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자가 흐르는 이야기/Book1

[곽재식] 그래서 우리는 달에 간다

일루젼 2022. 8. 4. 1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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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곽재식
출판 : 동아시아 
출간 : 2022.08.03 

이 도서는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았습니다


       

8월 5일, 한국에서 발사하는 첫 달 탐사선 '다누리 호'의 여행이 시작된다.

무사히 5개월 여의 여정을 마치고 달에 사로잡힐 수 있기를.

 

나름대로 달에 대한 사랑이 깊었던 만큼 이번 신간에 대한 기대가 컸다. <그래서 우리는 달에 간다>라니!

무엇보다 다누리 호의 발사와 맞추어 기획된 도서라는 점이 포인트였다. 달에 대한 미신과 환상, 역사 속에 달이 남긴 흔적과 이번 다누리 호의 설계까지 총망라한 '재미있는' 과학 도서! 

지식적 측면과 재미적 측면 모두를 놓치지 않기 위해 곽재식 작가를 저자로 모셔온 이번 신간!

 

개인적으로는 다양한 측면에서의 즐길 거리가 잘 버무려진 책이라고 생각하며, 일독을 추천드리고 싶다. 

해당 이슈에 대한 저자의 결론과는 다른 생각을 가진 분들도 계실 수 있겠지만(?), 그것을 다루고 있는 '과학 도서'를 읽어볼 수 있다는 건 정말 '귀한 기회'이기 때문이다. 달의 이면에 설치된 외계인 기지와 보름달 아래서 울부짖는 늑대인간, 펄럭이는 깃발로 들통나 버린 NASA의 달 착륙쇼까지!

 

무척 즐겁게 읽었지만, 읽으면서 나도 모르게 내면적으로 저자의 결론에 반박하고 있는 스스로를 발견했는데, 익숙해진 것에 대한 믿음이란 무섭다는 걸 느꼈다. 이를테면 다음과 같은 식이다. 보름달이 사람에게 미치는 광기 효과에 관한 단어로 lunatic이 있다. 보름달이 뜨면 사건 사고가 늘어난다는 것이다. 그러나 저자는 그런 효과는 없다는 연구 결과가 발표되었으며, 보름달 자체가 영향을 준다기보다는 보름달의 밝기로 인해 평소에는 눈에 보이지 않던 것들이 발견되면서 그런 유사 효과가 나타났을 것이라고 설명한다.

 

이에 대한 개인적인 의견은, 영향이 없다는 연구 결과도 있지만 영향이 있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는 것이다. 이제부터는 각각의 논문의 신뢰도 싸움이다. 그러나 그렇게 파고들어 갈 생각은 없고 (아마 효과가 있다 쪽이 질 것이다) 개인적 사견을 덧붙여보는 정도에서 그치려 한다. 조수 간만의 차가 달과 지구의 거리에 따라 영향을 받는다는 것은 동 저서의 다른 장에서도 다루는 내용이다. 서해가 동해보다 더 영향을 받는 이유는, 본문 내에서 명확하게 설명하고 있지는 않지만 동해보다 서해가 더 얕기 때문이다. 첫째로 해수의 질량으로 인한 차이가 있으며, 둘째로 얕은 바다에서는 지면의 노출 여부로 인해 썰물 효과가 더 극명하게 느껴질 수 있다. 

 

그런데, 그렇다면 신체의 70%가 물인, 아주 작은 물방울 덩어리들인 인간은 어떨까? 

 

여성의 생리 주기와 달에 관련한 연구들이 존재한다. 월경이라는 단어에서도 알 수 있듯이, 자연 그대로의 상태 (주거 환경, 섭취물, 생활 리듬 등을 모두 통제한다면) 를 기준으로 할 경우 생리 주기는 자연스럽게 달의 주기를 따라간다는 것이다. 해당 내용을 신뢰한다는 전제 하에, 그렇다면 달이 인간의 감정적 영역에 영향을 미칠 수 있으리라고 보는 것도 타당하지 않겠는가? 

 

등등 다양한 방면에서 달과 관련된 무척 흥미로운 주제들을 만날 수 있다. 

 

"어째서" 우리는 달에 매료되는가?

그 이유가 무엇이건, 우리는 각자의 답을 가지고 달을 사랑할 것이다. 언제나 옆에 있어왔던, 하지만 매해 4cm씩 멀어지고 있는 달을. 

달이란 실제로 어떤 것인지, 우리에게 알게 모르게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 우리가 달에 간다면 어떤 것들을 할 수 있을지. 

혹은 우리가 믿어왔던 달에 관한 신화가 실제로는 거짓(혹은 진실)이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을지. 

 

이 모든 질문들을 안고, 우리는 달에 간다. 

아니, 가야 한다. 

 

<그래서 우리는 달에 간다>.       

 


   

- 앞으로 무슨 책을 쓰면 좋을까? 나는 생각날 때마다 대략의 내용을 정리해 둔 "이런 책 내보면 어떨까?" 목록을 만들어 두었다. 그래서 어느 출판사에서건 책을 내보자는 제안이 오면, 그 목록을 보이면서 그중에 한 권, 책을 써 보자고 이야기를 꺼낸다. 요즘 내가 낸 책들 대부분이 이렇게 해서 나왔다. 그렇기 때문에 어떤 순서로 무슨 이야기를 다루고 어떻게 결론을 내면 좋을 거라는 대강의 생각을 한참 전부터 마음에 품고 있던 것들이 많다. 책을 쓰기까지 제법 긴 시간 그 계획과 생각을 다듬기도 하고 책을 본격적으로 쓰는 일에 착수한 후에도 과거의 구상을 돌아보며 내가 쓰고 있는 내용과 견주기도 한다. 나는 보통 그렇게 책을 쓰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 책을 쓰는 과정은 전혀 달랐다. 

- 이 책은 출판사에서 먼저 주제를 제안받았다. 그것도 "곽재식 작가님 아니면, 지금 이런 책을 써주실 분은 없는 것 같습니다"라는 이야기와 함께 책에 대한 구상을 들었다. 그 내용은 달에 관한 여러 과학 이야기, 역사 이야기, 문화 이야기를 한데 버무려서 도대체 달이 우리에게 무슨 의미가 있고, 달에 대해 우리가 무엇을 알고 있으면 좋을지를 다 모아서 알려주는 책을 써 달라는 것이었다. 나는 소설을 쓰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엮는 재주를 그나마 갈고닦아 왔고, 동시에 일하면서 배운 과학과 기술에 관한 이야기들을 책 몇 권으로 낸 경력이 있다. 그렇다 보니, 제안대로 온갖 내용이 엮여 드는 책을 쓰기에 내가 어울리는 학자라고 출판사에서 생각했던 것 같다. 

 

- 내가 무슨 달에게 매일 기도하는 식의 습관이나 믿음을 가진 사람도 아니고, 그렇다고 달의 화학적, 지질학적, 천문학적 특성에 심취하여 달을 깊이 연구해 본 사람인 것도 아니다. 고대 힌두교 문화에서는 달의 신을 찬드라라고 불렀고, 불교문화에 그 이야기가 넘어와서 우리나라로 전래된 후에는 다양한 신령들을 함께 그리는 신중도, 구요도 등의 불화에서 달의 신령이 표현되기도 했다. 그러나 나는 찬드라나 달의 신령, 월천 등을 숭배하는 옛 문화를 깊이 연구해 본 적도 없고, 그에 관한 예술품, 공예품에 대해 제대로 알아본 적도 없다. 그러면 내가 달 이야기를 한다면 어디에다 무게를 싣고 뭘 중심으로 이야기를 엮어보는 게 좋을까? 

 

- 나는 우주 개발 사업에 관심이 많거나, 우주 탐사와 관련된 일을 하시는 분을 만나 질문을 할 기회가 있으면 자주 직접 질문해 본 적도 많다. "왜 그 많은 돈을 들여 우리가 우주에 나가는 연구를 해야 하는 걸까요?" 내가 이미 마음속에 품고 있던 생각과 맞는 답을 들어 반가울 때도 있었고, 미처 내가 생각하고 있지 못한 답을 들어 감탄할 때도 있었다. 그렇게 쌓인 생각들을 달에 관한 온갖 이야기들을 모두 모아 엮어보는 가운데, 이번 기회에 제대로 정리해서 한번 풀어보고 싶었다.

 

- 예를 들어, 한국 민주주의의 첫 시작이라고 할 수 있는 1948년 5월 10일 대한민국 최초의 총선거가 원래는 5월 9일이었는데, 절묘하게도 마침 그 날짜에 달이 태양을 가리는 금환일식이 아주 오래간만에 한반도에서 일어나는 바람에 선거 날짜를 급하게 그다음 날로 미루었다는 이야기라든가, 월요일이라는 한자어나 영어 단어 Monday가 사실 달의 날이라는 뜻에서 온 말이라는 이야기라든가, 유럽권, 영미권에서 자주 쓰이는 이름 Diana가 로마 신화의 달의 여신 디아나에서 온 말이라는 이야기라든가, 역사상 가장 오랜 도시 유적 중에 손꼽힐 만한 곳으로 주목받는 중동의 여리고성 Jericho이 달이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거나... 

 

- 물도 냇물도 없고 식물이 자라나지도 않는다. 심지어 요즘 달에서는 화산 활동도 일어나지 않는다. 그래서 한번 생긴 구덩이는 그냥 계속 그 자리에 있다. 새로운 운석이 떨어져 모양이 훼손되는 것을 제외하면, 몇만 년이고 몇십만 년이고 그대로 구덩이 모양이 유지된다. 그래서 그렇게 많이 남아 있는 달의 충돌 구덩이들은 지난 긴 세월 동안, 지구 근처에 어떤 소행성들이 어떻게 돌아다니다가 떨어졌는지를 꼼꼼히 기록해 둔 일기장과 같다. 

 

- 한국에는 하늘에 사는 개가 달을 물었다가 뱉는 것 때문에 달의 모양이 줄어드는 월식이 일어난다는 전래 동화가 있다. 나는 그 한국 동화와 인도 신화의 라후, 케투 이야기가 닮은 점이 있다고 생각한다. 고대 인도 신화가 점성술과 함께 한반도에 전해졌다가, 조선시대에 변형되어 유사한 전설이 생긴 것은 아닐까? 이런 전설은 상당히 인기 있었던 것 같다. 일제강점기에 조선의 민간설화를 수집하여 기록한 자료집인 <암흑의 조선> 같은 책을 보면, 조선에는 월식이 일어나면 하늘의 개가 달을 뱉을 때까지 사람들이 북을 치고 높이 뛰어오르며 요란하게 춤을 추는 풍습이 있었다는 기록도 보인다.

 

- 그렇기 때문에 현대의 학자들은 1972년에 완벽한 달력을 만든다는 꿈을 포기했다. 그 대신에 시간을 정확히 측정하면서 오차가 생길 때마다 시간을 1초씩 더 끼워 넣어 오차를 없애기로 했다. 이렇게 넣는 시간을 윤초라고 하며, GMT 표준시 기준으로 6월 30일 또는 12월 31일에 1초를 추가로 집어넣는다. 예를 들어 1972년 6월 30일 밤 11시 59분 59초가 지나면, 다른 때처럼 바로 다음 날인 7월 1일 0시 0초가 되는 것이 아니라, 30일 밤 11시 59분 60초라는 이상한 시간이 된다. 그리고 그다음에야 7월 1일 0시 0초로 넘어간다. 1분은 60초라는 상식은 절대 변하지 않는 상식 같지만, 그때만큼은 1분이 61초가 되는 것이다. 이렇게 윤초를 정확히 짚고 넘어가려면 아주 정확한 시계가 필요하다. 20세기 들어 사용하고 있는 정밀한 시계로는 세슘 원자시계라는 장치가 있는데, 이 장치는 수천만 년 동안 사용해도 오차가 1초도 안 날 정도로 정확하다. 지금 세계의 시간과 달력을 따지는 기준은 대체로 이런 세슘 원자시계로 세계 여러 나라에서 측정한 결과를 모아서 정한다. 

 

- 그래도 신라 문화를 백제나 고구려, 나아가 나중의 고려와 비교해 보면, 다른 나라에 비해서 달을 친숙하게 여기고 달을 중요하게 여기는 분위기가 있었다는 말은 꺼내볼 수 있다. 일단 신라의 임금이 머물던 궁전 건물이 많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장소의 이름부터가 월성이다. 그리고 거기에서 멀지 않은 곳에는 월지라는 연못이 있었다. 각각 달의 성, 달의 연못이라는 의미다. 

 

- 다음 질문들을 읽어보자. 질문에 답하려고 하기보다는 질문 그 자체에 대해 다시 질문해 보자. 이런 질문을 누가, 언제, 왜 했을까? 

"하늘에서 해와 달이 뜨고 질 때 밤낮의 길이가 바뀜에 따라 어떤 때에는 오랫동안 떠 있고 어떤 때에는 짧게 떠 있는데, 이런 변화는 왜 생길까?"
"가끔 해와 달에 일식이나 월식이 생길 때가 있는데 이런 일은 왜 일어날까?"
"행성들이 이리저리 움직이는 모양과 다른 별들이 일정하게 움직이는 모양에 대해서 상세히 말할 수 있는가?"
"혜성이나 다른 갑작스럽게 나타나는 색다른 별은 어떤 때에 보일까?"
"바람은 어디에서 시작되어 어디로 불어 갈까? 가끔 바람이 폭풍이나 태풍이 되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구름은 왜 생길까? 천둥과 번개는 무엇 때문에 생기고, 왜 그렇게 번쩍거리고 소리는 무서울까? 번개가 나무나 물건에 떨어지는 것은 어떤 원리 때문일까?"

