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자가 흐르는 이야기/Drawing Book

[백남원] 그림, 색에 관한 모든 것

일루젼 2022. 12. 12. 0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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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백남원 
출판 : 연두 m&b 
출간 : 2019.02.14 


       

'반환점을 돌았다.'

 

최근 이 생각이 많이 든다. 제 자리로 돌아와야 할 것들은 돌아오고, 끝을 내야 할 것들은 끝을 내는 방향으로 변화가 시작된 느낌. 

 

그림에 관해서는, 여전히 즐거운 취미로 즐길 생각이지만 페이스를 좀 늦춰서 천천히 즐겁게 그려나가도 충분하다는 생각이 든다. 디지털 드로잉의 극강한 장점 덕분인데, 무한 수정이 가능하기에 시간만 충분하다면 얼마든지 원하는 대로 표현할 수 있다. 시행착오를 거칠 수는 있겠지만, 그 과정에서 얻은 자신만의 노하우들이 쌓이면 충분히 효율적으로도 그려낼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겨울 동안은 조금 움츠리고 지내며 소진된 체력을 회복해볼까 싶다. 그리고 나면 수영이나 악기 같은 또 다른 취미에 도전해볼 힘이 생길 테니. 또 이전에 열중하다 잠시 손을 놓았던 것들에 다시 관심이 가서, 나름대로는 바쁜 겨울이 될 것 같다.

 

이 책은 말 그대로 '색에 관한 모든 것'이다. 색이란 빛으로 인해 감각되는 하나의 감각이지만, 동시에 경험하고 관찰하고 공부해서 이해할 수 있는 것이기도 하다. 한 번쯤은 들어봤음직한 색의 3요소부터, 어떻게 색을 사용해야 원하는 표현을 구현할 수 있는지, 어떤 조합이 어떤 느낌을 주는지, 사용자가 느끼는 난감함은 무엇 때문인지를 차근차근 설명해나간다. 

 

흔히 디지털 페인팅에서 '색이 탄다'고 표현하는 현상이 있는데, 채색을 진행할수록 그림이 텁텁해지거나 탁해지는 등의 색감 문제를 말한다. 저자는 이것이 명암 표현을 말 그대로 '명암'으로 접근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림자는 고유색 위에 검은 그늘이 생기는 것이 아니라 빛의 양이 변화하며 생기는 '색의 변화'라는 것이다. 따라서 어두운 부분은 무채색을 덧칠해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색의 채도와 명도를 변화시켜 '색으로' 표현해야 맑고 자연스러운 표현이 가능해진다는 것. 

 

또 주변의 영향을 받는 반사광으로 인한 색 혼입의 경우에도 물체끼리 유사 색상인 경우와 아닌 경우, 밝은 색상인 경우와 아닌 경우, 영향을 받는 범위 등을 세밀하게 나누어 설명한다. 그 외에도 색의 조합에 따른 느낌을 정말 상세하게 다루고 있는데, 개인적으로 가장 인상적이었던 부분은 색의 조합은 색상 자체도 중요하지만 각각의 색이 차지하는 면적과 위치에 따라 조화도가 달라진다는 부분이었다. 후반부의 색 조합 비교들은 사람에 따라 다른 인상을 받을 수도 있겠지만, 낯설더라도 다양한 색 조합들을 경험한다고 생각하면 그 또한 의미가 있다고 본다.  

 

저자는 '아름다운 색'이란 없으며, 주변 색들과의 관계성을 통해 '아름답게 보이는' 것이라고 말한다. 또한 색 감각은 충분히 경험과 이해를 통해 키워나갈 수 있는 영역이므로 두려워하지 말고 다양하게 시도하고 충분하게 관찰하기를 격려한다. 

 

이 책의 내용들은 디지털 드로잉과 핸드 드로잉을 구분하지 않고 '색' 사용에 관해 큰 도움이 될 만한 내용들이므로, 강력 추천한다. 

만족스러웠다. 

 

        

 

 


   

 

어떤 색이 아름다운 것은 
그 색 자체가 아름다워서가 아니라
주변 색과의 관계에 의해 그렇게 보이는 것입니다.

