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자가 흐르는 이야기/Book1

[김초엽]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일루젼 2022. 6. 19. 04: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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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김초엽
출판 : 허블 
출간 : 2019.06.24 


       

때때로 지나치게 '주류'로 보이면 비껴가고 싶은 삐딱함이 고개를 든다. 이미 맛집을 검색하고 구매 후기를 확인하는 시점에서 '주류'를 벗어나지 못한 사람임을 인정해야 하는데, 알면서도 고집을 부리고 싶어지는 때가 있다.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을 읽기까지 걸린 시간을 생각하면, 나는 정말로 길게 고집을 부려왔다. 읽으면 좋아할 것을 알고 있었으면서도. 

 

이 책은 김초엽 작가가 지금껏 발표했던 단편들에 <나의 우주 영웅에 관하여>라는 미발표작을 포함해 엮은 책이다. 상대적으로 초창기에 쓰인 글들이 많아서인지 문체와 느낌이 최근 작품들과는 조금 다르게 느껴진다. 김보영 작가 때와는 다른 느낌으로, 김초엽 작가의 초기 문체들이 좋아졌다. 어딘지 모르게 조금 더 다정하고, 소설 속에서 다루는 갈등들조차도 한 조각의 따스함이 섞여있도록 느껴지게 만드는 부드러움. 

 

단편의 매력은 생략에 있다고 본다. 구구절절하게 풀어내지 않는 설정과 과감하게 생략된 전후 사정들은 암시적으로만 드러난다. 누군가는 몇 문장으로 글 전체를 뒤집는 반전을 만들어내기도 하고, 누군가는 끝내 설명되지 않는 여운으로 부드럽게 마무리짓기도 한다. <우빛속>은 모든 것을 선명하게 드러내기보다는 반쯤 가려진 실루엣으로 각자의 결말을 상상할 여지를 남겨두었다. 따라서 내가 느낀 바들은 어쩌면 작가가 의도한 바와는 거리가 있을지도 모르겠다. 여전히 스테디셀러이지만, 발표된 지 이미 3년 여의 시간이 흐른 작품이므로 조금은 편하게 리뷰를 써보려 한다. 혹시라도 스포일러를 피하고 싶으신 분들은 '더보기'를 피해 가시길 권한다. 

 

 


 

각 단편에 대한 리뷰는 <더보기> 에 작성한다. 

즐겁게 읽었고, 열심히 썼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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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례자들은 왜 돌아오지 않는가>

 

나는 이 마을 전체가 릴리의 클론들이라고 생각한다. 유전자 조작을 통한 인간 배아 디자인에 능했던 릴리가 남성형을 만들지 못할 이유는 없었다. 릴리가 자신의 아이이자 클론으로 만들어낸 올리브를 위한 마을을 만들었다는 점, 데이지가 언급한 마을 사람들끼리는 연인이 되지 않는다는 점, 릴리가 영원한 동면에 들어간 뒤로도 인공자궁에서 계속해서 아이들이 태어나고 있다는 점 등을 고려할 때 이 마을은 의도된 유전자들의 풀이다. 

 

지구에도 유전자 디자인이 되지 않은 비개조인들이 존재한다. 태어나기 전부터 스크리닝을 통해 모든 '결함'을 수정한 채 태어나는 신인류와의 이분법적 계급화로 인해 차별과 고통을 받으며 소외되어 살아갈 뿐이다. 반면 마을의 아이들은 디자인되어 태어났음에도 자연선택에 가까운 '결함'들을 가질 수 있지만, 그것이 문제가 되지 않는다. 마을에는 그런 다름이 문제가 될 수 있다는 인식이 없기 - 적어도 아이들에게는 - 때문이다.

 

그들이 순례를 떠나는 것은 재세례파의 성인식과 유사하다. 특히 아미시들은 사회와 동떨어진 채 자신들끼리 조용하게 살고 있던 마을에서 폐쇄 집단으로 생활하지만, 성년이 되기 전 일정 기간 문명사회로 나와 생활한 후 마을로 복귀할 것인지 외부에 남을 것인지를 선택한다. 김초엽 작가가 본 권 안에서 이에 대해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나는 이 두 사회를 계속해서 겹쳐보게 되었다. 

 

순례자들은 마을을 떠나 자신의 특질들이 차별의 원인이 될 수 있음을, 그로 인해 입는 상처와 고통들을 배우게 될 것이다. 그러나 그와 동시에 '자신이 아닌' 다른 것들을 만나게 될 것이고 그것들을 사랑하게 될 것이다. 사랑과 증오, 모든 것은 다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그럼에도 고통을 줄이고 사랑을 남기고 싶었던, 그래서 '그녀의 사랑은 여기에 잠들고 결실은 후에 올 것이다'를 묘비에 남긴 올리브의 삶은 수많은 릴리들의 선택 중 하나이다. 릴리의 조금씩 다른 클론들은 계속해서 새로운 선택들을 할 것이고, 언젠가는 릴리나 올리브와는 또 다른 행복을 찾게 될지도 모른다. 그동안 계속해서 태어날 자신들이 지나치게 고통스럽지 않도록, 언제고 돌아갈 수 있는 천국 -마을- 을 안배해둔 것까지 포함해서, 릴리는 진정으로 '자신이 받아들여지는' 미래를 보고 싶었던 것이라 생각한다. 

 

순례자들이 '다름'으로 인해 차별받으면서도 마을로 돌아오지 않는 것.

그 안에는 '신인류'에 대한 사랑과 동경도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나는 그보다는 그런 구분을 없애고 자신의 자리를 당당하게 주장하기 위해서, 그런 다양성을 사랑하게 되어서일 거라 생각한다. 

 

 

<스펙트럼>

 

스펙트럼은 말 그대로 빛과 색상의 끊이지 않는 연결을 말하기도 하지만, 양극단의 분포 위치를 의미하기도 한다. 색의 차이를 언어로 사용하는 종족. 그들의 언어는 문자나 음성을 넘어선 일종의 스펙트럼이다. 또한 루이들은, 매 개체마다 조금씩 다르지만 이어지는 그들의 결정들이 연결되어 '루이'라는 스펙트럼을 이루게 된다. 나는 희진이 발견된 위치와 그녀의 삶 중에 드러난 부분과 드러나지 않은 부분 또한 일종의 스펙트럼이라고 생각하며 읽었다.

 

우리는 손쉽게 자타를 구분하며 살아간다. 나와 내가 아닌 것은 명확한 것이 아닌가 생각하며. 

하지만 대부분의 것들은 조금만 더 자세히 바라보면 수많은 것들이 연결된 조각들이기도 하다. 딱 잘라 여기까지는 A, 여기까지는 B라고 나눌 수 없는 많은 것들이 존재한다. 

그와 함께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내가 이어지며 나타날 내일의 나는, 그 스펙트럼의 가려진 부분들을 상상해본다.

 

 

<공생 가설>

 

개인적으로 무척 흥미롭게 읽었다. 유년기에만 존재하는 기억들에 관한 연구들이 있다. 대개 7-8세가 되면 소실된다는 공통점이 있는데, 그와 관련한 설정이 매우 신선했다. 또 등장인물인 류드밀라가 기억하는 행성의 모습과 미발표 작품들이- 어쩐지 정말 상상할 수 있을 것만 같은 아름다운 묘사라서 더 마음이 갔던 것 같다.

 

소설 속에 등장하는 '그들'의 존재는 확실하게 드러나지 않는다. 그들과 어떻게 접촉하게 되었는지, 어떤 식으로 이동하는지, 왜 7세라는 한계가 생기는 것인지 등등. 그렇게 물음표로 남는 부분이 많은데도, 막연한 그리움만은 뚜렷하게 와닿는다. 이미 너무나 희미해져서 이제는 잊어버렸다는 사실조차 잊은 무언가가 있는 듯한 그리움.   

