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자가 흐르는 이야기/Book1

[사무엘 비외르크] 나는 혼자 여행 중입니다

일루젼 2023. 12. 7. 0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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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사무엘 비외르크 / 이은정
출판 : 황소자리 
출간 : 2016.08.05 


       

        

익숙했던 것이 낯설어지고, 새로운 것이 익숙해지는 지점을 정확히 어디쯤일까?

많은 물질들은 반감기를 갖지만 반드시 그런 것만은 아니다. 습관, 기억, 감정에도 반감기가 존재할까?

 

다시금 한동안 휴식기를 가졌다. 딱히 이유가 있었던 건 아니었다. 자주 리뷰를 올릴 때에는 아무것도 쓰지 않는 게 어색했는데, 몇 번 쉬어보니 별다른 생각 없이 일상을 보내다 보면 시간이 흘러 있었다.

 

변화는 결과를 인지하는 순간에 완성된다. 하지만 일상적인 변화는 계절의 바뀜처럼 한 순간에 명확하게 깨닫게 되지는 않는다. 이전과는 다르지만 아직 완전히 끝난 것은 아닌 애매한 지점. 그런 분절점들이 존재하고, 평소 자신에게 관심이 많은 이들은 그런 미세한 변화를 예민하게 감지한다고들 한다. 굳이 따지자면 둔감한 쪽이지만- 어쩐지 술렁거리고 있는 느낌이다.

 

<나는 혼자 여행 중입니다>는 어딘가에서 추천 받았다고 기억하고 있다. 그런데 어디서 추천을 받았는지, 정확하게 이 책이 맞았는지는 기억할 수가 없다. 당시에 마침 기억이 나길래 읽어봤었다. 

 

초중반까지의 몰입감 있는 전개가 마음에 든다. 캐릭터 성에 있어서는- 전형적이지 않은 모습을 보이려 한 것이 오히려 덫이 된 느낌. 매력이 없는 건 아니지만 확실한 개성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전체적인 전개와 결말은 초반에 비해 많이 아쉽다. 중반부까지 느꼈던 기대감이 끝까지 이어지지는 못했다. 특히 반전에 지나치게 무게를 싣느라 이전까지 쌓아온 서사 구조가 많이 무너진 느낌이다. 특히 범인의 범행 동기가 모호한데, 곁가지처럼 등장했던 신흥종교집단과 연결시켜 자신만의 신념에 경도된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던 듯하다. 루카스라는 인물을 통해 해당 집단의 교리와 모순을 보여주는데 사실 내용 자체만 떼어놓고 보면 딱히 나쁘다고 할 수는 없어서 미묘하다. 어떻게, 그리고 누구에게 적용하느냐의 문제라는 걸까? 이는 성서에 대한 지나치게 자의적인 해석과 성직자의 개인적인 매력으로 부흥하는 종교단체에 울리는 경종일지도 모른다.

-자신이 어느 지점에서 '이건 아닌데'라고 느끼는지 감각해보는 것도 재미있다-

 

정상과 비정상의 경계는 존재하는가? 평범한 인물들이 보여주는 긱(geek)한 면모와 위험한 인물들이 보여주는 평이한 면모가 복잡하게 교차한다. 선을 넘은 자들은 틀림없이 존재하지만, 그 선은 그야말로 칼날과도 같아 자신도 모르는 사이 발이 잘리며 반대쪽으로 넘어지게 된다. 주요 등장인물인 미아만 해도 순수 선이라고 보기는 어려운 안티히어로이고, 그녀와 함께하는 팀원들 모두 나름의 괴짜스러움을 갖추고 있다. 그에 반해 착실하게 일상을 수행해내는 평범한 이웃 중 한 명이었던 ... 스포가 될 수 있으니 중략.

 

욘 아이비데 린드크비스트 같은 북유럽적인 감성이 약간이지만 느껴진다는 점, 일상 속에서의 약물 남용을 간접 체험할 수 있었다는 점, 그렉 이건의 <실버파이어>가 떠올랐다는 점 등은 호. 

미아의 할머니를 통해 타인을 의식하지 않고 오롯이 자기 자신으로 존재하는 것의 중요성 등이 표현된 점도 호.

하지만 어딘가 미묘하게 비틀어진 종교 단체라면 토스카 리가 좀 더 인상적이었다는 점은 불호. 

 

나름대로 즐겁게 읽었고, 후속작도 읽을 생각은 있지만 추천까지는 모르겠다. 

 

끝.

 


   

 

- 발터 헨릭센은 식탁에 앉아 아내가 만들어둔 아침식사를 억지로라도 조금 삼키려고 애썼다. 베이컨과 계란, 청어와 연어, 갓 구운 빵, 아내가 늘 꿈꿔온 자신만의 텃밭에서 손수 가꾼 허브를 우려낸 차 한 잔. 그들이 오슬로 한복판에서 멀리 떨어진 이 집을 산 이유도 근처에 외스트마르카 숲과 텃밭이 있기 때문이었다. 부부는 이곳에서 건강한 취미생활을 추구할 수 있었다. 숲에서 산책하기, 손수 채소 길러먹기, 야생 베리와 버섯 따기, 게다가 최소한 자신들이 기르는 개에게 더 많은 자유를 줄 수 있었다. 발터는 그 코커스패니얼 녀석이 꼴도 보기 싫었지만 아내를 사랑하기에, 위에 열거한 모든 것에 동의했다. 

- 그는 청어 얹은 빵을 한 조각 삼키고는 자신의 몸과 사투를 벌였다. 그저 음식을 토하고만 싶었다. 오렌지주스를 크게 한 모금 들이켠 그는, 해머로 얻어맞은 것처럼 머리가 지끈거렸지만 웃으려고 애썼다. 지난밤 회식은 계획대로 되지 않았다. 

- 그때였다. 코커스패니얼이 갑자기 길을 벗어나 날 듯이 숲 속으로 달려 들어갔다. 빌어먹을! 
"레이디!"
발터 헨릭센은 길에 서서 개를 한참 불렀지만 소용없었다. 그는 나지막이 욕설을 내뱉으며 담배를 던지고는 개가 사라진 방향의 언덕을 오르기 시작했다. 200~300미터쯤 올라갔을 때 그는 걸음을 멈췄다. 개는 작은 공터에 너무도 조용히 누워 있었다. 그리고 나무에 매달린 작은 여자아이가 눈에 들어왔다. 두 발이 땅 위에서 달랑거렸다. 등에는 책가방을 메고, 목에 걸린 종이에는 무언가가 적혀있었다. 
[나는 혼자 여행 중입니다 I'm traveling alone.]

 

- 발터 헨릭센은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 잠에서 깨어난 후 줄곧 원했던 것을 하기 시작했다. 
먹은 것을 죄다 토한 뒤 그는 울음을 터뜨렸다.

 

- 미아는 침대에서 일어나 아이슬란드 풍 스웨터를 걸친 뒤 어기적어기적 걸어 거실로 내려갔다. 
알약을 처방해 주는 사람은 동료였다. 미아가 모든 것을 잊고 일을 처리한 뒤 다음 단계로 넘어가도록 도와주는, 법률에 의해 위임받은 '친구'. 경찰 심리학자, 아니 정신과 의사였던가? 미아는 그래서 그가 처방전을 발행할 수 있을 거라고 추측했다. 어쨌거나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손에 넣을 수 있었다. 세상에서 멀리 떨어진 이런 촌구석에서는 그러는 데도 꽤 노력이 필요했다. 우선 옷을 챙겨 입어야 했다. 그런 다음 보트에 달린 선외모터를 가동시켜야 했다. 15분 동안 얼음공기를 가로지른 배는 그녀를 히트라 본섬으로 데려다주었다.  

