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자가 흐르는 이야기/Book2

[조셉 베너] 내 안의 나 - 신이 전한 영적 교과서

일루젼 2023. 6. 28. 04: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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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조셉 베너 / 신업공동체

원제 : The Impersonal Life

출판 : 빛
출간 : 2011.04.08 


       

<몸의 정령 헨리>에서 언급된 내용을 접하고 찾아 읽게 되었다. 이후에 새로 번역된 판본도 있는 것으로 아는데, 내가 구한 것은 '신업공동체'에서 번역한 판본이다. 혹 나중에 다른 쪽도 읽어보게 된다면 미묘하게 느껴졌던 부분을 비교해보고 싶다. 

 

읽는 동안 여러 영성 도서가 떠올랐다. 닐 도날드 월시의 <신과 나눈 이야기>도 떠올랐고, 아미 슈미트의 <붓다의 딸 세상을 비추다>도 떠올랐다.

 

<내 안의 나>의 원저는 처음에는 저자를 밝히지 않고 '익명'으로 둔 상태에서 발표되었다고 알고 있다. 그 점을 염두에 두고 읽는다면 보다 직접적으로 화자와 소통하는 느낌을 받으며 읽을 수 있을 것이다. 이 존재는 모든 것은 자신의 안배에 따른 것이므로 각자가 이끌리는 대로 살아가도 좋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것이 내면에 존재하는 진정한 '나', 즉 자신과 멀어지는 방향이라면 필연적으로 고통과 괴로움을 겪을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타이른다. 그는 벌도, 복수도 아니다. 그저 그릇된 방향임을 깨닫게 하기 위한 인도일 뿐이다. 

 

무엇을 보고 듣고 느끼든, 모든 것은 그 내부에 존재하는 '나'의 것일 뿐이라는 설명은 기묘한 안도감을 선사한다. 그 감각들을 통해 자신에게로 이끄는 그 부름, 그 손가락을 따라가고자 하는 꾸준함과 의지만 있다면 반드시 자신과 소통하게 되리라는 약속. 모든 이는 각자의 '나'와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잊지 말라는, 아니 그것밖에 없다는, 그것이 진정한 유일신의 의미라는 가르침은 내게 말로 설명하기 힘든 해방감과 안도감을 선물했다. 그렇다. 어떤 존재이건 그 내면에는 '나'가 있는 것이다. 

 

'에고를 침묵시키고 참나와의 연결을 기억하라'는 메시지는 여타의 다른 영성 도서에서도 강조하는 부분이다. 개인적으로 크게 와닿았던 부분은 '그 외의 어떤 존재'라도 완벽하지 못함을 알게 될 것이라는 설명이었다.  

 

그러나 완전한 순종- 조화와 합치를 향해 나아가야 할 여정을 생각하면 주저하게 된다. 그 과정이 틀림없이 순탄하게 느껴지지는 않을 것이라는, 일종의 앎 때문이다.

 

언젠가는 그것이 지극한 기쁨이 되는 순간이 올 지도 모른다. 그것만이 삶의 목적이 되는 때가 올 지도 모른다.

지금 나의 단계는 여기라는 것을 확인하고, 현재의 나를 '감각'하게 하는 모든 것들을 주의깊게 살피는 것 정도가 당장 할 수 있는 일이겠다. 나를 기쁘고 즐겁게 하는 것들 뿐 아니라 괴롭고 고통스럽게 하는 것들 안에도 '나'가 있음을 진정으로 이해할 때, 그리하여 내가 원하는 것을 생각하고 그려낼 수 있음에도 '나'에 순종할 때, 그것이 진정한 기쁨이 될 때.

 

As above, So below.

  


   

나와 함께 할 준비가 되었는가?


- 이 글을 읽는 그대에게 말하건대,
오랜 세월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책들과 가르침에서, 철학과 종교에서 간절히 찾아왔지만, 진리·자유·행복·신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는 그대에게,
지치고 낙심하여 거의 희망조차 없는 영혼인 그대에게,
오직 찾아내려던 '진리'를 몇 번 힐끗 보긴 했지만, 그것을 따라가서 붙잡으려 할 때마다, 사막의 신기루처럼 멀어져 버렸던 그대에게,

- 아마 어떤 모임, 단체, 종교의 지도자로 인정받고 있고, 그대에게 '스승'이 되기 위해 나타난, 그가 설파하는 지혜나 이루어낸 업적이 너무나 놀라워서, 그대는 대단한 교사를 만났다고 여겼지만, 나중에 알고 보니 그 '스승’은 비록 그대에게는 아주 고귀한 '진리'처럼 보였던 훌륭한 가르침을 다수 전달하긴 했지만, 단지 그대와 마찬가지로 잘못과 약점, 숨겨진 허물이 있는 한 인격에 불과함을 깨달은 그대에게, 

- 그리하여 이제는 지치고 허기져서, 어디로 향해야 할지 모르고 있는 영혼인 그대에게,
그런 그대에게, 내가 다가간다.

 

- 마찬가지로 그대 내면의 영혼에 '진리'가 있음을 느끼기 시작했고, 최근에는 내면에서 현실로 발현하고자 막연하게 진력했던 진리에 대해 확증을 추구하기 시작한 사람에게도,

그렇다, 참된 '생명의 양식'을 갈구하는 그대들 모두에게, 내가 다가간다.

- 그렇다면, 잠에서 깨어나 일어나 앉으라. 인간적인 마음을 고요히 하고, 여기에 있는 내 말을 놓치지 마라. 그렇지 않으면 여전히 그대는 가슴속에 목마름을 간직한 채 또다시 실망해서 돌아서게 될 것이다. 

 

 

- 나는 누구인가? 
그럴듯한 지식과 권위로 말하고 있는, 나는 누구인가?

들으라!
나는 존재하고, 아는 그대의 부분이다.

모든 것을 알고 있는,
그리고 항상 알았고, 항상 존재했던 그대의 일부다.

그렇다, 나는 그대의 진아이다. 

나라고 말하고, 나인 그대의 그런 부분이다.

나는 그대가 이 글을 읽어 나감에 따라 내면을 자극해서 이런 내 말에 응답하며,

그 말의 진실을 알아보고 모든 진리를 인정해,

곳곳에서 발견되는 오류를 바로잡는 그대 내면의 초월적이고 내밀한 부분이다.

오랜 세월 오류를 키워온 부분은 아니다. 

 


- 나는 그대의 진정한 교사며, 그대도 언젠가 알게 될 유일한 참된 교사며, 유일한 스승이기 때문이다.

 

- 나는 그대의 '신성한 자아'이다. 그대 속의 내 존재가 그대에게 삶의 모든 것을 가져다주었듯, 생생한 나의 말인 나의 이런 메시지를 그대에게 가져다준다. 그것이 책이든 '스승'이든 그대의 진아인 내가, 오직 나만이 그대를 위한 교사며, 유일한 교사며, 유일한 신임을 가르치기 위해 항상 그대 내면에 있는 나는, 생명의 빵과 포도주만이 아니라 육체적·정신적·영적 성장과 유지를 위해 필요한 모든 것을 언제나 제공해 왔다.

 

- 그러므로 그대가 이 책을 읽어감에 따라 그대의 내면에서 외부의 인간적 의식을 향해 말을 걸며 그대에게 호소하는 내 메시지는, 그대 속의 내 존재가 내면에서는 언제나 알고 있었지만, 외부의식에서는 아직도 명료하지 않았던 것들, 확연하게 나타나지 않았던 것들에 대한 확인일뿐이다. 

 

- 마찬가지로, 외부적으로 표현되어 그대에게 호소해 왔던 모든 것들도, 이미 내면에서 말해졌던 내 말에 대한 확인일 뿐이었다. 그런 외부적인 표현은 그대의 자아의식에 닿아서 각인시키려고 내가 선택했던 수단이요 길이었다. 

 

- 일어서라, 지금 그리고 영원히 자기 과시와 자아도취 된 마음과 지능이라는 개성의 통제에서 그대를 자유롭게 해방하라. 
그대의 마음은 이제부터 그대의 하인이 되어야 한다. 그대의 지능은 그대의 노예가 되어야 한다. 그래야만 나의 말이 그대의 영혼 의식에 스며들기 때문이다. 

 

- 나는 이제 그대의 영혼 의식으로 다가간다. 나의 말을 받아들이도록 준비시키기 위해, 나는 그대의 영혼 의식을 명백히 자극해 왔다.
이제, 만일 그대가 그것을 감당할 수 있을 만큼 확고하다면,
만일 그대가 개인적인 기호와 타인들이 내버린 곳에서 긁어모은 쓰레기 같은 믿음과 견해를 치워버릴 수 있다면,
만일 그대가 그것들을 모두 던져버릴 정도로 확고하다면,

- 나는 그때야 비로소, 내 말은 그대에게 끝없는 기쁨과 축복의 원천이 될 것이다.

