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자가 흐르는 이야기/Book(~2024)

[서윤영] 침대는 거실에 둘게요 - 1.5인가구의 모던시크 주거라이프

일루젼 2022. 4. 18. 11:11
728x90
반응형

저자 : 서윤영
출판 : edit(다른) 
출간 : 2020.02.14 


       

어떤 공간에서 살 것인가. 집이라는 문제는 인생에서 정말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 문제다.

누군가에게는 실제로 거주하는 생활의 기반 문제가 되기도 하고, 또 누군가에게는 안정적인 가치 자산으로 수익과 투자를 겸한 재화의 문제가 되기도 한다. 

 

의식주. 기본 생활권. 보다 나은 삶을 위해 이런 기초 생활에 대한 고민을 덜고자 발전해온 것이 사회이고 시스템일 텐데, 현대에 와서 유독 더 힘들어진 것 같은 것은 기분 탓일까. 아니면 과거에도 그래 왔던 것이 눈앞에 적나라하게 드러나기 시작해서일까. 

 

저자는 모두에게 고정된 '정답'은 없다고 말한다. 자신의 가치관과 삶의 양식을 고려한다면 거실에 침대를 두는 것이 합리적인 선택일 수 있다는 것이다. 그 발상 자체도 색다르고 흥미롭지만, 무엇보다 그런 유연한 정신을 가질 수 있다는 점이 부럽다. 이런 유연함은 타고나기도 하지만, 자신의 세계 밖의 것들을 보고 접함으로 길러지기도 한다. 다양한 환경, 다양한 조건을 이해하고 고려하는 연습을 많이 할수록 각 상황에 가장 적합한 선택지가 떠오를 확률이 높아진다고 생각한다. 

 

불편감을 느낀다면, '왜'를 생각해볼 일이다. 불편함을 느끼는 사람 개인의 문제로만 남겨둘 것이 아니라, 어째서 불편한 느낌이 발생하는가의 원인을 함께 들여다 볼 때 발전이 있다고 믿는다. 물론 나의 불편이 아닐 때는 귀찮고 외면하고 싶은 것이 사람이라는 점도 알고 있다. 그러나 변화는 내가 원치 않아도 항상 일어나고 있으므로, 도태되지 않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노력하는 수밖에 없다. 죽을 때까지 자기 식대로 발버둥 치는 것. 어쩌면 산다는 게 그런 것 같기도 하다.   

       

 


 

   혼자지만 둘처럼,
둘이지만 혼자처럼 산다.


 세상에는 정답이 없고 
다만 갖가지의 해답만이 있을 뿐이다. 

비혼이나 이혼으로 혼자 살든, 
이성애자 또는 동성애자 커플로 함께 살든, 
그리고 그 방식이 결혼이든 동거든, 

인생에 정해진 답은 없는 것처럼.


 

- 1인 가구는 언제든 2인 가구가 될 수 있다. 2인 가구 또한 언제든 1인 가구가 될 수 있다. 아니면 어느 날 3인 가구가 될 수도 있다. 그때 집의 공간을 어떻게 재배치하고 재사용할지는 각자의 선택이다. 거기에 '그래야 한다'는 건 없다. 

 

- 1990년대 일본에서는 '개전제품'이란 게 유행을 했다. 가정에서 여러 가족이 함께 사용할 것을 염두에 두고 생산된 기존의 가전제품이 아닌, 개인이 혼자 쓰는 것에 초점을 맞춘 가전제품을 뜻한다. 나만의 가전제품, 1인용 가전제품, 1인 가구를 위한 맞춤형 가전제품이란 홍보문구와 함께 개전제품은 마케팅 시장에서 뜨겁게 떠올랐다. 그런데 밥솥이든 커피포트는 1인 가구용이라고 해서 정말로 1인용은 아니었다. 실제로는 대개가 1.5인용이었다. 혼자서만 딱 먹을 수 있는 양, 한 잔 따르고 나면 남는 게 없는 양만 나오게 만들지 않았다. 1인용 제품을 1.5 인용으로 만든 이유는 많이 먹고 마시는 사람을 생각해 넉넉하게 만든 것이기도 할 테지만, 그보다는 둘이 먹고 마셔도 될 정도를 고려한 것이다. 혼자 사는 사람의 집에 친구나 연인이 방문할 경우를 생각해서다. 혼자 살지만 연인이 자주 집에 머무르거나 아예 주말에는 둘이 지내기도 하는, 그래서 1인 가구이지만 때때로 2인 가구가 되기도 하는 상황에 맞춘 셈이다. 꼭 그런 상황이 아니더라도 1인 가구는 언제든 2인 가구로 변할 수 있다.  

 

- 4인 가구에서 자란 나는 한 남자의 아내가 되어 아이 없이 2인 가구로 살다 바로 얼마 전 1.5인 가구가 되었다. 작업실 겸 세컨드 하우스로 사용할 작은 방을 얻은 것이다. 주중에는 홀로 이곳에서 지내며 작업하고 주말에는 집으로 돌아가 남편과 지낼 예정이니 나 역시 1.5인 가구라고 할 수 있다. 침대와 옷장, 책상, 책장, 냉장고 등 가구들이 틈틈이 들어찬 조그만 방에서 나는 이제 시티라이프 1.5 버전의 삶을 시작할 계획이다. 