 

- 색, 누군가에겐 어떻게 활용해야 할지 모르는 당혹스러운 골칫거리지만 누군가에겐 표현 효과를 높이고 시각적 즐거움을 배가하는 유용한 도구입니다. 

- 색을 당혹스럽게 여기는 쪽과 유용하게 활용하는 쪽, 어느 쪽에 서느냐는 어떻게 결정될까요? 선천적으로 타고난 색 감각에 의해 결정된다고 믿는 사람이 많지만, 언제나 그렇듯 어떤 능력이 타고난 재능에만 기인한다고 느껴지는 이유는 그 능력의 원리나 방법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만약 색에 대해 체계적으로 잘 배우고 이해한다면 누구나 색을 유용하게 활용하는 쪽에 설 수 있습니다. 단순해 보이는 색 속에서도 오묘한 색 변화를 포착할 수 있고, 어떻게 배색해야 조화를 이룰지 막막해할 일도 없어집니다. 우중충하고 불쾌하게 변해 가는 그림을 보며 좌절할 일도 없지요.

 

- 재능을 탓하기 이전에 스스로 자문해 보세요. 색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는지. 열 개 남짓한 색 이름. 들어보기는 한 것 같은 '보색', '색의 3요소', '채도' 같은 몇몇 용어들. 노란색이 포함되는지 아닌지 헷갈리는 삼원색의 종류, 확신도 없고 이유도 모르지만 이런 색과 저런 색이 어울리더라는 단편적인 경험 등. 대략 이 정도가 아닌가요? 색이라는 복잡한 현상을 이해하고 활용하기에는 미흡한 지식입니다. 색을 잘 알지 못하니 잘 다루지 못하는 것이 당연한 것이지요. 

 

- 물론 여러분만의 탓은 아닙니다. 아무리 둘러보아도 색에 대해 체계적으로 제대로 배울 수 있는 기회를 찾기가 어려우니까요. 전문적인 미술교육을 받더라도 다르지 않습니다. 색 사용능력을 제고하기 위한 실전적이고 체계적인 커리큘럼이 제공되기보다는 개인의 문제, 타고난 재능의 문제로 여기는 분위기가 지배적입니다. 운 좋게 색을 잘 아는 선생님을 만나면 어깨너머로 몇 마디 얻어 듣는 게 전부지요. 그래서 화가, 일러스트레이터, 디자이너, 만화가 등 전문적인 미술교육을 받은 사람들도 색을 어려워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단편적인 지식과 약간의 경험에 의지해 그럭저럭 버티지만 색 사용은 언제나 부담스럽습니다. 이런 안타까운 상황을 타개하는 데 조금이라도 도움을 주고자 이 책을 썼습니다. 

 

- 색은 빛이 만들어 내는 물리적 현상이면서 동시에 우리 정신이 만들어 내는 심리적 현상입니다. 객관적 현상이면서 동시에 주관적 현상이기도 하지요. 색 현상은 매우 복잡해 보이고 신비롭기까지 합니다. 일반인은 물론 미술 분야의 전문가들도 색을 까다로운 문제로 인식합니다. 그래서일까요? 유독 색 감각과 관련해서는 선천적으로 '타고나는 것'이라고 믿는 사람들이 많고 그 믿음이 굳건해 보입니다. 정말로 색 감각은 타고나는 것일까요? 반은 맞고 반은 틀린 말입니다. 특별한 학습 없이도 선천적으로 좋은 색 감각을 가질 수도 있다는 의미에서는 맞는 말입니다. 실제로 특별한 학습 없이도 뛰어난 색 감각을 보여 주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타고나지 않은 사람은 평생 부족한 색감각으로 살 수밖에 없다는 의미라면 틀린 말입니다. 사실 색 감각만큼 학습한 효과를 톡톡히 보는 것도 드뭅니다. 공부한 만큼, 아는 만큼 향상시킬 수 있는 것이 바로 색 감각입니다. 

