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 : 임정연
출판 : 유유
출간 : 2013.04.14
이 책은 유튜브 채널 '연피아노 yeonpiano'를 운영하고 있는 유튜버이자 피아니스트 임정연 저자의 책이다. 클래식 피아노 전공으로 알고 있는데 성인 취미생과 독학생들의 눈높이에 맞춘 조언을 조곤조곤하게 잘 설명해 주신다.
<피아노 시작하는 법>은 피아노를 처음 시작하려는 분들부터 특정 부분에서 막혀있는 분들까지 폭넓게 도움을 받아가실 수 있는 책이다. 실질적인 연습방법뿐 아니라 마인드 세팅과 연습 시 유의해야 할 점, 고려하면 좋은 점들을 차근히 풀어간다.
나는 겁이 많은 편인데 호기심까지 커서 진득하게 뭔가를 하는 일이 극히 드물다. 겁이 많으니 애초에 시작 자체를 잘 하지 않는데, 막상 시작해 놓고서도 관심사가 바뀌면 쉽사리 그만 두기 때문이다. 그러면서도 그 잠시 동안에는 나름대로의 장비발을 세우는 훌륭한 성인 취미러 편이다. 해서 잠시 몰두했다가 내버려두는 관심사들의 흔적이 쉽게 쌓인다.
가장 꾸준하고 익숙하게 즐기는 독서만 해도 7-8년 정도의 완전 공백기가 생겼을 정도니... 이제는 그런 스스로를 몰아세우기보다 '예상되는 나의 행동 패턴'을 활용해 나도 행복하면서 마무리도 쉬운 형태로 즐기고자 노력하는 편이다. 그렇게 안전장치를 마련해 두면 이 열정과 흥미가 언제까지 지속될지 긴장하지 않아도 되고, 즐기는 동안에도 죄책감 없이 푹 빠져들 수 있다.
또 짧은 시기에 집중적으로 몰입하면 조금씩 길게 유지하는 경우보다 숙련도나 이해도가 빠르게 쌓이는데, 스스로 체득한 것들은 생각만큼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그렇게 조금이라도 성취가 생겼다면 어느 정도 쉬었다 다시 시작해도 금새 회복이 된다는 것도 알았다.
해서 내 경우에는 관심이 생겼을 때 길게 따지지 말고 푹 잠겼다 나오는 게 가장 효율적이다. 시작을 고민하는 사이 관심사가 변하면 미련만 남게 되고, 시작하고서 고민하면 내 실력은 그대로인데 부산물만 가득 남게 된다.
결론. 디지털 피아노를 샀다. 하하하.
어릴 때는 음악 시간을 굉장히 싫어했던 것 같은데, 성인이 되고 다시 접하니 연주 뿐 아니라 기초 이론도 흥미롭다. 무작정 외우기만 하지 않더라도 화성학을 고려해 수학적으로 접근할 수 있다는 걸 알게 되어서인 것 같다.
언제까지, 또 어디까지 하게 될지는 알 수 없지만 지금 시작했으니 대다수 행성들의 역행이 끝나는 올해 말까지는 잘 즐길 수 있을 것 같다.
행복한 하반기가 되길.
끝.
- 피아노 가르치는 일을 처음 시작한 건 학생 때 용돈을 벌기 위해서였지만, 지금은 본업이 되어 내 연습 시간보다 더 많은 시간을 가르치는 일에 쓴다. 학생들은 나이도, 수준도, 피아노를 배우는 목적도 다양하다. 그중 가장 보람을 느끼고 레슨 후에 마음이 충전되는 기분이 드는 건 성인 취미생들을 가르칠 때인데, 왜 그런 느낌이었는지 이 책을 쓰면서 조금은 정리가 됐다.
- 지속적으로 재미와 애정을 느끼고, 생각만 해도 설레고 행복한 무언가를 인생에서 하나라도 가진 사람은 눈빛이 다르다. 자기 인생을 소중히 여기는 자만이 그 무언가를 가질 수 있고, 그 무언가가 '피아노'인 사람을 만나는 일은 나에게 새로운 자극을 준다. 때로는 그들이 몹시 부럽기도 하다. 나도 그런 반짝반짝한 마음을 가진 적이 있었을 텐데, 오랜 시간이 지나며 서서히 퇴색되었나 보다. 그래서, 뜨거운 마음을 가진 그들을 보며 엄청난 에너지를 받는다.
- '취미'를 사전에 찾아보면 '전문적으로 하는 것이 아닌 좋아서 즐기기 위해 하는 것'이라고 나온다. '좋아서, 즐기기 위해!' 얼마나 소중한 마음인가.
- 1장에는 피아노를 쳐 볼까 망설이는 이들에게 하고 싶은 말, 어디서부터 어떻게 시작하는 게 좋을지, 레슨을 받아야 할지 독학으로도 가능할지 등을 이야기했다.
- 2장은 연습에 대한 이야기다. 나는 레슨에서도 효율적인 연습법을 알려 주는 일을 무엇보다 중요하게 여긴다. 사실 레슨 시간보다 혼자 연습하는 시간이 더 많기 때문이다. 그리고 진짜 실력 향상은 레슨 시간이 아닌 연습 시간에 찾아온다. 연습하다 막히는 부분이 나오면 이 책을 바로바로 찾아보며 실마리를 얻기를 바란다.
- 3장은 학생들에게서 그리고 유튜브 댓글로 많이 받는 고민들에 대한 내 생각을 적었다. 손이 작아서, 팔이 아파서, 소리가 안 예뻐서 같은 다양한 고민들을 다루었다.
- 이 책에서는 내 전공인 피아노를 이야기하지만, 어떤 악기든 배우기 시작하면 더 넓은 세상을 경험하게 된다. 음악을 감상하는 일과 직접 온몸으로 참여하는 일은 하늘과 땅 차이다. 연주에는 노랫말이 없기에 지극히 개인적인 감정도 안전하고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다. 친한 이들에게도 깊은 속마음을 드러내는 게 조심스러운 나에게 피아노를 치는 행위는 일기를 쓰는 것이기도 하고 기도하는 시간이기도 하다.
