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 : 포리스트 카터 / 조경숙
원제 : The Education of Little Tree
출판 : 아름드리미디어
출간 : 2019.03.20
하드커버로 판형을 변경한 개정판으로 읽었다. 예전에 읽은 적이 있다고 생각했었는데, 이번에 읽어보니 아무래도 다른 책과 착각을 했던 것 같다. 처음 읽는 이야기였고, 무척 따뜻하고 아름다운 이야기였다. 일부 다듬어지고 덧붙여진 소설이라고는 하지만, 읽으면서 느낀 바로는 저자의 어린 시절이 그대로 녹아있는 자전적인 글이었다. 특히 할아버지는 그의 친할아버지의 모습 그대로시라고 한다.
나바호, 아파치, 수, 체로키... 저자는 우리가 '인디언'이라는 이름 하나로 인식하는 많은 민족들 중 모노라의 아이들인 체로키 혈통이다. 그들의 삶과 믿음이 저자의 글을 통해 부분적이라도 남겨진 것에 감사한다. 기록으로 남겨지지 않아 그대로 사라진 수많은 이야기들을 생각해보면 마음이 미묘해진다. 기록되어 있는 것들조차 다 알지 못하는데, 얼마나 수많은 삶과 이야기들이 존재했었을까- 아득하다.
함께 살아가는 것이 무엇인지 알고 있었던 현명한 사람들.
어릴 때부터 인디언들에 대한 막연한 동경심을 가지고 있었는데 지금에 와서는 동경으로만 남게 된 것 같아 씁쓸하다. 물론 도심에서도 그들처럼 타인을 존중하며 다정하게 행동하는 것이 불가능한 것은 아니지만, 보다 자연에 가까운 삶을 실천할 용기는 잃어버린 것 같다. 기억 속의 어린 나는 아무렇지 않게 개구리나 곤충들을 잡으며 뛰놀았었는데, 어느 시점을 기점으로 캠핑도 고민하는 사람이 되고 말았다. 때때로 기억 속의 나는 과연 나일까 의심스럽기도 하다. 해서 이 글 속의 '작은나무'처럼 자연 속에서 살아가는 삶은 무리겠지만, 그래도 동경하는 마음만은 여전하다.
포리스트 카터의 <내 영혼이 따뜻했던 날들>은 부모님의 갑작스런 사망으로 조부모님들과 함께 살게 된 다섯 살 아이의 이야기이다. 그가 겪었던 일화들을 하나의 챕터들로 엮었는데, 원제인 <The Education of Little Tree>처럼 그가 자연스럽게 배워나간 가르침들에 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새들의 소리를 통해 상황을 이해하기도 하고, 흙을 만져보며 시기를 가늠하기도 한다. 산에서 삶에 필요한 많은 것들을 받고 배운 산사람들은 사는 내내 바람과 소리와 빛으로 산에 연결되며, 죽어서는 그동안 받았던 것들을 돌려주며 산으로 돌아간다. 그 순환의 고리와 이치, 그리고 그것으로부터 벗어난 삶을 어린아이의 시선을 통해 바라보는 이 책은 소설이라기엔 너무 자전적이고, 회고록이라기엔 너무 아름답다. 때로 직접적으로 서술하지 않았음에도 독자만이 -화자는 이해하지 못한- 상황을 이해하게 되는 장면들을 읽다 보면 울컥하게 되기도 한다.
햇살이 좋았던 오후, 따뜻하고 즐거운 시간이었다.
- 언뜻 생각으로는 우리가 산을 짓밟으면서 앞으로 나갈 것 같았는데, 실제로 걸어보니 산이 손을 벌려 온몸으로 감싸주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발자국 소리가 조금씩 울리기 시작했다. 주위에 뭔가 꿈틀거리는 것들이 있었다. 만물이 다시 살아나기라도 하는 것처럼 속삭이는 듯한 소리와 숨소리들이 나무들 사이에서 새어 나오기 시작했다. 이제 춥지는 않았다. 길옆에서는 찰방거리는 소리와 퐁퐁 거리는 소리, 콸콸거리는 소리들이 뒤섞여 흘러갔다.
- "사슴을 잡을 때도 제일 좋은 놈을 잡으려 하면 안 돼. 작고 느린 놈을 골라야 남은 사슴들이 더 강해지고, 그렇게 해야 우리도 두고두고 사슴고기를 먹을 수 있는 거야. 흑표범인 파코들은 이 사실을 잘 알고 있지. 너도 꼭 알아두어야 하고." 여기까지 말한 할아버지는 웃음을 터뜨렸다.