 

- 대부분의 사람들은 하늘을 하늘색으로, 나뭇잎은 초록색으로, 레몬은 노란색으로 칠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합니다. 이는 우리 의식 속에 고유색이라는 것이 자리 잡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물마다 변치 않는 본래의 색이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지요. 관념색, 또는 기억색이라고도 부르는 이 색들은 우리 의식 속에 각각의 사물을 나타내는 중요한 특징으로 각인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하늘을 그릴 때는 꼭 하늘색을, 나뭇잎을 그릴 때는 꼭 초록색을 써야 할 것 같은 생각이 듭니다. 색 사용이 서툰 사람일수록 이런 특징이 두드러집니다. 꼭 그렇게 칠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일깨워 주어도 다른 색으로 칠하는 것을 부담스러워하고 뭔가 잘못될 것 같은 불안감에 휩싸입니다. 이런 강박이 좀처럼 깨지지 않는 것은 빛과 색에 대한 근본적 오해와 관련이 있습니다.

 

- 바로 사물 자체에 그 사물의 고유색이 들어 있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레몬이 노란색인 것은 본성적으로 노란색을 그 안에 머금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지요. 하지만 레몬이 노란색인 것은 원래 그런 것도 노란색을 머금어서도 아닙니다. 오히려 레몬에 비추는 빛 중에서 노란빛만 반사하기 때문에 노랗게 보이는 것이지요. 비추는 빛이 달라지면 레몬 색도 변합니다. 빨간색이나 초록색으로 보일 수도 있고, 심지어 검은색이나 회색, 흰색으로도 보일 수 있습니다. 

 

- 고유색은 우리의 관념일 뿐 사물 색은 주변 환경에 따라 수시로 변합니다. 이 점을 깨닫는다면 사물의 고유색에 얽매이는 태도를 고칠 수 있고, 색을 이해하는 데 성큼 다가설 수 있습니다.

 

- 어떤 색이 아름다운 것은 그 색 자체가 아름다워서가 아니라 주변 색과의 관계에 의해 그렇게 보이는 것입니다. 색 사용이 서툰 사람들은 이 사실을 잘 인식하지 못하지요. 그래서 아름답게 보이는 색을 기억해 두려 하기도 합니다. 

 

- 음악에서 '도'가 '미'보다 더 아름답거나 '솔'이 '시'보다 더 아름다운 것은 아니듯이 특별히 더 아름다운 색은 없습니다. 물론 주관적으로 선호하는 색은 있을 수 있지만, 특정 색을 아름답거나 추하게 보이도록 만드는 것은 그 색 자체의 힘이 아니라 색들 간의 관계입니다. 어떤 색이든 다른 색들과의 관계에 따라 아름답게도, 추하게도 보일 수 있습니다. 

 

- 색은 색상, 명도, 채도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그런데 색 사용이 서툰 사람들 중에는 색상만 신경 쓰고 명도와 채도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거나 무관심한 사람이 많습니다. 

 

- 그런 경향은 색을 다룰 때도 색상만 신경 쓰는 것으로 이어집니다. 'COLORS 02. 기본적인 색 이론'에서 색상, 명도, 채도에 대해 자세히 공부하겠지만, 명도와 채도는 색상의 성질은 물론 주변 색과의 어울림에 영향을 주기 때문에 조화로운 색 사용을 위해 반드시 고려되어야 할 사항입니다. 실제로 색 문제의 상당 부분은 명도, 채도를 조절해 해결할 수 있습니다. 


 - 한 가지 색으로만 이루어진 사물이라도 명암에 따라 미세하게 색상이 변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색에 예민한 사람들은 그 변화를 느끼기 때문에 명암 변화를 색으로 해석하는 것이 자연스럽습니다. 반면 색에 서툰 사람들은 그 변화를 알아채지 못하는 경우가 많고, 명암 변화는 오로지 명암 변화로만 이해하려 합니다. 그림 1-5를 보면 양쪽이 비슷해 보이지만, 찬찬히 보면 왼쪽은 색이 맑고 산뜻하지만 오른쪽은 상대적으로 어둡고 칙칙합니다. 왼쪽은 명도를 색으로 해석해 변화를 준 것이고, 오른쪽은 오로지 명도 차이로만 표현한 것입니다. 보통 색 사용에 서툰 사람들은 오른쪽처럼 단일한 색상에서 명도만 변화시키는 것으로 만족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 역시 고유색에 대한 관념이 강하게 작용한 결과입니다. 

