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 : 정영욱
출판 : 부크럼
출간 : 2021.05.14
어디선가 언급되는 것을 접하고 궁금증이 생겨 읽어보았다.
'잘했고, 잘하고 있고' 다음이 어째서 '잘할 것이다'가 아니라 '잘 될 것이다'인지.
어째서 과거와 현재는 주어 주체적으로 표현하고 미래만 수동적으로 표현했는지.
책을 덮은 지금 나의 생각에는, 지금까지 무던히도 애써왔으니 앞으로는 힘들이지 않아도 다 잘 풀려나가리라는 저자의 위로와 덕담을 전하고 싶었던 것 같다.
예전의 나는 이런 책들을 참 싫어라 했다. 감정적인 위로보다는 현실적인 조언을 더 필요로 하는 편이었다. 지금도 여전히 정말 잘 맞는다고 느끼지는 않지만, 다만 지금은 이런 위로와 공감이 필요한 사람들이 있다는 걸 알고 있다. 그런 사람들에게, 주위가 나 같은 사람들이라 위로를 기대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이 책은 속 깊은 곳을 이해받은 듯한 다정함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사람마다 필요로 하는 것은 다 다르고, 일어서는 방법도 다 다른 법이니까.
누군가에게 짧은 순간이나마 따스함을 느끼게 해 준다면, 그에 더해 다시 털고 일어날 힘이 생기게 해준다면,
저자의 말처럼 그거면 된 것이 아닐까.
- 잘 버티고 있는 것 같다가도 뜬금없이 위태로운 날이 있다. 잘 붙잡고 있는 것 같다가도 마음이 벼랑 끝으로 추락하는 날이 있다. 잘 이어가고 있다가도 무언가 끊어질 것 같은 날이 있고, 잘 사랑하고 있다가도 혼자가 된 기분에 긴 새벽 외로움에 시달리기도 한다. 우린 이처럼 아무 일이 없더라도 문득, 부정에 둘러싸여 살아간다.
- 그런 위기의 때가 오면 나는 마음속으로 마법의 주문을 걸어 본다. "잘했고, 잘하고 있고, 잘 될 것이다."라고. 그러니까, 잘잘잘. 뭐든 잘잘잘 될 거라고 말이다.
- 잠깐, 우리의 마음은 아무 일이 일어나지 않아도 갑자기 추락하기도 한다니, 아무 일도 없는데, 무너질 것 같다니. 생각해보면 그랬다. 누가 나를 해코지하지 않더라도, 어떤 긴박한 일이 일어나지 않더라도, 앞으로의 걱정 따위의 일을 떠올리며, 우린 그렇게 추락한다. 지금 당장 아무 일이 일어나지 않았음에도 슬쩍 휘청이기 바쁘다. 분명, 잘 나아가고 있음에도 말이다. 그러니 나는 말할 수 있다. 잘 안 되고 있더라도, 잘 될 것이라고 해도 된다. 아무 일이 없어도 무너지기 일쑤인 우리의 삶이 있다면, 무너지고 있어도 아무 일 없는 듯 '잘되고 있다.' 말해 줄 수 있는 삶도 분명히 있다.
- 어쩌면 어제 어떤 일이 있어서 주눅 들어 있을지라도 당신은 잘했고, 이 순간 바로 오늘 당신의 잘못으로 무언가 망쳐버렸음에도 잘하고 있고, 또 내일 당장 큰 걱정이 해결되지 않을지라도 잘 될 것이다. 내가 굳이 이렇게 말해 주지 않아도, 당신 스스로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마법의 주문을 걸어 보자. 뭐든 잘잘잘. 하고 있는 일도, 관계도, 사랑도․ 무엇 하나 빠짐없이 나를 무너뜨리기 쉬운 것들에게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소중한 것들이자, 나를 힘들게 하는 모든 것들에게. '잘했고, 잘하고 있고, 잘 될 것이다.'라고 말이다.
- 당신 참으로 힘들었겠다. 참 바빴을 테고, 그만큼 허겁지겁 달렸을 테고, 그래서 넘어졌을 테고, 까진 상처에 아팠을 테고, 그리고 다시 일어난 대도 아주 지쳐 있을 테지. 아픈 마음 다독일 새 없이 나아가다 쓰린 곳 다시 다쳤을 테지. 내가 감히 당신을 알겠냐만, 어떤 상황인지 알겠냐만, 얼마나 힘들지 알겠냐만... 그래도 힘들었겠다, 지쳤겠다 이야기하겠다. 또 괜찮아질 거라, 나아질 거라, 더 좋은 일 생길 거라 이야기하겠다.