 

- 주방을 완전히 없애는 게 부담스럽다면 간이주방을 선택할 수 있다. 공간이 훨씬 넓어진다. 경우에 따라서는 이동식 주방도 생각해볼 수 있다. 현재 우리나라 건축에서 주방은 욕실처럼 그 위치가 고정되어 있다. 하지만 에어컨, 세탁기, 식기세척기를 생각해보자. 이 물건들은 이동이 가능하며 전원과 상하수도를 연결할 수 있는 자리라면 그곳에 위치할 수 있다. 마찬가지로 주방도 개수대와 인덕션 레인지가 결합된 일종의 가전제품처럼 만들어 전원과 상하수도만 있다면 어디든 자리할 수 있게 하면 어떨까? 이와 같은 콤팩트 키친은 이미 유럽에서 선보이고 있다. 자리도 훨씬 덜 차지하고 세탁기나 식기세척기를 설치하듯이 연결만 하면 되기 때문에 공간을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다. 간단히 차를 끓이고 간편식을 데워 먹는 정도로만 부엌을 이용한다면 한번 고려해볼 만하다. 물론 이는 아직 우리나라에서는 그다지 활성화되어 있지 않다. 언제나 주방의 위치는 고정되어 있다. 1인 가구가 가장 많은 가구 유형이 되었음에도 그에 따른 라이프스타일 변화를 건축이 제대로 담아내고 있지 못한 상황이다. 그러니 부엌 없이, 또는 이동식 부엌을 두고 산다는 게 지금 당장은 요원한 일일 수 있다. 그러나 새로운 시도는 이루어져야 한다. 

 

- "세상에 이런 집이 어디 있어? 서재가 왜 2개나 필요해? 어느 부부가 서재를 따로 써?"
속사포처럼 말을 하던 그는 제법 잘 알려진 건축가였다. 대학 2학년 때, 설계 수업에서 있었던 일이다. 각자 전문직에 종사하는 40대 부부가 사는 집을 설계하는 게 그 학기 과제였다. 그렇다면 각자의 작업공간이 있어야 할 거라는 생각에 나는 아내의 서재와 남편의 서재를 따로 설계했다. 그리고 수업의 마지막 날 외부 크리틱이라고 해서 현재 설계 실무에 종사하고 있는 건축가를 특별 초빙해 지도를 받는 자리가 마련되었다. 그날 초빙된 건축가는 상당히 유명해서 여성잡지에 간혹 인터뷰가 실리곤 했는데 그때의 인터뷰 기사 내용을 나는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
"여자의 마음을 알아주는 건축가."
그는 주방은 집에서 가장 중요한 공간이자 여성이 주인인 공간이므로 주방, 시스템키친이라는 말 대신 맘스 오피스 또는 맘스 스튜디오라고 고쳐 부르자고 했다. '여자의 마음을 알아주는 건축가'는 그런 그를 두고 잡지사에서 붙여준 별명이었다. 하지만 그날 수업에 초빙된 그는 아내의 서재를 보고 이렇게 말했다. 
"여자는 남편하고 그냥 같이 쓰면 돼."

- 방이 하나인 원룸이거나 침실과 거실(또는 주방)이 나뉜 분리형 원룸이라면 공간을 어떻게 써야 하는지 큰 고민을 할 필요가 없다. 그런데 거실 하나에 방 2개가 딸린 2LDK의 투룸 빌라나 소형 아파트에 살게 되었다면 자신의 라이프스타일에 맞춰 공간을 어떻게 구성해야 할지 경우의 수를 따져봐야 한다. 

- 침실+작업실+작업실. 1인 가구가 2LDK의 집을 얻었을 때 생각할 수 있는 가장 일반적인 조합은 가운데 거실을 두고 각 방을 침실과 작업실(서재), 또는 침실과 드레스룸으로 사용하는 방법이다(거실+침실+작업실 / 거실+침실+드레스룸 조합이다). 그런데 만약 작업실도 필요하고 드레스룸도 필요하다면? 아니면 작업실 외에 별도의 취미실을 갖고 싶다면? 또는 아예 작업실이 2개 필요하다면? 이럴 땐 과감하게 거실을 침실로 쓰는 것도 방법이다. 4인 가구가 사는 집이라면 개인 침실 말고 온 가족이 모일 수 있는 거실이 반드시 필요하겠지만 1인 가구라면 공용공간으로서의 거실이 굳이 필요하지 않다. 이럴 때 거실을 침실로 쓰면 뜻밖의 장점이 생긴다. 첫째, 거실 공간은 채광을 비롯해 모든 조건이 대개 집에게 가장 좋으며 넓고 쾌적하다. 둘째, 침실에는 침대와 옷장 같은 덩치 큰 가구를 두기 마련인데 이를 좁은 방이 아닌 넓은 거실에 두면 공간감이 더 살아난다. 건축상 방마다 적당한 가구 크기라는 게 있다. 작은 방에 너무 큰 가구를 들이면 가구의 모양새도 살지 않고 방도 답답해 보이기 때문에 가구를 적절히 두려면 방이 어느 정도 커야 한다는 얘기다. 하지만 투룸이라고 해서 나온 집들의 방은 대개 크기가 매우 작아서 침대 하나를 놓고 나면 공간이 꽉 차고 만다. 이럴 때 침대를 널찍한 거실에 두면 공간감이 살고 사용하기에도 편하다. 퇴근 후 집에 돌아와 거실에서 바로 옷을 갈아입고 침대 속에 들어가 뒹굴뒹굴하기 좋으며 주방과 화장실이 바로 연결되어 있어 편하다. 

