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자가 흐르는 이야기/Book1

[카먼 마리아 마차도] 그녀의 몸과 타인들의 파티

일루젼 2022. 1. 26. 1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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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카먼 마리아 마차도 / 엄일녀

원제 : Her Body and Other Parties
출판 : 문학동네 
출간 : 2021.05.06 


 

나의 것이 더는 내 것이 아니게 되는 순간.

나의 감각과 진실이 인정받지 못하는 순간.  

그리하여 결국은 내가 나로 존재하는 것을 용납받지 못하는 순간. 

 

<그녀의 몸과 타인들의 파티>는 소설로 분류되어 있지만, 과연 이 책을 소설이라 불러도 좋을지- 나는 잘 모르겠다. 때로 불편함을 느끼게 될 정도의 직설적인 표현과 문장들, 그것을 극복하고 빠져들게 만드는 호흡과 유머, 그리고 스며드는 서릿함. 성별을 짐작키 어려운 지칭어를 따라가다보면 '결국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라는 의문 앞으로 독자를 데려간다.

 

화려하고, 선명하고, 처연하고. 

환상적이다. 

 

셜리 잭슨의 <제비뽑기>나 안젤라 카터의 <피로 물든 방>도 떠오르지만, 마차도의 글에서는 보다 적나라한 현실적 불편함이 느껴진다. 

 

섬세와 둔감 사이에서, 불편을 감각하는 능력은 자신의 세계를 확장하기 위한 필수적인 동력이다. 자신의 경계를 무너트리고 재생산할 수 있는 원동력이다. 즉 불편이란 자신의 안으로 받아들일 것과 거부할 것을 확인하는 순간의 감각이다. 감지하지 못하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런 점에서 볼 수 없는 것을 느껴지게 만드는 마차도의 글은 정말 놀라웠다. 

 

즐겁게 읽었다.

 


   

- 아버지가 계속했어요. 

"만에 하나 어디선가 발가락을 구했다쳐도, 그걸 감자 사이에 놓고 팔아서 그분에게 무슨 이득이 있겠어?"
분명 거기엔 발가락들이 있었어요. 내 두 눈으로 똑똑히 봤는걸요. 하지만 나의 의혹은 아버지의 논리라는 햇볕 아래 바짝 말라버린 느낌이었습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아버지는 득의만만하게 마지막 논거를 펼쳤습니다.

"어째서 그 발가락들을 본 사람이 너 말고 아무도 없을까?"
내가 성인 여성이었다면 이 세상에는 오직 한 쌍의 눈에만 보이는 진실된 것들이 있다고 대꾸했을 거예요. 하지만 어린애였던 나는 아버지의 설명에 승복했고, 아버지가 나를 의자에서 안아 들어 키스한 다음 마음대로 놀라고 내려주자 좋다고 깔깔거렸던 거죠.  

 

- 여자애는 틀리지 않았지만 그건 더 이상 중요치 않았죠. 나중에 다들 그 여자애가 실은 죽고 싶었던 거라고 생각했어요. 살고 싶어 했음을 증명하며 죽었는데도 말이죠. 결국, 자신이 옳다는 것이 세 번째이자 최악의 실수였습니다. 

 

- 이 이야기의 교훈을 굳이 말로 할 필요는 없겠죠. 이미 알고들 계실 테니. 

 

- 그녀의 눈길에 나는 못박힌 듯 얼어붙고, 이렇게 가까이 있으니 그녀의 동공을 둘러싼 황금색 띠가 보입니다. 마치 쌍둥이 일식을 보는 것 같아요.  

 

- "엄마!" 아들이 말해요. "엄마는 뭐야?"

