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자가 흐르는 이야기/Book2

[박진여] 당신, 전생에서 읽어드립니다

일루젼 2022. 5. 8. 1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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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박진여
출판 : 김영사 
출간 : 2015.03.27 


       

'에크하르트 톨레'의 <NOW>가 잘 읽히지 않아 뒤적거리다가 잡은 책이었는데, 단숨에 읽어나갈 수 있었다. 저자인 박진여 씨에 대해서는 몇 년 전에 접한 적이 있었지만 어찌어찌하다 보니 이제야 읽게 되었다. 

 

15년이 넘는 시간 동안 매일 천 배의 절 수행을 지속하고 있으시다는 말에, 이분께 삶은 말 그대로 수행이구나 싶었다. 개인의 사적인 삶을 거의 모두 내려놓은 하루하루를 쌓아가신다니 절로 존경심이 든다. 

 

교만이 먼지처럼 쌓인다는 말이 깊게 와닿았다. 인지하지 못하는 사이 행동 자체에 집착하는 스스로를 발견할 때마다 흠칫한다. '이것은 선한 행동이다'라는 생각을 알아차리면 잠시 멈추려 노력한다. 조금 더 깊게 들어가면 '그러므로 나는 ~~하다/할 것이다'라는 숨은 동기가 따라 나온다. 그런 뿌듯함을 기억하고 조심하려 노력하지만 쉽지 않다. 결과적으로 타인에게 도움이 되었다 해도 그런 동기에서 나온 행위들은 나 자신을 위한 행위일 뿐이다. 그것을 알면서도, 그 이상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몰라 막막해진다. 

 

전생을 알게 된다는 것은 또 하나의 족쇄가 될 수도 있다. 이 생에 만족하지 못하는 이들일수록 더욱 조심해야하지 않을까 싶다. 이전의 삶에 관한 내용들은 풀리지 않는 문제에 대한 힌트로써, 혹은 다 이루지 못한 업들을 풀어나가기 위한 앎으로써 주어져야지, 혹여라도 그 생에 이루었던 성취들이 내게 덧씌워지기를 바라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돌고 도는 삶 속에서 선업과 악업은 단 한 생에서도 뒤바뀔 수 있으니, 벗어날 때까지 모쪼록 좋은 습이라도 남도록 노력하는 게 유일한 길이 아닌가 싶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즐겁게 읽었다.  

        


   

우연이란 없어.
우연이란 신이 쓰는 가면일 뿐이야.

우연은
필연이라는 호수에서
흘러내리는
실개천 같은 것이지.

우연이 주는
진정한 메시지를 알아내지
못하면 신이 주는 기회를 놓치는 거야.

 

 

 

- 전생과 현생의 연관성을 전적으로 이해하고 받아들이면, 비로소 그 사람의 삶의 여정에서 긍정적인 변화가 본격적으로 시작될 수 있습니다. 

 

- 좋은 책에는 저자의 오랜 노력과 공부에서 나오는 맑게 정화된 에너지가 듬뿍 담겨 있으므로 그런 책을 읽는 것은 깨끗한 영혼을 리딩 하는 것과 비슷한 효과를 갖습니다. 리딩이나 독서에서 그런 맑은 에너지체를 만나는 일은 저를 참으로 기분 좋게 만듭니다. 그런 에너지체는 제 영성을 한층 더 일깨우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제 리딩 능력을 성장시켜 줍니다. 

 

- 또 전생 리딩의 내용이 내담자의 꿈과 교차 검증되는 사례도 많습니다. 즉, 리딩을 통해 알게 된 전생을 이야기해주면, 내담자가 매우 놀라워하면서 그 내용이 과거에 자신이 꿈에서 본 장면들과 일치한다고 토로합니다. 그중 어떤 사람들은 제가 말한 내용들을 꿈속에서 이미 보았다고 하거나, 제 얘기를 듣는 순간 왠지 낯설지 않은 묘한 느낌이 강하게 들면서 이유를 알 수 없는 소름이 돋는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 그간의 리딩 경험에 비추어보면 카르마가 삶에서 본격적으로 개입하는 시점은 사람들마다 다 다릅니다. 그러나 크게 봄, 여름, 가을, 겨울과 같은 네 번의 시기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첫 번째 시기는 태어나서 25세까지로 '학습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시기는 주로 부모님이나 선생님들로부터 삶의 경험과 지식을 전수받는 기간입니다. 이 중에서 특히 청소년기에는 자신에게 정해진 카르마가 있다 하더라도 부모님이나 주변의 도움, 그리고 자유의지에 입각한 자신의 노력으로 그 카르마적 한계를 뛰어넘을 수 있는 준비를 하게 됩니다. 이 기간에는 비교적 업의 개입이 덜하기 때문에 향후 형성되는 삶의 방향성을 만들어가는 데 주위의 도움을 받을 수 있는 매우 중요한 시기입니다.

