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 : 진병관
출판 : 빅피시
출간 : 2021.09.08
'책탑 부수기' 진행 중이다. 열심히 읽어도 그닥 줄어들지 않는 듯 해서 마음이 아프지만, 그래도 최선을 다해보기로 했다.
<기묘한 미술관>은 아마 <널 위한 문화예술>을 살 때 즈음 같이 샀던 것 같은데 이번에 손이 닿았다. 보다 넓은 영역에 걸친 상세한 설명이 흥미로웠는데, 마네의 <올랭피아>에서 잠시 당황스러운 상황이 생겼다.
의아한 점이 있는데 <올랭피아>는 1863년에 그려진 그림은 맞지만, 1865년 살롱전에 참가했다. 1863년 살롱전에서는 <풀밭 위의 점심식사 Déjeuner sur l’herbe>가 출품 거절을 당하고 낙선전에 전시된 것으로 알고 있다.
또한 내가 알기로 1865년 살롱의 그랑데 메다이유 도뇌르(La Grande Medaille d’Honneur)를 받은 작품은 쥘 루이 마샤르의 <지옥의 오르페우스>가 아니라 카바넬의 <나폴레옹 3세>일텐데... 1863년 살롱전에서 <비너스의 탄생>으로 이미 메달을 받았던 카바넬이 1865년에도 메달을 받는 것으로 알고 있다. <지옥의 오르페우스>는1865년 살롱전 prix de Rome 수상작인데 최고상이라고 표기되어 있는 점이 의아했다.
사실 예술 쪽으로 전혀 깊지 않지만 뭔가 묘하게 눈에 걸려서 확인하다보니 이렇게 되었다. <널 위한 문화예술>에서도 올랭피아 관련 챕터가 있었으나 해당 내용이 어떻게 실려있는지는 현재는 내 손에 책이 없어 확인이 어렵다.
다양한 작품과 작가들이 상세한 설명들과 함께 실려있어 책 자체는 만족스럽다.
재미있게 읽었다.
추가. 재판부터는 1865년 살롱으로 수정되어 있다는 출판사 측의 답변을 받았다. 내가 초판을 사두고 이제 읽어서 1863년으로 표기되었던 모양.
메달 수상작에 관해서는, 답변받은 바에 따르면 당시 살롱전은 신인 화가의 등용문이었으므로 그런 관점에서 로마상(Prix de Rome)을 수상한 쥘 루이 마샤르가 최고상을 받았다고 표기한 것이라고 한다. 카바넬이 최고명예메달을 받은 것은 맞지만 그는 이미 기성작가였으므로 살롱전의 취지를 고려할 때 진정한 최고상은 쥘 루이 마샤르였던 것으로.
빠르고 상세한 답변에 다시금 감사드리며, 후반부에 이어진 섬세한 해설들을 믿고 따라갈 수 있게 되어 기쁘다.
- 미술관은 총 다섯 개의 관으로 나뉘어 있다. 1관은 '취향의 방으로, 겉보기에는 아름답지만 작품이 탄생한 배경과 취향은 마냥 아름답지만은 않을 수 있는 다양한 작품들을 전시했다. 2관은 '지식의 방으로, 명화에 대한 역사적 배경이나 시대 상황, 알레고리 해석 등 알면 더 깊이 이해할 수 있는 그림들을 전시했다. 3관은 '아름다움의 방'으로, 누가 봐도 아름답다고 느끼는 작품들과 새로운 아름다움을 제시하는 작품들을 전시했다. 아름다운 것은 정말 아름다운가, 추한 것도 아름다울 수 있는가에 대한 질문의 답을 스스로 찾기 바란다. 4관은 '죽음의 방'으로 늘 죽음이 지근거리에 있었던 화가들에 대해 주로 다뤘다. 그리고 죽음이 삶과 어떻게 연결되어 있고, 작품으로 어떻게 승화될 수 있는지에 대해 이야기했다. 마지막 5관은 '비밀의 방으로, 아직도 작품에 대한 미스터리가 전부 해석되지 않아 더욱 흥미로운 작품들을 전시했다. 작품을 관람하며 자기만의 해석을 더할 수 있다면 이 미술관의 해설사로서 더 바랄 게 없을 것이다.
