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자가 흐르는 이야기/Book2

[존 B. 카추바] 변신의 역사 - 늑대인간부터 지킬 박사까지

일루젼 2022. 10. 20. 19:06
728x90
반응형

저자 : 존 B. 카추바 / 이혜경

출판 : 미래의 창  

출간 : 2021.03.02.  


       

이 책은 선사시대부터 현재까지 다양한 문화권에서 나타나는 '셰이프시프터'에 관한 내용들을 조사-정리한 책이다. 저자에 따르면 '셰이프시프터'란 외양의 변화만을 의미하지 않으며, 정체성을 잃지 않은 상태에서의 내재적인 변화 또한 해당될 수 있다고 한다. 물론 외양적 변화의 대표격인 늑대인간이나 뱀파이어, 동물이나 괴물로의 변신 또한 포함한다. 저자는 이에 그치지 않고 비인간의 인간으로의 변화와 젠더 전환, 코스튬플레이까지도 폭넓게 다루는데, 그의 정의에 따르면 이 모두 '셰이프시프터'들이다. 

 

형태를 바꾸는 변신이나 마법, 괴수들에 대한 호기심이 있으신 분이나,

다양한 문화권에서 '변신'에 대해 어떻게 생각했으며 어떤 두려움을 가졌었는지 궁금하신 분,

또는 정신심리학적 측면에서 인간의 내면에 통합되지 않은 충동들이 제각기 어떤 모습으로 표출될 수 있는지에 관심이 있으셨던 분.

성별 전환이나 부캐, 버추얼 유튜버 등 자신이 아니지만 자신인 가면 뒤에서의 자기 표현 현상에 대해 살펴보고 싶으셨던 분.

 

모두가 제각기의 즐거움을 얻으며 읽으실 수 있으리라 본다. 

개인적으로는 상당히 즐겁게 읽었다. 이하는 정리되지 않은 단상들이다.

 

어린 시절에는 이종과의 사랑을 다룬 이야기들에서 왜 언제나 변하는 것은 '인간'인지 약간의 억울함이 있었다. 그 순간의 진실한 마음을 지키기만 하면 되는데, 그러지 못해 모든 것을 잃고 후회하는 걸까.

 

하지만 나이와 경험이 쌓이며 그것이 생각처럼 쉽지 않다는 걸 알게 된 지금, 인간이란 그 본질 자체가 '계속해서 변화함'이라고 생각한다. 머무르는 자는 그것에 고정된다. 동물의 영이 되고 나면 다시 인간으로 돌아오지 못할 수도 있음은, 차원이 낮아졌을 때 자신을 제대로 기억하지 못하면 그 상태에 머물게 된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이것은 비단 동물계로의 하강만을 의미하지는 않을 것이다.

 

눈을 떠보니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어있음을 깨닫지만, 그것을 이어서 묵묵히 살아내는 일본의 한 선사의 이야기가 인상깊다. 어제의 내가 오늘의 나라는 확신은, 눈을 뜨고 서서히 떠오르는 기억에 의존한다. 삶과 죽음 또한 깨어남과 잠듦으로 연결짓지 못할 이유가 없다. 수많은 '셰이프시프터'들은 하나의 고정된 정체성의 한계를 뛰어넘어 새로운 '자신'을 획득하기 위한 몸부림의 과정들일지도 모른다.   

        

 


 

 

 

인내심을 가지고 감각이 예민해질 때까지 기다려보라.
그러면 세상이 미지의 것들로 가득하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

- 이든 필포츠 Eden Phillpotts 


 '끊임없이 흐르고 바뀌는 상태'는 바로 셰이프시프터의 특징이다. 셰이프시프터는 자신의 표현 수단을 끊임없이 바꾼다. 셰이프시프터는 우리에게 무엇이 실재하고 무엇이 실재하지 않는지 불확실하니 끊임없이 추측하라고 요구한다. 셰이프시프터는 우리가 안다고 생각하는 모든 것에 이의를 제기하며, 마치 불교 수도승처럼 아무것도 영원하지 않다고 말한다. 모든 것은 변한다. 

 

 

- 셰이프시프터, 즉 모습을 바꾸는 존재는 새로운 것이 아니다. 고대부터 지금까지 전 세계의 역사와 문화 곳곳에서 인간이 신화 속 존재나 동물로 변신했다가 다시 인간으로 되돌아오는 방법을 모색해왔다는 사실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프랑스 아리에주 Ariège에서 발견된 선사시대 동굴벽화에는 반인반수들이 새겨져 있다. 이는 선사시대 사람들이 셰이프시프터의 존재를 믿었다는 증거다. 원시시대 인간은 자신의 삶과 주변 동물들의 삶이 긴밀하게 얽혀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인간은 동물을 먹기 위해 사냥했고, 동물도 같은 이유로 인간을 사냥했다. 그런데 선사시대에는 교활함, 속도, 힘 등의 면에서 동물이 인간보다 우월했기 때문에 사냥에서 더 유리했다. 그런데 만약 인간의 능력이 동물과 비슷한 수준에 도달한다면 어떻게 될까? 인간이 여우만큼 영리해지고, 치타만큼 빨라지고, 사자만큼 강해진다면 어떨까? 확실히 그렇게만 된다면 인간은 피식자가 아닌 포식자가 될 수 있는 더 많은 기회를 얻을 것이다. 따라서 동물과 같아지고 싶다는 고대인의 열망이 셰이프시프터에 대한 믿음을 낳았을 것이라 추정해볼 수 있다.

 

- 아메리카 대륙을 비롯한 여러 지역의 원주민 문화에서는 비슷한 형태의 사냥춤 의식이 공통적으로 발견된다. 이 의식에서 사냥꾼들은 동물, 그중에서도 자신이 사냥하는 동물 모습의 옷을 입고 그 동물의 움직임을 흉내 낸다. 이때 사냥춤은 단순한 모방이 아니다. 사냥꾼들은 사냥춤을 출 때 동물의 영혼이 자신의 몸에 들어와 자신이 그 동물로 변한다고 믿는다.

 

- 사냥꾼들은 엘크 가죽을 입고 엘크처럼 걸으며 엘크처럼 생각한다. 엘크들은 그런 사냥꾼을 여느 엘크와 마찬가지로 '엘크로서' 무리에 받아들인다. 그러면 사냥꾼은 빈틈을 찾아 엘크에게 접근해서 죽일 수 있다. 그러나 여기에는 위험이 따른다. 유카기르족은 변신이 실제로 일어난다고 믿는다. 따라서 엘크로 변한 사냥꾼은 인간의 본성과 자신의 영혼을 잃어버릴 수도 있다. 빌레르슬레우의 표현을 그대로 옮기면 이렇다. "사냥꾼은 인간이라는 자신의 종 정체성을 상실하고, 육체는 인간이지만 영혼은 동물인 상태로 변해버릴 수도 있다."

 

- 예수를 알아보지 못하는 장면이 나온다. 이때 복음에서는 "그들의 눈이 가리어져서 그인 줄 알아보지 못했다"고 전한다. 왜 제자들은 예수와 오랜 시간을 함께 보냈으면서도 그를 알아보지 못했던 걸까? 예수가 제자들의 믿음을 시험하기 위해 자신의 모습을 일부러 바꿨던 것은 아닐까?

 

- 또 다른 고대 성서에서도 예수가 셰이프시프터로서 남다른 능력을 가졌을지도 모른다는 가능성이 엿보인다. 2012년에 네덜란드 위트레흐트대학 기독교사학 교수 로엘로프 판 덴 브룩 Roelof van den Broek은 뉴욕의 모건 라이브러리 앤드 뮤지엄에 소장된 이집트 콥트교회 성서 (거의 1,300년 전에 쓰인)를 번역하고 주해를 달았다. 브룩 교수에 따르면 이 콥틱 판본 Coptic text 성서 외경에는 현재의 공식적인 성서에는 등장하지 않지만, 로마 행정관이었던 빌라도가 예수 처형 전날 밤 예수와 만찬을 나누면서 예수 대신 자신의 아들을 희생물로 바치겠다고 제안하는 장면이 나온다. 오랫동안 회자되어온 이 이야기는 성서를 구성하는 정경으로 인정받고 있지는 않지만 쓰일 당시의 이집트 사람들에게는 사실로 여겨지곤 했다.

 

- 이 고대 성서에서 무엇보다 흥미를 자아내는 대목은 예수가 셰이프시프터였을지도 모른다고 추측하는 구절이다. 콥틱 판본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등장한다. 

그러자 유대인들이 유다에게 말했다. 어떻게 하면 예수를 체포할 수 있겠는가? 그는 한 가지 형상을 하고 있지 않아서 겉모습이 일정하지 않다. 어떤 때는 불그스레하게 혈색이 좋다가도 어떤 때는 수도사처럼 창백하고, 어떤 때는 젊은이였다가 어떤 때는 노인이며, 피부색도 어떤 때는 희었다가 어떤 때는 붉었다가, 또 어떤 때는 밀빛 갈색이다.  

 

 - 브룩 교수의 번역본에 따르면, 예수는 변신 능력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그를 체포하기 위해 겟세마네 동산에 오른 유대인들은 예수를 확인할 방법이 필요했다. 예수의 열두 제자 중한 사람인 유다는 언제든 예수를 알아볼 수 있었다. 그는 유대인들에게 입맞춤을 하여 누가 예수인지 알려주겠다고 말한다. 유다의 입맞춤에 관한 이 같은 해석은 2세기 신학자 오리게네스 Origenes의 저술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 오리게네스는 <켈수스에 대한 반론 Contra Celsum>에서 “예수를 만났던 사람들에게 그는 모두 다른 모습으로 보였다”고 이야기했다. 고대의 다른 신들처럼 예수도 신이자 셰이프시프터였다고 보는 사람들도 있다. 이들의 관점에서 보면 예수의 삶 자체가 일련의 연속적인 변신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영적 존재인 신에서 신의 화신인 인간으로 태어났다가 죽음을 맞이한 후 부활하여 다시 영적 존재인 신으로 되돌아가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 현재까지도 다양한 문화에서 마녀와 주술사가 변신 능력을 지닌다고 생각한다. 중앙아메리카에서 나구알 nagual(대략 ‘변신 마법사'라고 번역할 수 있다)은 신체적으로 또는 영적으로 동물로 변신할 수 있는 사람을 일컫는다. 변신 대상 동물로는 재규어나 퓨마가 가장 일반적이지만 당나귀나 박쥐, 새, 개, 코요테가 될 수도 있다. 나구알 전통은 아메리카 대륙이 발견되기 전부터 행해지던 주술 관습에서 시작되었다.

