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 : 홍지운
출판 : 알마
출간 : 2020.04.30
즐거웠다.
작품 자체로 한번, LC적인 시선에서 다시 한번, 그리고 작가가 차용한 또 다른 세계관을 통해 마지막으로 한 번.
세 개의 단편을 수록한 <악의와 공포의 용은 익히 아는 자여라>는 세 번의 즐거움을 준다. 이전까지 내가 읽어온 Project LC.RC는 모두 하나로 통일된 중편의 이야기였으므로, 이 책 역시도 그러하리란 것이 내 선입견이자 착각이었다. 꽤나 결이 다른 각각의 이야기의 마지막 장을 넘기고 작가의 이야기가 나타날 때까지도 나는 이 이야기들이 하나로 이어지는 연결지점은 어디일까를 생각하고 있었다.
작가는 세 이야기가 제각기 다른 관점에서 해석하고 접근한 러브크래프트라고 설명하지만, 내가 읽으면서 느낀 바는 조금 다르다. 세 이야기는 제각기 타자를 향한 화자의 거리감만을 보여줄 뿐이다. 혐오와 공포에서 막연한 동경과 소유욕으로, 그리고 자신의 존재를 벗어난 더 큰 존재로의 연결과 사랑으로.
저자가 의도한 바는 아니겠지만 이 순서로 이어지는 이야기들을 읽어가노라면 문득 진정한 '타자'를 사랑하는 것이 과연 가능한가라는 의문에 다다른다. 어쩌면 우리는 언제나 타자에게서 발견되는 자신의 조각들과, 그것들이 보여주는 환상에 사랑에 빠지는 것일지도 모른다.
아, 맞다. 융이다.
뭐랄까. 인간은 강인하다. 어떠한 조건에서도 결국은 어느 정도 적응을 하고야 만다.
그럼에도 식물과 다른 점이라면 원치 않는 곳에 자리를 잡았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벌떡 일어나 걸어 나갈 수 있다는 것. 그를 주저앉히는 것은 '다리가 없다'는 잘못된 믿음뿐이다.
여기에 들러주신 모든 분들이 보다 자유롭고 보다 충만한 하루가 되시길 바라며.
응. 괜찮아. 나는 이제 집으로 돌아왔어. 나에게로 돌아왔어.
- 어디까지나 K 본인의 표현에 따르자면 그는 인생의 승리자였다. 비록 강북이라 해도 K는 부모에게 물려받은 2층짜리 개인 주택에서 가족들과 살고 있었으며 젊은 나이에 과장을 단 뒤로 회사에서 그 나름대로 중한 역할을 맡고 있었다. 공적인 직함 외에도 K는 자신의 교양 수준에 만족했다. K는 갑갑한 직장 생활 중에도 어릴 적부터 두던 바둑과 학창 시절 빠진 음향기기 수집이라는 두 취미를 지속하면서 가끔은 혼자 여행을 떠날 정도로 삶의 여유를 지켜나가고 있었다.
- C와 Y는 어려움이라고는 모르고 자랐다. 그렇기에 아이들은 K에게 무언가를 조르면서 보채는 일이 잘 없었다. K는 오랜만에 눈물을 글썽이며 자신의 허락을 구하는 C와 Y를 보자 우월감을 느꼈다. 그가 무척 좋아하는 감정이었다.
- 여기까지 저 도마뱀을 데리고 온 일이 K가 그 해 아버지로서 한 일 중 가장 공들인 행위였다. 그 이상으로 무언가 봉사한다는 것은 K에게 있어 도무지 수지타산이 맞지 않는 노릇이었다.
- "정말로 되네?"
"그래. 열쇠의 노랑은 안아주는 사탕이 내일이니까."
"뭐라고?"
"응? 뭐가?"
- "선생, 선생께서 염려할 이웃은 내가 아니올시다."
- K는 질색을 하면서 M의 정원 구석구석을 살폈다. 대문 밖과 다르게 그 안은 이상하리만치 어두웠다. 아니, 어둡다기보다는 공간의 명도가 낮은 것에 가까웠다. K는 M의 정원을 보며 위화감을 느꼈다. 그 위화감의 정체는 곧장 알아차릴 수 있었다. 그 정원에는 식물이라고는 잡초 한 포기도 없었던 것이다.
- "나는 탐구자요."
M은 다시 한번 쩌억, 하고 큰 소리를 내며 웃었다. K는 기도 차지 않는다며 콧방귀를 뀌고는 그의 이야기를 흘려 넘겼다. 무엇을 탐구하는지는 물을 생각도 들지 않았다.
"선생의 집에 숨어든 그런 존재를 탐구하지."
M이 이 한 마디를 꺼내기 전까지는.
- 악몽 속에나 볼 법한 것들. 오래고 귀하신 분들. 한 눈으로 볼 수 없고 양손에 사로잡히지 않으며 언제나 말하지 못할 한마디가 남는 자들에 대한 비밀을. 일억 년이라는 세월 동안 빙하 속에 갇혔다가 별들이 자리를 되찾은 지금 다시 돌아오게 된 이들의 이야기를.