- 나의 말을 읽어가는 도중에 그것을 의심하는 그대의 개성이 생기리니, 미리 그것을 각오하라.
왜냐하면, 만일 그대가 내 말을 가슴에 품고 그곳에서 거하기를 허락한다면, 바로 인격의 삶이 위기에 처하기 때문이고, 이제 그대의 생각, 느낌, 움직임을 옛날처럼 조종할 수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 렇다, 그대에게 이제 내가 다가가고 있다.
그대에게 내가 있음을 의식하게 하려고. 
마찬가지로 나는 그대의 인간적인 마음이 내가 누구인지를 다소나마 이해할 수 있도록 이제껏 준비시켜 왔기 때문이다.

 

- 나는 언제나 그대와 함께 있었지만, 그대는 몰랐다. 

나는 의도적으로 그대를 끝없는 책과 가르침으로, 종교와 철학으로 이끌어 왔다. 약속의 땅에 대한 비전을 영혼의 눈으로 언제나 바라볼 수 있도록 해왔다. 사막을 헤매는 그대에게 마음의 양식을 먹여서, 영적 양식을 기억해 내고, 존중하고, 갈망하게끔 해왔다. 

 

- 그대의 내면에서 이렇게 나를 느꼈고, 내 능력을 맛보았고, 내 지혜를 경청하여, 모든 것을 포용하는 사랑의 희열을 안다면, 어떤 질병도 그대를 범접할 수 없고, 어떤 환경도 그대를 연약하게 할 수 없고, 어떤 적도 그대를 쓰러뜨릴 수 없다. 왜냐하면, 이제 그대는 자신의 내면에 내가 있음을 알고, 이제부터 그대의 욕구를 항상 나에게 청하며, 내 의지를 구현해 내기 위해 나를 전적으로 신뢰하고 나를 허용할 것이기 때문이다.

 

- 내게 이런 식으로 청하기만 하면, 그대는 어떤 실패도 없이, 필요할 때면 언제나 그대를 후원해 주는 나를 만날 것이다. 내가 내 현존과 내 능력을 드러내 그대를 가득히 채울 것이므로, 그대는 단지 고요해져서, 자신이 원하는 바가 무엇이든 내가 하도록 허용하면 자신의 병이나 다른 사람의 병을 고칠 수도 있고, 마음이 밝아져서 그대가 찾는 진리를 나의 눈으로 찾아낼 수 있고, 예전에는 거의 불가능하게 보였던 일들도 완벽하게 해낼 수 있게 된다.   

 

- 이런 앎, 이런 체득은 한 번에 오지는 않을 것이다. 여러 해가 걸릴지도 모르고, 내일 올지도 모른다. 
그것은 오로지 그대에게 달린 일이니, 인간적 욕망이나 이해로 가득한 그대의 개성이 아니라, 그대 속의 내 존재, 즉 내면의 신에게 달렸다.
누가 봉오리를 열어 꽃이 피게 하는가? 누가 병아리에게 껍질을 깨고 나오게 하는가?
그날과 그 시간을 누가 결정하는가?

 

- 그대는 자신의 개성을 지닌 채, 인간적인 의식의 껍질을 깨뜨리기 위해 수천 번 수만 번 시도할 수도 있다. 그렇게 하더라도, 결과는 단지 유형의 세계와 무형의 꿈 세계 사이에 내가 만들어둔 문을 부숴버릴 뿐이다. 그래서 문이 열리더라도 그대는 수많은 갈등이나 고통 없이는 사적인 영역의 훼방꾼을 절대 막을 수 없게 된다.

 

- 하지만, 이러한 시련을 통해서라도 그대는 자신에게 부족한 힘을 얻을지도 모르며, 그대가 자신을 이롭게 하기 위한 지식을 향한 욕망, 선해지려는 욕망, 심지어 나와 합일하려는 욕망까지도 완벽하게 포기할 때에야 비로소 그대는 내 신성한 본성의 완벽한 아름다움을 자신의 꽃잎이 펼쳐 보이고, 자신의 인격이라는 껍질을 벗어던져 내 천국의 영광스러운 빛 속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것을 아는 데 필요한 지혜를 얻을지도 모른다. 그런 까닭으로 애초에 나는 그대가 나를 알아보는 방법을 터득할 수 있는 방향을 지금 일러준다.

 

- 여기서 나는 그대에게 약속한다. 그대가 여기에 주어진 나의 가르침을 이해하고 따르기 위해 진력한다면, 그대는 머지않아 나를 알게 되고, 나는 책·가르침·세상·동료 등 어디에나 들어 있는 내 말을 모두 이해할 수 있게 해 줄 것이다. 

- 그러므로 실망하지 마라. 계속해서 읽으면 아마도 알아차릴 때가 올 것이다. 하지만, 그대의 선택에 따라 읽을 수도, 읽지 않을 수도 있다. 그대가 어떤 선택을 할지라도 진정으로 선택하는 자는 그대가 아니라 바로 나다. 

 

- 그대가 외견상 더 읽지 않기로 선택한다 해도, 그대를 위한 계획이 나에게 있다. 그대가 무엇을 하든 좋아하든 욕망하든, 개성이 지니는 오류와 환상을 통해서 그대를 이끄는 존재가 바로 나임을 때가 되면 터득하리라. 그리하여 마침내 그대는 그것들이 실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에 눈뜨고, 그때야 하나의 유일한 실재로서 나에게 의지하게 될지 모른다. 그러면 다음 말에 그대의 내면이 응답할 것이다. 

 

- 그대는 지금 의식적으로 그대 몸의 세포 하나를 지도하거나 조절할 수 없다. 하지만, 그대가 뜻대로 그대 속의 내 존재 의식으로 들어서고 그것이 나임을 알 수 있다면, 그대는 자기 몸의 세포뿐만 아니라 조절하고 싶은 다른 이의 세포도 조절할 수 있게 된다.

 

- 그대의 의식이 그대 몸의 세포를 더는 조절하지 않을 때 어떻게 되는가? 그 몸은 붕괴되고, 세포들은 분리되어, 당장 작동을 멈춘다. 하지만, 세포들이 죽거나 의식을 잃는가? 아니다. 세포들은 잠시 잠을 자거나 휴식을 취할 뿐이고, 얼마 후 다른 세포들과 결합하여 새로운 조합을 형성해서, 조만간 광물·식물·동물 같은 다른 형태의 생명이 된다. 이것은 세포들이 여전히 본래의 의식을 유지하며, 내가 구현하기를 바라는 새로운 의식이 작동되어 새로운 유기체로 결합하려는 내 의지가 작용하기를 기다릴 뿐임을 보여준다. 그러면 분명히 이런 세포 의식은, 각각의 세포가 체험으로 어떤 일반적인 일을 하는데 적합하도록 모든 몸(광물·식물·동물·인간)에 공통으로 있는 의식이 아닐까?

 

- 내가 다음에 밝힐 원리를 충분히 이해한다면, 모든 메시지가 분명해지고 이해할 수 있게 될 것이다.
나는 먼저 내 존재의 비밀을, 지금 그대에게 숨기고 있는 모든 신비를 열어 줄 열쇠를 그대에게 준다.
그대가 일단 그 열쇠의 사용법을 안다면, 그것은 하늘과 땅에 있는 모든 권능과 지혜의 문을 열어줄 것이다. 그렇다, 그것은 천국의 문을 열어줄 것이고, 그러면 그대는 의식적으로 나와 하나가 되기 위하여 안으로 들어가기만 하면 된다. 

- 이 열쇠는
"생각하는 것이 곧 창조하는 것이다."
혹은

"그대의 가슴에서 생각하면, 그것은 그대와 함께 한다."

- 멈추고 이 말을 명상하라. 그것이 그대 마음에 깊이 새겨질 수 있도록.

 

- 사유자는 자신만의 의식적으로 창조하는 세계에 살고 있다.
그대가 '생각하는 법'을 알기만 하면, 그대가 바라는 어떤 것도 뜻대로 창조할 수 있다. 그것이 새로운 개성이든, 새로운 환경이든, 새로운 세상이든.

 

- 그것들은 내가 그대를 통하여 그것들을 외부로 구현하려고 그대의 마음과 가슴에 영감을 준 내 발상이고 내 소망이다. 
그대 자신만의 발상은 없다. 오직 나만이 존재하기에 나에게서 나오지 않고서는 어떠한 욕망도 품을 수가 없다. 그러므로 이런 식으로 이해했을 때, 모든 욕망은 유익해지고 기대에 어긋나지 않으며 빠르고 완전한 성취를 불러온다. 

- 그대는 내면에서 일어나는 나의 소망과 욕구를 잘못 해석하여, 자신의 이기적인 목적으로 사용하려고 애쓸지도 모르지만, 심지어 그럴 때조차도 여전히 나는 내 목적을 성취한다. 내 발상의 완벽한 발현을 위해, 그대를 사심 없고 정직한 통로(채널)로 만드는 방법은, 그대가 나의 선물을 오용해서 그런 오용이 가져다준 고통을 경험하게 함으로써만 가능하기 때문이다.

