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자가 흐르는 이야기/Book1

[피오나 로스] 거장의 은밀한 식탁 - 위대한 예술가 45인의 맛있는 인생

일루젼 2022. 3. 29. 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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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피오나 로스 / 김민수

원제 : Pediatric Nursing Caring for Children and Their Families 3/e(International Edition) 
출판 : 이론과실천 
출간 : 2017.08.17 


     

요리에 관한 글은 상상력을 자극하는 재미가 있다. 처음에는 낯설게만 느껴지던 식재료나 조리법이 어느 순간 친숙하게 느껴질 때, 나는 어쩐지 그 음식의 맛을 알 것도 같아진다. (물론 그게 내가 그 레시피대로 성공적인 요리를 할 수 있다거나 시도해보고 싶어졌다는 의미는 아니다)

 

단점이라면 식욕이 샘솟아 자주 배가 고파진다. 이번 책에서는 주로 버터를 기반으로 한 요리들이 많이 소개되었는데, 그래서인지 블루밍 어니언이 먹고 싶어져서 혼났다. 직접 만들어 먹을 엄두는 나지 않지만 파는 곳도 없다 보니 아마도 그냥 계속 '먹고 싶다'에 멈춰 있을 것 같다. (한여름쯤엔 한 번 시도할지도 모르겠다. 그때는 맛있는 맥주 안주가 절실해질 테니...) 

 

이런저런 책들을 읽다 보니 삽화가 갖는 힘에 대해서도 생각해보게 된다. 예전의 나는 삽화가 없는 소설을 선호하는 편이었는데, 한 번 이미지를 보게 되면 아무래도 영향을 받게 되는 게 싫었다. 완전히 백지에서 상상하는 재미를 잃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최근에 와서는 생각이 조금 달라지고 있다. 인물에 관해 깊게 다룬 작품에서라면 -특히 다양한 인물이 등장한다면- 이미지가 주는 직관적인 인상과 오래 남는 기억이 필요할 수도 있겠다 싶다. 잘 조사하고 설계된 이미지라면 특히나 스스로는 상상해낼 수 없었던 영역까지 그려내 주는 힘이 있다고 생각한다.

 

<GV빌런 고태경>을 읽으며 영화 제작에 대해 잠시 관심이 생겼었다. 누군가 말하기를, 잘 만들어진 영화는 소소한 배경 설정에서 드러난다고 했다. 아무도 살펴보지 않을 스쳐가는 한 장면일지라도 영화를 제작하는 사람은 왜 그 자리에 그 책을 꽂아두었는지, 왜 그 소품이 등장하는지에 대해 '모든 이유'를 고려해서 '선택'을 한 것이라고. '자신이 보고 있는 것'을 '내가 아닌 사람'에게 최대한으로 그에 가깝게 '보게 만들기' 위해서 선택한 것들이라고. 그런 작은 부분들에서 개연성과 일관성이 드러나지 않는 영화는 그저 '예쁘장한 이미지 놀음'이라고.

 

상상을 통해 이미지를 다듬는 연습을 하다보니 활자를 살아 움직이는 이미지로 만들어내기 위해, 특히나 더 생동감 있고 '의미 있는 디테일'들을 살려내기 위해서는 여러 가지 소양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해본다. 마치 성화를 '설계하던' 예술가들처럼.

 

그리고 그런 시각에서, 요리사들 역시 '맛'을 '디자인하는' 사람들이란 생각이 든다. 제각각의 미각과 감각을 가진 사람들에게 의도된 '공통된 맛'을 전달한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맛'은 혀에서 느껴지는 맛 뿐 아니라 식감과 풍미, 온도감등을 모두 포함한 일종의 '감각'을 의미한다. 요리를 한다는 건 처음 느껴지는 냄새, 입에서의 느낌, 목으로 넘어가는 감각 모두를 고려해 하나의 작품을 만든다는 점에서 앞서 이야기한 화가들의 작업과 다르지 않다. '내가 느끼고 있는 감각'을 다른 누군가와 '함께 감각한다'는 행위는 작품 그 자체를 만들어내는 것 이상의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모든 형태의 예술은 '행하는 자'와 '만들어진 것', 그리고 그것을 '감각하는 자'로 구성되는 게 아닐까 하는 잡생각을 해보며. 

 

즐겁게 읽었다.

      

 


   

- 이 책은 유명 인사와 악명 높은 인사들의 인생을 접시에 담아 내놓는다. 어서 와서 역사의 식탁에 앉아볼 생각은 없으신지.

 

- 르누아르는 파리 아르장튀유 거리의 지저분한 동네에서 자랐다. 토끼 사육장 같은 아파트 창문들 밖으로 식사를 준비하는 냄새가 새어 나왔고, 그 냄새는 저마다 출신이 달랐다. 예컨대 마늘 냄새는 프로방스 출신 노동자를 떠올리게 했고, 강낭콩과 함께 오븐에서 찌고 있는 맛있는 베이컨 냄새는 그 집에 부르고뉴 출신 사람들이 살고 있다는 걸 말해주었다. 여섯 살의 르누아르는 등굣길이면 베이컨 기름을 빵에 바른 소박한 샌드위치를 들고 거리 이곳저곳을 누볐다. 그는 열세 살이 되었을 무렵 장 구종의 이노상 분수 앞에서 소시지를 먹으며 인근 포도주 가게에 들러 튀김 식품과 소고기를 사는 것도 잊은 채 넋을 잃고 서 있었다. 

