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자가 흐르는 이야기/Book1

[질 하이너스] 인투 더 플래닛 - 살아있는 전설, '질 하이너스'의 낯선 세계로의 위대한 기록

일루젼 2023. 9. 19. 2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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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질 하이너스 / 김하늘
출판 : 마리앤미
출간 : 2022.08.25  


       

가득 차 있던 압력이 빠져나간 느낌이다. 아무런 문제도 없이, happly ever after- 까지는 아니어도 그런대로 만족스러운 나날들이다.

리뷰는 기분이 내킬 때만 쓰고 있는데, 다행히 쌓이고 있는 책들의 대부분은 시리즈 물이라 좀 모아서 써도 괜찮을 것 같다. 쉬어가는 시즌도 있어야지.

 

이 책은 자세한 정보를 모른 채로 읽게 되었는데, 프리다이빙이나 심해잠수는 들어봤어도 '동굴 다이버'라는 전문 영역이 존재한다는 건 처음 알게 되었다. 일단 물 위로만 떠오르면 구조를 기다릴 수 있는 오픈워터 다이빙과는 달리, 탈출로를 반드시 확보해야만 한다는 점에서 동굴 다이빙은 극도로 위험한 활동이다. 게다가 경로에 따라 다양한 수심을 오가며 좁은 곳이나 시야가 확보되지 않는 곳도 통과해야 한다. 

 

저자 질 하이너스는 이런 동굴 다이빙의 매력에 빠져 전 세계의 다양한 곳들을 탐험하고 기록하며 살아왔다. 저자는 이를 '지구의 혈관을 따라 헤엄치는 여행'이라고 표현하는데, 정말 직관적이면서도 인상적인 표현이었다. 질은 수자원 보호 운동가이기도 하다. 그녀에 따르면 언제 어느 곳에서나 우리의 발 밑에는 식수가 흐르고 있다. 우리가 인지하지 못하는 경로와 깊이를 흐르고 있을 뿐이다. 이런 사실들을 보다 널리 알리고, 또 보탬이 되기 위해 만들었다는 <물의 여행> 다큐멘터리를 찾아볼 생각이다.

 

그녀와 그녀의 주변 다이버들은 주변 지형을 3D로 스캔하는 스캐너라거나 호흡한 공기를 모아 적절한 비율로 재혼합해주는 재호흡기 같은 발명품들을 제작한다. 하지만 이전까지의 방식과는 완전히 다른 방식이기에 주변 다이버들로부터 비난이나 공격을 받기도 한다. 익숙하지 않은 것들은 대개 위협으로 인식되어 저항을 받게 되는데, 혁신가들의 입장에서는 괴로운 일이겠지만 유지관리자들의 입장에서는 어느 수준까지는 꼭 필요한 검열 과정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런 과정이 이어져온 결과로서 현재의 우리가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한 걸음 떨어져서 관찰하면, 진화의 과정 또한 이와 동일하다.

 

<인투 더 플래닛>은 일반적인 동굴이 아닌, 남극의 거대 빙산 속 얼음 동굴에 다이빙하는 저자 팀의 시점에서 시작한다. 언제 얼어붙을지 모르는 극한의 바다, 거기서도 계속 떠서 움직이는 빙산 속으로의 탐험. 

 

개인적으로는 기회가 주어진다 하더라도 고사하고 싶은 선택이지만, 저자에게는 이런 순간들이 자신을 '살아있게 만드는' 순간이라고 한다. 흔히들 저자를 보고 죽음을 동경하는 게 아니냐, 무모하기 그지없다 등의 걱정을 하지만 -그리고 많은 동료들을 잃은 것은 사실이지만- 그녀는 언제나 생존을 위한 강한 의지와 철저한 준비로 단단히 무장한 채 또다시 수면 아래로 내려간다.

 

에세이라기보다는 회고록 같은 느낌이다. 때때로 툭툭 끊어지는 느낌이 든다거나, 모순되는 듯한 표현이 등장하기도 하지만, 그건 저자가 최대한 서술되고 있는 시기의 생각과 감정을 표현하려 했기 때문이라 보인다. 

 

매끄러운 글이라거나 아름다운 글이라고는 말하기 어렵다. 하지만 이 책을 읽는 동안 독자는 한 사람의 성장, 한 다이버의 성장, 그리고 한 여성의 결혼과 이별 - 그리고 새로운 결혼과 우정을 모두 함께 하게 될 것이다. 또한 호수 밑, 바다 밑, 웅덩이와 늪과 정글, 빙산까지도 함께 하게 된다. 그 경이로운 영상들이 어떻게 촬영 되었는지, 그 수많은 여정에서 어떻게 매번 살아 돌아왔는지까지도.

 

인상적이었다. 끝. 

   

 


 

 

나는 두려움을 모르는 사람이 아니다.
내가 아직 살아있는 이유는, 두려움을 긍정의 기폭제로 삼고 끌어안는 법을 배웠기 때문이다.
어둠의 문턱에서 두려워할지언정 달아나지는 않는다. 나는 불확실성을 즐기며 그 속에서 춤춘다. 
 

 

 

- 질 하이너스는 7,000회 이상의 다이빙 기록을 가진 동굴 다이버이자 수중 탐험가, 작가, 사진작가, 영화제작자다. 질은 세계의 수중 동굴들을 탐험하며, 이 경이로운 장소들을 영상과 사진으로 30년 이상 기록해 왔다. <내셔널지오그래픽>, <BBC>, <PBS>등의 TV 시리즈들을 제작했으며, 제임스 캐머런을 비롯한 영화감독들의 자문가로서 활약하고 있다. 또한 여러 권의 책을 저술하고, 단체나 기관에서 그녀의 탐험 경험과 수자원에 대한 이해와 보호 및 경각심에 대해 강연을 하기도 한다. 극지방 연구에 큰 공헌을 한 사람에게 수여하는 극지메달(Polar Medal)과 탐험가 협회가 수여하는 윌리엄 비버상을 수상했으며, 왕립캐나다지리학회(RCGS)의 첫 번째 상주탐험가이자 메달(Sir Christopher Ondaatje Medal)을 수상했다. 또한 그녀는 국제스쿠버다이버 명예의 전당(International Scuba Divers Hall of Fame)의 회원이기도 하다.

 

- 내가 죽는다면 그곳은 누구도 보지 못한, 눈부시게 아름다운 장소일 것이다. 

- 손가락에서 더는 감각이 느껴지지 않는다. 얼음장같이 차가운 남극의 바닷물이 방수장갑에 뚫린 미세한 구멍으로 새어 들어왔다. 물의 온도가 10분의 1만 낮아도 바다는 얼음으로 변할 것이다. 살을 에는 추위와 싸우다 보니 체력은 고갈되고, 혈관은 쉴 새 없이 고동쳐 손끝과 발끝으로 온기를 보내려는 헛된 시도를 한다.
 

- 머리 위의 바다가 조각해 놓은 얼음 아치길은 골프공 표면처럼 홈이 패어있고, 보는 각도에 따라 푸른빛, 잿빛 파랑, 하늘빛, 맑은 파랑, 진파랑으로 변한다. 남극의 빙산들은 밝고 생기가 넘치는 동시에 어둡고 으스스하다. 아름다움과 위험처럼 모순된 요소가 공존하는 곳이다.

 

- 우리는 세계 최초로 남극 빙산 속에서 동굴 다이빙을 하고 있다. 그리고 어쩌면 살아서는 이 이야기를 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 지금은 2월이고, 남극은 한여름이다. 내셔널지오그래픽이 내게 맡긴 일은 숙련된 전문 다이버 팀을 이끌고 남극에서 가장 큰 B15 빙산 내부 깊숙한 곳에 있는 수중동굴을 찾는 것이다. 거대한 빙산 속 동굴에서 다이빙하는 일이 어려우리란 사실은 이미 알고 있었지만, 빠져나오는 것이 불가능에 가깝다는 사실은 미처 예상하지 못했다. 조류의 속도가 걷잡을 수 없이 빨라지며 우리를 얼음 안에 가둬버렸다. 얼어붙은 빙산 아래서 궁지에 빠져, 어떻게 탈출할지 알아내야 한다. 

- 참고할만한 훈련 교본이나 안전수칙이라고는 없다. 처음 시도하는 일은 다른 사람에게 가르침이나 도움을 구할 수도 없다. 우리를 구조할 만한 경험과 기술을 갖춘 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동굴 다이버 팀은 지금 B15 빙산 안에 갇혀있기 때문이다. 바로 내 남편 폴 하이너스 Paul Heinerth와 우리 부부의 절친한 친구 웨슬리 스카일스, 그리고 나다. 

 

- 원래 1시간으로 계획했던 다이빙은 예정과 달리 길어지고 있었다. 얼마나 오래 추위를 버틸 수 있을지 알 길이 없다. 2 시간은 생존할 수 있을까? 아니면 3시간? 낡은 연구선 '브레이브하트'호에 탑승한 15명의 동료는 물속에서 어떤 극적인 상황이 펼쳐지는지 전혀 알 수 없을 것이다. 우리가 늦어진다는 사실만 알고 있을 뿐이다. 시간이 더 흘렀는데도 우리가 도착하지 않으면 선장이 무전기로 우리를 부르겠지만 대답을 듣기는 힘들 것이다. 우리는 통신 범위에서 벗어나 있고, 이곳에 우리 말고는 아무도 없다. 배 위에는 우리를 구조해 줄 만한 능숙한 다이버가 없다. 동료들은 쌍안경으로 수평선을 살펴보고 배에 있는 헬리콥터를 띄워서 로스해를 끝없이 뒤덮은 하얀 얼음 위를 정신없이 뒤지겠지만, 아마 다들 속으로는 이 냉담한 바다에서 오랜 시간 동안 살아남기란 거의 불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좋게 보면 배짱 있는 모험가로 우리를 기억할 수도 있겠지만, 그냥 미치광이로 여겨질 가능성이 더 크다.

 

- 300미터가량 떨어진 곳에 곧 사라질 듯한 은은한 한줄기 햇살이 보인다. 나는 햇살에 더 가까이 가기 위해 가능한 한 발을 세게 구르고 해저에 있는 것을 닥치는 대로 붙잡았다. 어딘가에서 폴과 웨슬리의 거친 숨소리가 들리지만, 조금씩 빛에 가까워지면서 나는 내 생존에만 몰두했다.

 

- 모든 것이 끝난 순간이 언제인지, 죽어가는 사람은 대체 어떻게 아는 걸까? 살아온 삶이 주마등처럼 눈앞을 스쳐 지나간다고들 하지만, 지금 그런 일은 벌어지지는 않는다. 머릿속에 떠오르는 생각이라고는 내가 가장 사랑하는 바다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것뿐이다. 나는 물이라는 액체와의 관계에 몰입하며 인생을 보냈다. 물은 만물을 길러내기도 하고 파괴하기도 하며, 우리를 띄우기도 하고 익사시키기도 한다. 내게 자유를 주었으나 친구들의 목숨을 앗아가기도 했다. 

 

- 이제 나는 삶과 죽음의 갈림길에 이르렀다. 내 삶은 물에서 시작되었으나, 이곳에서 최후를 맞을 수도 있다는 사실은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다.

- 나는 당신이 한 번도 상상하지 못했던 곳, 여태껏 그 누구도 모험하려는 엄두도 내지 못했던 수중의 깊은 동굴 속으로 당신을 데려갈 셈이다. 다소 불편하더라도 두려움과 대면하도록 당신을 이끌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며 폐소공포증과 극한의 추위를 느끼겠지만, 두려움과 불안을 당당히 끌어안는 용감한 본인의 모습을 만나길 바란다. 그리고 당신도 나처럼 탐험가라는 사실을 받아들이기를 기원한다. 

 

- 그럴 때면 나도 모르게 수중동굴을 탐사하다가 죽은 사람이 에베레스트를 오르다가 사망한 사람보다 많다는 사실을 떠올린다. 그 점에서만큼은 어떤 종류의 탐험을 능가할 것이다. 동굴다이빙은 매우 위험해서 가볍게 체험만 해보려는 사람조차 생명보험에 가입할 수 없다. 아무리 비싼 생명보험이라도 말이다. 최신 장비를 갖추고 철저한 훈련을 거치고도 해마다 평균 20명이 깊은 수중 묘지에서 익사한다. 

 

- 그렇다면 멀쩡한 사람들이 죽음의 덫이라고 여기는 곳으로 헤엄쳐 들어가는 이유는 뭘까? 내게 동굴다이빙은 '다시 자궁 속으로' 들어가는 것과 비슷하다. 동굴에는 태곳적과 같은 분위기가 감돌아서 고대의 조상과 자연이 나를 이곳으로 부른 듯한 기분이 든다. 수중 동굴은 매혹적이고 도전 의식을 자극한다. 이곳에 도사리는 위험조차 매혹적으로 느껴진다. 또 수중동굴은 투명한 물과 어느 곳에서도 볼 수 없는 기이한 지질 구조로 가득하다.

 

- 나는 이 책에서 이뤄야 할 목적이 있다. 동굴은 인류에게 매혹적인 원천이었지만, 광범위한 탐사가 시작된 것은 얼마 되지 않았다. 수중동굴은 지구상에 마지막으로 남은 미지의 영역 중 하나다. 하지만 놀랍게도 우리는 지구의 내부보다 지구 밖에 있는 우주 공간에 관해 더 많이 안다. 희한한 일이다. 가장 필수적인 자원을 지키려는 노력에 힘입어, 지하에서 흐르는 물을 연구하는 과학의 역할이 점점 더 중요해지고 있다. 나는 고도로 숙련된 기술을 이용해 과학자의 눈과 손이 되어 새로운 종을 발견하는 생물학자, 기후변화를 추적하는 물리학자, 한정된 담수 보존량을 조사하는 수리지질학자와 함께 일하곤 한다. 지금까지 수중 오염을 일으키는 암울한 주범과 남극 빙산에 있는 생명의 근원, 세노테 cenote라고 불리는 유카탄 반도 Yucatán Peninsula(멕시코 남동부의 반도-옮긴이)의 싱크홀에서 마야 문명이 남긴 유적을 발견했다. 수중동굴은 자연사 박물관과 같아서 진화와 생존에 관해 알려줄 희귀한 생명체를 고스란히 품고 있다. 
 

- 나는 지구의 혈관, 즉 수중동굴을 헤엄쳐서 용암 동굴이나 거대한 얼음덩이에 난 틈으로 들어간다. 당신이 사는 집, 골프장, 식당 아래를 헤엄쳐 다닌다. 물길이 인도하는 곳이면 어디든 따라간다. 통로가 좁아져서 지나갈 수 없을 때도 물은 불가사의한 원천에서 흘러나와 한결같이 이어진다. 여정은 끝이 없다. 그리고 능력이 닿는 한, 더 깊이 잠수하라고 내게 유혹의 손짓을 한다. 

- 이후 몇주동안은 어두워질 때마다 공포가 스멀스멀 올라왔다. 겨우 잠이 들면 아주 작은 소리에도 식은땀을 흘리며 깨는 바람에 때로는 아예 잠을 자지 않으려 했다. 심지어 낮에도 도둑의 모습을 떨쳐낼 수 없었다. 공허하고 영혼 없는 눈빛을 다시 마주하면 어쩌나 두려워하면서, 혹시 그의 얼굴이 사람들 사이에 있지 않은지 살폈다. 나는 방이 다른 곳처럼 느껴지기를 바라며 가구의 위치를 바꿨다. 그리고 어느 곳에서건 벽을 등지고 있었다.

