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 : 원은수
출판 : 토네이도
출간 : 2023.07.03
저자의 원 목적은 '누구에게나 내재된 잠재적 나르시시즘'에 관해 이야기하는 게 아니었을까 싶다. 우선 일종의 투사 기법을 이용해 아무 문제없는 '나'와, 그와 분리된 공통의 적으로서의 '나르시시스트'를 내세워 '나'에게도 어느 정도 존재하는 부정적인 면모들을 살펴본다. 저자가 상세하게 분류한 특성과 관계들은 살아가면서 누구나 한 번쯤 만났을 법한 이들이 사실은 '나르시시스트'였다고 라벨링 해준다.
'그래, 어쩐지 이상했어!'
신나게 그 사람과 그 상황에 대해 곱씹다 보면 어느 순간 뒷맛이 살짝 씁쓸하다. 근데 이거 약간은 내 이야기 같기도 한데...
저자가 추천하는 나르시시스트에게 대응하는 방식 또한 그렇다. 나르시시스트가 사용하는 '투명인간 취급'과 대응책으로서 아무런 정서적 반응을 보이지 않는 '회색돌 기법'은 사실 크게 다르지 않다. 어떤 입장에서 사용하느냐에 따라 공격이냐 수비냐가 갈라질 뿐이다. '나에겐 아무런 잘못이 없다'는 수용 또한 그것이 필요해 힘든 상황에 놓인 이들을 위한 것이다.
하지만 <나에겐 상처받을 이유가 없다>는 무게중심이 조금 치우쳐져 있다. 실제로 자신의 삶 속에 존재하는 괴로움 때문이다. 대인관계에서 고통을 겪고 있는 이들에게 '나르시시스트'라는 라벨은 너무나 매혹적이며 동시에 실재적이다.
저자가 제시하는 대처법을 다시 한번 살펴보자. "그들로 인한 괴로움이 존재한다면, 그들을 바꿀 수는 없으므로, 그 사람들과 상황들을 더는 괴롭게 느끼지 않도록 '무대응'하는 것." 이 기본적인 틀을 이해하고 받아들인다면 내 주위에 존재하는 나르시시스트들이 몇이나 되는가를 헤아려보지 않아도 될 것이다.
'나'와 맞지 않는 것에 대한 경계와 부정은 언제나 존재해 왔지만, 지금처럼 그 바운더리 자체에 대한 도전이 강력했던 시대는 드물지 않았을까 싶다. 타자에 대한 공격성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한 마을에서 평생을 보내는 것이 당연했던 시대에는 마을 구성원 대다수와 조금이라도 다른 개성을 가진 이들에게 화살촉이 꽂혔을 테다. 그렇게 취사선택된 균질함이 국지적 특성으로 발현되었던 시기가 있었다. 내가 말하고자 한 '도전'이란, 손쉽게 들여다볼 수 있는 '타인의 삶'으로 인한, 즉 내 스스로 설정한 '나'와 '나의 삶'이라는 바운더리 자체에 찾아온 위기다.
모든 것은 균형이 가장 중요하다. 남에게 보이기 위한 면에 치중한다면 과대/공동체적 나르시시스트에, 내 스스로에게 완벽하기 위한 면에 치중한다면 독선적 나르시시스트에, 이도 저도 되지 못해 좌절해 버린다면 악성/취약한 나르시시스트에 가까워질 것이다. 인간에게는 기본적으로 자기애라는 것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건강한 자기애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타인에 대한 지나친 관심과 비교를 줄이고 자신을 기준으로 한 '마땅함'을 요구하지 않는 것이 좋다고 본다. 괴로움으로 확인한 '나의 경계'를 보다 공고히 하자. 상대가 나에게 같은 것을 요구했을 때뿐 아니라, 같지 않은 것을 요구했을 때에도 편안하게 대응할 수 있는 유연함과 평온함은 거기에서 나온다고 믿는다.
모쪼록 보다 많은 이들에게 '자신만의 방'이 생기길 바라며.
사족) 불러들이는.
두 번이나 등장한 '불러드리는' 때문에 두 번이나 중도하차의 위기가 찾아왔었다.
- 누구나 어느 정도는 이기적이다. 마더 테레사도 예외는 아닐 것이다. 그렇지만 '사람이 어떻게 저럴 수 있지?' 하는 마음이 드는 순간이 있다.