 

- 변신 주술사의 또 다른 예는 아메리카 원주민인 나바호족(그들은 스스로를 디네 Diné라고 부른다) 문화에서 아주 오랫동안 전해져 온 스킨워커다. 영적으로 최고의 상태에 도달한 주술사인 스킨워커는 선이 아닌 악을 갈망한다. 스킨워커가 되어 변신 능력을 비롯한 초자연적 힘을 얻고 싶다면 가까운 가족을 살해해야 한다. 스킨워커는 무엇으로든 변할 수 있고 대개 코요테, 여우, 늑대, 올빼미로 변신한다. 나바호족은 스킨워커의 존재를 확고하게 믿고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스킨워커와 대화하기를 꺼리는데, 대화하던 도중 스킨워커의 화를 돋우지는 않을까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 공동 창조 가설에서는 인간이 NHI를 만나는 경험은 매우 이질적인 것이라서 인간의 뇌가 그 경험을 객관적으로 이해할 수 없다고 가정한다. 이때 뇌는 그간의 경험을 토대로 NHI를 대신할 수 있는, NHI와 가장 비슷한 무언가를 찾는다. 다시 말해, NHI와 조우한 경험을 이해하기 위해 인간의 뇌는 이미 존재하는, 그러나 실재와 다른 대상을 만들어낸다.  

 

- 이 완전한 이질성 때문에 인간의 정신은 NHI를 객관적으로 관찰하거나 기억할 수 없다. NHI를 '보거나' 만났을 때 인간의 뇌가 그 사건이나 존재를 있는 그대로 처리할 수 없다는 뜻이다. 대신 인간의 정신은 NHI의 모조품을 만들어낸다. 실제 NHI를 비슷한 무언가나 자신의 심리적·사회적·문화적 이데올로기 내의 초현실적 덩어리로 대체함으로써 NHI라는 존재와 경험에 대한 거짓된 '실재'의 기억을 창조해내는 것이다. 인간의 뇌가 NHI와의 만남을 스스로 이해할 수 있는 '실재'로 창조하는 동안 NHI는 인간의 두뇌 활동에 자동적이고 즉각적으로 반응해 인간이 만들어낸 그 실재처럼 변한다.  

 

- 2016년 영국의 일간지 <레그라프 Telegraph>에 발표한 논문에서 정신의학자 카렐 드 파우 Karel de Pauw 박사는 프레골리 증후군은 매우 희귀한 질환으로 이 병에 걸리면 자신이 만나는 모든 사람이 실은 한 사람이며 자신을 해치려 한다고 믿게 된다고 말했다. 

 

- 유사한 정신질환으로 카그라스 증후군 Capgras Syndrome이 있다. 이 질환에 걸리면 자신과 친한 사람들이 그들과 꼭 닮은 다른 사람으로 바꿔치기 당했다고 믿게 된다. 프레골리 증후군과 카그라스 증후군 모두 망상적 오식별 delusional misidentification이라는 정신질환의 일종으로 신경과 전문의 올리버 색스 Oliver Sacks의 베스트셀러 도서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 The Man Who Mistook His Wife for a Hat>를 통해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망상적 오식별은 드문 질환이지만, 이 질환에 걸린 사람에게는 세상이 셰이프 시프터들로 가득 차 있는 것처럼 보인다. 

 

- 우리 모두의 내면에는 셰이프시프터가 있다. 우리 안의 셰이프시프터는 다른 사람이나 동물로 물리적 변신을 할 수는 없지만 강력한 이미지, 강력한 인격의 형태로 무의식 속에 존재한다. 정신의학자 칼 구스타프 융은 우리의 정신 기저에 자리 잡은 잠재의식 속에 우리가 성격이라 부르는 특성들이 외부로 발현되기 전 원형의 모습 그대로 간직되어 있다고 생각했다. 그중 중요한 원형들로는 페르소나 persona, 그림자, 현자, 어린이, 사기꾼, 어머니, 그리고 셰이프시프터인 아니마와 아니무스 등이 있다. 이 원형들이 모여 '집단 무의식 Collective Unconscious’을 형성하는데, 모든 개인이 보편적으로 지니고 있되 무의식적 수준에서만 이해할 수 있는 상징들의 집합체라 보면 된다. 이러한 원형들은 수많은 세대에 걸쳐 반복되는 과정에서 역사와 문화를 통해 공유되며 꿈으로 표출되기도 한다.  

 

- 아메리카 대륙 남서부에 거주하는 나바호족의 친디 chindi 역시 환경 파괴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친디는 어떤 동물로도 변신할 수 있으며, 어머니인 지구의 생명체를 파괴하는 인간들에게 복수한다. 만약 어떤 동물이 두 발로 일어나 걷고 있다면 그것은 친디가 확실하다. 친디는 적이라고 생각되면 그게 누구든 끈질기게 추적하여 무자비하게 응징하기 때문에 친디의 분노를 산 자는 도망칠 수 없다.

(리뷰자 주 : 로저 젤라즈니의 <별을 쫓는 자>.) 

 

- 지금까지 살펴본 셰이프시프터는 다른 존재로 변신할 수 있는 동물이나 주술사, 혹은 변신 능력을 가진 상상 속 정령이었다. 하지만 지금도 세계 곳곳에서는 여전히 변신이 행해지고 있다. 의례나 예식 중에 일어나는 내적 변신이 바로 그것이다. 내적 셰이프시프터는 자신의 모습을 물리적으로 변화시키지 않는다. 대신 다른 사람이나 동물의 모습을 모방함으로써 자신의 의식을 변화시킨다. 

 

- 하지만 베난단티 benandanti ('선한 일을 하며 다니는 사람'이라는 뜻으로, 늑대인간이지만 마녀를 상대로 싸웠다) 같은 선한 늑대인간에 관한 설도 존재했다. 베난단티는 16~17세기에 이탈리아 동북부 프리울리 Friuli 지역에서 농민들이 풍요를 기원하며 벌였던 가상의 전투 의식에서 곡식을 지키는 역할을 맡던 중요한 구성원이었다. 이들은 자신의 영혼이 밤마다 몸에서 빠져나와 동물의 혼에 올라타고 사악한 마녀 (농작물에 지속적인 피해를 입혀 흉년이 들게 한다)와 전투를 벌인다고 주장했다. 이따금 동물의 혼에 올라타기가 번거로우면 아예 동물로 변신하기도 하는데, 주로 늑대로 변했다고 한다. 16세기 내내 베난단티를 자처하는 사람들이 로마의 종교재판소에서 마술을 행했다는 이유로, 혹은 이교 신앙을 따랐다는 이유로 재판을 받았다. 하지만 이들은 비방하는 사람들의 주장과는 다르게 자신이 한 일은 악마가 아닌 예수를 섬기기 위한 것이었다고 말했다. 대부분 악의가 없다고 판단되어 가벼운(당시의 기준에서 본다면) 처벌만 받고 풀려났다. 이탈리아 아시시 Assisi의 성 프란체스코 St Francesco와 구비오 Gubbio 마을의 늑대 이야기는 늑대인간에 대한 인식이 변하고 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 스칸디나비아의 전사 베르세르크들은 자신이 늑대나 곰으로 바뀌었다고 믿었는데, 이와 같은 곰인간은 다른 문화에서도 발견된다. 곰으로 변하는 인간 이야기는 아메리카 대륙의 여러 원주민 부족들의 문화와 슬라브 문화, 러시아 문화에서도 등장한다. 기원전 슬라브 사람들은 논밭, 목초지, 산림, 농작물, 동물(특히 소)을 관장하는 신 벨레스 Veles를 숭배했다. 셰이프시터였던 벨레스는 곰의 모습으로 변신하는 것을 가장 좋아했다고 한다. 하지만 슬라브 신화의 강력한 신 벨레스는 기독교가 전래되면서 바실리우스 성인으로 탈바꿈되었다. 
 

- 사람이 죽으면 체내에서 가스가 발생하고 이로 인해 사체가 부풀어 오른다. 혈액은 사체 내에서 응고되는 것이 일반적이나 사망 방식에 따라 다시 액체화되어 신체의 여러 구멍으로 흘러내릴 수 있다. 또한 표피가 분해되어 떨어져 나가면 그 아래의 진피가 드러난다. 이 진피를 '새 피부'로 오인할 수 있으며, 표피층이 없어져 피부가 얇아지므로 손톱이 이전에 비해 길어진 것처럼 느껴질 수 있다. 체액이 마르면 위를 비롯한 소화기관의 근육과 세포도 수축하는데 간혹 사체를 벌떡 일어나 앉게 할 정도로 강한 수축이 발생하기도 한다. 심장에 말뚝을 박을 때 들리는 신음소리는 사체에 갑자기 구멍이 나면서 풍선이 터지듯 그 안에 차 있던 가스가 분출되며 나는 소리다. 심지어 남성 사체의 생식기가 발기하기도 하는데, 이 역시 과학적 설명이 가능한 현상이다. 교수형 혹은 교살에 의해 사망한 경우, 또는 똑바로 서거나 엎드린 자세로 사망한 경우에는 시체 하부 말단으로 피가 몰리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를 알 리 없는 뱀파이어 헌터에게는 그 사체가 뱀파이어라는 것을 증명할 하나의 증거에 불과했다. 뱀파이어는 이미 죽은 자이지만 성욕이 왕성해서 최면 능력을 이용해 여성들을 유혹해 성관계를 가진다고 알려진 것은 이와 관련이 깊다.  

 

- 동유럽의 롬족(흔히 '집시'라고도 불리는 유럽 등지의 유랑 민족, 집시에 비하의 의미가 있어서 최근에는 롬족 혹은 로마니족이라고 부름 - 옮긴이) 사이에는 뱀파이어의 성욕이 채워질 수 없을 정도로 강해서 인간 여성을 임신시켜 아들을 낳게 한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그렇게 태어난 아이들은 '담피르 dhampir'라고 부른다. 담피르는 뱀파이어를 탐지할 수 있고 죽은 채 돌아다니는 존재를 사냥하고 소멸시킬 수 있는 능력(보통 한 발의 총알이면 충분하다)을 가졌다. 스스로 담피르라고 생각했던 사람들 중에는 롬족 공동체 내에서 전문적인 뱀파이어 헌터로 활동하며 생계를 꾸려나가는 경우도 있었다.

(리뷰자 주 : 아마노 요시타카와 키쿠치 히데유키의 <뱀파이어 헌터 D>.)  

