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자가 흐르는 이야기/Book1

[천선란] 나인

일루젼 2022. 6. 21. 1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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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천선란
출판 : 창비 
출간 : 2021.11.05 


       

고르는 책마다 무척 마음에 들어서 계속 소설만 골라 읽고 있는 중이다. 비문학 책들도 기다리고 있지만 아마 한동안은 소설 쪽을 계속 읽지 않을까 싶다. 

 

일상이 출렁이고 있다. 작년에 일을 줄인 이후로 시간적 여유를 즐기며 지내왔는데, 예기치 않은 제안이 들어와 다시 일이 늘어나게 될 것 같다. 신청해둔 미술 수업을 유지할 방법을 고심 중이다. 좋은 일인데, 조금 서운하기도 하고 마음이 복잡하다. 

 

<나인>은 주요 등장인물들이 청소년들이긴 하지만 청소년 문학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편견들, '사회란 그런 거다'라는 암묵적 동의 위에서 일어나는 크고 작은 불법들은 그것을 낯설게 보는 이를 소외시킨다. 배우는 것과 생활하는 것 사이의 괴리감, 그 사이에서 괴로워하는 청춘의 흔들림은 '사춘기'라는 호르몬적 불균형 상태로 치부된다. 

어쩌면, 그 괴리 사이에서 자신만의 답을 찾지 못한 것은 성인들도 마찬가지일지도 모른다. 

 

식물의 소리를 듣는 존재, '나인'.

그가 살아온 세계와 경험해 온 세계는 희귀하지만 이상적이다. 

 

'옳은 것'을 선택하는 일이 힘들다는 것은 무척 모순적인 상황이지만, 현실에서는 그리 드물지 않은 일이다. 힘들지 않은 경우가 극도로 드물다고 표현하는 것이 더 적절하겠다. 소설을 읽는 동안 그런 부딪침들을 묵묵히 흘려 넘기는 지모와, 아닌 것을 아니라고 느낄 수 있는 나인의 모습이 낯설게 느껴질 때마다 누브 행성을 생각했다.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는 말로 포장된 것들은 사실은 나에게 가장 편하고 유리한 선택은 아니었을까. 그것들을 지켜보고 기억하고 있는 수많은 존재들이 있다면- 그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면 조금은 달라졌을까. 

 

개인적으로는 결과는 달라질 수 있겠으나 도움은 되지 않을 것 같다고 생각한다. 누군가가 보았기 때문에 다른 선택을 한다는 것은, 결국은 아직 온전히 내 선택이 아니라는 의미이므로. 그렇다 하더라도, 그 달라진 결과가 무의미하다는 의미는 아니므로 보다 수많은 눈과 이야기들이 되어주었으면 하고도 생각한다. 익숙한 것들을 익숙하지 않게, 이상한 것들을 이상하게 볼 수 있는 눈들이 되었으면. 

 

작가의 표현처럼, 마치 외계인처럼.  

 


   

 

그러니까 나인은 기적이라는 뜻이야.

 

 

- 이 세계는 각국에 퍼져 있는 156종의 희소 식물을 판매하는 곳이다. 그중 절반에는 곤충의 등껍질 같은 희한한 무늬가 있고 나머지 절반은 흙이 필요 없는 에어 플랜트 식물이다. 그러니 널따란 잎사귀와 향기로운 꽃을 기대하고 화원에 들어온 사람들이 괴상한 모양으로 자라거나 천장에 주렁주렁 매달린 식물에 소스라치게 놀라 황급히 자리를 뜨는 일 정도는 비일비재하다. 이곳에서 파는 식물을 아름답게 보는 사람은 진정 지모뿐이다. 방문자 중 98퍼센트는 흥미로운 식물을 보기 위한 구경꾼이고 나머지 2퍼센트만이 실구매자인데, 그렇게 꾸준히 식물을 구매하는 손님은 대개가 특이한 인테리어로 가게를 운영 중이거나 구매한 식물에 이것저것 말을 붙여 더 비싸게 파는 사람이거나 이곳의 식물만큼이나 희귀한 안목을 지닌 지모와 취향이 맞는 아주 극소수의 사람뿐이다. 도대체 어디서 이런 식물만 공수해 오는지 알지 못하지만, 원산지에서조차 희소한 식물을 이 화원에서 죽이지 않고 키워 내는 지모의 실력이 감탄스러울 뿐이다. 타고나는 능력이란 것이 이런 건가 싶을 정도로 지모는 식물을 잘 다룬다. 죽은 식물도 살려내고, 영원히 죽지 않는 식물을 탄생시킬 정도로. 