 

- 그렇다면 '혼자만의 공간'이 필요한 커플을 위한 대안은 무엇일까? 결혼 전에 각자 독방을 썼듯 결혼을 한 후에도 여전히 독방을 쓰는 것이다. 즉 각자 방을 두고 거기에 싱글 침대, 옷장, 책상을 넣어 따로 쓰는 방식이다. 라이프스타일이 크게 엇갈리거나 출퇴근을 비롯한 업무 형태가 다른 경우는 이처럼 각방을 쓰는 게 합리적이다. 하지만 대개 사람들은 이에 대해 깜짝 놀라거나 짐짓 점잖은 충고를 한다. 
"부부 사이가 안 좋은 거야?"
"부부란 서로 꼭 붙어 있어야 돼."
각방 생활을 하는 게 불화나 별거로 가는 지름길이라도 되는 듯이 생각하고, 갓 결혼한 부부는 반드시 침실을 같이 써야 하는 줄 아는 사람이 많지만 이 명제는 결코 절대적 진리가 아니다. 부부가 한방을 쓰느냐 각방을 쓰느냐는 시대에 따라 달랐다. 그 예로 조선시대만 해도 양반가의 부부는 한방을 쓰지 않았다. 남녀유별, 부부유별의 유교 사상에 따라 아내는 안채에, 남편은 사랑채에 따로 머무는 게 보통이었다. 그마저도 안채의 안방은 어머니가 차지하고 있으니 며느리인 아내는 안방에서 마루 하나를 건넌 건넌방에서 생활했고, 사랑채의 사랑방은 아버지가 차지하고 있으니 아들인 남편은 사랑채 한쪽에 마련된 서방書房(책방)에서 생활했다. 남자는 사랑채에 있는 자신의 서방에 따로 머물렀기 때문에 대개 서방님이라 불렀고 이는 결혼한 남자를 두루 호칭하는 말이 되었다. 지금도 서방은 남편뿐 아니라 결혼한 시동생(결혼 전에는 도련님)과 손아래 시누이의 남편까지 지칭하는 말로 쓰인다. 그뿐만 아니라 장인 장모가 사위를 부르는 말도 서방이다. 그렇다면 여기서 의문 한 가지, 남편이 서방에 계속 살아서 호칭까지 서방님이 될 정도면 부부간 남녀상열지사의 정은 어떻게 쌓았을까? 늦은 밤이 되면 남편이 아내의 방에 왔다가 이른 새벽 다시 서방으로 돌아가는 식이었다. 그래서 조선시대 후기에는 안채와 사랑채 사이의 통행이 빈번한 것을 고려해 이 둘을 연결하는 긴 마루를 만들기도 했다. 

- 중세 유럽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오늘날 유럽의 대저택이나 성을 보면 아내의 침실, 남편의 침실이 따로 있는 걸 알 수 있다. 프랑스 베르사유 궁전에도 왕비의 침실, 왕의 침실이 별도로 마련되어 있다. 왕비는 자신의 시녀들을 데리고 자신의 방에서 생활했고 왕 역시 마찬가지였기 때문이다.

 

- 혼자 일하는 사람은 딱히 출퇴근 구분이 없어서 생활이 무질서하게 흐트러지기 쉽다. 평소에는 일이 하기 싫어 펑펑 놀다가 마감이나 제출해야 하는 날에 닥쳐 허둥지둥 밤을 새우는 사람이 많은데 그래서는 결코 제대로 일을 해낼 수 없다. 집에서 일을 하려면 철저한 자기 관리가 필요하며 우선 마음가짐부터 달리해야 한다. "집에서 작업을 한다"가 아니라 "작업실에서 생활한다"라는 마인드를 가져야 한다. 이곳은 집이 아니라 작업실이며 나는 일에 몰두하기 위해 이곳에서 밥도 먹고 잠도 자고 생활한다는 인식의 전환이다. 그러자면 가구 배치나 인테리어도 주택이 아닌 오피스 레이아웃으로 해놓는 게 좋다. 

 

- 우리도 예전에는 드레스룸이란 게 없었다. 대신 안방에 열두 자 장롱과 화장대를 두었다. 하지만 1990년대부터 중대형 아파트에서 침실 옆에 별도의 드레스룸을 만들기 시작했고 요즘에는 중소형 아파트에도 드레스룸은 물론 파우더룸을 두고 있다. 드레스룸은 옷장의 규모가 커진 것이고, 파우더룸은 화장대의 규모가 커진 것이다. 그렇게 가구가 독립된 '실'이 되었다. 물론 반대도 가능하다. 드레스룸이었던 카비네가 수납가구인 캐비닛이 되었듯, 실을 축소하면 가구가 된다. 

- 바로 이 점을 프리랜서가 일하는 원룸에 적용할 수 있다. 회의실을 대신해서 4인용 테이블을 두고, 휴게실을 대신할 티테이블 세트를 놓는 것이다. 그러면 원룸은 가장 작게 축소한 나만의 회의실이자, 휴게실이자, 오피스가 된다. 이렇게 사무공간이 제대로 계획되어 있어야 피곤하다는 이유로 소파에 드러눕는 일이 없어진다. 또한 침대, 옷장, 화장대 등 침실에 있어야 할 가구는 최대한 구석으로 밀어 넣어 되도록 눈에 띄지 않게 하는 게 좋다. 

