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자가 흐르는 이야기/Book2

[람타] 람타, 현실 창조를 위한 입문서 - 지금까지 전혀 알려지지 않았던 고대 지혜 학교의 지식

일루젼 2022. 5. 3. 0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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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람타 / 제이지 나이트 / 유리타
출판 : 아이커넥 
출간 : 2012.05.01 


       

'람타'라는 이름은 여러 곳에서 접했지만 막상 읽을 용기를 내기까지는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하지만 걱정했던 것과는 달리 무척 즐겁게 읽었다. 

 

람타의 설명들은 현대 의학과 과학, 그리고 영성과 카발라를 종횡무진한다. 그런 것에 대한 사전 지식 -선입견- 이 없다면 오히려 더 명료하게 읽힐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의 설명 중 7개의 몸과 2개의 오라 밴드는 '왕관을 벗은 아담'과 '위에서와 같은 아래'를 연상케 한다. 의식과 에너지, 생각을 일치시켜 '현재를 붕괴'시켜야 그다음이 가능하다는 주장은 파격적이었다. 

(문득 떠오른 생각인데, 양극성을 배제한 층위로 접근하는 것이 더 적절할 것 같다. 좌우의 쌍을 하나의 층으로 보는 방식.) 

 

대부분의 심상화나 현실 창조 방법들이 '보다 나은', '보다 편안한' 현실을 구현하는 것에 맞춰져 있었다면, 람타는 그 자체를 무너트리고 벗어날 것을 주장한다. 이제는 깨어지지 않는 꿈을 깰 때가 되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을 위해서는 우선 무엇에도 흔들리지 않을 '믿음'과 '이해'가 선행되어야 한다. '진리'라는 것은 모두에게 공통된 것일 수 없다. 그것을 이해했다 하더라도, 직접 경험하고 체험해 스스로 그 자체가 된 자에게만 그것이 '그의 진리'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을 깨닫기 위해서는 우선 자신이 가장 원하는 세 가지를 구현하는 연습 -이전의 현실 창조법과 유사한- 을 실천할 필요가 있다. 

 

람타가 말하는 '잊혀진 신'은 네빌 고다드가 인생의 후반기에 주장했던 -네빌링을 통한 현실 창조를 넘어선- '소명'과도 닿아 있는 부분이 있다는 생각이 든다. 스스로 잊고 있는 자신의 '본성'을 깨닫는다면 그것이 '왜' 내가 나로 존재하는지일 것이기 때문이다. 혹은 '나'라고 의식하는 존재를 구성하는 공통된 '본질'이라고도 볼 수 있을 것이다.

 

람타는 내가 누구인지, 무엇을 위해 여기에 존재하는지, 그리고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알아야 한다고 말한다. 현실 창조는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그것을 깨닫기 위한 과정에서 수반되는 현상에 불과하다. 그러나 육체가 구성되며 짊어지게 된 패턴 -DNA, 혹은 운명- 을 벗어나지 못하고 그에 사로잡혀서는 같은 것을 반복하게 될 뿐이다. 보다 현실적으로 말하자면, 관성적으로 어제와 같은 오늘을 살아서는 오늘과 같은 '영원'을 살게 되리라는 것이다.  

 

그간 읽었던 것들을 총집체한 느낌이라, 소화할 시간이 필요해 중간 중간 쉬어가며 읽어야 했다.

지금의 내게는 무척 가치있는 책이었다. 다른 책들을 조금 더 찾아 읽어보고 싶다.  

        

 


   

- "신에 대한 정의는, 곧 당신에 대한 정의로 이어진다. 당신은 의식과 에너지이며, 당신 의지가 어떤 것이건 그것은 빛을 발한다. 그렇다면 왜 7개의 씰(용어 정리 참고)에 대해 말하는가? 왜냐하면 우리의 의지는 이 영역 어느 곳에서라도 작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인간의 육체는 7개의 왕국 -육체의 내면, 외면 그리고 위, 아래- 이라 불리는 것을 그대로 옮긴 완벽한 복사판이다. 이 왕국들에 실행 가능성과 존재의 정당성을 실질적으로 부여하는 것은 우리의 의지와 선택이다. 오로지 그것뿐이다. 하지만 그것이 모든 것이다. 그것이 모든 것이다." 

 

- 람타는 더 나아가 의식과 에너지 법칙은 언어가 문장 안에서 동사와 명사를 구성하는 방식으로 표현된다고 설명합니다. 동사는 의식과 에너지의 행위 그 자체이며, 명사는 그 행위로 인하여 창조된 현실을 보여줍니다. 그래서 람타는 현실이 실제로 어떻게 창조되는가를 진정으로 모방하려면, 동사가 문장 처음에 나오고 명사가 뒤따라야 한다고 말합니다. 람타가 사용하던 언어는 이러한 구조를 갖추고 있었습니다. 고대 그리스어와 같은 몇몇 고대 언어들도 또한 이러한 형식의 흔적을 보여줍니다. 

 

- "이것은 당신 이웃들의 삶을 진화시키기 위해 참견하고, 바쁘게 살아가야 한다는 의미인가? 그런 뜻인가? 이 말은 당신 자신의 운명을 책임지라는 것이다. 당신 자신의 운명은 당신의 삶 그 자체이다. 당신이 무엇을 창조했으며, 당신이 감정적으로 집착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주시하여, 그 감정을 다스려 지혜로 만들어 새로운 인생의 패러다임을 만들어야 한다. 당신이 그렇게 할 수 있다면 당신은 절대 죽지 않을 것이다. 무덤 안에서 당신의 생을 마감하지 않을 것이다. 당신이 더 많은 것을 창조하면 할수록 당신은 점점 더 젊어질 것이다. 당신이 젊어질수록 당신은 더욱더 지혜로워질 것이다. 당신에게서 새로운 아이디어가 끊임없이 나올 수 있을까? 옆에 앉은 파트너에게 그것에 대해 말하라. 자, 어서 말하라. 우리는 이것이 구현되기를 원한다."  

 

- 다시 말해, 삶에서 중요한 것은 과거의 경험들을 되풀이하며 고수해온 모든 감정을 풀어주어, 자신의 진리로 만드는 것입니다. 우리의 혼(Soul)은 신으로 돌아가는 진화의 여정을 계속하기 위해 우리의 삶에서 해결해야 할 것들이 무엇인지 끊임없이 보여 줍니다. 이 기도문의 목적은 우리의 신성과 하나가 되기 위한 것, 즉 깨달음을 얻기 위한 것입니다. 개개인을 통해서 신성함을 구현한다는 것은 신/여자, 신/남자가 되는 것이며, 그럼으로써 더 이상 시공간에 구애받지 않는 불멸의 존재가 되는 것입니다. 람타 기도문의 마지막 구절을 보면 어떤 외적인 힘이나 초월적인 존재에게 탄원하는 것과는 분명하게 다름을 알 수 있습니다. 이 기도문은 관찰자와 신으로서 인간의 창조적인 힘을 명확하게 인정하고, 구현하라는 강력한 명령에 가깝습니다.  

 

- 내가 왜 람으로 불렀는지 아는가? 위대한 산에서 선택되어 산 아래로 내려온 자라고 하여 사람들이 나를 람이라 불렀기 때문이다. 그 후 나는 다른 왕국을 공격하여 함락시키지 않았다. 그들 스스로 항복하게 하였다. 그런 후 우리는 그 땅에, 그리고 우리가 가는 모든 나라에 정의를 심었다. 우리가 지나간 자리에는 온갖 아름다운 꽃들이 자유롭게 피어나기 시작하였다. 분노와 적개심 그리고 나의 욕망을 통해, 나는 고귀함과 명예로움을 느꼈으며, 당신들이 말하는 위대한 존재가 되었다. 존재들이여, 영웅이 무엇인지 아는가? 음, 나는 진정 영웅이었다. 그 영웅은 생명을 구하고 삶의 과오들을 바로 잡았지만, 그 또한 잘못을 저지르고 있다는 것을 깨닫지 못하는 자였다. 나는 그 후 10년 동안 수많은 폭군들을 살해하는 일에 사로잡혔고 나의 피부색은 점점 유명해졌다.  

(리뷰자 주 : <소마>의 '소마'는 람타의 인간 생을 모델로 한 듯하다.)

 

- 내가 죽어갈 때, 나를 일어서게 하고, 죽음으로부터 나를 지켜준 그 목소리를 잊을 수가 없었다. 나는 그 목소리의 얼굴을 찾으려고 했다. 부상에서 회복한 후 계속된 정복의 여정에서, 나는 내가 정복한 것들을 사랑하기 시작했다. 과거와는 달리 내가 정복한 땅을 완전히 초토화시키지 않았으며, 대신 협상을 하거나 용서해 주었다. 계속 행군하는 동안 나는 사람들에게 자비를 베풀었다. 마스터여, 나 자신을 찾았을 때, 신인 나 자신을 찾았을 때가 되어서야 나는 그 목소리를 찾았다. 나에게 일어나라고 말한 것은 바로 나였다. 신성한 이유, 생명, 원리, 이해, 목적은 나 자신이었다. 마스터, 이 깨달음으로, 우리들은 앞으로 다가올 세대들의 사고를 바꾸었다. 

 

- "마스터, 그것은 사실이다. 그리고 내 말을 듣도록 하라. 많은 사람들은 영이 빠져나갈 때까지 삶 혹은 작은 목소리가 자신에게 말하는 소리를 높이 평가하지 않는다. 삶을 즐기면서 사랑하고, 삶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면서 풍요롭게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에게 축복이 있을 것이다." 

- 당신들이 나처럼 그렇게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나는 무지했지만 당신은 배운 사람이다. 받아들인다는 것은 그것을 수용한다는 것이며, 그것을 이해하고 있다는 것이다. 당신이 그것을 안다는 것에 대해 아무런 의심도 없다는 것이다. 그것이 혼에서 감정을 만들어 내며 신체구조의 변화를 일으킨다. 그리고 그 일은 일어난다. 

 

- 그렇지만 나는 해냈다. 그것은 숨 쉬는 것만큼이나 자연스러운 일이 되어버렸다. 그러나 혼이 그러한 일을 프로그램으로 만들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린다는 것을 아는가? 마스터여, 사람들은 앉아서, 이것이 되고 저것이 되는 것에 대해서 생각하다가 자신이 원하는 일이 금방 일어나지 않으면 포기하고 실망한다. 그 생각이 감정으로 전환되어야 하고 그 감정이 온몸으로 전해지기까지는 시간이 걸리는 데 사람들은 그것을 참을성 있게 기다리지 못하기 때문이다. 

 

- 신은 결코 당신을 심판한 적이 없으며, 또한 당신에게 성인이나 악마가 되라고 강요한 적도 없다. 단지 자신이 누구인지 모르는, 당신이 당신 자신에게 그렇게 한 것이다. 모든 것에 존재하는 하느님이 당신이라는 경이로운 존재에게서 즐거운 선함을 발견했다면, 그리고 많은 것을 이루었으나 당신에게 신성한 자아가 넘쳐나게 할 다음 순간의 삶이 아직 있다면, 사랑하는 존재여, 당신에게 말하노라, 내가 당신이 신이라고 할 때, 신으로서 살라. 그러면 진정으로, 당신은 자신을 용서할 수 있고, 왜 그렇게 살아왔는지를 알고 이해하게 될 것이다. 
 

- 단지 하나의 신만이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모든 것이 신이다. 그리고 이생만이 당신이 살았던 유일한 생은 아니다. 육체는 옷과 같다. 당신은 단지 여기 이 시간의 흐름 속에서 이 육체를 입고 있는 것이다. 그동안 당신들은 수없이 많은 육체를 입었다. "그런데 왜 내가 기억을 하지 못합니까?"라고 당신은 물을 것이다. 당신이 깨어나지 않았기 때문에 다른 생을 기억하지 못하는 것이다. 알겠는가? 전생에서 당신은 지금 이 생보다 더 진보하지 않았다. 행여 전생이 궁금하다면, 전생에서 당신이 사용했던 유일한 것은 당신의 인성에 해당하는 두뇌였으며, 항상 그랬듯이 그것은 그저 육체에 관한 것이었다. 그래서 -육체가 두뇌와 함께 죽으면 육체와 두뇌는 사라지기에-  당신이 전생을 기억하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당신이 기억할 수 있는 것은 오직 이 생뿐이다. 그러나 당신은 삶의 대부분을 기억조차 하지 못한다. 당신은 그날들을 제대로 살지 않았기 때문이다. 당신은 진정으로 삶을 살지 않았다.   

 

- 당신이 왜 죽는지 아는가? 당신은 이미 창조된 생각의 형태에 영원한 생명력의 원천을 고갈하기 때문이다. 언젠가 영은 주저 없이 당신을 없애버릴 것이다. 당신이 떨어져 나갈 때까지 당신을 흔들고 또 흔들 것이다. 어떻게 영이 그토록 잔인할 수 있을까? 나의 사랑하는 사람들이여. 당신은 성장하기 위해 여기에 있는 것이다. 그것이 핵심이다. 당신은 현실을 창조하기 위해 여기에 있는 것이지, 현상유지를 하기 위해 여기에 있는 것이 아니다. 당신은 지식, 철학 그리고 경험으로 일어난 진리 안에서 성장하기 위해 여기에 있는 것이다. 당신은 삶을 살기 위해 여기 있는 것이지, 삶을 두려워하기 위해 여기에 있는 것이 아니다. 두뇌를 사용해 생각을 만들고, 무지를 정복하기 위해 여기에 있는 것이다. 

 

- 이번 생에서 당신은 "영적인 잠재력을 최대한 발휘하여 어떻게 하면 육체가 가지고 있는 가능성을 최대한 사용할 수 있을까?"라는 것을 배우기 위해 여기에 온 것이다. 당신의 유전자 속에 신들이 있을까? 진정 그러하다. 당신은 진보한 지성을 가지고 살아가는가? 진정 그러하다. 우수한 인종의 자손인가? 많은 사람들이 그렇다. 그러나 그 인종은 자신을 창조했던 그 지성만큼만 위대하며, 그 지성은 모든 것들의 시작이었던 꿈 꾸는 자, 신에게로 돌아온다. 

 

- 현재 당신이 불행한 이유는 현실을 꿈꿀 수 있는 당신의 능력이 한계에 부딪혔기 때문이다. 당신은 당신의 현실에서 모든 것들이 일어나도록 내버려 둔다. 영화관에 가서 당신은 다른 누군가가 모험하는 것을 본다. 누군가가 당신에게 노래를 부르지만 당신의 입은 굳게 닫혀 있다. 다른 사람의 시를 읽고 황홀해한다. 다른 사람의 그림을 보며 감탄한다. 자신의 편리함을 위해 다른 사람들의 재능을 이용한다. 따분함을 느끼고 연예 오락을 필요로 하는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그런 것들이 당신으로부터 나오지 않기 때문이다. 당신이 신 -당신은 분명 신이다- 이라면, 그리고 의식과 에너지가 현실의 본질을 창조한다면, 우리가 가진 문제는 자신과 자신의 능력을 믿지 못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어쩌면 당신은 부모로부터 그러한 유전인자를 물려받았을 것이다. 대부분의 부모들은 그들이 자신들의 부모보다 더 잘났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 이것이 당신이 지난 4만 년 동안 해왔던 일이다. 당신은 의식을 가지고 이렇게 정신없이 앞뒤로 스윙하면서 살아왔다. 당신이 얼마나 변덕스러운지 아는가? 조금 전에 어떤 것에 동의했다가도 다음 순간 그것에 대해 반대한다. 한순간 어떤 것을 좋아하다가 다음 순간에 그것을 싫어한다. 당신의 미래는 어떠한가? 어떤 미래? 아, 그 미래. 당신의 미래는 단지 과거에 있었던 일 중에서 좀 더 많이 생각하는 것이 아닌가? 만약 그렇다면, 당신의 미래는 여기 과거에 막혀버린다. 그리고 누군가가 미래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고, 다른 곳에 있다고 말하면, 미래는 그렇게 되어버린다. 

