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 : 줄리아 캐머런 / 이상원
원제 : The Listening Path
출판 : 비지니스북스
출간 : 2022.04.19
2017년에 출간된 <아티스트 웨이 - 나를 위한 12주간의 창조성 워크숍>이 재출간된 것인 줄 알았는데, 확인해보니 이 책은 <Listening Path>로 다른 책이었다. 아마도 그 책에서 이어지는 내용이 많아 이렇게 제목을 정한 것이 아닌가 싶다. 이전 작을 읽지 않은 상태라 두 책을 연결 지어 말하기가 조금 조심스럽다.
이 책은 '잘 듣기'에 관해 말하고 있다. 총 6주에 걸쳐 매주 다른 대상을 들어보는 연습을 해나가는데, 처음에는 주변 환경이나 지인들로부터 시작해 자신의 내면, 떠나간 사람들, 내 안의 영웅들과 침묵 그 자체로부터 듣는 방법을 이야기한다. 저자에게는 많은 아티스트 지인들이 존재하는데, 그들 대다수가 자신의 작업들은 모두 '듣기'를 통해 나온다고 말하고 있었다. (이 책은 저자가 주변인들에게 '듣기'에 관해 질문한 내용과 자신의 경험을 함께 정리한 책이다.)
딜런 토머스의 시구 중 한 구절이라는 '초록빛 관을 통과해 꽃을 피우는 힘'이라는 문장이 참 와닿았다. 그리고 잘 듣는 행위는 이렇게 자신을 통과해 흐르는 하나의 거대한 힘을 느끼는, 듣는 사람과 말하는 사람 모두에게 배움이 될 수 있는 행위라고 저자는 말한다. 자신의 말을 줄이고 타인의 말에 더 귀 기울여 듣자는 자기 계발적인 내용이라고 단순화하고 싶지는 않다. 이 책은 그보다 더 깊은 내용을 담고 있다.
저자가 권하는 방식은 크게 세 가지이다.
첫 번째는 매일 아침 모닝 페이지를 쓸 것.
두 번째는 일주일에 하루는 완전히 혼자만의 아티스트 데이트를 즐길 것.
세 번째는 산책을 나가 걸을 것.
각각의 방식에 대해 세세한 조언을 아끼지 않는데, 이를테면 잠들기 전이 아니라 눈뜨자마자여야 하는 이유, 손으로 써야 하는 이유 등이다. 저자가 인용한 융의 이론에 따르면 사람은 잠에서 깨자마자 45분 정도가 가장 자기 방어 기제가 약해지는 시간이라고 한다. 따라서 이때 마음속을 떠다니는 것들을 모두 쏟아내 눈으로 확인함으로써 필요한 해답, 반짝이는 아이디어, 걱정이나 감정의 해소 등을 경험할 수 있다는 것이다.
아티스트 데이트는 완전히 혼자, 그리고 어떤 부담감도 없이 완전히 즐기고 노는 시간이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런 이완을 통해 영감을 느낄 수 있는 여유를 되찾고, 다양한 것들을 아이처럼 순수한 호기심으로 관찰하며 내면화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저자는 주 1회 정도 미리 계획하여 데이트를 하라고 하는데 다섯 가지 정도를 생각나는 대로 써보고 가장 끌리는 것을 -혹은 전부- 해보라고 권한다. 이전까지 해보지 않은 것이거나 생각만 해보던 것일수록 더 좋다.
그리고 걷기에 관해서는 몸을 움직이며 주변의 모든 것을 듣고 수용하는 일종의 명상처럼 설명하고 있었다. 이전에 틱낫한 스님의 <걷기 명상>을 읽었었는데 시선이 비슷했다. 저자에 따르면 20분만 걸어도 체중 조절이나 건강에 탁월하다며 꼭 시간을 낼 것을 권하고 있다.
이런 내용들은 모두 한 지점을 가리킨다. 주변의 모든 것에 관심을 기울이고 관찰하고 귀를 기울일 것.
그것이 환경이건, 사람이건, 사물이건 의도와 인내심을 가지고 차분하게 들으면 모든 것은 배울만한 뭔가를 말해주고 있다는 것. 그리고 그렇게 연습을 통해 얻은 '듣기'로 자신을 들을 때, 진정으로 원하는 것과 행복한 삶에 대한 많은 조언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는 것이다.
흥미로운 부분이 많았고, 울림이 있는 내용도 많았다.
내가 거칠게 요약하는 것보다는 시간을 두고 차분하게 읽어보시는 것이 훨씬 좋을 책이다.
추천.
- 만일 인생에서 혹은 매일의 일상에서 어디로 가야 할지 알려줄 직관이나 예감을 찾고 있다면 답은 듣는 것에 있다. 귀를 기울이고 잘 들을 때 우리는 매일 주변의 수많은 신호와 단서에 집중할 수 있다. 그러니 멈춰 서서 듣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 그렇게 집중하는 순간, 특히 시간에 쫓긴다고 느낄수록 잠시 멈추고 집중할 때 시간을 빼앗기기보다 오히려 선물 받는다.
- 무언가를 들을 때 우리는 집중하며 집중은 항상 치유라는 선물을 안겨준다. 듣는 것은 통찰, 명료함, 즐거움을 선사하며 시선보다 더 멀리 내다보게 해 준다. 그리고 우리를 서로 연결해 준다.
- 모닝 페이지는 오로지 나 혼자 읽기 위해 쓰는 것이다. 개인을 위한 기록일 뿐 그 누구에게도 보여줄 글이 아니다. 모닝 페이지는 컴퓨터가 아닌 손 글씨로 쓴다. 손 글씨는 수공예의 삶으로 우리를 인도한다. 컴퓨터로 쓰면 속도가 빠르겠지만 모닝 페이지가 추구하는 것은 속도가 아니다. 깊이와 개성을 추구한다. 내가 무엇을 어떻게 왜 느끼는지 정확히 기록하고자 한다.
- 한편 모닝 페이지는 막연한 부정적인 감정을 해부한다. 내가 정말로 생각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게 되고, 놀라기도 한다.
- 일찍부터 출장을 떠나는 날에는 나도 모닝 페이지를 건너뛴다. 목적지에 도착한 후 '저녁 글쓰기'를 하긴 하지만 모닝 페이지와는 다르다. 밤에 쓰는 글은 이미 지나간 하루를 돌이켜보는 것이어서 변화의 힘이 없다. 반면 모닝 페이지는 하루의 경로를 결정한다. 저녁 글쓰기에서 하루는 성공이나 실패로 기록된다. 그 하루의 수많은 선택 가능성, 더 생산적으로 살 수 있었을 기회를 되새길 뿐이다. 그리하여 하루를 낭비했다고 여기게 된다.