 

- 손님들은 지모가 비책이나 특별한 양분을 가지고 있다고 믿었고, 영업 비밀이라 숨기는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그런 비책은 없었다. 나인이 보는 지모는 그저 매일같이 잎사귀를 닦고, 매만지고, 이야기 나눌 뿐이었다. 어쩌면 혼잣말하듯 중얼거리며 식물에게 말을 거는 게 비밀이라면 비밀일 수도 있겠다. 하지만 식물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식물에게 말을 걸었으므로 그것 역시 특별한 비밀은 될 수 없었다.

 

- 행복은 살아가는 도중에 느끼는 잠깐의 맛 같은 것일지도 모른다는 말을 한 사람은 미래다. 단맛, 쓴맛, 떫은맛, 매운맛, 신맛, 짠맛을 느끼는 것처럼 행복도 무엇을 먹었느냐와 비슷하게 선택에 따라 감정을 느끼는 것뿐일지도 모른다고. 미래는 태어난다는 것은 세상과 합치된 이유가 있어서일 거라고 말했다. 그러니 만일 이유가 없다면 지금 당장 도로에 뛰어들어 차에 치어 죽어도 상관없지 않느냐는 말을 열세 살 때 했다. 미래가 그런 식의 말을 할 때마다 현재는 그런 소리 하지 말라며 울었고, 나인은 말없이 미래가 차도에 뛰어들지 않도록 팔을 붙잡았다. 미래가 하는 말은 전부 어렵고 고민할 이유가 없는 문제들이라고 생각했지만, 그렇다고 미래가 그런 고민을 하지 못하도록 막을 수는 없었으며 누군가에게는 그런 고민이 아주 중요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 나인은 그런 미래에게 자신이 알고 있는 세상의 비밀 하나를 알려 줬다. 너는 세상의 비밀을 한 꺼풀씩 벗겨 먹으며 언젠가 네가 궁금해하는 것을 알게 될 것이라고. 미래는 팔짱을 낀 채 나인의 말을 가만히 들었다. 

 

- 나이를 먹는다는 건 세상의 비밀을 한 꺼풀씩 벗겨 내는 것이라고 했다. 그렇게 벗겨 낸 세상의 비밀을 한 겹씩 먹으면, 어떤 비밀은 소화되고 흡수되어 양분이 되고, 어떤 비밀은 몸 구석구석에 염증을 만든다. 비밀의 한 꺼풀을 먹지 않을 수 있으면 좋으련만 세상의 시스템은 그걸 먹어야만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있도록 설정되었다. 그러니 언젠가는 반드시 먹어야만 하는 것이다. 시기가 너무 이르면 소화하지 못해 탈이 나거나 목이 막혀 죽기도 하고, 너무 늦으면 비밀을 흡수하지 못하고 그대로 배출시켜 그렇게 아무것도 모르는 텅 빈 몸이 된다. 지모가 한 말이었다. 나인은 그 말이 자신을 낳아 준 사람은 어디로 갔느냐는 질문에 대한 적절한 대답인지 판단할 수 없었지만, 알겠다고 고개를 끄덕였다. 때가 아니라는 소리 같았다. 자신이 아직 어려 비밀에 목이 막혀 죽을까 봐 돌려 말하는 것이라고 받아들였다. 자신이 벗겨 내 먹어야 할 비밀과 그 속에 감춰진 진실이 어마어마할 거라고 판단한 이후로, 나인은 지모에게 던진 질문을 다시는 꺼내지 않았다.  

 

- 하지만 지모를 특이하게 여기는 사람은 홍주만이 아니었다. 지모와 잠시라도 시간을 보낸다면 특유의 분위기를 누구나 느꼈다. 그걸 콕 집어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나인도 마찬가지였다. 지모는 좀 특이하지. 별나기도 하고, 합쳐서 특별하기도 하고. 하지만 그 특별함은 조카를 홀로 키우는 여자라는 문장으로 모두 무마되었다.  

 

- 몇몇은 정신이 똑바로 박힌 사람이라면 자기가 낳지 않은 애를 키울 리 없다고 단정 지었다. 그들의 눈에 지모는 제정신이 아니었고, 이따금 깨우쳐 주고 싶은지 대놓고 지모에게 그러고 살다가 나중에 인생 아까워서 후회한다며 훈수를 두기도 했다. 그런 사람들을 대처하는 지모의 방식은 역시나 특이하고, 별나고, 특별했는데 상대방의 말이 끝날 때까지 가만히 듣고만 있다가 말을 마치면 갑자기 웃음을 터뜨리거나 소리를 지르거나 울어 버리는 식이었다. 그럼 상대방은 대개 깜짝 놀랐다가 경멸스러워하고는 곧 알 수 없는 공포감에 질려 허겁지겁 도망쳤다. 지모가 제정신이 아니라는 소문에는 그런 식의 대처가 한몫했으리라. 