 

- 육체가 자동 조종 장치에 의해 움직이는 한 당신의 삶은 이미 정해져 있다. 당신의 삶에 전혀 새로운 것이 들어가거나 나가지 않는다. 모든 것이 정체되어 있다. 당신은 매일 당신의 육체가 하루를 창조하도록 한다. 현실을 창조한다는 것에 대해 육체가 무엇을 알겠는가? 그것은 단지 먹고 자고 싸고 조금 쉬어 활력을 찾는 것, 즉 살아남기 위한 것밖에 알지 못한다. 이것이 육체가 아는 생존이다. 비록 고등교육을 받은 사람들이라도 그러한 생존의 단계를 벗어나지 못한다. 그들은 절대로 매직(magic)을 일으키는 창조의 공간으로 들어가지 못한다. 그리하여 그들에게 절대로 기적이나 매직이 일어나지 않는다. 육체와 두뇌가 그저 일상생활에만 사용된다면, 내일이 우리에게 무엇을 줄 수 있을까? 당신은 지금까지 똑같은 내일을 수없이 살아왔기 때문에, 내일이 당신에게 무엇을 가져다줄 수 있는지 알고 있다. 그래서 당신의 내일은 과거의 연장이 될 뿐이다. 학교에서 배우는 이론은 단지 암기된 이론일 뿐이다. 그런 것을 배우는 이유는 돈을 벌어 육체를 건사하기 위한 것이다. 내 말을 이해하겠는가? 

 

- 당신의 삶에 있는 모든 것들과 모든 사람들을 당신이 창조했다면, 지금까지 당신 자신에게 했던 모든 것들 또한 당신 스스로 창조한 것이다. 성공과 실패 또한 당신에 의해 일어난 것이며, 그것들을 성공 혹은 실패라고 결정했던 이도 바로 당신이다. 당신의 행복과 불행을 책임지는 사람이 당신이라면, 그렇게 느끼도록 선택한 자도 바로 당신 자신이다. 이것은 이렇게 간단한 이치이며 항상 그래 왔다. 

 

- 당신은 신이 되어 미지의 것을 깨달아야 하는 책임이 있으며, 또한 자유의지를 가지고 있다. 당신이 오늘 모든 것을 배운 후 그것을 사용하건 사용하지 않건 그것은 당신의 자유의지에 달렸다. 그것은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다. 단지 하나의 선택일 뿐이다. 그러나 지식은 우리를 두려움으로부터 자유롭게 만들로 하여금 아무 일도 할 수 없게 만드는 두려움이 갑자기 예측 불가능했던 미래를 예측 가능하게 한다. 

 

- 또 다른 질문이 있다. 당신은 오늘 여기에 다시 올 것인가에 대한 확신이 없었다. 왜냐하면 내가 말하는 것들이 진리인지 아닌지 모르기 때문이다. 진리에 대해 내가 무엇이라고 말했는가? 내가 당신에게 말한 어느 것도 진리가 아니다. 신은 당신이 아는 것만을 알고 있을 뿐이다. 내가 말하는 것을 당신의 방식대로 되게 하고, 그것을 경험을 할 때만, 당신의 유일한 진리가 된다. 그러면 그것은 진리이다. 그것이 당신의 방식대로 일어나지 않는다면, 그것은 결코 진리가 될 수 없다. 그것은 단지 또 다른 뉴에이지 가르침일 것이다. 당신이 그것을 경험하기 전까지는 진리가 될 수 없다. 그리고 의심하는 마음에 맞서기 위해 당신은 많은 진리를 필요로 한다. 정말 그러하다. 자신을 치유할 힘이 있다고 아무리 말해도 그것을 믿지 않는다면 아무 소용없다. 자신이 부자가 되고 싶다고 아무리 말한들 소용없다. 부자가 되고 싶다면, 엄청난 부를 나타내는 그림을 그려 그것이 현실로 이루어질 때까지 매일 하루에 한 시간씩 그 그림에 집중해야 한다. 그것이 당신이 해야 할 모든 것이고, 그렇게 하면 부자가 될 것이다. 이것은 또 다른 방식의 집중이다. 당신이 이것을 사용하지 않는 한,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며 또한 당신의 진리가 되지 않을 것이다. 

 

- 당신의 현실이 당신보다 더 강하다고 생각하는가? 그렇지 않다. 당신이 더 강하다. 그러나 당신의 에너지는 어디에 있는가? 당신의 에너지는 삶에서 당신이 받아들인 평범한 것들에 있다. 당신은 질병을 받아들이고, 걱정거리들을 받아들이고, 자신의 한계를 받아들인다. 그리고 당신은 그것들을 받아들이기 때문에 그것들을 동결시킨 후, 그 에너지를 하나의 관계에 가두어 버린다. 이러한 것이 당신이 일상적으로 하는 일이다. 당신은 신이다. 그럼에도 당신은 그런 일을 하고 있다. 그러나 매일 아침에 일어나 당신이 처한 현실을 거부하고 평범했던 일들을 놀랄만한 일들로 바꾼다고 상상해보라. 그다음 날 일어나면 몇 가지는 변하겠지만 모든 것이 다 변한 것은 아닐 것이다. 그렇다고 이전으로 돌아가 지루한 현실을 받아들일 것인가? 아니면 어떤 생명체든, 어떤 상황의 에너지 장이든 받아들여서 순식간에 변화시킬 수 있는 강력한 마음을 창조할 것인가? 그러기 위해선 무엇이 필요할까? 그것은 눈에 보이는 것에 대해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당신이 보기를 원하는 것에 대해 끊임없이 집중하는 것이다. 

 

    

 

더보기

 

- 람타는 인간이 보이드 혹은 불변함을 볼 수 없다고 가르칩니다. 그것을 본다는 것은 곧 형언할 수 없는 우리의 존재로부터 분리되었다는 것을 선언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오직 보이드와 하나 될 뿐이며, 이러한 점에서 차원, 지성, 그리고 형상을 가진 것들과 본질을 부여하는 것의 관계를 정의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움직이는 영으로서의 신을 신성한 관계로 분명하게 정의하는 것입니다. 우리, 인류는 눈에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사이에 조화를 가져오는 신입니다. 보이드가 되어가거나 보이드일 때, 학생은 이러한 만물의 중심을 통찰할 수 있고, 이로써 위대한 작업은 시작됩니다. 학생들은 창조의 불을 사용하는 신들을 닮아감으로써 신성한 관계에 가까이 다가서는 입문식을 경험합니다. 이 학교가 하는 일은 의지를 통해 상황을 지배하는 것과 더불어, 과학적인 지식을 영에 관한 비전(秘傳)적 이해와 통합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자아로서의 신이 현현되는 조화로움으로부터 인간을 분리하는 개인적 시련들을 이겨내는 것입니다. 

 

- 람타는 우리를 잊혀진 신들(Forgotten Gods)이라고 부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신은 인류를 창조했지만 인간에게서 멀리 떨어진 장엄한 존재'라고 생각하는 것에 비하면 이것은 아주 적절한 표현입니다. 우리 인간은 자신의 기원과 기억들을 잊어버린 채 신이라는 용어를 정의한 것입니다. 

 

- 좀 더 적절히 말하자면 보이드는 최초이며, 영원하며, 그리고 절대적입니다. 상상할 수 없는 숙고를 통해 보이드는 최초의 점을 창조했습니다. 람타는 그것을 제로 포인트(Point Zero)라고 불렀습니다. 이 점은 의식과 에너지를 잠재적으로 지니고 있으며 보이드의 자식입니다. 제로 포인트는 더 이상 쪼갤 수 없는 최소 단위입니다. 그것은 무한한 의식과 에너지를 지니며 창조의 원동력을 만든 최초의 불꽃입니다. 이것은 영(Spirit)이며, 모든 것의 본질이며, 그리고 신으로서 우리 자신을 정의하는 본질입니다. 우리, 영(Spirit)은 성스러운 능력을 육체화 한 첫 번째 원칙입니다. 신비한 연꽃에 대한 비유가 이것을 좀 더 명확하게 이해할 수 있게 합니다. 이집트인 입문자가, 그의 무덤에 누워, 별 하나 없는 깜깜한 밤에 떠오르는 하나의 눈 부신 빛을 바라본다고 상상하십시오. 그 점은 찬란하게 빛나는 중심으로부터 사방으로 퍼져 나가는 천 개의 장미꽃잎처럼 빛을 발하며 서서히 열리기 시작합니다. 우리는 절대 근원으로부터 펼쳐지는 꽃입니다. 그 순간부터 신 -우리, 당신, 나- 이 현현됩니다. 그 순간, 우리 또한 숙고하기 시작해, 자아가 두 가지 요소로 나누어졌습니다. 이제 우리는 의식과 에너지라는 활동적인 요소를 갖게 되었으며, 고대 사상 학교에서는 이를 영원한 남성(의식)과 영원한 여성(에너지)으로 표현하였습니다. 이러한 의식과 에너지의 완벽한 조합은 완전한 생성과 번성 능력을 이루어, 이후에 세계를 그리고 진정 우리 자신인 신의 본질을 만들어 냅니다. 이러한 완벽한 조합은 시간, 차원, 그리고 공간에서 신이 자신을 펼치는 원인이 됩니다. 신은 이제 우리 자신, 즉 인간으로 정의되었습니다. 영(Spirit)으로서, 신은 육신의 옷을 입고 3차원 물질계 속에서 미지의 것을 깨달으라는 삶의 목적을 갖게 됩니다. 

 

- 람타의 가르침은 우리가 보통 현실을 인지하는 데 있어 한계를 규정하는 선입견을 스스로 자각할 수 있는 도구를 제공할 뿐만 아니라 종종 개인들에게 새로운 도전을 추구하게 합니다. 그럼으로써 우리는 이전보다 더 많은 것을 좀 더 의미 있고, 무한하고, 의식적이며, 경이로운 방식으로 경험할 수 있게 됩니다.  
"나는 당신이 더 이상 부인하며 살아가지 않고, 신에게 더 가까이 다가가는 것을 이해하며, 당신의 내면에 존재하는 신에게 접근하는 법을 가르치기 위해 여기에 있다. 이것은 모두 철학이지만, 당신의 감각과 육체에 도전할 실용적인 경험들을 가져올 것이다. 만일 당신의 내면에 신이 살고 있다면, 그 신이 일어나 당신의 감각과 육체가 결코 할 수 없었던 놀랄만한 일들을 이룰 것이다. 그로 인해 우리는 아주, 아름다운 증거를 가질 것이다. 그때 우리는 우리 안에 살고 있는 것이 희망을 넘어선 희망이며, 거울에 비친 모습보다 더 많은 것이 우리에게 있으며, 또한 지루하고 힘든 이 시대에 종교와 정치, 국경, 그리고 피부색과 성별이 강요했던 것들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이 우리에게 있다는 것에 대해 엄청난 환희를 느끼게 될 것이다." 

 

- "의식과 에너지는 절대 근원(the Source)이다. 그것이 생명을 부여할 때는, 하나의 생각 때문에 생명을 부여한다. 육체, 즉 인간의 육체는 두뇌를 가지고 있다. 두뇌는 의식과 에너지의 흐름을 위한 수단이다. 의식과 에너지는 두뇌가 가진 힘의 원천이다."

- "두뇌의 역할은 신경학적인 수준에서 의식과 에너지의 자극을 받아 생각들을 창조하는 것이다. 졸지 마라. 두뇌는 실질적으로 의식의 흐름을 일관성 있는 생각의 형태로 토막 내는 것이다. 그리하여 생각은 신경 시냅스 경로에 고착되어 버린다."  

- 언어란 신경 시냅스에 의해 선택된 하나의 동결된 의식의 세 번째 단계이며, 두뇌는 그것들을 점화하여 생각이라고 하는 홀로그램적인 그림으로 바꾸어버립니다. 존재론적 측면에서 볼 때, 언어의 근본적인 의미는 단어들이 궁극적으로 발생하고 점화하는 상태에서 의식과 에너지가 가지고 있는 창조적인 특성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음성 언어가 가지고 있는 창조력과 파괴력 그리고 영속성은 더 이상 중요하게 생각되지 않고 있습니다. 오늘날 마법의 주문이나 앙심을 품은 저주에 관한 이야기들은 진부한 것으로 간주되어 오직 전설이나 신화 혹은 판타지에서만 나옵니다. 그러나 이러한 이야기들 속에 숨겨져 있는 진실은 무엇일까요?

 

- 프레이 루이스 데 레온은 유대교와 기독교 신비주의에 대한 개념에 이어 용어에 관한 독특한 철학을 발전시켰습니다. 그는 자신의 철학 지식 <테로스 브레스 데 크리스토(De los Nombresde Cisto)>에서 어떤 용어나 명칭은 바로 그 안에 그것이 의미하는 바를 담고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리하여 그는 우리가 어떤 명칭을 생각한다면, 우리는 또한 그 명칭이 갖고 있는 본질을 반드시 가지고 있다고 결론지었습니다. 그에게 언어는 단순히 사회적 약속이거나 아무런 의미 없는 무언가가 아닌 창조적인 힘을 포함하는 것이었습니다. 즉 람타의 용어를 사용하자면, 언어는 의식과 에너지를 포함한다는 것입니다. 

 

- 유대교와 유대교 신비주의, 그리고 중세 기독교 신비 철학은 언어와 생각이 창조적이며 신성한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이해를 바탕으로 새워졌습니다. 언어는 명상의 핵심이었으며, 또한 그것은 인간을 신성에 더 다가가게 하는 중개자 같은 역할을 해왔습니다. 이러한 점을 고려할 때, "신의 말씀이 가진 창조의 힘"과 "의식과 에너지가 가진 창조의 힘"은 상응한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이것은 생각이 말로써 표현되고 실체로써 나타나는 것입니다. 이 두 개념 사이에 중요한 차이가 있습니다. 창세기에 따르면 언어가 창조력을 가지는 유일한 순간은 여자나 남자가 아닌 신에 의해 사용될 때뿐이라는 것입니다. 즉 그것은 신성한 속성으로 간주됩니다. 하지만 람타의 해석에 의하면 모든 사람이 언어가 가진 창조적인 힘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인간이 이 중요한 본질을 활용하지 못하는 것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신성함뿐만 아니라 인간의 근본적인 자유의지까지 잊어버렸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 예수아 벤 조셉은 6차원까지 도달한 마스터였다. 그는 단지 마스터였을 뿐, 그리스도가 된 적은 없었다. 그리고 그의 역할은 어려운 일이지만, 그의 마음으로 현실과 맞서는 것이었 다. 당신의 생각이 당신 주위에 있는 모든 생명에게 영향을 미친다고 말한다면, 그리고 잠 시 멈추고 그것에 대해 숙고한다면, 당신의 생각으로 인하여 삶이 어떻게 고정되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도시로 가기 위해 차를 몰면서 도시가 나올 것이라는 예상을 하면, 곧 도시가 나타난다. 거지를 볼 것이라고 예상하면, 거지는 반드시 그곳에 있을 것이다. 가는 도중에 고장 난 차가 도로에 있을 것이라고 예상하면, 당신은 반드시 고장 난 차를 보게 될 것이다. 그것이 사실이고 당신에게 그러한 힘이 있다는 것을 안다면, 매일 마음으로 물질적 현실을 거부하고 그것을 덮어씌워야만 했던 존재나, 존재들에게 입문이 어떠했을지를 상상해보라. 그들의 마음은 아주 강력하여 그곳에 없던 것을 만들 수 있었다. 