  

- 이처럼 영혼과 몸이 별개라는 생각은 영체 이론 Theory of astral vampirism이 만들어지는 계기가 되었다. 이 이론을 주창한 헨리 스틸 울컷 Henry Steel Olcott은 1875년 뉴욕에 신지학협회 Theosophical Society를 창립하고 협회장을 역임했다. 신지학협회는 지금까지도 유지되고 있는데, 이 단체의 목표는 세 가지다. 첫째, 인종·신념·성별·신분. 피부색에 무관한 인류의 보편적 형제애를 형성하기 위한 토대를 쌓는다. 둘째, 종교·철학·과학 분야에서 비교 연구가 발전하도록 독려한다. 셋째, 지금까지 설명되지 못한 자연법칙과 인간의 잠재력을 탐구한다. 울컷은 인간에게 물리적 몸인 육체와 보이지 않는 두 번째 몸인 영체 astral body가 함께 존재한다고 믿었다. 인간이 죽으면 영체는 육체를 떠난다. 그는 우리가 유령을 보거나 유체이탈을 경험하는 이유는 육체와 영체가 분리되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울컷에 따르면, 그저 마비 상태에 빠진 사람을 죽었다고 오해해 서둘러 매장하는 경우 그 육체는 영체의 도움으로 무덤 속에서 상당히 오랜 기간 살아있을 수 있다. 영체가 무덤 밖으로 나가 살아 있는 사람의 피를 빨아들여 양분을 흡수한 다음 다시 육체로 돌아오기 때문이다.

 

- 현대인에게 죽지 않은 사람을 매장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일지도 모르나, 19세기 혹은 그 이전에 살던 사람에게는 가능한 일이었고 그래서 공포스러운 일이었다. 살아 있음에도 매장될지 모른다는 엄청난 두려움에 죽었다고 오인받은 사람이 관 속에서 깨어났을 때 구조 요청을 할 수 있는 수많은 장치들이 고안되어 관에 설치되었다. 이를테면 관에서 지상까지 금속 튜브를 연결하고 튜브 가운데에 줄을 관통시킨 다음 그 끝에 종을 달아놓는 장치 같은 것이다. 만약 관에서 의식을 되찾는다면 그 끈을 잡아당기고 종을 울려 구조 신호를 보낼 수 있었다. 여기서 '운 좋게 살아나다 saved by the bell'라는 표현이 유래했다고 한다. 

 

- 울컷은 다른 뱀파이어 연구자들과 마찬가지로 '피'와 '생명력'을 구분하여 분석했다. 사체에 영양분과 활기를 공급하는 것은 피 자체가 아니라 그 안에 들어 있는 미지의 정수, 생명력이다. 그래서 육체와 영체의 연결 고리를 끊기 위해서는 매장이 아닌 화장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때 영체라는 관념은 중국인들이 뱀파이어에 대해 갖는 생각과 맥이 닿아 있다. 중국인들은 사람에게 두 개의 영혼이 있으며, 이는 이성을 지닌 상위의 영혼과 비이성적인 하위의 영혼이라고 믿었다. 상위의 영혼은 밤이 되면 잠든 육체를 떠나 마음껏 활보할 수 있었다. 그러다가 다른 육체에 들어가 그것을 장악한 다음 그 육체의 입을 빌려 말할 수도 있었다. 이와 달리 하위의 영혼은 홀로 돌아다닐 수 없으며 죽어서도 육체에 남았다. 이때 하위의 영혼이 강력할 경우에는 제멋대로 사체를 움직이게 할 수 있었는데, 이렇게 되살아난 시체를 강시라고 불렀다. 강시도 흡혈귀이지만 사체가 매장되기 전에 흡혈귀로 변한다는 점에서 유럽의 뱀파이어와 다르다. 힘이 세고 난폭한 강시는 남녀를 가리지 않고 공격하여 희생자의 머리와 사지를 몸통에서 뜯어내 죽인다.

(리뷰자 주 : 혼과 백.)    

 

- 가부키 배우들은 공연 중 무대 위에서 의상을 재빨리 갈아입는다. 의상을 바꿔 다른 인물이 되기도 하고 같은 인물이지만 다른 감정 상태가 되었음을 표현하기도 한다. 이때 옷을 갈아입는 데 걸리는 시간은 고작 몇 초밖에 되지 않는다. 여러 벌의 옷을 덧대어 입고 뒤쪽을 시침실로 살짝 고정해둔 것을 무대 보조 스태프가 제거해주는 덕에 가능한 일이다. 따라서 무대 위의 가부키 배우는 일종의 셰이프시프터다. 창녀의 유령 역을 맡은 마쓰스케가 그랬던 것처럼 남성에서 여성으로 변신을 마친 상태에서 무대에 오르는 경우도 있다. 좀 더 따져보면 마쓰스케는 남성에서 여성으로, 여성에서 유령으로 두 번 변신한 셈이다.

 

- 젠더 전환은 아주 오래전부터 인간의 상상력을 자극해온 주제다. 공연에서의 젠더 전환은 다양한 젠더 전환 사례 중 하나일 뿐이다. 앞서 우리는 그리스 신화 속 테이레시아스가 젠더 전환을 경험한 이야기를 살펴봤다. 테이레시아스는 남성에서 여성으로 변신하여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몇 년 후 다시 남성이 된다. 또한 켈트족과 북유럽 신화에 등장하는 젠더 전환 셰이프 시프터 이야기도 다루었다. 그 밖에도 세계의 많은 문화에서 성별이 바뀌는 존재에 관한 전설과 설화들이 전해진다. 일본에서는 특히 쌀의 여신 이나리가 젠더 전환 셰이프시프터로 자주 묘사된다. 이나리는 곡식을 관장하는 젊은 여신으로 그려지기도 하고, 쌀가마니를 짊어진 늙은 남자로 나타나기도 하며, 자웅동체의 보살이 되기도 한다. 아프리카 대륙 서부에 있는 다호메이 Dahomey(오늘날의 베냉공화국)의 창조신 마우리사 Mawu-Lisa는 쌍둥이 남매인 달의 여신 마우와 해의 신 리사가 합쳐져 만들어진 존재다. 잠비아와 가나에서도 이와 유사한 전설이 전해진다. 오스트레일리아 원주민이나 태평양 섬나라들의 신화에도 성별이 바뀌거나 아예 자웅동체인 신들이 나온다. 

 

- 젠더 전환은 '인간의 정체성을 결정하는 것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불러일으킨다. 인간의 성을 결정하는 것은 겉모습일까, 아니면 인간의 내면에 존재하는 무언가일까? 세계의 수많은 철학자, 심리학자, 신학자들이 이 질문을 끊임없이 던지며 논쟁해왔지만 아직도 확실한 답은 내려지지 않고 있다. 영국의 철학자 존 로크 John Locke는 1690년에 펴낸 <인간지성론>에서 인간의 사고와 의식을 정의하고 이해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했다. 그는 개인의 정체성이 물리적인 몸(원자)에 의해 결정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왜냐하면 우리 몸을 구성하는 원자는 시간이 지나면 모두 변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우리의 물리적 신체는 사는 내내 죽은 세포를 새로운 세포로 대체함으로써 여러 번 완전히 '재건'된다. 로크는 원자가 아니라 원자의 배열이 개인의 정체성을 결정하며 우리 모두는 저마다 독특한 원자 배열을 가지고 있다고 이야기했다. 그는 이 독특한 배열을 '영혼 soul’이라 불렀는데, 의식이라 이해해도 무방하다. 책에서 로크는 유명한 '왕자와 구두 수선공'의 예를 들며 자신의 주장을 설명했다. 

 

- 왕자의 영혼이 왕자가 사는 동안 형성된 기억과 의식을 그대로 간직한 채 지금 막 영혼이 떠나버린 구두수선공의 몸에 들어가 그 몸에 다시 생기를 불어넣는다면, 사람들은 그가 왕자와 같은 사람이라고 여겨야 할 것이다. 그가 왕자와 같은 행동을 할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체 누가 그를 보고 왕자와 같은 사람이라고 하겠는가? 몸 역시 인간을 구성하는 일부다. 따라서 내 생각에는 이 경우 구두수선공의 몸이 자신에게 구두수선공이 아닌 다른 이의 영혼이 깃들도록 내버려 둘 것 같지 않다. 그리고 무엇보다 구두수선공의 주변 사람들이 보기에 왕자의 영혼이 들어갔어도 그는 여전히 구두수선공일 것이다. 

 

- 우리는 일반적으로 '같은 사람', '같은 인간'이라는 말을 두 인물이 완전히 일치할 때 쓴다. 모든 사람은 자신이 원하는 대로 말할 자유를 가진다. 또한 어떤 관념에 자신이 보기에 적합해 보이는 이름을 붙일 수 있고, 마음 내키는 대로 다른 말로 바꿀 수도 있다. 하지만 '같은 영혼, 같은 사람 혹은 같은 인간을 결정하는 것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하려면, 적어도 머릿속에 영혼, 사람, 인간이라는 관념이 명확히 정의되어 있어야 한다. 일단이 단어들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를 결정하게 되면, 그것이 어느 것과 언제 같고 언제 다른지를 확정하는 일은 어렵지 않을 것이다.

 

- 기본적으로 로크는 어떤 사람의 정체성(여기서는 젠더 정체성)이 그가 어떻게 보이는지 혹은 그가 자신의 자아를 어떻게 표현하는지에 대한 사회적 판단으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개인의 의식에 의해 결정된다고 말한다. 이 주장은 논리적이고 합리적이다. 그러나 여전히 우리 공동체 내에 존재하는 성소수자들은 그들의 정체성을 인정하지 않는 사회의 반대와 배척에 직면해 있다. 

 

- 그렇지만 모든 사회가 성소수자의 정체성을 부정했던 것은 아니다. 실제로 생물학적 성이 아닌 성으로 살아도 다른 이들의 비난이나 편견의 대상이 되지 않는 문화들도 존재한다. 일례로 아메리카 대륙의 원주민 문화에는 베르다쉬 berdache라는 오랜 전통이 남아 있다. 베르다쉬 남성은 여성의 옷을 입고 여성들의 일을 하며 이따금 남성과 결혼하는 등 부족 내에서 남성이 아닌 여성의 역할을 수행한다. 주목해야 할 점은 전통에 따라 여성 역할을 하는 남성이라도 젠더 정체성은 바뀌지 않은 채 그대로일 수 있었다는 것이다. 즉, 다른 성의 역할을 수행한다고 해서 자신의 젠더 정체성까지 바꿔야 하는 것은 아니었다. 약 150개 원주민 부족에 베르다쉬 전통이 있었으며, 그중 30여 개 부족에는 남성 역할을 하는 여성도 있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베르다쉬는 '두 개의 영혼'을 가진 사람으로 여겨졌다. 유동적인 젠더 정체성을 지닌 베르다쉬는 최근 아메리카 대륙 원주민들 사이에서 다시 활발하게 나타나고 있으며, 이들 중 대다수는 공동체의 일원으로 존중받는다. 

(리뷰자 주 : 존 A. 샌포드, <무의식의 유혹>) 

 

- 우리는 셰이프시프터라면 으레 마법이나 주술로 모습을 바꾼다고 생각하지만, 젠더 전환 셰이프시프터들은 그렇지 않다. 그들은 다른 성(생물학적으로 타고난 성이 아닌 자신이 선택한 성)과 다른 모습이 되고 싶다는 내적 욕망을 표출한다. 사회는 이러한 욕망을 품은 개인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수천 년 전부터 알고 있었으며, 이를 우호적인 시선으로 바라보지만은 않았다.  
 

