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자가 흐르는 이야기/Book1

[댄싱스네일] 게으른 게 아니라 충전 중입니다 - 어제도 오늘도 무기력한 당신을 위한 내 마음 충전법

일루젼 2023. 7. 4. 0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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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댄싱스네일
출판 : 허밍버드
출간 : 2019.02.20 


       

7월이 시작되었다.

평온하다면 평온하고, 사건사고가 있다면 있는 하루하루다.

 

지나치게 무덥다고 느끼지 않을 수 있는 환경에서 무언가를 읽을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하는 시간들. 이번 여름에는 손 닿는 대로 많이 읽는 시간을 가져보고 싶다. 내게는 이것이 일종의 리트릿이다.

 

저자명을 보고 빵 터지고 말았다. '댄싱스네일'이라니, 너무 귀엽잖아! 달팽이가 눈을 넣었다 뺐다 하며 움직이는 모습도 귀엽지만, 그 느릿한 움직임과 충분히 빠를 내적 흥취를 상상하면 절로 웃음이 난다. <게으른 게 아니라 충전 중입니다>라는 책제에 아주 적절한 작가명이라고 생각했다. 

 

이 책 또한 리디셀렉트로 읽게 되었는데, 함께 읽던 종이책에 집중이 되지 않거나 책을 꺼내들 수 있는 상황이 아닐 때 조금씩 나눠 읽었다. 저자의 다정하고 차분한 글도 마음에 들었지만, 몇 가지 색을 쓰지 않고서도 감각적으로 느껴지게 그려낸 일러스트들이 마음에 쏙 들었다.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색감들이기도 해서 한참을 바라보기도 했다.

 

아마 연이어 '게으름'이라는 키워드가 들어간 책을 선택했던 건 내가 무엇 하나에도 제대로 집중하지 못한 채 시간을 보내고 있다는 자기반성 때문이었을 것이다. 책을 읽을 수 있는 집중력도 절대적인 시간도 주어지지 않은 것 같아서 답답해지는 기분. 혹은 읽고 나서 감흥을 정리하는 시간마저도 아깝게 느껴지는 초조함. 그럼에도 막상 주어진 여유 시간에는 밀린 잠을 자느라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스스로에 대한 실망감.   

 

'왜 책을 읽고 싶은가?'라고 묻는다면.

 

사실 딱히 할 말은 없다. 

그냥 책이 있고, 읽는 것이 재미있고, 읽고 싶기 때문이라고 할 밖에. 아마도 계속해서 읽어나가는 것이 내 나름의 역할이 아닐까 추정해 볼 뿐이다.  

        

<게으른 게 아니라 충전 중입니다>는 읽는 동안 많은 위안이 되어주었다.

즐거웠다. 


 

   
때로는 채움보다 비움이 필요한 순간들이 있다. 

 

 

 

- 우울과 무기력을 심하게 앓던 인생의 암흑기 때는 정말이지 책 한 줄 읽기도 힘이 들었다. 그래서 그때의 나와 같은 시기를 지날 누군가가 편하게 접할 수 있는 콘텐츠를 만들고 싶어 그림일기를 그리기 시작했다. 부족하게나마 거기에 글 몇 줄을 덧붙이다 보니 그걸 보고 위로받는 사람들이 생겨났고, 그들을 통해 나 또한 위로를 받기도 하며 그 내용들을 모아 책으로 만들기로 했다. 

 

- 이 책에는 나의 우울과 무기력이 정점을 찍었던 20대 중후반, 3-4년 간의 기록을 담담한 톤으로 재구성한 단상들이 담겨 있다. 책을 쓰는 동안에도 나는 무기력을 극복 중이었고, 여전히 괜찮지 않은 날은 찾아왔다. 사고 패턴을 바꾸기 위해 수년간 노력해 왔음에도 드문드문 마음이 지하 30층쯤까지 주욱 미끄러져 들어가곤 했다. 