 

- 하지만 아무리 훌륭한 소질이 있다 하더라도 적절한 준비를 하지 못하다가 30대에 뒤늦게 특별한 재능이 필요한 예능이나 스포츠와 같은 분야에 진출하기를 희망하면, 저로서는 다른 진로를 찾으라고 조언할 수밖에 없습니다. 30대에 도전한다면 성공할 확률은 중·고등학생 때부터 준비한 사람보다 월등히 낮아지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청소년기에는 선택의 여지가 많습니다. 이 시기에는 카르마의 간섭이 그리 심하지 않기 때문에 부모가 울타리 역할을 해주기도 하지만, 나쁜 카르마의 간섭이 비교적 약하므로 그 사람의 보호령이자 수호천사가 큰 힘을 발휘할 수 있습니다. 물론 전생에서 비롯된 무거운 카르마를 가지고 태어난 사람에게는, 수호천사마저도 힘을 쓰기 어려운 경우가 많습니다. 카르마의 법칙은 보호령도 함부로 간섭할 수 없는 더 높은 질서에 속하기 때문입니다.

 

- 본인의 자유의지에 따라 무엇을 선택해 어떻게 발전시켜 나갈 것인가와 같은 진로 선택 또한, 능력이 있거나 인성이 좋은 부모 밑에서 자랄 때 발전 가능성은 훨씬 넓어집니다. 그러므로 무엇보다 좋은 환경을 타고나는 것이 중요합니다. 하지만 청소년기에는 가족과 친구 등 주위 사람들의 영향이 더 크게 작용하므로 이때 많은 지혜와 지식을 쌓는다면, 과거 생의 카르마가 본격적으로 발현되는 20~30대에 긍정적 도움을 받을 수 있습니다.

 

- 한편 기도나 리딩을 하다 보면 여러 메시지가 찾아옵니다. 그런데 그것을 아무런 조심성 없이 맹종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평범한 사람도 기도를 많이 하는 분들 중에는 내일 생길 일을 예견하게 되는 경우가 더러 있습니다. 이렇게 미래를 보게 되면 자신의 예언이 맞는 일도 생기는데 이를 마냥 신기해하고 재밌어합니다. 문제는 기도할 때마다 예언적 메시지를 보기를 바라고, 또 보이는 것을 있는 그대로 믿고 맹신하기 시작하면서 생깁니다. 그러면 그 예견 능력이 점점 마로 자라나 참된 마음공부를 방해하는 가장 큰 적이 되기 십상입니다. 무엇이 보이거나 느껴지거든 알아차리고도 바로 버려야 합니다. 어떤 장면이나 메시지가 나타나면 보는 순간 그냥 '아, 그렇구나' 하고 버리고, 또 나타나도 '그렇구나' 하고 바로 흘려보내는 공부를 해야 합니다. 자꾸 의미를 두면 그게 큰 마장(귀신의 장난이라는 뜻으로 일의 진행에 나타나는 뜻밖의 방해를 이르는 말)이 됩니다. 거기에 갇히게 되는 겁니다. 그때부터는 더 이상 발전도 없고 그 속에서 맴돌게 됩니다. 

 

- 교만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먼지처럼 쌓이다가 차츰 단단한 바위처럼 내면에 자리를 잡습니다. 사회적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쌓인 교만을 깎기 위해서는 그에 상응하는 시련과 고통의 시간이 주어집니다. 그것이 피할 수 없는 카르마의 법칙입니다. 그러나 이 법칙은 징벌이 아닌 균형과 수정을 의미합니다. 또 이런 정화와 균형의 의무는 어느 생에서라도 반드시 이루어져야만 합니다. 

 

- 하지만 오랜 리딩 경험을 통해 알게 된 사실이 있습니다. 헤어질 수밖에 없는 인연을 가진 부부는 제 리딩이 아니더라도 인연이 다하는 순간이 도래하면, 어떤 방식으로든 헤어지게 되더라는 것입니다. 서로가 가진 업연의 상호작용이 끝났을 때는 관계가 더 이상 지속될 필요가 없다는 의미일 겁니다. 리딩은 인간관계에서 중요한 경험 중 하나가 결혼임을 보여줍니다. 일면식도 없던 사람을 만나 평생을 함께 사는 일은 인연이라는 관점에서 경이로운 일입니다. 그러나 업연에 의해 맺어진 결혼이라 할지라도, 그 결혼이 행복이나 불행의 어느 방향으로 진행되건 간에 카르마의 영적인 상호작용이 끝나는 시기에 결혼 관계는 종료됩니다. 물론 좋은 인연으로 만난 행복한 결혼은 죽음이 둘을 갈라놓을 때까지 지속될 것이지만, 나쁜 업연의 경우에는 그 업연이 소멸되는 시점에 인연법으로 인한 관계도 종료되기 마련입니다. 이처럼 카르마의 법칙은 결혼에서 직업 선택에 이르기까지 우리 삶의 전체적인 모습을 만들어내는 가장 큰 원리임을 리딩은 거듭 알려줍니다. 비록 우리가 그 사실을 모르거나 설령 받아들이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말입니다. 