 

- 런던 공습 기간 동안 미클스웨이트 씨는 왕립 포병대에 징집되었고, 그의 가족은 바람이 많이 부는 머나먼 노퍽의 평야와 노스 렁크턴 그린의 한 마을로 피난을 떠났다. 그곳에서 모리스의 어머니 엘렌은 더 그레인지에 조리사로 취직했다. 그레인지는 재목상 어윈 잉글리시와 콘스탄스 잉글리시의 집이었는데, 어린 모리스에게는 음식 천국이었다. 미식가 마이클 케인은 잉글리시 가족이 먹다 남긴 생선 알과 꿩고기를 먹고살았던 그곳에서 태어났다. 처음에는 검은 고래의 알을 좋아하지 않았고 거위 간으로 만든 반죽도 싫어했지만 나중에는 아주 좋아하는 음식이 되었다. 그러나 당장은 와인과 포트와인에 맛을 들이기 시작했다. 

(리뷰자 주 : 검은 고래의 알이 무엇인지 확인하지 못했다. 고래는 태생이라 알이 없으니 정소를 말하는 것인지? 아니면 고래 상어는 난태생인데 뱃속의 알을 말하는 것인지? 거위 간으로 만든 반죽이라면 결국 푸아그라 파테일테니 벨루가 캐비어로 말장난을 한 것인지?)

 

- 그는 믿기 어렵고 엉뚱할 정도로 음식을 후하게 베풀었다. 한 친구에게는 훈제 청어를 400개나 보낸 적도 있었다. 그레고리 펙이 히치콕 부부와 저녁을 먹기 위해 체이슨 식당에 들렀을 때 히치콕은 음식과 와인의 찰떡궁합을 찾는 일에 관심이 많았다. 머지않아 그는 다양한 종류의 빈티지 와인 열두 병을 펙에게 보내면서 어떤 와인에는 어떤 음식이 어울리는지 직접 손으로 쓴 라벨을 병마다 붙였다. 이 와인에는 소고기 구이가 가장 잘 어울리고, 저 와인에는 가자미 살이 가장 잘 어울린다는 식이었다.

 

- 그리고 그의 유명한 파란색 저녁식사가 있었다. 히치콕은 "색깔이 말도 못 하게 예뻤다. 우리가 먹는 것 중에 파란색은 왜 거의 없는 것인지 이해할 수 없었다"고 혼잣말을 했다. 그는 벨라지오 로드에서 파란 마티니와 파란 수프, 파란 스테이크, 파란 닭고기, 파란 송어, 파란 감자, 파란 아이스크림으로 저녁식사를 제공했다. 지미 스튜어트는 이 파란 식사를 먹기 위해 왔고, 그날 이후로는 저녁식사에 참석하길 꺼렸다.  

(리뷰자 주 : 파란색은 식욕을 저해한다고 하지만- 개인적으로 생각해보건대 나는 크게 영향을 받지 않는 것 같다. 맛있을 것 같은데...)

 

- 가리비와 막대 감자튀김. 오, 여기서 말하는 가리비는 조개 종류를 말하는 것은 분명 아니다. 다름 아닌 영국 북부 마을의 값싼 저녁식사에 나오는 튀김옷을 입힌 깜찍한 감자칩이다.

 

- 밥 딜런은 1964년 스트로베리 아이스크림 케이크 투어를 위해 비틀즈가 처음 미국을 방문했을 때 그들에게 대마초를 소개한 장본인이다. 매카트니는 대마초를 한 대 피운 후 인생의 의미를 발견하고는 연필과 종이를 손에 쥐었다. 이튿날 그는 자신이 종이에 적은 글들을 훑어보다가 "일곱 개의 단계가 있다"라고 쓴 한 줄을 발견했다. 그러나 그게 전부였다. 

 

- 그는 옥스퍼드에서 불편한 시험문제에 대비해 공부를 하기보다는 온갖 즐거운 일들을 즐겼다. 예를 들면 처음으로 물떼새의 알을 맛보았고, 뜨거운 바닷가재와 흔치 않은 럼주로 점심을 먹었으며, 철도 클럽에도 가입했다. 철도 클럽은 특정 열차의 객차를 예약한 다음 열차에서 판매하는 5실링짜리 식사를 주문한다는 기발한 생각에서 시작되었다. 이 식사는 일곱 코스로 이루어졌다. 철도 클럽의 첫 모임 겸 축하연은 진흙을 튀기며 달리는 펜잔스 행 애버딘 열차에서 열렸다. 철도 클럽 멤버들은 옥스퍼드를 졸업한 뒤에 세계에서 영향력 있는 사람들이 되었고, 그들의 만찬은 갈수록 더 화려해졌다. 어리둥절해하는 열차 기관사들에게는 은제 담배 상자가 증정되었고, 런던의 유명한 요리사들이 열차에 올라탔다. 훌륭한 음식과 짙은 자주색 와인이 들어 있는 덜거덕거리는 대형 나무상자들도 객차에 실렸다.

 

- 철도 클럽 말고도 옥스퍼드에는 아주 유쾌하고 별난 클럽들이 많았다. 한 예로 베일리얼 칼리지에는 하루를 거꾸로 사는 클럽이 있었다. 그 클럽의 멤버들은 아침 7시에 야회복 재킷을 입고 시가와 브랜디로 하루를 시작해서 밤 9시쯤 수프로 저녁식사를 끝내고 자정에 아침을 먹었다. 

