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 : 금기진
출판 : 모자이크
출간 : 2003.08.05
원래는 다른 책을 읽을 계획이었는데, 갑자기 시작하게 되었다.
무척 흥미롭게 읽었는데 저자가 해당 인물에 관해 우호적인 입장이라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눈에 띄는 부분들이 곳곳에 있었다. 저자의 해석에 완전히 동의하는 것은 아니지만 성경 구절이나 신화, 또는 역사적 인물에 대한 새로운 접근도 신선했다. 이 책이 2003년에 출간되었다는 점에서도 놀랍고, 당시가 지금으로부터 벌써 약 20년 전이라는 점도 놀랍다.
즐겁게 읽었다.
그대 뜻하는 바를 행함이 율법의 전부로다
Do what thou wilt shall be the whole of the Law
사랑이 곧 율법이되, 뜻 아래의 사랑이로다
- 1875년 10월 12일, 알레이스터 크롤리는 자정이 되어 지평선에서 사자좌(獅子座)가 막 떠오를 무렵 영국의 유서 깊은 워릭셔(Warwickshire) 고을에 위치한 소읍 리밍턴(Leamington)에서 태어난다. 그러고 보니 이 워릭셔란 고을은 역사의 행로를 영원히 뒤바꿔 버린 인물을 두 명씩이나 배출했던 셈이다. 첫 번째는 위대한 문호 윌리엄 셰익스피어(1564년 출생)였고, 두 번째가 바로 본명이 알렉산더인 이 크롤리 가문의 장손이었다.
- 그러나 이런 기기묘묘한 주술들을 터득한 뒤에도 그의 마음속 지워지지 않는 공허감이 언제나 그를 괴롭혔다. 그의 마법은 그 자체만 놓고 본다면 분명히 성공적인 결과를 가져왔으나 청년 크롤리가 마음 깊은 곳에서 가장 간절히 바랐던 것, 신성(神性)과의 하나 됨은 여전히 머나먼 꿈에 불과했던 것이다. 신과 인간 사이의 심연을 건너지 못하는 것, 이는 스물다섯의 나이에 이미 온갖 주술에 통달한 크롤리에게 허탈한 절망감을 안겨 주었다. 크롤리가 고통스러운 방황을 시작한 것도 바로 이 시기였다. 나는 왜 마법을 하며 마법의 궁극적인 의미는 무엇인가. 이 모든 주술에 도통한 뒤에도 왜 나는 하늘과 교감할 수 없는가?
- 이런 질문들은 결국 그의 어린 시절의 괴로운 일들, 그리스도교의 광신주의에 의해 고문당했던 악몽 같은 기억들을 불러일으켰다. 나는 왜 그런 식으로 고통받아야만 했으며 창조주께서는 왜 고통을 창조했을까. 나는 마법의 길이 아닌 평범한 인간의 길을 갈 수는 없는 걸까? 하지만 해답을 구할 수 없는 이런 질문들은 그의 번민을 해결해 주기는커녕 마치 유령처럼 그의 뇌리를 떠나지 않고 괴롭힐 뿐이었고, 해답을 갈구하던 크롤리는 절망적인 심정으로 비밀 원수들에게 기도를 올려 자신에게 가르침을 내려 주실 것을 요청하기에 이른다. 바로 이 순간, 크롤리의 인생을 바꿔 놓을 한 인물이 등장한 그는 오스카 에켄스타인(Oscar Eckenstein)이다.
- "친구여, 마법을 그만두게. 마법의 저 모든 매혹적인 환상과 낭만도 다 같이 던져 버리게. 자네는 마음의 힘을 집중시키는 법부터 배워야 해. 자네의 마음은 떠도는 마음이거든. 그래 가지고는 마음이란 아무런 힘도 없는 도구에 지나지 않는다네."