 

이제는 사라진 것이 남긴 마지막 빛. 우리가 보고 있는 별들은 사실은 과거의 빛일 뿐이라는 사실을 새삼스럽게 깨닫게 되면서, 문득 모든 것은 빛의 형태로 영원히 존재하게 되는 걸까 하는 상상을 해보게 된다. 더는 '여기'에 존재하지 않을 뿐, 우주 어느 지점에서는 이미 흘러가 스러진 것들이 생생하게 재생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그런 상상을 떠올리자 약간의 부끄러움과 깊은 그리움이 남는다. 

 

그리고 류드밀라를 생각해본다. 한계를 넘어 끝까지 붙잡고 매달리고 싶었던 절박함, 언제고 그들을 잊을지도 모른다는 공포, 그 누구와도 진정으로 공유할 수는 없었던 자신만의 행성 -그것은 그녀에게는 실존하는 것이었다-. 자신만이 보는 세계란 존재하지만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그녀가 잃고 싶지 않았던 것은, 그 아름다운 세계가 아니라- 그 세계를 함께 바라봐줄 '그들'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녀는 흐릿하게 지워지는 경험을 해보지 못했다. 너무나도 선명한 실체가 완전히 사라지는 경험을 해보지 못한 그녀는, 그 자체의 상실보다 그것을 함께 감각해줄 존재의 상실, 그 이후의 절대적인 고독을 두려워했던 것일지도.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표제작이었다. 개인적으로는 완전히 다르게 읽었었기 때문에 조금 미묘한 감상이 남은 작품이기도 하다. 

나는 그녀가 셔틀을 출발시키는 부분을 읽을 때, 순간적으로 그녀가 자신의 것이 아닌 신형 셔틀에 탑승했다고 생각했고 그렇다면 그녀의 동결 장치는 특정 장치가 반드시 필요한 건 아닐까 등을 고민하며 읽다가 다음 문장에서 호되게 머리를 맞은 기분을 느꼈기 때문이다. 

 

나는 그녀의 선택을 이해할 수 있을 것도, 하지 못할 것도 같다. 

만약 수만 년이 걸리는 곳으로 생애 마지막 시간을 달리게 된다면, 당신은 잠든 채로 떠나고 싶은가? 아니면 깨어난 채로 버티고 싶은가? 

나는 소설 속에는 나오지 않은 그녀의 선택이 너무나도 궁금하다. 

 

그리고 이 문장이 오래 남았다. 

"우리는 점점 더 우주에 존재하는 외로움의 총합을 늘려갈 뿐인 게 아닌가." 

 

김초엽의 글들은 미래를 말하지만 현재를 비추고 있다. 무한 성장과 세계화의 슬로건 아래 점점 더 짙어지는 그림자를 생각한다. 첨단을 향해 달려가는 뒤에는 수많은 외로움들이 남는다. 모두가 함께 빛의 속도에 도달해 시간을 사라지게 만들 수 없다면, 우리는 남겨지는 것들 또한 기억해야 한다.   

 

 

<감정의 물성>

 

읽으면서 가장 현실적인 작품이라고 느꼈는데, 어쩐지 실제 사례가 있을 것만 같은 느낌이었다.

 

'감정을 실제로 감각할 수 있도록 물화시킨다.'

 

소설 속에서는 그런 효과가 있다는 오브제나 생활용품을 판매하지만, 만약 정말로 감정을 화학물질의 형태로 추출이 가능하다면 어떨 것 같은가? 그 물질을 흡수하면 나는 내 상황과 상태에 관계없이 그 감정을 느낄 수 있게 된다면? 그 경우 나는 내 선택에 따라 감정을 '제어'하고 있는 것인가, 감정에 '통제' 당하고 있는 것인가? 

 

이 단편에서 다루고 있는 관점은 크게 두 가지다. 첫째는 '감정을 물질화할 수 있는가'와 둘째는 '내가 감정을 통제할 수 있는가'다. 등장인물의 대사를 통해 표현되는 이 관점은 작가 후기에서 작가가 관심을 깊게 두고 있는 질문이라고 다시금 언급된다. 이 내용으로 더 긴 이야기를 쓸 계획이 있다는 말에 무척 설렌다. 

 

하지만, '나는 내 우울을 쓰다듬고 손 위에 두기를 원해'라는 대사에서 나는 또 다른 해석을 제안한다. 이것은 감정의 소유나 통제와는 다른 새로운 욕구이다. 나는 감정의 실체화에 대한 욕구는 자신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고 본다. 다시 말해, 자신이 감각하는 감정을 타인이 부정하는 것에 대한 '거부', 혹은 부정에 대한 '부정'으로서 자신의 감정을 실체화해 증명하고 싶은 것이다. 

 

내가 괴롭고 아프다는데 '그러면 안돼'라는 부정, '그렇게 느낄 만한 상황은 아니야'라는 부정, '그건 고통이 아니야'라는 부정들. 

그 앞에 나의 감정을 실체화해서 증명하고 싶은 마음- 나는 보현에게 그런 마음이 있지 않았을까 생각했다. 그것은 스스로의 우울을 통제하고 싶다거나, 물질화해서 나와 분리하고 싶다는 감각과는 다른 것이다. 그보다는 공기처럼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매 순간 자신을 휘감고 휩쓸어버리는 것을 '시각화'하고 싶은 욕구에 가깝다고 이해했다. 어쩌면 그것이 부정적인 감정들이 긍정적인 감정만큼이나 잘 판매되었던 이유일지도 모르겠다.  

 

"물론 모르겠지, 정하야. 너는 이 속에 살아본 적이 없으니까."  

 

 

<관내분실>

 

케이틀린 도티의 <좋은 시체가 되고 싶어>에서 칸칸이 유골함을 안치한 일본의 한 봉안당이 등장한다. 그 봉안당은 인식 카드를 대면 해당 유골함에 불빛이 들어오고, 전체 홀에는 계절에 따라 바뀌는 홀로그램이 배경으로 깔려 있어 정말 별들 속에 있는 기분이 들었다고 한다. 

 

"우리가 어둠 속에 서 있는 사이, 야지마 스님은 입구에서 키패드에 뭔가를 두드리고 있었다. 그러자 잠시 후, 바닥에서 천장까지 가득한 2000개의 불상이 빛을 발하며, 리듬에 맞춰 생생한 파란색으로 빛나기 시작했다. ... 화장하고 남은 각각의 유해는 벽에 있는 수정으로 된 불상 하나 하나에 해당했다. ... 이렇게 하면 벽면에 환하게 빛나는 백색으로 눈부신 불상 하나만 제외하고, 온통 청색 불이 들어온다. "

- <좋은 시체가 되고 싶어>, 케이틀린 도티

  

도서관을 봉안당과 연결한 설정에서 그 부분이 문득 떠올랐다. 인격을 업로드한다는 내용은 일종의 전뇌화라고도 할 수 있겠지만, 본문의 '마인드 업로딩'은 살아있는 뇌의 가소성을 구현하지 못해 추가적인 학습이나 변화가 불가능하므로, 대상이 된 인물의 특정 시점의 행동 패턴을 구현했을 뿐이라고 보아야 할 것 같다. 