- 박물관을 뜻하는 영어 '뮤지엄(Museum)'은 알렉산드리아에 세워진 학술원 '무세이온(Mouseion)'에서 기원한 단어이다. 무세이온은 헬레니즘 시대 학문의 중심지 역할을 담당했으며, 기하학의 아버지 유클리드, 유레카를 외친 아르키메데스 등이 모두 이곳 출신이다.
- 중세 유럽은 교회가 지배했고 고대 그리스의 철학은 자취를 감춘 상태였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유럽 철학의 근본인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이 무슬림 국가에서 아랍어로 번역되어 연구가 이어진다. 이븐 루시드도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에 심취해 평생에 걸쳐 그의 철학을 쉽게 풀이하며 연구자로서 명성을 떨친다. 13세기에는 그의 저서가 아랍어에서 라틴어로 번역되어 유럽 전역에 알려진다. 이를 통해 서유럽 세계에서는 다시 한번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을 탐구하게 되었고, '아베로에스(이븐 루시드의 라틴어식 이름) 주의'라는 학파가 탄생한다. 이 학파는 이탈리아 파도바 대학에서 크게 융성하며 종교와 철학을 분리하기 위해 노력한다. 그리고 이들의 노력은 종교만이 답이었던 중세 시대를 벗어나 르네상스 시대로 건너가는 중요한 징검다리가 된다.
- 라파엘로는 교황 율리우스 2세의 주문에 따라 교황의 서재, 즉 서명의 방 벽면에 철학, 신학, 법, 예술을 주제로 그릴 프레스코화를 준비한다. 그중 철학을 주제로 완성한 작품이 바로 아테네 학당이다.
- 이 그림은 르네상스 미술의 전성기를 보여주듯 기하학적 문양의 아름다운 표현과 완벽한 원근법으로 보는 이를 압도한다. 그림 속 배경은 당시 새로 공사하고 있던 베드로 성당을 참고한 것으로 보인다. 철학을 상징하는 그림답게 건물의 입구 좌측에는 이성을 상징하는 태양신 아폴론, 우측에는 지혜를 상징하는 아테나의 조각상이 그려져 있다. 그리고 잘 짜인 원근법과 화가의 상상력으로 재탄생한 위대한 고대 철학자 54명이 등장한다. 라파엘로도 철학자들의 실제 얼굴을 알 수 없었기에 자신이 아는 당대 예술가들의 얼굴을 활용해 작업했다는 점이 재미있다. 대표적으로 그가 가장 존경하던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얼굴을 플라톤의 얼굴에 그려 넣는다.
- <제네바 호수의 일몰>은 사랑하는 이를 떠나보낸 슬픔이 느껴지기보다 환상적이고 아름다운 풍경이어서 오히려 이질적이다. 그는 호수 위로 해가 지는 모습을 바라보며 조화와 질서, 죽음과 영원을 느꼈고, 수평성을 통해 죽음과 완전히 자연으로 돌아가는 영원을 동시에 표현한다. 호들러는 사랑하는 이들의 죽음을 숱하게 목격하며 죽음을 능동적으로 받아들이기로 마음먹었고 그랬기에 오히려 평온한 그림을 그릴 수 있었다.
(리뷰자 주 : 해는 이미 졌다. 남은 것은 그저 여명일 뿐이다. 나에게는 이런 의미로 다가온다.)
- 해석이 불가능할 정도로 혼란스러운 이 그림에 대해 20세기 중반 독일 미술사학자 빌헬름 프렝거는 독특한 해석을 내놓는다. 이 작품이 아담파의 수장 야코프 판 알마에힌의 주문으로 그려진 것이며, 그와 화가의 관계를 밝혀야 작품을 완벽하게 해석할 수 있다는 것이다.