 

- 그렇게 내 일상이 균형을 잃었을 때면 SNS에 적힌 '위로받고 있다' '감사하다'는 댓글들을 마음 편히 볼 수 없었다. '무기력증을 겪었고 이젠 어느 정도 극복했다'는 이야기를 그림으로 연재하기 시작한 뒤로 괜한 책임감 같은 것을 느꼈기 때문이다. 누군가는 나를 보며 좋아질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질 거란 생각 때문에 더더욱 잘 지내는 모습만 보여야 할 것 같아 마음이 무거웠다. 그렇게 책임감에 압박감까지 더해져 가슴 깊은 데서부터 타들어 가는 듯한 익숙한 감정이 종종 나를 반기거나 짓눌렀다. 

 

- 그러는 사이 반복되던 무기력감에도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다. 최근에 찾아온 무기력감은 이상하리만치 짧았다. 오히려 예전처럼 그것에 잠식되어 버리고 싶을 때에도 잠시 머물더니 사라졌다. 아마도 내 안에 기생할 무기력 숙주가 점차 줄어들었기 때문이리라. 무기력한 기분들은 내 안의 무기력 숙주에 들러붙으며 몸집을 키운다. 그러니 지금의 나에게 존재하는 무기력감이 줄어들수록 새로운 무기력들이 기생할 곳도 좁아지게 마련이다. 책을 다 써 갈 즈음에는 마음속 검은 때들이 벗겨져 나가는 걸 느꼈다. 느리지만, 조금씩. 

 

- 여전히 고군분투하는 나지만, 감히 누군가를 위로하겠다는 거창한 목표로 이 책을 만들 수 있었던 건 나 또한 상담과 코칭을 받고, 팟캐스트를 듣고, 책을 읽으며 누군가를 통해 받았던 위로를 반드시 되돌려 주어야겠다는 생각 덕이었다. 

 

 - 무기력은 스트레스 상황이 왔을 때 나타나는 반응일 뿐, 병이 아니다. 반드시 괜찮아진다는 믿음이 필요하다. 

 

- 얼마 전까지만 해도 나는 꽃이나 나무를 보며 아름다움을 잘 느끼지 못했다. 

 

- 언젠가부터 내가 남들과 좀 다르다는 걸 인지하기 시작했지만 나는 그냥 원래부터 그런 사람인 줄 알아서 일단 상황만 넘기면 그만이었다. 그렇게 웃음이라는 보호색을 띤 채 사람들 틈에 섞이기 바빴다. 웃는 얼굴 뒤로 필요 이상의 감정들을 가릴 수도 있었고, 웃고 있기만 하면 누구도 나의 결핍에 대해 묻지 않으니 편했다. 그러다 보니 적절한 감정을 느끼는 기능이 점차 떨어졌는지 더 이상해졌다.  

 

- 모두가 심각한 상황인데 혼자만 공연히 웃음이 터져 분위기를 이상하게 만들 때가 있는가 하면, 상황에 맞게 화를 내야 할 때에도 얼굴은 웃고 있었다.

 

- 부정적 감정을 서툴게 표현했다가 도리어 상처 입는 경험을 겪게 되면 자신의 감정을 그대로 드러내기 두려워져서 느끼기 이전에 가치 판단부터 하게 된다. 부정적 감정은 나쁘니까 숨겨야 하고, 긍정적 감정은 좋으니까 그것만 드러내야 한다고. 제때 흐르지 못한 감정들은 그대로 고이고 썩어 긍정적 감정을 느낄 수 있는 통로마저 막아 버린다. 

 

- 마음속 검은 때를 다른 사람과 공유한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누군가는 악용할 수도 있고, 받아들일 준비가 미처 안 된 사람에게는 무례한 일이 될 수도 있다. 

 

- 만약 나의 구김살들을 내가 먼저 안아 줄 수 있다면 억지로 웃어 보이지 않고도 세상의 아름다움을 이야기할 수 있게 되지 않을까. 

 

- 인생에서의 즐겁고 좋은 부분만을 얘기하는 사람을 보면 허풍이 심하고 정이 안 간다고 생각하던 때가 있었다. 그에 반해 서로의 치부나 힘든 이야기를 나눌 수 있어야만 진실한 관계라 여겼다. 그래서 친밀하다고 느끼는 사람일수록 힘든 일상이나 깊은 마음속 고뇌를 대화의 주요 소재로 삼았다. 내 나름대로는 그게 '나는 너를 이만큼이나 친밀하게 여기고 있어'라는 메시지였다. 