 

- 이 문제는 조선 중기인 1558년, 과거 시험 문제로 나온 내용의 일부를 발췌한 것이다. 이 문제는 특별히 별을 관찰하거나 날씨를 따지는 공무원을 뽑기 위해 나온 것도 아니고, 그냥 보통 조선시대의 선비들이 과거에 급제하기 위해 치르는 시험에 나왔다.  

- 이 문제는 조선시대 500년 동안 치러진 수많은 과거 시험의 문제들 중에서도 가장 유명한 축에 속한다. 왜냐하면 이 복잡하고 어려운 질문에 대답하여 장원을 차지한 사람이 바로 오천 원짜리 지폐의 등장인물로도 잘 알려진 율곡 이이였기 때문이다. 이이는 인생을 살면서 각종 과거 시험에 참여하여 총 아홉 번 장원을 차지하는 무시무시한 기록을 세웠다. 그래서 그에게는 아홉 번 장원한 분, 곧 구도장원공이라는 별명이 붙었다. 지금까지도 입시를 중요시하는 한국 문화에서 이 정도면 공부의 화신이라고 할 만한 사람이다. 모르긴 해도, 퇴계 이황을 높여 부르는 이부자라는 호칭이나 우암 송시열을 높여 부르는 송자 같은 호칭보다도 이이의 구도장원공을 더 멋진 칭호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았을 거라고 생각해 본다. 이이가 이 문제에 대답한 내용은 <천도책>이라는 이름으로 묶여 널리 읽혔다.


- 허초희의 대표작 중에 <광한전백옥루상량문 廣寒殿白玉樓上樑文>이라는 글이 있다. 광한전이란 옛 중국 고전에 나오는 전설 속의 집으로, 천상의 신선 세계에 있는 궁전 중에서 달에 있다고 하는 건물이다. <춘향전>의 배경으로 유명한 전라북도 남원의 광한루 역시 여기에서 따온 이름이다. 그러니까 광한루는 달나라 누각이라는 뜻이다. 제목을 전부 풀이해 보면, 달나라에 천상 세계의 신선들이 지어놓은 궁궐이 있고, 거기에 백옥루라고 하는 새 건물을 하나 지었는데, 그 건물을 지었다는 사실을 기념하기 위해 쓴 글이라는 뜻이다.   

(리뷰자 주 : 일부만 읽어도 아주 아름답다. 허난설헌 <광한전 백옥루 상량문> 중 일부를 가져온다.)

 

들보 북쪽으로 떡을 던지네. 
북해가 아득해서 북극성이 잠기고 
붕새의 깃이 하늘을 치니 그 바람에 물이 치솟네. 
구만리 하늘에 구름이 드리워 비 기운이 어둑하네. 

들보 위쪽으로 떡을 던지네. 
새벽빛이 희미하게 비단 장막을 밝히고
신선의 꿈이 백옥 평상에 처음으로 감도는데 
북두칠성의 국자 돌아가는 소리를 누워서 듣네. 

들보 아래쪽으로 떡을 던지네. 
팔방에 구름이 어두워 날 저문 것을 알고
시녀들이 수정궁이 춥다고 아뢰네. 
새벽 서리가 벌써 원앙 기와에 맺혔네.

-  다양한 우주 사업은 더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현재 우주정거장에 방문하는 관광 사업에서 그 표는 한 사람당 수백억 원 정도에 판매되고 있다. 최초로 돈을 내고 관광 목적으로 우주정거장에 방문한 인물은 미국의 억만장자 데니스 티토다. 그는 2001년 4월에 우주정거장에 다녀왔다. 한 사람이 며칠 관광을 하는 데 그렇게나 어마어마한 금액을 쓰는 것이 과연 바람직한 일이냐는 이야기가 이곳저곳에서 나왔다. 생각해 보면 세상사가 신기한 것이, 2001년 당시 돈만 내면 누구든 우주에 데려다준다고, 티토에게 거액을 받고 그를 우주에 보내준 나라는 정작 공산주의 국가인 러시아였다. 

- 나는 막대한 돈을 쓰며 우주 체험을 하는 억만장자에 대한 비판도 이해할 만한 점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우리는 우주 관광이 아니더라도 계속해서 우주 개발 사업을 하고 있다. 그리고 우주 개발 사업은 언제나 어쩔 수 없이 큰 비용을 투자해 써야 하는 일이다. 어느 시대, 어느 나라에서도 마찬가지다. 그러므로 우주 개발에 들어가는 예산 문제는 고민거리가 될 수밖에 없다. 당장 밥을 굶는 사람에게 쓸 돈도 없고, 병이 걸렸는데 치료비가 부족한 사람에게 쓸 돈도 부족하다고 하면서, 나라의 예산을 우주 사업에 쓰는 것이 맞느냐는 지적은 자주 나왔다. 아폴로 11호 발사 때에도, 미국의 가난한 사람들이 겪는 어려움이 심각한데 막대한 나랏돈을 굳이 사람을 달에 보내는 데 써 없앨 필요가 있느냐고 시위하는 사람들이 발사장 근처에 여럿 있었다. 

- 그런 고민을 다른 방향에서 본다면, 사기업의 우주 관광사업이 기술 발전에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생각도 해볼 수 있지 않을까? 공공 목적으로 신중하게 써야 하는 정부의 예산은 사용할 때마다 여러 가지 고민이 생긴다. 그 고민을 무시할 수도 없다. 그렇다면 차라리 우주를 구경하고 싶어 하는 부유한 관광객들의 돈을 받아 민간 회사가 사업을 하고, 그 민간회사가 로켓을 개발하고 우주선을 설계하면서 기술을 발전시킨다면 어떨까? 나랏돈을 쓰지 않고도 우주로 갈 수 있는 기술을 개발하는 데에 세상의 돈이 들어가게 된다. 그리고 관광객을 우주까지, 나아가 달까지 안전하게 보내는 사업을 계속해 나가면서 우주 기술을 발전시키다 보면, 기술은 점점 더 값싸고 안전해질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발전한 기술로 모두를 위해 달을 연구하고 달을 개발하는 데에 활용할 수도 있을 거라고 나는 생각해 본다. 

(리뷰자 주 : 이것 또한 낙수효과의 개념이다.)
 
- 달에 날아간 우주선의 컴퓨터 프로그램을 개발한 사람들 중에서 중요한 공을 인정받는 인물로는 마거릿 해밀턴 Margaret Hamilton이 자주 언급된다.
 
- 그런데 해밀턴이 처음 받아 든 자료에는 모든 주석이 라틴어와 그리스어로 적혀 있었다고 한다. 일부러 괴롭히려고 하나도 알아먹지 못하게 써놓은 것이 분명했다. 그러나 해밀턴은 거기에 무너지지 않았다. 세상에 아직 컴퓨터 소프트웨어를 다룬다는 산업이 자리잡지 않았기에 마거릿 해밀턴 같은 사람이 얼마나 재능이 있는 사람인지 아무도 몰랐을 뿐이지, 해밀턴은 이미 훌륭한 재주와 치밀하게 갈고닦아 둔 경험을 같이 갖춘 실력자였다. 그는 그 복잡한 프로그램을 해석하여 주어진 일을 완전히 해냈고, 보란 듯이 결과를 라틴어와 그리스어로 표시해 두기까지 했다. 아마도 팀 사람들은 여간내기가 아닌 신입 직원이 들어왔다고 다들 깜짝 놀랐을 것이다. 해밀턴은 그 신입 기죽이기용 과제를 풀어낸 첫 번째 직원이 되었다. 

- 달 탐사에서 특히 해밀턴의 공이 컸다고 인정받는 사안은 오류가 발생했을 때 벌어지는 긴급 상황에 대한 처리였다. 전설처럼 전해지는 이야기에 따르면, 해밀턴은 어린 딸이 노는 것을 보다가 그 문제에 대한 생각에 깊이 빠져들게 되었다고 한다. 

 

- 처음에는 아폴로 우주선의 책임자들이 해밀턴의 의견을 무시했다고 한다. 고도로 훈련받은 최고의 실력자인 아폴로 우주선 대원들이 실수로 컴퓨터를 잘못 누른다든가 하는 일은 있을 수 없으며, 그런 사소한 가능성까지 생각하면 일이 너무 어려워진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러나 아폴로 8호 우주선에서 우려했던 문제가 실제로 일어났다. 조작 오류로 컴퓨터 프로그램을 못 쓰게 되는 일이 발생했고, 급박하게 우주에서 다시 컴퓨터 프로그램에 넣을 자료를 새로 계산해서 손으로 입력해서 문제를 해결해야 했다. 다행히 이 모든 작업에 그다지 시간이 오래 걸리지는 않았기 때문에 아폴로 8호 대원들은 무사히 지구로 돌아올 수 있었다. 

- 2014년 7월 초, 박일홍 교수, 류동수 교수 등이 참여한 TA 국제 연구그룹에서 연구한 바에 따르면, 터무니없을 정도로 빠른 속도를 가진 강력한 입자들이 대단히 머나먼 우주의 저편에서 지구로 떨어지는 사례가 종종 있다는데, 그중 상당수가 북두칠성 쪽에서 날아오고 있다고 한다. 이런 입자들의 크기가 극히 작기에 망정이지, 만약에 눈에 보이는 먼지 정도의 크기만 되더라도 한 번에 지구를 부숴버릴지 모를 정도의 엄청난 속도로 날아오고 있다. 고려시대의 <노무편 老巫篇>이라는 글을 보면, 그 시대에도 한국인들 사이에는 마침 북두칠성을 향해 무엇인가를 기도하는 풍습이 퍼져 있었다고 한다. 정말로 북두칠성에 무엇인가가 있기는 있는 것일까? 

- 도대체 우주 저편에 무엇이 있고, 어떤 신비한 원리가 숨겨져 있길래 이렇게까지 막강한 힘을 가진 입자들이 날아오는 현상이 일어나는 것일까? 언젠가 그런 원리를 사람이 응용하여 지금은 상상하지 못하는 어떤 놀라운 일을 해낼 수 있는 기술을 개발할 때가 올까? 이런 문제의 답을 조금씩 추측해나가는 데에도 달과 월석을 연구하는 일은 필요하다. 

- 소설이 인기를 끈 후, 그 소설에 대해 유심히 생각한 사람 중에는 러시아의 콘스탄틴 치올코프스키 KoHcTanTuH Quonkoeckni라는 학교 선생님이 있었다. 그는 학업을 꾸준히 이어갈 형편이 되지 않아 지금의 검정고시와 같은 방법으로 자격을 얻은 뒤에 학교 선생님이 된 사람이었다. 그러나 그러면서도 그는 과학 분야의 다양한 이론들을 연구해 나갔다. 그는 비행기와 하늘을 나는 여러 기술에 대해 연구해 나갔고, 나중에 그 생각은 지구 바깥 우주에 대한 관심으로도 이어졌다. 나는 이런 생각을 하는 데 분명히 <지구에서 달까지> 같은 SF물이 큰 영향을 끼쳤을 거라고 생각한다. 20세기 초 치올코프스키가 쓴 글에는, 과학으로 하나하나 따져보았을 때 <지구에서 달까지>의 방법이 불가능한 점을 지적하는 대목이 있다고 한다. 그 같은 사람이 소설 속 내용을 세세히 따져보고, 소설 속 장면이 정말로 되는 일인지 안 되는 일인지 계산해 보았다는 말은, 사실 쥘 베른이 들려준 지구 바깥 달을 여행하는 꿈에 치올코프스키도 어느 정도는 매혹되었다는 뜻이라고 본다. 

- 단순히 생각하면 무거운 물체를 우주로 보내려면 그만큼 더 큰 로켓에 더 많은 연료를 실으면 되지 않을까 생각해 볼 수 있다. 그런데 골치 아픈 것이 연료를 로켓에 실으면 그 연료 무게만큼 전체가 더 무거워진다. 그 무게를 극복하기 위해 연료를 더 많이 실으면 그만큼 무게는 더 무거워진다. 그래서 무작정 연료를 많이 넣어 큰 로켓을 만든다고 쉽게 우주에 나갈 수가 없다. 이런 문제를 "로켓 방정식의 횡포 tyranny of the rocket equation"라고 부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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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가장 신기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린네 구덩이라고 부르는 곳이다. 린네 구덩이의 이름은 스웨덴 생물학자 린네 Linné의 이름을 딴 것이다. 린네는 사람에게 호모 사피엔스라는 이름을 붙인 바로 그 학자다. 린네 구덩이를 세밀하게 살펴보고 기록한 사람 중에는 로흐만 Lohrmann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1824년경 린네 구덩이가 대략 지름 8km 정도 되는 크기라고 표시했다. 10년 정도 세월이 지나서 비어 Beer라는 학자가 같은 구덩이를 자신의 책에 표시했는데, 그는 조금 더 큰 10 km 정도 되는 구덩이라고 보았다. 괴상한 일은 그로부터 다시 30년 정도가 지난 1866년 경에 벌어졌다. 슈미트 Schmidt라는 학자가 린네 구덩이를 다시 살펴봤을 때, 8km 또는 10km짜리 구덩이는 보이지 않았다. 무슨 이유인지 그 대신 이상할 정도로 깊게 파여 있고 유난히 흰색을 띠고 있는 지름 2~3km 정도의 작은 구덩이가 보였다. 왜 갑자기 구덩이 모양이 바뀐 것일까? 작은 구덩이가 무너지면 더 넓어질 수야 있겠지만 어떻게 큰 구덩이가 작게 바뀔 수가 있는가? 이상한 흰색은 왜 생겨난 것일까? 린네 구덩이에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 

 

- 2014년 매튜 리스 Mattew Reece라는 학자는 암흑 물질이 공룡을 죽였을지도 모른다는 추측을 발표한 적이 있었다. 암흑물질이 공룡을 죽였다는 말만 들으면, 어떤 나쁜 외계인이 암흑 물질이라고 하는 아주 사악한 물질을 뿌려서 그 물질에 닿은 공룡들을 픽픽 쓰러지게 만드는 장면이 떠오를 만도 하다. 그러나 여기에서 말하는 암흑 물질이란 무슨 사악한 물질이나 새까만 물질이 아니라, 아직 과학자들이 정체나 관찰할 방법을 알지 못하는 물질을 말한다. 암흑 물질은 눈에 보이지도 않고 손에 잡히지도 않는다. 그렇지만 느껴지지만 않을 뿐, 지금 우리 바로 곁에도 암흑물질이 가득하며 우리 몸을 뚫고 지나다니고 있을 거라고 많은 학자들이 생각하고 있다. 그런데도 그게 뭔지는 모른다. 만약 누군가 암흑 물질이 무엇으로 되어 있으며 어떤 성질을 가지고 있는지 정확히 확인할 수 있다면, 그것은 수십 년간 수많은 학자들이 도전했지만 결코 밝혀지지 않은 과학계의 대단히 어려운 수수께끼 하나를 푸는 일이다. 당연히 노벨상이건 무슨 상이건 다 받을 수 있다. 