- 전생을 보러 오는 사람들은 대부분 부정적 카르마의 근저당이 풀리는 시점에 찾아옵니다. 이것은 삶의 중요한 전환점을 의미하는 것으로, 전생을 알 수 있는 영적 자격이 갖추어지고 리딩 내용을 받아들여 마음이 열리는 때이기도 합니다. 자신의 진면목을 볼 수 있는 이 공간에 들어서는 내담자들의 모습은 마치 교회나 성당을 찾을 때와 비슷합니다. 숙연한 마음가짐으로 옷깃을 여미는 분이 많습니다. 그것은 자신이 몰랐던 또 다른 자신과 만나는 두려움과 떨림, 그리고 과거에 어떤 사람으로 살았을까 하는 호기심 때문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과연 현생에서 일어난 문제를 전생의 삶과 연결해 해결할 수 있을까 부담을 느끼는 경우도 많습니다. 그러나 반신반의하며 찾아왔다 하더라도 지금의 자리에 와 있다는 사실이 중요합니다. 스스로의 결정이나 선택이 아니었다 해도 내담자들이 알 수 없는 끌림에 따라 필연적으로 여기에 오게 된다는 사실을 많은 사람들을 상담하며 알게 되었습니다. 

 

- 전생 리딩 과정에서 내담자는 어떤 방식으로든 긍정적인 변화를 경험할 확률이 높습니다. 그 이유는 스스로 인격의 변화가 일어날 수 있는 삶의 전환점에서 리딩을 하러 오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내담자는 받아들이기 쉽지 않은 힘든 문제에 직면했을 때나 용서하기 쉽지 않은 사람을 만났을 때, 혹은 전생에 관한 의미심장한 꿈으로 예지를 받는 등 변화를 반드시 겪어야 할 시점에 의식적으로 또는 무의식적으로 저를 찾아옵니다. 그럴 때 리딩의 효과는 보다 분명하게 나타납니다. 리딩을 통해 내담자에게 진심 어린 연민과 사랑이 생겨나면 스스로가 진정한 변화를 경험합니다. 그러면 상대방도 자연스럽게 바뀌게 되어 있습니다. 마치 호수에 바람이 불면 물결이 일듯이 말입니다. 내가 먼저 긍정적으로 행동하면 주위 사람들도 그에 상응하는 변화를 보입니다. 자신이 원했던 수준이 아니라 해도 인내심을 갖고 지켜보면 그만큼의 변화가 분명히 찾아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자신의 변화가 상대방의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는가는 진정성이 오래 유지될 때 확연해집니다. 이것이 리딩이 목표로 삼는 중요한 포인트이기도 합니다. 스스로 마음가짐을 어떻게 가지느냐가 가장 중요하다는 뜻이지요. 

 

- 한편 습법이란 우리가 살아오면서 축적한 갈애(오욕의 욕망에 집착함)로 인해 쌓은 업 전체를 말합니다. 또 습은 문틈 사이로 스며드는 습기와 같아서 자신도 모르게 특정한 행동과 마음가짐에 익숙해지는 것을 뜻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부지불식간에 우리의 성격으로 자리 잡아 저마다의 특징적인 모습으로 일상적인 삶에서 발현됩니다. 어떤 사람은 남에게 봉사하기를 좋아합니다. 그런 사람에게는 남을 위한 배려와 봉사가 습이 됩니다. 반대로 어떤 사람은 재물에 욕심이 많아 자신보다 가난한 사람들이 가진 재물에도 욕심을 냅니다. 욕심이 습이 된 것이지요. 그리고 우리의 모든 습은 어느 날 갑자기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오랜 과거 생에서부터 차곡차곡 쌓여서 이루어집니다. 그 점에서 현생에서 우리의 독특한 성향으로 발현되는 습은 과거 생의 모습들을 오늘로 연결하는 장치입니다. 그래서 같은 부모 아래 태어나 같은 문화와 환경 속에서 자라나도, 타고난 습의 차이 때문에 각기 다른 특성을 보이고 결국 다른 삶을 살게 됩니다. 즉, 우리가 다른 선택과 판단, 행동 양식을 보이는 것은 저마다 타고난 습이 달라서입니다. 

 

- 특히 삶의 중요한 순간에는 평소의 습이 자신도 모르게 선택을 하게 만듭니다. 그런 이유 때문에 본능적 습은 우리가 경험하고 배워야 할 모든 것을 포괄하는 운명의 테두리를 엮어냅니다. 그래서 습은 업의 진행에 가장 중요한 요인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따라서 업을 정화시키고 삶의 모습을 바꾸기 위해서는 반드시 자신의 습을 먼저 변화시켜야 합니다. 

- 상담을 요청한 분들은 대부분 전생을 알면 삶이 획기적으로 바뀌지 않을까 기대합니다. 그러나 자신의 전생을 그저 아는 것만으로는 당장 달라지기 어렵습니다. 자신의 참된 정체성을 이해하고 스스로 변화하려고 노력해야만 달라질 수 있습니다.   

 

- 우리가 흔히 말하는 운명은 카르마의 외피라고 할 수 있습니다. 카르마의 중심을 차지하는 숙명과 달리 이번 생에서 바꿀 수 있다는 뜻입니다. 다시 말해 숙명은 한 번의 생으로 바꾸기 어렵지만, 운명은 자신의 의지와 노력으로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 그 점에서 숙명은 신체를 구성하는 뼈와 흡사하고, 운명은 그 위에 붙어 있는 살이나 근육과도 같습니다. 병원에서 얼굴 모습을 바꾸기는 쉬워도 골격을 고치는 일은 쉽지 않은 것과 비슷합니다. 