 

- 도둑이 든 후 몇 달이 지났을 때, 함께 맥주를 마시던 룸메이트 킴 Kim이 내게 안색이 안 좋아 보인다고 말했다. 나는 계속되는 공포와 불안을 를 털어놓았다. 나는 킴이 공감해 주길 바랐지만, 킴은 나를 가만히 쳐다보면서 말했다. 
"극복해 내야지."
나는 마음이 상했다. 내가 겪은 공포를 킴이 이해할 수나 있을까? 킴은 강간당하거나 살해당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느끼며 도둑을 마주한 적이 있을까?

"질, 구석에 웅크린 채 인생을 허비해서는 안 돼. 지금 너 스스로 그가 널 인질로 잡고 있게 만들잖아."

- 두 번째 침입은 내가 다른 각본을 따라갈 수 있는 기회를 주었다. 나는 앞으로 남은 평생을 생존하는 데 필요한 기술을 연마하겠다고 마음먹었다. 다시는 담요 아래에 숨지 않을 것이다. 강한 의지와 긍정적인 생각으로 도전과 마주할 것이다. 

- 그로부터 4년 뒤, 일 더미에 파묻혀 지내던 나는 다른 사람들을 실망시킬지도 모른다는 두려움과 마주하기로 했다. 진정한 발전을 이루려면 경력을 시작점으로 되돌려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고, 과감히 뛰어들겠다고 결심했다.

 

- 햇빛이 만든 청록색 빛줄기 속을 떠다니는 상상을 했다. 다이빙하러 갈 때마다 물이 나를 부르는 소리는 점점 커졌다. 사회적 성공이 주는 만족감이나 두둑한 연봉은 나를 충족시키지 못했다.

 

- 그때만 해도 나는 첫 다이빙 경험이 펼쳐놓은 마법만 보고 그 속에 숨은 위험은 알아채지 못했다. 바위 천장에 어떤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지 구태여 생각해 보지 않았고, 내가 얼마나 운이 좋았는지는 짐작도 하지 못했다. 수중동굴은 아름다운 모습과는 달리 굉장히 위험해서 철저한 훈련을 받지 않으면 생각지도 못한 일로 목숨을 잃기 쉽다. 오픈워터 다이빙 훈련을 받을 때는 긴급 상황에서 언제나 수면 위로 헤엄쳐 올라가면 된다고 배운다. 하지만 동굴 안이나 천장이 있는 환경에서는 그럴 수 없다. 장비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거나 방향감각을 잃는 것처럼 곤란한 상황에 대처할 준비가 되어있지 않으면, 물로 가득 찬 어두컴컴한 동굴 속에서 죽음을 맞을 수도 있다. 

- "수중 동굴에서 날 데리고 밖으로 나가려면, 먼저 날 기절시킨 다음 꽁꽁 묶어야 할걸."
농담으로 한 말이었겠지만, 똑같은 방법을 태국에서도 사용해야 했다. 유소년 축구팀 아이들을 구조하기 위해서는 구조용 들것에 그들을 묶은 뒤 물에 잠긴 구간을 통과한 후 안전한 장소로 이송해야 했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마취제를 투여해야 했다. 

- 저자인 섹 엑슬리 Sheck Exley는 선구적인 탐험가였고, 나는 그의 이름까지도 멋지게 느껴졌다. 그의 저서는 그답게 실용적이며, 디자인에도 많은 돈을 쓰지 않았다. 스테이플러로 고정한 소책자는 타자기로 친 원고를 그대로 복사해 놓은 것처럼 부실해 보이는 듯했지만, 그 안에 담긴 정보는 여러 사람의 목숨을 구했다. 

 

- 당시만 해도 동굴 다이빙을 위한 교육 과정이 없어서 그는 다이버들에게 안전하게 동굴을 탐험하는 방법을 가르치려 했다. 쉑 엑슬리가 나열한 사고 목록에서 빠지려면 그가 정한 안전 수칙을 절대 규칙으로 삼아야 했다. 동굴 다이빙에서 살아남으려면 수중 잔압계를 확인해서 되돌아갈 시간을 계산하고, 연결된 가이드라인을 따라가고, 여분의 장비를 제대로 챙기는 법을 배워야 한다. 내게는 모두 낯선 개념이었다. 강사와 함께 토버모리에 있는 작은 동굴을 처음으로 들여다보면서 동굴이 안전한 곳이라고 착각했었지만, 그로부터 한 해가 채 지나기도 전에 불의의 사고가 내게도 일어날 수 있음을 이해하게 되었고, 자연이라는 이름을 가진 어머니의 광포함에 대해 경외하는 마음을 갖게 되었다. 

 

- 그리고 <스킨 다이버 skin Diver>나 <내셔널지오그래픽> 같은 잡지의 나온 사진작가들처럼 살고 싶었다. 여행하고 탐험하면서 햇빛과 손길이 닿지 않는 곳에 존재하는 것을 기록으로 남기고 싶었다. 수중 세계의 아름다움을 공유하고 싶었다. 또한, 그곳들을 사진이나 영상으로 찍어 팔면, 수중 세계와 알려지지 않은 지구의 곳곳을 탐험하면서도 생계를 꾸릴 수 있을 것 같았다. 아마 내가 꿈꾼 이 모든 과정이 대담하고 커다란 도약이었다고 한다면 거짓말일 것이다. 그보다는 나비가 고치를 벗어나 자유롭게 날아오르듯이 서서히 일어나는 변화에 가까웠다. 

- 그토록 중요한 문제를 결정하는 것은 어려울 뿐 아니라 어느 정도의 시간도 필요하기 마련이다.

 

- 가족과 사회는 내가 보편적이고 전형적인 각본에 따르길 바랐다. 대학에 가라. 전문 직업을 가져라. 아이를 낳아라. 고생스럽게 일하면서 진정 원하는 건 은퇴한 후로 미뤄라.

 

- 하지만 내가 은퇴할 때까지 살지 못하면 어쩌지? 왜 지금 행복하게 살고 남은 인생은 알아서 해결되도록 두면 안 되는 걸까? 하지만 이런 생각은 이기적인 것처럼 보이고, 사회와 가족의 기대나 성인으로서 해야 할 의무를 저버리는 것처럼 느껴졌다. 다이빙 경험을 쌓을 때마다 나는 사람들이 그다지 가지 않는 길로 다가서고 있음을 알고 있었지만, 한편으로는 정해진 길에서 벗어나면 가족과 친구를 잃지 않을까 걱정스러웠다.

- 이미 익숙해진 삶의 방식을 떨쳐내기도 쉽지 않았다. 나는 두둑한 연봉과 편안한 생활에 익숙해져 있었다.

 

- 대개 플로리다를 떠올릴 때는 동굴 지대와 연관 지어 생각하지다. 플로리다 게인즈빌 Gainesville 북서쪽 지역의 동굴지대는 매우 독특하며 세계 최고의 동굴지대 중 한 곳이다. 또한 지구에서 가장 풍부한 지하수 자원을 지닌 지역이기도 하다. 이곳은 선샤인 스테이트 Sunshine State(플로리다주를 가리킴. 1년 내내 햇볕이 따스하게 내리쬐어 붙은 별명 - 옮긴이)에서 보리라고 기대했던 모습과는 정반대의 모습을 하고 있다. 상점도 없고 신호등도 몇 개 없으며, 사람보다 소가 더 많다. 여기는 기독교의 영향력이 큰 바이블 벨트 Bible Belt(미국 중남부, 동남부를 중심으로 개신교의 영향이 큰 지역-옮긴이) 중에서도 가장 중심이 되는 지역으로, 독사 만지기를 하는 목사들이 있으며(마가복음에서 예수가 참된 신도라면 뱀을 만지고 독을 마셔도 해가 없다고 한 말을 믿고 뱀을 만지는 행위를 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를 권한 목자는 성직에서 쫓겨나거나 목숨을 잃기도 한다 - 옮긴이), 여성 신도를 대상으로 남편에게 복종하고 신의 진노를 두려워하라고 설교하는 급진적인 개신교가 영향을 미치고 있는 곳이다.

 

- 하지만 교회가 아닌 다른 곳에서 에덴동산을 찾고 싶다면 하이스프링스 High Springs와 마리아나 Marianna 사이에 있는 산책로에서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플로리다의 수정처럼 맑은 수백 개의 샘물이 땅 깊숙이 있는 수원에서 솟구치며 청정한 강의 상류로 흘러든다. 샘물이 만들어 낸 세계 곳곳의 경이로운 풍경 가운데에서도 플로리다의 샘물이 독특한 이유는 눈에 보이지 않는 데서 찾을 수 있다. 

 

- 1만 3,000년 전 초기 아메리카 원주민은 건조한 초원 지대를 질주하는 거대한 마스토돈 mastodon(태고적 코끼리 비슷하게 생긴 동물 - 옮긴이)을 쫓다가, 물로 가득한 웅덩이를 발견하고 이곳에 이끌렸고 이곳이 특별한 장소임을 알았을 것이다.

 

- 동굴 다이빙을 하려고 옷을 입을 때는 여러 가지를 고려해야 한다. 먼저 몸을 따뜻하고 건조하게 유지하기 위해 두꺼운 보온용 내피를 입고 그 위에 드라이슈트를 입어야 한다. 이 복장은 땅 위에서는 숨 막히도록 덥지만, 체온을 따뜻하게 하고 오래 잠수하려면 필수다. 잠수복은 몸을 물에 뜨게 하므로 심해로 끌어당길 듯이 무거운 중량 납도 차야 한다. 물속에서 하강하는 동안에는 수심에 따라 증가하는 수압 때문에 드라이슈트와 부양장치 역할을 하는 부력 조절기의 부피가 수축한다. 이 현상을 없애려면 부력조절기의 윙(공기가 들어가는 주머니 또는 가방 - 옮긴이)과 드라이슈트 안에 조금씩 공기를 주입해야 주어야 한다. 이러한 장비들이 없다면 음성부력(다이버의 무게가 부력보다 커서 아래로 가라앉는 상태로, 이 반대인 떠오르는 상태는 양성부력이라고 한다 - 옮긴이)이 증가해서 다이버는 끝없이 밑으로 가라앉고 말 것이다. 장비의 무게와 윙의 부력이 평형을 유지하는 데는 요령이 필요했다.  

 

- 우리의 신혼여행은 멕시코의 리비에라 마야 Riviera Maya에서 펼쳐질 동굴 다이빙 프로젝트였다. 엄밀히 말하자면, 이때는 아직 리비에라 마야란 이름이 붙기 전이었다. 이 지역은 여행객들에게 알려지지 않았었다. 유카탄 반도(중앙아메리카에서 대서양을 향하여 돌출한 반도로, 고대 마야 문명이 번성했던 곳 - 옮긴이)에 있는 아름다운 해안 지대로, 하얀 모래사장이 둥지를 틀러 온 거북을 맞이했고 정글 안은 아름답고 환상적인 동굴로 이어지는 수정처럼 맑은 청록빛 물웅덩이로 가득했다.   

 

- 우리는 정글을 칼로 헤치며 들어가서 바닥에서 새로운 블루홀, 즉 동굴 입구를 찾아냈다. 현지인에게 접근해서 "세노테(마야 문명 지역의 석회암 암반이 함몰되어 드러난 천연 샘 - 옮긴이)가 어디 있나요?"라고 물었고, 그 현지인은 숲 속에 있는 푸른빛을 띠는 보물로 우리를 인도해 주었다. 세노테는 마야 신화에 나오는 지하 세계인 시발바 xibalba(마야 신화에서 죽음의 신들과 조력자들이 통치하는 명계를 의미한다 - 옮긴이)로 가는 수중 입구이기도 하다.

 

- 우리의 신혼여행은 신혼부부를 위한 보편적인 휴가와는 달랐지만, 우리에게는 완벽했다. 여유롭게 운전하면서 때 묻지 않은 해변에서 야영을 하고, 마야 유적을 탐험하고, 울창한 치아파스 Chiapas 정글에서 새들의 노랫소리를 들으며 하이킹했다. 길 옆에 있는 형형색색의 가판대에서 군침 돌게 하는 아레파(주로 남미에서 먹는 옥수숫가루로 만든 빵 - 옮긴이)와 과일로 피크닉을 즐겼고, 숯불에 구운 짭조름한 닭고기와 절인 양파, 살사 베르데(녹색 토마토, 양파, 고추, 마늘, 고수 등을 넣고 만든 초록색 소스 - 옮긴이)를 타코에 곁들여 먹었다. 그리고 오래된 폭스바겐 승합차 지붕의 텐트에서 서로 끌어안은 채 꿈꿔온 장소에 관해 이야기했다. 

 

- 나는 어린 나무들을 베어냈고 피부를 녹이는 수액을 흘리는 체첸나무에 주황색 테이프를 묶어 고정시켰다. 체첸나무 수액은 피부에 몇 방울만 떨어져도 피부가 두꺼운 치즈 피자처럼 변하고 미칠 듯한 가려움에 시달리게 되어 그간 알아온 덩굴옻나무쯤은 별것 아니라고 여기게 되는 무시무시한 나무이다. 

 

- 수많은 새와 원숭이를 비롯해 여러 동물이 짖으며 화답했지만, 폴만은 응답이 없었다. 우리는 새신랑 폴을 만날 수 있을만한 곳을 찾아 버디의 동물적 감각이 이끄는 대로 서쪽을 향해 계속해서 나아갔다. 

 

- 마야인들은 세이바나무를 생명의 나무라고 여기며, 하늘 세계와 지하세계를 이어준다고 믿어 신성하다고 여긴다. 폴은 잠수복을 입고 지하 세계에서 하늘 세계를 잇고 오른 셈이다.

 

- 하지만 개척해야 할 곳을 확장하면서 몇몇 영역을 두고 다툼이 일었다. 소위 '멕시코 동굴 전쟁'이 벌어졌고, 동굴 다이버가 땅 주인의 허락 없이 사유지에 무단 침입하여 총구를 사이에 두고 만나는 일도 생겼다. '도둑 다이빙'은 흔해졌고, 어떤 다이버들은 폭력을 행사해서라도 발견한 입구 근처에 아무도 접근할 수 없게 했다. 비밀과 속임수는 보편적인 것이 되어버렸고, 사람들은 새로운 발견들을 인터넷 포럼과 게시판에서 자랑해 댔다. 

 

- 나는 성공과 사명감에 잠시 취해 내 자리를 찾았다고 안도했으나, 그 내면엔 불안함과 망설임도 같이 자라고 있었다. 남성 중심의 다이버 세계의 마초 기질이 피어오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사람들은 내게 폴의 조수라느니, 결혼으로 결합한 탐험 파트너라느니 하는 꼬리표를 붙였다. 그들은 폴에게 몰려들어 프로젝트의 성공을 축하해 줬지만, 나는 뒷전이었다. 우리는 둘 다 탐험가로서 임무를 수행했지만, 나는 그 임무 말고도 몇 달 동안 프로젝트의 준비 작업을 하고 후원금을 모았다. 동등한 위치에서 다이빙에 참여했고 프로젝트를 공동 기획했다는 사실에 뿌듯함을 느껴야 했지만, 공개적인 자리에서도 이런 사실이 간과되어 화가 났고 가슴속에는 의구심이 들어찼다. 게다가 나에 대한 비난이 인터넷으로 흘러들어 가서 끊임없이 유언비어를 만들어 낼 때는 견딜 수가 없었다. 나를 폴의 '최근 여자 친구'라고 일컫는 글을 읽으면 내가 폴과 잠자리를 하기 때문에 폴이 함께 다이빙하도록 해준다는 뜻으로 읽혔다.

