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자가 흐르는 이야기/Book1

[미카미 엔] 비블리아 고서당 사건수첩 1-7

일루젼 2023. 4. 18. 0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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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미카미 엔 / 최고은

역제 : 비블리아 고서당 사건수첩: 시오리코 씨와 기묘한 손님들

출판 : 디앤씨미디어
출간 : 2013.02.28 


저자 : 미카미 엔 / 최고은

역제 : 비블리아 고서당 사건수첩 2: 시오리코 씨와 미스터리한 일상

출판 : 디앤씨미디어
출간 : 2013.06.01


저자 : 미카미 엔 / 최고은

역제 : 비블리아 고서당 사건수첩 3: 시오리코 씨와 사라지지 않는 인연

출판 : 디앤씨미디어
출간 : 2013.09.05


저자 : 미카미 엔 / 최고은

역제 : 비블리아 고서당 사건수첩 4: 시오리코 씨와 두 개의 얼굴 

출판 : 디앤씨미디어
출간 : 2014.02.26


 

저자 : 미카미 엔 / 최고은

역제 : 비블리아 고서당 사건수첩 5: 시오리코 씨와 인연이 이어질 때

출판 : 디앤씨미디어
출간 : 2014.07.23


저자 : 미카미 엔 / 최고은

역제 : 비블리아 고서당 사건수첩 6: 시오리코 씨와 운명의 수레바퀴

출판 : 디앤씨미디어
출간 : 2015.05.01


저자 : 미카미 엔 / 최고은

역제 : 비블리아 고서당 사건수첩 7: 시오리코 씨와 끝없는 무대(완결)

출판 : 디앤씨미디어
출간 : 2017.08.28


 

 

4월 들어서만 200권이 넘는 책들을 처분했다.

 

시작은 단순했다. 빠르게 더워지고 있으니 슬슬 에어컨 청소를 해야겠다는 게 발단이었다. 업체를 알아보다가 문득, 청소 도구들이 들어오려면 거실에 쌓아둔 책들을 치워야겠다는 데에 생각이 미쳤다. 이미 일 년 정도에 걸쳐 다 읽은 책들은 정리해가고 있었지만 여전히 꽤 많은 양의 책이 쌓여있었고, 단시간 내에 읽을 수 있는 양은 아니었다. 

 

그래서 책방으로 옮기려고 방문을 열었다가... '아 이건 진짜 아닌 거 같은데'라는 생각이 들었을 뿐이다. 베란다까지 4면이 전부 책장과 책탑으로 둘러싸여 조심히 발을 디디지 않으면 어딘가 한 두 군데는 떨어지는 책에 두드려 맞는 방은 정상이 아니다. 

 

해서 손닿는 범위에 있는 책들 위주로 판매가 가능한 책은 팔았고, 기증할 책과 버릴 책들을 분류했다. 판매한 책들이 2백여 권이니 처분한 책들까지 합치면 훨씬 더 많을 것이다. 

 

그 결과, 이제 책방은 훨씬 편하게 문을 '열 수 있다'. 개인적으로 그 성과에 뿌듯해하다가 아직도 갈 길이 멀었음을 깨닫고 조금 의기소침해진 상태가 지금이다. 나는 정말 할 만큼 했다    

 

그 과정에서 툭 튀어나온 책이 <비블리아 고서당 사건수첩>이었다. 라이트노벨이라면 다나카 요시키의 <창룡전>이 먼저 떠오르는 편으로, 본격 라노벨 시장이 열리기 전에 책과 멀어졌었기에 이 책이 나온 건 다소 의외였다. 그래도 일단은 고서에 관한 책인 것 같으니 읽어볼까 싶어 시작했다가 꽤 만족스럽게 읽게 되었다. 

 

캐릭터의 설정에 대해서는- 솔직히 취향은 아니었다. 등장 인물 중에서 마음을 끄는 인물이라면 지에코, 그리고 도시오 정도일까. 원하는 바가 뚜렷하고 매력적인 캐릭터를 좋아하는 편이라 서사적인 측면보다는 지엽적인 정보들에서 만족을 얻었다. 나쓰메 소세키나 다자이 오사무 같은 유명 작가들도 다루어졌지만, 국내에는 잘 소개되어 있지 않은 훌륭한 작가와 작품들에 관한 정보를 많이 얻을 수 있었다. 본문 중에 등장한 작품을 모두 구할 수는 없었지만 번역된 작품들 일부를 구해 읽어보려 한다. 결국 책은 또다시 증식한다

 

사실 지금도 스스로에게 '나는 책을 좋아하는가'를 자문하곤 한다. 내게는 이 책에 등장하는 독서광들만큼의 열정과 지식욕이 존재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들 외에도 각자만의 방식으로 책을 즐겨온 사람들도 있고, 그것 또한 애정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적당히 평범하게 즐기는 것도 만족스럽다. '책의 독'으로 가득 차버리면, 어떤 면에서는 모든 걸 버리고 훌쩍 떠나버리게 될지도 모른다. 일단 그렇게 읽어낼 수가 없다  

        

이것이 변명인지 아닌지는. 

지금의 나로서는 답할 수 없다. 

'지금 내가 나인지' 나는 확신할 수 없기 때문이다. 

 

 


   

- 이변이 일어난 건 그때였다. 미닫이문이 덜컹거리며 열리더니 젊은 여자가 가게 안에서 나왔다. 하얀 민소매 블라우스에 남색 롱스커트의 수수한 차림으로, 긴 머리를 느슨하게 땋아 목덜미 위로 틀어 올렸다.

 

- '책을 정말 좋아하는구나.' 
무아지경이란 바로 이런 것을 가리키는 것이리라. 다소 특이하기는 하지만 이렇게 즐겁고 신나게 독서하는 사람은 처음 봤다. 나로서는 부러울 따름이었다. 무슨 책을 읽는 걸까? 뭐가 그렇게 재미있지? 

 

-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기회를 놓친 자신을 딱히 한심하게 여기지는 않았다. 만남의 기회를 잘 활용하는 사람은 특별한 재능을 가진 이들이다. 평범한 사람들은 그대로 지나쳐버리는 법이다. 나도 평범한 사람답게 평범하게 행동했다. 그뿐이다.

 

- 여러 사람의 손을 거친 오래된 책에는 내용뿐 아니라 책 자체에도 이야기가 존재한다. 나도 어떤 이에게 들은 이야기지만 맞는 말이라고 생각한다. 단, 하나 덧붙이자면 그 '이야기'가 반드시 아름다우리라는 법은 없다. 고개를 돌리고 싶어지는 추한 내용도 있을지 모른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이 그렇듯. 

 

- "굉장하네요." 
저도 모르게 감탄사가 흘러나왔다.
"그렇죠? 일본인들이 가장 사랑하는 작가라 해도 손색이 없죠."

 

- 나는 정식으로 어제의 무례를 사죄하고 사온 레이즌 샌드를 내밀었다. 그녀는 당황한 듯 연신 고개를 저었다.

"아, 일부러 이러시지 않아도 되는데... 저야말로 쓸데없는 이야기를..."

 

- 그때, 이 병원에서 죽기 전에 할머니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어릴 때처럼 지금까지 책을 꾸준히 읽었다면 네 인생은 사뭇 달라졌을 텐데." 
눈앞에 있는 여자는 계속해서 책을 읽어온 사람이다. 지금의 나에게 딱히 불만이 있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이렇게 책에 둘러싸여 살고 싶다고 마음 한구석에서 분명 그런 생각을 했었다. 그리고 또 하나, 나는 다나카 요시오를 떠올렸다. 아마 그 역시 할머니나 그녀와 같은 '책벌레'이리라.

 

- 나는 시다의 기나긴 이야기를 머릿속에서 정리했다. 그가 가게에 들어온 순간부터 순서대로 정확하게 이야기하는 편이 좋을 것 같았다. 
'... 뭐, 나는 가진 것도 없고, 나이도 먹었지만 지금 사는 게 꽤 마음에 들어. 남의 도움을 받지 않아도 입에 풀칠은 할 수 있으니까. 늙은이들이란 아까 그 도둑 할망구처럼 다들 입만 열면 불평불만이잖아. 나한테는 무슨 일이 있어도 팔지 않겠다고 결심한 문고본이 있어. 누구에게나 소중한 책 한 권쯤은 있잖아. 나에게는 고야마 기요시의 <이삭줍기·성 안데르센>이란 단편집이 그래. 읽어본 적은... 없는 모양이군. 공부 좀 하라고.'

 

- '뭐? 달랑 하권이냐고? 정말 몰라서 묻는 건가? 절판본이란 뒷권으로 갈수록 구하기 어려운 법이라고. 상권만 샀다가 하권을 놓치는 사람은 있어도 그 반대는 없잖아? 하권은 시장에 얼마 나오지 않으니, 그만큼 값어치가 올라가는 거지.'  
 

- "사람 대하는 것도, 세상살이에도 서툰 가난뱅이가 아무 불평불만도 없이 산다는 건 그냥 자기 바람이라고 생각했지. 더구나 순진무구한 젊은 처녀가 나타나 다정하게 대해준다니, 그게 있을 법한 일이냐고." 
투덜대는 것 같았지만 시다의 목소리는 부드러웠다. 흡사 손 많이 가는 형제 이야기를 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그걸 알고도 작가는 그 이야기를 썼겠지. 읽으면 알 거야. 그건 달짝지근한 이야기를 쓰는 작가에게 감정이입하는 이야기야." 

 

- "거기서 뭐 합니까?" 
누가 뒤에서 말을 걸었다. 돌아보니 하얀 셔츠를 입은 훤칠한 남자가 절 정문에서 나왔다. 나이는 분명 이십 대 후반. 흐트러진 곱슬머리에날카로운 눈매, 하얀 피부에서 희미하게 향수 냄새가 났다. 가죽 파우치를 들고 있지 않았다면 촬영 중에 빠져나온 모델이라 해도 의심하지 않았으리라. 성묘를 다녀오는 길일까. 
"사람을 기다리는 중입니다."

 

- 학교에서는 겉으로만 친한 척 굴다가 남들이 보지 않는 곳에서는 손바닥 뒤집듯 태도를 바꾼다. 그리고 그걸 뒤에서 자랑스럽게 떠벌리고, 낯선 사람에게 남의 개인 정보를 아무렇지도 않게 가르쳐주다니. 내가 뭐라고 할 입장은 아니었지만 영 듣기 불편했다. 하지만 고스가 나오의 연락처를 알아내야만 했기에 내키지 않아도 휴대전화로 데이터를 옮겨 받았다. 

 

- 이삭줍기는 무척 짧은 소설이라 속이 울렁거리기 전에 끝까지 읽을 수 있었다. 소설가인 주인공은 가난하지만 평온한 나날을 보낸다. 딱히 하는 일 없이 장을 보고, 밥을 지어 먹고, 책을 읽는 생활이다.  

 

- "그 이야기는 작가의 꿈으로 가득 차 있었어요. 처음에는 이런 여자가 세상에 어디 있냐고 생각했지만, 가만히 보니 작가도 꿈이라는 걸 알고 썼더라고요. 그게 분명하게 드러나 있어서 나도 모르게 좋은 이야기라고 생각했어요. 그 책에 실린 다른 이야기도 지금 읽고 있는데, 모두 비슷한 느낌이더라고요."
그렇게 말한 고스가는 무릎에 손을 대고 힘차게 일어났다. 신기하게도 그녀가 방금 말한 감상은 시다의 감상과 비슷했다. 나이도, 성별도, 처지도 전혀 다르지만 같은 책을 좋아하게 되는 사람들은 비슷한 감성을 가지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 "이 책이 내 품으로 돌아온 건 여기 주인 아가씨 덕분이야. 그 애도 그러더라고, 병원에 계속 있었을 텐데 하나부터 열까지 용하게 맞추더라고." 
그리고 잠시 망설이더니 한마디 덧붙였다.
"오싹해질 정도로 딱 맞췄다고 하더군."

나는 살짝 불만을 느꼈다. 분명히 시노카와 씨가 하나부터 열까지 맞추기는 했지만, 나도 적지 않은 공헌을 했다.

 

- "산리오 SF문고는 마니악한 라인업으로 유명했어요. 일본에서는 아직 낯선 비영미권 SF소설과 환상문학을 다수출판했는데, 매출 부진으로 십 년쯤 지나 없어졌어요. 이 브랜드에서만 번역판이 나온 작품이 꽤 많아요. 이곳에서 나온 모든 책을 모으는 SF팬들도 적지 않죠." 
거운을 되찾은 그녀는 여느 때처럼 신이 나 설명했다.

"이 살아있는 시체는 그 가운데에서도 특히 소량만 출판했던 작품이에요. 고서 시장에는 거의 나오지 않고, 지금까지 저희 가게에 들어온 적도 없었죠." 

 

- "이번에는 내가 신세를 졌어. 고마울 따름이지. 하지만..." 
시다는 말을 흐리더니 진지한 표정을 지었다.
"여기 주인 아가씨는 수완이 너무 좋아. 난 외려 그게 걱정되더라고. 머리가 좋은 것도 도가 지나치면 문제가 되지. 그 아가씨는 그런 생각은 못할 테니 자네가 한마디 해주는 게 좋지 않겠나?" 
그때는 지나친 걱정이라고 생각했다. 이 사람을 움직이는 원동력은 책에 대한 애착뿐이다. 그런 사람이 문제를 일으킬 리가 없다. 지금도 그 생각이 바뀐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손톱깎이와 귀이개가 조금 마음에 걸렸다. 그녀에게 악의가 없었던 건 알지만, 다른 사람을 제 뜻대로 조종했다고 볼 수도 있는 문제였다. 만일 조종당한 사람이 이 사실을 안다면 썩기분이 좋지는 않으리라. 

 

- "파본입니까?"

시노카와 씨는 조용히 고개를 저었다.
"언컷 uncut이에요." 

 

- "하지만 저에게 이 책의 가치는 가격과는 아무 상관도 없어요. 면지에 적힌 다자이의 친필 사인이 훨씬 중요하죠."

나는 다시 다자이의 필치를 훑어보았다.
'자신을 가지고 살아가자. 살아있는 이들은 모두 죄인이니.'

 

- "... 우리 모두 악인이라는 뜻인가요?" 
"꼭 그렇지는 않을 거예요. 저는 살아있는 사람은 누구든 업보를 짊어졌다는 뜻으로 받아들였어요." 

 

- "그렇게까지 하지 않으면 책을 내놓지 않을 거라 생각했어. 그 여자는 나와 같은 인종이었으니까. 하지만 내 착각이었지. 그 여자는 책을 좋아하는 게 아니야. 고서를 좋아하는 사람은 절대 그런 짓을 하지 않아."  

- 그녀는 책을 사랑하는 사람이다. 나는 안다. 가족 중에도 '책벌레'가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다나카 도시오는 제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아니, 단언할 수 있어. 내가 아는 한 수집가들은 절대로 책을 불태우지 않아. 어떤 수단을 써서라도 책을 남겨두려 하지." 

- "고우라 씨는 책을 읽지 않으니까..."

시노카와 씨는 주저하며 중얼거렸다.

"무슨 짓을 해서라도 좋아하는 책을 곁에 두고 싶은 마음을 이해 못 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어요. 고작 책 한 권에 불과하니까요."

 

- 벼락을 맞은 듯한 기분이었다. 병원 옥상에서 다나카와 대치했을 때, 나는 분명히 말했다. 고작 책 한 권 때문에 그 고생을 하느냐고. 그리고 그건 다나카뿐 아니라 그녀에게도 비수가 되는 말이었던 것이다. 여기서 처음 일했을 때부터 그런 마음이 없었다고 하면 거짓말이리라. 무엇보다 나는 책을 제대로 접해본 적이 없는 인간이다. 책을 소중히 여기는 사람의 마음은 알지 못한다. 그런 마음을 그녀는 정확하게 꿰뚫어 보았던 것이다. 

 

- "책벌레들은 끼리끼리 어울리는 법이니 어려울지도 모르겠다만." 
할머니 말이 맞아요. 나는 이 사람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던 것이다. 

 


 

- 100엔 세일하는 책들이 쌓인 매대를 가게 밖에 내놓고 다시 들어와서 통로에 쌓인 먼지를 먼지떨이로 털어냈다. 책장뿐 아니라 통로에까지 산더미처럼 쌓인 책 더미에서 오래된 종이 특유의 습한 냄새가 난다.