 

- 봉사와 희생정신으로 이웃을 배려하는 것이야말로 신과 섭리가 우리에게 바라는 가장 바른 모습이기 때문입니다. 주어진 생을 살다가 노년에 접어들면 노후를 준비하기 위해 자금을 마련하는데, 사실 정말 중요한 것은 노후연금이 아니라 여러 생에 걸친 사후 연금 준비일 수 있습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 다시 태어날 때 쓸 수 있는 행복을 위한 무제한의 카드는 그런 식으로 준비됩니다. 즉, 사후 연금을 넉넉하게 준비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타인을 위한 진정한 봉사와 이웃을 사랑하는 일입니다. 그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게 된다면, 오늘 우리에게 주어진 하루하루의 일과가 지닌 소중함을 뼈저리게 느낄 것입니다. 

- 우리가 현생에서 매 시간마다 보고 느끼는 모든 것이 소중하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특히 경쟁과 다툼이 전부인 것처럼 보이는 각박한 시대일수록 세속적인 행복보다 영적인 행복을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세속적인 행복이 자신만을 위한 것이라면, 영적인 행복은 그 범위가 넓어 주위 사람들도 함께 누릴 수 있습니다. 그리고 영적인 행복은 사랑과 나눔을 실천하는 봉사정신으로 얻어집니다. 더불어 그런 마음이야말로 미래 생에서 우리에게 분명히 커다란 행복을 주는 유일한 원천임을 리딩은 거듭 강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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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가 읽어내는 정보들은 과거 생에 우리가 만들어냈던 모든 생각과 행동의 기록입니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윤회'와 '환생'은 여러 생을 거쳐 영혼이 진화하는 현상을 설명하는 말입니다. 오랫동안 많은 사람의 전생을 리딩해 오면서 저는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점차 명확하게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 사람은 누구나 저마다 독특한 환경과 운명의 테두리 안에서 태어납니다. 어떤 사람은 부자여도 불행하고, 어떤 사람은 가난해도 행복하게 살아갑니다. 또 어떤 사람은 가혹하고 힘든 상황 속에서도 희망과 용기를 잃지 않지만, 유복한 환경 속에서도 삶을 힘겨워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모두들 행복한 삶을 원하고, 그 꿈을 이루려는 희망으로 살아가고 있음은 분명합니다. 물론 행복한 삶을 이루기란 쉽지 않습니다. 어쩌면 우리가 꿈꾸는 그런 행복은 아예 불가능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간의 리딩 경험은 저에게 소중한 가르침을 주었습니다. 무엇보다 전생 리딩은 사람들이 찾는 삶의 답이 각자의 내면에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었습니다. 어떤 환경에 처해 있든 삶에 담겨 있는 영적 약속의 내용과 의미를 내면에서 발견하는 것이 행복의 첫 계단이었습니다. 다시 말해 슬픔, 고통, 기쁨의 드라마가 품고 있는 영적인 의미를 알아야 한다는 뜻입니다.

 

- 전생 리딩은 모든 사람이 이 세상에 올 때 각자 풀어야 할 카르마의 숙제를 가지고 태어난다는 사실을 명확하게 보여줍니다. 전생에서 비록 부정적인 삶을 살았다 하더라도 현생에서 참된 봉사와 사랑을 실천하고 타인을 배려하려고 노력하면, 어느 순간 힘든 상황을 바라보는 마음 상태가 급격히 바뀌고 자신의 카르마가 정화되면서 삶의 전체적인 양상이 달라집니다. 의식의 변화는 행위를 변화시킵니다. 잘못된 행위란 결국 의식의 차원에서 비롯되기 때문입니다. 카르마는 그 사람의 의식에서 만들어지므로 의식을 긍정적인 방향으로 변화시키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그리고 의식은 무의식에 그 뿌리를 두고 있으므로 의식을 변화시키는 것은 무의식 속에 잠재된 업을 정화하는 결과를 낳습니다.

- 태초부터 인류는 '우리는 어디에서 왔으며 누구이며 어디로 가는가?'라는 의문을 가지고 살아왔습니다. 그런데 전생을 알게 되는 것은 이런 의문을 해결하는 데 큰 돌파구가 됩니다. 덧붙이자면 카르마의 법칙은 전생의 과실이나 실책을 처벌한다는 의미라기보다는 당사자가 지금의 행위를 통해 다음 삶을 바꾸어나갈 수 있다는 교정의 의미가 더 큽니다.   

 

- 이처럼 의식이 명료한 상태에서 내담자의 영적 정보들을 읽어나가는데, 아주 짧은 시간에 수많은 장면들이 영화처럼 눈앞에서 흘러갑니다. 마치 내담자 자신이 머릿속에서 지난 시간의 기억을 떠올리는 것처럼 말입니다. 그 순간 내담자의 기억을 포함한 일체의 정보를 그 사람과 함께 공유하는 공명 현상이 일어납니다. 이런 과정은 모두 제가 눈을 감고 리딩에 알맞은 명상 자세를 취하고 의식을 집중하는 상태에서 이루어집니다. 이윽고 여러 압축적인 장면들이 일정한 틀을 갖추기 시작하는데, 그러면서 내담자에게 필요한 전생의 스토리가 멀리 혹은 가까이에 펼쳐집니다. 2~3분 남짓 그렇게 인식된 전체의 틀을 확인한 후 저는 내담자에게 알아낸 내용을 하나하나 풀어서 이야기해줍니다. 눈을 뜬 상태에서도 리딩이 가능하지만 리딩 과정에서 눈을 마주치게 되면 내담자들이 불편해하는 경우가 종종 있어, 대체로 눈을 감고 리딩을 진행합니다. 