- 하지만 M의 거실에서 나는 습한 향과 어두컴컴한 조명에서 벗어나 청결하고 밝은 K의 서재로 돌아오니 그 모두가 보잘것없는 농담으로만 여겨질 뿐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K의 가슴 한구석에서는 M의 연구가 어떻게 이뤄지고 있는지 호기심이 생기기도 했다.
- 방 앞에 도착하자 기시감이 들었다. M의 대문 너머로 들어가 주변의 명도가 확 내려간 듯 느꼈을 때처럼 분명 이미 불이 다 꺼진 집안의 어두움이 더 깊어졌기 때문이다.
- "내 탐구에 따르면 그들은 숨어서 봐야만 하지. 그것들은 정면에서는 전면을 잡을 수 없기 때문이외다. 빛 아래에서 봐도 안 될 거요. 벽에 비춰진 그림자로만 그것의 전체 상을 가늠할 수 있을 테니까. 그것들은 언제나 그러해. 그저 편린을 모아 하나의 커다란 상을 유추할 수 있을 뿐."
- 그날 K는 다시금 꿈을 꾸었다. 이전과는 달리 두렵고 잔인한 이미지로 가득한 악몽은 아니었다. 오히려 어딘가 음탕하고 절제하지 않는, 충동으로만 이루어진, 그런 꿈이었다. 꿈의 내용은 시각적으로 해석되지 않았다. 그보다는 후각과 촉각에 한정되어서 흘러갔다. 몽환적인 세계에서 너무나 익은 나머지 썩은 사과의 냄새가 K의 두개골 안에 가득 찼다. 비릿하고 끈적이는 무언가가 기도와 식도 양측을 타고 그의 몸 구석구석을 유랑했다.
- K는 자신이 느끼는 감각이 잡아먹는 자의 것인지 잡아먹히는 자의 것인지를 가늠하지 못했다. 어쩌면 그 둘은 다르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 숨이 가빠졌고 천장은 높아졌다. K는 바닥을 네 발로 빠르게 기어 다니며 도마뱀을 쫓았다. 도마뱀은 여전히 시선을 돌리면서 웃고 있었다. K는 너무 빠른 속도로 기어 다닌 나머지 그만 벽에 부딪혔다. 그 이후로는 꼬리를 흔들어서 균형 맞추는 법을 깨달아 더 집요하게 도마뱀을 쫓았다.
- K는 딸이 자신이 저지른 일을, 자신의 변한 모습을 보게 될까 두려워 고성을 질러 Y를 쫓아내려 했다. 하지만 Y는 창고 방에 들어오고서도 딱히 놀라지 않았고 아버지가 왜 이러는지 영문을 몰라 바라보기만 할 뿐이었다. K는 곧장 손으로 자신의 몸을 더듬었다. 아까까지 생생하게 느껴졌던 뿔이나 꼬리 그리고 매끄러운 피부는 온데간데 없었다.
- 수의사는 친구 K가 삼겹살집에서 의기양양하게 두 팔을 벌려 환호하자 맞장구를 치며 술잔을 들이켰다. 수의사에게 K는 재수 없는 친구였지만 도마뱀이 집에 온 이후로는 재수 없는 데다 이상하기까지 한 친구였다. 그리고 도마뱀을 집에서 쫓아낸 이후, K는 행복하고 재수 없는 친구가 되었다. 수의사는 친구의 변화를 환영했다.
- K는 자랑스레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생각하기에 요즘 한국 사회에서 셋째를 낳는다는 것은 승리한 사람이라는 증거였다. 둘이어서는 사회가 커지지 않는다. 아비 하나, 어미 하나를 유지하는 것일 뿐이다.
- K는 그런 점에서 수의사를 얕잡아 보았다. 그는 아이를 갖기는커녕 결혼조차 하지 않았다. 수의사는 친구가 자신을 내리까는 그런 시선을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다. 하지만 K의 그런 시선은 술값을 지불하는 호혜로 이어지기도 했다. 그는 이런 기쁨을 굳이 마다하고 싶지는 않았다.
- "죽이지도 못하고, 살리지도 못하고, 묻지도 못하고, 태우지도 못하고..."
- "축하하오, 선생."
K는 낯익은 목소리에 달리기를 멈추었다. M이었다. K는 그를 바로 알아보지 못했다. M이 평소와는 달리 요란한 장신구로 치장했기 때문이었다. 그는 형형색색의 돌덩이들을 낡은 끈으로 묶은 목걸이나 반지 따위로 무장을 한 데다가 금색 안료로 피부 곳곳을 화장하여 달과 별이 빛나는 밤하늘처럼 보였다.