 

- 이 가게에서 주로 다루는 책은 문학과 역사, 종교 등 인문학 계열 전문서적이다. 최근에 출판된 책은 거의 없다. 고서점이니 당연한 소리겠지만, 여기 들어오기 전에는 어느 집 책장에 꽂혀 있던 책들이다. 모든 책들은 저마다 과거를 짊어지고 있다. 주인이 소중히 아끼며 애독했던 책도 있지만, 방치된 채 기억에서 사라진 책도 있으리라. 여러 사람의 손을 거친 낡은 책에는 내용뿐 아니라 책 자체에도 이야기가 존재한다고 한다. 이곳에 있는 책들도 언젠가 새 주인을 찾아 새로운 이야기를 이어가겠지. 물론 팔릴 경우의 이야기지만.

 

- 어스름한 2층에 발을 들여놓은 순간, 나는 눈이 휘둥그레졌다. 짧은 복도에 내 허리께까지 쌓인 낡은 책무더기가 여기저기 널려 있었다. 모르는 사람이 보면 창고로 착각할지도 모른다. 책무더기 한가운데에 간신히 사람 하나 지날 만한 좁은 길이 이어져 안쪽 미닫이문까지 닿았다. 

 

- 사실 이런 광경이 그리 낯설지는 않았다. 비블리아 고서당의 주인은 책만 읽으면 행복한, 이른바 '책벌레' 같은 사람이기 때문이다. 
 

- "사카구치 안고가 세상을 떠난 뒤 부인이 쓴 수필이에요."

그래서 저자의 성이 사카구치였구나. 사카구치 안고의 이름은 들어본 적이 있다. 꽤 옛날 작가였던 걸로 기억한다. 내가 알 정도니까 분명 유명인이리라. 아쉽게도 그의 작품을 읽어본 적은 없지만. 
"안고와의 첫 만남부터 사별하기까지 있었던 일들을 그린 작품이에요. 죽은 남편과의 생활에 대한 그리움이 묻어나는 좋은 수필이지요."

 

- 불현듯 작은 의문이 뇌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왜 싫다는 책을 몇 권씩이나 가지고 있지?'

소장하고 있다는 건 직접 샀다는 뜻이리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는 책을 어째서 중복으로 샀을까? 나는 걸음을 멈추고 뒤돌아 열린 문을 바라보았다.  

 

- "쓰타카즈라, 키소노, 카케하시, 예요. 무척 재밌는 책이랍니다. 구니에다 시로가 다이쇼 시대에 발표한 전기소설인데, 무로마치 시대 말을 배경으로 미모의 오누이가 부모의 원수인 키소 영주에게 복수하는 이야기죠. 어릴 적에 읽었는데, 등장인물들이..." 

 

- 이곳으로 돌아오고 나서부터 줄곧 가게 안의 책을 보충하거나 바꾸는 작업을 하고 있었다. 원래 고서점에서는 정기적으로 상품을 교환해야 한다고 들었다. 고서점을 찾는 손님들은 대부분 단골들이다. 언제 와도 새로울 것이 없는 가게를 누가 찾겠는가. 다루는 상품은 오래된 책이지만, 계속 똑같은 책을 진열해 놓는 건 아니고, 그래서도 안 된다고 한다. 

 

- 시노카와 씨는 책 울타리 안에서 거의 움직이지 않았다. 물론 매입 손님이 올 때는 나와서 직접 상대했다. 거의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신분증을 보여달라고 말하다가, 책이야기가 나오는 순간 딴 사람처럼 돌변해서 술술 말을 이어나갔다. 손님이 약간 난색을 표할 정도의 변화였다. 볼일을 마친 손님이 가게를 나서면 기진맥진한 얼굴로 다시 책무더기 사이로 들어갔다. 내색은 하지 않았지만 정말 손님 대하는 일이 힘에 부치는 모양이었다. 능력이 없는 게 아니라 성격이 맞지 않는 듯하다.

 

- 지나치게 솔직한 이런 부분이 내겐 오히려 아이다운 천진함으로 비치지만, 부모 입장에서는 불안해질 수도 있겠다. 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고가의 말이 뒤늦게 마음에 걸렸기 때문이다.
 

- "우리 부모님은 나하고 동생이 책을 사면 무슨 내용인지 일단 검사부터 해요. 그건 자식을 믿지 못한다는 뜻이잖아요. 나는 그렇다 쳐도, 동생은 아직 아무 잘못도 하지 않았는데... 제발 유이한테까지 간섭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그래서 부모님을 어떻게 설득할지 조언을 얻으러 왔어요."

 

- "학생이 그러면 앞으로 어떤 어른이 될지 주변 사람들이 걱정하는 것도 당연하지. 부모 마음은 어떻겠어. 내 말이 틀린가?"

"... 뭐 그럴 수도 있겠네요."  
나이가 나이이니만큼 시다는 이 일을 부모의 시선에서 보는 것 같았다. 그렇다고 자식이 읽는 책을 일일이 검열할 필요가 있을까? 중학생이라면 한창 간섭받기 싫어하는 나이다. 오히려 역효과가 아닐까.

 

- "버지스는 알렉스의 폭력이 한때의 일탈일 뿐이라고 생각했어요. 어른이 되면 자기 의지로 선악을 선택할 수 있다고 믿었죠. 시계태엽 오렌지는 젊은이의 성장을 그린 이야기예요. 하지만 미국에서 출간되었을 때 출판사 방침으로 마지막 장이 삭제됐어요." 
"이유가 뭡니까?" 
"미국 출판사 쪽은 이 이야기에 해피엔드는 필요 없다고 생각한 모양이에요. 그런데 그 미국판을 바탕으로 스탠리큐브릭 감독이 영화를 만들고부터 문제가 더욱 복잡해졌어요." 

 

- "작가가 가만히 있었나요?" 
결말이 삭제된 소설로 자기 이름이 전 세계에 널리 알려졌다는 건 작가로서 견디기 힘든 고통이었으리라. 
"경제적인 이유로 미국판 출판을 승낙할 수밖에 없다고 했어요. 하지만 속사정이 복잡해서 단순히 미국 출판사에게만 책임을 물을 수도 없죠. 1970년대에는 영국에서도 마지막 장이 빠진 판본이 출판되었고요. 일본에서는 오랫동안 이 문고본이 읽혔지만, 1980년대에 하야카와쇼보에서 완전판이 출판된 적 있어요. 요컨대 완전판과 마지막 장이 빠진 판이 동시에 서점에 깔린 거죠. 하지만 완전판은 몇 년 뒤에 절판됐어요." 

 

- 그녀는 황급히 책을 덮고 허리를 곧추세웠다. 어슐러 르귄의 <두 사람 이야기(원제는 Very Far Away from Anywhere Else)>라는 책 제목이 보였다.

 

- 눈길을 끄는 건 후지사와 슈헤이와 시바 료타로, 이케나미 쇼타로 같은 작가들의 시대소설과 역사소설이었다. 그리고 경제나 기업 경영에 관련된 경제경영서가 보였다. 그 밖의 책은 찾아볼 수 없었다.    

- "희귀본이네요." 
시바 료타로라면 나도 안다. 언젠가 드라마로 제작된 <언덕 위의 구름>을 본 적이 있다. <돼지와 장미>라는 작품은 처음 들었다.

 

- '별다른 동기는 없었다. 추리소설이 유행하니까 당신도 써보라는 말을 듣고 지면을 얻었다. 나는 추리소설에 별다른 관심이 없다. 재능도 없고, 지식도 없다. 출판사에서 쓰라고 해서 썼을 뿐이다. 물론 추리소설은 이번이 마지막이고, 앞으로는 평생 쓸 생각이 없다.' 

 

- '나는 추리소설에 등장하는 탐정들이 영 마음에 들지 않는다. 남의 비밀을 어떻게 그리 집요하게 파헤칠 수 있는지, 그 열정의 근원이 무엇인지 모르겠다. 탐정들의 그러한 변태적인 집착이야말로 소설의 주체이며, 또는 정신 병리학의 연구대상으로 삼아야 한다는 생각마저 든다.' 

 

- "이 서재에 있는 책 중에 값비싼 책이 많은가 보죠?" 
나는 그렇게 물었다.
"글쎄요, 많다고 해야 할지 모르겠네요. 고인은 책의 구입과 보관 방법에 독특한 자신만의 규칙을 가지고 계셨던 것 같아요.

 

- "이쪽에 있는 책들은 매입하지 않을 책인데, 이런 책을 굳이 보관하는 분들은 거의 없죠. 그렇다고 여러 번 읽은 것 같지도 않고요. 아마도 책을 버리지 못하는 성격이셨던 모양이에요. 물건을 소중히 다루는 분이셨을지도 모르겠네요." 
"책을 통해 책 주인의 성격까지 알 수 있는 겁니까?"

"충분히 그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취미는 물론, 직업이나 나이까지... 책장만 보고도 그런 걸 알아맞히는 사람도 있거든요." 

 

- "시바 료타로가 오사카 출신인가요?" 
"네. 데뷔 당시에는 산케이신문 오사카 본사에서 문화부 차장으로 있었어요. 1956년, 겨우 이틀 밤 만에 써 내려간 <페르시아의 환술사>로 소설상에 입선하는데..." 

 

- “이 책이 왜 희귀본입니까?" 
전체적으로 훑어봤지만 도무지 이유를 알 수 없었다.
"후쿠다 데이치는 시바 료타로의 본명이에요."

 

- "시오리코 씨도 이런 곳에 가보고 싶으세요?" 
"네, 어떤 고서점이 있을까요. 지역이 다르니 구비한 책들도 다르겠죠?"
이건 솔직히 예상했던 대답이었다. 그야말로 못 말리는 책벌레다.
"바다에서 물놀이하고 싶다는 생각은 없으십니까?"

"네? 물놀이요?"
그렇게 물어놓고 뭔가 깨달았는지, 시오리코 씨는 조심스레 덧붙였다.
"이상하죠... 저런 데서 책을 찾는다니."
"아니, 재미있을 것 같아요."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하세요?"
"네."
진심이었다. 

 

- "책을 팔러 오셨습니까?" 

남자는 나를 올려다봤다. 숱이 적은 머리카락 사이로 흰머리가 조금씩 보였다. 나이를 추측하기 힘든 생김새였지만 30대 후반이나 40대 초반이리라. 경리 부서에서 일하는 성실한 회사원 같은 인상이었다. 수수한 빛깔의 스웨터와 청바지 차림이었는데, 전체적으로 이렇다 할 특징이 없었다. 길에서 스쳐 지나가도 금방 잊어버릴 것 같았다. 

 

- "네. 부탁드립니다." 
목소리는 의외로 중후했다. 나는 상자를 받아 계산대로 가져갔다.

"이 서류의 빈칸을 채워주시면 됩니다."

나는 두리번거리며 가게 안을 둘러보는 남자에게 볼펜과 매입 서류를 내밀었다.

 

- "구입하고 나서 뗀 게 아닐까요?"
"가격표나 책에 아무 흔적도 남지 않도록 떼어내는 건 불가능해요. 그리고 그 책은 파라핀지로 싸인 상태가 아니에요. 우리 가게에서는 상품을 진열하기 전에 꼭 종이로 싸잖아요." 

 

- "그런 것까지요?" 
"'가지고 있는 책을 보면 책 주인에 대해 대충 알 수 있지.' 그게 어머니의 입버릇이었어요. 일종의 프로파일링 같은 건데, 저도 믿기지 않을 만큼 정확하게 들어맞았어요. 그렇게 정확하게 알아맞힐 수 있는 사람은 아마 어머니밖에 없을 거예요."

 

- "제 어머니가 어떤 사람인지 이제 아셨죠? 고서에 대한 풍부한 지식과 날카로운 두뇌를 가진, 속을 알 수 없는 사람이에요. 10년 전에 모습을 감춘 뒤로 연락 한 번 없어요." 

 

- 시오리코 씨는 아직도 어두운 바다를 바라보고 있었다. 하늘을 가린 짙은 구름 때문에 별빛 한 점 비추지 않는 밤이었다. 

 


 

- 오늘 저녁, 학교가 끝나고 집에 돌아오니 언니가 어제 사 온 책이 그대로 현관에 쌓여있었다. 언니는 아직 무거운 물건을 든 채 계단을 올라가지 못한다. 책 정리는 내 몫이다. 저 책도 내가 나중에 정리한다고 해놓고 깜빡 잊은 것이다. 어쨌든 전부 2층으로 옮겼다. 이대로 두면 현관 청소하는 데 거치적거리니까. 

 

- 지금 2층은 손댈 수조차 없을 정도로 완전히 '언니의 영역'이다. 사방 어디를 둘러봐도 눈에 들어오는 건 오로지 책이다. 나름대로 빈 공간을 찾아 책을 두고 왔는데, 나중에 잔소리를 들을지도 모르겠다.

 

- 내려오다 복도에 쌓인 책 더미 사이에서 그리운 책을 발견했다.

 

- 나는 남들보다 기억력이 좋은 편은 아니지만, 이 손님은 기억에 남아있었다. 나처럼 덩치가 크고 머리스타일도 비슷했기 때문이다. 키가 커서 다른 사람과 눈높이가 맞는 일이 거의 없다. 

 

- "앞으로 서가에 올릴 책도 없고요?" 
"네. 따로 찾으시는 책이 있으십니까?"
나는 물어봤다. 입고 예정이 있는지 확인하러 재차 물은 줄 알았는데, 남자는 순순히 고개를 저었다.
"아, 아닙니다. 좋은 책이 얼마 없는 것 같아서요..."

남자는 아쉬운 듯 말하더니, 봉투를 들고 나갔다. 나는 계산대 밖으로 나가 문고본 코너 앞에 갔다.

'평소에 얌전하던 손님이 불평을 하면 새겨들어라. 불만이 가득 쌓였다는 뜻이니까.' 

오랫동안 식당을 꾸려왔던 할머니의 가르침이었다.

 

- '그렇게 적은가?' 
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비블리아 고서당에서 취급하는 문고본은 대부분 오래된 절판본들이다. 군데군데 빈 곳은 있지만 꽂힌 책들은 예전과 별다를 게 없는 것 같았다. 남자의 말처럼 상태가 심각해 보이지는 않았다. 

 

- "최근에 들여온 책들만 나가고 없어요. 남은 건 오랫동안 팔리지 않은 책들뿐이에요." 

듣고 보니 그랬다. '예전과 달라진 게 없다'는 사실 자체가 문제인 것이다. 

 

- "그런데도 거길 가고 싶어요?" 
계단을 올라가려던 그녀가 다시 홱 돌아봤다. 아까처럼 흥분한 표정이었다.
"책 종류가 어마어마하게 많잖아요!"
그 무엇보다 고서 사냥이 우선인 모양이다. 누가 '책벌레' 아니랄까 봐. 

 

- 그렇게 말하며 시오리코 씨는 맨 위에 있는 책을 쿡 찔렀다. 시오도어 스터전의 <그림자, 벽의 그림자 Shadow, Shadow on the Wall>와 밥 쇼의 <다른 날들, 다른 눈동자들 Other Days, Other Eyes>이었다. 그 묶음만 느슨하게 묶었는지 책등이 살짝 기울어져 있었다.

 

- "짧은 머리에 수수한 인상의 30대 여자였어. 안경을 썼는데, 딱 봐도 책 좋아하게 생겼더라고. 주소는 혼고다이였어. 짚이는 사람 있어?" 

 

- "그래서 시노카와 하고 이야기를 하지 않으려고 해. 둘 다 책벌레라 옛날에는 자주 책에 관해서 얘기를 나눴는데, 영 취향이 맞지 않아서 말이지. 그 녀석은 굳이 따지자면 절절한 가슴이 뭉클해지는 이야기를 좋아하거든." 

듣고 보니 그렇다. 눈앞에 있는 <민들레 소녀>도 아마 '가슴이 뭉클해지는' 유의 이야기일 것이다.
"나는 뭔가 찝찝한, 뒷맛이 좋지 않은 이야기를 좋아하거든. 호러나 서스펜스 같은 거. 시노카와도 다양하게 읽지만, 잔혹한 묘사를 읽을 때도 뭔가 의미를 찾으려는 경향이 있어. 꽤 오래전 일이긴 한데, 어떤 소설 마지막 부분의 해석을 놓고 크게 싸운 뒤로는 소원해졌지."
"마지막 부분이요?"
"아는지 모르겠네. 가까운 미래를 배경으로 불량배인 주인공이 폭력을 휘두르는 내용의 책인데."
짐작이 갔다. 읽지는 않았지만 줄거리는 아는 작품이다.
"혹시 <시계태엽 오렌지>인가요?"
"오, 용케 알았네!"
다키노의 목소리가 밝아졌다.
"그 마지막 부분이 과연 필요했나를 두고 엄청나게 설전을 벌였어. 난 필요 없다는 파였고, 시노카와는 필요하다는 의견이었지. 혹시 자네한테 그 얘기를 했어?"
"아뇨, 그건 아닌데... 왠지 짐작이 가서요."