 

- 힘든 하루 일과를 마치고 누군가의 지난한 고민 상담을 들어주던 어느 날, 반대 입장이 되어 보니 내가 친밀함을 나눈다고 생각했던 행위가 어떤 이에겐 스트레스가 될 수도 있었겠다는 걸 깨달았다. 더구나 비슷한 고민 상담이 며칠간 이어지자 처음에 품었던 측은지심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사회에 나와 이리저리 치이며 하루치 고통의 양이 늘어갈수록 누군가의 하루 끝에 나의 고통을 하나 더 얹어 놓는 게 과연 진정한 친구일까 하는 의문이 들기 시작했다.

 

- 즐겁고 가벼운 이야기만 나누더라도 어떤 사람에게는 그게 자신의 마음을 활짝 열어젖힌 모습일 수도 있다. 세상에는 다양한 사람과 다양한 형태의 마음 나눔이 있으니까. 모두가 힘든 하루를 보낸 어느 날 누군가에게 우스갯소리를 건네며 함께 웃고 싶은 마음. 그런 마음의 연장선에 하얀 거짓말도 있지 않을까. 가끔은 하얀 거짓말이나 농담으로 대화 사이에 숨 쉴 공간을 만들어 주는 것. 이건 가식적이거나 자신의 의사를 정확히 표현하지 못하는 것과는 또 다르다. 소중한 사람을 위한 배려이자 세련된 현대인의 표현 기술이기도 한 것이다. 

 

- 삶의 고통스러운 면면을 낱낱이 공유하지 않아도 농담 너머의 진심을 나눌 수 있는 대화라면, 그것으로 충분히 진실한 우리.

 

- 엉뚱한 이야기를 하거나 뭐라고 대화를 이어 나가야 할지 몰라 어색한 미소만 띠게 된다. 상대에 대한 관심을 가질 여력이 없으니 할 말도 떠오르지 않는 것이다. 이런 식의 눈치 보기는 상대가 아닌 나에게만 초점이 맞춰져 있는 것이므로 상대방에게 진짜 필요한 배려도 아니며 진정한 소통으로 이어지기 어렵다. 그러니 응당 관계는 잘 안 될 수밖에. 결국 부정적인 예측이나 불안이 현실로 나타나 예감이 맞았음을 확인시켜 주니 잘못된 믿음만 강화된다. 

 

- '역시 나 때문에 이 관계가 잘 안 되는 거야. 혼자가 낫겠어.'

관계에는 너와 내가 공존해야 하는데 이 경우에는 '내가 보는 상대방'도 없고 '내가 보는 나'도 없다. 오직 '상대방에게 어떻게 보여질지 걱정하는 나'만이 존재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건 내가 무신경한 사람이라서가 아니라 불안이 높아 그만큼 나 자신을 돌보는 것만으로도 힘든 상태인 것뿐이다.

 

- 그러니 만약 대화할 때 긴장을 잘하는 사람이라면 필요 이상으로 상대에게 맞추려 하다가 거기에만 에너지를 소진해 버리지 않도록 해야 한다. 타인을 배려하는 것과 무조건 맞추는 것은 다르다. 비록 교류하는 방식이 다르더라도 진정으로 상대를 포용하고 있다면 진심은 항상 전해지기 마련이다. 

 

- 그냥 사람이란 게 원래 그렇게 되기 쉬운 존재는 아닐까. 우리는 처한 상황과 환경에 영향받기 쉽고 유약한 도덕성을 기본 값으로 가지고 있을지 모른다. 그렇기에 더 경계해야 한다. 내가 가진 좋은 것들이 내 시야를 가리지 않도록. 힘든 상황이 나의 태도를 합리화하거나 스스로를 함부로 대하지 않도록. 