- 레슨을 시작한 지 3년쯤 되던 해에 내 생애 첫 성인 학생이 찾아왔다. 나이는 나보다 대여섯 살 많은 듯했고 금융권에서 일한다고 본인을 소개했다. 중학교 이후로 피아노를 안 치다가 최근에 디지털 피아노를 사서 다시 연습하기 시작했다고. '쇼팽 왈츠 7번 C#단조 Op.64No.2'를 혼자 연습하고 있는데 페달 때문에 너무 스트레스라면서 고민을 털어놓은 그는 긴장한 모습으로 연주를 시작했다.
- 이제 와서 하는 말이지만, 그가 연주하는 동안 조금은 난감했던 것이 사실이다. 예중예고-음대를 다녔던 내 주변 또래는 대부분 음악 전공생이었고, 레슨을 하면서도 거의 어린 학생들만 가르쳤기 때문이다. "이건 틀려, 그게 아니고 이렇게 해야지" 하면서 명령조로 가르쳐도 어느 정도 허용이 되는 어린 학생들 말이다. 가르치는 법을 배우는 페다고지 수업을 수년간 들었지만 이 또한 대상은 어린 학생이었다.
- 성인을 가르친 경험치가 많이 쌓인 지금은 학생이 실수한 걸로 미안하다고 하면 나는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이렇게 말한다. "미안하다는 말은 금지어예요."(지난주 레슨 때 가르쳐 줬던 부분을 잊어버려서 또 얘기하게 할 때는 미안하다는 말을 허용하지만.)
- 누군가 나를 평가하고 지적한다는 기분이 들고, 남 앞에서 치려니 자꾸 긴장되고, 그러다 보니 안 하던 실수를 계속하고. 나를 가르치는 선생님이 답답하고 실망스러울 것 같아서 미안하다는 말이 튀어나오는 마음은 백 퍼센트 이해한다. 성인이 돼서 수영, 골프, 필라테스, 크로스핏 등을 배우면서 운동 신경이 너무 없는 내가 멍청하게 느껴진 경험, 괜히 선생님 눈치 본 경험, 나도 모르게 "죄송해요"를 반복한 경험, 나 역시 많으니까.
- 두렵고 위축되어 있으면 그게 연주에서도 고스란히 느껴진다. 나도 모르게 선생님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반복하고 있다면, 앞으로는 그 말 대신 이렇게 말해보자. "이 부분에서 계속 같은 실수가 나는데 왜 그럴까요?" "어떻게 연습하면 좋을까요?"
- 세계적인 피아니스트처럼 치는 것이 목표라면 그건 불가능하다고 단호히 말하겠지만, 피아노는 나이에 상관없이 누구나 시작할 수 있다. 동료 선생님들과 이야기해 보면 대부분 성인 학생보다 어린 학생을 선호한다고 하는데, 사실 나는 성인 학생을 가르치면서 더 보람을 느낀다. 우선 어린 학생은 본인 의지보다는 부모님 의지로 오는 경우가 대다수지만, 성인 학생은 본인의 귀중한 돈과 시간을 써서 오기 때문에 열정이 넘친다. 무언가에 돈과 시간을 쓴다는 것이 바쁜 성인에게 얼마나 대단한 일인지 한 살 한 살 나이를 먹을수록 뼈저리게 느낀다.
- 2년 전쯤, 오랫동안 간호사로 일하다 은퇴한 70대 할머니가 나를 찾아오셨다. 평생 단 한 번도 악기를 배운 적이 없고 악보도 볼 줄 모르지만 피아노 연주 듣는 게 너무 좋아서 한번 배워 보고 싶다고. 2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이분은 나에게 레슨을 받고 계시다. 얼마 전에는 암보(악보를 외워서 치는 것)로 '모차르트 미뉴에트 F장조 K.2’를 성공적으로 연주했고, 모든 음계(스케일)와 아르페지오를 막힘없이 칠 수 있다.
- 늦은 나이에 시작하기 망설여지는 이유로 가장 많이 꼽는 것이 '몸이 굳어서'이다. 나는 어릴 때 운동을 배운 경험이 전혀 없고 체육 시간을 가장 싫어했다. 그런데 성인이 되고 나서 여러 가지 운동에 관심이 생겨 이 수업 저 수업 기웃거리게 됐다. 하지만 스스로 운동 신경이 없다고 생각하니 '괜히 갔다가 나만 못 따라가서 망신당하면 어떡하지? 선생님이 답답해하면 어떡하지?' 하면서 망설이다 포기한 적이 대부분이다. 막상 용기 내서 가 보면 그런 생각이 얼마나 쓸데없고 자기중심적이었는지 금방 깨닫는데 말이다. 물론 30대에 시작한 내가 아무리 노력해도 어릴 때부터 많은 시간과 노력을 쏟은 운동선수처럼 잘하기란 불가능하다는 걸 잘 안다. 그렇게 되길 원치도 않는다. 실력에 상관없이 운동이라는 것이 내 삶을 풍요롭게 만들고, 성취감을 주고, 무엇보다 실력이 조금이라도 느는 게 재미가 있으니 계속하는 것이다.
- '원어민만큼 자연스러운 발음은 당연히 어렵지. 굳이 그렇게 될 필요도 없어' '문법을 알고 단어를 아는 것도 필요하지만 가장 중요한 건 입 밖으로 소리 내어 말하는 거야.' 뒤늦게 마음가짐을 바꾼 나는 얼굴에 철판을 깔고 모든 순간을 연습의 기회라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완벽하지 않은 말이라도 일단 입 밖으로 계속 내뱉었고, 그럴수록 점점 자신감이 생겼다. 물론 창피하고 답답한 마음은 여전히 있었다. 그렇지만 실력이 느는 게 보이니 그런 건 대수롭지 않았다. 시간이 지나 영어가 두렵지 않고 편해지자 수많은 영어 콘텐츠를 제대로 이해할 수 있어 삶이 풍요로워졌고 더 많은 기회가 찾아왔다.
