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자가 흐르는 이야기/Book1

[구병모] 바늘과 가죽의 시

일루젼 2022. 1. 30. 0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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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구병모 / 박민준
출판 : 현대문학 H 
출간 : 2021.05.06 


 

구병모 작가. 그 이름은 많이 접했으나 막상 읽어본 것은 <아가미> 정도 뿐이다. 아마 <위저드 베이커리>가 많은 매체에 노출되며 내게 남겼던 선입견 때문이었을 것이다. 

 

언젠가부터 가죽이라고 하면 인간이 떠오르고 만다. 가죽껍데기로 이루어진 걸어다니는 주머니들. 

또 메르헨을 좋아하는 편이라 표지와 제목을 보자마자 구매했었는데, 읽는 동안 너무 취향이라 행복했다. 

 

먼저 이 이야기는 구두 요정을 모티프로 한다. 구두 짓는 작은 요정들이 레프리콘을 의미하기도 한다는 점에서 <레프리콘과 함께한 여름>을 읽고 이 책을 읽게 되었다는 시기적 측면도 흥미롭다. 매일밤 구두장이가 펼쳐놓는 가죽을 재단하고 꿰매어 아름다운 구두들을 만들어놓던 존재들. 형체도 이름도 성별도 흐릿하던, 그저 형제들 정도의 인식만을 가지고 있던 그들이 기억하는 최초의 순간은 노예 소년을 돕기 위해 샌들을 수선했던 기억이다. 이후 그들은 그저 숨쉬듯 당연하고 자연스럽게 신발들을 만들어왔다. 이유도, 목적도 없이, 그저 존재하기 때문에. 

 

감사의 표시로 구두장이 부부가 지어놓았던 옷과 구두를 입으면서 바늘과 가죽을 다루던 그들이 가죽을 입게 되었다. 저자는 이 순간이 그들이 행위에 대한 대가와 이익을 취하게 된 순간이라고 말한다. 본성의 발현, 그 결과물로 신발이 생겨나던 것이 끝나고 목적이 있는 행위와 그 결과로서의 거래 대상이 만들어지게 된 것이다. 그 순간, 존재들은 순수성을 잃고 인간이 된다. 

(그러나 나는 생각이 조금 다른데, -물론 저자의 이 해석은 이 소설 안의 플롯을 받침하기 위함이겠지만- 나는 그것이 천형으로부터 벗어나게 되는 순간이라고 생각한다.) 

 

바늘과 가죽이 몸의 은유가 되는 시각은 낯설지 않았다. 그러나 그렇게 몸을 가지게 된 형제들은 각자의 생각과 판단 역시 가지게 되었고, 더는 항상 함께 존재하지 않게 되었다. 늙지도 죽지도 않지만 완전히 불사도 아닌, 유한도 무한도 아닌 존재들은 세계 곳곳으로 흩어져 서서히 사라져간다. 물질적 육체 안에 갇힌 그들은 더이상 존재였던 때처럼 자유롭지도, 다른 존재들을 자주 보지도 못하게 되었다. 그것이 존재들의 개체수가 줄어들어서인지 그들의 눈이 어두워져서인지는 확실치 않다. 다만, 이전과 같은 연결감을 더는 느끼지 못한다는 것이 안의 외로움을 심화시킨다. 

 

저자는 얀(안)과 미아라는 두 캐릭터를 통해 영원과 찰나를 극적으로 대비시킨다. 안에게 미아는 모든 것을 나누었던 형제요 끝을 알 수 없는 영원을 함께할 수 있는 이성이다. 안은 사라지고 말 것들에 정을 두지 않기 위해 그것의 시작부터 파괴한다. 자신이 정을 둔 것의 소멸의 순간을 견디지 못할 것을 알기 때문이다. 미아는 다른 결정을 내린다. 순간. 지금 이 순간이 아니면 죽어갈 것이기 때문에 지금이어야만 한다. 

 

안에게 미아는 이상이지만 미아에게 안은 절망-모든 것의 끝-이다. 찰나의 반짝임에 충실하게, 그렇게 그 시간들이 이어지는 것이 무한인가? 무한 앞에 무의미하게 나고 스러지는 유한은 무한이 아닌 것인가, 무한의 일부인가?