 

- 거실도 안방도 서재도 모두 아이의 방이 될 것이고, 그러다가 초등학교에 들어가면 아이에게는 침실 말고 별도의 공부방이 필요해질 것이다. 그러다 보면 어른 둘이서 침실 하나를 함께 쓰고 아이가 침실과 공부방이라는 방 2개를 사용하는 상황이 일어나게 된다. 또는 아이가 가장 넓은 안방을 공부방 겸 침실로 쓰게 될 수도 있다. 아이 책상, 아이 침대, 아이 옷장 등등 아이에게 필요한 가구가 너무 많기 때문이다. 그리고 남은 방 2개를 부부가 각자 쓰게 될지 모른다. 아이가 태어나기 전부터 이미 방을 따로 사용했던 부부라면 이 방법이 더 편할 수도 있다. 3LDK 아파트를 엄마, 아빠, 아이 3인이 각자 하나씩 사용하는 방법인데 가족이라 할지라도 서로를 방해하지 않고 집을 온전한 휴식공간으로 쓰고자 한다면 이 방법도 나쁘지 않다. 공용공간으로는 거실이 있으니까. 

 

    

 

더보기

 

- 다만 현행법상으로 동거인이 존재하기는 한다. 혼인신고를 하면 서류에 배우자로 적히지만 전입신고를 하면 동거인으로 적히는 것이다. 하지만 말 그대로 동거인일 뿐 배우자가 아니기 때문에 그에 따르는 법적인 의무와 책임은 없다. 우리 사회에서 여자에게 결혼이란 남편이라는 존재 뒤에 시부모와 시누이, 시동생 등 '시'자 달린 가족이 우르르 딸려 오고 얼마 뒤 아이가 생기는, 선택의 여지가 없는 종합 선물세트와도 같았다. 그런데 여전히 선택의 여지가 없는 일인 걸까? 싫어하는 것은 빼고 좋아하는 것만 옵션처럼 골라 담을 수는 없을까? 좀 더 자유롭고 안전하게 제도권 안에서, 결혼처럼 동거를, 비혼 출산을, 딩크를. 

 

- 본가를 떠나 독립할 때 우리가 가장 먼저 생각하는 건 지금 돈이 얼마나 있는가 하는 문제고 그다음이 이 돈으로 어디에 집을 구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일 거다. 그런데 좋은 동네일수록 역시 방세가 비싸다. 전국에 들어서는 아파트란 아파트는 공장에서 찍어낸 듯 모두 똑같이 생겼지만 서울 강남의 아파트와 지방 어느 소도시의 아파트 주거비가 급격한 차이를 보이는 건 결국 지역 상황에 기인한다. 즉, 집을 구할 때 가장 중요하게 따져볼 문제는 이 돈으로 '어느 동네에 집을 구할 것인가'라고 할 수 있다. 

 

- 정말이지 어디에다 집을 구해야 할까?
우선 두 가지 기준이 있다. 첫째는 학교나 회사처럼 매일 통근해야 하는 곳을 기준으로 하는 것이고, 둘째는 자주 가는 곳이나 가고 싶어 하는 곳 또는 특별히 좋아하는 장소를 기준으로 하는 것이다. 전자가 실리를 취하는 방법이라면 후자는 취향을 따르는 방식인데, 직장인이라면 대개 실속 있게 회사와 가까운 곳을 택하는 편이다. 일주일에 5일을 출근해야 하니 직장 근처로 집을 구하는 게 편하겠지만 그렇다고 걸어서 10분 거리의 너무 가까운 곳이라면 오히려 불편할 수 있다. 야근이나 회식이 잦은 회사라면 집이 동료들의 아지트로 전락할 위험이 있고 주말 출근 같은 궂은일이 떠밀려 올 가능성도 높다. 또 퇴근 후 수면바지에 슬리퍼를 끌고 편의점에 갔다가 직장 동료와 마주칠 수도 있고 쉬는 날 혹시 누군가와 마주칠 수 있다는 걱정에 문밖출입을 제대로 못 할 수도 있다. 그래서 직장과 가까우면서도 조금 떨어진, 대신 인프라가 좋은 동네에 집을 구하는 것이 좋다. 

 

- 또한 학교와 조금 떨어진 동네는 뜻밖의 이점도 있다. 민낯에 고무줄로 머리를 질끈 묶은 채 운동화를 꺾어 신고 집 앞 편의점에 라면을 사러 가든, 만원에 세 개짜리 브래지어를 떨이로 파는 매대에서 색색의 속옷을 골라 담든 남자 선후배나 동기를 우연히 마주칠 일이 거의 없다. 들키지 말았으면 하는 모습이 지켜진다. 이처럼 회사나 학교에서 너무 가까운 곳보다는 차라리 조금 떨어져도 주변 환경과 인프라가 좋은 곳에 방을 얻는 게 더 좋다. 

- 앞서 이야기했듯 자주 가는 곳이나 특별히 좋아하는 동네에 집을 얻는 방법도 있다. 힙하고 쿨한 분위기가 넘치는 곳을 좋아한다면 홍대 주변을, 고즈넉한 동네 느낌을 원한다면 북촌이나 서촌을, 서울 중의 서울에 살고자 한다면 강남을... 누군가에게는 퇴근 후와 주말에 동네에 머물면서 맛집도 탐방하고 예쁜 카페에서 시간을 보내는 게 제일 큰 행복일 수 있다. 물론 이런 동네는 누구나 다 좋아하기 때문에 집값이 비싸다. 그러나 "싼 게 비지떡"이라는 오래된 말처럼 바꿔 말해 비싼 건 비싼 값을 하는 법이다. 교통비라도 아껴보고자 회사 바로 앞에 방을 구한 상황을 생각해보자. 집에 있어도 어쩐지 직장생활의 연속인 것만 같다. 문밖을 나서 봤자 맛집이라고는 점심시간마다 직장동료와 함께 간 식당이고, 예쁜 카페라고 해봤자 거래처와 미팅하던 바로 그 카페다. 그러니 나가는 대신 그저 침대 위에서만 뒹굴뒹굴 보내기 일쑤다. 멀리 가면 기분전환이 되겠지 싶어서 주말에는 지방으로 휴가 때는 해외로 여행을 간다. 그렇게 가기 시작한 여행이 쌓이면 지출이 만만치 않다. 교통비라도 절약하자는 처음의 의도가 무색하다. 그렇다면 차라리 해외만큼이나 예쁜 동네에서 살아보면 어떨까? 사진이 곧 화보가 되는 예쁜 카페, 음식 맛도 좋고 인테리어도 멋들어진 맛집이 즐비한 동네라면 일상이 곧 여행이다. 외국의 마을에서 한 달 살아보기가 유행하고 있는 지금 북촌에서 1년 살아보기, 강남에서 1년 살아보기도 싱글만이 즐길 수 있는 색다른 경험이다. 