 

본문 내에 설명된 내용에 따르면, 뇌 내에 이미 형성되어 있는 시냅스 패턴들을 그대로 옮겨 전산화하는 작업을 '마인드 업로딩'이라고 칭한다. 이 경우 뇌의 손상을 피할 수 없으므로 뇌 또는 전체 신체가 사망한 경우로 한정해 시행되고 있지만, 이렇게 업로드되어 구현된 인물을 체험한 사람들은 그 존재를 '살아있다'라고 느끼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개인적으로는 해당 인물이 '스스로 생각하는 자신의 모습'이 구현된 것이므로 기억 속의 모습과 외면적인 차이는 조금 있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 소설은 SF 소설이기만 한 것은 아니다. 틀림없이 존재했고, 지금도 존재하지만 모두가 잊고 있는 사람, 그래서 찾을 수 없는 사람에 대해 쓰고 싶었다는 작가의 표현이 아팠다. 아이들은 출생과 동시에 자신을 낳은 모체를 '엄마'라는 존재로 인식한다. 그의 시간 속에 그 존재가 '엄마'가 아니었던 순간은 없었으므로, 당연하게 희생과 사랑을 요구당하는 존재로. 그러나 그에게도 이름과 꿈이 있었다는 것을, 자신의 존재로 인해 너무나 많은 것들을 유보하거나 포기했어야 했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은 너무나 늦게 찾아온다. 

 

'다들 그러했다', '그게 당연한 거다'라는 말로 괴로움을 재생산하는 일에 대해 생각해봐야 할 때가 아닌가 싶다. 누구의 희생이 더 큰가, 혹은 어떤 보상이 필요한가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다. '문제'는 항상 성숙을 통해 태어난다고 생각한다. 다시 말해 이전까지는 문제라고 인식되지 않았던 것들을 더 깊게 살펴볼 수 있을 만한 사회적/문화적 토대가 생겼기 때문에 그것이 문제로 드러난다고 믿고 싶다. 과거에는 없었으므로 지금도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외면하지 말고, 수많은 다양함으로 함께 해답을 고민할 수 있는 사회가 되기를.

 

 

 

<나의 우주 영웅에 관하여> 

 

리뷰를 작성하다 보니, 읽는 동안에는 깊게 느끼지 못했던 작품의 배열 순서에 대해 생각해보게 된다. 이 단편은 어쩌면 <관내분실>에서 이어지는 이야기가 될 수도 있겠다. 

 

'-이기 때문에', '-이면서', '-이니까' 등의 수많은 이유들로 쏟아지는 기대와 증오.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앞에 붙는 이유들은 해당 인물의 존재와 크게 관련이 없는 이유들이다. 어떤 선택, 어떤 행동에도 원하는 대로 붙일 수 있는 프레임이란 사실 '이런 것이 어째서 존재하는가'를 더 깊게 고찰해봐야 한다.

 

'자신만의 선택'. 

무책임하다는 비난을 피할 수는 없겠지만, 그마저도 벗어던지고 떠날 가치를 발견했다면야. 

그 책임의 무게가 정당한 것이 아니었다면야. 

 

"재경 때문에 가윤은 심해로 간 최초의 사이보그가 될 기회를 잃었다. 이제 가윤은 재경의 전적을 뒤쫓는 대신, 터널 너머로 간 최초의 인간이 될 예정이었다." 

 

어떤 선택을 하건, 그 끝에서 웃을 수 있기를. 

  

        

 


   

- 우리는 그 길에서 선망과 아쉬움, 약간의 질시가 섞인 마음으로 손을 흔들며 작별을 고했고, 그렇게 긴 행렬이 이어진 끝에는 낡고 삐걱거리는 이동선이 문을 연 채로 기다리고 있었어. 이동선 말인데, 생각해보면 아무도 그 이상한 기계가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말해준 적이 없었어. 별 문제없을 거라는 어른들의 말만 믿는 수밖에. 물론 순례 의식에 참여하는 그 누구도 겁먹은 표정을 드러낸 적은 없지. 당연하게도, 어른이 되러 가는 길에 고작 낡은 기계에 겁을 먹는 건 부끄러운 일이니까. 

 

- 그 이후로 꼬박 1년이 지나면, 마치 한날한시에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순례자들은 같은 이동선을 타고 다시 돌아왔어. 그들은 귀환의 길을 걸어 영웅처럼 마을에 들어서고, 마침내 한 사람의 어른으로 인정받았지. 하지만 떠난 사람에 비해 돌아오는 사람의 수는 늘 적었어. 잘 알고 지내던 언니와 오빠들의 얼굴이 귀환 행렬에서 보이지 않는 경우는 아주 흔했고, 이상하게도 그들의 이름은 곧 우리의 마을에서 '망각'되었지. 

 

- 망각. 그것은 내가 순례 의식에 대해 가진 최초의 의문이기도 해. 만약 내게 일기를 쓰는 습관이 없었다면 나 역시 돌아오지 않은 사람들의 존재를 잊어버렸을 거야. 매년 순례 의식이 끝난 후 집에 돌아오면 나는 일기에 적어둔 그 질문을 손끝으로 더듬으며 흔적을 되새겼어. 그러면서 어쩌면, 소피 너도 한 번은 나와 비슷한 의문을 가져본 적이 있지 않을까 생각했어. 망각의 약이었을지도 모르는 그 한 모금의 음료가 우리에게서 지워버렸을 그 질문을.

'어떤 순례자들은 왜 돌아오지 않을까.'

이 편지는 그 질문에 대한 답이야. 동시에 왜 내가 시초지로 가고 있는지에 대한 답이기도 하지. 편지를 끝까지 읽고 나면 너도 나를 이해하게 될 거야. 

 

- "하지만 그건 시초지의 역사에 비하면 너무 짧고 비어 있잖아요."

"오스카. 어른이 되면 모든 사실을 알게 될 거야. 기다려야 한단다."

말하기 부끄럽지만 나는 오스카가 그런 질문을 하기 전까지는 우리의 역사에 관해 생각해본 적이 없었어. 어쩌면 일상의 균열을 맞닥뜨린 사람들만이 세계의 진실을 뒤쫓게 되는 걸까? 나에게는 분명한 균열이었던 그 울고 있던 남자와의 만남 이후로, 나는 한 가지 충격적인 생각에 사로잡혔어. 

우리는 행복하지만, 이 행복의 근원을 모른다는 것. 

 

- 소피, 혹시 뒤뜰에 대한 소문을 들은 적 있어? 학교 뒤뜰에는 금서들을 모아둔 도서관이 있어. 너도 가서 확인해볼 수 있을 거야. 그곳은 아주 평범한 정원처럼 보여. 키가 큰 꽃들이 잔뜩 심겨 있어 시야를 가려대는 통에 무언가 수상한 공간이 있다는 사실조차 눈치채기 힘들어. 어쨌든 그곳에 가서 아주 유심히 정원을 관찰하다 보면 이상하게 뻣뻣한 꽃들이 심겨 있는 직사각의 화단이 있을 거야. 한참이나 관찰하고 나서야 알게 된 건데, 거기 심긴 꽃들은 바람이 불어도 흔들리지 않아. 옆에 가서 꽃에 손을 뻗어보면 짜릿한 감각이 팔을 타고 흘러. 정말 놀랍지. 

 

- "나, 네가 찾는 '릴리'를 알아."

델피의 입에서 나온 예상하지 못한 말에 올리브는 당황했다.

"어떻게?"

"글쎄. 멍청한 서부 놈들은 모르겠지만 나는 교육을 제대로 받았거든. 대학을 나온 놈들이라면 그 사람을 모를 수가 없고. 하지만 네가 정말로 그 릴리 다우드나를 찾는 줄은 몰랐어. 우리는 보통 디엔이라고 부르니까."

올리브는 릴리의 성의 다우드나라는 것을 몰랐다. 하지만 이 순간은 직감으로 알 수 있었다. 델피가 말하는 '릴리'는 올리브가 찾고 있던 릴리다. 

 

- '델피의 올리브. 분리주의에 맞서는 삶을 살다. 그녀의 사랑은 여기에 잠들고 결실은 후에 올 것이다.'