- "왜 그렇게 반응해? 그냥 그런 말 하지 말라고 하면 되잖아."

언젠가 나인이 그렇게 물으니 지모는 뭘 모른다는 식으로 혀를 끌끌 찼다.

"그렇게 말해서 알아들을 사람들이면 애초에 그런 말 하지도 않았어. 그리고 좋게 말하면 자기 말이 통하는 줄 알고 계속 찾아와서 설파해."

 

- “만약에 내가 인간이 아니고 식물이라면 어때? 그니까 인간이기는 한데 식물인 거야."

물론 믿으라고 한 이야기는 아니었다. 이게 얼마나 허무맹랑한 소리인지 타인의 반응을 통해 확인받고 싶어 던진 말이었다. 미래는 세상을 건조하게 바라보는 애였다. 감정에 가라앉는 건 아무것도 바꿀 수가 없고, 무언가에 슬픔을 느꼈다면 그 슬픔을 다시 느끼지 않도록 원인을 분석하고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믿었다. 이를테면 현재가 울 때마다 미래는 현재를 울게 만든 원인을 찾아 없애는 식이었다. 놀리는 애가 있으면 찾아내 혼내거나 어른에게 도움을 요청했으며, 시험을 망쳤을 때는 울어 봤자 성적은 바뀌지 않으니 그 시간에 차라리 영어 단어나 외우고 수학 문제 하나라도 더 풀라고 말했다. 몇몇 친구는 그런 미래의 화법을 불쾌하게 여기거나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았지만 나인과 현재는 그런 미래를 좋아했다. 그러니 차라리 미래가 박장대소하거나 뭐라는 거냐며 비웃어주기를 바랐는데. 
"나무? 꽃? 아니면 꽃 피는 나무? 선인장?"

미래는 가끔 이상하게 친절하다.

- 엄마와는 고작 네 살 차이였고 미래와는 열여덟 살 차이가 났다. 그래도 여러모로 요한은 이모보다 언니 같은 느낌이었다. 요한을 요한의 나이로 보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아주 어리게 보면 20대 후반으로 보았고 많게 봐도 30대 초반이었다. 요한이 젊게 보이는 이유로 남들은 동안의 조건을 갖춘 외모를 손꼽지만, 미래는 그것보다 입고 다니는 옷과 취향의 영향이 더 크다고 판단했다. 요한은 편안함과 자연스러움을 추구했다. 가벼운 차림을 좋아했고, 그런 옷맵시가 잘 맞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그럴 것이다. 특정 나이에 입어야 하는, 혹은 그 나이가 되어야만 입을 수 있는 옷에 얽매이지 않기에 사람들은 요한의 나이를 쉽게 짐작할 수 없었다. 더욱이 생각이나 말투에서도 누군가를 가르치는 듯한 뉘앙스가 조금도 섞여있지 않아서 같이 이야기하다 보면 미래는 그저 친구나 나이 차이가 적게 나는 언니 같은 느낌을 받았다. 그러니 갈수록 엄마보다 요한과 대화를 나누는 일이 많아지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 "칭찬을 참 욕같이 해."

"욕을 칭찬처럼도 해. 그게 주방장에게 필요한 자질이거든, 기분 안 나쁘게 사실만 콕콕 쑤셔주는."
"그게 더 내상 심한 건 알지?"
"... 내가 꼭 알아야 할까? 그냥 이렇게 모르는 척하고 혼내고 싶은데. 걔네는 혼내는 내 마음이 더 아프다는 걸 모르잖아.”
말은 저렇게 해도 요한도 알고 있으리라. 그것이 오래도록 상처로 남는다는 사실을.

그래서 지적을 최대한 칭찬으로 포장하는 연습을 했을 테니까.  