 

- "어쨌든 시오리코 씨는 훔치지 않았습니다." 
"그게 무슨 헛소리지? 나는 분명 근거를 대라고..."

"시오리코 씨가 범인이라면 한 권으로 끝났을 리가 없습니다. 탐나는 책은 죄다 가져갔을 거라고요!" 
음, 뭔가 이상한데. 말하고 나서야 눈치챘다. 지금 이걸 변호라고 한 건가? 오히려 완전히 비난이잖아!

 

- 그런데 이노우에는 맥이 빠진 듯 한숨을 내쉬었다.
"그건 그렇지."
나름대로 이해가 된 모양이다. 뜻밖의 반응이었다.

 

- "시간 괜찮으시면 오늘밤 술이나 한잔 하실래요?" 

 

- "핫카이산 있어요?" 
설마 처음부터 일본주를 시킬 줄이야.
"일본주도 드세요?"
"다른 건 잘 못 마시거든요. 술이 센 편은 아니에요."

일본주를 잘 마시면서 술이 센 편이 아니라고? 자각을 못할 뿐, 실은 엄청난 주당일지도 모른다. 나는 맥주를 주문했다.

 

- 어안이 벙벙할 따름이었다. 그러나 시오리코 씨는 진지했다. 그녀는 술잔을 들어 한 모금 마셨다. 생각보다 훨씬 맛있게 마시는 모습에 좀 놀랐다.

 

- "무슨 말씀이세요?" 
그녀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까 '시오리코 씨가 범인이라면 탐나는 책은 죄다 쓸어갔을 거다'라는 말이요."
"아, 그거요." 
시오리코 씨는 그제야 생각난 듯 손뼉을 쳤다. 눈 주변이 살짝 붉어졌다.
"신경 쓰지 마세요. 사실이니까요." 
본인 입으로 인정하다니. 할 말이 없어서 그저 술잔을 기울였다.

- "그런 사람들은 자기가 마음에 둔 사람을 항상 잘 살피는 편이라, 의외로 많은 것들을 알더라고. 뭘 숨길 수가 없어." 

 

- "하지만 아는 이야기 같아요."
"네? 정말입니까?" 
"아, 하지만 그뿐이에요. 좀 이해가 안 되네요. 다른 일이면 몰라도 한 번 읽었던 책의 작가와 제목을 잊어버리는 일은 거의 없는데." 
"어릴 때 읽었으면 그럴 수도 있죠. 그런 걸 어떻게 일일이 기억하겠어요." 
"네? 그런가요?"
시오리코 씨는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책에 관해서만큼은 이 사람에게 상식을 요구하면 안 되는 모양이다.

 

- "미야자와 겐지는 많은 작품을 남겼지만, 생전에 출판된 저서는 동화집 <주문이 많은 요리점>과 이 <봄과 아수라> 뿐이에요. 모두 자비 출판이나 마찬가지였죠. 당시에는 거의 팔리지 않아서 겐지 자신이 상당 부수를 사들였어요." 
"네? 하지만 <은하철도의 밤> 같은 유명 작품도 있잖아요. 그런 건..."
"<은하철도의 밤>은 사후에 원고를 발견해 전집에 수록한 거예요. 생전에는 발표조차 되지 않았죠."

 

- 아까 사토코는 비블리아 고서당에 판 책도 많다고 했다. 요컨대 원래 이 집에 있던 소세키 전집이 비블리아 고서당으로 넘어갔고, 우리 할머니가 다시 그 책을 산 것이다. 전혀 알지도 못했던 사람들을 고서가 이어주고 있다. 이상야릇한 기분이 들었다.

 

- "겐지처럼 눈을 떠다 준다고 해결되는 일도 아니니까요. 이제 와서 내가 사토코에게 뭘 해줘도, 그게 도솔천의 양식이 되어주지는 못하겠지요." 

- "현재 <봄과 아수라>는 여러 출판사에서 출판됐는데, 대부분의 판본은 <영결의 아침>의 끝부분이 이렇게 돼요."
'네가 먹을 이 두 그릇의 눈에 
나는 지금 진심으로 기원한다
부디 이것이 도솔천의 양식이 되어

이내 너와 모두에게

신성한 모든 것으로 내리길

나의 모든 행복을 걸고 기원한다'

 

- "참고로 '도솔천'이란 불교 용어로, 천계의 넷째 하늘이에요. 욕망에서 해방된 천인들이 사는 외원과 미륵보살이 사는 내원으로 나뉘어있다고 해요." 
설명을 들어도 잘 이해가 가지 않았다. 마음이 깨끗한 사람들이 세상을 떠나면 가는 곳이라고 생각하면 될까.

"하지만 세키네쇼텐에서 나온 <봄과 아수라>에는 이 '도솔천'이라는 말이 나오지 않아요. 이렇게 나오죠."

- "미야자와 겐지는 <봄과 아수라>가 출판된 뒤에도 작품을 계속 퇴고했어요. <영결의 아침>이 초판본과 다른 건 겐지의 사후에 발견된 수정본을 반영했기 때문이에요."

 

- "사모님은 책을 잘 읽지 않으신다고 들었어요."

"맞아요. 솔직히 별로 좋아하지도 않아요. 시댁에 처음 인사 드리러 갔을 때 무심코 이 얘기를 해버려서 아버님과는 거의 이야기도 못 했어요. 책 좋아하는 사람이 아니면 가까워질 수 없는 분이셨죠."

그때 일이 떠올랐는지 사유리는 쓴웃음을 지었다. 

 

- 생기 없는 건조한 입술 사이로 한숨이 흘러나왔다.

"그런 소리를 아무렇지도 않게 하는 걸 보면 역시 부잣집 아가씨라니까. 우리 그이도 그래요. 뭔가 생각이 어리다고 해야 하나." 
그녀는 혼잣말처럼 중얼거리더니, 당혹스러워하는 우리를 번갈아 보며 말을 이었다.
"아버님이 돌아가실 때 상속 문제를 너무 대충 처리하셨어요. 우리는 가게, 아가씨는 가마쿠라 집을 물려받았는데, 가게에는 빚이 있었죠. 당장 문 닫아야 할 정도는 아니지만 솔직히 힘들어요. 우리는 돈을 구하겠다고 발바닥에 불이 나게 뛰어 다니는데, 비싸게 팔 수 있는 책을 기부한다는 이야기를 들으니 좋겠어요? 당연히 책을 팔아서 돈을 나누자고 했죠. 그게 모두에게 가장 좋은 길이잖아요." 

 

- "지에코와는 다른 의미로 가차 없는 성격이네요. 지에코였다면 이런 건 눈감아줬을 거예요. 성의 표시만 제대로 했다면." 

 


 

- 말은 하지 않았지만 나는 내심 으스스한 기분이었다. 시노카와 지에코는 거의 1년 남짓 딸이 보낸 메일을 그저 받기만 했다. 엄청난 대지진이 일어났어도 먼저 딸들의 안위를 확인하려 하지도 않았다. 보통의 어머니라면 분명히 어떻게든 반응했으리라. 어떻게 계속 무시할 수 있는지, 대체 어떤 정신 상태인지 나로서는 상상조차 가지 않았다. '보통의 어머니'가 아니라는 사실은 분명했다. 애초에 가족을 버리고 집을 나간 이유도 분명하지 않다. 듣기로는 머리는 비상하지만 속을 알 수 없는 의뭉스러운 인물이라고 했다.  

 

- 숨소리도, 속삭임도 아닌 어떤 소리가 들렸다. 아마 휘파람을 부는 것이리라. 시오리코 씨가 뭔가에 몰입했을 때의 버릇이다.

- 또 시작됐군. 나는 한숨을 쉬었다. 어깨너머로 들여다보자 예상대로 무릎 위에 책을 펼쳐놓고 읽고 있었다.
"그건 무슨 책입니까?"
그녀는 홱 돌아보더니 책을 들고 좌우로 흔들었다. 연분홍빛 입술에는 미소가 번졌고, 안경 너머의 까만 눈동자가 반짝거렸다. 발그레 상기된 살갗에 가슴이 두근거렸다.

"고바야시 노부히코의 <겨울의 신화> 초판본이에요! 안 보여서 찾고 있었는데."

 

- 책 정리가 좀처럼 끝나지 않는 건 이런 식으로 그녀가 정신없이 책을 읽기 때문이었다. 평소에 남의 책을 대량으로 구입했을 때는 금방 정리하면서, 정작 자기 책을 정리하려면 뜻대로 되지 않는 모양이다. 

- "본격추리는 구체적으로 어떤 소설을 말하는 겁니까?"
오늘 하루 동안 '본격'이라는 말을 여러 번 들었지만, 막연한 이미지만 있을 뿐 구체적인 뜻을 알지 못했다.
"어떻다고 정의를 내리기는 어렵지만... 제시된 수수께끼가 논리적으로 해결되는 것, 거짓이 섞이지 않은 형태의 단서가 제시될 것. 한마디로 공정한 수수께끼 풀이를 중시하는 추리소설이라고 할까요." 

 

- "당연한 소리를 하는군요. 그러니까 내 말은 대체 왜 그걸 확인했느냐는 겁니다."
시오리코 씨는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 이내 곤혹스러운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 서재를 보고 나서 말씀드려도 될까요? 순서대로 설명드리는 게 나을 것 같아서요."

그런 말을 들으면 서재를 보여줄 수밖에 없다. 요시히코는 쯧, 하고 혀를 차더니 앞장서 걸음을 옮겼다. 시오리코 씨도 지팡이를 짚고 그 뒤를 따랐다. 정말 순서대로 설명하려는 건지, 아니면 확실히 서재를 보기 위해 뒤로 미룬 것인지는 모르지만 어찌 됐든 보통내기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 "이 방은 아버지 생전의 모습 그대로 보존해 두었습니다... 말해두는데 찾아봤지만 열쇠 같은 건 없었어요."

요시히코는 먼저 못을 박았다. 시오리코 씨는 책장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아버님은 여기서 오래 시간을 보내셨나요?"

"... 식사가 끝나면 잠자리에 들기 전까지 대부분의 시간을 이곳에서 보내셨죠. 일을 하시기도 했고, 가까운 손님도 거의 여기서 맞이하셨습니다."
책장에는 역사나 교육에 관한 책이 많았다. 일렬로 꽂힌 <일본사상대계>나 <메이지문화전집>이 눈에 띄었다. 그 밖에도 인명사전이나 외국어사전, 점자나 수화에 관한 자료 등. 아마 고학력의 교육자에게 걸맞은 책이겠지만, 개인의 취미를 전혀 엿볼 수가 없었다. 마치 도서관의 책장 같았다. 

- 그제야 이해가 갔다. 쇼와 15년에 가야마 아키라는 겨우 열두 살 어린애였다. 
"성인 대상 소설을 읽기에는 조금 이르... 아, 하지만 무슨 일이든 예외는 있겠지만요."
본인도 말하다 알아챈 모양이다. 나는 터져 나오는 웃음을 참았다. 그녀야말로 어릴 적부터 성인용 소설을 읽어온 '예외'다. 

- "맞아요! 아세요?" 
"몰랐는데... 왠지 느낌이 그럴 것 같아서요."

"느낌으로 알았다고요? 굉장하네요! 다이스케 씨, 정말 대단해요!" 

 

- 나는 순수하게 감탄했다. 나처럼 '왠지 느낌'으로 알아맞힌 게 아니다. 사소한 단서를 통해 장서의 존재에 조금씩 다가가고 있다. 평범한 사람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것이, 고서에 관해 뛰어난 통찰력을 가진 이 사람에게는 보이는 건지도 모른다. 

- "10대 때에는 국내외의 본격추리소설을 닥치는 대로 읽기 시작했네. 그러다 환상문학이나 SF로도 독서의 폭을 넓혀갔고, 좌우지간 책을 읽는 게 너무 좋았어. 대학을 졸업하고 첫 직장으로 택한 곳도 이케부쿠로의 커다란 서점이었지. 책에 관련된 일을 하고 싶었어. 그즈음부터 고서에 대한 관심도 생겨서, 조금씩 탐정소설, 추리소설 초판본과 잡지 과월호를 모으기 시작했고. 내가 소장한 책과 지인들을 통해 모은 책을 바탕으로 고향으로 돌아가 고서점을 시작한 게 22, 3년 전이네. 란포의 산닌서방에서 따와 히토리서방이라는 이름을 붙였지. 그때는 아주 열렬한 팬은 아니었지만, 나의 근원이랄까, 그런 작가였으니까. 그리고 혼자 시작해 내 힘만으로 꾸려나가겠다... 그런 의욕도 담겨있었지."

 

- "... 개업하자마자 찾아오는 손님들은 쓸 만한 책을 건지러 온 프로거나, 개업한 가게만 노리는 마니아들이에요. 희귀한 책을 죄다 쓸어가고 나면 상품가치가 거의 없는 책들밖에 남지 않죠. ... 흔히 있는 일이에요." 

 

- "처음 개업했을 때는 한 번에 모든 책들에 가격을 매겨야 하니까, 당연히 세세한 데까지 신경을 쓸 수가 없어. 더구나 나는 신간 서점 출신이라 고서에 가격을 책정해 본 경험이 거의 없었지. 그런 점을 노린 거야. 개업 첫날 찾아온 손님 중에는 네 어머니도 있었어. 오래된 순요문고를 잽싸게 빼갔더군." 

 

- "대체 무슨 수로 알아냈는지 지금도 모르겠어. 있을 수 없는 일이란 건 알지만, 책장에 꽂힌 책을 통해 모든 걸 알아낸 것처럼 보였지...
솔직히 있을 수 없는 일은 아니었다. 시노카와 지에코는 가진 책만 보고도 소유자의 됨됨이나 경력을 유추할 수 있다고 했다. 고서점의 재고조차 그녀에게는 주인에 대해 알아낼 실마리였을지도 모른다.

 

- 이노우에가 도망칠 구멍을 완전히 막아버린 것이다. '어떻게 그런 것까지 알아냈지?' 분노보다 형언할 수 없는 으스스함이 먼저 솟아올랐다. 어떻게 이노우에가 시노카와 모녀를 그토록 경계했으며, 적대시했는지 이제는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아마 자신이 숨기고 싶은 비밀을 모두 꿰뚫어 보는 듯한 기분에 두려웠던 것이리라. 

- "맞아. 곳곳에서 유명한 명화를 찾아보는 재미도 있지. 쿠르베나 밀레의 작품 같은... 내가 참 좋아하던 책이야."
시노카와 지에코가 말했다. 낡은 책을 펼치자마자 모녀사이에 흐르는 공기가 달라졌다. 참으로 신기한 모녀 사이다.

 

- "난 엄마가 보고 싶었어. 하지만 이제 필요하지는 않아."

 

- 이 역시 그 말, 에도가와 란포의 '나의 꿈과 진실. 현세는 꿈, 밤의 꿈이야말로 진실'과 관련이 있겠지. 

- "하지만 난 의심이 들었어요. <에가와 란코>를 들고 있는 걸 봤을 때 확신으로 바뀌었고요. 일반인이 하필이면 가장 비싼 란포의 초판본을 꺼내다니 이상하잖아요. 그래서 바닥에 떨어뜨릴 뻔했을 때도, 비명을 지르려던 걸 꾹 참았죠."
"정말 우연이었다니까요."
나는 쩔쩔매며 말했다. 에도가와 란포를 여자로 바꿔놓은 듯한 이름이라는 생각에 꺼내봤을 뿐이다. 정말 별생각 없었다. 
"지금 저희가 거짓말을 할 필요는 없죠. 제가 보장할게요. ...다이스케 씨는 고서에 대해 아무것도 몰라요. 정말 문외한이에요."
시오리코 씨가 도움의 손길을 내밀었다. 날 감싸주는 건 분명했지만, 이건 또 나름대로 심란했다. 