나는 핼러윈 복장을 갖춰 입지 않아서, 애한테 나는 네 엄마라고 말해줍니다. 아이의 조그만 입에서 파이프가 바닥으로 떨어지고, 아이가 자지러지게 비명을 지르는 통에 나는 옴짝달싹 못합니다. 남편이 후다닥 달려와 아이를 안아 들고, 아이의 울음 사이로 나지막이 아이의 이름을 계속 부르며 말을 겁니다. 아이의 숨소리가 정상으로 돌아오고 나서야 나는 내가 저지른 실수를 알아차려요. 아이는 아직 심술궂은 자매에 관한 이야기를 알아들을 만한 나이가 아니거든요. 장난감 북이 갖고 싶었던 그 자매는 제 어머니를 사악하게 괴롭혀 결국 집을 나가게 만들죠. 그리고 새어머니가 왔는데, 눈이 유리알이고 요동치는 나무 꼬리가 달린 여자였어요. 아들은 이런 이야기와 거기 담긴 진실을 알기엔 너무 어린데 내가 무심코 얘기를 해버렸던 거예요. 모두가 가면을 쓰고 다니는 핼러윈 날 하루만 빼고, 평소의 자기 엄마는 진짜 엄마가 아니라는 것을 핼러윈 날에 알게 된 꼬마 얘기를요. 후회가 목구멍 속에서 뜨겁게 북받칩니다. 나는 아이를 안고 키스하려 하지만 아이는 그저 길거리로 나가고만 싶어 해요.   

 

- 아들이 사탕을 아작아작 깨물고 깔깔 웃으며 집으로 돌아왔는데, 입은 이미 자두색으로 물들어 있어요. 나는 남편에게 화가 나요. 집에 들어온 다음에 전리품을 먹어도 된다고 허락했으면 좋았을걸, 그런 이야기들을 듣지도 못했나? 초콜릿 속에 밀어 넣은 바늘이라든가, 사과 속에 찔러 박은 면도날이라든가? 남편은 이 세상에 두려워해야 하는 것이 있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듯하고, 나는 분노가 치밀어요. 아들의 입을 살펴보지만 입천장에 날카로운 금속이 박힌 것 같지는 않습니다. 아이는 단 과자와 흥분에 아찔할 정도로 들떠서 온 집안을 뱅글뱅글 돌며 깔깔거리는군요. 아까 전 사건은 다 잊어버리고 두 팔로 내 다리를 감싸 안고 매달립니다. 용서는 어느 집 문 앞에서 내어주는 그 어떤 사탕보다 달콤하죠. 아들이 내 무릎 위로 기어올라오자 나는 아이가 잠들 때까지 자장가를 불러줍니다.  

 

- 세인트 로레나 히콕과 세인트 엘리너 루스벨트, 이들은 여름에 사파이어 반지*를 상징하는 블루베리로 기린다. 세인트 줄리엣의 철야 기도는 민트와 다크 초콜릿으로 완성된다. 시인들의 축일 기간에는 양상추 화단에 서서 메리 올리버를 낭송하고, 비니거와 오일을 먹으며 케이 라이언을, 오이를 먹으며 오드리 로드를, 당근을 먹으며 엘리자베스 비숍을 암송한다. 퍼트리샤 하이스미스 현양일에는 버터와 마늘과 클리프행어를 넣고 끓인 에스카르고로 찬양하고 가을 화톳불 옆에서 낭독한다. 프리다 칼로 승천일에는 자화상과 코스튬으로 기리고, 겨울 휴일인 셜리 잭슨 봉헌일은 새벽녘에 시작해 황혼녘에 돌멩이와 빠진 젖니로 하는 도박 게임으로 마무리한다. 돌멩이와 젖니로 보는 나름의 점괘가 있다. 소박한 우리 종교의 메이저 아르카나와 마이너 아르카나. 

(역자 주 : *AP통신 기자 로레나 히콕은 영부인 시절의 엘리너 루스벨트와 연인 사이였으며, 엘리너는 로레나가 선물한 사파이어 반지를 착용하고 다녔다.) 

 

- 조롱: 벤슨은 한 달에 두 번 장을 보러 간다. 퀸스에 있는 슈퍼마켓까지 차를 몰고 가서 삼백 달러어치 식재료를 사서 쟁인다. 그러면 냉장고가 에덴동산처럼 보일 것이다. 벤슨은 간이식당에서 사 온 스티로폼 그릇에 든 쫄깃한 프렌치토스트를 먹느라 그것에 손대지 않을 것이다. 식재료들은, 예상대로, 썩을 것이다. 냉장고는 코를 감싸 쥔 정도로 악취가 진동할 것이다. 그러면 벤슨은 그것을 모아 쓰레기봉투에 담아서 다음 장 보러 가기 전에 역 근처 공공 쓰레기통에 던질 것이다.  

 

- "굴은 온갖 건강한 것들의 총합이야. 바닷물과 살과 껍데기, 아무 생각 없는 단백질이지. 고통을 느끼지도 않고, 검증 가능한 생각도 없어. 칼로리도 아주 낮아. 사치가 되지 않는 사치랄까. 하나 먹어볼래?"