 

- 처방전은 미리 준비되어 미아를 기다리고 있었다. 오슬로에서 전화 연락을 받았을 것이다. 니트라제팜, 디아제팜, 라믹탈, 시탈로프램. 어떤 약은 지역 보건의가 또 어떤 것은 정신과의사가 처방해 주었다. 그들은 모두 친절하게 그녀를 도와주었다. 자, 너무 많이 복용하지 말고, 부디 조심해요. 하지만 미아는 조심하고 싶은 마음이 전혀 없었다. 그녀는 낫기 위해 여기에 오지 않았다. 망가지려고 왔다. 

12일 남았다. 4월 18일.

 

- 미아 크뤼거는 냉장고에서 패리스 생수를 한 병 꺼낸 다음 옷을 입고 바닷가로 나갔다. 바위에 걸터앉아 스웨터를 단단히 여미고는 오늘의 첫 알약을 먹기로 했다. 바지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색색의 알약들이 있었다. 머리는 아직도 멍하고 무슨 약부터 먹어야 할지 기억나지 않았지만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미아는 단숨에 들이켠 물과 함께 약도 씻겨 내려가게 했다. 두 발이 물 위에서 달랑거렸다. 물끄러미 부츠를 내려다보았다. 몽롱했다. 자신의 발이 남의 발이고 아주 멀리 있는 것만 같았다. 미아는 바다를 쳐다보았다. 바다 역시 또렷하게 분간이 안 되었다. 미아는 고개를 들어 멀리 수평선에 떠있는 이름 모를 작은 섬을 바라보았다.   

 

- 별생각 없이 이곳을 택했다. 노르웨이 중서부 해안에서 떨어진 트뢴델라그의 작은 섬, 히트라. 사실 혼자 머물 수 있는 곳이라면 어디라도 괜찮았다. 미아는 부동산중개소에 모든 걸 일임했다. 제 아파트를 팔고 아무 데나 구해주세요. 중개인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미친 사람이나 단순한 어린아이를 대하듯 바라보았다. 하지만 그로서는 수수료만 챙기면 그뿐, 더 이상 신경 쓸 이유가 없었다. 그는 환하게 웃으며 친절하게 대답했다. 그러죠. 당연히 급매를 원하시겠죠? 혹 특별히 염두에 두고 있는 곳이라도? 사무적으로 예의를 갖췄지만 미아는 남자의 본심을 알아차렸다. 지금도 그 생각을 하면 구역질이 났다. 사기꾼, 역겨운 눈초리. 미아는 자신이 상대하는 사람의 속마음을 읽는 데 명수였다. 양복에 넥타이 차림을 한 뱀장어처럼 미끈거리는 부동산 중개인이었다. 미아는 자신이 보고 있는 상대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 아무리 많은 금연 표지판을 세운다고 해도 담배를 끊을 마음이 추호도 없었다. 담배 없는 삶은 상상할 수도 없거니와 담배를 피우며 생각에 빠지는 것보다 그가 더 좋아하는 일은 세상에 없었다. 두뇌를 사용하는 일 말이다. 뇌만 작동한다면 몸뚱이는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라디오에서 헨델의 메시아가 흘러나왔다. 좋아하는 곡은 아니었지만 그런대로 들어줄 만했다. 홀거는 바흐라는 인물 자체가 좋았다. 대부분의 감상적인 작곡가들과 달리 바흐는 음악의 수학성을 선호했다. 호전적인 아리안 템포를 표현한 바그너라든지 풍경에 대한 인상과 감정을 묘사한 라벨은 그의 취향이 아니었다. 

 

- 뭉크는 그런 인간적인 감정을 피하기 위해 클래식 음악을 신중하게 골라 들었다. 만약 사람들이 수학 등식과 같아진다면 삶은 더욱 단순해질 것이다. 

 

- 난 커피도 안 마시고, 알코올은 한 방울도 입에 대지 않지. 이 담배라는 놈만 피워. 

- 홀거 뭉크는 지금까지 단 한 번 술을 마셔보았다. 열네 살 때 휴가 간 라르비크에서 아버지의 체리 브랜디를 마셔본 뒤 한 방울도 입에 대지 않았다. 그냥 술은 끌리지 않았다. 술에 대한 환상도 없었다. 뇌세포를 손상시킬 수 있는 것은 그 무엇도 하고 싶지 않았다. 백만 년이 흘러도 그런 일은 없을 것이다. 반면 지금 피우는 이 담배와 이따금 먹는 햄버거는 그렇지 않았다. 

 

- 그는 스타브 예스테고르드 옆 쉘 주유소에 차를 세우고 베이컨 버거 세트를 주문한 다음 트론헤임 피오르가 내려다 보이는 벤치에 앉았다. 만약 그의 동료들에게 홀거 뭉크를 한 단어로 표현해 보라고 하면 그중 하나가 '괴짜'일 것이다. 두 번째는 '깍쟁이' 쯤 되는데,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지나치리만큼 영리하기 때문이었다. 아무튼 '괴짜'임에는 분명했다. 술은 입에도 대지 않고 수학과 클래식 음악을 사랑하며 낱말 맞추기와 체스를 즐기는 뚱뚱하고 유쾌한 괴짜. 다소 둔감하지만 정말로 유능한 수사관, 게다가 공정한 상관. 퇴근 후 동료들과의 술자리에 절대 끼지 않는다고 해서 그게 어떻다는 건가? 8주간의 연례 휴가를 받아 휴럼에서 온 교사와 바람이 나버린 아내와 헤어진 후 데이트 한 번 하지 않았고, 오밤중에 일어나 아내에게 어디 가는지 통보하지 않은 채 집을 나왔다고 해서 그게 뭐 어떻단 말인가. 모두가 인정하듯 홀거 뭉크만큼 뛰어난 수사관도 없었다. 모두가 홀거 뭉크를 좋아했다. 그럼에도 그는 다시 회네포스로 발령받아 근무 중이었다. 

 

- 자넨 좌천된 게 아니야. 전근을 하는 거야. 내가 보기에는 말이야, 자넨 잘리지 않은 것만으로도 행운이라고 생각해야 해. 

 

- 그는 그날 그린란에 있는 미켈손의 집무실을 나와 사표를 던질 뻔했지만 꾹 참았다. 이 일 말고 뭘 하겠는가? 경비 일을 할 것인가? 홀거 뭉크는 차로 돌아와 트론헤임으로 가는 E6번 도로를 탔다. 

 

- 다른 사람이 서 있었다. 늘 호리호리한 몸매였지만 지금은 수척해 보였다. 언제나 건강했던 자신의 모습은 남아있지 않았다. 스웨터와 바지를 벗고 속옷 차림으로 다시 거울 앞에 섰다. 팬티가 헐렁헐렁했다. 배와 엉덩이 살은 온데간데 없었다. 튀어나온 갈비뼈 위로 조심스럽게 손을 가져갔다. 오톨도톨한 뼈가 하나하나 만져졌다. 미아는 곧장 거울 가까이 걸어가 녹이 슬기 시작한 귀퉁이의 은색 표면에다 눈을 슬쩍 비춰보았다. 사람들은 그녀의 푸른 눈을 보고 말이 많았다. "미아, 너만큼 노르웨이 사람 같은 눈을 가진 애도 없을 거야." 누군가는 그렇게 말했다. 그때 얼마나 뿌듯했는지. '노르웨이 사람의 눈'이란 말이 그렇게 듣기 좋았다. 다르지 않고 비슷해지고 싶을 때는 더욱 그랬다.