“꿀벌인 티비들만 자기들이 쓸 것보다 더 많은 꿀을 저장해 두지... 그러니 곰한테도 뺏기고 너구리한테도 뺏기고, 우리 체로키한테 뺏기기도 하지. 그놈들은 언제나 자기가 필요한 것보다 더 많이 쌓아두고 싶어 하는 사람들하고 똑같아. 뒤룩뒤룩 살찐 사람들 말이야. 그런 사람들은 그러고도 또 남의 걸 빼앗아오고 싶어 하지. 그러니 전쟁이 일어나고, 그러고 나면 또 길고 긴 협상이 시작되지. 조금이라도 자기 몫을 더 늘리려고 말이다. 그들은 자기가 먼저 깃발을 꽂았기 때문에 그럴 권리가 있다고 하지... 그러니 사람들은 그놈의 말과 깃발 때문에 서서히 죽어가는 셈이야... 하지만 그들도 자연의 이치를 바꿀 수는 없어.”
- 이를테면 붉은여우는 개한테 쫓길 때면 원을 그리며 달리는 습성이 있다. 가운데에 있는 자신의 굴을 중심으로 대략 지름 1.5킬로미터 정도, 아니, 때로는 그보다 더 큰 원을 그리기도 한다. 이렇게 달아나면서도 여우는 계속 잔재주를 부린다. 왔던 길을 되돌아가기도 하고, 물을 건너거나 눈속임 발자국을 만들어놓기도 한다. 하지만 그 원을 포기하는 일은 절대 없다. 여우는 피곤해지기 시작하면 점점 원을 줄여간다. 결국에 가서 여우는 자기 굴에 몸을 숨기는데, 산사람들은 이걸 '굴에 들었다'고 한다. 달리면 달릴수록 붉은여우의 몸은 더워졌다. 그럴 때면 개들이 자취를 쉽게 잡아낼 수 있을 만큼 강한 냄새가 나는 침이 입에서 뚝뚝 떨어지고, 그럴수록 개들이 짖는 소리도 커져간다. 그 때문에 사람들은 여우의 침을 '뜨거운 자취'라고 불렀다. 반면에 회색 여우는 8자 모양을 그리면서 달아난다. 8자 가운데 선이 교차하는 바로 그곳에 회색 여우의 굴이 있다.
- 할머니의 이름은 보니 비(bonnie bee), '예쁜 벌'이었다. 어느 늦은 밤, 할아버지가 "I kin ye, Bonnie Bee"라고 말하는 걸 들었을 때, 나는 할아버지가 "I love ye"("당신을 사랑해" - 옮긴이)라는 뜻으로 말하고 있다는 걸 알았다. 그 말에서 느껴지는 분위기가 그랬던 것이다. 또 할머니가 이야기를 하다가 "Do ye kin me, Wales?"라고 물으실 때가 있다. 그러면 할아버진 "I kin ye"라고 대답하신다. 이해한다는 뜻이다. 할아버지와 할머니에게 사랑과 이해는 같은 것이었다. 할머니는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사랑할 수 없고, 또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을 사랑할 수는 더더욱 없다, 신도 마찬가지라는 이야기를 하시곤 했다.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서로 이해하고 계셨다. 그래서 두 분은 서로 사랑하고 계셨다. 할머니는 세월이 흐를수록 이해는 더 깊어진다고 하셨다. 할머니가 보시기에 그것은 유한한 인간이 생각하거나 설명할 수 있는 것들 너머에 있는 어떤 것이었다. 그래서 두 분은 그것을 'kin'이라고 불렀다.
