들의 슬픔은 "엄청나게 증폭되었고"(<창세기> 3장 16절) 그들은 스스로-존재하는-자를 볼 수도 있고 타인들과 말하듯 그와 더불어 같이 말할 수도 있었던 그 정원에서 쫓겨나게 된다. 이 이야기는 양원 정신의 붕괴와 의식의 도래를 이야기로 엮은 것으로, 앞장에서 논한 <오디세이아>와 합리화된 방식으로 대비될 수 있다. 그러나 이 미지의 저술에 대해 우리가 느끼는 경외가 그렇듯이 문제들은 유사하다. 나바하는 자 나비임(The Nabim who naba). 그리스어 '예언자'에 해당하는 말로 잘못 번역된 히브리어 나비 (nabi, nbi, nvi)는 흥미로운 난제를 제시한다. 현대적 의미에서 예언하다(prophesy)는 미래를 예견한다는 뜻이다. 그러나 동사 나바와 그것의 수행자 나비임(나비의 복수)이 지칭하는 것은 그렇지 않다. 이 용어들은 시간과는 무관하며, 오히려 흐름과 밝아짐에 관련되어 있는 어원 군에서 나왔다. 그리하여 우리는 나비를 은유적인 의미에서 흘러나오는 자, 또는 언설이나 환상이 용솟음치는 자라고 생각해도 좋을 것이다. 그들은 과도기적인 사람들로서 부분적으로는 주관적이고 양원적이었다. 일단 밝은 급류가 방출되고 부름이 임하면 나비는 그의 메시지가 신뢰할 수밖에 없는 것이든(<마모스> 7장 14~15절), 무가치한 것이라고 느껴지는 것이든(<출애굽기> 3장 11절; <이사야> 6장: <예레미야> 1장 6절), 또는 때로 자신의 귀가 의심스러운 것이든(<예레미야> 20장 7~10절) 그것을 전달하지 않으면 안 된다.
- 그러나 양원성이 붕괴되고, 특히 한때 양원적이었던 사람들이 <출애굽기>에 나오는 것처럼 유목민이 되어 살게 될 때, 양원적 목소리들은 사람마다 다른 것을 의미하기 시작했고 권위의 문제가 심각하게 대두되었다. 이런 종류의 일은 <민수기> 12장 1~2절에서도 언급되는 것처럼, 모두 스스로-존재하는-자의 소리를 듣고 있었던 미리암(Miriam), 아론(Aron), 그리고 모세 중 누가 가장 진실한 것인지를 확신할 수 없었다.
- 미리암은 모세의 누이고 아론은 모세의 형이었다. 이들은 모세가 에티오피아 여인을 아내로 맞았다고 해서 그를 비난했다. "야훼께서 모세에게만 말씀하시고 우리에게는 말씀하지 않으시는 줄 아느냐?"고 투덜댔다. 그러자 야훼는 "너희 가운데 예언자가 있다면 나는 그에게 환상으로 내 뜻을 알리고 꿈으로 말해줄 것이다. 내 종 모세는 다르다. 나는 내 온 집을 그에게 맡겼다. 내가 모세와는 얼굴을 맞대고 말한다"는 판정을 내리고 미리암을 문둥이로 만든다-옮긴이.
- 그러나 이후 책들에서는, 특히 잔존하는 양원적 목소리들 간의 경쟁으로 문제가 더욱 심각해진다. 요아스는 자신이 제단을 지어 바친 바알신이 말하는 것으로 간주하는 양원적 목소리를 듣고 있었으나 그의 아들 기드온(Gideon)은 스스로-존재하는-자의 목소리로 간주되는 것을 듣고 있었다. 그 목소리는 바알 신에게 바쳐진 아버지의 제단을 헐고 자신을 위해 다른 것을 지으라고 명한다.(<사사기> 6장 25~26절). 잔존하는 엘로힘의 질투심은 사회적 와해의 직접적이고 필수적인 결과물이다. 이러한 무질서한 붕괴 기간 중에 있던 양원적 목소리의 불협화음은 어떤 음성이 진짜인지를 말해주는 표시나 마술적 증명의 중요성을 부각시켰다. 그리하여 모세는 자기가 하는 일의 정당성을 입증하는 마술적 증거들을 끊임없이 보여주지 않으면 안 되었다. 물론 이러한 마술적 징표들은 기원후 첫 번째 1000년을 거쳐 지금에 이르기까지 계속되고 있다. 오늘날 성인임을 입증하는 기준으로 요구되는 기적들은 모세가 자기 지팡이를 뱀으로 그리고 다시 원상으로, 또는 자신의 손을 문둥병 걸린 것으로 그리고 다시 원상으로 환각 하게 했던 명령과 정확히 동일한 것들이다(<출애굽기> 4장 1~7절). 오늘날 우리가 즐기는 마술이나 요술의 어떤 것들은 아마도 바로 이러한 징표에 대한 갈망의 잔존물일 것이다. 그 속에서 마술사를 양원적 권위로 느끼는 스릴을 우리 내부의 어딘가에서 즐기는 것이다. 만일 아무런 징표도 없다면 어찌 될까? 이것이 특별히 기원전 7세기 이스라엘인이 지은 죄악의 벽 앞에서 통곡하던 문맹자 예레미야의 문제였다. 그는 비록 자신 위에 스스로-존재하는-자의 손이 놓이는 징표를 가지고 있었으며(<예레미야> 1장 9절), 그의 말씀을 뼈 속의 불처럼 계속 들었으며, 그에게 파송되었다(23장 21절, 32절 등) 할지라도 여전히 어떤 음성이 옳은 것인지 확신이 없었다.
- 제비뽑기나 고랄(goral) 던지기, 주사위, 뼈, 콩알 등을 던져 일을 결정하는 행위는 구약 내내 지속되었다. 이 책 제2권 4장에서 본 것처럼, 이것은 유사 신(analog god)을 만드는 행위다. 고랄은 은유에 따라서 신의 말씀이 되어, 무엇을 해야 할지, 누구를 죽여야 할지를 결정하고 땅과 부족을 정해준다. 이전의 양원적 권위를 대신하는 것이다. 앞서 언급한 대로, 우리가 주관적 영역에 제대로 진입할 때까지는 우연이란 개념은 없었다는 것을 깨달을 때 이러한 관행이 얼마나 권위적일 수 있는지를 더 잘 이해하게 된다. 그러나 직접적 감각 경험에서 즉흥적 점술이 행해지는 것은 대단한 흥밋거리인데, 이것이 나중에 주관적·의식적 정신이 된다.
