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자가 흐르는 이야기/Book2

[제이 셰티] 수도자처럼 생각하기 - 목적 있는 삶을 위한 11가지 기술

일루젼 2023. 1. 2. 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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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제이 셰티 / 이지연

원제 : Think like a monk
출판 : 다산초당 
출간 : 2021.06.29 


       

지난해(라고 쓰면서도 어색하다)까지만 해도 책을 읽으며 답을 얻는 느낌이었다.

그러나 최근에는, 답을 떠올리면 책이 따라오는 느낌이다. '그 생각이 맞아'라고 지지받는 느낌이라 기분이 묘하다.

 

한동안 고민하던 문제에 관해 나름의 결론을 내렸다. 그것이 보기에 따라 매우 위험해 보일 수 있는, 자칫 오만해 보일 수도 있는 결론이라는 것을 인지했지만 현재의 내게는 그것이 답이었다. 그리고 나는 그 답을 체험을 통해 시험해볼 때가 되었다고 느낀다.

 

<수도자처럼 생각하기>에는 낯선 개념들은 없었다. 하지만 '일상생활' 속에서 스스로를 감각하고, 내려놓고 집중하는 삶을 살 수 있도록 짜임새 있게 설명되어 있었다. 본격(?) 영성도서보다 친근하고 와닿는 일상적 예시들과 예제들이 사람들에게 큰 반향을 얻었던 게 아닐까 싶다. 또한 거의 80%의 분량을 '자신'을 탐구하고 인식하는 방식을 설명하는데 할애하고 있다는 점도 영향을 준 것 같다. 

 

그렇기에 이 책의 마지막 부분이 더 큰 울림이 있을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많은 가르침에서 전하는 '무조건적인 사랑'이 때때로 공허하게 들리는 것은, 그 메시지를 접하는 이가 자기 자신조차 사랑할 줄 모르는 상태일 때 전해지기 때문이리라. 저자는 '자신이 완전히 충족된 다음' 같은 건 없다고 경고하지만, 그와 동시에 '자기 자신을 남들을 대접하듯이' 귀하게 대해야 한다고도 조언한다. 그것이 적절한 균형을 이룰 때, 진정으로 타인이 또다른 자신이라는 가르침을 받아들일 수 있게 되리라 생각한다. (개인적으로는 그것 또한 개인의 기질에 따라 다른 뉘앙스가 되리라 생각하지만)

 

개개인의 기질을 4원소적으로 접근한 '바르나'적 설명이 좋았다. 각각의 성향과 대응방식이 곧바로 떠오르더라도, 자신에게 더 친숙하고 편안한 기질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지점이 시작점이 아닐까 한다. 그리고 나는,          이다.

 


   

 

- 연단에 오른 인물은 30대쯤으로 보이는 인도 남자였다. 그는 머리를 파르라니 깎고 짙은 황색 법복을 입고 있었다. 총명하고, 능변에, 카리스마가 있었다. 그는 '이타적 희생'의 원칙을 이야기했다. '나무를 심되 그늘을 바라지 말라'는 그의 말에 나는 낯선 전율이 온몸을 훑고 지나가는 것을 느꼈다.

 

-  2002년 티베트의 승려 욘게이 밍규르 린포체 Yongey Mingyur Rinpoche는 네팔카트만두 근처에서 출발해 위스콘신대학교 매디슨 캠퍼스까지 먼 길을 왔다. 그가 명상을 하는 동안 벌어지는 두뇌 활동을 연구진이 관찰할 수 있게 해 주기 위해서였다. 

 

- 명상한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혹은 두뇌 활동을 잠시 쉬려고 시도해본 사람이라면 보통 밀려드는 온갖 잡생각을 잠재우는 데 어느 정도 시간이 걸린다는 것을 알 것이다. 린포체 스님은 그런 준비 시간이 전혀 필요하지 않은 듯했다. 실제로 스님은 마치 스위치를 끄고 켜듯이 강력한 명상의 상태를 자유로이 드나드는 것처럼 보였다. 이날의 검사를 필두로 이후 10여 년간 스님의 뇌 활동을 촬영했는데, 마흔한 살인 스님의 뇌는 또래에 비해 노화의 징후를 적게 보였다. 연구진은 스님이 실제 나이보다 열 살은 더 젊은 사람의 뇌를 갖고 있다고 했다. 

 

- 하지만 리카르 스님만이 아니었다. 스님 스물한 명의 명상 수행 중에 뇌 활동을 촬영한 결과, 명상하지 않는 사람들보다 높은 수준의 감마파가 오랫동안 (심지어 수면 중에도) 지속되었다.

 

- 그레이트풀니스 gratefulness.org를 공동설립한 베네딕트회 수사 다비드 슈타인 들라스트 David Steindl-Rast는 이렇게 말했다. "전문가가 아니어도 끊임없이 '현재'를 살려고 의식적으로 노력하는 사람은 모두가 수도자다."

 

- 문화와 미디어는 성공과 업적의 모범 사례들을 보여주면서 이런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이런 일을 해야 한다고 온갖 이미지와 개념을 우리에게 주입한다. 그러나 명예, 돈, 매력, 섹스, 그 어느 것도 우리를 끝내 만족시킬 수 없다. 오히려 우리는 점점 더 많이 바랄 것이다. 이는 좌절, 환멸, 불만족, 불행, 탈진으로 이어지는 악순환의 고리로 이어진다.

 

- 나는 흔히 '원숭이 같은 마음' (monkey mind)이라고 부르는 것과 수도자의 마음을 자주 대비시킨다. 마음은 우리를 더 높은 곳으로 보낼 수도 있고, 끌어내릴 수도 있다. 요즘 사람들이 다들 과도하게 많은 생각을 하고, 오늘 할 일을 내일로 미루고, 불안을 느끼며 고생하는 것은 원숭이 같은 마음을 그대로 내버려 둔 결과다. 원숭이 같은 마음은 이 생각, 저 생각, 이 문제, 저 문제 계속 옮겨 다니기만 하고 아무것도 해결하지 못한다. 내가 원하는 게 무엇인지 그 뿌리를 파고들어 내가 성장할 수 있는 실천 가능한 대책을 세운다면, 우리도 수도자의 마음을 지닐 수 있다. 수도자의 마음은 우리를 혼돈과 잡념에서 구하고 명료성, 의미, 방향성을 찾을 수 있게 도와준다. 

 

- '수도자처럼 생각하기'를 수행하면 인생을 다른 방식으로 바라보고 접근할 수 있다. 기존 체제에 도전하고, 초연해지고, 재발견하고, 목적을 갖고, 초점을 맞추고, 절도 있게 살고, 봉사할 수 있게 한다. 수도자처럼 생각하기의 목표는 자존심, 질투, 욕정, 불안, 분노, 원망, 응어리에서 자유로운 삶이다. 수도자의 마음가짐을 장착하는 것은 가능할 뿐만 아니라 '필요한 일'이다. 우리에게는 다른 선택이 없다. 우리는 차분함과 고요함, 마음의 평화를 찾아야 한다. 

 

- "태어나는 순간부터 죽는 순간까지 우리와 함께하는 것은 내 호흡 뿐이기 때문입니다. 친구도, 가족도, 고향도 모두 바뀔 수 있지요. 나를 떠나지 않는 유일한 것은 나의 호흡입니다." 열 살밖에 되지 않은 승려는 이렇게 덧붙였다. "스트레스를 받으면 뭐가 바뀌나요? 호흡이 바뀝니다. 화가 나면 뭐가 바뀌나요? 호흡이 바뀝니다. 우리는 모든 감정을 호흡의 변화로 경험합니다. 호흡을 읽고 다스리는 법을 배우면 인생의 그 어떤 상황도 헤쳐나갈 수 있습니다." 

 

- 이 책에서 나는 수도자의 마음가짐을 받아들이는 세 단계를 차근차근 설명할 것이다. 첫째, 우리는 놓아줄 것이다. 우리를 붙들고 있는 외부의 영향력, 내적 장애물, 여러 두려움을 벗어던질 것이다. 이 단계를 성장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하는 청소 단계라고 생각해도 좋다. 둘째, 우리는 성장할 것이다. 여러분이 의도와 목적을 가지고 자신 있게 의사결정을 내릴 수 있도록 삶을 재편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우리는 베풀 것이다. 나 자신을 넘어 세상을 바라보고, 감사하는 마음을 나누고 확장하며, 더 깊은 인간관계를 맺을 것이다. 내가 가진 재능과 사랑을 타인과 나누고, 봉사가 주는 진정한 기쁨과 놀라운 이점을 발견할 것이다. 

 

- 그 과정에서 나는 아주 다른 세 가지 유형의 명상법을 소개할 것이다. 바로 호흡법, 떠올려보기, 만트라(소리 명상)다. 세 가지는 각각의 이점이 있는데, 간단히 구분해보면 호흡법은 몸을 위한 것, 즉 고요와 균형을 찾고 자신을 진정시키기 위한 것이다. 떠올려보기는 마음의 안정에 도움이 되는 것, 즉 과거를 치유하고 미래를 준비하기 위한 것이다. 만트라는 정신을 위한 것, 즉 가장 깊은 곳에 있는 자아 또는 우주와 연결되어 진정한 정화를 맛보기 위한 것이다. 

 

- 반드시 명상을 해야만 이 책이 도움이 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명상을 직접 해보면 내가 전하는 도구들이 더욱 날카로움을 발휘할 것이다. 감히 말하자면, 이 책 전체가 하나의 명상이다. 자신의 신념과 가치관, 의도, 자신을 바라보는 태도, 의사결정을 내리는 방법, 마음을 수련하는 방법, 사람을 선택해서 교류하는 방법을 성찰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깊은 자각을 얻는 것이 명상의 목적이요, 보상이다. 
  

- '수도자라면 이 문제를 어떻게 생각할까?' 
지금까지는 자기 자신에게 이렇게 물어본 적이 없을 것이다. 아마 비슷하게도 묻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이 책을 끝까지 읽고 난 후에는 이 질문을 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리라 기대한다.

 

- 데이루이스가 사용한 기법을 연극이나 영화계에서는 '매서드 연기'라고 한다. 배우가 자신이 연기하는 그 배역이 '되기 위해' 최대한 그 배역처럼 생활하는 기법이다. 정말 놀라운 기술이지만, ...

 

- 우리는 이렇게 '나는 대체 어떤 사람인가?'를 끝까지 제대로 생각해보지도 않고, 두 번 반사된 이미지를 이용해 인생의 여러 선택을 내린다. 쿨리는 이런 현상을 '거울자아 Looking-Glass Self'라고 불렀다.    

 

- 우리는 나 자신에 대한 '지각의 지각' 속에서 산다. 그렇게 '진짜 나'를 잃어버렸다. 다른 누군가의 꿈에 등장하는 왜곡된 이미지를 좇고 있는데, 내가 누구인지, 무엇이 나를 행복하게 하는지 대체 무슨 수로 알 수 있을까? 

 

- 여러분도 '진짜' 내 삶을 살려고 노력하다 보면, 일부 인간관계가 위험에 처할 것이다. 그 사람들을 잃는 게 감수할 만한 위험이기는 하지만, 그들을 계속 내 삶에 남겨둘 방법을 찾아보는 것은 충분히 노력해볼 만한 가치가 있다. 

 

- 우리는 수도자들이 하는 것처럼 '잡념을 비우는 것'에서 이 여정을 시작할 것이다. 먼저 나를 지금의 모습으로 만든 여러 가지 외력들, 즉 나를 내 가치관으로부터 한눈팔게 만든 외부의 여러 힘을 살펴볼 것이다. 그런 다음 현재 내 삶을 결정하고 있는 여러 가치를 찬찬히 점검하고, 그 가치관이 '내가 되고 싶은 사람'이나 '내가 살고 싶은 방식'과 일치하는지 살펴보자.

 

- 세상의 소음과 내 목소리의 차이를 인식했다. '남들'이라는 먼지를 걷어내고 나의 가장 깊은 곳에 있는 신념을 볼 수 있었다. 

 

- 그렇다면 현대인들은 대체 어떻게 해야 '자각'을 쌓을 수 있을 만큼의 공간, 정적, 고요를 확보할까? 우리는 조용히 앉아서 자신의 가치관을 생각하지 않는다. 우리는 대개 혼자서 가만히 생각만 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정적을 피하고, 머릿속을 채우고, 계속 움직이려고 하는 게 우리의 성향이다. 버지니아대학교와 하버드대학교 연구팀의 조사 결과가 있다. 연구팀은 참가자들에게 6~15분 정도 방 안에서 스마트폰, 필기도구, 읽을거리 없이 혼자 시간을 보내라고 했다. 그런 다음 음악을 듣거나 전화기 사용을 허락했다. 참가자들은 전화기와 음악을 선호했을 뿐만 아니라 다수의 참가자가 가만히 생각만 하느니 '전기 충격기로 내 몸을 지지는' 쪽을 택했다. 매일매일 인맥 형성 모임에 가서 사람들 앞에서 내 직업이 무엇인지 말해야 한다면, 그렇게 한마디로 압축해 놓은 '나'를 벗어나기가 어렵다. 매일 저녁 <진짜 주부들 Real Housewives>(미국 Bravo 채널에서 방영되는 리얼리티 프로그램 - 옮긴이)을 시청한다면 친구의 얼굴에 와인을 끼얹는 것을 일상적인 일로 생각할 것이다. 삶을 빼곡히 채워서 나 자신을 성찰할 여지를 남기지 않으면, 그처럼 우리의 집중을 흩뜨리는 것들이 어느새 내 가치관이 된다.

 

- 자신을 관찰하면 내 삶에 자연스럽게 스며든 가치관을 알 수 있다. 그다음 단계는 내 가치관이 무엇이고, 내가 내리는 선택들이 그 가치관과 일치하는지 판단하는 일이다. 수도자들의 가치관을 잘 생각해보면 자신의 가치관을 확인하는 데 도움이 될 수도 있다. 아슈람의 스승님들은 고귀한 가치와 저급한 가치가 있다고 했다. 고귀한 가치는 우리를 행복, 만족, 의미가 있는 곳으로 끌어올린다. 저급한 가치는 우리를 불안과 우울, 고통이 있는 곳으로 끌어내린다. 

 

- 저급한 여섯 가지 가치는 탐욕, 욕정, 분노, 자존심, 망상, 질투다. 저급한 가치가 위험한 이유는 언제든지 기회만 주면 우리를 집어삼킬 수 있기 때문이다. 다행스러운 부분은 종류가 몇 가지 안 된다는 점이다. 나의 스승 가우랑가 다스가 자주 말했던 것처럼, 실망할 일보다는 기뻐할 일이 더 많은 법이다. 

 

- 우리는 이 악순환과 선순환에 관해 수업 시간에 이야기를 나누었다. 남을 비난하면 내 안의 나쁜 점까지 반드시 알게 된다. 그러나 남의 좋은 점을 찾다 보면 내 안의 좋은 점까지 보이기 시작한다.

 

- 아슈람에서 돌아온 뒤로 나는 가십에 상당히 민감해졌다. 나는 이미 긍정적인 에너지 중심의 대화에 익숙해져 있었다. 다시 세상에 돌아왔을 때 처음에 나는 어색할 만큼 말이 없었다. 혼자 도덕군자 행세를 하고 싶지는 않았지만, 거기에 끼고 싶지도 않았다. 부처님은 말씀하셨다. "남들이 하는 것이나 못 하는 것에 신경 쓰지 말고 내가 하는 것이나 못 하는 것에 관심을 가져라." 나는 금세 "글쎄, 난 잘 모르겠는데..." "난 아무 얘기도 못 들었어"라고 말하는 법을 배웠다. 그런 다음 긍정적인 내용으로 대화 주제를 옮겼다. "맥스한테 계속 같이 일하자고 했다는 얘기 들었어? 정말 잘됐어."

 

- 가십이 가치 있는 경우도 있다. 무엇이 용인되는 행동인지 사회를 규제하는 데 도움을 주기도 하고, 누군가의 행동에 대한 나의 판단, 즉 나의 가치관에 타인도 동의하는지 알아볼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런 궁금증은 더 친절한 방법으로 해결할 수도 있다. 오히려 우리는 남을 깎아내리며 우월한 기분을 느끼거나 집단 내에서 내 지위를 강화하려는 수단으로 가십을 주로 이용한다. 내 친구와 동료 중의 일부는 나와 가십을 나누는 것을 아예 그만두었다. 대신에 우리는 진짜 대화를 나누었다. 내가 가십을 나누지 않으니 자신들에 대해서도 다른 곳에서 떠들어대지 않을 것임을 깨닫고 나를 더 신뢰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나를 그냥 지루한 사람이라고 생각하게 된 사람들에 대해서는 내가 나쁜 말을 할 이유가 전혀 없었다. 
 

- 가우랑가 다스는 짧은 비유를 통해 이 같은 조언을 되풀이해서 들려주었고, 우리는 그 말을 되새기며 다른 사람에 대해 부정적인 생각을 품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나와 다른 병이 있다고 남을 비난하지 마라.' '누구도 완벽하기를 기대하지 마라.' '자신이 완벽하다고 생각하지 마라.'

- 우리는 부정적 행동을 비난하는 대신에 그 감정을 누그러뜨리거나 심지어 긍정적인 행동으로 바꾸려고 노력한다. 불평꾼이 해결책을 찾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고 나면, 내가 굳이 해결책을 제공할 필요는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명령꾼이 "당신은 나한테만 너무 바빠"라고 말하면 "당신도 좋고 나도 좋은 시간을 찾아봐야 하지 않을까?"라고 말하면 된다.

 

- 아슈람에서 우리는 정화의 열망이 워낙 높아서 금욕을 두고 경쟁하기도 했다('내가 저 스님보다 적게 먹었어' '내가 명상을 제일 오래 했어'). 하지만 명상 끝에 승려가 마지막으로 생각하는 것이 '나 좀 봐! 내가 제일 오래 했어!'에 불과하다면 스스로 비웃을 일이다. 결론이 고작 그거라면 명상을 대체 왜 한단 말인가? 해나 워드 Hannah Ward와 제니퍼 와일드 Jennifer Wild가 편집한 명언집 <수도자의 길 The Monastic Way>에서 크리스틴 블라디미로프 Christine Vladimiroff 수녀는 이렇게 말한다. "수도원에서 허용되는 유일한 경쟁은 사랑과 존경을 남보다 더 많이 보여주는 것뿐이다."

 

- 질투의 심술궂은 사촌 격으로 '샤덴프로이데 Schadenfreude'라는 것이 있다. '타인의 고통에서 기쁨을 느끼는 것'을 뜻하는 말이다. 타인의 실패를 보며 나의 기쁨을 끌어낸다면 타인의 불완전과 불운이라는 흔들리는 토대 위에 내 집과 내 자존심을 세우는 셈이다. 이는 안정적인 토대가 될 수 없다. 실제로는 남을 비난할 때가 바로 우리 자신에게 주목해야 할 순간이다. 그것은 꿈쩍도 못 하는 내 마음이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고 스스로 속이려 드는 신호기 때문이다. 어제는 내가 당신보다 사과를 많이 팔았고 오늘은 당신이 나보다 사과를 많이 팔았다고 한다면, 과연 내가 사과 장수로서 발전 중인지 전혀 알 길이 없다. 주변 사람과 더 많은 비교를 통해 자신을 규정할수록 우리는 점점 더 길을 잃게 된다. 

 

- 어쩌면 우리는 영원히 부러움, 질투, 탐욕, 욕정, 분노, 자존심, 망상을 몰아내지 못할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해서 시도조차 하지 말아야 하는 것은 아니다. 산스크리트어로 '아나르타 anartha'는 일반적으로 '아무도 원하지 않는 것'을 뜻한다. '아나르타 니브리티 anartha-nivritti'는 원하지 않는 것을 제거한다는 뜻이다. 우리는 무엇이든 원하는 대로 말할 수 있는 게 자유라고 생각한다. 내 모든 욕망을 추구할 수 있는 게 자유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진정한 자유는 원하지 않는 것을 놓아주는 것이다. 원하지 않는 결말로 이끄는 방종한 욕망을 놓아주는 것이다.   

 

- 놓아준다는 것은 부정적인 생각, 감정, 관념을 몽땅 다 지워버린다는 뜻은 아니다. 사실 부정적인 생각은 언제나 떠오를 것이다. 중요한 것은 부정적인 생각으로 우리가 무엇을 하느냐다. 이웃집 개가 짖으면 짜증이 난다. 개 짖는 소리는 언제나 방해가 될 것이다. 문제는 그 반응을 내가 어떻게 인도할 것인가 하는 점이다. 진정한 자유로 가는 열쇠는 '자각'이다. 나 자신의 부정적 태도를 평가할 때는 작은 행동 하나에도 반드시 결과가 따른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라.  

 

- "시의적절하게 이야기한다. 진실을 이야기한다. 애정을 가지고 이야기한다. 도움이 되게 이야기한다. 선의로 이야기한다." 
기억하라. 하고 싶은 말을 언제든지 내 마음대로 하는 것이 자유가 아니다. 진정한 자유란 그런 말을 할 '필요성을 느끼지 않는 것'이다.