 

- 우리는 먼저 마음에 발상을 품는다. 그다음 그 발상을 외부로 구현할 욕망을 품게 된다. 

 

- 발상의 의도가 마음에서 명확하게 파악되고, 발상의 성질을 파악하는 정도에 따라, 창조력은 욕망에서 추진력을 얻어 그 작업을 진행한다. 유한한 마음에게 생각해 내고 상상하도록 부추기는 것이다. 달리 말하면, 마치 내가 비인격적이지만 흙·물·불·바람을 진공상태에 불어넣는 것처럼, 내가 발상의 필수 질료를 불어넣을 수 있는 멘탈 형상을 지어내는 것이다. 침묵하든 고함치든,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말씀이 선언되면, 이 실체는 맨 먼저 의식을 통솔하고 조절함으로써, 몸·마음의 모든 활동으로써, 그리고 발상과 관련되거나 연결된 모든 마음·몸· 활동으로써 그 자체를 즉각 물질화하기 시작한다.(모든 의식·마음·몸이 다 나의 것이며, 분리될 수 없는 하나이며, 완전히 초인격임을 잊지 마라.) 그렇게 상황·사물·사건을 끌어들이고, 통솔하고, 모양을 짓고, 틀을 만들어, 머지않아 발상은 실제로 명확하고 현실적인 모습으로 나타나게 되는 것이다. 

 

- 결론적으로 지금까지 일어났던 모든 상황·사물·사건에는 먼저 마음의 발상이 있었던 것이다. 욕망함으로써, 생각함으로써, 말로 선언함으로써, 이런 발상은 가시적으로 구현되는 것이다. 

 

- 이것을 숙고하고, 그리고 혼자 힘으로 증명해 보라. 

 

- 초인격의 세계에서는 말이 사용되지도 않고, 필요도 없다. 발상은 다만 존재하고 발현한다. 그것들은 다만 존재할 뿐인데, 발상이란 내 존재의 다양한 양상의 발현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물질 존재의 초기 단계에서 모든 발현에 듣고 보고 느끼고 맛보고 냄새 맡을 수 있는 형상과 본질이 있어야 하는 이런 꿈의 상황에서는, 그 의미가 명확히 이해될 수 있으려면 당연히 발현을 위한 목적과 발현된 것을 이해하기 위한 목적으로 활용될 수 있는 유기체가 제공되어야 한다. 

 

- 자신들의 특정 속성을 발현하기에 가장 유리한 조건을 찾던 인간은, 점차 지구에 널리 퍼져 살게 되면서, 저마다 수많은 언어가 생겼다. 그 말들은 내면에서 언제나 요동치는 내 발상의 무한한 양상을 지상의 용어로 발현하려는 인간적인 마음속 욕망에서 모두 생긴 것이다. 
하지만, 인간적인 마음은 내 발상을 '말'로 표현하고자 애쓰면 애쓸수록, 더욱더 참담한 실패를 맛볼 뿐이었다.
 

- 따라서 여기에서 그대에게 진리로서 호소하는 것은, 내 발상이 그대의 내면에서 발현하고자 노력해 왔던 것들의 확증일 뿐이다. 
마음에 들지 않거나 그대의 것으로 인정되지 않는 것들은, 그냥 지나쳐라. 왜냐하면, 그대가 그것을 받아들이는 것을 지금까지는 내가 원치 않는다는 뜻이니까. 

- 하지만, 내가 여기에서 표명하는 각각의 진리는, 그것을 그대가 받아들이게끔 자극해 온 마음에 닿을 때까지 계속 울려댈 것이다. 왜냐하면, 어떤 말도 내 발상의 잠재력으로 충만하고, 그 말에 숨겨진 진리를 인식하는 마음에는 이 진리가 생생한 현실이 되고, 그런 마음은 내 발상이 이제는 발현하기에 충분하고도 가능한 그런 모습이 되기 때문이다. 마음이란 모두 무한한 내 마음의 양상이거나, 유한한 자연이 여러 형태로 구현 내 마음의 부분일 뿐이다. 내가 이 책을 매개로 그대와 사람들의 마음에 말할 때, 나는 단지 나의 유한한 자아에 말하고 있고, 나의 무한한 마음으로 생각하고 있고, 나의 발상을 밀어내서 지상에 발현하고 있을 뿐이다. 

 

- 그대가 의식적으로 그곳에 머무를 수 있을 때, 그래서 언제나 어디서나 이야기하는 내 말이 항상 그대의 마음에 자리를 잡아 깨우침을 일으키게 되면, 내가 그동안 그대를 일깨워왔던 어떤 능력을 발휘하도록 허락할 것이다. 이 능력 덕택에 그대는 만물의 실상을 점점 더 분명히 알아보게 될 것이다. 그대 주변에 있는 사람들의 내면에서 아름답고 사랑이 넘치는 자질뿐만 아니라 약점·실수·단점까지도 이해하게 될 것이다. 

- 하지만, 그대가 이런 허물과 단점들까지 바라볼 수 있게 된 이유는, 타인을 비판하거나 판단하라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자기 자신에게 있는 바로 그런 허물과 단점을 극복하겠다는 확고한 결심을 환기하기 위함이다. 자신을 주목하라니! 왜일까? 그대의 자아에 그런 점이 아직 남아 있지 않다면, 그대는 다른 사람들에게 있는 것에 절대 주목하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대 내면에 있는 내가 그대의 주의를 끌기 위해 그들을 이끌어낼 필요가 없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 내가 그대에게 준 능력·재능·힘을 지금까지 어떻게 사용해 왔는지 살펴보자. 이때까지 내가 그대에게 모든 것을 제공해 왔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그대가 소유하거나 되어 있는 모든 것은 (그것이 선한 것이든 악한 것이든, 축복이든 고통이든, 풍요로움이든 가난함이든) 내가 그대에게 제공했거나 그대에게로 끌어왔다. 왜 그럴까? 이 모든 것을 '제공하는 자'로서 나를 알아보고 인정하게 함으로써 그대를 일깨우는 데 활용하기 위함이었다.

 

- 또한 아무리 내가 그대를 통해서 어떤 훌륭한 진리를 말하거나 놀라운 과업을 이뤄낸다 할지라도 그대 자신이 매일매일 매시간 이런 진리를 생활화하지 않는다면, 그리고 이런 과업을 통해 끊임없이 나와 내 능력(나의 봉사에 활용하려고, 그대와 내 사랑하는 이들 또 모든 이에게 아낌없이 언제나 쏟아붓고 있는)을 상기하지 않는다면 그 어떤 명예도 그대에게 오래가지 않는다. 

 

- 어쩌면 여러분은 지금 삶에서 처해있는 각자의 자리를 자신의 내면에서 밀려 나오는 내 발상을 발현하기에 최적의 상황이라고 생각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그대는 왜 그런 자리에서 벗어나 자신이 선택하는 자리로 옮겨가지 않는가?

- 그대가 그렇게 할 수 없거나 하지 않는 그 단순한 사실이, 지금 바로 그 자리가 나를 완벽하게 발현하는 데 필요한 어떤 성질을 그대 속에 일깨우는 데 가장 적절하며, 그 자리가 그대 마음의 평화를 방해하고 따라서 그대를 불만족스럽게 만드는 힘 속에 숨겨 있는 나의 목적과 뜻을 그대가 알아차릴 수 있을 때까지는, 그대의 진아인 내가 그대로 하여금 거기에 남아 있도록 허용하고 있음을 입증하고 있다.

 

- 아마 그대는 자신의 배우자가 그대와 잘 맞거나 그대의 영적 깨달음을 도와주기는커녕, 오히려 방해되고 손해만 끼치는 짝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그대는 심지어 비밀리에 떠날 것을 고려하고 있거나, 그대의 열망과 추구에 공감하며 함께 할, 그대와 이상이 더 가깝게 보이는 사람을 찾아 배우자를 떠날 수 있기를 바라고 있을지도 모른다.

- 정히 그렇다면 그대는 도망칠 수는 있지만, 그대 자신의 인격에서 도망칠 수가 없다는 것을, 즉 그대의 내면을 울리는 내 목소리를 의식해서 다시 깨어날 수 있기 전에는 그대는 영적 짝을 찾겠다며 이기적으로 갈망하면서 열 배나 더 오랫동안 힘들게 마음의 환상 속에서 헤매게 할 사람만을 끌어들이게 되리라는 것을 그대는 알아야 한다. 

