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자가 흐르는 이야기/Book1

[야마다 아키히로, 오노 후유미] 청양의 노래 - 십이국기 화집 2

일루젼 2023. 9. 25. 0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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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야마다 아키히로 / 이진
출판 : 엘릭시르 
출간 : 2023.04.28 


       

<영원의 정원>이 있었고, <청양의 노래>가 나왔다.

 

이전에도 한 번 이야기했던 것 같은데 최근에는 어린 시절 즐겁게 읽었던 책들이 많이 생각난다. 다시금 읽고 싶은 이야기들이 많다. 

 

어떤 이야기들은 다시 읽은 것을 후회하게 만들기도 한다. 어째서 그 시절의 나는 이걸 그토록이나 좋아했을까- 싶은 의문만 남기기 때문이다. 하지만 시간에 구애받지 않는 이야기들은 더 깊어진 세계 속으로 나이 든 독자를 가둬버리기도 한다. 

 

내 어린 시절을 채웠던 이야기들은 어떨까. 

호기롭게 '여전히 좋을 것'이라고 장담하고 싶지만, 이미 군데 군데 지워진 추억만으로는 스스로를 설득하기도 버겁다. 

 

천천히, 그 시절의 나를 다시 마주해보고 싶다. 

 

그런 의미에서 내년 봄이 오기 전에 <십이국기>도 다시 정주행하려 한다. 

여전히 아름답고, 환상적이며, 두근거리기를.  

 


   

 

    

 

- 꼭 붙든 팔 아래 짐승은 말이 떨어지자마자 몸을 피하며 옆으로 튀어 올랐다.

 

- "앉아. 긴 이야기를 들어야 해."

 

- "어전에서 떠나지 않고, 소명을 거스르지 않으며, 충성을 맹세할 것을 서약드립니다."

"허락한다."

 

- "슈쇼가 왕이 될 그릇인지 아닌지 시험한 것 아닌가?"

"물론 시험했지."

 

- 야마다 아키히로 씨를 알게 된 것은 <백화 정원의 비극>을 통해서였습니다. 서점에서 우연히 책을 발견하고는 무심하리만큼 세련된 표지에 이끌려 구입을 했고 읽자마자 바로 팬이 되었지요. 수려한 그림은 두말할 것도 없고 마치 고전 영화 같은 분위기와 대사, 이국의 악곡 같은 템포가 나무랄 것이 없었습니다.

 

- <마성의 아이>를 집필했을 때 당시 담당 편집자였던 오모리 노조미 씨가 야마다 씨에게 표지를 부탁하자는 터무니없는 말을 꺼냈습니다. 불가능할 것 같은 일이었지만 운 좋게도 의뢰를 받아주셨고 시간이 지나 미려하고 인상적인 표지가 도착했습니다. 당시 뒷부분을 어떻게 풀어나갈지 염두한 적이 없었기 때문에 저에게는 그저 동경해 왔던 만화가가 표지를 그려줬다는 감동뿐이었습니다. 일부러 자신의 글을 읽어주고, 나아가 시간과 정성을 들여 그림으로 표현해 주는 것 이상으로 팬에게 행복한 일이 있을까요. 

- 뜻밖에도 후속편이라고도 할 수 있는 <달의 그림자 그림자의 바다>를 집필하게 되었을 때 야마다 씨에게 부탁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생각은 했지만 현실로 이루어질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당시 발표하던 매체를 고려했을 때 편집부에서 허락해주지 않을 것 같기도 했지만 무엇보다도 '뜻밖의 행운'은 단 한 번만 찾아오는 법이기 때문이지요.

 

- 그런데도 두 번째 행운은 찾아왔고, 제 손에 들어온 그림은 충격적이었습니다. 시원스럽게 검을 들고 야무진 표정으로 하늘을 바라보고 있는 요코는 '천 天'과도 같았습니다. 천부상처럼요. 천은 불교 세계의 수호자이지만 그 태생은 신입니다. 신화를 배경으로 우상으로서 승화된 호법신, 야마다 씨에게 요코의 싸움이 천부의 이야기처럼 보였던 걸까요.

- 이 표지를 계기로 제 안에서 '무언가'가 만들어졌습니다. 이어지는 <바람의 바다 미궁의 기슭>을 집필했을 때 그 '무언가'는 나침반처럼 작품이 향해야 할 방향을 가리키고 있었습니다. 결과물로 빚어진 이야기로 야마다 씨는 산시와 다이키를 그려주셨습니다. 특히 다이키 그림을 봤을 때 '무언가'는 시리즈의 핵심이 되었습니다.

- 그저 나침반이 가리키는 방향을 향해 노를 젓다 보니 삼십 년이라는 세월이 흘렀습니다. 그럼에도 야마다 씨와 일러스트에 대해 논의를 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습니다. 항상 제가 내키는 대로 글을 쓰면 그 글로 야마다 씨가 묵묵히 그림을 그려주시고 그 그림을 받고 제가 다음 이야기를 구상한 뒤 쓰고 싶은 대로 써나갑니다. 상당히 번거로운 방식이지만 저는 이 과정을 공동 작업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두루뭉술한 이미지를 품고 글을 쓰면 야마다 씨가 세세한 부분을 보충하여 명확하고 또렷한 그림으로 고정시켜 주십니다. 그 그림을 전제로 제가 모호한 부분을 한층 더 부풀려나갑니다. 이런 식으로 진행되니 혼자서 만드는 게 아니라 야마다 씨와 함께 세계를 만들고 있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 겁니다.

- 훌륭한 만화가에게서 만화를 집필하는 시간을 빼앗고 있다는 사실에 몹시 부끄러운 마음이 들기도 합니다만, 이렇게 애매한 작업을 오랜 세월 동안 함께 해주시는 야마다 씨께는 그저 감사하다는 인사밖에 전할 말이 없습니다.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 오노 후유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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