- 델포이를 이같이 문화적으로 설명하는 데는, 델포이보다는 덜 중요하지만 비슷한 신탁들이 그 당시 문명 세계 각지에 있었다는 사실도 한몫한다. 아폴론은 다른 신탁들도 갖고 있었는데 이들은 보이오티아의 프토아(Ptoa in Boeotia), 소아시아의 브란키다이(Branchidae)와 파타라(Patara) 등이었다. 후자의 경우, 여사제는 유도 절차의 일부로 밤에 신전에 감금되어 더 훌륭한 신의 영매가 되기 위해 환상 속의 신과 부부로 하룻밤을 보냈다. 클라로스(Claros)의 위대한 신탁에는 영매로 사제들이 있었는데 이들의 광란을 1세기경 타키투스가 전했다. 판(Pan) 신은 아카세지움(Acacesium)에 신탁이 있었지만 곧 쇠퇴했다. 엄청난 부로 유명하던 에페소스(Ephesus)의 황금 신탁은 환각 상태에 젖어 있는 내시들인 아르테미스 여신의 대변인들이 있었다. (그들의 복장 양식은 오늘날 아직도 그리스 정교회에서 사용한다.) 그리고 현대의 발레리나들이 발가락 끝으로 추는 유별난 춤은 아르테미스 여신의 제단 앞에서 추던 춤에서 기인했다고 여긴다. 일상생활과 반대된 것이면 무엇이든지 양원적 패러다임을 불러일으키는 자극이 되었다. 도도나(Dodona)에서 들리던 제우스 신의 음성은 오래된 신탁 중 하나였을 것이다. 오디세우스가 이타카로 돌아갈 때 공개적으로 갈 것인지 몰래 갈 것인지 물으러 갔다는 것으로 미루어 볼 때 이렇게 생각할 수 있다. 그 당시에는 이 신탁이 아마도 거대하고 성스러운 참나무에 지나지 않았을 것이다. 올림푸스의 제우스 신 목소리가 나뭇잎에 떠는 바람 소리로부터 환상 속에서 울려 퍼졌다. 참나무를 성스럽다고 여기는 드루이드(Druids) 사이에도 이와 같은 일이 벌어지지 않았나 생각해보게 된다. 기원전 5세기에 이르러서야 제우스 신의 음성이 더는 직접 들리지 않았고, 도도나에는 신전과 여사제가 생겨 의식이 없는 환각 상태에서 제우스 신을 대신해 말했다. 이 또한 양원적 이론이 예측하는 시간적 순서에 들어맞는다. 신들의 음성뿐 아니라 죽은 왕들의 목소리도 아직 양원적으로 들렸고, 전에 제시했듯이 신에 대한 기원도 여기서 비롯된다.
- 그러나 양원 정신의 가설 측면에서 가장 흥미로운 것은 텔포이에서 동쪽으로 32킬로미터 떨어진 레바데이아의 트로포니우스(Trophonius)의 환청 음성이었다. 왜냐하면 이것은 중간 사제나 여사제 없이, 직접 '음성'이 들린 신탁 중 가장 오래된 것이었기 때문이다. 이 신탁의 주위 환경은 오늘날에도 고대의 웅장함의 자취를 담고 있다. 높이 솟은 세 개의 절벽과 땅에서 힘차게 솟구쳐 나와 돌이 가득한 계곡으로 조용히 기어 들어가는 졸졸거리는 샘물이 만난다. 한 계곡이 산의 중심부로 돌아 들어가는 좀 더 위쪽에는, 한때 바위를 파낸 방과 같은 구덩이가 있었는데, 지하수가 흐르는 통로 위에 있는 오븐 모양의 제단으로 이어져 있다.
이들은 양원적 정신에서부터 집단적 인지 규범이 점점 약해지면서 내려오는 여섯 단계의 계단으로 간주될 수 있다.
1. 장소 신탁(locality oracle): 신탁은 구체적인 장소로 시작했는데, 주위 경관의 수려함이나 어떤 중요한 사건 또는 어떤 환상을 일으키는 소리, 파도, 물 또는 바람 때문에 신탁을 구하는 사람이면 그 누구라도 양원적 음성을 직접 '들을' 수 있었다. 레바데이아는 아마도 그 놀라운 유도 때문에 이 단계에 해당할 것이다.
2. 예언자 신탁(prophet oracle): 대부분 그다음에는 특정 사람들-사제들 또는 여사제들만 그 장소에서 신의 음성을 '들을' 수 있었다.
3. 훈련된 예언자 신탁(trained prophet oracle): 사제들, 여사제들이 긴 훈련과 복잡한 유도 후에만 음성을 '들을' 수 있었던 기간이었다. 이 기간까지도 음성을 듣는 사람은 여전히 '자기 자신'이었고 단지 신의 음성을 다른 사람들에게 전달할 뿐이었다.
4. 신들린 신탁(possessed oracle): 그 뒤, 적어도 기원전 5세기 이후에 신들림의 기간이 도래했다. 더 많은 훈련과 더 복잡한 유도 절차를 거친 후의 기간으로써 신들려 삐뚤어진 입과 뒤틀린 몸이 특징이었다.
5. 신들린 신탁의 해석 (interpreted possessed oracle): 인지 규범이 약해지면서 신탁이 하는 말을 잘 알아들을 수 없게 되었고, 역시 유도 절차를 거친 보조 사제 또는 여사제가 이 해석을 해야만 했다.
6. 발작적 신탁(erratic oracle): 그 뒤 이것조차 힘들어지자 목소리는 즉흥적인 것이 되었고, 신들린 예언자는 발작적으로 되었으며, 해석은 불가능해졌고 신탁이 끝났다.