 

- 부정적인 말을 줄여보면 실은 할 말이 그리 많지 않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심지어 말을 안 해야 할 것처럼 느껴질 수도 있다. 어색한 침묵을 좋아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하지만 부정적 성향에서 자신을 놓아줄 수 있다면 침묵도 기꺼이 해볼 만한 가치가 있다. 다른 사람이 성실하지 않다고 비난한다고 내가 더 열심히 일하게 되는 것은 아니다. 나의 결혼과 남의 결혼을 비교한다고 내 결혼생활이 더 좋아지는 것도 아니다. 깊이 생각해서 나온 생산적인 비교가 아니라면 말이다. 평가질은 착각을 만들어낸다. '남을 평가할 만큼 내 눈에 뭔가가 잘 보인다면 나는 저 사람보다 훌륭한 게 틀림없어' 혹은 '저 사람은 망치고 있으니까 내가 앞서가고 있는 게 틀림없어'라는 착각 말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우리가 발전하는 데 필요한 것은 주의 깊고 현명한 관찰이다. 

 

- 멈춘다는 것은 단순히 부정적 본능을 회피한다는 뜻이 아니다. 멈춘다는 것은 오히려 부정적 본능에 더 가까이 다가가는 일이다. 

 

- 부정적 성향을 생산적으로 바꾸는 외에, 부정적 성향을 의도적으로 긍정적인 성향으로 바꾸는 것도 가능하다. 한 가지 방법은 앞서 말한 것처럼 질투와 같은 부정적 성향을 내가 원하는 것을 향해 나아가는 길잡이로 사용하는 것이다. 아니면 완전히 새로운 감정으로 바꿀 수도 있다. 영어에서 '공감 empathy'이나 '연민 compassion'은 타인의 고통을 느낄 수 있는 능력을 나타내는 말이다. 하지만 영어에는 대리만족처럼 남을 위한 기쁨을 표현하는 말은 없다. 어쩌면 이는 우리가 이 부분을 연구해야 한다는 신호일 수도 있다. '무디타 Mudita'는 타인의 행운에 대해 같은 마음으로, 혹은 사심 없이 기쁨을 느끼라는 원칙이다. 

 

- 라다나스 스와미 Radhanath Swami는 나의 영적 스승으로 <집으로 가는 길 The Journey Home>을 비롯한 여러 권의 책을 썼다. 그에게 이렇게 부정적 성향으로 가득한 세상에서 평화를 유지하며 긍정적 힘이 얻는 방법을 물었더니 이렇게 말했다. "우리 주위에는 독이 되는 것들이 만연합니다. 주위 환경에도, 정치 상황에도 있지만, 그 근원은 사람의 마음에 있습니다. 내 마음속 생태계를 청소하고 타인도 그렇게 하도록 격려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그저 환경을 오염시키는 도구로 전락할 겁니다. 그러나 내 가슴속에 순수함을 만들어낸다면, 주변 세상이 한층 더 맑아질 겁니다."

 

- 내가 관심이 있으면서 경쟁심도 느끼는 사람 다섯 명을 꼽아라. 각각의 사람에 대해 그 사람이 이룬 성취, 그가 나보다 잘하는 것, 그 사람이 잘 풀린 일 등 내가 그 사람을 부러워하는 이유를 하나 이상 찾아보라. 그 사람의 성취 때문에 내가 조금이라도 못난 사람이 될 이유가 있는가? 이번에는 그게 그 친구에게 어떤 도움이 되었는지 생각해 보라. 그 성취로 그 친구가 얻은 좋은 것들을 모두 떠올려보라. 그것들이 결국 내 것이 되지 않는다고 해도 할 수만 있다면 친구에게서 그것들을 빼앗고 싶은가? 만약에 그렇다면 당신은 질투 때문에 기쁨을 도둑맞고 있다. 친구가 이룬 게 무엇이든, 질투가 당신을 더 많이 파괴하고 있다. 질투를 다른 것으로 바꾸는 데 에너지를 사용하라.

 

- 용서는 쌍방향으로 흘러야 한다. 완벽한 사람은 아무도 없다. 내가 잘못한 게 전혀 없는 상황도 있겠지만, 양쪽에 실수가 있는 경우도 있다. 나도 고통을 유발하고 상대도 나에게 고통을 유발한다면, 두 사람의 심장이 꼬여 불편한 매듭이 생긴 것과 같다. 내가 용서하면 나의 고통은 상대의 고통과 분리되기 시작하고, 나는 감정적으로 치유되기 시작한다. 서로 동시에 용서를 구한다면 함께 매듭을 풀 수 있다. 하지만 이는 쉽지 않은 일이다. 상대의 잘못을 찾아내 용서하는 편이 훨씬 더 마음이 편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내가 내 인생에 초래한 것들에 대해 잘못을 인정하고 책임을 지는 데 익숙하지 않다.  

 

- 우리가 종종 과거에 한 일이 부끄럽고 죄책감이 드는 것은 그 행동이 이제는 나의 가치관을 반영하지 않기 때문이다. 과거의 나를 돌아보면 당시의 의사결정을 이해할 수 없다. 사실 이는 좋은 소식이다. 과거가 괴롭다는 사실은 우리가 그만큼 발전했다는 뜻이다. 당시에도 우리는 최선을 다했지만 지금은 그때보다 더 잘할 수 있다. 발전하는 것보다 더 좋은 게 뭐가 있을까? 

 

- 초드론의 분노와 원망은 죽어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이별의 부정적인 측면을 더 확산시키고 있었다. 초드론은 "돌멩이가 아니라 강이 되겠다”라고 마음먹고 나서, 남편을 용서하고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갈 수 있었다. 초드론은 전남편을 자신의 가장 큰 스승 중 한 명이라 부른다. 

 

- "세상에는 부정적 성향이 가득합니다. 저는 사람들이 저를 보면서 '기분 좋아. 오늘은 다른 사람도 기분 좋게 웃어줘야지'라고 생각하기를 바랍니다." 수도자들이 즐거움을 느끼는 것도 이런 맥락이다. 우리는 장난도 잘 치고 쉽게 웃음을 터뜨린다. 입문한 지 얼마 안 된 승려는 스스로를 너무 진지하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나도 그랬다). 그러면 선배 승려들이 눈을 반짝이며 이렇게 말했다. "한결같아야 해요. 첫날에 에너지를 다 써버리지 말아요."

 

- 우리의 생각과 말을 백 퍼센트 빛나고 긍정적인 것들로만 제한할 필요는 없다. 그러나 부정적 성향은 뿌리까지 파고들어 나나 주변 사람들 속에 있는 그 근원을 이해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그리고 부정적 성향이 흡수하는 에너지를 잘 관리하기 위해 이를 항상 염두에 두고 의식해야 한다. 우리는 인식과 용서를 통해 놓아주기 시작한다. 우리는 알아채고, 멈추고, 바꾼다. 관찰하고, 성찰하고, 내 삶에 부정적인 것들을 대체할 새로운 행동을 개발한다. 수양을 통해 더없는 행복에 이르도록 늘 분투한다. 타인의 불운을 향한 호기심을 접고, 타인의 성공에서 기쁨을 느끼면 치유가 시작된다. 타인을 바라보는 시간을 줄이고 나 자신에게 집중하는 시간을 늘려라.

 

-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부정적 성향은 종종 두려움에서 발생한다. 다음 장에서는 두려움 자체를 탐구할 것이다. 그리고 두려움이 어떻게 우리가 가는 길에 방해가 되는지, 어떻게 하면 두려움을 삶의 생산적 일부로 만들 수 있을지 알아볼 것이다. 

 

- 두려움과 대화를 나누는 것은 두려움을 나와 분리하고 두려움은 나 자신이 아니라 내가 경험하는 무언가라는 사실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부정적인 기운을 내뿜는 사람을 만났을 때 우리는 그 기운을 느끼지만 그 기운이 나 자신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내 감정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감정은 내가 느끼는 무언가일 뿐, 나 자신이 아니다. '나는 화났다'가 아니라 '나는 화를 느낀다'로 관점을 옮겨가도록 노력하라. 나는 슬픔을 느낀다. 나는 두려움을 느낀다. 이는 간단하지만 아주 깊은 변화다. 감정을 제자리로 돌려놓는 일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생각하면 우리의 첫 반응을 진정시킬 수 있고, 아무런 판단 없이 두려움과 그 두려움을 둘러싼 상황을 점검할 여유가 생긴다. 

 

- 두려움의 근원을 추적해보면 두려움이 집착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무언가를 소유하고 통제하고 싶은 욕구말이다. 우리는 자신에 대해 가지고 있는 생각, 나를 규정한다고 생각하는 생활양식이나 물질적 소유물, 실제로는 아니라는 것을 알면서도 내가 원하는 관계 등에 매달린다. 이는 '원숭이 같은 마음'이 작용하고 있다는 증거다. '수도자의 마음'은 초연해지기를 실천한다. 우리는 내 집에서 내 가족에 이르기까지 모든 게 잠깐 빌려온 것임을 깨닫는다. 

 

- 일시적인 것들에 매달리면 그것들이 나보다 큰 힘을 갖게 되고 고통과 두려움의 원천이 된다. 그러나 삶의 모든 게 일시적임을 '받아들이면' 잠시라도 그것들을 빌릴 수 있는 행운에 감사함을 느낄 수 있다. 가장 부유하고 힘 있는 사람들에게 속한 가장 영구적인 소유물도 사실은 그들의 것이 아니다. 나머지 모든 사람도 마찬가지다. 많은 사람이 그렇게 영구적이지 않다는 사실에서 커다란 두려움을 느낀다. 그러나 내가 아슈람에서 배웠던 것처럼 우리는 두려움을 어마어마한 자유로움으로 바꿀 수 있다. 

 

- 인도의 승려 산티데바 Santideva의 말을 빌리면, "외부의 사건을 모두 통제하는 것은 가능하지 않다. 그러나 간단히 내 마음을 통제한다면 다른 것들을 통제할 필요가 있겠는가?" 이게 바로 초연해지기다. 수도자의 마음을 가지고 조금 떨어진 곳에서 내 반응을 관찰하면서 분명한 균형 감각을 가지고 결정을 내리는 것 말이다. 

 

- 초연해지기에 대해 흔한 오해가 있다. 사람들은 종종 초연해지기를 무관심과 동일시한다. 이들은 사람이나 사물, 경험을 일시적인 것으로 생각하거나 초연하게 여기면 삶을 즐길 수 있는 능력이 줄어들 거라 생각한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고급 자동차를 빌려서 운전한다고 생각해 보라. 그게 내 것이라고 말하겠는가? 당연히 아니다. 당신은 그 차를 일주일만 가질 수 있지만, 어떤 면에서는 바로 그래서 그 차를 더 많이 즐길 수 있다. 

 

- 초연해지기는 두려움을 최소화하는 최고의 방법이다. 부모님을 실망시키는 것에 대한 나의 불안을 확인하고 나니, 나는 그 불안에서 초연해질 수 있었다. 내 인생은 내가 책임져야 한다는 사실도 깨달았다. 부모님은 내 결정에 실망하거나 화가 날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그것은 내가 결정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내 가치관에 따라 의사결정을 내리는 것뿐이다. 

 

- 다행히도 우리에게는 공황 반응을 단절시킬 수 있는, 간단하면서도 강력한 도구가 늘 함께한다. 바로 호흡이다.

 

- 두려움은 온몸으로 나타나고, 이런 신체 신호는 곧 두려움이 엄습할 거라는 첫 번째 신호다. 우리가 공황상태에 빠지거나 그 자리에서 얼어붙는 것은 몸과 마음의 연결이 끊어지기 때문이다. 몸이 고도의 경계 태세에 들어가면서 정신적 과정보다 훨씬 앞서 나가버리거나 아니면 마음은 마구 달려 나가는데 몸이 서서히 멈춰버리는 현상이다. 승려일 때 나는 몸과 마음을 재정비하고 두려움을 중지시키는 데 도움이 되는 간단한 호흡법을 배웠다. 

 

- 우리는 일이 다 지나간 후에야 기념하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실제로 난관을 겪고 있을 때는 스스로 '이게 결과적으로는 좋은 일이 될 수도 있어!'라고 말하기가 쉽지 않다. 그러나 백미러를 보며 내가 겪은 힘든 시기에 감사하는 마음을 갖도록 계속해서 노력한다면 우리 안에 프로그래밍된 것을 바꿀 수 있다. 그러면 고통과 감사 사이의 간격은 점점 더 짧아질 것이고, 힘든 시기에 느끼는 두려움도 점점 작아질 것이다. 

 

- 공황상태나 그 자리에서 얼어붙는 현상은 호흡법이나 새로운 시각을 장착하는 것으로 해결할 수 있다. 하지만 이는 단기적인 두려움에 대한 반응이다. 두려움으로부터 시선을 돌리기 위해 우리가 사용하는 장기적인 전략 두 가지, 즉 '묻어버리기'와 '도망치기'는 통제하기가 훨씬 더 어렵다.   

 

- 두려움을 인정하는 과정을 지나, 내가 두려움에 대처하는 패턴을 관찰하고, 그 패턴을 바꾸는 것은 두려움을 보는 관점을 다시 프로그래밍하는 데 도움이 된다. 두려움을 본래 부정적인 것에서 중립적인 신호로, 심지어 어떤 기회를 알려주는 지표로 볼 수 있게 된다. 두려움을 재분류하고 나면 가려져 있던 연기를 뚫고 진짜 스토리를 볼 수 있다. 그렇게 발견하는 깊고 의미 있는 진실은 우리에게 새로운 사실을 알려주고 새로운 능력을 부여한다. 

 

- 두려움은 동기를 제공한다. 때로는 내가 원하는 것을 향해 나아갈 동기를 주지만, 조심하지 않는다면 '안전'이라는 미명하에 두려움이 내 한계로 작용할 수도 있다.

 

-  "저기 나무 아래 앉아 계시는 분 보이지요? 경전에 나오는 구절을 모두 외울 수 있는 분입니다." 
내가 감탄하며 말했다. "저도 그랬으면 좋겠네요."
스님은 걸음을 멈추더니 나를 돌아보며 물었다. "할 수 있기를 바라시는 겁니까, 아니면 할 방법을 배우고 싶으신 겁니까?"

- "본인의 동기가 무엇인지 생각해 보세요. 경전을 모두 외는 것이 인상적인 일이라서 외고 싶으신 겁니까, 아니면 경전을 공부한 경험을 갖고 싶으신 겁니까? 전자의 경우라면 오로지 결과를 바라시는 겁니다. 후자라면 그 과정에서 뭘 배울 수 있을지 호기심을 가진 것이겠지요." 
나에게는 새로운 개념이었다. 나는 일순간 멍해졌다. 결과를 바라는 게 나에게는 늘 합리적인 일이었다. 그런데 스님은 그 결과에 이르는 데 필요한 과정을 왜 겪고 싶은지 묻고 있었다.

 

- 힌두교 철학자 바크티비노다 타쿠라 Bhaktivinoda Thakura는 네 가지 근본적 동기를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1. 두려움 : 병, 빈곤, 지옥에 대한 두려움 혹은 죽음에 대한 두려움에 휘둘리는 것
2. 욕망 : 성공이나 부, 기쁨을 통해 개인적 만족을 추구하는 것
3. 의무 : 감사, 책임, 옳은 일을 하고 싶은 욕구가 동기가 되는 것
4. 사랑 : 타인에 대한 관심과 그들을 돕고 싶은 충동이 시키는 것

 

- 모든 의도의 뿌리는 두려움, 욕망, 의무, 사랑이다. 산스크리트어로 '의도'는 '상칼파 sankalpa'라고 한다. 나는 상칼파를 누군가의 가슴과 머리에서 형성된 어떤 이유, 목표를 위해 분투하는 이유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동기라는 뿌리에서 의도를 개발해 추진력으로 삼는다. 의도란, 목적을 갖고 행동하고 내가 하는 일이 의미 있다고 느끼기 위해서 '나는 이런 사람이 되겠어'라고 계획한 내용이다. 

 

- 의도적으로 살려면 '내가 원하는 것의 이면에 있는 가장 깊은 이유'를 파고들어야 한다. 그러려면 잠시 멈춰서 내가 '왜' 그것을 원하고, 내가 누구이며 그걸 얻으려면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하고, 그런 사람이 되는 게 과연 나에게 호소력을 갖는 일인지 생각해야 한다. 사람들은 대부분 답을 먼저 찾는 데 익숙하다. 수도자들은 질문에 초점을 맞춘다. 내가 가진 두려움에 가까워지려고 애쓸 당시 나는 '내가 두려워하는 게 무엇인가?'를 묻고 또 물었다. 욕망의 뿌리를 찾고자 할 때도 '왜?'라는 질문으로 시작하면 된다. 

 

- 당신은 왜 전 세계를 항해하고 싶은가?
'재미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여러 명소에 가볼 수 있고, 내가 훌륭한 항해사라는 점을 나 자신에게 증명할 수 있을 것이다.'
이 경우에는 당신 자신을 만족시키는 것이 의도이므로 당신의 동기는 '욕망'이다.

- 그런데 이 질문의 답이 다음과 같다면 어떨까?
'전 세계를 항해하는 것은 아버지의 오랜 꿈이었다. 아버지를 위해 그 꿈을 이루고 싶다.'
이 경우에서 의도는 당신의 아버지를 기리는 것이고, 동기는 '의무와 사랑'이다.

- '나는 자유로워지고 싶어서 전 세계를 항해하고 싶다. 나는 누구에게도 책임을 질 필요가 없을 것이다. 모든 책임을 내려놓고 떠날 수 있다.'
이 경우 의도는 탈출이고, 동기는 '두려움'이다. 이제 더 흔한 바람을 살펴보자.

 

- 부자가 좋아서 부자가 되고 싶은 것에는 아무 문제없다. 하지만 이는 물질적 만족이라는 카테고리에 속하기에 절대로 내면의 만족을 주지 않는다. 그런데도 물질적 안락함이 우리가 삶에서 바라는 것 중 일부라는 사실은 결코 부정할 수 없다. 쉽게 무시하지 말고 이 목표의 뿌리가 무엇일지 생각해 보자.

 

- 당신이 바라는 결과는 부자가 되는 것이다. 왜인가? 
'다시는 돈 걱정을 하고 싶지 않다.'

 

당신은 왜 돈을 걱정하는가?
'형편이 어려워 내가 꿈꾸는 휴가를 가지 못한다. '

 

당신은 왜 그런 휴가를 원하는가?
'소셜 미디어에서 다른 사람들이 근사한 곳으로 여행 가는 것을 봤다. 그들은 할 수 있는데 나는 왜 안 되는가?'

 

당신은 왜 남들이 원하는 것을 원하는가?
'그 사람들은 내 무료한 주말보다 훨씬 즐겁게 지내고 있다.'

 

아하! 이제 우리는 당신이 원하는 것의 뿌리에 도달했다. 당신은 주말이 만족스럽지 않다. 뭐가 빠져 있는가?

'나는 내 삶이 좀 더 신났으면 좋겠다. 좀 더 모험이 넘치고 짜릿하길 바란다.' 

 

- 좋다. 당신의 의도는 삶을 더 신나게 만드는 것이다. 이게 '나는 돈을 원한다'와 얼마나 다른지 한번 보라. 여전히 당신의 의도는 개인적 만족이라는 욕망이지만, 이제는 새롭게 두 가지를 알게 되었다. 첫째, 돈을 쓰지 않아도 지금 당장 당신의 삶에 모험을 추가할 방법은 있다. 둘째, 이제 당신은 그게 당신이 열심히 노력하고 싶은 사항인지 명확한 이해를 바탕으로 판단할 수 있다.

 

- 누가 내 스승님을 찾아가서 "나는 그냥 부자가 되고 싶습니다"라고 말한다면 스승님은 이렇게 물을 것이다. "봉사하고 싶어서입니까?" 스승님이 그렇게 묻는 이유는 욕망의 뿌리를 찾기 위해서다. 만약 이 사람이 "아니요. 좋은 집에 살고, 여행을 하고, 원하는 건 무엇이든 사고 싶습니다"라고 말한다면, 그의 의도는 자신이 즐길 수 있는 경제적 자유를 갖는 것이다. 그러면 스승님은 이렇게 말할 것이다. "좋습니다. 자신에게 정직한 것은 좋은 일입니다. 계속하세요. 부자가 되세요. 그래도 결국 봉사하게 될 겁니다. 5년, 10년이 걸릴 수도 있지만 똑같은 답에 이르게 될 겁니다." 수도자들은 이 남자가 큰돈을 번다고 한들 만족할 수 없을 것이고 계속해서 의미를 찾는다면 답은 언제나 봉사가 될 거라고 믿는다. 

 

- 당신의 의도에 솔직하라. 바라는 것은 물질적 성공뿐이면서 스스로 자신의 행동이 봉사에서 나온 것인 척하는 게 최악이다. 이유를 따라갈 때는 계속해서 파고들어라. 한 번 대답할 때마다 더 깊은 질문을 할 수 있다. 때로는 하루쯤 심지어 일주일쯤 질문을 마음 한구석에 담아두는 것도 도움이 된다. 당신이 궁극적으로 찾는 것은 내면의 감정(행복, 안정감, 자신감 등) 임을 발견할 것이다. 혹은 당신의 행동이 사실은 어떤 긍정적 감정이 아니라 질투에서 나온 것임을 발견할지도 모른다. 이는 당신이 뭔가 채워야 할 욕구가 있다는 훌륭한 경고다. 그렇게 발견한 경고에 호기심을 가져라. 나는 왜 질투를 느끼는가? (모험을 추가하는 것처럼) 지금 당장 노력할 수 있는 목표가 있는가? 이렇게 하다 보면 당신이 원하는 외적인 것도 더 많이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아직도 그 외적인 것이 중요하다면 말이다.