 

- 못된 말인 줄 알면서도 꼭 내뱉는 걸 보면 요한의 말처럼 영락없이 엄마를 닮은 모양이라고 미래는 생각했다. 엄마와 아빠도 그런 부분에서 많이 다퉜다. 엄마는 상대방이 상처받을 걸 알면서도 내뱉는 성격이었고, 아빠는 해야 할 말조차 하지 않고 입을 다물어 버리는 성격이었다. 두 사람의 대화를 듣고 있으면 서로 언어가 다른 종족이 대화하는 느낌이었다. 한마디로 대화가 아니었다는 말이다. 집에는 그렇게 버려진 말이 많았다. 먼지처럼 뭉쳐 있다가 어느 순간 정말 먼지가 되어 버렸다. 닦아 내면 사라지고 마는. 한때 미래는 그 말을 닦는 데에 하루를 썼다. 걸레로 집 구석 구석을 닦다 바닥에 엎드려 울었다. 말을 주워 담아 서로에게 전해 줄 수 있으면 좋으련만 미래에게는 버려진 말을 잡을 수 있는 능력이 없었다. 그래서 울며 바닥을 닦았다. 그게 미래가 할 수 있는 전부였다. 시키지도 않은 집 청소를 하고, 좋은 성적을 받아 오고, 말썽 피우지 않으면 자신을 봐서라도 두 사람이 서로를 놓지 않을 줄 알았다. 자신의 능력으로 될 일이 아님을 진작 알았더라면 그렇게 하지 않았을 것이다. 


 - 학교 다닐 때까지만 해도 놀리는 애도 많았고, 왜 여자애한테 요한이라는 이름을 붙였느냐고 물어보는 선생도 있었는데 커서는 오히려 이름 덕을 봤다고 했다. 특히나 이름으로 남자인 줄 알고 덜컥 뽑은 주방장들에게 고마움을 전했다. 엄마와 만나게 된 것도 이름 덕분이라고 했다. 바로 저 아르세날 레스토랑에서 엄마를 만났기 때문이다. 아빠와 이혼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엄마는 홀로 여행을 떠났고 그곳에서 요한을 만났다. 한국도 아닌 크로아티아에서 그 많은 관광지 중 성요한요새 근처에서. 하필 동양인 여자가 그 둘 뿐이었던 레스토랑에서 엄마는 요한을 만나기 위해 아빠를 거친 것 같았다. 반드시 만나야 할 사람을 만나기 위한 절차였다고 생각하면 마음이 좀 편했다. 유별나고 대수로운 게 아니라 거쳐야 할 단계의 한 과정이라 생각하면. 미래는 이 과정이 두려웠다. 아무리 노력해도 모든 게 다 정해져 있다면 자신이 거부해도 결국 신의 뜻대로 흘러가게 되는 것이 아닌가.

- 파란빛은 나인이 걷는 방향을 향해 불씨가 번지듯 퍼져 갔다. 길게 자란 풀들이 종아리를 쓰다듬으며 인사를 건넸다. 나인은 그런 풀들을 보며 착각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착각일지언정 꿈은 아니었다. 그것들은 꿈이 될 수 없었다. 나인은 그토록 생경한 꿈을 꿔본 적 없었으며, 그런 장면은 상상으로라도 그릴 수 없었다. 그러니 그 모든 건 현실이었다. 살면서 한 번도 겪어 본 적 없는 기분이었다. 달을 처음 밟은 인간이 딱 이랬을 거야. 신대륙을 발견한 인간이나 중력을 알아차린 인간이 이랬겠지. 벅차다는 말이 사소하게 느껴졌고 황홀하다는 말은 추상적이게 느껴질 만큼, 아침이 오지 않았으면 했다. 낮보다 밝은 새벽이 끝나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며 잠시 쉬기 위해 나무에 기대어 앉았다. 

 

- 그들을 이해 못 하는 바는 아니다. 그들이 느끼는 두려움과 불안을 지모가 느끼지 못할 리 없었다. 고향을 떠난 생명체는 자신들의 존재가 지워질까 늘 불안해했다. 발붙여 산다 해도 그 행성은 자신의 땅이 될 수 없었다. 발밑이 아주 희미하게 떠 있다. 겉으로 보면 모르지만 당사자만은 느낄 수 있는 그 이질감, 낯섦, 생경함, 피곤함. 이곳에서 난데없이 추방될지도 모른다는 상상, 혹은 납치되어 생명의 위협을 받아도 누구에게 도움을 요청할 수 없을 것 같은 두려움. 이방인은 그곳의 토착민이 될 수 없었다. 불안은 넝쿨처럼 서로를 옭아맸다. 서로의 목숨을 반절씩 나누어 가진 양 굴었다. 

 

- 분명하게 자백을 유도할 수는 없지만 나인이 보고자 하는 건 찰나다. 찰나의 눈빛, 찰나의 입꼬리, 그 찰나의 표정. 