 

형제들 중에서 -아마도 안과 미아 뿐이겠지만- 아직도 구두를 만들고 있는 것은 안 뿐이다. 구두를 대하는 그의 자세는 사랑이라고밖에 할 수 없다. 문득 안에게서 인간의 모순을 본다. 어차피 사라지고 닳아질 구두를 어째서 그리도 공을 들여 만드는가? 어째서 관리하고 수선하며 '사용'하는가? 그것이 의미가 있는 행위라면, 유한이 무의미하다는 안의 생각은 그저 두려움을 가리기 위한 기만에 지나지 않는다. 미아는, 그가 그것을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도록 해줄 수 있는 유일한 존재다. 그리고 미아는 그것을 알기 때문에 안과 함께하지 않는 것인지도 모른다. 

 

옷과 구두를 선물받고 바늘을 놓은 존재들은 풀려난 것일까, 새로운 형을 받은 것일까.  

 


   

 

- 혹서와 혹한이 반씩 지분을 차지하는 극단적인 기후는 사람을 닮았다. 백 아니면 흑, 나 아니면 너. 우리 아니면 그들. '아니면'의 자리에 '과'나 '와'가 들어가는 일은 흔치 않다. 간혹 짝지어서 불리는 예외도 있는데 죽음과 삶을 가리킬 때, 죽음과 같은 삶, 삶이자 죽음. 생명이 거한 곳에 어김없이 절반의 지분을 차지한, 삶과 죽음. 

 

-  안은 지금도 가끔 그 존재들이 내는 소리의 여운을 듣고 그들이 스쳐 지나갈 적에 발산하는 냄새를 희미하게나마 맡을 때가 있으나 각종 인공품 산업이 내는 소음과 냄새에 묻혀 예전만큼 자주는 아니며 그나마 그들을 눈으로는 볼 수 없다. 그들이 완전히 소멸하지는 않았고 다만 있을 데가 마땅치 않아 자취를 감춘 거라고 믿었는데, 그보다는 자신의 시력이 그들을 볼 수 없을 만큼 떨어졌을 뿐이다. 

 

- 무엇을 하더라도 벌이가 되지 않기는 마찬가지라면 차라리 속도를 올리지 않고 모든 공정을 혼자해내면서 무언가를 이뤄내는, 정확하게는 무언가가 그 자리에 도래하는 모습을 바라보는 쪽이 적성에 맞았다.  

 

-  하지만 안은 스카이빙 용도의 기계가 만들어지기 전 피할 자체를 모두 손으로 하던 시절의 이야기는 꺼내지 않는다. 상징도 과장도 아닌 문자 그대로 영겁의 세월 동안, 구두칼 한 자루와 바늘만으로 이룬 노동의 결과, 전체적으로 못이 박여 부드럽거나 푹신한 자리라곤 찾을 수 없게 된 지 오래인 두 손에는, 안전을 위한 장갑이 오히려 거추장스러웠다는 이야기를. 

 

- 시인은 하나하나 자기 손으로 만지고 고르고 자르며 꿰매는 그 행위가 태어날 아기를 향한 더욱 좋은 기원이 되리라 믿는다. 이미 어머니를 위한 홀컷 구두를 통해 고양감을 가져본 데서 나오는 자존심 같은 것인데, 안은 가능한 한 그것을 지켜주는 쪽으로 가고 싶다.

 

- 그걸 신고 무대에 오르는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인데, 굳이 춤추는 데에 방해되지 않는 구두를 요청하다니. 그만큼 춤이 일상의 일부이고 삶 자체라는 뜻이겠지만, 10년만 지나도 그는 시간의 악력에 붙들려 도약이나 회전을 하기 어려워질 텐데 말이다. 안이 짓는 구두가 저 사람의 일생보다 오래갈 텐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춤추는 동안 절대로 벗겨지지도 뒤꿈치가 까지지도 않을 구두를.

 

- 공방에서 만났던 그날 유진을 먼저 보내고, 둘만의 머리가 맞닿을 듯 가까운 자리에서, 차가운 커피 잔을 만지작거리던 미아의 깨끗한 손. 그 손을 보고선 농담으로라도, 네 남자의 구두 정도 네가 지어주면 그만 아니냐고 물을 수 없다. 어떻게 돌려 말해도 경멸이나 조롱으로 들릴 테니까. 마지막으로 바늘과 가죽을 만져본 지가 언제인지를 알기 어려운 두 손.  

 

- 가봉 구두를 꺼내어 두 발 앞에 놓자 유진의 시선은 애초에 있던 약간의 의혹과 불만에서 경탄을 향해 느릿느릿 이동하는 듯, 한참 동안 그 우아한 곡선을 내려다본다. 구둣주걱을 뒤꿈치에 끼우고 조심스럽게 발을 밀어 넣는데, 그 모습에는 사람의 몸이 빚은 사물 앞에서 가질 수 있는 최선의 겸손이 들어 있다. 주로 다리를 썼던 사람이니 어쨌거나 손을 쓰는 노동의 가치를 아는 것이다.  