(리뷰자 주 : 흔히 '색이 탄다'라고 표현하는 현상이다. 기존 색에 무채색으로 명암을 덧입히려 하기 때문이라는 것.) 

 

- 뛰어난 묘사력에도 불구하고 색 사용에는 서툰 사람들이 많은데, 그런 사람들은 형태와 명암 표현에만 신경 쓰고 색의 존재나 필요성은 잘 인식하지 못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입체를 표현할 때도 하나의 색상에서 명도만 변화시켜 표현하곤 하지요. 명도 변화만으로 표현된 사물은 색이 결핍되어 보일 수밖에 없고, 주변 사물과 색이 다를 경우 동떨어져 보이게 됩니다. 

 

- 색 사용이 서툰 사람들은 쓰던 색을 반복해서 사용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기본적으로 색에 대한 호기심도 적고 자신감도 없다 보니 새로운 색 사용을 시도하지 않습니다. 간혹 새로운 색을 시도하더라도 그 낯설음이 부담스러울 뿐 그 경험이 의미 있게 기억되는 일은 거의 없지요. 색에 대한 호기심이 약하고 색 경험을 내면화할 수 있는 색에 대한 이해의 틀이나 경험이 부실하기 때문입니다. 

- 같은 이유로 물감을 섞어 새로운 색을 만들기보다는 물감 색을 그대로 사용하는 데 만족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자신이 가고자 하는 목적지가 분명한 사람은 길이 없으면 직접 길을 내서라도 갑니다. 마찬가지로 자신이 표현하고 싶은 색이 분명한 사람은 주어진 물감을 섞어 가면서 원하는 색을 만들려고 노력합니다. 하지만 색 사용이 서툰 사람들은 표현하고 싶은 색이 분명하지 않을 뿐 아니라, 색에 대한 호기심과 자신감까지 부족하니 주어진 물감 색으로 만족하는 것이지요. 혼색 경험이 없다 보니 어떻게 혼색해야 원하는 색이 나오는지도 모르고, 그래서 더 혼색하기를 두려워하는 악순환이 반복됩니다. 

 

- 어느 한 색상환을 절대시 하기보다는 융통성을 갖고 이해하는 것이 좋습니다. 물감을 주로 다룬다면 먼셀의 색상환이 편할 수도 있고, 자연색 위주의 그림을 주로 그린다면 빨강, 파랑, 노랑을 정삼각형 형태로 배치해서 구성한 색상환이 유용할 수도 있습니다. 만약 컴퓨터 프로그램을 사용한다면 빛의 삼원색과 물감의 삼원색을 엇갈리게 구성한 색상환을 알아야 합니다. 

 

- 만약 보색 관계인 두 물감 색을 같은 비율로 섞는다면 서로가 서로의 색 성질을 상쇄시켜 무채색인 짙은 회색이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보색을 살짝 섞어 주는 방법으로 어떤 색의 성질을 약화시킬 수 있습니다. 

 

- 색상환 상의 임의의 두 색을 섞으면 두 색이 가진 성질의 중간 값, 즉 중간쯤에 위치한 색이 만들어진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만약 마젠타와 노랑을 섞으면 두 색의 중간쯤에 있는 빨강이 만들어지고, 빨강과 노랑을 섞으면 두 색의 중간쯤에 있는 주황이 만들어지지요. 물감 특성상 예외적인 결과가 나오기도 하지만 혼색 결과를 예상하는 데 큰 도움이 됩니다.  

 

- 일상에서 수없이 많은 색을 접하더라도 제대로 관찰하지 않으면 의미 있는 색 경험을 할 수 없습니다. 관찰은 모든 지식의 출발입니다. 관찰함으로써 색을 보다 풍부하고 의미 있게 경험할 수 있고 이해할 수 있습니다. 관찰이 토대가 되어야 색 사용능력을 효과적으로 향상시킬 수 있습니다. 

 

- 색을 경험하지 않으면서 색을 표현한다는 것은 상상하기 어렵습니다. 관찰을 통해 색을 충분히, 의미 있게 경험할 때 각각의 색에 대한 인상이 생기고, 판단력이 생기며, 색들이 만들어 내는 미묘한 뉘앙스에 눈뜨게 됩니다. 색 감각이 싹트는 것이지요.  