 

- 현재 암흑 물질에 대해 우리가 추측하고 있는 몇 안 되는 성질 중에 가장 뚜렷한 것은 무게를 갖고 있어서 중력으로 다른 물체를 끌어당길 수 있다는 정도다. 매튜 리스는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우리 은하계의 우주 공간에 암흑 물질들이 덩어리 져 있는 곳이 있어서, 그곳과 우리 지구가 속한 태양계가 마주치게 되면 그 암흑 물질의 중력에 소행성이나 혜성이 이끌릴 거라고 보았다. 그러면 돌아다니는 방향이 뒤틀려 지구 쪽으로 그것들이 더 많이 날아오게 된다. 즉, 암흑 물질이 공룡을 죽였다는 이야기는 사실, 암흑 물질과 가끔 마주치면 소행성이 날아가는 방향이 꼬이게 되어 지구가 거기에 두들겨 맞는다는 뜻이다. 

 

- 그런데 1910년대나 1920년대의 아주 옛날 공포 영화가 보여주는 기괴함이 분위기를 이상하게 만들 때가 있다. 예를 들어 스웨덴 제작진이 덴마크에서 만든 1922년 영화 <마녀들 Häxan, The Witches>을 볼 때 나는 무척 이상한 느낌에 빠졌다. 

 

- 중세 이후 유럽에서 여성들을 마녀로 몰아붙이는 사건이 자주 일어났다면, 남성에 대해서는 "그 사람이 늑대인간이다" 하고 몰아붙이는 사건도 있었다. 마녀사냥만큼 넓은 지역에서 큰 문제가 되었던 풍속은 아니지만, 지역에 따라서는 유명한 전설로 남은 사건이 여럿 있을 정도였다. 그래서 사건에 관한 기록을 구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알려진 사건으로는 피터 스텀프 Peter Stübbe, Peter Stumpp 전설이 있다. 원래 사건이 일어난 곳은 16세기 무렵 현재의 독일 베트부르크 지방이다. 그런데 오히려 영국에서 그에 관한 이야기가 더 많이 퍼져서 영어식으로 피터 스텀프라고 해야 자료를 구하기가 더 쉽다. 

 

- 거슬러 올라가 보면 보름달이나 보름달에 치러지는 의식이라는 것이 중세 이후로 유럽 사람들을 자극할 만한 관습적인 이유도 있었던 것 같다. 로마 제국의 문화를 이어받은 다수의 유럽 사람들은 달력 체계를 고를 때 태양의 움직임과 계절 변화에 초점을 둔 양력을 택했다. 로마의 율리우스 카이사르는 이집트 문화를 접한 후, 이집트의 발달한 천문학 전통에서 나온 이집트식 양력이 편리하다고 판단했던 것 같은데, 그 달력 만드는 방식이 변형되어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정한 달력이라는 뜻의 율리우스력이 되었다. 양력인 율리우스력은 긴 세월 유럽에서 날짜와 시간을 따지는 기준이었고, 지금 우리가 쓰는 양력 달력의 바탕인 그레고리력도 사실 율리우스력을 조금 개조한 방식이다. 그렇기 때문에 중세 이후 유럽 사람들은 명절이나 날짜를 헤아릴 때, 달을 기준으로 하는 달력을 사용하는 문화는 낯선 나라, 특이한 민족, 다른 문화권의 풍습이라고 여겼을 것이다. 예를 들어, 로마 제국이 영국을 점령하기 전에 원래 영국에 살던 켈트족들이 사용한 달력은 초승달, 보름달 뜨는 날을 날짜의 기준으로 삼았다. 그러니 켈트족의 풍습과 관습은 달과 관련이 많을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러니 반대로 로마 문화권을 이어받은 사람들은 보름달이라면, 옛날부터 내려온 켈트 전통에 따른 특이한 풍습의 상징, 켈트족이 믿는 낯선 신들과 관련 있는 것이라는 생각을 떠올렸을 것이다. 

 

- 옛사람들에게 낯선 문화의 다른 풍습은 무섭고 나쁜 것으로 보이기 쉽다. 게다가 이런 부류의 로마 문명 바깥의 풍속들 중에는 주로 괴상한 것들이 기록으로 남아 소문으로 널리 퍼지는 경향이 있었다. 예를 들어 고대 켈트족 주술사들 중에는 드루이드라고 하는 사람들이 있었는데, 이들의 풍습 중 위커맨 wicker man이라고 하는 것이 사람들 사이에서 유명했다. 위커맨이란 위커, 즉 버들가지 같은 것을 엮어서 커다란 사람 모양을 만들고 그 속에 신에게 바칠 제물을 묶어둔 것을 말한다. 켈트족 드루이드들은 제물이 묶여 있는 그 사람 모양을 통째로 불에 태우는 것을 중요한 행사로 여겼다. 

 

- 예를 들어, 영국 문학을 대표하는 단 한 명의 작가라고 할 수 있는 셰익스피어는 <한여름 밤의 꿈>이라는 희곡을 쓴 적이 있는데, 여기에서 달은 밝고 긍정적인 소재로 등장한다. <한여름 밤의 꿈>은 결혼을 앞둔 남녀가 사랑에 빠지게 하는 마법의 약 때문에 엉뚱한 사람과 사랑에 빠져 소동이 벌어진다는 이야기다. 이 연극에서는 처음 나오는 대사부터가 초승달이 뜨면 결혼하기로 했다는 말이다. 또한 이야기 내내 달빛이 사랑을 상징하는 좋은 의미로 언급된다. 이 연극도 따지고 보면, 요정과 마법을 다루는 내용이긴 하다. 그렇지만 셰익스피어의 연극 중에서는 가장 밝고 즐거운 내용으로 손꼽힌다. 이 희곡에는 "나뭇가지를 짊어진 사람"을 언급하는 알 수 없는 내용이 나온다. 이것은 중세 유럽에 퍼져 있던 달에 관한 또 다른 전설의 인용이다. 우리가 달의 무늬를 보고 토끼라고 생각하듯이, 중세 유럽에서는 그 무늬가 나뭇가지를 짊어진 사람 모습이라고 보았다. 전설에 따르면, 옛날에 어떤 사람이 일요일에도 일을 한 벌로 달에 가서 영원히 일주일 내내 항상 나뭇가지를 지고 있게 되었다고 한다.

 

- 로마 문화를 이어받은 유럽권에는 아직도 달빛을 받으면 사람의 마음이 좀 이상해진다는 믿음이 굉장히 널리 퍼져 있다. 그 흔적은 말에도 남아 있다. 'Lunar'나 'Moon'이라고 하면 영어로 달을 나타내는 말인데, 거기에서 파생된 단어 중에는 정신이 이상해지는 것과 관련된 단어가 많다. 'Lunatic'은 정신이 나갔다는 뜻이고 'Moony'라고 하면 멍하다는 뜻이며, 'Moonstruck'이라고 하면 좀 정신이 빠져서 붕 뜬 것 같은 상태를 말한다. 'Moonshine'은 헛소리, 'Moonraker'라고 하면 멍청이라는 뜻이 있다. 

 

- 그런데도 긴 세월, 많은 사람들 사이에 달, 행성, 별들과 그에 따라 정해지는 날짜가 운명을 결정한다는 발상은 꿋꿋이 이어졌다. 조선시대에는 직성이라고 해서, 매년 초, 그해에 자신의 운명을 따지는 행성을 따져보는 문화가 상당히 유행했다. 하늘에 있는 달, 해, 수성, 금성, 화성, 목성, 나후, 계도, 일곱 가지가 그 사람이 태어난 연도에 따라 서로 다른 영향을 미쳐 운수를 정한다고 보는 방식이다. 예를 들어, 금년에 내가 금성의 기운을 받을 차례라면, 나의 직성은 금성이고, 금직성이라고 부르며 그에 따라 운수가 정해진다. 대개 해와 수성을 운이 없는 것으로 보았다고 하는데, <경도잡지 京都雜志>에 따르면 달이 직성일 때도 운이 없다고 보았다고 한다. 

(리뷰자 주 : 7 행성과 여덟 가지가 섞인 게 아닌가 싶다. 여러 번 세어 보았지만 여덟 가지다. 타임로드나 연주를 구하는 방식으로 운의 흐름을 보는 것은 서양 점성술도 마찬가지였다. 경도잡지는 영정조 시대 학자인 유득공이 지은 것으로 보는데, 그렇다면 대략 18세기 책이라는 뜻이다. 베딕 점성술에서 용두 용미를 중심으로 보는 것은 맞지만, 이미 아랍 점성술의 영향을 받은 중세 점성술에서도 용두 용미를 사용하고 있었다.)

 

- 이런 풍습은 고대 인도에서 시작된 점성술이 흘러 전해지고 다른 점성술에 영향을 주다가 변형된 것이 아닌가 싶은데, 무엇 때문인지 조선 시대에 이르러 큰 인기를 얻었던 것 같다. 요즘 한국어에도 "직성이 풀린다"라는 표현이 있는데, "어쩔 수 없는 운명이라도 되는 것처럼 어떤 행동을 했다" 내지는, "직성 때문에 생긴 액운을 풀기 위해 하는 행동처럼 어떤 일을 했다"라는 뜻에서 생긴 말로 보고 있다. 그럼 이 일곱 가지의 직성 중에서 나후, 계도는 뭘까? 나후와 계도는 고대 인도 신화에 나오는 라후와 케투를 말하는 것이다. 인도 신화에서는 먼 옛날 태양의 신인 수리야와 달의 신인 찬드라가 우주에서 한 괴물과 영원한 생명을 얻는 약을 두고 싸우다가 그 괴물을 두 동강 냈다는 이야기가 있다. 과물은 두 토막이 되었지만 그 직전에 약을 먹었기 때문에, 영원히 살아남을 수 있었다. 그래서 몸의 반쪽은 라후, 반쪽은 케투가 되어 영영 우주를 떠돌게 된다. 라후, 케투는 옛 원한 때문에 우주를 떠돌다가 가끔 태양의 신 수리야나 달의 신 찬드라를 만나면 물어뜯는다. 그러면 그때마다 해가 줄어드는 일식, 달이 줄어드는 월식이 일어난다고 보았다. 

(리뷰자 주 : 이는 점성술을 하시는 분들이라면 다 아실 용두와 용미를 말한다. 점성술은 지구를 기준으로 한 별들의 움직임을 항도로 나타내는데, 태양의 길인 황도와 달의 길인 백도가 교차하는 지점을 이름이다. 북쪽 노드, 용두, 라후 / 남쪽 노드, 용미, 케투라고도 칭한다. 어째서 일식/월식인지 바로 이해가 되실 것이다.)

 

- 학자들은 지구에서 보낸 빛을 일부러 달에 정확하게 튕겨 돌아오게 해서 어떻게 보이는지 측정하는 실험도 하고 있다. 이런 실험이 가능한 것은 달에 보낸 우주선들이 달의 땅 위에 거울을 몇 개 설치해 놓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구에서 빛을 잘 조준해서 그 거울에 맞춰 보내면 그냥 달에 빛을 보내는 것보다 훨씬 깨끗하게 반사된 빛이 지구로 다시 돌아온다. 

 

- 달은 지구로부터 40만 km 가까이 떨어져 있다. 이 거리는 상당히 멀기 때문에 빛이 날아가는 데에도 1.3초 정도의 시간이 걸린다. 지구에서 레이저를 쏘면 레이저가 달에 있는 거울에 부딪혀 돌아올 때까지는 2.6초 정도의 시간이 걸린다.

 

- 요즘 학자들은 이 방식으로 달과 지구 사이의 거리를 1mm 단위로 알아낸다. 그렇게 살펴보니 매년 달과 지구 사이의 거리가 약 4cm씩 멀어진다는 사실도 알아냈다. 그러므로 아마 1억 년 전 과거, 공룡들이 살던 시대에는 달이 지금보다 한결 가까웠을 것이고, ...