- 왜냐하면, 자신을 공감해 주고 인정해 주는 짝은 그대의 영적인 능력을 위한 개인적인 자존심과 이기적인 욕망을 살찌워 그대의 에고적인 면을 키워줄 뿐이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그대가 아직 초인격적인 사랑을 의식하며 살지 못한다면, 사랑스럽고 그대를 의심 없이 믿어주고 양보하는 짝은 이기심과 자만심만을 부채질하겠지만, 반면에 의심하고 괴롭히고 폭군 같은 짝은 아직 그대에게 필요한 영적 훈련을 제공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 그대가 나의 신성한 속성 중 하나이듯이, 그대의 진정한 소울메이트도 사실 하늘에서 온 천사다. 내 신성한 사랑이 발현할 수 있도록 자신의 인격을 정화했을 때만이, 그대 마음에 지금 몹시 장애가 되고 영적 불편함을 일으키는 어떤 조건에서도 자유로워질 수 있다는 것을 그대의 소울메이트가 그대에게 가르쳐주려고 온다.

 

- 하늘에서 그대에게 온 천사이자 그대와 내 진아의 다른 부분인이 영혼이 그대를 통해 발현해 내려고 열망하고 진력하여, 마침내 그대가 초인격적으로 사랑하고, 타인을 부드럽고도 사려 깊게 돌보며, 마음을 평정시켜 가슴에 평화가 깃들고, 자아를 침묵시켜 확실히 마스터해서, 결국 혼자 힘으로 깨달음의 문을 열어, 영광스러운 자기 존재의 자유에 발을 들여놓아서 진아가 될 수 있을 때에야 비로소, 또 그대가 세속적인 속박에 자유로워져서 이 영혼을 신성한 아름다움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될 때에야 비로소 그대는 자신이 찾던 이상형을 언제나 발견하고 알아볼 수 있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이상형은 외부(어떤 타인의 개성)가 아니라, 오직 그대의 신성한 반려자의 내면에만 분명히 존재하기 때문이다. 

 

- 그 반려자가 바로 나며, 그대의 더 고귀한 불멸의 진아다. 내가 그대에게 보내준 짝에서 그대로 하여금 외관상 불완전함을 보게 하는 것은 바로 그대의 개성을 통해 나를 발현하고 구현하고자 진력하는 나의 발상, 즉 그대의 완벽한 자기다. 

 

- 하지만 그대가 외부에서 사랑과 공감, 인정, 영적인 도움을 찾는 것을 멈추고, 완전히 내면의 나에게 향할 때가 올 것이다. 그때야 완벽하지 않게 보였던 것이 사라질 것이다. 그리하여 그대는 이런 짝에서 사심 없는 사랑과 관대함, 신뢰, 타인을 행복하게 하려고 끊임없이 노력하는 마음의 모습만을 보게 될 것이다. 그때야 비로소 그런 모습이 그대의 가슴에서 언제나 밝게 빛나고 있을 것이다. 
 
- 다른 이의 견해에 따라 어디선가 그대를 기다리고 있어야 한다고 믿었던 '소울메이트' 찾기를 그만두라. 그것은 타인의 몸인 외부가 아니라, 그대의 영혼이 있는 내면에 존재하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내가 그대 내면에서 성취하기를 호소하고 있는 것은, 오직 나에 대한 내면의 알아차림뿐이기 때문이다. 그대가 지상에 와서 발현하려는 목적을 달성할 수 있으려면, 그대의 신성한 반려자이자 그대의 영적인 부분이며, 그대의 다른 반쪽인 나하고만, 오직 나하고만 합일되어야 한다.

 

- 물론 내가 보내는 충동에 따라 이런 식으로 외부에서 얻으려고 애쓰는 것도 괜찮다. 내 발상이 발현하고 있는 의미에 관한 해석을 타인을 통해 추구하는 것도 괜찮다. 그런 탐구는 그대가 마음에 그리는 방식은 아닐지라도, 나는 그대에게 유익해지게 할 것이기 때문이다. 고대의 가르침, 철학과 종교, 혹은 다른 종족의 것들에서 내가 그대에게 발현하고 싶은 진리를 추구하는 것도 괜찮다. 그런 탐구조차 결국 이로운 것으로 입증될 것이기 때문이다. 

- 그러나 타인의 생각과 다른 종교의 가르침이 아무리 참되고 아름답다고 할지라도, 내가 그대를 위해 의도한 것은 아니라는 것을 깨달을 때가 올 것이다. 왜냐하면, 나는 오직 그대에게만 적합한 생각과 가르침을 예비해 두었고, 그대가 받아들일 준비가 되었을 때 그것을 그대에게 은밀히 줄 것이기 때문이다. 

- 다양한 종교·철학·컬트 사이를 헤매며 가르침을 찾는 것이 지금은 흥미로울지 모르지만, 결국 그런 탐구에 만족하지 못하게 되고, 그래서 경전의 작가와 종교의 전파자, 철학 교사들이 너무나 권위 있게 묘사하여, 아마도 그대로 하여금 혹하게 한 그 능력과 영적 성장을 거의 이뤄내지 못한 자신을 발견하고 낙담하게 될 때가 반드시 올 것이다. 그때에야 나는 이런 모든 책·가르침·종교는 원래 내가 영감을 불어넣은 것이며, 많은 사람의 가슴을 활성화하기 위해 각자의 몫을 담당해 왔고 여전히 담당하고 있지만, 그대를 위해 외부의 그 어떤 권위에도 의존하는 것을 이제는 그만두고, 그보다 내면의 나에 의해서, 오직 나에 의해서만 이끌리고 단련된 '생명의 책'에만 그대의 연구를 집중시킬 때가 왔음을 보여줄 것이다. 그대가 진심으로 충실히 이렇게 한다면, 그대는 내가 그대를 한 종교의 주창자로서 선택했음을 알게 될 것이다. 태양이 멀리 떨어진 별들에게 그 빛을 전달하듯이, 과거의 이해에 매여 있는 모든 사람에게 그대의 그 영광과 장대함을 전달할 것이다. 

- 마찬가지로 오래된 종교는 과거 시대의 사람들에게 주어진 것이며, 다른 종족의 종교는 그 종족의 내 백성을 위한 것이고, 그중 그 어느 것도 그대를 위한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그대는 깨닫게 될 것이다. 비록 내가 그대를 그런 종교로 이끌어서 그 가르침에서 나에 관한 탐구를 더욱 결심하도록 그대에게 영감을 불어넣었던 숱한 경이로운 것들을 알려주었다 하더라도. 

 

- 그대에게 말하건대, 그런 가르침은 지나간 것이니 그대에게는 쓸데없다. 이것을 알아볼 수 있다면, 드디어 모든 지식·가르침·종교·권위를, 심지어 이 책과 다른 계시에서 표현된 나의 권위마저 내던져버려야 할 때가 된 것이다. 왜냐하면, 나는 그대의 내면에서 내 현존을 의식하고, 외적인 출처에서 나오는 모든 권위·가르침·종교가 그것이 아무리 고상하고 신성할지라도, 어떤 본질적인의 문에 관한 신의 최종 권위(답)를 얻기 위하여 그대로 하여금 내면의 나로 향하게 하는 수단이 되지 않는 한, 그대에게 더는 어떤 영향도 끼칠 수 없다는 사실을 촉구해 왔기 때문이다. 

- 이러할진대, 나만이 줄 수 있는 도움과 안내를 어째서 지나간 종교, 과거 인류의 지식 또는 타인의 경험에서 추구한단 말인가? 
지나간 모든 것에 매이지 마라. 지나간 것은 생명이 없다. 어째서 죽은 것들로 그대의 영혼에게 짐을 지우는가? 

 

- 이런 점이 윤회에도 그대로 적용되어, 많은 사람의 마음은 그 윤회에 단단히 묶여버린다. 
완벽하고 영원한 존재인 그대가 전생이나 내생과 무슨 상관이 있단 말인가? 완벽한 존재가 그 자체의 완벽함을 더할 수가 있을까? 아니면 영원한 존재가 영원함에서 나오거나 영원함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 나는 존재하며, 나와 하나인 그대도 존재한다. 언제나 그래 왔으며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그대 속의 내 존재는 내 발상을 발현한다는 단 하나의 목적을 위해 온갖 몸에 거하면서 다시 태어난다.

 

- 그대는 자신의 전생들을 기억한다고 말한다. 
정말로 그런가? 확신하는가? 
좋다, 하지만 그렇게 한들 그게 무슨 대수냐? 내가 지금 그대에게 발현하고 있는 내 뜻을 그대가 더 잘 이해할 수 있도록, 그대에게 지나간 어떤 발현에서 실상을 힐끗 보게 해 주었다고 해서, 그대만이 개인적으로 그 발현에서 내 통로였다는 확신이 없지 않은가. 

- 그대가 실제로 그렇게 발현했다는 믿음이 그대를 흡족하게 한다면, 그것도 괜찮다. 하지만, 그것이 나중에 올 위대한 깨달음을 준비하는 것에 한해서만, 나는 그러한 믿음이 그대에게 이롭도록 할 것이다. 