 

- 어른이 되기만 한다고 다 어른스러워지는 건 아닌 것 같다. 여전히 철이 없고, 자신과 타인에게 상처를 주고, 후회와 반성을 하면서도 같은 실수를 하기 여러 번. 그렇게 사는 동안 다양하게 못난 행동을 한다. 하지만 그건 그저 우리가 사람이라는 방증일지 모른다. 그러니 후회되는 일이 있다면 자기반성은 지나친 자책으로 번지기 전에 적절한 선에서 그만 끝내고, 그저 전보다 나은 인간이 되고자 노력하는 것으로 충분하다. 못나고 보잘것없던 나의 모습들과 현재의 나의 가치를 연결 지어 생각하지는 말자. 

 

- 과거란 도망치려 할수록 뒤쫓아 오고, 붙잡으려 하면 이미 사라져 있는 것. 만약 과거가 현재를 잠식하려 한다면 이불 한 번 세게 걷어찬 뒤 눈을 감고 과거의 나를 만나러 가 보는 건 어떨까. 

 

- 어쩌면 우리는 정답을 알고 있다. 지금 시작하기에 너무 늦었다는 것도, 열심히 해도 안될 수 있다는 것도. 그런데, 그런데 말이다. 좀 늦는 거면 어떻고 좀 틀린 선택이면 또 어떤가? 우리가 원하는 건 차가운 정답도, 뻔한 위로의 말도 아닐지 모른다. 정말 필요한 건 어떤 결과를 마주하더라도 또 어떻게든 살아진다는 믿음이다. 

 

- 마음이란 게 원래 마음대로 되는 건 아니지만, 두려움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역설적으로 존재하는 두려움을 그대로 놔두어야만 한다. 실망할 것을 방어하면서 무언가를 시도하는 것과 두려운 마음을 받아들이며 도전하는 것은 질적으로 완전히 다른 결과를 불러온다. 전자는 두려움을 외면하는 데에 엄청난 심리적 에너지를 사용해야 하기 때문에 자신이 가진 역량을 최대치로 발휘하지 못할 수밖에 없다. 

 

- 우리는 학교에서 기준과 틀에 맞추는 연습은 많이 해 봤지만, 부서져도 다시 일어서는 방법을 배울 기회는 별로 없었다. 빠르게 변화하는 세상에서 꼿꼿하기만 하다가는 언젠가 그대로 ... 

 

- 그 자리를 즐기기보단 뭔가 애써야 하는 느낌이었다. 그래서 '역시 혼자가 편하지' 하며 누가 부르기 전엔 잘 나가지도 않고, 먼저 연락해서 약속을 잡는 일도 없이 대부분의 일들을 혼자 했다. 심지어 통화마저 잘하지 않고 문자나 메신저를 주로 이용하다 보니 어느 날 밤엔 문득 '아, 오늘 사람하고 말을 한마디도 안 했구나' 하기도 했다. 이렇게 말하면 왠지 안쓰러운 장면이 연상될 만도 한데 내겐 그런 상황이 별스러울 것 없이 꽤나 만족스러웠다. 

 

- 집순이, 집돌이들은 주로 집에서 휴식을 취할 때 심리적 에너지가 충전되고 반대로 바깥순이, 바깥돌이들은 외부 활동을 통해 에너지를 얻는다. 그래서 개인의 성향에 따라 휴식에 대한 개념도 서로 다르다. 내향성이 강한 사람이 정서적으로 소진돼 있는 상태라면 친구와의 약속도 휴식이 아닌 하나의 '처리해야 할 일'로 느껴지기도 한다. 물론, 노는 것이 싫은 것은 아니지만 타인 앞에서 사회화된 모드의 나를 사용하는 데에 적잖은 에너지가 쓰이기 때문이다. 

 

- '그렇게 집에만 있으면 심심하지 않아?'

'주말인데 집에서 하루 종일 뭐 해?'

이런 질문을 받으면 집순이, 집돌이들은 무척 당황스럽다. 어리석은 중생이여, 집에만 있으면서도 하루를 얼마나 다채롭고 흥겹게 보낼 수 있는지 진정 모른단 말인가!