- 불편의 산을 넘어야만 더 큰 행복이 찾아오는 건 영어나 피아노뿐만 아니라 모든 영역에 다 해당된다고 본다. 나보다 잘하거나 나보다 어린 나이에 시작한 누군가와 비교할 게 아니라, 일단 시작해 보자. 처음에는 불편하고 힘들겠지만 그 산을 넘으면 새로운 세계가 펼쳐질 것이다.
- 앞서 언급한 70대 학생분처럼 실력이 확확 느는 학생이 있는가 하면, 훨씬 젊어도 계속 제자리걸음인 학생도 있다. 이들의 차이는 단연 연습 방법이다. 내 유튜브채널 영상 주제는 '이런 부분은 이렇게 연습해야 합니다'가 대부분이다. 레슨 때 들었던 연습 방법을 기억해 그대로 연습에 적용하는 학생과 무작정 처음부터 끝까지 반복해서 치는 학생은 성장 속도에 큰 차이가 있다. 실력이 더디 늘면 흥미를 잃기 마련이므로 '제대로 된 연습'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 피아노를 치면 칠수록 느끼게 된다. 손가락으로만 치는 것이 아니라 온몸의 힘을 이용해야 하는 악기라는 사실을. 보기에는 앉아서 손가락만 움직이는 것 같지만 팔을 비롯한 상체, 코어, 허벅지 힘까지 사용하기 때문에 근육 발달에 도움이 된다. 나는 20대 중반까지 근력 운동을 전혀 하지 않았는데도 항상 팔뚝에 잔근육이 있고 팔씨름도 잘했다.
- 피아노 연주는 신체 건강뿐 아니라 뇌 건강에도 큰 도움을 준다. 그도 그럴 것이, 피아노를 치려면 눈으로 악보를 보고, 귀로 소리를 들으며, 박자를 세고, 페달을 밟고, 건반을 느끼는 등 여러 행위를 동시에 해야 한다. 뇌가 활발히 움직일 수밖에 없다.
- 다양한 피아노 연습 방법이 있지만 모든 연습은 '문제를 발견하고 해결하는 행위'이다. 나는 당황스러운 일이 생겨도 침착하게 문제 해결 방안을 생각하는 편인데, 오랫동안 피아노를 연습한 덕이 크다고 생각한다.
- 성인이 피아노를 처음 배우거나 다시 시작할 때는 '진도를 뺀다'는 사고를 깨야 한다. 피아노를 시작하기로 마음먹은 계기는 '언젠가 꼭 한번 쳐 보고 싶은 꿈의 곡'이 생겼을 때가 많은데, 바이엘을 다 치고 체르니를 다 칠 때까지 기다리다가는 흥미를 잃기 십상이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이엘, 체르니, 하농은 기본기를 다지기 위한 최고의 교재이다.
- 무려 200여 년 전에 유럽에서 만들어진 교재가 지금까지 세계 곳곳에서 쓰이는 데에는 분명 그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바이엘은 19세기에 활동한 독일의 작곡가 겸 피아니스트 페르디난트 바이어가 피아노를 처음 배우는 어린이를 위해 만든 교재이다. 현재 미국과 유럽의 피아노 교육에서는 거의 자취를 감췄지만,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에서는 지금도 널리 쓰인다. 바이엘의 장점은 반복이다. 넓은 음역이 아닌, 한 자리에서 다양하지만 비슷비슷한 패턴을 여러 번 반복하면 손가락 힘이 고르게 길러진다. 단점은 지루하다는 것과 성인이 치기엔 다소 유치할 수 있다는 것이다.
- 특히 체르니의 목적은 단순히 악보에 있는 음을 맞게 치는 것이 아닌 테크닉 향상이므로 옳은 길로 가고 있는지 평가해 줄 누군가가 필요하다. 여러 가지 상황 때문에 독학하기로 마음먹었다면 음악이론·테크닉·다양한 스타일의 곡이 골고루 들어 있는, 독학자를 대상으로 만든 성인 교재가 좋다. 1순위로 추천하는 교재는 성인을 위한 피아노 어드벤처(랜달 페이버 낸시 페이버, 뮤직 어드벤쳐, 2018)로 자세, 연주, 테크닉, 이론이 모두 들어 있다.
- 마음만 먹으면 뭐든지 배울 수 있는 시대. 잘하진 못해도 내가 영상 촬영을 하고 기본적인 편집을 할 수 있는 건 유튜브에 있는 영상 편집 선생님들 덕분이다. 부족한 요리 실력이지만 랜선 요리 선생님들 덕분에 먹고 싶은 음식이 있으면 시도하고 흉내 내 볼 수 있다. 운동, 미술, 춤, 노래, 악기, 뭐든지 의지와 끈기만 있으면 내 집에서, 그것도 무료로 배울 수 있는 시대에 살고 있다는 게 참 좋다. 내 영상에 달리는 댓글을 보면 나 또한 누군가에게 그런 선생님 역할을 하게 된 듯싶다.
- 내 채널의 메인 타깃은 독학으로 피아노를 배우는 사람들이다. 하지만 '피아노 독학’에 대한 내 생각을 묻는다면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가능하면 좋은 선생님을 찾아보세요." 피아노를 배우려는 목적이 특정한 곡 하나를 마스터하는 거라면 독학도 괜찮다. 그러나 앞으로 계속 피아노를 치고 싶고, 테크닉을 갈고닦아 더 어려운 곡도 도전하고 싶고, 작은 무대에서라도 연주를 하고픈 생각이 있다면 좋은 선생님에게 배우기를 권한다.