 

- 관찰이 중요한 또 다른 이유는 대부분의 그림은 대상을 관찰해서 그리게 되는데, 그 경우 관찰의 질이 곧 그림의 질을 결정한다는 것입니다. 관찰의 질이 낮으면 아무리 재료에 익숙하고 손놀림이 능숙하더라도 좋은 그림이 되기 어렵습니다. 반면에 관찰의 질이 높으면 비록 재료 사용이 서툴고 손놀림조차 미숙하더라도 더 나은 그림을 그릴 수 있습니다.

 

 

- 그림은 기본적으로 번역과 같습니다. 본 것, 느낀 것을 그림이라는 시각적 형태로 번역하는 것이지요. 영어를 우리말로 번역한다면 기계적으로 옮기는 것이 아니라 우리말의 용례와 뉘앙스에 맞춰 융통성 있게 바꿔 주어야 하듯 관찰한 내용도 그림의 문법과 조화, 그림에서의 효과와 느낌에 맞춰 표현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대상을 관찰하고 느끼고 그것으로부터 출발하지만 그것에 얽매일 필요는 없는 것입니다. 
 

- 그 외에도 빨강과 푸른빛이 도는 초록색 등 보색 관계에 가까운 어두운 두 색을 섞으면 검정에 가까운 색이 되므로 활용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방법들로 만든 색은 완벽한 검은색이 아니므로 미세한 색상 변화를 초래하지만, 실제 그림에서는 문제가 안 되고 오히려 색감을 풍부하게 만들기도 합니다.

 

- 채도를 낮출 때는 보색을 살짝 섞는 방법이 자주 사용됩니다. 보색은 색상 성질을 상쇄하기 때문에 채도를 낮춥니다. 다만 정확한 보색이 아니라 구비된 물감들 속에서 보색에 가까운 색을 선택하는 것이므로 약간의 색상 변화는 생길 수 있습니다. 또한 명도도 낮아질 수 있으므로 추가적인 명도 조절이 필요할 수도 있지요. 색상이나 명도 변화 없이 깔끔하게 채도만 낮추고 싶다면 비슷한 명도의 회색을 만들어 섞어 주는 것이 가장 확실합니다. 물론 회색의 비율이 높을수록 채도는 더 낮아집니다.

 

 

- '색 판단 영역’에 의존해 색을 판단한다는 사실은 우리에게 많은 가능성을 열어 줍니다. 그림 5-4의 a처럼 색감이 약한 저채도 사물을 채도 높게 채색하고자 할 때 굳이 전체적으로 채도를 높일 필요가 없습니다. 사물 전체를 높은 채도로 칠하면 오히려 촌스러워질 수도 있지요. 전체적으로 채도를 높이는 대신 b처럼 색 판단 영역을 중심으로 채도를 높여 주면 오히려 효과적이고 자연스럽습니다.  

 

 

- 그림 5-5는 단순히 사물의 색감을 높이는 것을 넘어 다채로운 색감으로 표현하는 법을 보여 줍니다. 보통 관념적으로 색을 판단하는 사람들은 a와 같이 하나의 색상으로 명도만 조절해 표현합니다. 분홍색 사물이라면 분홍색으로만 표현하려 하지요. 하지만 색 판단 영역이 아닌 부분은 b와 같이 얼마든지 색을 바꿔 주어도 됩니다. 사물의 색 느낌을 잃지 않으면서도 다채로운 색감이 생기지요. 이때 사물에 비친 반사광이나 조명에 의한 색상 변화를 과장해도 되고 임의로 색을 선택해도 됩니다. 원한다면 c처럼 채도를 높여 색감을 더욱 화려하게 만들 수도 있습니다. 색 판단 영역의 색만 유지된다면 사물이 무슨 색인지를 알아보는 데 별 지장이 없지요.  