- 이와 다르게 모닝 페이지는 시간을 벌어준다. 시작되는 하루를 가장 훌륭하게, 가장 생산적으로 보내게 해 준다. 한 여성은 이렇게 말했다. "모닝 페이지가 시간을 만들어주더군요. 시간을 빼앗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정반대예요." 나도 이 역설을 잘 알고 있다. 매일 아침 45분을 글쓰기에 쓰지만 이후에는 낭비되는 시간 없이 하루를 보내게 된다. 내가 정한 우선순위에 따라 시간을 쓴다. 온전히 내 시간을 보내는 것이다.
- 모닝 페이지를 하게 되면 더 효율적으로 하루를 보낼 수 있다. 다음에 뭘 하지 생각하면서 보내는 '정신적 담배 한 개비 시간'이 사라진다. 모닝 페이지가 일상에 자리를 잡고 나면 한 활동에서 다른 활동으로 매끄럽게 이어진다. 뭔가를 해야겠다고 생각이 들면 미룰 필요 없이 바로 하기 때문이다. 시간을 붙잡고 자신에게 가장 유용하게 사용하는 것이다. 나는 모닝 페이지가 타인에게 의존적인 삶에서 벗어나는 혁신적 방법이라고 말하곤 한다. 남이 아닌 자신의 원칙에 따라 시간을 쓰게 되기 때문이다. 남들을 즐겁게 해 주기 위해 우리가 바치는 시간과 노력은 정말 어마어마하다. 그 에너지를 내 쪽으로 돌리면 갑자기 내 것이 된 크나큰 힘에 놀랄 것이다.
- 혼자 떠나는 아티스트 데이트는 자기 안의 아티스트에게 온전히 집중하는 특별한 시간이다. 그렇다면 '이번 금요일에는 내 안의 아티스트가 이탈리아 식당에서 식사하도록 데려가야지'라는 계획은 어떨까? 아티스트 데이트는 자신에게 귀 기울이는 상태를 만들어준다. 그래서 우리 자신, 우리 내면의 아이와 만나게 해 준다. 이런 아티스트 데이트에 저항감을 보이는 경우가 많지만 내면에 이처럼 가깝게 다가가는 것은 분명 크나큰 보상을 안겨준다. 혼자서 그저 재미를 위해 뭔가를 하면서 우리는 내면 가장 깊은 곳의 욕망을 만난다. 혹은 더 높은 자아의 손길 같은 영감을 느끼기도 한다.
- 아티스트 데이트는 연결의 감각을 불러일으킨다. 좋아하는 무언가를 보러 갔을 때 우리는 우리 자신에게로 돌아간다. 본능적이라 할 정도의 짜릿함이 느껴진다. 행복하다는 감정이 용솟음친다. 성스러운 손길을 느꼈다는 경험담도 많다. 좋아하는 무언가를 누리는 일에는 뭔가 성스러운 것이 있다. 우주의 풍요로움에 대한 감사도 흔히 등장하는 경험담이다.
- 걸음을 옮길 때마다 우리 몸에서는 천연 활력제인 엔도르핀이 분비된다. 우리 몸의 화학적 시스템이 긍정적으로 바뀌고 기분도 좋아진다. 보이고 들리는 모든 것이 활력을 돋운다.
- "전 걷기를 좋아해요." 한 여성이 말했다. "매일 1만 보 이상 걸으려고 하죠." 걸음 수를 기록하며 걷는 것은 성취감을 준다. 들리는 소리 하나하나, 내딛는 걸음 하나하나를 기억하면서 우리는 세상이 친절하다는 걸 알게 된다. 세상이 말을 건다. 저쪽에서 들리는 차바퀴 소리는 조심하라는 경고다. 큰 트럭의 우르릉 소리는 우리에게 길가로 걸으라고 말한다. 우리는 세상을 보는 동시에 듣는다. 소리가 모습보다 먼저 다가오는 일도 많다.
- 의식적 듣기를 연습하다 보면 듣기 능력이 좋아진다. 주변의 소리에 주파수가 맞춰지고 점점 더 많은 소리를 구분하게 된다. 걸음을 내디딜 때마다 더 분명하게 들을 수 있다. 더 명료해진 세상 속으로 걸어가는 것이다.
- 걸을 때면 엔도르핀이 분비되며 행복감이 커진다. 투덜거리며 억지로 나갔어도 걷다 보면 기분이 바뀐다. 20분 정도의 짧은 걷기도 몸과 마음을 긍정적으로 바꾸기에는 충분하다. 한 걸음마다 나쁜 기분이 날아간다.
- 나가서 걸을 틈이 없다는 사람도 있다. 시간과 에너지를 낭비하는 일처럼 여겨지는 것이다. 하지만 이건 낭비가 아니다. 20분만 걸어도 40칼로리 이상을 태울 수 있다. 몇 시간 동안 신진대사가 활성화된다. 매일 걸으면 체중이 줄고 근육이 단단해지며 활력이 생긴다. 체력 단련 전문가 미셸 워서는 매일 걸으라고 강조한다. 그녀의 몸도 바로 그렇게 만들어진 것이다. 배우이자 시인인 줄리아나 매카시도 걷기가 최고라고 말한다. "수많은 유명인이 다 그랬죠. 매일 걸으면 체중은 줄고 창조적 영감은 늘어난다고요."
- 걷기는 뒤엉킨 인생의 문제를 풀어준다. 한 번에 한 걸음씩 명료함이 생겨난다. 철학자 키에르케고르는 국가의 문제를 해결하려고 걸었다. 우리는 마음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걸을 수 있다. 걸으며 '나는 이 문제에 대해 이렇게 생각하는구나'라고 깨닫게 된다. 수수께끼를 해결하고 싶을 때 자기도 모르게 걷는 사람들이 많다. 걸으면서는 쉽게 들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깊게 듣기가 가능하다. 주변에 더 높은 자아에 주파수가 맞춰진다. 걸으면서 우리는 자신이 사는 세상의 풍경과 소리를 받아들인다. 시골이라면 작은 새의 노래, 그 노래를 가로막는 까마귀 소리도 듣는다. 천천히 걸으면 높은 가지 위에 앉아 커다랗게 우는 새를 발견할 수 있다. 다가가면 새는 퍼드덕 날아간다. 우리는 새소리라는 선물을 받고 다시 걷는다.
- 직장까지 운전해 가는데 성급한 운전자들의 경적에 신경이 거슬린다. 이때 '그냥 천천히 가도 되잖아'라는 생각이 든다면 그 소리를 걸러내지 않고 의식한다는 뜻이다.
- 집에 돌아온 후에는 좋아하는 음악을 들으며 휴식할 수 있다. 나는 부드럽게 마음을 사로잡는 인디언 플루트 음악을 듣는 것을 좋아한다. 자주 듣는 음반은 마이클 호페가 작곡하고 플루티스트 팀 위터가 연주하는 <동경 The Yearning>이다.