- 왼손이 서로 다른 음, 다른 리듬을 치고 있을 때가 대부분이다. 한 손이 여러 성부를 동시에 쳐야 할 때도 있다. 한 번에 다성부를 치는 악기이기 때문에 그 성부들 안에서 우선순위를 매겨 저마다 다른 볼륨과 음색을 내줘야 한다. 귀로 예민하게 들으며 오른발이 오른쪽 페달 위에서 민감하게 움직여야 하고, 동시에 왼발로 적재적소에 왼쪽 페달을 밟아 줘야 한다. 이 모든 것을 하면서 어깨가 귀와 가까워져서는 안 되고, 팔에 힘이 들어가서도, 등이 구부정해져도 안된다. 연주자인 동시에 예민한 귀를 가진 청중이 되어야 좋은 연주를 할 수 있다. 그런데 실수할까 두렵고, 악보를 까먹을까 걱정스럽고... 신경 쓸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보니 '예민한 귀를 가진 청중' 역할을 하는 선생님이 필요한 것이다.
- 내가 생각하는 좋은 선생님의 요건은 다음과 같다.
. 연습 방법을 명확하고 구체적으로 알려주는 선생님
. 학생의 목표와 속도에 맞추는 선생님
- 피아노 실력이 느는 데에 가장 중요한 요건은 '올바른 연습법'이다. 각자에게 필요한 연습을 반복해서 해야 한다. 아무리 좋은 레슨을 받더라도 일주일에 1시간 이내가 대부분일 텐데, 연습은 하루에 30~40분만 하더라도 일주일이면 3~4시간이다. 비싼 과외를 받거나 학원을 아무리 다녀도 자기가 집중해서 공부하지 않으면 결코 성적이 오를 수 없듯, 피아노 실력이 향상되려면 연습의 질을 올리는 것이 유일한 방법이다. 연습은 반복 행위를 통해 내 근육에 특정 움직임을 기억시키고 저장하는 일이다. 올바른 연습은 올바른 움직임을, 나쁜 연습은 나쁜 움직임을 내 근육에 저장한다. 레슨을 받으면서 연습의 방향성이 명확해졌다면, 좋은 선생님을 만난 것이다.
- 성인은 어린 학생과 달리 설득이 돼야만 행동한다. 어린 학생에게는 말을 길게 하는 것보다 "하루에 몇 번, 여기부터 여기까지 부점 연습해"라고 간단히 지시하고, 다 하면 보상을 주는 것이 오히려 더 효과적일 때가 많다. 하지만 성인 학생에게는 이 부분은 왜 부점 연습을 해야 하는지, 하면 어떤 효과가 있는지, 여기서는 어떤 소리가 왜 나와 줘야 하는지, 그 소리를 내려면 어떤 연습이 필요한지 상세히 설명해 줘야 한다. 성인은 설명을 듣고 설득되어야 그 연습을 실제로 하게 된다. 피아노 연주에서는 초보일 수 있지만 각자의 분야에서 나보다 전문가인 그들에게 구체적인 방법과 이유는 알려 주지 않고 문제점과 원하는 결과만 제시한다면 은연중 거부감이 들 수 있다. 선생님이 연습의 길잡이가 되어 이번 주의 연습 목표와 내용, 이유를 구체적으로 안내해야 한다.
- 선생님마다 각자의 커리큘럼과 원하는 진도가 있겠지만 성인 학생에게는 유연한 태도를 가진 선생님이 적합하다. 성인 학생이 곡을 정할 때, 나도 추천하는 곡이 있긴 하지만 절대 강요하지는 않는다. 학생이 치고 싶은 곡이 학생 수준보다 너무 높다고 판단되면 솔직히 이야기하고 비슷한 장르의 좀 더 쉬운 곡을 추천한다. 학생이 낭만 시대 곡만 치고 싶어 하면 그러라고 한다. 피아노 실력이 전반적으로 향상되려면 다양한 스타일을 배우는 게 좋지만, 가장 강력한 동기부여는 좋아하는 곡을 배우는 것이므로 끌리는 곡을 치는 게 더 중요하다고 본다.
- 나는 성인 학생에게는 목표에 대해 자주 묻는 편이다. 이 곡 악보를 언제까지 다 읽을지, 암보는 언제까지다 할지, 이 밖에도 연주나 콩쿠르에 도전해 볼 생각은 없는지... 이런 목표를 레슨 때마다 이야기하려 한다.
- 성인 학생은 강제된 목표가 아니라 현실적으로 가능한 목표를 세워야 한다. 중간에 목표가 변경되어도 상관없다. 목표 날짜를 정하는 이유는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이기도 하지만, 더 큰 이유는 연습에 동기부여가 되기 때문이다. 좋은 선생님이라면 '이 학생이 이 곡을 완성하려면 현실적으로 얼마의 기간이 소요될지' 대충 보일 테고, 그에 따라 현실적인 목표 설정의 길잡이가 되어 줘야 한다. 선생님이 목표에 대해 묻지 않는다면 학생이 먼저 질문해 보는 것도 좋다.
- 선생님과 학생의 관계도 결국 인간관계이다. 선생님의 성격이나 화법이 나와 잘 맞지 않는다 싶으면 아무리 좋은 레슨이라도 오래가기는 어려울 것이다. 내가 처음으로 가르친 성인 학생은 교양 과목으로 피아노 수업을 듣는 대학생들로 나와 연령대가 비슷했다.
(리뷰자 주 : 아마 처음에 이야기한 금융권 성인 학생은 전업 레스너가 되신 후 첫 성인 학생을 말하신 것 같다.)