올리브는 델피와 함께 지구에 남았어. 그리고 델피와 분리주의에 저항했지. 그녀의 어머니, 릴리가 지구에 남긴 흔적을 조금이라도 바꾸어보려고 애썼던 거야. 어쩌면 지구로 떠나기 전, 올리브가 마을에 남긴 마지막 흔적이 바로 이 순례의 관습인지도 몰라. 우리는 자라면서 바깥 세계에 관한 호기심을 느끼고 이 평화로운 마을 외부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를 알기를 갈망하게 돼. 그리고 마침내 순례의 길에 오르지. 올리브는 그렇게 우리가 반드시 한 번은 이 세계를 떠나도록 만들었어. 지구에서 그 모든 것을 보고 우리가 무엇을 외면해왔는지, 우리가 우리만의 아름다운 마을에서 살아가는 동안 저 행성에서는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를 보고 오라는 의미였겠지. 

 

- 그럼 이제 한 가지 질문만이 남었어. 정말로 지구가 그렇게 고통스러운 곳이라면, 우리가 그곳에서 배우게 되는 것이 오직 삶의 불행한 이면이라면, 왜 떠난 순례자들은 돌아오지 않을까? 그들은 왜 지구에 남을까? 이 아름다운 마을을 떠나, 보호와 평화를 벗어나, 그렇게 끔찍하고 외롭고 쓸쓸한 풍경을 보고도 왜 여기가 아닌 그 세계를 선택할까? 

 

- 소피, 우리가 왜 '서로' 사랑에 빠지지 않는지를 생각해본 적 있어? 시초지의 역사를 배우며 그렇게 많은 과거의 사람들이 사랑하는 것을 보면서도, 우리는 이 마을에서 자란 이들이 서로 연인이 되지 않는 것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았지. 같은 자궁에서 태어나 자매처럼 자란 우리가 서로에게 어떤 낭만적 감정도 성애도 느끼지 못하는 것이 단지 우연이기만 할까? 지구에는 우리와 완전히 다른, 충격적으로 다른 존재들이 수없이 많겠지. 이제 나는 상상할 수 있어. 지구로 내려간 우리는 그 다른 존재들을 만나고, 많은 이들은 누군가와 사랑에 빠질 거야. 그리고 우리는 곧 알게 되겠지. 바로 그 사랑하는 존재가 맞서는 세계를. 그 세계가 얼마나 많은 고통과 비탄으로 차 있는지를. 사랑하는 이들이 억압받는 진실을. 올리브는 사랑이 그 사람과 함께 세계에 맞서는 일이기도 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던 거야. 

 

- <순례자들은 왜 돌아오지 않는가>


 

- 이야기가 이쯤에 이르면, 할머니는 말을 멈추고 나를 서재로 데려갔다. 이미 몇 번을 들은 이야기였고 할머니가 늘 거기서 잠시 쉬어간다는 것을 알면서도 나는 매번 모른 척 할머니의 뒤를 따랐다. 할머니의 서재는 항상 무언가로 꽉 채워진 방이었다. 책상 위에는 염료와 물감, 연구서들이 두서없이 놓여 있었다. 서재 전체에서는 옅은 먼지 냄새가 났다. 서재의 커튼을 걷으면 오후의 햇살이 방 안으로 쏟아졌고, 책의 입자가 섞인 먼지들이 빛의 자취를 따라 늘어섰다. 장식장들을 가득 채운 유리들이 반짝였다. 할머니는 지구에 돌아온 이후로 평생 동안 유리를 수집했다. 할머니의 서재를 채우는 유리 수집품은 무척 다양했다. 유리로 만든 공예품에서 프리즘, 렌즈, 거울에 이르기까지. 할머니는 그 유리들로 책이나 그림을 들여다보기도 하고, 손전등을 그 위에 비추기도 했다. 유리를 모으는 이유를 할머니가 직접 말해준 적은 없다. 하지만 나는 그 이유를 짐작해보곤 했다. 빛을 모으고, 분리하고, 보통의 감각으로 볼 수 없는 대상을 보게 하는 도구. 할머니가 행성에 머물며 가장 절실히 원했던 것들은 아마 그런 도구들이었을 것이다. 

 

- 몇 번을 들어도 놀라웠던 것은 할머니가 묘사하는 무리인들의 가장 독특한 속성이었다. 무리인들은 죽음에 이른 다음에도 죽지 않는다고 스스로 믿는다. 무리인들의 믿음 안에서 자아는 결코 끊어지지 않는다. 몸을 바꾸어가며 끊임없이 전달될 뿐이다. 

"그들은 영혼이 이전 개체에서 다음 개체로 이어진다고 믿더구나.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두 번째 루이를 만났어."

 

- 잘 자.

처음으로 잘 자라는 인사를 하고 깔개 위에 몸을 뉘었을 때 희진은 문득 울고 싶었다. 고작 그 정도의 말을 건네는 것만으로도 누군가를 더 소중하게 여기게 된다는 사실을 예전에는 몰랐다. 

 

- 손으로 행성을 기록하는 일에는 늘 아쉬움이 뒤따랐다. 행성 식물들의 독특한 내부 구조, 반짝이는 광물질을 가진 작은 동물들, 바위에 붙어 자라는 버섯을 닮은 생물. 형태를 세심히 관찰하고 보이는 그대로를 옮겨보려고 해도 결과는 언제나 원본과 조금씩 달랐다. 루이가 그림을 그릴 때 쓰는 특이한 염료와 도구는 아무리 따라 써도 제 색깔이 나지 않았다. 그렇지만 희진은 이 행성을 눈으로 보고 손으로 남기는 일에, 지구의 도구들 없이 행성 자체를 감각으로만 받아들이는 일에 천천히 익숙해져 갔다. 오랜 시간 동안 희진은 볼 수도 들을 수도 없는 것, 관념적인 것, 감각의 바깥에 있는 것들을 다루어왔다. 원래 희진의 세계는 현미경 속에, 정량화된 데이터 속에, 그래프와 숫자 속에 있었다. 그러나 이 행성은 오직 희진을 둘러싼 풍경으로만 존재했고 희진은 그 사실을 수용해야 했다. 

 

- 알아낸 사실들 이면에는 여전히 답을 알 수 없는 질문들이 있었다. 희진은 이곳의 생명체들이 무엇으로 구성되었는지 궁금했다. 그들을 지배하는 센트럴 도그마는 무엇인지, 그들은 지구의 생명체들과 같은 단백질과 유전체를 공유하는지, 그들이 세계를 지각하는 방식은 어떤지 궁금했다. 희진은 무엇보다도 루이가 이따금 희진을 향해 입을 길게 찢으며 일그러진 표정을 지어 보일 때, 그것이 희진을 따라 미소 짓는 것인지가 궁금했다. 알 수 있다면 마주 웃어 줄 텐데. 

 

- 희진은 루이들이 다른 무리인들에 비해 수명이 짧은 이유가 희진 자신에게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만약 무리인과 지구 생명체들이 서로의 생화학적 구성을 공유한다면 희진이 가져온 수많은 지구에서의 미생물들은 그들의 신체에 치명적일 수도 있었다. 그리고 그 가정은 희진을 슬프게 했다.  

 

- 어떤 생각이 스쳐 갔다. 

만약 이 그림들이 무리인들이 사용하는 언어라면. 그들이 형태가 아닌 색상의 차이를 의미 단위로 받아들인다면.

루이들이 예술과 감정을 표현하고 있던 것이 아니라, 의미를 기록해오고 있었다면. 

 

- "그럼 루이, 네게는."

희진은 루이의 눈에 비친 노을의 붉은빛을 보았다.

"저 풍경이 말을 걸어오는 것처럼 보이겠네."

희진은 결코 루이가 보는 방식으로 그 풍경을 볼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희진은 루이가 보는 세계를 약간이나마 상상할 수 있었고, 기쁨을 느꼈다. 