- "선생도 머지않아 나처럼 될 거요. 그대의 가족들과 마찬가지로 말이오. 오, 사랑스러운 형제, 자매, 살붙이, 피붙이! 으하하하, 나도 별이 된다!"
- "치워라! 네가 나를 놀리느냐?"
"설마. 나의 입술은 맹세코 거짓말을 않으리. 나의 혀는 허언을 뱉지 않으리. 선생, 곧 밤이 온다오."
"밤?"
"그러하외다. 그 밤은 흑암에 빠져 한 해의 나날에 끼이지도 않고 다달의 계수에도 들지 못하오. 아무도 잉태할 수 없어 환성을 잃은 밤이오. 새벽 별들도 빛을 잃고 기다리는 빛도 나타나지 말고 새벽 햇살도 아예 퍼지지 못하오. 그대의 모태가 그 문을 닫지 않아 그대의 눈이 마침내 고난을 보게 되었구려."
M은 환희로 가득 차서는 내용을 알 수 없는 방언을 부르짖었다.
- <악의와 공포의 용은 익히 아는 자여라>
- 내가 B, 그 친구를 혼수상태에 빠뜨린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하지만 나는 범죄자는 아니다. 아니, 나는 오히려 그의 병을 낫게 한 의사이자 나락에서 꺼내온 구원자라 함이 옳다.
- B는 내가 아는 누구보다도 심각한 사회부적응자였다. 그는 십 대 때부터 인터넷 인셀들이나 다닐 법한 게시판을 들락거렸으며 조별 발표 때마다 소수자에 대한 차별적인 주장을 해 교사들에게 문제아라고 낙인찍혔다. 그렇게 한심한 짓에 빠진 데는 주변의 무관심 그리고 낙후되었으면서도 학생을 놓아주지 않는 교육 시스템 등 짚을 구석이야 많지만 어차피 다들 그러고들 살았으니 무슨 말을 하든 정답이 되었을 터였다.
- B는 내가 자신의 의견에 관심을 보였다는 사실이 감명 깊었는지 나에게 무척 우호적이었다. 나는 나대로 그와의 교분을 마칠 이유를 찾지 못했다. B는 내 영혼의 북극성이었다. 무언가 고민이 되고 성찰해야 할 문제를 만났을 때 그가 어디로 향하는지를 지켜본 뒤 그가 고른 선택지만 고르지 않으면 최악의 결과는 피할 수 있었다. 만약 내가 내린 결론이 B의 결론과 같을 때는 나 스스로를 돌아보는 시간을 가졌다.
- 정치적인 성향 차이에도 불구하고 내가 B와 교분을 이어나가는 데는 할머님의 독려가 컸다. 할머님은 만주 출신으로 요동치는 현대사 속에서 혼자 자식 셋을 키워낸 호걸이셨다. 신기가 있던 그분은 가족들에게 영문 모를 주문을 거시곤 했는데, 세월이 지나면 묘한 결말로 이어지고는 했다. 그런 할머님이 나에게 B를 가까이하면 크게 쓰일 일이 있다고 하셨으니, 그분께 학비에 용돈까지 지원받는 내가 그 명령을 감히 어길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 지금까지 묘사한 내용을 통해 다들 짐작했겠으나 그럼에도 이후에 있을 일들을 설명하기 위해 밝혀두겠다. B는 무로맨틱은 아니었으며 도리어 연애 관계에 대한 동경과 환상을 갖고 있었지만 숫기 없고 내성적인 성격으로 인해 별다른 연애 경험 없이 성인이 되었다. 하지만 부모가 세상을 떠나면서 건물 하나를 물려받게 되자 그 수익을 기반 삼아 하루하루를 소일거리로 보내면서 성격도 조금씩 달라졌다.
- C는 급하게 한국으로 도피한 이민자였기에 아직 말투에 고국 억양이 있기는 했지만 복장이나 태도 그리고 대화 내용까지 우아함으로 가득 찬 인물이었다.
- 오히려 C가 주도적으로 대화를 흥미진진하게 잘 이끌어간 편이었다. C는 차갑게 얼어붙은 쇳덩어리처럼 세상사를 냉철하게 분석했다. 이렇게 인간을 가축처럼 분석하는 C의 관점은 즐거운 논쟁으로 연결되었다.
- 하지만 나는 그들의 되물음에 대한 답을 찾지는 못했다. 그 질문이란 C가 그렇게나 부족함이 없는 인간이라면 도대체 무엇이 아쉬워서 B를 만나겠느냐는, 매우 논리적이며 타당한 지적이었다. 당시에 나는 그 질문에 대한 정답을 짐작조차 하지 못했지만 이제와 생각해 보더라도 어쩔 수 없는 노릇이기는 했다.
