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 : 매릴린 옐롬 / 강경이
원제 : How the French Invented Love
출판 : 시대의창
출간 : 2017.02.15
가볍게 흥미 위주로 읽으려고 골랐는데 생각보다 묵직했다. 사전 정보 없이 집었다가 르네 지라르에게 사사받고 보부아르와 교류가 있었다는 저자의 약력을 알고 조금 당황했다. 중세의 엘레오노르부터 보부아르와 아니 에르노까지 이어지는 긴 흐름은 '사랑의 역사'라는 표현이 과하지 않았다.
이 책은 12세기 음유시인들이 노래하던 사랑의 변화는 십자군 전쟁 등으로 궁정의 중심 권력이 여성에게 이동한 것과 깊게 관련되어 있다는 접근으로 시작한다. 지금 우리에게 친숙한 기네비어 왕비와 랜슬롯의 불륜, 기혼의 귀부인과 독신 남성의 결합이 어떻게 현대 프랑스인들의 인식에 영향을 주고 있는가에 대한 저자의 분석은 꽤 신선했다.
저자는 미국인으로서의 정체성과 학자(역사, 프랑스 문학)로서의 정체성을 적절히 오가며 다양한 관점에서 시대에 따른 프랑스식 '사랑'을 풀어간다. 문학 속에 녹아든 시대성을 살펴보기도 하고, 실존 인물의 삶과 서간을 통해 살펴보기도 하는데- 개인적으로는 저자가 소개하는 사례들은 당대 프랑스에서도 상당히 논란의 중심에 섰던 경우들이 아닌가 싶긴 하다. 설사 보편적이지는 않더라도 그런 사건/현상이 일어날 수 있었던 사회/문화적 토대가 있었다는 시각에는 다소 회의적이다. 특이적인 사건사고는 어디에서나 일어날 수 있으므로.
그렇지만 무척 즐겁게 읽었고, 한국에서는 꽤 이슈가 되었던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 같은 경우가 프랑스인들에게는 자연스러울 수 있다는 점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어서 만족스럽다. 소개된 작품들 중 추가로 찾아 읽고 싶은 것들이 꽤 있었는데, 언제쯤 읽게 될지는...
- 이 장은 프랑스인들이 궁정풍 연애라는 이상을 어떻게 만들어내고 전파했는지 살펴본다. 먼저 숭배하는 여인을 칭송하는 새로운 시가를 창조한 남프랑스 음유시인(트루바두르 Troubadour)들을 살펴보자. 그다음 남프랑스 음유시인들이 다룬 주제를 이어받아 세련되게 다듬은 북프랑스의 음유시인들을 살펴보겠다. 북프랑스의 마리 드 샹파뉴 Marie de Champagne 궁정에서는 운문으로 쓴 기사도 로망스가 돌풍을 일으켰다. 크레티앙 드 트루아 Chrtien de Troyes의 작품이 가장 유명했는데, 그가 지은 랑슬로와 그니에브르 이야기는 그 뒤 수세기 동안 읽히며 모작을 낳았다.
(트루바두르는 12~13세기 남프랑스에서 활동한 음유시인들로, 남프랑스어인 오크어로 시를 썼으며 북프랑스의 음유시인 트루베르들에게 영향을 미쳤다. - 역자 주)
- 전설적인 아르튀르 (아서) 왕의 아내 그니에브르(귀네비어) 왕비와 랑슬로(랜슬롯) 경의 사랑 이야기를 들어보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12세기 전에도 그니에브르 왕비는 잉글랜드와 프랑스 청중에게 익숙한 인물이었다. 그들은 이 우아하고 변덕스러운 켈트 설화 속 여인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크레티앙 드 트루와 이전에는 그 누구도 랑슬로 경을 그녀의 연인으로 그리지 않았다. 크레티앙은 <랑슬로: 수레를 탄 기사 Lancelot ou le Chevalier de la Charrette>에서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한 기사이자 연인으로 랑슬로를 그린다.