- 단순한 호기심에 새로운 옷을 입듯 다른 사람의 정체성을 체험해보거나 다른 사람의 처지에 놓이면 어떨지 궁금한 것일 수도 있다. 변신을 원하는 개인적 이유가 무엇이든 간에, 우리는 신이 아니기에 이러한 변화를 일으킬 수 없고 주술사가 아니라서 둔갑술을 쓸 수도 없다. 하지만 우리에게도 잠시이긴 하지만 변신할 수 있는 방법이 있는데, 바로 가면과 가장무도회, 코스튬과 코스튬플레이를 활용하면 된다. 셰이프시프터를 인간에서 동물로 자유롭게 모습을 바꾸면서도 인간의 의식은 유지할 수 있는 사람으로 정의하는 원론주의자라면 이러한 방법이 진정한 의미의 셰이프시프팅이 아니라고 주장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러한 방식을 통하면 자발적이면서도 의식은 유지하는 상태에서 변신할 수 있다. 게다가 과거의 셰이프시프터 중에는 동물의 가죽을 뒤집어쓰고 그 동물이 되었다고 믿었던 선사시대 사냥꾼이나 북유럽 전사 베르세르크가 있지 않았는가. 오늘날 표범 코스튬을 입고 표범처럼 행동하는 코스튬 플레이어 역시 그들과 같은 셰이프시프터일 수 있다. 

 

- 가면은 아주 오래전부터 우리 곁에 있었다. 약 3만 5천 년 전의 것으로 추정되는 프랑스의 동굴벽화에 가면을 쓰고 사냥하는 사람들이 새겨져 있긴 하지만,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가면은 기원전 7000년경에 돌로 만든 것이다. 가면을 종교의식이나 세속적 의례에 사용한 사례는 세계 곳곳에서 발견된다. 이때 가면을 쓴 사람은 신의 대리인이 되거나 권력을 갖게 된다. 원시문화 중에는 주술사가 가면을 쓴 다음 치료사로 변신하는 경우가 많다. 이때의 가면은 치유의 정령과 연결되기 위한 매개체였다.

 

- 가장 좋은 사례는 이로쿼이족의 폴스 페이스 소사이어티 False Face Society (가짜 얼굴들의 모임)와 그들이 치료에 사용했던 다양한 가면들이다(이 가면들은 치유의 정령을 묘사한 것이다). 그 밖의 다양한 의식에서 신과 영혼을 부르기 위한 도구로 가면을 사용했다. 예를 들어 수확의 성공을 기원하는 의식, 지진이나 화산 폭발, 해일 등 신의 노여움 때문에 일어났다고 여겨졌던 각종 자연재해를 피하기 위한 의식, 성인식과 같은 공동체 내의 통과의례에서 참가자들은 가면을 썼다. 이러한 의식들은 곧 전통을 이루고, 그 전통은 미래 세대들은 인도하며 힘이 되어준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은 초자연적인 가면 뒤에 있는 인간의 변신 능력 덕분에 일어난다. 

 

- 자아와 타자 사이의 유쾌한 교체를 상징하던 가면과 의상은 한쪽에 제쳐두어야 했다. 대신 보다 건전한 일이 환영받았다. 실제로 18세기 말에 이르러 쾌락에 대한 성공적인 재평가가 이루어진다. 이제 쾌락은 타자와의 마법적인 결합이 아닌 타자를 감상적으로 대상화하는 과정 속에 존재하게 되었다.  

 

- 어쩌면 일종의 가면 치료라고 볼 수도 있을 듯하다. 핼러윈 의상 역시 마찬가지다. 아이가 단순히 '근사하다'면서 <닌자 거북이 Teenage Mutant Ninja Turtles>의 등장인물 중 하나로 분장하고 싶다고 말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근사하다'라는 말의 이면에는 입 밖에 내지 않았지만 분명히 무언가가 더 있다. 코스프레 의상을 입은 성인이라면 자신의 선택의 이유를 자세하게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그들의 선택은 자신의 본성과 관련된 중요한 어떤 것을 보여준다. 겁 많고 소심한 사서가 핼러윈 파티장에 섹시한 원더우먼의 모습으로 나타난다면 그녀는 현실의 자신이 아닌 다른 무엇이 되고 싶다는 열망을 실현하고 있는 중일 수 있다.

(리뷰자 주 : 이제는 부캐나 버츄얼 유투버도 셰이프시프터의 사례가 될 수 있을 것이다.)

 

- 켈트족의 전통에서 유래한 핼러윈 축제는 로마의 포모나 Pomona 축제(과일과 씨앗의 여신 포모나에게 감사를 표하는 수확 축제)와 파렌탈리아 Parentalia (죽은 자들을 위한 축제)의 영향도 받았다. 켈트인들은 수확의 계절이 끝나고 '어둠의 계절'인 겨울이 시작되는 시점에 삼하인 Samhain 축제를 열었다. 그들은 삼하인 축제날(전통적으로 10월 31일)에 산 자와 죽은 자(초자연적 세계) 사이에 있는 장막이 얇아져서 영혼이 사람들 사이를 배회하며 못된 짓을 저지른다고 믿었다. 따라서 소중한 곡식과 가축을 잃지 않으려면 음식과 술을 제물로 바쳐 영혼들을 달래야 했다. 또 삼하인의 밤에는 죽은 자들의 혼이 사랑하는 가족에게 대접을 받으러 생전에 살던 집으로 되돌아온다고도 믿었다. 죽은 자들을 위해 집 밖에 음식과 술을 차려두는 이 고대의 전통은 오늘날 전 세계에서 발견된다. 여러 아시아 국가들은 배고픈 귀신들을 위한 축제를 열고, 아메리카 대륙의 멕시코 히스패닉 공동체에서는 10월 말에서 11월 초 사이에 디아 데 로스 무에르토스 Día de los Muertos(망자의 날) 축제를 연다. 

- 삼하인 축제날 어두운 밤거리를 배회하는 모든 초자연적 존재들이 가족을 찾아온 악의 없는 장난꾸러기인 것은 아니었다. 사악하고 불길한 존재도 많았다. 사람들은 그런 존재들이 자신을 알아보지 못하도록 가면과 의상을 착용했다. 이때 되도록 악령처럼 보이도록 꾸몄는데, 산 자들의 세계를 떠도는 죽은 영혼들 중 하나로 보이면 악령의 괴롭힘을 피할 수 있을 거라 여겼기 때문이다. 흥미롭게도 이는 일반적인 셰이프시프팅과 다르다. 가면과 의상이 죽은 영혼을 불러들이는 역할을 한다는 것은 같지만, 초자연적 존재로 변신하는 것이 아니라 변장으로 영혼들을 혼동시켜서 자신의 세계에 안전하게 머무르기 위한 도구이기 때문이다. 

 

- 이러한 유형의 이야기에서 셰이프시프터가 직면하는 난관은 변신 전 평범한 상태였을 때 직면했던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그것은 예측하지 못했던 일이며 해결하기에 매우 까다롭기까지 하다. 이 새로운 세계에서는 현실 세계에서 난관을 해결할 때 사용했던 방법들을 적용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하루아침에 쥐가 된 어린 소년이 쥐덫을 피하는 기가 막힌 방법이나 쥐꼬리를 자르려는 요리사에게서 도망치는 방법(<마녀를 잡아라>의 주인공 소년에게 일어나는 일들)을 어떻게 미리 준비해두겠는가? 그레고르 잠자는 자신이 거대한 벌레가 되었다는 사실을 그저 외면하려고만 했고, 그 결과 죽게 된다. 이 난관과 갈등은 변신한 주인공의 용기와 지혜, 힘을 시험한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우선 당면한 문제의 본질을 이해해야 하고, 나아가 달라진 자아의 본성 또한 이해해야 한다. 문제 해결 방법을 찾는 것은 그다음의 일이다. 즉, 어려움을 극복하고 평범했던 자아로 되돌아가기를 바란다면 심사숙고하고 창의력을 발휘할 필요가 있다. 독자는 주인공이 그의 딜레마를 해결하는 과정을 따라간다. 그러면서 주인공이 직면한 딜레마가 자신이 현실에서 마주하고 있는 문제와 동일한 것으로 여길 수 있다. 따라서 주인공이 문제를 해결해나가는 고민과 창조의 과정은 독자가 자신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무의식적으로라도) 도움이 될지도 모른다. 
 

- 이러한 역할을 맡기는 것이 문학에게 너무 무리한 요구일까? 확실히 이야기 속에는, 모든 등장인물(셰이프시프터든 아니든)에게는 특별한 힘이 있어서 우리의 생각과 감정, 행동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지킬 박사의 사례가 보여주듯이 변신 능력은 악한 사람들에게 효과적인 수단이 된다. 그림 형제의 동화 <여섯 마리 백조>에서 심술궂은 새엄마(그림 동화에 공통적으로 등장하는 악역이다)는 마법의 옷을 자신의 의붓자식 6명에게 던져 그들을 백조로 바꾸어버린다. 이따금 변신 능력은 뜻하지 않게 발현되기도 한다. 역시 그림 형제의 동화인 <열두 형제>에서 주인공 소녀는 게으른 오빠들이 까마귀로 변해버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그런 생각을 하자마자 까마귀 열두 마리가 하늘로 날아오르는 모습을 보게 되는데, 그와 동시에 그녀의 오빠들도 영원히 사라져 버린다.

 

- 물론 모든 문학 속 셰이프시프터들이 자신의 의지에 상관없이 강제로 변신을 당하기만 하는 것은 아니다. 필요에 따라 자유자재로 변할 수 있는 등장인물들도 많다. 그중 가장 대표적인 예는 짐 버처 Jim Butcher의 <드레스덴 파일 The Dresden Files>과 조지 마틴 George R. R. Martin의 <얼음과 불의 노래 A Song of Ice and Fire〉라는 판타지 소설 시리즈일 것이다. <드렌스덴 파일>에는 늑대인간이 나오고, <얼음과 불의 노래>에는 자신의 정신을 투사하여 다른 동물들을 조종할 수 있는 존재인 와르그 warg가 등장한다. 다른 예들도 있다. 1937년에 출간된 톨킨 J. R. R. Tolkien의 <호빗 The Hobbit>에 나오는 베오른 Beorn족은 곰으로 변신할 수 있는 셰이프시프터들이다. 미국의 소설가 데니스 매키어넌 Dennis L. McKiernan의 1992년 작품 <사냥꾼의 눈 The Eye of The Hunter>에도 곰인간인 우루스 urus가 나오는데, 이들은 곰으로 변하면 다시 인간의 모습으로 돌아가지 못할 수도 있다. 이 셰이프시프터들은 자신의 변신을 거의 통제할 수 있다. 따라서 변신이라는 소재 자체는 독자에게 난관과 갈등을 통한 심리적 탐색을 제공한다기보다 줄거리를 풀어나가는 데 도움이 되는, 기계적이지만 흥미로운 장치로써 기능한다.