- 그렇다고 제가 모든 사람의 정보를 그냥 읽어낼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리딩을 위해서는 영계의 존재로 개인의 삶을 수호하는 보호령, 혹은 주관령에게 그 하위체인 내담자의 정보를 읽는 것을 허락받아야 합니다. 이 보호령을 서양에서는 수호천사'라고도 부릅니다. 제가 내담자들의 보호령에게 영적 정보에 대한 일종의 열람을 신청하면 거의 모든 경우 허락을 합니다. 마치 '제 집에 들어오는 걸 허락할 테니 우리 아이를 보살펴주세요' 하는 것처럼요. 

 

- 리딩과 상담 내용은 내담자가 요청하지 않더라도 가급적 녹음을 해서 드립니다. 시대가 변한 요즘은 내담자들이 스마트 폰 등에 알아서들 녹음해 갑니다. 녹음해 드리는 이유는 전생과 연관된 이야기는 현생의 삶을 살아가면서 꼭 기억해야 할 중요한 내용이므로 거듭 듣고 반드시 알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즉 이번 생에서 배워야 하고 경계해야 할 부분을 명확하게 구분해 염두에 둘 필요가 있어서입니다. 우리 삶의 매 순간은 전체 생애라는 긴 관점에서 보아야 제대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특히 리딩 내용이 자신의 전체적인 삶에서 갖는 의미가 온전하게 파악되는 시점은, 일정한 시간이 지나 현생에서 필요한 새로운 인연을 만나고 삶의 결정적인 전환기를 맞을 때입니다. 그래서 녹음된 내용을 수시로 듣고 참고할 필요가 있습니다. 게다가 자신의 전생 이야기를 들으면 당장은 그 흥미로움 때문에라도 일시적인 관심을 가질 수 있지만, 이런 관심은 금방 사라지기 마련입니다. 그래서 저는 리딩이 내담자의 현생이 품고 있는 전체성을 내담자가 이해하는 중요한 기회가 될 수 있도록 최대한 도우려고 합니다. 

 

- '과연 내가 보는 것이 맞을까?' 타인의 전생을 리딩 하기 시작한 초기에는 이런 의문이 저를 가장 괴롭혔습니다. 그리고 스스로도 확신하지 못하는 이야기들을 전달하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인가 하는 두려움에 많이 힘들었습니다. 그런 때는 차라리 신내림을 받아 신의 이름으로 이야기를 대신 전달하는 분들이 부러웠습니다. 신을 받았다면 매개체로서 신께 의지하면 되겠지만 저는 신을 받은 게 아니기 때문에 그 막막함이 너무나도 크게 다가와 저를 짓눌렀습니다. 그분들은 중간자의 역할이기에 그만큼 스스로 책임져야 하는 부분이 덜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저의 전생 리딩은 깨어 있는 또렷한 의식 상태에서 스스로 해석한 이후에 왜곡 없이 내담자들이 이해할 수 있도록 정보를 전달해야 하는 탓에, 익숙해지기까지 많은 시행착오와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리딩 초기에는 스승인 법운 선생님의 도움으로 어려움들을 극복할 수 있었습니다. 특히 선생님이 발전시킨 독특한 명상법으로 제 차크라를 많이 정화시키면서 리딩 능력이 점차 자연스럽게 안착되기 시작했습니다. 

- 내담자들의 예상과 달리 다른 사람의 전생을 보는 것 자체는 그리 힘들지 않습니다. 오히려 리딩 과정에서 정보들이 매우 압축적으로 한꺼번에 주어지므로 그것들을 하나의 전체적인 틀로 묶은 다음에 풀어내어 전달하는 과정이 더 어렵습니다. 큰 틀에서 보고 이해하는 것은 순간적으로 단번에 이루어지지만, 압축파일과 같은 정보들을 풀어서 내담자가 공감할 수 있도록 전달하는 과정에는 많은 에너지가 소모되는 것이지요. 제가 순간적으로 읽어낸 내담자의 다양한 정보 중에서 현생의 삶에 가장 밀접하게 영향을 미치는 전생을 찾아내 전달하는 것이 제일 어렵습니다. 마치 고속으로 달리는 기차 안에서 순간적으로 지나가는 간이역의 이름을 읽어내 알려주는 것과도 비슷합니다. 