- 저자는 나르시시스트인지도 모른 채 우리의 뒤통수를 치고 지나갔던 그들의 유형을 알려주며 그 범위를 한층 넓힌다. 그리고 아무렇지 않게 나를 함부로 대하며 안하무인인 이들이 쳐놓은 관계의 그물에서 무사히 빠져나올 구체적인 로드맵을 알려준다. 한 번이라도 그들에게 데어보았고, 다시는 같은 실수를 반복하고 싶지 않은 사람이라면 꼭 읽어보기를 권한다.
- 하지현 건국대학교 의학전문대학원 교수, <고민이 고민입니다> 저자
- 나는 정신과 의사로서 우울감과 불안감을 포함한 다양한 증상들로 내원한 내담자들과 수만 번의 면담을 진행해 왔다. 그중 상당수가 대인 관계로 인한 스트레스를 경험하고 있었고, 특히 자신의 인생에서 중요한 인물인 배우자와 애인, 부모와 형제, 자녀, 매일 마주해야 하는 직장 상사와 동료, 가까운 친구나 지인들과의 해결되지 않는 갈등으로 인해 괴로워했다. 그리고 이러한 상황을 스스로의 탓으로 여기며 자신을 부족하고 나약한 사람으로 생각하고, 이로 인해 자존감이 매우 낮아진 상태였다.
- 그러나 깊이 있는 면담을 통하여 상황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현재 갈등 상황의 핵심적인 원인 제공을 하는 측은 내담자가 아닌, 그 관계에 함께 놓여 있는 상대방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또한 많은 경우 그런 상대들은 자기애성 성격 narcissistic personality 특성을 강하게 띠고 있었다. 내 인생 역시 돌아보면 나에게 상처와 괴로움을 준 과거 그리고 현재 인물들 가운데는 나르시시스트 narcissist가 많다.
- 그렇다면 그들은 어떤 사람일까? 나르시시스트는 어떤 특성을 어느 정도 지니고 있는지에 따라 그 모습이 가지각색이다. 또한 관계 초반에는 자신의 건강하지 않은 특성을 잘 숨기고 자신을 포장하는 데에 능숙하기 때문에, 대부분의 경우 상대방이 나르시시스트라는 것을 처음부터 알아보기란 쉽지 않다.
- 많은 사람들이 나르시시즘 narcissism을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긍정적인 의미로 또는 반대로 자기 자신에게만 지나치게 몰두하는 이기적인 성격을 띤 부정적인 의미로만 생각한다. 그러나 나르시시즘은 건강한 종류와 건강하지 않은 종류 모두를 포함한 개념으로, 모든 사람은 두 가지의 나르시시즘을 어느 정도는 함께 지니고 있다.
- 죄책감은 나 스스로 느끼는 불편한 감정으로, 자신의 기대치에 미치지 못하거나 신념에 반하는 행위를 한 경우 경험하는 무가치함이다. 그래서 나의 잘못된 행동으로 인해 누군가 피해를 보면, 잘못을 인지하고 책임을 느끼며 스스로 내 행동을 뉘우치게 만드는 감정이다.
- 반면에 수치심은 자신의 잘못된 행동을 다른 사람들이 알게 됐을 때 느끼는 창피함이다. 열등한 위치에서 남들에게 발각될 때 느끼는 감정이며, 스스로 잘못을 느껴서 괴로운 것이 아니라 남이 나를 바라보는 부정적인 시선 때문에 괴로운 것이다. 이는 매우 원시적인 단계의 감정으로 성숙의 과정을 통해 죄책감으로 변형된다.
- 또한 많은 경우 우리가 상대로 하여금 나의 바운더리를 침범하게 놓아두는 이유는, 내가 만약 선을 그으면 상대가 어떻게 느낄지 염려가 되고 또 미안한 마음이 들어서다. 누군가 무리한 부탁을 했을 때 거절하지 못하고, 관심도 없는 본인의 삶에 대해 늘어놓거나, 말하고 싶지 않은 나의 사적인 이야기에 대해 캐물을 때에 이에 대해 분명한 의사 표현을 말하지 못하는 것도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 사랑이라는 명목하에 나의 사생활이나 자율권을 존중하지 않고 내 바운더리를 마구 넘나드는 연인이나 부모에게 단호하게 이야기하지 못하는 것 역시 선을 그었을 때 상대가 느낄 거절감에 대한 미안함 때문이다. 게다가 수시로 선을 넘는 사람들은 우리가 자신만의 바운더리를 지키고자 할 때 "너 참 이기적이다", "네가 어떻게 나한테 그래?"라고 상대를 비난하며 마치 내가 잘못하고 있는 것처럼 말한다.