 

- 나를 가르친 것은 그러한 자연의 요소들이었다. 나는 운이 좋았다. 자연의 요소들에 의해 많은 것을 배우고, 추론했을 때, 어느 것 하나도 나에게 틀렸다고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자연의 요소들은 나에게 실패라는 것을 가르친 적이 없었다. 그것들은 항상 변함이 없었기 때문이다. 나는 이렇게 배웠다. 항상 변함이 없는 것, 결코 잘못되지 않는 것, 그리고 인간이 마음만 먹으면 쉽게 이해할 수 있는 것으로부터 배웠다. 그 덕분에, 위선적인 교리나 미신, 혹은 당신들이 비위를 맞추어야 하는 수많은 얼굴의 신들을 믿지 않았다. 또한 우리가 완전하지 않으며 절대로 완전해질 수 없다는 그들의 말도 믿지 않았다. 나는 그러한 종류의 가르침에 결코 영향받지 않았다. 

- 이런 모든 경험들 덕분에 다른 사람들이 수백만 년 걸릴 수 있는 것을 한 생에서 해낼 수 있었다. 그들은 다른 사람들의 이해를 통해서 신을 찾으려 했다. 그들은 한 치의 의심도 없이, 누가 왜 썼는지도 모르는 국가의 법을 통해, 종교의 교리를 통해, 역사를 통해 신을 찾으려 했다. 사람들은 수많은 생을 통해서 이미 실패라고 입증되었던 믿음, 이해, 삶과 사고방식들을 여전히 고수하며 살아가고 있다. 그들은 자신의 변형된 에고로 인해 비틀거리고, 자신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인정하기를 두려워하며, 단지 죽음으로밖에 이끌 수 없는 위선 속에 살아간다. 나는 정말 행운아였다. 태양은 한 번도 나를 저주하지 않았으며 달은 나에게 한 번도 이렇게 되어야 한다고 말하지 않았다. 바람은 짓궂게 장난치며 나를 애타게 했다. 서리, 이슬, 풀냄새, 날아다니는 풀벌레, 밤새의 우는 소리, 이런 모든 것들은 변함없이 존재했다. 그들이 가진 과학은 아주 단순하다. 

 

- 바람이 되겠다는 그 생각은 천천히 나의 모든 세포구조의 생명력이 되어버렸다. 욕구가 너무도 강했기에 내 혼은 세포의 진동 속도를 늘리기 위해 세포 안의 프로그램을 바꾸었다. 하지만 그러한 일이 일어나도록 한 것은 마음의 평화였다. 당신이 무엇인가 되기 위해 애써 노력할 때, 당신은 노력 그 자체가 되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되지 못한다. 당신이 얻게 되는 것은 노력뿐이다. 나는 결코 이상을 놓지 않았으며, 바람이 되어 내 초라한 몸을 내려다봤을 때의 그 느낌 역시 결코 잊지 않았다. 하지만 의사여, 내가 여기에서 저기로 갈 수 있었던 것은 마음의 평화를 얻었기 때문이다. 나의 모든 분비샘이 변화하였다. 사타구니에서 더는 욕망이 일어나지 않았기에 뇌하수체가 크게 부풀기 시작했다. 혼이 내 몸의 진동 속도와 전체 주파수를 바꾸도록 준비시켰고 나는 갈수록 점점 가벼워졌다. 그런 나를 보고 사람들은 말했다. "오, 마스터에게 광채가 난다." 빠른 속도로 움직이는 육체로부터 광채와 빛이 흘러나왔다.  

 

- 이제는 무엇을 생각하건 나는 바로 그것이 되었다. 나는 점점 달빛만큼 희미해져 갔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달이 있던 곳으로 가게 되었고, 더 이상의 두려움 없이 환희와 기쁨으로 그곳에 있었다. 존재여, 내가 했던 이러한 일은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던 것이다. 나는 지상으로 돌아왔지만, 다시 그런 일을 하지 못할까 봐 걱정하였다. 그렇지만 나는 해냈다. 그것은 숨 쉬는 것만큼이나 자연스러운 일이 되어버렸다. 그러나 혼이 그러한 일을 프로그램으로 만들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린다는 것을 아는가? 마스터여, 사람들은 앉아서, 이것이 되고 저것이 되는 것에 대해서 생각하다가 자신이 원하는 일이 금방 일어나지 않으면 포기하고 실망한다. 그 생각이 감정으로 전환되어야 하고 그 감정이 온몸으로 전해지기까지는 시간이 걸리는 데 사람들은 그것을 참을성 있게 기다리지 못하기 때문이다.  

 

- 한순간에 여행하고, 바람과 태양 그리고 하늘과 조화를 이루는 확고한 신이 우리와 함께한다는 것, 또한 생각이 어디에 있건 그 존재는 신이고 그것은 당신이라는 것을 배우는 데 몇 년이 걸렸다. 그리고 나는 다른 왕국으로, 다른 존재들 안으로, 눈에 보이지 않는 삶으로 가는 길을 알았으며, 미래에 일어날 문명을 방문하였다. 나는 이러한 방법을 배웠으며, 나를 따른 나의 사랑하는 형제들은 그들이 태어난 이 세상에서 절대 근원을 깨달았다. 알다시피, 당신은 이 세상에 태어날 때 어떠한 기억도 갖지 않는다. 에고에 휘말려 들어 자아가 육체에 종속돼버리기 때문이다. 나는 이러한 것들을 배워, 곧바로 나의 사랑하는 모든 형제들에게 절대 근원을 가르치기 시작했다.

 

- 나는 어느 누구에게도 물어보지 않았다. 부하들에게 그들의 의견을 구하지도 않았다. 오로지 나 자신에게 질문하였다. 내가 무엇을 했건 나는 항상 정확했으며 언제나 내가 했던 행위에 책임을 졌다. 만약 당신이 누군가에게 어떻게 믿고, 어떻게 바라보고, 무엇을 믿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해 묻고 싶다면, 내가 했던 것처럼 그들이 누구이며 그들의 의식이 어떤 상태인지 봐야 한다. 만약 당신이 그들의 말을 듣는다면 당신은 죽을 것이다. 정말이다. 바람에게, "바람이여, 나에게 지식을 다오. 나를 활짝 열어 알게 해 다오."라고 말하라. 그러면 바람은 그렇게 할 것이다. 바람은 당신을 올리브빛에서 은빛으로 바꿔줄 것이다. 그리고 바람은 협곡으로 흘러들어 가 호탕하게 웃을 것이다. 나는 인간을 믿지 않았다. 인간을 혐오하였다. 그러나 미지의 신과 생명에 대해 배우면서 나 자신을 알기 시작하였고, 나 자신을 사랑하기 시작하였다. 그런 후에 나는 다른 사람들을 사랑하기 시작하였다. 
 

- "당신이 무엇인가 되고 싶다면 당신의 생각을 그것과 일치시켜라. 바람은 고독한 군인을 위협할 힘을 가지고 있으며, 한 줄기 바람으로도 땅을 뒤집을 수 있다. 그럼에도 바람은 어떤 것에도 얽매이거나 구속되지 않고 스스로 존재한다. 바람이 가지고 있는 자유로운 움직임에 대해서 오랫동안 숙고하였고 마침내 나는 바람이 되었다. 나는 그렇게 바람이 되었다." 

- 사람들이 나처럼 바람이 되지 못하는 이유는 죽음과 늙음에 얽매여 있고, 그들을 원하는 곳까지 데려다주는 무언가에 집착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하느님을 쉽고 단순하게 이해하려 하지 않고 복잡하게 이해하려고 한다. 하느님을 이해하는 것은 아주 간단한 일이지 결코 어렵거나 힘든 일이 아니다. 승천한 후에야 내가 알고 싶어 했던 모든 것들을 알 수 있었다. 육체의 밀도에서 벗어나, 생각의 흐름으로 돌아와 어떤 것에도 구애받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자 인간 신을 만드는 구조를 알게 되었다. 하지만 그때는 이것을 알지 못했다. 나는 그저 지금까지 삶에서 내가 했던 모든 것들과 평온을 이루었다는 것을 알았다. 그 후부터 삶이 나를 통해 자연스럽게 흐르도록 했다. 나는 더 이상 무지한 야만인이 아니었다. 다시는 전쟁에 대해 걱정하지 않아도 되었으며, 전장의 피 냄새를 맡지 않아도 되었다. 또한 더 이상 불안해하거나 지나치게 긴장하거나 과로하지도 않았다. 나는 더 이상 인간들이 하는 생각들을 하지 않게 되었다. 그러한 것들을 초월하였다. 날이면 날마다, 밤이면 밤마다 하늘에서 보았던 생명과 경이로움 속에서 지냈다. 그것이 내 삶이었다. 마음의 평화를 얻은 것도 그때였고 미지의 신과 하나가 된 것도 때였다. 

 

- 사람들은 매우 바쁘게 살고 아주 빨리 죽기 때문에, 그런 인내심을 요구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그들은 정해진 시간이 아니면, 자신들이 하는 일을 절대 끝마치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들이 그렇게 느끼는 한, 그들은 그 일을 절대로 끝내지 못할 것이다. 그들은 단지 시간에 의해 살아갈 것이며 그것만이 그들이 이 삶에서 이루는 것이 될 것이다. 내 말을 이해하는가? 

 

- 존재여, 나는 람이다. 그것은 나의 백성들이 신이라 부르던 말이다. 나는 이 땅에 처음으로 알려진 신이었으며, 이떤 인간의 가르침이 아니라 만물에 깃들여 있는 생명의 목적에 대한 본질적인 이해로, 여자의 자궁과 남자의 성기로 태어난 사람 중 처음으로 이 땅에서 의식적으로 승천한 사람이었다. 나의 승천은 당신들의 시간으로 35,000년 전이었다. 그렇다면 승천이란 무엇인가? 나의 모든 것을 가지고 바람처럼 영원으로 가는 것을 말한다. 만약 다른 사람의 말을 들었다면 나는 그 생에서 죽었을 것이다. 여기에 있는 모든 사람들은 자신이 죽을 것이라고 알고 있기에, 그리고 다른 사람들의 의견에 따라 살아가기 때문에 모두 죽을 것이다.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가! 

 

- 그리고 내면에 존재하는 당신 자신만의 숭고한 신을 보아야 하며 자신을 죄수처럼 가두지 말아야 한다. 여기에 있는 사람들 중 한 명만 제외하고 모두가 그러한 일을 하고 있다. 죄수가 무엇인지 아는가? 나는 당신들을 가둘 수 있는 한두 개의 지하 감옥을 만들 수 있다. 감옥에 갇혀 쥐들에게 발을 뜯기고, 머리에는 이가 기어 다니고, 자신의 악취 나는 대변에서 구더기가 나올 때에 진리가 어떤 느낌인지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내가 그랬던 것처럼 당신도 자신을 죄수로 만들었다. 나 자신을 극복하고 싶은 바람이 있었음에도 육체, 응결된 생각, 그리고 육체가 가지고 있는 욕구와 욕망 그리고 낮은 존재 차원에 있는 육체 의식을 알거나 이해하지 못하였다.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나는 당신들이 말하는 엄청난 혼란에 휩싸이게 되어, 과거에 일어났던 모든 일들을 나의 내면에서 의식적으로 바로 잡아야 했다.

 

- 존재들이여! 당신은 자신의 진리를 어떻게 가두고 있는지 아는가? 당신은 자신이 누구인지 모른다. 나는 아주 더럽고 혼이 없던 레무리아인이었다. 당신이 누구인지 아는가? 당신 내면에 존재하는 고결함을 아는가, 당신이 무엇을 하기 위해 여기에 왔는지 아는가? 당신은 당신의 삶에 대한 모든 비난을 다른 사람들의 발밑에 던져버렸다. 많은 이들이 그렇게 하였다.  

 

- 이러한 이해를 통해서 미지의 신을 알게 되었다. 이것을 나에게 가르친 스승은 없었다. 람, 마스터, 정복자, 그것은 내가 알아야 할 내 안에 있는 것이었다. 알아야 할 필요가 있는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중상을 입고 상처를 치유하면서 사색하도록 홀로 남겨진 것이었다. 그 당시 내가 할 수 있었던 것은 지금 앉아 있는 이 우아한 의자가 아닌, 커다란 바위 위에 홀로 앉아 있는 것뿐이었다. 나는 용서라는 말이 있기 전에 용서를 이해했고, 자아라는 말이 있기 전에 자아를 이해했으며, 신과 나라는 미스터리를 풀기 위해 신과 나를 하나로서 이해하였다. 그런 후 내가 한 일은 당신들을 제대로 가르쳐 당신들의 삶에서 내가 가르친 것들을 당당하게 구현케 하는 것이었다. 당신은 겸허한 마음으로 당신 존재를 보려는 욕망을 표현할 기회를 가지게 되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여전히 눈을 감고 있었기에, 나는 가르칠 수 없었다. 가르칠 수 없는 유일한 것은 당신의 닫힌 마음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들으려고도 알려고도 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것은 그들이 고수하고 있는 폐쇄적인 진리를 위협하기 때문이었다. 당신은, 당신 자신을 어떻게 알 수 있을까? 당신은 새장 속에 갇힌 비둘기와 같다. 당신을 용서하라. 하느님은 당신을 항상 용서하였으며 이해하였다. 

 

- 당신의 존재를 보라. 그것을 보라. 당신의 노여움을 바라보라. 왜 화가 났는가? 당신의 질투심을 바라보라. 왜 질투하는가? 부러워하는 마음을 바라보라. 왜 부러워하는가? 불안한 마음을 바라보고, 그 이유를 알라. 당신의 판단을 바라보라. 왜 판단하는가? 인색한 마음을 바라보라. 왜 자비롭지 못한가? 당신의 웃음소리를 들어보라. 그것은 어디에 있는가? 내가 말한 것들에 대해 깊이 생각해보라. 당신은 너무 서두르기에 나처럼 63년을 참을 수 있는 인내심이 없다. 조급함은 우스꽝스러운 것이다. 당신에게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은 인내심이다. 내 삶에서는, 삶 자체가 인내였다. 그러한 인내심이 있었기에 지금 당신들 앞에 있는 내가 될 수 있었다. 그리고 당신들에게 신의 무한한 가르침을 줄 수 있는 도구가 될 수 있었다. 나처럼 되기를 원한다면 내가 생각하는 것처럼 생각하라. 당신에게 맞는 방법이나 형식을 찾아 그것을 시행하라.