- 인간이 가진 마음의 본성은 한 곳에 머물지 않고 끊임없이 변화하려고 하는 것이다. 이 마음의 움직임을 통제하는 법을 익히지 않는 한 인간은 스스로의 주인이라고 할 수 없다. 하지만 이 말에도 완벽주의자였던 크롤리는 언제나처럼 입증을 원했다.
- 오스카는 눈을 감고 마음속으로 연필을 하나 그려 보라고 했다. 그리고 단 5분만이라도 눈앞에 떠오른 연필의 영상을 변형 없이 간직할 수 있는가 보라고 크롤리에게 제의한다. 아니나 다를까 크롤리가 눈앞에 떠올린 연필의 영상은 끊임없이 그 길이, 형체, 색상을 변화하려고 발버둥 쳤다. 변화하려는 연필의 영상을 있는 그대로 간직하는 데는 5분은커녕 30초도 고통스러운 노력을 필요로 했다. 원래 그 자체가 움직이는 대상, 예를 들어 시계추 같은 물체를 시각화하기는 더 쉽기는 했는데 시계추 영상의 경우에는 문제가 뭐냐 하면 그 추가 움직이는 속도와 박자, 움직임의 방향을 끊임없이 변화하려고 하는 것이었다. 재미있지 않은가.
- 이렇게 오스카 에켄스타인의 지도 아래 청년 크롤리는 라자 요가(Raja Yoga)의 수행을 시작하여 마음의 힘을 조절하는 법을 조금씩 배우기 시작한다. 하지만 이 요가 수행이 이들의 등반 계획을 방해한 것은 아니어서 1901년 3월 크롤리와 에켄스타인은 예정대로 함께 멕시코의 높다고 하는 산들을 대부분 정복한다.
- 이렇게 나치스의 측근에 조직원을 두고 있던 크롤리는 자신의 위치를 십분 활용하여 영국의 대외 첩보기관인 MI6에 정보를 제공하기 시작한다. 이것은 동방성당기사단의 창설자인 테오도르 로이스 자신이 제1차 세계대전 당시 첩보원으로 활약했다는 것과 크롤리의 뒤를 이어 기사단의 총통에 임명되는 카를 게르머 역시 정보부 일을 했다는 사실로 미루어 볼 때 그다지 놀라운 일은 아니다. 이런 막강한 인맥을 활용하여 크롤리는 이미 1920년대부터 MI6에 나치스와 관련된 정보를 제공하였다.
- 사실 마법과 첩보의 관계는 그 역사가 아주 깊다. 엘리자베스 1세 시대의 마법사이자 점성학자였고 여왕의 비밀요원으로 활약하여 '007' 이란 암호명을 창조한 인물이기도 했던 존 디 (John Dee) 박사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도 있다. 훗날 역시 영국 정보부 요원이었던 이언 플레밍은 이 존 디의 암호명에서 힌트를 얻어 저 유명한 제임스 본드의 신화를 창조하게 된다.
- 그런데 여기에서 또 한 가지 재미있는 사실은 알레이스터 크롤리와 이언 플레밍은 서로 안면이 있는 사이였다는 것이다! 이 두 비범한 인물이 한자리에 모이게 되었던 계기는 바로 나치스의 간부였던 루돌프 헤스의 스코틀랜드 '망명'이었다. 1941년 당시 해군 정보부를 위해 일하고 있던 이언 플레밍은 크롤리가 제공하는 정보를 통해 다수의 나치스 간부들이 오컬트와 마법에 연루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중에서도 점성학의 광신도였던 루돌프 헤스는 한때 나치스의 부당수였고 내각에 들어간 후에도 손꼽히는 권력의 소유자였으나, 히틀러가 군사문제와 외교정책에 몰두하고 있던 1930년대 말부터 제2차 세계대전 초기까지 권력이 차츰 약화되어 마르틴 보르만을 비롯한 다른 간부들의 견제는 그의 영향력을 더욱 약화시켰다고 한다.