- 그림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접어야 볼 수 있는 제단화의 외부 패널에는 천지 창조 셋째 날의 모습이 그려져 있다. 신이 물을 모아 땅을 드러내던 날의 지구가 둥글게 자리했다. 아직 해와 달이 탄생하지 않았기에 회색빛을 이용해 그리는 그리자유 기법을 활용한 모습이다.
- 아직도 이따금 온전히 나만을 위해 멀고 구석진 자리의 작품을 보러 간다. 그리고 마치 작품이 내 것인 양 천천히 감상하고 안부를 전하며 위로를 받고는 한다. 미술관은 일을 하는 곳이기도 하지만 언제나 평온함과 감동을 주는 공간이기도 하다.
- 마르틴 루터의 종교 개혁으로 플랑드르(벨기에와 네덜란드) 지역에서는 큰 폭풍이 일어나고, 합스부르크 왕가의 개신교 탄압과 과중한 세금 정책으로 결국 1567년 네덜란드 독립 전쟁이 벌어진다. 갈등은 무려 80년간 계속되다 1648년 베스트팔렌 조약으로 종지부를 찍으며 북부 네덜란드가 독립을 쟁취한다. 그리고 독립 전쟁 기간 동안 종교 박해와 직업적 차별을 받던(가톨릭 국가에서는 대금업을 금지했다) 유대인과 신교도들이 암스테르담으로 몰려들어 새로운 경제 도시를 만든다. 이들은 1602년 세계 최초의 주식회사인 동인도 회사와 증권 거래소를 설립해 암스테르담을 새로운 무역과 금융의 중심지로 만들어낸다. 그리고 1614년에는 뉴암스테르담(현재 뉴욕)과 같은 해외 식민지도 건설된다. 네덜란드의 황금시대가 열린 것이다.
- 1865년 살롱전에서의 수모에도 그는 포기하지 않았고, 다음 해에는 <피리 부는 소년>을 출품하지만 역시나 낙선하고 만다. <피리 부는 소년>은 스페인 여행에서 만난 벨라스케스의 파블로 데 바야돌리드에서 크게 영감을 받아 그린 작품이다.
- 르누아르의 1878년 작 <조르주 샤르팡티에 부인과 자녀들>은 후원자인 조르주 샤르팡티에의 의뢰로 그린 그림이다. 후원자의 부인인 마르게리트가 온화한 미소를 띠며 당시 최고 디자이너 찰스 프레더릭 워스가 만든 드레스를 입고 느긋한 자세로 기대어 앉아 있다. 그녀 옆으로 아들 폴과 딸 조젯이 천진난만한 얼굴로 서로를 바라보고 있다. (두 딸처럼 보이지만 한 명은 아들이다. 당시 유럽에서는 병을 피하기 위해 남자아이가 어릴 때 머리를 기르게 하고 여자아이 옷을 입히는 풍습이 있었다.)
- 제2차 세계 대전 종전 후 네덜란드에서는 한 판메이헤런이라는 화가의 국가 반역죄 재판이 열린다. 전쟁 당시 나치의 이인자 괴링에게 국보급 페르메이르의 작품을 매각한 죄로 심판을 받은 것이다. 하지만 판메이헤런은 법정에서 자신이 페르메이르의 그림을 그려 위작을 판매했다고 실토한다. 전쟁 전 자신을 인정해주지 않은 비평가들의 명성에 해를 입히려고 페르메이르 작품을 연습해 속여왔으며, 괴링에게 판매한 작품도 자신도 그린 것이라고 증언한다. 실제로 그는 경찰의 감시하에 위작을 그려 국가를 배신한 혐의를 벗지만 우습게도 괴링에게 받은 돈도 위조지폐였다는 것이 밝혀진다.
- 아놀로 브론치노의 <비너스와 큐피드의 알레고리>는 마니에리스모 양식의 대표작으로 손꼽힌다. 마니에리스모는 르네상스 양식에서 바로크 양식으로 넘어가는 과도기에 유행한 양식으로, 이탈리아어 '마니에라(manièra)'에서 나온 말이다. 영어로는 우리에게 익숙한 매너리즘이다.