 

- 빠르게 성공하지 못하거나 영영 성공하지 못한다고 해도, 노력 그 자체만으로 만족감을 느끼겠는가? 나에게 왜 경전을 모두 외고 싶냐고 물었던 스님은 다른 스님의 초인 같은 능력에 매혹되어 괜한 허영심에 경전을 외기를 바라지 않았다. 스님은 내가 그 작업 자체에 관심이 있는지 알고 싶어 했다. 그런 삶을 살고 싶은지, 그런 사람이 되고 싶은지, 경전을 공부하는 과정에서 내가 찾게 될 의미에 관심이 있는지 말이다. 중요한 것은 과정이지 결과가 아니었다. 

 

- '광야의 교부들 Desert Fathers'은 중동 사막의 은둔처에 살던 초기 기독교 수도사들이다. 수도사들은 이렇게 말했다.
"발전이 없는 이유는 자신이 얼마나 할 수 있는지 모르기 때문이다. 시작한 일에 흥미를 잃고, 노력도 하지 않고 잘하기를 바란다."

 

- 진지한 관심이 없으면 그 일을 추구하는 과정에 모든 것을 쏟아부을 수 없다. 제대로 된 이유가 없다면 제아무리 목표를 달성하고, 원했던 것을 모두 얻고, 누구의 기준으로 보나 성공했다고 하더라도 여전히 길을 잃고 단절된 기분이 들 것이다. 반면에 하루하루 과정을 사랑한다면 깊이와 진정성을 가지고 세상을 더 좋은 곳으로 만들겠다는 욕망으로 일을 추진할 것이다. 어느 쪽을 택하든 똑같이 성공할 수도 있겠으나, 의도에 따른 것이라면 기쁜 마음이 들 것이다. 

 

- 누군가 일하는 모습을 일주일 동안 그림자처럼 따라다녀 보면 그 사람에게 힘든 부분이 무엇인지, 그게 나도 감수하고 싶은 부분인지 어느 정도감을 잡을 수 있다. 일하는 모습을 관찰할 때는 똑같은 의도를 달성하는 데 여러 길이 있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라.

 

- 전 세계를 항해하고 싶다던 사람의 경우에서 보았듯이 똑같은 행동도 배후의 의도는 전혀 다를 수 있다. 예를 들어 두 사람이 같은 자선단체에 큰 금액을 기부한다고 치자. 한 사람은 자선단체에 깊은 관심이 있어서(더 큰 의도), 다른 한 사람은 인맥을 쌓고 싶어서(작은 의도)다. 두 사람 모두 기부에 대해 칭찬을 받을 것이다. 정말로 세상을 바꾸고 싶었던 사람은 행복감, 자부심, 의미를 느낄 것이다. 인맥을 쌓고 싶었던 사람은 오직 자신의 커리어나 사회적 지위에 유용한 사람을 만났는지에만 신경을 쓸 것이다. 두 사람의 의도는 다르지만 자선단체에 한 일은 다를 게 없다. 어느 쪽이든 세상에는 좋은 일이다. 하지만 내적인 보상은 전혀 다르다. 

- 완전히 순수한 의도는 없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내가 자선사업에 참여하는 행위는 타인을 돕고 싶은 의도가 88퍼센트, 나 자신에게 뿌듯함을 느끼고 싶은 의도가 8퍼센트, 함께 자선사업을 하는 친구들과 즐거움을 나누고 싶은 의도가 4퍼센트일 수도 있다. 의도가 불분명하거나 여러 측면을 갖고 있다 해도 그 자체로 잘못된 것은 없다. 우리는 의도가 덜 순수하면 (우리를 성공하게 만들 수는 있을지언정) 우리를 행복하게 만들 가능성은 줄어든다는 사실만 기억하면 된다. 원하는 것을 손에 넣었는데 전혀 행복하지 않은 사람들은 잘못된 의도로 그 일을 했기 때문이다. 

 

- 의도를 가지고 산다는 것은 외적 목표에서 한 걸음 물러나 성공에 대한 세상의 정의를 놓아주고 나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것이다. 호흡법과 함께 명상하는 습관을 들이면 바로 이 의도를 자연스럽게 뒷받침할 수 있다. 내 정체성, 내가 원하는 것과는 도무지 어울리지 않는 의견이나 생각을 씻어내고 싶다면, 내가 정한 시간에서 나만의 속도로 살아가는 것을 잊지 않도록 수시로 호흡법을 활용해보기 바란다. 호흡법은 나에게는 나만의 길이 있고 또 당연히 그래야 한다는 것을 이해하도록 도와준다. 

 

- <진정과 이완을 부르는 호흡법>
위의 호흡 준비를 마친 후 다음과 같이 한다.
내가 정한 나만의 속도로 넷을 세면서 코로 숨을 들이마신다. 숨을 멈추고 넷을 센다. 넷을 세면서 입으로 숨을 내쉰다.
위 과정을 열 번 반복한다.

- <에너지와 집중을 위한 호흡법 : 카팔라바티(kapalabhati)>
위의 호흡 준비를 마친 후 다음과 같이 한다.
코로 숨을 들이쉬면서 넷을 센다. 1초 내로 코로 강하게 숨을 내쉰다에서 일종의 엔진이 가열되는 게 느껴질 것이다. 다시 코로 숨을 들이쉬며 넷을 센다. 
위 과정을 열 번 반복한다.

- <수면을 위한 호흡법>
4초 동안 숨을 들이쉰다.
4초 이상의 시간 동안 숨을 내쉰다.
잠이 들거나 잠이 올 때까지 반복한다.

 

- 나는 모든 활동을 정말로 동등하게 바라보는 데 시간이 걸렸다. 나는 소똥을 치우는 일보다는 공부하는 게 훨씬 더 좋았다. 하지만 우리는 사회를 인체의 장기처럼 보라고 배웠다. 인체에서 다른 장기보다 더 중요한 장기란 없다. 모든 장기는 서로 화음을 맞추며 작동하고, 인체에는 각각의 장기가 모두 필요하다. 공평한 공생에도 불구하고 시간이 지나자 우리는 각자 태생적으로 잘 맞는 일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동물을 돌보는 데 끌리는 사람(나는 아니다!)도 있었고, 요리를 즐거워하는 사람(역시 나는 아니다. 나는 그냥 살기 위해 먹는 사람에 가깝다), 정원 일에서 큰 만족을 느끼는 사람도 있었다. 그렇게 폭넓은 활동을 하면서, 비록 내가 열정을 느끼는 특정 활동을 추구할 수는 없었지만, 내 열정이 어디에 있는지 관찰하고 성찰할 수는 있었다. 우리는 새로운 능력을 실험하고, 연구하고, 그 능력을 개선했을 때 어떤 기분인지 지켜보았다. 나는 뭘 좋아하나? 어떤 일이 자연스럽고 보람차게 느껴지나? 왜 그럴까? 

- 예를 들어 소똥을 치우는 일이 불편하게 느껴지면, 그냥 외면하는 것이 아니라 내 불편함의 뿌리에 놓인 감정이 무엇인지 이해하려고 노력했다. 가장 일상적인 몇몇 일을 내가 싫어하는 이유는 자존심 문제라는 걸 금세 알 수 있었다. 나는 그 일들을 시간 낭비라고 생각했다. 그 시간에 다른 무언가를 배울 수도 있는데 말이다. 일단 이 사실을 인정하고 나니 청소가 나에게 뭔가 도움이 될 수는 없을지 다방면으로 궁리할 수 있었다. 

 

- 아슈람이라는 자급자족 공동체에서 내 장단점을 탐구하다 보니, 우리는 각자 자신의 '다르마 dharma'에 도달할 수 있었다. 많은 산스크리트어가 그렇듯이 다르마도 한 단어로 정의할 수는 없지만, 가까운 의미를 찾자면 '이게 너의 소명이다'쯤 된다. 내가 다르마를 이렇게 정의하는 이유는 오늘날 우리 삶에도 유용한 정의가 되기를 바라서다. 나는 다르마를 '바르나 varna'와 '세바 seva'의 결합으로 본다. 바르나(역시나 복합적인 뜻을 가진 단어다)는 '열정과 능력'이라고 보면 된다. 세바는 '세상의 필요를 이해하고 사심 없이 타인에게 봉사하는 것'이다. 타고난 재능과 열정(바르나)이 우주가 필요로 하는 것(세바)과 이어지면, 그래서 그게 당신의 목적이 되면, 당신은 다르마를 따라 살게 된다. 다르마를 따라 사는 데 시간과 에너지를 사용하면 내가 가장 잘하는 것으로 세상에 중요한 일을 한다는 만족감이 생긴다. 다르마를 따라 사는 것은 충만한 삶을 사는 확실한 방법이다. 

 

- 이제 우리의 길잡이가 될 가치관과 가장 깊은 곳에 있는 의도를 중심으로 삶을 재건할 차례다. 이 성장의 시작이 바로 다르마다.
 
- "스님, 보세요. 저 멍청한 전갈이 금세 또 물에 빠졌어요." 스님은 몸을 굽혀 다시 전갈을 구해주었고 또 독침에 쏘였다. 다른 스님이 물었다. "형제님, 전갈은 타고나기를 쏘는 동물인 줄 알면서 왜 구해주십니까?" 스님이 답했다. "왜냐하면 저는 타고나기를 구해주는 사람이라서요."

 

- 이 스님은 겸손이 무엇인지 몸소 보여주고 있다. 스님은 자신의 고통이 전갈의 생명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여기서 더 중요한 교훈은 '구해주는 것'이 스님의 본성 중에 워낙에 중요한 부분이어서 전갈이 다시 쏠 것을 알면서도 전갈을 구해줄 수밖에 없었고, 또 만족했다는 점이다. 스님은 자신의 다르마에 깊은 신념을 가지고 있었기에 다르마를 실천하기 위해서라면 고통도 감내할 의향이 있었다. 

- 흔히 '아시시의 성 프란체스코'(프란체스코 수도회의 창시자 - 옮긴이)가 한 말이라는 문구가 떠올랐다. "언제나 복음을 전하라. 필요하면 말을 사용하라." 

 

- 나는 준비한 이야기를 무사히 전달했다. 조사하면서 즐거웠던 것만큼 내 생각을 나누는 일도 즐거웠다. 사람들은 내게 고마워했고, 내가 들려준 사례가 좋았다며 그 덕분에 고대 경전이 아주 가까운 얘기처럼 느껴진다고 했다. 한두 사람은 내게 준비 과정을 물었다. 내가 얼마나 많은 노력을 들였는지 알아챈 사람들이었다. 스스로도 흠뻑 만족하면서 다른 학생들이 고마워하는 것을 보고 있으니 내 다르마가 무엇인지 알 것 같았다. 나의 다르마는 연구하고, 지식을 실험하고, 내 깨달음을 사람들에게 강연하는 것이었다.

 

- 사람은 누구나 정신물리학적으로 타고난 본성이 있어서 그에 따라 어디에서 더 빛이 나고 더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지가 결정된다. 다르마란 이렇게 타고난 성향과 내가 잘하는 것, 내가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상태를 활용해 타인에게 봉사하는 것이다. 과정이 즐겁고 실행이 매끄러우면 열정을 느끼게 된다. 타인의 반응이 긍정적이라면 내 열정에 목적이 있다는 뜻이다. 이게 바로 다르마를 위한 마법의 공식이다. 
[열정 + 전문성 + 유용성 = 다르마]

 

- 타인이 칭찬을 늘어놓을 때만 내가 한 일에 기쁨을 느낀다면, 일자체에 열정이 있는 것은 아니라는 신호다. 자신의 관심사와 능력을 아무리 추구해도 거기에 반응하는 사람이 없다면 열정에는 목적이 없는 것이다. 한쪽이라도 없다면 다르마에 따라 사는 게 아니다. 사람들은 종종 뭘 하고 싶고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 공상하면서 그게 다르마에 적합한지 알 수 있을 만큼 충분히 조사하지는 않는다. 사람들은 '돈이 되니까' 금융업에 종사하려고 한다. 혹은 '존경도 받고 명예로운' 직업이니까 의사가 되려고 한다. 그러면서 해당 직업이 나에게 잘 맞을지 어떨지 모르는 채로 일을 진행한다. 내가 그 과정이나 환경을 좋아할지, 일이 주는 에너지가 마음에 들지, 그 일을 잘 해낼 수 있을지 전혀 모르는 채로 말이다. 

 

- 우리는 원하는 대로 될 수는 없다. 그러나 있는 그대로일 수는 있다. 

 

- 수도자는 여행자와 같다. 그의 여행은 내면으로의 여행이다. 가장 진실하고, 자신감 넘치고, 강력한 자아에 더없이 가까이 갈 수 있는 여행이다. 나의 열정과 목적을 찾기 위해 꼭 '1년간 시골에서 살기'를 실제로 추진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열정과 목적이 어디 먼 땅에 묻혀 있는 보물이어서 발견되기만 기다리고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당신의 다르마는 이미 당신 안에 있다. 늘 그랬다. 다르마는 당신이라는 존재에 녹아 있다. 우리가 계속해서 마음을 열고 호기심을 유지한다면 다르마는 스스로 나타날 것이다. 

 

- 베네딕트회 수녀 조앤 치티스터 Joan Chittister는 다음과 같이 썼다. "자신의 한계를 믿으면 마음이 열리고, 남의 재능을 믿으면 안심할 수 있다. 내가 모든 걸 다 할 필요는 없다는 것, 다 할 방법도 없다는 것, 내가 못하는 일은 다른 누군가의 재능이며 책임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나의 한계는 다른 사람의 재능을 위한 공간을 마련한다." 약점에 주목하기보다는 강점을 키워 그것을 삶의 중심으로 만들 방법을 찾아야 한다.

 

- 여기서 반드시 주의할 점이 두 가지 있다. 첫째, 내 다르마를 따른다고 해서 뭐든 괜찮다는 뜻은 아니다. 능력과 관련해서라면 강점을 갈고닦아야 한다. 하지만 내 약점이 공감이나 연민, 친절, 관용처럼 감성적인 부분이라면 결코 계발을 멈추어서는 안 된다. 연민이 없다면 기술계의 마법사가 된다 한들 아무 의미가 없다. 유능하다고 해서 재수 없는 사람이 될 필요는 없다. 둘째, 특정 과목의 성적이 나쁘다고 해서 그 과목을 통째로 포기할 필요는 없다. 우리는 경험이 없는 것과 약점을 혼동하지 말아야 한다. 내 다르마가 무엇인지 알아내지 못해 다르마를 벗어나 사는 사람도 있다. 우리는 여러 선택지를 거부하기 전에 폭넓은 실험을 거치는 것이 중요하다. 실험은 대개 어린 시절 학교나 그 외의 곳에서 이루어진다. 

- 내 다르마가 무엇인지 밝히려면 내 열정이 뭔지 알아야 한다. 내가 좋아하면서 자연스럽게 잘하는 일 말이다. 

 

- 네 가지의 바르나는 길잡이, 리더, 창안가, 제작자다. 이름이 바로 특정 직업이나 활동과 연결되는 것은 아니다. 물론 어떤 활동이 나의 다르마를 실현해주기 때문에 기쁨을 줄 수도 있지만, 다르마에 따라 사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길잡이는 지식을 배우고 공유하려고 한다. 그렇다면 선생님이나 작가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리더는 영향력을 행사하고 필요한 것을 준비하기를 좋아한다. 그렇다고 해서 꼭 CEO나 군인이 되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리뷰자 주 : 각각은 Air, Fire, Water, Earth와 연결된다. 창안과 제작의 경우는 경계가 다소 모호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이 연결이 맞다고 느낀다.)

 

-  앞서 이야기한 '나'를 기억할 것이다. 타마스, 라자스, 사트바는 각각 무지, 충동, 선의를 뜻했다. 각각의 바르나에 대해 나는 그들의 행동이 구나의 어떤 모드와 비슷한지를 설명할 것이다. 우리는 무지에서 벗어나 열정을 추구하고, 선으로 봉사하여 사트바에 이르려고 노력한다. 사트바에서 더 많은 시간을 보낼수록 더 효과적이고 만족하는 사람이 될 수 있다.

 

- 베다 성격 테스트는 당신의 바르나를 볼 수 있게 도와준다. 그러나 점성술과 마찬가지로 바르나도 내일 무슨 일이 일어날지는 말해주지 않는다. 탐구와 실험을 통해 이 바르나를 현실 세계에서 테스트해보는 것은 당신에게 달렸다. 당신의 바르나가 리더라면 직장에서 리더의 역할을 맡거나 자녀의 생일파티를 조직해 보라. 리더의 임무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정말로 기쁨을 느끼는가? 

 

- 그러나 우리는 시간을 쓰는 방법이나 취향에 대해서는 이런 성찰을 시도하지 않는다. 나에게 힘을 주는 것이 무엇인지 확인하는 습관을 기른다면 나에 대해 그리고 내가 삶에서 뭘 원하는지 더 잘 이해할 수 있다. 바르나에 대한 이해를 갈고닦기 위해서 바르나를 탐구할 때 가장 먼저 물어보아야 할 가장 중요한 질문은 이것이다. 
'내가 과정을 즐겼는가?'

 

- 바르나에 대한 설명을 당신의 경험과 비교해 당신이 정확히 어떤 점을 즐겼는지 집어내라. "나는 사진 찍는 걸 좋아해"라고 말하지 말고, 그 뿌리가 무엇인지 찾아내라. 가족들이 멋진 크리스마스 카드를 만들도록 도와주는 게 좋은가? (길잡이) 인간의 고난이나 의미 있는 상황을 기록으로 남겨 변화를 촉진하는 것이 좋은가? (리더) 조명, 초점, 필름 현상 등 기술적인 측면이 좋은가? (제작자)

 

- 승려로 지낼 때 생각 연습을 하나 끝낼 때마다 다음과 같이 자문했다. 이 일의 어떤 점이 좋았는가? 이 일을 내가 잘하는가? 이 일에 관한 글을 읽고, 이 일을 더 많이 배우고, 이 일을 하는 데 더 많은 시간을 쓰고 싶은가? 더 잘하고 싶은가? 내 마음을 편하게 또는 불편하게 만드는 요소는 무엇인가? 불편했다면 긍정적인 방식(나를 성장하게 하는 도전)인가, 아니면 부정적인 방식인가? 

 

- 우리는 마음에 귀를 기울일 것이 아니라 어느 생각이나 활동을 내 몸이 어떻게 느끼는지에 주목해야 한다. 먼저, 무얼 하고 있을 때의 나를 떠올리면 기쁜 감정이 드는가? 그걸 생각하면 설레는가? 내가 실제로 그 활동을 할 때 내 몸은 어떻게 반응하는가? 나에게 딱 맞는 것을 하고 있으면 몸이 먼저 느낀다. 

 

- 1. 살아 있는 느낌 : 어떤 사람들은 다르마를 따르고 있다고 느끼면 차분하고 확신에 차 만족한다. 또 어떤 사람들은 기쁨과 흥분의 전율을 경험한다. 어느 쪽이 되었든 살아 있는 느낌, 연결된 느낌을 받으며 얼굴에 미소가 떠오른다. 불이 탁 켜진다. 

2. 몰입 : 다르마를 따르면 자연스럽게 가속이 붙는다. 저항하는 파도에 맞서 싸우는 느낌이 아니라 물살을 따라 수영하는 느낌이 든다. 정말로 다르마와 딱 맞는 길을 가면 몰입을 경험할 수 있다. 내가 내 머리 밖으로 나온 느낌이고, 시간이 어떻게 가는지도 모른다. 

3. 안정감 : 다르마를 따르면, 내가 혼자라거나 어울리지 않는 곳에 와 있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오가는 사람이 누구든, 내가 지금 어디에 있든, 그곳이 딱 맞는 곳으로 느껴진다. 심지어 내가 딱 맞는다고 느끼는 공간이 전 세계를 옮겨 다닌다고 해도 말이다. 나는 스릴을 즐기지 않지만 내 친구는 빠른 차와 제트스키를 좋아한다. 실제 위험(최악의 시나리오)은 우리에게 동일하지만, 친구에게는 그게 감수할 만한 위험이거나 혹은 위험 자체가 곧 기쁨이다. 관객 앞에 서면 나는 편안하지만, 그대로 얼어붙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4. 일관성 : 쉬는 날 스노클링을 하면서 멋진 시간을 보냈다고 해서 스노클링이나 휴가가 당신의 다르마인 것은 아니다. 다르마는 반복해도 빛이 바래지 않는다. 실은 하면 할수록 더 좋아진다. 그러나 한 번의 사건도 내가 어떤 에너지를 좋아하고, 언제 어떤 식으로 살아 있음을 느끼는지에 대한 단서가 될 수 있다. 

5. 긍정적 생각과 성장 : 내 강점을 알고 있으면 더 자신감이 생기고, 타인의 능력을 귀하게 여기게 되며, 경쟁심을 덜 느낀다. 나를 남과 비교하고 싶은 마음이 완전히 사라지지 않을 수도 있지만, 그런 마음이 크게 줄어든다. 왜냐하면 내 전문 분야에 있는 사람들과만 비교하게 되기 때문이다. 거절을 당하거나 비난을 들어도 모욕처럼 느껴지지 않는다. 내 발전에 도움이 되는가에 따라 받아들여도 되고 거부해도 되는 정보처럼 느껴진다. 