- 학기가 끝나고 나니 가르칠 수 있는 것이 더 많았는데 수다 때문에 그러지 못했다는 아쉬움이 많이 남았다. 나도 성인 학생은 처음이라 어느 정도의 거리가 적당한지 감이 잘 안 잡혔던 것 같다. 이후에 만난 성인 학생에게는 피아노와 상관없는 개인적인 이야기는 거의 하지 않는다. 불필요한 수다가 시작될 낌새가 보이면 얼른 레슨으로 방향을 돌린다. 레슨 시작 전에 하는 근황 토크도 이번 주 연습은 어땠는지 물어보는 것으로 시작하고 1분 이상은 하지 않으려 한다. 나도 사람이니까 마음이 잘 맞고 좋은 친구가 되겠다 싶은 학생도 있지만 언제나 적당한 거리를 두려 한다. 이런 모습이 누군가에게는 조금 딱딱하게 느껴질 테고, 또 누군가에게는 본인과 잘 맞는다고 느껴질 것이다.
- 이렇듯 ‘나와 잘 맞는 성격’은 지극히 개인적이고 주관적이므로 정답은 없다. 그러나 피해야 하는 선생님은 분명히 있다고 보는데, 다음과 같다.
. 레슨 시간에 자주 늦거나 레슨 시간을 다 채우지 않는 불성실한 선생님
. 자존심을 깎거나 주입식으로만 가르치는 선생님
. 설명이 불명확해서 이해하기 힘든 선생님
- 나에게 맞는 좋은 선생님을 찾기까지는 시행착오를 여러 번 거쳐야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앞으로 피아노를 오랫동안 배워 나가려면 '좋은 선생님'은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원하는 목표, 연습하다 고민되는 부분, 부족하다고 생각하는 테크닉이 있다면 주저하지 말고 선생님에게 질문하자. 선생님도 학생의 질문을 통해 더 알찬 레슨을 하게 되니까 말이다.
- 문제점도 알고 해결 방법도 알았으니 이제 연습해서 고칠 일만 남았다. 그런데 몇 날 며칠 그 짧고 간단한 리듬을 수없이 반복해 연습해도 이상하게 앞에서부터 치면 다시 원래대로 돌아가는 게 아닌가.
- 워낙 무서운 분이라 안 고쳐 왔다고 혼나지 않을까 긴장했는데, 교수님은 웃으며 이렇게 말씀하셨다. "사실 못 고쳐 올 줄 알았어. 원래 어릴 때 배운 건 잘 안 고쳐져. 특히 리듬은 더. 새로운 곡을 처음 연습할 때 제대로 하지 않으면 나중에 이렇게 시간 낭비하면서 불필요한 노력을 해야 하는 거야."
- 첫 단추가 잘못 끼워졌다는 사실을 모른 채로 나머지 단추를 채우다 보면 나중에 나처럼 불필요한 수고를 들여야 한다. 새로운 곡의 첫 음을 처음으로 누르는 그 순간부터 내 몸에 차곡차곡 쌓이기 시작한다. 그렇기 때문에 첫 연습을 똑똑하게 해야 곡의 완성도도 높아지고, 배우는 속도도 빨라지고, 또 나중에 이 곡을 다시 치게 될 때도 조금의 연습만으로 금방 기억이 돌아온다.
- 그렇다면 첫 연습을 똑똑하게 한다는 건 뭘까?
- 우선, 첫 연습 전에 곡의 배경을 간단히 알아 둔다. 이 곡을 쓸 때 작곡가는 몇 살이었고 어떤 삶을 살고 있었는지, 곡을 쓰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는지, 당시 사회 분위기는 어땠는지 등을 알고 시작하는 것이다.
- 그런데 많은 학생이 일단 악보부터 읽고, 곡이 손에 익을 때쯤 돼서야 악상 표현과 감정 표현, 루바토나 프레이즈 등을 생각한다. 사실 악보를 더듬거리며 읽는 단계에서부터 이런 것들을 고려해야만 한다. 내가 연습 때 하는 모든 것을 내 몸이 기억하기 때문이다. 또 그런 표현을 어떻게 할지 결정하려면 곡의 배경지식을 반드시 알아야 한다.
- 다음으로는 악보를 보면서 음반을 들어 본다. 이때 최소 음반 세 개 이상을 비교하며 듣는다. 피아니스트 세 명의 연주를 듣다 보면 템포, 악상 표현, 루바토, 트릴등에서 차이점이 느껴질 것이다. 그러다 보면 어떤 연주가 내 취향인지,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연습할지 생각하게 된다. 악보를 보며 듣기 때문에 전체 구조도 자연스레 파악된다. 섹션이 어떻게 나뉘어 있는지, 초반에 나왔던 메인 테마가 곡 전반에 거쳐 나온다면 나올 때마다 완전히 똑같은지 약간 변형이 되는지, 이런 부분을 대강이라도 파악하면 곡을 배우는 속도뿐 아니라 나중에 암보할 때도 큰 도움이 된다. 나무 하나하나에 집중하기 전에 전체 숲을 보는 작업이다.
- 배경지식도 알았고 음반도 몇 번 들어 보며 큰 그림을 파악했다면, 이제 피아노 앞에 앉을 준비가 된 셈이다. 이때 초견으로도 완벽히 칠 수 있는 쉬운 곡이 아니라면 원래 템포보다 훨씬 느리게, 그리고 양손 따로따로 연습해야 한다. 프로페셔널한 연주를 여러 번 들은 뒤라 내 귀는 이미 높아질 대로 높아져 있다. 하지만 아무리 유명한 피아니스트라 해도 첫 연습부터 그 수준으로 쳤을 리는 없다.
- 오른손 왼손 따로따로 완벽하게 칠 수 있을 때까지 양손 같이 치는 일은 잠시 보류한다. 완벽하게 친다는 것은 원래 템포보다 느린 템포로, 실수 없이 편안하게 칠 수 있는 단계를 말한다. 따로 칠 때 아무리 완벽하게 쳐도 양손 같이 치다 보면 또 새롭게 생기는 어려움이 있기 마련이다. 그러니 한 번 연습할 때 분량을 많이 잡지 말자. 많이 어려운 곡이라면 한 마디씩 분량을 잡아도 좋고 일주일에 한 줄만 연습해도 좋다. 느리더라도 한 걸음 한 걸음 차근차근 나아가야 한다. 이렇게 적은 분량을 잡아 연습하면 매번 연습할 때마다 맨 앞에서부터 연습하는 것도 방지된다.