 

- 나의 아름다운 존재들이여, 그리고 새로운 입문자들이여, 당신들을 환영한다. 당신들에게 경배를 보낸다. 같이 한 잔의 물을 마시자. 당신들은 이 물을 필요로 할 것이다. 물은 절대 근원, 영원한 의식을 상징한다. 물은 우리 모두의 내면에 존재하는 신에게 경배할 때 쓰이는 매개물이다. 자, 이제 우리의 나약함이 아닌 우리의 신성함에 경배하며 이 수업을 시작하자. 

- 깨달은 존재는 순수한 의식이 그들의 영이나 마음으로 구현된 자이다. 또한 그들은 육체보다도 훨씬 더 위대한 영적 풍요로움을 이루었으며, 자신을 육신으로 보지 않고 모든 생명과 연결되었다고 생각한다. 바로 그러한 자가 깨달은 존재이다. 깨닫지 못한 자들은 자신이 다른 생명체와 분리되었으며, 특별하고, 다르다고 생각한다. 그들은 무지한 존재이다. 

- 나는 깨달은 자이다. 왜냐하면 내 삶에서 그리고 내가 알던 그 시대에, 나는 전쟁을 일으키고 폭군들을 상대로 싸우며 인간이 되고, 나 자신이 되는 장엄하고 훌륭한 기회를 가졌기 때문이다. 그것은 얼마나 숭고한 목표인가? 하지만 내가 부상당한 후 나의 오만함에서 벗어나 겸손해지기 전까지는 그렇게 될 수 없었다. 그러한 겸손함으로, 존재여, 매일 실낱같은 생명에 매달릴 때, 나는 내 삶과 나의 불쌍하고 비천한 백성의 삶의 목적이 무엇인지 궁금하였다. 그리고 살기 위한 안간힘으로 매일 하루를 넘기며 그날들을 표시할 때까지, 나는 삶 그 자체가 소중한 것임을 깨닫지 못했다. 나는 7년 동안 바위에 앉아 내 자신을 치유하였다. 당신은 이러한 일에 질색할 것이다. 잠에서 깨어나 내가 아직도 살아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던 매 순간, 나는 나의 영을 기쁘게 하였다. 깜깜한 밤하늘에 달이 차고 기우는 모습을 바라보면서, 나는 한 번도 지루해하지 않았다. 나는 절실하게 그리고 절망을 뛰어넘어 열정적으로 자연과 함께하기를 갈망하였다. 내가 매일 살아 있다는 것을 확인시켜준 것은 달과 태양이었다. 나는 그것들을 숭배하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마침내 나는 그것들이 되었다.

 

- 내가 깨달았다고 불리는 이유는 육체를 초월하는 법을 배웠기 때문이다. 전사는 죽었다. 정복자는 사라졌다. 나의 오만함은 꺼져가는 불에서 나오는 연기처럼, 밤공기 속으로 너울거리며 사라졌다. 나의 무지함도 사라졌다. 

- 그리고 미지의 신은 모든 이들에게 생명을 부여하였고, 자신의 마음을 복제하는 것을 허용하여 각자의 현실을 창조할 수 있도록 돕는다. 우리 민족은 언젠가 자신들이 노예가 될 것이라 예언했었다. 그들이 자신의 예언에 집중했기 때문에 그것이 현실화된 것은 아닐까? 물론이다. 미지의 신은 모든 이들 안에 있는 하나의 마음이 아니라 모든 이들 안에 있는 하나의 마음의 조각들이다. 그들이 어떠한 선택을 하건 그들은 그런 마음의 조각들을 자각할 수 있다. 그것은 신이 베푸는 특성이다. 이것을 이해하는 데 하루가 아니라, 평생이 걸렸다. 왜냐하면 나의 야만적 본성은 증오와 경멸로 가득 차있는 반면에, 나의 영적 본성은 작고 여려서 매일 쌓아 올려야 했기 때문이다. 매일 나는 그것을 내 육신보다 더 절실히 원했다. 그렇다면 내가 어떻게 깨달음을 얻을 수 있었을까? 내가 미지의 신과 똑같이 되고 싶다고 결심한 후, 그것의 일부가 되었기 때문이다. 신은 사랑 -우리는 신이 그 사랑으로, 절대로 거두어가지 않고, 오직 베풀기만 한다는 것을 안다- 하고, 모든 것이며, 모든 생명과 사랑을 공유할 수 있기 때문에, 내 안에 존재하는 신은 내가 되고자 하는 것을 정확하게 줄 수 있었다. 

- 마스터, 내가 매일 어떤 싸움을 했는지 아는가? 내 삶에서 나의 원시적인 본능인 의심을 없애려고 매일 싸웠다. 그것은 나를 흔들어 정복하려 하였다. 그것은 나의 어리석음을 보여주려고 하였다. 나는 가장 힘든 싸움인 내 안의 그것과 매일 싸워 나 자신을 정복하는 것에 몰두했다. 싸움에서 이겼을 때 그것이 나에게 준 것은 무엇이었을까? 처음엔, 아무것도 얻은 게 없었다. 왜냐하면 나는 내 상처를 살피고 모든 사람을 볼 수 있었으며 내 과거의 모든 승리를 셀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한 것들이 실재하고 있음을 볼 수 있었지만 내가 원했던 것은 실재하지 않는 것이었으며, 최소한 손으로 만질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 결국, 내가 몸을 학대할 때마다 느꼈던 통증이 내 것이었음을 알아차렸다. 그래서 남은 생애 동안 모든 것에 대한 나의 마음가짐을 바꾸었다. 그리하여 내가 내 몸에 계속 머무르는 유일한 이유는 내가 내 몸을 인지하기 때문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매번 화가 날 때마다 내 몸의 중심을 잡았다. 내 의지보다 내 몸이 더 강해질 때마다 의지를 다지곤 하였다. 매일 내 몸은 서서히 약해지고 내 마음은 점점 커졌다.  

- 내 삶의 마지막 순간에 내가 어떻게 이 세상을 떠났는지 아는가? 소나무로 만든 관에서 삶을 마치지 않았다. 나는 바람에 나를 실어 이 세상을 떠났다. 어떻게 바람을 탈 수 있었을까? 왜냐하면 바람이야말로 영의 탈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왜 보통 사람들처럼 죽지 않았을까? 내가 평범한 사람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무엇이 나를 그렇게 만들었을까? 내가 나의 타고난 자아, 즉 내 육체와 성격 그리고 유전인자를 정복했기 때문이다. 내 삶이 끝나던 날 나는 과거와 연결된 섬세한 끈을 끊을 수 있었다.  

- 그래서 나는 무엇이 되었나? 나는 좀 더 나은 인간이 되지 않았다. 나는 인간이 아니라 영적인 존재, 신이 되었다. 그리고 그것은 내가 되고 싶었던 것이었다. 미지의 신이 얼굴 없이 존재한다면 그것은 자연 그 자체가 가지고 있는 힘이자 강한 욕구이다. 바로 그것이 내가 되고 싶었던 것이었다. 그것이야말로 신을 정확하게 표현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아닌, 한 인간이 아닌, 모든 생명의 일부가 되어 앎을 바탕으로 활동하는 그러한 존재인 신이 되고 싶었다. 그리고 나는 그것이 되었다. 

 

- 좀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아주 오래전에 내가 알았던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 여기에 온 것이다. 그러나 그때와 지금 이 시간은 동시에 일어나고 있다. 그 당시 내가 당신을 두고 떠났을 때 가르치지 않았던 것들을 가르치기 위해 여기에 있는 것이다. 나를 따르라고 가르치는 것이 아니다. 당신은 나를 따를 수 없다. 당신이 죽는다고 하더라도 당신은 나를 따를 수 없다. 그것은 당신이 죽으면 당신이 받아들일 수 있는 능력에 맞는 삶의 선물만을 받기 때문이다. 당신이 유일하게 받아들였던 것은 오직 당신의 삶뿐이었다. 그것이 어떠한 삶이었건 그것만을 당신이 받아들인 것이다. 배고픔은 당신에게 아주 중요하다. 고통은 당신에게 중요하다. 당신이 처한 현실이 마음에 들지 않아 혼란스러운 것, 그것은 당신에게 중요하다. 여자가 된다는 것은 당신에게 중요하다. 남자가 된다는 것은 당신에게 중요하다. 이러한 것들은 모두 물질적인 것들이다. 굶주림이 당신의 영을 파괴할 수 있다. 굶주림에 빠졌을 때 당신은 그 어느 때보다 신에 대한 집중을 빨리 잃어버릴 수 있다. 당신이 죽더라도, 당신은 깨어나지 않을 것 -당신은 영적 존재가 될 것이지만, 당신 마음은 그곳에 있지 않고, 여기에 있을 것이다- 이기에, 내가 알던 것 그리고 내가 배웠던 것을 가르치기 위해 여기에 온 것이다. 
 

- 오, 당신은 영겁의 세월을 살아왔다. 당신은 진화하고 있는 중이다. 신은 당신에게 영원한 삶을 주었다. 그것은 어떤 의미일까? 그 말은 당신이 오늘 오후에, 혹은 내일 아침에 죽어 육체가 사라진다 해도 당신은 당신의 영성체로 떠오른다는 것이다. 그러나 영성체는 다시 그것을 차지할 마음의 크기밖에 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당신은 현재 그 마음을 닦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영원한 생명이다. 여전히 누군가 성교를 할 테고 그 덕분에 당신은 다시 태어날 것이다. 다시 태어난다 해도 당신은 오늘을 기억하지 못할 것이다. 왜 오늘을 기억하지 못할까? 왜냐하면 미래의 당신 두뇌는 오늘 여기에 있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당신의 영은 여기에 있었다. 

 

- 나를 따르라고 당신들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나를 숭배하기를 원치 않는다. 당신 자신을 숭배하길 원한다. 지금까지 세워진 신을 위한 가장 위대한 신전은 결코 돌이나 금은보화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었다. 신을 위한 가장 위대한 신전은 바로 인간의 육체이며, 그리고 바로 그곳이 영이 이 세상에 머무는 곳이다. 그곳이 바로 신전이다. 무엇인가를 배울 때 기쁘거나 기분이 좋아진다면, 당신의 영이 그렇게 느끼는 것이다. 여기에 와서 피곤하거나 배가 고프거나 혹은 지루하다면, 그것은 당신의 육체가 느끼는 것이다. 당신의 마음은 영에 있지 않고 육체에 있기 때문이다. 무엇인가를 배워 기분이 좋아진다면, 그것은 눈으로 볼 수 없는 당신 내면에 존재하는 것과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 당신의 미래와 현재에 유일한 걸림돌이 되는 것은 무엇일까? 원숭이 마음인, 당신의 인간 두뇌이다. 왜 그런지 아는가? 당신이 얼마나 광범위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지 옆 사람에게 설명하라고 한다면, 이 말의 의미에 대해 잘 생각해 보라. 왜냐하면 당신이 얼마나 넓게, 얼마나 깊게, 그리고 얼마나 크게 받아들이는가는 당신이 어떤 믿음을 가지고 있는가를 보여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당신이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들은 절대로 당신의 삶에서 구현될 수 없다. 당신은 오직 받아들일 수 있는 것만을 구현할 수 있다. 자, 당신은 얼마나 광범위하게 받아들일 수 있을까? 그것이 당신의 의심보다 더 큰가? 아니면 당신은 받아들이는데 한계를 가지고 있는가? 그래서 아픈 것인가? 그래서 늙는 것인가? 불행한 것을 받아들이기 때문에 불행한 것인가? 그것들이 당신이 얻는 모든 것이다. 당신이 그것들보다 더 위대한 것들을 받아들일 수 없는 이유는 더 위대한 것들은 당신의 영안에 있기 때문이다. 당신의 영이 당신을 불행하게 만드는 이유는 당신이 영에게 불행을 말하기 때문이다. 

 

- 모든 것을 육적인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오늘날 당신이 갖는 유일한 골칫거리이다. 그것은 바로 여기 신경망에 있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나쁜 일을 많이 했다는 죄의식에 사로잡혀 있다면 내 말을 받아들이기 힘들 것이다. 나는 당신이 현실을 창조한다고 말할 것이기 때문이다. 만약 자신이 피해자라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당신 스스로 그렇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이 말이 마음에 들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당신은 지금까지의 고통이나 한계 그리고 결핍을 다른 사람 탓으로 돌리려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그런 모든 것들이 당신의 책임이라고 말할 것이다. 물론 내 말을 싫어할 것이다. 당신 영은 내 말에 동의하지만, 두뇌는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다. 

 

- 그 길은 쉽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당신의 육체가 가지고 있는 인성인 변형된 에고가 당신이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매번 당신이 모르는 사이에 당신을 죽이려고 할 것이기 때문이다. 당신이 깨어난 존재가 되면 그 길은 훨씬 수월해질 것이다. 당신이 변형된 에고를 정복했기 때문이다. 그러면 당신에게 묻겠다. 당신이 덧없는 삶의 끈에 매달리지 않고 이곳에서 하루에, 단 하루에 한 시간 집중한다고 해서 무엇을 잃겠는가? 그럼으로써 당신이 잃게 되는 것은 무엇일까? 기적을 부인하는 대신 받아들임으로써 당신들이 잃게 되는 것이 무엇인지 아는가? 무엇을 잃어버리겠는가? 나는 당신에게 아침에 일어나 당신의 영이 강력한 숨을 내쉬면서 하루를 창조하는 것을 가르칠 것이다. 나의 가르침을 진실로 받아들였을 때 당신이 무엇을 잃었는지 물을 것이다. 당신에게 말하겠다. 입문자들이여, 당신이 잃게 되는 것은 당신이 한때 그렇다고 알았던 이 삶이 가지고 있는 한계이다. 그리고 당신은 영원한 삶을 얻게 될 것이다. 

 

- 영원한 삶? 모든 사람들이 죽음의 문턱에서 깨어날 것이라고 내가 말하지 않았는가? 진정 나는 그렇게 말했다. 그러면 당신은 어떻게 달라질까? 육체를 갖고 천국과 다른 차원을 방문하는 것을 배울 것이며, 그런 경험을 통해 당신이 수용할 수 있는 범위가 확장될 것이다. 당신이 죽는다면 혹은 죽는 것을 선택한다면, 당신은 보통 사람들이 가는 곳으로 가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결코 이 세상으로 다시 돌아오지 않을 수도 있다. 어쩌면 다른 은하계의 초월적인 종족이 당신의 부모가 되어, 당신은 아주 고귀한 존재가 될 수도 있다. 당신은 이 세상에서 꿈도 꾸지 못하는 것들을 알 준비가 되었기 때문이다. 

 

- 이 학교에 참석하는 모든 사람들은 항상 시험을 치른다. 누가 그들을 시험하는지 아는가? 바로 그들 자신이다. 홀로 남겨진, 섬세한 영은 항상 스스로 발전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된다. 그러나 일상생활에서 그들의 마음이 혹은 변질된 에고가 더욱 강해져 견고한 성을 이룬다면, 아주 작고 여린 영은 약해질 것이다. 그렇게 되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그들은 다른 사람을 의심하고 불신하며 모든 것들이 부족하다고 생각하기 시작한다. 내면에서 어떤 위로와 도움을 받지 못하기 때문에 그러한 것들을 밖에서 찾으려고 한다. 