- 신탁의 시대는 양원적 정신이 붕괴된 후 1,000년간 계속되었다. 그리고 그 시대가 천천히 막을 내리면서, 여기저기서 아마추어 신탁이라고 불릴 만한 사람들이 나타난다. 이들은 훈련받지 않고 제도화되지 않았지만, 자신이 신들린 사람이라고 자발적으로 느끼는 사람들이었다. 물론 어떤 이들은 단순히 정신분열증적인 헛소리를 했다. 아마도 대부분이 그랬을 것이다. 그러나 어떤 이들에게는 믿음이 가게 하는 진실성이 있었다. 이들 중에는 몇 안 되지만 수는 알 수 없는 시빌(sibyl)이라고 알려진 이상하고 놀라운 여인들이 있었다. (이올리아(Aeolic) 방언으로 sios(신)과 boule(조언)이 합쳐져 만들어진 단어다.) 기원전 1세기에 바로(Varro)는 지중해 세계에서 적어도 한때는 10명 정도의 시빌들을 헤아릴 수 있었다. 그러나 더 멀리 떨어진 지역에 다른 시빌들이 분명 있었을 것이다. 이들은 홀로 살았는데, 때로는 그들을 위해 지은 신성한 산 위의 신전이나 위대한 쿠마이 시빌(Cumae sibyl)처럼 바다의 신음소리가 들리는 석회로 된 지하 동굴에 살았다. 버질(Virgil)은 아마도 기원전 40년에 카미안 시빌을 방문한 것 같은데, 아이네이스(Aeneis) 6권에서 그녀를 신들리게 한 아폴론 신의 계시를 광적으로 전하는 모습을 묘사했다.
- 신탁받는 사람들처럼 시빌들은 3세기까지 크고 작은 문제들에 대해 결정을 내려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그들의 답이 도덕적인 열정으로 가득 차 있었기 때문에 심지어는 초기 기독교의 교부들이나 그리스화 된 유대인도 그들에게 구약의 예언자들과 같은 수준의 예언자들의 경의를 표했다. 특히 초기 기독교 교회는 그 신적인 권위를 입증하기 위해 이들의 예언을 사용했는데, 많은 경우 조작된 것이었다. 심지어는 1,000년 후 바티칸에서 시스티나(Sistine) 성당의 미켈란젤로는 네 명의 시빌을 눈에 띄는 곳에 그려 넣었다. 그리고 심지어는 몇 세기 후에도 신탁 책을 펼친 이들 근육질 여인들의 모습은, 내가 미국 뉴잉글랜드 지방의 한 개신교 유니테리언파의 주일학교에 다니고 있을 때 의아해하는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위임을 갈망하는 사회집단들의 갈증은 이처럼 크다.
- 그러나 심지어는 이러한 파괴도 우상숭배의 관습을 폐지하지는 못했다. 우리 행동에 어떤 종류의 승인이 있는 것은 너무나 중요하기 때문이었다. 중세 이탈리아와 비잔틴 제국은 재난을 피하는 능력이 있는 마술의 우상들을 믿었다. 악명 높은 성당 수도 기사단(Knights Templars)은 적어도 바포메트(Baphomet)란 황금머리의 지시를 받았다고 한다. 중세 말기에는 환각을 일으키는 우상들이 너무도 흔해져서, 1326년에는 마술로 조각상이나 다른 물건에 악령들을 감금시키고, 그들에게 질문하여 답을 받는 사람들을 비난하는 교황 요한 22세의 대칙서가 있었다. 종교개혁에 이르러서까지, 수도원들과 교회들은 기적을 일으키는 조각들로 순례자들과 (그들의 현금을) 끌어내기 위해 서로 경쟁했다. 어떤 시대에는, 어쩌면 이 같은 새로운 양원적 경험에 대한 인지 규범이 합리주의의 햇빛 아래 시들어가면서, 조각이 살아 움직이는 것에 대한 믿음은 종종 속임수 장치들로 유지되었다. 그중 복슬리(Boxley)에 있던 실제 크기의 중세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가 참회하는 신도들을 보며 눈알을 굴리고, 눈물을 흘리고, 입에 거품을 물었는데, 16세기에 "엔진과 낡은 철사와 썩은 막대기가 십자가 뒤에 있었다"는 것이 발견되었다. 그러나 우리는 지나치게 냉소적이어서는 안 될 것이다. 이러한 인공적인 움직임이 기적에 굶주린 순례자들을 속이기 위한 사기로 작용했지만, 동시에 더 실제와 같은 조각으로 신이 머물게 하려는 유인장치로 만들어졌을 수도 있다. 이것에 대한 14세기 소책자에 적혀 있듯이 "신의 능력은, 기적을 일으킬 때 어떤 입상보다 다른 입상에 더 많이 내려오고 있다." 일부 현대 부족들에서 숭배자들도 살아 있는 우상들을 이와 같이 설명한다.
- 제3권 1장에서 살펴보았듯이, 신탁받는 사람이 무의식 상태에서 마치 신이 말하듯이 이야기하는 제도는, 기독교 시대의 첫 세기에 이르러 불규칙적으로 되다가 조용해졌다. 합리주의에 포위되고, 희극이나 문학에서 비판과 노골적인 경시를 받게 된 것이다. 보편적인 문화적 특질이 이처럼 공적으로 (그리고 논리 정연하게) 억제될 때, 그것은 사적 영역으로 밀려 들어가는 결과를 초래한다. 인지 규범 역시 이와 같은 비난에서 보호될 수 있는 비밀스런 집단과 은밀한 종교집단 등으로 물러나게 된다. 유도된 신들림도 이와 같다. 신탁이 비웃음 때문에 멈추게 되었을 때, 위임에 대한 갈망이 매우 크기 때문에 사적 집단들 사이에 신들을 다시 모셔와서 누구를 통해서든 이야기하게 하려는 시도가 확산되었다. 2세기에 들어 이러한 종교집단들이 늘어났다. 그들의 교령회(séance)는 때로 공식적인 성전에서 열렸지만 사적인 장소에서 열리는 일이 점점 늘어났다. 대부분 펠레스티케(pelestike)라고 불리는 최면술사가 카토코스(katochos) 또는 특별히 도케우스(docheus), 즉 현시대에 영매라고 불리는 사람 안에 일시적으로 신이 깃들게 하려고 했다. 이 현상이 일어나기 위해서는 카토코스가 단순하고 배우지 못한 태생이어야 한다는 것이 곧 밝혀졌다. 이 사실은 신들림에 대한 모든 글에 나타나는 공통적인 내용이다. 3세기 초 이 모든 것에 대한 진정한 전도자였던 이암블리코스는 '어리고 단순한 이들'이라야 가장 적합한 영매가 된다고 말했다. 기억해보면 델포이 신탁에서 사제로 훈련받기 위해 선택된 이들도 마찬가지로 배우지 못한 시골 처녀들이었다. 다른 글에서 에데시우스(Aedesius)란 소년과 같은 십 대 소년들이 언급되어 있다. 에데시우스는 "화환을 쓰고 태양을 바라보기만 해도 즉시 가장 감명을 불러일으키는 어투로 믿을만한 신탁을 내놓았다"고 기록했다. 아마도 이것은 철저한 훈련에서 온 것이라고 추정해볼 수 있다. 이러한 유도된 양원적 신들림이 학습되어야 한다는 사실은, 신탁받는 사람들이 훈련받았던 것과 로도스의 피타고라스가 한 말을 통해서 알 수 있다. 그것은 신들이 처음에는 마지못해 왔지만, 같은 사람 속에 들어가는 것에 익숙해지면 더 쉽게 들어왔다는 것이었다.