 

- "... 그 문외한의 우연을 계기로 시노카와 양이 내 정체를 간파한 거잖아요. 문외한의 눈에만 보이는 뭔가가 있을지도 모르죠." 
물컵을 들려던 나는 그 말에 동작을 멈췄다. 뭔가 폐부를 찌르는 말이었다. 정말 그럴 수도 있을까. 적어도 지금까지는 없었던 것 같지만.

- "기시로 씨는 만만한 사람이 아니야. 나쁜 사람은 아니지만, 소중한 걸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사람이지." 
지에코는 느닷없이 싱긋 웃으며 자신과 딸을 가리켰다.
"꼭 우리처럼 말이야." 

 

- "그럼 이보다 훨씬 현실적이고 매력적인 가설을 댈 수 있니?" 
시오리코 씨는 말문이 막힌 듯했다. 그때 순간적으로 이런 생각이 들었다. 지에코가 하는 말들은 단순한 추리가 아닐까? 눈앞의 상대를 홀려서 뭔가 목적을 이루기 위한 수단이 아닐까? 

- "날 미워해도 상관없어. 그래도 같이 가자, 시오리코. <오시에>의 첫 원고 같은 귀중한 것들에 대해 원 없이 이야기해 줄게.... 지난 10년 동안 내가 봐온 것들을 이 세상엔 네가 아직 모르는 게 많아. 너도 궁금하지?" 
대답은 하지 않았지만 시오리코 씨의 눈빛은 관심을 보이고 있었다. 자신을 능가하는 지식을 가진 이와 마음껏 책 이야기를 할 수 있다. 실로 매력적인 제안일 터였다. 상상도 못 했던 방향으로 흘러가는 이야기에 나는 어안이 벙벙할 뿐이었다. 시노카와 지에코의 한마디, 한마디에 압도되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 현세는 꿈, 밤의 꿈이야말로 진실. 란포의 말이 번개처럼 머리를 스쳐 지나갔다. 보내서는 안 된다. 직감적으로 그런 생각이 들었다. 

 

- 떠나기 직전 시노카와 지에코가 보였던 그 비수 같은 싸늘한 눈빛을 나는 아마 평생 잊지 못하리라. 내 모든 것을 기억에 담아두려는 것 같았다. 지금 생각해 보면 지에코가 가마쿠라로 돌아온 이유 중 하나는 시오리코 씨가 아니었을까. 그녀 역시 자신의 지식과 사고를 송두리째 쏟아부을 수 있는 파트너가 필요했던 것이다. 피를 나눈 딸이라면 더할 나위 없겠지.

 

- "그럴 리가 있나. 그건 그냥 우연이었어." 

 

- "책을 찾아준 건 고마웠지만, 뭔가 뒷맛이 찝찝하더라고. 그래서 자네한테 충고한 거야. 그런 쪽으로 너무 재능이 발달하면 종국에는 지에코 씨처럼 집을 나가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서."  

 


 

- 책 상태와 간기면을 확인하면 단 1초도 망설이지 않는다. 아직 20대 중반이고 나와 나이도 얼마 차이 나지 않는데, 벌써 몇십 년은 이 일을 계속해온 사람 같았다. 오늘은 하얀 블라우스 차림에 하나로 묶은 머리를 오른쪽으로 늘어뜨리고 있었다. 윤기 흐르는 머리카락이 봉긋한 가슴까지 흘러내렸다. 안경알 너머의 까만 눈동자가 빛나는 것 같았다. 그녀는 귀걸이 같은 액세서리를 하지 않았다. 드러난 왼쪽 귀가 신경이 쓰이는지, 다음 책을 집으며 이따금 손가락으로 귀를 만지작거렸다. 

- 그녀는 매력적인 사람이다. 그것은 나 혼자만의 생각은 아닐 터였다. 가게에 온 남자 손님이 책과 잔돈을 받으려다 그녀를 보고 놀라 숨을 삼키는 장면을 여러 차례 봤다. 그녀가 계산대 앞에 있을 때에만 이런저런 이야기를 늘어놓는 사람들도 한둘이 아니었다. 물론 그런 남자들의 반응을 본인이 전혀 알아채지 못한 것도 아니었다. 그럴 때마다 살짝 시선을 돌리고 애매한 미소로 넘기는 게 보통이었다. 

 

- "책에 관한 잡지 같네요." 
"맞아요. '책 마니아를 위한 정보 탐구지'를 캐치프라이즈로 내걸고 책에 관련된 독특한 특집을 만들어왔죠. 작가 특집은 물론, 장서표나 그림엽서 컬렉션, 폐간된 잡지 등등... 그러고 보니 '고서소설 대상'을 창설하기도 했네요."

 

- "고서에 관한 정보지라면 2차 대전 이전부터 계속 간행되는 <일본 고서 통신>이 유명하지만, <월간 호쇼>도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었어요. 그 둘이 고서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 정기 구독하는 잡지의 쌍벽이었죠. <일본 고서 통신> 보여드릴까요? 아마 본 적이 있을 거예요."  

 

- "네. 메모를 해둔 목록을 보고 있으면 그 주인에 대해 이것저것 알 수가 있어요. 독서 경향이나 고서의 수집 방법 등... 이 분은 희귀본보다는 그때그때 읽고 싶은 책을 구입했던 것 같아요. 가리지 않고 폭넓게 읽으셨던 것 같지만, 특히 프랑스문학이나 프랑스 현대사상에 관심을 가지셨던 모양이네요."

 

- "이건 무슨 표시인가요?"
마르셀 에메의 <타인의 머리·달의 새들>의 책등을 가리켰다. 시다는 눈을 부릅뜨며 들여다보더니 "아, 그거" 하고 웃었다.
"이건 그 양반이 다 읽은 책을 표시한 거야. 어떤 책을 읽었는지 한눈에 알 수 있어서 편리하다고 하더라고." 
"자기가 그 책을 읽었는지 안 읽었는지 잊어버린다고요?"
내가 물었다.
"가지고 있는 책이 늘어나면 딱히 이상할 건 없지. 나이가 늘면 기억력도 나빠지거든."

수수께끼가 하나 풀린 기분이었다. 대량의 책을 사들이는 사람 나름의 지혜이리라.

 

- 그리고 그 의도를 정확히 파악하고 돕기 위해 나선 사람이 여기 있다. 
"아가씨 말이 맞아요. 꼭 내 머릿속을 읽은 것 같네요."

 

- "지금 생각해 봐도 남편과의 결혼 생활에 힘들었던 기억은 없어요. 직장에서 계속 붙어 있었기 때문에 휴일에는 따로 시간을 보냈죠. 그게 서로 편했어요. 나는 아웃도어 파라 남편과는 취미도 전혀 달랐고요."

그녀는 그리운 듯 눈을 가늘게 뜨며 책장을 둘러보았다.

"남편은 쉬는 날이면 진보초에 가서 책을 이만큼 싸들고 왔어요. 거실에 책을 쌓아두고 한 권씩 살펴봤죠. 뭘 샀느냐고 물어보면 신이 나서 책 이야기를 했어요. 무슨 말인지는 몰라도, 듣는 것만으로도 좋았죠. 여자는 뭔가에 열중한 남자에게 매력을 느끼는 법이잖아요?" 
시오리코 씨는 그 말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딱히 공감하지 못한 눈치였다. 차라리 내가 더 공감이 갔다. 난 남자지만.

 

- "맞아요. 남편이 오랫동안 정기구독하며 구석구석까지 꼼꼼하게 읽었던 잡지였거든요. 아가씨도 봤겠지만 여기저기 메모를 해가며 읽었어요. 살 책이든, 안 살 책이든 목록에 동그라미를 쳤죠. 그걸 하나씩 읽다 보니, 어떤 책을 좋아했는지, 어떤 생각을 했는지, 그런 걸 조금씩 알 것 같아서... 남편이 옆에 있는 것 같은 거예요. 결국에는 나도 책을 읽게 됐고요."

 

- 해가 저문 뒤에도 콘크리트 블록에는 아직 열기가 남아있었다. 노숙자들에게는 4월이 가장 지내기 편한 달이다. 바람을 쐬며 책을 읽을 수 있는 계절은 길지 않다. 하지만 해질녘에 글자를 읽기란 쉽지 않았다. 손전등을 켰다. 전지가 아까웠지만, 가끔은 이런 사치를 부려도 되겠지. 나는 수제 펠트 커버를 씌운 문고본을 읽고 있었다. 

 

- 대충 짐작이 갔지만, 내가 먼저 말을 꺼내고 싶지는 않았다.
"그거 알아? 고야마 기요시는 교도소에 들어갔던 적이 있어. 그 체험을 바탕으로 쓴 소설도 있지. 우리는 작가라고 뭉뚱그려서 말하지만, 뜯어보면 저마다 살아온 모습은 제각각이야." 
쓸데없는 이야기가 튀어나왔다. 나도 얼마 전에 도서관에서 읽은 단편집을 통해 알게 된 사실이었다.
"일본 펜클럽 횡령 사건 말이죠? 실형을 살 필요까지는 없었는데, 본인이 자처해 무거운 벌을 받았다는 이야기도 있어요."
척하면 척 대답이 돌아왔다. 시종일관 이런 아가씨와 얼굴을 맞대고 있어야 하는 고우라는 정말 배짱이 두둑한 녀석이라 생각했다. 나는 뭔가 영 찝찝했다. 

 

- 전처가 지금 어떻게 사는지는 모른다. 남을 등쳐먹은 그 여자는 다시 보고 싶지 않지만, 회사 돈에 손댄 내가 누구를 탓하겠는가. 모두가 병아리라도 키워 팔아 조용히 하루하루를 보낼 수 있다면 좋을 텐데. 

- "... '실패해도 다시 시작할 수 있다.' 말은 쉽지만, 실상 한번 실패한 뒤에 다시 시작하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 직접 겪은 사람이 아니면 몰라. 그렇게 한번 도망쳐버리면 대부분의 일들은 돌이킬 수 없게 되지..."
시노카와 시오리코는 말없이 듣고 있었다. 다시 시작할 수 있다고 위로하지 않는 건 그게 쉬운 일이 아님을 알고 있는 까닭이리라. 이 아가씨 역시 어머니에게 버림받은 과거를 가지고 있으니까. 하지만 이런 식으로 비겁한 변명이나 늘어놓는 놈을 앞으로 어떻게 대할지는 쉽게 상상할 수 있었다. 3년이나 지켜봐서인지 자식뻘인 이 아가씨에게도 나름대로 정이 들었다. 경멸당하고 싶지는 않았다.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알았어, 생각해 보지... 할 말은 끝났나?" 

 

- "<블랙잭>을 연재하면서 1974년에는 <주간소년매거진>에 <삼목동자> 연재를 시작했고, 이 작품도 인기를 얻었어요. 또 석가모니의 생애를 그린 <붓다> 연재도 병행하고 있었고, 그 밖에도 <불새> 망향 편, 메이지 초기의 홋카이도를 무대로 한 <슈마리>, 몇 년 전에 영화와 드라마로 만들어진 피카레스크 로망 <MW> 등... 많은 작품을 동시에 그리고 있었죠." 
듣기만 해도 머리가 복잡해졌다. 나도 들어본 작품이 몇 있었다.
"데즈카는 항상 여러 개의 연재를 동시 진행하며 새로운 작품을 계속 발표했어요. 위암으로 세상을 떠나기 직전에도 세 작품을 연재하고 있었죠. 일종의 워커홀릭이었던 거죠. 고단샤에서 나온 <데즈카 오사무 만화전집>은 4백 권이 넘는데도 미수록 작품이 많이 남아있어요."

 

- "데즈카 오사무 만화를 잘 아시네요."

나는 아무 생각 없이 그렇게 말했다. 정말 모르는 게 없는 사람이다. 하지만 그녀의 표정은 썩 밝지 않았다. 
"이게 잘 아는 건가요? 전집을 한 번 읽기는 했지만, 그밖에는 좋아하는 작품을 모으는 정도라..."
"저기, 그게 잘 아는 거 아닌가요?" 
전집만 해도 4백 권이나 된다고 하지 않았나.
"창작자로서의 모습을 알기에는 부족하다는 뜻이에요. 데즈카 작품은 한 종류의 단행본만 봐서는 제대로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 많거든요." 

- 분명히 모든 책이 두 권씩 있었지만, 그중 한 권에는 파라핀지를 씌워놓았다. 특별히 아끼는 책 같았다. 그 밖에 파라핀지를 씌워놓은 책은 없었다. 
"파라핀지를 씌워놓은 책은 보관용입니까?" 
나는 마카베에게 물었다.
"글쎄요. 전 그걸 이상하게 여긴 적이 없어서요. 철들 무렵부터 이랬기 때문에 아버지에게 물어본 적도 없었어요." 

 

- "입시에 실패한 뒤에 중학교 친구와도 멀어진 탓도 있을 거예요. 같은 학원에 다니던 애들이 많았는데, 다들 1 지망학교에 합격했거든요. 그래서 실패한 동생을 깔보는 분위기가 생겼고요." 
시험 점수를 잘 받는 사람이 그렇지 않은 사람의 마음을 헤아리기란 쉽지 않은 법이다. 그것은 마카베 신야 자신에게도 해당되는 이야기였겠지. 
"저는 중고등학교 모두 같은 학교여서 친구 때문에 고민한 적은 없어요. 그 나이에 갑자기 자기 자리가 없어진다는 건 생각만 해도... 솔직히 동생을 탓할 마음은 들지 않아 요. 같은 상황에 처했고, 아버지에 대한 불신이 있었다면, 저도 그런 짓을 저질렀을지도 몰라요." 
"시험에 떨어진 학생들이 모두 부모의 책을 훔치는 건 아닙니다. 막상 가고 싶은 학교에 가서도 일이 잘 안 풀리기도 하고요. 그것과 이건 별개의 문제입니다." 

나는 반박했다. 생각해 보면 여기 있는 세 여자는 입시를 치르지 않고 모두 같은 재단의 중고등학교에 다녔다. 고등학교 입시를 경험한 건 이 중에 나밖에 없었다. 

 

- "정말요? 선배님은 모르는 게 없고 이야기도 재밌는데."

"처음에는 다들 그렇게 생각하지. 하지만 얘는 정말 자기 읽은 책 얘기밖에 안 했고, 내용도 중고생한테는 너무 어려우니까. 매일 그런 이야기를 듣고도 버틸 자신 있어?" 
침묵, 마카베 나나코도 자신은 없었던 모양이었다 

 

- 아이카와 나미에의 얼굴에 그늘이 드리웠다. 마음을 정리하듯 앙상한 손을 테이블 위에 가지런히 포갰다. 깔끔하게 정리한 손톱이 눈에 들어왔다. 
"... 남편이 버렸어요. 딸이 집을 나가고 나서. 그 애가 아끼던 데즈카 오사무의 만화책은 물론, 필기도구나 이런 엽서까지. 만화가 들어간 물건은 죄다 버려버렸죠."

 

- "아니에요. 남편은 둘이 사귀는 것도 반대했어요. 장차 직접 고른 남자에게 시집보낼 작정이었겠죠. 그때는 정말 보수적이고 고집불통이라 딸에게 배신당했다는 마음이 컸을 거예요. 그래서 우리 집에는 딸애 물건이 거의 없어요. 그 애가 가지고 나간 것 말고는." 
나는 중복된 블랙잭 만화책을 떠올렸다. 그건 아이카와 미카의 수집품 중 일부였던 것이다. 
"남편만큼은 아니지만 나도 꽉 막힌 옛날 사람이었어요. 학생 때 사귀는 건 그렇다 쳐도, 결혼은 좋은 집안의 신랑감하고 하길 바랐죠... 남편이 딸애 물건을 버렸을 때도 크게 반대하지는 않았어요." 

 

- "지금도 밤중에 자다가 깨면 이런 생각을 해요. 그때 왜 책장을 사주지 않았을까."

 

- "지어낸 이야기 안에만 담을 수 있는 마음도 있는 거예요. 만일 세상 모든 게 현실이라면, 이야기가 존재하지 않는다면, 우리 인생은 너무나 쓸쓸할 거예요... 현실을 풍요롭게 만들기 위해 우리는 이야기를 읽는 거예요. 분명 신야 군 아버님도 그러셨을 테고요."

 

- "... 아버지는 그런 얘기 안 들어줄 거야.”
"그건 신야 군 자신에게 달렸어요. 자기 생각이 정확히 전달될 때까지 말해본 적이 있나요?" 

 

- 왜 지금 여기서 대답한 걸까. 타이밍을 영 알 수 없는 사람이다. 하지만 확실히 알게 된 것도 하나 있었다. 시오리코 씨는 무슨 일이든 어영부영 넘어가는 사람이 아니다. 시간이 걸려도, 묻는 말에는 꼭 대답해 주는 사람이다. 