 

- 내 다르마가 무엇인지 느끼고 나면, 다르마에 따라 살도록 인생을 정비하는 것은 오로지 당신에게 달렸다. 모든 장소와 상황에서 남들이 내 다르마를 인정하고, 내가 다르마를 실현할 수 있게 열성적으로 도와주지는 않을 것이다. 누구나 겪어본 적이 있겠지만 상사가 늘 직원의 잠재력을 활용하려는 것은 아니다. 5장을 읽으며 '우리 팀장은 다르마를 이해할 필요가 있어. 그렇다면 날 승진시켜 주겠지'라고 생각한다면 핵심을 잘못 파악한 것이다. 모든 사람이 끊임없이 자신의 다르마를 따르며 살고, 가끔 상사가 전화해서 정말로 너의 다르마가 실현되었냐고 보살펴주는, 그런 평화로운 세상에 사는 일은 절대로 없을 것이다. 

 

- 다르마를 증명하고 보호하는 것은 우리 책임이다. <마누법전>에 이르길, 다르마는 자신을 지켜주는 사람을 지킨다고 했다. 다르마는 안정과 평화를 가져온다. 내가 어디에 가면 잘 해낼 수 있는지 확신이 있으면, 우리는 그걸 증명할 기회를 찾아낸다. 그러면 선순환이 이뤄진다. 다르마를 꿋꿋이 지키려고 하면, 내가 잘 해낼 수 있는 장소에 가려고 끊임없이 노력한다. 내가 잘 해내면 사람들이 그걸 알아보고, 그러면 나는 다르마의 결과를 수확할 수 있다. 이는 내가 다르마를 계속 따르는 데 도움이 된다. 다르마는 당신의 기쁨과 목적의식을 지켜주고 당신이 성장하도록 돕는다. 

 

- 다르마의 전체 공식을 기억할 것이다. 다르마는 단순히 열정과 기술이 아니다. 다르마는 타인에게 도움이 되는 열정이다. 열정은 당신을 위한 것이고, 목적은 타인을 위한 것이다. 당신의 열정을 타인을 위해 사용하면 그게 목적이 된다. 당신의 다르마는 세상의 필요를 채워야 한다. 앞서 말했듯이 수도자들은 더 높은 목적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할 의향이 있어야 한다고 믿는다(수도자들은 이에 충실하게 산다). 수도자가 아닌 사람들은 이렇게 생각하면 된다. 내가 열정을 가진 일을 할 때 느끼는 즐거움의 양은 타인이 느끼는 감사의 양과 같아야 한다. 타인이 내가 효과적이지 않다고 생각하면, 내 열정은 내 삶을 풍부하게 만들어줄 '취미'다. 

- 다르마 외의 모든 활동이 시간 낭비라는 뜻은 아니다. 능력을 키우는 활동이 있고, 인성을 키우는 활동이 있다. 처음으로 강연 요청을 받았을 때, 나는 내 다르마 안에서 능력을 키웠다. 하지만 쓰레기를 내다 버리라는 요구를 받았을 때는 인성을 키웠다. 인성을 등한시하고 능력만 키우면 자기도취적인 사람이 되고, 능력은 개발하지 않고 인성만 키우면 아무 영향력을 가질 수 없다. 두 가지 모두에 힘써야만 내 영혼과 더 고귀한 목적에 도움이 된다.

 

- 이번 주에는 15분만 더 일찍 일어나라. 아마 알람을 써야겠지만, 부드러운 소리로 맞춰라. 처음에 일어나면 조명을 낮게 켜고 조용한 음악을 틀어라. 그 보너스 시간 15분 동안은 휴대전화를 집어 들지 마라. 이 시간 동안 당신의 머리가 하루를 준비하게 하라. 그렇게 일주일이 지나면 다시 기상 시간을 15분 앞당겨라, 이제 당신 마음대로 쓸 수 있는 30분의 시간이 생겼다. 어떻게 사용하고 싶은가? 천천히 샤워를 해도 좋다. 차를 한 잔 마셔도 좋다. 산책하러 나가도 된다. 명상해도 된다. 집을 나서기 전에 잠깐만 시간을 내서 어지른 것들을 치워라. 밤에는 몇 시가 되었든 피곤하다는 느낌이 처음으로 드는 순간 즉시 TV와 스마트폰을 끄고 잠자리에 들어라. 

 

- 아침에 여유 시간을 만들면 그 시간은 온전히 내 것이 된다. 내가 그 시간을 어떻게 사용할지는 아무도 간섭하지 못한다. 직장, 가족에게 의무적으로 사용해야 하는 시간이 얼마나 많은지를 고려하면, 이 자유 시간은 나 자신에게 줄 수 있는 가장 큰 선물 중에 하나다. 늘 하던 일을 그대로 할 수 있지만 늘어난 시간 덕분에 여유 있고 느긋한 느낌이 들 것이다. 시간이 있으니 출근길에 커피를 사가는 게 아니라 집에서 직접 커피를 만들 수도 있을 것이다.  

 

- 여유 시간을 만들면 그동안 가장 부족했던 것이 그 자리를 채운다는 걸 깨닫게 될 것이다.
바로 '나를 위한 시간' 말이다.

 

- 끝으로, 잠들기 전에 나는 마지막으로 어떤 생각을 하는지 생각해 보라. 혹시 '졸려서 눈이 자꾸 감기는데 휴대전화를 끄는 편이 낫겠어' '엄마한테 생신 축하드린다고 말하는 걸 잊었네' 같은 것인가? 나쁜 에너지와 함께 잠에서 깨도록 스스로를 프로그래밍하지 마라. 나는 매일 나 자신에게 이렇게 말한다. '나는 편안하고, 활력이 넘치고, 집중하고 있다. 나는 차분하고, 열정에 넘치고, 생산적이다.' 이렇게 글로 써놓으니 무슨 요가 로봇 같지만, 나에게는 이게 효과가 있었다. 나는 에너지와 확신을 가지고 잠에서 깨도록 스스로를 프로그래밍한다. 당신이 아침에 일어날 때 느끼는 감정은 전날 잠이 들 때 느꼈던 감정일 가능성이 가장 크다. 

 

- 이 모든 준비는 온종일 의도를 갖고 생활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누구에게나 집을 나서는 순간 예상 못할 일은 더 많이 펼쳐질 것이다. 그렇다면 아침 내내 키운 에너지와 집중력이 필요하다. 

 

- 틱낫한은 <지금 이 순간이 나의 집입니다>에 이렇게 썼다. 
"설거지가 즐겁지 않다는 것은 오직 설거지하고 있지 않을 때 만드는 생각인 듯하다. 만약 내가 설거지를 기쁘게 할 수 없다면, 설거지를 빨리 끝내고 디저트를 먹거나 차를 마셔야겠다고 생각한다면, 디저트나 차를 눈앞에 두었을 때도 역시나 그것들을 즐길 수 없을 것이다. 자각하고 보면, 모든 생각, 모든 행동이 신성하다. 이렇게 보면, 사원과 속세의 경계란 존재하지 않는다."

 

- 이런 선문답이 있다. "깨닫기 전에 나무를 하고 물을 길어라. 깨달은 후에 나무를 하고 물을 길어라." 우리가 아무리 성장해도 집안일이나 루틴에서는 벗어날 수 없다. 깨달음이란 그것을 온전히 받아들이는 것이다. 겉은 같아 보일지 몰라도, 나의 내면이 바뀌어 있다. 

 

- 우리는 끊임없이 다양한 활동과 환경을 경험한다. 그러나 그중에 어느 것이 나에게 가장 매력적인지 잠시 멈춰서 고민해보지는 않는다. 나는 북적대는 환경에서 능률이 오르는가, 아니면 혼자 있을 때 능률이 오르는가? 아늑한 구석 자리의 안전한 느낌이 좋은가, 아니면 널찍한 도서관이 좋은가? 자극이 되는 예술품이나 음악이 흐르는 환경이 좋은가, 아니면 고적하고 단순한 곳이 집중하는 데 도움이 되는가? 아이디어에 대해 타인의 반응을 보는 게 좋은가, 아니면 일을 끝낸 뒤 피드백을 받는 게 좋은가? 익숙한 것이 좋은가, 풍경이 바뀌는 게 좋은가? 이를 자각하고 있으면 다르마에 도움이 된다. 취업 면접을 볼 때 내가 이 일을 잘할 수 있을지, 나와 이곳이 잘 맞을지 알 수 있다. 데이트 계획을 세울 때 나에게 가장 편안한 장소를 고를 수 있다. 내가 가진 능력 내에서 여러 가지 커리어를 고려할 때, 어느 것이 내 감수성에 가장 잘 맞을지 파악할 수 있다. 

 

 - 무언가를 몰입해서 해봤다면 루틴이 더 쉬워진다. 생활 속에 새로운 기술을 추가하고 싶다면 단기간에 초집중하는 상태로 그 일을 시작해볼 것을 권한다. 만약 내가 매일 한 시간씩 탁구를 한다면, 탁구를 더 잘 치게 될 것이다. 앞으로 매일 명상을 하고 싶다면, 일주일간 먼 곳으로 떠나 오직 명상에만 집중해 보라. 그러면 명상을 지속해나갈 수 있는 튼튼한 기초가 만들어질 것이다. 

 

- 이 책 곳곳에서 나는 여러분이 생활 속에 만들 수 있는 변화를 제안했다. 하지만 모든 걸 다 바꾸려고 한다면 어느 하나에 크게 우선순위를 둘 수가 없을 것이다. 정말로 무언가를 바꾸고 싶다면 작게 시작하되 우선순위를 두어야 한다. 바꾸고 싶은 것 하나를 정해서 그것을 최우선순위로 놓고 끝까지 해낸 다음에만 그다음 것으로 넘어가라. 

 

- 우리에게는 시간이 넉넉했고, 그래서 한 가지 일을 몇 시간 동안 이어서 했다. 현대사회에서 이런 수준의 몰입은 가능하지 않다. 하지만 많이 투자할수록, 돌아오는 것도 많다. 어떤 일이 중요하다면, 깊이 있게 경험해볼 가치가 있다. 그리고 중요하지 않은 일은 없다. 

- 새로운 기술을 배우거나 어떤 개념을 이해하거나 이케아 가구를 하나 조립하는데 좌절감이 든다면 본능적으로 그만두고 싶어질 것이다. 하지만 올인 all-in하라. 그러면 스스로 가능하다고 생각했던 것보다 더 많은 일을 완수할 것이다. (이케아 가구 중에 가장 조립하기 어렵다고들 하는 헴네스 서랍장도 완성할 수 있을 것이다.) 

 

- 깊이 집중하는 시간을 갖는 것은 뇌 건강에도 좋다. 강박적으로 여러 작업을 번갈아서 하면(스탠퍼드대학교 연구에서 멀티태스킹을 하는 학생들이 기억력과 집중력이 낮았던 것처럼), 집중하는 능력이 감퇴한다. 또한 도파민(보상) 채널을 과도하게 자극한다. 이는 중독으로 가는 길이기도 해서, 같은 정도의 좋은 기분을 느끼려면 계속해서 더 많은 자극을 주어야 하고, 결국 더 주의를 집중하지 못하게 된다. 아이러니하게도 도파민의 기분 좋은 느낌은 불쾌감을 일으킨다. 도파민이 너무 많이 분비되면 신체가 만족을 관장하는 화학물질인 세로토닌을 만들거나 처리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온종일 전화를 걸고 받거나, 이 회의 저 회의에 참석하거나, 아마존에서 이 책을 주문했다가 스냅챗에서 저 내용을 확인해본 사람이라면, 모든 게 끝난 후의 그 기진맥진한 기분을 알 것이다. 그게 바로 '도파민 숙취' ...

 

- <감정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의 저자 리사 펠드먼 배럿 LisaFeldman Barrett은 어느 팟캐스트에서 이렇게 말했다. "당신의 뇌는 세상의 사건에 반응하고 있는 게 아니라 다음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 끊임없이 추측하며 예측한다." 

 

- 언젠가 스님 한 분이 우리가 고통받는 딜레마와 관련해 늙은 체로키 인디언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할아버지가 손자에게 말했습니다. '인생의 모든 선택은 내면에 있는 늑대 두 마리의 싸움이다. 한 마리는 분노, 질투, 탐욕, 두려움, 거짓말, 불안, 자존심을 담당하고, 다른 한 마리는 평화, 사랑, 연민, 친절, 겸손, 긍정적 생각을 담당하지. 둘은 서로 우위를 차지하려고 싸우고 있어.' '어느 늑대가 이겨요?' 손자가 물었습니다. '네가 밥을 주는 놈이 이긴단다.' 할아버지가 대답했습니다.

- "밥은 어떻게 주는 건가요?" 내가 스님에게 물었다. 스님이 말했다. "우리가 읽고 듣는 것으로 밥을 줍니다. 누구와 시간을 보내는지로 밥을 줍니다. 시간을 어디에 쓰는지, 에너지와 관심을 어디에 집중시키는지로 밥을 줍니다."

- <바가바드 기타>에 따르면 "마음을 정복한 사람에게 마음은 가장 친한 친구지만, 그러지 못한 사람에게는 자신의 마음이 가장 큰 적이다." 머릿속 반대 목소리를 가리키는 데 '적'은 너무 센 표현으로 보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적'이라는 단어의 정의를 보면 맞는 표현임을 알 수 있다. 

 

- 가끔은 내 마음이 나에게 불리하게 작용할 때가 있다. 마음이 시켜서 뭔가를 했는데 저지르고 나면 죄책감이나 후회가 남는다. 이럴 때는 내 가치관이나 도덕관에 어긋나는 일을 한 경우가 많다. 

 

- 모든 대화가 그렇듯이 마음과의 소통이 얼마나 원활히 이루어지느냐는 마음과 내가 그동안 쌓아온 관계에 달려 있다. 마음과 나는 성급하게 뛰어드는 전투조인가, 아니면 고집스럽고 교전을 싫어하는가? 마음과 나는 똑같은 논쟁을 계속 반복하는가, 아니면 서로의 말을 들어주고 타협하는가? 대부분은 이런 내적 관계의 역사를 모른다. 한 번도 시간을 내어 성찰해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 원숭이 같은 마음은 어린아이의 마음이고, 수도자의 마음은 어른의 마음이다. 어린아이는 원하는 것을 손에 넣지 못하면 이미 가진 것은 무시한 채 울부짖는다. 어린아이는 진짜 가치를 알아보지 못해서 사탕 몇 개에 기꺼이 주식 증서를 내준다. 무언가 어려움에 부닥치면 어린아이 같은 마음은 즉각 반응을 보인다. 모욕받은 느낌에 얼굴을 찌푸리거나 자기를 방어하기 시작한다. 무의식적으로 보이는 이런 반사 반응은 누군가 칼을 꺼내든 경우라면 이상적인 반응이다. 겁을 내고 도망치는 게 맞다. 하지만 누군가 듣고 싶지 않은 말을 해서 방어적인 감정이 된 것이라면 이상적인 반응이 아니다. 우리는 그 어떤 경우에도 무의식적인 반사 반응에 휘둘리고 싶지 않지만, 그렇다고 어린아이 같은 마음을 몽땅 없애버리고 싶지는 않다. 어린아이 같은 마음은 우리를 즉흥적이고 창의적이고 역동적으로(가치를 따질 수 없을 만큼 소중한 자질들) 만들어주지만, 그게 우리를 지배할 때는 몰락의 이유가 될 수 있다. 

 

- 연구자들은 여러 집단의 수도자들과 함께 명상을 한 번도 해보지 않은 사람들을 대상으로 팔목에 열 자극기(강렬한 열로 고통을 유발하는 장치)를 채웠다. 열판은 천천히 뜨거워지다가 최대 온도에서 10초간 지속된 후 열이 식었다. 실험에서 열판이 가열되기 시작하자마자 수도자가 아닌 사람들의 뇌에 나타나는 고통 지표는 미친 듯이 불을 뿜기 시작했다. 마치 열판이 이미 최고 온도에 도달한 것처럼 보였다. 연구자들은 이를 '예기 불안 anticipatory anxiety'이라고 부른다. 수도자들에게는 이런 모습이 전혀 없었다. 열판이 가열되어도 수도자들의 뇌 활동은 거의 변함이 없었다. 열판이 최고 온도에 도달하자 수도자들의 뇌 활동 역시 치솟았지만 신체 고통을 담당하는 부분에서만 그런 현상이 나타났다. 알다시피 대부분은 고통을 이중으로 느낀다. 일부는 신체적으로, 일부는 정서적으로 말이다. 수도자들에게도 열은 고통스러운 것이었으나 그들은 이 경험에 부정적 감정을 할당하지 않았다. 수도자들은 '정서적 고통'을 전혀 느끼지 않았다. 또한 수도자들의 뇌는 명상하지 않는 사람들에 비해 신체적 고통에서 빠르게 회복됐다. 

 

- 놀라운 수준의 감각 제어다. 대부분은 이 정도까지 제어 능력을 개발할 생각은 하지 않는다. 수도자들은 감각을 마음으로 가는 통로라고 생각한다. 삶은 우리가 보고, 듣고, 냄새 맡고, 만지고, 맛보는 것에 의해 지배된다. 

 

- 같은 말을 반복하면 뇌에서 '디폴트 모드 네트워크 defaultmade network'라고 하는 부분(마음이 방황하면서 나 자신에 관해 생각하는 것과 관련된 부분)이 조용해진다. 원숭이도 어쩔 수 없이 팔을 멈추고 귀를 기울일 수밖에 없다. 

 

- 불안한 원숭이 같은 마음이 말을 잘 듣지 않으려고 하면, 자기 연민으로 내면의 독백을 바꿔볼 수 있다. 불안한 생각이 떠오르면 그대로 내버려 두지 말고 연민으로 대응하라. "걱정되고 화난다는 것 알아. 감당 못 할 것처럼 느껴지겠지. 하지만 넌 강해. 할 수 있어." 기억하라. 중요한 것은 비난하지 않고 감정을 관찰하는 것이다. 

- 브랜드전략 전문회사 셰어러빌리티 Shareability에 있는 친구들과 함께 나는 십 대 소녀와 소녀의 자매들과 한 가지 연습을 해본 적이 있다. 나는 소녀들에게 자신의 자존감에 영향을 주는 부정적 생각들을 적어보라고 했다. 소녀들은 '너는 겁먹었어' '너는 아무짝에도 쓸모없어' '너는 중요한 사람이 아냐' 같은 말을 적었다. 나는 소녀들에게 자신이 쓴 내용을 언니나 여동생에게 마치 그들에 관해 쓴 것인 양 읽어주라고 했다. 소녀들은 하나같이 거절했다. "좋은 행동이 아니에요." 한 소녀는 머릿속에서는 아무렇지 않은 말이었는데 입 밖으로 내보니 전혀 ... 

 

- 우리는 내가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결코 하지 않을 말을 나 자신에게 한다. '황금률'이 무엇인지 누구나 알고 있다. '네가 남에게 대접받고 싶은 대로 남을 대하라.' 나는 여기에 하나를 덧붙이고 싶다. 타인에게 보여주고 싶은 것과 똑같은 사랑과 존경으로 스스로를 대하라. 

 - '소쿠신부츠'란 일본에서 승려가 솔잎, 나무껍질, 송진만을 먹다가 이후 음식과 물을 포기하고 계속 주문을 외다 결국은 자신의 몸을 석화시키는, 즉 스스로 미라가 되는 것을 일컫는다. 솔잎만 먹거나 그러겠다고 맹세해야만 한계를 탐구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불가능을 이룰 수 없게 우리를 가로막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믿음 자체인 경우가 많다.

(리뷰자 주 : 소신불.)  

 

- 평범한 사람들도 금욕을 이용해 성과를 높이곤 한다. 극단을 실험함으로써 일상에서 더 조심하게 되고, 더 긍정적으로 변했다는 사람들을 본다. 금욕을 활용해 초연해질 수 있는 방법들을 한번 살펴보자.

 

- 선택은 오직 당신만이 알고 있다. 샐러드를 먹을지, 쿠키 한 박스를 다 먹을지는 당신만이 안다. 주변에 아무도 없을 때, 멋진 인상을 주어야 할 사람이 없을 때, 나에게 무언가를 제공할 사람이 없을 때 나타나는 '나'를 생각해 보라. 그게 바로 진정으로 당신이 누구인지를 살짝 엿보게 해 준다. 다음의 경구처럼 말이다. '아무도 보고 있지 않을 때의 내가 진짜 나다.' 

  
- 겸손한 현자는 만물을 동등하고 소중하게 여긴다. 승려들이 육식하지 않는 이유가 이것이다. <바가바드기타>에 따르면, "완벽한 요가 수행자란 행복할 때나 괴로울 때나 만물이 자기 자신과 진정으로 동등함을 아는 자다." 내가 성공했다는 생각이 들면 우리는 모든 사람이 동등하다는 사실을 잊는다. 당신이 누구이든, 무엇을 이뤘든, 당신이 생각하는 '내 지위' 때문에 특별한 대우를 요구하거나 기대하고 있지는 않은지 잘 살펴라. 삶이라는 극장에서 더 좋은 좌석을 차지할 자격을 가진 사람은 아무도 없다. 티켓이 판매되기 전날 밤 줄을 서서 몇 시간 기다리거나, 더 가까운 좌석을 위해 돈을 더 내거나, 극장 후원에 대한 감사의 표시로 더 좋은 자리를 받을 수는 있을지 모른다. 아니면 좋은 좌석을 희망하는 마음만 품고 있을 수도 있다. 그러나 당신이 더 좋은 좌석을 받을 '자격이 있다'고 느껴지거든 그 감정을 더 파고들어라. 다른 관객들보다 당신이 더 훌륭한 이유가 대체 무엇인가? 오만한 자존심은 존경을 욕망하고, 겸손한 노력가는 존경을 '불러일으킨다'. 