- 사람들은 이 행렬을 눈물의 여로라 불렀다. 체로키들이 울었기 때문이 아니다. 그들은 울지 않았다. 사람들은 그 말이 낭만적으로 들리기 때문에, 또 그 행렬을 옆에서 구경하던 사람들의 동정심을 표현해주기 때문에, 그렇게 불렀다. 하지만 죽음의 행진은 절대 낭만적일 수 없다. 과연 누가 어미의 팔에 안긴 채 뻣뻣하게 죽어 있는 아기, 어미가 걸어가는 동안 감기지 않은 눈으로 흔들거리는 하늘을 노려보고 있는 아기를 소재로 시를 지을 수 있겠는가? 과연 누가 밤이 되면 아내의 주검을 내려놓고 온밤 내내 그 옆에 누워 있다가 아침이 되면 일어나 그 주검을 옮겨가야 하는 남편과, 장남에게 막내의 시신을 안고 가라고 말해야 하는 아버지... 그리고 쳐다보지도... 말하지도... 울지도... 고향산을 떠올리지도 않는 이들을 소재로 노래할 수 있겠는가? 그것은 절대 아름다운 노래가 될 수 없을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 행렬을 눈물의 여로라 불렀다 (1838~1839년에 걸쳐 1만 3천여 명 정도의 체로키들이 차례로 오클라호마의 보호구역으로 강제 이주당했다. 1,300킬로미터의 행진 중에 추위와 음식 부족, 병, 사고 등으로 무려 4천여 명 정도의 체로키들이 죽었다고 한다 - 옮긴이).
- 할머니는 사람들은 누구나 두 개의 마음을 갖고 있다고 하셨다. 하나의 마음은 몸이 살아가는 데 필요한 것들을 꾸려가는 마음이다. 몸을 위해서 잠자리나 먹을 것 따위를 마련할 때는 이 마음을 써야 한다. 그리고 짝짓기를 하고 아이를 가지려 할 때도 이 마음을 써야 한다. 자기 몸이 살아가려면 누구나 이 마음을 가져야 한다. 그런데 우리에게는 이런 것들과 전혀 관계없는 또 다른 마음이 있다. 할머니는 이 마음을 영혼의 마음이라고 부르셨다. 만일 몸을 꾸려가는 마음이 욕심을 부리고 교활한 생각을 하거나 다른 사람을 해칠 일만 생각하고 다른 사람을 이용해서 이익 볼 생각만 하고 있으면 영혼의 마음은 점점 졸아들어서 밤톨보다 더 작아지게 된다. 몸이 죽으면 몸을 꾸려가는 마음도 함께 죽는다. 하지만 다른 모든 것이 다 없어져도 영혼의 마음만은 그대로 남아 있는다. 그래서 평생 욕심부리면서 살아온 사람은 죽고 나면 밤톨만 한 영혼밖에 남아 있지 않게 된다. 사람은 누구나 다 다시 태어나게 되는데, 그런 사람이 다시 세상에 태어날 때에는 밤톨만 한 영혼만을 갖고 태어나게 되어 세상의 어떤 것도 이해할 수 없게 된다.
- 몸을 꾸려가는 마음이 그보다 더 커지면, 영혼의 마음은 완두콩알만 하게 줄어들었다가 결국에는 그것마저도 완전히 사라지고 만다. 말하자면 영혼의 마음을 완전히 잃게 되는 것이다. 그런 사람들은 살아 있어도 죽은 사람이 되고 만다. 할머니는 어디서나 쉽게 죽은 사람들을 찾아낼 수 있다고 하셨다. 여자를 봐도 더러운 것만 찾아내는 사람, 다른 사람들에게서 나쁜 것만 찾아내는 사람, 나무를 봐도 아름답다고 여기지 않고 목재와 돈덩어리로만 보는 사람, 이런 사람들이 죽은 사람들이었다. 할머니 말씀에 따르면 그런 사람들은 걸어 다니는 죽은 사람들이었다.
- 영혼의 마음은 근육과 비슷해서 쓰면 쓸수록 더 커지고 강해진다. 마음을 더 크고 튼튼하게 가꿀 수 있는 비결은 오직 한 가지, 상대를 이해하는 데 마음을 쓰는 것뿐이다. 게다가 몸을 꾸려가는 마음이 욕심부리는 걸 그만두지 않으면 영혼의 마음으로 가는 문은 절대 열리지 않는다. 욕심을 부리지 않아야 비로소 이해라는 것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반대로 더 많이 이해하려고 노력하면 영혼의 마음도 더 커진다. 할머니는 이해와 사랑은 당연히 같은 것이라고 하셨다. 이해하지도 못하면서 사랑하는 체하며 억지를 부려대는 사람들이 있긴 하지만, 그런 사랑은 진정한 사랑이 아니라고 하시면서. 그 말을 듣고 나는 모든 사람을 잘 이해하기로 마음먹었다. 밤톨만 한 영혼을 갖고 싶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 영혼의 마음이 자꾸자꾸 커지고 튼튼해지면, 결국에는 지나온 모든 전생의 삶들이 보이고 더 이상 육신의 죽음을 겪지 않는 단계에 도달하게 된다고 할머니는 말씀하셨다. 할머니는 내 비밀 장소에서 그런 생명의 순환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지켜볼 수 있을 것이라고 하셨다. 모든 것이 새롭게 탄생하는 봄이 되면(설사 그것이 그냥 생각일 뿐이라 해도 무엇인가가 태어날 때는 항상 그렇듯이) 흔들림과 소란이 일어난다. 영혼이 다시 한번 물질적인 형태를 갖추려고 발버둥 치기 때문이다. 그래서 봄에 부는 매서운 바람은, 아기가 피와 고통 속에서 태어나는 것처럼 탄생을 위한 시련이다.