 

- 무언가 확실히 '비빌 언덕'이 있는 곳에 집을 구하는 것도 방법이다. 독립을 하긴 하되 본가와 가까운 곳, 또는 결혼한 언니나 오빠 집 근처에 집을 구하는 것이다. 갑자기 무슨 일이 생겼을 때는 역시 가족만 한 게 없기 때문이다. 또 쏠쏠히 반찬을 얻어다 먹을 수도 있고 힘쓸 일이 필요할 때에는 형부나 오빠의 도움을 받을 수도 있다. 그런데 이 비빌 언덕이라는 게 꼭 가족만 되는 건 아니다. 든든하기만 하다면 무엇이든 좋다. 이를테면 근처에 구청이나 구민회관이 있어서 도서관과 체육관을 비롯한 문화시설을 이용할 수 있다든지, 코앞에 큰 공원이 있어 그곳을 거의 내 집 마당처럼 이용할 수 있다든지, 이런 게 다 1인 가구 입장에서는 비빌 언덕이 된다. 

- 이런 맥락에서 커다란 아파트 단지가 옆에 있다는 것은 아주 큰 이점이다. 잘 조성된 단지 내 시설을 이용할 수 있으니까. 더욱이 최근에 지어지는 브랜드 아파트들은 단지 내 공용시설을 설계 시 중점사항으로 여긴다. 잘 꾸며진 조경과 산책로, 커뮤니티 시설이 있으며 또한 슈퍼마켓, 세탁소, 반찬가게, 부동산 등 모든 편의시설이 아파트 입구에 몰려 있기 때문에 편리하기로는 최고다. 대단지 브랜드 아파트가 비싼 이유는 그 모든 것을 다 이용할 수 있는 비용도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그 주변 원룸, 투룸에 산다면 아파트보다 저렴한 집세를 내면서도 그 시설을 모두 이용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 경우에 따라서는 대학 주변에 방을 구하는 것도 생각해볼 수 있는 대안이다. 출신 대학 근처에 산다면 지리도 익숙하고 학교시설도 이용할 수 있어 편리한데, 출신 학교가 아니어도 대학가 주변에는 여러 장점이 있다. 우선 고시원과 원룸, 하숙, 셰어하우스에서 오피스텔까지 혼자 사는 사람을 위한 다양한 주거공간 스펙트럼이 존재한다. 1인 가구는 외식 비율이 높은데 (학생들을 상대로 하는 탓에) 저렴한 데다 혼밥이 가능한 식당이 많다. 또 스터디 카페, 헬스클럽, 미용실, 빨래방 같은 업소들이 골고루 들어서 있으며 또 비교적 저렴한 가격대로 운영된다. 원룸 이사, 원룸 청소 등 1인 가구 수요에 맞춘 서비스업도 쉽게 볼 수 있다. 무엇보다 학생이 많이 살기 때문에 동네 분위기가 험악하지 않고 집주인이 말도 안 되는 억지나 횡포를 부리는 일도 거의 없다. 

 

- 가구를 조립해야 하거나 변기가 막혀 뚫어야 할 때, 컴퓨터가 갑자기 먹통이 되었을 때, 한밤중에 머리가 아픈데 두통약이 없을 때, 설거지가 너무나 하기 싫을 때 등등 대개 동생에게 시킬 법한 일들을 대신해주는 생활밀착형 잔심부름 중개업체가 인기다. '애니맨', '도와줘', '김집사', '짬짬이서울' 등등 이 업체들은 앱을 통해 온라인으로 간편하게 이용자와 수행자의 거래를 중개한다. 비용도 1~2만 원 정도로 저렴하다. 주요 고객은 여성, 1인 가구, 워킹맘. 미루기 쉬운 부엌 청소나 혼자서는 당최 엄두가 안 나는 대청소를 해야 할 때 '청소연구소', '대리주부', '아내의휴일' 같은 가사도우미 업체(앱)를 이용하는 것도 이제는 흔하다. 이런 서비스는 1인 가구가 많이 모여 사는 지역에 집중되어 있다. 만일을 대비해 이런 서비스가 가능한 동네인지 체크해두는 것이 좋다. 

(리뷰자 주 : YMCA 가사도우미도 해당 지역에서 평이 괜찮은 경우 유용하다.)

 

- 주변에 술집이나 유흥업소가 많은 것도 좋지 않다. 그래서 집을 구할 때는 우선 낮에 한번 가서 본 뒤 마음에 들면 저녁에 다시 한번 가서 낮과 밤에 따라 분위기가 어떻게 바뀌는지를 살피는 게 중요하다. 낮이나 밤이나 한결같은 동네가 있는가 하면 야누스처럼 돌변하는 동네도 가끔 있다. 