- 앞부분은 잘 치는데 뒤로 갈수록 자신 없어하는 경우를 많이 본다. 앞부분 연습량이 다른 부분보다 훨씬 많기 때문이다. 어제 첫 장을 연습했다면 오늘은 두 번째 장부터 연습을 시작한다. 어제 연습한 걸 복습하고 싶다면 오늘의 연습을 끝낸 다음 어제 연습한 첫 장을 한번 쳐 보면 된다. 악보를 빨리 읽는다고 해서 무조건 좋은 건 아니다.
- 같은 부분에서 계속 같은 실수를 하거나, 원하는 소리가 나지 않거나, 몸에 불필요한 긴장이 들어가는가? 그렇다면 그 부분을 다양한 방법으로 연습해야 한다. 학생들에게도 추천하고 나도 실제로 쓰는 연습 방법 몇 가지를 소개한다.
. 천천히 연습
. 양손 따로따로 연습
- 연습은 질문과 대답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같은 부분에서 같은 실수를 반복한다면 왜 안 되는지, 무엇이 문제인지를 질문하고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 그런데 너무 빠른 템포로 연주하면 문제를 분석하기 어렵다. 같은 템포로 하는 반복 연습은 오히려 나쁜 버릇만 내 몸에 입력시킬 수 있다. 천천히 집중해서 내가 어떤 식으로 움직이는지 관찰하고 알아차려야 한다.
- 천천히 연습할 때 흔히 저지르는 실수가 있다. 아무 표현을 넣지 않고 기계적으로 단지 템포만 느리게 치는 것이다. 원래 템포보다 두 배 느린 템포로 연습을 한다면 악상 표현도 두 배 더 많이 해 줘야 한다. 빠른 템포로 연주할 때는 생각만큼 악상 표현이 안 되는 경우가 많다. 그렇기 때문에 천천히, 과장하면서 내 근육이 그 팔의 무게를, 그 에너지를 흡수하게끔 해야 한다. 또 천천히 연습한다고 단 한 가지 템포로만 연주하기보다는 아주 천천히, 보통 천천히, 조금 천천히 등 다양한 템포로 쳐야 효율적이다.
- 마음 같아서는 레슨 내내 운지법만 이야기해도 충분히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운지법은 그만큼 중요하다. 운지법이 한번 굳어지면, 그러니까 이 부분에서 이 손가락 번호를 쓰는 걸 며칠만 반복해도 다른 운지법으로 고치기가 쉽지 않다. 오른손잡이가 왼손으로 글씨를 쓰는 것만큼 어색하달까. 좋지 않은 운지법으로 반복해서 연습하는 사태가 벌어지기 전에 하루라도 빨리 좋은 운지법을 찾아 연습해야 하기에 첫 레슨을 운지법에만 할애해도 아깝지 않은 것이다.
- 좋은 운지법을 정했다면 악보에 최대한 많이, 깔끔하게 적어야 한다. 적지 않아도 다음 연습 때 기억할 수 있을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또 운지법이 적힌 악보를 반복해서 보다 보면 암보에도 도움이 된다. 나는 굳이 적을 필요가 있나 싶은 운지법까지도 적는 편이다. 곡을 익히는 단계에서는 이렇게 적어 놓지 않았다가 연습 때마다 다른 운지법을 쓰는 나 자신을 발견한 적이 많기 때문이다.
- 초견 실력이 좋다는 건 소리를 듣지 않은 채 악보를 보는 것만으로도 곡의 구조를 빠르게 파악할 수 있고, 건반을 누르기 전에 머릿속에서 들을 수 있는 능력을 갖췄다는 뜻이다. 이 능력은 피아노를 계속해 나가는 데 좋은 무기가 된다.
- 레슨 연차가 쌓이면서 이 세상엔 세 가지 유형의 학생이 있다는 걸 깨달았다.
1. 초견을 잘해 암보의 필요성을 굳이 못 느끼는 유형
2. 악보 읽는 게 오래 걸리고 서툴러 손가락 위치를 바로 외워 버리는 유형
3. 악보도 잘 읽고, 암보를 위한 노력도 따로 하는 유형
- 굳이 말하지 않아도 피아노 선생님이 가장 좋아할 유형은 3번 유형임을 눈치챘을 것이다. 사실 1번 유형이 가장 많다. '무대에 설 일도 없고, 자기만족으로만 치는 건데?’라는 생각도 암보의 필요성을 못 느끼는 데 한몫하지 싶다. 이런 학생은 필요성만 설득이 되면 쉽게 3번으로 바뀔 수 있다. 가장 고치기 어려운 유형은 2번이다. 혹시 2번에 속한다면 이 글이 큰 도움이 되리라고 본다.
- 취미로 배우건 전공하려고 배우건, 나는 학생들에게 무조건 암보를 요구한다. 물론 암보가 곡 완성도의 유일한 지표는 아니지만, 암보가 안 됐다는 건 다음에 나오는 음이 뭔지 확실히 모른다는 뜻이고, 그러면 완성도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 암보를 잘하려면 꼼꼼해야 한다. 내가 생각하는 꼼꼼함이란 끊임없이 의심하고 질문하는 것이다. 집을 나서기 전에 필요한 물건은 다 챙겼는지, 시험지를 내기 전에 혹시 실수한 건 없는지, 계속 의심하고 질문하면 실수의 확률을 크게 줄일 수 있다. 사실 나는 꼼꼼한 성격이 아니다. 잘 까먹고, 어처구니없는 실수도 많이 하고, 물건도 걸핏하면 잃어버리는, 소위 말해 덤벙거리는 성격이다. 그렇기 때문에 암보에서는 그 누구보다 더 꼼꼼해지려 노력한다. 무대는 단 한 번의 기회밖에 주지 않기 때문이다.