- 보름달이 꽉 찼을 때 체로키들은 흰 참나무 숲에서 잔치를 벌였다. 둥글고 노란 달님 아래서 모두들 춤을 추었다. 그랬더니 흰 참나무들도 가지를 서로 스치거나, 가지로 체로키들을 건드리면서 함께 춤추고 노래 불렀다. 또 다른 나무들을 구하기 위해 자기 목숨을 내던진 그 참나무를 애도하는 노래도 불렀다. 그 느낌이 워낙 강해서 할머니는 공중으로 붕 떠오르는 듯한 착각마저 들었다고 하셨다.
"작은 나무야, 이런 이야기는 절대 하면 안 된다. 백인들의 세상에서 그런 이야기를 해봤자 아무 쓸모도 없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넌 반드시 이 이야기를 알아둬야 해. 그 때문에 내가 너한테 얘기해주는 거란다."
그제서야 난 영혼이 빠져나간 마른 통나무만을 땔감으로 쓰는 이유를 알았다. 또 그때서야 비로소 숲과 산에도 생명이 있음을 알았다.
"너의 외증조부는 그렇게 이해심이 많은 사람이어서 그렇게 강하셨을 거야... 다음번 생에서도 그렇게 이해심이 많으실 거고... 나도 그렇게 강해졌으면 좋겠구나. 그러면 네 외증조부를 이해할 수 있을 것이고, 서로의 영혼을 이해할 수 있을 터이니...”
- 할아버지는 그런 사람들을 '통 중독자'라 불렀다. 나무 그루터기에 고인 물을 통 속에 오래 담아두었다가 그런 사람들에게 팔면 통 냄새가 물씬 날 테니까 좋아라고 마실 거라고 욕을 하시면서. 사실 할아버지는 위스키 통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그 모든 소동에 대해서 불같이 화를 내시며 이렇게 퍼붓곤 하셨다.
"그런 소동은 확인해보면 알겠지만, 몇 년 치 위스키를 한꺼번에 갖출 수 있는 부자 회사들이 퍼뜨린 게 틀림없어. 이런 식으로 해서 통 냄새가 밸 만큼 위스키를 오래 저장해둘 수 없는 가난한 제조업자들을 쥐어짜는 거야. 그들은 엄청난 돈을 뿌려가면서 자기들 위스키가 다른 위스키들보다 더 좋은 통 냄새가 난다고 선전을 해대지. 이런 선전에 넘어가는 닭대가리같이 멍청한 놈들은 무슨 수를 써서는 그런 술을 마시려고 하고, 하지만 아직도 세상에는 통 중독자가 되지 않은 지각 있는 사람들이 있어서 가난한 제조업자들이 그런대로 살아갈 수가 있는 거야."
(리뷰자 주 : 오크통에서 숙성한 위스키를 좋아하는 닭대가리가 여기 있습니다...)
- 씨 뿌리는 때가 다가오면 우리는 바빠진다. 그때를 정하는 사람은 할아버지였다. 할아버지는 흙속에 손가락을 찔러 넣어보고는 온도를 재었다. 할아버지가 머리를 흔들면, 아직 씨 뿌릴 때가 되지 않았다는 뜻이다. 씨 뿌리기에는 이르고 위스키를 만드는 주간도 아닐 때, 우리는 고기를 잡거나 열매를 따거나, 혹은 흔히 그렇듯이 숲 속을 돌아다니며 시간을 보냈다.