 

- 나인은 살면서 몇 번 마주쳤다. 아니, 무수히 마주쳤다. 이모와 함께 산다는 말을 듣는 순간 그들이 지었던 숱한 표정이 전부 통제권 밖에 있었다. 어찌할 수 없는, 본능적인, 막을 수 없는, 하여간 그런 의미였다. 찰나의 표정이란 감정을 가장 진솔하게 비추는 호수의 수면 같은 것이다. 조그만 충격에도 금방 흩어지고 만다. 바람조차 불지 않는 한때, 잠시 생겼다 사라지는 마법 같은 것이다. 그러니 원망할 수가 없다. 미워할 수도 없고. 어쩌겠는가.  

 

- 때때로 어떤 이들의 표정은 파도같이 잔잔하게 밀려오다 부서지고 흩어진다. 오래 전, 나인을 데리고 시내에 있는 키즈 카페에 가던 지모의 표정이 딱 부서진 파도 같았다. 예고 없이 멈춰 선 걸음과 도로 반대편을 응시하는 시선. 눈 밑으로 진 그늘과 힘 들어간 입술. 나인은 그 순간 지모의 손을 꽉 붙잡았다. 그러지 않으면 지모가 이 손을 놓고 저 반대편으로, 나인은 갈 수 없는 건너편으로 달려갈 것 같았다. 무엇을 보았는지 그 이후로 한 번도 묻지 않았지만 지모의 표정은 나인의 기억에 오래도록 머물렀다. 그러다 차츰 그 표정의 의미를 알게 되었다. 파란불이 한번 깜빡이던 그 짧은 순간에 지었던 지모의 부서진 표정. 아주 그리운 누군가를 봤던 거겠지. 지모가 두고 온, 어쩌면 버리고 온 어느 한 시절을.

 

- 아무리 감추려고 노력해도 찰나의 표정은 감출 수 없다.   

 

- 우연은 기다렸다는 듯이 일어난다. 세상이 정말 정해 둔 것처럼, 쥐 죽은 듯이 기다리다가 해결사가 나타나면 그제야 소리친다. 꽁꽁 숨어 있다가, 평소에는 보이지도 않다가 이렇게 갑자기. 
정말 치사하게.

- "너도 그러겠다고 해. 너도 어디 가서 말하지 않겠다고. 그냥 모르는 체해."
"왜?"
나인은 반사적으로 물었다. 그 순간 밀려든 억하심정에 휩쓸려. 승택이 그렇게 말하는 이유를 모르는 바 아닌데. 어떤 일을 보고도 못 본 척, 알아도 모르는 척하는 이유는 딱 한 가지밖에 없다.
"엮이면 피곤해져."
알면서도 왜 물어봤을까. 이 말을 듣는 게 더 피곤한데. 부정하고 싶지만 승택의 말이 맞다. 세상 모든 일은 엮이면 피곤해진다. 사람들은 승택 같은 사람을 현명하다고 표현한다. 신중하다거나 생각이 깊다고 할 수도 있고, 가만 내버려 두면 아무런 문제도 일어나지 않을 일을 굳이 들춰내 소란스럽고 골치 아프게 만드는 사람을 아무도 원하지 않는다. 그리고 어수선하게 들쑤시고 다닌 당사자를 원망스럽고 귀찮은 눈초리로 바라보겠지. '가만히 좀 있지'라거나 '본인만 정의롭지'라는 식의 말을 덧붙이면서.

 

- 그 말은 외곽 도로에 쓰레기를 몰래 버리고 가는 사람들을 지모가 전부 신고했을 때 신고당한 사람들이 내뱉은 말이었다. 남의 집 앞도 아니고 차만 다니는 길에 쓰레기 좀 버린다고 누가 피해 보는 것도 아닌데 가만히 좀 있지, 꼭 저렇게 본인만 정의롭다는 식으로 굴어야 속이 편한가. 지모의 등을 향해 눈을 부릅뜨고 중얼거리던 아저씨의 말을 나인은 십 년이 지나도록 똑똑히 기억하고 있다. 그때뿐이 아니다. 특수학교 설립에 찬성했을 때도 대부분의 주민이 지모를 그런 눈초리로 흘겼다. 가만히 좀 있지. 애도 없는 아가씨가 뭘 안다고 자꾸 말을 얹어. 땅값 걱정할 일이 없으니까 그러지. 모르면 말을 말든가. 자기 배 아파 애를 안 낳아 봤으니까 모르지. 자기들 딴에는 속삭였다고 하지만 지모에게 들릴 정도의 크기로 그런 말이 오갔다. 지모는 별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어차피 저런 사람들한테는 아무리 말해도 쇠귀에 경 읽기 수준으로밖에 전달되지 않는다는 이유였다. 지모는 대응하기보다 묵묵히 싸워 가는 쪽을 택했다. 모두가 동의해야 하는 안건에 굽히지 않고 표를 던져 매해 안건이 다시 올라오게 만드는 식으로. 그렇게 해야 결국 이긴다. 소수가 다수를 이기기 위한 가장 확실한 방법은 지겹고, 지긋지긋하고, 진절머리 나게 구는 것이라고. 그게 지모가 살아오며 깨달은 중요한 이치 중 하나였다. 지모도 피곤했을 것이다. 다수의 뜻만 따랐다면 몇몇 단골을 잃을 일도 없었을 터였다. 하지만 지모는 그냥 단골을 잃었다. 단골을 잃는 것쯤이야 아무렇지도 않다면서, 지모는 나인에게 가장 못 견디겠는 것 하나만 지키며 살라고 했다. 물론 조건은 있다. 나인이 위험해지지 않는 한에서. 
 