 

- 퇴근 후, 요코하마 역에 내린 나는 서쪽 출구 바로 앞에 있는 프랜차이즈 카페에 들어갔다. 텀블러를 가져오면 할인을 해주기 때문에 그다지 싼 가격이 아닌데도 요즘 자주 들르는 곳이다. 입구가 잘 보이는 좌석을 확보하고 스마트폰으로 시간을 확인했다. 약속 시간까지 아직 꽤 시간이 남았다. 하는 수없이 가방에서 문고본을 꺼내 테이블에 올려놓았다. 통로 건너편 테이블에는 비슷한 또래이거나 나보다 조금 어린, 나와 비슷한 머리스타일의 여자가 앉아있었다. 뿐만 아니라 옷차림까지 비슷했는데, 자기 텀블러로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문고본이 테이블에 없다는 점을 제외하고는 거울에 비친 것처럼 꼭 닮았다.  

- "너한테 그 일을 부탁한 날부터 자주 메일로 상황을 물어보시더라고. 그제야 아주머니에게 넘어간 걸 알았지. 딸들과 가게 일이 걱정됐던 게 아니라 네가 그런 수수께끼를 푸는 걸 보고 싶어 하는 걸. ... 네 머리가 얼마나 좋은지 시험하려는 거지." 

시오리코는 말없이 듣고 있었다. 이미 짐작한 내용인 모양이다. 이럴 때 표정을 보면 지에코 아주머니를 꼭 빼닮았다. 옛날부터 나는 지에코 아주머니가 껄끄러웠다. 본심을 감춘 채 겉으로는 다른 소리를 하는, 그런 기척을 어린 마음에도 느꼈기 때문이리라. 

 

- 이 이야기를 하던 지에코 아주머니 역시 같은 눈을 하고 있었다. 주변은 전혀 눈에 들어오지 않는 듯한, 예전부터 도저히 좋아할 수 없었던 그 눈빛. 나는 마카베 일을 비블리아에 의뢰한 것을 후회했다. 책에 관한 누군가의 고민을 고우라 씨와 반쯤 즐기는 기분으로 해결하는 건 상관없다. 하지만 책이란 소유자의 사고의 연장선상에 있다. 남의 머릿속을 너무 많이 알면 언젠가는 정신이 이상해질지도 모른다. 갑자기 가족도, 일도 다 버리고 홀연히 떠난 그 사람처럼. 

 

- 정말 가출의 권유를 실천에 옮긴 건가. 책 취향이 비슷하더라도 반드시 서로를 이해한다는 보장은 없는 것이다. 

 

- "오로지 책을 위한 공간인가요?" 
가도노 고사쿠에게 물었지만 답은 없었다. 그는 책등을 어루만지는 시오리코 씨를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었다. 저기, 하고 다시 말을 걸자 그제야 반응을 보였다. 
"아, 맞아요. 형님은 자기 책 외에는 이곳에 두지 않았어요. 순수하게 좋아하는 책만을 위한 공간으로 꾸미고 싶다고... 부모님이 돌아가신 뒤로 유일한 낙이 독서였어요. 휴일에는 이곳에 틀어박혀 시간을 보내는 일이 많았죠." 

 

- "우리 형제는 모두 지에코 씨 영향으로 책을 읽게 됐죠. 일분일초라도 더 대화를 나누려면 책 이야기를 하는 수밖에 없었으니까요. 형제 중에서 내가 첫 탈락자였죠." 

 

- "그 책이 초판본입니까?" 
"네. 이만큼 상태 좋은 책은 거의 시장에 나오지 않는데... 대체 어디서 구해온 거지?" 
시오리코 씨는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어머니의 능력을 직접 목격하고 같은 고서업자로서 마음이 착잡해진 것 같았다. 

 

- "왜 그렇게 말씀하지 않으셨죠?" 
"뭐라고요?" 
"어머니는 좋은 뜻으로든 나쁜 뜻으로든 사람의 이목을 끌어요. 어머니를 아는 분들은 거의 백 퍼센트 저한테 그 이야기를 하시죠. ... 밝힐 수 없는 사정이 있는 사람을 제외하고는요." 

 

- 나는 가도노 형제를 떠올렸다. 시오리코 씨가 어머니를 빼닮은 것도 이유 중 하나겠지만, 둘 다 계속해서 지에코이야기를 했다. 그들뿐 아니라 지금까지 만난 사람들은 모두 그랬다. 모두 예외는 있었다. 시오리코 씨의 마음을 헤아려 일부러 언급하지 않은 사람, 시다처럼 지에코와의 관계를 숨겼던 사람, 그리고 더는 엮이고 싶지 않다며 겁에 질린 사람. 

- 어떤 경위로 가져갔는지는 묻지 않았다. 아까 떠올렸던 의문이 다시금 고개를 쳐들었다. 역시 진상을 알고 있었던 건가.

 

- 순간 지에코는 고개를 돌려 나를 보았다. 시선이 미간을 뚫고 들어오는 느낌이었다. 무의식적으로 숨이 멎었다.
"나한테 궁금한 게 있나 봐요?"
"... 아닙니다." 
이제 와서 물은들 무슨 소용일까. 그러자 지에코의 입가에 옅은 미소가 번졌다. 
"물론 전부 알고 있었어요."
등골이 오싹해졌다. 물론 나는 질문을 입 밖으로 내지 않았다. 그냥 우연히 맞춘 건가? 그게 아니라면 어떻게 내 생각을 알아챈 거지?

"어머, 내 말이 틀렸어요? 고우라 군이라면 그걸 궁금해 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태연한 척 하려던 게 아니다. 다시 내 생각을 꿰뚫어 볼까 두려워 아무 반응도 할 수 없었다.

 

- "늦지 않게 돌아갈게요." 
아까 느꼈던 불안이 다시 가슴을 스치고 지나갔다. 시노카와 지에코와 단둘이 둬도 정말 괜찮은 걸까? 아니, 일대일로 이야기하겠다고 결심한 건 다름 아닌 시오리코 씨다. 내가 믿어줘야 한다. 

- "모르는 게 나하고 거리를 두기 쉽잖아. 오해를 사는 게 나아. 그런 말도 있잖아. '오해가 행복을 준다면, 오해가 만족을 준다면, 나는 오해를 사랑하겠다'라고...

"그것도 데라야마 슈지의 시입니까?"

"... 내 맘대로 인용한 것뿐이야. 내 말 같은 건 믿지 마. 난 자네가 일하는 가게에 장물을 팔아넘긴 도둑놈이니까."

 

- 어머니는 별거 아닌 눈빛이나 동작, 호흡이나 말하는 속도로 남의 마음을 읽는 데 능했다. 재빨리 책 한 권을 훑어보고 눈에 들어온 키워드를 통해 내용을 파악하듯이. 이것도 단순한 질문이 아니라 내 마음에 꽂은 책갈피 같은 것이다. 뭐라고 대답하면 그 대답을 통해 더욱 많은 정보를 알아내리라. 어릴 적 나는 어머니를 사랑했지만, 사람들의 말에서 행간을 읽어 마음 깊숙한 곳까지 파헤치려 하는 어머니의 버릇을 도저히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때문에 어머니 앞에서는 책 이야기가 아닌 다른 화제는 꺼내지 않았다. 원래 말수가 적은 편이었던 까닭에 다른 사람들 앞에서도 말이 없어졌고, 그 결과 타인과의 의사소통에 서툰 지금의 내가 만들어졌다. 

- "지금 읽는 책은 뭐니?" 
예전에 나와 이야기를 나눌 때면 어머니가 대화를 이어가기 위해 던졌던 질문이었다. 나는 그제야 고개를 들고 가방에서 책 한 권을 꺼냈다.
기즈 도요타로 시집 <보통의 닭>.

 

- 지식에 대한 갈망과 감성이 이끄는 대로 모든 것을 내던지는 어머니의 피가 이 몸에도 흐르고 있다. 언젠가 어머니가 말하지 않아도, 스스로 홀연히 자취를 감추는 날이 올지도 모른다. 

 

- 차라리 어머니를 원망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지만 떠나간 어머니를 마냥 기다리기에 10년은 너무 긴 세월이었다. 내 눈에는 지금 다이스케 씨의 뒷모습이 아버지의 뒷모습처럼 보였다. 내가 떠난 뒤에도 묵묵히 일하는 그의 모습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온몸이 얼어붙는 것 같다. 

 

- "나도 고민했어. 지금 네 고민과 비슷했지. 어느 날 갑자기 홀연히 사라질지도 모른다. 그런 예감이 들었으니까. 나고 자란 고향을 떠나 저 먼 곳을 향해... 우리에겐 그런 기질이 있는 거야. 생각할 시간이 필요해서 5월 말까지 기다려달라고 했지." 
뜨끔했다. 어머니도 내가 그랬듯 답을 미룬 것이다. 마치 서로 짠 것처럼.
"결국 5월 31일까지 기다리게 했어. 그날 일은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나. 그날은 휴일이었지만 우리는 가게에서 일하고 있었지. 네 아버지는 브라우티건의 <사랑의 행방>에 가격을 매기다..."
신초문고판이다. 당시에는 절판되지 않았으니 분명 균일가 매대에 내놓았으리라. 

 

- "언젠가 당신 곁을 떠날지도 모른다. 5년 뒤인지, 10년 뒤인지 장담할 수 없지만 아무 예고도, 흔적도 없이... 그래도 좋다면 같이 살자고 했어."
강한 분노와 함께 희미한 선망을 느꼈던 걸 부정하지는 않겠다. 좋아하는 사람이 그런 식으로 자신을 받아들여준다면 얼마나 좋을까. 

 

- 나는 주먹을 꼭 쥐었다. 이 사람은 자기를 바꾸려 하지 않고 그저 자유를 추구했다. 하지만 아버지는 그런 이기적인 조건을 받아들였다.
"하지만 나와 아야카를 버렸잖아요. 그런 약속하고 상관없는 우리한테까지 피해를 주고..." 
"그래, 네 말이 맞아. 난 실패했어. 그래서 네가 내 전철을 밟길 원하지 않는 거야."
"뭐라고요...?"
순간 거뭇한 위화감이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갔다. 그 원인을 알아내기 전에 어머니는 낭랑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나에게 결혼은 필요 없었어. 어차피 결과는 달라지지 않았을 테니까. 상대를 외롭고 슬프게 했을 뿐이었지. 유일하게 마음을 연 사람이었는데." 

 

- "다, 당신이 떠나지 않았으면 그런 일은 없었잖아요." 
"그래, 그랬지. 내가 나 자신이 아니었다면, 자상한 남편과 예쁜 딸들과 가정을 꾸리면 책 같은 게 없어도 행복할 수 있는 여자였다면... 넌 어떨까? 시오리코, 한 권이라도 더 읽고 싶다, 더욱 많이 더욱 깊은 지식을 얻고 싶다, 네 안에 그런 욕구가 없다고 말할 수 있니?" 
"그, 그건... 그래도..."
"고우라 군과 앞으로 어떻게 할지 넌 아직 결단을 내리지 못했어. 사실은 아직 망설이고 있지... 답을 주기 전에 날 만나려 한 게 바로 그 증거야. 넌 사랑보다 깊은, 가슴 깊숙한 곳의 진실을 알려는 것뿐이야. 네가 외면하고 싶은 또 하나의 네 모습을." 
순간 차창이 새까맣게 물들었다. 길고 숨 막히는 터널을 빠져나오자 하늘은 아까보다 어두웠다.
"넌 다른 사람의 마음속 진실을 읽을 수 있어. 그런 사람은 사랑을 직접 겪을 필요가 없어. 그저 지식의 일환으로 쌓아가면 돼... 아까 가도노 씨를 통해 연애가 가져온 비밀을 알았지? 사람의 감정, 생각을 모두 읽어내는 거야." 

- "바다를 보러 가자. 너하고 단둘이서 바다에 온 게 얼마만일까?" 

- "지금은 아무 생각도 하지 마. 서둘러 결론을 낼 필요도 없어... 그저 더 많은 것들을 알아가면 돼. 가도노 씨 일을 부탁한 것도 그걸 깨달으라는 뜻이었어. 우리는 다른 사람과 깊은 관계를 맺지 않고도 그들의 마음을 꿰뚫어 보는 능력을 가졌으니까."

막연히 바다를 느낀다. 나는 소리 없이 중얼거렸다. 바다까지는 걸어갈 수 있는 거리였다. 

 

- "손 잡을래? 아직 다 낫지 않았잖아."
어째서인지 다리가 후들거렸다. 중심을 잡을 수가 없었다. 비 때문인지 어스름한 계단 아래는 흡사 깊은 구멍처럼 보였다. 출구라기보다는 입구였다. 

'입구와 출구는 왜 하나인가'
머릿속에서 누군가가 중얼거렸다. 나는 등 뒤의 승강장을 돌아보았다. 곧 오후나로 돌아가는 열차가 보였다. 
'떠난다 하지만 다시 되돌아온다'
목소리가 또렷해졌다. 내가 잘 아는 목소리였다.

 

- 그러고 보니 늦지 않게 돌아오겠다고 약속했다. 바다에 가면 곧바로 돌아갈 수 없다. 보통의 닭의 감상도 이야기해야 한다. 뜬구름 같았던 지면이 단단한 감촉을 되찾았다. 습기를 머금은 찬바람이 뺨을 스치고 지나갔다. 나는 어머니를 내려다보았다. 새하얀 레인코트 차림의 어머니는 아름다웠다.

 

- 아쉬워하는 미소를 보자 어머니가 다시 여행을 제안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 여행은 분명 지식을 제외한 모든 것을 버리는 여행이리라. 

 

- "망설이지 않았다면 거짓말이에요. 언젠가 엄마하고 똑같은 사람이 되어 소중한 사람에게 상처를 줄지도 모른다... 그게 너무 두려웠어요." 
어머니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내 눈빛을 받아줄 뿐이었다. 
"하지만 결국 그렇게 된다 해도, 그전에 뭔가를 바꿀 수 있도록 노력하는 사람이고 싶어요."

- 계단 밑에서 한층 차가운 바람이 불어왔다. 마치 누군가의 목소리를 들은 듯 어머니는 역 출구 쪽을 돌아봤다.
"오늘 넌 바다에 가지 않는 게 좋겠구나."  

어머니는 코트 주머니에 손을 넣은 채 천천히 계단을 내려갔다. 그 의연한 뒷모습에서 나는 눈을 뗄 수가 없었다.
"... 여기 남기로 했으면, 부디 조심하렴."

 

- <비블리아>를 쓰다 보면 책이 늘어납니다. 물론 다 이유가 있어서 구입한 책이지만, 작중에 등장한 책은 그중 극히 일부에 불과합니다. 똑같은 책이 늘어나기도 합니다. 이를테면 이번에 등장한 데즈카 오사무의 블랙잭, 자료 수집 차원에서 구입하는 거라고 굳게 결심했지만, 제2장 집필이 끝난 뒤 세어보니 구판 챔피언 코믹스만 해도 70권이나 사들였더군요. 참고로 25권 완결입니다. 물론 <비블리아>에는 그렇게 많이 등장하지 않습니다. 관련 서적까지 합하면 어마어마한 양입니다. 왜 매번 이렇게 되는 걸까, 이참에 생각을 해보니 자료로 쓸지는 알 수 없지만 혹시 모르니 사자의 반복이더군요. '혹시 모르니까' 란 마음이 원인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런 자료는 무척 중요합니다. '혹시 몰라서 샀는데... 아마 안 쓰겠지'라고 생각한 책이 결과적으로는 계속 등장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보기에는 쓸모없어 보이더라도 일단 집고 보는 수밖에 없습니다. 이러니 공간이 부족해질 수밖에요. 고민도 많았지만 비블리아를 쓰는 동안에는 자료가 늘어나는 걸 자연의 섭리라 여기기로 하고 포기했습니다. 인간의 발길이 닿지 않은 대지에 어느새 수풀이 우거지고 생명이 탄생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작디작은 인간의 의지 따위는 상관없습니다. 누구의 책임도 아닙니다. 책장을 더 사면 되는 일입니다. 