 

- 시그리는 언제나 미아보다 예뻤다. 아마도 그래서 그 말이 그토록 기분이 좋았던 게 아닐까? 반짝이는 푸른 눈. 그러나 지금은 그 눈도 남아있지 않았다. 이미 죽은 것처럼 보였다. 생기도 윤기도 없고 하얘야 할 곳은 붉게 충혈되었다. 미아는 바지를 주워 들다가 주머니에서 알약 두 개를 발견하고는 수도꼭지에 입을 대고 그것마저 먹어치웠다. 그리고 다시 거울로 돌아와 허리를 곧게 폈다. 

 

- 꼬마 인디언, 할머니는 미아를 그렇게 부르곤 했다. 푸른 눈만 빼면 그렇게 부를 만했다. 아메리칸 인디언, 키오와족이나 수우족 또는 아파치족. 미아는 어릴 때부터 줄곧 인디언에 매료되었다. 자신이 어느 부족에 속하든 그 점을 의심한 적이 없었다. 카우보이는 악당이지만 인디언은 선하다. 오늘은 기분이 어때, 미아 문빔(달빛이라는 뜻의 인디언식 이름)?  

 

- 가끔 연락을 했다. 주로 체스에 관해 토론하거나 바로 지금처럼 어려운 문제를 두고 서로 도전을 하곤 했다. 

 

- [탱크로 물을 흘려보낸다. 물의 부피는 분당 2배가 된다. 한 시간 내에 탱크에 물이 가득 찼다. 탱크의 물이 절반 찰 때까지 시간이 얼마나 걸렸을까?] 

 

- 뭉크는 이처럼 인터넷을 통해 여러 친구를 사귀었다. 미국에 사는 mrmichigan40. 스웨덴에 사는 margrete 08, 남아프리카의 버어드맨, 모두 체스와 수학 괴짜들이었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점은 모두가 뭉크를 좋아한다는 사실이었다. 그렇다. 이렇게 여행 계획을 짜고, 새 친구들을 사귀고, 정말로 근사하지 않은가? 게다가 자신은 많이 늙지도 않았다. 그런데 어디로든 마지막 여행을 한 게 언제였더라? 뭉크는 휴대전화 화면에 비친 자신을 흘끔 보고는 벤치 옆에 내려놓았다. 

 

- 쉰네 살. 뭉크는 그 숫자가 적절하게 여겨지지 않았다. 실제로는 훨씬 늙은 기분이었다. 마리안네가 휴럼 출신 교사 이야기를 꺼낸 날로부터 10년이 흘렀다. 그때 그는 침착하려고 애썼다. 그런 날이 올 줄 알았어야 했다. 하루 종일 직장에 머물렀고 대체로 넋이 나가있었다. 드물게 집에 있는 날에도 정상이 아니었다. 그는 궁극적으로 대가를 치르리라는 것을 알았다. 지금처럼 이렇게? 그녀는 마치 여러 번 리허설을 한 것처럼 담담하게 말했다. 

 

- 그는 이혼하면서 마리안네에게 집을 주었다. 마땅히 그래야 할 것 같았다. 그렇지 않으면 미리암이 친구들과 학교, 핸드볼을 포기하고 이사해야 할 판이었다. 대신 그는 모녀와 적당히 가깝고 직장에서도 별로 멀지 않은 비슬레트에 작은 아파트를 마련했다. 회네포스로 전근한 후에도 아파트는 팔지 않았고, 지금은 회네포스 경찰서 근처 링바이엔에 원룸을 얻어 살고 있었다. 짐은 아직 이삿짐 상자에 들어있었다. 애초에 짐을 많이 가져오지도 않았다. 일단 시민들의 원성이 잦아들면 오슬로로 돌아갈 수 있을 거라고 기대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거의 2년이 흐른 지금까지도 그 원룸을 뜨지 못했고, 집처럼 느껴지지 않아 짐을 풀지 않은 상태였다. 

 

- 기죽을 것 없어. 너보다 더 못한 사람들도 많아. 
뭉크는 담배를 비벼 끄고 차 안에 있는 서류에 대해 생각했다. 여섯 살 여자아이가 죽은 채로 나무에 매달려 개와 함께 산책하던 시민에게 발견되었다. 이런 사건이 일어난 것도 오랜만이었다. 따라서 저들이 그뢴란에서 식은땀을 흘리는 것도 이상할 게 없었다. 

 

- 뭉크는 휴대전화를 집어 들고 유리의 이메일에 답변을 했다.
[59분]

 

- 이제 단 한 명만 남은 여기, 이 세상에 자신은 오랫동안 머물 생각이 없었다. 할머니가 입버릇처럼 말씀하셨던 이 현실에, 미아는 웃으면서 술을 한 모금 마셨다. 

- 시그리는 언제나 사람들의 사랑을 독차지했다. 긴 금발의 시그리. 학교 성적도 좋았던 아이. 플루트도 잘 연주하고, 핸드볼도 잘하고, 친구도 많았던 아이. 미아는 시그리가 받던 관심을 샘낸 적이 없었다. 시그리는 자신의 유리한 점을 이용하는 아이가 절대 아니었다. 좀처럼 남을 험담하지도 않았다. 시그리는, 그저 멋진 시그리였다. 대신 할머니는 미아를 한쪽 구석으로 데려가 특별한 아이라고 말씀해 주셨다. 그럴 때마다 미아는 기분이 좋았다.

- 미아, 너 그거 알고 있니? 넌 특별한 아이야. 다른 아이들도 훌륭하지만 넌 뭔가를 볼 수 있어. 넌 다른 사람들이 못 보는 것을 볼 수 있어.
생물학적인 할머니는 아니었지만 미아는 할머니와 통하는 데가 있다고 믿었다. 유대감이랄까, 동지의식을 느꼈다. 어쩌면 할머니 역시 미아처럼 남과 다르다는 점에서 동지나 친구처럼 대해 주셔서 그랬는지도 모른다. 할머니는 미아에게 인생 이야기를 들려주셨는데, 얼굴이 붉어지는 내용도 감추지 않았다. 할머니는 남자를 많이 만났다. 너는 남자를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 남자는 몸집이 작은 토끼처럼 전혀 해롭지 않아,라고 말씀해 주었다. 그리고 당신은 미래를 내다볼 줄 아는데, 이 현실보다 더 많은 현실이 있으니 죽음을 절대로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고 말씀하셨다.

 

- 할머니 말씀에 따르면 기독교는 죽음을 부정적인 개념으로 만들어 우리로 하여금 평생 신을 두려워하며 살아가고, 죽으면 지옥이나 천국으로 가게 된다고 믿게 했다. 기독교인은 죽으면 모든 것이 끝난다고 믿지만 미아, 넌 알고 있지? 할머니는 죽음이 끝이라고 믿지 않는단다. 할머니는 결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아.

 

- 고향 오르고르드스트란에서 악담하는 사람들은 할머니를 '마녀'라는 별명으로 불렀지만 할머니는 결코 언짢아하지 않았다. 미아는 그들이 무슨 뜻으로 그렇게 말했는지 잘 알았다. 할머니의 진남색 눈동자 위로 헝클어진 잿빛 머리카락은 여느 할머니들과 달라 보였다. 가게에 가면 할머니는 큰 소리로 이상한 말을 하고 종종 마당에 나가 달을 보며 밤새 혼자 깔깔 웃곤 했다. 할머니는 중세 사람들이 마법이라고 부르는 것을 틀림없이 알고 있었고, 미아를 제자처럼 여겼다.  