- 남성들은 승마만큼이나 갈랑트리에도 능숙해야 했다. 옛 음유시인들처럼 16세기와 17, 18세기 귀족들도 아름다운 이성에게 관심을 보이지 않는 것을 중대한 결함이라 여겼다. 갈랑트리가 중세의 궁정풍 사랑과 다른 점은 한 사람에게 평생 사랑을 바치겠다고 약속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궁정풍 사랑은 오직 한 여인에게만 사랑을 바칠 것을 요구했다. 그 여인은 주로 기사보다 지위가 높고, 이미 결혼한 귀부인일 때가 많았다. 반면 갈랑트리는 여기저기 흩뿌릴 수 있다. 대개 남성들은 동등한 신분의 여성에게 구애했지만 신분이 높거나 낮은 여성에게도 손을 내밀 수 있었다. 단, 당사자들은 동등하지 않은 신분의 연인들이 결혼에 이르기 힘들다는 것만은 알아야 했다.
- "프랑스에서는 '관계'를 생각할 때 이 두 원이 겹치는 부분이 3분의 1을 넘을 때가 거의 없습니다. 프랑스에서 부부는 서로 각자 사생활을 누릴 권리가 있을 뿐 아니라 서로의 흥미와 매력을 유지하기 위해 '반드시' 사생활이 있어야 합니다."
그것을 '신비'라 부르든, '속임수' 혹은 '사기'라 부르든 사랑에 관한 한 프랑스 남성과 여성들은 미국인들이 이상적이라 여기는, 모든 것을 털어놓는 관계에는 관심이 없다. 프랑스에서 사랑은 손에 쥔 패를 보이지 않는 게임이다.
- 나는 프랑스와 미국의 이런 차이를 오랫동안 생각하다가 두 나라의 역사에서 몇 가지 실마리를 찾았다. 미국식 사랑의 이상은 낯선 신대륙에서 부부가 '멍에를 함께 짊어진 동료'로 서로 의지하며 지난 400년간의 변화를 거치며 성장했다. 안정적으로 자리 잡은 마을과 동떨어져, 의지할 만한 부모나 형제도 없이, 남편과 아내는 자연과 다른 종족과 투쟁하는 전장에 함께 내동댕이쳐졌다. 19세기 초반까지도 낭만적 사랑은 미국식 결혼에서 중요하지 않았다. 19세기에 들어서도 '부부' 보다는 '가족'이 먼저였다. 오랫동안 미국 여성들은 미리엄 존슨 Miriam Johnson이 표현한 '강한 어머니, 약한 아내'라는 문화 속에 살았다. 오늘날에도 미국 사람들은 부부관계보다 아이들의 욕구를 충족시키는 것을 중요하게 여긴다. 그러니 남편과 아내 사이의 로맨스를 유지하기가 힘들다. 내 프랑스 며느리는 처음 미국에 왔을 때 한 직장 동료가 남편을 자신과 아이들의 중요한 관계에 따라오는 '부차적 관계'라고 말하는 것에 깜짝 놀랐다고 한다.
- 프랑스 사람들은 정치와 의학에서부터 성관계에 이르기까지 어디에서나 언어를 강조한다. 작고한 프랑스 정신분석가 자크 라캉 Jacques Lacan은 인간을 '말하는 존재 Des étres parlant'라 규정한다. 프랑스에서 당신은 욕망을 분명히 표현할 수 있어야 한다. 사랑을 고백하면 자신의 감정을 분명히 정의할 수 있을 뿐 아니라 고백받은 사람에게도 같은 고백으로 화답할 기회를 줄 수 있다. 페드르는 자신의 감정을 발산할 수 있으리라 기대하며 이폴리트에게 고백하지만 반대로 이야기를 할수록 그녀의 열정은 뜨거워진다. 도덕적인 자기 검열이 섞인 고백을 했지만 그녀의 성애적 욕망은 최고조에 이른다. 오직 테제와 대면하고 나서야 페드르는 입을 닫는다. 테제는 아테네의 왕이자 이폴리트의 아버지인 동시에 페드르에게 남편이자 아버지 같은 존재이다. 그는 공적으로나 사적으로 최고 권위를 상징한다. 앙시앵레짐의 왕, 프랑스혁명의 지도자, 나폴레옹 1세와 나폴레옹 3세, 왕정복고 시대의 군주, 그리고 19세기와 20세기의 프랑스 공화국 대통령들은 모두 아버지의 지배를 상징한다.
