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 : 강태진
출판 : 비아북
출간 : 2016.09.19
저자 : 강태진
출판 : 비아북
출간 : 2016.09.23
남쪽 바다에 사는 친구가 미더덕을 보내주었다. 오만둥이가 아니라 미더덕. 봄에는 향기로운 미더덕을 먹어야 진짜 봄이라며 농을 던지면서. 한동안 비건을 지향하며 살았었는데, 플렉시테리언에 안착하는 참이었다. 감사한 마음으로 '미더덕 회'를 즐겨보았다.
맛있었다. 멍게와는 다른 달큼함, 탄력 있는 식감, 친구가 말한 '진짜 봄내음'이 뭔지 알 것 같은 향. 정말 이제는 나도 봄 하면 미더덕이 생각날지도 모르겠다고 웃으며 감사를 표했다.
그리고 또 다른 것도 생각났다. 봄이면 생각나는 많은 기쁨들. 그리고 많은 슬픔들.
매일 일어나고 스러지는 많은 것들 중에서, 그래도 오래도록 기억에 남았으면 하는 것들이 있다.
4월에는 매일이라고 해도 좋을 만큼 많은 일들이 있어왔다. 4월의 제주는 유채꽃이 아름답기만 하지는 않았다. 그리고... 그리고 또.
슬렁슬렁 책정리를 하다가 마침 이 책이 눈에 띄어 흰소리를 늘어놓아 보았다.
여전히 절대적인 답이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것에 사로잡히면 어떤 일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일어날 수 있는지를 바라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눈을 뜨고 바라보다 보면 자신만의 답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누군가에게는 이것이 답일 테고, 또 누군가에게는 저것이 답일 테다. 모든 비극은 나의 답을 상대의 답으로 만들고자 하는 것에서 시작되는지도 모르겠다.
당신에게는 무엇이 옳은 일이었는가?
오늘따라 국기에 대한 맹세가 아득히 멀다. 지금 청소년들도 학교에서 이걸 외우고 있을까?
'나는, 자랑스러운 태극기 앞에, 조국과 민족의 무궁한 영광을 위하여, 몸과 마음을 바쳐...'
- 1987년 그 시절의 기억을 더듬어 보면, 친구 서넛과 돈을 모아 사본 성인만화잡지 '주간 만화'의 끈적한 장면과 부산 서면 극장에서 본 '미미와 철수의 청춘 스케치'의 주인공 강수연의 예쁜 얼굴이 떠오릅니다. 매캐한 최루탄 냄새에 재채기를 해대며 수업을 받았던 교실 풍경도 생각납니다. 하지만 곧 있을 88 서울올림픽에 대한 기대감과 설렘으로 다들 들떠 있었지요. 북한에 큰 댐이 들어서자 우리도 댐을 만들어야 한다며 돈을 걷은 일도 있었습니다. 전 국민을 대상으로 한 사기 행각에 저도 무척 진지하게 나라를 걱정했습니다. 그때는 애국자가 아닌 사람이 없어 보였지요.
- 재벌 기업이 해체되고, 경찰이 대학생을 고문하다 죽이고 시위하는 대학생에게 직격탄을 쏘아 그 목숨을 빼앗았습니다. 국가 정보기관이 폭력배를 사주해 야당의 당사를 습격했고, 올림픽 때 한국을 방문할 외국인들에게 부끄럽다며 달동네와 노점상을 철거했습니다. 그게 1987년 대한민국의 또 다른 모습이었습니다.
- 이 작품을 준비하면서 5공화국 당시 조작되었던 시국 사건에 관해 이런저런 조사를 했습니다. 어떤 식으로 사건이 만들어졌고, 그 과정에 어떤 피해자가 생겼으며, 가해자는 어떤 사람이었는지를 조사하던 중 가해자에게서 한 가지 공통점을 발견했습니다. 그것은 바로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애국심'이었습니다. 그들은 출세나 금전 같은 사적 욕망을 채우기 위해서가 아니라 진정 ‘국가’를 위하는 마음으로 그런 일을 했습니다. 그래서 죄책감은커녕 오히려 하늘을 찌를듯한 애국자로서의 자부심을 지닐 뿐이었습니다. '국가'를 위해 '국민'에게 그런 짓을 하다니 앞뒤가 맞지 않지만 실제로 그랬습니다. 그들 머릿속의 '국가'란 과연 무엇일까, 그들에게 '조국'과 '민족'은 '인간' 그 자체보다 더 우위에 있는 가치인가를 파헤쳐보고 싶었습니다.
- 장실장, 즉 장세훈은 짐작하셨다시피 5공화국 당시 안기부장을 지냈던 장세동이 그 모델입니다. 그래서 처음 시나리오에서는 '장부장'이었는데 이때 '부장'은 일반 회사의 직급이 아니라 안전기획부의 '장'으로 부총리급의 매우 높은 직책입니다. 이렇게 높은 직책의 인물이 일선에서 활동하는 도훈이 정도의 인력과 얼굴을 맞대고 일한다는 설정이 맞지 않아 직급을 낮췄습니다. 물론 개차반 아들이 있다는 것은 허구입니다. 장세훈은 이야기의 가장 중심에 선 통제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박도훈의 과감한 일탈도 장세훈의 영역을 벗어날 수 없죠. 이 등장인물의 특징은 그 정신에 있는데 자신이 생각하는 이른바 '조국과 민족'을 위해서라면 잘못된 방법을 선택해도 좋다고 믿는다는 것입니다. 어쩌면 잘못된 방법이라는 생각 자체가 없을 수도 있겠네요.
- 자신이 했던 일에 대한 자부심과 조직으로부터 버려졌다는 분노가 뒤섞여 있었습니다. 그 밖에 중앙정보부(안기부의 전신)에서 근무했던 사람이 쓴 자서전도 읽어봤는데, 자신이 과거에 얼마나 '쎈' 사람이었는지 자랑을 늘어놓은 내용이었습니다. 연세도 꽤 드신 분의 글이 마치 한물간 조폭의 치기 어린 회고록 같았습니다. 놀라운 건 이런 사람들의 머릿속에 자리 잡은 가장 높은 가치는 국가와 국민, 조국과 민족이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은 진심이었습니다. 사람의 관절을 뽑고, 요도에 볼펜 심을 박고, 목봉에 매단 사람의 코에 고춧가루 물을 붓고, 성기를 책상 위에 올려놓고 몽둥이로 내려치는 일이 진심으로 조국과 민족을 위하는 마음으로 한 일이었습니다. 물론 본인들의 책에는 이런 내용이 한 줄도 안 나옵니다. 그들의 머릿속에 '사람'은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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