 

- 먼 옛날 이 땅에 살았던 사람들에게도 이런 명절이 있었다. 고조선 사람들은 매년 음력 10월이 되면 무천이라고 하는 명절을 즐겼다고 한다. 음력 10월이면 늦가을 무렵이다. 추수가 끝나고 여유가 있을 시기다. 그러니 무천이라고 하는 명절은 아마도 추수한 곡식에 감사하며 그 풍요로움을 즐기는 축제였을 것이다. 의미를 본다면 지금의 추석과 비슷하다. 무천에 대한 기록은 <토원책부 鬼園策府>라고 하는 책에 나와 있는데, 이 책이 고조선 때의 풍속을 정확히 옮겨놓은 것이라면 이것은 한국인의 달력과 시간관념에 대한 기록 중 가장 먼 옛일에 관한 내용이다. 이것 말고도 약 2,000년 전에 있었던 나라인 동예에도 무천이라는 풍속이 있었다는 사실이 다른 여러 책에 좀 더 자세하게 기록되어 있다. 그러니 적어도 한반도의 고대인 중 상당수가 무천이라는 명절에 익숙했던 것은 분명하다. 옛 기록에는 동예의 무천을 "주야음주가무 晝夜飮酒歌舞”라고 묘사하고 있다. 한문에 익숙지 않더라도 대충 뜻을 짐작할 수 있을 만한 표현이다. 밤낮으로 술을 마시고 노래를 하고 춤을 추었다는 뜻이다. 

- 나는 달의 모양이 변하는 순서가 항상 헷갈렸는데, 중학교 때 한 친구가 수학식에서 미지수를 나타내는 X모양을 쓰는 차례대로 달의 모양이 나타난다고 기억하면 된다고 해서 그 후로는 헷갈리지 않는다. 먼저 X의 왼쪽 반인 ) 모양처럼 생긴 달이 먼저 나타나고, 그다음 시간이 흐르면 상현달, 보름달이 나타나고 나중에 하현달을 거쳐 X의 오른쪽 반처럼 생긴 ( 모양의 달이 마지막으로 나타난다. 

- 옛사람들은 이런 현상이 반복되는 것이 하늘 위 세상의 신비한 이치를 나타내고 있다고 믿었다. 그래서 달의 움직임이 규칙적으로 반복되는 현상이나, 그러는 사이에 계절이 변하면서 낮의 길이가 밤보다 길어졌다 짧아지는 일이 반복되는 현상이 시간이나 운명과도 관계가 깊다고 보았던 것 같다. 따지고 보면 고대의 학자들 중에도 달의 모양이 변하는 것은 달이 공전하는 중에 햇빛을 받는 각도의 차이가 생겨서 나타나는 현상일 뿐이라고 짐작한 사람들이 있었다. 하지만 그래도 달과 별의 움직임이 하늘 밖 세계의 신비로운 움직임을 나타낸다는 생각은 깊이 뿌리내려 있었다. 

- 복잡하게 달의 움직임이니 윤달이니 따지기 이전에, 사실은 그냥 언제를 1월로 보느냐부터가 옛날 관리들의 선택에 따른 것이다. 한국인들이 세운 고대 국가 부여에 관한 <삼국지 三國志>의 기록을 보면, 그 나라에는 은나라 달력으로 1월에 영고라고 하는 명절이 있었다고 한다. 은나라는 청동기시대 중국에 있었던 나라로, 이 나라의 달력은 대체로 동지를 1년의 마지막으로 하고 동지가 있는 달, 그다음 달을 1월로 삼았다. 나름대로는 합리적인 판단이라고 생각한다. 낮이 가장 짧아지고 밤이 가장 길어진 시기, 말하자면 겨울이 가장 심해지는 시기에 한 해가 끝난다고 본 것이니, 그다음 달이 새해 1월이 된다. 부여 사람들도 아마 비슷한 생각을 해서 같은 방식으로 달력을 만들었는지 모른다.  혹은 은나라에서 달력 만드는 방식을 수입해서 같은 방식을 채택했을 가능성도 있다. 

- 그러나 중국의 다른 시대, 다른 나라에서 개발한 달력은 동지가 11월에 오도록 만든 경우가 많다. 즉, 동짓달이 11월이고, 동짓달로부터 두 달 후에 새해가 시작된다. 지금 우리가 쓰는 음력도 이 방식을 택하고 있다. 이것은 한국인들도 강대국이고 기술도 뛰어났던 중국의 달력을 표준으로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지금 한국에서 쓰는 음력은 여러 가지 방식 중에 중국 청나라의 임금 순치제가 자기 신하들에게 지시하여 1645년에 만든 시헌력을 기준으로 개발된 것이다. 달력 만드는 법을 역법이라고 부르는데, 기록에 남아 있는 한국에서 사용하던 역법들은 주로 중국의 역법을 수입해 온 것이 많다. 삼국시대에는 인덕력, 원가력, 대연력, 선명력 등을 수입해서 사용했고, 고려시대에는 선명력, 수시력을 수입해서 사용했다. 고려시대에는 십정력, 칠요력, 견행력, 둔갑력, 태일력 같은 특이한 역법을 자체 개발했다는 기록도 있다. 

- 어떤 역법을 택하느냐에 따라 날짜는 달라진다. 예를 들어 음력 달력이기는 하지만 그중에서도 신라는 인덕력을 택하고 백제는 원가력을 택하고 있다면, 두 나라 사이에 날짜가 달라지는 때가 생길 수 있다. 만약 그런 일이 벌어지면 팔자도 달라질까? 같은 날 태어난 아이지만, 신라에서 태어난 아이는 인덕력 방식의 달력에 따라 7월 1일에 태어났다고 할 수 있고, 백제에서 태어난 아이는 원가력 방식의 달력에 따라 6월 30일에 태어나는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다. 좀 더 이상한 상황을 생각해 볼 수도 있다. 만약 그 아이의 어머니가 백제에서 신라 땅으로 잠깐 놀러 왔다고 치자. 그런데 하필 그때 아이가 태어났다면? 그 아이는 백제 사람의 자식이니 6월 30일생 팔자로 운명이 정해지는가? 아니면 신라의 법이 적용되는 신라 땅에서 태어났으니 신라 기준으로 달이 바뀌어 7월 1일생 팔자로 운명이 정해지는가? 이것만으로도 월과 일이 달라지니 팔자의 절반이 바뀐다. 만약 그 아이가 태어나는 순간 그 지역을 고구려의 장군이 공격해서 고구려 땅으로 빼앗고 있었다면 고구려 역법에 따라 운명이 정해진다고 볼 수도 있을 것인가?

(리뷰자 주 : 이런 경우 점성술에서는 대체로 태어난 순간 해당 지역의 별 배치를 기준으로 정한다. 따라서 하필 그때 아이가 태어났다면 신라를 기준으로 한 별의 배치를 보면 된다. 사주로 보겠다면, 신라의 역법으로 보면 된다. 이런 경우 일에 따라 달라지는 사주는 사실상 일종의 스펙트럼이므로 양일의 사주를 탄생 시에 따라 일정 비율로 섞어보는 역법도 존재한다. 저자가 역법에 대해서도 공부를 했더라면, 이런 의문은 없었을 것이다...?)

 

- 그런데 최근에 광격자시계라는 새로운 방식의 시계를 이용하면, 그보다 훨씬 더 정확한 시간을 측정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예를 들어 한국표준연구소 시간표준그룹 원자기반양자표준팀에서 만든 KRISS-Yb1이라는 시계는 20억 년에 1초 정도밖에 오차가 나지 않을 정도로 정밀하다. 이 시계는 이터븀(Yb) 광격자시계 방식을 채택하고 있는데, 2021년 11월에 전 세계 시간의 기준이 되는 세계협정시(UTC)를 만드는 기준 중의 하나로 포함되도록 인정받았다. 한국은 프랑스, 일본, 미국, 이탈리아에 이어 세계에서 다섯 번째로 광격자시계 방식의 정확한 시계를 시계협정시 기준으로 올렸다. 

 

- 황해는 밀물과 썰물 현상이 크게 일어나기 때문에 항해와 연결되어 있는 한강도 바로 감조하천이다. 바다에서 밀물이 심하게 일어나면 밀물이 강물을 거슬러서 한강 깊숙이 밀려든다는 이야기다. 지금은 한강에 여러 가지 공사를 많이 해두어 이런 현상이 예전처럼 심하지는 않다. 하지만 <조선왕조실록>의 1790년 7월 1일 기록을 보면 노량진 지역까지도 밀물이 아주 심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그러니 밀물이 한강으로 밀려들 때 인천에서 배를 띄우면 달이 바닷물을 잡아당기면서 생긴 물살을 타고 마포까지, 노량진까지 배가 들어갈 수 있다는 뜻이다. 

- 바로 이 방식을 이용해서 옛사람들은 막대한 양의 화물을 한강 이곳저곳으로 운송할 수 있었다. 기차나 자동차가 없었고 도로도 별로 발달하지 못했던 옛 한반도에서는 무거운 화물을 운반하기가 어려웠다. 소나 말 같은 가축에 짐을 실어 옮긴다고 해도 한 번에 몇백 kg을 옮기기가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큰 배에 짐을 싣는다면 옛날 기술로도 한 번에 몇십 t을 싣는 것도 어렵지 않다. 그리고 인천에서 서울 쪽으로, 즉 서쪽에서 동쪽으로 가고 싶을 때는 밀물 때를 기다렸다가 배를 출발시키면 된다. 도착 후에 다시 돌아오고 싶을 때에는 썰물 때가 되었을 때 배를 출발시키면 한강 흐름에 따라 자연스럽게 배는 다시 떠내려 가서 원래 있던 위치로 돌아간다. 밀물과 썰물은 하루에 두 번씩 나타나므로 자주 움직일 수는 없지만 느긋하게 기다리면 반드시 때는 온다. 한강을 오가는 옛 시대의 배들은 달의 힘으로 움직였다고 말할 수 있다. 
 
- 지금도 노량진은 수산시장으로 유명하지만, 과거에는 배들이 많이 모여들어서 더욱 중요한 곳이었다. 서해에서 잡은 온갖 생선을 가득 실은 배가 밀물을 따라 한강을 거슬러 노량진까지 흘러왔다. 그러면 서울과 경기 지역 사람들이 그 물건을 편리하게 살 수 있다. 고려시대, 조선시대에 노량진 시장에서 광어나 우럭을 사 먹었다면 그 생선은 달이 배달해 준음식이었던 셈이다. 19세기 말 개화기가 시작되어 조선 최초로 철도가 건설될 때에 인천에서 노량진 구간이 가장 먼저 개통되었고, 1900년에 서울에서 한강을 건너는 다리가 가장 먼저 놓인 곳도 노량진과 용산을 연결하는 한강철교다. 조선 말기까지도 노량진이 이렇게 교통에서 중요했던 것은 거슬러 올라가면 결국 달의 힘 때문이다. 

- 신라를 달의 왕국이라고 부를 수 있지 않을까? 신라에 관한 옛 기록을 보다 보면 가끔 드는 생각이다. 달은 밤하늘에서 눈에 잘 띄다 보니 신라만 아니라 모든 문화권에도 어느 정도씩은 영향을 미쳤다. 또한 신라 역사는 1,000년에 가까우니 긴 역사 동안 유행에 따라 문화가 변하기도 했다. 한 100년 동안 신라 사람들이 달을 아주 좋아하다가도, 유행이 바뀌어 다시 100년쯤은 신라 사람들이 달을 싫어하는 문화가 퍼졌을 수도 있다는 뜻이다. 말이 쉬워서 1,000년이지, 1,000년이면 그렇게 100년마다 일어나는 변화가 열 번은 반복해서 일어날 수 있는 시간이다. 

 
- 한 나라의 중심인 임금이 머무는 궁전 이름은 아무렇게나 정해지는 게 아니라, 파헤쳐 보면 깊은 의미를 담고 있다. 예를 들어 서울의 경복궁에서 "경복"은 뜻을 그대로 풀이하면 행운, 복이 있는 궁전이라는 뜻이다. 영어로 말하자면 "the Lucky Palace"가 되어 어째 휴양지나 카지노 같은 느낌이 되지만, 사실은 고대 중국의 시를 모아둔 <시경 詩經>에서 따온 말이다. 그만큼 옛 문화에 대한 존경과 심취를 담은 이름이다. 중국 베이징의 자금성은 영어로 흔히 "the Forbidden City"로 번역하는데, 직역한 말과 달리 자금이란 중국 도교문화에서 하늘 세계, 천상의 임금이 머무는 곳을 의미하는 말이다. 보통 중국 도교에서는 그런 곳이 북극성과 북두칠성 근처였다고 보았으므로, 자금성의 뜻을 풀이하자면 사실 "북극성 성", "the Polaris City"라고 해야 한다. 그에 비해 경주의 월성은 달의 성이라는 뜻이다. "the Lunar City"라고 하면 SF 영화에 나오는 미래 세계에서 달에 건설한 도시라는 느낌이 드는데, 신라 사람들은 바로 그런 이름을 가진 궁전 근처를 드나들며 생활했을 것이다. 지금 월성에 가보면 모든 것이 허물어지고 파괴되어 있어, 그 흔적만 어렴풋하게 살펴볼 수밖에 없다. 그렇지만 <삼국사기>에는 파사이사금이 임금이었던 서기 101년에 월성을 건설했다고 하며, 바로 근처에 있는 월지에서 신라 말기의 사치품들도 자주 발견되고 있다. 그러니 신라 초기에서 신라 멸망 무렵까지 거의 800년 동안 월성 근처가 신라의 중심지이자 경주의 중심지였을 가능성은 매우 높다. 