- 14세기로 접어들면서 유럽에서 가장 사치스러운 색의 자리는 푸른색이 물려받는다. 성직자와 신학자들이 빛의 색을 금색이 아닌 푸른색으로 보기 시작한 것이다. 더불어 성모 마리아에 대한 공경이 널리 퍼지면서 하늘에 계시는 마리아의 겉옷도 푸른색으로 채색하기 시작한다. 그런데 푸른색을 얻기 위해서는 청금석이라는 돌을 갈아 만든 울트라 마린이라는 안료가 필요했다. '바다 너머(울트라 마린)'라는 말처럼 청금석은 유럽에 없고 중앙아시아 아프가니스탄 지역에서 수입해 온 귀하디 귀한 재료였다.
- 치마부에는 어릴 적 양치기였던 조토가 바닥에 그림을 그리는 실력을 보고 제자로 삼는다. 어느 날 조토가 치마부에의 그림에 파리를 그려 넣었는데, 치마부에가 그것을 살아 있는 파리로 착각해 손을 저어 쫓으려 했다는 일화도 전해진다. 그들이 살았던 때는 아직 르네상스 시대가 꽃을 피우기 전으로, 십자군 전쟁으로 인해 서유럽과 동로마의 왕래가 빈번했다. 스승과 제자는 자연스럽게 이 비잔틴 거장들에게 많은 영향을 받았다. 치마부에의 그림에서는 비잔틴 미술의 특징인 자연스러움보다 성서에 나오는 이야기를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해 인물은 정형화되고 좌우대칭이 분명해 종이 인형을 그린 것 같은 인상을 받을 수 있다. 물론 치마부에도 이후 비잔틴 미술 형식을 벗어나기 위해 시험적 시도를 한 화가로 평가받는다.
- 18세기 절대 왕권의 군주 루이 14세가 세상을 떠난 후, 화려하지만 남성 중심적이고 무거웠던 바로크 양식이 점점 쇠퇴했다. 더불어 루이 14세의 기세에 눌려 지내던 행정, 사법계의 부르주아 계층이 예술의 주요 구매자가 되어 경쾌하면서도 우아하고 감각적인 양식을 선호한다. 이 양식을 '로코코 양식'이라 불렀는데, 퐁파두르는 유럽 복식사에 '퐁파두르 스타일'이라는 고유 명사를 남길 정도로 로코코 양식의 중심에 있었다.
- 퐁파두르 스타일은 초상화에 그려진 대로 넓고 네모나게 파인 네크라인, 크기가 다른 리본으로 짜인 스터머커(15~16세기에 유행한 앞가슴 장식으로, 보석이나 자수 따위로 화려하게 장식한다), 층층의 주름 장식과 꽃 장식, 팔찌와 머리 장식 등이 특징이다. 또 그녀는 장식 미술에도 관심이 많아 당시 수입에 의존하던 프랑스 도자기 분야를 발전시킨다. 루이 15세의 지지를 받아 도자기 공방을 뱅센에서 베르사유와 가까운 세브르로 옮긴 후 공방을 왕립 도자기 제작소로 격상시키고, 일명 밝은 분홍빛의 퐁파두르 장밋빛 색채에 꽃, 전원 풍경 등을 그려 넣는 화려한 도자기를 생산하게 한다. 지금까지 세브르 도자기가 유럽 도자 역사상 최고의 예술성을 지니게 된 것도 퐁파두르의 후원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일이다.