- 양원적 정신의 흔적들은 텅 빈 심리적 공간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즉 그것은 단순히 어떤 문화에 나타나 아무 기능도 하지 않은 채, 고대의 특성만을 나타내는 고립된 형상으로 취급되어서는 안 된다. 그것은 어떤 문화나 하위문화의 중심부에 존재할 뿐만 아니라, 나아가 말로 표현할 수 없고 합리적으로 설명되지 않는 부분을 채워준다. 그것은 비합리적이며 질문의 여지가 없는 문화의 버팀목이자 구조적 기반이다. 그리고 이번에는 그 문화가 그 속에 있는 개개인의 의식의 기반이 된다. 그것은 또한 '나(me)'라는 은유가 유사 '나(I)'에 따라 어떻게 '지각되는지'에 관하여, 그리고 발췌의 본질과 이야기 엮기와 조정의 제약에 관하여 설명해주는 기반이 된다.
- 우리가 여기서 생각하는 양원적 정신의 흔적들도 예외일 수 없다. 움반다 교 같은 신들림의 종교는 가난하고 교육받지 못하고 궁핍한 이질적인 군중에게 강력한 심리적 인지주의 역할을 한다. 박애주의, 즉 카리다데(Caridade)의 감정이 충만해 있는 이 종교는 도시화와 민족적 다양성으로 뿌리 없이 좌초된, 정치적으로 무능한 이 잡다한 사람들을 위로하고 하나로 묶는다. 인간에게 찾아와 그를 점유해버리는 신(possessing divinities)으로 나타나는 이 특정 신경학적 조직의 유형을 보라. 그것은 우리에게 상위 신들과의 관계에서 중재 역할을 하는 수메르와 바빌론의 개인적인 신들을 떠올리게 한다. 각 영매는 네 개의 주요 집단 중 하나에 속한 개별적인 영에 의해 하룻밤 동안 신들림을 받게 된다. 그 집단들을 자주 나타나는 순서대로 보면 다음과 같다.
. 카보클로스(Caboclos): 인디언계 브라질인 전사의 영. 직장을 구하거나 유지하는 것과 같은 급하고 결단력 있는 행동이 필요한 상황에서 조언을 준다.
. 프레토스 벨호스(Pretos velhos): 오래된 아프리카계 브라질인 노예들의 영. 오랫동안 지속되어온 개인적인 문제를 처리하는 데 능숙하다.
. 크리앙카스(Criancas): 죽은 아이들의 영. 이 영에 신들린 영매들은 장난스러운 제안을 한다.
. 엑쿠스(Exus): (악령) 또는 여자의 경우에는 폼바기라스(pombagiras: 돌고 있는 비둘기)라고 한다. 악한 외국인의 영들로 이 영에 신들린 영매들은 천박하고 공격적인 제안을 한다.
(리뷰자 주 : 만신들의 장군, 할머니, 애동, 선녀의 조합과 유사한 느낌이다.)
- 내 주장을 분명히 해두겠다. 첫 시인들은 신이었다. 시는 양원적 정시에서 시작되었다. 고대 정신에서 신적인 부분은, 적어도 역사의 일정기간에는 대부분 또는 어쩌면 항상 시로 말했다. 한때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의 정신 내부에서 지어지고 읊어진 (일종의) 시를 종일토록 들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에 대한 증거는 물론 추정에 따른 것이다. 그것은 의식의 시대까지 양원적으로 남아 있던 모든 사람이, 정신의 신적인 부분에서 하는 말을 듣거나 신적인 부분에 대해 말을 할 때, 시로 말했다는 것이다. 그리스의 위대한 서사시들도 당연히, 아오이도이에 따라 시로 들었고 낭독되었다. 메소포타미아와 이집트의 고대 글들이 어떻게 구술되는지 모르기 때문에 확실히 알 수는 없지만, 읽어보면 나름대로 시였다. 인도에서 가장 오래된 문학 작품은 신들이 리시(rishi), 즉 예언자들에게 구술했다는 베다(Veda)다. 신탁을 받는 사람들은 시로 말했다. 때때로 델포이나 그 밖의 장소에서 그들이 한 말이 기록되었는데, 남아 있는 것 중 단순한 어구보다 긴 것들은 모두 서사시들처럼 육보 격의 장단간격이었다. 환상 속에서 들은 야훼의 음성을 전하는 히브리 예언자들도 많은 경우 시인들이었다. 그러나 그들의 말을 기록하는 이들이 항상 시로 보존하지는 않았다. 양원적 정신이 역사에서 더욱 사라지게 되면서, 그리고 신탁을 받은 사람들이 다섯 번째 기간에 이르면서, 예외가 나타난다. 신탁받은 사람들이 시로 말하는 것이 때때로 지켜지지 않았다. 예를 들면 1세기에 와서는 델포이 신탁을 받은 사람들이 시와 산문을 섞어서 말했다.
- 그러나 노래할 때 음높이의 변화는 뚜렷이 구별되고 불연속적이다. 말은 옥타브의 어떤 부분(편안하게 말할 때 한 옥타브의 약 5분의 1) 안에서 일어난다. 반면에 노래는 좀 더 넓은 범위를, 한 음에서 다른 음으로 엄격하고 한계가 분명한 각운으로 움직인다. 현대 시는 말과 노래의 합성물이다. 현대 시는 노래의 각운과 말의 음높이가 급격하게 변한다. 그러나 고대 시는 노래에 훨씬 가까웠다. 액센트는 우리가 일상에서 말할 때처럼 어느 음절에 강세를 두는지에 따라 결정하지 않고, 음높이에 따라 결정했다. 고대 그리스에서 이 음높이는 시의 기본음보다 정확히 5분의 1 구간 높다고 여겨졌다. 그래서 우리 음계의 음으로 하면 장단간격은 GCC GCC로 표현되었다. 이때 G에는 별도의 강세가 붙지 않았다. 그뿐 아니라 세 가지 별도 액센트인 예음 액센트, 곡절 악센트, 여음 액센트는 그 기호 /, ^, \가 암시하듯이 각각 한 음절에서 음높이가 높아지는 것, 한 음절에서 음높이가 높아졌다 낮아지는 것, 그리고 음높이가 낮아지는 것이었다. 그 결과는 노래처럼 부르는 시였는데, 아름다움과 다양성을 주기 위해 각종 청각적 변화를 가미하기도 했다.