 

- 그러다가 그들이 학교로 돌아온다. 수많은 거친 영들이, 주저하는 변형된 에고들이 떼를 지어 나한테 온다고 상상해보라. 처음 며칠 동안 계속 정화작업만 해야 하는 그들을 상상해보라. 정화작업이란 무엇일까? 아무리 뛰어난 학생들도 학교에 돌아오면 처음 며칠 동안 정화작업을 해야 한다. 이 말은 어떤 의미일까? 그들이 자신의 육체보다 더 위대하며, 신의 왕국에 존재하는 것이 그들이 가지고 있는 의심보다 더 위대하다는 말을 다시 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 후 그들은 다시 훈련에 박차를 가하여 구현할 수 있게 되어야 한다. 그러면 그들은 이렇게 말한다. "오, 맞아요. 오, 맞습니다. 기억납니다." 만약 내가 그들과 함께하는 시간이 일주일밖에 없다고 생각해보라. 처음 4일은 정화작업을 하고 나머지 3일은 다른 차원으로 가 그들이 받아들이지 못했던 것들을 받아들이는 것을 배울 것이다. 우리는 3일 동안 그러한 작업을 해야 하고, 그 후 그들은 떠날 것이다. 당신 이전에 온 사람들 중에 변한 사람이 있을까? 그렇다. 기적적인 일을 할 수 있는 학생들이 있을까? 물론 있다. 기적적인 일을 하지 못하는 학생들도 있을까? 물론 있다. 왜 그럴까? 왜 그런 차이가 날까? 어떤 사람은 할 수 있는데 왜 다른 사람들은 할 수 없을까? 답을 아는가? 답을 알고 있는 사람은 몇 명이나 되는가? 손들어보라, 입문자들이여. 좀 더 높게 손들어보라. 손이 하늘에 닿을 듯 번쩍 들어라. So be it! 

 

- 자, 첫 번째 가르침이다. 당신은 당신이 원하는 것을 정확하게 얻는다. 이 문장을 적도록 하라. 

 

"나는 내가 원하는 것을 정확히 얻는다."

"의식과 에너지가 현실을 창조한다."
"의식과 에너지 그리고 두뇌가 마음을 창조한다."

졸지 마라. 의식이 무슨 뜻인지 아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되는가? 손들어보라. 자, 입문자들이여, 겁먹지 마라. 손을 번쩍 들라. 간단하게 의식이 삶의 구조라고 하면 어떨까? 의식이란 바로 삶의 구조이다. 나는 의식이 삶의 마음이라고 말하지 않고 삶의 구조라고 말했다. 의식은 자각이기 때문에, 에너지를 반드시 포함하고 있다. 내가 뭐라고 말했는가? 이처럼 의식과 에너지는 서로 떨어질 수 없는 불가분의 관계이다. 그 둘은 하나이며 같은 것이다. 무의식적인 에너지란 있을 수 없다. 내 말을 이해하는가? 의식과 에너지가 현실의 본질을 창조한다는 말을 당신의 파트너에게 쉽게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그 말은 단순히 현실은 의식과 에너지 없이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왜냐하면 결국 현실이라는 것은 자기를 의식하는 것, 자각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 자, 이제 두뇌에 대해 이야기해보자. 인체 내에서 가장 위대한 장기를 보관하고 있는 수박처럼 생긴 머리를 두 손으로 잡아보라. 손으로 잡았는가? 크지 않은가? 좋다. 머리는 당신의 얼굴을 아주 잘 지탱하고 있다. 두뇌는 세포에게 생명을 부여해주는 의식과 다르다. 두뇌는 의식을 창조하는 것이 아니라 생각을 창조한다. 자, 그 말을 적도록 한다. 두뇌는 생각을 창조한다. 그것이 두뇌가 하는 일이다. 자, 하나의 생각은 마음과 동일하다. 그 말을 적도록 한다. 마음은 하나의 생각과 동일하다.

 

"두뇌는 의식을 창조하지 않는다. 그것은 생각을 창조한다. 하나의 생각은 마음과 동일하다."

입문자들이여! 졸지 말고 내 말을 들으라. 당신은 혼란스러울 것이다. 왜 그렇지 않겠는가? 많은 학자들이 의식, 마음 그리고 두뇌에 대해서 다루지만 그들은 두뇌가 실제로 어떻게 작용하는지 모른다. 나는 당신들에게 그것들이 어떻게 작용하는지 설명하고자 한다. 그것들은 그저 단어에 불과하지만 각각 다른 뜻을 가지고 있다. 의식과 에너지는 절대 근원이다. 그것이 생명을 부여할 때는, 하나의 생각 때문에 생명을 부여한다. 육체, 즉 인간의 육체는 두뇌를 가지고 있다. 두뇌는 의식과 에너지의 흐름을 위한 수단이다. 의식과 에너지는 두뇌가 가진 힘의 원천이다. 

- 두뇌가 하는 일은 신경학적인 차원에서 의식과 에너지의 전기자극을 -졸지 마라- 잡아 생각을 창조하는 것이다. 두뇌는 의식의 흐름을 실질적으로 토막내 뇌신경 세포의 연접부로 가는 통로에 머물게 한다. 그래서 두뇌는 하나의 생각을 기억할 수 있는 것이다. 그것이 두뇌가 하는 일이다. 두뇌는 자신을 통과하는 의식과 에너지의 흐름을 잡아, 시냅스를 점화시켜 여기(전두엽)에 이미지를 보여주는 기능을 한다. 마음은 의식과 에너지가 아니다. 그것은 결과물이다. 마음은 두뇌에서 생각체나 기억을 창조하는 의식으로 일어나는 결과물이다. 이런 모든 기억들이 한데 모여, "저 사람을 좋아한다."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몇 명이나 내 말을 이해하는가? 자, 입문자들이여, 방금 배운 내용을 옆에 있는 파트너에게 말하라. 

- 입문자들이여, 의식, 에너지 그리고 마음은 어떻게 다른가? 몇 명이나 내 말에 동의하는가? So be it. 계속 진행하기 전에 당신들이 이해해야 할 것이 있다. 당신은 여기에서 철학을 배우는 것이지 진리를 배우는 것이 아니다. 내가 말하는 것 어느 것도 진리가 아니다. 당신은 철학을 배우는 중이다.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가? 이것은 하나의 가르침이다. 우리가 지금까지 말한 모든 내용들은 당신과 연결된 현실이라는 이론적인 개념이지 진리가 아니다. 진리는 상대적인 것이다. 당신이 진리라고 아는 것들만 진리이다. 당신이 알지 못하는 것들은 진리가 아니다. 누군가 과학적인 관찰을 통해 우리가 속한 우주 외에 23번째의 우주가 있다고 당신에게 말할 수도 있다. 그것은 그들에게 진리일지 모르지만, 당신에게도 그것이 진리일까? 그것은 당신의 진리가 아니다. 당신의 삶에 있는 대부분의 것들이 당신의 진리가 아닌 것처럼, 그것은 하나의 철학에 불과하다. 당신은 왜 그것이 진리가 아닌지 아는가? 당신이 23 번째 우주를 경험해보지 않았기 때문이며, 당신이 23 번째 우주를 경험해야만 비로소 하나의 진리가 된다. 이제 두려워하지 말고, 내가 당신들에게 가르치려 하는 것들을 배우길 바란다.  

 

- "진정해. 사랑하자. 우리가 공격하고 있는 것은 바로 우리 자신이야." 그 목소리를 상상해보라. 그 목소리를 듣고 싶지 않을 것이다. 그것에게 입 닥치라고 말할 것이다. 더욱더 화가 나 더 세게 주먹을 날릴 것이다. 당신의 영을 상상해보라. 그것이 대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당신이 늙어가고 끔찍한 많은 질병에 걸리는 이유는 당신이 성장하기로 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것이 당신이 여기에 있는 이유이다. 성장이란 무엇을 의미하는가? 육체가 아니라 당신의 지혜가 성장할 필요가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당신의 영은 한 생애에서 당신이 다 써버려 고갈된 생명력이다. 어린아이일 때의 생명력은 도처에 넘쳐나며 광대하다. 정자를 뿌리기 시작하고 월경을 하기 시작하면서, 세상에 대한 자신만의 의견을 갖기 시작하면서 영은 점점 작아져 간다. 그러한 것들을 창조하는데 영을 다 써버리기 때문이다. 

 

- 사람들이 깨달음을 얻으면 어떻게 될까? 그들은 그들의 무지를 정복한다.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것은 변형된 에고나 인성 그리고 육체보다 그들의 영을 개발하여, 그 에너지의 구현으로 그들의 일상을 살아간다는 의미이다. 그렇다면 그들에게 어떤 일이 일어날까? 그들은 결코 늙지 않을 것이며 항상 에너지가 넘쳐날 것이다. 그들은 창조한다. 그들은 또한 놀랄만한 수용능력을 갖게 된다. 그들에게 이러한 가르침을 믿느냐고 물으면 그들은 항상 그렇다고 대답할 것이다. 그들은 결코 아니라고 대답하지 않을 것이다. 그들은 "나는 이미 그것을 체험했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나의 것으로 만들었습니다."라고 말할 것이다. 그 말은 무슨 뜻인가? "그 말은 내가 그것을 하나의 철학으로 창조하고, 그것을 체험으로 구현하였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 과정에서 곤경에 빠지기도 하였다. 하지만 체험 후에 나는 그것을 알게 되었다. 나는 지혜를 얻었다. 나는 진리를 얻었다." 몇 명이나 내 말을 이해하는가? 

 

- 깨달았다고 해서 항상 좋은 사람이 되라는 것이 아니다. 그런 의미가 아니다. 뉴에이지는 새로운 시대가 아니라, 영원한 시대이다. 깨달음을 얻는 것은 당신이 육체보다, 당신이 가지고 있는 편견이나 결핍보다 더 위대해지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다고 긍정적인 마음가짐을 가지라는 말도 아니다. 어떤 사람이 긍정적인 생각을 하려고 한다는 것은 그들이 부정적인 생각을 갖고 있기에 그렇게 되려고 필사적으로 노력한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결국에는 허울뿐인 긍정적 가능성만을 갖게 되는 것이다. 스스로 변화하여 그 자체가 되기를 바란다. 

 

- 지금부터 당신은 아주 많은 이론을 배울 것이다. 이러한 이론을 배울 때, 나의 가르침이 내 존재로부터 당신이라는 존재로 전달되기를 바란다. 이것이 오늘 당신에게 바라는 것이다. 오늘 배우는 내용에 대해 집중하고, 유의해서 듣기 바란다. 가르치는 동안 수시로 멈추고 옆에 있는 사람들에게 당신이 방금 배운 내용을 정확하게 말하라고 할 것이기 때문이다. '당신의 언어'로 그것들을 설명하길 바란다. 당신이 들은 내용을 말로 전달하면, 그것은 당신의 두뇌 안에 머물기 시작한다. 만약 그것들을 당신의 언어로 표현한다면, 그것은 나의 가르침이 아니라 당신의 가르침이 될 것이다. 몇 명이나 내 말을 이해했는가?  

 

- 마음이 현실을 창조한다. 당신의 모든 나날은 지금까지 당신이 생각해온 방식으로 일어난 결과이다. 우리가 이러한 과정을 이해하고 당신의 수용 능력과 이해의 수준을 확장한다면, 당신은 이 이론을 바탕으로 당신의 삶에서 진리를 구현하여 경험할 수 있을 것이다. 오늘 내가 가르치는 모든 내용을 당신들이 말로 표현하고, 아이처럼 순수하게 손을 사용하여 다른 사람에게 설명할 수 있기를 바란다. 옆에 있는 사람이 당신의 고해성사를 들어주는 사제라 생각하라. 혹은 그를 당신 자신이라 여기고, 스스로 알아들을 수 있는 방식으로 자신에게 말한다고 생각하라. 귀머거리처럼 조용히 앉아 있지 마라. 내가 권하는 모든 것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라. 그러면 오늘 하루가 끝날 때쯤에 당신은 아주 많은 것을 얻을 것이다. 

- 당신들은 어린아이와 같다. 다른 행성, 다른 은하계, 다른 차원들 그리고 다른 시간의 흐름에는 당신들보다 훨씬 더 진보된 문명들과 존재들이 있다. 그런가 하면 당신들보다 약간 뒤떨어진 문명과 존재들도 있다. 당신은 어린아이들과 같다. 당신은 신이라고 부르는 공동체의 일부이다. 우리는 영겁의 세월 동안 당신을 잊혀진 신이라고 불렀는데, 그것은 인간 드라마에 가장 잘 어울리는 말이었다. 당신은 자신의 신성함을 잊어버린 채 자신의 육신과 물질적 자아에 몰두해왔다.

- 그래서 그들은 무엇을 했을까? 당신들의 진화에 많은 도움을 주었다. 당신들은 여기(1차원)에서 작은 두뇌와 큼직한 얼굴을 갖고 있었다. 이 작은 두뇌는 파충류 뇌, 중뇌 그리고 뇌량으로 진화하였으나 신피질, 즉 옐로 브레인(Yellow Brain, 용어 정리 참고)은 가지고 있지 않았다. 진화의 그 시점에서 당신들은 초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당신들의 두뇌가 심령계라 불리는 적외선 영역에서도 작동했기 때문에 당신들은 사방으로 멀리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었다. 그럼에도 당신들은 미개한 두뇌를 가지고 있었다. 그리하여 신들이 내려와 당신들과 그들의 씨를 혼합하여 당신들의 육체 안에 그들의 경험들을 불어넣었다. 

- 그들은 왜 그러한 일을 했을까? 당신들은 그들의 형제이고 자매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당신들보다 더 진화된 존재이지만, 당신들과 마찬가지로 절대 근원에서 나왔다. 그들은 또한 당신들을 종으로 부렸는데, 이것은 무척 이치에 맞는 것이다. 당신들은 진화할 수 있는 지식을 습득할 능력이 없었고, 오직 이곳의 타임라인에만 있었기에, 그들이 알고 있던 모든 것들을 알 수 없었다. 그렇다면 당신이 해야 할 일은 무엇이었을까? 그들과 섞이고, 합쳐져, 함께 사는 것이었다. 같이 살면서 그들은 당신들에게 예술과 심리학, 수학 그리고 천문학을 가르쳤다. 당신들에게 문화적인 감각을 불러일으키고, 더 나아가 역동적 자아에 대한 감각을 일깨웠던 존재들도 바로 그들이었다. 당신은 커다란 신피질을 가지고 있었지만 거의 사용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경험을 통해서 유전적으로 얻게 된 육신을 가지고, 영으로서는 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것은 마치 부모의 옷을 걸치고 돌아다니는 어린아이와 같다. 몇 명이나 이 말을 이해하는가? 그런 일은 455,000년 전에 일어났다.  