 

- 워는 옥스퍼드에서의 구두시험에 대한 불길한 예감 때문에 노심초사하는 부모님에게 전보를 보낸 뒤 정신없는 여름을 보냈다. 그중 한동안은 더블린에 있었는데, 그곳으로 말하자면 밤 9시면 모든 술집이 문을 닫는 곳이었다. 워는 술집이 이렇게 일찍 문을 닫는 이유는 아일랜드에서는 모든 정치 운동이 술집에서 시작되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마침내 워와 그의 친구 알레스테어는 우연히 글렌맬류어 마을을 발견하게 되었다. '우연히'라는 말은 너무 무성의한지도 모르겠다. 글렌맬류어는 위클로 산맥의 큰 바위들 사이에 있는 계곡 마을이므로, 그들은 어느 불편한 호텔에 여장을 풀었다. 저녁식사 때 차가 나오는 호텔이었다. 혹시 금주 호텔인가? 그들은 의아해했다. 그러나 "형편없는 에일과 거품이 많고 맛이 강한 베이킹파우더 혹은 증류주를 마실 수 있고", "대머리 남편을 데리고 온 끔찍한 여인과 그와킨 부인이라는 이름의 친구"가 투숙하고 있다는 걸 알고 나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해는 '떠오르는 태양'이라는 이름의 술집에서 진과 베네딕틴 , 송아지 고기와 햄 파이로 마무리되었다.

 

- 잉클링스 회원들은 매주 목요일 옥스퍼드 세인트 자일스에 있는이글 앤 차일드 펍의 뒷방에서 만났다. 술집 주인이 특별히 그들을 위해서 피워준 석탄이 바스러지면서 은은히 타올랐다. 그들은 즐거운 저녁 시간을 보내면서 바그너의 오페라 <발퀴레 Die Walküre> 대본을 낭독하기도 했다. 그 사이에 J. R. R. 톨킨과 루이스 형제는 차를 마시기 위해 하이 스트리트에 있는 이스트게이트 호텔에 들렀다가 맛 좋은 오믈렛과 생선 튀김을 먹고 맥주를 마셨다.  

 

- 어니스트 헤밍웨이는 파리에서 햇병아리 작가 시절을 보낼 때 순수하고 깨끗하게 정돈된 의식을 따랐다. 그는 거리 위쪽에 방을 얻고, 그 방에 앉아 고독 속에서 작업하길 좋아했다. 우리 대부분이 그러하듯이 헤밍웨이도 혼자 있을 때 두 가지를 했다. 하나는 마지막으로 식사를 한 때와 다음에 무엇을 먹고 싶은지에 대해 깊이 생각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자신의 체온에 대해 생각하며 많은 시간을 보낸 것이다. 내 몸이 너무 뜨거운가? 너무 차가운가? 스웨터를 입어야 할까, 벗어야 할까?  

(리뷰자 주 : 메이슨 커리의 <리추얼>이 생각난다.)

 

- 모든 문제는 아주 간단하게 해결됐다. 해결책은 바로 자기 방에 모닥불을 피워놓고 타닥거리는 소리를 내며 타오르는 모닥불과 적당한 거리를 두고 앉아 손 닿는 곳에 작가의 간식을 수북이 쌓아두는 것이었다. 모든 것이 아름다운 파리였으므로 그에 어울리게 간식도 예쁜 갈색 종이봉투에 든 밤이었고, 헤밍웨이는 방에 피워놓은 모닥불에 그 밤들을 구워 먹었다. 또 헤밍웨이는 은은한 빛의 노란 초승달을 닮은 달콤한 겨울 오렌지 조각들을 먹었고, 오렌지 껍질을 불길 속에 집어던진 다음 그 껍질이 연기 속에서 돌돌 말리면서 내는 쓴 탕헤르 오렌지 기름 냄새를 좋아했다. 적어도 그런 다음에야 속이 든든해져서 완벽한 글에 대해 걱정할 수 있었다.
 
- 그는 배고픔이라는 공허에 익숙했고, 돌이켜보면 배고픔이라는 공허가 사랑스럽다고 말한 적도 있었다. 햇병아리 작가 시절에는 자신이 쓴 글로 거의 돈을 벌지 못했다. 당시에 그는 카술레라는 단어만 봐도 속이 쓰렸다. 그는 자신이 굶주리던 시절에 세잔을 더 예리하게 이해하게 됐다고 말했다. 굶주림은 그의 소설에 영양분을 공급해주었다. 굶주림 덕분에 무시무시한 식욕에 휘둘리며 음식에 집착하는 인물들을 창조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날의 글쓰기를 마치고 나면 어김없이 키르슈를 마시고 오렌지들을 자신의 주머니에 넣어두었다. 그렇지 않으면 오렌지들은 밤중에 그의 책상 위에서 얼었을 것이다. 

 

- 플레밍이 쓴 최초의 본드 소설 <카지노 로얄>에서 본드는 아침을 먹으면서 최대의 적수인 채찍질을 좋아하는 르 시프르(소문에 의하면 또 다른 대식가 알리스터 크롤리를 모델로 만든 인물이었다고 한다)의 계략을 곰곰이 생각한다. 본드가 먹는 음식이 자세하게 묘사된 건 이 아침식사가 처음이었다. 본드는 스크램블드에그 3개, 베이컨, 큰 잔으로 차가운 오렌지주스 한 잔, 더블 사이즈 커피(물론 설탕을 넣지 않은)를 먹어치웠다. 1인분의 양은 우연이 아니다. 플레밍의 먹는 즐거움은 '조금 더 추가'에 있었고, 그는 이 점에서 아주 구체적이었다. 그는 향이 강하고 색이 진한 커피의 양을 두 배로 늘리길 좋아했고, 오렌지주스는 반 컵을 더 마셨다. 아침에 먹는 삶은 달걀은 껍질이 갈색이어야 했다. 