- 어떠한 힘듦인지 따지기 전에 당신에게 말하고 싶다. 괜찮다. 다 괜찮다. 어떤 위로는 이유라는 주석이 달리지 않음에 더욱 따뜻해지는 것이니. 어떤 격려는 힘듦의 깊이를 알지 못함에 더 와닿을 수 있는 것이니. 또 이렇게 멀리서 당신을 응원하는 누군가가 있다는 것만으로 힘을 얻는 것이니. 비록 우리가 서로를 알지 못하더라도, 평생을 모르고 살더라도 말이다.
- 어디서 한 번 마주친 적 없는 우리가 이렇게 서로를 응원하고 있다. 그러니 당신, 스스로에 대해서도 알아주고 응원해 주면 어떨까 한다. 내가 한 말들 그대로 스스로에게도 해 주었으면 어떨까 한다. 자신에게 조금 더 관대해지면 어떨까 한다. 자기 자신을 응원함에는 그 어떤 이유도 명분도 필요 없으니. 내가 나를 격려함에는 그 어느 깊이도 필요 없으니. 나, 참 힘들었구나, 나 참 애썼구나, 그래서 지쳤구나. 스스로가 알아주고 이유 없이 응원할 수 있는 용기 있는 삶이기를 바라본다.
- 모든 위로는 이유 없이도 위로가 되는 것이고, 스스로에게는 더욱더 그러하기 때문에.
이제 내가 나에게 말해 주는 것이다. "나, 참으로 힘들었겠다. 괜찮다. 다 괜찮아질 것이다."
- 우린 서툴지만 괜찮은 사람이 되어 살아가고 있다는 것. 경험을 먹어 가며 제법 쓸 만한 사람들이 되어 간다는 것. 오늘 실수해도 괜찮게 살아갈 수 있는 제법 쓸 만한 핑곗거리였다. 오늘 힘들어도, 그럭저럭 버텨낼 수 있는 쓸 만한 핑곗거리였다.
- 별거 아닌 일로 누군가에게 미움을 받았더라도, 소중한 것과의 이별에 마음이 찢어지게 아팠더라도, 오해 때문에 누군가와 갈라섰더라도. 가진 것의 부족함이 무척 서글펐더라도. 그래도, 그 과거와 지금에 대해 후회하지 않고, 되돌리려 애쓰지 말기로 한다. 이미 지난 것은 돌이킬 수 없는 것이니.
- 안다. 내 탓이 아니라며 상황 탓을 하고 싶겠지. 무언갈 미워하고 싶었겠지. 그리고 아주 후회되고 또 되돌리고 싶었겠지. 그런 온갖 감정이 오늘도 당신의 새벽을 흔들어 놓았겠지. 그러나 말할 수 있다. 다 지나간 후의 당신이 지금 여기 있다. 언젠가의 좋지 않은 일들을 이겨 낸 당신이 여기 있다. 결국 버텨 내어 지금의 당신이 되었다. 어쩌면 그 선택의 순간들이 있기에 지금의 든든한 내가 존재하는 셈이다.
모두 당신 탓이자 당신의 것이다.
- 욱하는 감정에 관대해졌다. 누구나 욱하는 감정으로 사람을 대할 수 있다. 이젠, 기분에 휘둘린다고 해서 그걸로 사람 됨됨이를 평가하진 않는다. 하지만 어느 정도 기분을 가라앉힌 후 '사과'하는 사람, '사과'하지 않는 사람이 나뉜다. 상대방의 이러한 선택의 연속이, 그 사람과 함께 할지 떠나보낼지 결정짓게 한다. 좀 더 나아가서는 사과만으로 끝나고 '반성'까진 가지 않는 사람과, 사과를 하며 '반성'을 통해 그런 부정적인 일을 줄이는 사람이 있다. 여기선 그저 그런 지인과 놓치기 싫은 사람이 결정된다.
- 예전에는 내가 가진 것을 뽐내기 바빴는데, 이젠 이대로 살면 누군가 알아주겠지 싶다. 무언갈 과하게 뽐내는 사람들을 보면 "쟤 대단하다.", "부럽다." 보단 "쟤한텐 저게 유일한 자랑거리구나." 하면서 연민 아닌 연민이 생기기도 한다. 정말 있는 사람들은 그 어떤 것을 뽐내기보다, 그 어떤 것을 자랑할 이유가 없어 뽐내지 않더라. 그러니까, 누군가에게 자랑일 법한 일이 아주 당연한 일상인 사람이더라. 그런 사람들은 구태여 자랑하지 않아도, 주변이 알아서 다 알아준다.