 

- 영혼이 맑은 사람의 전생은 참 잘 보입니다. 맑은 사람을 리딩 할 때에는 그들의 마음속으로 곧장 들어갈 수 있습니다. 그리고 마치 그 사람과 하나가 된 듯한 일체감마저 느낍니다. 그러나 물질적 탐욕이나 개인적인 욕망으로 탁해져 있는 사람은 전생을 읽는 데 에너지가 많이 소모될뿐더러 잘 보이지도 않습니다. 그런 내담자를 리딩 하는 일은 진흙 속을 헤치는 것과 흡사합니다. 시계가 흐린 물속을 더듬어 수색하듯이 정말 많은 에너지를 쏟아야만 합니다. 마치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흙탕물 속이나 자욱한 안개에 싸인 산길을 걸어가는 느낌입니다. 그렇게 리딩을 하면 저 자신의 생명 에너지가 급속하게 소모됩니다. 맑은 분 같으면 짧더라도 빨리 그리고 명료하게 리딩이 진행되는데, 그렇지 않은 분들은 시간도 더 많이 소요됩니다.

 

- 조금 더 자세히 설명해보면요. 리딩이라는 영적 차원과의 접속 과정에는 물질적인 차원에서는 설명하기 힘들 정도의 엄청난 정보가 순식간에 전달됩니다. 맑은 영혼을 가진 내담자의 영적 정보는 더욱 많이 그리고 빠르게 보입니다. 수많은 생의 행적이 담긴 영적 정보를 다차원의 우주적 컴퓨터에서 한꺼번에 불러오는 것처럼 말입니다. 거기에는 지구의 삶뿐만 아니라 다른 차원에서의 삶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렇게 읽어온 정보 중에서 내담자에게 무엇을 얼마나 많이 전달해줄 것인가를 결정하는 데는 그 사람이 얼마나 수용할 수 있을 것인가의 여부가 가장 중요합니다.   

 

- 영혼이 맑은 사람들은 전생의 삶에서도 자기를 내세우지 않고 타인을 도와주려 하며, 어떻게 하면 이웃과 더불어 잘 살 수 있을까를 고민했던 '사랑'의 마음을 가졌습니다. 대가를 바라지 않고 봉사하고 배려하는 마음이야말로 영적 진보를 위한 유일한 사다리임을 그분들은 아는 것 같습니다. 이렇게 전생에 영적인 수행도 많이 하고, 실제 삶도 헌신하고 봉사했던 분들은 영혼이 굉장히 맑습니다. 그런 분들이 오면 리딩도 힘들지 않고, 오히려 그분들이 가지고 있는 좋은 에너지를 받으면서 저도 정화가 됩니다. 그런데 그런 분들은 정말 많지 않습니다. 

 

- 반면에 나쁜 습관으로 인해 마음에 업심業心(전생에 나쁘게 살았던 삶의 흔적들)이 가득한 사람의 전생을 읽으면 저 역시 그런 기운에 휩싸이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런 때는 굉장히 힘이 듭니다. 마치 지옥에 와 있는 느낌마저 듭니다. 또 어떤 영적 존재에 빙의가 됐다거나, 영적 허영이나 사리사욕에 집착하는 분들이 오면 더욱 힘들어집니다. 그리고 그 사람이 지닌 부정적 에너지 때문에 리딩 하는 것도 어렵지만, 리딩 후에도 제 심신의 상태가 급격하게 저하됩니다. 믿기 힘든 얘기로 들리겠지만 전생에 살생의 인과가 많았던 내담자의 경우에는 그 사람에게 죽임을 당했던 영혼들이 배경처럼 함께 따라옵니다. 리딩 하는 과정에서 전생에 살해당한 영혼들이 함께 보이는데, 그 얼굴들이 그 사람 뒤에 둥둥 떠 오버랩됩니다. 내담자 뒤에 죽은 사람들의 영혼들이 마치 포도송이처럼 주렁주렁 매달려 있는 것이지요. 이런 내담자를 리딩 하는 일이 얼마나 힘든지는 말로 설명하기 어렵습니다. 

 

- 교만한 사람과의 상담도 여간 어렵지 않습니다. 커다란 바위산이 제 몸에 얹혀 있는 것 같습니다. 전생이 보이기는 하지만, 리딩 하기에는 너무 무겁습니다. 보통 그런 사람들은 사회에서도 출세한 경우가 많습니다. 한 번은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리딩을 시작하자마자 그 내담자에게 건넨 제 첫마디는 "00님은 너무 교만합니다"였습니다. 그분은 과거 생에서 부와 명예를 한껏 누렸던 높은 위치에 있었던 분이었습니다. 반면에 그만큼의 교만함이 현생에서도 크게 영향을 미치고 있었습니다.  

 

- 또 가장 기억나는 일 중 하나는 저에게 영향을 미치려 했던 어느 영가 할머니와의 작별입니다. 법운 선생님을 만나 공부를 하면서도 항상 저 자신에 대한 의문과 마음속의 방황이 계속되어 하루에 천 배씩 백만 배를 하겠다는 원을 세우고 천일기도를 할 때였습니다. 천일기도가 끝날 즈음의 저녁 기도 중에 순간적으로 제 눈앞에 무복巫服 차림을 한 날카로운 눈빛을 가진 할머니 한 분이 나타났습니다. 그리고 그 할머니는 자신의 모자와 양손에 든 대나무와 방울을 내팽개치면서 '아이고, 힘들어서 이제는 더 못 있겠다!' 하고는 홀연히 제 가슴 차크라에서 떠났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제 몸의 주신主神으로 자리 잡으려 했는데, 매일 천 배씩 하는 기도의 힘 때문에 머무르지 못한 것 같습니다. 

