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자가 흐르는 이야기/Book1

[이창현, 유희] 익명의 독서 중독자들 1

일루젼 2023. 8. 12. 0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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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이창현 / 유희
출판 : 사계절
출간 : 2018.12.14


       

<익명의 독서 중독자들 2>가 출간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1권을 재독했다. 초독할 당시 상당히 낄낄거리며 읽었던 기억이 선명한데, 다시 읽으면서도 엄청 웃었다.

 

이 책의 웃음 포인트는 신랄한 모두까기다. 책을 좋아한다고 말하는 사람 자체가 소수지만, 그 소수의 사람들마저도 취향을 고려해 세분화하기 시작하면 모래사장의 모래알들만큼이나 다양하다. 그리고 그런 이들 중에서도 스스로 '독서'를 '좋아한다'고 말하는 이들 특유의 특징과 은근한 분위기를 아주 잘 표현한 것이 바로 <익명의 독서 중독자들>이다.  

 

예전에 읽을 땐 미처 생각을 못했던 와우 포인트. 이런 마이너한 코드를 이용해 빵빵 터지는 개그를 짜고, 그러면서도 그려진 표지만으로도 책제와 출판사를 짐작하게 할 정도의 세심함을 잃지 않는다. 표지만이 아니다. 인용되는 문구, 벽에 걸린 그림, 새겨진 문양까지 모두가 '저자가 안배한' 설정이다. 당연하다면 당연하지만, 사실 그리 당연하지 않은 일이다. 

 

또한 독서에 관심이 없는 이들에게 (그런 사람이 이 책을 읽을 가능성이 높지는 않았겠지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고자 친절한 마음으로 알려주는 팁들은 또 어떠한가. 구조가 좋은 책 고르는 법, 자신에게 맞는 책 고르는 법, 다양한 '읽는 방법'들을 알려준다. 그뿐인가? 흔히들 범하는 실수를 유쾌하게 꼬집는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섣불리 '책 추천'을 해달라고 했다가 뜨거운 맛을 보게 되는 <율리시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개인적으로는 <죽음에의 한 연구>도 포함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같은 일종의 '지뢰'를 피하는 법도 알려준다.  

 

어느 정도 책을 좋아한다 싶으신 분들이라면 이 책에서 소개하는 책들에 도전해 보신다면 또 다른 즐거움을 얻으실 수 있을 것이다. 주로 인문서 위주이긴 하지만, 꼭 읽어봄직한 책들이다. (다시 읽으면서는 이전에 흘려 넘겼던 책들을 독서 목록에 추가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하지만 아직 '주석 무시하기'와 '완독 집착'과 '밑줄 긋기' 모두에 부들거리는 관계로, ('골라 읽기'도 잘 못한다) 안타깝지만 나는 '독서 중독자'가 되지 못했다. 앞으로는 어떨지 모르겠지만, 아마 좀 힘들지 않을까 싶어 조금 슬프다. 

 

아- 정말 재미있게 읽었다. 

 

그리고 조금 당황스러운 소식 하나.

<익명의 독서 중독자들> 1권이 베스트셀러에 등록이 되어 있다. 

음... 음... 뭐, 어쩔 수 없지. 

       

 


 

"이 지구에 살고 있는 사람들 중
절대 다수가 책을 읽지 않는다."


"그들은 평생 동안 살아 있는 자연만을 마주하고 살아간다.
퍼덕퍼덕 움직이는 세계가 있으니
죽어 있는 글자 따위는 눈에 담지 않는다."


"사자가 위장에 탈이 나면 풀을 먹듯이
병든 인간만이 책을 읽는다."

- 강유원, <책과 세계>

   

 

 

 

 

 

- '침착해. 회원 중 누군가 프루스트 현상을 이야기하면, 프로이트를 거론하며 흐름을 바꾸자. 프로이트가 없었다면 프루스트나 제임스 조이스는 상상할 수 없을 거라며... 아니지! 조이스의 <율리시스>는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만큼 할 말이 딱히 없는 책이잖아. 누군가 눈치 없이 그쪽으로 이야기를 몰아가면 마찬가지로 곤란해.'

 

- 세상에는 많은 책이 있지만 독서 중독자라 해도 평생 읽을 수 있는 책은 소수일 뿐이다. 결국 살면서 읽지 않은 책에 대해 말하게 되는 일이 많은데, 독서 중독자들은 남아도는 독서력으로 그럭저럭, 아니 심도 있는 수준까지 대화가 가능하다. 

 

- 그러나 유독 할 말 없는 책들이 있으니,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가 그중 하나다. 
     

- "나는 도서관에 가지 않아."