- 조금이라도 덜 두려워하려면 한 가지 방법밖에 없다. '연주 연습'을 많이 해야 한다. 연주 연습이란 곡을 처음부터 끝까지 끊지 않고, 가능하면 암보로 치는 연습을 뜻한다. 이 연습은 남 앞에서 하는 것이 가장 좋고, 여의치 않다면 녹화를 하자. 카메라가 옆에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살짝 긴장될 것이다.
- 무엇을 생각하며 치는지도 중요하다. 연습할 때 머릿속으로 하는 생각을 무대에서도 똑같이 할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나는 특정 상황이나 이미지를 정해 놓고 그걸 생각하거나, 마음속으로 계이름을 사용해 노래를 부르는 편이다.
- 전문 연주자도 아닌데 연주 기회가 생기겠어, 굳이 연주 연습까지 따로 해야 하나, 이런 의문이 들 수 있다. 아무도 없는 연습실에서 홀로 더듬더듬 좋아하는 곡을 치는 행위도 물론 근사한 일이다. 하지만 지금보다 실력을 올리고 싶다면, 반복되는 실수로 답답한 마음이 든다면, 부점, 스타카토, 천천히, 양손 따로 같은 부분 연습도 꾸준히 하면서 추가로 연주 연습까지 해야 곡의 완성도가 높아진다.
- 항상 내 연주를 지켜보는 이가 또 있다. 바로 나 자신이다. 연주하는 행위에 몰두한 나머지 듣고 있는 나를 잊기 쉬운데, '청중인 나'가 '연주자인 나'를 구박하고 채찍질하는 것이 아니라 격려하고 따뜻하게 웃어 줘야 '연주자인 나'로 오래오래 살 수 있다. 구박과 채찍질은 단기적인 성장에는 효과적일지 모르지만, 오랫동안 피아노를 치고 싶다면 그만둬야 한다. 테크닉과 상관없이 음악에는 내가 드러난다. 내 생각, 내 마음 상태, 내 성격, 모든 게 다 드러난다. 그렇기에 '연주자인 나'를 절대 주눅 들게 해서는 안 된다.
- 성인이 되어 피아노를 시작했다면 어릴 때부터 꾸준히 한 누군가보다 테크닉이 부족할 수밖에 없다. 당연한 일이다. 부족함을 느끼는 건 지극히 상대적인 감정이다. 누군가는 나의 연주를 보고 부러워하겠지만, 나 또한 다른 누군가와 비교하며 부족하다고 느낀다. 내가 아무리 열심히 연습해도 나보다 이 곡을 훌륭하게 연주하는 피아니스트는 과거에도, 현재에도, 미래에도 많고 많을 것이다. 즐겁게, 열심히 해야지 마음먹고 연습 좀 할라치면 유튜브에선 열 살 아이가 리스트의 라 캄파넬라를 완벽하게 치는 영상을 추천해 준다. 내가 태어나기 훨씬 전부터 '걸작'이라 불리는 피아노 곡은 차고 넘친다. 아마 지금부터 죽을 때까지 종일 연습만 한다 해도 못 쳐 보고 죽는 곡이 훨씬 많을 것이다.
- 굳이 이 어려운 피아노를 칠 필요 없는 이유가 쳐야 할 이유보다 더 많은 듯도 싶다. 하지만, 위대한 곡들이 이토록 많으니 새로운 곡을 정하는 일은 언제나 행복한 고민이다. 세상이 좋아져 클릭 몇 번으로 레전드 피아니스트의 실황 연주를 내 방에서 손쉽게 접할 수 있으니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그들의 연주에 비해 내 연주는 초라하게 느껴지더라도, 아무도 인정해 주지 않더라도, 멋진 무대에 서지 못하더라도, 연습하고 연구하고, 때로는 좌절하고 고민하고, 이렇게 곡과 작곡가와 만나는 행위는 언제나 숭고하다. 나의 연주는 나만이 할 수 있는 연주다. 누가 들어주지 않아도 내가 듣고 있고, 신을 믿는다면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음악가가 항상 기쁘게 듣고 있다.
- 손이 작아 스트레스받는 분들에게 가장 먼저 이 말을 해 주고 싶다. '손이 작다는 이유만으로 못 치는 곡은이 세상에 없다'고. 그다음에는 '언제나 방법은 있다. 방법을 찾아보자'고 말하고 싶다. 평소 스스로에게도 자주 하는 말인데 연습할 때 특히 많이 하게 된다. 내 손 크기로는 버거운 코드를 만났다면 칠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해야지, 속상해하고 좌절한다고 달라지는 것도 없고 피아노 치는 즐거움마저 빼앗긴다. 만약 시작부터 끝까지 큰 코드 위주로 나오는 곡이라면 굳이 손이 작은 사람이 낑낑거리면서 칠 필요 없다.
- 한 가지 변하지 않는 것이 있다. 바로 '릴랙스'의 중요성이다. 핑거 테크닉이 유행할 때에도, 팔의 무게를 사용한 테크닉이 등장했을 때에도, 자연낙하 테크닉 개념이 등장했을 때에도 가장 경계한 것은 불필요한 긴장이 들어간 움직임이었다. 테크닉 관련 기록을 살펴보면 한결같이 피아노에 앉는 자세, 의자와 피아노의 거리, 팔의 위치, 손 모양부터 이야기한다. 이 중 하나만 어긋나도 몸이 긴장하기 쉽고, 이는 테크닉 향상에 걸림돌이 되기 때문이다.
- 나는 '팔, 어깨 통증은 무언가 잘못하고 있다는 상징'이라 단호히 말하고 싶다. 잘못된 자세가 거북목을 만들고 허리 통증을 유발하듯 피아노도 기본자세가 올바르지 않으면 만성 통증이 생길 수 있고, 다양한 테크닉을 배우는 데 걸림돌이 된다. 연습할 때 팔이 아프고 어깨에 자꾸 힘이 들어간다면 다음 몇 가지를 꼭 점검해 보자.