 

- 선생님은 제가 선생님의 연구소에 처음 찾아갔을 때 말은 안 했지만 저를 보고 많이 놀라셨다고 합니다. 자신보다 높은 영적 능력을 타고난 저에 대한 질투심 때문이었다고 나중에 말씀해주셨습니다. 제가 가진 후광이 두렵기까지 했다고 하셨습니다. 처음 보는 순간부터 과거 생의 인연법에 따라 앞으로 자신의 제자가 될 아이라는 것도, 그리고 동시에 자신의 스승이 될 것이라는 것도 ... 

 

- 상담을 원하는 사람들은 삶의 경험도, 사는 환경도 제각각입니다. 저마다 개성이 있고 고민도 있고 자부심도 있습니다. 그런데 그들의 현재 삶을 전생과 연관시켜 설명하면 현재의 고민이나 특성, 개성 같은 것들이 더 큰 차원에서 일관성 있게 설명되는 것을 거듭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제 얘기를 듣고 내담자들이 더 큰 차원에서 삶의 균형과 의미를 찾아가는 것이 분명하게 보였습니다. 이렇게 리딩의 내용이 내담자들의 삶을 실제로 변화시키는 것을 저 자신이 오랫동안 목격하면서 전생 리딩이 확인시켜주는 섭리와 인연법에 대한 믿음 역시 확고해졌습니다. 그렇지만 이런 변화가 있기 위해서는 내담자의 태도가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점도 알게 되었습니다.

 

- 우리가 살아가면서 경험하는 삶의 고단함은 어쩌면 우리가 지금은 기억하지 못하는 시점에 우리 스스로 선택하고 온 영적 약속의 결과일지 모릅니다. 우리가 그 의미를 명확하게 인식하지 못하더라도 말입니다. 그런데 어떤 계기로든 우리가 현생에서 겪고 있는 어려움과 고난을 더 큰 맥락에서 바라보면, 우리의 삶은 놀랍게 변할 수 있습니다. 저는 내담자들의 전생을 리딩 하면서 참된 변화가 다름 아닌 우리의 내면에서 시작된다는 사실을 거듭 알게 되었습니다.  

 

- 나무에 머무는 존재와 다시 태어난 존재는 둘이 아니라 하나의 영적 공동체라 할 수 있습니다. 달리 설명하자면 일종의 분령체로 동일한 영적 에너지가 그렇게 나뉘어 존재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제 리딩은 영가들에게 초점을 맞추지 않습니다. 다만 내담자가 더 건강한 삶을 꾸리는 데 필요할 때만 영가들에 대해 살펴봅니다. 보통은 오랜 고통의 시간을 통해 자신의 카르마를 잘 정화해냈다면, 특정인에게 머물러 있던 영적 존재들이 어떤 식으로든 자신을 드러내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렇지만 제가 쓸데없이 영가들에게 흥미를 가진다면 그 존재들이 저의 리딩을 간섭할 수 있기에 꼭 필요한 때가 아니면 무시합니다.

 

- 물론 리딩을 할 때 선한 영혼이 도움을 주는 경우도 있지만, 그럴 때에도 가급적 도움을 받지 않으려 합니다. 어쨌건 문제는 우리의 의지와 노력으로 풀어나가야 하니까요. 한편 꼭 와야 할 사람인데도 자꾸 영가가 방해해 오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예약을 해놓고도 안 오는 사람 중에 그런 사람이 많습니다. 상담을 부탁드린다고 신신당부를 해놓고 안 오는 유형이 그런 사람입니다. 흥미로운 사실은 그런 분들이 무속인에게 가려고 하면 기분이 매우 좋아진다는 겁니다. 심지어 어떤 사람들은 마치 하늘을 나는 듯한 기분이 들기도 하는데, 실제로 그런 기분을 느끼게 만드는 주체는 영가들입니다. 보통 영가들은 무속인한테 가면 대접받고 위로받으니까 그들을 더 선호합니다. 

 

- 특히 부정적인 영가가 서로 얽혀 있을 때는 의뢰하는 사람의 감정 기복이 심해지면서 영가의 기분에 지배당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영가 중에는 의외로 착한 영가도 있습니다. 죽음의 길이 두려워 떠나지 못하고 방황하다가 자기와 파동이 맞는 사람의 몸에 빙의되어 일시적으로 머무는 존재들이지요. 자기가 머물 곳이 아닌데도 그냥 계속 머무르는 경우도 있는데, 그런 영가들이 서로를 인식해 특정인의 몸에 모이게 되면 그들이 내뿜는 나쁜 에너지가 그 사람의 감정체에 영향을 주어 질병과 함께 우울증 등을 일으키기도 합니다. 