 

- 희진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방식으로, 그들은 이전 개체가 남긴 기록을 읽고 습득하여 그들의 감정과 생각을 받아들인다. 이전의 루이들이 희진을 돌보고 아꼈기 때문에 새로운 루이도 희진을 돌보기로 결정한다. 그 과정에는 어떤 대단한 결단의 과정이 없다. 그들은 당연하다는 듯이 '루이'가 된다. 그들은 분절된 개체이다. 희진은 한 루이가 죽고 다른 루이가 다시 그 자리를 채울 때 연속적이지 않은 두 자아 사이의 어긋남을 목격했다. 영혼은 이어질 수 없다. 그 사실만은 분명하다. 그들은 다른 루이로 출발했다. 그러나 그들은 결국 같은 루이가 되기로 결정했다. 여기에는 어떤 초자연적인 힘도 작용하지 않는다. 루이들은 단지 그렇게 하기로 했다. 그들은 기록된 루이로서의 자의식과 루이로서의 모든 것을 받아들였다. 경험, 감정, 가치, 희진과의 관계까지도. 

그렇다면 희진도 그들을 같은 영혼으로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다. 

 

- 그런 생각에 도달했을 때, 희진은 루이가 가까이 걸어오는 것을 보았다. 눈앞에는 회색의 축축한 피부를 가진 여전히 낯선 존재가 서있다. 마음을 다해 사랑하기에는 너무 빨리 죽어버리는, 인간의 감각으로는 온전히 느낄 수도 이해할 수도 없는 완전한 타자. 

하지만 희진은 이해하고 싶었다.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믿고 싶었다. 루이의 연속성을, 분절되지 않은 루이의 존재를. 

 

- 하지만 우리가 그들을 다시 만날 때는, 우리는 더는 유약한 이방인이 아닐 것이다. 우리는 도구를 가져갈 것이다. 그들에 관한 정보를 눈으로 확인하기 전부터 이미 알고 있을 것이다. 그들의 말을 분석하고 그들의 문자를 분석할 것이다. 루이와 할머니의 관계는 재현될 수 없을 것이다. 나는 할머니를 이해할 수 있었다. 

 

- "그는 놀랍고 아름다운 생물이다."

 

- <스펙트럼>


 

- 류드밀라 마르코프에게는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장소에 관한 기억이 있었다. 그 기억이 언제부터 어떻게 류드밀라에게 자리 잡았는지는 불분명하다. 어린 시절 류드밀라가 자랐던 보육원의 교사는 자신의 회고록에서 이렇게 회상했다. 

"그 아이는 다섯 살부터 자신이 '그곳'에서 왔다고 주장했어요. 우리 교사들은 별로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았지요. 어린아이들이 그런 공상을 펼치는 것은 흔한 일이고 정상적인 발달 과정의 일부이니까요. 다만, 류드밀라는 그 믿음에 집착하는 성향이 있었어요. 교사들 중 누군가가 그 세계의 존재를 조금이라도 의심하는 태도를 보이면, 류드밀라는 아주 슬퍼하고 괴로워했어요. 그래서 암묵적인 규칙이 있었답니다. 류드밀라의 앞에서 결코 그걸 의심하는 티를 내지 않는 규칙이었죠. 그러면 아무 문제가 없었어요. 우리는 다들 그 몽상이 류드밀라가 어른이 되면서 자연스럽게 없어질 현상이라고 생각했거든요."

그러나 교사들의 예상과 달리 그곳에 관한 류드밀라의 기억은 성장한 이후에도 결코 사라지지 않았다. 

 

- 류드밀라의 재능은 어린 나이부터 두드려졌다. 보육원 교사들의 말에 의하면, 류드밀라는 색연필을 쥘 수 있는 나이부터 그 몽환적이고 아름다운 세계를 탁월하게 재현해냈다고 한다. 그러나 류드밀라의 생애 초기 작품들은 미술에 재능이 있는 소녀의 습작 정도로 여겨져 그녀가 보육원을 떠날 때 모두 폐기되었고, 지금은 어디에도 남아 있지 않다. 보육원은 색연필보다는 빵과 비스킷을 더 필요로 하는 곳이었다. 

 

- "어떻게 이런 세계를 상상해낸 거니?"

아카데미 교사들은 거듭 감탄했다. 류드밀라는 아직 기술적인 면에서는 서툴렀고 배울 점이 많았다. 하지만 그녀가 그리는 풍경은 언제나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캔버스 위로 손을 옮기는 그녀의 모습에는, 무엇을 그릴지에 대한 고민과 머뭇거림이 전혀 없었다. 그 세계에 관한 기억은 어린 시절부터 생애가 끝나는 순간까지 류드밀라를 지배한 강렬한 이미지였다. 어딘가에 존재할 것 같으면서도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 세계. 류드밀라는 평생 그곳의 풍경을 그렸다. 그 세계 자체가 류드밀라의 머릿속에 그대로 있는 것 같았다. 그녀의 모든 그림은 매번 다른 풍경을 묘사했지만 부분의 조합은 전체 세계를 생생하고 치밀하게 직조했다. 

 

- 류드밀라의 행성을 볼 때 사람들은 무언가 놓고 온 것, 아주 오래되고 아득한 것, 떠나온 것을 떠올렸다. 사람들은 자신이 무엇을 그리워하는지 모르면서도 눈물을 흘렸다. 평론가들은 류드밀라의 작품이 어디에도 없는 세계를 묘사해내기 때문에 역설적으로 모든 사람들의 마음에 존재하는 세계를 자극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 그 행성이 류드밀라의 행성일까? 

그렇다면 류드밀라는 대체 그 행성의 존재를 어떻게 알았던 것일까?

더욱 기이한 사실이 연이어 보고되었다. 그 행성은 이미 오래전 모항성의 거대 플레어 폭발에 의해 불탔고, 우주망원견이 수신한 데이터는 폭발에 휩쓸리기 직전 행성의 모습을 포착했다는 것이었다. 

 

- 뇌를 판독하려는 시도는 오랜 역사를 가진다. 사람들은 언제나 다른 사람의 생각을 읽고 싶어 했다. 새로운 뇌 연구 방법이 등장할 때마다 모두가 독심술의 발명을 기대했다. 덕분에 21세기 초에 뇌의 해석 연구소가 세워진 이후로 연구비가 끊길 일은 없었지만, 뉴런 활성화 패턴을 미세 수준까지 분석할 수 있는 이미징 기술이 등장하기 전까지의 판독 기술들은 원시적인 수준에 가까웠다. 예컨대 뇌 자기 공명 영상을 보고 피험자가 풍경 사진을 보았는지 음식 사진을 보았는지 알아맞힌다든가 하는 정도였다. 패러다임 변화는 2년 전 새로운 단분자 추적 기술이 등장하면서 일어났다. 뉴런 단위로 뇌 활동을 분석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연구팀은 새 기술을 활용하여 뇌에서 만들어내는 전기적 신호와 패턴을 분석했다. 아직 어떤 특정한 언어로 옮겨지지 않은, 사고언어라고 불리는 순수한 생각의 형태였다. 그리고 이제 연구는 사고언어를 역으로 표현에 맞추어 연결하는 작업에 접어들었다. 

 

- "결과가 너무 이상해요. 아기들이 할 만한 생각이 아니에요."

분석된 데이터가 화면에 뜨기 시작하자 연구원들은 말문이 막혔다. 기계에 따르면 아기들의 울음은 각각 이런 의미를 가졌다. 

 

'어떻게 하면 더 윤리성을 부여할 수 있을까?' 

'다들 거기에 잘 계신가요?'

'아냐, 우리가 살아가야 할 곳은 여기야.'