 

- 강한 햇살 아래서 보는 수국은 흡사 다른 식물 같았다. 광택이 있는 커다란 잎과 또렷한 빛깔의 꽃, 남쪽 섬에 피어 있어도 이상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소담스럽게 핀 녹색과 푸른색 그늘에 숨어, 나는 인기척 없는 완만한 언덕을 지켜보고 있었다. 6월 치고는 드물게 화창한 날이었다. 장마를 건너뛰어 여름이 온 건가 싶을 정도로 더웠다. 아까부터 몇 번이나 땀을 닦았는지 모른다. 

- 채 몇 초도 되지 않는 시간이었는데, 목소리를 들을 때까지 누가 다가오는지조차 몰랐다. 
"고우라 아냐?"
오랜만이네, 하고 하는 수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다른 인사말이 떠오르지 않았던 까닭이었다.

- 꽃을 든 다나카 도시오는 조금 여윈 것처럼 보였다. 하얀 셔츠가 왠지 눈부셨다. 서늘한 눈매는 여전했지만, 인상적이었던 고수머리는 두피가 보일 정도로 짧게 잘랐다. 겉보기에는 다정한 미청년이라, 도저히 폭력을 휘두를 인물로는 보이지 않았다. 자주 보았던 나도 그의 정체를 알아채지 못했다. 

 

- "미안하지만 저 짐 좀 들어줄래?"
자리에서 일어난 다나카의 두 손에는 물통과 꽃이 들려있었다. 나는 바닥에 놓인 비닐봉지를 들었다. 안에는 작은 일본 술병과 향이 들어 있었다.

- "초판은 겨우 500부밖에 안 됐어요. 다자이는 당시 20대였지만, 이 책을 위해 10년을 보내며 5만 장의 원고를 썼다고 해요. 실린 작품은 그중에 극히 일부였고, 나머지 작품은 모두 찢어 없앴다고 해요. 
'나는 이 책 한 권을 내기 위해 태어난 것이다. 오늘부터 나는 송장이나 다름없다.'  
그런 말이 <생각하는 갈대>에 나와요. 처음에 소년 시절을 돌아본 <추억>을 집필했지만, 한 작품만으로는 성에 차지 않았던 거죠. 그때까지의 경험을 모두 쏟아붓고 싶다는 생각에서 고시고에의 고유루기 곳에서 일으킨 동반 자살 사건을 소재로 <광대의 꽃>을 썼고..."

- 먼 옛날의 유명작가와 지금 여기 있는 내가 이어졌다. 책을 잘 아는 사람이라면 이런 경험은 일상적이겠지. 다나카 도시오도 그랬고, 당연히 시오리코 씨도. 그리고 시오리코 씨의 어머니, 시노카와 지에코 역시.  

- 이제 곧 아이도 태어난다. 여러 모로 힘든 상황이지만, 신기하게도 그들에게서는 그늘을 찾아볼 수 없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웃는 얼굴로 극복할 것 같은 강인함이 느껴졌다.  

- "아니, 그냥 책 읽고 있었던 거라니까요. 그때는 무슨 꿍꿍이인가 했어요. 얼굴만 아는 사이인데 몇 년은 알고 지낸 사람처럼 말을 걸어서..."
"스바루 넌 경계심이 너무 강해. 아는 사람이 있으면 말을 거는 게 당연한 거 아냐?" 
"전 그냥 무시하는데요. 아는 척하는 게 귀찮을 때도 있잖아요."
"아니? 난 없는데. 너 진짜 특이하다."

 

- "너는 얼굴이 못났으니까..." 
불현듯 다나카의 말이 입 밖으로 튀어나왔다. 뭔가 의미심장한 느낌이었는데, 대체 뭐였을까? 다음 말이 기억나지 않았다.
"너는 얼굴이 못났으니까 애교라도 있어야지. 넌 몸이 약하니까 심지라도 굳어야지..." 
시오리코 씨가 물 흐르듯 말했다. 순간 멍해졌다.
"아는 말입니까?"
"네. <만년>에 실린 <잎>이라는 단편의 한 구절이에요. 습작의 단편을 모아 재구성한 것이라 문장 사이에 거의 ...

 

- 그나저나 습작의 단편들을 그저 늘어놓은 것은 아닌 것 같았다. '죽으려고 생각했다.', '죽음을 생각하기 시작했다.'처럼 자신의 생사를 묻는 문장이 눈에 띄었다. 전체적으로 한 덩어리의 감정에서 출발한 글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 다시 한번 다나카가 읊었던 구절을 읽었다. 뭐, 외모에 대한 부분을 제외하면, 시오리코 씨가 자신에게 하는 말 같다는 이야기를 한 것도 이해가 갔다. 몸이 튼튼하다고 할 수는 없는 상태이고, 거짓말도 잘하는 편이니까. 

- 이부세 마스지. 나도 이름은 알고 있었다. 다자이와 사제관계였다는 사실은 처음 알았다. 
"섬세한 자존심을 가지고 있던 다자이는, 생활 능력이 없는 자신, 변명할 수 없는 실패를 되풀이하는 자신에 대한 절망을 안고 있었어요. 언제 목숨을 끊어도 이상할 게 없는 상황이었죠. 그런 자신을 소재로 작품을 쓰는 행위가, 역설적으로 소설가의 삶으로 다자이를 이끈 거죠... 유서라고 생각하고 쓴 <만년>은 그와 비슷한 갈등을 가지고 있던 당시 젊은이들의 심금을 울렸어요."

 

- '자신을 가지고 살아가자. 살아있는 이들은 모두 죄인이니.' 
예전에 보았던 글귀가 떠올랐다. 시오리코 씨가 소장한 만년에는 다자이의 친필로 그렇게 적혀 있었다. 살아있는 이들은 누구나 죄를 가지고 있다. 그런 뜻으로 해석한다는 이야기를 그때 들었던 기억이 난다. 

 

- "지금도 <만년>은 사랑받는 작품이에요. 저 역시 그렇고요. 사생활 면에서는 엉망이라 싫어하지만, 인간적인 나약함에는 공감이 가요. ...모순되는 감정이겠지만요." 
"이상할 게 있습니까."
누구나 마음에 나약함을 품고 있을 것이다. 모순이라기보다는 자연스러운 감정이라고 생각했다.

- 이제 와서 새삼 놀라울 것도 없었기에 말은 하지 않았다. 작가의 전집을 읽는 초등학생이라니, 들어본 적도 없었다. 
"정신없이 읽는 저를 보시고는 다자이가 그렇게 재미있느냐고 물으셨어요. 정말 재미있다고 대답했더니, '싫어하는 사람도 많지만 뛰어난 작가지. 특히 중기 작품이 인상에 남는다.'라고 하셨어요." 
"싫어하는 사람도 많습니까? 유명한 작가인데."
열광적인 팬이 많은 걸로 알고 있었다. <달려라 메로스>나 <인간실격>, <사양> 등 나도 아는 작품이 여럿 있었다. 
"국민적인 작가지만, 호오가 뚜렷하게 갈리죠. 나약함과 소외감을 품은 주인공의 독백체로 진행되는 작품이 많고, 사생활이 작품 내용과 거의 일치하니까요. 유약하다, 징징거린다, 그런 비판도 많았어요. 젊은 시절이라면 몰라도, 어른이 탐독하기에는 부끄러운 책이라는..." 

- "비판이 모두 잘못된 건 아니지만, 단지 그것뿐이라면 이렇게 시대를 뛰어넘어 널리 사랑받을 리가 없다고 생각해요. 겉으로 드러난 부분에 지나치게 집착하면, 다자이의 작가로서의 그릇을 알아보지 못하게 돼요."

 

- "자전적인 소설은 없습니까?" 
나는 그렇게 물었다. 어른이 된 걸지도 모른다.
"데뷔 당시에 비하면요. 원래 다자이는 다양한 소재를 자기 것으로 만들어 자유자재로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재능을 가지고 있었어요. 그 재능이 단번에 꽃 핀 게 이 시기였어요. 하지만 다자이의 작가로서의 자질이 크게 달라진 건 아니었어요. 픽션이 분명한 작품에도 다자이의 생생한 심정이 반영되어 있기도 하거든요."

 

- "격분한 단 가즈오가 몰아붙이자 다자이는 얼굴이 백지장처럼 하얗게 질려서 이렇게 중얼거렸대요. '기다리는 이가 괴로울까, 기다리게 하는 이가 괴로울까.'"   

 

- 어처구니가 없어서 말이 나오지 않았다. 순순히 동의할 수는 없는 이야기였다. 솔직히 한심하기 짝이 없었다. 하지만 기다리게 하는 이도 괴롭다는 말은 이해가 가기도 했다. 좋고 나쁜 걸 떠나서, 어떤 심정인지 막연히 알 것 같았다. 다자이라는 작가 역시 독자에게 그런 존재일지도 모른다. 

 

- "아니... 나하고는 취향이 영 안 맞았어. 특히 다자이를 좋아하는 게 풋내 나서 참을 수 없었지. 자네들도 이런 일을 하니까 알겠지. 다자이는 널리 인기가 있기는 하지만, 작품에 깊이가 없어." 
"... 그런 의견도 있을 수 있겠네요." 
시오리코 씨의 목소리가 급격히 작아졌다. 표정은 바뀌지 않았지만, 항상 같이 있는 나는 알 수 있었다. 꽤 화가 난 눈치였다. 안절부절못하는 나를 힐끗 보더니 고타니는 이야기를 계속했다. 
"고뇌하는 자신을 희화화해서 소설이란 형태로 파는 데 능했지. 그건 인정하지만, 그런 건 학생 때나 잠깐 읽고 말면 되는 거 아닐까? 나도 그랬어. 어른이 된 뒤에는 다시 읽을 마음도 들지 않더군. 젊어서 그렇게 죽지 않았다면, 벌써 사람들에게 잊혔을 거야. 같은 무뢰파라도, 사카구치 안고나 이시카와 준이 훨씬 뛰어난 작가잖나. 그리고..." 
"전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 "요절한 게 인기의 원인의 하나라는 건 부정하지 않아요. 하지만 무뢰파로 분류되는 다른 작가들도 크든 작든 스캔들을 일으켰죠. 지금 말씀하신 사카구치 안고나 이시카와 준은 다자이의 재능을 인정했었고, 그가 세상을 떠났을 때 진심 어린 추도문을..." 

 

- "... <직소>가 뭡니까?"
하는 수 없이 시오리코 씨에게 물었다. 며칠 전에 언뜻 들어본 기억은 났다. 기독교를 소재로 한 책이라고 하던가. 시오리코 씨는 휙 고개를 돌려 나를 보았다. 흥분한 듯 상기된 얼굴이었다. 
"1940년에 발표된 다자이 중기의 걸작 단편이에요. 고백체 소설로, 예수 그리스도를 배신한 제자 유다의 1인칭 시점이죠. 관원에게 스승을 고발한 유다는 지금까지 예수에게 느꼈던 감정을 단숨에 토해내요. 인간으로서 스승을 사랑하지만, 상인이라는 자신의 출신 때문에 천대를 받았다고 생각해 증오하기도 해요. 상반된 감정에 괴로워하던 끝에, 결국 복수를 위해 스승을 밀고하죠. 은화 30닢을 받고, 자신을 이스카리옷의 유다라고 밝히며 이야기는 끝나요." 

- "죄송해요. 결론을 내기 위해서는 다양한 가능성을 생각해야 해서..." 
"아니에요. 나도 같은 생각을 했던 적이 있거든요. 솔직히 어머니 성격이라면 그랬을 수도 있겠다 싶어서... 하지만 만에 하나 그게 사실이라도 나한테는 숨기지 말아 줘요." 
용기 있는 사람이라 생각했다. 집안의 수치가 되는 이야기라 해도, 진실을 알려 하는 것이다. 아무리 추하고, 듣기 괴로운 일이라도 상관없다고 했던 고타니의 모습이 떠올랐다. 
"약속드리겠습니다. 제가 알아낸 일은 숨김없이 말씀드릴게요."
 
- 시오리코 씨 뒤에서 나도 어스름한 옆방을 들여다보았다. 처음 눈에 들어온 건 책등이었다. 벽 두 면을 높다란 책장이 차지하고 있었다. 제목까지는 보이지 않았지만, 고서인 것 같았다. 원래는 서재로 쓰던 방인 모양이었다. 구석에는 독서용 책상과 의자가 놓여 있었다. 그리고 한가운데에는 커다란 환자용 침대가 놓여 있었다. 목 언저리까지 담요를 올려 덮은 노파가 누워 있었다. 보아하니 깊이 잠든 것 같았다. 땋아 내린 백발은 반지르르해서 아름다웠다. 
 
- "여기 있는 책들은 전부 할머님께서 직접 수집하신 것이에요. 오래된 책을 읽는 걸 정말 좋아하시는 분이세요." 

 

- 이 주인공은 나약한 인간이다. 사랑한다고 눈물을 흘린 뒤에 웃으며 돈을 챙기겠지. 뜨거운 우정을 맹세한 뒤에 만나기 싫어졌다고 웃으며 말하듯. 

- 구가야마의 냉혹함을 다시금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그 사실을 쉽게 밝혀낸 시오리코 씨의 명석함에도 일말의 불안을 느꼈다. 만에 하나, 그녀가 마음만 먹는다면 구가야마 쇼다이처럼 행동할 수 있을 테니까. 그럴 일이 없으리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말이다. 

- "어째서인지 네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훤히 알 것 같아. 머리도 잘 돌아가고, 책임감도 있지. 그리고 무의식적으로 자신의 신체적 장점에 의지하고 있어. 중요한 일은 혼자 끌어안으려는 스타일이지. 분명 손 닿는 곳에 두었을 거야. 그래야 마음이 놓이거든."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지능이나 신체적 장점은 차치하고라도, 다른 부분들은 소름이 끼치도록 맞아떨어졌다. 가족이라도 이렇게 나를 잘 알지는 못할 것이다. 
"특히 자기 여자 일에는 더욱더 그런 경향을 보이지. 그게 네 단점이야. 결국 냉정한 판단을 내리지 못하고 제 무덤을 파지." 

- "난 당신하고 잘 지냈던 적 없어." 
"어...?" 
시오리코 씨는 말문이 막힌 듯했다. 그 상처받은 표정을 보고 구가야마 히로코는 돌연 언성을 높였다. 

"당신이 나보다 훨씬 지식도 풍부하고, 머리도 좋고, 얼굴도 예뻤지. 만날 때마다 생각했어. 이 사람은 내가 원하는 걸 전부 가지고 있다고. 나한테 책 빌린 적 없지? 빌려준 적은 많았지만, 전부 당신이 먼저 가지고 있었고, 먼저 읽었어. 그런 건 생각도 안 해 봤지?" 
그랬을 것이다. 자기가 좋아하는 책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에 한없는 기쁨을 느끼는 사람이다. 이야기를 듣는 사람의 지식이 얼마나 되는지, 좋은 의미로도, 나쁜 의미로도 별로 관심이 없었다. 
"좋아하는 게 있고, 더 좋아하고 싶지만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할지 막막했어. 나보다 더 뛰어난 사람을 절대 따라잡을 수 없는 그 심정, 당신은 모를 거야. 스스로는 말도 못 하고, 행동도 서툴러서 책 말고는 아무 짝에도 쓸모없다고 생각하지만, 내가 봤을 땐 전혀 아니야. 당신은 스스로를 믿어. 못난 자기 모습도 솔직하게 인정하고 있지. 거짓말을 해서 자기를 과대포장하지 않아." 



 - 큼지막한 흑단으로 만든 탁자에 대형본 세 권이 나란히 늘어서 있었다. 표지와 책등을 감싼 아름다운 송아지 가죽에는 제목도, 지은이의 이름도 없고 책의 삼면에는 두껍게 금박이 들어가 있다. 세 권 다 크기와 장정은 같았지만, 가죽의 빛깔은 빨간색과 파란색, 하얀색으로 달랐다. 

 

- "해외에서 오래 생활해서인지 과장된 화법이 몸에 배었습니다. 특히 영미권 사람들에게 일본식으로 에둘러 말하면 못 알아들으니까요. 처음에는 영 거북스러웠지만 지금은 이 세상이 모두 무대다 생각하니 익숙해지더군요. 세상 사람들은 모두 제 역할을 연기하는 배우니까요."

 

- "그럼 됐어요. 모두 옛날 일이고, 현재 진행되는 일도 아니니까 앞으로 우리가 잘하면 돼요.

 

- 나는 그녀가 누군가를 짓밟으면서까지 제 욕구를 채우려는 사람일 리 없다고 생각했다. 무슨 일이 있어도, 분명 다른 길을 모색하리라 믿었다. 나는 그런 그녀의 받침목이 되어 주고 싶었다. 
"... 아아, 기쁨 아닌 모든 감정들은 허공으로 사라졌다. 수많은 의구심도 성급한 절망도, 치 떨리는 불안과 녹색 눈의 질투도..."