- 왼손은 반주, 오른손은 선율을 칠 때는 악상에 여리게 연주하라는 '피아노' 또는 '피아니시모'라고 적혀 있더라도 오른손을 너무 작게 치면 왼손에 묻히는 수가 있다. 이때도 건반 아래를 느끼며 치는 것이 중요한데, 사실 레가토로 이어서 쳐야 하는 선율을 쓰다듬는 터치로 치기란 쉽지 않다. 레가토를 하는 동시에 건반 바닥에 천천히 도달하는 느낌을 찾아야 한다. 효과적인 연습은 건반을 누른 상태에서 팔의 힘을 이용해 건반 밑바닥까지 천천히 내려가 보는 것이다. 그러고 그 팔의 무게를 다음 음으로 옮겨 또다시 팔의 힘으로 건반 밑바닥까지 내려가 보기를 반복한다. 손가락의 힘으로 건반을 짓누르는 것이 아니라 팔의 무게로 지그시 내려가 가장 밑바닥을 느끼는 것이다. 짓무르기 일보 직전인 딸기 안에 손가락을 천천히 집어넣는다고 상상해도 좋다.
- 작은 소리를 낼 때도 큰 소리를 낼 때와 마찬가지로 좋은 소리를 내겠다고 계속 생각하고, 또 내가 내는 소리를 예민하게 듣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팔의 무게를 얼마나 실을지, 손끝 어떤 부분을 사용할지, 어떤 속도로 건반을 쓰다듬을지 등을 내 귀가 결정해야 한다.
- 음을 '짧게 치라'는 뜻으로 흔히 알고 있는 스타카토의 본래 뜻은 음끼리 잇지 말고 '끊어서 치라'는 뜻이다. 엄밀히 말하면 레가토가 아닌 모든 것은 스타카토라고 할 수 있기 때문에 스타카토라고 다 같은 스타카토가 아니다. 곡의 스타일에 따라 스타카토가 더 짧을 수도, 길 수도, 날카로울 수도, 둥글 수도, 가벼울 수도, 묵직할 수도 있다. 악보에 따로 스타카토 표시가 없더라도 스타카토로 끊어서 치는 게 더 잘 어울리는 경우도 많은데 특히 고전 시대 곡이 그렇다.
- 스타카토로 치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가 있다. 첫 번째는 '핑거 스타카토'이다. 이 방법은 빠른 템포의 곡을 레지에로(가볍고 경쾌하게)로 치고 싶을 때 적합하다. 악보에 스타카토 표시가 안 돼 있고 심지어 음정을 이어주라는 슬러 표시가 되어 있더라도 가벼우면서도 한 음 한 음 또랑또랑한 소리를 내고 싶을 때는 핑거 스타카토로 쳐 준다. 손끝으로 건반에 있는 먼지 한 톨을 가볍고 빠르게 털어 내듯 건반을 짧게 누름과 동시에 손끝을 몸 쪽으로 당기며 손바닥과 가까워지게 한다. 음을 짧게 친다고 해서 손 전체가 건반에서 멀리 올라가는 것이 아니라 계속해서 가까이 있어야 한다. 손목과 팔은 위아래로 움직이지 않고 음의 높낮이에 따라 좌우로만 움직인다.
- 두 번째 방법은 '손목 스타카토'이다. 빠른 템포로 옥타브 또는 두 음 이상의 코드를 쳐야 할 때 효과적인데, 앞서 말했듯 옥타브나 코드에 따로 스타카토 표시가 되어 있지 않더라도 이 방법으로 쳐야 한다. 노크하듯 손목의 스냅을 사용하여 치는 것으로, 손끝은 단단해야 하지만 핑거 스타카토처럼 건반을 몸 쪽으로 당기는 움직임은 하지 않는다. 이때 손목에 불필요한 힘이 들어가거나 어깨가 올라가지 않도록 주의해야 하는데 팔 뒤쪽의 삼두근 또는 등 근육을 주동근이라 생각하면 도움이 된다. 핑거 스타카토와 마찬가지로 손은 항상 건반과 가깝게 유지한다.
- 음과 음 사이에 시간적 여유가 있는 스타카토라면 두 가지 스타카토를 동시에 해 줄 수도 있다. 손끝으로 건반을 당기면서 손목의 스냅을 사용해 튕겨 주는 것이다. 손목이 더 크게 움직일수록 파워풀한 소리가 난다. 고전 시대 소나타의 빠른 악장에 나오는 스타카토는 셈여림과 상관없이 맥없고 너무 가벼운 소리보다는 꽉 차고 집중된 소리가 더 잘 어울린다. 핑거 스타카토와 손목 스타카토를 동시에 해 주면 원하는 소리를 낼 수 있다.
- 이 책의 궁극적인 목표는 단 하나이다. 당신이 음악을, 피아노를 더 행복하게 즐기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한 자 한 자 적었다. 작은 손이, 경직된 몸이, 빠르게 치려고 하면 꼬여 버리는 손가락이 자꾸 빨라지는 템포가 혹여나 그 즐거움을 느끼는 데 걸림돌이 되고 있다면, 이 책이 그 돌들을 치우는 데 도움이 되었으면 한다.
- 고민들 끝에 배우고, 깨닫고, 느낀 것을 이 책에 최대한 담으려고 노력했다. 그럼에도 10년 뒤의 내가 이 책을 다시 들춰 본다면, 미처 담지 못한 내용이나 서툰 전달법에 대한 아쉬움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피아노를 향한 마음, 학생을 향한 마음만큼은 지금 그대로라면 좋겠다. 그리고 당신의 삶에서 피아노가 변함없이 큰 행복으로 존재하길 진심으로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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