 

- 만일 당신이 20세기의 마녀를 찾고 있다면, 시빌 리크보다 나은 사람은 없다. 주술 처벌법이 폐지되기 전이었기 때문에 시빌은 자신의 일에 대해서 상당히 신중할 수밖에 없었다. 꼭 주술 처벌법이 아니더라도 정기적으로 망토를 입고, 검은 털로 뒤덮인 커다란 새를 어깨에 얹고서 대단히 명망 있는 영국의 작은 마을들을 돌아다니는 사람이라면 최대한 신중해야 하는 게 당연했다. 그녀가 TV에 의해 발견되고 언론에 포착되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언론은 당연히 시빌 리크와 그녀의 애완 갈까마귀 미스터 핫풋 잭슨을 사랑했다. 그들은 마치 누군가가 거꾸로 들고 마구 흔들어 턴 동화책 속에서 떨어져 나온 존재들 같았다. 그녀는 역사에서도 묵묵히 자신의 역할로 도움을 주었다. 알려진 대로라면, 제1차 세계대전 때 영국 정부에 의해 선발된 그녀는 점성술을 믿는 나치의 주요 인사들을 위해 가짜 별점을 제공했다. 소문에 의하면 시빌은 루돌프 헤스를 위해 점성술 도표를 써주었고, 이를 통해 헤스에게 영국으로 날아가는 것이 탁월한 계획이라는 확신을 심어주었다.  

 

- 그렇다면 이 점성술 지식은 어디서 시작된 것일까? 자신을 '펜들 마녀들'의 후손이라고 주장한 시빌은 마녀 족보에서 최고의 위치에 있었다. 그녀는 평범한 마녀 노파가 아니었다. 역시 마녀였던 그녀의 할머니는 구운 파이와 타르트로 어린 시빌에게 점성술의 기호들을 가르쳤다. 구운 파이와 타르트에 점성술의 기호들을 장식한 것이다. 할머니는 시빌에게 동물 제물이라는 잔인한 세계에 대해 몇 가지 모진 교훈도 주었다. 시빌이 디프테리아에 걸렸을 때 할머니는 시빌에게 다가가 이불을 잘 덮어주었다. 시빌이 키우던 애완 부엉이는 그녀의 팔을 베고 있었다. "네 애완 부엉이랑 너랑 둘 중에서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면, 넌 어느 쪽을 선택하겠니?" 시빌은 대답할 수 없었다. 할머니는 단호하게 말했다. "부엉이가 죽어야 한단다." 시빌은 자신의 부엉이를 두 번 다시 보지 못했지만, 아침이 되었을 때 목 상태가 크게 호전된 기분이었다. 그리고 생각도 냉철해졌다(특히 부엉이에 대해서). 

 

- 역자 주 : Pendle witch. 17세기 영국 랭커셔 주에서 마녀로 몰려 재판을 받은 열두 명의 펜들 마을 사람들로, 영국 역사에서 가장 유명한 마녀 재판의 희생자들로 알려져 있다.

 

- 리크는 집도 산간벽지에 처박혀 있지 않았다. 산간벽지라니, 천만에. 그녀의 집은 대안적이고 자유로운 사상을 추구하는 사람들로 북적였다. H. G. 웰스는 차와 케이크를 먹으러 리크의 집에 들르곤 했고, 최고의 마법사 알리스터 크롤리는 리크의 집에 들를 때마다 자신의 식단 때문에 리크의 할머니에게 꾸지람을 들었다. 시빌이 약초에 대해서 많이 안다고 말했을 때 학교에서는 그녀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몰랐다. 여자 교장선생님은 시빌의 이야기를 받아들이지 않으면서 단호하게 선을 그었다. "우리 학교에서 식물에 관한 학문은 식물학이라고 부르는데, 식물학은 필수 과목은 아니지." 그러나 훨씬 더 이상한 상황이 기다리고 있었다. 시빌이 큰 소리로 새들을 불러 자기에게 날아오게 하자 함께 놀던 시빌의 친구들이 겁을 먹은 것이다. 이런 행동은 놀이터나 교무실에서 환영받지 못했다. 

 

- 설상가상으로 하루는 시빌이 교장실에 불려 갔다. 교장선생님은 시빌에게 어째서 두 과목의 수업에 동시에 출석한 것으로 표시되어 있는지 물었다. 시빌의 영혼은 여기저기 헤매고 다녔으므로 지리 수업에 잠깐 모습을 드러냈다가 어느새 프랑스어 수업에 나타나는 건 일도 아니었다. 시빌의 말을 직접 들어보자. “나는 그것이 유체 이탈이라는 간단한 문제에 불과하다는 걸 설명하려고 애썼지만, 내 말을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불행하게도 가정학 수업 시간에 그녀의 영혼은 어딘가 다른 곳을 헤매고 있었던 모양이다. 시빌은 가정학에서 형편없는 점수를 받았다. 할머니는 어떤 해결책을 내놓았을까? 소매를 걷어붙이고 시빌에게 명령을 내렸다. "요리에 익숙해지는 게 좋을 거야. 그 가마솥을 깨끗이 닦아라. 꾸물거리지 말고, 넌 그 여학교에서 충분히 시간을 낭비했어."  
 

- 스트라다무스의 <묘약>은 흥미로운 책이다. 화장기에 대한 그의 조언은 수은과 베네치아의 백연에 의존해 서둘러 대충 쓴 것이 분명했다. 뾰루지와 공포의 빨간 사마귀를 제거하기 위해 그가 추천하는 방법은 조금 게릴라적이었다. 그는 독자가 정원을 파서 스쿼팅 오이의 뿌리를 찾거나 자기 침을 정말 끝도 없이 비축 해두길 기대했다. 그럼에도 젤리와 잼과 저장식품에 관한 내용은 정말 흥미롭다. 노스트라다무스는 레몬과 호박 (호박은 체내의 열을 낮춰주고 맛이 아주 좋다), 쓴 오렌지, 머스카텔 배, 마라스키노 체리, 호두를 썩지 않게 저장했다. 호두의 경우엔 와인을 끓여 그 안에 담가 저장했고, 와인 끓이는 법은 고대 로마의 데프루툼 조리법에서 힌트를 얻었다. 그는 초록색 생강이 찬 속이나 "복부 불감증" (!?!)이 있는 여성들에게 좋다고 확신했다. 물론 지느러미엉겅퀴 뿌리를 썩지 않게 저장하면 초록색 생강과 효능은 똑같으면서 맛은 훨씬 달았지만. 