 

- 이런 말들이 내게 큰 상처를 주었지만, 더 힘든 점은 폴이 내가 이런 문제로 얼마나 괴로워하는지 모른다는 것이었다. 나는 남편이 나를 옹호하며 내가 지닌 장점이나 성과를 언급해 주기를 바랐다. 하지만 폴은 내가 자신의 영역을 내가 침범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나는 폴의 생각과 내가 몸담고 있는 공동체가 나를 지지하는지 알고 싶었다. 하지만 그 문제를 꺼내려고 할 때마다 내가 으스대는 것처럼 들릴 것 같아 스스로 그만두었다. 

 

- 결국 나는 전 세계의 몇 명 되지 않는 여성 테크니컬 다이버들에게 연락을 취했다. 그리고 그들은 나만 이러한 경험을 하는 게 아니라는 사실을 이해하도록 도와주었다. 

 

- 스티브는 이 지역의 동굴에서 탐험가의 이름이 적힌 방향 표시 마커를 제거하고, 그가 일하는 사업체의 이름이 새겨진 밝은 주황색 마커로 교체하는 작업을 하고 있었다. 전통적으로 방향 표시 마커는 탐험가의 이름을 담고 있다. 다이빙할 때 방향을 알아보기 위해 사용하는 단서이기도 하지만, 탐험가의 탐험 범위를 표시하기도 한다. 나는 그런 상징적 표시를 광고로 대체한다는 사실에 화가 났다. 방향 표시 마커에서 섹 엑슬리처럼 역사적인 이름을 발견하는 일은 기쁜 일이었으며, 이는 나를 포함한 다이버들의 노력과 결과를 보여주는 상징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안전을 위한 방향 표시 마커를 상업적으로 활용하는 행위는 신성모독으로 보였다. 쉑 엑슬리나 내 이름이 동굴에서 없어진다는 것은 생각만으로도 불쾌했다. 내가 이 점을 스티브에게 설명하자, 그는 자신이 새로 표시하는 방향 표시 마커가 더 선명하고 밝기 때문에 더 안전하다고 주장했다. 논쟁은 점차 격해졌고, 마침내 스티브는 내게 소리를 질렀다. 
"동굴에서 네 이름이 간판급으로 홍보되는 걸 꼭 봐야 할 만큼 네 생각만 하는 거야?"
스티브는 다이빙 공동체에서 원로급 인사이자 베테랑 탐험가였다. 하지만 그냥 넘어갈 수 없었다.
"그건 역사예요, 스티브 그리고 분명 나만 이렇게 느끼는 것도 아닐 거예요!"

- 이렇게 그에게 내 의견을 말하는 데는 큰 용기가 필요했다. 몸이 떨려왔고 속이 울렁거렸다. 하지만 방향 표시 마커는 열심히 탐사하고 위험을 감수했음을 보여주는 증거라는 사실이 더 중요했다. 방향 표시 마커는 사소하지 않다. 거기에는 나와 다이버들의 희생이 담겨있었다.

 

- 나는 폴이 나를 지지해 주기를 바라며 그를 바라보았지만, 폴은 가장 오랜 친구와 논쟁하길 원하지 않았다. 스티브와 나는 몇 분간 서로에게 고함을 쳤다. 스티브가 내가 분노하는 모습을 보고 비웃자, 나는 폴에게 자리를 뜨고 싶고 스티브의 언행이 무례하다고 말했다. 그의 우상인 쉑 엑슬리가 나와 같은 주장을 해도 스티브가 과연 지금처럼 비웃고 공격적일지 의심스러웠다. 

 

- 나는 찬사에 걸맞지 않은 사람으로 비치는 것은 끔찍이도 싫다. 나는 진정한 성공을 중시했기에 내가 이룬 일에 좀처럼 만족하지 않았다. 그리고 성공하기 위해 모든 노력을 했다. 하지만 자아실현을 한 성공한 여성임에도 확신을 하지 못하고 괴로워했고, 내가 이룬 성취가 보잘것없다고 느끼기도 했다. 그래서 스티브와의 일 이후에 나는 투지를 다지고 노력을 더 쏟아부었다. 동굴 다이빙으로 이뤄낸 것들이 내 힘으로 얻은 것이란 사실을 의심의 여지없이 증명하고 싶었다. 

 

- 내게는 폴의 전 부인인 섀넌 말고는 내가 겪은 일들을 이해해 줄 동성친구도 없었다. 그 당시 섀넌은 내게 든든한 지원군이었다. 그녀는 화려했던 과거를 뒤로하고, 부모로서의 역할에 충실하고자 동굴 다이빙을 그만두었다. 섀넌은 내가 어떤 일을 경험하고 있는지 잘 알았다. 자신도 전에 동굴 다이빙 탐험가였기에 폴의 그늘에 가려져 사는 게 힘들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나는 섀넌이 전에 겪었듯이, 남성 중심적인 영역을 개척해 나가는 여성으로서 진지하게 받아들여지려면 평균적인 남성보다 더 뛰어나게 해내야만 한다고 느꼈다.  

 

- 어쩌면 성차별을 마주했던 경험이 인생에서 이루어야 할 목표를 정하는 데 영향을 미쳤던 것 같기도 하다. 나는 '뛰어난 여성 탐험가'가 아니라 그저 '뛰어난 탐험가로 받아들여지고 싶었다. 또한 여성들이 성별이라는 장벽을 뛰어넘어 자신의 꿈을 성취해 내도록 고무하고 싶었다. 여성들에게 과감히 도전하고, 그 성공은 축하할 가치가 충분하다는 사실을 알리고 싶었다. 이 길에서 혼자이고 싶지 않았다. 

 

- "동굴 안에서 우리 대신 지도를 그려주는 어떤 장치를 조종한다고 상상해 봐. 우리는 눈으로 볼 필요도 없어. 그 장치로 3D에 가까운 지도를 만들고 나면, 지도를 이용해 가상 세계를 만들고 비디오게임처럼 조이스틱으로 조종해 다닐 수도 있지. 2년의 시간과 75만 달러가 있으면 그런 걸 만들 수 있다고." 
빌이 자신 있게 말했다. 

 

- 그로부터 1년 뒤에 그 대화를 다시 떠올리며 이 일이 나의 다음 과제가 되리라는 것을 짐작했다. 이 프로젝트의 실현은 기술을 접목한 동굴다이빙을 한 단계 도약시킬 것이다. 게다가 정밀한 3D 지도의 도움을 받으면, 과학자들은 지구 표면 아래 물이 흐르는 통로가 어디 있는지 찾아낼 수도 있다. 수자원 보호는 정책적으로도 중요한 데다 깨끗한 물에 접근하고 보호하는 건 필수적인 일이다. 다이빙 역량을 향상하는 데도 도움이 되고, 진정한 목적의식을 가지고 프로젝트의 일원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대수층(지하수를 함유한 지층 - 옮긴이)을 늘 접하는 동굴 다이버로서, 이 프로젝트가 인류의 미래를 위해 담수 보존이 얼마나 중요한지 세계에 보여줄 수 있는 기회라 생각했다. 

- 폴과 나는 멕시코에서 인생에서 가장 강렬한 경험을 함께했다. 지금은 평범한 삶을 살고 있지만, 평범하게 사는 것이 우리에겐 쉽지 않았다.

- 재호흡기는 배낭 모양으로 생긴 무거운 생명 유지 장치로, 혼합기체를 바로바로 재활용해서 필요한 비율대로 섞어주었다. 

- 일반적으로 다이버가 호흡하는 공기통에는 대략 21퍼센트의 산소가 들어있고 나머지는 불활성기체로 채워지는데, 대부분이 질소이다. 불활성기체는 인간의 몸에서 어떠한 역할도 하지 않는다. 몸이 산소를 연료로 사용해서 대사작용을 하는 동안, 불활성기체는 몸이 천천히 수면으로 향하면서 수압이 낮아질 때까지 조직에 쌓여있다. 너무 빨리 헤엄쳐 올라가거나 조직에 불활성기체가 너무 많이 쌓여있을 때 수면 위로 올라가면, 우리 몸은 흔든 콜라 병을 갑자기 여는 것과 같아진다. 조직에 녹아있던 공기 방울은 혈액의 흐름을 막으면서 극심한 관절 통증을 일으키거나, 피부 아래 있는 조직을 손상해 멍들게 할 수 있다. 뇌와 척수부위에서 이러한 과정이 일어난다면, 다이버는 마비되거나 사망할 수도 있다. 

- 또 공기통의 산소와 불활성기체의 비율을 조절하는 게 전부는 아니다. 인간은 적당한 양의 산소를 공급받아야 살아갈 수 있는데, 산소가 너무 적으면 의식을 잃고, 너무 많으면 발작이 일어나 익사할 수 있다. 깊이 잠수하는 다이버의 공기통 안의 산소는 더욱 농축되는데, 불 속에 휘발유를 들이부을 때처럼 몸속에 산소가 걷잡을 수 없이 많아지면, 몸이 결국 견디지 못해서 시각장애, 귀울림, 메스꺼움과 발작이 일어날 수 있다. 산소 중독에 의한 발작이 일어나면 대개 경련을 일으키다가 익사한다.

 

- 이를 개선한 장비가 다이버들이 등에 메는 재호흡기인데, 이는 개개인에 맞춰 기체들을 혼합해 주는 장치이자 재활용 기계이다. 재호흡기는 다이버가 내쉰 모든 공기를 모아서 이산화탄소 정화통으로 보낸다. 그 후 기체에 산소가 더해져서 다이버가 대사 작용을 하느라 사용한 산소 분자 수만큼 메꿔준다. 다이버가 있는 수심에 따라 기체가 적절하게 혼합되도록 헬륨과 질소 비율은 계속 바뀐다. 재호흡기의 전자 제어 장치가 이를 조절하기는 하지만 다이버는 상황을 항상 주시해야 하며, 필요한 경우 재호흡기를 직접 조작할 줄도 알아야 한다. 조금이라도 실수하면 죽을 수 있다. 

- 당시 원리는 모두 이해가 갔지만 새로운 장비를 능숙하게 다루려면 수백 시간이 필요할 터였다. 동굴 속 더 멀리, 더 깊이 들어갈 가능성에 흥분되었지만, 한편으로는 해내야 할 일이 벅차 보였다.

 

- 빌이 칠판에 메모를 쓰는 동안, 대부분은 놀라움에 입을 벌린 채 앉아 있었다. 일부는 좋은 방안을 제시하기도 했지만, 나머지는 야유를 퍼부으며 위험한 패거리라고 비아냥대면서 자리를 떴다. 비관주의자나 반대론자들에게는 아무 소용없는 일이다. 나는 빌을 선구자라고 생각했고, 빌의 생각에 대한 내 직감을 믿었기에 나와 동료들은 그와 함께할 수 있었다. 그와 함께라면 꿈을 실현할 수 있다는 생각이 나를 휩쓸고 지나갔다. 

 

- 폴은 프로젝트와 가게 운영의 균형이 기울자, 내가 프로젝트보다 가게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여 주기를 바랬다. 나는 이 프로젝트를 계획하는 데 많은 노력과 공을 들였기에 폴이 그렇게 생각하는 게 원망스러웠다. 나는 폴과 결혼하고 싶었지, 스쿠버다이빙 용품점과 결혼하려던 게 아니었다. 게다가 테크니컬 다이버이자 사진작가로서 명성을 쌓고자 온갖 노력을 쏟아부었는데 이런 식으로 기회를 놓치고 싶지는 않았다. 

 

- 데이터가 제대로 읽히자, 지도가 컴퓨터 화면에 색색의 점들로 보이기 시작했다. 넓게 뚫린 웅덩이가 깔대기 모양의 첫 번째 좁은 통로로 이어지는 모습이 나타났다. 그 너머에는 그랜드캐니언 Grand Canyon이라 이름 붙인 높다랗고 굽은 천장으로 된 공간이 우리 눈앞에서 형체를 드러내고 있었고, 우아한 종 모양의 천장이 드디어 모습을 드러냈다. 그러더니 알려지지 않았던 여러 갈래 길 중 가운데의 구불구불한 통로의 모습이 나타났다. 팔에 소름이 돋았다. 무수한 점이 화면을 채우고 동굴이 3D로 형태를 갖추는 경이로운 장면이 눈앞에 펼쳐졌다. 
"작동했다! 3D 지도 제작기가 드디어 작동했어!"
모두 자축하며 즐거워하는 동안, 나는 화면의 지도를 보며 경계 너머에 펼쳐진 영역을 처음으로 탐험하는 사람이 되리라는 걸 직감했다. 

 

- 1998년 12월 1일, 3개월간 와쿨라 동굴에서 진행될 프로젝트가 시작되었다. 미국 딥케이빙 팀 Deep Caving Team에서는 폴과 나를 8명의 국제탐사 다이버 중 2명으로 공식 지정했다. 나는 탐사를 이끄는 다이버 가운데 유일한 여자이기도 했다. 앞으로 펼쳐질 일에 내가 충분히 해낼 수 있으리라고 확신했기에 기분이 들떴다. 

 

- 그날 늦게 거대한 평상형 트럭이 다이버 전용 숙소의 뒤편으로 향했다. 트럭은 거대한 원통형의 감압 체임버(압축된 공기를 내부에 주입해 다이버가 잠수했을 때와 비슷한 압력의 공기를 흡입할 수 있도록 천천히 압력을 조절하는 장치 - 옮긴이)와 제어장치실, 플로리다에 있는 동굴보다 달 표면에 더 어울릴 듯한 다이빙벨 diving bell(해중에서 관찰이나 조사, 잠수 작업자의 이동 따위에 사용되는 둥근 공이나 종 모양의 잠수 장치. 추진 장치가 없고 모선에서 줄을 매달아 내리는 형태로 운영된다 - 옮긴이) 등의 장비들을 가득 싣고 있었다. 

 

- 그 당시 인터넷은 여전히 새로운 매체로 여겨졌지만, 우리는 그 인터넷을 최대한 활용해 교육을 지원하고 더 많은 자원봉사자를 끌어모으기로 결심했다. 우리는 프로젝트를 홍보하는 블로그도 운영하기 시작했지만 인터넷에 대해 무지했다. '악성 댓글', '사이버 폭력' 같은 단어가 없던 시기였고, 블로그 다이빙 포럼의 악플러들의 댓글은 우리 안에 의심의 씨앗을 뿌렸다.

- 우리는 '광대'나 '따라쟁이'라고 부르는 댓글을 보고 상처받았고, 댓글들이 경쟁심이나 질투에서 나아가 선을 넘기 시작하자 걱정이 되었다. 누군가 우리에게 시체를 담으라며 자루를 보냈고, 서명까지 한 쪽지를 첨부했다. 쪽지에는 [프로젝트가 끝나면 너희가 어지른 건 직접 치워!]라고 적혀 있었다. 온라인 게시글들은 우리가 실패할 것이라 예견했고 사고가 나기를 기원했다. 어떤 사람은 우리가 현장에서 작업을 시작하기도 전에 동굴 한 구역의 가이드라인을 뜯어내고는 [시간 낭비하지 않는 게 좋을 거야. 우리가 다 점령해 버렸거든! - 미국 동굴 탐사 팀에게]라고 적힌 쪽지를 남겼다.