- 하지만 반드시 인지해야 하는 사실은 이것은 그의 문제이지 결코 나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나는 당연한 나의 권리인 나만의 영역을 지키려는 것이다. 오히려 개인적인 영역에 대한 인식이나 배려가 없는 상대가 나에게 미안해야 하는 것이다.
- 근본적인 주요 심리적 특성이 매우 유사한 나르시시스트라고 해도 기타 나르시시스트적 특성 중 어떤 것을 얼마나 지니고 있는지에 따라서 겉으로 보여지는 모습은 매우 다를 수 있다. 이에 두드러지게 보여지는 특성을 바탕으로 나르시시스트는 크게 과대형 나르시시스트 Grandiose Narcissist, 취약한 나르시시스트 Vulnerable Narcissist, 악성 나르시시스트 Malignant Narcissist, 공동체적 나르시시스트 Communal Narcissist, 독선적 나르시시스트 Self-righteous Narcissist 등의 유형으로 분류된다.
- 취약한 나르시시스트는 나르시시스트의 핵심적인 심리는 동일하게 지녔지만, 보여지는 모습이 전형적인 과대형 나르시시스트와는 정반대인 것처럼 느껴진다. 즉, 자신에게 이목이 집중되는 것을 불편해하고 수줍어하며 내성적인 유형의 나르시시스트들을 설명하기 위해 등장한 개념이다. '이러한 사람들이 나르시시스트라고?'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생각보다 우리 주변에는 취약한 나르시시스트가 많으며, 이들로 인해 심각한 정서적 고통을 받고 있는 사람들 또한 많다.
- 취약한 나르시시스트는 과대형 나르시시스트에 비해 내적 심리상태가 유약하고, 내면에 자리 잡고 있는 과대성이 기능적인 측면에서 효율이 떨어지는 유형이다. 따라서 겉으로 보이는 모습에서도 사람을 대하고 상황을 이끄는 등 사회적 기술이 부족하며, 덜 매력적인 경우가 많다. 이에 상대적으로 사회적인 성공을 하지 못했을 가능성이 높아서 대놓고 거만하거나 잘난 척하는 모습을 잘 보이지는 않는다. 반면에 그들은 자신이 잘났음에도 불구하고 성공하지 못한 이유는 다른 사람 탓, 세상 탓, 환경 탓이라고 여기며 주변 사람과 상황을 탓하고 원망하는 모습을 공통적으로 보인다. 또한 자신이 보기에 성공한 다른 사람의 노고를 인정해 주기는커녕 근거 없이 비난하고 깎아내린다. 하지만 마음속으로는 그 대상들을 부러워하고 질투한다.
- 그러나 두 유형 모두 그 외의 핵심적인 내면의 심리들은 동일하다. 이에 과대형 나르시시스트가 금전적으로 어려워지거나 사회적 지위가 실추되는 등 외적인 조건이 갑자기 나빠지면 취약한 측면들이 수면 위로 오른다. 반대로 취약한 나르시시스트의 외적인 조건이 급격히 좋아지는 경우, 과대한 측면들이 두드러질 수 있다. 즉 한 사람이 두 나르시시스트 유형을 오가는 것처럼 보일 수 있는 것이다.
- 과대형 나르시시스트는 '내가 여기서 제일 잘 나가지'라는 생각을 주로 한다면, 공동체적 나르시시스트는 '내가 여기서 착한 일을 가장 많이 하는 사람이지'라는 생각을 주로 한다고 보면 된다. 이들은 자신의 기부 내역이나 봉사 활동이 다른 사람들에게 실질적으로 얼마나 도움이 되었는지보다 그 사실이 다른 사람들에게 얼마나 알려졌는지를 주목한다. 또한 자신이 한 행동들이 드러나지 않거나 어떤 이유에서든 사람들의 주목을 받지 못하면 분노감에 휩싸일 수 있다.