 

- 더욱이 마음과 지성의 지배가 해탈하고 나와 합일할 그대의 유일한 방법임에도, 그대의 개성은 생멸이 있다는 엉터리 믿음으로 마음과 지성을 지배하고 있다. 그대가 의지를 내는 어떤 순간이라도 그대의 진아를 자유롭게 할 수 있음에도, 그대의 개성은 우리의 영원하고도 항구적인 하나됨의 실현을 막고 있다. 

- 왜냐하면, 태어나고 죽으며, 지상의 생명과 몸에서 더 머물고, 내가 그 몸을 더 활용하지 않게 된 후 다른 몸으로 돌아오기를 추구하고 진력하는 것은 오직 개성일 뿐이기 때문이다.

- 이런 개성은 그대에게 대를 이어 주입되었던 이익과 평판에 의해 묶여 있던 개성일 뿐이다. 이처럼 그런 망상은 그대의 인간적인 마음을 분주하게 해 왔다. 자신의 신성한 불멸성·전능·지성을 실감하여, 개성이 빚어내는 모든 믿음과 평판을 기꺼이 던져 버릴 수 있을 때만이 그대는 이런 그릇된 관계의 사슬에서 자유롭게 풀려나서, 나와 일체인 진아의 왕좌에 앉아 스승이자 왕의 진정한 자리를 맡을 수 있게 된다. 이때 그대의 개성은 나의 사소한 지시에도 기꺼이 따를 준비가 됨으로써, 내가 활용하는 데 유용한 도구가 되어 하인이자 신하였던 본래의 적절한 자리로 돌아가게 된다.

 

- 나를 섬기겠다는 소망을 품은 그대는 종교 집단, 수련 단체, 영적 모임에 참여해, 그 모임의 성질이 어떻든지 그곳의 일을 돕고 지원하면서, 그것이 나를 기쁘게 한다고 생각해 왔고, 그래서 나에게 특별한 총애를 받게 되리라고 기대했던 그대에게 말하지만, 여기의 내 말에 귀를 기울이고 깊이 숙고해 보라. 

 

- 나를 위해 일하기를 소망하던 그대는, 내가 어떤 교사나 지도자를 통해 말하는 외관상 경이로운 표현 때문에, 가슴에 나를 품고 있다고 여겨지는 인물을 발견했을지도 모른다. 나를 기쁘게 할지 의심과 걱정 속에서, 나의 명령을 어길 때 나를 화나게 할 거라는 두려움 속에서, 그대는 자신이 매달릴 수 있는 '스승'이나 '안내자'에게서 그런 내 메시지, 혹은 충고나 도움 되는 말이 그대에게 주어진다고 생각하면서, 아마 신을 대리하는 성직자로 자처하는 지도자나 교사에게 갔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결국 언젠가는 필연적으로 환상이 깨져서 후회하게 되고 수치심을 겪고 난 후에야 비로소 그대는 다시 한번 자신으로, 내면의 교사인 나로, 그대의 진아로 돌아가게 된다.

 

- 그렇다, 그 모든 것이 속임수고 훈련이다. 그대가 신의 일이라고 믿었던 열정과 헌신에 (헌금과 봉사는 말할 나위도 없이) 대한 착취다. 그들은 이기적으로 추종자들 사이에서 자신들의 사적인 힘과 명성을 강화하기 위해 그런 것을 훔치고 활용한다. 또 그들은 그대가 계속해서 자신들을 지지하고 존경하여 찬양하도록 그대를 자신들에게 단단히 묶어 두기 위해, 그들의 가르침이 영적으로 지고하며 아름답다고 위장하는 능숙한 궤변과 함께, 그대들 각자가 영적으로 진보한다는 교묘한 감언과 약속이라는 당근을 주고, 아무런 의문 제기도 없이 자신들을 신뢰도 순종도 하지 않아서 신을 불쾌하게 한다면 그대에게 언제나 채찍이 가해진다고 한다. 맞다. 이 모든 것이 그대가 소망하고 추구하는 바이고, 욕망이란 진실로 내 의지의 도우미이기 때문에 내가 그것을 용납한다. 

 

- 그대는 어쩌면 방금 언급된 그런 부류에 속할 리가 없다고 여기는 어떤 교사에게 (보이는 존재든 보이지 않는 존재든 그가 얼마나 참되며 선의를 품었고, 또 영적으로 현명한지에 관계없이) 아무런 의문 없는 사랑과 헌신과 순종을 바치고 있고, 더할 나위 없이 가치 있는 가르침과 인도를 받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 그대가 추구하거나 자신이 필요하다고 여기는 것을 받아들이고 있는 한, 이 모두가 괜찮다. 왜냐하면, 내가 그러한 소망을 만족하게 하려고 모든 것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러한 모든 것은 헛되고, 추구했던 바로 그런 결과는 오지 않는다는 것을 알라. 왜냐하면, 영적 성취를 위한 모든 추구와 욕망은 개성에 속하고, 그래서 이기적이고, 실망과 환멸, 수치만이 남을 것이기 때문이다. 

 

- 그대가 그것을 알아볼 수만 있다면, 도달할 수 있는 실재 결과는 환멸과 수치다. 왜냐하면, 이런 결과는 내가 그대를 위하여 열어 보이고 그대를 이끌었던 곳이며, 그때야 어떤 인간적인 교사에게서 도움을 얻을 가능성을 나타내기 때문이다. 즉 내가 의도적으로 그대를 데려간 곳인 그런 환멸과 수치는, 그대가 또다시 어린아이처럼 겸손해지고 유순해져서 내면을 울리는 내 말에 귀를 기울이고 거기에 따를 준비가 되어, 그리고 내 말을 듣고 따름으로써 나의 나라로 들어설 수 있게 하기 위함이다. 

 

- 그렇다, 바깥에서 구하는 것은 그렇게 끝날 것이며, 결국 지치고 헐벗고 굶주린 그대는 나에게 돌아와 기꺼이 내 가르침에 귀를 기울이고, 고집과 자만으로 예전에는 무시했고 그대의 거만한영을 만족하게 하기에는 충분치 않다고 간주했던 나의 빵 한 조각을 위해서 무엇이든 하게 될 뿐이다.  
 

- 이제 그대가 지금까지의 가르침과 교사에 진저리가 나서, 모든 지혜의 원천이 그대의 내면에 있음을 확신한다면, 이런 말들은 그대의 가슴에 형언하기 어려운 기쁨을 가져다줄 것이다. 이런 말들은 이미 그대의 내면에서 참이라고 느꼈던 점을 확증해주지 않는가? 

- 이런 점을 아직 알지 못하고 여전히 길잡이가 필요하다고 여기는 사람을 위해, 나는 대속하려고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의 이야기를 제공해서, 그대도 자신의 개성을 십자가에 못 박음으로써 그대의 의식도 상승하여 나와 하나 될 수 있다는, 내가 바라는 삶의 모범을 그려주었다.

- 하지만 내가 성직자 예언자 메시아를 통해 말하든, 아이를 통해 말하든, 가장 악랄한 적을 통해서 말하든, 그대에게 생생하게 느껴지는 모든 말은 그대 속의 내 존재가 그러한 길잡이의 유기체를 통해서 그대의 영혼 의식에게 하는 말이다. 

 

- 나의 성직자를 통해서 전달되는 내 말을 듣기 위해서 많은 사람이 몰려들겠지만, 듣는 이마다 의식 깊숙이 스며드는 생생한 말들을 성직자에게서 끌어내는 것은, 그가 아니라 바로 듣는 이의 가슴마다 있는 나다. 성직자는 자신이 말하고 있는 내용이 그대들에게 그렇게 영향을 끼친다는 것도 모르며, 심지어 자신이 하는 말의 뜻조차도 이해하지 못할 수 있다. 

- 그럼에도, 나는 열성 깊은 사람들을 내 대리인에게 이끌어, 그들에 의해 제공된 영적인 힘 외에도 그 대리인으로 하여금 그들에게 어떤 말을 하게 해서, 그들의 영혼 의식을 일깨워 만물의 한가운데 각자의 가슴에 자리를 잡고 있는 내면의 초인격적 존재인 나를 실감하여 터득할 수 있게 돕는다. 왜냐하면, 내 대리인 속의 내 존재와 추종자들 각자 속의 내 존재는 하나기 때문이다. 의식에서 하나요, 이해에서도 하나요, 사랑에서도 하나요, 내 의지를 성취하는 목적에서도 하나다. 

 

- 나는 자신들의 사적인 목적을 위해 내 추종자들의 확신과 신뢰를 취하는 대리인들이 나의 의지와 내 발상을 알아볼 수 있도록 적절한 때가 되면 그들을 일깨워 준다. 하지만, 이런 자각이 그들의 개성에는 유쾌하지 않고, 거의 언제나 많은 고통과 수치심을 일으킨다. 그러나 그들의 영혼은 기뻐하며, 그리고 그것이 지나가고 나면 고마움으로 나를 찬양한다. 