- 단 외서는 전부 남겨놓기로 했다. 평가를 일일이 할 여력도 없었거니와 한국에서 다시 구하기 어려울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그중에서도 내 이목을 끄는 책이 몇 권 있었는데, 기묘하게 생긴 동물 삽화로 가득한 도감 종류였다. 특히 아주 낡은 고서 하나는 산스크리트어로 가득했는데, 중고 서점 앱 따위가 아니라 박물관이나 골동품점에서 다뤄야 할 것 같은 물건이었다.
- 나는 누군가가 감추고 싶어 한 비밀을 알아버렸다는 생각에 마음이 좋지 않았다.
- 나의 이런 수지타산 계산법이 어색하게 들릴 수도 있겠다. 사람이 연애를 시작하면서 언제나 계산적으로 딱 맞아떨어지게 행동하지는 않으니까. 그냥 어쩌다 보니 타이밍이 맞아서 시작하는 경우가 훨씬 많고 나는 그 편이 더 건강하다고도 생각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이런 질문들을 던진 데는 이유가 있었다.
- 내버려 두면 안 된다가 답이라는 사실은 당연히 알고 있다. 그래도 좀 더 오래 고민하고 행동하고 싶은 나의 마음도 이해해주었으면 한다. 아주 조금만 더 오래. 이를테면 내가 결심을 하고 그의 영혼을 타국의 주술사에게 구하려고는 했지만 타국의 주술사가 한 발짝 더 빨라서 내가 안타깝게 성공하지 못할 정도로.
- 농담이다. 구하기로 결정하긴 했다. 쓰레기로 산 대가는 살아서 치러야만 하니까.
- 문제는 알았다. 답도 찾았다. 하지만 풀이 과정은 아직 떠오르지 않았다.
- 문제. 정체를 알 수 없는 주술사 일가가 B의 육체를 노린다. 어떻게 할 것인가?
답. 구한다.
풀이 과정을 쓰시오. 그러게.
- B가 예약한 그 술집은 빈말로도 칭찬하기 어려운 곳이었다. 조명은 어둡고 자리는 불편했으며 사람들은 시끄러웠고 안주는 냉동식품을 전자레인지에 돌린 정도에 술은 싸구려뿐이었다. 이제와 생각하면 B의 계획에 있어서 이는 도리어 장점이었을 것이다.
- B는 언제나와 마찬가지로 맥락 없이 자신은 추켜 세우고 남은 깔보는 대화를 이어나갔다. 나는 그가 그러든 말든 노심초사하며 C의 눈치를 볼 뿐이었다. 나는 C가 B를 노리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C는 내가 C가 B를 노리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 눈치였다. B는 C가 B를 노리고 있다는 것을 모르고 있었다. 결국 C와 나, 두 사람만이 B가 무어라 하든 듣기는커녕 한 귀로 흘리면서 상대방이 언제 어떤 수를 꺼내 들지를 주시하는, 일종의 게임을 플레이했던 것이다.
- "게장을 예로 들어보겠습니다. 한국 사람들 게장 진짜 좋아하잖습니까? 하지만 이 요리를 만드는 과정들을 상상해 봅시다. 무척 잔인합니다. 게들이 간장에 빠져 죽고 염분으로 가득 찹니다. 우리는 게를 익사체로 만듭니다. 그리고 먹습니다."
"그러네요. 해양 생물도 당연히 동물권에 들어가네요. 게를 조리하는 과정도 이제 와 생각해 보면 제법 잔인하고요. 그래서, C는 게장을 먹지 않거나 합니까?"
"아닙니다. 게장 좋아합니다. 하지만 게가 불쌍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아주 살뜰하게 뜯어먹습니다. 살점 하나 남기지 않습니다. 그러면 마음이 편합니다."
- 나는 고개를 떨어뜨렸다. 명백한 신호였다. 내가 알아서 깨끗하게 잘 발라먹을 터이니 너는 따지지 말고 그냥 지켜만 보고 있으라는.
- "어른이 주는 생활의 지혜다. 형이 선물로 줄 테니까 너 필요한 때 써라."
B는 공범끼리의 미소를 지어 보였다. 나는 그를 붙잡으려 했지만 그는 나의 만류를 달리 해석한 것 같았다. B는 나에게 약 봉투를 던지고는 자리를 떠났다. 나는 망연자실하게 가게 바깥에 있는 화장실로 향하는 그를 바라보았다. 괴물은 하나가 아니었다.
- 결과적으로 나는 할머님의 조언을 따라 나라를 구한 셈이다. 하지만 이 땅에서 계속 살아가야 할 내 입장에서 생각해 보면, 글쎄. 이게 과연 잘한 일인지에 대해서는 아직 판단을 보류하는 중이다.
- <프로필 사진으로 올린 것>
- 이렇게 말하면 좀 낭만적으로 들리죠? 근데 제가 좋은 것만 말해서 그렇고요. 언젠가 하루는 오이 두 개를 비비면서 놀더라고요. 그러면 뽀득뽀득 소리가 나거든요. 킷캣은 다섯 시간을 그랬어요. 게스트하우스 방에 누워서요. 다섯 시간을.