- 자라온 환경이 공동체적 가치를 중요시하는 환경이었다면, 예를 들어 부모가 인권, 종교, 세계 평화, 환경 보호 등에 관심이 많았다면 나르시시스트 자녀 또한 이런 가치들을 실현하는 일에 더욱 스스로의 과대성을 확인하게 될 수 있다. 또 특정 계기로 남을 돕는 행위야말로 다른 사람들의 칭찬과 감탄을 가장 잘 이끌어낸다는 것을 몸소 경험한 나르시시스트는 향후 찬사를 위해서 선행을 반복할 수 있다.
- 독선적 나르시시스트는 주위 사람들에게 자신이 도덕적으로 올바르며 종교적으로 고결한 사람이라고 강조하는 유형이다. 이에 겉으로 봤을 때 매우 바른 생활을 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 이들은 거짓말, 외도, 비윤리적인 행동을 별 죄책감 없이 하는 이미지와는 상당히 다르기 때문에, 나르시시스트라는 것을 인지하기 더욱 어려울 수 있다. 이들은 우월감을 바탕으로 자신을 다른 사람보다 고귀하다고 여기며, 본인이 하는 모든 생각과 행동은 옳다고 생각한다. 고압적이고 융통성이 없으며, 상대의 부족한 부분이나 실수에 대해서 매섭게 비난하고 가혹하게 평가한다. 상대의 약점이나 어려움에 대한 이해가 전혀 없이 나약하고, 게으르며, 노력이 부족하고, 못난 사람이라고 경멸하는 모습을 종종 보인다.
- 이러한 모습이 무조건 나쁘다는 얘기는 아니다. 다만 독선적 나르시시스트는 자신처럼 이렇게 강박적으로 계획성 있게 살지 않는 사람들을 무시하고 비난한다는 점이 문제다. 우리는 누구나 어쩌다 한 번쯤은 늦잠을 자고, 운동을 거르고, 패스트푸드도 먹고, 가만히 멍 때리는 시간을 보낼 수 있다. 그런데 독선적 나르시시스트는 이를 전부 게으르고 무능한 것으로 치부해 버리는 것이다.
- 지난 100여 년 동안 여러 저명한 정신분석학자들이 건강하지 않은 나르시시즘이 어떻게 형성되는지에 대해 연구하고 분석하여 제시한 바 있다. 가장 대표적으로는 지그문트 프로이트 Sigmund Freud의 일차적 자기애와 이차적 자기애, 하인츠 코후트 Heinz Kohut의 자기 심리학에서 설명하는 자기애, 오토 컨버그의 병리적인 대상관계에서 기인하는 자기애 등 세 가지가 존재하는데, 각각의 내용에 대해 살펴보도록 하자.
- 나르시시스트 유형도 여러 개가 존재하듯이, 나르시시스트 부모들도 각기 특성에 따라 전혀 다른 양육 태도를 보일 수 있다. 특히 과대형 나르시시스트 부모는 자녀의 외적인 성과를 부추기는 행위에 더욱 적극적으로 가담할 수 있다. 이러한 이유는 자식이 그만큼 성과를 내면 부모의 이미지가 올라가는 것이고, 또 자신이 이만큼 '자녀에게 잘하는 좋은 부모'라는 것을 보여주는 좋은 기회이기 때문이다.
- 따라서 아이가 부모가 강요하는 여러 활동을 소화해 내기 버거워하면서 "힘들다"고 표현할 경우 자녀의 감정에 전혀 공감을 해주지 않는다. 또한 자녀에게 이만큼 많은 시간과 에너지, 비용을 투자했는데 원하는 결과가 나오지 않으면, 자녀에게 매우 냉담한 모습을 보이는 등 돌변할 수 있다. 즉, 철저하게 조건적인 사랑을 주는 것이다. '네가 엄마 아빠가 원하는 만큼의 성과를 보여주면 우리는 너한테 엄청난 '사랑'과 관심을 보일 테지만, 우리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면 너는 아웃이야'라는 무언의 메시지를 자녀에게 지속적으로 주입하는 것이다. 부모가 내적인 요소가 아닌 외적인 요소로만 자신을 판단하는 상황이 지속될 경우 자녀 역시 외적인 요소만을 중요시하는 나르시시스트적 성향이 점차 강화될 수 있다.