 

- 남을 평가하면 어떤 식으로든 나에게 돌아온다. 타인이 더 높은 기준에 부응하지 못했다고 비난하는 행동 자체가 우리 스스로 가장 높은 기준에 부응하지 못하게 한다.

 

우리가 남을 평가하는 이유는 타인의 관심을 돌리거나 혹은 내 눈에 보이는 내 단점에서 나의 주의를 돌리기 위해서다. 내가 나와 상대하고 싶지 않은 감정이나 기분을 다른 사람에게 투영하는 성향을 심리학 용어로 '투사 Projection '라고 한다. 투사는 정말 많이 일어난다! 그러니 남을 평가하기 전에 잠시 멈춰서 이렇게 물어보라. '나는 지금 내 불안에서 나나 다른 사람의 관심을 돌리려고 남의 흠을 잡는 것인가? 내가 지금 내 약점을 남에게 투영하고 있나? 두 경우 다 아니라고 해도, 내가 지금 비난하는 그 사람보다 조금이라도 더 나은가?' 앞의 두 질문의 답은 때에 따라 다를 것이므로 내가 뭐라 말할 수 없다. 하지만 분명하게도 세 번째 질문의 답은 언제나 '아니다!'이다. 

- <우리는 왜 내가 틀렸을 때도 옳다고 생각하는가 Why You Think You're Right EvenWhen You're Wrong>라는 유명한 테드 강연에서 팟캐스트 '합리적으로 말하기 Rationally Speaking'의 진행자 줄리아 갈레프 Julia Galef는 그런 경직성을 '병사의 마음가짐'이라고 불렀다. 병사의 임무는 자기편을 방어하고 지키는 것이다. 이와 반대로 '정찰병의 마음가짐'이라는 것이 있다. 갈레프는 "정찰병의 마음가짐이란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있는 것을 최대한 정확히 보는 것이다. 병사는 이미 대의를 위해 몸 바치기로 했기 때문에 연속성을 중시한다. 정찰병은 여러 가지 선택지를 조사 중이므로 진실을 중시한다. 병사의 마음가짐은 부족주의와 방어에 뿌리를 두고 있고, 정찰병의 마음가짐은 호기심과 흥미에 뿌리를 두고 있다. 병사는 옳은 편에 서는 것을 중시하고, 정찰병은 객관적인 것을 중시한다." 갈레프에 따르면, 내가 병사인가 정찰병인가는 나의 지능이나 교육 수준과는 별 관련이 없고, 오히려 삶의 태도와 관련된다고 말한다. 

 

- 내가 이미 안다고 생각하는 것은 그 무엇도 넘어 들어올 수 없는 장벽을 쌓는 일이고, 이는 잠재적인 배움의 기회를 놓치는 일이다. 이 이야기에 아직 내가 듣지 못한 부분이 있다면 어쩔 것인가? (이게 바로 그 듣지 못한 부분이었다.) 익숙한 것을 그냥 무시할 수도 있고 더 깊은 성찰의 기회로 삼을 수도 있다. 어떤 이야기를 이미 안다고 생각하더라도 매번 새로운 경험으로 받아들이도록 노력하라. 

 

- 두고두고 도움이 될 경험과 지식을 내 안에 채워 넣으려면 먼저나 자신을 비워야 한다. 

 

- 로마 장군들은 전투에서 이기고 돌아올 때 뒤에 서 있는 노예에게 "당신도 사람임을 기억하세요"라고 속삭이게 했다고 한다. 그가 아무리 잘 싸웠고 리더십이 아무리 칭송받는다고 해도 다른 모든 사람처럼 평범한 사람이었다. 자기 분야의 최고에 선 사람이라면 조심해야 한다. 자존심은 당신을 고립시킨다. 나는 너무 특별한 사람이니, 시간을 내줄 만한 사람이 있고, 그렇지 않은 사람이 따로 있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 사람들이 자꾸 당신에게 특별 대접을 하려 한다면, 사람들이 당신에게 고마움을 느끼기 때문이다. 하지만 스스로 그런 대접을 받을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거나 그런 대접을 요구한다면 당신은 존경받을 자격이 없는 사람이다. 

 

- 잘못된 자아는 우리를 과대포장하기 쉬운 만큼이나 우리를 쉽게 산산조각 낸다. 약점이 노출되고 나면 내가 똑똑하고, 성공했다고 말해주던 자존심은 더 이상 방어할 말이 없다. 페르소나, 거짓말, 편견이 없다면 나는 아무것도 아니다. 프랭크 애버그네일이 체포될 때도 틀림없이 그런 기분이었을 것이다. 자부심이 가면을 벗으면 종종 자존감이 낮은 모습으로 돌변한다. 두 경우 모두 우리는 '나 자신' 혹은 '타인이 지각하는 나'에 지나치게 파묻혀 있다. 당신이 중요하다는 거짓된 믿음을 계속 유지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스스로 자존심을 깨고 나오지 못하면 삶이 대신 그 자존심을 깨줄 것이다. 

 

- 나는 두 달째 인도의 전통의학인 아유르베다 치료를 받고 있었다. 스님들이 찾아와 글을 읽어주곤 했지만 나는 혼자였고, 혼자 있으니 두 가지가 떠올랐다. 첫째, 나는 내가 살려고 하는 삶과 육체적으로 잘 맞지 않는다. 둘째, 이게 더 충격적이었는데, 어쩌면 아슈람에 사는 것이 내 소명이 아닐 수도 있다.  

- 아슈람에서 했던 지루한 일들을 현대사회에 그대로 복제해놓기는 어렵다. 그러나 자존심을 더 분명히 자각하기 위해 사용했던 이런 단순한 정신 훈련을 누구든지 매일 시도해볼 수 있다. 기억하려고 노력해야 할 것이 두 가지, 잊으려고 노력해야 할 것이 두 가지라고 배웠다. '기억해야 할 두 가지'는 내가 남에게 저지른 잘못과 남이 나에게 베푼 선행이다. 내가 남에게 저지른 잘못에 초점을 맞추면 자존심은 어쩔 수 없이 내가 불완전하다는 사실을 기억하고 후회하게 되며, 이를 통해 현실감각을 유지할 수 있다. 남이 나에게 베푼 선행을 기억하면 나도 남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사실에 겸손해지고 우리가 받은 선물에 고마움을 느낀다. 

 

- '잊어야 할 두 가지'는 내가 남에게 베푼 선행과 남이 나에게 저지른 잘못이다. 나 자신의 선행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감탄한다면 자존심만 키우게 될 것이다. 따라서 선행은 베풀고 나면 잊어야 한다. 또한 남이 나를 부당하게 대했다면 그 일 역시 잊어야 한다. 남에게 상처를 주는 사람과 절친하게 지내라는 뜻이 아니라, 분노와 원한을 품고 있으면 더 넓은 관점을 취하지 못하고 나 자신에게 집중하게 되기 때문이다.

 

- 이 문제를 달리 생각하는 방법을 알려준 사람은 라다나스 스와미였다. 당시 스와미는 런던의 사원에서 우리가 자아를 실현하는데 필요한 자질을 주제로 강연했다. 그는 우리에게 소금과 같은 존재가 되라고 하면서, 우리가 소금의 존재를 인식하는 경우는 음식에 소금이 너무 많거나 적을 때뿐이라고 했다. 아무도 "우와, 이 요리는 소금이 완벽한 양만큼 들어 있어"라고 말하지 않았다. 소금이 아주 잘 사용되면 눈에 띄지 않는다. 소금은 워낙 겸손해서 무언가가 잘못되면 그 덤터기를 뒤집어쓰고, 모든 게 잘되었을 때는 결코 생색내는 법이 없다. 

- 런던 사원에서의 수업에서 동료 승려 몇몇이 무례하게 굴었다. 우리가 하는 수련들을 비웃고, 조용히 해야 할 때 떠들었다. 나는 스승인 수타파 Sutapa를 쳐다보았다. 수타파는 런던 승려들의 수장이었다. 나는 수타파가 그들을 꾸짖을 줄 알았다. 그러나 수타파는 말이 없었다. 수업이 끝난 후 내가 수타파에게 왜 그들의 행동을 참으셨냐고 물었다. 수타파는 이렇게 말했다. "스님은 저들이 오늘 행동하는 것을 보지만, 저는 저들이 얼마나 많이 발전했나를 봅니다." 수타파는 그들의 선행은 기억하고 그들의 잘못은 잊는 중이었다. 수타파는 그들의 행동을 자신의 반영으로 보지 않았고, 자신에 대한 존경이 반영된 것으로 생각하지 않았다. 수타파는 더 멀리 내다보았다. 

 

- 누군가 당신을 잘못 대할 때 수파타처럼 참으라고 조언하는 것은 아니다. 부당한 대우 중에는 용납할 수 없는 것들도 있다. 하지만 그 순간을 넘어, 상대의 경험을 더 큰 그림에서 보는 것은 유용한 습관이다. 나의 자존심이 뛰어들기 전에 저들이 지쳤는지, 좌절했는지, 옛날에 비하면 발전했는지, 무엇이 이런 행동을 유발했는지까지 고려하는 것이다. 누구나 사정이 있는데 우리의 자존심은 종종 그걸 무시하기로 한다. 모든 것을 나에 대한 인신공격으로 생각하지 마라. 보통은 나 때문이 아니다.

 

-  스님과 나는 자존심을 잠재울 때 같은 방법을 사용했다. 본능적 반응과 거리를 두고 객관적 관찰자가 되었다. 우리는 나를 내가 이룬 모든 것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내가 내 직업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내가 내 집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내가 내 젊음이고 아름다움이라고 생각한다. 당신이 가진 것(기술, 교훈, 소유물, 원칙)은 누군가에게 받은 것이고, 당신에게 그것을 준 사람 역시 그것을 다른 사람에게서 받았음을 기억하라. <바가바드 기타>에 직접적으로 나오는 말은 아니지만, <바가바드 기타>가 초연함을 어떻게 보는지 요약해서 이야기할 때 사람들은 종종 이렇게 말한다. "오늘 당신에게 속한 것은 어제 다른 누군가에게 속했던 것이고, 내일은 또 다른 누군가의 것이다." 영적으로 무엇을 믿든, 이 점을 인식한다면 나는 그저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힘을 위한 그릇이자 도구, 관리자, 채널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스승에게 감사하고 그 선물을 더 높은 목적을 위해 사용할 수 있다. 

 

- '당장 나는 선택할 수 있어. 내가 이 시간을 현명하게 쓰면 아슈람에 머물 때처럼 오늘 저녁을 의미 있고 목적에 이바지하게 만들 수 있어. 아니면 그냥 자기 연민과 후회로 낭비할 수도 있지.' 그 순간 나는 쪼그라들었던 자존심을 놓아주었다. 승려로서 나는 불안과 고통, 압박감에 대처하는 법을 배웠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제 내가 있는 곳은 그 목표들을 달성하는 게 자연스럽고 쉬운 곳은 아니지만, 내가 배운 모든 것을 더 시끄럽고 복잡한 이곳 세상에서 테스트할 수는 있었다. 아슈람이 학교라면, 이게 나의 시험이었다. 이제 나는 돈을 벌어야 하고 이전과 똑같은 시간을 내 수련에 바칠 수는 없겠지만, 그 시간의 질은 나에게 달려 있었다. 더 이상 두 시간씩 경전을 공부할 수는 없지만 매일 경전을 읽고 실천할 수는 있었다. 내 마음을 씻기 위해 사원을 청소할 수는 없지만, 내 집을 청소하며 겸손을 찾을 수는 있었다. 내가 내 삶을 의미 없다고 생각하면 결국 그렇게 될 것이다. 내가 내 다르마에 따라 살 방법을 찾는다면 나는 충만한 삶을 살 것이다. 

 

- 피해자가 되는 것은 자존심이 뒤집힌 것이다. 최악의 일들이 나에게 일어난다고 믿고, 가장 나쁜 카드를 받았다고 생각한다. 실패했다면 피해자가 되었다고 생각하지 말고, 내가 떠내려가지 않게 나를 붙잡아주는 겸손이라는 닻이 내려졌다고 생각하라. 그리고 자문해 보라. '뭘 하면 자신감이 다시 채워질까?' 자신감은 내가 통제할 수 없는 외부 요소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다. 누가 나에게 일자리를 줄지 말지는 내가 통제할 수 있는 사항이 아니다. 하지만 나는 내 본모습을 유지하면서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할 방법을 찾는 데 초점을 맞췄다. 그렇게 하면 자신감이 생기리라는 걸 알고 있었다. 

 

- 아이러니한 점이 있다. 뭔가를 아는 척해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 테지만, 자신감을 가장하고 허영심을 유지하는 데 들어가는 에너지는 실제로 노력하고 연습해서 진짜 자신감을 얻는 데 필요한 에너지와 주로 맞먹는다. 겸손함을 지니면 내 강점과 약점이 또렷이 보이기 때문에 노력하고, 배우고, 성장할 수 있다. 자신감과 높은 자존감은 겸손하고 불완전하고 노력하는, 있는 그대로의 나를 받아들이게끔 도와준다. 부풀려진 자존심과 건강한 자존감을 서로 헷갈려서는 안 된다. 자존심은 모든 사람이 당신을 좋아하길 바란다. 자존감이 높은 사람은 타인이 나를 좋아하지 않아도 괜찮다. 자존심은 스스로 모든 걸 다 안다고 생각한다. 자존감이 높은 사람은 누구에게든 배울 수 있다고 생각한다. 자존심은 스스로를 증명하고 싶어 한다. 자존감은 스스로를 표현하고 싶어 한다. 

 

- 자신감이란 타인이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구애되지 않고, 내가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 결정하는 것이다. 하지만 자신감은 내가 '최고의 나'가 되기 위해 타인에게 영감을 얻고 지도받는다는 뜻도 된다. 치유된 사람들, 현명한 사람들, 봉사에 헌신하는 사람들과 시간을 보내라. 그러면 겸손해지면서 나도 치유되고 현명해지고 봉사하고 싶다는 의욕이 생길 것이다. 

 

- 피드백을 구할 때는 조언자를 잘 골라야 한다. 피드백을 구할 때 사람들은 흔히 둘 중 하나의 실수를 저지른다. 한 가지 문제에 대해 모든 사람에게 피드백을 구하거나, 한 사람에게 내 모든 문제에 대해 조언을 구하는 것이다. 너무 많은 사람들에게 물어서 57개의 서로 다른 의견을 받는다면, 버겁고 혼란스럽고 길을 잃을 것이다. 반면에 나의 모든 딜레마를 한 사람에게 던진다면 그 사람이 부담스러워하고 당신의 짐을 나눠서 지느라 지칠 것이다. 

 

- 수도자들이 취하는 방법은 구루(나의 가이드)나 사드후 sadhu(다른 스승과 성자들), 샤스트라 shastra(경전)에 의지하는 것이다. 세 가지 요건은 서로 어긋나지 않아야 한다. 현대인들은 '가이드'가 없다. 혹시 있다고 해도 스승 카테고리에 넣을 것이다. 또한 모든 사람이 경전을 따르는 것도 아니다. 그럴 때 수도자라면 나에게 최선인 것을 염두에 두는 신뢰할 수 있는 사람, 그러면서도 나와는 다른 시각을 제공해줄 사람의 조언을 구할 것이다. 내 정서적 건강을 가장 크게 걱정하는 사람들(구루 역할을 하는 친구나 가족인 경우가 많다) 중에서 조언자를 골라라 나의 지적 경험과 성장을 응원하는 사람(사드후 역할을 하는 멘토나 선생님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나와 가치관과 의도를 공유하는 사람(샤스트라 역할을 하는 종교 지도자나 과학적 사실)을 골라라. 

 

- 상대가 의도하지도 않았던 곳에서 가장 유용한 피드백이 나오기도 한다. 사람들이 비언어적으로 나에게 어떻게 반응하는지에 면밀히 주목하며 자존심을 누그러뜨려라. 표정으로 보아 상대가 흥미를 느끼는가, 아니면 지루함을 느끼는가? 상대가 짜증이 났는가, 동요하는가, 지쳤는가? 이번에도 서로 일치하는 점을 찾아본다. 내가 이야기를 꺼내면 많은 사람이 관심을 잃는 주제가 있는가? 그렇다면 그 주제는 꺼내지 말아야 할 때일 수도 있다.  

 

- 그런 장애물을 우회하는 방법은 피드백을 걸러서 듣는 것이다. 비난하지 말고 성찰하라. 호기심을 가져라. 이해한 척하지 마라. 다시 물어서 분명히 이해해라. 현실적인 개선 방법을 알아내는 데 도움이 되는 질문을 해라. 누군가의 비판이 좋은 의도에서 나온 것인지 확인하고 싶다면, 그 사람이 나의 성장에 기꺼이 투자할 의향이 있는지를 보면 된다. 상대는 문제점 혹은 약점만을 이야기하고 있는가, 아니면 내가 바뀔 수 있게 도와주고 싶어 하는가?  

 

- 스승님이 말했다. "죽음이 임박하면 조용할 것 같은가요? 지금 명상을 못 하면 그때는 어떻게 하시려고요?" 
나는 평온한 곳에서 명상하는 훈련을 하는 이유가 혼란스러운 곳에서도 명상할 수 있게 하기 위함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후로 비행기에서도, 뉴욕시 한복판에서도, 할리우드에서도 명상했다. 물론 집중을 방해하는 것이 있었다. 그러나 명상은 산만한 것들을 제거하는 게 아니라 관리한다. 

 

- 명상을 지도할 때 나는 이런 말로 시작한다. "마음이 헤매고 있다면 평소의 호흡 패턴으로 돌아가십시오. 실망하거나 짜증 내지 말고, 주의를 다시 호흡과 떠올려보기와 만트라로 가져오십시오." 주의를 빼앗긴다고 해서 명상이 깨지지는 않는다. 명상이 깨지는 것은 주의를 빼앗는 생각을 추구하거나 집중력을 상실하고 이렇게 생각할 때다. '아, 난 정말 못 해.' 내 생각을 관찰하고, 그대로 두고, 다시 집중하던 대상으로 돌아오는 것도 명상의 일부다. 명상이 어렵지 않다면, 제대로 하고 있지 않은 것이다. 

 

- 한 가지 중요한 유의사항이 있다. 떠올려보기를 할 때는 긍정적인 대상을 골라라. 부정적인 떠올려보기는 고통스러운 생각과 이미지 속에 우리를 가둔다. 그렇다. 명상하다 보면 우리 안에 있는 '나쁜 것'들도 떠오를 것이다. 그러나 스스로 우울한 미로 속에 갇힌 모습을 상상하는 것은 아무 도움도 되지 않는다. 가장 중요한 것은 어둠에서 빠져나오는 길을 떠올리는 것이다. 

 

- 현재에 집중하고 마음속에 그림을 그려라. 마음속 그림은 우리가 선택해서라기보다는 어떤 활동을 반복하며 형성된다. 떠올려보기를 통해 어떤 순간을 의도적으로 기억으로 바꿀 수도 있다. 떠올려보기를 이용해 기억을 만들어내거나 기쁨, 행복, 목적을 포착해 보라. 떠올려보기를 이용해 옛 기억과 깊이 연결될 수도 있고, 내가 기쁨과 행복을 느끼고 목적의식을 가졌던 시간과 장소로 돌아갈 수도 있다. 기억을 만들어내는 중이라면 눈을 뜨고 있어라. 옛 기억과 다시 연결되는 중이라면 눈을 감고 있어라. 

- '5-4-3-2-1'이라고 하는 불안 대처 기법이 있다. 우리는 볼 수 있는 것 다섯 가지, 만질 수 있는 것 네 가지, 들리는 것 세 가지, 냄새를 맡을 수 있는 것 두 가지, 맛볼 수 있는 것 한 가지를 찾을 것이다.

1. 먼저 볼 수 있는 것 다섯 가지를 찾아라. 한 번에 하나씩 찾은 것들에 주의를 집중하며 관심의 초점을 하나씩 옮겨라.
2 이번에는 만질 수 있는 것 네 가지를 찾아라. 그것들을 만지고 느낀다고 상상하라. 질감이 다른 것에 주목하라. 관심의 초점을 하나씩 옮겨라.

3. 들리는 것 세 가지를 찾아라. 관심의 초점을 하나씩 옮겨라.

4. 냄새 맡을 수 있는 것 두 가지를 찾아라. 꽃인가? 물인가? 아무것도 아닌가? 관심의 초점을 하나씩 옮겨라.
5. 맛볼 수 있는 것 한 가지를 찾아라.
6. 오감을 모두 느껴보았으면 기쁨과 행복을 들이마셔라. 기쁨과 행복을 몸속으로 들여라. 그것들이 나를 행복하게 만들면서 자연스럽게 미소가 지어질 것이다.
7. 이 순간을 영원히 캡처해두었으므로 언제든지 떠올려보기를 통해 이 순간으로 돌아올 수 있다.