- "아니. 그 말 한마디로 인간들은 네가 뱉은 모든 말을 거짓말로 여길 테니까."
나인은 이런 말들을 뼈에서 나온 말이라 표현했다. 깊은 상처는 뼈에도 흔적을 남기는 법이니까. 
"인간들은 그래. 믿을 수 없는 게 하나 생기면 모든 걸 다 가짜로 만들어 버려."

 

- 미래는 화를 잘 내는 편이 아닌데 한번 화가 나면 웬만한 어른보다 더 무섭다. 허투루 화를 내지 않으니까. 미래는 끓는점이 높다. 나인이 빠르게 끓어 오만 곳에 화를 내고 다닌다면 미래는 참을 때까지 참았다가 크게 터뜨렸다. 그리고 더 무서운 건 미래는 화가 날수록 차분해진다는 점이다. 나인은 화가 나면 피가 거꾸로 솟구치는 느낌이 드는데 미래는 피가 식는다고 표현한다. 피가 식는다니. 무서운 말이었다. 이성적인 논리와 사고로 상대방을 짓밟겠다는 저의가 가득 담긴 말 같았다. 

 

- 미래는 참는 게 습관이 돼서 그렇다고 했다.

 

- 그래서 참을 수 있을 때까지 참고, 자신의 감정을 계속 검열했다. 화를 내도 되는 상황인지, 자신의 분노에 비열함이 끼어 있지 않은지. 그렇게 오랫동안 감정을 식힌 뒤에도 화가 남아 있다면 그제야 입을 열었다. 목소리가 높아지지 않도록 목에 힘을 잔뜩 준 채로. 어제만 해도 미래는 차분하게 말하지 않았던가. 


- 다 똑같지는 않다는 걸, 사랑이 모든 걸 다 해결해 주지 않는다는 걸, 사랑 가지고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걸, 사랑은 세상에서 가장 그럴듯한 낙관주의라는 걸. 낙관주의는 아무것도 바꾸지 못한다. 아빠는 멈춰 있는 것이 사랑이라 했지만, 엄마에게 사랑은 아마 흘러가는 강줄기 같은 것이었나 보다. 함께 흘러가는 물줄기였다면 같이 바다로 나아갔을 테지만 아빠는 그럴 수 없었다. 사랑했지만 방식과 형태가 달라 두 사람은 섞일 수 없었다. 온수인지 냉수인지, 급류인지 완류인지, 흐르는지 머무르는지, 바닷물인지 민물인지가 중요하다. 사랑을 지속하려면 사랑한다는 말 한마디로 충분하지 않고, 그 말에 담긴 온도와 흐름까지 같아야 한다. 고여 있는 아빠는 흐르는 엄마를 보며 항상 외로워했다. 아빠의 외로움은 엄마의 잘못이 아니었다. 아빠도 혼자 삭이고 참아 내야 한다는 걸 알았다. 그래서 미래는 아빠를 보는 게 늘 힘들었다.

- 자동차 매연과 배기관의 연기를 맡고 자랐을 나팔 수선화를 바라보다 승택은 무릎을 끌어안고 고개를 숙였다. 친구들과 떠들며 등교하던 나인의 모습이 떠올랐다. 목적지가 있는 걸음은 분명하고 힘찼다. 세상에 딱 둘이라니까 같을 줄 알았다. 가소로운 짐작이었다. 승택이 그런 생각을 하는 줄 아무도 알지 못하는데도 부끄러워졌다. 몸이 잎사귀처럼 말려들었다. 