- 하지만 알렉산데르 6세는 이런 스캔들 만들기뿐만 아니라 교황으로서의 직무에도 충실했는데, 특히 1492년 콜럼버스가 신대륙을 발견한 후 당시의 강대한 해양국가였던 에스파냐와 포르투갈이 해양 관할에서 치열한 경쟁을 벌이게 되자 알렉산데르 6세는 이를 조정하기 위하여 1493년에 칙서로 두 나라의 해양활동 영역에 대한 경계를 설정하였고, 1494년에는 그것을 기초로 두 나라가 조약을 체결하여 세계의 해양을 분할 점유하게 된다. 이 역사적인 업적은 알렉산데르 6세를 단순히 '변태 교황'으로 단정 짓는 것을 망설이게 만든다.
- 그러나 뭐니 뭐니 해도 알렉산데르 6세의 교황으로서의 업적의 절정은 바로 사보나롤라의 처형일 것이다. 지롤라모 사보나롤라(Girolamo Savonarola, 1452~98)는 도미니크 파의 수도승으로서 금욕과 고통에 대한 병적인 집착의 소유자였으며 당시 르네상스 예술이 아름답게 묘사했던 삶에 대한 사랑과 성애(性愛)의 기쁨을 마귀의 계략으로 치부하고는 <요한계시록>에 묘사된 재앙으로 양민들을 겁주었던 광신도였다. 사실 당시 이탈리아의 르네상스는 이 사보나롤라 혼자서 망쳐놓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 현대에 와서도 미술사가들은 당시 피렌체 미술이 쇠퇴했던 이유를 프랑스 군대의 침입과 사보나롤라의 등장으로 보고 있다.
- 하지만 이 모든 것들, 독자들이 읽고 있는 이 책에 등장하는 수많은 사건들과 인물들을 떠나서라도 중요한 단 한 가지가 있다면 그것은 텔레마의 성스러운 경구 "그대 뜻하는 바를 행하라"로 함축되는, 자신의 내면을 탐구하여 영혼의 참된 뜻을 발견한 뒤 모든 장애물을 무너뜨리고 그 뜻을 실현하라는 크롤리의 메시지일 것이다.
- 이것은 결코 쉬운 것이 아니다. 필자는 여기에서 다시 한번 강조하는데, "그대 뜻하는 바를 행하라"는 결코 자기 하고 싶은 대로, 제 멋대로 행동하라는 방종의 면죄부가 아니다. 욕망과 참뜻은 절대로 동의어가 아니며, 사실 어떻게 보면 사소한 욕망이야말로 자신의 참된 뜻을 실천하는 데 가장 강력하고 교활한 장애물이다. 자신의 참뜻을 실천하는 길을 간다는 것, 그것은 말처럼 그렇게 멋진 일만은 아닐 것이다. 때로는 자신의 방문을 걸어 잠그고 홀로 눈물을 흘리며 고통과 외로움을 참아야 하는 때도 다가온다. 마법은 결코 현실로부터의 속 편한 도피처가 아니며 오히려 세상과의 지독한 싸움의 시작이다.
- 하지만 이러한 서양의 영적인 탐구는 그리스도교의 탄압으로 인해 지하로 숨어들어야만 했다. 이 지혜들은 일반인들이 쉽게 접할 수 없는 비밀스러운 학문이 되어 오컬트, 즉 은비학(隱秘學)이라는 명칭으로 불리며 오직 소수의 선택된 자들에게만 이 눈부신 힘과 지혜가 주어졌던 것이다. 이 힘은 세상의 운명을 바꾸어 놓을 수 있는 힘이었으며 이 지혜는 신의 뜻을 헤아려 우주의 가장 심원한 비밀조차 알아낼 수 있는 지혜였기에 오직 선택된 자들만이 은비학을 접할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 하지만 이렇게 선택된 자들조차도 끊임없는 시험과 고난을 극복한 후에야 이런 지식을 활용하는 것이 허락되었으니 그런 관문들을 모두 통과한 사람의 수가 얼마나 적었겠는가는 굳이 말할 필요가 없으리라.