- 어디가 좋냐뇨. 그런 게 좋은 거죠. 박사님이 연구실에 너무 오래 계셔서 모르시나 본데요. 진짜로 사치스러운 건 그런 거예요. 시간을 낭비하는 수준이 아니라, 신경을 쓰지 않는 수준. 킷캣은 그런 사람이었어요. 다른 누구보다도 부자였다고 해도 좋죠. 오이 두 조각으로 그렇게 행복할 수 있는 사람은 누구보다도 부자예요.
- 물론 그뿐만은 아니었어요. 킷캣은 맹하기는 했죠. 툭하면 넘어지고 요리하다 베이고 그랬는걸. 하지만 아픈 기색이라고는 하나도 없이 바로 다음 일로 넘어갔어요. 몸이나 마음이 다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죠. 아픔을 모르는 사람도 아니었어요. 하지만 언제라도 다시 나을 거라고 믿었죠. 믿는 대로 되었고요. 저는 킷캣을 보고 있노라면 이 사람은 어딘가 이 세상보다 더 큰 무언가에 연결된 사람이구나, 감탄하고는 했어요. 좋은 사람한테만 찾을 수 있는 안정감이죠. 그리고 킷캣은 좋은 사람이었어요. 제가 이제까지 이 세상에서 만난 그 어떤 사람보다도요.
- 제법 괜찮은 제안이지 않아요? 만약 내가 그때 킷캣한테 용돈 받아서 생활했다고 해봐요. 좀 그렇잖아. 킷캣에게 잘 맞는 일이 거의 없기야 했지만 슈가 대디에 맞는 사람은 더더욱 아니었다고요. 그런데 일감을 받아서 같이 지내게 되면 보기에도 나쁘지 않지. 알바 자리만 소개받는 거니까. 그때까지 킷캣한테 꾼 돈으로 지내다 알바비 받고서 갚음 되고.
- 그게 면접의 전부였어요. 이상한 일을 하게 되었다는 건 저도 알았어요. 모를 수가 없죠. 하나부터 열까지 다 수상했으니까. 그래도 저는, 아니다, 그렇기에 저는 더더욱 그 일을 하고 싶었어요.
- 그럼요. 당연히 후회하죠. 괜한 호기심이었어요. 그래도요. 아마 그때로 다시 돌아가도 똑같은 선택을 할 거 같기는 해요. 그러니까 후회도 하지. 돌아가서 똑같은 짓을 하지 않을 정도의 일이면 후회하지도 않아요.
- 그날 저는 꿈을 꿨어요. 깊은 바닷속 어두운 동굴 안에서 헤엄치는 꿈을요. 박사님은 보고서로 이미 읽으셨겠죠. 저만 그런 꿈을 꾼 게 아니었으니까. 참 잘도 그걸 비밀로 부치셨어요. 그쵸. 못된 사람들 같으니.
- 모르겠어요. 어떻게 묘사를 해야 할지를요. 제가 음악을 잘 듣는 편도 아니고요. 그런 음악은 지상에는 있지도 않으니까요. 멜로디도요. 그냥 막연하게나마 이미지로만 말하면 이래요. 형언할 수 없는 존재가 녹슨 관악기로 기쁨을 연주하고 있었어요. 행복한 거 같았어요. 하지만 그 행복은 누군가의 불행에서, 부재에서 시작한 행복이었어요.
- 킷캣은 수건을 가지고 와 제 이마와 뺨 그리고 목덜미를 닦으면서 저를 진정시켰어요. 그때 알아차렸어야 했는데 말이죠. 킷캣은 제가 무슨 꿈을 꾸었는지, 그리고 꿈에서 들은 연주가 누구의 연주였는지 알고 있는 눈빛이었는데 말이죠. 저는 겁에 질린 나머지, 이 모든 것이 제가 킷캣을 사랑한 나머지 안도하려고 새로이 꾸기 시작한 꿈이라고만 여겼어요. 그래야만 모든 것을 그저 꿈이라고 치부하고 무시할 수 있을 테니까요.
- 다음날 점심, 킷캣은 그 짧은 한국어로 꿈에 대해 뭐라고 길게 설명을 하려고 했어요. 대충 정리하면 꿈은 다른 세상을 볼 수 있는 마음의 창이라는 내용이었어요. 그때는 킷캣이 무언가 낭만적으로 저를 위로하려는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아녔죠. 그저 차가운 진실일 뿐이었으니까요. 킷캣, 이 멍청이야.
- 이 배를 탈 때 알코올이 반입되지 못했다면서 몰래 술도 담갔고요. 사과 주스에 건포도만 있으면 술을 만들 수 있는 거 아세요? 아, 이거 말하면 안 되나? 에이, 상관없겠죠. 주방장님은 이제 간식을 만드는 사람이 아니라 간식이 되신 몸인데, 뭐.