- 다정한 소리는 삶을 다정하게 만든다. 다정한 소리가 마음을 달래주면서 사람도 다정해진다. 거친 스타카토 같은 소리를 들을 때는 툭툭 끊어지는 행동을 하게 된다. 그렇지만 부드러운 소리에는 고요히 대응하게 된다. 마음에 와닿는 소리를 주변에 채우면 일상이 더 감동적으로 변한다. 삶의 톤을 부드럽게 하면 주변 세상에 대한 나의 반응도 부드러워진다. 격한 스타카토가 사라진 내 삶도 함께 부드러워진다. 집에서 보내는 저녁 시간에 좋아하는 사운드트랙을 더하면 훨씬 덜 외로울 수 있다. 음악은 흉포한 야수도 달래준다. 좋아하는 음악을 골라 들으면 삶의 질이 달라진다. 그날 하루 뾰족뾰족하게 솟은 감정의 테두리가 사라진다.
- 이번 주에는 주변의 소리를 듣는 습관 위에 다른 이들에게 귀 기울이는 습관을 쌓아 올려보자. 당신은 상대가 말하고 있을 때 귀 기울여 듣지 않고 대답할 말을 생각하거나 상대의 말을 가로막곤 하는가? 반응 없이 그저 듣기만 하거나 듣지 말아야 할 말에 귀를 기울이지는 않는가? 이미 훌륭하게 잘 듣고 있다고 해도 더 주의 깊게 들을 수 있다. 그리고 이런 듣기를 통해 가까운 이들에게서 뜻밖의 통찰을 얻을 수 있다. 다른 이들의 말에 귀를 기울일 때 우리는 그들과 연결된다. 이 장에서는 그런 듣기를 다루고자 한다. 그리고 잘 듣는 이들의 말에도 귀를 기울이려 한다. 그들의 통찰이 내 것과 합쳐지도록 말이다.
- 의식적 듣기의 두 번째 도구는 다른 이들에게 귀를 기울이는 것, 그들의 표현과 의도를 받아들이면서 진짜로 말하고자 하는 바를 수용하는 것이다. 온전히 들으려면 감정을, 즉 말의 어투와 높낮이를 파악해야 한다고들 한다. 말하는 사람의 기분을 고려해 말의 내용을 정확히 해석하라고 말이다. 예를 들어 "괜찮아요."라는 말은 진심일 수도, 냉소일 수도 있다. 어투는 단어들만큼이나 많은 정보를 전달한다. 어떤 "괜찮아요."는 전혀 잘 지내지 못한다는 의미일지 모른다. 그 해석은 듣는 이에게 달려 있다. 건강 상태를 설명할 때도 "괜찮아요."라는 말은 정확히 그 뜻일 수도, 반대의 뜻일 수도 있다. 정확히 해석하려면 직감에 의존해야 할 때도 많다.
- 상대의 음성 언어와 함께 몸짓 언어까지 들으면 진실을 파악할 수 있고 표면적 언어에 휘둘리지 않게 된다. 상대의 몸 전체에 귀를 기울이면 내 몸 전체가 신호를 받는다. 표현 못 하는 분노는 위장을 뒤틀고, 두려움은 가슴을 조인다. 말하지 못한 고통은 목이 메이게 한다. 우리의 몸은 그런 신호들을 수신하는 안테나가 된다. 듣는 것은 양방향 도로와 같다. 내가 집중해서 들으면 상대도 집중해서 들어준다. 이런 의식적 듣기를 추구하다 보면 사람들과 더 깊이 교류하게 된다. 관계가 그저 표면에 머무르지 않고 우리는 더 진실한 자신이 되며 상대 역시 그렇게 된다.
- "잘 듣는 사람이 되려면 공부와 연습이 필요해요." 스코티의 말이다. "저절로 되는 일이 아니거든요. 배우고 연습해야죠. 좋은 대화의 기술이라는 게 존재해요. 주의 깊게 귀를 기울이면 상대도 똑같이 하게 돼요. 우리는 좋은 행동을 따라 하거든요. 하지만 제대로 듣지 않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요. 자기 생각에 너무 빠져 있어서 '상대방 차례, 내 차례'의 신호를 잡는 게 아니라 상대방이 말하고 있을 때 자기가 다음에 할 말을 연습하죠. 대화 상황에 온전히 들어가지 않는 거예요.”
- 의식적 듣기를 훈련하면 거부하지 않게 된다. 상대의 현실을 받아들이는 데 집중하는 동안 우리 자신의 현실이 더 날카롭게 다가오는 걸 발견하곤 한다. 스코티의 말처럼 잘 듣지 않는 상대와 말하게 되면 몸에 저절로 힘이 들어간다. 상대가 내 말을 듣지 않는다는 게 본능적으로 느껴진다. 이런 대화는 공허하다. 앞으로 나아가는 대신 그만 헤어지기를 택하게 된다. "이제 가봐야 해서요."라고 예의 바른 핑계를 대면서.
- 타인의 말을 잘 듣는다고 해서 나 자신을 듣는 일이 중단되는 것은 아니다. 의식적 듣기는 나를 힘들게 하는 일이 아니다. 오히려 현실적이어서 어디서 누구와 특별한 경험을 나눌 수 있을지가 정확히 판별된다. 상대에게 귀를 기울이면서 그가 얼마나 깊이 참여할 수 있는지 알아내고, 제대로 반응하는 사람에게 주의를 집중하는 것이다. 그런 상대는 믿음의 거울이 되고 공명판이 되어 나의 잠재력과 힘을 그대로 비추어 보여준다.
- 페그는 그런 과정에서 발견한 것을 설명한다.
"사람들은 외로워요. 존재와 가치를 인정받고 싶어 하죠. 일상에서는 그걸 얻기 어렵고 자기 말을 누가 들어준다는 느낌도 받지 못해요. 그래서 다들 외톨이라고 느끼는 거예요. 인터뷰는 그와 완전히 다른 가치를 확인할 수 있는 경험이죠."
그녀는 생각을 더 발전시킨다.
"우리 사회에는 표면적인 대화, 예의 바르지만 얕은 대화가 너무 많아요. 귀중한 시간을 낭비하는 거예요. 많은 사람이 그냥 표면에만 머물고 깊이 들어가지 않으려 하죠. 그냥 보기에 멋지게 만들어낼 뿐이에요. 요즘에는 갈등 요소가 워낙 많다 보니 사람들이 잘 들을 줄 모르고 그저 반응하기만 해요. 참 어렵고 슬픈 상황이죠."