 

- 노스트라다무스는 아비뇽에서 교황 특사인 클라르몽 추기경에게 자신의 마르멜로 잼 한 병을 자랑스럽게 대접했다. 심지어 프랑스의 앙리 2세도 한 숟가락 맛보았다. 하지만 노스트라다무스는 마르멜로 잼을 만드는 데는 돈이 많이 든다고 독자에게 경고했고, 왕자나 왕을 위해 준비해달라는 청을 받을 때를 대비해 보관해두는 게 좋을 거라고 했다. 그러나 노스트라다무스는 상류층을 동경하는 속물은 아니었다. 나는 노스트라다무스의 진정한 너그러움이 <묘약>에 나오는 "마지팬 만드는 법"에 관한 그의 조언에서 가장 잘 드러난다고 생각한다.  

 

- 만약 당신이 19세기의 맨 끝자락에 카페 로얄에서 솔 므니에르 를 먹고 있었다면 마법사 알리스터 크롤리를 발견했을 수도 있다. 아마도 그는 스코틀랜드 산악지대의 족장(그의 필명 중 하나는 그가 스코틀랜드 네스 호에 구입한 집의 이름을 딴 '볼스킨의 지주'였다)처럼 옷을 입고 있거나 아프로 스타일의 검은 가발을 쓰고 아이라이너를 그리고 있었을 것이다. 그의 신발에 커다란 은제 죔쇠가 달려 있었다. 설령 그의 이교도적 행위가 충분히 기괴하지 않다 하더라도 크롤리는 눈을 휘둥그레 뜨고 빤히 쳐다보게 만들 만큼, 신선할 정도로 특이해 보였다. 그에겐 아프로 스타일의 가발이 필요했을지도 모른다. 출판인 실비아 비치는 "스스로 미라가 되려는" 크롤리가 "머리를 점토로 물들였다"고 했고, 모리스 리처드슨은 크롤리의 얼굴을 매우 큰 음경에 비유했다. 

 

- 크롤리의 자기 지시적 종교인 "크롤리교", 즉 아프리카 사막에서 만들어진 텔레마 숭배는 기독교의 대중적 인기에 흠집을 내는 데 이렇다 할 역할을 하지 못했다. 기독교의 대중적 인기에 흠집을 내려면 다윈주의를 믿는 게 더 나았다. 텔레마는 W. B. 예이츠와 험악하게 사이가 틀어지고 난 후 황금새벽회 Golden Dawn movement(1887년 영국에서 설립된 마법을 믿는 조직. 예이츠도 이 조직의 회원이었다)와 겨루기 위해 크롤리가 만든 종교였다. 알리스터는 잠시나마 겁도 없이 황금새벽회에 도전했지만 예이츠를 두들겨 패거나 죽일 목적으로 몇몇 망나니 같은 사람들을 고용하는 바람에 스스로 명성에 먹칠을 했다(예이츠도 크롤리에게 저주를 퍼부었다).   

 

    

 

 

더보기

 

마셔보고 싶다

      

- 음식에 관한 책은 저자의 미뢰味當로 시작한다. 미뢰는 자세히 들여다보면 바위 사이의 작은 웅덩이에서 물결치는 뭔가를 닮았지만, 사실 미뢰는 기쁨을 쏘아 올리는 일종의 작은 로켓 발사대이다. 그러므로 내 코와 내 코가 가진 훌륭한 후각을 잊지 않으면서 내 미뢰로 이 책을 시작해보겠다! 

- 나는 1960년대와 70년대에 스코틀랜드 북동부에서 자랐다. 여전히 중산층 여자들은 요리를 했고 남자들은 일을 했다. 그 세계에서 내가 처음으로 음식을 발견한 곳은 어머니와 할머니의 부엌이었다. 1960년대에 부엌의 싱크대에서 벗어날 수 없었던 많은 여자들과 마찬가지로 어머니 모이라는 오페라 가수와 변호사와 미술가와 작가와 과학자와 스트립 댄서가 될 수도 있었던 자질을 가재 수프와 오리 발로틴과 '베일을 쓴 시골처녀의 자두 푸딩'에 남김없이 쏟아부었다. "먹어보렴."  어머니는 그렇게 말하며 셰리주 맛이 나는 크림으로 뒤덮인 거품기를 내밀곤 했다. 

 

- 부디 모든 음식이 맛있고 사실에 가까우며 향수를 불러일으켰으면 하는 바람이다. 반 고흐가 요리를 했을 수는 있지만 그 말이 곧 그가 요리를 잘했다는 뜻은 아니다. 나는 내 독자를 식중독에 걸리게 하고 싶지는 않았다. 내 생각에 당신이 먹지 않는 게 낫겠다 싶은 음식은 조리법을 만들지 않았다. 예를 들면 악명 높은 마술사 알리스터 크롤리가 즐겼던 정액 케이크 같은 것 말이다. 그렇다고 배경 설명이나 일화는 전혀 없이 조리법만 가득한 책을 내고 싶지는 않았다. 어떤 순간의 부활이 있을 수 없다면 음식에 대한 향수도 있을 수 없으니까. 