 

- 입주라니, 희한한 용어다. 처음엔 언뜻 자연스러워 보이지만 뒤집어보면, 땅에 박힌 돌처럼, 삶이 득실거린다. 입주민은 어디엔가 산다. 당신은 어느 도시의 입주민이거나 어느 집의 입주민이다. 여기서, 당신은 이 공간의 입주민이다. 그건 맞는데, 아무렴 진짜는 아니다. 당신은 방문객이다. 그러나 방문객은 저녁 끝물에 이곳을 떠나 어둠 속으로 차를 몰고 사라지는 반면, 입주민이라 함은 전기 주전자를 설치하고 당분간 머문다는 것을 뜻한다. 또한 당신은 스스로의 생각에 머무는 입주민이다. 당신은 자신의 생각을 발견하고 인지해야 하지만, 일단 생각의 정확한 위치를 알고 나면 차를 몰고 떠나야 할 일 따위는 결코 없다.  

 

- 그러나 식민지 개척자라는 단어는 내 옆에 털썩 앉아서 이를 드러낸다. 우리가 뭘 식민지화하고 있었단 말인가? 서로의 공간을? 대자연을? 우리 자신의 생각을? 이 마지막 물음에, 비록 자기 자신의 생각 안에 머무는 입주민이 될 수도 있다는 나의 착안과 아주 다르지는 않음에도, 마음이 몹시 불편해지고 말았다. 입주자는 두뇌 앞에 출입구가 있음을 시사한다. 그 입구는 자기 성찰이 가능하게끔 열려 있으며, 안에 들어가면 우리는 이전에 까맣게 잊고 있던 대상들을 마주하게 된다. "아 그거 생각나!"라면서 작은 나무 개구리나 눈 코 입 없는 헐렁한 헝겊 인형, 또는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감각의 인상들 -갓 한 귀퉁이가 사라지고 없는 독버섯, 흩날리는 쨍한 색채의 가을 낙엽, 밀크 위드와 춤추는 여름 바람- 이 물밀듯 밀려드는 그림책을 집어 들게 되는 것이다. 반면 식민지 개척자는 생각의 출입구를 발로 쾅 걷어차고 들어갔더니 괴상한 가족이 저녁을 먹고 있더라는 식의 소름 끼치는 어감이었다. 이제 나는 작업을 할 때 나 자신의 내면의 입구에서 어색하게 서성이게 되었다. 정말로 나는 천연두가 묻은 담요를 들고 거짓을 일삼는 침략자에 불과한가? 저 안에 어떤 비밀과 수수께끼가 묻혀 있을까? 

- "미안하다." 나는 속삭였다. "넌 이것보다 더 나은 대접을 받았어야 하는데."

 

- 이성과 상식의 영역에서는 이유 없이 이치에 맞는 것(자연 질서) 또는 어떤 이유에선가 이치에 맞지 않는 것(정밀하게 설계된 기만)은 논리적으로 보이지만, 이유 없이 이치에 맞지 않는 것은 변태로 보인다. 본인의 생각을 식민지화했는데 안에 들어가 보니 가구가 천장에 붙어 있다면? 안에 들어가 가구를 만졌더니 죄다 마분지로 오려낸 것이어서 손대자마자 그 압력에 폭삭 무너진다면? 안에 들어갔더니 가구가 하나도 없다면? 안에 들어갔더니 당신밖에 없고, 홀로 의자에 앉아 무릎에 놓인 바구니 안의 달걀과 무화과를 굴리며 콧노래를 흥얼거린다면? 안에 들어갔는데 아무것도 없고, 출입구가 닫히더니 열리지 않는다면? 
어느 쪽이 더 끔찍할까. 본인의 마음에 빗장이 걸려 들어가지 못하고 밖에서 서성이는 것, 아니면 그 안에 갇히는 것?
어느 쪽이 더 끔찍할까. 비유를 쓰는 것, 아니면 비유가 되는 것? 하나 이상의 비유가 되는 것? 

 

- 너무 예민하고 너무 허약하고 완전 미쳤어. 아니면, 여러분이 좀 더 옹졸하다면 나를 클리셰로 여기고 있을 것이다. 고딕 소설에서 뛰쳐나온 듯한, 어이없는 사춘기 트라우마를 지니고 벌벌 떠는 박약한 것.