 

- 사람들은 한동안 월지를 나중에 생긴 별명인 안압지라는 이름으로 불렀다. 그런데 20세기에 이 연못을 조사한 결과 이곳을 신라에서는 월지라고 불렀다고 추측할 수 있게 되어, 최근에는 정식 명칭도 월지로 바뀌었다. 근처에는 임금의 후계자가 머무는 궁전이 있었던 것으로 보고 있는데, 임금의 후계자가 사는 궁궐을 흔히 동궁이라고 하므로, 요즘에는 월지와 그 인근을 아예 '동궁과 월지'라고 묶어 부른다. 

- 궁궐 근처라서 잔치를 많이 했는지, 월지에서는 이런저런 놀고먹는 생활상에 관련된 유물들이 꽤 많이 나왔다. 특히 가장 많이 알려진 유물로는 술 마시면서 게임할 때 쓰던 주사위가 있다. 나중에 주령구라는 이름이 붙었는데, 나무를 깎아 만든 14면체 주사위다. 각 면에는 숫자나 점찍은 무늬 대신에 술 마시며 게임할 때 내릴 벌칙이 적혀 있다. 1,000년에서 1,300년 전 사이의 신라 사람들이 즐기던 술 마시기 게임용 도구이지만, 그 내용은 현대의 술자리 게임과 별로 다르지 않다. 한국인들의 회식 술자리 문화에 익숙한 사람이라면, 신라에서 쓰던 주사위에 적혀 있는 "한 번에 술 3잔 마시기", "소리 내지 않고 춤추기" 따위의 내용을 보기만 해도 어떤 느낌인지 생생히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 이 주사위는 1975년에 발견된 후, 보존을 위해서 바싹 말리던 도중에 어이없게도 불타 없어지고 말았다. 오랫동안 잘 보존하기 위해서 건조 처리하겠다고 한 것인데, 도리어 버려져서도 1,000년 넘게 남아 있던 물건을 한순간에 없애버린 셈이다.  

 

- 서기 488년에 신라의 임금이었던 소지 마립간이 까마귀 한 마리를 추적하다가 이상한 봉투 하나를 발견했다. 봉투에는 "뜯어보면 두 사람이 죽고, 뜯어보지 않으면 한 사람이 죽는다"라고 적혀 있었다고 한다. 임금은 두 사람이 죽는 것보다는 한 사람이 죽는 것이 낫다고 생각해서 그냥 뜯어보지 않고 버리려고 하지만, 신하 한 사람이 "한 사람이란 임금 한 사람을 말하는 것일 수 있다"라고 해서 뜯어보기로 한다. 그래서 봉투를 뜯어보니, 거기에는 뜬금없이 "거문고를 보관해놓는 통을 활로 쏘아라"라고 적혀 있었다. 임금은 괴상하게 여기면서도 시킨 대로 거문고 통에 활을 쏘았다. 그런데 나중에 알고 보니, 궁중에 임금의 부인이 바람이 난 남자가 있었는데, 갑자기 임금이 오자 부인과 함께 거문고 보관하는 통 속에 둘이 같이 숨었던 것이다. 그리고 둘은 그 안에서 화살을 맞아 사망했다. 임금은 이때 화살을 쏘지 않았다면, 그 남자가 자신을 암살했을 거라고 보고, 이 사실을 알게 해 준 까마귀에게 감사하는 뜻으로 까마귀를 기리는 날을 정한다. 그리고 그날이 바로 정월대보름이었다고 한다. 이 이야기는 후대에도 아주 널리 알려져서, 조선시대 선비들이 쓴 글을 보아도, 정월대보름에 먹는 약밥이나 오곡밥은 까마귀에게 줄 선물로 만드는 음식에서 유래한다고 설명하는 내용을 자주 볼 수 있다. 그렇게 생각하면 이 이야기도 아름다운 보름달을 즐기고 좋아하는 문화를 신라 사람들이 만든 사례다. 

(리뷰자 주 : 본디 한반도에서는 까마귀가 길조였다.)

 

- 그 외에도 신라에는 달과 관련된 이야기가 많다. 가령 노힐부득, 달달박박이라는 사람이 득도하여 사람들에게 좋은 이야기를 하고 공중으로 날아가며 떠났다고 하는데, 그 놀라운 사람들이 지내던 백원산이 너무도 신비로운 곳이라서 보름달이 뜨면 멀리 중국 당나라 임금이 만들어 둔 연못 한 곳에 그 산의 경치가 비쳤다고 한다. 내가 특히 좋아하는 이야기는 월명사라는 음악에 아주 밝은 사람의 이야기인데, 그 사람이 밤에 피리를 불면 밤하늘의 달이 더 듣고 싶어서 지지 않고 멈추어 있었다는 대단히 시적인 이야기다. 
 

- 아예 신라 사람들의 신화 중에도 달에 관한 것이 있다. <삼국유사>에 실려 잘 알려진 연오, 세오 이야기다. 이는 동해안에 살던 연오라는 남자가 서기 157년에 해조류를 따러갔다가 이상한 것의 등 위에 실려서 멀리 일본 땅까지 가게 되었다는 이야기로 시작한다. 그 이상한 것은 바위였다고도 하고, 물고기였다고도 한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바위만큼 큼직해 보이는 고래라고 하면 말이 더 잘 들어맞지 않나 추측하기도 한다. 그렇게 보면, 어느 날 갑자기 고래가 나타나 연오를 싣고 일본으로 데려갔다는 이야기다. 

- 지구에서 태양을 볼 때 태양이 달에 가려 안 보이는 수가 생긴다. 그것이 일식이다. 여기까지는 이이의 설명과 잘 맞아떨어진다. 그러나 월식이 생기는 이유는 달이 태양으로부터 받는 빛을 지구의 한쪽 편이 교묘하게 가리는 일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단순히 짧게 설명하려면 "지구가 해를 가리기 때문"이라고 하는 편이 차라리 더 쉽고 간단한 설명이다. "해가 달을 가린다"라는 말은 어긋난 설명이다. 일식, 월식이 일어나는 것을 간단히 설명하려면 해, 달, 지구가 모두 둥글게 생겼다는 점, 해는 아주 멀리 있고, 달은 아주 가까이 있다는 사실, 그 대신 달이 해에 비해 크기가 훨씬 작다는 사실 등등을 알고 있어야 한다. 이런 점에서 이이의 생각은 지금 우리가 아는 실제와는 차이가 있다. 그러므로 지금 보면 <천도책>에서 중요한 내용은 해와 달이 움직이는 핵심 원리라기보다는, 해, 달, 별을 보고 우리는 무엇을 느낄 수 있고, 사람이 삶을 어떻게 사는 것이 좋으냐고 해설한 부분이라고 봐야 한다. 

 

- 그래도 해, 달, 별, 비, 바람, 천둥, 번개 등등 온갖 현상을 모두 음기와 양기의 딱딱 맞아떨어지는 조합으로 풀이해 나가는 이이의 설명은 옛사람이 보기에 멋과 우아함이 있었을 것이다. 조선시대 학자들의 철학과 세계관으로 우주의 원리를 이해하는 방법이 시험지 답안에 잘 요약되어 있다고 할 만하다. 심지어 이이는 세상 모든 것은 그저 단 하나의 기일 뿐인데, 그 기가 움직이는 형태면 양기이고, 가만히 멈추는 형태면 음기라고도 설명했다. 세상 모든 물체를 기라는 단 하나의 생각만으로 설명할 수 있다는 뜻이다.

 

- 사람들은 이렇게 간단한 원리로 출발해서 균형을 이루며 맞아떨어지는 이론을 지금까지도 좋아하는 경향이 있다. 이런 경향은 현대의 학자들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예를 들어, 현재 학자들은 세상의 모든 보통 물질이 업 쿼크와 다운 쿼크라는 이름의 두 가지 입자와 전자라는 또 다른 하나의 입자가 조합되어 이루어져 있다고 보고 있다. 돌, 물, 공기는 물론, 나무, 사람, 지구, 달도 확대해 보면 결국은 업쿼크, 다운 쿼크, 전자라는 아주 작은 입자가 굉장히 많이 모여서 붙어 있는 덩어리라는 이야기다. 그런데 왜 하필 이 세 가지 물질이 세상을 이루고 있을까? 네 가지나 다섯 가지가 아닌 이유는 뭘까? 이상하지 않은가? 초끈이론을 연구하는 현대 학자들은 세상에는 원래 끈 모양을 가진 단 하나의 물질밖에 없다고 본다. 그리고 그 끈이 서로 다른 세 가지 방식으로 떨리는 것이 세 가지 물질로 보일 뿐이라고 설명한다. 

 

- 이런 조선에서도 얘기에서 빼놓을 수 없는 뛰어난 시인으로, 허난설헌이라는 호칭으로도 잘 알려진 허초희가 있다. 허초희는 어릴 때부터 글을 짓는 재주가 뛰어났으며 그 솜씨를 잘 가꾸었던 훌륭한 작가였다. 그렇지만 여성이었기 때문에 당시 조선 사회에서는 그런 솜씨로도 성공할 방법이 마땅찮았다. 허초희의 결혼 생활은 결코 행복하지 않았는데, 그나마 남편이 과거 시험에 계속 낙방하면서 더 삶은 고달파졌다. 나중에는 형제들이 이런저런 사건에 휘말려 귀양살이를 하게 되었고 부모도 갑작스레 세상을 떠나는 등 고생을 하다가 본인도 27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그런데 그 후 허초희가 남긴 시가 굉장한 인기를 모았다. 특히 중국과 일본에서 명성을 얻었는데, 나중에는 중국 사람들 사이에서 조선의 어느 시인보다도 허초희의 시가 가장 자주 언급될 정도로 화제가 된 시대도 있었다. 정작 허초희는 세상을 떠나면서 자신이 남긴 시는 모두 없애달라고 했다는데, 그의 동생 허균이 시를 기억하고 있다가 되살려서 시집을 냈다고 한다. 시인이라면 자기 글을 뽐내고 널리 보이고 싶어 안달이 날 텐데, 오히려 그냥 다 없애달라고 했던 시들이 그렇게나 인기를 얻었다는 사실도 참 묘한 일이다. 
(리뷰자 주 : 어찌 그 마음을 모르겠는가.)

 

- 소련 기술진은 같은 방식의 세묘르카 로켓 개조판을 계속해서 더 만들었다. 그중에서도 가장 유명한 제품이라면 역시 소유스 Coros, Soyuz를 꼽을 수 있을 것이다. 소유스는 여러 차례 개량됐지만, 기본 구조는 보스토크처럼 세묘르카 로켓의 바탕 위에 더 빠르게 갈 수 있는 로켓을 하나 덧붙여 놓은 형태다. 소유스는 워낙 많이 만들어졌고, 또 워낙 많이 우주로 나갔기에 가장 믿음직한 로켓으로도 손꼽힌다. 

- 2008년 한국의 이소연 박사가 우주정거장에서 과학 실험을 하는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서 탔던 우주선도 바로 소유스 계통의 로켓이었다. 2020년대에도 소유스의 개량형이 여전히 사람을 우주에 보내는 데 활용되고 있다. 소유스 로켓이 발사된 숫자를 모두 합해보면 1,600번이 넘을 것으로 보인다. 우리나라의 초·중·고교에서 수업을 하는 날이 1년에 200일이 채 못 된다. 그러니까 소유스 로켓은 학생이 8년 동안 등하교를 하는 횟수보다도 많이 우주에 가보았다는 이야기다. 

- 세묘르카 로켓은 중심의 주 로켓에 작은 보조 로켓 4개가 사방으로 붙어 있는 형태로 되어 있다. 그래서 다양한 로켓 엔진들 여러 개가 한꺼번에 움직이는 특이한 구조로도 유명하다. 그런데도 긴 시간 운영하면서 그렇게나 튼튼하게 잘 작동했고, 여러 차례 반복 생산하면서 로켓을 만드는 효율도 상당히 좋아져서 더욱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 소유스를 비롯한 세묘르카 계열 로켓이 발사되면, 어느 정도 높이에서 사방에 붙어 있던 보조 로켓들이 동시에 분리되어 사방으로 십자 모양을 그리면서 떨어진다. 지금도 러시아 로켓 발사 현장에서 자주 볼 수 있는 그 독특한 로켓 분리 모습은 세묘르카의 상징이자, 소련 우주 기술의 상징이기도 하다. 

- 나는 로버트 맥나마라 전 미국 국무장관이 인터뷰를 하면서 1960년대 미국군은 달 뒷면에 소련군이 군사 기지를 만들지도 모른다고 걱정했다고 한 것을 본 적이 있다. 냉전이 한창극에 달한 시기, 지구에서는 절대 안 보이는 달의 뒷면에 아무도 볼 수 없는 비밀 시설을 지으면 핵무기를 숨겨놓기 좋겠다는 상상을 군인들이 했더라는 이야기다. 그렇게 달 뒷면에 숨겨둔 핵무기는 결코 찾을 수도 없고 파괴할 수 없는 마지막 비밀 무기로 사용할 수 있을 테니까. 