 

- 안은 미아가 공방에 들어서자마자 고소리나 최소한 구두 한 짝이라도 제 면전에 날아올 줄로 알았는데, 뜻밖에도 미아는 전날 방문 시간을 잡느라 통화할 때도 별말 없었을뿐더러 들어와서도 확신과 기대 이외의 다른 빛이 얼굴에 나타나지 않는다. 최소한 시치미 떼는 눈치는 아니다. 얘기를... 안 했나, 그 하루살이가

 

- "미아는... 객석에 있습니다."
"알아요. 같이 오셨죠? 이따 일정 괜찮으시면 늦은 저녁이라도 셋이 하지요."
너는 나랑... 밥 같은 걸 먹고 싶은가. 하긴 무대를 앞두고 주먹질을 할 수는 없고, 그렇다고 딱히 용건도 없는 상태에서의 이야기라면 식사로 흘러가는 게 자연스럽겠다. 

- 그러니 형태야말로 궁극의 빈곤이다. 

 

- 바로 이 무한의 무력한 응시와 고민 속에 비로소 바로 그 유한성의 위대함과 아름다움이 있다고, 곧 바로 그 사멸하는 유한성 안에서야 비로소 저 무한성은 비로소 전능해지는 것이라고, 영원은 그렇게 오직 순간 속에서만 무의미하게 의미 있는 것이라고, 우리는 그렇게 말해야 하고 또 그렇게 말할 수밖에 없는 것이 아닐까. 그렇기에 우리 앞에 이렇게 한 켤레의 구두가 놓여 있게 된 것은 아니겠는가. 
유한과 무한의 사이 그 어디엔가 자리한 이의 오랜 허무가, 한 켤레의 구두에 담겨 있다. 

- 그러므로 다시 한 번 더, 만약에 신이 존재한다면, 그 신은 이 구원 없는 세상에 거짓 구원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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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날 사포로 손질한 고소리의 단면이 공기에 닿아 반향을 일으키고, 무두질한 코도반에서 타닌의 잔향이 올라온다. 이는 모두 공기와 접촉한, 하나의 진동과 그다음 진동 사이에서 물방울처럼 튀어 오르는 존재들에 의해 발생하는 감각이다. 안은 지금도 가끔 그 존재들이 내는 소리의 여운을 듣고 그들이 스쳐 지나갈 적에 발산하는 냄새를 희미하게나마 맡을 때가 있으나 각종 인공품 산업이 내는 소음과 냄새에 묻혀 예전만큼 자주는 아니며 그나마 그들을 눈으로는 볼 수 없다. 그들이 완전히 소멸하지는 않았고 다만 있을 데가 마땅치 않아 자취를 감춘 거라고 믿었는데, 그보다는 자신의 시력이 그들을 볼 수 없을 만큼 떨어졌을 뿐이다. 이 시력이란 소수점으로 기록 가능한 신체 능력과는 무관하다. 안은 기름등잔의 시절만 해도 거리를 걷다가, 혹은 창문만 열어도 빗방울에 걸터앉거나 빛줄기에 기대어 휴식을 취하는 그들을 선명히 볼 수 있었고 심지어 한때는 그들의 일부이기도 했다... ...했을 것이다. 적재한 기억의 부피는 방대하고 그중 일부는 부패했으니 안은 이제 무엇도 확신하지 않는다. 자신이 지금 여기 있다는 사실을 포함하여, 자신이 원래는 그 수많은 존재들 가운데 하나였다는 사실마저도, 선명한 기억이 아닌 허몽의 일종으로 치부하려고 애쓰면서...

 