 

- 그런데 가구 크기를 줄이면 쓰는 데 불편하지 않을까? 꼭 그렇진 않다. 대개의 가구가 신장 180cm인 남성의 몸을 기준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가 쓰는 가구의 크기는 프랑스 건축가 르코르뷔지에 Le Corbusier가 창안한 모듈러 시스템 modular system에서 유래한다. 그는 20세기 초 프랑스 마르세유에 유니테 다비타시옹 Unites dhabitation이라는 공동주택을 설계하면서 주택 내부의 치수를 정하는 데에 처음으로 모듈러 시스템을 적용했다(이 공동주택은 세계 최초의 주상복합 아파트로 평가받는다). 당시 프랑스 남성의 평균 신장은 174cm였는데 이보다 조금 큰 180cm(정확히는 6 feet 즉 182.9cm)를 기준으로 신체 사이즈에 따른 모든 건축 치수를 정리한 것이다. 

 

- 르코르뷔지에는 "집은 살기 위한 기계다"라는 말로 근대건축의 시대를 열었다. 고전 건축에서 벗어나 기하학에 기초를 둔 새로운 미의식을 추구했던 순수주의 건축가의 대표 인물이다. 필로티, 가로로 긴 창, 자유로운 평면, 자유로운 입면, 옥상정원 등의 다섯 가지 원칙을 세웠는데 이는 지금도 건축에서 지켜지고 있다. 그 예로 아파트나 다세대 주택의 1층에는 필로티(건축물의 1층은 기둥만 서는 공간으로 하고 2층 이상에 방을 짓는 방식)가 있으며, 빌딩의 옥상에는 옥상정원이 있다. 

- 모듈러 시스템이란 공동주택 내에서 단위의 척도를 정하는 기준으로 신체 치수에 기반해 만들어졌다. 침실의 최소 폭과 최소 높이, 복도의 최소 폭 등을 규정함으로써 사람이 너무 좁거나 낮은 방에 살지 않도록 했다. 마치 시간당 최저임금을 정해 절대 그 이하의 임금으로는 사람을 고용할 수 없게 만드는 것처럼, 인간이 살 수 있는 주택의 최소 폭과 높이를 한정해 놓았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건축가 입장에서도 침대나 책상, 식탁, 의자 등 기본적인 가구의 치수가 정해져 있어야 방의 크기를 구할 수 있기 때문에 모듈러 시스템은 매우 유용하다.


- 좀 더 집다운 집, 최소한 주방과 거실 그리고 침실이 분리되어 있고 방도 2개 정도 갖춘 집을 원할 때 생각해볼 수 있는 것이 빌라다. 그런데 우리가 뭉뚱그려 말하는 '빌라'는 건축법상 정확한 명칭이 아니다. 대개 다가구주택이거나 또는 다세대주택이다. 모든 주택은 크게 단독주택과 공동주택으로 나뉜다. 단독주택이란 개인이 오롯이 소유하고 있는 집 한 채를 가리키며 전원주택, 마당 딸린 2층 주택, 개량 한옥을 비롯해 고시원, 원룸주택 모두 여기 속한다. 그래서 고시원이나 원룸은 월세나 전세만 가능하고, 각각의 방을 개별로 등기 이전하거나 따로 매매할 수가 없다. 아울러 다가구주택도 단독주택에 포함된다. 도심에서 가장 흔히 볼 수 있는 다가구 주택은 앞서 말한 반지하 1층-2층 옥탑방으로 지어 올린 건물이 대표적인데 건축법상으로는 2층이지만 사실상 (집주인이 세를 많이 받기 위해) 4층인 집이다. 그러나 이 다가구주택도 결국은 단독주택에 해당하기 때문에 각 층마다 다른 세입자가 산다고 해도 임대만 가능할 뿐 개별 등기 신청이나 매매는 불가능하다.

 

- 한편 다세대주택은 공동주택에 속하는데 5층 이상의 공동주택을 아파트, 4층 이하의 공동주택을 다세대주택이라 한다. 그런데 아파트와 다세대주택은 한눈에 보기에도 쉽게 구분이 가지만 다가구주택과 다세대주택은 형태가 비슷해서 혼동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이 둘을 빌라라고 통칭해 부르는 일이 많은데 쉽게 구분하는 방법 중 하나를 말하자면, 층수를 세었을 때 반지하-1층-2층-옥탑방 (또는 3층)으로 이루어져 있으면 다가구주택이다. 그리고 반지하-1층-2층-3층-4층으로 되어 있으면 다세대주택이다. 또한 다가구주택은 건물이 한 채만 지어져 있지만 다세대주택은 서너 동이 함께 있기도 해 규모가 크다. 물론 정확히 알고자 한다면 등기부등본을 떼어 보거나 공인중개사에게 문의해보면 된다. 다가구주택은 단독주택이라서 임대만 가능하고, 다세대주택은 공동주택이라서 임대는 물론 매매도 가능하다는 사실을 꼭 기억하자. 

 

- 마치 유행하는 옷을 사 입듯, 기분과 상황에 맞는 가구를 구입해 4~5년 정도 쓰다가 이사를 갈 때 처분하고 새집, 새로운 환경에 맞는 가구를 찾는 것이다. 이케아가 성공한 것은 가구에도 FMCG 개념을 도입했기 때문이다. 전셋집에 살기 때문에 2~4년 주기로 이사를 가야 한다면 다른 인테리어에 돈을 쓰는 대신 예쁘고 세련된 가구를 구입하는 게 좋다. 이때 색상과 콘셉트를 통일해야 공간도 넓고 세련되어 보인다. 