 

- 승려들은 감사의 말로 하루를 시작한다. 말 그대로다. 자리에서 일어나면 우리는 몸을 뒤집어 땅에 존경을 표하고, 땅이 나에게 준 것과 눈앞을 밝혀주는 빛과 걸을 수 있는 바닥과 숨 쉴 수 있는 공기에 감사를 표한다. 

 

- 내가 맞혀보겠다. 당신이 일어나서 가장 먼저 하는 일은 휴대전화 확인일 것이다. 그게 쉽고 느긋하게 뇌를 움직이는 방법처럼 보이겠지만, 그것은 좋은 기운으로 하루를 시작하는 방법이 아니다. 이렇게 해보라. 1분이면 된다. (혹시 너무 지쳐서 다시 잠들 위험이 있다면 알람의 '다시 알림'을 꼭 설정해두기 바란다.) 침대에 누운 채로 잠깐만 시간을 내면 된다. 몸을 돌려 엎드린 채로 두 손을 모으고 고개를 숙인다. 이 순간 뭐가 되었든 당신의 삶에서 좋은 것들을 생각하라. 기분 좋은 공기와 빛, 나를 사랑해주는 사람들, 나를 기다리고 있는 커피도 좋다. 

 

- 전 인류의 아홉 명 중 한 명은 매일 먹을 음식이 부족하다. 그 수는 8억 명에 가깝다. 하루 중 한 끼를 골라 식사를 시작하기 전에 잠시 시간을 내서 음식에 대한 감사 기도를 올려라. 아메리카 인디언의 기도에서 영감을 얻어도 좋고 스스로 기도문을 만들어내도 된다. 가족이 함께 모여 식사를 한다면 돌아가며 감사의 기도를 올려라. 자유자재로 감사하는 마음을 갖고 싶다면 다음의 명상을 추천한다. 

- <나모바가바테 바수데바야 Om Namo Bhagavate Vasudevaya> 
'아름다움과 지성, 힘, 부, 명성, 초탈의 화신이신 모든 이의 마음에 가득한 신께 칭송을 바칩니다.'라는 뜻이다. 아슈람에서는 경전을 읽기 전에 이 만트라를 온다. 경전이 존재하도록 도움을 준 사람들에게, 그리고 통찰을 주고 이끌어주는 선생님들과 현자들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갖기 위해 이 만트라를 사용할 수도 있다.

- <나는 ~에 감사합니다>
앉아서 몸과 마음을 편안히 하고 호흡법을 시행한 후 이렇게 말한다. 빈칸에는 최대한 많은 것을 넣어서 완성한다. 이 연습을 하면 즉시 다시 집중할 수 있다. 가능하다면 마음에 떠오르는 부정적인 생각 속에서도 감사한 것들을 찾아내 프레임을 다시 짜라. 이 내용을 일기 형식으로 쓰거나 목소리로 녹음해 보관한다면 똑같은 부정적 생각들이 다시 들 때마다 기억을 일깨우는 용도로 사용할 수 있다. 기쁨의 순간 떠올리기 명상하면서 기쁨을 느꼈던 시간과 장소로 떠나보라. 그 느낌이 다시 내 안에 차오르게 하라. 명상이 끝나도 기쁨이 남아 있을 것이다. 

 

- 순간을 판단하지 마라. 무언가에 나쁜 일이라는 꼬리표를 다는 순간, 우리의 마음은 그렇게 믿기 시작한다. 그러지 말고 차질이 생기면 감사하게 생각하라. 인생이라는 긴 여정이 자신만의 속도로, 자신이 원하는 구불구불한 길로 가는 것을 허락하라. 우주는 당신에게 또 다른 계획을 준비했을지 모른다. 

 

- 일이 잘 풀리지 않는다면 자신에게 이렇게 말하라. "나를 위해 다른 게 또 있을 거야." 그거면 된다. '실직해서 정말 감사해!'라고 생각할 필요는 없다. "내가 원했던 건 이거야. 이것만이 답이었어"라고 말하면 모든 에너지가 '이것'으로 흘러 들어간다. 하지만 "이번 일은 잘 안되었지만 다른 게 또 있을 거야"라고 말하면, 가능성 ...

 

- 모든 사람은 우리가 탐구해야 할 하나의 세계다. -틱낫한

 

- 승려라고 하면 흔히 인류에게서 떨어져서 고립되어 사는 은둔자를 상상한다. 은둔하는 승려로 지낸 경험은 내가 타인을 대하는 방식을 완전히 바꾸어놓았다. 아슈람을 떠나 런던에 돌아왔을 때, 나는 승려가 되기 이전보다 내가 모든 종류의 인간관계에 훨씬 능숙해진 것을 발견했다. 심지어 연애에서도 그랬다. 승려들은 모두 독신이고, 나 역시 아슈람에 있는 동안 여성과 어떤 식으로도 연애관계에 얽힌 적이 없다는 사실을 고려하면 다소 놀라운 일이었다. 

 

- 아슈람에서는 구성원들이 서로를 지켜주고 서로에게 봉사하며 동료애를 양성한다. 전 세계 장수 지역을 연구하는 단체인 블루존스 Blue Zones의 공동 설립자 댄 뷰트너 Dan Buettner는 이런 유형의 커뮤니티가 전 세계적으로 필요하다고 보았다. 뷰트너가 발견한 바에 따르면, 장수는 식습관과 생활양식 외에도 커뮤니티의 여러 측면과 관련되어 있다. 돈독한 가족관계(도움이 필요할 때 돌봐준다)와 신념을 공유하는 부족, 건강한 사회적 행동 말이다. 말하자면 '촌'을 이루어야 했다. 그런 장수 지역처럼 아슈람은 상호의존적인 커뮤니티로 협력과 봉사의 분위기를 조성한다. 모든 구성원은 나에게 필요한 것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 필요한 것까지 챙긴다.

 

- 모든 구성원이 서로를 지켜주는 커뮤니티에서 나는 내가 다른 승려들을 보살피고 지원하면 그게 즉시 되돌아올 줄 알았다. 그러나 현실은 복잡했다. 아슈람에서 보낸 첫해에 나는 화가 나서 스승님 중에 한 분을 찾아가 조언을 구했다. "화가 납니다. 나는 많은 사랑을 베풀고 있는데 똑같이 돌아오는 것 같지 않습니다. 저는 다른 승려들을 사랑하고 보살피고 지켜주고 있는데, 저들은 내게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이해가 가지 않아요." 스님이 물었다. "왜 사랑을 베풀고 계십니까?" 내가 말했다. "제가 그런 사람이니까요."

- 스님이 말했다. "그러면 왜 돌려받기를 기대하십니까? 잘 들어보세요. 어떤 에너지를 내보내면, 그게 사랑이든 미움이든 분노든 친절이든 늘 돌려받습니다. 어떤 식으로든지요. 사랑은 공동체와 같은 거예요. 어떤 사랑을 베풀든 늘 나에게 돌아옵니다. 문제는 기대치에 있습니다. 내가 받는 사랑이 내가 사랑을 준 그 사람에게서 오리라고 생각하는 거지요. 그러나 내가 받는 사랑이 꼭 그 사람한테서 오는 것은 아닙니다. 마찬가지로 나를 사랑해주면서 나로부터 똑같은 사랑을 받지 못하는 사람도 있는 거지요." 

 

- 아슈람에서 내가 화가 났던 이유는 나의 보살핌이 화답을 받지 못했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종종 우리는 상대가 내 삶에서 어떤 목적에 이바지하는지 분명히 알지 못하면서 상대에게 너무 많은 것을 기대한다. 우리가 내 삶에 들어오도록 허락한 사람들의 네 가지 특징을 생각해 보자. 이들이 누구인지 알 것이다. 대부분 네 가지 카테고리에 들어가는 사람을 적어도 한 명은 알고 있다. 

- 1. 능력 : 내가 다른 사람의 의견과 추천을 신뢰하려면 그 사람에게 그 능력이 있어야 한다. 능력 있는 사람은 나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 딱 맞는 기술을 가지고 있다. 분야 전문가나 권위자로서 경험, 평판이 있고 리뷰 사이트에서 높은 별점을 받는다.

 

- 2. 보살핌 : 내 감정을 상대의 손에 맡기려면 상대가 나를 아끼는 사람인지 알아야 한다. 진정한 보살핌이란 상대가 자신에게 최선인 것이 아니라 나에게 최선인 것을 생각한다는 뜻이다. 이 사람들은 성공이 아니라 내 건강과 행복을 걱정한다. 이들은 마음으로 내가 가장 잘되기를 바란다. 이들은 나를 신뢰한다. 이들은 나를 지원하기 위해 의무 이상으로 노력한다. 이사할 때 도와주고, 중요한 병원방문에 동행하고, 생일파티나 결혼식 준비를 도와준다. 

- 3. 인성 : 확실한 도덕적 잣대와 타협하지 않는 가치관을 가진 사람들이다. 우리는 내가 뭘 원하는지, 내가 믿는 게 옳은지 확신할 수없을 때 이 사람을 찾는다. 인성은 상호의존적 파트너 관계(연애, 동료, 팀원)에 있을 때 특히 중요하다. 이들은 말한 대로 실천한다. 훌륭한 평판과 확고한 의견, 현실적 조언을 가진 사람들이다. 이들은 믿어도 된다.

- 4. 일관성 : 일관성을 가진 사람들은 최고의 전문가가 아닐 수도 있다. 최고의 인성을 갖고 있지도, 나를 가장 많이 보살피지도 않을 수 있다. 하지만 내가 필요로 할 때 연락이 닿고, 자리를 지키며, 신뢰할 수 있다. 좋은 시절과 힘든 시절을 함께 견뎌온 사람들이다. 

- 사람들은 나에게 뭘 주어야 하는지 표지판을 붙이고 다니지 않는다. 사람들의 의도와 행동을 관찰하라. 어긋남이 없는 사람인가? 말한 대로 행동하는가? 나와 가치관이 맞는가? 약속보다는 행동이 더 많은 것을 알려준다. 

 

- "무슨 일을 하셔야 하는지 전혀 모르겠습니다." 그는 내가 가장 소중하게 생각하는 조언자 중 한 사람이지만, 나의 커리어를 두고 그가 조언을 줄 거라고 기대한 것은 바보 같은 생각이었다. 또한 그는 조언할 것이 있는 척하지 않을 만큼 현명한 사람이었다. 어머니도내가 커리어에 관해 물어보기에 최선인 사람은 아니다. 어머니의 가장 큰 걱정은 내 행복과 건강이다. 내 기분은 어떤지, 잘 먹고 다니는지, 잠은 충분히 자는지 어머니는 항상 염려한다. 어머니는 보살핌과 일관성을 언제든 보여주겠지만 회사 경영에 관해 조언할 일은 없다. 어머니가 내 삶의 모든 측면을 걱정해주지 않는다고 해서 어머니에게 화가 날 필요도 없다. 그럴 시간과 에너지, 관심, 고통을 줄이고, 그저 어머니가 내게 주시는 것에 감사해야 한다. 

 

- 우리는 모든 사람이 완전체여서 내가 바라는 모든 것을 그 사람이 주기를 바라는 경향이 있다. 이는 불가능할 만큼 기준이 높은 것이다. 그런 사람을 찾는 것은 내가 그런 사람이 되는 것만큼이나 어려운 일이다. 네 가지 유형의 신뢰는 우리가 상대에게 무엇을 기대할 수 있고, 무엇을 기대하면 안 되는지 알려준다. 심지어 배우자라고 해도 보살핌, 인성, 능력, 일관성을 모든 경우에 모든 방식으로 제공할 수는 없다. 보살핌과 인성까지는 몰라도 모든 분야에 유능한 사람은 없다. 배우자가 믿을 만한 사람일 수는 있어도 늘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연락이 닿을 수는 없다. 배우자가 내 모든 것이 되어 '나를 온전하게' 만들어주길 기대하지만, 그처럼 깊고 평생 지속되는 결합에서도 내 모든 것이 될 수 있는 사람은 나뿐이다.

 

- 내 인생에 한 사람이 들어오는 것은 반가운 변화일 수 있다. 새로운 계절이 시작되듯이 신나고 마음을 사로잡는 에너지의 변화일 수 있다. 그러나 모든 계절이 그렇듯이 그 한철은 언젠가 끝난다. 또 다른 사람이 이유를 가지고 내 인생에 들어올 것이다. 내가 배우고 성장하는 것을 도와주기도 하고, 어려운 시기를 헤쳐나가도록 응원하기도 한다. 마치 어느 경험을 통과할 수 있게 나를 돕고 인도하라고 누군가 일부러 보낸 느낌이 들 정도다. 그 시기가 지나고 나면 내 삶에서 그 사람의 중심적인 역할은 줄어든다. 한편으로는 평생을 가는 사람들이 있다. 기쁠 때나 슬플 때나 내 옆을 지키며 내가 아무것도 해주지 않아도 나를 사랑해주는 사람들 말이다. 카테고리를 생각할 때면 사랑의 공동체를 염두에 두라. 사랑은 아무런 조건이 달리지 않은 선물이다. 그렇다면 모든 인간관계가 무한정 똑같은 힘을 견뎌내도록 설계되어 있지 않다는 사실도 알아야 한다. 사람에 따라, 시기에 따라 당신 역시 한철의 친구, 이유가 있는 친구, 평생 친구일 수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라. 누군가의 삶에서 내가 차지하는 역할이 상대가 내 삶에서 차지하는 역할과 늘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  

 - 요즘 내가 지속적으로 가장 가깝게 지내는 소규모의 사람들이 있지만, 그렇다고 내가 모든 인류에게 느끼는 유대감이 바뀌는 것은 아니다. 여러분에게 눈에 보이는 사람들 이상을 보라고 말하고 싶다. 내가 편안하게 느끼는 영역을 넘어서 낯선 사람들, 내가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보라. 그들 모두와 친구가 될 필요는 없지만, 
... 

 

- 그들이 늘 옳다거나 모든 난관을 완벽하게 처리할 거라고 말하지 않았다는 사실에 유의하기 바란다. 신뢰란 의도에 관한 것이지, 능력에 관한 것은 아니다. 중요한 사람이 나를 실망시키면 나의 신뢰에 입은 타격이 내 인간관계 전반에 파문을 일으킨다. 좋은 의도를 가진 사람들도 변하기 마련이고, 나와 같은 길을 가지는 않는다. 다른 사람들도 그들의 의도가 나와는 맞지 않다는 신호를 수없이 보내지만, 우리가 그 신호를 무시한다. 처음부터 믿지 말았어야 할 사람들도 있다. 타인의 행동은 늘 나의 통제를 벗어난다. 그렇다면 대체 어떻게 누군가를 신뢰할 수 있을까? 

 

- 신뢰는 택시 기사에서 사업 파트너, 애인에 이르기까지 누구에게나 적용될 수 있다. 우리는 모든 사람을 똑같은 수준으로 신뢰하지는 않는다. 내가 누군가를 얼마나 깊이 신뢰하는지, 그 사람이 실제로 그 정도 수준의 신뢰를 받을 만한지 주의 깊게 생각해야 한다. 

 

- 말도 안 되는 것처럼 들리기도 했고, 심지어 불가능해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 배경이 되는 목적이 무엇인지는 알고 있었다. 연애 관계를 유지하는데 쏟는 노력과 에너지를 절약해서 나 자신과의 관계를 구축하기 위한 것이었다. 설탕을 포기하라는 말이 짜증스럽게 들린다는 것과 같다. 제정신을 가진 사람 중에 누가 과연 아이스크림을 포기하려 할까? 하지만 거기에는 훌륭한 이유가 있다는 걸 우리는 모두 알고 있다. 건강하게 오래 산다는 것 말이다. 당시 내가 승려들을 보니 그들이 무언가를 제대로 하고 있다는 것은 알 수 있었다.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 마티유 리카르를 기억할 것이다. 내가 만난 스님들은 하나같이 젊고 아주 행복해 보였다. 연애는 나에게 온전한 행복을 가져다주지 않았기에 나는 기꺼이 자제력과 규율을 실험해볼 요량이었다. 

 

- 내 인생의 너무 많은 부분이 연애 관계를 헤쳐나가는 데 매몰되어 있었다. 우리가 연애에 관한 시트콤과 영화를 수없이 많이 보는 데는 이유가 있다. 끝도 없이 재미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재미있는 것들이 으레 그렇듯이, 연애는 중요한 문제로부터 시간을 너무 많이 뺏어간다. 내가 3년간 이슈람에 있지 않고 데이트를 하거나 진지한 연애를 하고 있었다면 나는 결코 내가 누구인지를 이해하고, 강점이 뭔지 아는 지금의 내가 되지 못했을 것이다. 

 

- 산스크리트어로 승려는 '브라마차리아 brahmacharya'라고 한다. 직역하면 '에너지를 바르게 사용한다'는 뜻이다. 데이트의 세계에서는 바에 들어가면 주위를 둘러보며 누가 매력적인지 살핀다. 혹은 온라인으로 잠재적 연애 상대들의 사진을 휙휙 넘기면서, 내가 짝을 만나려고 얼마나 많은 시간을 쓰고 있는지는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 그러나 나 자신을 위해 그 시간을 되돌릴 수 있다고 한번 생각해 보라. 지금까지 성공하지 못한 관계에 투자한 모든 걸 회수할 수 있다고 상상해 보라. 그 관심과 집중력을 창의성, 우정, 성찰, 근면 성실에 사용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고 실패한 연애가 모두 시간 낭비라는 뜻은 아니다. 정반대로 우리는 실수에서 무언가를 배운다. 그러나 연애를 둘러싼 시간을 생각해 보라. 문자를 기다리고, 상대가 나를 좋아할까 궁금해하고, 누군가를 내가 원하는 사람으로 바꾸려고 시도하는 시간 말이다. 우리가 나 자신의 필요와 기대치에 신중하다면 시간과 에너지를 훨씬 더 잘 사용할 수 있을 것이다. 

 

- 성적 에너지에 쾌락만 있는 것은 아니다. 성적 에너지는 신성한 것이기도 하다. 성적 에너지가 있어야 아이가 탄생한다. 성적 에너지를 잘 활용하면 내 안에서 무엇을 만들어낼 수 있을지 한번 상상해 보라. 성교육 전문가 맬라 매드런 Mala Madrone은 이렇게 말한다. "의식적 선택에 따른 금욕은 나 자신의 에너지를 활용하고, 생명 에너지의 힘을 이용할 수 있는 강력한 방법이다. 또한 우리의 직관을 강화하고 한계를 분명히 하며 성관계의 진정한 의미를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 내 삶이, 그리고 내 몸이 진정으로 환영하는 접촉과 교류가 어떤 것인지 알아내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 그러나 다른 누군가의 이상에 나를 끼워 맞추거나, 상대가 원한다고 생각되는 모습으로 나를 바꾸거나, 상대가 바람을 피우는 것은 아닌지 의심하는 데 에너지를 사용한다면, 그것은 에너지 낭비다. 데이트하려면 너무 많은 불안과 부정적인 생각이 따르고, '딱 맞는 사람'을 찾아야 한다는 압박감도 심하다. 과연 내가 누군가와 정착할 준비가 되었는가 하는 문제는 차치하더라도 말이다.

 

- 철학자이자 성직자였던 폴 틸리히 Paul Tillich는 이렇게 말했다. "언어는 혼자인 인간의 양면성을 잘 파악했다. 언어는 혼자라는 고통을 표현하기 위해 '외로움'이라는 단어를 만들었고, 혼자라는 영광을 표현하기 위해 '고독'이라는 단어를 만들었다." 

 

- 나는 3년을 승려로 보내며 자각을 키웠고, 그 끝에 관계에 대한 제대로 된 질문을 할 수 있었다. 깨어 있는 나의 모든 시간을 사트바(선의의 모드)로 보내지는 않았을지 몰라도, 내가 있고 싶은 상태가 무엇이고, 그게 어떤 느낌인지는 알게 되었다. 나는 내가 데이트하고 싶은 사람이 될 기회를 얻었다. 타인이 나를 행복하게 해 주기를 바라는 것이 아니라 나 스스로 그런 사람이 될 수 있었다. 

 

- 의도적인 생각과 행동이 증가하면 애초에 내가 왜 사람들에게 끌리는지, 그 이유가 내 가치관을 뒷받침하는지 평가할 수 있는 또렷한 시각이 생긴다. 관계에는 다섯 가지 주요 동기가 있다. 이 동기들은 꼭 연애 관계에만 해당되는 것은 아니다. 

 

- 내가 어디에 끌리는지 알면 내가 이 사람 전체에 매력을 느끼는지, 그저 일부에 매력을 느끼는지 분명히 알 수 있다. 내 경험으로는 사람들에게 타인의 어디에 매력을 느끼느냐고 물어보면, 가장 많이 언급되는 세 가지 자질 중 한두 개, 혹은 두세 개를 이야기한다. 외모, 성공, 지성이 그 세 가지다. 그런데 이 자질은 장기적이고 튼튼한 인간관계와 별 상관이 없다. ... 반면에 마지막 두 가지, 즉 정서적 매력과 영적 매력은 더욱 심오하고 지속적인 관계를 알려준다. 이 두 가지는 두 사람이 서로 얼마나 통할 수 있는지 보여준다. 

 

- <여섯 가지 사랑의 교환 방법> 
선물 : 1. 의도를 가지고 준다. 2. 감사하는 마음으로 받는다.