 

- 그러나 독자들이여, 한번 물어보자. 지금껏 여러분이 배심원 심의를 해오면서, 자기 자신을 진실로 마주한 사람을 한 번이라도 마주친 적이 있는가? 몇 명쯤은 있겠지만, 장담하는데, 많지는 않을 것이다. 살아오면서 수많은 사람을 알고 지냈지만, 전보다 더 건강히 다시 자라도록 스스로 나뭇가지를 일찌감치 솎아낸 사람은 매우 드물었다. 숲 속에서의 밤은 선물이었다고, 나는 한 점 거짓 없이 말할 수 있다. 많은 사람들은 단 한 번도 어둠 속에서 제 자신을 마주하는 일 없이 살다가 죽는다. 언젠가 어느 날, 여러분이 호숫가를 빙 돌다가, 물 위로 허리를 굽히고는, 스스로를 운 좋은 사람으로 여길 수 있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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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만약 이 이야기를 소리 내어 읽고 있다면, 듣는 이에게 과일칼을 주고 당신의 엄지와 검지 사이의 연약한 살갗을 칼로 그어달라고 부탁한다. 그러고 나서 그 사람에게 감사한다.) 

 

- 이 이야기의 결말은 여러 가지예요. 그중 하나는, 대차고 끈질기며 확신에 찬 딸이 근처에 방을 빌려 그 호텔을 감시하면서 호텔 세탁실에서 일하는 청년을 꼬드겨 결국 진실을 알아내는 것입니다. 어머니는 전염성과 치사율이 매우 높은 병에 걸렸고, 의사가 딸을 택시에 태워 보낸 직후에 세상을 떠났어요. 공포가 전도시로 퍼지는 것을 막기 위해 호텔 직원은 어머니의 시신을 얼른 방에서 치운 다음 매장했고, 방안의 페인트를 다시 칠하고 가구도 새로 들였으며 관련자 전원에게 뇌물을 먹여 모녀를 봤다는 사실을 부인하게끔 손을 썼던 거였죠.  

- 이 이야기의 다른 버전에서 딸은 몇 년째 파리의 길거리를 헤매며 자신이 미쳤다고 생각합니다. 어머니도, 어머니와 함께 살던 자신의 삶도 병든 정신이 멋대로 지어낸 것이라고 믿게 되죠. 딸은 혼란과 비탄에 빠진 채 이 호텔 저 호텔을 전전하지만 누구 때문에 그러는지 설명할 수 없어요. 호화로운 로비에서 연신 내쫓길 때마다 딸은 이유 모를 상실감에 흐느껴 웁니다. 어머니는 이미 죽었지만 딸은 그 사실을 모르죠. 딸 자신도 죽은 후에나, 천국이 있다는 가정하에 알게 되겠지요. 

 

- 늙은 아내는 남편이 덮고 있는 이불을 훌렁 들추었어요. "이자가 가져갔어요!" 아내는 의기양양하게 선언했지요.
그때 아내는 죽은 여자의 얼굴을 보았고, 자기 자신의 입과 눈매를 알아보았습니다. 아내는 자신의 복부를 내려다보았고, 그제야, 자신이 어떻게 스스로의 배를 갈랐는지 기억났어요. 아내는 침대에서 피를 콸콸 쏟았고, 죽어가며 무언가를 연신 중얼거렸는데, 그게 무엇인지는 여러분이나 나나 절대 알 수 없겠죠. 아내 옆에서, 매트리스 한가운데가 피바다로 젖어들어가는 가운데, 남편은 쿨쿨 잘만 잤습니다.
이것이 여러분에게 익숙한 버전의 이야기는 아닐지도 모르겠네요. 하지만 장담하는데, 이게 여러분이 알아야 하는 이야기예요. 

 