 

- 가구는 옷장이나 책장, 서랍장처럼 물건을 수납하기 위한 용도의 수납가구와 의자나 테이블, 책상, 침대와 같이 사람의 몸이 닿으며 휴식을 하거나 작업을 할 때 쓰는 신체가구로 크게 나뉜다. 이때 수납가구의 비율을 줄이고 신체가구의 비율을 늘리는 게 공간을 아름답게 하는 비결이다.

- 공간은 사람과 많이 닮아 있다. 사람의 몸은 뼈대를 이루는 골격 외에 지방과 근육으로 나뉘는데 이때 골격은 건물의 전체 구조와 비슷하고, 지방은 잉여 칼로리를 축적한다는 점에서 수납가구라 할 수 있으며, 근육은 몸을 지탱하고 움직이기 위한 역할을 한다는 점에서 신체가구와 견줄 수 있다. 타고난 골격은 어쩔 수가 없듯이 이미 지어진 집은 벽체를 옮기거나 구조를 바꿀 수가 없다. 대신 사람이 운동으로 몸의 지방을 없애고 근육을 늘려 몸매를 가꾸듯, 공간은 수납가구를 줄이고 신체가구를 적재적소에 두는 것으로 변화를 꾀할 수 있다. 그리고 그게 바로 인테리어의 기본이다. 옷장, 서랍장, 캐비닛, 그릇장 등 물건을 담는 수납가구는 대개 네모난 형태에 크고 육중하다. 물건을 보관하는 용도가 우선이기 때문에 커다란 나무상자라고 생각하면 된다. 반면에 의자, 테이블, 책상 같은 신체가구는 가볍고 날렵한 형태라 예쁜 오브제가 되곤 한다. 

- 아파트 모델하우스가 아름다워 보이는 이유 중 하나는 수납가구의 비율이 낮고 신체가구가 하나씩 오브제로 놓여 있기 때문이다. 마치 런웨이를 걷는 패션모델이 지방은 거의 없고 근육으로 이루어진 몸매를 하고 있는 것과 같다. 수많은 여성잡지에서 물건을 어떻게 수납해야 하는지에 대해 자세히 설명하고 있다. 투명한 리빙박스 활용하기, 그릇장에 그릇 포개기 등등 갖가지 아이디어를 보여주지만 그런 건 결국 공간을 더욱 답답하게 만들 뿐이다. 최고의 성형은 다이어트 즉 지방을 줄이는 일이듯 최고의 인테리어는 수납가구를 줄이는 일이다.

- 한 뼘에 불과한 20cm가 뭐 그리 대수일까 싶지만 신체 사이즈에서 20cm는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차이다. 신장이 150cm인 여성과 170cm인 여성을 떠올려 보자. 분위기가 무척 다르다. 남자도 170cm인 경우와 190cm인 경우는 엄청 차이가 난다. 가구는 우리 신체와 직접 닿기 때문에 한 뼘 크기라 해도 상당히 차이가 크게 느껴지며, 따라서 모든 가구를 20cm씩 줄이면 공간이 훨씬 넓게 보인다. 더욱이 방 안에 가구가 하나뿐인 경우는 없다. 대개 서너 개 이상이다. 그러니 각각 한 뼘씩 줄인다 해도 합치면 60~80cm의 여유 공간이 생긴다. 다이어트로 원래 체중에서 10%를 감량한 뒤 예전에 입던 옷을 입어보면 똑같은 옷이라도 훨씬 맵시가 있고 잘 어울려 보인다. 공간도 마찬가지다. 
 
- 이때 전체 공간 중에서 사무공간이 차지하는 비율을 실률室率이라고 하는데 실률이 낮을수록 당연히 그 공간은 고급스러워진다. 사무실 문을 열면 책상 3개가 전부인 소기업의 경우 실률은 100%가 될 것이다. 하지만 로비, 회의실, 휴게실, 직원식당은 물론 탁구장과 헬스장까지 마련된 대기업은 전체 공간 중에 사무공간이 차지하는 비율이 60~70%가 될 것이다. 만약 여기에 도서관과 카페테리아까지 갖추었다면 실률은 더욱 내려간다. 실률이 낮을수록 그만큼 환경이 쾌적하고 복지도 좋은 것이다. 이처럼 회사 건물에서는 꼭 필요한 업무용 공간 외에 다른 부대 공간이 많이 마련될수록 좋은데 그렇다면 이를 작디작은 개인의 집에 어떻게 적용시킬 수 있을까? 

- 건축에서는 실의 규모를 축소하면 가구가 되고 반대로 가구의 규모를 확대하면 실室이 된다. 예를 들어 지금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캐비닛은 본래 수납가구를 가리키는 말이 아니라 17세기 프랑스 주택에서 침실에 딸린 작은 방, 카비네, cabinet을 뜻하는 말이었다. 카비네는 창이 없는 작은방으로 수납실 특히 드레스룸으로 쓰였다. 그래서 지금도 프랑스어에서는 이 단어가 작은 방, 창고, 또는 서재를 일컫는다. 영어에서 이 단어가 수납가구를 뜻하게 된 것은 침실에 카비네가 따로 있었던 프랑스 귀족들의 주거환경을 영국 서민층이 흉내 내었기 때문이다. 귀족처럼 드레스룸을 따로 두고 살 수는 없었던 그들은 침실 한구석에 옷장을 만들어 캐비닛이라 불렀고 지금까지 그 의미가 굳어졌다. 