- 소련을 따라잡기 위해서 미국은 부랴부랴 다양한 로켓들을 우주로 보냈다. 미국 역시 아틀라스 로켓이나 델타 로켓 같은 ICBM을 개조한 로켓들을 자주 활용했다. 참고로 아틀라스 로켓과 델타 로켓의 개량판은 아직도 우주 개발에 활용되고 있다. 예를 들어, 한국 최초의 통신용 인공위성인 무궁화 1호 역시 델타 로켓의 후계작인 델타II 로켓에 실려 우주로 나갔다. 

 

- 그래서 우리는 달에 가야 한다. 아직까지도 사람을 해치는 무기와 전쟁을 걱정해야 하는 시대라는 사실은 서글픈 일이다. 하지만 어쩔 수 없이 무기가 필요하다면 고성능의 우주로켓을 이용하는 무기처럼 뛰어난 것도 없다. 

- 새턴 5호는 소련의 세묘르카 로켓과 함께 우주 개발 역사에 길이 남을 걸작으로 꼽을 만한 로켓이다. 2020년대에 한국에서 만든 누리호 로켓은 1.5t 정도의 무게를 지구 상공 700km 높이에 시속 2만 7,000km의 속도로 날려주는 성능을 가지고 있다. 이 정도면 그래도 꽤 쓸 만한 로켓이다. 그런데 50년 앞서 개발된 새턴 5호는 비슷한 높이로 100t 이상의 무게를 날려 보낼 수 있다. 누리호 로켓을 70번 연속으로 쏘아야 하는 것과 비슷한 일을 단 한 번에 해낼 수 있는 막강한 로켓이 새턴 5호였다. 새턴 5호 같은 로켓은 이전에도 없었으며, 그 후에도 없었다. 2020년대 중반 즈음이 되면 스페이스X와 NASA의 최신형 로켓 중에 새턴 5호를 능가하는 로켓이 나올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전망이 있는 정도다. 

- 그런데 세묘르카 로켓과 새턴5호를 비교해 보면 훌륭한 로켓이라는 점 말고는 다른 점이 많다. 우선 세묘르카 로켓은 세상에서 맨 처음 인공위성을 쏘아 올린 오래된 로켓이고 이후에는 저렴하게 자주 사용하기 위한 장비로 많이 사용되었다. 그에 비해 새턴 5호는 역사상 가장 성능이 뛰어난 로켓으로, 우주 개발에 대한 투자가 절정에 이르던 시기에 등장해서 다른 로켓으로는 결코 흉내 낼 수 없는 가장 어려운 임무를 수행했다. 세묘르카 로켓이 수없이 개조되면서 21세기의 소유스 시리즈에도 활용되는 등 수십 년간 쓰인 것과 다르게, 새턴 5호는 달 탐사 시대 이후로는 거의 사용되지 않아 잊혔다는 점도 차이다. 

 

- 버즈 올드린은 압록강 지역까지 전투기를 타고 날아가 적기를 격추한 실적으로 언론에서 조명받았고, 닐 암스트롱은 한국전쟁의 격전으로 손꼽히는 단장의 능선 전투가 한창일 무렵에 원산 지역을 정찰하는 임무를 수행했다. 암스트롱은 임무 중에 비행기 문제가 생겨 돌아오는 길에 포항 부근에서 비상 탈출하는 등, 죽을 고비를 넘기기도 했다. 1969년이면 휴전 후 16년밖에 지나지 않은 때였으니, 모르긴 해도 전쟁 중에 암스트롱이나 올드린을 실제로 만난 적이 있던 한국인도 있지 않았을까? 두 사람이 달 착륙 후 한국을 기념 방문했을 때에 우리 정부 쪽 사람들이 한국전쟁 참전용사라는 점에 대해 감사하는 말을 전하기도 했다. 

- 한국이 냉전의 최전선이라는 점 때문인지, 미국 정부도 한국에서 아폴로 11호를 홍보하는 일에 적극적으로 나섰다. 가장 대표적인 사업이 사람들이 대규모로 모여 아폴로 11호 발사 방송을 보며 환호할 수 있도록 행사를 준비했던 일이다. 미국 대사관 주도로 미국 정부는 지금의 남산공원 근처인 서울의 남산 야외음악당에 가로세로 6m의 커다란 화면을 만들어 두고, 그 화면을 그 앞에 사람들이 모여서 구경할 수 있도록 했다. 그 행사 장면을 촬영한 사진이 지금도 신문기사 등에 남아 있는데, 커다란 화면 위에는 큰 플래카드를 붙여 "인간의 달 탐험"이라고 써놓았다.

- 거기에 따라오는 기술적인 문제도 많았다. 미국에서 방송되는 화면을 생중계로 한국에 보내줄 수 있는 기술이 마땅찮았다는 문제가 가장 심각했다. 지금이야 초등학생이 자기 집고양이가 뛰어노는 장면을 휴대전화로 촬영해서 전 세계에 인터넷으로 보여줄 수 있는 시대지만, 1969년 한국에는 인공위성 전파를 잡을 수 있는 마땅한 장치 하나가 제대로 없었다. 그래도 결국에 미국은 어떻게든 한국인들에게 생방송을 보여줄 궁리를 해냈다. 일본까지 방송이 전달되면 그 방송을 일본에서 가까운 부산 지역에서 잡고, 부산에서 받은 방송을 서울의 방송국으로 보내서 전국에 다시 퍼뜨리는 방식을 택했다.  

 

- 닉슨 독트린은 닉슨 미국 대통령이 미국 대외 정책의 변화에 대해 발표한 것으로, 괌에서 발표했다고 해서 괌 독트린이라고도 한다. 그런데 닉슨 대통령이 굳이 괌에서 이런 발표를 한 이유는 다름 아닌 아폴로 11호 대원들의 탄 우주선이 태평양에 떨어졌기 때문이다. 닉슨 대통령은 아폴로 11호 대원들이 도착하자마자 직접 만나기 위해 태평양의 괌 근처까지 갔다. 이 시기에는 혹시나 달에 알 수 없는 우주 바이러스나 외계 세균이 살 수도 있다고 해서 대원들이 도착한 후에도 며칠간 격리하도록 했다. 그래서 직접 대통령과 대원들이 악수를 하지 못하고, 유리창 너머로 얼굴을 보고 대화를 나누었다. 그리고 그 직후에 발표한 닉슨 독트린의 핵심은 앞으로 아시아 국가들의 국방은 아시아 국가들 스스로 많은 책임을 져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해석해 보자면, 더 이상 미국이 많은 나라들을 예전처럼 돕지 못하겠다는 말이기도 했다. 구체적으로는 한참 힘겹게 진행되고 있었던 베트남 전쟁에서 이제 서서히 발을 뺄 수도 있다는 뜻을 내비친 말이기도 했다. 1969년에는 한국도 남베트남과 미국의 동맹국으로 베트남 전쟁에 참여하고 있었다. 그 한 해 동안 한국 군인 전사자 숫자만 682 명으로 기록되었을 정도로 전쟁 상황은 심각했다. 그런데 이런 이야기가 나왔으니, 한편으로는 앞으로의 아시아 정세에 큰 충격이 되는 말이었다. 

- 달에 공기가 없고 바람은 공기의 움직이라는 내가 알고 있던 지식이 활용된다는 점이 뿌듯한 느낌을 주기도 한다. 이 음모론을 듣고 관심을 가질 때, 나는 달, 공기, 바람에 대한 지식이 있기 때문에 이런 이야기를 이해할 수 있는 똑똑한 사람이라고 느낀다. 이런 이야기는 사람을 빨아들인다. 평범한 사람들은 아무것도 모르고 지나치는데, 나는 똑똑하기 때문에 세상이 숨기고 있는 사실을 예리하게 파헤칠 수 있다는 뿌듯함을 주기 때문이다. 

- 일단 한번 달 착륙 조작설에 맛을 들이고 내용을 살펴보면, 신기한 이야기들은 더 많이 준비되어 있다. 달에서 촬영된 사진들을 보면 그림자의 방향이 좀 이상해 보이는 것들이 있다. 음모론에서는 이것이 특수촬영 현장의 전기 조명 때문에 생긴 현상이라고 주장한다. 달에서 이륙하는 우주선에서 왜 불꽃이 뿜어져 나오는 모습이 보이지 않느냐는 지적도 있는데, 실제로 사진을 보면 우주선이 날아오르기는 하지만 불꽃은 잘 보이지 않는다. 그런가 하면, 1960년대의 성능 떨어지는 컴퓨터로 어떻게 달에 가는 길을 계산할 수 있었겠냐는 지적도 있다. 또, 1960년대 초에 달에 처음 갔는데, 그 후 몇십 년이 지나도록 왜 달에 가지 않고 있냐는, 음모론을 믿지 않더라도 귀담아들을 필요가 있는 문제 제기도 있다. 음모론에서는 애초에 달에 간 적이 없기 때문에 숨기기 위해서라고, 너무 쉽게 말하지만. 

- 그러나 이런 상상은 상상일 뿐이다. 만약 제2차 세계대전 때 나치 독일에 달까지 많은 사람을 보낼 수 있는 정도의 뛰어난 기술과 막대한 돈이 있었다면, 애초에 그들이 제2차 세계대전에서 패배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달 탐사가 다시 점차 활발해지면서 이제 달은 알 수 없는 망상의 공간이 아니라 구체적인 실험과 작업의 장소로 변화하고 있다. 달 탐사를 진행하는 나라에서는 대학에서 달에 대한 연구과제를 하기 위해 대학원생들이 일하고 있고, 달에 보내는 로켓과 우주선을 만들기 위해 여러 회사들이 제품을 만들고 있다. 이렇게 되면 달을 보는 시각은 괴상한 꿈이 아니라 현실의 문제가 된다. 

- 이제 점차 달은 대학원생들이 졸업을 하기 위해서 논문을 쓰는 대상이 되어가고 있고, 회사원들이 업무 계획을 세우고 예산을 배정하는 대상이 되고 있다. 달은 더 이상 비밀이 아니라 핵심성과지표(KPI)다.

(리뷰자 주 : 너무 슬프고 삭막한 일 아닌가? 지구에 이어 달까지?)

- 그래서 우리는 달에 가야 한다. 달의 내부가 비어 있다는 이야기가 그나마 많이 퍼진 이유는 실제로 달에서 관찰되는 지진이 너무 세게 측정될 때가 있다거나 퍼져 나가는 속도가 예상과 다를 때가 있는 등, 달의 내부에 무엇인가 특이한 점이 있을 것 같아 보이는 관찰 결과가 몇 가지 나와 있기 때문이다. 또한 달에는 루나 스윙 lunar swirl, 즉 달 소용돌이라고 하여 갑자기 자력이 빙글빙글 도는 모양으로 나타나는 위치가 발견된 적도 있다. 신비한 이야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이것을 보고 달 지하에 강력한 자력을 이용하는 외계인의 기계 장치가 있기 때문이라고 상상할 법도 하다.

 

- 그러나 이런 문제에 대해, 누군가는 생각나는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별 근거도 없이 갖다 붙이고 있을 동안, 다른 누구는 달을 탐사하여 자력을 실제로 분석하고 새로운 실험을 진행해 그 비밀을 풀고 달과 지구에 대해 더 많은 지식을 얻어낼 것이다. 이제는 현실의 공간이 된 달에서 성과를 얻어내기 위해서, 철 지난 음모론에 매달려 있을 게 아니라 직접 달에 발을 디디고 연구해야 한다. 

 
-  알 수 없는 현상 때문에 원래 계획한 것에서 약간 위치가 바뀐다는 등의 변화는 충분히 생길 수 있는데, 그렇게 바뀐 상황에 대해서 빨리 로켓을 어떻게 조작해 바꾸어 줄지를 판단해야 한다. 이런 작업을 해내려면 컴퓨터를 설치해서 컴퓨터 프로그램이 지금 상황에서 어떻게 우주선을 조작하는 것이 맞는지 자동으로 계산하는 기능을 설치해 두어야 한다. 도대체 그런 프로그램은 누가 만들었을까?

- 아폴로 계획의 우주선 중에 처음으로 우주로 나간 아폴로 4호는 1967년에 발사되었다. 컴퓨터를 사용한다면 요즘은 윈도우 Windows 같은 프로그램을 이용하는 것을 생각하기 마련인데, 최신형 윈도우에 비하면 단순한 프로그램이었던 윈도우 1.0 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고 해도 아폴로 계획 당시에 사용했던 프로그램과는 많은 차이가 난다. 달 탐사가 처음 시도된 시대는 사람들이 컴퓨터를 일상적으로 사용하기 시작한 시대보다 얼추 20년 가까이 앞선 시대다. 이 시대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컴퓨터 프로그램에 친숙하기는커녕, 컴퓨터라는 장치를 실제로 본 적도 없던 시대였다. 컴퓨터라는 말을 들으면 무슨 뜻인지 모르는 사람도 흔했다.