 

- 미아는 스스로 운이 좋다고 생각했다. 안정된 환경에서 성장했다. 다정한 엄마와 멋진 아빠를 두었고, 몇 집 건너에는 할머니가 사셨다. 할머니는 미아를 귀하게 여겨주셨다. 미아의 장점을 알고 특별한 존재라고 말해주셨다. 

 

- 딱정벌레처럼 훨훨 날아라, 미아, 그걸 잊지 말아라.
임종할 때 할머니는 눈을 찡긋하며 이렇게 말씀하셨다.
미아는 구름을 향해 술병을 높이 들었다.
죽음은 위험하지 않아.
이제 6일 남았다.

 

- "무슨 말이야?" 토비아스가 놀라서 되물었다.
"숲에 사는 기독교인 여자애들 말이야. 우리 그 애들 쏠까?"
"우린 사람은 쏘지 않아." 토비아스가 단호히 동생의 팔을 잡아채며 말했다. "그런데 넌 기독교인 여자애들 얘기 어떻게 알았어?"
"학교에서 들었어. 그 기독교인 여자애들이 이 숲에 사는데 사람들을 잡아먹는대."
토비아스가 키득거렸다.

"숲에 새로운 사람들이 들어와서 살고 있는 것은 사실이야. 하지만 그들은 위험하지 않고 사람들은 잡아먹는 건 더욱 아니야."
"그럼 왜 우리 학교에 다니지 않아? 여기에 산다면 말이야." 동생의 눈이 휘둥그레지며 궁금해했다.
"나도 잘 몰라. 내 생각에는 자기들만의 학교가 있을 거야."

 

- "아마도." 토비아스가 다시 동생에게 눈을 찡긋했다. "오늘은 어디로 들소사냥을 떠날까? 룬드반?" 토비아스가 동생의 머리카락을 흐트러뜨렸다.
"아마도." 형처럼 되고 싶은 토르벤이 따라 했다. "그게 좋겠어."

"자, 룬드반이다. 너 가서 형이 아까 쏜 화살 좀 주워올래? 찾을 수 있다면 말이야."
동생이 고개를 끄덕였다. "찾을 수 있을 거야."
그는 자신만만한 미소를 지으며 나무 사이로 달려갔다.

 

- 그는 방금 미켈손의 전화를 받았다. 미켈손의 목소리는 아주 이상했다. 평소의 퉁명스러운 말투는 온데간데 없었다. 그러기는커녕 지극히 정중하게 행운을 빌어주며 그가 최선을 다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한 팀이 되어 일하는 경찰에게 그런 말을 해주는 것은 -전혀 미켈손답지 않게 기를 북돋워주-는 중요했지만 뭉크는 조금도 기쁘지 않았다. 틀림없이 무슨 일이 있었다. 뭉크에게 말해주고 싶지 않은 어떤 일이.

- "자네를 위해 인재를 찾았다고. 그녀를 꼭 만나보게." 
위트레가 워낙 빠르게 설명하는 통에 자세한 내용을 일부 놓쳤지만 요약해서 말하면 다음과 같았다. 경찰대학 2학년 학생이 UCLA의 심리학연구소 과학자들이 개발한 테스트를 받았다. 그 테스트의 전문적인 명칭은 잘 듣지 못했지만 학생에게 범죄현장을 찍은 여러 장의 사진과 범죄 피해자의 사진을 보여주는 것으로 구성되었다. 학생들은 그 사진을 보며 자유롭게 연상하고 사진을 관찰하고 느낀 의견을 말하게 되어있었다. 게임과 다름없이 편안하게 진행되는 테스트이기 때문에 학생들은 자신이 중요한 테스트에 참여하고 있다고 의식하거나 압박감을 느끼지 않았다. 
"우리가 이 테스트를 몇 번이나 시행했는지 정확히 헤아릴 수는 없지만 이런 결과는 처음일세. 이 여학생은 특이해." 위트레는 여전히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 홀거 뭉크는 경찰청 밖 카페에서 격식 없이 그녀를 만났다. 미아 크뤼거. 20대 초반에 흰색 스웨터와 검은 스키니 바지를 입고 검은 머리카락을 들쭉날쭉 짧게 자른 그녀는 뭉크가 지금껏 본 적이 없는 지극히 투명한 푸른 눈동자를 갖고 있었다. 뭉크는 한눈에 그녀가 마음에 들었다. 그녀의 행동이나 말투에는 남다른 데가 있었다. 그녀의 눈은 자신이 테스트를 받고 있다는 사실을 알기라도 하듯 질문에 반응했다. 이를테면, 도대체 나를 뭘로 보는 거예요? 

 

- 뭉크는 바위에 걸터앉아 수평선으로 떨어지는 해를 바라보았다. 조용한 곳이라면 언제나 회네포스가 가장 먼저 떠올랐지만 (밤에 침대에 누워 있으면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이곳에 비할 바는 아니었다. 이곳은 그야말로 정적만 흘렀다. 게다가 아름다웠다. 이런 광경을 본 게 얼마만인지 몰랐다. 그는 왜 미아가 이곳을 선택했는지 이해가 갔다. 고요함. 그리고 깨끗한 공기. 그는 코로 한껏 공기를 들이마셨다. 정말로 독특했다. 문득 휴대전화를 들여다보았다. 벌써 두 시간이 흘렀다. 긴 시간이지만 미아는 세상의 시간을 모두 누리고 있었다. 그나저나 자신도 갈 데가 없었다. 혹시 나도 여기에 머물러야 하는 것은 아닐까? 미아처럼 휴대전화도 버리고 세상을 등질까? 완전히 놓아버릴까?

 

- "모르겠어요, 정상인지. 만약 남자라면 정상이 아니에요."
"성적인 경향을 말하는 거야?"
"그러면 말이 되지 않아요. 하지만 그럴 수도 있어요. 제 말이 무슨 뜻인지 아신다면, 그래요, 말이 될 수도 있고 안 될 수도 있는 게... 뭔가 이상하지만, 달리 생각하면 그럴 듯도 해요." 

미아는 다시 자기 생각 속으로 침잠했다. 더 이상 뭉크는 신경 쓰지 않고 자신만의 생각 속에 묻혀버렸다. 뭉크는 그녀를 방해하지 않고 그대로 내버려 두었다. 

 

- "메토헥시탈이 뭐죠?"
뭉크는 서류철을 펼쳐놓고 해답을 찾기 위해 범죄현장 보고서를 훑어 내려갔다. 미아는 당연히 보고서를 읽지 않았을 것이다. 늘 그렇듯이 사진만 보았을 것이다.
"바르비투르 유도제인데 브레비탈이라는 상표로 판매되고 있어. 마취제로 사용된다는군."
"마취제라." 미아는 이렇게 말한 뒤 다시 생각 속으로 돌아갔다. 뭉크는 담배 생각이 간절했지만 꾹 참았다. 실내에서 피우고 싶지 않았거니와 지금 당장은 미아 곁을 떠나고 싶지 않았다.
"그 아이를 해칠 생각은 없었나 봐요." 그녀가 불쑥 말했다.

"무슨 뜻이야?"
"살인범은 아이를 해치고 싶지 않았어요. 아이를 씻기고 옷을 입히고 나서 마취제를 주사했어요. 아이가 고통받지 않게. 아이를 좋아했으니까요."

 

- 갑자기 할아버지의 빨간색 낡은 볼보를 타고 드라이브를 하던 때, 할아버지가 들려주셨던 말씀이 기억났다. 누구나 아이를 기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절대 부모가 되어서는 안 되는 사람도 있다. 당시 그 말이 마음에 와닿았다. 어쩌면 그 말은 선생님에게도 해당되는 게 아닐까? 누구나 선생님이 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교실에 들어올 때마다 떨떠름한 표정을 짓는 것만 봐도 알 수 있었다. 
 