- 그 외에도 뭐, 이것저것 듣기는 했는데 기억은 잘 안 나요. 술자리 얘기라는 게 원래 다 그렇잖아요? 뭣보다도 그때는 주방장님이 멋모르는 신참내기 설거지꾼을 데리고 장난을 치는 거라고만 생각해서 귀 기울여 듣지도 않았고요. 주방장님이 박사님께서 찾는 비밀도 말했을지는, 글쎄요. 모르겠네요.
- 킷캣은 언제나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싶은 때 했어요.
- "저건 감각차단탱크야."
"그게 뭔데요?"
"안에 들어간 사람들이 촉각을 제외한 어떤 감각도 느끼지 않도록 염분으로 농도를 맞춘 물탱크지. 저 문을 닫으면 그 안에는 조명도 없고 바깥 소리도 차단된다. 중력조차 느껴지지 않아."
- "형이 왜 저기에 들어가요?"
"저놈은 이 배의 카나리아거든."
- 함장은 제 앞에 앉아 커피를 끓여줬어요. 그 양반, 스타벅스 원두를 갖고 배에 올랐더군요. 저는 오랜만의 기호품에 넘어가버렸어요. 뭐 어때. 덕분에 몇 달 만에 믹스커피가 아닌 원두커피를 마시게 되었는데 카나리아가 뭔지 알 게 뭐야.
- 하지만 함장은 커피 정도로 설명을 마칠 생각은 아니었더군요. 약간의 향을 즐길 만큼의 뜸을 들인 뒤 그 얄미운 입을 열더라고요.
"옛날 옛적 이야기야. 잠수함은 토끼를, 탄광 인부는 카나리아를 데리고서 바다 밑과 땅 밑을 다녔다고 하지. 밀폐된 공간에서 산소가 모자라거나 이상이 생기면 이 동물들이 가장 먼저 이상 신호를 보였기 때문이야. 토끼나 카나리아의 상태가 안 좋아지는 모습을 보고 그 안이 위험하다는 걸 깨달았던 거지."
"근데 그게 킷캣이랑 무슨 상관이에요?"
"저놈은 유전적으로 위기를 민감하게 느끼도록 조작된 인간이거든."
전 그때 이게 무너 헛소린가 싶었는데 말이죠. 함장은 세상 진지한 표정으로 헛소리를 이어나가더군요.
"너니까 하는 이야기야. 카나리아가 자기를 돌봐달라고 고른 인간이니까 하는 이야기라고."
- "이 배가 향하는 곳은 오래전, 핵폭탄 실험이 있었던 해역이야. 대외적으로는 그곳에서 있었던 실험이나 그 후폭풍이 교과서에 실릴 정도로만 밝혀졌지만 실은 훨씬 더 무서운 일들이 있었지. 그리고 몇십 년이 지난 뒤 과학자들은 그 해역에서 기괴한 생명체들을 발견했어. 어떤 학자들은 핵실험의 여파로 탄생한 돌연변이라고 주장했고 어떤 학자들은 핵실험은 애초부터 심해 속에서 살던 생명체들이 위쪽으로 부상하게 된 계기였을 뿐이라고 주장하기도 해."
- 이렇게까지 열정으로 가득한 헛소리라면 그 성의를 봐서라도 경청하는 편이 맞겠죠. 함장은 태연자약하게 군사 기밀을 공개하는 자신이 얼마나 대범한지를 뽐내고 싶어 했던 것 같기는 한데, 저로서야 알바 아녔네요. 그런데 박사님 표정을 보아하니 진짜긴 진짜였나 보다.
- 함장은 신이라도 나는지 함장실에 있는 다른 장치들에 대해서도 제게 자랑하듯 떠들었어요. 아마 킷캣에 대한 비밀을 공유할 사람이 절실했던 게 아닌가 싶어요. 사람들은 꼭 그러잖아요. 어쩌면 저도 그런 누군가가 필요했는지도 모르겠네요.
- 저는 소름이 돋아서 숨을 죽인 해 함장을 바라보았어요. 함장은 스크린을 노려보고 있었으나 그 낯빛에서는 당황이나 절망이라는 감정은 일절 찾을 수 없었지요. 오히려 희열과 확신으로 가득 차 있었어요. 그 새끼는 알고 저질렀음이 분명했다고요.
- "저것은 인류의 미래이며 보고다! 영생과 불사 그리고 생명의 레시피가 저 괴물에게 있는데 여기까지 와서 눈앞에서 저걸 놓치라고?"
- 너무 뒤늦게 깨달았어요. 이건 이별 선언이라는 것을요. 우리가 이제 이별해야만 할 때라는 것을요.
- 그래서 박사님이 저에게 듣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는 모르겠어요. 하지만 제가 알고 있는 사실 하나만큼은 말씀드릴 수 있을 것 같아요. 바다. 바다는 너무나도 멋지고 정말이지 아름다운 곳이에요. 그 깊숙한 밑바닥에는 생명이 흘러넘치고 있어요. 그리고 그곳에는 세상에서 내가 가장 사랑하는 친구가 살고 있지요. 네. 그게 제가 아는 전부예요.