- 컴퓨터 프로그램은 물론, 대부분의 기계는 항상 고장이 나고 오류를 일으킬 수 있다. 1960년대에는 컴퓨터 프로그램을 만들다가 실수를 하고 버그가 생기는 데 대처해 본 경험이 많지 않았을 테니, 복잡한 프로그램을 만들다가 무엇인가 오류에 당황하는 일이 더 잦았을 것이다. 그렇지만 중요한 소프트웨어일수록 약간의 오류마저 큰 문제가 될 수 있다. 적이 공격해 오고 있는 것 같은데, 핵미사일을 발사해야 하는지 말아야 하는지 판단 같은 것이 그 예시다. 컴퓨터 프로그램 오류가 생겨서 기러기 떼를 적의 폭격기로 착각하고 세계에 핵전쟁을 일으키라는 신호를 보내면 곤란하다. 한편으로, 적의 핵폭탄이 떨어지기 시작해서 컴퓨터가 조금씩 망가지고 있는 상황에서도 마지막까지 어떻게든 남은 성능을 최대한 이용해 반격할 방법을 계산해 명령을 내릴 수 있어야 한다는 것도 중요한 과제다. 달을 향해 날아가는 우주선도 그 비슷한 상황이다. 지구에서 수십만 km 떨어진 먼 곳에서 작은 쇳덩이 하나가 시속 몇만 km의 속도로 움직이고 있다. 작은 판단의 오류가 일어나면, 우주선은 우주의 텅 빈 구석에 처박히고 대원들은 목숨을 잃게 된다. 또한 우주선이 고장 나고 망가지고 있는 상황이라도 어떻게든 최대한 대원들을 살리기 위해 마지막까지 컴퓨터 프로그램은 믿음직하게 동작해 주어야 한다. 

 

- 대학에서 과학 연구를 위해 하는 간단한 계산이나 컴퓨터 게임이라면, 좀 잘 안 되면 껐다 켜보든가 해볼 수도 있다. 하지만 우주선 컴퓨터는 껐다 켜는 사이에 몇 천 km는 엉뚱한 곳으로 날아가 버릴 수 있다. 가능한 오류가 적게 일어나고, 설령 만약 오류가 생긴다고 해도 그런 비상 상황에 대처할 수 있는 대단히 믿을 만한 프로그램을 개발해야만 한다.

- 나아가 해밀턴은 복잡하고 어려운 프로그램을 만들 때, 어떤 생각을 갖고 어떤 방식으로 프로그램을 만들어야 더 쉽게 안전하고 정확한 프로그램을 개발할 수 있는지, 그 원리와 방법을 찾는 데도 관심이 많았다. 지금은 키보드를 눌러 컴퓨터에 프로그램 내용을 집어넣고, 직접 앉은자리에서 실행시키고 또 고쳐가면서 계속 화면으로 차근차근 지켜보며 컴퓨터 프로그램을 짜는 것이 보통이다. 그렇지만 해밀턴의 시대에는 종이에 프로그램 내용을 써서 건네주면, 그것을 컴퓨터에 따로 작업해서 넣어주는 사람이 구멍 뚫은 종이나 전선 따위를 이용해서 컴퓨터에 넣었다. 

 

- 프로그램을 일일이 실행해 보면서 고치고 만들어 갈 수가 없어서, 종이에 손으로 써놓은 내용을 보면서 그 내용을 컴퓨터가 받아들였을 때 어떻게 작동할지 머릿속으로 상상하면서 프로그램을 만들고 오류가 발생할 가능성을 따져볼 수밖에 없었다. 그랬으니 해밀턴에게 복잡한 프로그램을 헷갈리지 않고 차근차근 잘 만들 수 있는 방법이 더욱 절실했을 것이다. 그래서 해밀턴은 차근차근 그렇게 프로그램 잘 만드는 방법을 구상했고 정리했다. 소프트웨어를 잘 만들고 잘 운영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 학문을 소프트웨어 공학이라고 한다. 해밀턴은 세상 사람들이 컴퓨터라는 기계도 낯설어하던 시기에 소프트웨어 공학이라는 분야가 처음 생겨나는 데 중요한 영향을 끼친 사람으로 ...

 

- 즉, 2013년 남극운석탐사대는 달을 따 오는 데 성공한 사람들이다. 그리고 그렇게 따 온 달을 사랑하는 사람에게 사랑을 증명하기 위해 사용하는 게 아니라, 고이 직장의 본사에 보냈다는 이야기다. 그렇다면 아예 정말로 달에 사람이 가서 달의 일부를 캐내 온 것은 없을까? 양은 훨씬 작지만 그런 물질도 한국에 있다. 일반인에게 공개된 적이 있어서 내가 알고 있는 사례로는 두 기관에서 달에서 캐온 돌을 갖고 있다. 

- 먼저 대전의 국립중앙과학관에 가면 미국의 아폴로 17호가 달에서 가져온 돌이 하나 전시되어 있다. 이렇게 달에 있던 돌을 가져온 것을 월석이라고 한다. 아폴로 17호는 1972년 12월에 달에 다녀온 우주선이다. 이때를 마지막으로, 수십년이 흐르는 긴 시간 동안 사람이 달에 간 일은 없다. 마지막이라고 생각해서인지, 아폴로 17호는 돌아오는 길에 꽤 많은 돌을 캐 왔다. 그리고 그중 아주 조금을 미국의 동맹국 정부에 나누어 주었다. 한국은 아폴로 17호가 돌아온 지 반년 정도가 지난 1973년 7월에 이 선물을 받았는데, 받은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일반인들에게 월석을 공개했다. 지금 이월석을 구경하러 과학관에 가서 보면, 손톱만큼 작아서 확대경이 설치되어 있을 정도다. 하지만 일반인이 언제든 구경할 수 있고, 오랫동안 한국인들이 눈앞에서 본 달의 일부라는 점에서 소중한 전시품이다. 

- 다른 월석은 대통령기록관에 보관 중이다. 이것은 사상 최초로 사람이 달에 착륙하는 데 성공한 1969년 아폴로 11호 때 가져온 월석이다. 이 월석은 더욱 작아서, 돌이라기보다는 그냥 아주 작은 자갈 몇 개 정도다. 당시 미국은 세계 여러 나라의 작은 국기를 아폴로 11호에 싣고 달에 가져갔다가 괜히 다시 가져왔다. 그래서 그것을 "달나라에 당신네 국기가 갔다 왔다"라고 하면서 여러 나라에 선물로 주는 행사를 했다. 그러면서 괜히 국기만 주면 너무 심심하니까, 아주 약간의 월석을 함께 포장해서 주었다. "달이라도 따다 준다는 말이 있는데, 미국 정부는 당신네들을 위해 정말로 달을 따주었습니다. 그러니까 앞으로 우리 편을 좀 들어주면 좋겠습니다." 그런 의미였을 것이다. 이 물건은 대통령기록관에서 자주 공개하지는 않는 것 같다. 나는 2022년 초에 대통령기록관 전시실을 방문한 적이 있었지만, 이 월석을 보지는 못했다. 
 
- 그러므로 아폴로 우주선을 과거 미국의 화려한 업적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힘들게 구해 온 아폴로 우주선의 월석이 아무렇게나 불법 거래되는 것을 굉장히 안타깝게 여기기도 한다. 그래서 조지프 구스엔츠 Joseph Gutheinz 같은 사람은 잃어버린 월석을 추적하고 다시 되찾아 오기 위해 여러 가지 사업을 벌이기도 했다. 구스엔츠는 변호사이면서 군대에서 정보 임무를 수행하기도 했던 경력도 갖고 있다고 하는데, 아마도 그런 경험을 살려서 월석 되찾기에 뛰어든 듯싶다. 그는 많은 돈을 들여 월석을 사려고 하는 사람인 척하면서 월석을 몰래 갖고 있는 사람들에게 접근하곤 했는데, 그렇게 해서 연락을 받으면 정부 기관 쪽에 그 사실을 알렸다고 한다. 그는 이런 방법으로 여러 잃어버린 월석의 행방을 알아냈다. 

- 미국 정부 기관은 그런 방식으로 월석을 훔친 사람을 체포한 일도 있다. 체포된 월석 도둑들 중에서 사드 로버츠 Thad Roberts는 특별히 화제가 된 인물이다. 아마도 그는 달의 부스러기를 훔치려고 한 도둑들 중 가장 잘 알려진 사람일 것이다. 2002년경, 그는 NASA의 기관 중 월석 보관 시설이 있던 곳 근처에서 인턴으로 일하고 있었다. 그는 과학 분야를 전공하는 학생이었고 실력도 괜찮았던 모양으로, 인턴 업무는 잘 해낼 수 있었던 것 같다. 그런데 그는 직장에서 동료 인턴 한 사람과 눈이 맞았다. 로버츠는 당시 결혼한 상태였으니 바람이 났다고 할 수도 있겠다. 바람난 두 사람은 무슨 생각을 했는지, NASA에서 월석을 훔쳐내기로 했다. 나중에 로버츠는 "나는 사랑 때문에 월석을 훔쳤다"라고 말했다. 

- 로버츠는 월석 보관 시설을 끈기 있게 유심히 관찰했다. 그렇게 해서 사람이 가장 없어서 들어가기 쉬운 때와 보관소에 들어가는 길을 알아냈다. 보관소는 월석의 손상을 막기 위해서 온도가 변하면 감지 장치가 경고를 하도록 되어 있었고, 공기 중의 산소에 월석이 손상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 숨 쉴 산소도 부족한 곳이었다고 한다. 그래서 로버츠는 마치 영화에 나오는 도둑처럼, 체온을 차단할 수 있는 작업복을 입고 산소마스크를 쓴 채로 들어가서 산소가 다 떨어지기 전에 잽싸게 월석을 훔쳐 나온다는 계획을 세웠다. 그 계획은 성공했다. 월석을 훔친 로버츠는 숙소에 가서 침대에 월석을 깔고 그 위에 애인과 함께 누워보았다고 한다. 


- 로버츠는 8년 동안 감옥살이를 했다. 감옥에 갇혀 있는 동안 달리 할 일이 없었던 그는 과학 공부에 심취하여 물리학과 우주에 대한 이론에 상당한 수준에 도달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나중에는 우주의 법칙, 상대성이론, 양자론, 11차원 공간에 대해 소개하는 책을 썼고, 이후 학자의 길을 걷게 되었다는데, 나로서는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사는 사람인지 알 수가 없다.

(리뷰자 주 : 한 번도 넘어지지 않고 달려온 사람에게는 이해하기 힘든 길일 수 있지만, 나는 어쩐지 그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알 것도 같다.)

 

- 달에는 공기가 없기 때문에 만약 우리가 달에 갈 수 있다면, 드넓은 달 땅덩이를 모두 순수한 우주방사선을 연구할 수 있는 공간으로 활용할 수 있다. 게다가 달에 널려 있는 월석들은 수억, 수십억 년 동안 그 자리에서 우주방사선을 고스란히 맞으며 노출되어 있었던 물체들이다. 이 역시 우주방사선을 연구할 수 있는 좋은 재료다. 다시 말해, 우리도 모르게 달은 수억 년 동안 돌에 우주방사선을 쪼이는 실험을 해놓았다. 우리는 달의 성의를 생각해서라도 달에 가서 그 우주방사선의 영향을 조사하고 분석해 보아야 한다. 그래서 우리는 달에 가야 한다. 우리는 달에서 월석을 연구하면서 달과 지구에 대해 많은 지식을 알 수 있을 것이고, 다양한 분야에 활용될 수 있는 우주방사선의 성질과 그 영향을 조사할 수 있다. 이런 연구가 쌓여나가면 지상에서 거대한 입자가속기 실험을 통해 우주의 근원이 되는 원리를 알아내는 것과 비슷하게, 지금껏 우리가 미처 알지 못했던 상상 밖의 놀라운 과학 원리와 그 응용 방법을 찾아내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 로켓 방정식이 말해주는 중력의 냉정한 힘을 극복하고, 다른 행성, 우주의 더 먼 곳에 쉽게 갈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황당한 방법을 아무렇게나 말해보라면 지구의 중력을 줄이는 방법을 생각해 볼 수 있다. SF 영화에 나오는 반중력장치 같은 신비의 물질이 있다면 무게 문제에 골치 아파할 필요가 없으니, 간단히 많은 연료를 갖고 우주에 나가 재빨리 화성이든 어디든 날아갈 수 있다. 그러나 그런 신비의 물질은 지금 우리에게는 없다. 중력을 줄여주는 물질이 뭔지, 그런 것을 어떻게 만들어야 할지도 모른다. 

- 조금 현실적인 방법을 생각해 본다면, 중력이 약한 곳을 잘 찾아서 거기에서 출발해 본다는 방법이 있다. 그리고 그런 곳이 다행히 지구 근처에 있다. 그곳에 우리는 가본 적도 있다.
바로 달이다.

- 문제는 있다. 로켓 하나를 만들기 위해 필요한 그 많은 설비와 그 많은 사람들과 온갖 재료들을 달에 다 갖다 놓는 것은 너무 어려운 일이다. 지구에서도 로켓을 만드는 일은 쉽지 않다. 달에서 로켓을 만든다는 것이 말처럼 쉬운 일일 리가 없다. 그렇지만 로켓 전체를 다 달에서 만들지 않고 로켓에 들어가는 연료만 달에서 채워 넣는다면 어떨까? 만들기 어려운 껍데기와 기계 장치 부분은 지구에서 만들어서 달에 보내고, 로켓 무게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연료를 달에서 채워 넣는 것이다. 지구에서 연료를 보내줄 필요 없이, 달에서 직접 연료를 구할 수만 있다면 이 계획은 근사하게 맞아 들어간다. 어차피 로켓 무게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것은 연료니까, 별로 무겁지 않은 로켓의 껍데기만을 지구에서 달로 다른 로켓으로 실어서 배달해 주고, 그 껍데기에 달에서 구한 연료를 가득 채우면, 아주 많은 연료를 담은 거대한 로켓이 가뿐하게 달에서 쉽게 우주로 나와 먼 우주로 갈 수 있다. 