- 퐁파두르는 3,000권이 넘는 책을 소장한 다독가였고, 그녀의 초상화에 대부분 책이 등장할 정도의 애서가로 알려져 있다. 그리고 캉탱 드 라투르가 그린 초상화에는 그녀가 어떤 책을 아꼈는지 세밀하게 그려져 있다. 그림 속 퐁파두르는 막 악보를 넘기면서 자신이 음악에도 조예가 깊다는 것을 드러낸다. 그리고 탁자 위에는 그녀가 읽고 아낀 몽테스키외의 <법의 정신>, 볼테르의 <라 앙리아드>, 디드로와 달랑베르의 백과사전 한 권이 놓여 있다. 퐁파두르는 파리의 유명 살롱에서 몽테스키외, 볼테르 같은 사상가들을 알게 된다. 이 사상가들은 당시 불온사상으로 취급받던 계몽사상을 이끌던 이들이었지만 그녀는 개의치 않고 평생 그들과 교류하며 조언을 얻었고 그들의 열렬한 후원자가 된다. 그리고 그들이 주도적으로 참여한 백과사전 제작도 후원한다.
- 조금 더 앞으로 내려오면 자주색 옷을 입고 상념에 젖어 글을 적고 있는 인물이 있는데, 모든 것은 변화한다고 설파하고 불을 만물의 근원으로 생각한 헤라클레이토스다. 이 인물의 얼굴은 미켈란젤로의 얼굴로 알려져 있다. 헤라클레이토스는 독설가로 유명했고 괴팍한 성격 탓에 고독하게 살았다고 전해진다. 실제로 미켈란젤로도 주변과 마찰이 잦았고 라파엘로와도 불편한 관계였기에 어쩌면 라파엘로가 의도적으로 헤라클레이토스의 얼굴을 미켈란젤로로 선택하여 소심한 복수를 했다는 의심을 받기도 한다. 반면 미켈란젤로가 미완성 상태의 <천지 창조>를 공개하던 날, 감동한 라파엘로가 완성된 <아테네 학당>에 미켈란젤로의 얼굴을 급히 그려 넣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 그림 속의 뗏목은 '메두사호'라고 불린 배의 조각이다. 나폴레옹의 제1제정 시대가 무너진 후 왕정으로 복귀한 프랑스는 영국에서 세네갈을 돌려받았다. 그리고 프랑스 왕실은 1816년 세네갈을 재정비한다며 메두사호를 필두로 여러 척의 배로 원정대를 꾸렸다. 나폴레옹 통치 때부터 메두사호를 타던 선원들은 베테랑이었으나, 문제는 선장이었다. 프랑스혁명 시절 영국으로 피신한 귀족으로, 20년 넘게 항해하지 않았던 쇼마레가 선장으로 임명된 것이다.
- 그리스 신화에 아르카디아의 리카온 왕이 제우스를 모욕하기 위해 인육을 대접하려다 도리어 제우스의 저주로 늑대가 돼버렸다는 이야기도 전해지고, 서양 역사의 아버지라 불리는 헤로도토스는 슬라브 지역에 늑대로 변하는 종족이 있다는 기록을 남기는 등 보름달이 뜨는 밤 늑대가 우는 모습은 우리에게도 낯선 이야기가 아니다.
- "카나리아 제도에서 발견된 야만인 돈 피에트로는 프랑스의 앙리 2세 폐하에게 선물로 바쳐졌고, 폐하께서 파르마 공작에게 하사했다. 나 안토니에타는 파르마 공작이 계시는 곳에서 왔으며 존경하는 세비녜 후작 부인 이자벨라 팔라비치나(Isabella Pallavicina)의 거처와 아주 가까이 살고 있다."
- 초상화를 그린 라비니아 폰타나는 서양 미술사 최초의 여성 직업 화가로 평가받는다. 여성 직업 화가가 전혀 없던 시절 선구자 역할을 한 폰타나는 16세기 이탈리아에서 초상화가로 명성을 날렸지만 안토니에타의 초상화에서는 귀족의 화려함만 강조될 뿐 같은 여성이자 인간으로서의 동정심 같은 감정은 느껴지지 않는다. 아마 화가도 소녀를 귀족의 소유물 이상으로 보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 호들러의 초창기 작품은 사실주의 기법이 주를 이뤘지만, 37세에 파리에서 만난 고갱, 조르주 쇠라의 작품과 시인 루이 뒤쇼살의 영향으로 점차 불안과 죽음, 꿈과 무의식 등 인간 내면을 강조하고 풍경의 본질을 표현하는 상징주의로 옮겨 간다. 그리고 인물들을 일정한 간격을 두고 서로 대칭적으로 배열하는 자신만의 독창적인 표현 방식을 발전시킨다. 호들러는 이 양식을 '병렬주의(parallelism)'라 이름 붙였고, 병렬주의는 그의 작품에서 핵심이 된다. 이 상징주의로 넘어오는 시기의 병렬주의를 엿볼 수 있는 대표적 작품이 바로 밤이다.