- <입방해면생명체>
- 러브크래프트를 왜 다시 써야만 할까? 다시 쓴다면 어떤 방향으로 다시 써야만 할까? 기획에 대해 제의를 받았을 때 이 두 가지 질문에 대해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다.
- 첫 번째 질문에 대한 답을 찾는 데는 시간이 오래 걸리지 않았다. 나는 러브크래프트가 제시한 세계관에 매력을 느끼면서도 그 안에서 이형의 존재들이 타자화되는 방식에 의문점이 있었다. 나는 이 의문에 대해 내 나름대로 답을 내보고자 이 기획에 참가하기로 결심했다.
- 이제 두 번째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야 했다. 그 답은 하나가 아니었다. 그래서 세 편의 단편을 쓰게 되었다. 하나는 러브크래프트의 이야기를 그대로 따라가면서도 그 안에 내재된 모순을 암시하는 것으로, 다른 하나는 러브크래프트의 이야기를 나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것으로, 마지막 하나는 나의 이야기를 쓰면서 러브크래프트의 소재를 가져오는 것으로.
- 나를 아는 독자들은 <악의와 공포의 용은 익히 아는 자여라>의 첫 문단부터 이 작품이 <아기공룡 둘리>의 변주임을 알아차렸으리라 믿는다. 나는 몇 년 전부터 <아기공룡 둘리>는 한국의 코스믹호러라고 강하게 주장한 바 있으니 말이다. 고대의 존재로부터 초상의 능력을 부여받은 괴생명체가 몇억 년의 시간 동안 빙하 속에 갇혔다가 현대에 깨어나서 인규를 광기로 물들인다는 점에서 <아기공룡 둘리>는 분명 코스믹호러와 맞닿아 있다.
- 다만 <아기공룡 둘리>의 김수정과 러브크래프트가 소수자와 이방인을 바라보는 시선에는 커다란 차이가 있다.
- 이 작품의 내용은 내 꿈에서 따오기도 했다. 나의 예비 신부처럼 아름답고 현명한 이가 재미도 없고 따분하기만 한 나와 결혼하기로 결심한 이유는 나의 몸과 재산 그리고 사회적 지위를 노리기 때문이라는 내용의 꿈이었는데, 내가 재미만 없는 게 아니라 건강과 재산 그리고 사회적 지위 역시도 없다는 사실을 떠올리면서 지금 내가 꿈속에 있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 꿈에서 깨버렸다.
- 세 작품에 나오는 이방인들은 모두 앞니가 벌어져 있다. 뱅자맹 말로센은 <산문팔이 소녀>에서 벌어진 앞니를 "예언자의 바람이 부는 곳"이라고 했다.
- 무슨 소리인지는 모르겠으나, 그가 이 구멍 안의 구멍에 주목한 이유 정도는 알 것 같다. 이 책에 들어간 모든 글들은 전부 그 이유에 대한 탐구다. 뭔들 그렇지 않겠냐만.
- 양피지에 손을 뻗친 순간, 벨소리가 울렸다. 할머님이었다.
"막내야. 너 어디 있느냐?"
"친구네 어르신 집 치우는 일 도와드리려고 지방에 왔어요."
"네가 무얼 만지려고 하는지 모이지가 않는다. 하지만 무어가 되었더라도 결단코 건드리지 말아라. 혹여 잘못되었다간 명이 끊기고 잘 풀려도 크게 다칠 일이다."
- 할머님은 혹시 모르니 아주 멀리서 그 물건의 사진을 찍어놓으라고 하셨다. 가까이 찍었다가는 화를 입을지도 모르니 물건이 잘 보이지 않을 정도의 거리에서 찍으라고 몇 번이고 신신당부하시고는 그 사진을 할머님과 이웃했던 점집으로 들고 가라고 하셨다.
- 뒤늦게 오한이 나고 소름이 돋기 시작했다. 할머님이 3년 전에 돌아가셨다는 것을 그제야 기억해 냈기 때문이다. 오래전에 별세한 그분이 어떻게 나에게 연락을 하신 것인지 알 수 없었다. 그리고 그런 할머님이 역정을 내시며 손가락조차 대지 말라는 그 물건은 얼마나 흉흉한 것인지 그저 겁이 날 뿐이었다.
- "나를 있는 그대로 사랑해 주는 사람이야."
인상적이진 않지만 확신을 더해주는 답이었다. 지나가다 인사만 해줘도 반해버리는 것이 B 같은 사람들의 특징이지만 이런 사람들의 있는 모습 그대로는 그렇게 사랑할 만하지 않기도 하다.