- 자녀들에게 지나치게 허용적인 태도로 일관하는 부모들도 또 다른 측면에서 자녀의 나르시시스트적 성향을 키울 수 있다. 나르시시스트 부모는 자녀들에게 자신의 과대성을 투사하는 경우가 많다. 자식을 자신의 연장선상 narcissistic extension으로 바라보는 것이다. 따라서 스스로에 대한 과대 사고로 인해 자신을 잘난 존재로 여기다 보니, 본인의 자녀도 덩달아 이상화하여 완벽한 존재로 바라보고 자녀에게 아무런 결점이 없는 것처럼 행동할 수 있다.
- 자녀 역할을 칭하는 용어들은 더 큰 틀에서는 나르시시스트가 속해 있는 모든 집단 내에서의 사회관계에 적용될 수 있다. 예를 들어 직장에서도 나르시시스트 상사 밑의 부하 직원들 사이에서, 일과 관련되어 모든 질책과 책임을 떠안는 스케이프코트 직원이 있는가 하면, 상사의 관심과 기대 및 승진이나 포상을 독차지하는 골든차일드 직원이 있으며, 처음부터 상사를 간파하고 주위 동료들에게 경각심을 일깨워주는 트루스 텔러 직원이 있다. 그래서 자녀 유형 개념을 가족 구도 내에서만이 아닌, 사회적인 관계 전반에 대입시킬 수 있다.
- 나르시시스트 부모 아래에서 성장한 자녀들은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특정 역할을 맡게 되고, 그로 인해 갈등과 균열이 생긴다. 이런 경우 자녀들의 가장 현명한 대처는 과거부터 이어져 온 건강하지 않은 가족 구도를 인지하고, 자신에게 평생 강요되었던 부당한 역할에서 벗어나서, 나르시시스트 부모에게 명확하게 선을 긋고, 형제자매의 관계를 회복하는 시간을 통해 개개인의 상처들을 치유하는 것이다.
- 나르시시스트는 상대에게 합당한 선에서 합리적인 요구를 하기보다는, 상대의 입장과 상황은 고려하지 않은 채 자신의 이익만을 위한 무리한 요구를 하는 경우가 많다. 이때 자신이 요구하는 대로 상대가 따라주지 않을 경우 그들은 상대와 말을 섞지 않거나 상대를 보고도 못 본 척 무시해 버리는 투명인간 취급을 하기도 한다. 이것 역시 그들이 자주 사용하는 조종 수단이다.
- 상대에게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이 있다고 침묵해 버리는 것은 상당히 미성숙한 태도이다. 성숙한 사람들은 누군가와 갈등이 있거나 불만이 생긴 경우, 그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 당사자와 대화를 시도하기 마련이다. 먼저 자신의 감정부터 살펴본 다음, 자신이 어떠한 이유로 특정 감정을 느끼는지 구체적으로 표현한다. 그럼으로써 상대와 해결점을 찾고 자신의 부정적인 강점을 해소해 나간다.
- 감당하기 어려운 부정적인 감정들을 한꺼번에 토해내는 분노 폭발이나, 전혀 표현을 하지 않는 침묵은 취약한 감정을 표현하고 해소하기 위해 보이는 행위라는 측면에서 그 뿌리가 같다. 침묵과 분노 폭발의 또 다른 공통점은 둘 다 당하는 상대에게 강렬한 감정 반응을 불러일으킴으로써 상대와 상황을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움직인다는 것이다. 나르시시스트의 분노 폭발은 상대에게 공포감을 일으키는 행위로, 침묵은 상대에게 극도의 불편감과 긴장감을 일으키는 행위로, 둘 다 자신이 원하는 대로 상대를 조종하는 수단으로 사용된다.