 

- "'대출한 책으로 얻은 지식은 반납과 동시에 사라진다.' 독서 중독자 중에 저런 친구 꽤 있지. 그러니 '책은 무조건 사서 읽는다.' 이런 이유지?"

"잡다한 이유가 더 있는데... 뭐, 그렇다고 해 두지." 
"'책은 사서 읽는다'는 것에 동의하지만, 나는 '도서관파'라고 해야겠군. 빌려 읽고 나서 살지 말지를 정할 수도 있고... 단순히 도서관 책장을 훑는 것만으로도 내 독서력이 높아지는 느낌이 들거든."

- "꼭 읽고 싶은 책이 '품절'이거나 '절판'일 때, 집 근처에 도서관이 있으면 쉽게 해결되기도 해."

"근처에 도서관이 없으면요?"

"이사를 가. 인간이 살 곳이 아니야!"

 

- "대학교 권장 도서나 명사 추천 도서 따위를 참고하면 될까? 슬슬 나도 비극 말고 다른 책들을 읽어 볼까 하는데..."
"'비추'야. 그걸 작성한 인간도 읽지 않았을 책들을 초보자가 억지로 읽다 보면 금세 독서와 담쌓게 되거든."
"그럼 베스트셀러를 참고하는 건..."

"..."

 

- 독서 중독자들은 베스트셀러에 냉담하다. (어쩌다 읽은 책이 훗날 베스트셀러가 되는 것조차 불명예로 여길 정도.)

 

- "베스트셀러를 '내 독서 목록'의 기준으로 삼긴 힘들죠. 아무래도 '그때그때의 인기 있는 책'이다 보니 맥락 없이 '읽어야 할 신작 목록'만 늘어날 테니까요."

 

- "더 중요한 이야기가 있지. '지적 배경'이나 '취향'이 저마다 다른 다수의 사람이 동시에 즐기고 공감한 책...? 과연 그런 책에 무슨 내용이 담겨 있을까?"

'응, 너처럼 취향 강한 놈한텐 안 맞는 내용.'

 

- "평소 관심사에 맞는 책을 골라. '책 선택은 '나 자신'이 중심이 되어야 한다. 일단 자신의 호기심을 충족시킬 책부터!'"

 

- "흠, 주석 무시하기조차 통과 못 하면 문제가 심각한데."

 

- "자네, 일반인과 독서 중독자의 가장 큰 차이가 뭔지 아나?"

"글쎄."

"독서 중독자들은 완독에 대한 집착이 없어."

 

- "흠, 지금껏 읽은 책 중 처음부터 끝까지 전부 읽은 책은 20%도 안 될 것 같군." 
"음."

"10% 미만."
"음, 괜찮은 건가? 전혀 미련 없이?" 

 

- "내가 산 책, 내가 원하는 부분만 읽겠다는데 누가 뭐라 하겠나."

"오히려 고지식하게 억지로 완독하려다, 아예 책을 멀리하게 될 수도 있어요." 
"아까 주석 이야기 할 때 직접 말했잖아. 이미 아는 내용이라면 굳이 읽을 필요 없을 것 같다고. 책 전체로 확장해도 마찬가지야."

 
- "그랬지. 가만. '이미 아는 내용'이 별로 없는 독서 초보자들은, 결국 끝까지 읽을 수밖에 없는 것 아닌가?"
"... 자, 너희들도 이제 샬케를 응원해라."
'대답 회피 빠르잖아!'

 

- "나 반평생 살았다, 꼬마야. 물론 네가 나보다 먼저 죽을 수도 있지만, 확률상 내가 살 날이 덜 남았지. 그래서 더더욱 쓸데없는 일에 시간을 소비할 수 없다. 좋은 일에 집중해야 해. 네놈들과는 서 있는 조건 자체가 다르다고."

"탕!"
"... 겨우 오락실 게임 하면서 그딴 소리 하지 마."

 

- "독서도 마찬가지지. 물론 네놈들은 책 같은 거 읽지 말고 놀아야 해. 그러나 어른은 다르다. 일평생 책을 읽을 수 있는 날은 한정되어 있어. 그래서 나는, 오랜 세월 인류의 검증을 받은 고전과 인문학 책 위주로..."

"탕!"

 

- "'끝까지 읽지 않기'도 적응하기 힘들었는데 '밑줄 긋기'라니... 자네들은 계속 나를 힘들게 하는군."

 

- "아! 책을 빌리지 않는 이유가 이거였군."

"맞아. 도서관에서 대출한 책에는 메모를 못 하니까."

 

- "아, 물론, 도서관 책에 밑줄 긋는 인간도 종종 있지."