 

- 서로 다른 성향을 너른 마음으로 이해해 줄 수 있다면 가장 좋겠지만, 설령 모두가 나를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내가 이상한 사람인 것은 아니니 걱정하지 말자. 내 마음을 잘 보살피려면 내가 가장 편안한 방식대로 에너지를 충전하면 된다. 나에게 가장 자연스러운 모습으로 지낼 때 나 자신도, 내가 아끼는 사람들도 잘 살필 수 있다.

 

- "그렇죠. 쉬었다 다시 걸어야죠. 물론 신발을 좀 편한 걸로 갈아 신고 계속 걸을 수도 있겠죠. 하지만 다리에는 계속 무리가 가고 있는 거예요. 그런데, 결국 뭐 때문에 그렇게까지 하는 거죠?"

 

- 순간 머리가 멍해졌다. 결국 다 행복하게 살자고 하는 일인데 난 무엇 때문에 이렇게까지 하고 있었을까? 주객이 한참 전도되어 있었다. 여기서 멈추면 스스로에게, 세상에게 지는 것이라는 생각에 몸과 마음을 혹사시켜 왔던 걸까. 

 

- 이 사회는 자신의 한계를 극복하는 것을 대단한 미덕으로 삼는 것 같다. 그런데 한계라는 게 꼭 극복해야만 하는 걸까? 그렇다면 무엇이 진정한 극복일까? 눈에 보이는 그럴듯한 결과가 나타나면? 계속 좌절해도 지치지 않고 다시 도전하면? 어쩌면 한계에 다다랐다는 생각에 진이 다 빠졌을 때는 쉬어 갈 줄도 아는 게 진짜 미덕이 아닐까. 

 

- 좌절감을 다루는 방법을 배우는 것. 그게 인생에서 중요한 가치들 중 하나일지 모른다. 

 

- 우리를 지치게 만드는 '충분한 노력들'은 그냥 사라져 버리지 않는다. 언젠가 반드시 다른 형태의 통찰이 되어 우리를 도울 것이다. 그러니 이미 노력이 충분했다면 이번엔 그냥 힘을 좀 빼고 한 템포 쉬어 가는 건 어떨까.

 

- 데드라인에 이끌려 생체 시계가 돌아가는 삶. 비록 한동안은 폐인의 몰골이 될지언정 가슴 한구석에서는 '내가 이렇게 열심히 살고 있구나!' 하는 뭔지 모를 안도감이 느껴진다. 마감 전 초능력 상태일 땐 단전에서부터 알 수 없는 자신감이 일렁인다. 읽고 싶은 책, 보고 싶은 영화, 하고 싶은 것들 산더미에 지구도 부술 것 같은 의욕이 솟아오르니 그 여세를 몰아 비장하게 차후 계획들까지 세우곤 한다. (그럴 시간에 일을 먼저 끝내지)

 

- 그러다 바쁜 일들이 한바탕 휘몰아치고 지나가면 어김없이 공허감이 찾아오고 만다. 심심하지만 뭔가 유익하고 실용적인 일을 하기는 싫고, 그렇다고 게으름을 피우자니 왠지 불안하고 초조한 기분. 그래서 한동안은 불안해하면서 아무것도 안 한다. 시간을 손에 넣지 못했을 때는 그토록 바라다가도 막상 쥐고 나면 늘 힘없이 흩뿌려 버린다.

 

- 왜 항상 갖지 못한 것만을 갈망하게 되는 걸까. 이렇게 계속 무언가가 끝나기만을 기다리다 아무것도 못한 채 끝나 버릴까 두려울 때가 있다. 

 

- 생의 과제들을 달성하고 해치워 버리려는 마음가짐으로만 대한다면 아무리 열정을 다한들 자신의 삶을 온전히 운용하기는 힘들어진다. 주체적으로 무언가를 하는 것이 아니라 일이 나를 끌고 다니는 격이 되니 다 끝난 후엔 보상심리로 주체적인 게으름이라도 피우고 싶어 지게 되는 것이다. 