- 나르시시스트의 침묵, 눈 마주치지 않기, 투명인간 취급하기에 가장 좋은 대처 방법은, 내가 그런 행동에 전혀 영향을 받지 않고 있다는 듯이 행동하는 것이다. 나르시시스트가 이런 행동을 하는 목적은 상대로 하여금 불편감에 못 이겨 자신에게 먼저 다가와서 어떻게든 대화를 시도하고 기분을 풀어주려는 노력을 하도록 종용하기 위함이다. 즉, 자신이 원하는 대로 상대의 행동을 교정하려는 것이다. 따라서 나르시시스트의 침묵하기 등의 행동이 마음을 불편하게 해도 무반응으로 견뎌야 한다. 눈을 마주치지 않으면 마주치지 않는 대로, 투명인간 취급을 하면 취급하는 대로 우리는 자신이 할 일만 열심히 하고 갈 길만 열심히 가면 된다.
- 만약 당신이 현재 나르시시스트와 가까운 관계 안에 놓여 있다면, 나르시시스트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서 지켜야 할 가장 중요한 세 가지 원칙을 기억하길 바란다.
- 먼저 상대가 나르시시스트라는 사실을 인지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인지가 생기기 위해서는 나르시시스트에 대한 깊이 있는 지식과 이해가 필요하다. 내가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고 책을 집필하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가, 많은 사람들이 주변의 나르시시스트에 대한 정확한 인지를 했으면 하는 바람에서다.
- 두 번째, 나르시시스트가 변화되기란 결코 쉽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을 분명히 받아들이는 것이다. 나르시시스트가 자신의 문제에 대해 온전히 인식하고, 강한 의지로 변화를 위해 온 힘을 다해 노력하지 않는 이상 말이다. 나를 찾아오는 많은 내담자분을 보면 나르시시스트에 대한 인지가 처음으로 생긴 초반에는 오랜 기간 납득이 되지 않던 여러 정황이 이해되면서 이 상황이 내 잘못이 아니라는 사실에 그동안 자신을 부당하게 짓눌러 왔던 자책감에서 해방되는 기분을 경험한다. 그러나 얼마 후 나르시시스트 부모 또는 배우자가 스스로의 의지나 노력 없이는 변하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순간, 지금까지 상대에게 들인 자신의 많은 시간과 노력이 상실되는 느낌이 들면서 큰 좌절감과 비애를 경험한다. 또한 저절로 변화가 찾아올 수도 있다는 희망을 내려놓는 과정에서 현실을 있는 그대로 직시하게 되고, 그동안 변하지 않을 상황에 머물러 있던 자신에게 수치심을 느끼며, 앞으로 다가올 미래에 대한 두려움을 경험하게 된다. 그러나 나르시시스트가 쉽게 바뀌지 않는다는 사실을 명확히 하기 전에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을 수 없음을 확실히 기억해야 한다.
- 세 번째, 나르시시스트로부터 적절한 거리 두기가 필요하다. 어떤 사람들은 나르시시스트에 대한 인지가 생기고 상대가 변화할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사실을 온전히 받아들인 후 관계를 아예 단절하는 등, 철저하게 물리적인 거리 두기를 시행한다. 그러나 현실적인 이유 또는 감정적인 요소로 인해서 나르시시스트와 어느 정도 관계를 유지해야 하는 상황들이 완벽한 거리 두기가 가능한 상황보다 많다. 따라서 이번 장에서는 이를 바탕으로 나르시시스트와의 관계에 대처하기 위한 여러 방법들에 대해 보다 자세히 살펴보고자 한다.
- 나르시시스트를 처음 만났을 때 자신의 몸에서 본능적으로 보내오는 신체적인 반응은 중요한 단서가 될 수 있다. 누군가를 만났는데 왠지 모르게 소화가 잘 안 되고, 가슴이 답답하고, 입이 마르고, 어질어질한 느낌 등이 있다면 이는 내 몸에서 상대가 위험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려주는 신호일 수 있다.
- 나르시시스트와의 관계에 최대한 끌려들어 가지 않으려면 나르시시스트가 자신이 원하는 서플라이를 하게끔 강력한 신호를 보내도 이를 무시하고 잘 버텨야 한다. 이를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이 바로 회색돌 gray rock 기법이다. 이는 서플라이 역할에 대한 무언의 압박을 주는 나르시시스트에게 감정의 동요 없이 무미건조한 무반응으로 일관되게 대처하는 기술이다. 즉, 정말 그 사람에게 하나의 돌처럼 반응하는 것이다.