 

 


- 다채로운 색감을 위해 사물의 색을 과장하거나 변화시킬 때 명심해야 할 사항이 있습니다. 색상이나 채도를 과장하거나 변화시키는 것이지 명도를 바꾸는 것은 아니란 점입니다. 그림 5-6의 b는 명암만 있는 흑백사진입니다. 컬러사진인 a에 비해 아쉬움은 있지만 대상을 인식하는 데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반면에 색상만 있는 c는 대상을 인식하는 데 어려움이 있습니다. 이처럼 대상을 인식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것은 색상이 아닌 명암인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따라서 대상의 사실성을 유지하려면 색은 변화를 주거나 과장하더라도 명도만은 원래대로 유지해야 합니다. 앞의 그림 5-5의 예들도 색상과 채도를 과장하고 변경한 것이지 명도는 그대로 유지되고 있음을 주목해야 합니다. 만약 명도가 변한다면 색들이 하나의 사물로 통합되지 않으므로 사실성이 크게 훼손되고 색의 부조화도 발생하기 쉽습니다.

 



- 채도 범위를 한정해 배색하려면 서로 다른 색상들의 채도를 판단할 수 있어야 합니다. 색을 많이 다루어 보지 않은 사람에게는 쉽지 않은 일이지요. 육안으로 채도를 판단하는 것은 감각적인 것이므로 경험을 쌓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습니다. 평소 색을 자주 관찰하고 적절한 조색 경험을 쌓을 필요가 있지요. 하지만 색이 익숙하지 않은 초보자라면 처음부터 너무 세밀하게 범위를 정하지 않아도 됩니다. 그림 6-21처럼 고채도(a), 중채도(b), 저채도(c) 정도로 크게 나누어 판단하고 대략적으로 범위를 정하는 것도 나쁘지 않습니다. 

 


- 하지만 중채도의 색들은 b처럼 다소 어정쩡한 느낌이 들 수 있지요. 따라서 채도 범위를 한정할 때 중채도 색보다는 가능하면 고채도나 저채도로 제한하는 것이 조화를 꾀하기에 수월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채도로 범위를 한정해 배색하고자 한다면, 그림 6-23의 a처럼 색상 범위를 좁혀 통일감을 강화하거나 b처럼 명도 변화를 분명히 해 명료함을 더하는 것이 도움이 됩니다. 
 
 - 색조 범위를 한정하고 그 안의 색들을 위주로 배색하는 것도 배색의 조화를 꾀하는 좋은 방법입니다. 이 색조통일 배색은 크게 보아 채도통일 배색에 속하지만, 색조통일 배색만의 독특한 성질이 있어 구분해서 설명하려고 합니다. 

 

- 우선 색조(tone)가 무엇인지를 정확히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림 6-26의 a는 명도가 높고 채도가 낮은 분홍색이고, b는 명도가 높고 채도가 낮은 파란색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보통 연한 분홍과 연한 파랑이라고 인식하지요. 높은 명도와 낮은 채도가 통합되어 '연하다' 같은 하나의 인상을 만들어내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우리는 색에서 연하다, 부드럽다, 차분하다, 칙칙하다, 중후하다 같은 인상을 느끼는데, 이처럼 색상과 상관없이 명도와 채도가 통합돼 만들어 내는 효과, 또는 인상을 색조라고 이해할 수 있습니다.

 

- 색상에 이름이 있고 명도에 단계가 있듯이 색조도 몇 개의 그룹으로 구분합니다. 여러 그룹으로 세세하게 나누기도 하지만, 그림 6-27처럼 단순하게 네 개의 그룹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a는 연한 색조(pale tone+light tone)로 명도가 높고 채도가 높지 않은 흰색이 많이 섞인 밝은색들입니다. b는 차분한 색조(soft tone+dull tone)로 중간 정도의 명도에 채도가 높지 않은 회색이 많이 섞인 차분한 색들입니다. c는 선명한 색조(strong tone+vivid tone)로 중간 정도의 명도에 채도가 높은 순색과 순색에 가까운 선명한 색들입니다. d는 중후한 색조(deep tone+dark tone)로 명도가 낮고 채도가 높지 않은 검은색이 많이 섞인 어두운 색들입니다.  
 

 

- 면적 자체는 색과 아무 상관이 없지만 색이 칠해진 면적 크기는 배색의 조화에 영향을 미칩니다. 그림 6-35의 a처럼 면적 변화는 조화로운 배색을 더욱 조화롭게 만들고, b처럼 면적의 확실한 우열은 배색의 부조화를 해소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면적의 우열이 확실하면 넓은 면적을 차지한 색상이 지배적인 색감으로 통합된 인상을 만들고, 좁은 면적의 색상은 변화를 만드는 상태가 되므로 배색이 조화롭게 되는 것입니다. 