- 리본이 풀려 떨어져요. 리본은 하늘거리며 침대 위에 동그마하게 내려앉아요. 아니, 그럴 거라고 상상하는 거예요. 왜냐하면 나는 고개를 숙여 리본이 내려앉는 것을 보지 못하거든요. 남편의 얼굴이 일그러지고, 이어서 뭔가 다른 표정, 비탄, 아니 어쩌면 지레 가슴 저린 상실감이 더해집니다. 내 팔이 가슴 앞으로 떠오르고 -저도 모르게 균형을 잡으려는, 부질없는 몸짓이죠- 그 너머로 남편의 모습이 사라져요... 
"사랑해," 나는 그이에게 분명히 일러둡니다. "당신이 알 수 있는 것보다 훨씬 더."
"안 돼." 하고 남편이 말하지만, 그게 무엇에 대한 대답인지 나는 알지 못합니다.
만약 이 이야기를 소리 내어 읽고 있다면, 여러분은 내 리본이 보호하고 있던 자리가 뻥 뚫려서 피로 흥건한지, 아니면 인형의 가랑이처럼 중성적으로 매끈한지 궁금하겠지요. 미안하지만 그건 말해줄 수 없겠네요. 나도 모르니까. 그 질문과 또 다른 질문들에 대한 답변이 부족한 것을 미안하게 생각합니다. 나의 무게가 변하고, 그와 동시에, 중력이 나를 붙드네요, 남편의 얼굴이 멀어지면서 곧이어 천장이 보이고, 내 뒤의 벽면이 보입니다. 잘린 내 머리가 고개 뒤로 넘어가 침대 밑으로 굴러 떨어질 때, 나는 그 어느 때보다 외롭군요.   

 

- 하나도 남김없이 흡수했고, 욕망이 나를 관통했다. 그곳에서 우리가 허물어질 때 나는 온 존재가 헐겁게 풀린 기분이었고, 정신이 왼쪽 귀 근처 어딘가로 철수한 것 같았다. 배드는 자신이 살던 옛 동네를 내게 보여주었다. 나는 약에 취해 아이처럼 그녀 손에 끌려다녔고, 어쩌다 보니 브루클린 미술관이었는데, 도무지 끝이 없을 것만 같은 기나긴 식탁 위에 태초의 여신과 버지니아 울프에게 바치는 도발적인 꽃을 피운 접시들*이 놓여 있었다. 우리는 리틀 러시아에 있었고, 그다음에 드러그스토어였고, 그다음엔 해변이었고, 느껴지는 거라곤 배드의 손과, 내 발을 감싸는 따뜻한 모래뿐이었다.   

(역자 주 : *주디 시카고의 페미니즘 설치 작품 <디너파티>를 말한다.)

 

- 내가 일하는 가게 '글램'은 관 속에 누워 쳐다보면 이런 느낌이겠다는 생각이 종종 드는 곳이다. 쇼핑몰의 동관을 걷다 보면 아기 사진 스튜디오와 하얀 벽의 부티크 사이로, 우리 가게 입구가 블랙홀처럼 꺼진다. 색채의 결핍은 드레스를 돋보이게 하기 위해서다. 그것은 우리의 고객을 존재론적 위기감에 빠뜨린 다음, 구매로 이어지도록 겁박한다. 기지가 내게 알려준 바에 따르면 그렇다는 얘기다. 검정은, 기지의 말이다. "우리의 삶이 유한하고 젊음은 순식간이라는 사실을 상기시키지. 게다가 컴컴한 빈 공간만큼 핑크색 태피터 드레스를 돋보이게 하는 건 없어."  

 

- "아, 완벽한 타이밍이네요." 애닐이 말했다. "빛이." 나는 사진가는 아니었지만 시각적 관찰은 한 번도 내 전문이 아니었다. 나는 서사 충동과 시점 문제와 이론만을 전문으로 다뤘다. 더 이상의 설명은 필요치 않았다. 해가 낮게 떠 있었고, 내 피부를 포함해 모든 것이 벌꿀색 빛의 세례를 받았다. 나무 뒤로 임박한 폭풍이 하늘을 검게 물들였다. 만약 폭풍을 향해 차를 몰고 간다면, 사이드미러의 사진은 과거의 빛과 미래의 어둠을 드러낼 것이다. 

 

- 복도는 그림자 속에 잠겨 있었다. 달빛이 창문을 비스듬히 지나 나무 패널을 댄 벽면에 세 개의 은빛 막대를 내질렀다. 

 

- 내 몸은 디에고와 마찬가지로 구겨졌고, 의자에 얌전히 앉아 있다가 총알에 심장을 관통당한 것 같았다. 당시 붙였던 밴드 중 몇 개가 보였다. 시트가 흘러내려 젖가슴이 드러났고 -이건 전혀 기억나지 않았다- 눈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아니 더 끔찍하게도 무無가 있었다. 존재의 결여가 아니라 허무의 실재였다. 나 자신의 죽음에 대한 예감 또는 오래전에 잊었던 섬뜩한 기억을 보고 있는 기분이었다. 다른 사진들처럼 구도는 아름다웠다. 색은 더할 나위 없이 강렬했다.  