 

- 전생을 알고자 찾아오는 분들 중에는 평소에 수행을 했거나 보이지 않는 영적 세계에 큰 관심이 있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이 분야의 책도 많이 읽고 수행도 열심히 한 분들은 전생에 대해 거는 기대가 다른 사람들에 비해 상당히 큽니다. 하지만 그런 분들에게도 높고 크고 훌륭한 전생만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전생에 만들어진 카르마가 현생에 어떻게 연결되어 영향을 미치는가를 이해하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즉, 자신이 과거 생에 어떤 신분이었는가라는 사실 자체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특히 현실의 삶에 만족하기 어려운 분들은 '과거 생에서는 내가 높고 훌륭한 사람이었다'라는 전생의 신분이 밝혀짐으로써 위로를 받고 싶어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 다시 말해 동양 문화권에서 태어났다는 것은 업이든 인연이든 전생의 카르마를 관계 속에서 풀어야 할 경우, 꼭 만나야 될 사람들과 함께 살아간다는 의미를 지니는 것 같습니다. 이에 반해 서양은 환경 자체가 자기 정체성과 독립성을 잘 구현할 수 있는 환경이기 때문에, 관계보다는 자신의 가능성을 독립적으로 구현하고 싶은 사람들이 그곳에 태어날 가능성이 크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동안의 리딩 경험은 이런 특징적인 차이를 저에게 보여주었습니다만, 이런 차이를 카르마의 법칙이 서양에서는 적용되지 않는 것으로 본다거나, 혹은 지나치게 일반화해서는 곤란하겠지요. 어쨌든 카르마와 관련된 동서양의 차이는 앞으로 제가 풀고 싶은 흥미로운 과제입니다. 

 

- 여성의 자궁은 성스러운 장소입니다. 생명을 잉태하는 작은 우주이며, 창조의 신이 머무는 거처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카르마를 부르는 업연業緣의 우물이기도 합니다. 그곳은 영혼이 갇히는 함정이며, 무서운 카르마의 덫을 품고 있습니다. 그 우물에는 인간 업의 흔적이 출렁이고 있습니다. 남녀의 사랑은 업이 업을 찾고 만나는 과정에서 일어나는 상호관계라고 할 수 있습니다. 첫눈에 반했다는 이야기는 대개 업연들이 만났을 때 일어나는 현상들입니다. 

- 욕구와 사랑은 다릅니다. 사랑하기 때문에 욕구가 생길 수도 있지만, 과거 생에서 비롯된 정화되지 않은 집착과 애착이 욕구의 원인이 될 수도 있습니다. 후자의 경우 불륜의 상대를 만나면 그 에너지는 더욱 강력해집니다. 사랑은 마치 태양처럼 아무 조건 없이 나누어주는 우리의 생명적 에너지와 연결된 신성한 것이지만 상황에 따라 기쁨도 고통도 함께 줄 수 있습니다. 
 

- 사람들은 전생을 기억하지 못하기 때문에 지금의 고통과 불행을 억울하게 받아들이고 분노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불행이 어디에서 시작되었는지를 아는 것이 우선입니다. 우리는 전생을 고려하지 않고는 풀 수 없는 문제를 많이 안고 살아갑니다. 극단적인 반목과 대립의 관계에 있는 사람, 불치의 병을 앓고 있는 사람, 선천적으로 불구나 장애가 있는 사람, 참으로 가난한 사람 등은 그 원인이 전생에서 시작되었을 가능성을 눈여겨볼 필요가 있습니다. 

- 우리는 소울메이트가 대단한 위로를 주는 존재로 다정하고 좋은 사람이라고만 생각합니다. 그러나 소울메이트는 우리의 잘못을 깨우쳐주기 위해 악역을 자처하기도 하고, 큰 불행을 겪도록 만들어 섭리를 받아들이게 하는 존재이기도 합니다. 고통과 시련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를 힘들게 만드는 경험은 의식을 확장시켜주고 우주의 참된 진리를 진심으로 받아들이는 계기를 만들어줍니다. 불행한 사건 역시 소울메이트라는 점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 저를 찾아오는 내담자들은 저마다 다양한 사연과 질문이 있습니다. 그렇지만 연세가 지긋한 분들은 이구동성으로 "왜 제가 이렇게 힘들게 살아야 합니까? 제가 전생에 무슨 죄를 많이 지어서 이렇게 고단합니까?"라고 묻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때 저는 이렇게 위로를 드립니다. "아닙니다! 정말 열심히 사셨습니다. 고생과 고단함은 다음 생에 좋은 인연으로 태어나기 위한 밑거름입니다." 

- 리딩은 카르마의 법칙이 인형극의 진행자처럼 그리 단순한 역할을 수행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거듭 알려줍니다. 우리는 삶의 균형을 회복하고 성장하기 위해 꼭 필요한 고통들을 태어나기 이전의 단계에서 직접 설계해 그 밑그림과 함께 이 세상에 옵니다. 서양에서 말하는 '라이프 설계'를 태어나기 전에 한다는 뜻입니다. 즉, 자신이 경험할 인생 설계를 직접 하고 그 계획에 입각해 현실을 살아갑니다. 이런 맥락에서 카르마를 기계적인 방식으로 이해하고 우리를 그저 업에 휩쓸리는 수동적인 존재로만 주장하는 전통적인 방식의 해석을 바꾸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카르마는 이미 모든 것이 결정되어 있다거나, 혹은 우리가 수동적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거대한 그 무엇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카르마는 올바르게 이해될 경우, 지금 이곳에서 이루어지는 우리들의 삶을 보다 긍정적이고 역동적인 것으로 만들 수 있는 보석과도 같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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