- 이런 고의적인 파손 행위 때문에 없어진 가이드라인을 재설치하려고 추가로 다이빙을 해야만 했고, 프로젝트의 진행 속도는 느려졌다. 이후 우리는 동굴 안에서 더 많은 쪽지를 발견했다.

 

- 나는 불안해졌다. 대체 무엇 때문에 우리가 죽기를 바라는 걸까? 와쿨라에서 감당할 위험이 많을 것이라 생각했지만, 그중 하나가 소시오패스를 상대하는 것이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 내가 속상해하고 있을 때 이를 지켜보던 친구 한 명이 나에게 말했다.

"상황을 주도해. 아니면 그만두든가. 네 마음이 혼란스럽다면 그 문제들이 너를 주도하고 있기 때문이야."
나는 선택해야 했다. 포기할 수도 있었고, 더 강해질 수도 있었다. 대학시절 룸메이트였던 킴의 말이 귀에 들려오는 듯했다.
"극복해 내야지."
이 문제들은 나를 무력하게 만들 수도 있고, 온갖 훼방들도 계속되겠지만, 중요한 건 내가 프로젝트에 계속 참여할 수 있다는 것이다.

 

- 어마어마한 무게의 장비를 몸에 매단 상태에서 긴급 상황을 가정하여 훈련하는 모습은 그다지 고상할 수 없다. 그러나 생존에서 겉으로 보이는 모습은 중요하지 않다. 실제로 효과가 있는지만이 중요했다. 

 

- 먼저 나는 일회용으로 된 성인용 기저귀를 찼다. 전에 가장 오래 했던 수중 탐험보다 두 배는 긴, 12시간 이상 물속에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다음으로는 피부 위에 땀을 흡수하는 소재의 긴 속옷을 입고 두 켤레의 울 양말을 신은 뒤, 방한복 같은 형태와 감촉을 지닌 두꺼운 보온 내피를 입었다. 겉은 드라이슈트와 밑창이 무거운 부츠, 7밀리미터 두께의 네오프렌 후드로 감쌌다. 다이버에게 적당한 온도라고 하는 섭씨 20도에서도 물은 몸에서 열을 빼앗아기에 끊임없이 싸움을 벌여야 했다.  

 

- 나는 몇 시간이나 장비를 조립하고 확인한 뒤, 50미터 정도 떨어져 있는 동굴의 진입 지점까지 뒤뚱거리며 걸어갔다. 강철로 된 16리터짜리 공기통 2개, 잠수복에 부착되어 있는 부력 조절기와 장비로 가득한 배낭 그리고 재호흡기를 문 상태였다. 총무게는 대략 90킬로그램이었다. 이 상태로 앉으면 일어나지 못하기 때문에 허리께까지 오는 물속으로 조심조심 들어갔다. 

- 물속에서 무릎을 꿇자 마법같이 짓눌러 오던 무게가 사라지고 중성부력에 가까운 상태로 바뀌었다. 그다음으로는 안전 담당자들이 3D 지도제작기와 스쿠터, 공기통, 무선 신호기 등의 보조 장비를 물속에 있는 우리에게 차례대로 건넸다. 각 장비를 몸에 부착하고 종합 안전 점검 항목에 표시해 나갔다. 보통 이 단계에서 시간이 많이 걸려서 다이빙을 시작하기도 전에 소변을 누기도 했다.

 

- 작은 구멍이 나거나 잠수복에 물이 들어오는 것과 같은 문제는 치명적이다. 카드에 적힌 문제를 능숙하게 해결하는 것과 동굴 안에서 진짜 비상상황에 대처하는 것은 완전히 다른 차원의 일이었다. 나는 많은 계획과 준비가 위험을 예방하거나 제어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안전점검 목록을 철저히 체크해서 재호흡기를 준비하고 드라이슈트의 밀봉부위가 손상되지 않았는지 주의 깊게 살펴볼 수도 있지만, 그만큼 중요한 것은 예상치 못한 문제에 닥치면 빠르게 상황을 인지하고 대처법을 몸에 충분히 익혀서 머리로 생각하기 전에 행동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모의훈련과 반복연습이 필요했다. 

 

- 전자 재호흡기는 고장을 알아채기 힘들 만큼 사소하게 고장 나기 시작해 나중에는 완전히 망가져 버릴 수도 있기 때문에 리튬 배터리가 폭발하거나 치명적인 기계 고장까지 모든 상황에 대응하는 법을 배워야 했다. 파트너와 함께 다이빙할 테지만, 나의 안전은 스스로 책임져야 했다. 문제에 바로 대처할 준비가 되어있지 않으면 둘 다 죽을 수도 있다. 나는 안전수칙과 안전 점검 목록에 예전보다 더 신경을 썼고, 잘못될 만한 모든 경우를 가정하고 시각화하여 연습했다. 다이빙하기 전 눈을 감고 죽음으로 몰고 갈만한 상황을 하나하나씩 떠올리고는, 마음속으로 스위치와 밸브에 손을 가져다 대가며 비상 모의훈련을 했다. 머릿속으로 비상모의훈련을 할 때는 각각의 비상사태에서 특정한 소리, 심지어 맛까지 느낄 수 있었다. 

 

- 산소가 과다할 때는 상쾌한 봄날의 아침 같은 맛이 났고, 헬륨은 고음의 휘파람 소리를 냈고, 나이트록스(다이빙할 때 쓰는 혼합기체 중 하나로, 질소와 산소가 섞여있으며 대개 산소 함량이 21퍼센트보다 높다 - 옮긴이)는 따뜻하고 밀도가 높았다. 산소 주입 밸브는 박자에 맞춰 딸깍거렸고, 순환 회로로 들어가는 쉭하는 소리가 함께 들렸다. 

- 재호흡기는 내 몸에서 일어나는 생리작용의 일부가 되었다. 나는 이상한 소리가 나거나 이상한 느낌이 들면 무엇을 실행해야 할지 바로 알아차렸다. 머릿속으로 한 비상 모의훈련 덕분에 어떤 일이 닥치든 대처할 수 있다는 자신감과 함께 수면 아래로 내려갈 수 있었다.

- 우리는 슬픔에 빠졌다. 빌은 절친한 친구를 또 한 명 잃었고, 세상은 뛰어난 탐험가이자 과학자를 잃었다. 우리는 소중한 것을 잃었으나, 그만큼 현명해졌다. 죽어가는 사람을 안으면 삶이 뒤바뀐다. 당신이 믿든 믿지 않든, 모든 것이 달라졌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었다. 

 

- 두 건의 사고가 일어난 뒤 주립공원 측의 우려를 불식시키는 데는 자신감이 필요했고, 강한 정신력으로 무장해야 했다.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솔직하게 이야기했고, 더는 사고가 일어나지 않도록 하겠다고 공무원을 설득해야 했다. 고맙게도 케이커크가 탐험 다이빙을 그만두고 상근안전 담당자를 자청했다. 나는 더 크고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냈고, 다이빙의 모든 것을 관리하는 데 만전을 기했다. 

 

- 소중한 친구를 잃은 것뿐만이 아니었다. 모두가 겪은 집단 공황, 헨리를 물 밖으로 끌어낼 때의 소리와 감촉, 죽어가는 헨리의 몸에서 나던 냄새. 이 전부가 기억으로 남아 마음속에 생생하게 새겨졌다. 비슷한 소리나 냄새만 나도 관련 없는 과거의 트라우마를 비롯해 나를 괴롭히던 기억이 머릿속을 휩쓸었다. 때로는 마음이 무거워 집중하기 힘들었다. 나는 웨슬리에게 이런 반응이 정상인지 물었다. 그가 답했다.

"정상이냐고? 질, 그런 면이 바로 너를 인간으로 만드는 거야. 누구나 살면서 어려운 일을 겪어. 중요한 건 그런 일을 겪은 뒤에 어떻게 변화하느냐지."
생각이 복잡했지만 웨슬리는 다른 주제로 넘어가 이야기했다.
"질, 너는 내 사업에 필요한 재능을 가지고 있어. 디자인도 하고, 조직관리도 하면서 유능한 다이버이기도 하잖아. 난 프로듀서가 필요해. 어떻게 생각해?" 

나는 솔깃해 자신 있게 대답했다.

"멋진데! 그래, 할게. 그런데 프로듀서가 뭐야?" 

- 우린 마주 보고 웃었다. 그 대화로 나는 한 단계 발전했다. 웨슬리와 함께 일한다면, 탐험을 그만두지 않고도 나의 창의적인 기술을 모두 활용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경력을 쌓으려면 다양한 능력이 있어야 했다. 글쓰기, 조직 관리, 다이빙, 사진 찍기와 영상 촬영 기술 전부 중요하다. 카메라 앞에서도 편해져야 했다. 특정 분야의 전문가는 많지만, 여러 재능을 가진 사람은 찾기 힘들다. 나는 적절한 시간과 장소에 있었다. 빌과 폴이 내 탐험 멘토라면, 웨슬리는 수중 촬영의 멘토가 될 것이다. 그는 나를 잘 아는 친구로서 내가 발전하도록 도와줄 것이다.

 

- 나는 인생의 다른 영역에서도 자신감을 얻었고 자존감도 늘었다. 나는 폴에게 미래에 무엇을 하고 싶은지 정확히 이야기했다. 웨슬리와 함께 일하게 된 건 무척이나 설레는 일이었다. 내 능력에 새롭게 자신감을 느끼면서 보람 있는 일을 추구하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 깨달았다. 사회나 폴의 기대에 맞추려고만 하면 절대 행복해지지 않을 것이다.

 

- 나는 탐험 후 자아도취에 빠져 있었다. 내가 원하는 일이 전부 실현 가능해 보였고 낙관적이었다. 반면 폴에 대해서는 확신이 없었다. 폴도 그런 인생에 흥미를 느꼈지만, 스쿠버웨스트에 훨씬 큰 애착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내가 여러 시도를 하는 데 딱히 반대를 하지는 않았지만, 내가 성공하리라고는 생각하지 않는 듯했다. 

 

-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찾기는 했지만, 자꾸만 끔찍한 사고와 죽음이 따랐다. 꿈을 좇는 대가일까? 생명을 구한 기쁨으로 춤이라도 추어야 했지만, 나는 다이버란 직업을 가짐으로써 감내해야 하는 현실을 또 마주했다. 

- 나중에 그 수강생이 헨리와 비슷한 실수를 저질렀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그는 사전 점검을 하면서 재호흡기 화면을 보지 않았고, 산소 공급을 활성화하지 않았다. 정말이지 살아있는 게 행운이었다. 안전 수칙을 철저히 지키지 않는 것이 어떠한 엄청난 결과를 보여주는지 뼈저리게 느끼고 더욱 신중해졌다. 여전히 어렵고 까다로운 다이빙을 수행하겠지만, 안전수칙을 지키는 데 한 치의 빈틈도 없어야 했다.

 

- 나는 와쿨라 스프링스의 깊은 곳에서 세계 기록을 보유한 다이버가 되었지만, 프로젝트는 씁쓸한 기억을 남겼다. 상상하던 것 이상을 해낼 수 있다는 사실을 배웠지만, 최선을 다해도 여성으로서 충분치 않다는 점도 알았다. 경력을 쌓으려는 많은 여성 다이버의 열의를 꺾는 유리 천장에 간신히 흠집 정도만 냈을 뿐이다. 와쿨라에서 성공을 맛본 뒤, 자신과 다른 여성들을 위해 이런 현실을 바꾸기로 결심했다. 

 

- 난 나의 힘과 의지를 총동원해도 생사 여부를 바꿀 수 없다는 사실과 더불어 여성 다이버의 기록이 일부 적대심 가득한 남성들도 바꿀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하지만 나는 선택할 수 있다. 직업도, 관계도, 행복도, 선택할 수 있다. 

 

- 어쩌면 우리의 결혼 생활은 다이빙 파트너 관계로 변화하는 걸까? 폴과의 로맨스는 시들해졌지만, 파트너 관계로는 편했다. 사랑은 사라졌지만, 우리는 파트너로서 여전히 함께 일하고 경험을 즐길 수 있었다. 

 

- 나는 실패를 '배움의 기회'라고 말하곤 한다. 다른 사람들이 나를 비난한다면, 내가 무언가 도전적이거나 대단한 일을 하고 있다는 증거였다. 나는 확신이 생겼기에 이제 상상도 할 수 없는 것을 탐험하고 경험하기로 결심했다. 

 

- 꿈꾸며 도전하는 사람은 창의적인 사람들을 가까이에 두어야 한다. 그러한 부류의 사람들은 번뜩이는 생각과 열정으로 가득하고 생각을 현실로 바꿔놓기 위해 함께 일한다. 그들은 새로운 가능성을 본다. 그리고 얼음장 같은 물에 뛰어들거나 자신을 변화시키고, 불편한 일이나 한 번도 실현된 적이 없는 일을 기꺼이 한다. 

- 웨슬리는 나에게 이런 파트너였다. 우리는 서로의 아이디어에 자극받고 창의적인 결과물로 발전시켰다. 놀라운 일을 해내기 위해 함께 브레인스토밍하고 거기에서 나온 생각들을 정리하고 계획을 세웠다. 한 사람에게 기술이나 새로운 생각이 부족할 때면, 다른 사람이 그 공백을 메꿔주었다. 또한 웨슬리는 주변 시선에 애쓰거나 부응하지 않았다. 폴을 기쁘게 해 주려고 나 자신을 바꾸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을 일깨워 주었다. 나 자신이 행복하지 않으면 그건 인생을 낭비하는 것이다.

 

- 이걸로 끝이었다. 접근은 거부되었다. 우리는 미국 정부의 허가나 지원을 받을 수 없었다. 그러나 미국과 뉴질랜드의 이중국적을 가진 그레그가 끊임없이 협상하고 서류를 제출한 끝에, 한 달 뒤에 뉴질랜드에서 허가를 받아내는 데 성공했다. 뉴질랜드 정부는 탐사를 지원하거나 비상시 우리를 구출해 줄 수는 없지만 남극에 가는 데 필요한 승인을 해주었다. 

 

- 남극으로 간다는 건 보호받아야 하는 다른 행성으로 가는 일과 흡사했다. 1991년에 채택된 마드리드 의정서 Madrid Protocol는 탐사와 허가에 관한 규칙을 만들면서 남극 환경을 영구적으로 보호하려는 첫 발걸음을 떼었다. 보존을 위한 계획의 주요 내용은, 향후 적어도 50년간 광물자원의 개발을 금지하는 것과 폐기물을 관리하고 해양오염을 방지하고 동식물을 보호하기 위한 규정을 세우는 것이었다.

 

- 의정서는 보호구역 체제를 만들었고, 남극에서 이루어지는 활동은 사전 환경영향평가를 거치고 결과를 발표할 것을 요구했다. 오염되지 않은 대륙에 의도치 않게 바이러스와 세균을 실어 나를 수 있으므로, 배에 타고 내릴 때마다 신발에 묻은 오염물질을 제거해야 했다. 그릇이나 싱크대 거름망에 남은 음식물 찌꺼기는 모두 빈 연료통에 모았다가 도로 가지고 돌아가야 했다. 남극조약에 따라 몇몇 음식은 엄격히 금지되었다. 그 가운데 하나는 닭고기였는데, 고기에서 옮은 조류 질병이 남극 토착 조류를 말살할 수 있기 때문이다. 