- 동생은 멍한 눈으로 형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숲 속에 천사가 혼자 매달려 있어."
"무슨 말이야?"
"숲 속에 어떤 천사가 혼자 매달려 있다고."
토비아스는 부들부들 떨고 있는 동생을 팔로 감싸 안았다.
"지어낸 얘기지, 토르벤?"
"아니, 거기에 여자애가 있어."
"나한테 보여줄 수 있어?"
동생은 형을 올려다보았다.

"날개는 없지만, 정말 천사야."
"형한테 보여줘."

토비아스는 진지하게 말한 뒤 동생을 앞세워 가문비나무 숲으로 들어갔다.

 

- "토니 스미스는, 내 생각에 그건 애너그램 (철자의 순서를 바꿔서 숨겨진 문장(단어)을 찾는 것) 같아요. It's not him(Toni Smith라는 이름의 철자를 바꾸면 It's not him이라는 문장이 만들어진다). 요하임 비크룬은 그 짓을 하지 않았다는 뜻이 돼요. 동일범이에요. 회네포스 사건이랑." 
뭉크는 한동안 말이 없었다. 미아의 귀에는 그의 머릿속에서 돌아가는 톱니바퀴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사실이라고 단정하기에는 너무 나간 면도 없지 않았지만 그래도 그래야 맞았다. 애너그램이어야 했다. 

 

- 취직이라. 그는 한 번도 취직을 해본 적이 없었다. 상사에게 보고하기. 팀의 구성원으로 업무 처리하기. 현실세계에 동참하기. 아침에 일찍 일어나기. 사회의 책임 있는 일원이 되기. 스물네 살의 청년에게는 익숙하지 않은 일이었다. 

- 가브리엘 뫼르크는 온 세상이 잠든 늦은 밤까지 깨어있는 것을 좋아했다. 그때 사고가 더 잘 됐다. 밖은 어둡고 모니터에서 흘러나오는 불빛만이 그의 원룸을 비추었다. 

 

- "반가워요. 난 킴이라고 합니다."
이름을 밝힌 남자가 손을 내밀었다. 가브리엘은 그가 어디에서 나타났는지 몰랐다. 지극히 평범해 보이는 외모 때문인 듯했다. 왠지 모르지만 번쩍거리는 푸른 경광등을 켜고 사이렌을 울리며 제복차림으로(아니 적어도 무뚝뚝한 목소리로) 등장할 거라고 기대했는데, 지금 앞에 서있는 남자는 그런 것과 거리가 멀었다. 무엇보다 눈에 잘 띄지 않았다. 평범한 바지에 평범한 신발, 어떤 식으로든 대중 속에서 튀어 보이지 않는 색깔의 스웨터. 가브리엘에게는 그런 점이 특이하게 여겨졌다. 상대는 평복 경찰이었다. 그는 그렇게 주위와 섞이도록 훈련을 받았다. 눈에 띄어서는 안 되고, 느닷없이 불쑥 나타나야 한다고. 

 

- 가브리엘은 남자가 암호를 넣을 때 그를 슬그머니 훔쳐보았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아니 말을 해야 하는지 어떤지 몰라 당혹스러웠다. 난생처음 경찰관과 말을 섞었다. 그뿐만 아니었다. 암호가 필요한 엘리베이터를 탄 것도 처음이었다. 킴이라는 경찰관은 이런 일이 자주 있는 듯 지극히 편안하고 자연스러웠다.  

 

- 생각할수록 화가 치밀었다. 트론드 에스펜의 그림자 안에서 연기를 하다니. 그것도 모두에게 무시당하는 하찮은 호레이쇼 역을. 그가 대사를 전하는 상대는 햄릿 뿐이었다. 무대에 서서 고개를 조아리며 트론드 에스펜을 왕처럼 대접하는 일은 정말이지 성미에 맞지 않았다. 벤야민 바케는 일어서서 거울에 자신을 비춰보았다. 정말로 잘생겨 보였다. 기분이 조금 나아졌다. 최근 들어 일과처럼 운동을 열심히 했더니 조금씩 결과가 나타나고 있었다. 요가도 했다. 피부관리도 받고 있었다. 어디를 봐도 흠잡을 데가 없었다. 

 

- 이것은 영화가 아니었다. TV 프로그램도 아니었다. 엄연한 현실이었다. 두 소녀는 더 이상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다. 누군가에게 살해당했다. 실제로, 그들은 더 이상 숨을 쉬지 않는다. 다시는 말을 할 수 없다. 웃을 수도 없다. 학교에 다니지도 못할 것이다. 가브리엘 뫼르크는 뱃속이 부글거렸지만 담담하게 사진을 보려고 애썼다. 한편으로 자신의 이런 모습을 들킬까 봐 두려웠다. 첫 브리핑 때 기절하는 것은 좋게 보일 리 없었다. 

 

- 가브리엘은 어떻게 이런 상황에서 웃을 수 있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러다 이 정도가 그들이 할 수 있는 전부일 거라는 생각이 스쳤다. 감정에 휘말리지 말 것. 스스로 거리를 둘 것. 그렇게 하지 않으면 냉철하게 사고하지도, 업무를 제대로 해낼 수도 없으리라. 
너무 깊이 생각하지 마. 감정에 휘둘리지 마.
가브리엘은 심호흡을 한 뒤 웃음에 동참해 보려고 애썼지만 입 밖으로 소리도 낼 수 없었다.

- "우리가 아는 것은 우리만 알게 한다. 필요한 건 무엇이든 지원한다. 원하는 게 있으면 무엇이든 아네트에게 말하도록. 무한대로 지원해 주겠다는 약속을 받았으니." 
"무한대라니 무슨 뜻입니까?" 킴이 물었다.
"말 그대로 제한이 없다는 뜻이지. 차량, 기술, 인력지원 게다가 초과근무까지. 이번 수사는 우리와 그뢴란에게만 중요한 게 아니다. 온 국민이 초미의 관심을 갖고 있는 사건이다. 저기 높은 곳에서 명령이 내려오고 있다. 미켈손을 말하는 게 아니다."
"법무장관입니까?" 가브리엘이 아직 이름을 듣지 못한 남자가 뭉크에게 물었다. 머리를 면도한 폭력배 같은 인상의 남자였다. 당장 영화에서 악당 역할을 맡아도 될 것처럼 보였다.
"그도 그중 한 명이네." 뭉크가 고개를 끄덕였다.
"총리입니까?" 그 남자가 계속해서 물었다.
"총리 관저에도 정보가 들어가고 있네." 뭉크가 다시 답했다.

"올해 선거가 있지 않습니까?" 머리 면도한 남자가 싱긋 웃었다.

"선거야 매해 있잖나. 쿠리." 킴이 웃으며 받았다. 

 

- 미아 크뤼거는 페이스북에 자신만의 팬 페이지를 갖고 있었다. 요즘도 페이스북을 운영하는지 모르지만 과거에는 그랬다. 그는 몇 번인가 '좋아요'를 누르고 싶었지만 클릭 한 번으로 모든 온라인 활동이 추적 가능하다는 사실을 잘 아는 해커이기에 극도로 조심했다. 한때 미아 크뤼거가 여동생의 마약쟁이 남자친구를 총으로 살해했다는 소문이 돌았다. 신문들은 다른 사건이 터지기 전까지 여러 주일에 걸쳐 이 사건을 도배하다시피 보도했다. 가브리엘은 미아 크뤼거에게 아무 잘못도 없다고 결론 내린 최후 경찰조서를 믿었지만 그럼에도 그녀는 한동안 멀리 떠나 있었던 게 분명하다. 