- 따라서 우리는 초기 시인들이 수금을 사용한 이유가 바로 옆에 있는 부분에서 신적인 언어 영역, 즉 우반구의 측두엽 뒷부분으로 자극을 확산하기 위한 것이었다고 주장할 근거를 갖게 된다. 그리고 기원전 8세기와 7세기의 서정시인과 만가시인들이 사용하던 플루트의 기능도 이와 같았다. 그리고 후기 그리스 시에서처럼 이러한 악기를 더 사용하지 않게 된 이유는, 시가 더는 우반구에서 불려지지 않아서 자극이 확산되는 것이 도움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시는 진정한 예언적인 환각 상태에서 재창조되는 대신 좌반구의 기억 영역에서만 낭송되기 시작했다. 이러한 악기 반주의 변화는 역사적으로 겹치는 부분이 많기 때문에 분명히 말할 수는 없지만, 시가 무엇이라고 불리는지에도 반영된다. 초기 시는 노래라고 불리지만(예를 들면 일리아스나 신들의 기원에서) 후기 시는 '말해졌다' 또는 '이야기되었다'로 언급된다. 이러한 변화는 어쩌면 기원전 8세기 또는 7세기에 수금을 타던 아오이도이에서 랍도이(rhapdoi: 아마도 박자를 맞추기 위한 가벼운 막대기)를 가진 광상시(rhapsode)로 변하는 것과 대충 같은 시기다. 그리고 이러한 각각의 변화의 배후에는 양원적 창작에서 의식적 낭독으로, 구술적 기억에서 기록된 기억으로 좀 더 심오한 심리학적 변화가 있다. 그러나 훨씬 이후의 시에서 시인을 노래하는 사람으로, 시를 노래로 표현하는 것은 의식적으로 복고풍으로, 은유적으로 되살린 것이다. 시의 권위는 이제 의식이 있는 시인에게로 넘겨졌다.
- 그러나 기원전 6세기 솔론의 시대에 이르렀을 때 다른 일이 벌어진다. 시인은 더는 단순히 재능을 타고나지 않았다. 시인은 "뮤즈 여신의 재능을 배워야"(단편 13장 51절) 했다. 그리고 기원전 5세기에 시인들이 시적 황홀경으로 이상해졌다는 암시를 처음 접하게 된다. 데모도코스 같은 그전의 아오이도이의 조용하고 위엄 있는 태도와 얼마나 대조가 되는가? 격정의 상태로까지 극도로 흥분되지 않고는 그 누구도 위대한 시인이 될 수 없다고 주장한 것은 데모크리토스였다(단편 18장). 그리고 기원전 4세기가 되었을 때 플라톤과 내가 이미 묘사한 '정신 나간', 미친 신들린 시인이 등장한다. 신탁을 받는 사람들이 자신의 환상을 듣는 예언자에서 광란의 환각 상태에 있는 신들린 사람으로 바뀌었듯이 시인도 마찬가지 변화를 거쳤다. 집단적 인지 규범 때문에 뮤즈를 실제 외부에 있는 존재로 믿는 것이 힘들어졌기 때문에 이러한 극적인 변화가 일어났을까? 아니면 발달하는 의식에 따라 일어난 반구 사이의 신경학적 재구성이 뮤즈의 존재를 당연시하지 못하게 했기 때문일까? 그래서 시를 만들기 위해서는 의식이 간섭받지 않아야 했기 때문일까? 아니면 우반구의 베르니케 영역이 좌반구의 브로카 영역을 사용했기 때문에 정상적인 의식을 차단했던 것일까? 아니면 이 세 가지 가설은 내가 현재 생각하듯이 똑같은 것일까?
- 그리하여 지금에 와서도 향수의 한 부분이다. 신의 명령이라는 잃어버린 다른 부분을 추구하려 만든 것으로 바뀌긴 했지만, 시가 지속되는 것은 절대적인 것에 대한 향수의 한 부분이다. 신의 명령이라는 잃어버린 다른 부분을 추구하려는 노력 때문에 시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그리하여 지금에 와서도 시가 많은 경우 믿지도 않는 존재를 부르는 것이거나 알지 못하는 상상 속의 존재에게 기도하는 것인 경우가 빈번하다. 이 책을 시작하는 첫 단락도 그 한 예다. 형태는 여전히 같지만, 그 내용은 의식적인 시인의 유사 '나'로 채워져야 한다. 그의 임무는 과거의 시적 언어와 그것이 표현하려고 했던 현실을 모방(mimesis) 하는 것이다. 환상에서 들은 것을 흉내 내는 양원적 의미의 모방은, 현실을 묘사하는 플라톤의 모방을 거쳐 발명을 포함하는 모방이라는 의미로 바뀌어왔다. 실제 환청을 매우 구체적으로 묘사한 몇몇 현대 시인들도 있다. 밀턴(Milton)은 "내가 간청한 적도 없는 천상의 여신이 내가 이전에 생각해본 적도 없는 시를 나에게 받아 쓰게 한다"고 했다. 그가 눈먼 상태에서 딸들에게 시를 받아쓰게 한 것과 같다. 블레이크(Blake)의 특이한 환상과 환청은 며칠씩 지속되기도 하고, 때로는 그의 의지에 상반되게 나타났는데, 그것이 그의 그림과 시의 재료였다는 것은 잘 알려져 있다. 릴케(Rilke)는 환상 속에서 들었던 긴 소네트를 흥분한 가운데 베껴 썼다고 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좀 더 평범하고, 좀 더 의식적이다. 우리는 더 이상 우리의 시를 환상 속에서 직접 듣지 않는다.