 

- 셰이프시프터 이야기를 연구할 때 재미있는 주제 가운데 하나는 '작품 속의 다른 인물들이 셰이프시프터를 어떻게 생각하는가'다. 저주 때문에 변신이 이루어지는 인물에게 사람들은 어떤 감정을 느낄까? 욕을 할까? 아니면 측은하게 여길까? 동물로 변신한 모습에 혐오감을 느끼지는 않을까?  

 

- 일본의 에도시대 선승 스즈키 쇼산이 생전에 수집한 이야기를 그의 제자들이 모아 1661년에 간행한 책 <인과 이야기>에는 아침에 깨어나 보니 (도입부가 프란츠 카프카의 <변신>과 비슷하다) 자신의 성기가 사라져 버린 젊은 수도승의 이야기가 나온다. 그레고르처럼 수도승도 새로운 상황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다. 그는 여성이 되어 2명의 아이를 낳기까지 한다. 또한 술 도매상이라는 새로운 일도 시작한다. 흥미로운 점은 이 이야기가 어떤 확실한 도덕적 가르침을 담고 있지도 않고, 선정적인 인기를 얻기 위해 쓰인 것도 아니라는 것이다. 쇼산이 하고자 했던 말은 이런 일, 즉 아침에 깨어보니 다른 성이 되어버리는 일은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으며, 그렇게 되었더라도 아무것도 바뀌지 않은 것처럼 계속 살아가야 한다는 것이 아니었을까? 쇼산이 옳을지도 모른다. 지금 나의 모습이 바로 나인 것이다. 이것이 문학 속 세이프시프터가 우리에게 전하는 이야기다. 셰이프시프터 이야기는 우리가 우리의 문제를 여러 관점에서 볼 수 있게 해 주고 '타자(이 범주는 매우 넓을 수 있다)'를 깊이 이해할 수 있게 해 주며, 그럼으로써 궁극적으로 우리가 진정한 인간성의 공동 토대를 발견하고 유대를 형성하도록 돕는다.

 

- 체인지링 Changeling(요정이 예쁜 아이를 훔쳐가면서 대신 두고 간 작고 못난 아이를 가리키는 말 - 옮긴이)족의 일원인 오도 역시 범상치 않은 외계인들 가운데 하나다. 오도는 우주정거장의 보안실장이며 셰이프시프터다. 어떤 모습으로도 변신할 수 있지만 남성 휴머노이드 모습을 가장 좋아한다. 

 

- 영국 BBC에서 제작한 <닥터 후 Doctor Who>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 방영된 SF 드라마로 기네스북에 등재된 바 있다. 1963년 첫 시리즈가 시작되었고 무려 26년간 계속되다가 1989년에 종영했다. 이후 2005년에 새로운 시리즈로 방송이 재개되었으며 2020년에 시즌12가 종료되었다. 최근 시즌13의 제작이 확정되었다는 소식도 전해졌다. 이 대작 드라마의 주인공은 작품 내에서 '닥터'라고 불리는데, 닥터는 갈리프레이 행성의 타임로드족 출신으로 '타디스'라는 타임머신을 타고 지구에 온다. 그리고 지구인 친구들과 시간 여행을 하며 맞닥뜨리는 불의에 맞서 싸운다. 닥터는 조금 독특한 유형의 셰이프시프터다. 타임로드족은 죽음 직전의 순간에 성별과 외모, 성격, 버릇 등을 바꿔 완전히 다른 모습으로 되살아날 수 있다. 이 설정을 바탕으로 지금까지 13 명의 배우가 닥터 역을 맡아 연기했다. 2017년 이후 시리즈에 13대 닥터로 조디 휘태커 Jodie Whittaker가 열연 중인데, 그녀는 역대 최초의 여성 닥터다. 
 

- 셰이프시프터가 영화, TV 프로그램, 만화와 같은 시각적 매체에서 인기가 높다는 사실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셰이프시프터를 시각적으로 묘사하는 것은 선사시대 인류가 동굴벽화를 그릴 때부터 꾸준히 해온 일이기 때문이다. 중세시대의 컬러 기록물들에는 반은 인간이고 반은 동물인 셰이프시프터들의 그림이 더러 등장한다. 그중에서도 네덜란드 화가 히에로니무스 보스 Hieronymus Bosch의 작품들 속에서 발견되는 기이한 존재들이 가장 인상적일 것이다. 스페인 마드리드에 있는 프라드 미술관이 소장 중인 보스의 트리프티카 triptych (교회의 제단 뒤나 위에 설치하는 세 폭짜리 제단화) <세속적인 쾌락의 동산 The Garden of Earthly Delights>에서는 비현실적이고 환상적인 변신 생명체들을 만날 수 있다.  

 

- '끊임없이 흐르고 바뀌는 상태'는 바로 셰이프시프터의 특징이다. 셰이프시프터는 자신의 표현 수단을 끊임없이 바꾼다. 셰이프시프터는 우리에게 무엇이 실재하고 무엇이 실재하지 않는지 불확실하니 끊임없이 추측하라고 요구한다. 셰이프시프터는 우리가 안다고 생각하는 모든 것에 이의를 제기하며, 마치 불교 수도승처럼 아무것도 영원하지 않다고 말한다. 모든 것은 변한다. 



 

 

    

 

더보기

 

- 제우스가 자신의 모습을 바꿔 상대를 얻는 데 성공한 경우들 중 몇 가지 예를 들자면 다음과 같다. 제우스는 흰 소로 변신해서 에우로페를 유혹했고, 뻐꾸기로 가장해서는 자신의 누이인 여신 헤라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또한 백조로 변신해서 레다를, 황금 비로 변해서 다나에를, 사티로스의 모습으로는 안티오페를, 개미의 모습으로는 에우리메두사를, 아르테미스 여신으로 변신해서는 칼리스토를 유혹했다. 심지어 알크메네의 앞에는 그녀의 남편으로 변신해 나타나기도 했다. 

 

- 1990년대 말, 인류학자 라네 빌레르슬레우 Rane Willersley는 1년 동안 시베리아 북동부의 유카기르족 마을에 머물렀다. 유카기르족 사냥꾼과 그들이 사냥한 동물 간의 관계를 연구했던 빌레르슬레우는 직접 그들과 함께 생활해본 후 사냥꾼들이 '인간과 동물은 잠시이긴 하지만 서로의 몸을 빌려 상대방이 될 수 있다'고 여긴다고 말했다.  

 

- 이와 관련해 유카기르족 사이에서 전해져 내려오는 이야기가 있다. 언젠가 한 사냥꾼이 황무지를 몇 시간이나 헤맸음에도 사냥에 실패하고 마을로 돌아온 적이 있었다. 그때 사냥꾼은 마을이 몹시 낯설게 느껴졌고 마을 여자들은 사슴을 대하듯 그에게 이끼를 주었다. 그러자 그는 과거를 잊기 시작했다. 하지만 곧 아내의 이름을 기억해내면서 인간의 본성을 빠르게 회복했다고 한다.

 

- 이러한 '변신 속임수'를 보여주는 또 다른 유명한 사례는 토머스 맬러리 Thomas Malory 경이 15세기에 쓴 <아서왕의 죽음 Le Morte d'Arthur>에서 찾을 수 있다. 이 책에서 맬러리 경은 미래의 잉글랜드 왕 아서가 어떻게 잉태되는지를 이야기한다. 아서 펜드래건은 마법사 멀린의 도움을 받아 하룻밤 동안 틴타셀 공작으로 변신한 뒤 흠모하던 이그레인 공작부인과 관계를 맺는다. 얼마 후 사내아이가 태어나는데 이 아이가 자라 훗날 아서왕이 된다. 

 

- 이 이야기들은 셰이프시프터가 사람에서 동물로 변신하는 경우만을 일컫는 것이 아님을 보여준다. 셰이프시프터 이야기들에서는 '젠더 전환 gender transformation' 역시 변신의 한 유형으로 빈번하게 관찰된다. 칼 구스타프 융 Carl Gustav Jung의 정신분석 이론에 따르면 아니마 anima는 남성의 마음속에 있는 여성적 속성으로 긍정적인 여성성과 부정적인 여성성 모두를 포함한다. 하지만 남성 속에 존재하는 아니마는 억압되기 때문에 꿈을 통해서만 드러난다. 반대로 아니무스 animus는 여성의 무의식 속에 존재하는 남성적 속성으로 긍정적인 남성성과 부정적인 남성성 모두를 포함한다. 이론적으로 아니마와 아니무스는 조화를 이룬다. 즉, 우리 모두에게 남성성도 존재하고 여성성도 존재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사회는 여성이라면 여성적 속성을, 남성이라면 남성적 속성을 표출해야 한다고 강요한다. 따라서 남성적 속성을 지닌 여성이라면 그 남성적 특징들을 억누르도록 학습되고, 여성적 속성을 지닌 남성이라면 그 여성적 특징들을 억누르도록 학습된다. 다만 젠더 성향, 즉 어떤 속성이 남성적이고 어떤 속성이 여성적인지를 인식하는 사회적 기준은 사회마다 시대마다 나타나는 다양한 차이들을 인지하고 받아들이는 데 너그러워지고 있다는 사실을 반영하는 것일 수도 있다. 어떤 측면에서는 이들의 존재가 다양한 차이들을 평범한 현상으로 만듦으로써 주류 사회가 이를 보다 쉽게 받아들이도록 만드는 것인지도 모른다.

 

- 셰이프시프터의 매력은 '제멋대로' 행동하고 싶다거나 성별을 바꾸고 싶다는 바람을 충족시키는 데 그치지 않는다. 우리는 정체성을 찾기 위해, 사회에서 우리에게 적절한 자리가 어디인지를 알아내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한다. 셰이프시프터는 이러한 노력의 상징이다. 인생을 살아가면서 우리는 많은 역할을 수행하게 된다. 우리는 가족의 일원이자 특정 단체의 회원이며, 지역의 거주자이고 국가의 국민이다. 특정한 종교적 신념이나 정치적 철학을 신봉하기도 한다. 연령, 젠더, 인종에 따른 역할도 수행한다. 때로는 경제나 교육 수준이, 때로는 개인의 직업이 우리의 역할을 규정한다. 그런데 인터넷과 미디어 기술이 발전하면서 세상은 더 작아졌고 세계 각지에서 일어나는 뉴스는 더 빨리 전달되게 되었다. 따라서 변화하는 세상의 새로운 환경이나 지식에 맞춰 우리의 역할도 바뀌어야 할지 모른다. 

 

- 이와 관련해 캐나다 앨버타주에 위치한 세인트 메리 대학의 총장을 역임한 게리 터콧 Gerry Turcotte은 다음과 같이 분석했다. "과거의 뱀파이어가 혐오스러운 '타자'의 상징으로 우리도 그렇게 될까 봐 두려운 존재였다면, 오늘날의 이야기들에서 이 '괴물'은 우리 모두가 그렇게 되고 싶은 '최종 목표'가 되었다." 