- 씨 뿌리기를 할 때는 주의해야 할 것들이 있다. 씨를 뿌릴 수 없는 때가 있기 때문이다. 땅 밑에서 자라는 순무나 감자 같은 것들은 달 없는 밤에 심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순무와 감자는 연필 크기만큼 밖에 굵어지지 않는다. 반대로 땅 위에서 자라는 옥수수나 콩, 완두콩 같은 것들은 달빛 아래에서 심어야 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그다지 많은 수확을 기대할 수 없다. 이 정도는 기본이고, 그 외에 다른 주의사항들도 많다. 대개의 사람들은 달력에 실린 별자리를 보고 씨 뿌릴 시기를 결정한다. 예를 들어 덩굴 콩을 심으려면 쌍둥이자리일 때가 가장 좋다. 그렇지 않으면 꽃은 만발해도 열매는 맺지 못한다. 이처럼 작물마다 파종하기에 적당한 때가 달력에 표시되어 있다. 하지만 할아버지에겐 달력이 필요 없었다. 별의 위치를 보고 직접 판단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 산속 오두막집으로 찾아오는 새들은 하나같이 뭔가 징조를 나타낸다. 산사람들은 누구나 그렇게 믿었다. 그건 나와 할아버지도 마찬가이였다. 여러분 또한 원한다면 믿을 수 있다. 사실이 그러니까. 할아버지는 어떤 새가 어떤 징조를 나타내는지 누구보다 잘 알고 계셨다. 굴뚝새가 오두막집에 둥지를 틀고 사는 것은 좋은 징조였다.
- 한 번은 의자에 앉으려고 하다가 내가 앉는 의자 위에 긴 칼이 놓여 있는 것을 발견했다. 할아버지의 칼만큼 긴 그 칼은 술 장식이 달린 사슴가죽 칼집 속에 들어 있었다. 윌로 존이 나에게 선물로 주는 것이라고 할머니가 말해주셨다. 이것이 인디언이 선물을 주는 방법이다. 인디언은 절대 무슨 뜻을 달거나 이유를 붙여서 선물하지 않는다. 선물을 할 때는 그냥 상대방의 눈에 띄는 장소에 놔두고 가버린다. 선물을 받는 쪽은 자신이 그것을 받을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으면 받지 말아야 한다. 따라서 자신에게 그럴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고 선물을 받은 사람이 보낸 사람에게 고맙다고 인사를 하거나, 다른 사람들에게 자랑하거나 하는 짓은 어리석은 일이라고 한다. 맞는 말이었다.
- 할아버지는 반이 스코틀랜드계 혈통이었지만 자신을 인디언으로 여기고 있었다. 그런 예는 다른 사람들한테서도 찾을 수 있다. 저 위대한 붉은 독수리와 빌 웨더포드, 맥길버리 황제, 매킨토시 같은 사람들이 모두 그랬다. 그들은 인디언들이 그러하듯이 자신들을 자연에 내맡겼다. 자연을 정복하거나 이용하려 들지 않고 자연과 더불어 살아간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자신이 인디언이라고 생각하길 좋아했고, 그 마음은 갈수록 커져서 마침내는 자신들을 백인으로 생각할 수 없게 되었다.
- 할아버지가 이런 이야기를 해주신 적이 있다. 인디언은 뭔가 팔고 싶은 물건이 있으면 그것을 백인의 발 곁에 놓는다. 백인이 전혀 갖고 싶어 하지 않으면 인디언은 그 물건을 집어 들고 말없이 가버린다. 이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백인들은 그것을 '인디언 선물'이라고 부른다. 주었다가 도로 가져가는 선물이라는 뜻이다. 이것은 사실과 다르다. 인디언이 누군가에게 선물을 줄 때는 아무 형식도 차리지 않고 그저 상대방의 눈에 띄는 곳에 선물을 놓아두고 그냥 가버린다.
- 그러면 사람들은 다음 일요일날 교회에 올 때, 그들에게 도움이 될 만한 것들을 가져오곤 했다. 우리는 여름에는 남아도는 야채를 듬뿍 가져갔고, 겨울에는 고기를 가지고 갔다. 한 번은 할아버지가 히커리 나무로 틀을 짜고, 앉는 자리에는 사슴가죽을 댄 의자를 만들어, 불이 나서 가구를 잃은 가족에게 준 적도 있었다. 할아버지는 그 집 남자를 교회 뜰 한쪽 구석으로 데리고 가 의자를 건네주고 난 다음, 한참 시간을 들여 그것을 만드는 방법까지 자세히 가르쳐주셨다. 할아버지는, 남에게 무언가를 그냥 주기보다는 그것을 만드는 방법을 가르쳐주는 게 훨씬 좋은 일이다, 받는 사람이 제 힘으로 만드는 법을 배우면 앞으로는 필요할 때마다 만들면 되지만, 뭔가를 주기만 하고 아무것도 가르쳐주지 않으면 그 사람은 평생 동안 남이 주는 것을 받기만 할지도 모른다, 그러면 그 사람은 끊임없이 다른 사람에게 의존하게 되기 때문에 결국 자신의 인격이 없어지고 자신의 인격을 도둑질당하는 셈이 되지 않겠는가, 이런 식으로 하면 그 사람에게 친절한 것이 도리어 불친절한 것이 되고 만다고 하셨다.