- 나의 이런 수지타산 계산법이 어색하게 들릴 수도 있겠다. 사람이 연애를 시작하면서 언제나 계산적으로 딱 맞아떨어지게 행동하지는 않으니까. 그냥 어쩌다 보니 타이밍이 맞아서 시작하는 경우가 훨씬 많고 나는 그 편이 더 건강하다고도 생각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이런 질문들을 던진 데는 이유가 있었다.
- 그분의 이야기에 따르면, 그 양피지는 주문이 적힌 주술서라고 했다. 그것도 아주 강력한. 그리고 그 주문은 상대방의 신체를 조종하고 혼백을 뒤바꿀 수도 있다고 했다. 그뿐이 아니었다. 양피지에는 B의 이름이 산스크리트어로 적혀 있다는 것이었다.
- 그렇다면 C가 B와 연애를 하게 된 이유가 명확해진다. B는 잘생기지도, 매력적이지도, 화술이 좋지도, 친근하지도, 조건이 탄탄하지도 않았다. 하지만 누군가가 타인의 육체를 강탈하고 싶은 상황에서 이는 단점이 아닌 장점이다. 이는 신체가 뒤바뀌었을 때 가족이나 친구 혹은 연인처럼 위화감을 느끼고 의문을 품을 사람이 없다는 이야기기도 하니까.
- 이것이 내가 B를 혼수상태에 빠뜨리게 되기까지의 전말이다. 나는 그가 선물로 준 약을, 어른의 지혜를 바로 활용했다. 곧바로 B의 잔에 그 약을 넣어서, 정신을 잃은 C를 끌고 자리에 돌아온 그를 기절시킨 것이다.
- 혹여나 싶어 B의 폰을 확인해 보니 그의 폰 안에는 불법 촬영물이 가득했다. 자세히 보지는 않아 확인할 수 없었지만 C와 관련된 이미지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우선 C에게 폰을 넘기고, C가 고소하기로 결정하면 그때 돕기로 마음먹었다. 이제 와 생각하면 비겁하게 피해자에게 책임을 떠넘긴 것이 아닌가 후회하고 있는 일이다.
- 그로부터 며칠 뒤 D가 나를 찾아왔다. D는 커다란 덩치에 목소리도 성악가처럼 웅장한 호인이었다. 그는 나를 포옹하고 악수하면서 자신을 구해줘서 고맙다며 연거푸 인사를 건넸다. 그리고 할머님에게도 감사하다고 고개를 숙였는데, 나에게는 허공에다 절을 하는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 <프로필 사진으로 올린 것>
- "사실 무슨 이유에서 발견하게 되었든 그건 선생들에게나 중요하지 나 같은 군인에게는 뭐가 되었든 좋은 일이지만 하여튼 그래. 네가 킷캣이라고 부르는 저것의 정체도 마찬가지야. 학자들이 그 심해고생물체의 체조직에서 배양한 세포를 뇌사 상태인 인간에게 이식해서 만든 키메라지. 심해고생물의 세포가 사멸한 인간의 뇌를 먹어치우고 새로운 뇌로 자라났대. 그 영향일까? 저놈은 심해고생물체의 기척을 읽을 수 있다더군. 저놈은 이 배의 나침반이라고 봐도 좋다."
- 그러자 함장은 한쪽 눈에 걸쳐진 안대를 풀어 두 눈으로 저를 노려봤어요. 안대 뒤에 숨겨졌던 눈동자는 저에게는 놀랍도록 친숙한 빛을 하고 있었지요. 그의 눈동자는 마치 킷캣의 두 눈동자와 마찬가지로 짙은 푸른빛을 띠고 있었으니까요.
- "죽지 않아, 죽지 않을 수 있어! 그래, 겁이 나겠지. 알아. 나 역시 그랬으니까. 하지만 이전의 배가 좌초될 뻔했을 때도 나는 어떻게든 저 괴물의 살점을 씹어 먹으며 살아남았다. 저들의 살점은 한쪽 얼굴이 날아가고 다리가 뭉개진 부상조차도 한 번에 낫게 했어. 그러니 지금은 뒤로 물러설 때가 아니야. 저놈들을 손아귀에 넣기 위해 앞으로 나아갈 때라고!"
함장은 비명처럼 외쳤어요. 그리고는 다시금 스위치를 눌러 감각차단탱크에 전기충격을 가했지요. 킷캣은 고통으로 정신이 나가버렸는지 탱크의 문을 두드리면서 오열하기 시작했고요. 하지만 함장은 되레 큰 소리로 웃으면서 소리를 질렀어요.
- 달의 날을 찬미하여라
달의 날을 찬미하여라
지고의 지복의 때가 왔으니
그에 복무하여라
바로 지금 이로부터
찬미하여라
달의 군림을
달의 정복을
찬미하여라
- "이승민. 이승민은 이제 돌아가."
"킷캣? 정신 차렸어? 몸은 괜찮아?"
"응. 괜찮아. 나는 이제 집으로 돌아왔어. 나에게로 돌아왔어."
- <입방해면생명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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