 

- 검은 머리에 호리호리한 몸매의 여자는 검은색과 흰색이 섞인 롤넥 스웨터에 허벅지에 지퍼가 있는 검정색 바지 차림이었다. 퀭한 눈은 몹시 지쳐 보였고, 신문 사진에서 보았던 것보다 훨씬 말랐다. 미아 문빔. 그것이 인터넷상에서 그녀를 부르는 별명이었다. 가브리엘이 태어나기 전에 발간되어 잘 알지 못하는 만화에서 따온 별명인데, 그가 알기로는 <은색 화살>이라는 만화였다. 등장인물 중 아주 아름다운 아메리카 원주민 소녀가 문빔으로, 1980년대 소년들은 너나 할 것 없이 그녀를 사모했다. 

 

- 그렇더라도 가브리엘은 그녀를 쳐다보지 않고는 배길 수가 없었다. 미아 크뤼거. 노르웨이에는 유명한 범죄 수사관이 많지 않았다. 어쩌면 그 때문일 수도 있었다. 아메리칸 원주민처럼 생긴, 젊고 아름다운 데다 유능한 푸른 눈의 여형사는 거대한 스캔들에 휘말리고 말았다. 그녀는 타블로이드 신문이 원하는 완벽한 먹잇감이었다. 가브리엘은 이제야 그녀에 대해 미안한 마음을 금할 수가 없었다. 그녀는 정말로 지쳐 보였다. 가느다란 다리에 신고 있는 버클 달린 커다란 바이커 부츠는 움직일 때마다 철커덕거렸다. 또 한쪽 손목에는 은장식 팔찌를, 다른 쪽 손목에는 가죽 끈을 차고 있었는데, 언젠가 인터넷 토론방에서 그 두 가지 물건을 두고 갑론을박이 벌어졌다. 은팔찌는 마약 과다투여로 숨진 여동생이 준 선물로 추정되었다. 가죽 팔찌는 젊은 여자를 노르웨이로 데려와 매춘부로 팔아먹고 살해한 혐의까지 받고 있던 라트비아인 남자한테 뺏은 것으로 알려져 있었다. 그녀가 경찰이 되고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 일어난 사건이었다. 피의자인 라트비아 남자는 거짓말과 거짓된 행동으로 미아의 동정을 샀다. 미아는 수갑을 채우지 않고 그를 심문했다. 그런데 남자는 부츠에 숨겼던 공예 칼로 미아를 공격했다. 미아는 얼굴에 피를 흘리며 가까스로 그를 제압한 뒤 칼을 빼앗아 그의 손목에 차고 있던 가죽 끈을 잘랐다. 그 후로 미아는 자신의 약점을 잊지 않기 위해 그 끈을 차고 다닌다는 소문이 돌았다. 그때의 공격으로 미아는 한쪽 눈을 잃을 뻔했다. 가브리엘이 앉은자리에서도 그 상처가 선명하게 보였다. 온갖 소문과 일화들. 어떤 것이 사실인지 확인할 순 없지만 그렇더라도 대단히 흥분되었다. 

 

- 다음과 같은 외국어로 부드럽고 달콤하게 속삭이는 말이었다. 세쿠에레비아 애드 케룸 sequere via ad caelum. 다정한 음성과 강렬한 불빛은 그를 더욱 잡아끌었다.

세쿠에레 비아 애드 케룸. 하늘로 가는 길을 따르라.

얼마 후 루카스는 그 음성과 온기, 불빛에 넋이 나가 천막 안에 서있는 자신을 발견했다. 그리고 천막 한가운데 단상 위에 시몬 목사가 서있었다. 목사의 눈은 빛나고 목소리는 강렬했다. 그날 이후로 루카스는 구원을 받았다. 

 

- 루카스는 회중을 둘러보았다. 신도들은 설교가 시작되기를 조용히 기다리고 있었다. 목사는 신도의 얼굴을 모두 알아보았다. 대부분 몇 년째 교회에 다니는 이들이었지만 그래도 루카스만큼은 아니었다. 루카스는 그해 여름 양부모의 집으로 돌아가지 않았다. 그래도 누구도 개의치 않았다. 그 후 12년이 흐르는 동안 루카스의 서열은 올라가서, 스물일곱 살밖에 되지 않은 지금 그는 시몬 목사의 오른팔이었다. 이를테면 부사령관이었다. 그는 시몬 목사의 사적인 용무와 교회에 관련된 모든 행사를 보조했다. 루카스는 시몬 목사를 보조하는 일을 일생의 사명으로 삼았다. 목사를 위해서라면 못할 일이 없었다. 목사가 없는 삶은 무의미했고, 만약 그런 날이 온다면 목사를 위해 기꺼이 죽을 수도 있었다. 시몬 목사의 추종자들에게 죽음은 끝이 아니라 천국에 가까워지는 길이었다. 열기와 아름다운 불빛이 다시 가슴속에 차오르자 루카스는 새어 나오는 미소를 애써 참았다. 

 

- 지금은 한동안 머릿속에서 그 목소리를 듣지 못할 때도 있었다. 
사실 가끔 들리기는 했지만 어렸을 때와 달리 크지도 않고 자주도 아니었다. 어렸을 때는 특히 고함치는 목소리가 그에게 해서 안 되는 일을 하라고 강요했다. 아무리 거부해도 소용없었다. 그 고함소리는 절대 포기하지 않을 것처럼 꼬드겼다. 그래서 복종할 수밖에 없었다. 빨리 해치워버려. 걱정 마, 잘 될 거야. 루카스는 속삭임과 고함소리가 마치 신과 악마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언젠가 시몬 목사는 그 두 목소리가 어째서 상대 없이 존재할 수 없는지 설명해 주었다. 우주와 영원에서 그 두 기둥은 떼어놓을 수가 없지만 빛의 길이 언제나 너를 인도할 테니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 가끔 악마의 명령에 굴복한다고 해서 치명적인 죄는 아니며, 오히려 신이 존재함을 증명하게 된다. 이따금 신이 악마의 목소리로 가장하고 너를 시험하는데, 그것이 심판이다. 설령 그렇더라도 루카스는 요즘 들어 고함소리가 자주 들리지 않아서 다행스러워했다. 

- Deo sic per diabolum
신에게 가는 길은 악마를 통한다.
루카스는 이것이 교회의 공식적인 입장이 아님을 잘 알았다. 초심자들은 잘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이해하려면 입회자가 되어야 했다. 초심자들은 지금 저 앞에 앉아서 경건하게 침묵하고 있는 사람들처럼 이용당하기 위해 거기에 있을 뿐이었다. 중요한 사람은 입회자였다. 시몬 목사가 말하는 빛에 이르는 길이 무슨 뜻인지 아는 사람들이었다. 루카스도 곧 그중 한 명이 될 것이었다. 

 

- 미아는 문을 열어 아네트를 들여보낸 뒤 자신도 따라서 어두운 접수대로 들어갔다. 경찰 생활을 하면서 꽤 많은 호스텔을 봐왔는데, 이곳도 여느 호스텔처럼 벽과 벽 사이에 예의 익숙한 절망감이 배어있었다. 종착역 바로 전에 거쳐가는 마지막 정거장이랄까. 누구도 나를 원하지 않을 때 최후로 가는 곳. 