 

- 지금으로부터 2,000년 후에 당신은 어디에 있을까? 당신은 변했을까? 변하지 못했을 것이다. 왜냐하면 당신은 고정된 패턴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당신은 전생과 같은 영적 수준을 갖고, 계속 돌아왔다. 이 말은 무엇을 뜻하는가? 인류는 4만 년 전이나 지금이나 비슷하다는 것이며 인간의 두개골 또한 거의 변하지 않았다는 말이다. 당신들은 영적인 존재로 유전인자를 따라 계속 윤회하지만, 자신이 가진 것들을 충분히 사용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 당신이 자신의 본성 이면에 실질적으로 존재하는 영적 존재라면, 내면에 있는 당신의 게으름과 조급함이 매우 진화된 육체 안에 있는 미개한 영이라는 것이 아주 논리적으로 들리기 시작할 것이다. 이 말이 논리적으로 들리는가? 천재란 마음의 영역을 확장하고, 그 마음이 모든 것인 사람을 말한다. 우리가 그러한 것을 이해한다면, 지난 1,500만 년 동안 당신이 진화하지 못한 이유는 아직도 당신은 455,000년 전에 있으며 당신의 육체는 4만 년 전과 비슷하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당신은 육체의 능력을 제대로 사용하지 않았다. 당신은 자신의 육체를 신의 정교한 도구로써 사용할 수 있는 영적 자아를 충분히 개발하지 않았다. 당신은 전생에 무엇을 했는가? 기술 혁명의 시대에 살았는가? 혹은 2차 세계 대전 때 전쟁터에서 죽었는가? 집이 폭격을 당해 죽었는가? 아일랜드 기근 때 굶어 죽었는가? 아니면 전염병에 걸려 죽었는가? 자식들은 몇 명이었으며 그들은 지금 어디에 살고 있는가? 전생에서 당신은 세상에 무엇을 기여했는가? 아마 기억하지 못할 것이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내가 하지 않은 말들이 많은데, 그 이유는 훗날 당신들이 좀 더 쉽게 배울 수 있게 하기 위한 것이다. 그리고 나는 당신들에게 러너 (용어 정리 참고)를 보낼 것이다. 그리하여 내가 가르치는 개념이나 철학을 당신 스스로 경험하여 그것들이 당신만의 진리가 되도록 도와줄 것이다. So be it. 그렇다면 러너란 무엇인가? 당신에게 우편물을 전달하는 자가 러너이다. 전화를 걸거나 혹은 당신을 만나거나 아니면 어떤 특정한 원리를 스스로 경험하여 당신만의 진리가 되도록 특별한 상황을 만드는 것이 러너이다. 나는 당신에게 많은 러너를 보낼 것이다. 내가 이것을 말하는 이유는 올해 당신이 아주 놀랄만한 것들을 발견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때 당신은 지금 이 시간, 여기 이 장소에서 이 말을 들었던 것을 기억할 것이다. 그 이후에 당신은 종이와 색연필을 꺼내 다른 사람에게 이 작은 그림들과 타임라인 같은 것을 그리라고 말할 것이라 나는 감히 장담한다. 

 

- 지금부터 에너지에 대해 설명하려고 한다. 에너지를 뱀으로 표현한다는 것에 대해 배운 적이 있는가? 에너지가 뱀으로 묘사된다는 것을 배운 적이 있는가? 손들어보라! So be it. 에너지를 뱀으로 표현하는 이유는 에너지의 파동이 마치 뱀처럼 움직이기 때문이다. 에너지 자체는 시작도 없고 끝도 없지만, 그것은 생각과 함께 시작하여 생각의 흐름 안에서 끝난다. 에너지는 두 개의 의식 차원 사이에서 끊임없이 흐른다. 에너지가 이렇게 움직이면서 파동을 만든다. 어떤 의식 차원에서 에너지가 나오느냐에 따라 그에 상응하는 종류의 에너지를 얻게 되리라는 것을 예상할 수 있다. 고도의 지성 혹은 고차원 의식을 가지고 있는 사람에게는 폭발하는 강렬한 에너지를 느낄 수 있다. 또한 자신의 생각을 물질로 구현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사람들도 이러한 에너지를 발산한다. 그러나 이 타임라인에 있는, 느리고 게으른 사람들이나 삶에 대해 무관심한 사람들에게는 아주 느리고 긴 파동의 에너지가 나오며, 그들의 생각과 결론은 시작과 동시에 끝나버린다. 

 

- 이러한 파동선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좋은 에너지를 가진 사람이라는 말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저 사람에게 나오는 에너지가 매우 위험하게 느껴져!"라고 말할 때 그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이런 말을 해본 적이 있는가? 손들어보라. 여기에서 말하는 에너지 그 자체는 순수하지만, 에너지가 흐를 때는 생각의 파동을 실어 나른다. 즉 에너지는 움직이고 있는 생각을 의미하며, 어떤 사람이 해로운 에너지를 가지고 있다면 당신은 그것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의 의식이 두뇌로 흘러 이장(field, 場)에서 마음의 형태로 발산하기 때문이다. 당신이 그것을 머리 뒤쪽에 있는 소뇌로 포착하면, 두뇌는 그것을 집합적 생각의 장에서 해독한다. 즉 두뇌는 그것이 좋은가 나쁜가를 평가한다. 좋고 나쁜 것? 에너지는 좋고 나쁜 것이 없다. 에너지는 긍정적이지도 부정적이지도 않다. 그것은 둘 다이다. 영원한 빛의 세계에서 좋고 나쁘게 보이는 것은 없다. 내가 당신을 신이 여기에 있는 존재(관찰자)이고 당신이 바로 여기(전두엽에서 생각을 품고 있다면, 당신은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장에 영향을 주고 있는 것이다. 어떻게 그런 일을 할 수 있을까? 질량을 갖는 모든 물질들 -당신이 앉아 있는 의자, 입고 있는 옷 그리고 당신 육체를 이루고 있는 것들- 은 모두 아원자 입자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이다.  

 

- 당신은 당신과 나 사이에 존재하는 장(場)을 보지 못하지만, 이것은 계속 이 일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항상 운동량을 갖는 움직임이다. 당신과 나 사이의 공간에 보이지 않는 에너지 장이 요동치고 있다는 것을 인식하는 순간, 작은 빛들이 보이기 시작할 것이다. 이러한 빛을 본 적이 있는가? 보았는가? 누군가는 당신의 안구에 문제가 있어서 그렇게 보였을 거라고 말한다. 하지만 안구와는 전혀 상관없다. 이러한 작은 빛들은, 실질적으로 에너지 파동이 전자라고 하는, 궤도를 도는 빛과 함께 입자로 붕괴되는 것이다. 보이지 않는 장에 집중하는 것을 멈추는 순간, 빛들이 사라지면서 당신과 가까운 거리에 있는 모든 것이 보인다. 그래서 당신이 나를 볼 수 있고 내가 당신을 볼 수 있는 것이다. 당신이 이 장에 대해서 전혀 관심이 없으면 그것은 불활성 상태에 있게 된다. 이는 당신이 그것을 활성화하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래서 그것은 그 상태 그대로 머물고 있다. ‘숨겨진(hidden)' 것들에 집중하는 순간, 당신은 숨겨진 것들의 베일을 벗기는 것이다. 

 

- 의식과 에너지는 현실의 본질을 창조한다. 모든 단단한 물체는 그것을 만든 창조자에 의해 단단하게 만들어진 것이며, 그것을 단단한 물체라고 인정했기 때문에 그것이 단단한 상태에 있는 것이다. 오늘 밤 당신이 잠자리에 들면, 당신의 방은 사라지거나 희미해질 것이며 냉장고의 불빛도 희미해진다. 왜냐하면 당신이 잠든 순간 더 이상 그 방을 관찰하지 않으며, 관찰하지 않는 순간 그것은 희미해지기 때문이다. 내 말에 몇 명이나 동의하는가? 자, 그러면 눈을 살짝 뜨고 방안을 응시하여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볼 수 있다면 어떨까? 그것들이 그렇게 보이도록 누가 결정하는가? 당신 자신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는가? 당신 생각이 맞다. 그러나 만약 어느 날 아침에 일어나 자신이 23 번째 우주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면 어떻게 될까? 그렇게 되면 이 방은 어떻게 될까? 음, 그것은 상황에 따라 달라진다. 알다시피, 이것은 일종의 속임수이다. 왜냐하면 당신이 23 번째 우주에서 깨어나 자신이 거기에 있다는 것을 완전히 이해한다면 당신은 그곳에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아주 분명하다. 그런데 당신이 내 방에 어떤 일이 일어났을까 하고 자신에게 묻는 그 순간 당신은 잠에서 깨어날 것이다. 내 말을 이해하는가? 당신은 아주 강력한 존재이다. 그렇기 때문에 당신이 여기(전두엽)에 무엇을 두건, 그것이 쓰레기이건 신성한 것이건, 그것은 에너지에 영향을 미친다. 

 

- 당신이 무엇을 생각하건 그 생각이 과거로부터 에너지를 풀리도록 하거나 그것의 에너지를 미래로 붕괴시킨다. 팔을 벌리고 다음과 같이 해보라. 이것이 에너지이다. 우리가 에너지를 움직이면, 이런 식으로 이동한다. 우리가 에너지 요동에 집중할 때 어떤 일이 일어나는가? 바로 그것이다. 그것은 질량 덩어리가 되어 버린다. 우리가 집중하는 것을 잊어버리면 어떻게 될까? 그것은 다시 에너지 파동으로 되돌아간다. 이런 원리가 작용한다. 당신은 모든 가능성이 존재하는 굉장한 환경에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계속 같은 타임라인에서 윤회를 거듭하는 이유는 의식의 힘을 육체의 욕구에 빼앗겼기 때문이다. 그 결과로, 그들은 유전적 성향이 짙은 육체를 가지고 태어나 그 육체가 모든 것을 좌지우지하도록 내버려 둔다. 그들의 육체는 유전학적 자동 조종 장치를 가지고 태어나는 것이다. 

- 당신의 마음이 이것을 바꾸거나 촉진할 수 있다는 것을 아는 그 순간 당신이 이것을 아는 그 순간, 당신의 인생은 변한다. 어떻게 변할까? 당신의 마음은 다음과 같이 말할 것이다. "내가 무엇을 생각하건 나는 그것을 창조할 수 있는 힘이 내 안에 있다는 것을 알고 있어. 내 현실은 순식간에 사라지는 생각과 같아. 마음을 가라앉히고 조용히 앉아 삶에서 원하는 것이 무엇인가에 대해 자신에게 질문한다면 어떨까? 내가 전혀 알지 못했던 것은 무엇일까? 내가 전혀 경험해보지 않았던 것은 무엇일까? 나는 어떠한가? 내 두뇌의 10분 1도 사용하지 않았다면, 나머지의 두뇌를 최대한 사용하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할까? 만약 나머지 두뇌를 다 사용할 수 있다면 나는 얼마나 많은 가능성을 가지고 있는 것일까?" 

- 자, 리스트를 만들어 보라. 당신이 하고 싶은 것들의 목록을 만들어라. 당신의 삶이 좀 더 오래 지속될 수 있고, 당신이 어떻게 생각하고 받아들이는가에 따라 무엇이든 바꿀 수 있다면, 지금 당신의 모습은 얼마나 다를까? 아주 많이 다를 것이다. 두뇌가 그림들과 홀로그램들이 일으키는 섬광에 따라 작동한다는 것을 이해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매번 섬광이 일어나는 것을 우리는 생각이라 부른다. 섬광이 일어날 때마다 그것은 여기(전두엽)에 나타나며, 생각이 여기 이 지점에서 매번 섬광을 일으킬 때마다, 그것은 이 장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하나의 생각을 그릴 수 있다면, 그리고 바로 여기에 그 생각을 일정 기간 동안 의도적으로 붙잡아 둘 수 있다면, 현실 창조를 위한 관찰자 효과를 정해진 절차에 따라 사용할 수 있을까? 물론이다. 당신이 그 생각을 완전히 받아들여 여기 전두엽에 붙잡아 두는 그 순간, 당신의 타임라인을 바꾸기 때문이다. 

 

- 그러면 모든 것들이 유동적으로 변하기 시작한다. 당신이 꿈을 꾸고 그것을 여기(전두엽)에 붙잡아 두게 되면, 어느 날 당신이 깨어났을 때 인생이 송두리째 흔들리기 시작할 것이다. 그러면 당신은 "이것은 내가 보았던 것이 아니야!"라고 말할 것이다. 물론 당신은 그것을 보았으며 모든 것들이 허물어져 가기 때문에 그렇게 느끼는 것이다. 즉, 우리가 테이블의 입자들을 분해할 수 있다면, 테이블은 사라지고 테이블이 있던 자리에 방사선 장이 남아있게 된다는 것이다. 그것이 변화다. 그렇지 않은가? 당신의 삶은 얼마나 억눌려 있었는가? 당신의 삶은 이 타임라인에서 꽉 막힌 채 끊임없는 윤회를 계속해왔다. 이 세상 너머에는 무엇이 있을까? 계속해서 살 수 있을까? 계속해서 존재할 수 있을까? 계속해서 더 많은 것을 알 수 있을까? 진정 그러하다. 그렇다면 당신은 그러한 타임라인에 어떻게 갈 수 있을까? 과거를 용해해야만 한다. 여기에 있는 모든 사람들은 과거를 기준으로 하여 미래를 생각하고 있다. 무엇이 당신을 과거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하는가? 죄책감, 부정적인 생각, 걱정 그리고 변화에 대한 두려움 같은 것들이 당신을 과거에 묶어둔 것이다. 삶에서 아름다운 무언가에 집중한다면 당신에게 어떤 일이 일어날까? 당신의 삶에서 많은 것들이 떨어져 나가기 시작할 것이다. 왜 그럴까? 그런 모든 것들을 지탱하고 있던 에너지가 풀려나야만 당신이 원하는 것들이 재형성되기 때문이다. 
 
- 오늘은 이것으로 충분하다. 당신들이 지금까지 오랫동안 들어왔음에도 전혀 이해하지 못했던 말을 당신들에게 하면서 오늘의 강의를 끝마치려 한다. "신은 사랑이다." 이 말은 무슨 뜻인가? 당신 자신에게 말해보라, 사랑이라는 것은 항상 베푸는 행위이다. 그것은 취하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신, 이곳에 있는 존재 -여기에 있는 이 존재(제로 포인트)- 는 베풀며 우리가 탐험할 수 있도록 생명의 원칙을 확고하게 결속한다. 당신 자신을 사랑한다는 것은 열정적으로 자신을 품에 안는 것이 아니다. 또한 그것은 시적인 달콤한 말로 자신을 위로하는 것도 아니다. 사랑은 주는 것이며, 베푸는 행위이다. 신은 절대로 취하지 않고 오직 베푼다. 삶은 이 순간으로부터 계속 확장해왔다. 삶은 한 번도 수축되지 않았다. 신은 심판할 능력이 없다. 신은 당신을 심판하거나, 당신을 증오하거나 혹은 당신을 원망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지 않다. 신에게는 그러한 것이 전혀 없다. 오직 허용만이 있을 뿐이다.  

- 사랑이 무엇인가를 안다는 것은 문을 활짝 열고 베푸는 것이다. 그것은 마치 막혀 있던 댐을 부수는 것과 같다. 사랑은 베푸는 의식(意識)이다. 자신을 사랑하는 법은 다른 이에게 베풀 때 배우게 될 것이다. 그럴 때 당신은 자신에게 어떤 물질적인 것을 주는 것이 아니라 자유를 주게 될 것이다. 더 이상 성공과 실패의 잣대로 자신을 평가하지 않을 것이다. 또한 과거의 죄의식에 더 이상 사로잡히지 않을 것이다. 죄의식에 사로잡혀 있는 한 당신에게 미래는 절대로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당신은 적들을 풀어줄 것이다. 마음에서 그러한 적들을 놓아버릴 때 적들도 당신을 놓아줄 것이기 때문이다. 바로 이것이 당신 자신을 사랑하는 것이다. 마음속에 적을 계속 품고 있다면 엄청난 에너지를 소비하게 된다. 