- 어느 날 밤, 존재들은 작업대 위에서 여느 때와 같은 바늘과 가죽이 아니라 갓 지은 듯한 옷과 구두를 여러 벌 발견한다. 그 옷과 구두는 그들의 인원뿐 아니라 각각의 몸에 맞추어져 있다. 마침 때는 한겨울 밤이다. 인간들과 꼭 같은 추위와 고통을 느끼지는 않으나 이것이 자신들을 위한 선물임을 알게 되어 그들은 한 벌씩 나누어 입고 신는다. 얼음과 서리, 그리고 강풍이 전하는 묵직한 자극이 줄어드는 신비가 그들의 몸을 감싼다. 인간들에게 그들의 존재가 신비이듯 그들에게는 인간이 만든 물건이 실제로 어떤 역할을 하는지 알게 되는 경험이 낯설고 불가해하다. 사람이 만들어준 옷을 입고 증여와 보답, 이익과 대가라는 삶의 보편 양식을 채용한 순간, 그들의 마음속에서 오랜 세월 당연하게만 여겨졌던 업이, 어쩌면 업보다는 호흡에 가까웠던 무엇이 조금씩 뒤틀린다. 언제부터 신이 자신들을 이 자리 이 일에 배치한 것인지, 또한 그것이 정말로 신이 원하는 바였는지 가슴속에 의문이 깃든다. 급기야는 존재들의 존재 의미란 신이 인간에게 무상으로 지급하는 선물인지, 아니면 신의 역사와 구원을 내다보는 투자인지 그런 데까지도 생각이 미치면서, 인간의 옷을 입은 대신 존재로서의 몸이 벗어지는 것을 느낀다. 그들은 바늘을 내려놓고 노래 부르며 구두장이 부부의 집을 떠난다. 그들 세계의 전부였던, 그들을 둘러싸고 있던 운명에 파열음이 생긴다. 다만 우리들, 다만 형제들이라고 부르며 간혹 편의에 따라 첫째 둘째 서수로만 매긴 존재들에게, 서로를 부르기에 적당한 이름을 붙인다. 그전까지는 늘 하나처럼 무리를 이루어 다녔으므로 이름이 필요 없었으나, 도톰하고 질기며 보기에도 좋은 옷을 입고 지내는 동안 그들에게는 물질적 의미에서의 몸이라는 것이 구현되고, 그전까지 구별되지 않았던 성적인 특징이 나타나며... 

 

- "생각하는 가격대는."
"상관없어."
"용도는 결혼식이고, 그러면 이러고 있을 게 아니라 오늘 치수부터 재지. 이쪽으로 오세요."
지나간 이야기를, 앞으로의 전망을 미아가 굳이 언급하지 않는다면 안도 맞춰주리라 생각하며 몸을 일으키고 고개를 까딱하자, 남자는 허락이라도 구하는 것처럼 미아의 눈치를 보다가 따라 일어난다. 가끔 부모와 함께 온 사회 초년생이 이렇게 망설거리곤 한다. 사전 합의는 됐으나 부모의 주머니 사정을 마지막으로 확인한다는 듯한 표정으로, 자신과 자신의 일에 이만한 투자 가치가 있을지 확신하지 못하는 몸짓으로.

 

- 안은 미아의 안목을 가늠하는 시선으로 브랜낙 디바이스 앞에 선 남자를 바라본다. 막상 일어서서 다가오는 자세는 조금도 위축된 모습이 아니다. 원래 좀 있는 집 자식인지 미아가 이리저리 치감고 내리감아줬는지는 모를 일인데, 갈색 계통의 글렌체크 재킷은 고지 라인이 둥글게 휘어져 있으며 피크트 라벨이 살짝 위로 솟았고 가슴에는 고동색 웰트 포켓이 돋보인다. 테이퍼드 핏 타입의 바지를 포함하여 어느 비스포크 하우스에서 맞춘 비접착 방식의 핸드메이드 슈트라는 사실을 짐작할 수 있다. 그 옷에 감싸인 어깨만 봐도 운동하는 사람인 건 알겠지만 전체적인 라인이 체중의 증량을 필요로 하는 격투 계통은 아닌 듯하다. 엄선된 선율의 조합으로 이루어진 먼 나라의 음악 같은 몸이다. 그러나 착장의 마무리는 허술하여, 발은 옷에 어울리지 않는 밋밋한 검정 로퍼로 끝난다. 굽이 낮고 편안하게 발볼이 늘어나 새끼발가락을 감싼 자리가 돌출되어 있으며, 토캡의 라인도 슬림하거나 샤프한 느낌과는 거리가 멀다. 물기와 염분으로 인한 군데군데 크레이터 자국에다가 스크래치도 많은, 신은 지 오래됐으며 관리도 잘 되지 않은 티가 나는 저렴한 공장제 기성화. 