 

- "뭐, 이래저래 남이 밑줄 그어 놓은 책은 읽기 괴롭지."
"내가 그은 밑줄도 괴로울 때가 있어. 과거에 내가 끄적인 메모나 밑줄을 재독하면서 발견할 때!"

"으아, 그거 창피하지!"

"어렸을 때 그은 밑줄일수록 더 그래. 판단이나 가치관이 전혀 다르니까."

"내가 스무 살이냐, 마흔 살이냐에 따라 새로운 면이 보이는 게 책의 매력 아니겠어?"

 

- "좀 다른 이야기인데... 내가 히라노 게이치로의 소설을 즐겨 읽거든. 히라노 게이치로가 데뷔작(일식)을 투고하면서 밝힌 문학관이 있어. '나는 예술지상주의자이며, 문학으로써 성(聖)스러움을 실현하고자 하는 목적을 갖고 있다'. 어렸을 때는 그게 너무 멋있었지. '이야. 완전 죽이잖아!' 20대 후반에 다시 읽었을 때는 오그라들더군. '으아, 이거 본인도 흑역사로 여기겠지?' 그런데 중년이 되어, 어느덧 서재 한 칸을 꽉 채운 게이치로의 소설들을 보니... 작가의 젊은 시절 신념이 새삼 놀랍고... 뭔가 뭉클하더라고."

 

- "사자, 요즘 뭐 읽어?" 
"<결정의 본질>(그레이엄 앨리슨 외), <좌익 축구 우익 축구>(니시베 겐지), <발칸의 역사>(마크 마조워), <현앨리스와 그의 시대>(정병준), <1945>(마이클 돕스), <빛이 사라지는 시간>(오이겐 루게), <비잔틴 제국의 신앙>(메리 커닝엄), <환원근대>(김덕영), <파리의 심판>(로스 킹), <세계정치론>(존 베일리스 외)! 고슬링은?"

 

- 독서 중독자들은 여러 권의 책을 동시에 읽어 나간다('동시 병행 독서법').

 

- '사실 그런 것보다... 다른 독서 중독자의 컬렉션을 볼 기회라 싱숭생숭해!'

 

- '더 이상 둘 곳이 없어 거실까지 점령한 책장들... 필요할 때마다 추가로 책장을 사들여 모양도 색도 들쑥날쑥 뒤죽박죽...'

'너무 아름다워!'
 
- "아직 멀었군, 사자! 초입부터 고전을 배치해 방문객을 기죽이려는 너의 의지는 알겠어. 그러나... 일반인에게 임팩트를 주려면, 처음 보이는 책장에 두꺼운 책들을 배치해야 해! 최소 1,000페이지 넘는 책들로 쫙! 고전에 반응하는 건 우리 같은 인간들 뿐이란 사실을 고려하지 않았군."
"그... 그런 거냐!"

'사자... 친구 없다며... 뭘 어떻게 배치하든 상관없을 듯한데.'

 

- "저는 (아내와 달리) 독서 취미가 없어서..."
'이런 환경에서... 책을 안 읽는다고?'
'누가 무슨 말이라도 좀 해봐! 이 분위기를 깰 만한...'

'... 더 할 말이 없다.'

 

- '처음엔 살벌한 인간들이 아닐까 의심했는데... 다시 보니 (아내와 마찬가지로) 그냥 사회 부적응자들이었어.'

 

- "여러분. 누구보다 아내 성격을 잘 알고 있어서 말씀드립니다. (당신들 성격도 대충 알 것 같고...) 앞으로도 독서 친구로 잘 지내 주세요."
꾸벅.

 

- '품절이나 절판된 책을 읽고 싶을 때 도서관만 한 곳이 없습니다.'

 

- "원하는 부분을 읽고... 그대로 반납합니다. (완독하지 않고) 남는 시간에 다른 책을 더 읽을 수 있죠. 바쁘거든요. 독서 말고도..."

 


 

- "내 이름을 경찰이라고 해 두자."는 허먼 멜빌의 모비딕 첫 문장 "내 이름을 이슈메일이라고 해 두자."에서 가져왔다. 

 

- NATO 음성 문자

A Alfa / B Bravo / C Charlie / D Delta / E Echo / F Foxtrot / G Golf 

H Hotel / I India / J Juliett / K Kilo / L Lima / M Mike / N November 

O Oscar / P Papa / Q Quebec / R Romeo / S Sierra / T Tango / U Uniform

 

V Victor / W Whiskey / X X-ray / Y Yankee / Z Zulu

 

- "거룩한 독자들의 대열 속으로 들어가는 입문의 통곡"은 김화영의 <책, 독서, 교육>에서 가져왔다.

 

- 로렌스가 쓴 소설 속 문장은 D. H. 로렌스의 <국화 냄새>에서 일부 가져왔다.