- 거실+침실+서재+드레스룸. 방 하나를 독립된 드레스룸으로 쓰는 형식이다. 예전에는 대개 안방에 침대와 옷장을 함께 두었다. 그러나 이제는 생활수준이 높아지면서 옷 말고도 가방, 시계, 신발 등 패션 소품이 많아져 별도의 드레스룸이 필요해졌다. 또한 외부의 먼지나 오염 물질 때문에 옷을 침실에 두는 것을 꺼리는 것도 드레스룸을 따로 만드는 이유 중 하나다. 무엇보다 24평짜리 소형 아파트라도 방을 3개 만드는 경우가 많아지면서 각각의 방의 크기가 작아진 탓이 크다. 즉 더블침대 하나만 넣어도 침실이 꽉 차기 때문에 옷장을 둘 공간이 부족해 별도의 드레스룸을 만드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자연히 남은 방 2개는 침실, 서재 또는 취미실로 만드는 경우가 많다(2인 가구라면 결국 방 3개를 두 사람이 다 공유하는 셈이다). 

(리뷰자 주 : 1인 가구라도 이 조합이 가장 안정적이라고 생각한다.)

- 어떤 방은 시대에 따라 없어지고 생긴다. 4인 가구가 3LDK 아파트에 산다고 할 때 각 방은 방 주인의 이름을 따서 부르곤 한다. 엄마아빠방, 철수방, 영희방. 이처럼 방이 사용자의 이름으로 일컬어지는 것은 개인이 독방을 사용하는 현대의 풍습에 따라 굳어진 습관일 뿐이다. 본래 각 방은 식사실, 거실, 응접실처럼 사용자별이 아닌 기능별로 부르는 게 일반적이었고, 또한 주택에 어떤 방을 둘 것인가 하는 것은 시대별로 달랐다. 

- 이를테면 중세 유럽 귀족의 주택에서 가장 중요한 방은 무기실과 기도실이었다. 전쟁이 났을 때 직접 무장을 하고 출전하는 게 귀족의 의무 중 하나였기 때문에 갑옷과 무기를 보관하는 무기실은 귀족의 정체성을 보여주는 가장 중요한 방이었다. 또한 종교가 지배했던 시대였으므로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고 조용히 기도를 할 수 있는 기도실이 필수였다. 하지만 중세 이후 기사 계급이 쇠퇴하고 신흥 중산층이 상류사회에 등장하면서 새로운 방이 떠올랐다. 바로 서재다. 그리하여 18~19세기에 유럽의 집에서 가장 중요하고도 격식 있는 방은 서재였고 신사들은 그곳에서 하루의 대부분을 보냈다. 아울러 살롱 salon(사교적 모임을 주로 하는 서양의 객실, 응접실)이 새롭게 등장하기도 했다. 살롱은 여성이 손님을 맞이해 접대하기 위한 방이었다. 당시 여성들은 별다른 사회생활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종일 집 안에서만 지내야 했다. 상인층이나 서민층 여성은 가사노동으로 바빴지만 중산층이나 귀족층 여성은 가사노동이 아닌, 집에 찾아오는 손님을 접대하는 게 주요한 일이었으므로 이를 전담할 별도의 방이 필요했던 것이다. 격식 있는 가문의 경우엔 집에 살롱이 2개 이상 있기도 했다. 하나는 매주 한 가지 주제를 정해놓고 명사를 일고여덟 명 초대해 대화를 나누는, 마치 지금의 동아리 같은 모임을 주관하는 공간으로 쓰고 나머지 하나는 친한 친구끼리 격식을 차리지 않고 좀 더 편안한 대화를 주고받는 공간으로 나누어 쓰는 경우도 있었기 때문이다. 살롱은 17~18세기 프랑스 주택에서 가장 중요한 방이었지만 현대 주택에서 살롱을 두는 예는 없다. 중세의 무기실 또한 그렇다. 시대가 바뀌면서 이제는 사라진 방이 되었다. 


- 우리나라도 마찬가지다. 불과 수십 년 전과 비교해봐도 이제는 없어지거나 새로 생긴 방들이 있다. 없어진 방의 예로, 1960~1970년대 중산층 주택에는 응접실과 가정부방이 반드시 있었다. 당시 온 가족이 주로 모이는 방은 안방이었고 손님이 찾아왔을 때를 위해 응접실을 두었다(예전에는 거실을 응접실이라 불렀다. 거실 소파세트를 응접세트라고 했다).  


- 부부 침실은 두고 서재든 드레스룸이든 방 하나서 아기방으로 만드는 게 기본적인 방법이다. 그중 가장 작은 방인 드레스룸을 아기방으로 전용하는 경우가 많다. 원래 드레스룸이었던 공간이라 어느 정도 수리나 인테리어 공사는 필요할 수 있다. 최소한 도배나 바닥재 교체는 불가피할 수 있다. 이때 인테리어는 아이가 태어나기 서너 달 전에 일찌감치 해두어야 한다. 새집증후군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새집증후군은 새집을 지었을 때뿐만 아니라 새로 인테리어를 한 경우에도 안료나 접착제 등으로 인해 발생할 수 있다. 화학제품 때문에 눈이 따갑고 매캐한 방에 갓 태어난 아이를 재운다면?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그래서 냄새와 유해물질이 충분히 빠지도록 넉넉잡고 서너 달 전에는 인테리어 공사를 해두어야 한다. 벽지나 바닥재는 되도록 친환경 자재를 사용하고 환기에 유의해야 하며 공사 후에는 베이크아웃 bake-out을 실시하는 게 좋다. 베이크아웃이란 새집증후군을 방지하기 위한 방법 중 하나인데, 속옷이나 수건 등을 새로 샀을 때 그대로 입거나 쓰지 않고 한 번 세탁하고 난 후에 사용하는 것과 같이 집(방)의 온도를 올려 냄새를 밖으로 제거한다는 뜻이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