- 이렇게 은비학이 지닌 신성한 힘과 지혜 가운데, 일정한 규칙에 따라 제식을 거행하여 자신이 가진 '뜻'의 힘으로 현실에 변화를 가져오는 행위를 마법이라고 부른다. 온라인 게임이나 판타지 소설에 나오는 마법은 사실 그 형태가 상당히 과장된 것으로, 실제의 마법은 눈에 보이지 않는 방법으로 조용히 현실에 변화를 가져온다.
- 예를 들어 이웃집 아가씨의 사랑을 얻는 주술을 행하면 그 아가씨와 자꾸만 거리에서 마주치게 된다든가, 이야기를 나눌 계기가 생긴다든가 하여 자연스럽게 사랑에 빠질 수 있는 여건이 형성된다. 물론 위의 예는 매우 일상적인 경우이고, 숙련된 마법사는 한나라의 운명을 바꾸어 버릴 수도 있다. 실제로 인류의 역사를 배후에서 만들어 온 것은 이들 마법사들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알렉산드로스 대왕에게 세계 정복의 야망을 불어넣었던 넥타네부스에서 로마 제국의 폭정과 맞서 싸웠던 아폴로니오스, 엘리자베스 1세의 첩보원으로 활약했던 존 디 박사와 피의 프랑스 대혁명을 경고했던 불로불사의 생 제르맹 백작, 마르틴 루터의 종교개혁을 지원했던 장미십자단과 간부진 대다수가 흑마법에 연루되어 있었던 나치 제3제국에 이르기까지 마법을 제외하고는 인간의 역사를 말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 필자가 이 책에서 소개하려는 인물 역시 평생을 바쳐 마법을연구했고 마법의 힘으로 세상을 바꿔 놓았던 사람이다. 이 비범한 인물의 이름은 바로 알레이스터 크롤리(Aleister Crowley,1875~1947)이다. 지금 이 순간까지 한국에서 크롤리는 그리스도교 관련 책자에 의해 악마의 하수인 내지 사교의 교주 정도로 간략히 소개된 것이 전부였다. 그밖에는 오지 오스본(Ozzy Osborne)의 명곡 <미스터 크롤리(Mr. Crowley)>의 주인공으로 헤비메탈 팬들에게 알려졌을 뿐이다. 이 책은 알레이스터 크롤리의 인생과 철학을 정식으로 소개하는 최초의 시도이다.
- 크롤리는 어떤 인물이었는가? 이 질문에 대답하기는 사실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크롤리는 후세를 위해 어떤 업적을 남겼는가? 이에 대한 대답을 한다는 것은 더욱 어려운 일이다.
- 이 재판은 크롤리가 <웃는 토르소 (Laughing Torso)>라는 책에서 자신을 흑마법사로 묘사한 미술가 니나 햄닛(Nina Hamnett)을 명예훼손죄로 고소한 데 따른 재판이었다. 이 자서전에서 햄닛은 크롤리가 이탈리아의 세팔루(Cefalú)에 위치한 '텔레마의 사원(Abbey of Thelema)'에서 자신을 따르는 제자들과 함께 엽기적인 마법 제식들을 행했으며 고양이를 제물로 바쳐 죽이고 그 피를 따라내 마시는 광경을 목격했다고 폭로했다. 크롤리는 햄닛의 이런 주장들이 터무니없으며 자신의 신사로서의 명예를 더럽혔다고 분개했고 결과는 민사소송으로 이어졌다. 더욱 흥미진진한 것은 원고 측(크롤리)과 피고 측(햄닛)이 각기 내세운 증인들이 재판의 성격상 모두 마법과 관련 있는 이들이라 증인 심문 기록을 읽노라면 가히 마법의 올스타 청백전을 방불케 한다는 점이다. 이 중 피고 측 증인 베티 메이(Betty May)는 크롤리 밑에서 마법을 배우다 수수께끼의 죽음을 당한 라울 러브데이(Raoul Loveday)의 아내로, 그녀는 크롤리가 주술을 걸어 자기 남편을 살해했다고 확신했다.