- 교회를 쾌적하고 깨끗하게 관리하는 일은 그의 책임이었다. 그가 가치 있게 여기는 중요한 업무였다. 아침 기도를 일로 취급한 것은 실수다. 그에게 아침 기도는 기쁨이었다. 어떨 때는 옷을 갈아입고 아침식사를 마친 후에야 아침 기도가 시작되는데 루카스는 눈을 뜨자마자 침대에서 기도를 할 때도 있었다. 그때가지 기다릴 수가 없기 때문이었다. 아니 그렇게 해야 마땅했다. 하느님에게 말 걸기는 눈을 뜨자마자 가장 먼저 해야 하는 게 맞았다.

 

- 루카스는 우선 감사를 표한 뒤 기도를 올렸다. 자신과 가장 가까우며 사랑하는 이를 보살펴주는 신에 대한 감사였다. 바로 시몬 목사였다. 숲에 있는 사람들을 위한 기도도 했다. 가끔 예전의 가족을 위해서도 감사 기도를 할까 생각했지만 솔직히 그들의 얼굴도 기억나지 않았다. 그를 낳았지만 포기한 가족, 별로 돌봐주지 않은 양부모 가족. 하지만 루카스는 그들 누구도 미워하지 않았다. 도대체 왜 미워해야 한단 말인가? 주님, 그들을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그들은 저희가 한 짓을 모르옵니다. 루카스에게 그런 결정은 어렵지 않았다. 만약 자신이 그런 환경에서 자라지 않았더라면 결코 쇠르란데 캠프에 가지 않았을 것이고, 그랬으면 하나님과 시몬 목사의 품에서 완전한 행복을 누릴 수도 없었을 것이다. 루카스는 입이 귀에 걸리도록 활짝 웃으며 자전거 페달을 힘껏 밟았다. 내가 왜 불만을 가져야 하는데? 그에게는 그럴 만한 이유가 없었다. 인생은 아름다웠다. 완벽했다. 그는 혼자서 싱글거리며 짧게 기도를 중얼거렸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 뒤따라오던 차가 그를 지나 마리달스바이엔으로 쌩 달려갔다. 신을 섬기지 않고 방향 감각 없이 사는 가엾은 인간들은 언제나 저렇게 서둘렀다. 루카스는 하마터면 자전거에서 굴러 떨어질 뻔했다. 하지만 화를 내지 않기로 했다. 그가 이교도들에게 에너지를 소비하지 않게 된 지도 오래였다. 하층 계급의 사람들에게 그럴 이유가 없었다. 처음에는 자신이 그랬던 것처럼 불운한 사람들이 안쓰러웠지만 이제는 그러지 않았다. 누구나 자신의 인생을 선택할 자유가 있다. 행복에 이르는 열쇠는 자기 손에 쥐어져 있다. 시몬 목사가 말하듯 그 사실을 깨닫는 게 중요했다. 

 

- 루카스도 그런 말을 자주 인용했다. 목사의 설교를 듣는 것만으로는 성에 차지 않았다. 네가 허락하지 않는 한 누구도 너를 해칠 수 없다. 네가 하지 못한다고 생각하는 것을 하라. 슬픔이라는 식물은 물을 주지 않으면 살지 못한다. 그것을 살릴 것인가 죽일 것인가는 너에게 달렸다. 루카스는 다시 빙그레 웃었다. 목사는 이런 식의 격언을 더 많이 알고 있었다. 목사는 신과 직접 소통했고, 루카스는 얼마든지 증언할 수 있었다. 헛소리가 아니었다. 루카스는 그런 광경을 여러 번 목격했다. 방에서 하나님을 본 적도 있었다. 주님, 저를 정화시켜 주셔서 고맙습니다. 주님, 길가에 아름다운 야생화를 주셔서 고맙습니다. 주님, 속삭임을 듣게 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주님, 고함소리를 듣게 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주님. 제 삶을 완전하게 만들어주셔서 고맙습니다. 

- 하지만 지난번에는 달랐다. 그녀는 차에서 내려 담배를 한 대 피우고 그에게 잠깐 말을 걸었다. 그리 중요한 얘기는 아니었다. 그저 날씨라든가 뭐 그런 것에 관한 이야기였다. 루카스는 여자의 나이가 서른다섯 살 정도라는 것밖에는 몰랐다. 그녀는 언제나 잘 차려입었다. 앵클부츠에 코트나 스마트 재킷을 입고 연한 빨강색 립스틱을 발랐다. 그리고 미소가 아름다웠다. 검은 머리를 길게 기르고 코는 일직선이었으며 날씨에 상관없이 항상 선글라스를 ...

 

- "건배." 미아가 웃으면서 맥주를 한 모금 마셨다. 
인정하기 싫었지만 맥주 맛이 참 좋았다. 가슴이 뻥 뚫리는 것 같았다. 조심해야 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지만 이 순간 사는 게다 그렇지, 별 건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은 긴장을 풀 자격이 있었다. 홀거는 아무 말 없이 새우 샌드위치를 먹었다. 음식을 다 먹자 접시를 한쪽으로 치우고 담배에 불을 붙였다.

 

- "그 친구 어때?" 
미아는 어깨를 가볍게 으쓱한 뒤 맥주를 한 모금 더 마셨다.
"많이 얘기해보지는 않았지만 좋은 친구 같아요. 좀 어리기는 하지만 뭐, 나쁜 건 아니죠."
"난 그 친구 느낌이 좋아." 홀거는 허공으로 담배 연기를 내뿜었다. "가끔 외부에서 사람을 채용하는 것도 현명한 방법이야. 경찰의 사고 방식에 물들지 않은 신선한 시각을 얻을 수 있거든. 조직 안에 있으면 시야가 좁아지는 경향이 있지."
"그래요." 미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유능해 보여요."
홀거가 웃었다. "하하, 그래. 아무리 박하게 말해도 그 정도면 자격은 충분해. 런던에 있는 해외정보국(M16)에서 이름을 알아냈지. 작년에 그들이 인터넷상에서 도전과제를 냈는데, 그 친구가 암호를 풀었다더군."

 

- "뭐 더 드릴까요?" 종업원이 웃으면서 물었다.
"아이스크림 얹은 애플케이크를 한 조각을 더 먹어야겠어. 맥주 더 마시겠어?"
미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애플케이크와 맥주요." 종업원은 이렇게 말하고 다시 사라졌다.

"어쨌든 컴퓨터에 관한 자신의 임무는 잘 알고 있어, 문제는, 좋은 경찰관이 될 수 있느냐 하는 거지."
"음, 누구나 그렇지 않아요?" 미아가 웃었다.
"당신 말이 맞아. 어쨌든 난 오슬로로 돌아와서 기뻐. 그리고 미아, 당신도 여기에 있고. 오늘 일찍 미켈손과 통화했어. 이번 사건은 하나부터 열까지 주목을 받고 있어. 국가의 안전이라든지 경찰의 명예. 게다가 알겠지만, 가능하면 신속히 해결하라고 고위층에서 보내는 압력이 거세. 내가 보기에는 총리가 매일 전화를 걸어 수사상황을 확인하는 것 같아."
"그 사람 입장이 불편한 건 관심 없어요." 미아가 대꾸했다.
미아는 잔을 비우고 주머니에서 목캔디를 꺼냈다. 여종업원이 애플케이크와 맥주를 가지고 왔다. 미아는 홀거가 케이크를 먹을 때까지 맥주를 입에 대지 않았다. 