 

- 자신을 사랑한다는 것은 자신을 용서하는 것이다. 자신에게 다음과 같이 물어보라. "모든 것이 영원하다는 것을 비추어볼 때 나의 행동은 어떠한 가치를 가지고 있을까? 이러한 행동이 나를 영원히 속박할까, 아니면 확장하게 하여 언덕 너머를 볼 수 있게 할까?" 신은 사랑이다. 왜냐하면 신은 매일 당신에게 삶을 부여하고, 삶을 창조하는 데 필요한 에너지로 당신을 지원하기 때문이다. 당신에게는 당신의 시간과 계절이 있다. 신이 하는 것처럼 당신도 그렇게 한다면, 당신 안에서 사랑이 피어날 것이다. 사람들이 당신을 사랑하기를 기대하지 마라. 그들은 그러한 능력이 없다. 당신이 자신을 사랑하기를 기대하라. 당신이 당신을 사랑하는 것은 당신에게 자유, 평화를 주는 것이며, 당신이 사랑을 취해 당신 자신에게 주었을 때, 당신은 다른 사람들에게 사랑이 무엇인가를 보여주는 것이다. 사람들에게 사랑을 베풀라! 사람들에게 사랑을 베풀라! 

 

- 사람들이 마음 편히 실수하도록 허용하라. 왜 그래야 할까? 그들이 지혜를 얻기 직전에 있기 때문이다. 덕이란 것은 삶을 절제하는 것이 아니라 삶 안에서 삶을 사는 것이다. 사람들에게 많은 여유를 주라. 그들의 실수를 찾으려고 하지 마라. 그들을 사랑하고, 허용하라. 누군가를 힘으로 통제하려 하지 말고, 그들과 게임을 하지 마라. 그들을 자유롭게 하고 정직하고 진실하게 그들을 대하라. 정직이란 "내가 가장 절실히 원하는 것을 당신에게 준다."라는 의미이다. 부모가 당신을 제대로 키우지 못했다고 하더라도 그들을 용서하라. 아무도 다른 사람을 제대로 키울 수 없다. 당신에게 삶이 있고 그들이 당신에게 생명을 부여했다는 것에 대해 기뻐하라. 베풀라, 베풀라. 받지 마라. 받지 마라. 베푸는 행위를 통해 당신은 신이 될 것이다. 당신이 자비로울 때, 당신의 신도 자비로울 것이다. 당신이 용서할 때, 당신의 신도 용서할 수 있을 것이다. 자신을 용서하지 않고서 어떻게 적을 용서할 수 있단 말인가? 당신이 자신을 용서했을 때만이 다른 사람에게 영향력을 줄 수 있는 지혜를 얻게 된다. 

 

- 받는 사람들이야말로 피해자들이다. 당신들 모두 받는 자였다. 당신은 삶이 당신에게 무엇인가 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부모가 당신에게 무엇인가 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친구들이 당신에게 무엇인가 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사랑하는 사람이 당신에게 무엇인가 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어느 누구도 당신에게 주어야 할 의무가 없다. 당신은 받는 자였지 베푸는 자가 아니었다. 당신이 계속 받는 자라면, 신이 당신으로 구현한 것이 아니다. 당신이 베푸는 자라면, 당신은 당신 내면에서 신성한 힘을 구현할 것이다. 왜냐하면 베풀 수 있는 자원은 무궁무진하기 때문이다. 

 

- 오늘 밤 당신들이 여기를 떠나 식사를 하고 충분히 쉰 후, 잠자리에 들기 전 혼자만의 조용한 시간을 갖도록 하라. 당신이 이러한 것에 익숙해지길 바란다. 그렇게 조용히 앉아 당신의 삶에서 일어나길 바라는 세 가지를 생각하라. 단지 세 가지 꿈을. 그 꿈은 어떤 것이라도 상관없다. 그것은 좀 더 영광스러운 영이 되는 것일 수도 있고, 자각몽을 꾸는 것처럼 생생한 삶을 갖는 것일 수도 있고, 혹은 엄청난 부자가 되는 것일 수도 있다. 당신이 그것을 받아들이는 한 어떤 것이라도 상관없다. 그러나 당신이 적은 꿈들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당신은 그것들을 갖지 못할 것이다. 

 

- 이제 꿈이 있는 당신의 방으로 돌아가 그동안 살아오면서 잃어버렸던 것들을 찾도록 하라. 당신들 대부분이 어릴 적에 이것들을 잃어버렸다. 방으로 돌아가 당신에게 일어났으면 하는 것들을 찾기 바란다. 하지만 원하는 것이 반드시 당신이 받아들일 수 있는 영역 내에 있는 것인지를 확인하라. 그런 후 그것을 적고, 그림으로 그리도록 하라. 다 그렸으면, 자신에 대해 숙고하라. 그리고 변하고 싶은 자신의 모습에 집중한다. 모든 것이 가능하다. 과거에 대한 영원한 중독이라는 것은 없다. 그것은 단지 일시적인 것들이다. 당신은 자신의 부족함에, 자신이 가지고 있는 의심 -그것이 무엇이건- 에 그리고 자신의 질병에 집중한다. 그런 것들을 적도록 한다. 당신의 삶에서 바꾸고 싶은 세 가지는 무엇인가? 그것들을 쓰고 그림으로 그려라. 그것이 내가 오늘 밤 당신들이 하기를 바라는 것이다. 

- 잠자리에 들기 전 -텔레비전을 보지 말고- 책을 읽어라. 그럼으로써 고귀한 생각들을 마음에 품고 잠들도록 하라. 어떤 책을 읽어야 할까? 양자역학에 관한 책을 읽어라. 현실을 창조하는 것에 관한 것들을 읽어라. 다른 생에 관한 것 또는 그 생에서 당신이 어떤 모습일지 말하는 책을 읽도록 한다. 당신의 영 -당신의 육신이 아니라 당신의 영- 에게 양식을 주어라. 그리고 그것을 머릿속에 품은 채 잠자리에 들어라. 그러면 내일 아침, 당신은 웃으면서 지금 그 자리에 앉아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내일은 오늘과 완전히 다른 새로운 날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당신은 내일 변할 것이며, 내일이 강연장을 떠날 때 당신은 이곳을, 특히 나를 그리워할 것이다. 그리고 당신은 기분이 아주 좋아질 것이다. 그것은 여정의 일부이다. 그렇게 여정은 시작되었다. 

- 당신들을 사랑한다.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 나는 당신들에게 베풀기 때문이다. 내가 이러한 모습으로 나타난 이유도 당신들 때문이다. 당신들의 어떤 점을 사랑할 수 있을까? 나도 한때는 그러한 모습이었다. 당신들은 잊혀진 신들이다, 분명히. 당신들은 자신의 신성함에 대해 망각 상태에 빠져 있다. 당신들은, 대부분, 미신과 교리에 빠져 있다. 오늘 내가 가르친 것들은 아주 단순하다. 우리가 그것들을 생물학적 용어로 이해하려 한다면 모든 것이 복잡해진다. 그리고 감추어진 것들이 에너지로 현현되는 것에 대해 이야기하면 혼란스럽고 복잡해질지 모르지만, 당신들은 무지에서 점점 벗어날 것이다.

 

- 당신은 아주 많은 것들을 알지 못한다. 나는 결코 나의 무지를 급급하게 감추려고 하지 않을 것이며, 무지가 탄로 나지 않도록 하기 위해 의심의 경계를 세우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 내일 아침 열린 마음으로 이 자리에 오길 바란다. 당신을 사랑한다.  

 

- 지칠 때까지 하라. 그런 후 책임감을 가지고, "보라, 정말 내가 이것을 간절하게 원한다면, 나는 반드시 이룰 것이다."라고 자신에게 말하라. 그렇게 일어난다. 완벽한 믿음은 순식간에 일어난다. 완전한 치료, 치유 그리고 회복은 순식간에 일어난다. 당신들 대부분이 그러한 것을 이루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리는 이유는 무엇인가? 의심과 불안으로 가득 차 있기 때문이다. 그러한 의심과 불안을 완전히 없앨 수 있다면 당신이 원하는 것들을 순식간에 이룰 수 있다. 당신이 그것을 구현하는데 그 정도밖에 걸리지 않는다. 

 

- 많은 부분이 아직도 여기(낮은 차원들)에 머물러 있다. 무에서 유를 창조할 수 있는 사람들이 있겠지만, 그들에게 자신을 치유하라고 하면 어떤 일이 일어나겠는가? 당신들은 무에서 유를 창조할 수 있는 그런 사람들에게 감동하여 그들을 만나길 원할 것이다. 하지만 내가 그들에게, "저 사람을 치유하라.”라고 말한다면 어떻게 될까? 갑자기 그들의 수용 능력은 이 차원(4차원)에서 이 차원(1차원)으로 떨어질 것이다. 왜 그럴까? 그들은 어떤 것은 받아들이지만 다른 어떤 것은 받아들이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그들 자신이 받아들일 수 있는 것들은 순식간에 구현할 수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것들은 금방 구현하지 못한다. 그렇다면 당신은 어떠한가? 당신도 마찬가지이다. 나는 오늘 당신에게 모든 지식을 전달할 것이다. 그러면 당신은 이 세상 사람들의 99.9%보다 두뇌에 대해 훨씬 더 많은 것을 알게 될 것이다. 그리고 어느 누구도 알지 못하는 7개의 몸에 대해서도 알게 될 것이다. 그런 다음에 당신은 훈련하는 것을 배우고 이곳을 떠날 것이다. 그 후 당신은 원하는 것 세 가지와 바꾸고 싶은 것 세 가지를 이룰 것이다. 

- 만약 당신이 자신을 절대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상태로 끌어올린다면 원하는 것들을 순식간에 이룰 수 있을 것이다. 여기를 떠나는 날부터 모든 것들이 무너지고 엉망진창이 되기 시작할 것이다. 왜냐하면 당신의 현재를 묶어주고 유지하는 끈끈이는, 에너지와 당신의 집중력이기 때문이다. 당신이 어떤 것에 대한 초점을 바꾸는 순간, 그것으로부터 집중력이 떨어져, 모든 에너지가 흩어진다. 당신의 대인 관계가 변하기 시작할 것이며, 회사에서 해고당하고, 키우던 고양이가 당신의 다리를 물 것이고, 새는 날아가 버리고, 개는 광견병에 걸릴 것이다. 모든 것들이 와해될 것이다. 아는가? 

 

- 망가지는 것을 보는 순간이 바로 그것에 대한 태도를 바꾸었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당신이 그것에 대한 태도를 바꾸는 순간, 그것은 떨어져 나간다. 모든 것들이 허물어질 것이다. 만약 당신이 여기에서 같은 태도를 고집한다면, 이전과 같은 에너지를 다시 형성할 것이다. 그것이 당신을 병들게 한 바로 그 에너지이다. 만약 당신이 무분별한 삶을 믿고 산다면 그것이 당신의 건강을 해치는 것이라는 경고를 듣는다 해도, 당신은 항상 그러한 상태로 있을 것이다. 반면 파괴를 일으켰던 에너지 -그것은 같은 에너지이지 새로운 에너지가 아니다- 에 대해 초점을 바꾸는 그 순간 그 에너지는 더 이상 파괴를 하지 않게 될 것이다. 마음이 바뀌면, 그 에너지는 흩어지고 찬란한 건강의 에너지로 다시 모이게 된다. 몇 명이나 내 말을 알아들었는가? So be it. 

 

- 자, 덧붙여 말하자면, 나는 러너들을 좋아한다. 많은 사람들이 원하는 만큼 자주 러너를 보내지는 않지만, 당신이 여기에서 배운 내용을 모두 가르칠 수 있는 러너들을 보낼 것이다. 언제나 그들을 축복하라. 누군가가 당신에게 호통 칠 때 문득 그들이 하는 말들이 사실이라는 것을 깨달으면 웃으며 그들을 안아주어라. 그들이야말로 러너이다. 그들을 때리거나 밀치지 마라. "당신의 말이 맞아. 일깨워줘서 고마워!" 그렇게 말한다면 당신의 적은 어떻게 반응할까? 적을 안아 준다면 그들은 더 이상 당신에게 적개심을 갖지 않을 것이다. 그들의 무례함에 감사해한다면 더 이상 적이 있을까? 내 말을 알아들었는가? So be it. 

 

- 오라 장(場)이라는 말을 들어본 사람이 있는가? 손들어보라. 오라 장, 오라를 찢을 수 있다고 믿는 사람들은 손을 들어보라. 그렇게 믿는 사람들이 있는가? 어떻게 에너지를 찢을 수 있을까? 어떻게 생각을 찢을 수 있을까? 오라는 에너지 밴드를 일컫는 형이상학적 용어로써 그것은 본질적으로 두 겹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모든 인간의 주위를 감싸고 있다. 이것이 에너지 밴드의 모습이다. '이것'이 당신이라고 가정하면, 당신은 육체를 둘러싸고 있는 에너지, 즉 두 개의 밴드를 가지고 있다. 다시 말해서 이것은 단순히 회색 오라, 푸른색 오라, 무지개색 오라가 아니라는 말이다. 이것은 에너지에 대한 아주 구체적인 설명이다. 왜냐하면 오라는 실제로 여러 가지 다른 차원 의식과 그에 따른 주파수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자, 팔을 옆으로 벌려보라. 양팔을 옆으로 벌린다. 바로 그것이 당신 육체를 둘러싸고 있는 장의 넓이이다. 다시 양팔을 벌리고 당신의 장 안에 누가 들어와 있는지를 보라, 이것을 집단 사회의식이라고 할 수 있을까? 우리는 정말로 그렇게 말할 수 있다. 주위를 둘러보라. 이제 옆을 보라. 양옆을 보면서 당신의 장에 누가 들어와 있는지 보라. 

 

- 당신의 손끝까지 뻗어 있는 이 장(場)은, 사실 두 개의 밴드로 구성되어 있다. 첫 번째 밴드는 여기 (팔꿈치)에서 끝나고, 두 번째는 여기(손가락 끝)에서 끝난다. 이 장은 모두 당신 주위를 둘러싸면서 움직인다. 오라 장은 손가락 끝, 혹은 손끝 가까운 곳에 있는 장 외에는 육안으로 볼 수 없다. 검은 천이 달린 벽에 두 사람을 세운 후 작은 등 하나만 키고 반대편 끝에서 그들을 바라본다면, 낮은 진동수로 육체를 둘러싸고 있는 첫 번째 밴드를 볼 수 있을 것이다. 실제로 그것을 볼 수 있을 것이다. 불빛 때문에 보이는 것이 아니다. 단지 그것이 두뇌에 보이기 때문에 보이는 것이다. 이해하는가? 