 

- 우리는 잠수병에 걸릴 위험을 신중히 고려해 대비해야 했다. 가장 가까운 감압 체임버는 4,000킬로미터 떨어진 뉴질랜드에 있었고 보트로 2주가 걸렸다. 만약 그곳에서 잠수병에 걸린다면 제대로 된 치료를 받기는 힘들 것이다. 또 우리가 타고 갈 배 안에는 감압 체임버 설치를 위한 공간이나 설비가 없었다. 따라서 우리가 세우는 다이빙 계획은 어느 때보다도 치밀하며 보수적인 계획이어야 했다.  

 

- 남아메리카와 남극반도 사이에 있는 드레이크 해협 Drake Passage은 파고가 30미터에 이르기도 하는 무시무시한 곳이었지만, 횡단에는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리고 관광객 대부분이 남극반도에서 가장 따뜻한 지역에 머물며 실제로 남극권이 시작되는 남위 66도까지는 가지 않는다. 아주 짧고 예측할 수 없는 여름에, 그것도 뉴질랜드에서 로스해로 향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그래서 남극 탐험을 다녀왔다고 자랑스럽게 말하는 사람을 만나면, 미안하지만 나는 숨죽여 웃곤 한다. 관광객들의 탐험은 사전에 신중하게 짜놓은 계획된 경로이기에 생사를 넘나드는 실제 탐험과는 비교할 수 없다. 

 

- 브레이브하트호가 절규하는 가운데 나는 폴과 나의 감정의 장벽에 관해 생각했다. 한때 폴을 누구보다 잘 안다고 확신했기에 결혼했고 평생을 그와 함께하겠다고 맹세했다. 하지만 지금은 내가 폴이란 사람에 대해 몰랐던 건지, 내 자신을 모르는 건지 모르겠다. 

 

- 기존의 가족이란 개념을 보면 여자는 결혼해서 행복한 아이와 가정을 꾸리고, 남자는 오래 존중받는 일을 해서 가족을 보살펴야 한다. 그렇다면 나는 제대로 해내지 못했다. 이런 기존의 관습이 결혼이란 것을 하는 데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그리고 이혼한다면 인생에서 가장 큰 실패가 될 것 같다는 느낌도 들었다. 하지만 사회의 관습을 순순히 따르면서 폴을 행복하게 해 주려고만 노력하는 사람이 되고 싶지는 않았다. 

 

 

나는 질도 행복하게 해주어야 했다.
그러려면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솔직해져야 했다.

 

 

- 나는 우리 모두에게 만족스럽지 못한 결혼 생활을 감내해 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러나 다시 시작하기가 겁이 났고, 폴에게 상처를 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걱정이 앞섰다. 자신을 우선시하고 싶었지만 이기적이라는 단어가 귓가에 맴돌았다. 폴과 이혼하는 게 이기적인 행동일까? 결정해야 할 중대한 문제들이 남아 있었다. 

 

- 마침내 고비를 넘기고 리틀턴 항구에 들어서자 갑자기 스위치를 끈 것처럼 파도가 사라졌다. 완만하게 경사진 초록색 언덕이 내려앉아 있었고, 공기 중에는 야생화 향기가 가득했다. 이곳은 역사적으로 특별한 의미가 있는 항구로, 유명한 남극 탐사 대부분이 여기에서 시작되었다. 로버트 팰컨스콧 경 sir Robert Falcon Scott과 어니스트 섀클턴 경, 로알 아문센 Roald Amundsen을 비롯해 여러 사람이 이곳에서 탐험을 시작했다. 모든 이의 기록에서 리틀턴은 고단한 여행 끝에 그들을 반갑게 맞이한 오아시스이자 집처럼 안락한 피난처였다. 

 

- 할 수 있는 일이라곤 난타를 견뎌내는 것뿐이었다. 나는 몸과 마음이 지친 채로 겁에 질려 벽과 침대 위에 놓인 옷더미 사이에 누워서 떨어지지 않으려고 버텼다. 이날 배의 경사계는 50도로 추정된다고 했다. 배의 이등 기관사인 존 John은 자신이 여태까지 항해하며 본 것 중 이번이 최고 기록이라고 말했다. 경사계의 바늘은 계기판의 숫자를 넘어가서 고정된 채 항해 내내 같은 자리에 머물렀다. 
"왜 계기판 숫자가 45도에서 끝나는 거죠?"
내가 순진하게 존에게 물었다.
"그보다 더 심하게 기울어지면 대개는 난파되어서 복원할 필요가 없거든요."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우리는 정말 운이 좋았던 것이다.

 

- 나는 줌아웃해서 뒤에 있는 배를 보여주었다. 누구라도 겁먹을 정도로 훌륭한 표정 연기였다. 내가 촬영하는 동안, 이등 항해사인 매트가 웨슬리와 배 사이에서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홀딱 벗은 채로 뛰어다니면서 마구 팔을 흔들었다. 스트레스가 극에 달하면 사람들은 종종 내면의 깊숙한 어둠 속에서 원초적인 유머 감각을 찾곤 한다. 

 

- 깊은 안도감이 들었다. 위험과 마주할 때면 그로 인한 끔찍한 결과는 되도록이면 생각하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걱정이란 것은 전염성이 있고 유해하기에 나 자신과 다른 사람들을 위해 긍정적인 관점을 유지하려고 노력했지만 어떤 상황에서나 이를 유지하기에는 쉽지 않았다. 

- 일단 안전해지고 나니 내가 처했던 현실이 생생하게 와닿았다. 하마터면 배가 부서지고 생명을 잃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생각을 할 시간이 없었다. 처리해야 할 일이 많았다. 남반구의 여름이 끝나가고 있었기 때문에 스토리 제작에 필요한 영상을 담으려면 바로 다이빙을 시작해야 했다. 파도는 위험하고 바닷물은 차갑겠지만, 일단 파도 아래 물속으로 들어가면 이제 그곳은 내게 마련된 자리였다.

- 배를 가둬두었던 부빙에서 멀어진 후에 몇 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있는, 눈부시게 아름다운 빙산을 발견했다. 높이가 30미터에 가까웠고 뾰족한 봉우리는 오후의 햇빛이 반사되며 분홍색으로 타올랐다. 현재 우리의 위치는 B15에서 30킬로미터밖에 떨어져 있지 않다고 추정했지만, 연료를 아끼고 다이빙을 하기 위해 배를 멈췄다. 

 

- 먼저 민물로 넘어가는 흐릿한 구간을 지나자, 아름다운 넓은 틈이 어둠 속으로 깊이 뻗어 있었다. 물결 모양의 얼음 표면에 갇힌 햇빛이 깊숙한 틈을 은은히 비추는 듯했다. 내 아래에는 암흑뿐이었다. 빙산 표면은 옴폭옴폭 파여 있었고 엄지손가락만 한 투명한 물고기가 손전등의 빛이 반사된 눈으로 놀라서 주변을 이리저리 도망 다녔다. 물고기는 얼음벽에 있는 굴 안으로 쏜살같이 파고들더니 우리를 지켜보았다. 더 깊이 들어가면서, 혹시 우리가 통과한 틈이 변화하는 조류에 의해 닫혀버리지는 않을까? 아니면 틈이 점차 넓어지고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 그런 부정적인 생각을 떨쳐내고자 얼음 궁전의 아름다움을 감상하는 데 집중했다.  

 

- 처음 보는 장소의 장엄함에 황홀해졌지만, 주기적으로 손목의 다이브 컴퓨터를 보며 시간과 수심, 수면까지 올라가는 데 걸리는 시간과 압력, 산소 농도를 확인했다. 마스크의 한쪽 화면에는 생명 유지와 관련된 현황이 요약되어 있었다. 이 모든 현황에 관한 정보는 재호흡기가 제대로 작동한다는 사실을 알려주었다.  

 

- 마침내 우리는 수심 40미터에 있는 해저에 도달했다. 손목에 있는 컴퓨터를 힐끗 보니 이 지점까지 오는 데 15분이 걸렸다. 빙산은 거대한 기 등에 의해 붙들리면서 해저까지 닿아 있었고, 그 사이로 1.5미터 높이의 통로가 생긴 것이 보였다. 덕분에 우리는 빙산의 아랫부분을 자유롭게 탐험할 수 있었다.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기뻤다. 바로 우리가 찾고 싶었던 곳이었다. 청록색 천장 아래에 있는 동굴 바닥은 내가 이제껏 보아온 어떤 것과도 달랐다. 빽빽하게 모여있는 생명체들은 온갖 화려한 색을 발하며 카펫처럼 깔려있었다. 선명한 붉은색과 주홍빛의 울퉁불퉁하게 생긴 해면과 흔들거리며 떠 있는 여과 섭식자를 비롯해 신기한 생명체들이 바닥을 덮고 있었다. 바람에 휩쓸리는 밀밭처럼 바닥 생물들의 돌기가 흔들렸고, 그 사이로 거대한 바퀴벌레 같은 등각류가 헤엄쳐 다녔다. 검은색과 주황색 줄무늬를 지닌 뾰족뾰족한 게는 젓가락 같은 다리로 바닥을 가로질렀다. 철저히 고립되어 있어, 여태까지 발견되지 않았던 생태계가 어둠 속에서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나는 경외감에 휩싸였다. 폴과 나는 경이로운 생명체로 이루어진 카펫 위를 떠가면서, 우리가 경험한 과정과 발견한 생명체를 촬영했다. 아마 정말 특별한 영상이 될 것이다. 

 

- 그때 갑자기 깊은 곳에서 우르릉 대는 이상한 소리가 물속에 울려 퍼지며 정적을 깼다. 보트 엔진 소리였을까? 아니면 다른 것이었을까? 우리는 45분 동안 잠수했고, 돌아갈 시간이라고 판단했다. 탐험할 만한 장소를 찾아냈으나 제대로 촬영하려면 더 커다란 카메라와 가장 큰 영상 촬영용 조명이 필요했고, 지금 우리에겐 장비가 없었다. 

 

- 틈 사이로 헤엄쳐 가서 보니 길고 좁은 입구가 그사이 막혀 사라졌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머리 위로 들어오는 산란된 빛 아래 하얀 얼음덩이들만이 보였다. 폴이 얼음덩이 아래에서 나갈 길을 찾는 모습을 지켜보면서도 나는 그때까지 상황의 심각성을 실감하지 못했다. 출구가 사라졌지만 갇혔다는 생각이 바로 들지 않았다. 그러다가 아드레날린이 솟아오르며 순식간에 몸을 덮쳤다. 공포에 대한 반응이었다. 나는 폴과 함께 커다란 조각을 옆으로 밀어내며 얼음덩이 사이로 길을 찾아내려 애썼다.

 

- 마침내 우리는 파란 바다로 통하는 틈을 찾아 겨우 빠져나왔다. 그리고 커다란 얼음판을 가까스로 치운 뒤, 수면 위로 올라가기 전 5분간 감압 정지를 할 장소를 찾았다. 무슨 일이 벌어졌던 건지 정신없는 와중에 나는 물 위를 올려다보았고, 웨슬리와 매트가 하이파이브하며 껴안는 모습이 보였다. 폴과 나는 감압을 마친 후 화창하고 쌀쌀한 수면 밖으로 나왔다. 

- 그런데 우리보다 동료들이 맞이했던 상황이 더 긴박했다. 그들이 우리의 귀환을 기다리고 있을 때, 빙산에서 커다란 얼음벽이 벗겨져 요란한 소리를 내며 고무보트 바로 옆으로 떨어져 내렸다. 그때 발생한 너울이 고무보트를 뒤집고 침수시킬 뻔했지만, 웨슬리와 매트는 급히 보트를 얕은 물로 이동시켰다. 화창한 날의 열기로 빙산이 녹고 있었고, 그로 인해 빙산이 불안정해졌다. 그때 빙하 조각의 일부가 우리가 들어갔던 입구를 막았던 것이다. 

 

- 다이빙 후 상황을 검토하면서 정신이 번쩍 들었다. 팀원들은 우리가 스스로 새로운 출구를 찾아내야 하고, 자신들이 도울 방법이 전혀 없다는 사실을 알고 걱정으로 애를 태웠다. 아마 우리가 돌아오지 않았더라도 수색하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번 일을 겪고도, 폴과 나는 빙산동굴 속으로 다이빙하는 게 얼마나 위험한지 절실하게 깨닫지는 못했다. 스스로 모든 상황을 해결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다이빙을 계속할 예정이었다. 

- 며칠 후, 우리는 다시 빙산으로 되돌아갔다. 우리는 같은 동굴로 들어갔고, 해저에서 자라는 경이로운 생명체들을 담기 위해 빠르게 통로들을 지나갔다. 이번에는 얼음의 독특한 특징에 더 주의를 기울였다. 눈이 쌓여 이루어진 층을 지나고 있으니 내가 타임캡슐을 통과하며 내려가고 있다는 사실이 강하게 와닿았다.

- 얼음은 층마다 역사를 담고 있었다. 어떤 층은 하얗고 기포가 많았다. 하지만 1~2미터 아래로 가면 푸른빛이 도는 반투명한 띠가 나타났다. 조금 더 깊은 곳으로 가면 얼음이 유리만큼이나 투명해졌다. 어떤 공간은 너무 투명해서 빙산 더 깊숙한 곳으로 이어지는 통로라고 생각했지만, 가까이 다가가 보니 전체가 투명한 얼음으로 된 유리벽이었다. 

- 빙산 아래에 도달하자 멀리서 희미한 빛이 비치는 게 보여 그쪽으로 빠르게 헤엄쳤다. 거리를 가늠할 만한 물체가 없었기에, 빛이 비치는 곳은 가까워 보이기도 했고 도달할 수 없을 정도로 멀어 보이기도 했다. 우리는 오래 헤엄쳤다. 하지만 멀리 있는 빛은 더 커지지도, 가까워지지도 않는 듯했다.

 

- 아슬아슬한 두 번의 위기를 겪고도 다시 빙하 밑으로 간다는 것은 정신 나간 짓처럼 보이겠지만, 바로 다음 날 우리는 또다시 다이빙 준비를 했다. 자연의 치명적인 유혹과 극한의 위기 상황이 겹치면 위험을 판단하는 시각이 왜곡된다. 남극 탐험을 계획하던 순간부터, 많은 사람이 우리를 무모하다고 말하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극한의 지역, 얼마 남지 않은 기한, 몇 번의 위험한 상황들은 위험을 평가하는 기준점을 변화시킨다. 뇌는 새로운 상황과 느낌에 기민하게 반응하지만, 흔한 일에는 도통 초점을 맞추지 못한다. 우리는 새롭지 않은 것에 더는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다. 

- 그런 이유로 탐험가들은 필연적으로 안일함에 빠져들고, 때로 뒤늦게서야 그 사실을 깨닫는다. 자살 행위나 마찬가지라고 여겨졌던 일이 어느 날에는 가능해 보이고 정상적으로 보이기까지 한다. 예전에 위험하다고 생각했던 일이 도전 과제로 여겨지기도 한다. 팀 전체가 위험한 상황을 받아들이면 그 상황이 정상인 것처럼 느껴진다. 모두 상황이 합리적이라고 느끼면 실제로도 그러리라는 생각이 든다.

 

- 이러한 경향을 보여주는 좋은 예로, 우주왕복선 챌린저호 폭발사고가 있다. 그 무렵에는 이미 우주를 왕복하는 일이 흔해졌고, 탐사는 사고 없이 반복되었다. 우주왕복선이 발사되고 귀환할 때 지켜보는 사람도 거의 없었다. 우주여행은 대중의 흥미를 끌지 못했다. 그리고 1986년 1월 28일 챌린저호는 발사 73초 후 대서양 상공에서 폭발했다. 