 

- 여러 가지 가르침에서 배운 대로, 여전히 나와의 합일을 위해 내가 각각의 구도자에게 마스터한 신성한 교사를 데려다 주리라는 생각에 묶여 있는 그대는 내 말을 들어라. 

- 나는 그대가 한때 온갖 신비적인 책과 가르침을 탐구하도록 용납했던 것은 사실이다. 그러한 가르침에서 찬양하는 신과 합일하는 능력이 그대에게도 있다며 그대의 내밀한 욕망을 부추기고, 심지어 그렇게 합일하는 데에 필요한 능력을 얻으라며 그대의 아주 미약한 의식을 자극하기도 했다. 나는 심지어 특정 수련을 하거나, 특정한 방법으로 호흡하거나, 특정 만트라를 암송함으로써 보이지 않는 세계에서 '스승'을 끌어들일 수만 있다면, 그가 그대의 교사가 되어 특정 비법을 전수하여, 존재의 내적 수준에서 어떤 은밀한 명령으로 나의 신성한 지혜가 엄청나게 그대에게 열려서, 더 높은 등급으로 진입할 수 있게 되리라는 믿음을 용납한 적도 있다. 

- 나는 단지 이런 것들을 용납했을 뿐만 아니라, 만일 그대가 알아볼 수 있다면 그대를 이런 책들로 이끌고, 그러한 욕망을 부추기고, 그러한 믿음이 그대의 마음에 자리를 잡게 한 것도 바로 나였다. 하지만, 그대가 상상하는 목적을 위해서는 아니었다. 

- 그렇다, 나는 그대가 그런 가르침·욕망·믿음을 극복해 내서, 내 신성한 발상을 발현하기 위해 내가 활용하는 힘들을 그대의 인간적인 마음에 알려주려고 애써왔다. 나는 이런 힘들을 하늘의 천사로 묘사해 왔다. 그건 그대의 인간적인 지성이 더 잘 이해할 것 같아서, 나는 이 힘을 태초부터 있었던 내 발상을 발현하는 과정에 종사하는 천사나 신적인 존재로, 내 의지의 초인격적 도우미나 실행자로 그려왔다. 

- 하지만, 그대는 이해하지 않았다.

 

- 그대의 인간적인 지성은 몇몇 가르침들에서 주장하듯이 이런 존재들을 만나서 교감할 가능성에 홀려, 즉시 그들을 의인화하기 시작했다. 그대는 자신의 삶에서 그들의 출현을 열망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인간사에 관심이 있으며, 또 특정 가르침에 적힌 특정계율을 지켜 그들을 흡족하게 한다면, 그들이 열반 Nirvana이나 불멸을 얻도록 그대를 도와주리라고 상상했다. 

- 한데 나는 고의로 그대가 그러한 망상에 빠져들도록 용납했다. 

 

- 그대가 갈망하도록, 기도하도록, 주어진 모든 지시를 따르기 위해 열성을 바치도록 했다. 심지어 이따금 자기가 끌어들인 비전이나 꿈에서 이상적인 존재를 힐끗 보게 함으로써, 그대로 하여금 믿도록 용납한 그 존재야말로 그대가 찾던 '스승'이라고 그대를 유혹하기도 했다. 

- 나는 그대에게 특정 능력을 열어 주기도 했다. 그 덕택에 그대는 영적 존재가 있음을 실감해서 영적인 삶으로 변화하게 되었고, 그대의 욕망이 끌어들인 그 존재가 스승과 안내자의 역할을 해주기를 희망했었다.

- 이제 그대는 그런 존재는 스승이 아닐 뿐만 아니라, 신성한 존재는 자신을 스승이라고 칭하지도 않는다는 사실을 알아야 할 때가 되었다. 또 그대의 진아인 내가, 오직 나만이 그대를 위한 유일한 스승임을 알아볼 때에야 비로소, 그대는 자신의 형제자매에게서도 나를 볼 수 있게 된다.

- 인간 존재든 영적인 존재든, 그대에게 나타나 스승이라고 자칭하거나 혹은 그대가 스승이라고 부르기를 용납하는 존재들은 누구나, 그대와 마찬가지로 한 인격체일 뿐이다. 그러므로 그가 아무리 경이로운 '진리'를 많이 설파하고 '이적'을 행한다고 해도, 그대의 인간적 마음이 이해하는 용어로는 신성하지 않다. 

 

- 이것이 의심된다면, 그대는 다음 열쇠를 한번 적용해 보라. 
'스승에 관한 생각이 스승을 창조한다.'
이런 스승에 대한 관념은, 그대의 견해에 의해 그대가 스승이 되기를 바라고 상상하는 바로 그 모습이 된다.

- 바꿔 말하면, 그대의 견해에 의해 이런 관념을 중심으로 스승에게 있기를 상상하는 그 모든 자질을 바로 그대가 지어낸다. 그대의 인간적인 마음은 욕망·동경·숭배를 통하여, 여전히 한 개성일 수밖에 없는 어떤 상상의 존재에게서 이런 자질들을 기어이 창조해내고야 만다. 왜냐하면, 그대는 아직 초인격적 존재를 마음에 품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대의 욕망과 견해의 집중도에 따라 이 관념은 빠르든 늦든 실제로 구현하게 된다. 육신을 입은 그러한 개성을 그대에게로 끌어들일 수도 있고, 환영과 꿈의 영역에서 실체화된 개성을 끌어들일 수도 있다.

- 인간적 마음은 특정 시기가 되면 스승이 필요하다고 여겨, 인간적인 시련과 어려움에 대해 설명과 조언을 구할 수 있는 스승을 만들어내고, 그러면 인생 문제가 그런 식으로 해결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 만약 내가 그대를 실망하게 하거나 그대를 속여, 낙심·환멸·수치를 맛보게 해서 결국 그대의 진아인 나에게 돌아오게 할 사람을 그대에게 끌어들였다면, 그것은 아마 그대가 그때야 내면의 나에게 향할 준비가 되어서 그대에게 그동안 계속해서 이야기해 왔지만, 그대의 거만한 에고의 마음이 귀담아듣지 않았던 내 소리에 귀를 기울이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 아직 이런 체험을 해본 적이 없고, 인간이든 영적 형태든 그대가 열망하는 스승을 만난 적도 없어서, 그대의 내면에서 내 말이 그대로 하여금 진리에 활발히 응답하도록 일깨우지 못한 그대를 위해, 나는 나중에라도 반드시 그대를 나에게 이끌 모종의 체험들을 예비해 둔다. 그 체험을 통해서 그대는 내가 바로 스승이며, 그대를 후원하여 영감을 주는 발상이며, 내면에서 나오든 외부에서 오든 그대 마음에 떠오르는 스승에 대한 내면의 온갖 생각과 열망을 가져다준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 "제자가 준비되면 스승이 나타난다."라는 말은, 어떤 점에서는 맞지만, 그대가 해석해 온 대로는 아니다.
스승에 대한 그대의 내밀한 욕망은 스승을 그대에게 데려올 것이지만, 그대가 그런 나타남을 위한 준비가 됐을 때일 뿐이다. 하지만, 그런 나타남도 한 스승의 등장일 뿐일 것이다. 그대는 진정한 스승이나 교사가 나타나도 알아보지 못할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그는 그대의 관심을 끄는 친구에, 직장 동료에, 이웃에, 혹은 그대의 배우자나 자녀에 숨어 있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 염려하지 마라. 만일 그대가 진실로 내 뜻을 알기를 바란다면, 이 비밀은 그대에게 드러나게 될 것이다. 
그때까지는 어째서 그대는 추구하면서 지고하지 못한 것에 만족한단 말인가? 

 

- 그대는 어째서 전지전능하고 편재하여 사물의 배후와 내면에서 영감을 불어넣는 발상을, 그대의 내면에 있는 신인 나에게 직접올 수 있음에도, 내 완벽함이 제대로 구현되지 못한 인간·영적교사·안내자·스승·천사에서 구한단 말인가? 내가 그대 내면에 있고, 심지어 그대가 구하는 어떤 것에도 내가 있고, 모든 지혜·능력·사랑이 오직 나에게서만 나오는데, 어째서 그대는 지금 나에게 와서, 그대를 통해 내 모든 것을 발현할 수 있도록 나로 하여금 그대를 준비시키게 하지 않는가? 

 

- 그대가 그 의식에 도달하면, 그래야만 비로소 자아를 마스터해서 단지 미숙한 형제들을 돕고, 또 내면의 신성함을 발견하기 위해서 살아가는 존재들을 위대한 영적 형제의 동료로서 알아보고 사귈만한 자격이 주어질 것이다. 