 

- 성에 갇혀 살던 아이가 성 밖으로 나간다. 생각보다 어렵지 않다. 아주 조금의 용기만 있다면, 문을 열고 발을 내디디면 그만이니까. 어려운 건 섞여 들어가는 일이다. 아이가 성에 갇혀 있는 동안에도 멈추지 않고 돌아가던 세상의 쳇바퀴 속으로, 이방인을 맞이하는 조력자가 사라진 세상으로. 난도가 높지만 성공한다면 멋진 이야기가 되리라. 사람들이 좋아하겠지. 하지만 제일 좋은 건 애초에 성에 갇히지 않는 것이다.

 

- '저 선배는 세상에 딱 저 선배 하난데 사라졌잖아.'
승택은 자신이 사는 세계의 크기와 나인이 사는 세계의 크기가 다르다는 걸 알았다. 모든 인간이 다 저만큼의 세계를 가졌는지는 다른 인간과 소통할 기회가 거의 없던 승택으로서는 알 수가 없다. 단지 자신과 나인의 세계가 다르다는 것만이 확실했다. 그래서 자꾸 나인이 하자는 대로 하게 됐다. 원래 큰 쪽에 작은 쪽이 흡수되기 마련이니까.

 

- 종렬이 원래 저렇게 뺀질거리는 타입은 아니었다고, 경혜는 신고자를 앞에 두고 하품을 쩍쩍해대는 종렬을 복도 창문으로 지켜보며 생각했다. 물론 신고자의 뒷모습만 슬쩍 보아도 연락 끊긴 애인을 찾으려는 속셈이라는 게 뻔히 보였고, 그러면 거주하는 곳을 알아내 용서를 구하거나 협박을 하려는 것일 테니 종렬의 태도가 저렇게 심드렁한 것이 이해는 되지만 예전의 종렬이라면 달랐으리라. 경혜가 기억하는 십여 년 전 종렬이었다면 애인을 찾겠다는 신고자에게 되레 윽박질렀을 터였다. 상대방이 원치 않는 만남을 억지로 가지려 한다면 처벌받을 수도 있다며, 조금은 지나치다 싶게 호통쳐 신고자가 도망가게 만든 전적이 있었다. 그런 열정, 아주 작은 불씨가 어떻게 번질지를 미리 감지하는 본능적인 감각, 종렬은 그런 감을 무시하지 못하는 성격이었다. 한때는. 지금은 아니다. 

 

- "진술조서?"

되묻는 종렬의 얼굴이 한순간 납빛으로 변했다. 찰나였지만 경혜는 경련을 일으키듯 떨리던 종렬의 입꼬리를, 효자손을 책상에 올려놓는 어색한 손짓을, 종이를 들춰 보지만 연신 머리를 굴리고 있는 것처럼 배회하는 눈동자를 보았다. 그런 무의식적 신호를 보며 경혜는 종렬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지 않으리라 다짐했다. 
"사건 자료 문서도 저장 안 해 놨더라. 딸랑 이 종이 쪼가리밖에 없네. 이거는 징계 없나?"
사람은 무언가를 감춰야 할 때 말도 안 되는 억지를 부린다. 대표적인 예로 여자화장실에 몰래 들어갔다가 적발된 남자들이 화장실을 착각했다는 식의 억지를 부리는 것이 있다. 비리를 저지른 국회의원이 이렇게 될 줄 몰랐다고 말한다든가 살인을 저지르고 사랑해서 그랬다는 말을 내뱉는 것도 다 비슷한 기조다. 고로 지금 종렬이 내뱉고 있는 말도 같은 맥락이다. 

- 이건 땅의 기억이다. 땅에 뿌리내린 모든 것의 기억이기도 하다. 선명하지는 않았다. 그것은 장면이나 선으로 그려진 그림이 아니었다. 아주 작은 입자가 3차원 지평 위에서 홀로그램처럼 불완전하게 형체를 만들고 있었다. 그것이 땅이 전달하는 기억의 형태를 걸 알아차리는 데는 시간이 필요했다. 수만 개의 기억이 한데 뒤섞여 형태가 온전한 것이 없었다. 사람인지, 바위인지, 동물인지 혹은 다른 형태의 괴물인지 모를 형태들이 뒤섞여 있었다. 입자들은 소리가 들릴 때마다 소리의 파동을 따라 흩어졌다가 뭉치기를 반복했다. 그중 뭉치지 않고 물처럼 흘러가는 것은 바람 소리이고, 미러볼처럼 동그랗게 반짝이며 자유자재로 날아다니는 것은 새라는 걸 깨달았다. 식물이 바라보는 세상은 이렇게 해 질 녘 해변의 모래사장처럼 빛났고 강에 뜬 윤슬처럼 잔잔하게 흘러갔다.