 

- 가봉은 전체 작업의 80퍼센트, 최소 70퍼센트 가량 진행되었을 때 한다. 안이 다른 나라에 있을 적에 해오던 전통적인 가봉 방식은 실제 출고할 제품보다 한두 단계 품질이 낮은 가죽으로 전체 공정을 완료한 구두를 고객이 신어보게 하는 것으로, 이는 본격 작업 때 사이즈와 기타 조정할 부분들을 체크하기에는 좋지만, 가봉 후 역할을 마친 구두는 그 한 명의 고객이 아닌 다른 누구의 발에도 꼭 맞지 않기 때문에 폐기해야 한다. 카드 지갑 같은 다른 소품을 만들 때 활용할 수 있고 월형심 등의 충전재나 보강재로 쓸 수도 있기는 하나 제대로 된 작품을 만든다는 명목으로 그때마다 값비싼 쓰레기를 상당 분량 발생시킨다는 부담감, 또한 고객이 신었을 때 착화감과 무관하게 불만을 느낄 수 있다는 단점이 있다. 가죽의 질 차이를 예민하게 느끼는 고객이라면 실제 구두를 신을 때도 이 같은 느낌이라고 오해할 수 있으며 그런 사소한 일로 고객을 불안하게 만들어선 안 되기에, 지금은 실 판매용 구두를 고급 가죽으로 웬만큼 만들어두고 가봉 후에 보강재를 채우거나 빼거나 가죽을 늘이는 등 다른 방법을 동원하여 사이즈를 확정한다.   

 

- 과거에 비하면 줄어들기도 했겠지만 모두 다 사라진 게 아니라 보이지 않을 뿐이라고, 그들을 보기에 우리 눈이 너무 나빠져서... 우리가 오염되어버려서일 거야. 고요한 숲이나 박명 한가운데에서조차 존재들을 목격하는 빈도가 점차 줄어들다가 보기가 힘들어졌을 무렵 미아는 그렇게 말했다. 생활을 위한 일을 해야 했고, 일하면서 품삯을 제대로 받지 못했고 그래서 추웠고 배고팠고 머리맡 등잔에 불을 밝힐 기름도 없고 곁눈질을 할 여유도 없어서, 우리가 그들을 필요로 하지 않아서 보이지 않게 되었다고. 단지 존재들이 있을 장소를 빼앗겨서 떠난 것만도 아니라고 생각해. 그들은 세계에 분포한 무한한 온유와 끈기가 응집된 결과물일 거거든. 우리도 이렇게 변모하지 않았다면 우리의 감각은 여전히 그들의 세계와 연결되어 있었을지도.  

 

- 앰프가 낡아 소리는 깨끗하지 않지만 안은 피부를 찌르고 근육을 간질이며 통과하는 그 소리를 붙들 수라도 있을 것처럼 순간적으로 어깨를 양손으로 움켜쥔다. 존재들이 있던 시절, 그 자신도 미아도 존재들 가운데 하나였던 때, 이런 노랫소리나 그 밖의 소음들이 서로 조금도 구별되지 않고 온전히 자신의 몸에 흡수되곤 했다. 지금의 몸과는 다른, 소리를 온몸으로 껴안을 수 있는 존재였던 그 무렵에는 앰프도 전파도 없고 무언가를 멀리까지 전달하는 데에는 천둥을 비롯한 신의 목소리 말고 다른 방도가 없었음에도 온 세상의 소리가 몸속으로 들어왔다. 몸이 곧 소리였고 그들은 소리로 이루어져 있었다. 육이라는 형태를 갖추고 나서야, 소리란 몸의 일부가 아니고 한순간 몸에 닿을 뿐 머무르거나 고일 수 없으며 매질을 타고 팽창하다 부서지고 흩어지고 사라지는 것임을 알게 되었다. 
그러니 형태야말로 궁극의 빈곤이다.

 

- "거기 벽에 좀 기대 보실까요."
유진은 말뜻을 알 수 없어 머뭇거리다가 마침 복도를 통행하던 이들과 어깨를 부딪치는 바람에 떠밀리듯 벽에 기대선다. 안은 재킷 안주머니에서 휴대용 슈크림과 손수건을 꺼내더니 그 앞에 앉아 심한 상처에 빠르게 크림을 도포한다. 
"애지중지해야 하는 건 아닌데 그냥 눈에 띄어서요. 30초씩 양쪽 1분이면 됩니다."
"아니 그 얘기를 먼저 하시지, 설명이 매번 뒤늦거나 부족하시네요."


- 그 부족한 말이라도, 뒤늦게라도 누군가에게 가닿아야 하지 않을지를 안은 지난 며칠째 생각하고 있다. 예를 들면 시인의 어머니. 다시 이름을 알게 되고 나서부터 그 노부인에 대한 생각이 안의 온몸에 들러붙어 떨어지지 않는다. 그리움이나 죄책감과는 조금 다른 것도 같은, 그렇다고 깊은 허무도 환멸도 아닌 사념의 사금파리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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