 

- "무언가가 아기들의 뇌 안에 있어요."

한나가 말했다. 

"인간이 아닌 무언가요. 이건 외부의 어떤 요인을 도입하지 않고는 설명이 안 돼요."

"노이즈일 거야."

 

- 결과는 예상한 대로였다. 아이들의 표면적인 의사 표현과 그들의 대화가 혼합되어 나타났다. 하지만 오직 일곱 살까지만 그랬다. 

 

- "보육 로봇은 인간 보육자를 완벽하게 재현하거든. 그런데 단지 보육자가 사람인지 아닌지에 따라 아이들의 성향이 그렇게까지 달라진다고? 난 항상 그 실험 결과가 의심스러웠어. 인간 보육자야말로 감정과 상황에 지나치게 영향을 받는 불완전한 보육자란 말야. 그런데 만약, 그렇게 된 결과에 다른 이유가 있다면...

만약 뇌 속의 '그들'이 인간에게 태생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외부에서 유입되는 것이라면 어떨까? 

 

- 아주 이상한 가정 하나를 해보자. 수만 년 전부터 인류와 공생해온 어떤 이질적인 존재들이 있다고 말이다. 미토콘드리아가 세포 내로 들어와 핵과 별도의 DNA를 가진 채로 수십억 년의 공생을 시작한 것처럼, 별개로 출발한 두 종이 서로의 이득을 위해 공생하는 일은 흔하다. 인간은 수많은 체내 미생물들과도 공생한다. 사람들은 외부에서 유래한 그들을 이질적 타자로 생각하지 않는다. 그들은 이미 인간의 일부이다. 

 

- <공생 가설>


 

- "하지만 요즘은 그런 생각을 한다네. 설령 알고 있었더라도 막상 그때로 돌아가면 내가 해왔던 모든 것을 포기하고 슬렌포니아로 갈 수 있었을까? 고민해봐도 쉽게 답을 내릴 수가 없네. 물론 해봐야 의미 없는 상상이긴 하지만."

 

- 물론 그런 중에도 누군가는 성간 항해 기술에 다른 가능성이 있을지 모른다고 이야기했다. 우주에 수많은 '벌레 구멍'이 있다는 이론이 그 일례였다. 우주는 거대한 사과와 같고, 벌레들이 파먹어놓은 구멍들처럼 우주의 곳곳에는 공간과 공간 사이를 연결하는 고차원의 웜홀들이 존재한다는 이야기였다. 그런 고차원 통로를 이용하면 시간 지연 없이 우주의 한쪽에서 다른 한쪽으로 도달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은, 처음에는 지나치게 허황된 것으로 여겨졌다. 

 

- "나는 내가 깨어 있는 만큼만 살아 있었다네."

 

- "예전에는 헤어진다는 것이 이런 의미가 아니었어. 적어도 그때는 같은 하늘 아래 있었지. 같은 행성 위에서, 같은 대기를 공유했단 말일세. 하지만 지금은 심지어 같은 우주조차 아니야. 내 사연을 아는 사람들은 내게 수십 년 동안 찾아와 위로의 말을 건넸다네. 그래도 당신들은 같은 우주 안에 있는 것이라고. 그 사실을 위안 삼으라고. 하지만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조차 없다면, 같은 우주라는 개념이 대체 무슨 의미가 있나? 우리가 아무리 우주를 개척하고 인류의 외연을 확장하더라도, 그곳에 매번, 그렇게 남겨지는 사람들이 생겨난다면..."

"이런 식으로, 시간을 끄셔도 소용은."

"우리는 점점 더 우주에 존재하는 외로움의 총합을 늘려갈 뿐인 게 아닌가."

 

-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 "감정의 물성?"

"그러니까 자기들 말로는 감정 자체를 조형화한 제품이래요. 종류도 꽤 많아요. 가장 기본적인 형태는 '공포체', '우울체' 하는 식으로 이름이 붙고, 파생되는 제품으로 비누나 향초, 손목에 붙이는 패치도 있고요. 지금 유진 씨가 구해 온 건 침착의 비누라는 건데, 진짜 비누처럼 써도 되지만 그냥 손으로 만지작거리는 것만으로도 효과가 있나 봐요. 10분 정도 사용하면 마음이 차분해진다고..."

"그게 무슨 바보 같은 소리야?"

나는 미간을 찌푸렸다. 어째 유사과학 상품 팔아먹는 사람들과 하는 소리가 딱 비슷했다. 뇌파를 이용한 집중력 강화니, 건강 팔찌니, 한 알 삼키는 것만으로 마음을 진정시키는 약이니 하는 물건들. 하지만 그런 것들은 대부분 말도 안 되는 사기이거나 정말로 처방전 받고 약국에서 팔려야 하는 걸로 결론이 나지 않았던가. 

"그런데 진짜 효과가 있다니까요."

 

- "대체 왜 어떤 사람들은 '우울'이나 '분노', '공포' 따위를 사려고 하는 거지?"

"저도 그쪽은 잘 모르겠네요." 

집중의 패치를 손등에 붙이고 있던 김유진이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나는 이모셔널 솔리드의 물건들이 효과가 있다는 말을 믿지 않았다. 마음 치유 효과를 가진다는 아로마 오일이나 향초처럼 어디까지나 쓰는 사람의 기분에 달린 물건이라고 생각했다. 그보다는 '왜 그런 물건을 굳이 사려는 사람들이 존재하는가' 쪽이 나의 주된 의문이었다. 어쨌거나 '행복', '침착함' 같은 감정이 주로 팔리고 있다면 대중들이 플라시보 효과에 의존하여 위안을 얻으려는 것이라고 이해해볼 수 있을 텐데, 부정적인 감정들조차도 잘 팔려나가고 있다는 것이 정말 이상했다. 대체 돈을 주고 우울해지려는 사람들은 누구인가? 돈이 너무 낳아서 행복감마저 주체할 수가 없는 것일까? 그렇게 삐딱한 생각을 하며 나는 감정의 물성이 유행하는 현상을 지켜보았다. 

 

- "부정적 감정 라인은 판매되는 물량에 비해 실 사용량이 적대요. 다들 쓰지 않아도 그냥 그 감정을 소유하고 싶어 하는 거예요. 언제든 손안에 있는, 통제할 수 있는 감정 같은 거죠. 이것도 옆 잡지사에서 쓴 리뷰 글에서 본 얘기지만요."

"글쎄, 이해하기 힘든데. 그 돌멩이를 가지고 있다는 게 정말로 그 감정을 소유하는 건 아니잖아?"

유진은 잠시 생각에 잠긴 듯 머리를 긁적였다. 그러더니 휴지통에 버린 제품을 흘끔 보았다. 그녀는 여전히 미간을 찌푸린 내 표정을 살피더니, 진지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선배는 이해할 수 없겠지만 제 생각은 이래요. 물성이라는 건 생각보다 쉽게 사람을 사로잡아요. 왜, 보면 콘서트에 다녀온 티켓을 오랫동안 보관해두는 사람들도 많잖아요. 사진도 굳이 인화해서 직접 걸어두고, 휴대폰 사진이 아무리 잘 나와도 누군가는 아직 폴라로이드를 찾아요. 전자책 시장이 성장한다고 해도 여전히 종이책이 더 많이 팔리고. 음악은 다들 스트리밍으로 듣지만 음반이나 LP도 꾸준히 사는 사람들이 있죠. 좋아하는 연예인들의 이미지를 향수로 만들어서 파는 그런 가게도 있고요. 근데 막상 사면 아까워서 한 번도 안 뿌려보는 사람들도 있다고 하더라고요."

내 얼굴에 떠오른 표정이 바보 같았는지 유진은 씩 웃더니 한마디를 덧붙였다. 