 

- 웨일스 신화에도 이와 비슷한 두 형제 이야기가 실려 있다. 길페드위는 사촌 그위디온와 계략을 짜 귀네드의 왕 마스 압 마소느위의 시녀 고이윈을 강간한다. 화가 난 마스는 그들을 벌하기 위해 마법을 써서 길페드위는 암사슴으로, 그위디온은 수사슴으로 변신시킨다. 사슴이 된 형제는 짝짓기를 해서 새끼를 낳았고 그 새끼를 왕에게 보낸다. 다음 해에 마스는 다시 길페드위를 수퇘지로, 그위디온을 암퇘지로 만든다. 형제는 또 짝짓기를 해서 새끼를 낳고 그 새끼를 왕에게 보낸다. 새끼 돼지를 받은 뒤 다시 1년이 지나자 마스는 이번에는 형제를 늑대로 변신시킨다. 그렇게 3년간 동물로 지내야 했던 형제는 왕의 용서를 받아 마법이 풀리면서 인간으로 돌아온다.

 

- 이 이야기들에서 셰이프시프터는 자신의 의지와 무관하게 동물, 다른 사람 혹은 물건으로 바뀐다. 원칙을 중시하는 사람들은 진정한 셰이프시프터라면 자신의 변신을 자발적으로 통제하고, 인간의 모습과 변신한 모습을 자유자재로 왔다 갔다 할 수 있으며, 변신 상태가 영구적이 아닌 일시적이어야 한다고 주장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가능한 모든 경우의 수를 포괄하기 위해서는 변신이 일어나는 방식뿐 아니라 변신이 발생한 적이 있는가 아닌가라는 사실 여부도 중요하게 고려해야 한다. 이렇게 정의를 확장하면 신화, 설화, 동화, 문학에 무수히 등장하는, 인간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다른 무언가로 영원히 변해버린 인물들을 셰이프시프터에 포함시킬 수 있다. 또한 트랜스포머(로봇으로 변신하는 장난감 차량으로, 이 변신은 영구적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같은 비인간 캐릭터도 셰이프시프터로 분류할 수 있게 된다. 미국의 소설가 러브크래프트 H. P. Lovecraft는 '쇼고스 shoggoth'라는 흥미로운 비인간 셰이프시프터를 창조했다. 대표작인 <광기의 산맥 At The Mountains of Madness>에서 그는 쇼고스에 대해 다음과 같이 묘사한다.  

 

- 비슈누는 서로 다른 10개의 화신으로 표현되는데, 이를 지상에 나타난 순서대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첫 번째 화신인 물고기 마츠야는 지상을 멸한 대홍수로부터 최초의 인간 마누를 구한다(기독교의 노아처럼 마츠야도 모든 종의 동식물을 한 쌍씩 배에 실어 다시 시작될 새로운 세상으로 데려간다). 두 번째 화신은 바닷속으로 가라앉은 육지를 떠받쳐 지탱한 거북이 쿠르마, 세 번째 화신은 그 육지를 어금니로 끌어올린 멧돼지 바라하다. 이어서 반은 인간이고 반은 사자인 나라싱하, 난쟁이 소년 바마나, 도끼를 휘두르는 전사 파라슈마라, 이상적인 영웅 라마, 검푸른 얼굴의 유쾌한 젊은이 크리슈나, 불교의 창시자인 가우타마 싯다르타(석가모니)로 등장한다. 마지막 화신인 '어둠의 파괴자' 칼키는 세계가 무너져갈 때 불타는 칼을 찬 채 백마를 타고 나타나 모든 악을 없애고 새로운 세계를 여는 구원자다. 

 - 인도와 동아시아의 불교와 힌두교에서는 나가 naga라는 신령한 존재에 관한 이야기도 전해진다. 인간과 뱀의 특징을 동시에 가진 나가는 인간에서 뱀으로, 뱀에서 인간으로 변신한다. 물의 정령으로 여겨지기도 하는 나가는 자신에게 해를 입히지 않는 한 인간에게 심술궂게 굴지 않는 편이다. 하지만 자연을 파괴하는 인간들에게는 분노하며 벌을 내리기도 한다. 인도 남부의 여러 지역에서는 나가를 풍요와 번영을 가져오는 존재로 숭배한다. 힌두교 의식 도중 여성들이 뱀 여신을 돌에 새긴 초상 앞에 제물을 바치기도 하는데, 개미탑(혹은 뱀이 살고 있는 개미탑) 초상이 여신을 대신할 때도 있다. 나가를 열렬히 숭상하는 지역 사람들은 뱀에게 해를 입히지 않으려고 주의한다. 뱀에게 해를 입힌 사람은 '나가의 저주 naga dösam'에 걸려 결혼이 늦어지고 아이를 갖지 못하게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저주는 대규모의 종교의식을 행해야만 풀 수 있다고 믿었다. 

 

- 아시아의 많은 불교 국가들에서, 특히 태국에서 나가는 거대하고 현명한 뱀으로 여겨지고, 용과 관련이 있다고 보기도 한다. 태국의 불교 사원에서는 나가의 모습이 묘사된 세공 장식들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불교에서 나가는 거대한 코브라의 모습을 하고 있는데, 간혹 머리가 여러 개 달려 있는 경우도 있다. 또한 불교 회화와 조각을 살펴보다 보면 앉아 있는 부처 뒤에서 마치 커다란 우산처럼 머리를 쳐들고 태양과 비로부터 부처를 보호하는 코브라를 발견할 수 있다. 불교에서는 마법을 사용해 인간으로 변신해서 승려가 되려 했던 나가의 이야기가 전해진다. 이 이야기에서 부처는 나가를 말리면서 다음에 완전한 인간으로 환생한다면 승려가 될 수 있을 거라며 위로한다. 

 

- 중세 유럽에서는 여러 세기 동안 수백 명의 여성과 일부 남성들이 주술 행위로 고발당해 종교재판소나 관계 당국에 끌려갔다. 유럽에서 기독교가 우세해지면서 성직자들은 자신의 권위에 대한 도전을 용납하지 않았는데, 주술과 민속신앙은 기독교에 대한 도전으로 보였기 때문이다. 교회는 주술을 사악하다고 여겼고 이를 뿌리 뽑고자 투옥과 고문도 가차 없이 행했다. 하지만 마녀들이 변신 능력, 즉 동물(그들은 특히 고양이, 올빼미, 까마귀, 토끼로 변신하기를 좋아했다)이나 물건, 다른 사람으로 변할 수 있는 능력을 가졌다는 증언이 도처에서 나왔다. 성직자들이 보기에 그런 마녀는 강한 여신이 아닌, 사탄에게 영혼을 팔아넘기고 그 대가로 변신과 같은 초자연적 힘을 얻은 인간이 분명했다. 그 시기 내내, 심지어 18세기까지도 마녀나 주술사, 늑대인간, 흡혈귀라고 고발된 사람들을 벌하기 위해 교회가 내세웠던 근거는 그들이 초자연적 모습으로 변신하는 장면을 목격했다는 사람들의 증언뿐이었다. 관계 당국은 그들이 신성한 힘의 도움을 받았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오히려 변신 능력은 악마와 관련 있는 것이라고 판단했다. 

 

- 신의 개입 없이도 동물 등 인간이 아닌 존재로 변신할 수 있는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들도 세계 곳곳에서 많이 발견된다. 이 흥미롭고 진귀한 셰이프시프터들 중 하나는 포르투갈의 모우라 엔칸타다 moura encantada다. '마법에 걸린 무어 Moor인 여성'을 뜻하는 이 단어는 스페인과 포르투갈이 수백 년 동안 자신의 영토를 점령하고 있던 무어인 (8세기경 이베리아 반도를 정복한 아랍계 이슬람교도들)을 몰아내기 위해 국토회복운동 레콩키스타 Reconquista를 벌였던 시기에 만들어졌다. 모든 모우라 이야기에는 전재산을 남겨둔 채 어쩔 수 없이 포르투갈을 떠나야 했던 부유한 무어인이 등장한다. 언젠가 포르투갈로 돌아올 때를 대비해서 재산을 보호하기 위해 무어인들은 사랑하는 딸들 중 하나에게 '마법을 걸어' ('저주를 걸었다'는 표현이 더 정확할 것이다) 재산의 수호자로 남겨두었다. 불행하게도 이 아름답고 젊은 처녀들은 마법에 걸려 머리는 여인이고 몸은 뱀인 거대한 괴물이 되었다. 여러 전설과 기록에서 이들은 '반은 여인이고 반은 뱀'인 모습으로 묘사된다. 몇몇 이야기에서는 이 처녀들이 곧 '보물'이기 때문에 아버지들이 자신이 다시 돌아올 때까지 딸을 보호하기 위해 마법을 걸어 샘이나 우물, 동굴, 다리 밑 같은 특정한 은신처에 숨겨둔 것이라 설명하기도 한다. 어떤 경우든 모우라는 마법으로 인해 모습이 바뀐 셰이프시프터로 그려진다.  

 

- 당시 영국 BBC의 유명한 스포츠 해설자이자 녹색당 대변인이었던 아이크에게 한 심령술사가 찾아와 그가 지구에 태어난 데에는 목적이 있으며 곧 영혼의 세계에서 보내는 메시지들을 받게 될 거라고 말했다.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그는 자신을 신의 아들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그가 주장하는 음모론에 따르면 바빌로니아 형제단 Babylonian Brotherhood이라고 알려진 강력하고 불순한 무리가 인류를 '신세계 질서 New World Order'라는 파시즘 상태로 몰고 갈 것이라고 한다. 파시즘과 그 추종자는 새로운 것이 아니지만, 바빌로니아 형제단이 렙틸리언 휴머노이드 reptilian humanoid들로 구성되어 있다고 믿는다는 점에서 그의 주장은 통상적인 파시즘 이론과 다르다. 아이크에 따르면, 렙틸리언 휴머노이드들이 달과 토성의 고리를 만들었으며, 인간이 실재한다고 믿는 것들이 실은 '자아와 세계에 대한 거짓된 감각'에 불과하다는 것을 널리 알리는 데 그것들을 사용하고 있다. 아이크는 파충류처럼 생긴 외계인 렙틸리언이 고향인 알파 드라코니스 성계를 떠나 지구로 와서 지하의 비밀 기지에서 인간의 피와 살을 먹으며 살고 있다고 설명한다. 이들은 수천 년 전에 지구에 왔으며, 인간과의 짝짓기를 통해 완벽한 인간의 모습으로 변신할 수 있는 셰이프시프터 인렙틸리언 휴머노이드를 낳았다. 이 셰이프시프터들은 전 세계 모든 곳의 정부, 기업, 심지어 스포츠계와 연예계에까지 침투해있다.  