 

- 그렇다면 다시 한번 다이빙을 하는 게 분별 있는 행동일까? 
우리의 임무를 생각했을 때 옳은 일이라고 느껴졌다. 영상이 필요했고 연료가 떨어져 가고 있어서 서둘러 뉴질랜드를 향해 뱃머리를 돌려야 했다. 팀 회의에서 계획이 승인되자, 폴과 나는 물속으로 들어갈 준비가 된 웨슬리와 함께 다이빙을 준비했다.

 

- 감각이 예민해졌고 상황에 더 집중했다. 숨이 가쁘고 심장이 고동쳤다. 온 힘을 다해 발을 차며 헐떡이고 있었기에 이산화탄소가 쌓이는 건 아닌지 걱정되었다. 재호흡기를 착용하고 있을 때 이러한 상황은 특히 위험했다. 이산화탄소가 너무 많으면 장비가 처리할 수 있는 한도를 넘어서고, 그로 인해 다이버는 의식을 잃을 수 있다. 호흡을 제어해야 했다. 지난 몇 년간 배우고 연습해 왔던 모든 것을 동원할 때였다. 빙산 아래에서 나오는 데 성공하지 못하면 우리 모두 끝이었다. 서서히 심부 체온이 내려가면서 몸의 대사 과정에 문제가 생길 테고 결국 얼어 죽게 될 것이다. 

- 내 의식의 범위는 터널처럼 좁아졌고, 두 동료가 이곳에 함께 있다는 사실만 희미하게 의식하고 있었다. 그 둘도 각자 나름대로 투쟁하고 있었다. 서로를 도울 수도 없다. 각자 자기만의 수렁에서 벗어나려고 당기고 차고 당기고 차기를 반복했다. 

- 깊은 곳에서 보내는 아찔한 매 순간에는 결과가 뒤따랐다. 수면으로 가는 출구에 다다라서도 감압으로 오랜 시간을 보내야 한다. 빙산 속 동굴에서 탈출하더라도 다른 큰 고통과 선택을 마주해야 한다. 지독히 추운 물속에서 감압하며 머무르거나 수면으로 일찍 올라가는 대신 고통스러운 잠수병에 걸리거나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했다. 아이러니했다. 동굴 속에서 무사히 나가더라도 잠수병이나 저체온증으로 죽을 가능성이 있었다.

 

- 우리 셋 모두 안전하게 돌아가는 것만이 중요했다. 안전히 돌아가는 목록에 장비는 포함되지 않는다. 아무리 비싼 장비라도 그건 마찬가지였다. 

- 나는 목숨 우선순위로 두기보다 장비를 가져오는 데 중점을 두었던 친구들을 이미 많이 잃었다. 그들은 장비를 가지러 나중에 다시 돌아오는 대신에, 고장 난 수중 스쿠터나 물이 찬 재호흡기를 끌고서 동굴 안에 미리 설치된 다음 공기통에 닿기 위해 물속에서 빨리 헤엄쳐 갔다. 하지만 결국 목적지에 다다르지는 못했다. 

 

- 나는 기다리는 게 어떤 느낌인지 안다. 눈앞에 펼쳐지는 재앙을 바꿀 힘이 없는 게 어떤 느낌인지도 안다. 어쩌다가 아무도 보지 못하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 장소에서 죽음을 마주하는 상황에 처하게 되었을까? 그럴 만한 가치가 있었을까? 충실하게 인생을 산 것일까, 아니면 불필요한 위험을 떠안은 걸까? 내 묘비명에는 '용감하다'는 말이 적힐까, 아니면 '어리석다'는 말이 적힐까? 

 

- 마침내 동굴의 경계에 이르렀고, 굵은 하얀 빛줄기가 보이자 작은 안도감을 맛보았다. 하지만 수면까지 어떻게 올라갈지 알아내야 했다. 물살이 내리눌렀기에 얼음벽을 타고 올라야 했지만, 벽은 미끄러웠다. 찍고 올라갈 얼음도끼를 얻기 위해서라면 팔도 내놓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때 얼음 굴 속에 파고들던 물고기들이 떠올랐다. 물고기들은 웅크린 채 우리가 투쟁하는 모습을 구멍 안에서 지켜보고 있었다. 안타깝지만 그들은 다이빙의 첫 피해자가 될 것이다. 

 

- '쫓아내서 미안해, 친구'라고 생각하며, 몸을 벽에 밀착하고 오른쪽 집게손가락을 구멍 안으로 밀어 넣었다. 물고기가 미끄러지듯이 스르르 쫓겨져 나왔다. 나는 왼쪽 손을 위로 뻗어, 움푹 팬 구멍에 집게손가락을 넣어 또 다른 입주자를 쫓아냈다. 덕분에 몸을 30센티미터 정도 위로 끌어올릴 수 있었다. 

 

- 나는 다음 구멍을 찾아보았다. 물고기 굴은 하얀 얼음 바탕에서 잘 보이지 않았기에 더욱 집중했다. 나는 일정한 리듬에 따라 한 손씩 벽을 짚고 타고 올라가며 하늘로 향했다. 내가 하는 걸 보며 폴과 웨슬리도 곧바로 따라 올랐다. 손가락을 넣을 때마다 쫓겨난 물고기는 잽싸게 텅 빈 곳으로 사라졌고, 우리는 계속해서 벽을 타고 올랐다. 
 

- 수면에 조금씩 가까워지면서 덩달아 긴장이 조금씩 풀렸다. 더는 손에서 감각이 느껴지지 않았지만, 조금씩 풀린 긴장감으로 주변의 아름다움이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풍경에 집중하며 추위를 잊으려 했다. 떠가는 얼음 아래 춤추는 주황색 크릴새우 무리가 보였다. 신비하고 다양한 해파리들과 호기심 많은 게잡이물범 2마리가 주변을 돌아다녔다. 미식축구공같이 생긴 젤리 같은 생명체도 보였다. 장미색 몸체의 입술 크기의 벌어진 몸을 오므릴 때면 가느다란 섬모가 전기가 흐르듯 다채로운 색으로 빛났다. 해양생물 덕분에 추위로 떨고 있는 몸에서 관심을 돌릴 수 있었다. 추울 때는 고통에서 관심을 돌리기 위해 무엇이든 하게 된다. 해파리와 노는 것도 그 시간을 견뎌내게 도와주었다. 

 

- 매섭게 추웠고 바람 때문에 얼굴이 얼얼했다. 붓고 갈라진 입술과 혀는 차가운 소금으로 아렸다. "오늘은 동굴이 우리를 보내주지 않으려 했어요."라는 한마디 밖에는 말할 기운이 없었다. 

 

- 빙산 안에서 포기하는 것은 쉬웠을 것이다. 물살에 맞서서 뒤로 밀려날 때, 나는 의지를 잃고 있었다. 나아갈 길이 막막했고 얼음 안에서 죽고 말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나는 마지막 순간까지 온 힘을 다해 싸우겠다고 결심했다. 그리고 닥친 상황을 작게 나누어 생각했다. 수면의 빛줄기를 향해 몸을 조금씩 당긴 것은 3센티미터의 승리였으며, 가쁜 숨을 진정시키고 호흡을 제어한 일도 또 하나의 성공이었다. 그러면서 나는 작은 단계 하나하나가 최종적 승리로 이끈다는 사실을 배우고 있었다. 목표를 주시하며 절대로 포기하지 않아야 했다.  

 

- 눈앞에서 마지막 신음을 하며 빙산이 마침내 최후를 맞이했다. 산산이 부서지는 얼음과 흔들리는 파도가 진정되기까지 10여 분이 걸렸고, 그 여파로 얼음 조각이 표류하며 얼음 지뢰밭을 형성했다. 배에 있는 18명 전부가 조타실과 난간에 줄지어 모여서 할 말을 잃고 바라보고 있었다.

- 나는 방금 목격한 장면으로 충격을 받아 넋이 나갔다. 우리는 불과 몇 시간 전에 동굴을 떠났다. 빙산이 무너져 내릴 때 그 안에 있었다면 우리는 죽었을 것이다. 더는 의논할 필요가 없었다. 확실한 경고를 받았고 더는 운을 시험해 볼 엄두가 나지 않았다. 보름달 아래 해수면이 얼어가자 이제 남극을 떠날 때임을 알았다. 성공이라 여기는 것에 최대한 가까이 가려 노력해야 하지만, 얼마나 노력했건 되돌아갈 시점을 알아야 한다.

- 남극에서 돌아오고 얼마 되지 않았을 때, 나는 폴과의 결혼 생활을 끝낼 때가 다가오고 있음을 깨달았다. 죽을 뻔한 일을 함께 경험하면서도 우리는 가까워지지 않았다. 돈독해지는 대신 더 멀어지기만 했다. 함께한 다이빙 여행은 삶에서 가장 소중한 순간이었지만, 결혼 관계를 유지시켜 줄 만큼 충분치는 않았다. 나는 폴이 생각하는 아내의 역할을 해낼 수 없었다. 본래 모습에서 점점 멀어지는 것 같아 혼란스러웠고, 맞지 않는 옷을 입은 듯 불편했다. 

 

- 나는 변화를 좋아했고 폴에게는 안정이 필요했다. 나는 오늘에 충실하기를 원했고, 폴에게는 안정된 미래가 필요했다. 나는 남은 인생을 어떻게 살아갈지 머릿속에 그려보았고, 그 미래에 더는 폴이 포함되어 있지 않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내게는 좇고 싶은 꿈이 있었고, 결혼 생활에서 벗어나지 않으면 나 자신을 제대로 알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나는 우리가 함께 경험했던 추억을 소중히 여기기로 했다.

 

- 얼음으로 덮인 바다는 밀려갔다 밀려오고, 얼었다가 녹는 과정을 반복한다. 그런 바다에서 탐험을 계속할지 후퇴할지는 스스로 결정한다. 나는 대자연과 신체의 한계를 그 어느 때보다 분명하게 인지했고, 인간 정신력의 한계 또한 발견했다. 나는 뒤에 남아 기다리기보다 직접 탐험하는 편을 선호했다. 기다리는 건 고통스러웠다. 기다림은 고뇌와 부정으로 가득 차 있었다. 

 

- "얼마나 오래 기다리나요, 질?"
줄리가 간절히 물었다. 영문을 알 수 없는 질문이었지만, 그녀에게 무언가 심각한 문제가 생겼음은 분명했다.
"남편이 집에 돌아오기까지 대개 얼마나 오래 기다리죠?" 

- 내가 호텔 방에서 줄리를 위로하는 동안, 러마는 카우 스프링에서 그녀의 남편인 크리스의 시신을 찾아왔다. 크리스의 몸은 출구 쪽을 향한 채 동굴 안에 떠 있었고, 공기통 안에는 상당한 양의 혼합기체가 남아있었다. 크리스는 수면 장애로 중간에 잠들었을 것이다. 무리하다가 익사한 듯 보였다. 혼자 하는 다이빙은 절대 피해야 한다. 

- 익사하기 전 다이버의 마지막 순간이 어떠한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2007년 1월, 나는 그 순간을 굉장히 가까이에서 들여다보게 되었다.

- 나는 그가 마지막 순간까지 싸웠다는 걸 보여주길 기대했다. 그러나 내가 본 건 기괴하게 비어있는 껍데기였다. 그의 눈은 파란 테를 두른 실리콘으로 된 다이빙 마스크 안에서 부풀어 올라 있었다. 

 

- 기다림에 관한 줄리 헨슨의 고통에 찬 질문은 대답 없이 남겨졌다. 

"다이빙하러 갔다가 집에 돌아오지 않은 동굴 다이버를 얼마나 오랫동안 기다려야 할까요?"
답은 평생이다.

 

- 동굴 다이빙에 대해 설명하면, 다른 사람들은 내가 죽음을 동경한다고 생각한다. 대체 왜 돈을 쏟아부어가면서 단 한 번의 실수만으로도 사망에 이를 수 있는 어둠의 세계로 들어가려 하는 걸까? 

- 하지만 즐거움과 새로움을 경험하려는, 끝없고도 기이해 보이는 동기를 가진 건 나뿐만이 아니다. 모험을 찾아다니고 위험해 보이는 행동을 하도록 몰아가는 것은 유전자일지도 모른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 나는 7R 유전자 대립형질(DRD4 유전자 안의 대립형질 - 옮긴이)을 가진 나와 비슷한 사람들에게 끌린다. 이 유전자는 탐험가의 유전체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며 어쩌면 인간 존재의 토대일지도 모른다. 전 세계 사람 중 20퍼센트에서 발견되며, 신경전달물질인 도파민을 뇌가 조절하는 능력과 관련되어 있다. 7R을 가진 사람은 일상의 자극에서 다른 사람들만큼 즐거움을 느끼지 못한다. 음식은 자극적일수록 좋아한다. 이 유전자 형질을 지닌 사람들은 다양성과 맛, 풍미를 찾아다닌다. 다른 사람들보다 호기심이 많고 모든 일에서 새로움을 좇는다. 우리는 방랑자이며 현재 상황에 절대 만족하지 못한다. 새로운 생각을 탐구하고 새로운 장소를 여행하고 마약과 섹스, 새로운 관계, 신기한 음식 등 즐거움을 주는 감각과 자극을 다양하게 경험하려 한다.

 

- 연구에 따르면 이러한 사람들은 몸과 마음을 충족시키기 위해 점점 더 많은 도파민 분비를 추구하다 보니 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 ADHD를 지니거나 여러 가지 위험한 중독에 빠지기가 더 쉽다고 한다. 하지만 청소년기의 모험을 무사히 넘기고 어른이 되면, 다른 사람들보다 오래 살 가능성이 크다. 탐험을 향한 갈망은 사람을 활동적으로 만들어서 건강을 증진시켜 장수에 도움을 준다. 

 

- 내 경우에는 7R 형질이 배움을 좋아하는 성향으로 발현되었다. 나는 현재 상황을 유지하려는 경향을 싫어하고 변화를 추구하며, 나 자신을 개선하고 세상을 더 나은 곳으로 만들려고 노력한다. 때로는 나만의 속력으로 홀로 카메라를 들고 다이빙하면서 동굴에서 몇 시간을 보내고, 완벽한 빛줄기가 어둠 속으로 흘러드는 순간을 기다린다. 하지만 그렇다고 7R 형질이 나를 무모하게 만드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위험을 인지하면서 기꺼이 새로운 경험을 하기 위해 뛰어든다. 어쩌면 두려움에 끌리는 건지도 모른다. 
 

- 나는 나와 비슷한 사람들에 관해 그가 무엇을 연구하는지 궁금했다. 그가 나에게 새로움과 자극을 추구하는 사람이라고 말했을 때는 기분이 나빴다. 멋대로 남에게 규정된 기분이었다. 나는 아드레날린 중독자로 여겨지고 싶지 않았다. 내게는 다양한 배움과 자극 도전 과제가 필요했다. 

 

- 빌의 연구에 따르면 나 같은 사람은 나 혼자만이 아니었다. 탐험가 전부는 아니더라도 동료 동굴 다이버 가운데 상당수가 나와 같은 유전자를 가졌다고 한다. 7R이 발현되는 사람들을 이해하려면 같은 유전자를 지녀야 한다. 우리는 새로운 경험을 나누는 한 함께 있으며 성장해 간다. 그렇기 때문에 두 번째 남편인 로버트 매클렐런 Robert McClellan을 만난 일은 엄청난 행운이었다. 그는 분명 7R을 지녔고, 나는 그것을 알아보았다. 