"그냥 실재하는 물건 자체가 중요한 거죠. 시선을 돌려도 사라지지 않고 계속 그 자리에 있는 거잖아요. 물성을 감각할 수 있다는 게 의외로 매력적인 셀링 포인트거든요.

 

- "소비가 항상 기쁨에 대한 가치를 지불하는 행위라는 생각은 이상합니다. 어떤 경우에 우리는 감정을 향유하는 가치를 지불하기도 해요. 이를테면, 한 편의 영화가 당신에게 늘 즐거움만을 주던가요? 공포, 외로움, 슬픔, 고독, 괴로움... 그런 것들을 위해서도 우리는 기꺼이 대가를 지불하죠. 그러니까 이건 어차피 우리가 늘 일상적으로 하는 일이 아닙니까?"

 

- 그렇다고 이런 방식으로 해결하려는 건 더더욱 이해할 수 없었다.

'우울체'가 그녀의 슬픔을 어떻게 해결해주는가?

"물론 모르겠지, 정하야. 너는 이 속에 살아본 적이 없으니까. 하지만 나는 내 우울을 쓰다듬고 손 위에 두기를 원해. 그게 찍어 맛볼 수 있고 단단히 만져지는 것이었으면 좋겠어."

테이블 위의 휴대폰이 울렸다. 보현은 말을 이어갔다. 

"어떤 문제들은 피할 수가 없어. 고체보다는 기체에 가깝지. 무정형의 공기 속에서 숨을 들이쉴 때마다 폐가 짓눌려. 나는 감정에 통제받는 존재일까? 아니면 지배하는 존재일까? 나는 허공 중에 존재하는 것 같기도 아닌 것 같기도 해. 그래, 네 말대로 이것들은 그냥 플라시보이거나, 집단 환각일 거야. 나도 알아."

보현은 우울체를 손으로 한 번 쥐었다가 탁자에 놓았다. 우울체는 단단하고 푸르며 묘한 향기가 나는, 부드러운 질감을 가진, 동그랗고 작은 물체였다. 

"하지만 고통의 입자들은 산산이 흩어져 내 폐 속으로 들어오겠지. 이 환각이 끝나면."

우울체 하나가 탁자 위를 굴러 바닥으로 툭 떨어졌다. 

"그게 더 나은 결론일까."

 

- <감정의 물성>


 

- 한때 도서관이라고 불렸던 장소 중 일부는 박물관이 되었고 그럴 가치가 없는 곳들은 대부분 전산화되었다. 지금의 도서관은 다른 개념이다. 이곳에 있는 건 책도 논문도, 그 비슷한 자료들도 아니다. 이제 도서관엔 끝없이 늘어섰던 책장 대신 층층이 쌓인 마인드 접속기가 자리하고 있다. 사람들은 추모를 위해 도서관을 찾아온다. 추모의 공간은 점점 죽음과 거리가 멀어 보이는 장소로 변해왔다. 도시 외곽의 거대한 면적을 차지했던 추모 공원에서, 캐비닛에 유골함을 수납한 봉안당으로, 그리고 다시 도서관으로. 

 

- 사후 마인드 업로딩이 보편화된 것은 수십 년 전의 일이다. 처음에 사람들은 영혼이 데이터로 이식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육체는 죽어도 정신은 영원히 살아남게 될 것이라는 기대도 있었다. 하지만 곧, 이식된 데이터는 고유의 자아와 의식을 가지지 않는다는 반론이 쏟아져 나왔다. 자아의 존재 여부를 확인하는 실험이 마인드들을 대상으로 수없이 행해졌다. 오랜 논란 끝에 학계에서는 마인드들이 단지 생전의 망자들을 그럴싸하게 재현해낼 뿐이라고 의견을 모았다. 외부 자극에 반응하는 것으로 보이지만 실제로는 단지 과거의 기억에 근거하여, 죽은 사람의 반응을 가상하여 보여줄 뿐이라는 의미다.

그래도 마인드를 살아 있는 사람처럼 대하는 이들은 많았다. 

 

- 무언가 잘못된 게 아닌가. 배 속에 태아가 있고 그 심장 소리를 듣기까지 했는데 애정이 생기지 않는다. 오히려 설명하기 힘든 감정들이 치민다. 최근에 지민은 다른 임산부들이 온라인에 쓴 글을 많이 읽었다. 다들 비슷한 글이었다. 기다리던 임신을 해서 너무 행복하고, 배 속의 아이를 이미 사랑하고 있다는 이야기였다. 

지민은 아니었다. 태아의 사진을 보고 심장 소리를 들으면 조금씩 설렘이나 기대감이 생겨날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그렇지 않았다. 어쩌면 지민 자신이 건강한 사랑을 받아본 적이 없기에 줄 준비도 되지 않은 게 아닐까. 복잡한 생각이 이어졌다. 

 

- 엄마는 지민을 출산한 이후에 심한 우울증을 겪었다. 많은 산모들이 출산 직후에 산후우울증을 경험한다고 한다. 육아를 하며 더 심각한 우울에 빠져들기도 한다. 대개는 일시적인 현상이다. 아이가 자라고 손이 덜 들어가면서 자연스럽게, 때로는 약물 처방과 상담을 통해 해결된다. 그러나 엄마는 이전으로 돌아가지 못했다. 아버지는 엄마를 방치했다. 원래부터 예민한 성격이었다며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엄마의 병은 점차 심각해졌다. 

 

- 엄마가 무너진 계기가 산후우울증이었다는 점에서 지민 자신에게는 일종의 원죄가 있는 게 아닐까 생각한 적도 있다. 자신을 낳지 않았다면 엄마는 자신의 삶을 멀쩡하게 살지 않았을까 하는 죄책감과 딸인 자신이 그런 대우를 받을 이유는 없었다는 생각이 지민 안에서 상충했다.

 

- 이미 지민도 들어서 알고 있는 대로, 마인드는 단순한 데이터의 묶음이 아니었다. 여러 문제들이 복합적으로 얽혀 마인드 업로딩을 사후에만 가능하도록 제한하지만, 그중 가장 결정적인 문제는 아직 뇌의 시냅스 패턴이 어떻게 자아를 구축하는지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다는 것이었다. 현재 마인드 업로딩은 뇌의 시냅스 패턴을 고해상도로 스캔하여 패턴을 그대로 시뮬레이션으로 구현하는 방식을 이용한다. 스캔 과정에서 원래의 뇌가 손상되므로 업로딩은 뇌사 상태나 사망 선고가 내려진 사람, 그리고 생존 가능성이 없다고 판정받은 환자만을 대상으로 시행되고 있었다. 

 

- 학자들은 시냅스 패턴 중에서도 특별히 생각과 기억, 외부에 대한 반응 같은 자아 구성의 흐름을 나타내는 것들을 통틀어 '사고 언어'라고 불렀다. 

 

- 자신과 유민을 낳기 전에는 어땠을까? 지민이 기억하는 한 언제나 엄마는 엄마였으므로, 그녀가 그냥 '김은하'였던 시절은 깊이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지민의 기억 속 엄마는 늘 집에 있었다. 별다른 취미 생활이 있는 것도 아니었기에 그녀가 남긴 물건은 최소한의 생활을 유지하는 데에 필요한 것 정도가 다였다.

 

- "스캐닝된 시냅스 패턴이 더 이상 가소적으로 변형되지 않는다는 관찰이 이어지면서, 마인드가 영혼이 아니라는 주장에 힘이 실리고 있죠. 한 사람의 자아는 끊임없이 변해갑니다. 성장하고, 배우고, 반응하고, 노화하면서 개인의 정체성을 구성하는 것이죠. 그렇다면 변형되지 않는 마인드는 영혼 그 자체가 아니라 죽은 시점에서 고정되어버린 일종의 박제된 정신에 가까운 것이 아닐까요?"