- 최면 현상이 집단 인지적 규범이나 집단 믿음 체계의 통제 아래 있다는 것은 그것이 역사 속에서 끊임없이 변한다는 사실로 입증되었다. 최면에 대한 믿음이 변함에 따라 그 내용도 변했다. 메스머 이후 몇십 년이 지난 뒤 환자들은 더는 이상한 감각이나 발작으로 몸이 뒤틀리지 않았다. 그 대신 최면 중에 질문에 대답하고 스스로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전에는 이런 일이 관찰되지 않았다. 그러고 나서 19세기 초반에 환자들은 최면 기간에 일어났던 일을 잊기 시작했는데, 전에는 이런 사례가 보고된 적이 없었다. 1825년경 분명하지 않은 이유로 최면에 걸린 사람들은 자기 자신의 병을 스스로 진단하기 시작했다. 그 세기 중반에, 두개골의 형상이 정신적 능력을 나타내 준다는 골상학이 유행하면서 최면까지 잠식했다. 최면 중에 골상학에서 지정된 어떤 영역에 압력을 가하면 환자가 그 영역이 통제하는 능력을 나타냈는데 (그렇다. 이것은 실제로 일어났다), 이 현상은 그전이나 후에 다시 관찰되지 않았다. '경배'를 담당한다고 가정된 뇌 영역의 두피에 압력을 가하면 최면에 걸린 환자는 기도하기 위해 무릎을 꿇었다! 이런 일이 일어난 것은 그럴 것을 믿었기 때문이다. 얼마 후 당대의 위대한 정신과 의사인 샤르코(Charcot)가 살페트리에르(Salpetriére)에서 전문가들 앞에서 최면도 여러 가지라는 것을 보여주었다. 이제 최면은 납굴증(catalepsy), 기면(lethargy), 몽유증(somnambulism)의 연속적인 세 단계로 나뉜다. 이들 '신체적 상태'는 근육이나 두피에 압력이나 마찰을 가해 다른 상태로 변환될 수 있게 되었다. 브로카 영역 위의 머리를 문지르기만 해도 실어증이 유발되었다. 그리고 샤르코의 발견을 점검하기 위해 살페트리에르에 온 비네는 메스머의 자석을 끌어와 그 문제를 복잡하게 했고 아주 이상한 행동을 발견했다.
- 이것은 단지 메스머나 샤르코나 다른 누구든, 최면을 거는 사람이 자기가 생각하는 최면이 무엇인지를 고분고분한 피최면자에게 암시하는 정도의 이야기가 아니다. 오히려 그가 함께하는 집단 내에서 그 현상이 어떻게 인식되는지에 대한 인지적 규범으로 발전해왔다. 이런 역사적 변화는 최면이 주어진 자극에 대한 고정된 반응이 아니라 특정 시대의 기대나 선입관이 변함에 따라 변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역사를 통해 분명해진 이 사실을 통제된 실험에서 입증할 수 있다. 환자에게 최면이 걸리면 전에 들어보지도 못한 최면 효과가 일어날 것이라고 미리 알려주면, 다시 말해서 그 효과가 집단 인지적 규범의 일부가 되게 하면, 그런 효과가 관찰될 수 있다.
- 집단적 규범의 힘을 보는 또 다른 방식은 그것이 군중에 따라 강화되는 것을 주목하는 방법이다. 종교적인 느낌이나 믿음이 교회에서 강화되는 것처럼, 최면도 극장에서 더 잘 일어난다. 관객이 난간에까지 꽉 찬 무대에서 최면을 걸면 집단적 명령 또는 최면의 기대를 강화시켜, 실험실이나 치료센터에서 고립되어 최면을 거는 경우보다 더 기괴한 현상들을 일으킬 수 있다는 것은 잘 알려져 있다.
- 그 한 예를 소개하겠다. 한 환자는 독일에서 태어났고 8세 무렵에 영어권 나라로 가족과 함께 이민 와서 영어를 배웠고 독일어는 거의 잊어버렸다. 최면 유도자가 그에게 '깊은' 최면 상태에서 그가 여섯 살 배기라고 암시하자, 그는 아이들이 보이는 온갖 행동을 보였는데, 칠판에 낙서도 했다. 영어로 그가 영어를 아느냐고 묻자, 그는 자신은 독일어만 알고 영어는 이해하거나 말하지 못한다고 어린아이처럼 말했으나 영어로 설명하는 것이었다! 그는 심지어 칠판에 영어를 하나도 모른다고 영어로 썼다! 따라서 최면은 실제 퇴행이 아니라 연극 놀이 같은 것이다. 양원적 인간이 신에게 순종했던 것처럼 환자는 최면 유도자와 그의 기대에 무비판적이고 반논리적으로 순종하는 것이다. 잘 씌어진 최신 교과서에도 나오는 최면에 대한 또 다른 오해는 최면 유도자가 진짜 환각을 유도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발표되지 않았지만, 내가 관찰한 바에 따르면 그렇지 않다.
- 양원적 인간처럼 최면에 걸린 사람도 자신의 행동에서 어떤 비일관성을 인식하지 못한다. 완전히 의식적인 방식으로 내성할 수 없기 때문에 그는 모순을 '볼' 수 없다. 환각 상태에서는 양원적 정신에서도 본 것처럼 시간 감각도 무뎌진다. 이것은 특히 최면 후 기억상실에서 잘 나타난다. 정상적인 상태에서는 의식적 시간의 공간화된 연속을 기억 연속의 토대로 사용한다. 아침 먹고 무엇을 했느냐고 물으면, 우리는 일련의 사건들을 '시간이라는 꼬리표를 붙여' 이야기한다. 그러나 최면 상태에 빠진 사람은 정신분열증 환자나 양원적 인간처럼 사건에 시간적 꼬리표를 붙이는 시간에 대한 스키마 같은 것이 없다. 공간화된 시간의 앞과 뒤가 빠져 있다. 최면 후 기억상실 상태의 환자가 최면으로 환각 상태에 있을 때 기억해낸 사건들은, 정상적인 기억에서처럼 공간화된 시간이 아니라, 자신은 빠져 있고 모호하고 단편적인 조각들이다. 기억상실 환자가 보고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세부적인 내용도 없고 순서도 없이 "나는 손뼉을 쳤어요, 나는 의자에 앉아 있었어요" 정도인데, 이 사실은 내게 함무라비나 아킬레우스를 떠오르게 한다.