 

- 식사 시간에는 미술, 문학, 음악, 영화의 역사에 대한 뜻밖의 통찰이 드러나기도 한다. 반 고흐와 고갱의 복잡하고 격렬하고 예술적인 관계가 아를에서 함께 했던 두 사람의 정신 나간 식생활을 통해 드러나고, 남색 혐의로 기소된 오스카 와일드의 재판에서 가장 확실한 증거로 제시된 것이 그가 다른 남자 그것도 하층 계급의 남자에게 체리 정과를 먹이는 것을 목격했다는 진술이었다는 점도 결코 우연이 아니었다. 기득권층을 이길 수는 없다고 화가 마크 로스코를 설득하는 데는 시그램 빌딩의 저녁식사가 필요했다. 캐리 그랜트나 <호밀밭의 파수꾼>의 작가 J. D. 샐린저와 낭만적인 데이트를 하고 싶으면 디너가 담긴 TV 식판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한 번이라도 상상해본 적이 있는가? 살바도르 달리와 알프레드 히치콕의 삐딱한 유머감각은 그들의 음식 기벽에서도 확실하게 엿볼 수 있다. 달리는 초콜릿 소스를 바른 바닷가재만 있으면 누구든 침실로 데려갈 수 있다고 장담했다. 도로시 파커가 (W. H. 오든과 마찬가지로) 부엌에 있는 베이컨으로 뭘 해야 할지 몰랐다는 사실을 알고 나면 그녀가 더욱 사랑스러워진다. (정말 그걸로 꼭 요리를 해야 해요?) 반면에 조지 오웰은 맛있는 블랙베리 젤리를 만들 줄 알았고, 존 스타인벡은 자신의 개 찰리를 위해 핫케이크를 즐겨 만들었다. 샐린저는 자신의 집 굴뚝 꼭대기에서 연어 한 마리를 통째로 바구니에 넣고 훈제하려고 했다. 민트 줄렙 한 잔을 만들어보라. 그러면 양복을 입고 소년같이 옆 가르마를 탄 F. 스콧 피츠제럴드가 말끔하지는 못해도 친근한 얼굴로 당신 맞은편에 앉을 것이다. '처량한 남자의 술'이라고 불린 이안 플레밍의 자메이카 칵테일을 마셔보라. 그 술이 본드의 마티니보다 007의 진짜 모습에 대해 훨씬 더 많은 것을 말해줄 것이다. 마릴린 먼로가 아서 밀러에게 그랬듯이 실비아 플라스도 테드 휴즈의 마음에 들기 위해 빵을 구웠다. 엘리자베스 테일러의 엄청난 남편 욕심은 음식에 대한 열정에서도 그대로 드러난다. 프랭크 시나트라와 리처드 버튼의 식생활을 보면 자신들이 먹고 자란 음식의 뿌리를 잊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한 예로 시나트라의 식생활은 맛있는 시칠리아 요리와 그의 어머니 돌리의 부엌에서 시작되었다. 시나트라의 어머니가 자신이 만든 빨간 소스를 휘저으면 얼치기 마피아처럼 생긴 사내들이 그 소스에 빵 껍데기를 적셔 먹으면서 양념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조언을 늘어놓곤 했다. 

 

- 그녀가 생각하기에 보가와의 결혼생활을 단단히 묶어줄 수 있는 것은 술이었다(대체로 메소트는 바람직한 사람이 아니었다. 그녀는 칼을 지나치게 잘 다뤘고 피해망상증이 있었으며 그들이 사는 집을 불태워버리려고 했다). 보가트의 건강은 덜거덕거렸다. 사실 그는 엉망진창이었다. 아침마다 커피와 오렌지주스를 마시고 나서 전부 토했다. 그런 다음 오렌지주스를 한 잔 더 마셨다. 마실 것은 그를 꽉 움켜쥐고 있었고, 그는 그 손아귀에서 벗어난 적이 한 번도 없었다. 그러나 메소트는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였다. 보가트는 바콜과 결혼하면서 더 부드럽고 싹싹해졌으며 좀 더 신중해졌다. 보가트와 바콜의 집에서는 크리스마스에 둘이서 함께 뜨겁고 사랑스러운 밀크 펀치를 만드는 것이 전통이었다. 바콜은 술을 못 마시기 때문에 펀치를 좋아했고, 보가트는 숙취 해소에 도움이 됐기 때문에 펀치를 좋아했다. 

 

- 비틀즈의 괴짜 치과의사 존 라일리와 함께 베이스위터 로드에 있는 그의 집에서 저녁을 먹고 난 후였다. 신시아 레논은 치과의사가 자신의 손님들을 위해 벽난로 위 선반에 각설탕 4개를 늘어놓자 좀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그는 각설탕을 신중하게, 그리고 공을 들여 식후에 마시는 커피 잔에 하나씩 떨어뜨렸다(사실 비틀즈 멤버들에게 "맛있는" 커피를 마셔보라고 끈질기게 부추긴 사람은 의사의 여자 친구였다). 조지의 여자 친구 패티(곧 그의 아내가 되는 그녀는 스미스 크리스프라는 회사에서 만든 감자튀김을 좋아했다)는 불안이 섞인 목소리로 낮게 투덜거렸다. "혹시 최음제면 어떡하려고?" 그들은 과감하게 커피를 마셨다. 그걸 본 치과의사가 자신이 방금 무엇을 했는지 그들에게 말했다. 커피에 LSD를 탔다고 실토한 것이다. 알프가 그들을 구하러 달려왔고, 그들 모두 차를 타고 줄행랑을 쳤다. 비틀즈가 탄 차는 눈 깜짝할 새에 꽁무니를 뺐고, 치과의사는 자기 차를 타고 열심히 그들 뒤를 쫓아갔다. 