 

- "엄마가 책을 만드는 일을 했어요?"

"너를 낳기 전까지는 했었지."

인덱스가 있었다. 

생각지도 못한 곳에.

엄마의 과거를 깊이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직장에 다니고 어딘가에 소속되어 그녀의 이름이 쓰인 무언가를 만들었으리라는 생각도. 지민이 알던 엄마는 언제나 집 안에서 무기력한 얼굴을 한 모습이었으니까. 하지만 왜 몰랐을까. 당연한 일이었다. 은하에게도 지민을 낳기 전의 삶이 있었을 것이다. 아이라는 족쇄에 아직 걸리지 않았던 때. 그리고 어쩌면, 엄마의 진짜 삶을 가졌던 때가. 

 

- "지민아. 넌 마인드에 한 번도 접속해본 적이 없다고 그랬지."

현욱의 목소리가 잠겨 들었다.

"나는 봤어. 그건 너무 진짜 같았다."

지민은 마른침을 삼켰다. 

"죽어서까지 나를 만나는 게 고통일 거라고 생각했어. 단 한 번이었지. 더는 만날 수가 없었다."

 

- 지민과 엄마는 작은 서재에 있었다. 한 번도 실제로 본 적은 없는 가상의 공간이다. 책과 노트, 벽을 채운 그림들, 은하가 지민의 엄마이기 전에 사랑했던 것들, 자신의 삶을 구성했던 것들로 채워진 공간. 지민은 책상 한쪽에 놓여 있는 자신과 유민의 사진을 보았다. 공간 속에서 은하는 어느 때보다도 선명해 보였다. 그녀가 살아 있던 때에 지민은 이따금 엄마가 공기 중에서 사라져 버릴 것 같다고 생각했었다. 문득 떠올린 것은, 엄마와 함께 살던 집에는 엄마만의 방이 없었다는 사실이었다. 

 

- 어떤 사람들은 마인드가 정말로 살아 있는 정신이라고 말한다. 어떤 이들은, 이건 단지 재현된 프로그램일 뿐이라고 말한다. 어느 쪽이 진실일까? 그건 영원히 알 수 없을지도 모른다. 

그러면, 어느 쪽을 믿고 싶은 걸까?

 

- <관내분실>


 

- "엄마가 한번 술에 취해서 나에게 영상 메시지를 보냈던 적이 있거든. 그냥 힘들다고, 사람들이 자신에게 기대와 증오를 동시에 보내는 게 지긋지긋하다고 투덜거리는 얘기였는데, 평소에도 잔뜩 듣던 이야기니까 그냥 적당히 들어주면서 무시했지. 근데 그날 엄마가 이렇게 말했어. '나는 이 정도면 할 만큼 했는데. 그렇지?'라고."

"뭘 할 만큼 했다는 거야. 정작 중요한 일은 안 해놓고."

그렇게 말했지만 가윤은 사실 재경 이모가 정말로 많은 것을 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재경은 분명히 우주 영웅이었다. 재경은 세계를 돌아다녔고, 여러 번의 우주 미션을 성공적으로 수행했다. 재경은 수많은 소녀들의 삶을 바꾸었을지도 모른다. 최후에 다른 선택을 했다고 해서 재경이 바꾸었던 숱한 삶의 경로들이 되돌려지는 것은 아니다. 가윤이 바로 그 증거 중 하나였다. 가윤은 한때 재경을 보며 우주의 꿈을 꾸던 소녀였고, 이제 재경 다음에 온 사람이 되었다. 

 

- "그러고 보면, 한 번은 우주의 저편에 대해서 무슨 말을 했는지 알아? 이렇게 많은 돈을 써가면서 굳이 볼 필요가 있을까. 그냥 똑같은 우주일 것 같은데, 이랬다니까."

"그게 그 돈으로 사이보그 우주비행사가 된 사람이 할 말이야?"

"내 말이."

 

- 재경 때문에 가윤은 심해로 간 최초의 사이보그가 될 기회를 잃었다. 이제 가윤은 재경의 전적을 뒤쫓는 대신, 터널 너머로 간 최초의 인간이 될 예정이었다. 

 

- 챔버에 올라탔을 때 오퍼레이터가 브리핑을 시작했다. 모든 것은 시뮬레이션대로 진행될 것이며, 중요한 것은 짧은 의식 상실 이후에 깨어나려는 의지와 강력한 정신력이라고. 완전한 기계 몸을 가진 것이 아닌 이상 터널 진입 시의 무의식 상태를 아주 막을 수는 없었다. 미션의 성공 여부를 결정하는 수많은 조건과 상황이 있겠지만, 최초로 의식을 되찾는 것만은 비행사 스스로 해야 했다. 눈을 뜨는 순간에는 이미 다른 우주에 도달해 있을 것이다. 미션에 실패한다면 다시 눈을 뜰 수 없을 테니까. 

 

- <나의 우주 영웅에 관하여>

 


 

- 결국 마을의 탄생 비밀을 알게 된 데이지는 이렇게 묻는다. 마을이 유토피아라면, 순례자들은 왜 돌아오지 않는가? 이 물음은 장애를 비장애로, 디스토피아를 유토피아로, 불완전함을 완전함으로 간편하게 뒤집는 대신 오히려 그 이분법적인 항들의 관계를 사유하게 한다. 

 

- 어쩌면 폐기해야 할 것은 소수자들의 신체적 결함이나 질병 그 자체가 아니라 그것을 극복해야 할 것으로 규정하는 정상성 개념 그 자체일지도 모른다고 말이다. 

 

- 그렇다면 여성, 장애인, 이주민, 비혼모를 비롯한 약자와 소수자들이 더불어 사는 세상은 어떻게 꿈꿔 볼 수 있을까? 정상성이라는 개념이 다른 조건을 가진 존재들을 분리하여 위계적으로 구획하는 원리라면, 나와 다른 타자들을 우리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우리는 타자를 어떻게 이해하고 그들과 공존할 수 있을까? 

 

- <아름다운 존재들의 제자리를 찾아서 - 인아영 문학평론가>

 

 


 

- 언젠가 도서관 안에서 책이 분실되면 찾기 쉽지 않다는 이야기를 본 적이 있다. 그 메모에 '관내분실'이라는 제목을 달아둔 채 잊고 있었다. 

 

- 인간의 마음을 데이터로 저장할 수 있다는 발상은 SF에서 아주 흔히 쓰이는 소재이지만, 데이터의 분실을 실제 세계에서의 분실과도 연결 지어볼 수 있을 것 같았다. 분명히 세상 어딘가 존재하지만 찾을 수 없는 사람이 있다면 누구일까. 그런 생각을 따라가다 보니 지금과 같은 이야기로 완성되었다. 

 

- 우주 정거장에서 우주선을 기다리는 안나의 이야기는 '가짜 버스 정류장'에 대한 기사를 보고 떠올렸다. 독일에 있는 이 정류장은 아무리 기다려도 버스가 오지 않는데, 요양원 노인들이 시설을 나와 길을 잃는 것을 막기 위해 설치되었다고 한다. 해가 저물고 노인들을 데려가는 것은 버스가 아닌 시설 직원이다. 

 

- 나는 사람들이 물질에 기반을 둔 존재라는 것에 항상 흥미를 느꼈다. 화학을 전공했던 이유 중 상당 부분도 그 때문이었다. 감정의 물질성, 추상적인 것과 구체적인 것의 전환을 자주 생각하곤 한다. 사람들이 어떤 물질을 소유하고 그것으로부터 정서적 욕구를 충족한다면, 어쩌면 감정 그 자체를 소유하고 싶어 할 수도 있지 않을까? 그 질문에서 시작된 글이 <감정의 물성>이다. 나중에는 이 주제로 긴 글도 써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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