- 와인 씨는 나에게 가르쳐준 연필 깎는 방법은 절약하는 방법이라고 하셨다. 인색한 것과 절약하는 것은 다르다. 돈을 숭배하여 돈을 써야 할 때도 쓰지 않는 일부 부자들만큼이나 나쁜 게 인색한 것이다. 그런 식으로 살면 돈이 그 사람의 신(神)이 되기 때문에 그 사람은 인생에서 어떤 착한 일도 하지 못한다. 하지만 써야 할 때 돈을 쓰면서도 낭비하지 않는 것은 절약하는 것이다.
- 와인 씨는 버릇은 또 다른 버릇을 만들어내게 마련이라서, 나쁜 버릇을 가지고 있으면 결국 성격도 나빠진다고 했다. 그래서 돈을 낭비하는 버릇이 있는 사람은 시간을 낭비하게 되고, 그다음에 생각을 허술히 낭비하게 되며, 결국 나중에 가서는 모든 걸 낭비하게 된다. 정치가들은 모든 사람들이 이렇게 허술해지면 권력을 쥘 절호의 기회가 왔다고 여긴다. 그리하여 정치가는 느슨한 사람들 위에 군림하다가 얼마 안 가 독재자로 변한다. 와인 씨는 절약하는 사람들은 절대 자기 머리 위에 독재자를 갖는 법이 없다고 하셨다. 옳은 말씀이었다.
- 그는 그 굵다란 막대기로 내 등을 내리쳤다. 처음에는 몹시 아팠지만, 그래도 울지는 않았다. 할머니가 예전에 가르쳐주신 적이 있다. 내가 발톱을 뽑아야 했을 때, 인디언이 고통을 참는 방법을... 인디언들은 몸의 마음을 잠재우고, 대신 몸 바깥으로 빠져나간 영혼의 마음으로 고통을 느끼지 않고 고통을 바라본다. 몸의 고통을 느끼는 것은 육체의 마음뿐이고, 영혼의 마음은 영혼의 고통만을 느낀다. 그래서 나는 매를 맞으면서 몸의 마음을 잠재웠다.
- 월로 존은 빙긋이 웃었지만 더 이상 말은 하지 않았다. 윌로 존은 할아버지와 내가 거기 있다는 사실도 잊은 듯, 산너머 아득한 서쪽만을 바라보았다. 드디어 그는 정령들에게 자신이 가고 있음을 알리는 마지막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그것은 죽음의 노래였다.
- 낮게 시작된 그 노랫소리는 점차 높아지는가 싶더니 어느새 기운 없이 사그라들기 시작했다. 좀 지나자 그 노랫소리는 바람 소리인지 윌로 존의 목소리인지 더 이상 구별이 되지 않았다. 목 근육의 움직임이 점점 약해지는 데 따라 그의 눈빛도 희미해져 갔다. 할아버지와 나는 그의 영혼이 눈 속 깊숙이 빨려 들어가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그의 영혼이 몸을 떠나는 것이 느껴졌다. 그러고 나자 한 줄기 세찬 바람이 우리 사이를 지나쳐 가더니 늙은 전나무 가지를 흔들어댔다. 할아버지는 그 바람이 윌로 존이라고 하셨다. 그는 그만큼 강한 영혼을 갖고 계셨다. 우리는 그 바람이 산등성이에 서 있는 높은 나뭇가지들을 휩쓸고 난 뒤 산허리로 달려 내려가 까마귀 떼를 공중으로 날아오르게 하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까마귀들은 까악 까악 울면서 윌로 존과 함께 산 아래로 내려갔다. 할아버지와 나는 윌로 존이 산등성이와 산봉우리들 저 너머로 사라져 가는 모습을 언제까지나 지켜보고 있었다. 우리는 오랫동안 그렇게 앉아 있었다.
- "이번 삶도 나쁘지는 않았어. 작은 나무야, 다음번에는 더 좋아질 거야. 또 만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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