- 그대에겐 신성하게 보이고, 그대로 하여금 그를 스승으로 여기게 하거나 부르게 하는 어떤 존재가 설사 그대의 삶에 나타나더라도, 그는 아직 완전히 초인격적 존재는 아니다. 그런 존재는 마스터한 사람일 수는 있지만, 그대의 영혼이 섬기고자 갈망하는 신성한 존재는 아닐 것이다.

 

- 어쩌면 그대는 그가 완전히 초인격적 존재는 아닐지라도, 그를 스승으로 따르는 것에 만족할 수도 있다. 그렇더라도 나는 장차 그대가 나의 초인격적 완벽함과 끊임없이 비교함으로써, 그의 인격적인 불완전함을 깨닫게 하겠다. 그대의 영혼에 깊이 숨겨져서, 오직 그대의 내면에서만 발견될 수 있는, 나의 완벽함을 찾아 오랫동안 바깥을 헤매게끔 부추겼던 진정한 원인으로 인정하고, 유일한 모델과 이상형으로 나와 내 초인격을 인정해서, 그대가 마침내 완벽히 포기하고, 나에게 향해 다가올 그때까지. 

 

- 그대 내면의 내 존재가 그대의 인간적인 마음을 일깨워 그대들의 신성한 자아인 나를 깨닫기 전에는, 나의 인간적 속성들인 그대들은 초라한 말구유(짐승들이 먹이를 먹는 장소로서, 이는 신에 대한믿음과 신뢰로 채워진 겸손하고도 회개하는 가슴이요, 인간이나 짐승의 성품이 되어야 하는 존재 상태)에서 틀림없이 순수한 Virgin 사랑으로 태어난다. 그다음 그대는 어둠(혹은 지적인 활동)의 땅으로 보내져서, 내면의 나를 느끼게 될 정도로 강해질 때까지 그곳에서 육체적으로 성장하고 분별력을 기른다. 그래서 그대가 내 능력과 내 사랑을 의식할 역량이 갖추어질 때, 나는 그대를 통해 지혜와 진리를 말하기 시작해 세상의 지식인들을 심지어 율법학자들마저도 당황케 한다. 이후에 오랜 기간 탐구와 명상을 통해, 그대의 마음이 성숙하고 영혼이 계발되어 내면의 내 존재를 의식할 만큼 충분히 무르익게 되고, 그대가 요단강에서 세례를 받을 준비가 되어 나에게 완전히 마음이 열리게 될 것이다. 그대와 내가 하나며, 아무런 분리도 없고, 내가 곧 그대의 진아라는 의식에 이르게 된다. 그때부터 내가 그대 삶을 완전히 지도하는 주인이 된다.

- 게다가 나는 그대를 다른 계시에서 광야라고 불렸던 곳으로 이끌어, 그곳에서 권력욕·과시욕·재욕으로 강렬하게 유혹해서 그대를 시험하여 더욱 강하게 단련시키고, 나의 신성한 속성을 초인격적으로 사용하도록 그대를 숙달시킨다. 그리하여 그 어떤 지성도, 그 어떤 자아도, 외부의 그 어떤 것도 그대를 유혹해서 내면의 나를 잊게 할 수 없으며, 내 목소리가 그대의 가슴에서 말하는 형제자매의 가슴에서 말하든, 오직 내 목소리만이 그대가 지금 들을 수 있는 유일한 목소리임을 그대는 입증한다. 
 
- 이것이 입증되고 나서, 그대는 기적을 행하고 대중을 가르치기 시작하지만, 거기에는 불신하고 비웃는 세상의 욕설과 학대가 뒤따를 것이다. 이어서 세상의 법을 대변하는 빌라도 앞에서 재판, 사형 판결, 십자가를 짊어지고 갈보리 언덕 오르기, 십자가에 못 박히기, 고통과 고뇌, 무덤에서 사흘, 그리고 마침내 부활. 그때에야 그대는 나와 정말 하나가 되는 것이다.

 

- 이 모든 것은 내적인 의미를 담고 있어서, 개별 영혼에게도 고스란히 적용된다. 만약 그대가 나에게 가슴이 열려 있다면, 그 모든 것이 쉽게 이해되리라. 

- 이것이 이전에 나의 계시에서 주어진 내 가르침을 탐구하고 따랐던 모든 이가 지난날 걷던 방식이었다. 하지만, 이제 나는 그대와 많은 이를 위하여 새로운 섭리를 예비해 왔으니, 그대가 초인격적인 방식으로써 단번에 직접 나의 의식으로 들어설 수 있는 때가 왔다. 그들이 인격의 요구를 모두 벗어던질 만큼 성장해서 강해지고, 그리고 내가 바로 그들의 내면에 힘을 부여하여 바깥세상의 유혹과 영향에서 벗어나 초월할 수 있게 하는 유일자라고 말하고 유일자임을 알 수 있다면, 그들이야말로 내 신성한 발상의 놀라운 영광을 세상에 발현하기 위해 내가 선택한 존재들이다. 

- 그대가 이런 경지에 도달해서 내 신성한 발상을 의식적으로 발현할 수 있으려면, 이런 그리스도 의식이 그대의 가슴에서, 인간 각자의 가슴에서 태어나 자라고 성숙하여, 예수가 삶에서 상징적으로 겪어냈던 각각의 경험을 어떤 식으로든 통과해야 한다. 내가 그의 삶에서 보여주었던 그리스도의 사랑과 자비의 본보기는, 그 사랑의 열매를 맛보기 위해서 그대 또한 자신의 삶에서 어떤 단계를 발현해 내야 하는지를 제시한다. 그런 사랑은 실상 사랑만이 아닌 사랑·지혜·능력의 삼위일체다. 즉, 나의 초인격적인 삶의 참된 발현이다. 

- 그대는 지금껏 초인격적인 삶의 뜻을 몰랐고, 그래서 초인격적인 사랑의 뜻도 알 수 없었다. 그대에게 있어서 사랑의 느낌을 면밀히 분석해 보면 그것은 언제나 인간적인 감정이나 표현이었을 것이며, 그대는 어떤 인간적이고 개인적인 관심이 전혀 없거나 관계가 없는 사랑을 상상할 수 없었다. 이제 그대가 가슴 속에서 나를 느끼기 시작하고, 나를 품을 정도로 가슴을 활짝 열어 놓음에 따라, 나는 경이롭고도 낯선 새로운 느낌으로 그대를 채울 것이고, 그 느낌은 창조적인 본능으로 그대 존재의 기질을 자극해, 그대에게 진정한 생명의 영약이 될 것이다. 내가 그대를 통하여 그런 식으로 그런 느낌을 외부로 발현하기 위해 세상으로 흘려보낼 때, 그대는 마음이 밝아져서 무한한 힘을 의식하게 됨으로써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나의 거룩한 초인격적 사랑의 오묘함을 맛볼 것이고, 그런 그대는 완전히 사욕이 없어져서 나의 신성한 발상을 초인격적으로 발현하기 위한 완벽한 통로가 될 것이다.  

- 돌이켜보면, 어떤 일을 꼭 해야만 한다는 내면의 느낌이 있었던 적이 여러 번 있었을 것이다. 그 끌림에 따랐던 몇몇 경우에는 완벽한 결과를 얻었지만, 그대에게 다르게 행동하라고 설득하는 지성 때문에 다르게 선택한 경우에는 결과적으로 번번이 실패와 실망과 괴로움을 맛보았을 것이다. 

- 이렇게 촉구하는 의식이 바로 그대 내면에 있으면서 그러한 순간에 그대가 뭘 해야 하는지를 안내하고 분명하게 말해주는 '나'인 그대의 '진아'다. 그런 순간에 그대는 자신의 영적인 귀, 즉 나의 귀로 듣고 있으며, 그대가 자신의 처지를 초월하여 따른다면 성취와 만족이 뒤따른다. 그러나 그대가 개인적으로 더 잘 안다고 여겨 무시한다면 곤란·후회·불행이 결과적으로 일어난다. 

- 그대가 다만 나로 향하고, 매 순간 그대가 받고 있는 이런 인상을 주의 깊게 지켜보고 궁구하며, 그 인상을 신뢰하여 나를 기다리며 내 안에서 안식하는 법을 터득해서, 나에게 그대의 모든 믿음을 준다면, 진실로 나는 그대가 가야 할 모든 길을 안내하고, 모든 문제를 해결해 주며, 모든 일을 손쉽게 하고, 생명수가 흐르는 푸른 초원으로 그대를 이끌 것이다.

- 오, 나의 자녀여! 그대가 인간적인 지식과 가르침이라는 외부의 껍데기 사이에서 찾느라 허비해 온 시간과 에너지의 만이라도, 나를 찾기 위해 내면으로 향해서 진지하고 확고한 노력에 쓸 수 있다면,
날마다 한 시간만이라도 나에게 온전히 바쳐서, 그대 내면에 내가 있다고 여기고 그렇게 산다면, 
그대는 머지않아 곧 나를 만나게 될 뿐만 아니라, 그대의 인간적인 마음으로는 감히 품을 수 없겠지만, 이제 나는 그대가 한없는 지혜·힘·도움의 원천이 되리라고 그대에게 약속한다.