- "잘 들으려면 아주 많이 인내해야 해요. 끼어들고 싶은 생각, 상대가 떠올리지 못하는 단어를 알려주고 싶은 생각, 더 잘 알기에 정리해주고 싶은 생각이 굴뚝같죠. 상대가 스스로 생각을 완성하도록 시간을 주는 건 그래서 어려운 일이에요. 인내야말로 대화의 핵심이에요."
- "듣는 것은 우리가 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일이죠. 잘 들으려면 상대와 연결되어야 해요. 듣기는 연결의 핵심이에요. 그저 듣는 시늉만 하는 사람들이 참 많아요. 실은 전혀 듣지 않고 어떻게 대답할지 궁리하면서 기다리는 거죠. 이건 대화를 통제하려는 행동이에요. 진정한 듣기는 통제를 포기하는 것, 그 순간에 온전히 머무는 것이에요. 경청은 강력해요. 그 어떤 상호작용보다 중요하죠. 자신만의 세계에서 벗어나 주변과 연결되는 방법을 가르쳐줍니다."
대니얼이 말을 멈추고 차를 한 모금 마신다. 집중해서 생각하느라 눈썹 근처에 주름이 잡혀 있다. 그가 다시 입을 연다.
"대체로 자기 의견을 밀어붙이기 위해 귀를 기울이는 경우가 많죠. 진정한 듣기는 자기 의견을 포기하고 상대의 생각에 온전히 빠져들어 이해하는 거예요. 상대의 마음속에 있는 그 무언가에 귀를 기울이는 거죠."
식사가 도착한다. 먹느라 잠시 침묵이 흐른다. 대니얼이 다시 대화를 잇는다.
"경청은 원을 그리는 거예요. 원은 개방적이고 수용적인 도형이죠. 그 상태에서 상대가 의도하는 대로 이끌려가는 거예요."
- "듣지 않고 자기 말만 하는 사람을 만나면 내 마음도 느슨해지곤 해. 적극적으로 듣기와 말하기에 집중하는 두 사람이 없다면 의미 있는 대화의 가능성은 사라지고 말지. 독백을 들어줘야 하는 상황이 오면 난 최대한 빨리 거기서 빠져나오려고 해."
그가 말을 멈추었다가 다시 계속한다.
"좋은 듣기가 없는 대화, 독백이 반복되는 대화는 사람을 불편하고 지치게 만들어. 그럴 때는 더 이상의 대화를 시도하지 않지. 나는 잘 듣는 사람 그리고 솜씨 좋게 말하는 사람과의 대화를 늘 고대해. 그런 대화는 오래 기억에 남으니까. 그런 대화에 독백은 없어. 양쪽이 똑같이 참여하고 상대의 의견을 기꺼이 수용해. 대화하는 상대에게 귀를 기울이는 건 존중의 문제야. 인간으로서 서로를 존중하고 상대의 시간과 공간을 침범하지 않는 일이야."
- "하지만 모든 사람의 말을 잘 들을 수는 없어요. 그리고 그럴 만한 가치가 없는 사람에게도 귀를 기울여야만 하는 건가요?"
집중해서 들어야 한다고 처음 설명할 때면 이런 질문이 자주 나온다. 이는 오해에서 나오는 질문이다. '그저 듣기만 할 뿐 판단하지 말라'라는 식으로 내 설명을 받아들인 것이다. 하지만 잘 듣는 것은 우리의 판단을 훨씬 더 명료하게 만든다. 온전히 들음으로써 무엇에 집중하지 않아야 하는지, 더 나아가 무엇을 멀리해야 하는지 알게 된다. 듣기란 우리 자신에게 귀를 기울이는 것이기도, 그래서 듣지 말아야 할 사람이 누구인지에 대한 우리의 직관을 더 키우는 것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 청하지 않은 충고만큼 대화를 빠르게 망가뜨리는 것도 없다. 부탁하지 않은 가르침에는 오만함이 숨어 있다. '네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너보다 내가 더 잘 알아'라는 메시지가 담겨 있다. 거부감이 드는 건 당연하다. 잘 듣는 일은 오만함이 아닌 존중을 토대로 한다. 청하지 않은 충고는 상대의 귀를 닫아버린다. 이건 폭력의 일종이다.
- "도와주려고 했을 뿐이야."
충고를 하는 사람이 흔히 하는 말이다. 하지만 이건 진짜 도와주려고 한 말이 아니다. '너는 이 문제를 해결할 능력이 없어'라는 뜻이다. 이런 말은 상대를 돕기는커녕 무너뜨린다. 자기 확신이 아닌 자기 의심을 불러일으키고, 심각한 경우 상대의 반항심을 자극해 분노가 끓어오르도록 한다.
- "그러려는 의도가 아니었어."
좋은 의도에서 그렇게 말했다는 친구들은 때로 충고 아래에 숨은 오만함을 스스로 깨닫지 못한다. 최근에 자기가 머리를 산뜻하게 잘랐다고 해서 긴 머리를 뿌듯해하는 친구에게도 머리를 자르라고 강요한다면 어떨까? 그저 솔직한 거라고? 이건 자기 방식이 최고라고 말하는 것과 다름없다. "난 머리를 짧게 잘랐어."라고 말하는 것과 "너도 머리를 짧게 잘라야 해."라고 말하는 것은 다르다. 단순히 개인의 경험을 공유하는 말투는 충고하는 말투가 결코 아니다. 우리 각자는 원하는 바가 다르고 원하는 바를 이루기 위한 전략도 다르다.
- 먼저 요청하지 않은 조언은 "들어봐. 네가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려줄게."라는 말로 시작되곤 한다. 그럴 땐 "내가 어떻게 해야 하는지는 나도 알아."라고 바로 끊어버리는 방법도 있다. 그렇게 말했는데도 계속 충고를 하려는 친구가 있다면 "그렇게 날 고쳐주려고 하면 내가 고장 난 사람이라는 뜻이 되는 거야."라고 말해보면 어떨까? "아냐. 그런 뜻은 전혀 아냐." 친구는 아마 이렇게 부정할 것이다. 당신이 던진 말에 깜짝 놀라고 충격을 받을지도 모른다. 그저 도와주려고 했을 뿐인데 그렇게 심한 말을 한다고 서운해 할 수도 있다.
- 그 친구는 모를지라도 그 도움은 실상 자기를 과시하는 행동이다. 상대보다 더 똑똑하고 더 유능하다고 느끼고 싶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더욱이 도와주려고 하는 행동이라니, 명목도 훌륭하지 않은가? 그러나 진정한 듣기는 상대를 고치려 하지 않으면서 귀를 기울이는 것 그리고 우리를 깎아내리려는 상대에게 맞서 자신을 보호하는 것이다.