 

- 그런 마음은 가지고 태어나는 건가 봐요. 누구나 쉽게 가질 수 없는 것 같아요. 가끔 생명을 죽이는 일에 아무런 죄책감도 느끼지 못하는 인간들이 있잖아요.  

- 강한 힘을 가지면 그런 선함도 함께 깃드는 걸까. 아니면 그런 용기를 가지고 있기에 강한 힘이 자리를 잡을 수 있는 걸까. 인과를 확실히 알 수 없지만 지모는 후자이기를 바랐다. 강한 힘을 가진다고 해서 선함이 무조건 깃드는 건 아닐 수도 있으니까. 올바르게 쓰일 줄 모르는 힘은 재앙과 다르지 않았다.

 

- 지모의 눈은 본질을 꿰뚫는 형사의 눈처럼 매서움과 동시에 깊이를 가늠할 수 없는 해수면처럼 잠잠했다.  

 

- "네가 정말 네 아버지를 사랑한다면 너는 네 아버지가 만든 결계를 언제든 깰 수 있는 아이가 되었어야 해. 그러면 아버지가 만든 결계를 하나씩 깨며 세상 밖으로 나아갔겠지. 너는 아버지가 무서웠던 거야. 말 잘 듣는 착한 아이는 더 크게 자랄 수 없거든." 
 
- "각자의 마음에는 점이 지대가 있어."
"점이 지대요?"
"성질이 다른 두 원의 경계야. 마음에 두 원이 있거든. 간단하게 청과 적이라고 하자. 태곳적에는 모두 청에 머물러 있었지만 살아가면서 누군가는 이 경계를 넘어 적으로 가기도 해. 한번 넘어가면 다시는 청으로 돌아올 수 없는 경계를 넘는 거지. 그 영역의 경계가 점이 지대야. 나는 이 점이 지대를 넘으면 아무것도 바꿀 수 없다고 생각해.

 

- "점이 지대를 넘어가면 고통스럽지 않아, 평온해지고 행복해지지. 그리고 언젠가 같은 짓을 반복하겠지. 고통스럽지 않으니까. 바로 앞에 있는 걸 보지 못하고 탁해진 눈동자로 저 멀리 손에 닿지 않는 것만 바라보겠지. 자신이 밟고 있는 붉은 땅이 피로 물든 줄도 모르면서."

 

- 세상의 모든 일에는 중요도가 있다. 누구든 소중하지만 어떤 죽음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고,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죽음은 살인자의 한 끼보다도 보잘것없다. 그렇게 어떤 일은, 죽음은, 억울함은, 호소는 한없이 뒤로 밀리고 밀려 세상 밖으로 떨어지게 된다는 걸, 그렇게 사라지지도 분해되지도 해결되지도 않은 상태로 우주를 떠돌게 된다는 걸 미래는 아직 모른다. 영원히 몰랐으면 좋겠지만 조금씩 알게 되겠지. 그걸 알아가는 게 살아가는 것이고, 나이를 먹는 거겠지. 그렇다면 이것도 알게 됐으면 한다. 세상 밖으로 밀려나는 건 온몸으로 막을 수 있다는 것, 그리고 한 명이 막는 것보단 여러 명이 막는 게 더 좋다는 것, 무른 흙도 밀리고 밀리다 보면 어느 순간 아주 단단해진다는 것.

 



  
- 뒤틀린 어른이 뒤틀린 아이를 만들고, 그 아이가 자라 뒤틀린 어른이 되어 다시 뒤틀린 아이를 만드는 세상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그렇게 온전한 어른이 사라진 세상이 되기 전에, 상처와 슬픔이 무기가 되어 또 다른 출혈을 일으키는 세상으로 향하지 않도록. 그런 마음으로 썼다. 

- 타인을 이해하지 못할 때, 타인에게 이해받지 못할 때 우리가 종족이 다른 외계인이라고 생각하면 언제나 마음이 편안해졌다. 그래서 나는 지하철에서 스마트폰을 보지 않고 사람을 유심히 관찰하는 누군가를 보면 외계인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신호등 초록불이 삼 초 정도 남았는데 뛰지 않고 걸음을 멈추는 사람을 볼 때도, 길가에 핀 꽃을 찍기 위해 기꺼이 땅에 누워 버리는 사람을 볼 때도, 아이와 강아지에게 친절한 사람을 볼 때도, 너무도 당연했던 선의를 잃은 인간들 속에서 그 원초적인 힘을 유지하고 있는 사람들을 마주칠 때마다 외계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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