 - 배니아스는 공동 창조 가설이 성립되려면 몇 가지 전체가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첫째, 비인간지능 생명체들이 존재해야 한다. 둘째, 그들과 인간 사이에 어떤 식으로든 상호작용이 존재해야 한다(물론 인간은 이 상호작용을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다). 셋째, NHI가 물리적 신체 없이 존재할 수도 있음을 받아들여야 한다. 실제로 그들은 우리에게 친숙하지 않고 알려지지 않은 에너지 덩어리일 수도 있다. 우리가 이러한 전제를 받아들여야만 인간과 NHI의 의사소통 방법을 설명하는 공동 창조 가설의 다음 단계로 나아갈 수 있다. 

 

- 그리스 신화에서 남성과 여성의 삶 모두를 경험한 인물인 테이레시아스는 아니마와 아니무스의 주고받기식 변신을 보여주는 좋은 사례다. 꿈과 해몽에 관한 국제적 권위자이자 여러 권의 책을 펴낸 작가인 토니 크리스프 Tony Crisp는 이러한 셰이프시프터의 성적 이원성에 대해 다음과 같이 지적한 바 있다

서구 사회는 셰이프시프터의 힘과 영향력을 거의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대부분의 서구인들은 살면서 셰이프시프터의 힘이 가져오는 부정적 결과만을 경험한다. 셰이프시프터가 발휘하는 힘의 원천은 다른 모습을 오갈 수 있는 능력에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러한 능력은 심오한 무언가가 외적으로 표출된 것에 지나지 않는다. 형태는 인간 존재를 구성하는 양극적 요소들 중 하나일 뿐이다. 다른 하나는 물리적 형태가 없는 무정형적 영혼이자 불교에서 말하는 '공(불교의 주요 교리 중 하나로 인간을 포함한 모든 만물은 고정불변하는 실체가 없이 비어 있다는 뜻 - 옮긴이)'이다. 이는 발현되지 않아서 아직 실체가 없으나 모든 것이 될 수 있는 가능성 그 자체를 가리킨다. 바로 여기에서 성차 sexual difference의 모순이 해소된다. 우리는 여성이자 남성이다. 아니 그 이상이다. 때문에 영혼의 동반자 soulmate란 존재할 수 없 ... 

 

- 서부 아프리카 일대에서 미국으로 팔려온 아프리카 노예의 후손들을 가리켜 걸라 Gullah라고 부른다. 이들은 조지아주와 사우스캐롤라이나주 등에 거주하고 1700년대부터 크리올 언어(서로 다른 두 언어의 요소가 혼합된 보조적 언어 피진 pidgin이 점차 확장되어 제1언어로 사용되는 것, 여기서는 아프리카계 언어와 영어가 합쳐진 언어를 의미한다-옮긴이)를 사용하며 발전시켜왔다. 이들 사이에서는 부 해그 boo hag라 불리는 무시무시한 셰이프시프터 이야기가 전해온다. 부 해그는 죽었다 되살아난 악령이다. 부 해그의 피부는 붉은색이고 새파란 혈관이 비치는데, 낮에는 희생자의 살가죽을 뒤집어쓰고 산 사람 흉내를 내며 돌아다니다가 밤이 되면 그것을 벗어버린다. 부 해그는 햇살을 받으면 소멸되는데, 이를 피하려면 벗어던진 살가죽을 되찾거나 새로운 인간의 피부를 얻어 둘러써야 한다 

 

- 칠레와 아르헨티나 설화에도 변신 능력이 있는 섬뜩한 '새' 촌촌 chonchon이 등장한다. 마법사 촌촌은 신비로운 크림을 목에 발라 자신의 머리를 목에서 안전하게 떼어낼 수 있다. 그 머리에는 깃털과 발톱이 자라나고, 양쪽 귀가 비정상적으로 커진다. 달이 없는 밤이 되면 촌촌은 그 큰 귀를 날개 삼아 날아다닌다. 촌촌은 마법사의 눈에만 보이고, 평범한 인간은 그 울음소리만 들을 수 있다. 나쁜 마법사들이 촌촌의 모습으로 변해 잠자는 인간의 피를 빨아먹는 등 악행을 저지른다고 알려져 있기 때문에, 촌촌의 울음소리는 불행의 전조로 여겨진다. 북아메리카 대륙 이로쿼이족 사이에서도 끔찍한 모습으로 날아다니는 머리 이야기가 전해진다. 이 머리는 카논치스톤티 kanontsistontie라고 부르는데, 관련 이야기가 워낙 많고 다양해서 이것이 셰이프시프터인지조차 확실하지가 않다. 여러 이야기에 공통적으로 나오는 특징들을 조합해보자면, 카치스톤티는 식인 인간의 혼령이고 죽어서도 소름 끼치는 모습으로 사람을 잡아먹어야 하는 저주에 걸렸다고 한다. 

 

- 유럽의 예술 작품에 등장하는 푸토 putto는 흥미로울 정도로 촌촌이나 카치스톤티와 유사하다. 이따금 케루브 cherub(천사와 비슷한 천상의 존재. 고대 오리엔트 종교에 등장하는 날개 달린 수호신 카리브에서 유래했다-옮긴이)와 동일시되기도 한다. 푸토는 날개가 달린 작고 토실토실한 아기의 모습을 하고 있으며, 신화나 종교를 소재로 한 미술 작품에 많이 등장한다. 특히 케루브 조각상은 몸 없이 머리에 날개가 달린 형태로 표현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 하지만 아메리카 원주민 설화에 등장하는 날아다니는 머리와는 다르게 순결한 마음과 착한 성품을 지녔다고 알려져 있다. 

 

- 에콰도르 북서쪽에 거주하는 차치족(카야파스족이라고도 불린다)의 장례 의식이 이러한 유형의 변신을 보여주는 가장 적절한 예일 것이다. 차치족은 고도로 발달한 우주론을 보유하고 있다. 그들은 사후의 삶이 죽으면서 남기고 떠나온 현세의 삶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믿는다.  

 

- 이 이야기들은 대부분 끔찍하고 잔인하기 그지없지만, 그런 가운데에서도 늑대인간을 바라보는 시선이 변화해왔다는 점은 눈여겨볼 만하다. 선사시대의 수렵·채집인에게 늑대나 다른 동물로 변신할 수 있다는 것은 그 자체로 귀중한 기술이었다. 이는 곧 사냥의 성공을 가져다주어 부족의 생존 가능성을 높여주는 능력이었기 때문이다. 이후 베르세르크 같은 전사들은 전투에서 승리를 거두기 위해 늑대나 곰으로 기꺼이 변신하려 했다. 그런가 하면 프세슬라프 왕자의 이야기가 보여주듯이 귀족 중에도 늑대인간 소리를 듣는 이들이 있었다. 

 

- 프세슬라프 왕자는 1039년 폴로츠크 공국(오늘날의 벨라루스 북부에 있는 도시)에서 태어났다. <원초 연대기 Primary Chronicle>(12세기경 키예프 공국에서 편찬된 역사서로 <지나간 세월의 이야기 Tale of By gone Years>라는 제목으로도 알려져 있다)에는 프세슬라프의 출생에 관한 이야기가 나온다. 세슬라프는 차라데이 tapoget (마법사)라는 별칭으로도 불렸는데, 이는 그가 태어날 때 머리에 양막(태아를 둘러싼 얇은 막으로, 안에 양수가 차 있어 외부의 충격으로부터 태아를 보호한다-옮긴이)을 뒤집어쓰고 나온 데서 유래한다. 양막을 쓰고 나온 아이에게는 초자연적 능력이 있다는 전설이 있었기 때문이다. 1044년 아버지가 사망하고 폴로츠크의 왕자가 된(공국 군주의 작위는 왕이 아닌 왕자 prince - 옮긴이) 프세슬라프는 키예프 공국을 지배하던 야로슬라프 가문과 사이가 좋지 않았다. 그는 폴로츠크를 57 년간 통치하면서 현재도 남아 있는 성 소피아 대성당(성스러운 지혜의 성당 Cathedral of Holy Wisdom이라고 불리기도 한다)을 건축하는 등의 업적을 남겼으며, 상당한 마법 지식과 능력도 가지고 있었다고 전해진다. 프세슬라프는 1066년과 1067년에 걸쳐 키예프 공국을 침공하여 노브고로드를 약탈하고 불태웠다. 이때 노브고로드에 있는 성 소피아 대성당의 종과 신물들을 빼앗은 뒤 폴로츠크에 같은 이름의 성당을 짓고 그것들로 꾸민 것이다. 그런데 그가 이 모든 일을 능숙하게 처리할 수 있었던 것이 늑대인간이기 때문이라는 소문이 돌았다.  

 

- 쿠슈타카는 사악한 면도 있어서 아기의 울음소리 나 여인의 비명소리를 내어 사람들을 강가로 유인할 때도 있다. 유인에 성공하면 불쌍한 희생자를 죽이거나 새로운 쿠슈타카로 만들어버린다. 쿠슈타카는 특히 아이들을 잡아먹는 것을 좋아한다. 

- 미국 루이지애나주의 습지에는 인간의 몸에 늑대나 개의 머리를 한 야수 로가로우 rougarou가 산다고 한다. 로가로우라는 이름은 '늑대인간'을 뜻하는 프랑스어 '루 가루'가 잘못 전해져 굳어진 것인데, 그 특성도 프랑스의 늑대인간과 매우 비슷하다. 로가로우와 루 가루는 둘 다 종교에 상관없이 희생자를 선택하지만 그중에서도 7년 연속으로 사순절에 절제와 금욕을 지키지 않은 가톨릭 신자를 잡아먹는다고 알려져 있다. 로가로우에게 피를 빨린 희생자는 로가로우가 되는 저주에 걸리고 101일간 그 저주에서 벗어날 수 없다. 낮에는 인간 모습이기 때문에 정체를 들켜 살해당할 위험이 적다. 에티오피아, 모로코, 탄자니아 등 여러 아프리카 국가들에서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부다 bouda는 대장장이 마법사로 하이에나-인간으로 변신할 수 있다. 이들은 변신하더라도 인간이었을 때 착용한 장신구가 그대로 남아 있어 그것으로 알아볼 수 있다고 한다. 

 

- 여성 뱀파이어 역시 성적 매력을 풍겼다. 예컨대 말레이시아의 랭수이르 langsuyar는 아름답고 젊은 여성 뱀파이어다. 특이하게도 이들은 결혼해서 아이를 낳고 평범한 마을을 이루며 살아가다 우연히 인간에게 정체가 발각되었다고 한다. 흥미로운 점은 뱀파이어가 나오는 거의 모든 문학 작품에서 남성 뱀파이어보다 여성 뱀파이어가 먼저 등장한다는 사실이다.  