- 디에고 벨라스케스의 <시녀들(Las Meninas)>은 17세기 스페인 바로크 미술의 대표작으로 꼽힌다. 'Las Meninas'는 '명예로운 시녀들'이란 뜻이지만 흔히 <시녀들>이라고 불린다. 이 그림은 벨라스케스의 1656년 작품으로 마드리드 알카사르 궁과 왕의 개인 집무실에 소장된 이후 1843년 프라도 미술관에 옮겨지며 세상에 알려졌다
- 공주의 아버지 펠리페 4세는 700년 유럽 역사를 호령한 합스부르크 가문의 스페인계 4번째 왕이다 (합스부르크 가문은 크게 오스트리아계와 스페인계로 나뉜다).
- 처음부터 이 그림의 제목이 <시녀들>은 아니었다. 1666년 왕실 소장 목록에는 <시녀들 및 여자 난쟁이와 함께 있는 마르가리타 공주의 초상화>라고 적혀 있다. 그러나 17세기 말의 일부 문서에는 <벨라스케스의 초상화>라고 기록되어 있고, 다른 문서에는 펠리페 4세의 가족이라고 적혀 있다. 그리고 1843년 프라도 미술관에서 <시녀들>이라고 정하면서 지금의 제목이 되었다.
- 국왕 부부를 비친 거울 위에 커다란 액자가 좌우로 두 점 걸려 있다. 왼편의 작품은 <아테나와 아라크네>이고, 오른편의 작품은 <마르시아스와 아폴론의 시합>이다. 왼편 그림은 루벤스의 그림이고, 오른편 그림은 벨라스케스의 사위이자 보조 화가인 후안 델 마조가 야코프 요르단스의 그림을 모사한 것이다. <아테나와 아라크네>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이야기로, 베 짜기의 명수 아라크네는 자신의 실력이 아테네보다 훌륭하다고 자만하며 도전했다가 거미가 된다. <마르시아스와 아폴론의 시합> 또한 피리를 잘 불던 마르시아스가 아폴론에게 연주 대결을 신청했다가 패배한 후 나무에 거꾸로 매달려 산 채로 가죽이 벗겨진 이야기다. 휴브리스(그리스 비극에서 과거의 성공을 바탕으로 지나친 자신감에 빠져 오만한 태도를 보이다가 신과 갈등을 벌이고 그로 인해 파멸에 이르는 주인공이나 영웅의 특성)에 대한 교훈적 이야기를 담은 대표적인 그림들이다.
- 루벤스는 1631년 마드리드를 방문했을 때 펠리페 4세에게 기사 작위를 받았다. 당시 화가는 음악가나 시인보다 못한 취급을 받았기 때문에 화가로서 기사 작위를 받은 것은 굉장히 영광스러운 일이다.
- 벨라스케스는 귀족이 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한 화가다. 그림에서 그가 입고 있는 옷에 그려진 십자가는 유럽의 순수 혈통 귀족만 가입할 수 있는 산티아고 기사단의 십자가다. 하지만 이 그림을 그릴 당시 벨라스케스는 기사 작위를 받지 못했다. 그림을 완성하고 3년 뒤 그가 죽기 직전에 교황의 특별 허가를 받아 기사단 제복을 입을 수 있었다. 그러니 그림 속의 십자가는 그가 죽은 후 덧그려진 것으로 추정된다. 혹자는 그림의 십자가를 펠리페 4세가 그렸다고도 하지만 알 수 없는 일이다.