 

- 나는 애닐에게 뭐라고 말을 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당신이 나의 신뢰를 배반했음을 똑똑히 알고 있지 않느냐고? 우리의 아름다웠던 오후가 엉망이 되었다고? 나는 의도치 않게 신체를 노출하고 말았는데, 당신이 한 일은 아니지만 그 노출에 당신이 죄책감을 느껴야 하지 않느냐고? 애닐을 쳐다볼 수가 없었다. 나는 리디아의 작업실로 향하는 사람들 뒤를 따라갔고, 거기서 리디아는 무언가를 연주했다. 짜증 나게 멋진 곡이었다. 여러 악장으로 이루어져 있고, 겁에 질린 소녀가 대저택에서 쫓기는 장면에 이어서 숲 속으로 굴러 떨어져 강물이 넘실대는 둑에서 거의 죽을뻔하는 장면, 그리고 매로 변신하는 장면이 연상됐다.   

 

- 리디아가 내뱉듯 말했다. "오 세상에, 더 이상은 못 참아. 넌 미쳤어. 넌 미쳤다고. 중얼중얼거리면서 혼자 돌아다니고 맨날 노려보고, 대체 뭐가 문제야? 부끄러운 줄 알아야지."
나는 리디아 쪽으로 한 발짝 다가섰다. "내 생각 속에 사는 건 내 권리야. 내 권리라고. 사람들과 어울리지 않는 것도 내 권리이고, 곁에 있으면 불쾌해지는 것도 내 권리야. 넌 네 자신에게 귀를 기울인 적이 있기는 해? 이건 미쳤어, 저건 미쳤어, 너한텐 세상 모든 게 미쳤지. 누구 잣대로? 뭐, 미치는 것도 내 권리야. 네가 정 그렇게 말하고 싶다면, 난 부끄럽지 않아. 살면서 수많은 걸 느꼈지만, 그중에 부끄러움은 없어." 목청껏 소리치는 내 음량의 서슬에 내 발뒤꿈치가 들렸다. 이제껏 이렇게 고함친 기억은 없었다. "넌 내가 너한테 다해야 할 의무가 있다고 생각하나 본데, 분명히 말하지만 화합이란 건 우리가 임의의 합의로 이곳에 함께 처박혀 있다고 생기는 게 아냐. 내 평생 누구한테도 이보다 더 의무감이 희미했던 적이 없다. 이 평범하기 짝이 없는 여자야." 

리디아가 울기 시작했다. 벤저민이 내 어깨를 잡고 억지로 현관 쪽으로 밀고 갔다.
"괜찮아요?" 벤저민이 물었다. 나는 대답하려 했지만 머리가 천근만근 무거웠다. 고개를 숙이고 두피로 그의 셔츠를 눌렀다.
"속이 너무 울렁거려요..." 내가 말했다.
"잠깐 작업실에서 일하는 편이 좋지 않을까요. 아니면 낮잠을 자든가. 아니면 뭐라도."
코에서 점액이 주르륵 흐르는 게 느껴졌다. 나는 손으로 닦았다.
"얼굴이 엉망이네요." 벤저민이 말했다. 그 말에 내가 얻어맞은 표정을 지었는지 벤저민이 급히 말을 바꿨다. "얼굴이 힘들어 보여요. 어디 불편해요?"

 


 

- (사실 밀레니엄 세대 작가들의 작품은 계보도 장르도 없다고 보는 편이 옳다.) 그럼에도 이 책의 등장은 그야말로 슈퍼스타의 탄생이었고, 미국에서 출간 첫 주에 이미 3쇄를 찍었다. 원제 'Her Body And Other Parties'는 이야기책에 흔히 쓰이는 제목 'XX And Other Stories'의 변용이다. 경험의 주체인 '몸'과 그 몸을 둘러싼 여러 파티를 말하는 이 제목부터가 모순과 긴장을 예고한다. 여자의 몸은 스스로에게 기쁨과 축하의 원천이 되기도 하지만, 그보다 더 자주, 타인들만 즐기는 파티의 대상으로 소외된다. 이 자주권과 무력함의 밀고 당김은 여자들의 일상에서 너무나도 흔한 일이고, 작가는 여자로 산다는 것이 어떤 것인가 하는 초현실을 탐사한다. 