 

- 우리가 함께 지낸 첫 10년 동안, 로버트와 나는 말도 안 되는 여러 가지 프로젝트에 뛰어들었다. 우리는 유르트(중앙아시아의 유목민들이 쓰는 이동 가능한 천막집 - 옮긴이)를 지었고, 자전거를 타고 캐나다를 7,000킬로미터나 횡단했으며, 여행용 이동 주택을 4번, 자전거는 14번이나 사고팔았다. 닭을 사육하고, 양봉하는 법을 배웠으며, 비누와 가죽 벨트를 만들고, 둥그런 천장의 온실을 짓고, 먹을 음식을 직접 농사짓고, 선상가옥에서 살고, 다큐멘터리 영화를 만들고, 뒷마당 콘서트를 열었다. 

 

- 로버트를 처음 봤을 때, 그는 재향군인 병원에서 간호사로 일하고 있었다. 로버트는 계약직 간호사로 미국 전역을 여행했지만 그게 로버트의 직업은 아니었다. 로버트는 '일렉트릭 팩토리 콘서트 Electric Factory Concerts'와 '20세기 폭스 20th Century Fox'에서 일했고, 해군에서 사진작가이자 강사로 근무했으며, 주 방위군에서 의무 부대를 이끌었다. 그 외에도 바텐더, 교정 시설 간호사, 콘서트 기획자였고, 히피 부티크와 아이스크림 트럭을 운영했으며, 트럭 운전사, 무대 담당자, 라디오 토크쇼 진행자, 전쟁 사진작가, 심혈관 간호사, 전자상거래 전문가, 작가, 음악 프로듀서, 음향 기술자, 알코올 중독자, 마약상, 중독 치료사이기도 했다. 
그렇다. 그는 중독 문제를 겪는 사람들이 대개 7R 유전자를 지녔다고 확증해 주는 사례이기도 했다.

- 저녁 시간을 내서 끝없이 이어지는 항목에 답하다 보면 이상형에 가까운 상대방을 만나게 될 거라는 생각이 든다. 때로 이 과정은 상당히 불쾌하기도 하다. 상대의 나이 범위를 고르라는 질문에 맞닥뜨리자, 내가 연하 킬러인지, 아버지 같은 남자에 끌리는 타입인지, 곰곰이 생각해 보게 되었다. 솔직하게 대답하지 않으면 알맞은 상대를 찾지 못할 것이므로 질문에 답하며 폭넓은 자기 탐구를 하게 된다. 

 

- 웨슬리와 나는 최근에 연달아 찍었던 리얼리티 텔레비전 프로그램을 끝내고, PBS의 다큐멘터리 시리즈인 <물의 여행 Water's Journey>을 함께 만들고 있었다. 나는 프로그램 각본과 프로듀싱을 맡았고, 웨슬리는 촬영과 감독을 맡았다. 예산이 적었기에 카메라에 등장하는 역할도 직접 맡았고, 그래픽 디자인과 홍보, 편집과 효과 넣기까지 온갖 일을 했다. 나는 이 작업을 하며 커다란 목적의식을 느꼈다. 처음 두 편의 <물의 여행>은 국제적인 찬사를 받았고, 교육자료로도 활용되었다. 결과적으로 우리는 이 다큐멘터리로 수자원 보호 운동가로서 대중적 인지도를 얻기 시작했다. 

 

- 다큐멘터리 시리즈의 기본 뼈대는 한 방울의 물이 떠난 여정을 좇는 것이었다. 관객의 시선을 끌어모으기 위한 요소로 동굴 다이빙을 넣었지만, 다큐멘터리의 의도는 대중에게 물 보존의 중요성을 알리는 것이었다. 때로 전파 탐지 팀이 우리가 가는 길을 뒤쫓게 했다. 와쿨라 스프링스에서 썼던 것과 비슷한 방식이었다. 지표면에 있는 팀이 덤불을 헤치며 우리를 추적하는 동안, 웨슬리와 나는 색다른 장소인 수중동굴을 통과하며 헤엄쳤다. 우리는 숲과 아래를 가로질러 복잡한 도시 아래를 누볐고 볼링장과 골프장 아래를 지났다. 

 

- 첫 번째 에피소드에서는, 다이빙 파트너인 톰 모리스 Tom Morris와 함께 플로리다주 알라추아 Alachua에 있는 소니스 바비큐 sonny's BBQ 레스토랑아래 있는 동굴을 헤엄쳤다. 그동안 와쿨라 스프링스에서 전파 신호를 탐지했던 브라이언 피즈와 웨슬리는 소니스 바비큐 레스토랑의 문을 벌컥 열고 들어가서 "동굴 측량 팀이 여기 아래를 지나가고 있어요!"라고 외쳤다.

 

- 이 장면은 익살스럽기도 했지만, 우리가 어디에 있든 그 아래에 식수가 흐른다는 점을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 우리의 안내원인 마이크 오언 Mike Owen은 조심스레 감춰진 유령난초 일곱 송이의 장소를 알고 있었으나, 모두에게 위치를 알려주지는 않았다. 이 식물은 수집가들에게 인기가 있었지만, 모습을 쉬이 드러내 보여주지 않는다. 뿌리는 얽혀 있고 노출되어 있으며, 대개 늪지대 나무의 껍질에 붙어서 자란다. 잎이 없어 뿌리로 광합성을 하며, 희귀한 균류나 여러 환경이 조합되었을 때만 꽃을 피운다. 3주도 안 되는 이 기간에 상황이 모두 들어맞는다면 자이언트스핑크스나방 giant sphinx moth이 유령난초 주변을 맴돌 테고, 25센티미터에 달하는 주둥이를 길게 펴 난초의 꿀주머니 안으로 깊숙이 집어넣을 것이다. 긴 주둥이가 없는 다른 곤충은 접근하지도 못한다. 그런 까다로운 조건임에도 파카하치 스트랜드의 자이언트스핑크스나방만이 신기하게도 일곱 송이 유령난초를 수분하는 데 성공한 것이다. 

 

- 안내원은 이 꽃들에 각각의 번호를 부여했다. 아무도 유령난초를 찾지 못한 해도 있었고, 발견한 꽃들을 불법 수집가가 캐갈 때도 있었다. 우리가 방문했을 때는 허리케인이 지나간 지 얼마 안 되었을 때였다. 우리는 우연히 유령난초 한 송이를 발견했다. 유령난초는 바람에 꺾여 수면 바로 위로 위태롭게 뻗어 있는 나뭇가지를 감고 있었다. 유령난초를 나무에서 떼어낼 수는 없었기에, 우리는 나무줄기를 물에 빠지지 않게 떠받쳐 놓고 공생 관계인 나무, 균류, 나방이 모두 함께 멸종 위기에 처한 이 식물을 구해주길 바랐다. 수면에 가깝게 자리 잡은 이 매력적인 꽃을 자이언트스핑크스나방이 발견할 가능성은 적었다. 그러나 우리는 최선을 다했다. 

 

- 기억에 남았던 이번 여행 중에 나는 공동으로 작업하는 파트너이자 함께 탐험하는 형제와 다름없는 웨슬리가 멸종 위기에 처한 연약한 자이언트스핑크스나방처럼 느껴졌다. 웨슬리는 비범한 친구로, 유일무이했고 독특한 공생 관계를 만들 줄 알았으며, 뛰어나고 재능 있는 사람들을 알아보고 한 곳에 모으는 능력도 있었다. 그는 모험심과 창의적 재능을 발산하며 우리 팀을 세계 곳곳의 탐험 장소로 이끌었고, 자기만의 방식으로 친구들이 각자의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사명을 찾도록 도왔다. 웨슬리는 적극적으로 수자원 보호를 주장하도록 나를 자극했다. 그는 스스로 본보기를 보이며 창조적인 일을 온전히 좇도록 내게 자신감을 주었다. 무엇보다도 웨슬리는 내가 좋아하고 존경하는 사람이 내 꿈을 지지한다고 느끼게 해 주었다. 

- 하지만 건강하던 웨슬리의 몸이 점점 쇠약해지는 게 느껴졌다. 웨슬리의 얼굴에서 기쁨이 사라졌고, 심한 감정 변화를 보일 때도 있었다. 아이티로 탐사를 갔을 때 얻은 허리 부상과 편두통, 만성 장질환이 그를 고통스럽게 했다. 웨슬리는 나보다 고작 몇 살 정도 많을 뿐이었지만 급격하게 노화하고 있었다. 신체적인 고통 때문에 일을 못 할 때도 있었고, 홀로 침대에 남겨지기도 했다.

 

- 나는 그 모습을 지켜보기 힘들었다. 그리고 그런 상황에서 제작과 편집 마감 기한을 지키기도 어려웠다. 웨슬리의 차 주변에서 제작진 모두가 기다리는 가운데 촬영 날짜가 미루어지기도 했다. 가장 절친한 친구가 무너져 가는 모습을 지켜보기가 고통스러웠고, 모두가 공개적으로 보게 되는 상황은 더욱 그러했다. 

 

- 마약성 진통제건 다른 이유이건 간에, 내 앞에 있는 건 더는 내가 알던 웨슬리가 아니었다. 나는 그의 방에서 뛰쳐나와서 내 방으로 들어가 문을 잠갔다. 그리고 문에 몸을 기댄 채 바닥에 털썩 주저앉아 흐느꼈다. 그 시기의 웨슬리에 관해 이야기하는 건 고통스럽다. 의도치 않았지만 나는 그가 중독되는 것을 도왔다. 웨슬리가 병원에서 처방받은 약에 중독되었다는 사실을 이성적으로 알아차리기 전에, 나는 오랫동안 그의 행동을 설명하기 위해 그럴듯한 변명거리를 만들어 회피했다. 

 

- "질, 중독자들은 주변에 회오리바람을 일으키기 때문에 그 소용돌이에서 떨어져 있어야 해. 그렇지 않으면 너까지 빨아들여 버리거든. 그 안 어딘가에는 여전히 네가 알고 좋아하는 웨슬리가 있어. 하지만 당장은 네가 웨슬리를 도와줄 수 없어. 회복하려면 먼저 제정신으로 돌아와야 해. 그때까지는 웨슬리에게서 떨어져서 어느 정도 거리를 유지해." 
나의 새로운 남자 친구이자 여전히 중독에서 회복 중인 로버트는, 그 당시 웨슬리의 행동을 내가 이해할 수 있게 설명해 주었다. 나를 위협하던 것은 마약이지, 타락해 버린 내 친구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려준 것이다. 

 

-  수년간 함께 일하면서 내가 알고 좋아했던 웨슬리는 동굴 다이빙을 할 때 필요한 안전수칙을 만들어 내는 데 일조했고, 플로리다주의 수자원 보호를 위해 무한한 열정을 쏟아부었으며, 동굴 다이빙의 위대한 장면들을 포착해 왔다. 마음속 이야기를 털어놓을 수 있는 친구이기도 했다. 함께 창조적인 작업들을 하며 지구를 반쯤 돌았으며, 서로 힘을 북돋아 주고 존중했다. 하지만 함께하는 시간이 저물어 간다는 걸 알았다. 이제 각자 새로운 일을 해야 한다. 

 

- 웨슬리의 사무실에 들어가자 잠시 어색함이 감돌았다. 사무실에 마지막으로 앉았던 때 이후로 1년 이상이 지났다. 웨슬리는 예전과 다르게 밝아져 있었다. 그는 옛날에 동굴 다이빙했던 이야기를 자세하게 들려주며 나를 즐겁게 해 주었고, 나는 그의 이야기를 받아 적었다. 

- 그 후 우리는 데빌스 아이 스프링스 Devil's Eye Spring의 동굴 지역의 촬영을 위해 다이빙하기로 했다. 야영지의 연기과 지글지글 익는 바비큐냄새가 평온한 여름 공기와 어울려 근심을 잊게 만들어 줬다. 햇볕이 내리쬐자 편백나무 이파리가 물속 물결 모양의 모래 위로 점점이 그림자를 드리웠다. 맑은 물속이 습한 여름 공기와 대비되어 더 투명해 보였다. 우리 둘 다 이곳 근처에 살고 있었지만, 여기에서 수백 번 더 다이빙하더라도 이곳의 아름다움은 결코 질리지 않을 것이다. 

 

- 물속에서의 웨슬리는 마치 천사처럼 보였다. 진정 물에 속한 사람이라는 것을 증명하듯 우아하고 부드럽게 움직였다. 70킬로그램의 장비를 지고, 10킬로그램이 넘는 카메라 하우징을 들어 올리면서도 우아했고 멋져 보였다. 물속에 들어가면 그의 주름진 이마는 젊음을 되찾았고, 미소로 인해 눈가의 잔주름은 드러났다. 

- 형제 같은 친구와 물속에 있으니 기분이 좋았다. 우리는 여행하고 탐험하며 수많은 멋진 순간을 공유했다. 친구들이 죽었을 때도 부둥켜안고 서로를 위로했다. 함께 중요한 영상들을 제작했고, 물을 주제로 학생들에게 강의했으며, 공무원들과 협력했고, 힘든 시기에는 서로에게 힘이 되어주었다. 맑은 물속에서만큼은 모든 고뇌가 씻겨 사라지는 듯했다.

 

- 웨슬리가 죽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물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우는 독립 다큐멘터리를 제작하는 일에 박차를 가했다. 내 멘토에게 경의를 표하기 위함이었다. 웨슬리의 훌륭한 업적들은 길이 남겠지만, 자신을 죽음으로 몰고 간 그의 선택을 받아들이기는 힘들었다. 그가 한 선택들은 마치 슬로우모션처럼 예견된 비극으로 치닫고 있었다. 

- 나는 그와는 다르며, 나에게는 같은 일이 벌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믿고 싶었다. 나는 진정한 생존자이지 않은가. 실수에서 배워 왔고, 무언가가 잘못되면 나를 구하러 와줄 슈퍼히어로는 절대 없다는 사실을 항상 인지하고 있었다. 생존은 궁극적으로 신체적 기량과 살고자 하는 강한 의지에 달려있었다.

- 동굴 다이빙 수강생들에게 자주 말하곤 한다.
"살아남기 위해서 다른 건 필요 없습니다. 실용적으로 사고하고 행동하세요."

- 위험을 마주하면 심호흡을 하고, 생존을 위한 행동에 곧바로 돌입해야 한다.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이든 동원해서 집으로 반드시 돌아와야 한다.

- 동굴 다이빙을 할 때 침전물은 일어나기 마련이라고들 말한다. 그리고 어떤 동굴에서는 시야를 맑게 유지하기가 불가능하다고 할 정도로 어렵다. 가이드라인이 필요한 건 바로 그런 이유 때문이다. 

- 하지만 잠시 뒤에 손에 잡은 가이드라인이 점점 팽팽해지며 줄이 버틸 수 있는 한계까지 늘어나는 것이 느껴졌다. 나는 곧 침착함이 사라지며 불안감에 사로잡혔다. 가이드라인은 좌우로 홱홱 움직였고, 루스가 내 앞으로 낮은 천장을 긁으면서 나아가는 동안 줄은 더욱더 팽팽하게 당겨지고 있었다. 나는 곧바로 그녀에게 가이드라인이 걸린 것을 알아채고, 잽싸게 앞으로 쑥 나아가서 그녀를 뒤로 끌기 위해 발목을 붙잡았다. 하지만 내 행동은 그녀를 놀라게 했고 루스의 격렬한 발차기가 잇따랐다.