- 러시아에 유학을 갔다 온 친구는 말했다. 유학을 가서 가장 놀랐던 점은 그들의 시선에 있었다고. 한국에서 사람을 만나면 "무슨 일 하세요?"부터 "어디 학교 나왔어요?"까지 상대의 소속 집단에 대한 물음이 가득했지만, 유학을 간 먼 나라에서 사람을 만나면 가장 먼저 '나'에 대해서 궁금해한다고 했다. "넌 무엇을 가장 좋아해?", "나는 이런 거 좋아해." 같은. 그들은 '나' 혹은 '너'에 집중하지 '우리', '그들' 에는 별 관심이 없어 보이는 눈치였단다. 본토에 돌아와 다시 한번 느꼈다고 한다. 우리가 소속된 집단과의 연관성에 지대한 신경을 쓴다는 것. 그만큼 나 자신보다 내 주변을 더 많이 의식한다는 것도. 그게 꼭 나쁜 것만은 아니다. 우리가 유독 잘 응집될 수 있는 이유이기도 하니까. 유대가 계속 이어지는 이유이기도 하니까. 하지만 모든 것에는 양면성이 존재한다. 주변에 신경을 곤두 세울 동안, 자신의 존재는 희미해지기 마련이고, 내가 없는 우리에선 그 유대가 빠르게 식고 지루해지기 마련이다. 그만큼, 내 존재와 주변에 대한 회의감이 늘어날 수도 있는 것.
- 세상일에는 두 가지 종류가 있습니다. 해 보지 않아도 알 수 있는 일이 있고, 해 보지 않으면 모르는 일이 있습니다. 전자는 비슷한 경험을 해 봤을 터이고, 후자는 전혀 경험이 없을 터입니다. 고로 세상의 두려움은 두 가지입니다. 너무 몰라서 두려운 것과 아주 알아서 두려운 것. 전자는 상상이 안 가서 그런 것일 테고, 후자는 상상이 너무 잘 돼서 그런 것이겠죠. 그러니 경험이 많든 적든, 해 봤든 해 보지 않았든 세상은 어느 면에서든 두려움 투성이인 셈입니다. 일, 관계, 사랑 그중 어떤 것이라도, 당신이 두려웠던 일을 다시 시작하든, 해 보기도 전에 두려운 일을 시작하든. 나는 당신의 그 '해 봄'을 응원합니다. 예상되는 두려움을 이겨 내는 당신의 그 해 봄. 예상되지 않는 두려움을 이겨내는 당신의 그 해 봄. 어떤 의미로든 용기 내어 한 발 나아가 본다는 그 해 봄.
- 우리 엄만 세상에서 가장 덕 없는 행동이 덕을 베풀어 놓고 생색내는 거라고 했다. 그건 덕이 아니라 악덕이라고. 그럴 바에 베풀지를 말아야 한다고.
"빌려줄 마음이라면 줄 것처럼 빌려주고, 베풀 거면 영영 모른 척할 것처럼 베풀어야 한다. 주고도 욕먹을 짓 하지 말고, 받고도 욕먹을 짓 하지 마라. 그럴 바에 주고받지 마라. 양보할 거면 제대로 양보하고, 내어 줄 거라면 제대로 내어 주어라. 받을 마음이 있더라도 없는 상태에선 받지 말고, 줄 마음이 있다면 없는 상태에서도 아까워하지 말아야 한다."
주는 것이든 받는 것이든 할 거면 제대로 해야 탈이 없다는 것.
- 각 신체 부위마다 다르지만 가장 긴 기간에 거쳐 재생되는 세포가 지방 세포입니다. 약 8년이 걸린다죠. 여기서 이런 생각이 듭니다. 시간을 거쳐 파괴된 세포가 새로운 세포로 태어나고... 또 파괴되고 새롭게 태어나고. 그러한 일들이 반복되다 보면, 나는 이미 내가 아니게 됩니다. 어느새 내가 탄생하며 처음 지녔던 세포는 전부 없어지고 다른 세포로 새롭게 대체되어 왔습니다. 그러니까, 우리 인간은 8년마다 새로운 사람이 되는 셈 아닐까 생각이 듭니다. 그러나 전혀 눈치채지 못합니다. 알지 못하고 살아왔습니다.