 

- 첫 단편 <예쁜이수술>의 주인공은 성적 만족감을 부끄러워하지도 숨기지도 않는다. 내 몸의 주인으로서 내 몸이 맛볼 수 있는 쾌락을 기꺼이 즐기지만, 이야기꾼을 자처하는 주인공이 들려주는 동화와 기담과 도시 전설에서 여자들은 하나같이 쾌락 혹은 자만의 대가로 목숨을 잃는다. 그리고 더할 나위 없이 좋은 남자를 만나 주도적 삶을 살았다고 자부하는 주인공에게도 결국 깨달음의 날이 오고야 만다. "그이는 나쁜 남자가 아니고, 그것이 내 아픔의 뿌리임을 문득 깨닫습니다. 남편은 절대 나쁜 남자가 아니에요. 그이를 악랄하다느니 뻔뻔하다느니 타락했다느니 표현하는 것은 그에게 너무 몹쓸 짓이죠. 그런데도"(본문 57쪽) 심시선 여사의 말마따나 결혼에서 "폭력성이나 비틀린 구석이 없는 상대와 좋은 섹스"(<시선으로부터> 정세랑, 문학동네, 2020) 이상을 바라는 것은 명을 재촉하는 일인지도 모른다. 

 

- 작가는 레즈비언으로서 자신의 정체성을 세상 자연스럽게 등장인물들에 투영한다. 엄마들은 그중에서도 특히 작가의 옛 애인에게 바치는 복수라고 할 수 있다. "이 얘긴 글감으로 쓰지 마.(...) 무슨 일이 있어도 쓰지 마. 씨발, 내 말 알아들어?" 실제로 작가의 전 애인은 비난과 욕설을 한참 퍼붓고 이렇게 덧붙였다는데, 그러거나 말거나 마차도는 자신의 거의 모든 이야기에 옛 애인을 등장시켜 작가만이 할 수 있는 최고의 복수를 제대로 실행에 옮겼다. 퀴어라고 꼭 착한 사람들만 있는 건 아니라고, 그런 편견 또한 소수자 다움의 주입이라고, 퀴어도 평범한 사람들의 집합이라고, 동성 파트너 사이에도 엄연히 학대와 폭력이 존재한다고 작가는 얘기한다. 그런 면에서 작가의 첫사랑은 지독한 시련이자 최고의 글감이었고, 마차도는 자신의 두 번째 책이자 회고록 <꿈의 집에서>(문학동네 근간)를 통해 그 기억을 문학적 기록으로 남긴다. 

 

- <현실의 여자들은 몸이 있다>에서는 문자 그대로 사라지는 건 여자들뿐(<사라지는 건 여자들뿐이거든요>, 강화길 외 7인, 은행나무, 2020)인 세상을 그린다. 은유나 상징이 아니라, 정말로 여자들 몸이 투명해지다 결국 형체가 사라져 유령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작가가 직접적으로 말하지는 않지만 사라지는 여자들은 퀴어이고, 현실에서 인정받는 여자들 즉 시스젠더 여성들만 몸을 온전히 유지한다. 여성 배제와 소수자 배제의 물리적 실현인 셈인데, "형체도 없으면서 죽지 않는 것들을 나는 신뢰하지 않습니다" (본문 234쪽)라는 방송국 패널의 발언은 <사우스 파크>의 미스터 개리슨의 대사 "나는 이레 동안 피를 흘리면서도 죽지 않는 것들을 절대 믿지 않소"를 상기시킨다. 

 

- 이 책은 메를로-퐁티의 몸 철학을 위시해 빅토르 시클롭스키의 낯설게 하기, 쥘리아 크리스테바의 아브젝시옹 등 비전통적 문학 기법의 파티장이기도 하다. 서양 근대사에서 정신(이성)에 비해 줄곧 이류로 치부됐던 몸(감성)을 새롭게 조명한 포스트모더니즘과 탈구조주의의 철학적 흐름이, 남성에 비해 줄곧 이류로 치부당했던 여성을 재조명한 페미니즘을 설명하는 데도 유용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작가는 그런 기법들을 문장에 세련되게 녹이려는 시도를 하지 않는다. 다짜고짜 기법의 명칭을 호명하고, 나는 이런 기법을 이렇게 쓰고 있소, 적나라하게 들이민다. 그렇다고 문장이 조악한가 하면 천만의 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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