 

- "1564년에 잉글랜드 중부 스트랫퍼드어폰에이번에서 태어나, 16세기에서 17세기 초까지 런던에서 극작가로 활동한 사람이에요. 1616 년에 52세를 일기로 사망했죠. 일본으로 따지면 아즈치 모모야마 시대에서 에도 시대 초기에 해당하네요. 태어난 해와 사망한 해가 도쿠가와 이에야스랑 같아요. 셰익스피어 본인에 관련된 자료는 거의 남아 있지 않아서, 그 생애는 베일에 싸여 있지만요." 

 

- "음? <햄릿>도 그렇고 <오셀로>도 영국을 배경으로 한 이야기가 아니네요. 작가는 영국 사람인데." 
"엘리자베스 왕조 이전의 잉글랜드 왕가를 무대로 한 역사극은 많아요... 하지만 셰익스피어가 활동했던 당시 영국을 배경으로 한 희곡은 거의 없어요. <줄리어스 시저>나 <안토니우스와 클레오파트라> 같은 작품은 고대 로마가 배경이고요. 셰익스피어는 다양한 시대를 배경으로 다채로운 장르의 이야기를 집필하는, 자유분방한 작풍으로 인기 ... 

 

- "지금도 상연되고 있죠?"

예전에 데즈카 오사무의 블랙잭의 한 에피소드가 장애인 단체의 항의로 단행본에 실리지 못했다는 이야기를 시오리코 씨에게 들은 적이 있었다. 수백 년 전에 쓰여진 작품이라도, 지금 시대에 불편하게 느끼는 사람들은 분명 있지 않을까. 
"전 세계에서 상연되고 있죠. 문제가 되는 부분이 있지만, 한편으로는 다양한 해석을 허용하는 내용이니까요. 셰익스피어는 샤일록을 평범한 악역이 아니라, 상처받고 분노하는 인간으로 세밀하게 묘사했어요. 오래도록 자신의 신앙과 직업을 부정당한 탓에 복수를 위해 안토니오를 해치려 하는... 딸이 기독교도 연인과 사랑의 도피를 하자한탄하는 장면이 특히 유명하죠. 자신을 멸시하고 소중한 딸을 빼앗아 간 기독교도에게 샤일록은 이렇게 외쳐요.  

'유대인은 눈이 없나? 유대인은 손이 없는가? 오장육부, 사지, 감각, 감정, 희로애락이 없는가? 기독교도와 같은 음식을 먹고, 같은 무기로 상처를 입으며, 같은 병에 걸리고, 같은 치료를 받으며, 겨울에는 같은 추위를, 여름에는 같은 더위를 느끼지 않는단 말인가.'"

 

- "... 샤일록의 피해자적 측면을 너무 강조하다 보면, 안토니오 측의 드라마가 희석되면서 극이 부자연스러워지죠." 
우리는 반사적으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야기에 푹 빠져서 인기척도 느끼지 못한 모양이었다. 검은 폴로셔츠에 면바지를 입은 자그마한 남성이 좁은 통로에 서 있었다. 하얀 피부에 푸르스름한 면도 자국이 남아 있었다. 머리카락과 이마의 경계선을 보아하니 적어도 30대 후반은 된 것 같았다. 

 

- "할머니께서는 젊었을 적부터 번역 일을 하셨나요?" 
책이라는 단어가 나온 순간, 시오리코 씨는 딴사람이 된 듯 들뜬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시노카와 집안은 조부모 대부터 고서나 책에 관련된 일을 하는 사람들뿐이었다. 그보다 더 거슬러 올라가도 그럴지도 모른다. 시오리코 씨 같은 사람이 태어난 것도 당연하다고 할까. 
"여대 영문과에 재학 중이던 시절부터 아르바이트로 조금씩 번역 일감을 받은 것 같은데, 일을 본격적으로 시작한 건 지에코 양이 태어나고 나서부터였다고 들었네. 집에서 아이를 키우며 할 수 있는 일이니까. 번역 일로 딸을 키워서 대학원까지 보냈으니 참으로 대단하지... 그 때문에 과로해서 건강을 해쳤지만." 

 

- 널찍한 다다미방이 나왔다. 먼저 눈에 들어온 건 벽에 나란히 줄지어 선 투박한 철제 책장이었다. 대형본들이 빼곡하게 꽂혀 있었다. 한가운데에는 단조로운 느낌의 테이블과 철제 의자가 있었는데, 그 위에도 역시 책이 쌓여 있었다. 도서관을 방불케 하는 방이었다. 나는 이와 비슷한 분위기의 방을 본 적이 있다. 바로 시오리코 씨의 방이었다.

 

- 아랫변이 허리께에 오는 창문 앞, 원목 책상 위에는 구형 데스크톱 컴퓨터가 놓여 있었다. 짧게 자른 백발에 노란 여름용 니트를 입은 여성이 책상 앞에 앉아 있었다. 책을 읽고 있던 모양이다. 그녀는 등을 끄고 안경을 벗으며 마지못해 우리 쪽을 돌아봤다. 

- 어느새 책장 앞으로 다가간 시오리코 씨는 나란히 꽂힌 책들을 한 줄씩 꼼꼼하게 살펴보고 있었다. 
"백과사전과 어학사전 종류가 풍부하네요. 일할 때 자료로 쓰신 건가요?"

- "그랬죠. 이제 은퇴한 몸이라 상당수는 처분했지만."
"셰익스피어 관련 서적도 굉장히 많네요. 처음 접하신 판본이 펭귄에서 나온 이 전집인가요?" 
시오리코 씨의 손가락이 자그마한 양서의 책등을 쓸어내렸다. 수십 권이 꽂혀 있었지만, 상태는 모두 너덜너덜했다.
"처음에는 도서관에 있던 쓰보우치 쇼요의 셰익스피어전집으로 시작했죠. 고등학생 때 연극으로 본 <베니스의 상인>의 매력에 푹 빠져서, 셰익스피어에 관심을 가지게 됐는데..." 
"후쿠다 쓰네아리 번역이 출간되기 전이었나요?"
"후쿠다 쓰네아리가 번역한 전집이 출간된 건 내가 대학교에 들어가고 나서였어요. 같은 시기의 옛 펭귄 판 전집을 운 좋게 입수한 터라, 후쿠다 쓰네아리 역을 참고해 전부 읽었죠. 영어 공부도 할 겸 해서요." 
"아덴판 전집까지 소장하셨네요. 굉장해요..." 
"그건 나중에 샀어요. 주석이 알차거든요. 셰익스피어 전집을 잘 아는군요. 그 가게에서는 양서를 다루지 않는데." 

 

- "어머니는 학창 시절에 근대 이전의 영미 서적을 연구했는데, 고서 수복이나 제본도 취미로 배웠다고 해요. 아시다시피 할머니와 어머니는 의절한 상태였지만, 가마쿠라 역에서 우연히 만났을 때, 잠깐 대화를 나누다... 할머니의 책이 탔다는 이야기를 들은 어머니가 먼저 본인에게 맡기라고 제안했다고 해요." 
아마 관계를 회복하고 싶다는 표현이었으리라. 고서로 인해 틀어진 관계를 고서로 다시 회복하려 하다니, 정말이지 그 모녀다운 발상이었다. 내용에는 별 애착이 없지만 소중히 간직했던 건, 딸이 정성껏 장정해 준 책이기 때문이다. 

 

- "이제라도 사정을 알았으니, 류지 씨의 힘이 되어 주고 싶다고 하셨어요. 이대로 숨기고 살든, 다른 가족들에게 털어놓든, 어느 쪽이든 응원하겠다고요. 저희도 그 결정에 따를 작정입니다."  

 

- "전통적인 제본 방식을 재현한 건지도 몰라요. 유사 밴드라고 해서, 주인의 취향에 따라 이렇게 불룩하게 만들기도 해요." 
"... 책 주인이 장정을 바꾸는 게 일반적인 일입니까?" 
"원래 중세 유럽 서점에서 신간 서적은 내용이 적힌 내지만 팔았다고 해요. 내지를 산 손님은 제본소에 원하는 바를 주문해서 한 권의 책을 만들었고요. 고서를 구입한 경우에도 소유자가 원하는 대로 다시 제본했대요."
"네? 그러면 표지 같은 걸 다시 해체해야겠네요."
"그렇죠. 유럽의 고서 수집가들은 흠집이나 얼룩을 보수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고서를 신품처럼 아름답게 꾸미려는 경향이 있었다고 해요. 책을 입수하면 우선 내지의 삼면을 얇게 잘라 낸 뒤에 표지와 책등까지 새로 갈아치우는 경우가 많았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현존하는 진짜 퍼스트폴리오도 그 외양은 각자 다르죠." 
나는 눈앞의 커다란 책을 보았다. 그런 점까지 진품을 모방해 만든 것이다. 미즈키 에이코의 말처럼, 구가야마가 복제본을 구태여 호화롭게 장정한 이유가 무엇인지 짐작이 가지 않았다. 이 책이 진품이라면 또 모를까.

 

- "뭐라고 말씀하셔도 상관없습니다. 경찰에 뭐라고 신고하려는 건지 도통 모르겠군요... 거래처에서 받은 사진을 드렸을 뿐인데." 
요시와라는 태연한 표정으로 반박했다. 빈틈없는 그가 협박으로 들릴 만한 발언을 했을 리가 없었다. 경찰에 가면 제삼자에게 미즈키 류지의 사생활을 폭로하는 꼴밖에 안 된다. 이미 거기까지 예상하고 벌인 짓이리라. 

- "생각보다 만만치 않은 아가씨로군요. 날 보기 좋게 물 먹였어." 
우리는 고서회관 근처에 있는 프랜차이즈 카페에 있었다. 요시와라는 계산대에서 커피를 받아 자리에 앉자마자 시오리코 씨를 보며 그렇게 말했다. 
"내가 방심했어요. 어리석은 자는 제가 현명하다고 생각하는 법이죠."
"그리고 현명한 자는 자신이 어리석다고 생각하고요. <뜻대로 하세요>의 인용구죠." 
시오리코 씨가 무뚝뚝하게 노인의 말을 받았다. 그의 칭찬에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그녀 역시 결과에 만족하지 못하는 모양이었다.
"절 추켜세우시는 것 같지만, 이 팩시밀리를 시세보다 비싸게 샀다는 사실은 변함없죠." 

 

- "이런, 이 청년에게도 사전에 언질을 주지 않았군요. 그래서 진심으로 당신을 걱정했던 거고요. 그 모습에 깜빡 속았지 뭡니까. 우리 모두 이 아가씨의 연기에 속아 넘어간 겁니다. 몸이 안 좋은 척까지 하면서." 
 
- "지금 생각해 보니, 당신은 미즈키 에이코가 더욱 비싼 값에 살 수도 있다는 식으로 말했죠. 양심 운운하는 소리도 일부러 한 거고요. 날 방심하게 해서 방지표를 수정하도록 만든 겁니다. 즉석에서 떠올린 것치고는 상당히 주도면밀한 심리전이었습니다." 
요시와라의 말에서 아쉬움이나 분한 감정은 느껴지지 않았다. 진심에서 우러나온 그 목소리에 나는 오히려 불길한 무언가를 느꼈다. 이 사람이 높은 평가를 내릴수록, 정상적인 인간의 범주에서 벗어나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아뇨,"
하지만 시오리코 씨는 단칼에 부정했다. 
"양심을 지켜 달라는 말은 진심이었어요. 이노우에 씨에게는 당신이 다시 방지표를 넣으면, 제가 말한 금액대로 입찰해 달라고 부탁했을 뿐이고요. 당신이 믿을 수 있는 분이기를, 그런 바람도 분명 있었습니다. ...저희 외할아버지 밑에서 일하셨던 분이니까요." 

 

- "연락을 기다리는 쪽이 되면 상대에게 주도권이 넘어가죠. 요시와라 씨는 어떻게 해서든 어머니가 먼저 연락하게 만들고 싶었던 겁니다. 그만큼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야 하는 일인 거죠. 일일이 설명하지 않고 마술 준비를 시작함으로써 장내를 컨트롤하려는 마술사의 심리와도 같다고 할까요."

- "그 사람이 자기 딸이나 어머니가 곤란에 처했다고 도와주러 나타날, 양심이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나요?" 
"거기까지 기대하는 건 아니지만, 양심은 무수한 혀를 가졌다고 하니까요. 그리고 작은 소리라 해도 비명은 멀리까지 울려 퍼지는 법이니 한번 들여다볼 수도 있죠. 개인적인 연락처쯤은 알고 있겠지요?" 

- "그럴지도 모르죠... 상관이 있는지 없는지는 모르지만, 할머니는 어머니에게 이렇게 물으셨대요. 가족을 왜 버렸냐고." 
10년 만에 나타난 딸에게 너무 가혹한 질문이었지만, 그 대쪽 같은 성격을 생각하면 이상할 건 없었다. 그 광경이 눈에 선했다.
"뭐라고 대답했답니까?"
"지금 나는 내가 아니라는 걸 깨달았으니까."

-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어느 시대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마 책의 소유자가 희곡의 순서를 이상하게 여기고..." 
스위치가 꺼진 듯 또다시 시오리코 씨는 말을 멈췄다. 정면을 보고 있었지만, 내 눈에는 초점 없는 눈동자만 비쳤다. 아득히 먼 어딘가를 빤히 바라보는 눈빛이었다. 그런데도 그 눈은 불온할 정도로 무섭게 빛나고 있었다. 

- 대답은 없었다. 아마 머리가 정신없이 돌아가고 있을 것이다. 나는 책의 비밀을 생각할 때의 그녀가 어떤 모습인지 잘 알고 있었다.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오늘은 뭔가 달랐다. 마치 시노카와 시오리코이면서 그녀가 아닌, 또 다른 누군가가 이곳에 있는 듯한 기분이었다. 등골이 오싹해지며 소름이 돋았다. 

- 큰 그릇에 담은 시저 샐러드를 앞에 둔 어머니는 닭꼬치를 안주로 맥주를 마시고 있었다. 닭튀김과 함께 역 앞 반찬가게에서 사 온 것이다. 직접 만든 시금치 무침도 보였다. 
"평일인데 그렇게 마셔도 되는 거야?"
벌써 한 캔을 비우고 다시 한 캔을 따려는 어머니에게 물었다.
"괜찮아. 내일까지 연차니까. 말 안 했나?"

- "엄마야말로 모처럼 휴가인데 어디 여행이나 가지 그랬어." 
"얘가 뭘 모르네. 아무 예정도 없는 이런 시간이야말로 어른이 부릴 수 있는 최고의 사치란다. 요즘 눈코 뜰 새 없이 바빴거든."

 

- "세 권 다 모든 페이지에, 심지어 페이지 안쪽까지 강력한 접착제를 발라서 붙여 놓았고, 책머리를 비롯한 삼면에도 같은 짓을 해 놨습니다. 억지로 펼치려고 하면 이렇게 되는 거죠. 당시에 미리 알았다면 사장님을 말렸을 텐데..."
나는 세 권의 책을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무엇이 원본인지, 아까부터 요시와라가 한마디도 하지 않은 이유를 이제야 알았다. 그도 알지 못했고, 이제 알아낼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는 것이다. 먼 옛날에 가려낼 수 있다고 선언했던 시노카와 지에코를 제외하고는. 

 

- "사백 년에 걸쳐 많은 이들을 거쳐 온 책이에요. 소유자에게는 최상의 상태로 다음 세대에 책을 물려줄 책임이 있다고요! 그런 책을 접착제로 붙이다니, 대체 얼마나 훼손되었을지..."

요시와라는 배우처럼 어깨를 으쓱했다. 
"저도 믿고 싶지 않습니다. 책장을 붙이는 현장을 직접본 것도 아니고요. 하지만 사장님은 무슨 짓이든 하는 사람이었습니다. 특히 복수를 위해서라면." 
어렵게 입수한 귀한 책을 훼손해서 거저나 다름없는 철값에 팔아치웠다. 설령 딸이 그 책을 찾아내더라도 영영 펼쳐 볼 수 없다. 그의 머릿속에는 진정 복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부모로서, 아니 인간으로서 최악이다. 


- "무엇 때문에 시오리코 씨가 참가하기를 바라는 겁니까?"