- 열렬한 감정이 덕과 행복의 원천이라는 자신의 믿음을 루소가 철회한 것일까? 1,000쪽짜리 소설에 대한 이 질문에 답하려면 적어도 500쪽이 넘는 또 다른 책을 써야 할 것이다. 사실 그런 비평서는 이미 많이 나와 있다. <신 엘로이즈>를 다 읽는 게 힘들다면 몇 부분이라도 읽어보길 권하고 싶다. 그렇게 하면 이 소설이 단지 문학사적으로나 가치가 있는지, 또는 이 소설 속의 낭만적 도취와 현실적인 해결책이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여전히 의미가 있는지 판단할 수 있을 것이다.
- 2010년 파리로 가는 비행기에서 나는 쇼데를로 드 라클로의 <위험한 관계>가 '테르미날'이라 불리는, 프랑스의 고등학교 최종학년 필독 도서 목록에 여전히 실려 있다는 신문기사를 읽었다. 교육과 성을 대하는 프랑스인과 미국인의 태도가 얼마나 다른지 보여주는 예를 딱 하나만 꼽으라면 바로 이것이다! 미국의 어떤 고등학교가 12학년 학생에게 <위험한 관계> 같은 책을 필독서로 권하는 것은 고사하고 학생들이 그 책을 읽는 것을 허락이라도 할까? 아마 미국의 보수 기독교 단체들이 들고일어나 그동안의 모든 시위가 속삭임에 불과했다고 느끼게 할 만큼 격렬하게 항의할 것이다. 프랑스에서는 그 누구도 고3 학생들이 <위험한 관계>를 읽는 것을 문제로 여기지 않는다. 그러나 나는 대학원생이던 20대에 이 책을 읽으며 내가 그때까지 읽었던 어떤 책 보다 전복적이라고 느꼈다.
- 당대의 유명 인사가 많이 활동했던 쥘리의 살롱에서 때때로 편지는 다른 사람들에게 큰 소리로 읽히거나 필사해 서로 돌려 보거나 후대에 남기기 위해 쓰였다.
- 만약 그 연애가 평생에 걸친 애정으로 발전하지 않았다면 편지는 쓴 사람에게 돌려주는 것이 예의였다. 사람들은 상자와 책상 속에 연애편지를 넣어둔 채 죽음을 맞이하기도 했고 자신의 모든 서류를 폐기해 달라는 유언을 남기기도 했다. 사실 쥘리의 연애편지는 대부분 그녀가 죽은 직후에 불태워졌지만 남아 있는 편지들이 있었다. 무엇보다 그녀가 기베르 백작에게 쓴 편지 180통은 그녀의 놀라운 인생 이야기를 전해준다. 1776년 마흔네 살로 죽기 전까지 쥘리 드 레스피나스는 그녀의 활발한 살롱을 자주 드나들던 백과전서파(Encyclopedistes. 달랑베르, 콩도르세, 디드로)를 비롯해 유명 인사들의 뮤즈로 유명했다. 프랑스 문학계, 과학계, 예술계의 최고 인사들이 12년간 매일 다섯 시부터 아홉 시까지 오직 즐거운 대화를 나누기 위해 그녀의 아파트를 찾았다. 그녀가 죽자 파리에서 프로이센에 이르는 여러 계몽주의 지도자들이 그녀의 죽음을 애도했다. 프로이센의 프리드리히 2세는 장 르 롱 달랑베르 Jean le Rond d'Alenbert에게 조의를 표했고 달랑베르는 그녀가 죽고 몇 주 뒤에 대단히 감동적인 편지 두 통을 그녀에게 썼다.