- 사람들은 좌반구나 우반구 중 어느 반구를 더 많이 쓰는지에 따라 나뉠 수 있다. 이것을 아는 간단한 방법은, 사람을 마주 보고 질문을 던진 다음 그 사람이 대답을 생각할 때 눈이 어느 쪽으로 움직이는지를 관찰하는 것이다. (제1권 5장에서 논의했듯이, 우리는 오른손잡이를 중심으로 논의하겠다.) 만일 눈이 오른쪽으로 움직이면, 뇌 반구의 활성화는 눈을 왼쪽 방향으로 움직이게 하므로 그 사람은 좌반구를 상대적으로 많이 사용하고 왼쪽으로 움직이면 우반구를 상대적으로 많이 사용하는 것이다. 마주 앉아 질문에 대답할 때, 눈을 왼쪽으로 돌리는 사람, 따라서 그들의 우반구를 많이 쓰는 사람은 최면에 걸리기가 더 쉽다는 결과가 최근에 보고되었다. 이것은 최면이 우반구와 특별하게 관계됨을 나타내며, 최면에 쉽게 걸리는 사람은 우반구에 '의지하거나' 우반구의 소리를 '더 잘 들을' 수 있는 사람임을 보여준다고 해석할 수 있다.
- 제1권 5장에서 논의한 것처럼, 옛날에는 신적 환각의 진원지였던 우반구가 더 창의적이고 공간적이며 생생한 심상(imagery)을 일으킨다고 여겼다. 최근의 몇몇 연구에서 다른 사람보다 이런 속성을 더 많이 나타내는 사람들이 최면에 걸리기 쉽다는 것이 발견되었다. 이 발견들은 양원적 인간이 신의 인도에 의지했던 것처럼, 최면이 우반구에 의존한다는 가설과 일치한다.
-만일 최면이 양원적 정신의 흔적이라는 주장이 맞다면, 최면에 가장 잘 걸리는 사람들이 일반적 양원 패러다임의 다른 사례와도 비슷할 것이라고 예상할 수 있다. 종교적 개입과 관련하여 이것은 사실로 보인다. 어려서부터 교회에 규칙적으로 나가는 사람은, 종교와 별로 관련 없는 사람들보다 최면에 더 잘 걸린다. 적어도 내가 아는 최면 연구자들 중 일부는 최면에 잘 걸리는 사람을 찾기 위해 신학교에서 피험자를 구한다.
- 어린 시절 상상 속에서만 존재하는 친구라는 현상은 앞으로의 연구에서 더 많이 이야기할 내용이다. 하지만 이 또한 양원적 정신의 또 다른 흔적으로 간주할 수 있다. 내가 인터뷰한 사람들의 적어도 반 이상이 그들의 상상 속의 친구가 말하는 것을 내가 그들에게 질문했을 때 들었던 소리처럼 경험했다고 분명히 기억했다. 진짜 환각이다. 상상 속의 친구는, 아동기의 의식이 완전히 발달하기 전인 3세에서 7세까지 사이에서 자주 보고된다. 내 주장은, 상상의 친구를 갖는 선천적 또는 환경적 성향에 따라 (비유컨대) 일반적 양원 패러다임의 신경원적 구조가 작용한다는 것이다. 이 장의 가설이 맞다면 그런 사람들은 나중에 커서 최면 같은 패러다임에 더 영향받기 쉽다고 예상할 수 있다. 이 예상은 맞다. 어린 시절 상상 속의 친구가 있던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최면에 더 잘 걸린다. 최면 가능성이 양원적 정신의 또 다른 흔적과 상관이 있음을 보여주는 또 다른 예다.
- 어린 시절의 처벌은 권위에 민감하게 반응하게 하여 예전에 양원적 정신에 있었던 신경원적 연관성을 강화하고 이것은 최면 암시성을 증가할 것이라고 예상할 수 있다. 실제로 그렇다. 세심한 연구를 통해 어렸을 때 엄격한 처벌을 경험했거나 엄한 가정교육을 받고 자란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최면에 더 잘 걸린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 이상의 실험적 발견들은 시사적일 뿐이다. 이들은 전혀 다른 방식으로 이해될 수도 있기 때문에 나는 독자 여러분이 원래의 보고를 참조하라고 권한다. 그러나 이들을 종합하면, 최면이 부분적으로 의식이 출현하기 전의 심리 상태의 흔적이라는 가설을 지지하는 패턴을 보여준다. 최면 현상을 이런 식으로 인류의 오랜 역사적 배경에서 바라보는 것은, 다른 접근에서는 가능하지 않은 하나의 독특한 관점을 제공할 것이다. 만일 우리가 의식에 대해 전적으로 생물학적인 개념을 가지며 그 기원이 포유류의 신경계에서 진화되었다고 생각하면, 최면 현상에 대한 논의를 조금도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의식이 문화적으로 학습된 사건이고 초기 심리 상태의 억압된 흔적이라는 것을 충분히 이해할 때 비로소, 의식의 일부가 문화적으로 해소학습 될 수 있으며 억압될 수 있다는 것을 볼 수 있게 된다. 유사 '나'와 같은 학습된 특성은 적절한 문화적 요구가 있으면 다른 주도자에게 그 능력이 이양될 수 있는데, 그 한 예가 최면이다. 다른 주도자가 유도나 환각 상태 같은 의식을 축소하는 다른 요소들과 연대하여 작업을 수행하는 이유는 어떤 면에서 주관적 의식 이전에 있던 정신 체계의 패러다임을 작동하기 위한 것이다.
- 당신 앞에 놓여 있는 책상 위에 두 손을 올려놓고 그중의 하나가 더 빨개지도록 해보라. 아마 그렇게 할 수 있겠지만 이 또한 최면 상태에서 훨씬 더 쉬울 것이다. 15분 동안 손을 들고 있으면서 불편해하지 않도록 해보라. 최면 상태에서는 쉽지만 의식 상태에서는 어렵다. 그렇다면 최면 상태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기에 보통 때는 어려운 일들을 이처럼 쉽게 할 수 있게 될까? 그것을 하는 게 '우리'일까?