- 과거 그 상사에게 별 반응을 하지 않는 후배들이 있었는데 상사는 당시에도 그 후배들에게 "왜 이렇게 반응이 없냐, 회식 자리에서 왜 이렇게 조용하냐"라고 타박하며 자신에게 맞춰주기를 원했다. 그러나 그들은 여전히 묻는 말에만 간략하게 대답하고, 개인적인 얘기는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 회색돌 기법은 외부 공급원 역할을 끊는 것뿐만 아니라 또 다른 부분에서도 효과적이다. 나르시시스트는 상대방이 감정적으로 행동하는 것, 예를 들어 화를 내거나, 울면서 슬퍼하거나, 극도로 스트레스받는 것을 보면 그 상황을 즐길 수 있다. 나르시시스트는 만성적인 공허감으로 인해 지루함을 쉽게 느끼는데, 상대방이 매우 감정적으로 반응하는 등 자신에게 자극적으로 느껴지는 행위를 하면, 지루함이 덜해지기 때문이다. 그들은 또 상대방의 감정적인 반응을 통해 우월감을 느끼기도 한다. 누군가가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면 그 사람의 취약함이 드러났다고 생각하고, 상대적으로 훨씬 더 안정적으로 보이는 자신이 더 우월한 사람인 양 느끼는 것이다.
- 다시는 당신에게 당하지 않을 것이라고 통쾌하게 일침을 날려주고 싶은 강렬한 욕구가 생길 수 있다. 그런데 다른 한편으로는 '이렇게 얘기한다고 본인이 인정을 할까? 본인이 나르시시스트라는 것을 직면시키는 것이 과연 현명한 방법일까?'라는 의문이 동시에 들 수 있다. 정서가 건강한 사람들도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는 것을 어려워하는데, 자존감이 불안정한 나르시시스트가 "그래, 내 문제가 맞아. 내가 잘못했어"라며 순순히 본인의 잘못을 인정할 가능성은 낮기 때문이다.
- 나르시시스트에게 중상모략을 당할 때 어떻게 대처하면 좋을지에 대해 나의 과거 밴드 상황을 빗대어 더 자세히 설명하겠다. 비록 그때는 아직 '나르시시스트'라는 개념에 대해서 잘 몰랐지만, 나르시시스트 친구 D에게는 곧잘 대처를 했던 것 같다. 나는 D에게 앞서 일어난 일에 대해 묻거나 따지는 등 서로 상대해야 하는 상황 자체를 만들지 않았고, 조용하지만 확실하게 거리를 두기 시작했다. 더 솔직하게는 D에게 직접 따질 겨를도 없었다. 본인도 돌아가는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음을 감지했던지, 집안 사정으로 밴드를 더 이상 못할 것 같다고 먼저 문자를 남겼기 때문이다. 나는 왠지 이 상황을 D에게 따져 봤자 본인의 잘못을 인정할 것 같지도 않고, 거짓말만 덧붙여서 또다시 밴드 멤버들을 가스라이팅하려 들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쿨하게 보내주고 이후로 연락을 끊어버렸다. 그때 나는 나르시시스트에게 대처하는 방법을 인지하고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본능적으로 가장 대표적이고 확실한 대처 방법인 거리 두기를 실천한 것이다.
- 상대방의 좋은 면을 바라보려고 하는 만큼 좋지 않은 면도 동시에 인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서 상대방의 장단점을 객관적으로 모두 인지한 상태에서 상대의 행동에 대한 잘잘못 또한 객관적으로 평가하는 능력을 유지한 채, 나와 가까운 사람은 무조건 좋은 사람이며, 다 용서해줘야 하는 대상이라는 왜곡된 인식을 바꿔야 한다. 좋은 부모란 자녀의 장점만을 바라보는 것이 아닌, 부족한 부분들을 인지하고 자녀가 그 부분을 보완할 수 있도록 이끌어주는 부모이다. 대인 관계 안에서도 상대의 장점만을 바라보고 단점은 간과하는 것은 바람직한 교류 방법이 아니다.
- 따라서 비단 나르시시스트뿐만 아니라 모든 중요한 관계 안에서 상대의 장단점을 명확하게 평가하고 인지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런 상태에서 상대의 단점이 남에게 상처를 주려는 의도를 내포하지 않으며, 상대방의 장점과 내가 상대에게 느끼는 감정이 그 단점을 수용할 정도로 깊이가 있다면, 그 관계를 이어 나가는 것이다.