- 이에 맞서 원고측 증인으로는 '영국에 머물고 있는 독일인 상인'이라고 소개된 카를 게르머(Karl Germer)가 법정으로 불려 나왔다. 게르머는 크롤리가 독일에 머물던 중 자신의 집에서 묵었으나 그가 흑마법을 행하거나 옹호한다는 것은 금시초문이라고 밝혔다.
- 카를 게르머는 자신이 바로 마법의 대가이면서 고의로 이런 엉터리 증언을 하고 있다. 게르머는 제1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 정보부의 첩보원으로서 철십자 훈장을 받았고, 이 정보부 일을 통해 마법을 행하는 비밀조직인 동방성당기사단(東方聖堂騎士團, Ordo Templi Orientis)의 창설자이며 동료 첩보원이었던 테오도르 로이스(Theodor Reuss)를 만나 기사단에 가입하게 된 인물로, 크롤리 사후에는 그의 역할을 이어받아 동방성당기사단의 총수 자리까지 앉게 된다. 이런 사람이 크롤리를 도울 속셈으로 시치미 뚝 떼고 마법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척 백치 같은 대답으로 일관하고 있다. 그러나 피고 측 변호인은 크롤리를 궁지로 몰기 위한 또 다른 묘수를 짜낸다.
- "그대가 부려 밭을 갈아야 하는 짐승이 셋이 있으니 일각수(一角獸)와 말과 황소가 그들이라. 이것들을 그대는 세 개의 멍에로 두르되 하나의 채찍으로 부려야 하느니라."
- 여기에서 일각수란 언어를 상징하며 말은 행동을, 황소는 생각을 뜻한다. 이들을 하나의 채찍으로 부린다 함은 언어나 행동이나 생각이 자신의 뜻을 거스를 때마다 면도날 자해라는 하나의 훈련법으로 호되게 다스림을 말하는 것이다. 이런 고행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한 베티 메이는 경악하여 면도날을 창문 밖으로 집어던졌지만 그녀의 남편은 스승의 가르침을 진지하게 받아들였다. 명령대로 '나'라는 단어를 입 밖에 낼 때마다 자신의 몸을 가차없이 면도날로 그은 라울의 몸은 곧 베인 상처로 뒤덮였다고 한다(독자는 이 글을 읽으면서 오해가 없기를 바라는데, 우리말에서 나를 빼버리고 말하는 것은 전혀 어려운 일이 아니지만 주어가 거의 언제나 확실하게 표현되어야 하는 영어에서는 사정이 완전히 다르다).
- 알레이스터의 조부가 되는 에드워드 크롤리는 양조 사업으로 큰 돈을 벌어 크롤리 표 맥주와 샌드위치를 파는 가게 여럿을 소유했었다고 전해진다. 이 에드워드의 아들이자 알레이스터의 아버지가 되는 에드워드 2세는 이런 넉넉한 집안에 태어난 까닭에 생계를 위해 일할 필요가 없었다. 그는 넘쳐나는 시간을 종교적인 사색으로 보내다 스스로를 신께서 세상을 가르치기 위해 보낸 메신저로 여기게 되는데, 이런 그의 종교적 로맨티시즘은 훗날 아들 알레이스터에게 전혀 예상치 못했던 방향으로 대물림된다.