- 20분 기법이란 타이머를 20분에 맞춰두고 그 시간 동안만 집중한다는 전략이다. 이렇게 하면 일을 시작하기 쉽다. 딱 20분만 하면 되니까 부담이 없다. 그리고 그렇게 시작해서 계속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 지금까지 주변 환경 그리고 다른 사람들에게 귀 기울여 듣는 일에 대해 살펴봤다. 이번 주에는 또 다른 차원의 듣기를 연습해보자. 내 안의 더 높은 자아에 귀를 기울여보는 연습이다. 살아가며 크고 작은 일들을 경험하는 과정에서 우리 자신을 위해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른지 깨달았던 적이 다들 있을 것이다. 이번 주에는 그런 깨달음을 주는 더 큰 자아에 집중하는 연습을 해볼 것이다. 더불어 인생에서 중요한 의사결정 상황이나 당장 어떻게 행동할지 고민되는 상황에서 그 큰 자아의 도움을 받는 방법도 살펴보도록 하자.
- 나를 더 좋은 상황으로 이끈다는 믿음은 헛되지 않다. 그 목소리를 따르기로 했기 때문에 인도받는 것이다. 들리는 것을 잘 듣고 따르면 자기 신뢰가 습관이 된다. 많은 경우 우리는 부드럽게 행동하라는 목소리를 듣는다. 또는 아무 행동도 하지 말라는 소리가 들릴 때도 있다. 나는 그 자리에서 바로 확인하기 위해 검토 질문을 만들어 두었는데, 단순한 질문이지만 그 답은 깊이 있는 것일 수 있다. 살면서 어려운 상황에 마주쳤을 때 자신에게 다음과 같이 질문해보자.
1. 무엇을 알아야 하는가? 2. 무엇을 받아들여야 하는가? 3. 무엇을 시도해야 하는가? 4. 무엇을 슬퍼해야 하는가? 5. 무엇을 기뻐해야 하는가?
이 질문들에 답함으로써 우리는 자신이 누구인지, 어떤 존재인지 알 수 있다. 질문들은 객관적이다. 괜한 말이 섞이지 않았으며 말투는 사실적이고 건조하기까지 하다. 이 책을 쓰면서도 나는 스스로에게 이 질문들을 던졌다. 그리고 힘이 되는 답을 얻었다.
- '영감을 받다'라는 표현은 예술가들이 자주 말하고 또 경험하는 현상이다. 그렇지만 누구든 영감을 느낄 수 있다는 게 중요하다. 프로젝트가 실행될 때, 갑자기 아이디어가 떠오를 때 미처 받아쓰기 어려울 정도로 생각이 빠르게 뻗어나갈 때 등 이보다 훨씬 덜 극적으로 찾아오는 영감도 있다. 책은 한 번에 한씩 진도가 나간다. 작가의 삶은 단어들을 더하는 일상으로 이루어진다. 하루를, 한 번의 찰나를, 한 문장을 따라 살아가면서 우리는 영감을 얻는다.
- 그리고 우리 개인의 문제에 대해 영웅이 해주는 말을 들으면서 우리의 삶이 정말로 중요하다는 걸 깨닫는다. 우리가 겪는 고민과 갈등이 가장 높은 곳에서도 관심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걸 확인한다. 그 고민과 갈등 그리고 해결은 절대로 사소하지 않고 중대한 일이다.
- 처음에는 이게 정말 영웅의 목소리인가 의심하는 생각이 들 수 있지만 일단 답변을 듣게 되면 그가 평소 말해왔던 메시지와 지혜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우리가 걸어갈 길, 지혜로운 길을 안내해준다. 그들의 조언은 더 높은 자아에게 들을 때와 마찬가지로 단순하고 직접적이다. 그 바탕은 사랑이다. 개인적으로 영웅을 만나고 나면 그가 한층 더 영웅적으로 느껴진다. 우리의 멘토가 되어주는 이 영웅의 멘토는 어쩌면 창조주 인지도 모른다. 영웅에게 물어보기에 너무 사소한 문제란 없다. 영웅들의 지혜와 인내는 무한한 듯 보인다. '~~에 대해 어떻게 해야 할까요?'라고 질문을 던지면 영웅은 그 문제와 우리를 모두 배려해 대답해준다. 처음에는 지혜로운 응답에 깜짝 놀랄 수 있지만 시간이 가면서 그런 응답을 기대하게 된다.
- 영웅의 조언은 현재 상황에 정확히 들어맞는다. 그는 문제에 집중하지 말고 믿음을 가지라고 조언해준다. "우리가 보살펴주니 당신은 안전합니다."라는 격려도 해준다. 그러면 서서히 안정감이 생기기 시작한다. 자신의 영웅에게서 듣는 조언은 충분히 믿을 만하다. "여기 있는 많은 사람이 당신을 염려하고 있어요."라는 말에 안심하게 된다.
- 이런 이끌림에 힘입어 우리는 믿는 법을 배운다. 영웅들뿐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우리를 찾아오기 시작한다. 우리는 우리의 행복을 걱정하는 새로운 존재, 즉 더 높은 힘을 느끼기 시작한다. 그 높은 힘에 구하면 다정한 메시지를 들을 수 있다. 높은 힘에 비하면 우리는 참으로 작은 존재다. 어른의 팔에 안긴 아기와도 같다. 처음에는 그런 상황에 거부감이 들 수 있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점점 편안해지고 감사한 마음이 든다. 소중하게 대접받는 상황을 소중히 여기게 된다.
- 영웅들은 우리를 친절하고 다정하게 바라본다. 우리는 그 연결을 의심할지 몰라도 영웅들은 연결을 의심하지 않는다. 우리가 손을 뻗으면 그쪽에서도 손을 뻗어온다. 질문을 던지면 즉각 배려심 깊은 답변을 해준다.
- 책 읽기도 일종의 듣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작가의 말을 '듣는' 것이니까요. 우리 주변에는 지혜를 주는 책들이 있습니다. 작가가 지혜의 영감을 받아쓴 책이죠. 그런 책을 한 권 골라보세요. 어떤 책을 골랐나요?
- 나는 지금까지 책을 40권 이상 냈다. 어떻게 그게 가능했냐고 누군가 물으면 나는 '들었기' 때문이라고 답한다. 내가 할 말이 많은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이도 있지만 그렇지는 않다. 내가 글을 쓰는 과정을 최대한 정확하게 묘사해보면 나는 들은 것을 쓴다. 글쓰기는 사실 능동적 듣기의 일종이다. 듣기를 통해 무엇을 써야 할지 알 수 있다. 그러니 쓰기는 기껏해야 받아쓰기인 셈이다. 우리 내면의 목소리, 귀 기울이면 말하는 목소리가 이미 존재한다. 고요하지만 분명하게 우리를 인도하는 이 목소리는 단어들을 이어가며 생각의 흐름을 명료히 펼쳐낸다.