- 1세기경 로마에서는 회화의 탄생을 부타데스(Butades) 신화에서 찾았다. 코린토스 지역의 도자기공 부타데스에게는 디부타데스라는 딸이 있었다. 디부타데스는 이웃 청년을 사랑했지만 청년이 전쟁터로 떠나게 되자 등불을 들고 찾아가 잠든 청년의 그림자를 따라 벽면에 그림을 그려놓는다. 이후 아버지 부타데스가 그 벽의 그림을 보고 흙으로 형상을 빚었다고 전해진다. 유럽에서는 이 이야기가 회화와 조소 혹은 통틀어 예술의 기원으로 전해졌다. 예술의 탄생에는 사랑이 있었으며, 대상과 주인공이 존재했다.
- 아담파는 아담이 타락하기 전의 낙원 생활을 실천하던 비밀 단체로 모두 옷을 입지 않고 생활하면서 집단 성행위를 했다고 전해진다. 이 주장에 따르면 그림 곳곳에 자리한 분홍빛 조형물들은 성기를 표현한 것이며, 그림 속 사람들은 성적 흥분을 일으키는 과일에 취해 구애와 집단 성행위를 하고 있다. 아울러 그림의 오른편 중앙 부분에서 남성들이 나무에서 과일을 따는 행위는 플랑드르 언어로 성교를 의미한다.
- 오른쪽 하단에는 엉켜 있는 두 사람의 머리에 올빼미가 앉아 있는데, 올빼미는 고대에는 지혜의 상징이었으나 중세에는 악과 죽음의 이미지로 표현됐다. 즉, 쾌락을 지나치게 즐기는 인간 위로 죽음이 드리웠다는 상징이다.
- 1533년에 그려진 초상화에 두 남자가 서 있다. 무표정하지만 굳게 다문 입과 정면을 바라보는 시선에서 자신감이 넘쳐 보인다. 잘 차려입은 옷을 보면 이들이 당시 높은 계급의 인물이었다는 것을 대번에 알 수 있다. 작품의 제목은 대사들이다. 왼쪽 남성은 장 드댕트빌로, 스물아홉의 야심 찬 프랑스 외교관이고, 오른쪽은 조르주 드셀브로, 스물다섯의 성직자다. 둘은 프랑스 국왕 프랑수아 1세의 특명을 받고 영국으로 파견된 특사다. 당시 영국의 왕은 헨리 8세로 평생 여섯 번 결혼과 이혼을 할 만큼 여성 편력이 심했다. 그는 첫 부인과의 이혼 선언이 교황청에서 받아들여지지 않자 아예 수장령, 즉 교황이 아닌 자신이 영국 교회를 통치한다고 선언하며 교황청에 등을 돌린다. 이때 교황청과 영국 왕실의 결별을 막으려 프랑스에서 급파되어 온 대사가 바로 그림 속 인물들이다.
- 두 대사는 가운데에 두 단짜리 탁자를 두고 서 있고, 탁자에는 다양한 소품이 놓여 있다. 상단에는 별자리가 표시된 천구의, 해시계, 망원경 이전의 천체 관측 기구인 사분의, 다면 해시계, 천문 도구인 토르카툼(torquatum)이 있다. 하단에는 지구본, 삼각자가 끼워진 책, 컴퍼스, 현악기 류트, 악보, 피리가 있다. 외교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파견된 대사들이 가져왔다기에는 좀 어색한 소품들로, 아마 의도적으로 그림을 위해 배치한 것으로 보인다. 이것이 대사들의 요구였는지 홀바인의 생각이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림을 보는 입장에서는 일단 가로, 세로 2m가 넘는 크기에 놀라고, 세밀하게 그려진 소품들을 보며 그림 속 인물들이 신문물에 관심이 많고 탐구적이며 예술을 아는 상당한 지식인이라고 감탄했을 것이다.