"시오리코에게는 재능이 있으니까."
"... 재능?"
"책에 남은 단서를 통해 인간의 내면을 읽어 내는 재능. 지은이는 물론, 제본한 사람, 책을 판 사람, 그리고 소장한 사람의 내면까지... 고서점 주인으로 태평하게 살다가는 그 재능을 꽃피울 시기를 놓치게 될 거야. 그건 너무 불행한 일이지." 

- "아, 둘 사이를 인정한다, 안 한다, 그런 뜻은 아냐."
또다시 내 머릿속을 읽은 듯한 대답이었다. 그런 식으로 마무리 지을 이야기가 아니었다.
"내가 결정할 일이 아니라는 거야. 이대로는 언젠가 본인이 고통받을 날이 오겠지."
"... 지금 나는 내가 아니다. 어느 날 문득 그런 생각이 든다는 겁니까."

- "자기 의지로? 정말로 자기 자신을 다 파악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겁니까?" 
"무슨 소리지?"
"당신이 퍼스트 폴리오를 찾아 나서게 만든 건 구가야마 쇼다이죠. 이러쿵저러쿵해도 수십 년 전에 아버지가 친 덫에 걸려 비블리아 고서당을 떠난 거 아닙니까. 자기 의지가아니라." 
"관점을 달리하면 그렇게 보이겠지."
지에코는 맥이 빠질 정도로 순순히 대답했다.
"하지만 거기서 더 관점을 바꿔 봐. 아버지가 뭔가 계략을 꾸민 건 알고 있었어. 그런 식으로 기꺼이 딸에게 유산을 물려주려는 구가야마 쇼다이는 내가 아는 구가야마 쇼다이가 아니니까. 그걸 덥석 받는 나도 내가 아니지. 그 모든 게 신물이 나서 거절했어. 친딸을 상대로 이런 계략을 꾸미는 게 훨씬 그 사람다우니까." 
그녀는 들뜬 목소리로 말했다. 진심이라는 게 느껴져서 소름이 돋았다.
"전부 당신 계획대로다. 그렇게 말하고 싶은 겁니까?"
"아니. 누가 계략을 꾸몄든 상관없다는 거야. 매 순간마다 이게 바로 나다, 그렇게 단언할 수 있는 게 진정한 자신의 모습이지. 단순히 감정의 강도라는 게 존재할 뿐이고, 인간은 그 강도에 맞춰 결단을 내리면 돼. 분명 시오리코도 그렇게 생각할 거야. 결국 요시와라 씨의 제안을 받아들일 거고." 

- "완벽한 비극이군요."

"맞아. 너무 음울한 결말이라 셰익스피어의 사후에 결말을 행복하게 바꾼 버전이 만들어졌고, 150년 동안이나 원작 <리어 왕>은 상연되지 못했을 정도였어."
"그건 좀 너무한 거 아닙니까?"
작가에게는 더없는 비극이다. 시오리코 씨와 비슷한 목소리라 그런지 어느새 이야기에 빠져들고 있었다. 
"리어 왕이 그만큼 걸출하고 비범한 극이라는 반증이지. 아무도 구원받지 못하는 완벽한 비극이기 때문에, 효심지극한 코델리아를 잃은 리어의 통곡이 관객의 가슴을 미어지게 하는 거야. 'My poor fool is hang' d', 내 가엾은 바보가 목 졸려 죽었다..."
"fool은 분명..."

"광대라는 뜻도 있지. 리어의 마음속에서는 자신에게 충실했던 광대와 코델리아의 존재가 맞물려 있었는지도 몰라. 실은 이 두 배역을 한 배우가 연기했다는 설도 있어. 두 사람은 동시에 등장하지 않고, 엘리자베스 시대의 배우는 혼자서 여러 역을 맡는 게 일반적이었으니까." 

 

- "요시와라 씨는 대단한 사람이야. 머리가 비상하니 광대도 될 수 있지. 광대역을 맡으려면 지혜가 필요하니까. 조심하지 않으면 큰코 다칠 거야... 특히 시오리코는."

 

- "나도 같이 갈 겁니다. 아까 그렇게 말했지? 같이 가서 뭘 어쩌겠다는 건데?"

"아..."
머릿속이 새하얘졌다.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았다. 그녀의 목소리는 누군가에게 준엄한 진실을 고할 때의 시오리코 씨의 목소리와 똑같았다. 
"체력도 좋고, 다소 예리한 구석이 있는 건 인정할게. 하지만 그래 봤자 평범한 인간일 뿐이야. 네가 할 수 있는 일은 다른 사람도 충분히 할 수 있지. 시오리코 정도의 재능이라면 더 뛰어난 파트너를 쉽게 찾을 수 있어. 지금은 아직 본인이 그 사실을 알아채지 못했을 뿐이야."

귀에 익은 목소리가 텅 빈 머릿속에 메아리쳤다. 내가 그녀의 파트너로 부족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은 오래전부터 마음 한구석에 존재하고 있었다. 
"어차피 사랑은 광기일 뿐이야. 시오리코의 광기가 사라졌을 때, 네 존재가치는 더 이상 없을 거야. 내 말이 틀렸니?"

반박은커녕 손가락 하나 까딱할 수 없었다. 시노카와 지에코는 흡족한 표정으로 발길을 돌리더니, 문을 열며 어깨너머로 나를 돌아봤다.

 

- "자네는 평범한 사람이야. 살다 보면 언젠가 그 아가씨는 자네를 떠날지도 모르지... 하지만 그게 뭐?" 
부담을 주려는 것도, 조롱하려는 것도 아니었다. 나는 고개를 들었다. 시다는 편안하게 서서 똑바로 나를 바라보았다.
"지금 그 아가씨가 선택한 건 자네야. 그걸로 충분하잖아. 내가 보기에 자네는 번듯한 청년이고, 그 아가씨는 좀 많이 이상해. 자네라는 번듯한 청년이 그 괴짜 아가씨를 선택했다고도 말할 수 있는 거야. 자신을 가져. 중요한 건 마음의 준비야. 남은 인생이 어떻게 굴러 갈지는 아무도 몰라."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시다의 말이 마음에 와닿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쉽게 마음을 정할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어제 시노카와 지에코가 던진 말도 분명 일리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 이제 내가 아는 시다라는 인물은 아무 데도 없다. 마음이 놓이면서도 한편으로는 쓸쓸한, 묘한 기분이었다.

- 순간 안개가 걷히듯 머릿속이 맑아졌다. 무슨 고민을 하고 있었는지, 그조차 순간적으로 잊어버렸다. 매 순간마다 이게 바로 나다, 그렇게 단언할 수 있는 게 진정한 자기 모습이다. 시노카와 지에코도 그렇게 말하지 않았는가. 무엇이 옳은지, 앞으로 무슨 일이 일어날 건지, 모두 내다볼 수 있는 인간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 무대 위에 있는 등장인물이나 마찬가지다.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상황에서 어떻게 할지 판단을 내리는 건 나 자신이다. 어떤 결말이 기다릴지, 그런 생각만 하다 보면 끝이 없다. 시다의 말대로 스스로 내린 결정이라말하며 가슴을 펴면 된다. 모두 마음먹기에 달렸다. 

- "그 점이 마음에 들었을지도 모르죠. 고서 수집가 중에는 별난 사람이 많으니까요."  


- 거의 10년 전부터 일기 비슷한 걸 써 왔습니다. 옛날부터 드문드문 일상생활에서 있었던 일이나, 소설 아이디어에 관한 메모를 적어 오긴 했지만 기억력 감퇴로 전보다는 꼼꼼하게 기록해야겠다고 생각한 거죠. 말이 일기지 실제로는 일주일에 한두 번, 책이나 영화를 본 감상이나 업무 관련한 기록이 대부분입니다. 아무에게도 보여 준 적 없고, 가족들도 모르는 곳에 몰래 숨겨 두었습니다. 그 일기장에 '비블리아 고서당 사건수첩'의 기획 시작 단계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일어난 모든 일들을 기록해 놨습니다.  

 

- 지난 몇 년간의 일기를 복기하면서 새삼 깨달은 사실이 있습니다. 젊은 시절, 프로 작가들은 분명 나와는 다른 인종이며, 고생하지 않고 술술 작품을 써 내려갈 것이라 상상했었습니다. 하지만 실제로 작가로 데뷔해 어느 정도 경력을 쌓고 보니, 이 바닥에서 작품을 쉽게 쓰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제가 아는 사람들은 모두 고생에 고생을 거듭하며, 머리를 쥐어짜 안간힘을 다해 집필하고 있습니다. 아마 작가에게 필요한 건 그런 고생조차 쾌감으로 바꾸는 변태 같은 집중력과 어느 방향으로 고생해야 하는지 파악하는 센스, 그 두 가지겠죠. 때문에 이 시리즈를 쓰면서 제가 고생한 건 지극히 당연한 과정일 뿐이고, 이 일을 앞으로도 계속하려면 그에 익숙해지는 수밖에 없습니다. 물론 읽어 주신 독자 여러분의 성원이 없다면 작가는 존재할 수 없습니다. 지금까지 이 시리즈를 응원해 주신 여러분께 진심으로 감사 인사를 드립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비블리아 고서당 사건수첩: 시오리코 씨와 기묘한 손님들
시간이 멈춘 듯한 고서점을 배경으로 한 미카미 엔의 힐링 미스터리 『비블리아 고서당 사건수첩』 제1권 《시오리코 씨와 기묘한 손님들》. 가마쿠라의 한 고즈넉한 마을에 자리한 작은 고서점 ‘비블리아 고서당’. 비밀과 함께 기묘한 손님들이 찾아오고, 해결의 열쇠는 오래된 명작 속에 있다. 헌책을 사랑하는 아름다운 여주인 시오리코가 해박한 지식과 남다른 추리력으로 고서에 얽힌 수수께끼를 풀어간다는 내용이다. 우연히 ‘비블리아 고서당’을 지나치던 청년 다이스케는 청순한 분위기의 여주인에게 호감을 느낀다. 몇 년 후, 다이스케는 할머니의 유품인 《나쓰메 소세키 전집》의 가치를 감정하기 위해 ‘비블리아 고서당’을 찾게 되고 여주인 시오리코와 재회한다. 짧은 시간 동안 시오리코는 책의 가치보다 더욱 중요한, 다이스케의 할머니가 평생 가슴 속에 감추고 있던 비밀을 추리해내는데….
저자
미카미 엔
출판
디앤씨미디어
출판일
2013.02.28
 
비블리아 고서당 사건수첩 2: 시오리코 씨와 미스터리한 일상
시간이 멈춘 듯한 고서점을 배경으로 한 미카미 엔의 힐링 미스터리 『비블리아 고서당 사건수첩』 제2권 《시오리코 씨와 미스터리한 일상》. 가마쿠라의 한 고즈넉한 마을에 자리한 작은 고서점 ‘비블리아 고서당’을 무대로 책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지닌 미녀 주인 시오리코와 그녀에게 은근한 순정의 눈길을 보내는 아르바이트 청년 다이스케가 고서에 관한 미스터리를 해결해나가는 내용이 펼쳐진다. 앤서니 버지스의 《시계태엽 오렌지》에 대한 한 소녀의 독서감상문이 일으킨 작은 파문. 이를 시작으로 다이스케의 전 여자친구가 등장하면서 다이스케와 시오리코의 관계에도 변화가 일어난다. 어느 희귀 만화책에 얽힌 사건을 통해 시오리코는 다이스케에게 속마음을 털어놓고, 그것은 가족을 떠나 행방을 감춘 자신의 어머니와 관련한 이야기였는데…. 1권보다 한층 더 깊어진 드라마는 물론, 1권에 등장했던 인물들의 후일담이나 다른 사건들도 만날 수 있다.
저자
미카미 엔
출판
디앤씨미디어
출판일
2013.06.01
 
비블리아 고서당 사건수첩 3: 시오리코 씨와 사라지지 않는 인연
시간이 멈춘 듯한 고서점을 배경으로 한 미카미 엔의 힐링 미스터리 『비블리아 고서당 사건수첩』 제3권 《시오리코 씨와 사라지지 않는 인연》. 가마쿠라의 한 고즈넉한 마을에 자리한 작은 고서점 ‘비블리아 고서당’을 무대로 책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지닌 미녀 주인 시오리코와 그녀에게 은근한 순정의 눈길을 보내는 아르바이트 청년 다이스케가 고서에 관한 미스터리를 해결해나가는 내용이 펼쳐진다. 3권에서는 시오리코의 행방 불명된 어머니 시노카와 지에코에 관한 단서가 드러난다. 더불어 시오리코와 다이스케의 책을 통해 연결된 관계에 변화의 조짐이 보인다. ‘고서 교환전’에서 기묘한 사건이 일어나고 제목도 저자도 모를 책의 수수께끼와 미야자와 겐지의 《봄과 아수라》 초판본 도난 사건 등을 통해 그들은 마침내 지에코가 남긴 흔적에 다가가는데…….
저자
미카미 엔
출판
디앤씨미디어
출판일
2013.09.05
 
비블리아 고서당 사건수첩 4: 시오리코 씨와 두 개의 얼굴
드디어 모습을 드러낸 시오리코의 어머니, 지에코. 그녀의 갑작스런 등장에 당황한 시오리코와 다이스케는, 곧 이어 수수께끼의 인물에게서 이상한 의뢰를 받는다. ‘어떤 인물이 남긴 정교한 금고를 열어준다면, 에도가와 란포의 희귀 초판본 컬렉션을 싼 값에 넘겨주겠다’는 내용. 이 의뢰와 지에코는 무슨 관계가 있을까? 금고 안에 든 ‘소중한 물건’의 정체는?
저자
미카미 엔
출판
디앤씨미디어
출판일
2014.02.26
 
비블리아 고서당 사건수첩 5: 시오리코 씨와 인연이 이어질 때
미카미 엔의 소설 [비블리아 고서당 사건수첩] 제5권. 시오리코에게 마음을 고백한 다이스케. 돌아온 대답은 “5월까지 기다려달라”는 것이었다. 약간 어색하지만 전보다도 친밀해진 두 사람에게 어김없이 오래된 책과 관련한 수수께끼가 찾아오고, 시오리코는 가족을 버린 어머니의 그림자를 직시하려 한다. 또 다른 불길한 그림자가 다가오는 줄도 모른 채…….
저자
미카미 엔
출판
디앤씨미디어
출판일
2014.07.23
 
비블리아 고서당 사건수첩 6: 시오리코 씨와 운명의 수레바퀴
『비블리아 고서당 사건수첩』 제6권. 시오리코 씨에게 중상을 입힌 청년이 다시 나타난다. 그러나 그가 원하는 《만년》 초판본은 시오리코 씨가 갖고 있는 초판본과는 완전히 다른 것. 의뢰를 받아들인 비블리아 고서당의 두 사람은 40년 전의 희귀본 도난 사건에 자신들의 조부모가 연관되어 있음을 알게 되는데…….
저자
미카미 엔
출판
디앤씨미디어
출판일
2015.05.01
 
비블리아 고서당 사건수첩 7: 시오리코 씨와 끝없는 무대(완결)
시간이 멈춘 듯한 고서점을 배경으로 한 미카미 엔의 힐링 미스터리 『비블리아 고서당 사건수첩』 제7권 《시오리코 씨와 끝없는 무대》. 가마쿠라의 한 고즈넉한 마을에 자리한 작은 고서점 ‘비블리아 고서당’을 무대로 책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지닌 미녀 주인 시오리코와 그녀에게 은근한 순정의 눈길을 보내는 아르바이트 청년 다이스케가 고서에 관한 미스터리를 해결해나가는 내용의 작품으로, 그 대단원의 마지막 이야기가 펼쳐진다. 제1권에서 처음 등장했던 다자이 오사무의 『만년』이 제6권에 이어 이번 작품에서도 등장한다. 처음 등장한 책을 마지막 권에서도 등장시키는, 어떻게 보면 수미쌍관의 구조를 띄고 있는 이번 이야기는 ‘셰익스피어’라는 더 크고 웅장한 소재를 무대로 삼아 장대한 마지막을 향해 나아간다. 큰 무대로 옮겨 희귀한 고서에 대한 지식에 깊이를 더한 것에 이어 등장인물들의 관계 역시 한층 더 깊어진다. 시오리코 모녀의 관계, 그리고 가장 중요한 시오리코와 다이스케 두 사람의 관계는 어떤 결말을 맞이하게 될 것인가!
저자
미카미 엔
출판
디앤씨미디어
출판일
2017.0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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