- 의식적 듣기에 집중함으로써 우리는 잘 듣는 법에 대해 알게 된다. 이 방법의 시작은 '들리는 것'이다. 귀를 기울이면 자연스럽게 들리기 시작한다. 드러나는 진실에 귀를 기울이면서 우리는 자기 자신에게 점점 진실해진다. 솔직함이 현실이 된다. 자기 영혼을 엿보게 된다. "너 자신에게 진실하라." 셰익스피어는 이렇게 조언했다. 자신에게 진실할 때 남들에게도 더 진실하게 대하게 된다. 듣기는 우리를 이렇게 연결해준다. 듣기는 우리를 함께 묶어준다.
- 모닝 페이지를 쓰면서 이것이 최고의 듣기 방법임을 알게 되었다. 무엇을 써도 좋다. '고양이 배변패드 사는 걸 잊어버렸다.' '언니한테 전화해야 했는데 깜박했다.' '차 안에서 이상한 소리가 나고 있다.' '제프가 내 사업 구상으로 대출받은 것이 정말 싫다.' '난 지쳤고 잔뜩 짜증이 났다.' 잘못된 방향은 없다. 아주 사소한 것부터 심오한 것까지 다채로운 내용이 나올 수 있다. 모닝 페이지는 의식의 구석구석을 쓸어주는 작은 먼지 솔과 같다. 내가 좋아하는 것, 내가 좋아하지 않는 것, 내가 원하는 것, 내가 별로 원하지 않는 것 등을 상세하게 알려준다. 그리고 모닝 페이지는 내밀하다. 우리가 정말로 어떻게 느끼는지 보여준다. 예를 들면 '괜찮다'라는 말이 무슨 뜻인지 생각하게 한다. '괜찮다'라는 건 썩 좋지는 않다'라는 걸까, 아니면 '좋다'라는 걸까?
- 모닝 페이지에 새로운 자기 발견과 함께 '내가 그렇게 느끼는지 몰랐다'라는 문장이 단골처럼 등장한다.
- "몇 년 동안 심리치료받은 것보다 겨우 몇 주 동안 모닝 페이지를 쓰며 더 많이 배웠어요." 한 남성 체험자의 말이다. 이는 모닝 페이지가 '무방비의 자신'을 드러내기에 가능한 일이다. 융 심리학에 따르면 잠에서 깰 즈음부터 자기 방어가 작동하기까지 45분 정도의 시간이 있다고 한다. 방어가 해제된 자신을 붙잡고 대화하면 진실을 말할 수 있게 되고 그 진실은 자아가 해석한 상황과 전혀 다를 수 있다. 진짜 감정에 귀를 기울이고 기록함으로써 우리는 솔직함을 습관화한다. '난 괜찮아'를 깨고 전혀 괜찮지 않다는 느낌을 드러낸다. 진짜 감정을 발견하면서 진짜 자신도 되찾는다. 그리고 그 진짜 자신은 아주 멋지다.
- "나 자신과 사랑에 빠졌어요!"라는 탄성도 자주 나온다. 그렇다. 모닝 페이지는 나 자신을 사랑하게 만든다. 떠오르는 모든 생각을 받아들이기 때문에 자기 수용이 극한의 수준까지 도달한다. 심지어 이 생각 저 생각에 귀를 기울이다 보면 다음은 무엇일지 설레면서 기다리게 된다. 새로운 생각 하나하나가 자신의 또 다른 한 겹을 열어준다. 한 겹이 열릴 때마다 자신에 대한 사랑이 깊어진다.
- '초능력 같은 건 믿어본 적이 없어요.' 최근에 받은 편지의 내용이다. '하지만 이제는 중요한 일이 일어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모닝 페이지에는 묘한 힘이 있어요.' 이 묘한 힘은 즉각적으로 발현된다. 무언가를 쓰면 그 무언가가 실제 삶에서 나타나는 것이다. 바람이 현실이 되고 쓸수록 이루어진다는 생각이 의식의 지침이 된다. 모닝 페이지를 쓰면서 우리는 더 솔직해진다. 진정으로 바라는 바를 쓰게 되고 그대로 실현되는 걸 발견한다.
- '전 바라는 대로 이루어진다고 절대 믿지 않았어요.' 어느 회의론자가 보낸 글이다. '하지만 이제 믿게 되었죠.' 나 역시 그렇다. 나는 영화를 제작하고 싶은 간절한 마음을 모닝 페이지에 쓴 적이 있다. 그리고 이틀 후 저녁 모임에서 우연히 영화제작자 옆자리에 앉게 되었다. 그는 영화 제작을 가르치기도 하는 사람이었다. 내 꿈을 털어놓았더니 그가 "교육 프로그램에 한자리가 남아 있어요. 원하면 참여하시죠."라고 말했다. 당연히 원하고말고! 다음 날 모닝 페이지에는 감사의 마음을 적었다.
- 모닝 페이지의 내용은 무엇이든 가능하지만 감사는 특히 좋은 소재다. 감사할 거리를 찾다 보면 더 많은 감사가 생겨난다. 쓸거리가 없어 고민이라면 감사한 일을 찾아 끄집어내 보자. 술을 하루 마시지 않았다면 취기 없이 멀쩡한 상태에 감사할 수 있다. 열심히 운동하는 사람은 건강한 몸에 감사할 수 있다. 어떤 삶이든 감사할 수 있다.
- 모닝 페이지는 닫힌 내면의 문을 열어준다. 미지의 세계였던 삶은 이제 알려진 곳이 된다. 감정은 신비로운 것에서 명료한 것으로 바뀐다. 무엇을 왜 느끼는지 알게 된다. 상황의 더 큰 틀 안에서 우리가 어떤 위치인지 드러난다. 잘 듣는 연습은 우리가 무엇을 알아야 하는지 알려준다. 사건들이 갑자기 휙 닥쳐오는 일은 없다. 직관력이 높아지면서 다가오는 상황의 전체 모습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친구들은 어떤 상황에서도 침착한 당신의 모습에 놀랄 것이다. 하지만 우리에겐 놀랍지 않은 일이다. 이는 모닝 페이지가 안겨준 결실이다. 모닝 페이지가 조기 경보 체계로 작동하는 것이다. 반갑지 않은 상황의 단서가 드러난다. 시간이 가면서 초능력에 가까울 정도로 단서를 잘 잡아내고 자신의 능력을 신뢰하게 된다. '무언가 기묘한 느낌'에 주의를 기울이고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것이다.
- 이런 경청의 길을 여행하며 우리는 자신이 안전하다는 확신을 키워간다. 위험이 다가오고 있다는 경고를 자주 듣겠지만 동시에 우리 곁에 선한 의도를 지닌 어떤 존재가 있다는 것을 믿게 된다. 그 존재는 모닝 페이지를 통해 우리에게 말한다. 그리고 그 어렴풋했던 느낌은 믿을 만한 길잡이라는 것이 밝혀진다. 예감은 터무니없는 것이 아니다.