- 엘리자베트와 롤랑 부인은 미혼 여성에게 순결을, 부부에게 일부일처제를 표방하는 부르주아 계층에서 태어났다. 결혼의 최종 결정권은 부모에게 있었으며 남편이 아내를 지배했다. 앙시앵레짐의 귀족 문화와 반대로 특히 여성의 불륜은 용서받지 못했다. 한편에서는 철학자와 정치 사상가, 극작가, 소설가들의 전복적인 목소리가 체제를 흔들었다. 정부의 권위든 가정의 권위든 권위에 대한 도전이 그 어느 때보다 공개적으로 이루어졌다. 물론 루소는 현존하는 사회의 악을 드러내고, 가슴에서 우러난 도덕성을 제안함으로써 사회 비판을 이끌었다. 그보다 나이 많은 동시대인이자 가끔 적수였던 볼테르는 루소가 감정을 신뢰하는 것을 비판했다. 마찬가지로 볼테르는 자신의 풍자적 걸작 <낙천주의자 캉디드>(1759)에서 신의 섭리를 믿는 독일 철학자 라이프니츠의 낙관주의를 비판했다. 종교와 전통적인 위계질서에 대한 비판이 당대 질서였다. 이런 비판을 담은 책들이 프랑스의 검열관들을 피해 암스테르담이나 런던에서 출판되었다 해도 마찬가지였다.
- 1830년 무렵 프랑스 낭만주의자들은 거의 모두 파리에 모여 있었다. 외국에서 온 작가들, 이를테면 독일 시인 하인리히 하이네 Heinrich Heine와 폴란드 시인 아담 미키에비치 Adam Mickiewicz 뿐 아니라 쇼팽과 리스트, 마이어베어 같은 유명한 음악가와 온갖 유파의 화가들도 파리에 머물곤 했다. 파리는 루이 14세 통치기와 계몽주의 시대처럼 다시 유럽의 문학과 예술 창작 중심지가 되었다.
- 1830년에는 기억할 만한 문화적 사건이 둘 있었다. 하나는 들라크루아의 그림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이고 다른 하나는 빅토르 위고의 혁명적 연극 <에르나니>이다.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은 샤를 10세를 폐위하고 시민 왕 루이 필리프의 자유주의 통치를 연 7월 혁명을 기념하는 그림이다. 1830년 2월 25일 프랑스 국립극장 코메디 프랑세즈 Comedie Français에서 초연된 <에르나니>는 프랑스 낭만주의의 공식적인 출발점이다. 사실 오늘날 <에르나니>는 작품보다는 이 작품이 불러일으킨 젊은 낭만주의자들과 확고한 보수주의자들의 논쟁으로 기억된다. 산적 에르나니는 도냐 솔을 사랑하지만 역시 그녀를 사랑하는 지체 높은 두 남자와 경쟁해야 한다. 강렬한 멜로드라마로 표현된 산적 에르나니의 사랑 이야기는 에스파냐의 열정을 프랑스 관객들에게 선보였다.
- "모든 사람은 사랑하는 사람을 사랑하기를 멈출 때 자신이라는 사람을 구성하는 중요한 부분 하나가 사라지리라는 걸 안다. 그러면 우리는 다른 누군가가 되어버린다. 지나간 사랑을 애정이나 분노 등 이런저런 복잡한 감정으로 회상하겠지만 한때 우리가 느꼈던 감정을 되찾을 수는 없다. 그렇게 되면 한때 우리가 느낄 수 있었던 고통조차 그리워지기 시작한다." 프루스트는 말한다. 사랑은 알 수 없는 중독이라고, 사랑이라는 중독은 강렬하지만 짧은 순간만 지속되며 우리는 때때로 부적절한 상대에게 대책 없이 중독되기도 한다. 그래서 사랑이 마침내 사그라졌을 때 스완은 이렇게 중얼거린다. "매력도 없고 내가 좋아하는 스타일도 아닌 여자로 인해 내 인생의 여러 해를 낭비하고, 죽기를 바라고, 내 가장 위대한 사랑을 경험했다니!" 프루스트의 독자들이 책을 책장에 다시 찾은 뒤에도 이런 통찰은 오래도록 마음속에 남는다.