- 종교적 환각에 집착하는 경향을 특히 잘 보여주는 것은 유명한 슈레버(Schreber)의 사례다. 그는 19세기 말 독일의 뛰어난 판사였다. 정신분열증을 앓을 때, 그는 자신의 환각에 극도로 문학적이고 회상적인 설명을 가했는데, 이것은 옛날 사람들의 그들의 신에 대한 관계와 유사하다. 그는 환각 상태에서 자기 집 벽이 갈라지는 소리를 듣고 불안에 휩싸이면서 병이 시작되었다. 어느 날 저녁 그 소리는 목소리로 변했는데, 그는 그 소리가 바로 신의 말씀인 줄 알게 되었고 그 목소리는 "그 후 끊임없이 나에게 이야기했다". 그 목소리는 "잠잘 때를 제외하고는 7년 동안이나 계속되었고 내가 다른 사람과 이야기할 때에도 멈추지 않고 계속되었다." 그는 광채를 보았는데 "그 빛은 지평선의 광활하고 먼 곳에서 내 머리를 향해 접근하는 오래된 전구의 필라멘트 같은, ... 또는 태양이나 다른 먼 별들에서 나에게 다가오는, 직선이 아니라 원이나 곡선 형태의 광채"였다. 이들은 신의 목소리를 전했고, 구체적인 신의 모습으로 변하기도 했다. 그의 병이 악화되면서, 양원 시대에 일어났을 것으로 추측되는 방식으로 신의 목소리가 상위의 신들과 하위의 신들로 서열을 이루며 조직되는 것은 흥미로운 일이다. 그러고 나서 그 목소리는 신에게서 광선을 타고 내려와서 '내 목을 졸라 궁극적으로 내 이성을 빼앗아가려고' 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들은 '영혼을 살해'하려 했고 조금씩 그의 '남성성을 없애고', 그의 자율성을 앗아갔으며 그의 유사 '나'를 사라지게 했다. 좀 더 의식적인 기간이었던 병의 말기에, 그는 이것을 자신의 신체가 여자로 변하는 망상으로 이야기를 꾸며나갔다. 프로이트는 이런 기록들에 대한 그의 유명한 분석에서, 이 특정 서술을 너무 강조한 나머지 병 전체를 그의 무의식에서 분출되는 동성애에 대한 억압의 결과라고 해석했다. 그러나 그런 해석은 그 병이 발병의 근원적인 병리였던 스트레스와 관련이 있을지 모르지만, 그 사례 전체를 설명하기에는 그리 설득력이 없다. 그런 정신병에서 오는 현상과 고대 신들의 조직 간에 어떤 연관성이 있다는 무모한 생각의 근거는 무엇인가? 슈레버가 경험했던 '작은 인간들'의 목소리 환영 (voice-visions)은 많은 고대 문명에서 발견되는 작은 형상들을 생각나게 한다. 그리고 그가 서서히 회복하면서 그의 신의 말의 속도가 점점 느려지고 구별할 수 없는 소리로 변해갔다는 사실은 정복당한 뒤의 잉카 우상들이 잉카인에게 어떻게 들렸는지 생각나게 한다.
- 이제는 누구나 아는 사실이 되어버린 이 과학의 세속화는 내가 앞서 넌지시 언급했던 프랑스 계몽주의에서 비롯되었다. 그렇지만 이 세속화가 거칠지만 진지하게 표출된 것은 1842년 독일의 탁월한 젊은 생리학자 네 명의 유명한 선언에서였다. 그들은 해적처럼 이 선언에 그들의 피로 서명했다. 헤겔식 관념론과 물질적 문제에 대한 그의 의사-종교적 해석에 식상하여, 이들은 상식적인 물리 화학적 힘 이외의 어떤 힘도 자신들의 과학적 탐구에서 고려하지 않기로 결심했다. 영적인 실체도 배제되었다. 신적 실체도 배제되었다. 활력(vital forces)이란 것도 배제되었다. 이 주장은 과학적 유물론으로 그 당시까지 가장 일관되고 분명한 선언이었다. 그리고 가장 영향력이 있었다.
- 내 친구인 콰인(W. V. Quine)은 내가 만든 피은유체-은유체의 구분이 라틴어와 그리스어의 혼합이기 때문에 강하게 반대한다. 그렇지만 나는 이 구분을 계속 사용하기로 했는데, 왜냐하면 이들이 피승수와 승수에 내포적으로 연합되기 때문이다. 그는 이 구분이 정신분석학에서 잠재-외현의 구분과 연관된다는 흥미로운 제안을 했다. 꿈은 비유인가? 프로이트가 무의식이라고 부른 것은 외현적 은유체에 따라 작용된 잠재적 피은유체인가?
- 이 기회를 이용하여, 이 책에서 몇몇 독자들을 혼란스럽게 한 조정이니 양립화(조화)니 하는 개념들에 대해 한 가지 언급해두어야 하겠다. 더 혼란스럽게 할 위험을 무릅쓰고 나는 그 단어를 부합(consilience)이라는 단어로 바꾸겠다. 휴얼(Whewell)이 사용한 이 표현이 내가 원래 의도했던 사물을 서로 조화롭게 하는 심적 과정을 더 잘 나타내 주기 때문이다. 이것은 깨어 있는 상태에서는 그리 분명하지 않지만 꿈에서는 아주 중요하게 된다. 나는 원래 이 책에 넣기 위해 꿈에 대해서 두 장을 썼지만 출판사 측에서 이 책이 너무 길어지니 그것은 수년 내에 나오기를 기대하며 다음 책에서 다루는 것이 좋겠다고 제안했다.
- 의식과 함께 시간의 공간화가 점차 중요성을 확보해가고 크로노스(chronos) 같은 공간화에 대한 새로운 단어도 생겼다. 그러나 이것은 공간화를 너무 가볍게 표현한 것이다. 의식과 여타의 인지가 상호작용하면서 새로운 능력을 창출하는 하나의 인지적 폭발이 일어났다. 양원적 인간은 모든 포유동물들이 그렇듯이 과거의 자신에 뒤따라 일어나는 현재의 모습에 대한 인지와 행동적 예상 능력과 감각적 재인 능력이 있었다. 이에 비해 의식적 인간은 공포, 기쁨, 희망, 야심 등이 존재할 수 있는 상상의 미래를 이미 실재하는 것처럼 들여다 '볼' 수 있으며, 또한 기회를 놓친 것을 아쉬워하거나 잘했던 일을 음미하면서 과거를 '볼' 수 있다. 이때 과거는 하나의 공간의 유체를 통해 나타나는데, 이것이 길게 드리워진 그림자를 따라 우리는 기억 또는 회상이라 부르는 하나의 새롭고 신비로운 여정 속으로 이동하게 된다. 습관 때문에 갖게 되는 기억(의미론적 기억(semantic memory))과 뚜렷하게 대조되는 회상적 기억(때로는 일화적 기억(episodic memory)이라고도 불림)이 의식과 함께 새롭게 등장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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