 

- 서아프리카의 여러 지역에서는 한밤중에 마녀의 영혼이 자신의 몸을 떠나 타오르는 불덩이 모양으로 거리를 배회하다 사람들, 특히 아이들의 피를 빨아먹는다고 믿었다. 아프리카에서는 대부분의 뱀파이어가 마녀의 주술로 인한 것이라고 여긴다. 마녀는 쥐나 고양이를 비롯해 다양한 동물로 변신할 수 있고 죽은 자를 움직이게 하는 힘이 있기 때문이다. 서아프리카의 뱀파이어는 중국의 강시처럼 폭력적인 방식이 아닌 심령 흡혈 psychic vampirism을 통해 희생자를 서서히 말려 죽였던 것으로 보인다. 심령 흡혈의 일종인 '정기 흡혈 energetic vampirism'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영매 로이 마스터스 Roy Masters가 주창한 용어로 피를 빨아먹지 않고도 흡혈이 가능하다. 신지학자 프란츠 하트만 Franz Hartmann도 이와 유사한 '심령 스펀지 psychic sponge'라는 용어를 창안했다. 심령 스펀지란 영적으로 민감한 사람의 정기를 그가 알아차리지 못하는 사이에 빨아들이는 사람을 가리킨다(사람이 영적으로 민감해지는 원인은 밝히지 않았다). 자성을 가진 마그네틱 뱀파이어 magnetic vampire도 민감한 사람의 생기를 빨아들여 나른하게 만들 수 있다.

 

 - 마쓰스케는 자신의 새 얼굴에 만족하며 일어나 일본 전통 수의인 흰색 기모노를 두른다. 그런 다음 길고 치렁치렁한 가발을 쓰는 것으로 분장을 마무리한다. 바로 이 가발이 머리카락 공포증을 자극해서 관객을 공포의 도가니로 몰아넣을 것이다. 거울 속에 자신의 맨발이 보인다. 무대 위에 놓인 화로와 등불을 기술적으로 사용하여 허리 위만 비추면 그는 허공을 떠다니는 발 없는 유령처럼 보일 것이다. 마쓰스케는 무대 옆으로 다가간다. 한 걸음 내디딜 때마다 그가 점점 죽은 창녀와 비슷해진다. 마치 그녀가 그 안에 있는 것 같다. 아니 어쩌면, 진짜 그녀일지도 모른다.  

 

- 일본의 전통극 가부키에는 남자만 출연할 수 있고, 따라서 남자 배우가 여성 역할을 맡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마쓰스케는 19세기 일본에서 이름을 떨친 명배우 5대 오노에 기쿠고로尾上菊의 제자였다. 기쿠고로는 가부키 배우 중에서 여성 역할을 전문으로 맡는 온나가타로 연극 인생을 시작한 것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과거의 가부키 배우는 일반적으로 연기 인생 내내 한 가지 유형의 역할(영웅, 악당, 노인, 여성 등)을 전문으로 맡았지만, 기쿠고로는 남자 주인공 역할을 맡는 데 성공했다. 마쓰스케도 스승의 길을 따라 여성 역할을 맡다가 배역을 전환했다. 

 

- 윌리엄 셰익스피어도 이따금 남성(보통은 소년)에게 여성 역할을 맡겼으나 가부키에서 남성이 여성 역할을 연기하는 것은 차원이 다르다. 약 400년 동안 가부키는 오직 남성들만 참여할 수 있는 영역이었다. 하지만 최초의 가부키를 만든 것은 에도시대의 여성 예술인 이즈모노 오쿠니 出雲阿國였다. 1603년에 오쿠니가 가부키오도리라는 무용극을 만들어 공연했는데, 이것이 발전하여 가부키가 되었다. 초창기 가부키는 춤 위주로 구성되었으며 요란하고 외설적이었다. 배우도 주로 유녀遊女(매춘부)들이 맡았다고 한다. 그러자 당시 막부(12~19세기 일본을 통치했던 무신 정권의 정부)는 가부키 공연을 금지했다. 하지만 가부키를 보고 싶다는 민중의 요구가 갈수록 커지자 1629년부터 남성 배우들만 출연하는 가부키를 만들어 공연하게 했다. 

 

- 하지만 모든 문화에서 젠더 전환자를 존중했던 것은 아니다. 오스트레일리아 원주민 부족 중에는 여성들로 이루어진 잔두족이 있었다고 전해진다. 이들은 남성 역할을 하는 여성으로, 다른 부족들과 멀리 떨어져 살았다고 한다. 과거에 여성의 일이라고 여겨졌던 곡식과 과일 채집 일을 하기보다는 남성처럼 무기를 들고 다니며 캥거루와 에뮤(오스트레일리아에 사는 대형 조류로, 타조와 비슷한 생김새를 지녔으며 날지 못한다 - 옮긴이)를 사냥했다. 부족의 법을 수호하는 위대한 뱀 츄로 tchoaroo는 이 여성들을 벌하고 사냥을 금지시켰다. 남성의 일인 사냥을 하는 것은 곧 법을 위반하는 행동이었기 때문이다. 여성들은 그의 말을 무시하며 사냥을 계속했다. 그러자 츄루는 그들을 거대한 흰개미집으로 쫓아냈다. 
 
- 다양한 형태의 가면들(신성한 것, 실용적인 것, 장난스러운 것 등)은 '인간 존재의 의미를 탐색하고 발전시킨다'는 점에서 역사적으로 중요한 역할을 수행해왔다. 가면을 통해 다른 정체성을 가진 존재로 변신한다는 것(혹은 기존의 사회적·종교적 정체성을 확고히 한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상상을 통해 경험할 수 있기 때문이다. 

 

- 이러한 변신의 축소판이 바로 코스프레다. 코스튬 플레이어들은 만화책, 애니메이션, 웹툰, 게임, 영화, TV 프로그램에 등장하는 인물의 의상을 따라 입고 그 인물처럼 꾸민다. 코스프레라는 용어는 코스튬 플레이어들 사이의 하위문화로 여겨지기도 하고, 때로는 보다 포괄적인 의미에서 무대 등 특정한 장소가 아닌 곳에서 의상을 차려입는 롤플레잉 role-playing의 개념으로 정의되기도 한다. 연극적 해석이 가능하다면 어떤 것이라도 코스프레의 주제가 될 수 있다. 성별 바꾸기 gender switching도 흔하게 등장한다. 코스튬 플레이어는 핼러윈 의상을 입고 집집마다 돌아다니며 "과자를 안 주면 장난칠 거예요! Trick or treat!"라고 외치는 아이들과도 다르고, 카니발 축제 참가자들과도 다르다. 코스튬 플레이어는 자신이 선택한 캐릭터의 페르소나('가면'을 뜻하는 라틴어로, 오늘날에는 '외적 인격' 또는 '가면을 쓴 인격'을 뜻한다. 즉 다른 사람들 눈에 비치는, 특히 그의 실제 성격과는 다른, 한 개인의 외적 모습을 뜻한다 - 옮긴이)를 그대로 복제하려고 노력한다. 캐릭터의 의상을 입고 캐릭터인 척하며 캐릭터의 버릇과 몸짓을 따라 한다. 다시 말해, 그 캐릭터로 변신한다. 

 

- 그리 잘 알려져 있지는 않지만, 그림 형제의 원본 동화에서는 왕자가 본래의 모습으로 되돌아간 것이 공주의 키스 덕이 아니다. 공주가 개구리를 혐오하며 벽에 집어던졌고, 그 충격으로 개구리 안에 있던 원래의 자아가 겉모습을 깨고 나온 것이다. 로알드 달 Roald Dahl의 동화 <마녀를 잡아라 The Witches>에서 주인공 소년이 마녀 때문에 생쥐로 변신하게 되었다면, 고든 딕슨 Gordon R.Dickson의 소설 <조지와 드래건>에서 조지는 판타지 세계에 보내져 용으로 변신당한다. 변신 상태에서 이 인물들은 어떤 새로운 난관들을 맞닥뜨리고, 이를 어떻게 극복할까? 

 

- 한편, 포르투갈 리스본에 위치한 아줄레주 국립 박물관 Museu Nacional do Azulejo은 포르투갈의 독특하고 아름다운 도자기 타일인 아줄레주 작품들로 가득하다. 그중에는 이집트의 야누스를 닮은, 반은 인간이고 반은 사자인 거대한 머리를 새, 사자, 용, 인간의 머리가 에워싸고 있는 모습을 그린 것도 있다. 포르투갈 북부에 있는 도시 포르투에 가면 예술적인 건물로도 유명한 세랄베스 현대미술관 Museu de Arte Contemporânea de Serralves이 있다. 지난 2016년, 이곳에서는 '물질과 변신'이라는 제목으로 에스파냐의 화가인 호안 미로 Joan Miró의 전시회가 열렸다. 이때 전시된 자품들은 모두 미로가 '변신'이란 주제에 얼마나 매료되었는지 잘 보여주었다. 심지어 아예 제목이 <셰이프시프터>인 작품도 있었다. 당시 전시회 카탈로그에는 다음과 같은 글이 실렸다. 

 

미로는 재료의 특성을 탐구하는 한편 시각 기호라는 혁신적 언어를 발전시켜 현대미술의 판도를 바꾸어놓았다. 미로의 작품 속 오브제들은 형태 변형의 과정을 거쳐 시각 기호로서 지위를 얻는다. 그가 짜 넣은 헝클어진 실타래들은 떨어지는 물감 방울 대신이며, 초기 콜라주 작품에 사용한 철사는 드로잉 선을 대신다. 가끔은 종이로 캔버스 지지대의 물리적 특징을 재현하기도 한다. 넓은 의미에서 형태론은 미로의 작품을 관통하는 작업 원리다. 모든 것은 끊임없이 흐르고 바뀐다. 그리고 미로는 이질성 속에서 동질성을 탐색한다. 

 

- 셰이프시프터 이야기를 소문이나 미신, '가짜 뉴스'로 치부하며 묵살하기는 쉽다. 하지만 셰이프시프터를 목격했다는 사람들이나 실제로 만나지는 못했지만 적어도 셰이프시프터가 존재한다고 믿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아무 생각 없이 무시해서는 안 된다. 오늘날 과학과 기술은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 없어서는 안 될 부분이 되었고, 인간에게 온갖 혜택을 가져다주었다. 하지만 그와 함께 우리를 기술과 기계의 노예로 만들었다. 스마트폰에 몰두하며 걷느라 달려오는 버스를 피하지 못한 불운한 사람들의 소식이 더 이상 놀랍지 않게 되었으니 말이다. 어쩌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우리가 통상적으로 알고 있는 것, 우리가 진실이라고 생각하는 것에서 한 걸음 떨어져 영국 극작가 이든 필포츠 Eden Phillpotts의 말을 인정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인내심을 가지고 감각이 예민해질 때까지 기다려보라. 그러면 세상이 미지의 것들로 가득하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 

      

 

 

728x90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