"작은 4호 기관차가 덜컹거리며 다가왔다. 석탄이 가득한 무개 화차 일곱 칸을 끌고 셀스턴에서부터 비틀거리며 내려오는 길이었다. 기관차가 모퉁이를 돌아 모습을 드러내면서" 

"따로 떨어져서, 줄을 지어서, 혹은 떼를 이루어 광부들은 그림자처럼 지나가서는 각기 집을 향해 갈라졌다." 

"엘리자베스 베이츠는 남자들의 지루한 행렬을 바라보다가 집 안으로 들어갔다. 남편은 아직 오지 않았다."

 

- "봐라, 태양이 우리 뒤를 쫓는다."는 마루야마 겐지의 <봐라 달이 뒤를 쫓는다>에서 가져왔다.

 

- "늙고 병든 육신을 여기 안온한 멜크 수도원의 독방에 가둔 나는 지금 소싯적에 우연히 체험하게 된 저 놀랍고도 엄청난 사건의 기록을 이 양피지에다 남겨놓을 준비를 서두르고 있다." - 움베르토 에코, <장미의 이름>

 

- "겉으로는 자주 바뀌는 것처럼 보이지만, 권위주의 시대에 만들어진 낡은 정당정치의 구조가 그 속에서 끊임없이 재생산되어 왔다는 사실을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다. 당연히 이런 현실에 대한 비판과 불만은 상당한데, 이것이 지금 한국 정치의 가장 큰 특징이 아닐 수 없다. 늘 뭔가 변하는데 모두가 불만인 사회, 그 속에서 사납고 공격적인 사람들이 늘고, 그들로부터 상처받은 사람도 늘어나 점점 공적 공간으로부터 퇴거하고 싶어지는 사회가 된 것이다. '민주화 30년'의 결산치고는 참으로 비극적이다." - 박상훈, <민주주의의 시간>

 

- 한국십진분류법에서 108은 철학 총서, 전집, 선집이며 109는 철학사이다.

 

- 사자는 요한네스 힐쉬베르거의 <서양 철학사>를 베고 누웠다.

- '다리파', '청기사파'는 20세기 미술사의 주요 동향 중 하나인 독일 표현주의의 유파이다. 

 

- 노마드가 좋아하는 저자에서 제외시킨 스티븐 코비, 토니 로빈스는 유명한 자기 개발서 저자들이다. 

 

- 보스 사무실 벽에 붙은 그림은 에른스트 키르히너의 <Die Straße>이다.

by Google

 

 

- 찰스 맨슨은 '20세기 최악의 살인마'로 불리는 미국의 범죄자이자 컬트 교주이다. 

 

- 브람스 박물관은 '생가' 박물관은 아니다. 2차 세계대전 함부르크 폭격으로 브람스 생가는 사라지고 현재는 기념비만 있다. 

 

- 브람스 국제 콩쿠르의 피아노 결선곡 목록 (1악장만 연주)


1) 브람스, 피아노 협주곡 1번 d단조 Op. 15

2) 브람스, 피아노 협주곡 2번 B플랫장조 Op. 83

3)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5번 E플랫장조 Op. 73

 

- 고슬링은 다임백 대럴 시그니처 기타를 들었다. 

 

- 경찰특공대 헬리콥터는 Mil Mi-172를 참고했다. 

- 사자의 강화복 오른쪽 어깨의 문장 'μολὼν λαβέ'는 테르모필레를 사수하는 스파르타군 300명에게 페르시아의 크세르크세스왕이 "무기를 내놓으면 살려 주겠다"고 최후 통첩을 보내자 레오니다스왕이 남긴 두 마디 "몰론 라베(μολὼν λαβέ, 와서 가져가)"이다.

 

- '레오니다스'는 '레온의 후손'이라는 뜻이며 '레온'은 사자를 뜻하는 그리스어이다. 

- 투키디데스의 펠로폰네소스 전쟁사는 기원전 411년까지 다루고 미완성으로 끝난다. 이후 전개는 크세노폰의 <헬레니카>를 통해 알 수 있다. 

 

- 책 제목은 알코올 중독 치유 모임인 '익명의 알코올 중독자들(Alcoholics Anonymous)'에서 가져왔다.

 

- 글 작가, 그림 작가 모두 독서 모임에 나간 적이 없다. 알코올 중독 모임 역시 나간 적... 처음에는 독서부 여고생 4명을 주인공으로 삼은 '아스트랄' 개그로 방향을 잡았으나 거센 반발에 부딪혀 얌전한 쪽으로 전환했다. 좀 더 쓸데없는 정보는 doxa.egloos.com에서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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