 

먼저 칠해 놓은 색이 주변을 채색할수록 처음과는 다르게 보여 수정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런 일이 잦다면 채색 순서를 검토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림 7-6의 두 A는 조금 다른 색으로 보이지만 정확히 같은 색입니다. 바탕색이 달라 다르게 보이는 것이지요. 따라서 1을 옮겨 그린다고 할 때 2처럼 A를 먼저 칠하게 되면 정확한 색으로 칠하기 어렵습니다. 바탕색이 달라 정확한 색 판단이 어려우니까요. 아마도 실제보다 밝고, 채도는 높게 칠할 가능성이 큽니다. 하지만 바탕색을 먼저 칠한 후 A를 칠한다면 바탕색의 조건이 같아지므로 보다 정확히 칠할 수 있지요. 이처럼 바탕이 되는 넓은 면을 먼저 채색하고 작은 부분은 나중에 채색하는 것이 오류를 줄여 줍니다.  

 

    

 

- 그림 7-7을 예로 든다면 a, b, c, e보다 바탕이 되는 d를 먼저 칠하는 것이 좋습니다. 특히 색이 이질적인 c, f는 노랑-주황의 전체적인 색 분위기가 채색된 후에 채색해야 색 판단 오류를 피할 수 있습니다. 

- 단, 이런 방법이 모든 경우에 해당하는 것은 아닙니다. 주로 색을 가능한 정확히 옮겨 칠해야 하는 경우에 해당하지요. 그려 가면서 자유롭게 색을 선택하거나 변경할 수 있는 경우라면, 중심이 되는 것부터 칠하고 거기에 맞춰 배경을 칠하는 것이 더 좋을 수 있습니다.

 

- 팔레트 색은 그림 그릴 종이(또는 캔버스) 색과 같은 것이 좋습니다. 그래야 팔레트에서 느낀 색 그대로 그림에 칠해지니까요. 물감을 섞을 때 팔레트 색이 비쳐 올라오기 때문에 팔레트 색과 종이(또는 캔버스) 색이 다르면 색 판단에 착오가 생깁니다. 물론 대부분의 종이나 캔버스는 흰색에 가까우니 흰색 팔레트가 가장 무난합니다. 만약 항상 같은 색으로 바탕칠을 해놓고 그 위에 그리는 사람이라면 바탕칠 색과 같은 색 팔레트를 사용하는 것이 좋습니다. 바탕칠 색이 종종 바뀐다면 유리를 팔레트로 쓰고 그때그때 바탕칠 색과 유사한 색의 종이를 유리 밑에 까는 것도 방법입니다.

 

- 팔레트 위의 물감 위치는 색상환 순서에 맞추는 것이 좋습니다. 색들 간의 관계 파악이 쉬워져 조색은 물론 배색할 때도 도움이 되지요. 

- 물감은 번거롭더라도 조금씩 자주 짜서 쓰는 것이 좋습니다. 물감을 미리 동그랗고 두툼하게 짜 놓으면, 그림 7-24에서 보듯이 붓으로 물감을 찍어 내는 과정에서 붓에 묻어 있는 다른 색에 의해 남은 부분이 쉽게 오염됩니다.

 

- 굳이 많이 짜 놓고 싶다면 되도록 가늘고 길게 짜 놓고 한쪽 끝부터 사용합니다. 그러면 오염을 최소화할 수 있습니다. 팔레트 크기가 넉넉하다면 조금씩 여러 개로 나누어 짜 놓는 것도 좋습니다. 

 

- 그림 그리기 전에 내 공간, 즉 팔레트와 종이(또는 캔버스)가 있는 공간을 비추는 조명 색이 무엇인지 판단하는 습관이 필요합니다. 보통은 대상을 비추는 조명과 내 공간을 비추는 조명 색이 같지만 종종 다르기도 하니까요. 내 공간의 조명 색을 판단하는 이유는 조명이 불그스름하거나 푸르스름하면 자신의 의도나 기대와 다른 색감으로 그려지기 때문입니다. 그릴 때는 모르지만 나중에 정상적인 조명 아래에서 보면 왜곡된 색감에 당혹스럽습니다. 