- '이걸 해봐.' 모닝 페이지는 우리에게 제안한다. 실제로 행동의 절반은 기대에서 오니 말이다.
- 강의를 진행할 때 아티스트 데이트는 모닝 페이지와 달리 자주 저항에 부딪힌다. 노동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우리 문화에는 ‘놀이의 중요성' 같은 것이 끼어들 수 없다. 모닝 페이지를 소개할 때 "훌륭한 방법이긴 하지만 아침에 45분 일찍 일어나라니, 악몽이 아닐 수 없지요."라고 말해도 사람들은 그 유용성을 믿고 기꺼이 시작한다. 반면 아티스트 데이트를 소개하며 "마음을 끄는 무언가를 매주 한두 시간 동안 해보세요. 쉽게 말해서 놀아보라는 겁니다."라고 말하면 곧 저항하는 눈빛들을 보게 된다. 노는 데서 뭐 좋은 게 나올 수 있다는 말인가? 창조성을 키우려면 노력해야 하는 게 아닌가? 놀면 아이디어가 나온다는 말이 무슨 뜻인지 사람들은 잘 이해하지 못한다.
- 미리 계획해서 놀아야 한다는 것을 받아들이기는 사실 놀랄 만큼 어렵다. 대체 뭘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하소연이 여기저기서 나오곤 한다. 이런 하소연은 하고 싶은 놀이의 부재에서 온다. 너무 진지한 것이 문제다. 누가 봐도 완벽한 아티스트 데이트를 찾아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말도 안 되는 기대다. 그럴 때 나는 아티스트 데이트 방법 다섯 가지를 머리에 떠오르는 대로 휘갈겨 써보라고 권한다.
- 아티스트 데이트 목록은 순전히 즐거움을 위한 것이다. 진지함은 필요 없다. 어른의 즐거움, 예를 들어 컴퓨터 강좌 듣기 같은 것을 하는 시간이 아니다. 이런 강좌는 아티스트 데이트가 아니다. 요구하는 바가 많기 때문이다. 우리가 얻고자 하는 건 순수한 재미다. 너무 힘든 것은 안 된다. 또 반드시 혼자 해야 한다는 점을 꼭 기억하라. 아티스트 데이트에서는 자신과 대면해야 한다. 이 모험은 남과 나누기 위한 것이 아닌 개인적인 것이다. 당신이 당신 자신하고 나누는 비밀 선물이다.
- 예술 활동을 하면서 우리는 내면의 우물을 길어 올린다. 안에 있던 이미지들을 차례로 끌어내는 것이다. 그리고 아티스트 데이트를 통해 그 우물을 다시 채운다. 의식적으로 이미지 창고가 보충된다. 원하는 대로 보내는 시간은 제값을 한다. 다음번에 예술 활동을 할 때 풍족해진 우물을 발견할 것이다. 이미지도 훨씬 쉽게 만들어지고, 너무 많아 골라야 할 지경이 된다. 우리는 그중 제일 좋아 보이는 것에 귀를 기울일 수 있다.
- 아티스트 데이트에서 우리는 경험에 집중한다. 이 집중은 기쁨을 안겨준다. 가령 이탈리아 식당을 방문하는 일은 우리의 감각을 채워줄 것이다. 풍성한 향기와 우아한 맛이 입안을 채운다. 레몬즙을 뿌린 소고기와 막 구워낸 마늘빵이 미각을 자극한다. 집으로 돌아와 전혀 다른 주제에 대해 글을 쓴다고 해도 그 식사처럼 풍성한 감각으로 발견한 이미지들이 가득 떠오를 것이다.
- 성공한 아티스트 데이트가 가져오는 보상이 늘 선형적인 것은 아니다. A라는 아티스트 데이트에서 느낀 것들로 Z에서 결과를 내기도 한다. 이렇듯 비선형적이기 때문에 아티스트 데이트가 모닝 페이지보다 더 연습하기 어려운 것일지도 모른다. 모닝 페이지는 일이고 우리는 노동에 익숙한 사람들이다.
- 서로 다른 물고기의 본성에 주의를 기울이는 것은 집중하는 행동이다. 집중은 아티스트 데이트의 기본 특징이다. 아티스트 데이트에서 우리는 대상의 개별적 특성에 귀를 기울이고 기억 창고에 기록한다. 그 후 예술 활동을 하게 되면 길어 올릴 우물물이 가득 차 있다. 기억 속의 세부 사항들이 예술적 요소로 옮겨지고 이 예술적 요소가 관객을 사로잡는다.
- 사진작가 로버트 스티버스 Robert Stivers는 전시회의 작품 배열에 극도로 신경을 쓴다. 작품의 위치는 작가에게도, 전시회를 찾은 관객에게도 중요하다. 그의 사진 작품은 기이한 것에서 신비로운 것까지 다양하다. 바람에 흔들리는 해바라기부터 홀로 서 있는 야자수에 이르기까지 사진 속 이미지들은 아름답기 그지없다.
"제 작업은 결국 잘 듣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눈길을 사로잡는 무언가는 귀에 들어오는 속삭임과 같죠. 주의 집중의 문제인 겁니다."
사막을 가로질러 운전하면서 스티버스는 차창에 스친 장면을 카메라로 포착한다. 그리고 놀라운 이미지가 작품으로 남는다.
"제 사진 몇 장은 마음에 듭니다." 그는 늘 겸손하게 말하지만 그의 시선은 날카롭고 세상의 인정을 받는다.
- "신을 느낀 것 같아요!" 이렇게 탄성을 내뱉은 이도 있다. 신이라 부르든, 그 어떤 이름으로 부르든 다 좋다. 더 크고 자비로운 무언가를 느끼는 것은 아티스트 데이트가 자주 안겨주는 선물이다. 이 만남을 통해 우리는 우리 자신에게 친절해지고 이때 성스러운 자비의 마음이 생겨난다. 기독교 문화권에서 신은 벌을 내리는 존재로 여겨진다. 그래서 우리가 심판하고 처벌하는 신에 익숙하다면 이제는 자비로운 신의 존재를 확립해야 한다. 이 새로운 신은 친절하고 관대하며 유머감각까지 넘친다. 신이 지녔으면 하는 특징을 적다 보면 그런 자비로운 신이 이미 존재한다는 걸 깨달을지도 모른다.
- 작가 존 니콜스도 열심히 걷는 사람이다. 그는 뉴멕시코의 타오스 지역에 사는데 매일 근처의 작은 산을 오르는 것이 창조력의 근원이라고 말한다. 유랜드처럼 니콜스도 '홀로' 매일 걷는다. <반항의 계절 The Milagro Beanfield War>, <푸키 The Sterile Cuckoo> 등 영화화된 작품을 포함해 열 권이 넘는 책을 낸 그는 유머가 넘치는 사람으로 이 역시 걷기 덕분이라고 한다.