- "사람은 자신을 벗어날 수 없는 존재이기 때문에 타인들을 자신 속에서만 이해한다. 아니라고 말하는 사람은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이다." 같은 표현들 말이다. 프루스트는 이런 씁쓸한 생각을 펼쳐 보이기 위해 여러 등장인물을 동원했고 20세기 내내 많은 사람들이 그의 생각을 지지했다. 장 폴 사르트르 Jean Paul Sartire도 그러했다. 이런 유아론 Solipsism은 사르트르 실존주의 철학의 기본 전제이다. 그의 연극 <닫힌 방 Huis Clos>에서 지옥은 '우리 스스로 생각하는 우리의 모습을 인정해주지 않는 타인들'이다. 그러나 사랑은 자아와 타인 사이에 놓인 벽을 허물고, 서로 공감하고 서로 즐거움을 주는 결합이어야 하지 않을까? 프루스트라면 그런 결합은 단지 '간헐적 심장 박동 Intermittence du coeur'으로만 존재할 뿐이라고, 고통과 절망이 뒤따라오기 마련인 일시적 행복일 뿐이라고 말할 것이다. 프루스트의 소설 속 동성애자들은 이성애자들만큼이나 질투와 고통에 사로잡힌다. 사실 동성애자들은 자신들의 성적 취향을 숨겨야 하므로 사회와 사법제도의 시야를 벗어나 사랑 관계를 비밀리에 유지해야 하는 부담까지 져야 한다.
- 어느 날 나는 버스를 타고 가다가 사람들 눈에 잘 띄지 않는다는 사무엘 베케트 Samuel Beckett를 본 적도 있다. 놀라운 연극 <고도를 기다리며>로 우리 모두를 어리둥절하게 했던 사무엘 베케트 말이다. 이튿날에는 사르트르와 보부아르의 친구인 가수 줄리엣 그레코 Juliette Gréco가 여느 때처럼 검은 옷을 입고 검고 긴 머리를 뒤로 휘날리며 보나파르트 거리를 걸어가는 모습을 보았다. 사르트르와 보부아르를 직접 보지는 못했지만 두 사람의 이미지는 내 영혼에 깊이 남았다. 서로에게 흔들림 없이 늘 헌신하는 두 사람은 나에게 이상적인 커플이 되었다. 두 사람은 호텔을 제외하고는 한 지붕 아래 살았던 적이 없지만 매일 함께 점심이나 저녁 식사를 했고 같은 카페의 다른 자리에서 일하며 서로의 원고를 논평했고 함께 여행했으며 차츰 좌파 정치에 참여했다.
- 1958년 보부아르의 회고록이 나오기 시작하면서 세상 사람들은 두 사람 관계를 훨씬 자세히 알게 되었다. 1권 <착한 딸의 회고록 Memoires d une jeune file rangee>에서 그녀는 1929년 사르트르가 끼여 있는 남학생 세 명으로 구성된 공부 모임에 초대받았던 때를 회고한다. 그들은 모두 철학 교수 자격시험(리세(고등학교)에서 가르칠 수 있는 자격을 주는 시험)을 준비하고 있었다. 필기고사를 본 76명 가운데 26명만이 소르본에서 최종 구술고사를 볼 수 있었다. 오랜 철학 교육 전통을 지닌 프랑스에서 그들은 프랑스 교육제도의 최고 엘리트들이었다.
- 까다롭기로 악명 높은 구술고사는 네 가지 시험으로 구성되었고 심사위원 여섯 명과 일반 관중 앞에서 공개적으로 이루어졌다. 프랑스어뿐 아니라 그리스어와 라틴어로 된 글을 설명할 수 있어야 하며 모자 속에서 무작위로 뽑은 주제에 대해 강의해야 했다. 구술고사를 무사히 통과한 13명 가운데 보부아르는 2등이었다. 그녀는 스물한 살이었고 그때까지 철학 교수 시험을 통과한 아홉 번째 여성이었다. 그녀는 아름다웠으며, 가세가 기운 탓에 생계를 잇기 위해 일해야 했지만 집안도 좋았다. 그녀보다 나이가 두 살 많았으며 고등사범학교 Ecole Normale Superieure의 명석한 스타였던 사르트르는 1년 전 시험에 낙방했지만 이번에는 1등으로 합격했다.
- "300년 동안 우리는 억압과 종교적 승화에서 리베르티나주로, 리베르티나주에서 낭만적 열정으로, 낭만적 열정에서 지나친 절제로, 다시 성과 포르노의 확산으로, 그리고 질병과 재생산 기술을 거쳐 다시 원래 있던 평범한 억압으로 되돌아왔지." - 솔레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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