 

- 대상을 비추는 조명 색이 무엇이든 내 공간을 비추는 조명은 백색광이어야 합니다. 백색광이어야 의도하고 기대한 그대로 채색됩니다. 하지만 부득이 불그스름하거나 푸르스름한 조명 아래에서 그려야 한다면, 색감 왜곡을 막기 위해 일종의 보정이 들어간 채색을 해야 합니다. 
  

 

 

 
그림, 색에 관한 모든 것
당신에게 색은 자유롭게 활용할 수 있는 유용한 표현 수단인가요? 아니면 부담스러운 골칫거리인가요? 색은 빛이 만들어 내는 물리적 현상이면서 동시에 우리 정신이 만들어 내는 심리적 현상입니다. 객관적 현상이면서 동시에 주관적 현상이기도 하지요. 색 현상은 매우 복잡해 보이고 신비롭기까지 합니다. 일반인은 물론 미술 분야의 전문가들도 색을 까다로운 문제로 인식합니다. 그래서일까요? 유독 색 감각과 관련해서는 선천적으로 ‘타고나는 것’이라고 믿는 사람들이 많고 그 믿음이 굳건해 보입니다. 정말로 색 감각은 타고나는 것일까요? 언제나 그렇듯 어떤 능력이 타고난 재능에만 기인한다고 느껴지는 이유는 그 능력의 원리나 방법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재능을 탓하고 싶다면 먼저 스스로에게 한번쯤 물어보세요. 나는 과연 색에 대하여 얼마나 알고 있는지. 열 개 남짓한 색 이름, 들어보기는 한 것 같은 ‘보색’ ‘색의 3요소’ ‘채도’ 같은 몇몇 용어들, 노란색이 포함되는지 아닌지 헷갈리는 삼원색의 종류, 확신도 없고 이유도 모르지만 이런 색과 저런 색이 어울리더라는 단편적인 경험…. 우리가 흔히 가진 대략 이 정도의 지식으로는 색이라는 복잡한 현상을 이해하고 활용하기 어렵습니다. 색을 잘 알지 못하니 잘 다루지 못하는 것이 당연한 것입니다. “색이 어려운 것은 제대로 배울 기회를 갖지 못해서입니다.” 아무리 둘러보아도 색에 대해 체계적으로 제대로 배울 수 있는 기회를 찾기는 어렵습니다. 전문적인 미술교육을 받더라도 다르지 않습니다. 색 사용능력을 제고하기 위한 실전적이고 체계적인 커리큘럼이 제공되기보다는 개인의 문제, 타고난 재능의 문제로 여기는 분위기가 지배적입니다. 운 좋게 색을 잘 아는 선생님을 만나면 어깨 너머로 몇 마디 얻어 듣는 게 전부지요. 그래서 화가, 일러스트레이터, 디자이너, 만화가 등 전문적인 미술교육을 받은 사람들도 색을 어려워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단편적인 지식과 약간의 경험에 의지해 그럭저럭 버티지만 색 사용은 언제나 부담스럽습니다. 색에 대해 체계적으로 잘 배우고 이해한다면 누구나 색을 유용하게 활용할 수 있습니다. 이 책에서는 그림 그리는 사람에게 필요한 색 지식을 빠짐없이 다뤘고, 의미 있는 지식이 되도록 체계적으로 설명했으며, 작품의 질 향상에 실질적 도움이 되도록 실전적 관점에서 서술했습니다. 이 책을 정독하면 색을 어떻게 관찰하고, 어떻게 혼색하며, 어떻게 표현하고, 어떻게 배색해야 하는지를 명확히 알게 될 것입니다. 더 이상 우중충하고 불쾌하게 변해가는 그림을 보며 좌절할 일도 없겠지요. 책을 다 읽은 독자들은 표현 효과를 높이고 시각적 즐거움을 배가하는 유용한 도구로 색을 자유롭게 활용하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저자
백남원
출판
연두m&b
출판일
2019.0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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