- 마찬가지로, 가까운 관계라고 해서 상대의 잘못된 행동들을 모두 합리화하며 용서하는 것 또한 건강하지 않다. 잘못된 행동은 잘못된 것이며, 그로 인해 내가 상처받은 사실 또한 달라지지 않는다. 다만, 상대에 대한 애정으로 상대의 잘못으로 인한 상처를 감내하고 그를 포용하는 것이다. 그런데 만약 상대가 반복적으로 잘못을 저지른다면 이를 용서해 줄지 말지는 매우 신중하게 결정해야 한다. 즉, 무조건적인 용서가 항상 정답이 아니다.
- 상대가 나와 교류할 때는 그 사람의 좋은 한 부분이 나와 교류하는 것이 아닌, 좋음 나쁨이 전부 포함된 전체가 나와 교류하는 것이기에, 이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포괄적인 측면에서 과연 나에게 유익한지 신중하게 판단해야 한다. 또한 자신이 실수를 하고 나서 상대방이 용서를 해줬을 때 그것을 귀하게 여길 줄 알고 변화가 가능한 사람들은 용서를 해줘도 된다. 그러나 상대의 용서를 감사하게 여길 줄 모르고, 용서를 마치 잘못된 행동을 반복해서 해도 된다는 허용으로 받아들이는 나르시시스트는 쉽게 용서를 해주면 안 된다. 그 용서가 결국 칼이 되어서 나에게 돌아올 수 있기 때문이다.
- 자석처럼 반대되는 성향을 지닌 물체들이 서로에게 끌리기 마련인데, 건강하지 않은 면들이 가득한 나르시시스트는 건강한 면이 풍부한, 즉 공감 능력이 높고, 타인의 단점보다는 장점을 위주로 바라보며, 남의 실수를 관대하게 용서해 주고, 다른 사람을 도와주고자 하는 마음이 큰 사람들을 필요로 하고 끌리게 된다. 그래서 나르시시스트에 대한 폭넓은 지식을 바탕으로, 비교적 이른 시기에 상대 나르시시스트에 대해 어느 정도 인지가 생길 수 있다면, 미리부터 나의 이런 양질의 측면들을 보여주지 않는 것도 방법이다.
- 공감과 용서와 도움은 이를 진심으로 고마워하는 사람한테 베푸는 것이며, 이를 악용하는 사람들에게는 베풀 필요가 없다. 이에 나르시시스트에게 나의 소중한 능력을 헛되게 사용하지 않음으로써 생기는 불편한 마음을 어느 정도 견디다 보면, 그 불편함 때문에 나의 값진 심리적 자산을 허비하는 상황은 더 이상 생기지 않을 것이다.
- 이 책을 읽으며 자신에게 크고 작은 고통을 초래한 나르시시스트들이 떠올랐을 것이다. 그런데 다른 한편, 자신 역시 의도치 않게 다른 사람에게 준 상처들이 기억나며, 자신의 마음속에 드문드문 자리 잡고 있는 나르시시스트적인 측면들 또한 마주하게 되었을 것이다.
- 우리 모두에게는 건강하지 않은 나르시시즘이 내면에 어느 정도 존재한다. 자신이 충분히 좋은 사람이라는 견고한 정체성과 안정적인 자존감을 완벽하게 유지하는 사람은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기서 중요한 것은, 건강하지 않은 측면들 이상으로 우리에게는 건강한 측면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때로는 자기중심적으로 행동하지만, 내면에 자리한 진정성 있는 따뜻함으로 다른 사람들을 대하고자 노력하고, 자신으로 인해 주변 사람들이 아픔보다는 행복감을 더욱 많이 경험한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그리고 자신의 건강하지 않은 부분들을 인지하고 이를 바꾸려는 의지를 갖고 노력하려는 사람과 자신의 결함들을 부정하기 위해 다른 이들에게 반복적으로 피해를 주는 사람은 엄연히 다르다. 이 책이 자신의 인생의 나르시시스트로부터 자유해질 수 있는 통로를 마련함과 동시에, 자신 안에 자리 잡고 있는 건강하지 않은 심리들을 자각하고 변화를 시도하는 데 도움이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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