 

- 그렇다, 그대가 그런 식으로 나를 찾고, 자신의 삶에서 나를 우선하고, 나를 만날 때까지 절대로 한눈팔지 않는다면, 오래지 않아 나의 현존과 그대의 가슴 깊은 곳에서 끊임없이 말하는 나의 사랑스러운 목소리를 의식하게 될 것이다. 

- 영혼의 그런 자질이 발휘될 때, 자연스럽게 지금껏 그대의 성질에서 지배를 당연시하던 다른 자질들의 굳센 저항에 직면한다. 물론 그것은 극복되고 정복되어야 하며, 그런 다음 그대가 진정한 봉사의 길로 들어서야만 영혼의 자질들이 자유롭게 발현할 수 있게 된다. 

- 이러한 저항은 영혼의 그런 자질에 대한 발현을 강화하고, 단련하며, 숙달시켜야 하고, 결국 그렇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그대는 외부의 온갖 공격에 견뎌내는 능력이 있어야만, 내면에서 솟아오르는 나의 신성한 힘을 충분히 발현할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그대가 그것을 견뎌내서 강해지는 만큼, 나 또한 그대 내면에서 이러한 힘을 구현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라. 

- 그대가 범하는 실수는 자신을 성장시키기 위한 시련이다.

 

- 나는 그대의 내면에 있는 생명의 나무다. 내 생명은 결국 자라게 될 것이 돼, 점진적이고 지속적으로 성장할 것이다. 그 나무가 다 자라기 전에는 결실을 볼 수 없다. 내 생명은 언제나 그대의 완벽한 건강·힘·아름다움을 꾸며가고 있으며, 바로 지금 내면에서 발현하고 있는 것처럼 외부에서도 발현해야만 한다는 것을 잊지 마라. 

- 내면의 나를 깨닫기 시작했지만, 아직은 나와 교감하는 법을 터득하지 못한 그대는 이제 잘 듣고 익히라.
그대는 '고요해지는 법'을 터득했고, 아마도 내면에서 내 현존을 느꼈을 것이다. 그렇다면 내가 거기에 있다고 확신하면서 나에게 질문을 하나 해보라. 그다음 대답을 구하면서 나에게 고요하고도 열렬한 기도를 하되, 근심 걱정이나 개인적인 이익이 아닌 열린 마음으로, 다가올 느낌을 확신하며 기다려라. 대답으로 떠오른 어떤 생각이 어디선가 들었거나 읽었던 내용으로 알아지면 즉각 내던져버리고, "아닙니다. 신이여, 당신의 말을 들려주세요."라고 말하라. 

- 다른 사람의 견해도 떠오를 수 있지만, 그대가 깨어 있다면 그런 것을 알아보고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다. 그다음에도 만일 나에게 질문을 지속한다면, 그대는 마침내 진정 나에게서 나오는 것으로 느껴지는 답을 얻게 될 것이다.

 

- 처음에는 그런 식일 것이다. 다른 이의 목소리에서 내 목소리를 분별하는 법을 터득하고, 개인적 관심사를 완전히 잠재울 수 있다면, 다른 이의 관념·믿음·의견에 방해받지 않고 뜻대로 나와 침묵으로 교감할 수 있게 될 것이다.대는 자신이 원하는 어떤 질문이라도 할 수 있고, 다른 사람이 그대에게 도움이 필요한 어떤 문제에 대해서도 질문할 수 있다. 그러면 그때마다 내가 그대의 마음에 슬쩍 귀띔해 주거나 그대의 혀를 통해 다른 이에게 말할 수 있게 할 것이다. 

- 나에게 그대의 자아를 바쳤고 나와 합일하기 위해 온갖 노력을 기울였지만, 오히려 외관상으로는 그대를 떠받쳐오던 세상의 버팀목마다 없어졌거나 없어지고 있으며, 돈도 친구도 없어져서 누구에게 인간적인 도움을 호소해야 할지조차 모르고 있는, 내 사랑하는 존재에게, 
그런 그대는 지금 나에게 아주 대단히 근접해 있고, 축복받고 있음을 알라. 또 만일 그대가 오직 내 안에 계속해서 거하고, 내 말이 그대 안에서 거하여 그대를 안내하게 하고, 내 약속을 절대적으로 믿고 신뢰한다면, 나는 멀지 않아 그대에게 인간의 말이나 마음으로는 감히 상상할 수 없는 기쁨·성취·평화를 가져다줄 것이다.
왜냐하면 그대는 내 명령을 따랐고, 나를 전적으로 신뢰했으며, 신의 나라와 의로움을 무엇보다 먼저 구했기 때문이다. 그러니 나는 세상이 그대에게 주지 않았던 것들도 덧붙여서 그대에게 안겨줄 것이다. 

- 마찬가지로 자신의 자아를 내게 바쳤지만, 아직은 세상의 잣대를 붙들고 있어서 완전히 내게 귀의하지 못하고, 나를 신뢰하지 못하는 나의 소중한 사람에게,
그런 그대에게 내가 실패, 좌절, 심지어 빈곤조차 안겨 주는 것은, 그대로 하여금 세상적인 것의 덧없는 가치, 즉 무상함을 터득하게 하여, 그것들이 행복을 가져다주지 않으며 내 진정한 삶과 무관 하다는 것을 알려 주기 위해서다. 

- 아직 이런 것을 알지 못하고, 내일 먹을 양식과 빚을 갚고 집세 낼 돈을 어디서 구해야 할지 막막하기에, 걱정과 두려움으로 가득 차 있는, 소중한 자녀인 인간에게,
오래전 산상에서 그대들에게 주어졌던 설교를 다시 잘 들어라.

 

-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목숨을 부지하려고 무엇을 먹을까 마실까 걱정하지 말고, 몸을 위해 무엇을 입을까 걱정하지 마라."
"생명이 음식보다 중하지 아니하며, 몸이 의복보다 중하지 아니하냐?"
"그러므로 내일 일을 걱정하지 마라. 내일의 걱정은 내일이 맡아서 할 것이다."
"한 날의 괴로움은 그날로 충분하다."

- 그대 자신을 나에게 바치고, 나의 제자라고 자처하는 그대에게 말하지만, 이보다 더 명확한 명령이 필요한가? 이보다 더 명확한 약속이 필요한가?

 

- 나는 언제나 모든 것을 제공해오지 않았던가? 내가 언제나 적시에 도움을 주러 나타냈던 때 말고 필요했던 적이 있단 말인가? 상황이 암울할 때 내가 빛을 가져다주지 않았던 적이 있었는가? 
그대가 지금 알고 있는 시각으로 그대의 삶을 돌아보고, 삶을 더 잘되게 할 수 있었던 때를 찾아낼 수 있는가? 그대는 자신의 영적 이해를 세속적인 소유물과 바꾸겠는가? 그대가 지금까지 살면서 나에게 귀 기울이기를 거부하고 물리쳤음에도, 나는 이 모든 것을 하지 않았던가?

- 내가 삶에서 최고로 중요하고, 그대가 진실로 나를 사랑해서 내가 우선시돼야 한다는 진리를 그대가 터득할 수 있도록, 세상적인 것에서 박탈당하는 것이 그대에게 필요하다면, 나는 그것을 허락해서 그대가 진정 영원한 행복과 번영을 누릴 수 있게 한다. 

- 또한, 이것은 건강과 용기를 잃고, 자아가 움켜잡고 있던 모든 것을 잃어버려서, 그 잃어버린 삶을 되찾기 위해서 구원자와 치료법을 구하며 힘겨운 세월을 보낸 후, 주어지는 훈련과 제안마다 충실히 따랐던 내 자녀에게도 적용된다. 그러다가 내가 그대를 도울지도 모른다는 실낱같은 희망으로 마침내 내면의 나에게 향하게 되는 것이다.

 

- 나의 어린아이인, 그대 역시 자신을 치유할 수 있는 유일한 구원자인 나에게 완전히 맡겨야 한다는 것을 알라. 나는 그대 내면의 전능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나는 그대의 건강이요, 힘이요, 활력이다. 그대가 내면의 나를 느끼고, 나야말로 그대에게 이 모든 것임을 알 수 있을 때에야 비로소 그대는 진정 영원한 건강을 체험하게 될 것이다.  

 

     

 

 
내 안의 나
『내 안의 나』는 오랜 세월 이리저리 뛰어나니며 책들과 가르침에서, 철학과 종교에서 진리ㆍ자유ㆍ행복ㆍ신이 무엇인지 간절히 찾는 사람들을 위해 진리를 알려주는 책이다. 자신의 내면의 영혼에 진리가 있음을 전하고 있다.
저자
조셉 베너
출판
출판일
2011.0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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