 

- 밥 딜런의 초기 음악에서 들을 수 있는 가느다란 떨림에서는 블랙커피나 묽은 레드 와인 맛이 난다. 그는 언제 봐도 술은 너무 많이 마시고 밥은 거의 먹지 않는 사람처럼 보였다. 그가 자신의 저녁식사 값을 내려고 시도했던 첫 번째 공연은 대실패였다. 그래서 1959년 미네소타 대학에 다니는 동안 그 지역의 클럽과 바들은 그가 자신의 저녁식사를 위해 무대에 서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그의 음악이 다른 손님들의 식욕까지 달아나게 했기 때문이다. 조금이나마 사정이 나아진 건 그 "긁어대는 목소리를 장착한" 딜런이 헐렁하고 주름진 옷을 입고 나타나 뉴욕에서 다른 사람들의 소파에서 자고 다른 사람들의 음식을 먹을 때였다. 그의 사명은 자신의 영웅 우디 거스리를 찾아가 포크송에 대해 최대한 많은 것을 배우는 것이었다. 딜런은 포크송을 "구전" 노래라고 불렀다. 

 

- 세실 비튼의 일기는 1966년 에블린 워의 죽음에 대한 기록 때문에 유명하다. "에블린 워는 관 속에 있다. 그는 속물근성 때문에 죽었다." 비튼에 따르면 워는 이십 대 때 거만하고 잘난 체하는 사람이었다. 그런 거만함은 보청기를 갖게 된 중년 무렵 극에 달했다. 그리고 워의 음식 취향을 통해 확실하게 알 수 있는 사실은 나이가 들수록 그가 더 세련되어졌다는 것이다. 어린 시절 워는 요리를 하기 전의 소시지가 왜 그토록 우스워 보이는지 궁금해하는, 단순하고 어린 영혼의 소유자였다. 반면 사십 대 때 그의 인생에서 가장 즐거운 시간은 그의 "대리석 건물인 리츠 칼튼 호텔에서 보르도 산 적포도주 클라레를 곁들여 배가 터지도록 점심식사를 할 때"였다. 많은 사람들이 워를 단순히 이기적이고 늙고 지루한 사람이라고 생각하지만, 우리는 그의 인생에도 아주 작지만 숨 막히도록 친절한 순간들이 있었음을 기억해야 한다.   

 

- 루이스는 친구들과 더 먼 곳까지 여행을 다녔다. 그중 기억에 남을만한 여행은 보스포러스라는 요란한 이름을 가진 배(워니가 소유한 배였다)를 타고 템스 강 상류까지 떠난 여행이었다. 그들이 돌아오는 날 히틀러가 폴란드를 침공했다는 소식이 들렸다. 침묵이 덮쳤다. 루이스는 저녁을 먹다가 기운을 좀 북돋워보려고 이렇게 선언했다. "어쨌든 이제 우리가 암으로 죽을 가능성은 줄어든 거야." 

 

- 1926년 겨울, 헤밍웨이와 해들리는 그들의 아기 범비를 데리고 오스트리아 포어아를베르크 주 슈룬스에 있는 스키 리조트를 방문했다. 그리고 머지않아 운명은 헤밍웨이에게 그림자를 드리우게 된다. 그가 폴린 파이퍼를 만나면서 해들리를 떠나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이 마지막 겨울은 행복했다. 헤밍웨이 가족은 스키를 타며 대지를 가로질렀고, 때로는 나무꾼의 오두막에서 밤을 보냈다. 잠은 너도밤나무 잎으로 속을 채운 매트리스에서 잤다. 그들은 별이 쏟아지는 밤하늘 아래에서 스키를 탔고, 대기는 소나무 향으로 가득했으며, 스키 밑에서는 눈이 끽끽거리는 소리를 냈다. 

 

- 본드는 저녁식사 전에 항상 술을 딱 한 잔만 마신다. 하지만 그는 이렇게 말한다. "그 한 잔은 양이 아주 많고 아주 독하고 아주 차갑고 아주 잘 만들어진 것이 좋습니다. 나는 어떤 음식이든 양이 적은 건 질색입니다. 맛이 좋지 않은 음식일 때는 특히 더." 이 대목은 <카지노 로열>에 나온다. 그는 카지노의 바텐더에게 자신의 "발명품"-드라이 마티니-을 바닥이 깊은 샴페인 잔에 어떻게 담아야 하는지 가르쳐준다. "잠깐. 고든스 세 잔, 보드카 한 잔, 키나 릴레 반 잔을 넣고 얼음처럼 차가워질 때까지 잘 흔들어요. 그런 다음 큼지막한 레몬 껍질 조각을 넣어요. 알겠죠?" 

 

- 오웰에게는 이안이라는 어부 친구가 있었는데, 이안이 들려주는 다양한 통발 이야기에 오웰은 마음을 빼앗겼다. 오웰은 바닷가재도 공포를 느낄 수 있고 지성이 있다는 사실에 매료당했다. 이안의 주장에 따르면, 통발에 갇혔다는 것을 아는 순간 바닷가재는 자신을 통발로 유인해 갇히게 만든 미끼 먹기를 중단한다. 바닷가재는 자신이 끔찍한 실수를 저 질렀다는 걸 안다. 오싹하지 않은가? 현지인들이 "세이디"라고 부르는 대구도 풍부하다. 대구 떼는 거대한 은빛 무리를 이루어 민치 해협을 통해 이동했다. 오웰은 고기를 잡기 어려운 겨울에 먹기 위해 대구를 말려 보존하는 법을 현지인들에게 배우기도 했다. 