- 꽤 조심스러운 이야기겠지요. 어떤 99개의 평가를 두고 1개의 나를 믿어 주는 것도 좋겠지만, 가끔씩은 뒤를 돌아나 자신이 틀린 건 아닌지, 그러니까 이 목소리가 진짜 목소리가 아닐 수도 있다는 열린 사고를 가질 줄도 알아야 됩니다. 내 삶 또한 대수의 법칙에 따라 많은 사람들의 의견을 들을수록 정확히 자신의 진짜 모습에 다가갈 수 있다는 것을요.
- 내면의 소리에 온전히 귀 기울여 사는 건 옳습니다. 나 자신만이 들을 수 있는 소리이니까요. 하지만 내면의 소리에 '온전히' 귀 기울여 준다는 게 '완전히' 귀 기울여 준다는 건 아닌 것 같습니다. 완전히 그것만을 들으며 타인이 보는 나를 꺼려하는 순간, 나는 주변에게 꽉 막힌 사람으로 인식되어있을 겁니다. 그 어느 성장도 없이, 나라는 우물에 갇힌 개구리가 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내가 하고자 하는 나의 평가, 또 외부로부터 전해 오는 나의 평가. 내면에서 말하는 나의 주장. 그 주장과는 조금 다른 외부의 주장. 그 어느 것이라도 한 곳에 지나치게 기우는 순간 이상에서 제법 멀어지기 마련입니다.
- 보이지 않는 걸 믿느냐 물었다. 그러니 가끔 믿는다 답했다. 그럼 감정을 정의할 수 있냐 물었다. 그러니 얼핏 알 것 같다 답했다. 그럼 사랑이 뭐냐 묻자 그는 아는 듯 답했다.
"사랑은 아마 숨 쉬는 것과 같아."
나는 '숨과 같이 없으면 못 사는 거', '나를 살게 하는 거' 따위의 뜻이겠지 하면서 뻔하기 그지없다 생각했다. 하지만 뒤로 이어진 그의 말은 내 숨을 턱 하고 막히게 했다. 나는 아가미를 달고 땅을 밟는 것 같았다.
"사랑은 아마 숨 쉬는 것과 같아. 숨 쉰다는 걸 의식하면 숨 쉬는 게 불편해지듯, 사랑한단 걸 의식하는 순간 사랑이 좀 불편해지거든."
- "네가 행복했으면 좋겠어."
누군가의 행복을 빌어 주는 말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첫 번째 의미는 '내가 네 곁에서 꼭 행복하게 해 주고 싶다.'는 바람이고,
두 번째 의미는 '내가 곁에 없어도 꼭 행복했으면 좋겠다.'는 뜻입니다.
나의 사랑 대부분은 누군가의 행복을 빌어 줄 때 어긋났습니다. 아니, 누군가의 행복을 바라고서야 알게 되었지요. 우리, 바라는 행복이 어긋나 있다는 걸 말입니다. 내가 누군가의 행복을 바랄 땐 '네가 내 곁에서 꼭 행복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었지만, 상대는 아니었습니다. 아마 '내가 곁에 없어도 네가 행복했으면 좋겠다.'는 이유인 탓이었습니다.
- 오직 이 사실만으로 이별이 성립된단 게 허무하겠지만, 이 사실이 성립되지 않으면 사랑이라 부를 수도 없습니다. 같은 곳을 바라보며, 같은 행복을 꿈꾸는 것이 사랑이겠지요. 그것이 아니라면, 사랑보단 동정에 가까운 감정이기 때문이겠지요.
- 힘들다는 말로는 설명할 수 없는 당신의 힘듦에게. 슬프다는 말로도, 아프다는 말로도 표현할 수 없는 당신의 상처에게. 또 알고는 있지만, 꺼낼 수 없는 당신의 여러 감정들에게. 나의 글이 그러한 것들을 해결해 주지 못하더라도 오늘 나는 적는다. 이 활자들이 무슨 도움이 되겠냐만, 나는 쓴다. 이 책을 펼치고 닫는 순간에도 전혀 달라질 것 없는 당신의 앞날이라도, 결국 펴낸다. 오직 당신에게 읽히기 위해서 말이다.
- 그러니 아무 의미는 없지 않았다 믿는다. 굳게 믿는다. 우리의 삶은 쓰이고 읽히며 서로를 위로하는 것이니. 표현할 수 없던 당신의 감정을, 내가 적은 글이 대신해서 표현해줄 수 있다는 것만으로 나는 다했다. 앞으로 당신의 삶에 일말의 위안과 공감을 던져 줬다면 나는 또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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