대화 : 3. 비난 없이 듣는다. 4. 나를 드러내며 이야기한다.

음식 : 5. 특별한 목적 없이 준비한다. 6. 집중해서 받는다.

 

- 대화 상대의 말을 들어주는 것은 가장 세심한 선물 중 하나다. 우리가 다른 사람의 경험에 관심이 있다는 사실을 이보다 잘 보여줄 방법은 없다. 의도적으로 듣는다는 것은 말 뒤에 숨은 감정을 찾고, 더 잘 이해하기 위해 질문하고, 새로 알게 된 내용을 이미 알고 있는 사항에 덧붙이고, 이 사람이 한 말을 기억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관련 있는 이야기에 계속 관심을 가진다는 얘기다. 이야기를 들어준다는 것은 신뢰 분위기를 조성해 상대가 안전하고 환영받는 기분을 느끼게 한다는 뜻도 된다. 

 

- 내 생각, 꿈, 희망, 걱정을 공유하는 것도 중요하다. 나 자신을 노출하는 것은 신뢰를 보여주고 상대의 의견을 존중한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하나의 방법이다. 그렇게 하면 상대도 나와 무엇을 함께 하든 내가 기존에 가지고 있던 경험이나 신념을 이해할 수 있다.

 

- 주제가 떠오르지 않으면 상대에게 중요한 문제와 이어질 수 있는 포괄적인 질문을 하라. 요즘 고민이 뭐야? 그 친구랑 요즘 사이는 어때? 유심히 듣고 연관된 질문을 하라. 내 경험을 공유하되 대화를 내 쪽으로 돌리지 않도록 하라.

 

- 사람들은 저마다 다른 자각 수준에서 인간관계를 맺는다. 데이트 앱이 시키는 대로 내가 원하는 배우자의 특징을 목록으로(유머감각, 자상함, 외모) 작성하지만, 정작 내가 정말로 원하는 것은 들여다보지 않는다. 나는 상대가 나를 어떤 식으로 좋아해 주기를 바라는가? 내가 사랑받는다는 느낌을 받을 방법은 무엇인가?   

 

- <사랑 명상>에서 틱낫한은 이렇게 쓰고 있다. "우리가 누군가에게 홀딱 반하는 이유는 상대를 진정으로 이해하고 사랑해서가 아니라, 나의 고통에서 눈을 돌리기 위해서일 때가 있다. 나 자신을 이해하고 사랑하는 법을 배우고, 나에 대한 진정한 연민을 갖게 되면 진정으로 남을 이해하고 사랑할 수 있다." 아슈람에서 돌아온 후 나는 연애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몇몇 친구들이 생각했던 것처럼 내가 떠날 당시에는 그렇지 않았다). 내가 상대에게 원하는 게 무엇인지 방향을 알려준 것은 나에 대한 지식이었다. 나는 나를 보완해줄 수 있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게 뭔지 알고 있었다. 내 삶에 필요한 것은 무엇이고, 내가 주어야 하는 것은 무엇인지 알고 있었다. 올바른 연애 상대를 찾을 능력이 진화한 것은 내가 진화했기 때문이다. 

 

- 내 아내가 된 라디 데블루키아 Radhi Devlukia 역시 자기 자신에 대해 이런 지식을 가지고 있었다. 나와 같은 여정을 밟지 않았어도 아내는 자신이 높은 도덕성과 가치관을 가진, 영적으로 소통할 수 있는 사람과 함께하고자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아내는 내가 없었어도 충분히 잘 지냈으리라 생각한다.  

 

- 내가 원하는 게 뭔지 모르면 잘못된 신호를 내보내고 잘못된 사람들을 내 옆으로 끌어당길 수 있다. 자각이 없으면 잘못된 자질을 찾아다니고 잘못된 사람을 선택할 수 있다. 이 책에서 내내 이야기한 것이 바로 이런 작업이다. 나 자신을 이해할 때까지는 아직 사랑할 준비가 되지 않은 것이다. 

 

- 우리는 같은 실수를 반복하면서 나와 맞지 않는 똑같은 유형의 배우자를 만나면서 나 자신이 아니라 상대를 탓한다. 이런 일이 생긴다면 그건 불운이 아니라, 내가 숙제를 해야 한다는 뜻이다. 수도자의 관점에서 보면 우리는 고통을 지고 있다. 우리는 그 고통을 완화해줄 사람을 찾으려고 애쓰지만, 그 고통을 완화할 수 있는 사람은 나 자신뿐이다. 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면 문제는 계속 남아서 의사결정에 개입한다. 문제가 되는 사람이 계속 나타난다는 사실은 나에게 해결되지 않은 문제점이 있다는 뜻이다. 내가 배워야 할 교훈을 배울 때까지 그런 사람들은 계속해서 나타날 것이다. 이얀라 반젠트 Iyanla Vanzant(미국의 변호사이자 인생 코치 - 옮긴이)가 오프라 윈프리 Oprah Winfrey에게 말했던 것처럼 말이다. "과거의 상처를 치유하기 전까지는 계속해서 피를 흘릴 겁니다. 음식, 술, 약물, 일, 담배, 섹스로 피 나는 곳에 반창고를 붙일 수는 있겠지요. 하지만 피가 줄줄 새 나와서 당신 삶을 얼룩지게 할 겁니다. 용기 내서 상처를 열고 안쪽에 손을 집어넣어서 당신을 과거에 기억에 붙잡아두고 있는 그 고통의 실체를 끄집어내야 해요. 그 상처와 화해해야 합니다." 

 

- 내 짐을 내려놓고 스스로를 (대부분) 치유하고 나면 기꺼이 베풀 수 있는 관계를 맺게 될 것이다. 상대가 내 문제를 해결해주거나 내 구멍을 메워주기를 바라지 않을 것이다. 아무도 나를 완성해줄 수 없다. 나는 절반이 아니다. 완벽한 사람이 될 필요는 없지만 베풀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다른 사람의 진을 빼놓는 게 아니라 에너지를 채워주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 내 마음이 걸린 문제면 무언가를 또렷이 보기가 어려울 수 있다. 한 가지는 분명히 지적하고 넘어가려고 한다. '내가 가진 것에 감사하는 마음을 갖는 것과 내가 마땅히 받아야 할 것보다 못한 것에 안주하는 것은 다르다.' 아직도 어린아이 같은 마음에 귀 기울이고 있다면, 순간적으로 나를 기분 좋게 해 주지만 결코 나에게 이롭지 못한 사람에게 끌린다. 나의 자존감을 다른 사람에게 의지하지 마라. 이 세상에 언어적, 정서적, 육체적 학대를 받아도 되는 사람은 없다. 그럴 바에는 차라리 혼자인 편이 낫다. 나를 학대하고, 뒤에서 마음을 조종하고, 독이 되는 연애 관계를 우정으로 바꿔서도 안 된다. 그런 식의 역할 관계는 절대 바뀌지 않는다. 내 말을 믿어도 좋다. 

 

- 모든 인간관계에는 내가 기대하는 기쁨의 수준과 내가 받아들일 수 있는 고통의 수준을 설정할 기회가 있다. 완벽한 인간관계란 없지만, 기쁨이 일정 수준에 미치지 못하거나 평균적으로 낮은 수준을 유지한다면, 두 사람 모두 노력하지 않는 이상 상황은 바뀌지 않을 것이다. 내가 얼마만큼의 실망을 감내할 각오가 되어 있는가? 두 사람의 관계가 천천히 진행될 수도 있다. 서로를 알려면 시간이 걸릴 수도 있다. 그러나 끝내 만족스러운 수준에 도달하지 않는다면, 그것을 받아들일지 아니면 다음으로 넘어갈지 결정을 내려야 한다. 

 

- 누군가와 좋은 시간을 보낸 적이 있다면, 누군가에게 뭔가를 투자했다면, 나 자신을 상대에게 주었다면, 다시 놓아주기란 정말 어렵다. 티베트의 수녀 제춘마 텐진 팔모 Jersunma Tenzin Palmo는 우리가 종종 집착을 사랑으로 착각한다고 지적한다. 그녀는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내가 이 관계에서 맺은 것에 매달리는 게 내 사랑을 보여주는 방법이라고 착각한다. 그러나 실제로 그것은 집착에 불과하고, 집착은 고통을 유발한다. 더 세게 움켜쥘수록 잃을까 더 걱정하고, 정말로 잃었을 때는 당연히 괴로워한다." 궁극적으로 잘못된 사람에게 매달리는 것은 그 사람을 놓아주는 것보다 더 큰 고통을 유발한다. 

 

- 이별을 극복하기 위해 내가 추천하는 전략은 자아에 대한 수도자들의 생각 및 평화와 목적으로 가는 길을 찾는 법과 직접적으로 관련된다. 어떤 생각을 하든 수도자들은 도망치지 않는다. 우리는 평가하고 변화할 공간을 스스로 내주어야 한다. 알아채고, 멈추고, 바꿔라. 

 

- 자각을 키우고 대처하고 고치는 게 수도자의 방식이다. 지금 관계를 맺고 있든, 아니면 아직 새로운 관계에 들어가기 전이든, 한걸음 뒤로 물러나서 나 자신의 의도를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지 확인하고 평가하라. 그런 다음에 자각과 사랑을 가지고 데이트의 세계를 탐험하고 다시 관계를 맺어라. 알아채고, 멈추고, 바꿔라.

 

- 천체물리학자 닐 디그래스 타이슨 Neil de Grasse Tyson은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모두 연결되어 있다. 생물학적으로 서로에게 연결되어 있다. 화학적으로 지구와 연결되어 있다. 나머지 우주와는 원자의 차원에서 연결되어 있다." 이 점을 안다면 삶의 진짜 의미를 찾기 위해 우주를 보아야 한다.

 

- 헬렌켈러의 말을 떠올렸다. "신발이 없어서 울고 있다가 발이 없는 사람을 만났다." 안타깝지만 과장이 아니었다. 인도에서는 팔다리가 없는 사람을 자주 볼 수 있다. 나는 이제 제 앞가림을 하게 되었으니 그렇지 못한 사람들에게 음식과 돈을 최대한 나눠줄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내가 여행의 교훈을 알았다고 생각했을 때 나는 전혀 새로운 깨달음을 얻었고, 이 깨달음은 나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 누구나 심지어 봉사에 내 삶을 바치기로 한 우리까지도, 언제나 더 많은 것을 베풀 수 있다는 깨달음이었다.

 

- 이렇게 세 단계에 걸친 변화는 마치 승려로서 얻을 수 있는 모든 경험의 축소판 같았다. 첫째, 우리는 외부의 것과 자존심을 놓아주었다. 둘째, 우리는 내 가치를 인식했고,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어도 여전히 봉사할 수 있다는 사실을 배웠다. 셋째, 우리는 계속해서 더 높은 수준의 봉사를 찾아다녔다. 이 여행을 통해 나는 언제나 더높이 올라갈 여지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언제나 더 많은 것을 베풀 수 있다 

- 대학에 다닐 때 나에게 영감을 주었던 강연에서 가우랑가 다스는 이렇게 말했다. "나무를 심되 그늘을 바라지 마십시오." 이 문장이 내 마음을 사로잡았고 내 삶을 상상도 못 했던 궤도에 올려놓았다. 이제 고백할 것이 있다. 여러분에게 아직 얘기하지 않았던 사항이다. 앞서 외부의 소음과 두려움, 질투, 잘못된 목표 같은 것들의 영향력을 놓아주는 방법에 관해 이야기했다. 마음과 자존심, 일상의 습관을 이용해 다르마에 따라 살며 성장하는 방법에 관해 알아보았다. 이 모든 것은 만족스럽고 의미 있는 삶을 영위하자는 목표를 향한 것이었다. 이 역시 가치 있는 길이다. 하지만 여기서도 또 소셜 미디어나 내 수업에서도, 내가 강연하는 모든 매체에서도, 아직 공개하지 않은 것이 있다. 내가 승려로 지내면서 배웠고, 내 삶의 모든 날에 함께하는 가장 중요한 교훈이다.  

 

- 가장 고귀한 목적은 봉사하는 삶이다. 

 

- 내가 무슨 봉사를 대단한 비밀로 간직해왔다는 얘기가 아니다. 나는 봉사를 자주 언급한다. 봉사가 우리의 모든 삶에서 중심적 역할을 차지해야 한다고 믿고 있지만, 지금까지 이 부분을 이야기하지 않고 기다렸다. 솔직히 나는 사람들이 이 아이디어에 어느 정도는 반발심을 갖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물론 우리는 어려움에 부닥친 사람들을 돕고 싶어 한다. 어쩌면 이미 그렇게 할 방법을 찾은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일과 삶이 요구하는 사항과 그로 인한 압박감 때문에 제한을 받는다. 우리는 내 문제를 먼저 해결하고자 한다. "제이, 도움이 필요한 건 바로 나예요! 남을 돕는 데 헌신하기 전에 해결해야 할 것들이 너무나 많다고요." 맞는 말이다. 나도 힘든데 이타주의를 생각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바로 그 점이 내가 승려로 지낼 때 배운 교훈이다. 이타심은 내면의 평화와 의미 있는 삶으로 가는 가장 확실한 길이다. 이타심은 자아를 치유한다. 

 

- 수도자들은 봉사하는 삶을 산다. 수도자처럼 생각하는 것은 궁극적으로 봉사를 의미한다. <수도자의 길>은 베네딕트회 수사 돔 알레드 그레이엄 Dom Aelred Graham의 말을 다음과 같이 인용하고 있다. "수도자는 그가 본인을 위해 무언가를 얻으려고 수도원에 들어왔다고 생각할지 모른다. 평화, 안전, 조용함, 기도하는 삶 공부, 가르침 같은 것 말이다. 그러나 그의 소명이 진짜라면, 무언가를 취하러 온 것이 아니라 베풀기 위해 왔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 우리는 자연이다. 유심히 관찰해보면 자연은 늘 봉사하고 있다. 태양은 열과 빛을 공급한다. 나무는 산소와 그늘을 준다. 물은 갈증을 해소한다. 우리는 수도자들처럼 자연의 모든 것을 봉사로 볼 수 있다. <스리마드 바가바탐>에 따르면, "이 운 좋은 나무들을 보라. 나무는 순전히 남을 위해 산다. 나무는 바람과 비, 열, 눈을 견디며 우리가 몸을 피할 곳을 제공한다. 자연과 하나가 되는 유일한 길은 봉사다. 그렇다면 우주와 궤를 같이하는 유일한 길도 봉사다. 우주가 하는 일이 그것이기 때문이다."  

 

-  모든 물질적 소유를 벗겨내고 이 기준을 엄격히 적용하는 종파도 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우리는 생계를 위해 일해야 한다. 우리는 결국 무언가를 소유하게 된다. 그러나 내가 가진 것을 어떻게 사용하는지는 살펴볼 수 있다. 내 집을 활용해 커뮤니티를 키워갈 수 있다. 돈과 자원을 내가 믿는 대의를 지지하는 데 사용할 수 있다. 필요한 사람들을 위해 재능을 기부할 수 있다. 가진 것을 좋은 일에 쓴다면 무언가를 소유하는 것은 잘못된 일이 아니다.

 

- 아슈람에서는 "일은 어떠셨어요?"라고 묻는 대신에 "오늘 봉사하셨어요?"라고 묻곤 했다. 말하자면 승려들의 정수기 앞 수다 같은 것이었다. 잠깐 장애물은 모두 치워두고, 모든 사람이 봉사의 마음가짐을 갖고 있다고 한번 상상해 보라. 우리는 새로운 질문을 해볼 수 있을 것이다. '어떻게 하면 이게 더 큰 목적에 도움이 될까? 나는 직장에서, 집에서, 우리 공동체에서, 주변 사람들에게 어떻게 봉사하고 있을까? 어떻게 하면 내 재능을 가지고 타인에게 봉사하고 세상을 바꿀 수 있을까?' 재무 분야의 능력을 활용해 자선 활동을 하는 엠마 슬레이드를 기억할 것이다. 여러분도 이렇게 자문해 보라. '내가 하는 일 중에서 타인에게 쓸모 있는 것은 뭐가 있을까?' 

 

- 앞서 행복과 감사하는 마음이 공동체 전체에 퍼져나간다는 얘기를 했다. 봉사도 마찬가지다. 봉사할 때는 친구에게 이야기하라. 그러면 또 누군가 동참할지 모른다. 누군가 동참하면 그들은 친구 두 명에게 이야기할 것이다. 봉사에 참여하는 것은 우리 문화에 봉사의 가치를 전파하는 길이기도 하다.  

 

- 우리는 오직 한 사람만 생각한다. '자기 자신' 말이다. 어쩌면 가족까지 포함해서 보살피는 사람의 범위가 약간 더 넓을 수도 있을 것이다. 기껏해야 5~10명 정도가 서로를 걱정하는 셈이다. 하지만 보살핌의 반경을 확장하면 사람들이 그걸 느낀다.

 

- 현대사회에서는 아무리 남을 돕고 싶어도 경제적, 정서적으로 안정되고 싶은 욕구 때문에 봉사의 마음가짐에서 다른 쪽으로 한눈을 팔게 된다. 길을 잃고 단절된 사람에게는 봉사가 번잡스럽고 별로 만족스럽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딱 맞는 시기가 대체 언제란 말인가? 그런 때가 오기는 올 것인가? 내적 탐구에 종점이란 없다. 이는 계속 진행되는 과정이다. 당신의 문제가 완전히 해결되는 때는 절대 오지 않을 것이다. 

- 스스로를 돌봐야 한다. 맞는 말이다. 그러나 봉사할 시간과 돈이 충분해질 때까지 기다리지는 마라. 충분한 때는 절대로 오지 않을 것이다. 돈이나 물질적 부와 우리의 관계는 간단히 세 가지 모드로 표현할 수 있다. 첫째는 이기적 모드다. 더 많이 원하고, 최대한 많이 원하고, 그 전부가 나를 위해 원하는 때다. 둘째는 충분한 모드다. 그럭저럭 딱 맞는 정도를 가지고 있고, 괴롭지는 않지만, 베풀 것도 없는 때다. 셋째는 봉사의 모드다. 내가 가진 것을 베풀고 싶고, 더 많이 베풀고 싶어서 더 많이 원하는 때다. 충분하다는 마음가짐에서 봉사의 마음가짐으로 옮겨 간다는 것은 나와 소유의 관계가 바뀐다는 뜻이다. 초연해질수록 내 시간과 돈을 놓아주기가 더 쉽다.

- 나는 봉사하기 위해 아슈람에 갔지만, 어쩔 수 없이 작별해야 할 순간이 왔다. 나에게 친형과 같았던 한 스님이 나를 한쪽으로 데려가 이런 얘기를 해주었다. "건강 상태가 안 좋고 승려로 지내는 게 본인과 맞지 않다고 해서 봉사할 수 없는 것은 아닙니다. 결혼하거나 셰프가 되거나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 양말을 꿰매는 게 본인이 봉사를 더 잘할 방법이라고 생각한다면 그게 우선입니다. 인류에 대한 봉사가 더 높은 목표니까요." 스님의 말은 내가 떠난다고 해서나의 의도가 바뀐 것은 아니라는 뜻이었고, 나는 그 말에 안도했다. 

 

- 우리는 크고 작은 여러 가지 의도를 가지고 봉사할 수도 있다. 호감을 얻고 싶어서, 나 자신을 뿌듯하게 생각하고 싶어서, 훌륭하게 보이고 싶어서, 사람들을 만나고 싶어서, 어떤 보상을 받기 위해서 봉사할 수도 있다. 그러나 친구의 이사를 도와주고, 친구를 위해 요리를 하고, 친구의 생일을 축하하다가 문득 '왜 아무도 나를 도와주러 오지는 않지?' 혹은 '왜 아무도 내 생일을 기억하지 않지?'라는 생각이 든다면, 핵심을 놓친 것이다. 그것은 내가 베푸는 사람, 상대가 받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것이고, 내가 봉사했으니 상대가 나에게 빚졌다고 착각하는 것이다. 진정한 봉사는 보답을 기대하지도, 심지어 원하지도 않는다. 그런데도 봉사 그 자체가 종종 행복을 준다. 

 

- 봉사가 나에게 기쁨을 준다면, 그 봉사가 이기적일까? 봉사가 내 자녀에게 교훈을 준다면, 그 봉사가 이기적일까? 당연히 아니다! 특정한 종류의 베풂이 나를 행복하게 하고 어떤 식으로든 도움이 된다면 거기서부터 시작해도 된다. 나는 아슈람을 떠난 후에 런던에서 뭄바이까지 사람들을 인솔한 적이 있다. 영국, 기타 유럽 사람들이 아남리타와 함께 '점심 봉사'를 할 기회를 주기 위해서였다. 나와 동행했던 사람 중에는 열세 살, 열네 살 자녀를 데려온 사람도 있었다. 아이들은 많은 것을 갖지 못한 사람들을 목격하고 그들이 감사해하는 것을 느끼면서 돌아갔다. 그 아버지는 자녀들이 완전히 바뀐 것에 크게 감동했다. 순전히 이타적인 여행은 아니었지만(그는 자녀들이 배우고 성장하길 바랐다) 여전히 옳은 일이었다. 실제로 그 아버지가 자녀들이 배울 기회라고 생각한 것은 봉사가 서로에게 도움이 되는 예다. 