- 사실 크롤리 집안은 극도로 종교적인 분위기가 강했다. 앞서 언급된 그의 아버지 에드워드와 그리고 광기에 가까운 신앙심을 지녀 언제나 예수가 곧 재림하리라는 공포감 속에서 살았던 어머니 에밀리는 모두 플리머스 형제단(Plymouth Brethren)에 속하는 신도들이었다고 전해진다. 플리머스 형제단이란 1820년대 후반 아일랜드 사람 존 넬슨 다비(John Nelson Darby)에 의해 창설된 그리스도교의 한 근본주의적 종파로 기존의 교회들은 성경에 씌어진 바를 올곧게 따르고 있지 않다고 믿었다. 따라서 예수의 가르침을 거짓되게 가르치고 있다는 주장에서 시작하여 크리스마스는 이교(異敎)의 풍습이며, 세상은 기원전 4004년에 신께서 창조한 것이며, 성경들 중 유일하게 참된 성경인 킹 제임스 성경에 씌어진 말들은 하나부터 열까지 모두가 사실이라는 등 다소 독선적인 믿음을 가진 교파였다. 플리머스 형제단 특유의 핵심적인 교리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권위적인 성직(聖職)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는다. 따라서 성직이 존재하는 기존의 교회들은 부정하며, 그 어떤 교회나 성당을 방문하는 것도 죄악이다.
둘째, 킹 제임스 성경에 씌어 있는 내용은 <창세기> 1장부터 <요한계시록>의 마지막 장까지 모두가 진리이며 어떠한 은유도 암시도 문학적인 상징도 아닌 글자 그대로의 사실이다.
셋째, 따라서 요한계시록에 씌어진 바대로 아마겟돈과 예수 재림은 임박한 것이다.
- 크롤리에 따르면 특히 예수 재림에 대한 이들의 믿음은 정말로 광신적이어서 심지어 토지를 임대한다든지 생명보험에 가입한다든지 하는 따위의 미래를 대비하는 어떤 일도 예수 재림이 임박했음을 의심하는 행위로 간주되었다고 한다. 내일모레 예수가 재림한다면 이런 것들이 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 급기야 콘스탄티누스는 313년의 밀라노 칙령을 통해 그리스도교를 공인하기에 이른다. 이어 325년에 그가 소집한 니케아 종교회의에는 알렉산드리아와 안티오크와 아테네 및 예루살렘 등지에서 모여든 그리스도교의 지도자들뿐만 아니라 바커스 신을 모시는 사제들, 메르쿠리우스 신과 유피테르 신과 다곤(Dagon) 신 그리고 오시리스 신과 이시스 여신의 사제들, 또한 콘스탄티누스가 섬기던 솔 인빅투스의 사제들 등 수많은 다신교의 지도자들도 소집되었다.
- 이 종교회의의 목적은 서로 갈등을 빚는 여러 다신교들을 통합하여 콘스탄티누스와 로마 제국이 조종할 수 있는 하나의 보편적(가톨릭) 교회를 창설하는 것이었다. 바로 이 종교회의에서 전생(reincarnation)과 같은, 초기 그리스도교가 지녔던 믿음들이 이단으로 규정되었으며 또한 예수란 이름과 그리스도라는 호칭이 하나로 합쳐져 '예수 그리스도' 혹은 '그리스도 예수'라는 이름이 탄생하였다. 사실 '예수' 란 드루이드교의 구세주인 헤수스(Hesus)와 디오니소스 신의 다른 이름인 이아시우스(Iasius), 그리고 이스라엘의 여호수아(Jehoshua)와 이집트의 이우사(Iusa)의 혼합이며 '그리스도'는 힌두교의 크리슈나 혹은 크리스토스(Christos)와 이집트의 'KRST' 그리고 유대민족의 기름부음 받은 자(the Anointed One) 전설의 혼합이었다.
- 신약성서 전체에서 예수란 이름이 수백 번 나오고 그리스도란 이름이 수십 번 나오지만 이 두 이름이 붙여져 '예수 그리스도'라고 등장하는 경우는 단지 다섯 번이다. <마태복음>에서 두 번, <마가복음>에서 한 번, <요한복음>에서 두 번인데 이 예수 그리스도란 이름은 콘스탄티누스의 지령 아래 복음서들을 편집했던 에우세비우스(Eusebius)에 의하여 각 대표적인 복음서들의 처음 부분에 삽입되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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