- 탁자 위 천구의에 'GALACIA'라고 적힌 별자리가 눈에 띈다. 원래는 백조자리여야 할 곳을 닭 모양으로 바꿔 그려 프랑스인들의 선조 '갈리아의 땅'을 표현했다. 즉, 그림 속 인물들이 프랑스에서 왔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천구의의 위도가 41°에서 42°사이로 표시되어 교황이 있는 로마의 위도 41.8°에서 바라본 하늘을 나타낸다. 이 대사들이 로마 가톨릭의 입장에서 종교 갈등을 중재하러 온 대표라는 뜻이다. 옆에 놓인 원통 모양의 해시계에는 실내에 있음에도 그림자를 그려 넣어 4월 혹은 8월이라는 시기를 유추하도록 했다. 그런데 8월보다는 4월이라는 주장이 더 많다. 1533년 4월 11일에 헨리 8세가 두 번째 부인과의 결혼을 의회에 공표했고, 그림 속 드댕트빌과 드셀브는 이 혼란스러운 갈등을 중재하러 온 인물들이기 때문이다. 교황이 있는 로마의 위도 41.8°를 그려 넣어 대사들이 로마 가톨릭의 입장에서 종교 갈등을 중재하러 온 대표임을 의미한다.
- 서양 미술에서 두개골은 일반적으로 "죽음을 기억하라(mementomori)"라는 의미로 해석되고, 두개골이 그려진 그림을 바니타스화라고 한다. 즉, 인간이라는 존재는 누구나 죽음을 피할 수 없으니 헛되게 살지 말라는 뜻이다.
- 15세기 유럽에서는 세바스티아누스 성인의 인기가 높았다. 당시 유럽인들은 악마가 쏜 화살에 맞으면 전염병에 걸린다고 생각했는데, 세바스티아누스 성인은 화살에 맞고도 살아났으니 얼마나 신성한 존재로 여겨졌을지 짐작할 수 있다. 여기에 더욱 확신을 준 이야기가 다시 <황금 전설>에 기록돼 있다. 굼베르트(Gumbert) 왕 시절 이탈리아 전 지역에서 사람들이 흑사병으로 고통받고 있었다. 그러던 중 파비아에 세바스티아누스 성인을 기리는 제단이 세워지기 전에는 역병이 절대 수그러들지 않으리라는 계시가 나타났고, 체인스에 있는 성 베드로 교회에 그를 위한 제단을 세우자 역병이 즉시 사라졌다고 한다. 당시 유럽인들은 이 이야기를 듣고 가족과 친구가 전염병에 걸리지 않게 해 달라고, 혹시 병에 걸려도 목숨만은 구할 수 있게 해달라고 세바스티아누스 성인의 조각이나 그림을 가까이 두고 기도했다.
- 안드레아 만테냐는 이탈리아 북부 최고의 대학 도시 파도바에서 활동한 화가다. 11세가 되기 전 스승 스콰르초네에게 교육받기 시작해 뛰어난 재능을 인정받아 17세의 이른 나이에 독립한다. 그는 스승의 가르침에 더해 파도바 최고의 조각가 도나텔로의 영향을 받아 자신의 그림에 조각적 특징을 많이 차용한다. 그의 명성은 나날이 높아져 만토바 공국의 궁정 화가로 임명돼 능력을 마음껏 발휘할 기회를 얻었고, 북이탈리아 르네상스 미술 발전에 크게 공헌한다. 특히 독일 르네상스의 아버지라 불리는 뒤러가 만테냐의 동판화 기법을 차용하는 등 많은 영향을 받은 것으로 유명하다.
- 신의 관점이 아닌 자신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며 그림을 그리게 된다. 만테냐는 70세가 넘어 생의 마지막까지 작업을 이어갔고, 1506년 만토바 공국의 교회에서 영원히 잠든다. 16세기에 교회에 무덤을 가지는 영예를 얻은 화가는 만테냐가 유일했다. 그가 만토바와 후대 사람들에게 얼마나 존경받았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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