 

- 우리 중에는 불안이라든가 우울, 외로움 같은 정신적 문제를 겪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반면에 봉사가 필요한 많은 사람에게 가장 큰 어려움은 의식주처럼 기초적인 것들이다. 물리적으로 그런 사람들을 도우면서 정신적 문제를 치유할 수 있다. 따라서 봉사는 호혜적인 교환이다. 그들을 도우면서 당신은 누구도 구원하고 있는 게 아니다. 당신도 그들 못지않게 도움이 필요하다.

 

- 그저 봉사하겠다는 마음을 가지고 내가 이미 하는 일을 더 높은 목적과 연계할 방법을 찾으면 된다. 다르마를 직업에 접목하듯이, 봉사를 다르마에 접목하라. 똑같은 일을 해도 중요한 것은 정신이다. 사랑과 의무의 렌즈로 세상을 볼 수도 있고, 필요와 강요의 렌즈로 세상을 볼 수도 있다. 사랑과 의무가 행복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더 클 것이다.

 

- 처음에는 조심조심 체스를 두었으나, 이내 상대의 체스 기술이 기껏해야 평범한 수준임이 드러났다. 분명히 그가 이길 것이다. 젊은이는 금세 게임에 몰입했고 늙은 스님을 이기기 시작했다. 큰스님은 칼을 갈기 시작했다. 그제야 젊은이는 테이블 맞은편의 늙은 스님을 바라보았다. 현명하고 차분한 얼굴의 스님은 묵묵히 복종하는 듯했고, 자신을 기다리고 있는 게 분명한 죽음도 전혀 두렵지 않은 듯했다. 그제야 미몽에서 깬 젊은이는 이렇게 생각했다. '내가 이분을 죽일 수는 없어. 이분의 목숨이 내 목숨보다 가치 있어.' 그때부터 젊은이의 플레이가 바뀌었다. 젊은이는 일부러 게임에서 지기 시작했다. 

- 경고도 없이 큰스님은 상을 엎어버렸다. 체스 말들이 곳곳으로 흩어졌다. "오늘은 승자도 패자도 없습니다." 큰스님이 말했다. 게임에 지고 있던 스님의 차분한 행동은 변화가 없었다. 반면에 기절초풍하게 놀란 젊은이는 어마어마한 안도감을 느꼈다. 나이 든 스님이 젊은이에게 말했다. "집중하는 능력이 있으시군요. 다른 사람을 위해 목숨을 내놓을 의향도 있으시고요. 그건 연민입니다. 여기에 들어와 그 정신을 더 발전시켜 보세요. 당신은 승려가 될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 캠페인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그는 수차례 위협받고 두들겨 맞았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세상은 아동 노동을 종식할 능력이 됩니다. 우리에게는 기술이 있습니다. 자원이 있습니다. 법과 국제 조약이 있습니다. 우리는 모든 것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타인에 대한 연민입니다. 나의 투쟁은 연민을 전 세계로 확장하기 위한 것입니다." 

- 사티아르티처럼 전 세계를 하나의 가족처럼 생각한다면 봉사해야겠다는 동기가 생긴다. 내 자녀가 노예처럼 일하거나 내 부모가 노숙자가 되는 것을 바라지는 않을 것이다. 왜 남의 자녀나 부모에게는 그런 고난을 바라겠는가? 내 세상에 갇혀서 타인이 어떻게 사는지 보지 않는다면 봉사에 관심을 가질 수 없을 것이다. 남의 고통을 목격하면 우리는 다 함께 공유하는 인간애를 느끼고 뭔가 행동을 취해야겠다는 동기를 얻게 된다.

 

- 사티아르티 같은 영웅들 그리고 수도자들에게는(이상적으로는 우리 모두에게도) 나와 남이 따로 없다. 지금 현재 우리의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나 대의는 수없이 많다. 세상 모든 사람이 해결해야 할 일이다. 그 혜택은 도움을 받는 사람과 우리 모두에게 즉시 나타날 것이다. 

 

-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보면 절대로 외면하지 말아야 하지만, 어떤 종류의 봉사를 내가 가장 잘할 수 있는지 알아내 거기에 관심을 집중하는 것도 가능하고 또 필요한 일이다. 당신이 가진 연민에 기초해서 무엇을 봉사할지 선택하라. 불교학자이자 환경운동가인 조애나 메이시는 이렇게 쓰고 있다. "모든 걸 다 할 필요는 없다. 마음이 끌리는 일을 하라. 효과적인 운동은 사랑에서 나온다. 사랑은 멈출 수 없으며 그것으로 충분한 것이다." 

 

- 봉사로 가는 한 가지 방법은 내가 가장 잘 아는 고통을 치유하는 것이다. 내 인생에서 길을 잃고 어려움에 빠졌다고 느꼈던 세 번의 순간을 적어보라. 우울증에 걸려서 도움을 받았을 수도 있다. 교육을 받고 싶었으나 형편이 되지 않았을 수도 있다. 길잡이가 필요했지만 딱 맞는 선생님을 만나지 못했을 수도 있다. 각 영역의 고통과 관련된 자선 단체나 운동을 찾아보라. 십 대를 위한 상담 전화, 장학 기금, 멘토링 프로그램, 정치가 후원 등도 있을 것이다. 이제 그 옵션 중에서 나의 다르마에 맞는 봉사 기회를 가져본 적 있는지 살펴보라. 다르마를 통해 봉사하고 내가 공감하는 고통을 치유하는 이 방법은 바가바드 기타의 철학과도 일맥상통한다. 바가바드 기타는 당신이 어디에 있든 당신 자신을 만나며 더 높은 곳에 이를 것을 격려한다.

 

- 지금까지 감사와 관계, 봉사를 통해 주변 사람들과 소통하는 방법을 알아보았다. 수련과정에 소리명상을 결합하여 우주의 에너지와 연결되면 좋을 것이다. 소리는 우리를 다른 곳으로 데려간다. 노래 한 곡은 고등학교 시절의 추억으로 우리를 데려갈 수도 있고, 춤을 추고 싶게 만들 수도 있고, 열정에 불을 붙일 수도 있다. 말은 그 자체로 힘을 갖고 있다. 말은 우리가 세상을 보는 방법, 성장하는 방법을 바꿀 수 있다. 주문을 외면 우리 자신이 이 에너지를 만들어낸다. 소리 명상은 말과 노래를 통해 우리를 우리의 영혼 또는 우주와 연결해 준다. 

 

- <아그니 푸라나 Agni Purana>와 <바유 푸라나 Vayu Purana>를 비롯한 고대 경전에는 주문을 외는 방법과 이유가 나와 있는데, 소리의 반복이 우리를 정화한다고 말한다. 소리는 마치 영혼에 정기적으로 목욕을 시켜주는 것처럼 몰입을 가져온다. 몸에 물 한 방울을 떨어뜨리고 깨끗하기를 바랄 수는 없다. 깨끗해지려면 물속으로 들어가야 한다. 

- 소리의 가치를 인정하는 것은 현대에 와서도 마찬가지였다. 전설의 발명가 니콜라 테슬라 Nikola Tesla는 이렇게 말했다. "우주의 비밀을 찾고 싶다면 에너지, 주파수, 진동으로 생각하라." 테슬라는 진동을 이용해서 치유의 장을 만들어내는 기계들을 광범위하게 실험했다. 무슨 신비주의 얘기처럼 들릴지 모르겠지만 실제로 현대과학은 테슬라의 진동식 치유 연구를 부활시키는 중이다. 현대 뇌과학 연구 역시 고대의 치유 의식이 가진 치유력에 대한 과학적 설명을 찾아내기 시작했다. 반복적인 북소리나 노래 등이 무의식으로 가는 길을 열어줄 수 있다든가 하는 것처럼 말이다. 

- 아래에서 설명하는 소리 연습을 다음과 같이 시작하라.

1. 편안한 자세를 취한다. 의자에 앉거나 쿠션을 사용해 똑바로 앉거나 눕는다.
2 눈을 감는다.
3. 시선은 아래를 향한다.
4. 이 자세에서 마음을 편히 한다.
5. 차분함, 균형, 느긋함, 고요함, 평화로움을 자각한다.
6. 마음이 딴 길로 벗어나면 언제든지 부드럽게 다시 마음을 차분함, 균형, 느긋함, 고요함, 평화로움으로 데려온다.
7. 아래의 만트라를 세 번씩 왼다. 만트라를 올 때는 각 음절에 집중한다. 진동을 또렷이 들을 수 있을 만큼 또박또박 발음한다. 만트라를 진정으로 진실하게 반복하면서 더 통찰력 있고 축복받고 봉사로 가득 찬 삶을 떠올리며 만트라를 실제로 느껴본다. 

<옴 나모 바가바테 바수데바야>
'아름다움과 지성, 힘, 부, 명성, 초탈의 화신이신 모든 이의 마음에 가득한 신께 칭송을 바칩니다.'
요가 수행자와 현자들이 수천 년간 외워온 만트라다. 우리를 정화하고 힘을 주며 만물에 깃든 신과 연결해 준다. 특히 통찰과 길잡이가 필요할 때 외면 좋다.

<옴탓삿>
'절대 진리는 영원하다.'
바가바드기타에 나오는 만트라다. 신성한 에너지를 나타내며 강력한 축복을 불러들인다. 모든 일은 사랑과 봉사의 실천이다. 중요한 일을 시작하기 전에 된다면 의도를 가다듬고 균형 감각과 일체성을 갖는 데 도움이 된다. 

<로카사마스타 수키노 바반투>
'사방 만물이 행복하고 자유롭기를. 내 삶의 생각과 말, 행동이 모두를 위한 그 행복과 자유에 어떤 식으로든 기여하기를.'

지바묵티(Jivamukti) 요가를 통해 널리 알려진 이 아름다운 만트라는 나 자신을 넘어 멀리 보고 우주 속에 우리의 위치를 기억하라고 일깨워준다.

- 여러분이 이 책에서 뭔가 영감을 얻었길 바란다. 이 책을 손에서 놓으며 새로운 시작을 계획할 수도 있을 것이다. 어쩌면 나의 루틴을 어떻게 바꿀지, 내 마음에 귀를 기울일 새로운 방법은 없을지, 내 삶에 더 감사할 방법은 무엇일지를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내일 아침 일어나면 현실은 또 삐걱거릴 것이다. 알람 소리를 못 듣고 계속 잘지도 모른다. 뭔가가 어그러질 것이다. 중요한 약속이 취소될 것이다. 우주가 갑자기 당신이 회사까지 가는 길을 모두 녹색불로 바꿔주지는 않을 것이다. 책을 한 권 읽으면, 수업을 하나 들으면, 방법을 바꾸면, 모든 게 해결되리라고 생각하는 것은 착각이다. 외부 요인이 완벽한 경우는 절대로 없을 것이다. 완벽이 우리의 목표도 아니다. 삶은 뜻대로 되지 않을 것이다. 내 길을 가면서 그 길에 삶을 데려가야 한다. 이 점을 이해하면 무슨 일이 벌어져도 대비할 수 있다. 

 

- 모든 사람이 평화와 목적을 찾을 수 있는 만능 대책은 없다. 그곳에 도착하기 위해서는 나만의 속도로 내가 원하는 때에 내가 삶에서 원하는 것에 반응하고, 대처하고, 헌신하는 데 초점을 맞추도록 내 마음을 훈련해야 한다. 삶이 갑자기 틀어지면 그 초점으로 다시 돌아가야 한다. 내가 친절하기로 결심했는데, 누군가 나에게 무례하게 군다면 되돌아가는 게 내가 원하는 일일 것이다. 아침에 일어나 직장에서 내 다르마에 초점을 맞추겠다고 결심했는데, 상사가 나의 강점과 맞지 않는 과제를 준다면 내 다르마를 사용할 방법을 찾아내는 것은 내 몫이다. 실패했다면 과정을 비난하지도, 당신 자신을 비난하지도 마라. 회복하고 다시 내가 원하는 것에 유연하게 초점을 맞출 자유를 자신에게 줘야 한다. 세상은 내 편도, 남의 편도 아니다. 매 순간 내 현실을 창조하는 사람은 나다.
 
- 이 책 곳곳에서 우리는 패러독스와 마주쳤다. 두려움과 멀어지려면 두려움에 다가가야 한다고 했다. 루틴 속에서 새로운 것을 찾고, 자신감과 겸손을 가지고, 이타적이 되도록 충분히 이기적이어야 한다고 했다. 우리는 이분법적 세상에 살고 있다. 패러독스가 좋은 점은 두 가지 상반된 생각이 공존할 수 있다는 점이다. 삶은 컴퓨터 프로그램이 아니다. 삶은 춤이다. 

 

- "춤을 출 줄 모르는 영적 지도자는 신뢰하지 마라." 춤을 출 때는 규칙이 없다. 어떤 음악이 나오든 마음을 열어야 한다. 우리는 강점이 있고 약점이 있다. 다음 동작에서 넘어지거나 망설일 수도 있고, 열정이 지나치는 순간도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멈춰서는 안 된다. 무질서하더라도 아름답게 계속해서 춤을 추어야 한다. 수도자의 마음은 댄서처럼 유연하고 자제력이 있으며 언제나 현재에 충실하다.

 

- 유연성을 찾고 자제력을 갖는 데 명상보다 더 좋은 방법은 없을 것이다. 명상은 춤을 추는 동안 다음 동작을 알아낼 수 있게 도와준다. 명상하면 이 순간 최선의 모습을 발휘하기 위해 지금 당장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할지 분명히 알 수 있다. 호흡은 마음과 연결되고, 노래를 부르면 영혼이 고양되며, 그렇게 활력이 넘치고 합일된 순간에 답을 찾을 수 있다.

 

- 앞서 세 가지 유형의 명상을 소개했다. 이제 그 세 가지(호흡법, 떠올려보기, 만트라)가 모두 포함된, 매일 할 수 있는 연습을 알려줄 것이다. 형태는 약간 다르지만 나도 이 명상을 매일 한다. 아침에 양치와 샤워를 한 후에 가장 먼저, 그리고 밤에 잠자리에 들기 전에 가장 마지막으로 이 명상을 하는 습관을 들여라. 

 

- 이 책에서 우리가 함께 고민한 주제들을 생각해 보라. 죽음에 직면했을 때 우리는 반드시 온전히 정화되고, 타인의 요구라고 생각하는 것에서 자유로운 상태여야 한다. 비교와 비난에서 자유롭고, 내 두려움의 뿌리를 직면한 이후여야 한다. 물질적 욕망에서 자유롭고, 다르마를 따르며 살고 있어야 한다. 내 시간을 잘 보냈고, 마음의 요구에 굴복하지 않았어야 한다. 자존심에서 자유롭고, 받은 것보다 더 많이 베풀었어야 한다. 내가 받은 모든 것을 나눠주고, 자격에서 자유롭고, 잘못된 인연이나 기대에서 자유로워야 한다. 스승이면서 동시에 학생으로 남았던 삶을 돌이켜본다면 얼마나 보람될지 한번 상상해 보라. 

 

- 언젠가 죽을 거라는 사실을 성찰하면 내가 가진 시간을 귀하게 여기고 내 에너지를 현명하게 쓰게 된다. 목적이 없이 살거나 봉사할 기회를 잃거나 꿈과 열망을 마음속에 품은 채로 그대로 죽기에는 인생이 너무 짧다. 무엇보다 우리가 떠날 때는 우리가 오기 전보다 사람들은 더 행복해지고 더 살기 좋은 곳이 되어야 한다. 

 

- 단점을 고쳐가는 것은 끝이 없는 과제다. 인내심을 가져라.

어느 학생이 스승에게 물었다. "다르마를 충실히 좇고 있습니다. 깨달음을 얻으려면 얼마나 걸리겠습니까?" 
스승은 숨도 쉬지 않고 말했다. "10년입니다."
학생이 참지 못하고 말했다. "정말 열심히 노력한다면 어떻습니까? 필요하다면 매일 하루 10시간 이상 수련하겠습니다. 그러면 얼마나 걸리겠습니까?"
스승은 잠시 생각하고 나서 말했다. "20년입니다."
학생이 서두르려 한다는 바로 그 사실이 10년이 더 걸릴 거라는 증거였다.

- 산스크리트어로 '수도자'를 뜻하는 '브라마차리아 brahmacharya'는 '학생'이라는 뜻도 되지만 '에너지를 바르게 사용한다'는 뜻도 된다. 수도자의 마음가짐을 가졌다고 해서 모든 것을 다 알아낸 것은 아니다. 수도자의 마음가짐은 에너지를 바르게 사용하는 길이 학생으로 남는 것임을 인정한다. 배움은 영원한 과정이다. 우리가 머리를 한 번만 자르고 말거나 마당의 잔디를 한 번만 깎지는 않는다. 마찬가지로 수도자처럼 생각하는 일은 계속해나가야 한다. 마찬가지로 수도자의 마음가짐을 유지하려면 자각과 원칙, 근면, 집중, 끊임없는 실천이 필요하다. 쉬운 일이 아니지만 필요한 도구는 이미 우리 손에, 가슴에 머리에 있다. 당신은 수도자처럼 생각하는 데 필요한 모든 것을 가지고 있다
 
- 우주를 관통하는 우리의 길을 찾으려면 먼저 진심으로 질문해야 한다. 새로운 곳으로 여행을 떠나거나 아무도 나를 모르는 곳으로 가도 좋다. 자동조종 모드를 해제하고 나 자신과 주변 세상을 새로운 눈으로 보라. 알아채고, 멈추고, 바꿔라. 나에게 영향을 미치는 힘을 객관적으로 관찰하고, 망상이나 잘못된 믿음과 결별하고, 나에게 의욕을 불어넣고 내가 의미 있다고 느끼는 것들을 계속해서 찾게끔 마음을 훈련하라. 

 

- '이 순간 수도자라면 어떻게 할까?'
의사결정을 내릴 때, 다툼이 있을 때, 주말 계획을 세울 때 겁이 나거나 화가 나거나 길을 잃었을 때, 이렇게 질문을 하라. 99퍼센트는 답을 찾을 것이다. 

- 그리고 결국 진정한 자아를 발견하고 나면, 수도자라면 어떻게 할지 물어볼 필요조차 없을 것이다. 그냥 이렇게 물으면 될 것이다.

'나는 어떻게 할까?'





 

 

 

 
수도자처럼 생각하기
★★★ 아마존 ㆍ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 1위 ★★★ 영국 《선데이타임스》 베스트셀러 1위 ★★★ 전 세계 45개국 출간! 100만 부 이상 판매! ★★★ 4천만 팔로워,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플루언서 “이 책 한 권이면 지금 당신이 있는 곳 어디에서나 불안을 극복하고 마음의 평화를 이룰 수 있다!” 인류 역사상 현대와 같이 ‘행복’ 추구에 이토록 집착한 적은 없다. 미디어에서도 늘 행복에 관한 이미지를 제공하지만, 명성, 돈 등 무엇도 우리를 만족시킬 수 없다. 대신 우리는 점점 더 커지고 있는 악순환에 갇혀 결국 우울증, 환멸, 불만, 불행, 피로에 시달린다. 현대사회의 높은 자살률도 이를 방증한다. 전직 승려이자 동기부여 철학자, 전 세계인의 마음챙김 코치인 저자는 행복을 좇지 않으면서도 평화롭고 의미 있는 삶을 영위할 수 있도록 ‘수도자처럼 생각하기’를 권한다. 저자가 말하는 수도자의 사고법은 수천 년 전 발생하여 오늘날에도 유의미한 가치를 지닌, 시대를 초월한 고전의 지혜를 비롯해, 저자 자신이 일상에서 직접 적용하고 있는 고대의 여러 가르침을 바탕으로 고안한 실천적 삶의 양식이다. 저자는 실제 인도에서 승려로 지내며 수도자의 삶에서 배운 영원한 지혜를 매일 수행할 수 있는 실용적인 방법으로 다듬고, ‘놓아주고, 성장하고, 나누는’ 세 단계를 안내한다. ‘수도자처럼 생각하기’의 목표는 자존심, 질투, 욕정, 불안, 분노, 원망, 응어리에서 자유로운 삶이다. 저자에 따르면 현대인에게 수도자의 마음가짐을 장착하는 것은 가능할 뿐만 아니라 ‘필요한’ 일이다. ‘행복’해지려면 결국 자신의 내면에서 차분함과 고요함, 마음의 평화를 찾아야 한다. 결국 이 책은 삶에서 평화와 목적을 찾고 진정한 행복을 얻으며, 불안과 우울, 스트레스에 시달리지 않게 한다. 이 책을 읽는 것만으로 행복을 위한 불변의 지혜를 당신의 가정이나 직장 어디로든 옮겨올 수 있다. 개인적 차원에서 보면 이 책은 늘 평안한 마음을 훈련하고 목적 있는 하루를 보내도록 도와줌으로써 마음의 면역력을 높이는 책이다. 한편 이 책은 오래된 지혜를 현대 과학과 심리학의 탄탄한 연구 결과로 뒷받침하고, 현대인에게 적합한 형식과 내용을 취했다는 점에서 인류에게 값진 자산이라 할 만하다. 뇌과학이나 심리학의 방법론보다 한 차원 더 깊고 근본적인 차원의 지혜를 담아내면서도 쉽고 공감력 높게 쓰인 이 책은 전 세계 45개국 백만 명의 독자가 입을 모으듯, ‘인생을 바꿀 양서’로 남을 것이다.
저자
제이 셰티
출판
다산북스
출판일
2021.0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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