 

- 다행히 달에는 로켓 연료로 쓸 만한 물질이 있다. 2009년에 인도의 달 탐사선 찬드라얀 1호가 달에서 물의 흔적으로 보이는 자료를 확인한 적이 있다. 지구에 물이 이렇게 많은 것을 보면, 지구 바로 곁에 있는 달에도 물이 있을 만한 기회가 있었을 가능성은 충분하다. 물론 달은 지구보다 훨씬 혹독한 환경이니 세월이 흐르는 사이에 대부분의 물은 다 끓어서 우주 저편으로 날아갔을 것이다. 하지만 그늘진 곳, 구덩이 한편 영원히 햇빛이 들지 않는 곳, 달의 아주 추운 곳 등지에는 얼어붙은 물이 남아 있을 수 있을 것이다. 

- 달에 태양광전지를 설치하면 전기는 그렇게 어렵지 않게 얻을 수 있다. 여차하면 원자력을 이용하는 방법도 있다. 일단 전기를 구하면 그 전기로 얼어붙은 물을 녹인 뒤에, 그 물을 전기 분해해서 수소와 산소로 분리할 수 있다. 돈이 많이 들어서 그렇지, 지구에서도 이미 수소, 특히 그린 수소를 얻는다면서 많이 하고 있는 작업이다. 2022년 초에는 1조 원을 투자해서 전라남도에다 전기를 이용해 맹물에서 수소를 뽑아내는 시설을 짓겠다는 보도가 나온 적도 있다. 그 기술을 달에 가져가서, 달의 얼음에서 수소와 산소를 뽑아내면 그게 바로 우주선의 연료다. 산소는 누리호에도 가득 실었던 물질이고, 수소는 천리안 2B를 비롯한 한국의 여러 인공위성을 발사해 준 유럽의 아리안 5호 등의 현대 로켓에서도 연료로 흔히 쓰이는 물질이다. 새턴 5호에서도 수소를 연료로 썼고, 심지어 20세기 초의 치올코프스키조차 수소가 연료로 적당하는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충분히 좋은 태양전지로 달에서 전기만 많이 만들어 낼 수 있다면, 물에서 로켓 연료를 대량 생산한다는 계획은 해볼 만한 도전이다. 

 

- 나는 이 점이 무척 재미있다. 우주 기술에 대한 연구는 로켓과 우주선을 만드는 사업을 가장 먼저 떠올리기 때문에 아무래도 굉장히 돈이 많이 드는 큰 사업을 우선으로 생각하게 되기 쉽다. 그렇게 생각하면, 달에 사람이 머물며 사는 아득한 미래의 일에 대해 연구하는 데는 더 막대한 돈이 들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들 수도 있다. 그러나 그렇지가 않다. 달 기지라는 굉장한 목표를 위한 사업이라고 하지만, 거기에 필요한 세세한 기술에 대해 연구하는 사업 중에는 오히려 예산이 적게 들어가는 작은 사업도 꽤나 많다. 

 

- 세계의 많은 학자들은 달과 같은 환경에서 어떤 식물을 어떤 방법으로 기지를 지구에 만들어 놓은 실험실에서 연구하고 있다. 달의 성분과 같은 땅을 만들어 놓고, 달에 있을 법한 물질만 사용하면서 최대한 식물을 잘 키우는 기술을 이리 찾아보는 것이 이런 학자들의 일이다. 이런 연구를 할 때는 달에 가는 로켓을 만들어서 직접 달에 가서 실험하는 것이 아니다. 그저 실험실에 달과 같이 꾸며놓은 플라스틱 통과 냉장고를 가지고 일을 해나간다. 대단한 예산이 들지는 않는다.

 

- 비슷하게 한국건설기술연구원은 2010년대부터 달의 흙으로 어떻게 하면 튼튼한 건물을 지을 수 있는지 연구해 오고 있다. 이곳에서는 달의 흙과 비슷한 성분을 가진 흙을 갖다 놓고, 그것을 재료로 거기에 전자파를 가하거나 열을 가해 굽는 등의 방법을 써서 어떻게든 굳히거나 벽돌을 만드는 방법을 연구한다. 달 기지 짓는 연구라고 하지만 로켓을 발사해 우주로 가는 일이 아니라, 보통은 고양시 일산에 있는 실험실에서 흙을 주무르고 반죽하는 것이 주로 하는 일이다. 엄청난 예산이 드는 연구라고 볼 수는 없다. 그렇지만 좋은 결과가 나오면, 나중에 달에 간 사람들이 바로 그 방법을 실제 달 기지를 짓는 데 활용할 수 있다. 

- 실제로 달 기지를 건설하는 데까지 가지 않는다고 해도 이런 연구가 헛수고가 되는 것도 아니다. 달 기지에서 전기를 얻기 위해 튼튼하고 가벼운 태양광 발전 방법을 개발하면, 그 방법을 지구에서도 이산화탄소 배출 없이 전기를 만드는 데 사용할 수 있다. 달에서 오랜 시간 버티기 위해서 더러운 물을 정화하는 기술을 개발하면 지구에서도 그 기술로 물을 맑게 만들 수 있다. 달에서 생긴 쓰레기를 갉아먹고 대신 유용한 비료나 연료를 만들어 낼 수 있는 세균을 개발한다면, 그 세균은 지구에서 쓰레기를 처리하는 데 사용할 수 있다. 폐수를 이용해 식물이나 동물을 잘 키울 수 있는 기술이 개발되면 지구의 농장에서도 그 기술은 사용할 수 있다. 화성으로, 목성으로, 토성으로 갈 우주선에 연료를 채워 넣기 위해 물에서 수소를 뽑아내는 값싸고 좋은 기술을 개발하면, 바로 그 기술로 지구에서도 쉽게 수소를 만들어 수소 자동차를 움직이게 하고 수소 비행기와 수소 배를 움직일 수도 있다.  

- 세계의 여러 선진국들에 비해 달 탐사가 한참 늦은 한국이 당장 빨리 달에 가고 싶다면 아무래도 급하게 빨리 가는 길을 택하고 싶을 것이다. 그렇게 치면 지구에서 달까지 갈 수 있는 가장 빠른 방법은 지구에서 바로 달을 향해 직선으로 날아가는 길을 택하는 것이다. 이런 길에 가장 가까운 방법을 직접 전이 direct transfer 궤도라고 한다. 직접 전이 궤도는 짧고 간단하다. 그렇다고 대포로 대포알을 쏘듯이 곧바로 달을 향해 날아가면 안 된다. 달은 항상 지구를 빙빙 돌며 움직이고 있기 때문에, 달을 향해 곧장 가려고 하면 원래 가려고 했던 방향과 살짝 어긋나기 십상이다. 게다가 지구도 스스로 제자리에서 돌고 있기 때문에 지구에서 출발해 그냥 똑바로 위라고 하는 방향으로 움직이면 시간에 따라 날아가는 방향이 바뀔 수도 있다. 그 외에도 엄청나게 빠르게 움직이는 로켓을 미세하게 조절하거나 혹시 무슨 문제가 생겼을 때 바로잡으려면 어느 정도의 여유는 필요하다. 

- 그래서 직접 전이 궤도로 날아간다고 하더라도 일단 지구 바깥으로 나가서 인공위성처럼 지구를 반 바퀴 또는 한두 바퀴쯤 돌고, 그다음에 속도를 더 내서 달을 향해 떠나간다든가 하는 것이 좋은 방법이다. 공기가 없는 우주에서 일정한 속력으로 지구를 빙빙 도는 것은 그냥 인공위성이 지구 주위를 한 바퀴 도는 것과 마찬가지다. 같이 딱히 힘든 일도 아니고, 연료가 많이 들지도 않는다. 필요하다면 한참 지구를 빙빙 돌면서 모든 것이 준비되고 달로 날아갈 가장 좋은 순간을 기다렸다가 그다음에 달로 떠나도 된다. 대체로 가장 좋은 조건을 택하면 보통 우주선으로 대략 3일이면 지구에서 달까지 갈 수 있다.

 

- 국내의 여러 기관에서 자기 기관에서 필요한 임무를 수행하기 위한 탑재체를 싣고 싶다고 했고, 해외에서도 우주선에 태워달라고 한 곳이 있었다. 그런데 그중 한 곳의 제안이 대단히 매혹적이었다. 미국 애리조나 주립대학 팀은 섀도캠 shadow cam이라는 기계를 만들겠다고 했고 그것을 다누리에 태워달라고 제안했다. 이 기계는 달의 크레이터에 생기는 그림자 지역, 즉 그늘 지역의 잘 보이지 않는 곳에 무엇이 있는지 살펴보기 위한 장치다. 학자들은 섀도캠을 이용하면 어디에 물이 얼어붙어 있는지 확인할 수 있을 거라고 기대하고 있다.

- 우주에서 물은 가장 소중한 자원이다. 아무리 헬륨3나 희토류가 중요하다고 해도 그런 자원은 돈을 벌기 위한 자원에 불과하지만, 물은 생존을 위한 물질이다. 물을 수소와 산소로 분리하면 우주선의 연료로도 쓸 수 있으니 더욱 귀중하다. 물이 있는 곳을 정확히 볼 수 있다면, 그 이상의 귀한 발견은 없다. 희귀한 동물을 찾으러 정글로 떠난 탐사대원으로 쳤을 때, 달에서 헬륨3를 발견하는 것이 호랑이나 표범을 발견한 정도라면 물을 발견하는 것은 살아 있는 공룡을 찾아내는 것 정도의 발견이다. 여기에 더해 섀도캠을 탐사선에 싣는다면 미국 정부, NASA가 협조를 해주겠다는 제안이 들어왔다. 이것도 굉장히 큰 장점이었다. 40만 km의 황량한 우주를 헤치고 가서 달에 도착해야 하는 막막한 상황에서, "우리는 직접 달에 가서 걷고 뛰어다녀 보았다"라는 사람들이 도와줄 거라는 이야기만큼 달콤하게 들리는 말도 없다. 

- 하지만 일이 쉽게 풀리지는 않았다. 이번에도 로켓 방정식의 횡포가 우리 발목을 잡았다. 섀도캠은 무거운 장비다. 이 장비를 실으면 전체 무게가 무거워진다. 그러면 그만큼 달까지 가기가 훨씬 더 어려워진다. 원래 계획에 한국 달 탐사선의 전체 무게는 550kg이었는데, 섀도캠을 실으면 700kg에 가까운 무게가 된다. 이래서는 너무 무거워서 3.5 궤도를 택할 수가 없다. 그 때문에 개발팀 내부에서는 안타깝지만 섀도캠을 포기하고 그냥 원래 계획대로 달에 가자는 의견도 있었던 것 같다. 

- 결국 고생 끝에 택한 방법은 BLT 궤도라고도 하고, WSB weak stability boundary 궤도라고도 하는 특이한 방법이다. BLT는 ballistic lunar transfer, 직역하면 탄도 달 전이라는 말의 약자다. 베이컨 bacon, 양상추 lettuce, 토마토 tomato가 들어간 샌드위치를 약자로 BLT라고 하기도 하는데, 나는 아마 그 때문에 재미로 이런 이름을 쓰는 거라는 추측도 해본다. 하지만 BLT 샌드위치가 얼핏 생각해 봐도 맛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것에 비하면, BLT 궤도는 어지간해선 도무지 상상도 할 수 없는 특이한 방식이다. BLT 궤도로 우주선이 달에 갈 때에는 목적지인 달을 향해 날아가지도 않고 출발점인 지구 주위를 열심히 돌지도 않는다. 대신에 아무 상관없어 보이는 태양 쪽을 향해 우주선을 날려 보낸다. 땅에서 하늘을 향해 높이 공을 던지듯이, 태양 쪽으로 아주 세게 우주선을 내던진다.  

- 이 모든 기계가 보내오는 소식을 정확히 받아들이기 위해 경기도 여주에는 지름 35m의 거대한 접시 모양 안테나를 설치해 두었다. 깊고 머나먼 우주와 통신하기 위한 지상의 무선 기지라는 뜻으로 심우주지상국 深宇宙地上局이라고 부르는 시설의 장비다. 한국에서 만든 배 중에서 역사상 가장 먼 곳으로 여행을 떠나는 다누리가 길을 잃고 외롭게 헤매지 않도록, 지구와 달 사이 거리의 4배에 가까운 150만 km까지 멀리 떨어지는 시점에서도 이 장비로 통신을 유지한다.

- 2021년 김주현 박사가 발표한 글을 보면 당국에서는 우리나라에서 만든 과학 장비들로 관측한 자료를 KPDS라는 시스템을 통해 최대한 많은 사람들이 상세히 살펴볼 수 있도록 공개할 예정이라고 한다. 그러면 누구든 집에서 인터넷으로 달 탐사의 결과를 있는 그대로 다 같이 살펴볼 수 있게 된다. 그 자료 중에는 누가 봐도 아름다운 달 사진도 있을 것이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보기에는 무슨 말인지도 알 수 없는 기나긴 숫자 덩어리일 뿐인 자료도 있을 것이다. 어느 것이든 그 내용을 보고 감탄하고 감격하고 미래를 향한 꿈을 품을 사람들이 언제인가 미래에 등장할 것이다. 그런 열린 기회를 통해서, 미래에 더 많은 일이 가능하다는 생각을 우리 다음 세대의 젊은이들, 어린이들이 마음속 깊이 품게 될 것이다. 그렇게 등장한 새로운 사람들의 지혜로부터 지금까지 우리가 생각하지 못했던 생각이 나와 세상을 더욱 좋은 곳으로 바꿀 것이다. 이렇게 더 넓은 미래를 열어주는 일은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아주 멋진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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