 

- 어제 배웠던 일곱 가지 차원에 대해 기억하는가? 당신들 중 몇 명이나 기억하는가? 처음에는 보이드가 숙고하는 모습을 손으로 따라 했으며, 그다음에는 그것을 그림으로 그렸던 것을 기억하는가? 만약 당신이 우리가 시작했을 때를 기억한다면, 두 점 사이에 존재하는 에너지에 대한 이야기가 생각날 것이다. 몇 명이나 기억하는가? 우리는 그것을 시간이라고 말했다. 우리가 에너지를 다음 차원으로 끌어내려 느리게 한다면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기억하는가? 어떤 일이 일어나는가? 우리가 에너지를 이 시간의 장(6차원)으로 끌어내리면 그 에너지에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옆 사람에게 말해보라.  

- 잠시 생각해보라. 누군가가 장미에게 장미가 되라고 말했고, 누군가가 장미에게 어떤 향기를 가지라고 말했으며, 또 다른 누군가는 머릿속에서 장미를 붉은 벨벳으로 묘사하였다. 누군가가 그 일을 했던 것이다. 장미는 저절로 피어난 것이 아니다. 그것은 장미가 되도록 창조되었던 것이다. 이뿐만 아니라 나무와 새, 물 그리고 모든 자연이 그러한 방법으로 창조되었다. 누군가가 그것들의 진화에 대해 집중했었다. 그자들이 누구일까? 바로 당신이다. 당신이 그것을 기대했던 것이다. 이 말을 이해하는 사람들은 손들어보라. 

- 예수아 벤 조셉은 6차원까지 도달한 마스터였다. 그는 단지 마스터였을 뿐, 그리스도가 된 적은 없었다. 그리고 그의 역할은 어려운 일이지만, 그의 마음으로 현실과 맞서는 것이었다. 당신의 생각이 당신 주위에 있는 모든 생명에게 영향을 미친다고 말한다면, 그리고 잠시 멈추고 그것에 대해 숙고한다면, 당신의 생각으로 인하여 삶이 어떻게 고정되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도시로 가기 위해 차를 몰면서 도시가 나올 것이라는 예상을 하면, 곧 도시가 나타난다. 거지를 볼 것이라고 예상하면, 거지는 반드시 그곳에 있을 것이다. 가는 도중에 고장 난 차가 도로에 있을 것이라고 예상하면, 당신은 반드시 고장 난 차를 보게 될 것이다. 그것이 사실이고 당신에게 그러한 힘이 있다는 것을 안다면, 매일 마음으로 물질적 현실을 거부하고 그것을 덮어 씌워야만 했던 존재나, 존재들에게 입문이 어떠했을지를 상상해보라. 그들의 마음은 아주 강력하여 그곳에 없던 것을 만들 수 있었다.

 

- 양자역학 -양자란 역학적인 활동을 하는 에너지의 작은 다발을 의미한다- 은 숭고한 과학이며, 이 학문은 과학계에서 지지를 받아 점차 입지를 넓혀가고 있다. 아이작 뉴턴의 현실장(場)과 양자역학의 다른 점은, -양자역학에서는 과학자들이 경험했듯이 입자가 어떻게 될 것이라고 생각하면 그렇게 된다- 항상 그러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과학자들은 입자의 행동이 절대적으로 관찰자에게 달렸음을 이해하기 시작하였다. 

 

- 그래서 그가 여기(6차원)에 이를 때까지는 죽을 수 없었던 것이다. 그것이 최후의 시험이었다. 그는 마지막 입문으로써 죽는 것에 동의해야 했던 것이다. 진정한 최후의 시험이 아닌가? 당신이라면 죽음과 어떻게 맞서겠는가? 우선, 당신은 죽어야만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것은 시험이 아니다. 그렇지 않은가? 그 시험이 얼마나 두려웠을까 상상해보라. 당신들 중 어느 누구도 그러한 일을 할 수 없을 것이다. 신을 이 세상에 완전히 구현시킨 모습이 어떠한 것인가를 상상해보라. 그는 어떻게 그런 일을 할 수 있었을까? 그의 마지막 시험은 모든 사람들 앞에서 죽는 것이었다. 그의 마음은 그렇게 강력했으며, 그는 그런 마음을 '내 안의 하느님 아버지' -그의 내면에 존재하는 하느님 아버지는 바로 여기(제로 포인트)에 있는 존재이며 우리 모두의 안에 존재한다- 라 불렀다. 그의 마음은 아주 강력하여 그의 육체가 죽어 부패하는 것도 허용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는 적당한 때가 되면 육체와의 관계성을 회복하여 육체를 복구하려 했다. 그것이 가능할 수 있을까? 학생들이여, 그것이 정말 가능할까? 과학자들이 우리가 입자에 영향을 준다고 말한 것에 따른다면, 그것이 정말 가능할까? 물론이다. 

 

- 여기에서의 허점이 어디에 있을까? 그것은 우리가 삶에 대한 두려움으로 한 번도 제대로 살아가고 있지 않다는 데 있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우리는 한 번도 제대로 살고 있지 않다. 여기 이 자리에 있는 사람들 중에 "내 시체를 눕혀라. 그러면 나는 부활할 것이다."라고 말할 수 있는 그러한 현실을 어느 누구도 만들지 못했기 때문에, 그런 능력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여기에 없다. 어느 누구도 그런 경지까지 진보하지 못하였다. 아직 그렇게 살아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그 당시 예수아 벤 조셉이 가지고 있던 육체는 어떤 모습이었을까?

 

- 그의 육체는 어떻게 그렇게 빨리 진동할 수 있었을까? 그의 의식이 7차원에 있었기 때문이었다. 신은 이제 인간이 되었다. 그는 자신의 육체를 끌어올려 그것의 물질을 재구성하였지만, 신의 영역에서 재구성하였기 때문에 그렇게 빨리 진동했던 것이다. 그가 떠났을 때 그는 어디로 갔을까? 그는 단지 계속하여 진동수를 높여나갔다. 즉, 그는 원자 주위를 돌리기 시작하여 결국에는 그것이 원자핵까지 영향을 미쳐 원자핵이 돌기 시작하였다. 그렇게 계속 돌리면서 모든 입자들이 자유로운 공간 속으로 들어가게 하였다. 그는 7개의 육체를 펼치고 있었던 것이다. 그가 사라졌을 때, 그는 빛에서부터 모습을 감추었다. 

 

- 그때서야 그는 비로소 일어선 자, 그리스도라고 불리게 되었다. 그것이 그의 마지막 시험이었다. 그것은 그의 의식이 신과 절대적으로 하나가 되었으며 죽음조차도 그의 마음을 이길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후 예수아 벤 조셉에 대한 수많은 신화와 전설 그리고 종교가 탄생하였다. 그러나 지금까지 당신에게 알려지지 않았던 예수아 벤 조셉의 진정한 가르침은 예수가 당신의 삶을 구원하는 것이 아니라 그는 단지 인간 내면에 존재하는 신의 힘을 증명해 보인 마스터였다는 것이다. 어느 누구든 그것을 볼 수 있는 눈을 가졌다면, 이 말을 이해할 것이다. 어느 누구든 그 메시지를 들을 수 있는 귀를 가졌다면, 그가 인간의 영이 영원으로 변화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는 것을 충분히 이해할 것이다. 또한 그것은 오직 그만 보여준 것이 아니다. 그것은 유구한 세월을 통해 모든 문화에서 드러났고 입증되었지만, 사람들은 금세 잊어버렸다. 

- 모든 사람들이 이것과 똑같은 트라이어드를 가지고 있으며 당신의 육체를 둘러싸고 있는 힘은 육체 주위만을 둘러싸고 있는 것이 아니라 육체 안에도 있다. 인간의 육체는 두뇌와 일곱 개의 센터를 가지고 있는데 -이것들은 차크라가 아니다- 씰(seal)이라고 부른다. 차크라는 두 개의 에너지 선이 교차하면서 만나는 곳이며, 그곳이 하나의 차크라 포인트이다. 이 일곱 개의 센터는 일곱 개의 씰이라 부른다. 모든 사람들이 일곱 개의 씰을 가지고 있으며 여기에 있는 그림인 피라미드의 모습과 동일하다. 얼마나 간단한가? 이것의 중요한 점은 당신의 에너지가 어느 씰에 있는가이다. 여기 있는 사람들 중에, 여기(1 번째 씰) 성욕만이 중요한 사람들은 몇 명이나 되는가? 당신의 고통과 괴로움은 바로 여기(2번째 씰)에 해당된다. 당신은 고통받으려 하고 다른 사람들에게 고통을 준다. 여기 (3 번째 씰)에 해당되는 당신은 호전적인 사람이다. 당신은 강력한 사람이다. 당신은 강압적으로 다른 사람을 지배한다. 당신은 강압적으로 다른 사람을 지배하거나 다른 사람에게 지배당한다. 이러한 태도들은 바로 여기(처음 세 개의 씰)에 해당된다. 그것들을 씰이라고 한다. 
 
- 스스로 갈라져 척추 주위를 돌면서 춤을 춘다. 이것은 아주 강력한 에너지로서 이 통로를 향해 갈 땐, 척수액을 이용해 척추의 위아래로 움직이며 실제로 척수액을 이온화시키고 분자구조를 변형시킨다. 그래서 이 뱀이 척추에서 춤을 추며 올라가면, 몸 전체의 기본적인 DNA 패턴을 바꾼다. 더 나아가 그 뱀 에너지가 여기(소뇌)까지 도달하면 그 여정이 끝났음을 의미한다.  

- 파충류의 뇌는 망상체(뇌간(腦幹)부 신경 세포의 조직)가 있는 뇌간의 윗부분을 감싸고 있다. 이것에 대한 그림을 나누어 줬으니 꺼내서 보아라. 그것은 마치 거미줄 망처럼 생겼다. 자, 내 말을 잘 듣도록 한다. 잠재의식은 중뇌에 있는 것이 아니라 파충류 뇌인, 여기 소뇌 하부에 있다. 그림에서 보다시피, 이 망상체는 실질적으로 어떤 정보들이 신피질로 흐를 수 있게 하는 스위치들의 본선이다. 이것은 컴퓨터이다. 이 컴퓨터로 프로그램된 것은 무엇이든 이곳으로 흘러 현실이 되며, 이것은 특히 인체에 큰 영향을 준다. 뱀 에너지 혹은 용 에너지인 쿤달리니 에너지가 척추로 올라가면서, 양극화된 에너지에 의해 척수액 전체가 이온화되어 척추 위아래로 흐른다. 그것이 망상체에 닿으면 모든 스위치들이 켜진다. 그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잠재의식의 모든 문들이 활짝 열린다는 것이다. 그 에너지는 용맹한 정복자처럼 더욱더 힘차게 행진하면서 자신을 가로막는 모든 것들을 쳐부수고 불에 태워버리는데, 이것이 바로 쿤달리니의 행진이다. 이것이 중뇌 부위로 오면 시상과 맞닥뜨리게 되는데, 고대인들은 이를 수문장이라고 하였다. 신화나 구전에선 모든 사람들이 수문장을 성 베드로라고 했지만 그렇지 않다. 그것은 성 탈라무스(Thalamus, 시상 視床: 간뇌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회백질부로, 많은 신경핵군으로 이루어져 있다)이다. 쿤달리니 에너지가 이 문을 열어 활성화시킨다. 그리고 시상은 중뇌에서 송과선을 보호하는 아주 중요한 일을 하는데 나중에 이것에 대해서 좀 더 자세히 배울 것이다. 시상은 신경 종말과 망상체에서 나오는 모든 섬유질이 만나는 집합소와 같은 장소이며, 그것은 전환점이다. 쿤달리니가 이 에너지를 연다고 하는 실질적인 의미는 잠재의식으로 숨겨져 있던 모든 것들이 두뇌의 특정한 지점인, 바로 여기 전두엽으로 자유롭게 흘러간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왜 이것이 놀라운 일인가? 쿤달리니 에너지가 스위치를 켜 문이 열리면, 고대의 지식을 표면으로 떠오르게 하여 실질적으로 당신의 의식적인 마음이 잠재의식과 완전히 만나도록 하기 때문이다. 

- 쿤달리니에 대해서 몇 명이나 이론적으로 이해했는가? 쿤달리니는 두 개의 의식이 오직 '지금 이 순간'에 있을 때만 존재한다. 오직 그때만 그 에너지가 존재한다. 몇 명이나 이 그림을 알아보겠는가? 이 무엇인가? 카두시어스이다. 이것은 무엇을 상징하는가? 건강이다. 이것이 어떻게 보이는가? 음, 지팡이는 척추처럼 보인다. 지팡이 위에 있는 구는 두뇌를 나타낸다. 두 마리의 뱀이 서로 휘감아 오르며 구를 향해 가는 것이 쿤달리니 같지 않은가? 그런데 왜 구에 날개가 달렸을까? 날개는 무엇을 상징할까? 자유다. 비록 사람들이 카두시어스가 지닌 실질적인 의미를 잊어버렸지만, 절대적 건강과 행복을 나타내는 카두시어스가 의학을 상징하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왜냐하면 이 고대 상징이 우리에게 말하는 것은 우리가 눈부신 건강에 집중하면서 지금 이 순간에 존재한다면, 그리고 그 순간을 유지할 수 있다면, 치유된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 자기장을 이온화한다면, 그것이야말로 우리가 치유되는 유일한 방법이다. 그것은 우리 몸을 구성하고 있는 모든 원자핵의 회전을 바꾸고 DNA를 재조정하는 것이다. 마음으로 자신의 병을 치료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있는가? 그것은 그들이 자신들의 병을 어떻게 치유했는지를 말해준다. 

 

 

 


 

- 오, 나의 사랑하는 영이여, 나의 강력한 영이여, 전능한 존재여, 하늘과 땅의 힘으로 충만한 존재여.

나를 당신의 힘으로 가득 채우소서. 

오, 나의 영이여, 나를 그대의 현현된 왕국으로 가득 채우소서.

그리하여 내가 하늘의 보이지 않는 것들을 가져와 지상의 보이는 것들을 정복하는 함선이 되게 하소서.

내게 일용할 양식을 현현케 하고

나의 죄, 나의 의심, 나의 슬픔을 알고 살아가게 하여 진리를 깨닫도록 하소서.

오, 나의 강력한 영이여, 나를 현혹되도록 하지 마소서.

나를 설복하려는 것들로부터 나를 보호하소서. 

그리고 나를 통하여 신성한 신을 현현하소서. 

나는 그렇게 말합니다. 

So be it. 인생을 위하여. 

 


- 오, 나의 사랑하는 신이여, 나의 내면 어딘가에 계시는 그분이시여.
오늘 나에게 와 내 마음을 열고 내 생명을 열어, 내가 배운 것들을 체험할 수 있게 하소서.

오, 나의 사랑하는 신이여, 오늘 나의 존재와 나의 배움을 축복하소서.
So be it. 
생을 위하여.

 

- 나의 사랑하는 신이시여, 나는 당신을 부릅니다.

오늘 내가 배우는 것, 그것을 경험하기를 기대합니다.

신이 나의 삶을 축복합니다.

So be it. 인생을 위하여. 

 

- 오 나의 사랑하는 신이여, 나를 창조하시고 나에게 생명을 부여하신 분이시여.

삶을 향한 내 안의 열정을 깨우소서. 내 힘을 되돌려주소서.

그리하여 깨달음을 향한 여정, 그 길이 구현될 수 있도록.

So be it. 인생을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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