 

- 날이 저물어 도로변의 한 호텔 앞에 멈춰 섰을 때, 피츠제럴드는 자신이 폐렴으로 죽어가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는 지금이 자신에게 남은 마지막 시간이라고 한탄하더니 헤밍웨이에게 체온계를 가져다 달라고 했다. 헤밍웨이는 침대에 누워 있는 피츠제럴드가 "작은 십자군 전사의 시신" 같아 보인다고 생각하다가 위스키와 레몬에이드를 주문하면 그의 몸속에 있을지 모를 폐렴을 몰아낼 수 있다는 기발한 생각이 떠올랐다. 체온계를 구해온 헤밍웨이는 그것을 피츠제럴드의 얼굴 위에서 흔들어 보이며 위협조로 말했다. "항문용 체온계가 아닌 걸 다행으로 생각하라고." 

 

- 4월에 시작된 편지 왕래는 5월에 끝났다. 그녀는 그의 전화를 받았다. 그는 그녀에게 수신자 요금 부담으로 전화해달라고 했다. 그들은 밤마다 전화로 통화하기 시작했다. 그는 그녀의 관심을 빼앗고 싶었고, 그녀에 대해 전부 알고 싶었다. 그는 재미있는 사람이었다. 남 험담하기를 좋아했고, 제리 루이스가 수년간 홀든 콜필드 역을 따기 위를 해 쫓아다닌 얘기를 그녀에게 해주었다. 누구를 막론하고 배우라는 사람들은 샐린저를 몸서리치게 만들었다. 그는 배우들과 친하게 지내느니 피마자유 한 잔을 들이키는 편이 낫다고 말했다. 

- 로맨틱한 감정이 최고조에 달했을 때 그들은 마침내 샐린저가 살고 있는 뉴햄프셔 주 코니시에서 만나기로 했다. 그녀는 먼발치에서 그를 보았다. 그녀는 라이프 지의 표지를 보고 하노버 여인숙 계단에 서 있는 그를 알아보았다. 그녀가 그를 향해 달려가자 그의 얼굴이 밝아졌다. 그들은 벌써부터 서로 상대를 어떻게 알아봤는지를 놓고 함께 웃음을 터트렸다. 그는 그녀에게 사람들로 북적이는 길 건너편에서 로렌 바콜이 그를 자기 남편인 제이슨 로바즈로 착각하고 인사를 했던 얘기를 들려주었다.

- 보시는 "늙은 매춘부처럼 감언이설로 꾄다"며 그를 비난했다. "나 말고 다른 사람한테 쓸 돈은 없어요." 그는 퉁명스럽게 와일드에게 말했다. 어쩌면 보시는 겉으로 보는 것보다 자기 아버지와 많이 닮은 사람이었던 것 같다. 와일드는 나중에 <옥중기 De Profundis>에서 보시에게 이런 글을 쓰게 된다. "너와 함께 먹었던 무분별한 식사들을 떠올릴 때 유일하게 남아 있는 기억은 너무 많이 먹고 너무 많이 마셨다는 것뿐이야." 

 

- 크롤리는 자신이 연기하는 놀라운 분신들과 이름들로 큰 상점을 열었다. 그는 카랑카랑한 고음으로 런던 토박이 말투를 썼다. 그는 피닉스 백작, 블라디미르 스바레프 백작, 키오카 칸으로 다양하게 불렸다. 그러한 이름들은 십중팔구 헤로인에 취해 꿈결을 헤매던 그에게 다가왔을 것이다. 

- 마법의 망토를 입으면 투명인간이 된다고 믿었던 크롤리는 카페로얄에서 별로 아로새긴 원추형 모자를 머리에 얹고 사교계의 명사들 사이를 느릿느릿 걸어 다니는 걸 즐겼다. 예의 바른 영국 시민들은 근엄하고 약간 뚱뚱한 사람이 몰래 탈출하는 거대한 코끼리처럼 카페 로얄에서 나와 자기들 앞을 지나가는 것을 보고 그 자리에 얼어붙었다. 물론 그들은 영국인들답게 공손히 시선을 돌려서 그를 빤히 쳐다보지 않거나 미치광이와 눈을 마주치지 않으려고 필사적으로 노력했다. 그러자 크롤리는 자신의 투명망토가 효과가 있다고 확신했다! 

- 일단 망토를 벗으면 그는 전형적인 "망나니 차림"으로 당신의 시선을 사로잡을 것이다. 크롤리는 당신에게 "인생의 묘약"이라는 케이크를 팔려고 할지도 모른다. 그는 마법의 케이크니 꼭 사라고 강요하겠지만 케이크를 만들 때 크롤리 자신의 성스러운 형체-그의 정액-가 들어갔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또 그는 1주일에 단돈 25 기니의 수강료만 내면 성에 새롭게 눈뜨게 해 주겠다고 장담하면서 자신의 "불로불사" 강좌에 신청하라고 교묘하게 당신을 설득할 것이다. 

 

- 크롤리의 비술에는 뭔가 끔찍하지만 재미있는 측면이 있다. 만약 그가 카페 로얄을 나와 술을 한 잔 하자며 챈서리 레인에 있는 그의 아파트로 당신을 초대했다면 당연히 당신은 크롤리가 마법을 물리치기 위해 사용하는 커다란 거울들을 보고 놀랄 것이다. 그러고 나서 당신은 죽은 참새들과 피로 뒤범벅된 바닥 위로 미끄러져 넘어지면서 해골이 된 인간의 팔과 충돌하게 될지도 모른다. 크롤리는 죽은 참새들과 피를 해골에게 "먹이"로 주었다. 부디 그가 당신에게 "섹스 마술"에 참여해보라는 요청을 하지 않았기를 바란다. 악마 같다고 그를 무서워하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크롤리는 아이처럼 순진한 면도 있었다. 한 예로 그는 치과의사를 피하기 위해 새로운 방법들을 사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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