 

- 그녀는 공포에 질려 있었고 그녀의 발차기는 더 많은 침전물을 일으켰다. 나는 동굴 안 더 넓은 장소로 루스를 잡아끌려고 했지만, 그녀는 격렬히 저항했다. 당시 루스의 마음속에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었는지 알 수는 없지만, 루스는 스스로를 제어하지 못하고 있는 듯 보였다. 

- 얼마 전까지만 해도 루스는 내가 신뢰하던 사람이었으나 공황에 빠지자 내 생명이 담긴 병의 코르크 마개가 되었다. 그녀는 우리를 안전한 곳으로 안내해 줄 유일한 생명줄이 몸에 얽혀 있다는 사실을 모른 채 출구로 가는 데만 열중했다. 

 

- 나는 루스와 나란히 헤엄치며 그녀에게 침착함을 전달해 주려고 손을 붙잡았다. 그리고 루스를 뒤로 끌어당기고 내 손에 있는 팽팽한 가이드라인처럼 그녀를 사로잡은 불안을 가라앉히려고 시도했다. 하지만 루스는 계속 저항했다. 이미 원래대로 돌아가기엔 늦었다. 

 

- 그런데 별안간 루스가 돌아서서 나를 보더니 되돌아 나왔던 동굴 안쪽을 향해 헤엄치기 시작했다. 공황상태일 경우 동굴 다이버는 방향감각을 잃고, 서로 갈라져 버리는 사례들이 있다. 공포에 빠진 다이버는 출구의 방향을 안다고 확신하며 동굴 더 깊숙이, 죽음을 향해 헤엄친다. 다른 동료를 구할 수 없는 경우, 어쩔 수 없이 자신의 목숨을 구하는 안타까운 결정을 내려야 한다. 나는 헤엄쳐 가야 할 옳은 방향을 알고 있었고, 안타까운 일이 벌어지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야 했다. 방향을 돌리라고 공황 상태인 루스를 설득해야 했다.

 

- 무시무시한 생각이 머릿속을 비집고 들어왔다. 나는 로버트가 있는 집으로 돌아갈 수 없을지도 모른다. 이 동굴은 내 무덤이 될 것이다. 극한의 상황에서 다이빙하며 그토록 많은 탐험을 성공으로 이끌었지만, 작은 동굴에서 죽는다면 수치스러울 것이다. 동료 없이 동굴 밖으로 되돌아가는 일을 생각하는 건 더 끔찍했다. 루스는 아직 앞날이 창창한 젊은 여성 과학자였다. 나는 당장에는 이러한 두려움이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고 심호흡을 하기 시작했다. 이성적으로 사고하고 행동해야 했다.  

 

- 감정이 자꾸만 요동쳤기에 다시 가라앉히고 집중해야 했다. 나는 죽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루스를 내버려 둘 수도 없었다. 운명은 내게 달려있었다. 나는 시야를 확보하려 차분하게 있으려 노력했다. 또, 다음번에 이곳에 올 다이버들을 위해 가이드라인을 다시 제대로 연결해야 했다. 마음속 깊은 곳에서 이 동굴로 들어올 다음 다이빙 팀은 내 시신을 수습하러 오는 사람들일 수도 있다는 걸 알았지만, 그런 일이 벌어진다 하더라도 다이버들을 다시 밖으로 안내할 가이드라인이 있기를 바랐다. 나는 안전한 곳으로 향하는 방향을 알았지만, 루스가 뒤에 남겨지지 않도록 어둡고 차가운 동굴 깊숙이 다시 들어가는 길을 선택했다. 그녀를 버리고 간다면 부끄러워 견딜 수 없을 것만 같았다.  

- 물속은 부유물로 가득했기에 그녀가 출구로 향했는지는 확신할 수 없었다. 동굴에서 길을 잃은 다이버는 종종 맑은 물을 보면 안전한 곳에 닿아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며 그쪽으로 헤엄친다. 하지만 맑고 침전물이 일어나지 않았다는 건 그곳에서 아직 헤엄치지 않았다는 뜻이다. 맑은 물은 공황 상태에 빠진 다이버를 동굴 안의 더 깊숙하고 위험한 곳으로 이끈다. 

 

- 매일같이 위험을 마주하는 여성과 결혼한 남자는 거의 없다. 대부분의 남편들은 일을 마치고 아내를 집에서 보길 기대한다. 로버트는 내 직업을 받아들이고 지지하긴 하지만, 내가 집에 무사히 돌아올 때까지 초초한 마음으로 기다린다. 로버트를 안심시키려 했지만, 동료가 한 명씩 죽어가는 걸 그가 볼 때마다 나의 일을 변호하기가 힘들어졌다. 로버트는 거의 매일을 나에게 무슨 일이 생기는지에만 몰두했다. 내가 새로운 장비를 시험하거나 위험한 프로젝트를 맡아서 떠나면 로버트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기다리는 일밖에 없었다.

- 웨슬리를 떠나보내며 정신이 번쩍 들었다. 또 그 후에 오터 스프링스에서 사고를 겪고 나자 나는 방향을 잃은 것 같았고, 다이빙하기가 점점 무서워졌다. 친구들이 죽거나 내가 죽게 될까 봐 겁이 났다. 나는 가르치는 일에서 한발 물러났고, 점점 수강생을 가려서 받았다. 동굴 다이빙으로 만난 친구들과 덜 어울리고 자신의 내면으로 파고들었다. 내가 옳은 길 위에 서 있는지 스스로 끊임없이 질문을 던졌다. 내가 느끼는 불안감도 불안감이지만 사망자가 지나치게 많아졌다. 죽은 친구들의 모습이 마구 몰려들어 머릿속에서 뒤섞였다. 

- 대개 친구가 죽고 나면 감정과 마음을 정리한다. 하지만 억눌렸던 감정 위로 또 다른 친구가 죽고 또 죽는 상황이 반복되었고, 억눌렸던 감정은 더 위태롭게 쌓여갔다. 이제 더는 버틸 수 없었다. 

 

- 기억과 같은 악몽에서 깨어났다. 

- 나는 그들의 이름과 사망 날짜를 더는 항상 기억하지 못하는 데 죄책감을 느꼈다. 죽은 친구들을 생각하면 힘든 기억만 떠오른다. 일부는 받아들였지만, 다른 친구들의 죽음은 여전히 제대로 애도할 시간이 필요했다. 동굴 바닥의 하얀 침전물에 그들의 몸이 눌린 자국이 남아 있는 것을 보았고, 친구의 시신을 물속에서 끌고 나오기도 했다. 눈은 돌출되어 있었고 얼굴은 공포로 반투명하고 새파랗게 질린 채 굳어 있었다. 그들이 토사물을 쏟아내는 동안 폐 안으로 숨을 불어넣으려고 애썼다. 그들을 위해서 추도 연설을 썼고, 남겨진 동반자에게 전화했으며, 혼자 집에서 흐느꼈다. 
나는 계속해서 그들의 무덤 사이로 잠수한다.

- 여행은 경이로움을 느끼고 자연과 하나 된 느낌을 다시 찾는 계기가 되었다. 게다가 여행을 하며 함께 고난을 나누자 관계는 더욱 견고해졌으며, 서로에게 더욱 헌신하게 되었다. 

- 로버트는 내가 '지구 어머니의 혈관에서의 수영'이라는 주제로 강연하는 것을 듣고, 나에게서 자연을 존중하고 사랑하는 마음이 깊이 느껴졌다고 말했다. 그는 내가 그를 사랑하는 것만큼이나 나의 일도 사랑한다는 사실을 깨달았고, 위험한 일이지만 나를 나답게 만들고 그가 사랑하는 사람으로 만들어 준다는 점을 깨달았다. 

 

- 11월의 어느 더운 가을날, 나는 빌 스톤 박사와 그가 운영하 텍사스에 있는 항공우주 회사의 동료들과 다시 모였다. 우아우틀라와 와쿨라 스프링스의 탐사 이후로도 나는 빌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했다. 내가 지구 속 깊은 곳으로 다이빙하는 동안, 빌은 영역을 넓히는 기술을 개발했다. 그의 궁극적인 목표는 테크니컬 다이버를 위한 장비를 만드는 것이 아니었다. 그는 수중동굴을 우주에서 사용할 장비의 성능을 시험하기 위한 장소로 생각해 관심을 가졌었다. 그가 개발한 재호흡기는 우주 공간을 유영하기 위한 것이었다. 3D 지도 제작기는 지구를 너머 거대한 행성들과 위성들에서 쓰일 것이다.  
 
- 카메라의 녹화 버튼을 누를 때는 심장이 멎을 것만 같았다. 썬피시는 마치 목을 쭉 뻗고 주변을 둘러보려는 듯 회전했다. 로봇은 추진기를 활용해서 바위 기둥을 향해 바로 헤엄쳤고, 나는 카메라를 들고 썬피시를 쫓았다. 로봇은 다시 회전하더니 다이버들이 설치한 가이드라인에서 먼 왼쪽으로 향했고, 단계적으로 주변 환경을 디지털 방식으로 변환하며 수중 동굴 통로들을 자신 있게 탐험하기 시작했다. 

- 나는 로봇이 학습하며 동굴 속을 탐험하는 모습을 보면서 아담의 창조를 목격하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나는 내 역할이 대체되는 게 두렵지 않았다. 나는 지상에 묶인 존재의 한계를 초월하게 된 게 뛸 듯이 기뻤다. 썬피시는 내가 갔던 곳보다도 더 깊은 곳에서 다이빙하게 될 것이다. 동굴 안에서 썬피시를 뒤쫓는 동안 전율이 일며 소름이 돋는 게 느껴졌다.

 

- 내 옆에서는 폴이 커다란 영화 조명을 들고 있었다. 나는 폴의 팔을 부드럽게 끌어당기며, 내가 필요한 곳으로 조명을 비추게 했다. 나는 폴과 와쿨라에서 함께 다이빙을 했으니 오늘 이 순간도 함께 나누는 것 또한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이혼 후 몇 년간 우리 사이는 우정이 돈독해졌고, 서로를 존중하는 마음도 커졌으며, 같은 공동체에서 계속해서 동료로 일했다. 결혼 생활이라는 압박이 없어지자 신기하게도 우리는 친구가 되고 서로의 좋은 면을 보기가 더 쉬워졌다.  

 

- 내가 영상 카메라로 촬영하는 동안 폴은 우리와 연결되어 있는 로봇의 노란색의 연결선을 분리할 것이다. 인간의 도움 없이 스스로 탐험하도록 놓아줄 것이다. 썬피시는 처음으로 스스로 판단하며 움직이는 인공지능 로봇 동굴 탐험가였다. 

 

- 로봇을 보고 목이 메는 게 이상해 보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게 있어 그 장면은 내가 지난 수십 년간 해온 일을 보여주는 구체적인 증거였다. 내가 그저 바퀴에 달린 작은 톱니라면 이 로봇은 바퀴 전체였다. 지구에 머무는 짧은 시간 동안 내가 탐험에 기여하고 있었다는 사실이 온몸에 느껴졌다. 나는 썬피시가 된 기분이었다. 나도 마찬가지로 20년 동안의 여정 중에 만난 사람들에게서 배우고 지혜가 쌓인 뒤 이제 모든 짐에서 갑자기 해방되었고, 연결이 끊긴 채 스스로 탐험해 나가고 있었다. 

- 수중 탐험 로봇에 적용된 기술의 최종 목적은 내가 결코 보지 못할 장소들을 그려내는 게 아니었다. 이 기술은 훨씬 큰 임무를 띠고 있었다. 빌이 평생토록 해온 일은, 우리가 사는 세계 너머에 있는 것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유로파 Europa(목성의 위성 중 하나로 얼음으로 둘러 쌓여 있으며, 그 밑에는 거대한 바다가 있고 생명체가 존재할 가능성이 있다 - 옮긴이)에서 빌이 발명한 로봇은 얼음으로 덮인 표면을 뚫고 내려갈 테고, 그 아래 있는 바다의 지도를 그릴 것이다. 내가 직접 우주에 가지는 못할 테지만 로봇 다이버는 처음으로 외계의 바다에서 탐험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 과정에 내가 일조했다.

 

- 나는 과거의 관계를 대할 때도 한층 성숙해졌다. 폴과 나는 한때 서로의 인생에 도움을 주었다. 결혼 생활에서 힘들었던 부분을 되새기는 일은 의미가 없었다. 나는 인생을 살며 좋고 나쁘고 불쾌한 순간을 모두 받아들이는 법을 배웠다. 그 모두가 지금의 나를 만드는 데 기여했기 때문이다. 부정적인 감정을 내려놓고 삶을 있는 대로 받아들이며, 서로를 용서함으로써 우리는 친구이자 동료가 될 수 있었다. 

- 이날은 내게 중요한 날이었다. 발견이라는 큰 목적의 한순간에 불과했으나 나의 성장에 큰 영향을 주었다. 

- 다이빙 파트너이자 동료 다큐멘터리 제작자인 마리오 시르 Mario Cyr는 평생 북극의 자연을 촬영해 왔다. 마리오는 다이빙하는 야생 북극곰을 처음으로 찍은 사람이기도 하다. 그는 내게 북극곰에 관해 주의사항을 알려주었다.
"매우 위험해요. 얼음이나 해안에 가까이 있으면 안 돼요. 그러면 북극곰이 당신을 붙잡고 물아래로 끌어내릴 거예요. 또 만약에 북극곰이 다가온다면 가능한 한 빨리 깊숙이 다이빙하세요." 
그는 불길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 생각만으로 몸이 떨려왔다. 하지만 이런 경고를 들으면서도 곰과의 거리가 1.5미터 정도 떨어져 있을 때 카메라의 광각렌즈가 가장 좋은 장면을 포착하리라는 생각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바다코끼리는요?"
내가 물으니 마리오는 또 한 차례 열띤 강의를 했다.
"안 돼요! 수컷은 특히 더 위험해요! 바다나 바위, 얼음을 뒤에 끼고 궁지에 몰린다면 바다코끼리들에게 죽임을 당하고 말 거예요."

- 희귀한 바다 포유류를 촬영할 생각에 신이 났지만, 한편으로는 감당하기 힘든 일을 벌인 건 아닌지 의문이 피어올랐다. 동물들의 간식이 되어 세상을 떠나고 싶지는 않다. 

- 지난 몇 년간, 상황이 무시무시하더라도 새로운 경험을 하기 위해 한번에 한 걸음씩 신중하게 내디뎌야 나아갈 수 있다는 사실을 배웠다. 나는 20킬로그램짜리 수중 카메라를 준비하고, 체온을 유지해 줄 드라이슈트를 입고, 20킬로그램짜리 중량 납을 차서 무게를 더한다. 마리오가 "됐어요, 가요!"라고 외칠 때까지 나는 물속으로 들어갈지 배 위에 남을지 결정할 예정이다. 선택은 온전히 내게 달려있다.
 
- 은퇴해서 느긋하고 편안한 삶을 즐길 수도 있지만, 그렇게 하면 나를 나답게 하는 짜릿한 경험의 기회를 놓치게 될 것이다. 그래서 목 뒤의 털이 곤두서고, 식은땀이 다이빙 마스크 안으로 흐르는 가운데 차가운 물속으로 뛰어든다. 
거칠고 상상하기 힘든 상황 속에서 방해받지 않고 탐험하면서 계속 성장해 나간다.
두려움을 계속 느끼겠지만 절대 두려움에 지지는 않을 것이다.

- 마지막으로 수강생들과 다이빙 친구들에게, 수중 세계를 그들과 함께할 수 있어 영광이라고 전하고 싶다.
언제나 안전을 생각하고, 계속 꿈을 좇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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