 

- 물론 모든 일을 내 일 같은 마음으로 대하기란 어렵지만 그 틈새를 잘 들여다보면 온전히 내 것이 될 수 있는 시간들도 분명 찾아낼 수 있을 것이다. 적어도 그 시간만큼은 지금이 끝나기를 바라지 말고 과정을 살자. 이것이 끝나면 다음 것이 또 올지니 우리는 무언가가 끝나기를 기다리는 사이사이에 미리 즐거움을 끼워 놓을 줄도 알아야 한다. 그런 시간들이 쌓여 단단해진 마음은 어느 날 다시 엄습한 공허감에 조금은 덜 흔들리도록 붙잡아줄 거라 믿는다. 

 

- 때로는 너무 고민 말고 마음 가는 대로 선택한 뒤 나의 선택을 사랑하는 것만이 최선일지 모른다. 

 

- 만약 빈 컵이 필요한 사람이면 이렇게 생각할 것이다.

"컵이 반이나 비었네!" 혹은 "에이, 컵이 반밖에 안 비었네."

이 경우엔 '비워진 것'을 긍정하게 되는 것이므로 반대로 완전히 빈 컵이 필요한 사람에게는 물이 남아 있다는 사실이 만족스럽지 못할 수도 있다. 

 

- 여기에서 중요한 건 긍정적인 면을 볼 줄 아느냐 모르느냐가 아니다. '긍정적인 것'의 정의를 '채움'이나 '비움' 어느 한쪽으로도 규정짓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만족하기 힘든 상황에서 무조건 긍정적인 쪽을 보는 사람이 되라고 하기보다는 '긍정적인 것'의 범위를 넓힐 수 있는 세상을 만들어 가야 한다.

 

- 세상에는 자신이 처한 상황이나 생각의 관점에 따라 다양한 모양의 만족감을 얻으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 세상에 손가락 지문 하나 나와 똑같은 사람이 없는데 어떻게 모두가 같은 상태로 행복할 수 있겠나. 

 

- 그러니 컵에 물이 반이나 남은 것을 기뻐해야 한다는 말은 우리에게 긍정적 관점에 대한 한 가지의 답만을 정해 버리는 것일지 모른다. 항상 무언가 채워져 있어야만 만족스러운 상태에 가까워질 수 있다고.

 

- 때로는 채움보다 비움이 필요한 순간들이 있다. 

 

   

 

 
게으른 게 아니라 충전 중입니다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 《그냥 흘러넘쳐도 좋아요》, 《혼자 있고 싶은데 외로운 건 싫어》 등 마치 보고만 있어도 위로가 되는 그림으로 수많은 독자들의 찬사를 받았던 일러스트레이터 댄싱스네일의 첫 번째 에세이 『게으른 게 아니라 충전 중입니다』. 오랜 시간 무기력증과 우울증을 겪으며 상담을 받아 온 저자가 인생 슬럼프시기를 겪고 있는 이들에게 전하는 로그아웃 허가서이다. 무기력과 우울은 병이 아니라고, 특별한 게 아니라고, 감기에 걸렸을 때 몸을 돌보는 것처럼, 무기력증이 찾아왔을 때 역시 마음을 보살피면 된다고 이야기하면서 아무것도 하기 싫으면 아무것도 하지 말라고, 불쑥불쑥 찾아오는 감기처럼 오늘 또 찾아온 무기력감에 일일이 호들갑스럽게 반응할 거 없다고, 그저 마음을 충전하는 시간을 충분히 가지라고 조언한다. 3년 넘게 직접 상담과 치료를 받은 저자는 누구나 할 수 있는 작은 행동이 생각보다 큰 도움이 된다는 사실을 깨달았고, 주말 하루쯤은 가만히 누워 확실히 게으르게 시간 낭비하기, 자기 전 옥장판 위에 누워 귤 까먹으며 드라마 보기, 될 수 있는 한 움직이지 않기처럼 아주 소소하고 별것 아닌 일들이 텅 빈 마음을 충전해 준다는 반가운 사실을 알게 되었다. 작고 시시하고 보잘것없어 보이지만, 때로는 쓸데없는 생각과 일상 속 소소한 행동들이 생각지도 못한 위로와 즐거움이 된다고 이야기하면서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자신만의 노하우를 전한다.
저자
댄싱스네일
출판
허밍버드
출판일
2019.0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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