- 니콜스처럼 유랜드도 낙천적이다. 그녀는 "자신을 늘 밝게 빛나는 존재, 신과 그 천사들이 계속 메시지를 보낼 만큼 중요한 존재라고 생각하세요."라고 말하곤 한다. 걷기가 더 높은 정신적 힘을 의식적으로 깨닫게 해 준다는 것이다. 그녀는 걷기의 첫 번째 선물이자 가장 좋은 선물은 '신과 그 전달자들'이 자신과 연결되어 있다는 깨달음이라고 했다. 걸으면서 우리는 더 높은 정신적 힘을 경험하고 예감, 통찰, 직관을 갖게 된다. 걷는 습관을 들이면 더 높은 곳에 내면의 귀를 열게 된다.
- 이처럼 유익한 점이 많은 걷기는 전통적으로도 중요하게 여겨졌다. 호주 원주민들은 걷기 여행을 떠나곤 했으며 미국의 인디언들도 영적인 세계에 다가가기 위해 걸었다. 불교에서도 걷기 명상이 중요하다. 성 아우구스티누스는 "걸으면 해결된다. Solvitur ambulado."라는 말을 남겼다. 무엇이 해결된다는 것일까? 아마 개인적이거나 직업적인 갈등 상황이 아닐까.
- 음악교육학자 돈 캠벨 Don Campbell은 소리 치료 전문가다. 그의 책 <침묵의 외침 The Roar of Silence>은 이 분야의 고전이며 이후 출간한 <모차르트 이펙트 The Mozart Effect>는 음악이 기분뿐 아니라 IQ에도 영향을 미친다는 점을 설득력 있게 다룬다. 모차르트 음악을 들은 어린이는 더 행복하고 밝아진다고 한다. 성인 역시 모차르트 음악을 접하면 더 온화해진다는 것이 캠벨의 의견이다. 시인 존 발로 John Barlow는 "음악이 감정상태를 대변한다는 점을 진지하게 받아들여라. 이 세상에서 당신의 몸을 해방하고 다음 세상에서 당신의 영혼을 구원하라."라고 말했다.
- 음악은 우리를 한 차원 높이 끌어올린다. 음악학자들은 음악이 신에게 가까이 가게 해주는 최고의 예술이라고 설명한다. 어떤 음악은 정말로 놀라운 경험을 선사한다. 가령 헨델의 <메시아>는 감상하는 이에게 예술적 경험을 제공하는 동시에 성스러운 영역으로 인도한다. 파헬벨의 <카논 Canon in D>은 불안을 달래고 영혼을 위로한다. 프란츠 슈베르트의 <아베마리아>는 영혼의 길을 열어 선율이 올라갈 때 듣는 사람도 함께 더 높은 곳으로 끌어올린다.
- 의식적 듣기의 과정에서 음악은 필수적인 동반자다. 음악의 영향력을 인식하게 되었다면 스스로 즐거운 듣기 프로그램을 만들 수 있다. 소리의 효과에 주의를 기울이며 기분에 맞는 음악을 선택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드럼 연주는 성스러움에 다가서게 하는 여행의 음악이라 할 수 있다. 미키 하트와 타로 하트의 <다시 태어나게 하는 음악 Music to Be Born By>은 우리를 자극하고 에너지를 높였다가 다시금 고요히 가라앉게 한다.
- 플루트 음악은 외로울 때 친구가 된다. 데이비드 달링과 민속 플루트 앙상블 Native Flute Ensemble이 만든 음반 <제례의 언덕 Ritual Mesa>에는 마음을 빼앗는 선율이 가득하다. 교향악의 웅장한 연주는 또 어떤가. 베토벤의 교향곡 8번과 오페라 <피델리오 Fidelio>는 굉장하다. 바흐의 <골드베르크 변주곡 Goldberg Variations>이 펼치는 빈틈없는 멜로디는 우리의 마음을 일깨운다. 우리는 들으면서 동시에 배운다.
- 귀 기울여 들을 때 우리는 지금 이 순간에 존재한다. 우리는 음표 하나하나가 진행되는 순간에 집중한다. 수많은 스승이 한결같이 '현재에 머무름'의 중요성을 말했다. 틱낫한은 매 순간에 집중하는 것이 얼마나 큰 유익을 가져오는지 설파했다. 틱낫한은 '마음챙김' mindfulness이라는 불교 용어로 말했지만 나는 더 일반적인 표현으로 ‘마음느낌' heartfeltness이라고 하고 싶다. 매 순간이 열리는 데 귀를 기울이면 저절로 마음에도 귀 기울이게 된다. 모든 판단을 배제하고 내면으로부터 들리는 소리를 듣는 것이다. 틱낫한은 차 한 잔의 좋음에 마음을 기울이며 마시는 사례를 든다. 아마도 우리는 그럴 때 감사한 마음을 느낄 것이다. 좋은 차를 좋은 마음으로 마시며 우리는 그 순간에 존재한다.
- 허둥대며 사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 그들은 이 일에서 저 일로 뛰어다니며 속도가 생명이라고 믿는다. 하지만 정말 그런가? 속도를 늦추면 훨씬 편안한 리듬으로 삶이 이어진다. 자신이 생각하는 소리가 들린다. 우리는 우리 삶의 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그래야 삶이 더 편안하고 생생해진다.
- "훌륭한 연기는 잘 듣는 거야." 스코티처럼 닉도 침묵하는 순간이 많은데 그 순간마다 그는 온전히 상대에게 집중한다. 그는 우선 귀 기울이고 그다음에 반응한다. 그의 표현에 따르면 이는 '그 순간에 머무르는 것'이다. 대화는 점점 깊어지지만 중심을 잃지 않는다. 별로 힘이 들지 않는 느낌인데 이는 의식적 듣기가 습관이 된 덕분이다.
- 베테랑 배우이자 친구인 제니퍼 배시는 이렇게 말한다. "요령을 알려주자면, 듣는 훈련을 하는 거야. 매일 세 사람에게 전화를 걸어 어떻게 지내는지 물어보는 거지. 내 이야기는 하지 않고 그저 상대의 소식을 묻는 거야. 상대에게 집중하면 자기도취에서 벗어날 수 있어." 배시의 방법은 삶을 풍요롭고 깊이 있게 만들어준다. 그녀는 너그러운 친구이고 그 너그러움은 높은 평가를 받는다. 그녀의 친구 관계는 넓고도 깊다. 주의 깊은 듣기가 만들어낸 결과다.
- 내적 인도를 따르지 않을 때마다 우리는 에너지와 힘을 잃고 슬픔에 빠지게 된다. <삭티 거웨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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