 

- "일단 로게르부터 시작할게요. 그에게는 딱히 특이한 점이 보이지 않아요. 랩톱을 많이 사용하지 않았더군요. 컴퓨터 중독자는 아니었어요."
"어떤데요?"
"보통 사람들이 사용하는 정도예요."
"뭘 사용했죠?"
"이메일이라든지 자동차, 오토바이 검색, 뭐, 우리가 예상할 수 있는 거죠."
"누구한테 이메일을 보냈어요? 흥미로운 사람이라도 있나요?"
"사실 그렇지 않아요. 사적인 이메일은 별로 없었어요. 그러니까 개인적으로 아는 사람한테 받은 메일은 없었어요. 바이커 잡지를 주문한 적이 있고, 청구서라든지 이메일 영수증, 스팸메일 뿐이에요. 이메일 내용만으로 보면 꽤 쓸쓸하게 살다 갔어요."
"사람들에게 인터넷상의 삶만 있는 게 아니죠." 미아가 말했다.

 

- 미아 크뤼거는 스토르가테의 카페 브렌네리에 창가에 앉아 두 번째 코르타도(따뜻한 우유와 함께 제공되는 에스프레소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이미 스콘도 먹고 오렌지주스도 한 잔 마셨다. 간밤에 주자네와 과음을 한 후 지독한 숙취는 아직 남았지만 그래도 천천히, 확실히 회복되고 있었다. 미아는 어떤 이유에선지 보통 때 같으면 거들떠보지도 않는 신문을 오늘 읽었다. 비록 앞쪽 몇 면은 아무런 감흥도 없었지만 말이다. '숲 속 아이들 살해되다(숲 속 아이들 babes in the wood은 '잘 속는 사람, 순진해서 위험에 처하기 쉬운 사람'을 뜻하는데, 1595년 영국에서 출간된 <숲 속의 아이들 The Children in the Wood》이란 옛날 이야기에서 유래된 말이다. 두 아이를 둔 아버지가 죽어가면서 동생에게 아이들을 잘 돌봐달라고 유언을 남기지만 동생은 형의 유산에 눈이 멀어 두 아이를 깊은 숲 속으로 끌고 들어가 그곳에 버려둔 채 도망치고, 아이들은 숲을 방황하다가 결국 죽고 만다. 여기에서 유래되어 어린이 살인사건이 났을 때 언론은 흔히 '숲 속 아이들이 살해되다'라고 표현한다).'

 

- 신문은 아이들을 그렇게 부르기로 작정한 듯했다. 미아는 언론이 살인사건 수사라든가 실종자 수색, 시민의 불안, 전쟁 등 정말로 비극적인 상황을 명칭이나 상징으로 만들어 표현하는 게 불쾌했다. 그게 독자들에게 미치는 영향을 모르는 걸까? 사람들의 두려움을 증폭시키고 섬뜩하게 만들어도 개의치 않는 걸까? 빌어먹을, 모두 지옥에나 떨어져라. 그런 행위를 막는 법은 왜 없을까? 처벌은 왜 없을까? 더 나쁜 점은 이 멍청한 언론들이 범인이 원하는 것을 그대로 제공하고 있는 줄도 모른다는 사실이었다. 대중의 관심이라는 산소 말이다. 그들은 모를까? 범인이 바라는 것은 사람들의 관심인 경우가 많았다. 신문마다 기사 분량이 늘어났다. '숲 속의 아이들'. 미아는 가끔 기자들이 기사를 어떻게 썼는지 궁금했다. 이웃이나 친구, 유치원 관계자들을 면담했을 것이다. '경찰은 단서를 찾지 못하고 있다.' 언론이 그 사실을 어떻게 알았는지 궁금했다. 생일에 가족과 해변에서 찍은 파울리네의 사진들. 요한네가 수영장에서 할아버지와 놀거나 스케이트 타는 사진들. 미아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기사를 읽었다. '용의자 없음'. '전 국민이 애도'. 장례식 사진들. 범죄현장에 놓인 꽃과 초들. 희생된 아이들에게 보낸 편지와 카드. 우는 아이들. 눈물짓는 어른들. 
 
- <아프텐포스텐>은 뉴스 보도에 있어 팀워크가 탁월했다. 재능 있는 편집팀, 유능한 기자들. 그들은 공개적으로 논의한 적은 없어도 절제된 기조를 유지하는 데 있어 암묵적으로 동의하고 있었다. 이를테면 관객이 가득 찬 극장에서 "불이야!"라고 소리치지 않았다. 배려를 보여주었다. 더럽고 거친 손가락으로 상처를 깊이 후벼 파지 않았다. 몇몇 경쟁지들과는 달랐다. 

 

- 미켈 볼드는 몇 달 전 경쟁 신문사로부터 이직을 제안받았다. 마흔이 가까워오는 그는 <아프텐포스텐>에서 12년째 근무하고 있었다. 제안은 솔깃하게 들렸고, 자신이 또 언제 이런 제의를 받을지 장담할 수 없었지만 거절한 것을 스스로 다행스러워했다. 파울리네에게 작별 인사를. 그는 파울리네의 유치원 친구와 부모를 인터뷰했다. 이도저도 아닌 무미건조한 기사일까? 그럴 수도 있지만 그는 책임 있는 저널리즘이라고 판단했다. 적절했다. 친구를 잃은 깊은 슬픔. 그들은 한 손에 꽃다발을 들고 다른 손에 파울리네를 위해 그린 그림을 든 채 우는 여자아이의 사진을 찍었다. 아름답고 가슴 뭉클했다. 언론 규범을 벗어나지 않는 한도에서. 그렇지 않은가? 아니 혹시 벗어났나? 미켈 볼드는 한숨을 쉬며 기지개를 켰다. 소녀들의 시신이 발견된 후 제대로 잠을 잔 적이 없었다. 내가 균형감각을 잃어버리기 시작한 것은 아닐까? 10년 전에 이런 기사를 썼더라면 어땠을까? 5 년 전에는? 그는 도덕적인 꺼림칙함을 떨쳐버리고 커피를 마시기 위해 탕비실로 갔다. 사무실은 북적거렸다. 

 

- "알파값 1(설문조사의 신뢰도를 분석할 때 그 값을 0~1까지 크롬바흐 알파값으로 분류하는데, 이 값이 높으면 신뢰도가 높다)이 나오도록요?"
뭉크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반장님?"
"왜? 그래, 나는 모두가 여기에 매달렸으면 좋겠어. 모두. 내가 모두라고 한 건 말 그대로 모두야. 모두가 도로 하나, 빌어먹을 오솔길 하나까지 확인했으면 좋겠어. 이해해?"
"이해해요." 미아가 대답하고 나서 전화를 끊었다.
홀거가 다시 담배를 길게 한 모금 삼켰다. 복수심에 머리가 지끈거렸다. 목도 탔다. 그에게는 수분이 필요했다. 그리고 음식도.

그때 다시 휴대전화 벨이 울렸다.

 

- "가브리엘 뫼르크예요. 통화 괜찮으세요?"
"용건에 따라 달라. 왜?" 뭉크가 퉁명스럽게 말했다.
"제게 지시한 개인적인 일, 기억하시죠?"
뭉크가 이마를 문질렀다.
"암호 말입니다." 가브리엘이 계속했다.
뭉크는 기억을 뒤적이다 겨우 깨달았다. 그가 풀지 못한 수학퍼즐이었다. 스웨덴 여자가 인터넷으로 보내준 과제였다.

 

- "제 생각에는 그론스펠트 같습니다." 가브리엘이 말했다.

"그게 뭔데?"
"그론스펠트 암호입니다. 암호문이죠. 비제네르 암호의 변형인데, 이건 문자보다 숫자를 이용하죠. 하지만 좀 더 필요합니다. 혹시 다른 거 받으신 건 없으십니까?" 
뭉크는 집중을 하려고 애썼다.
"더? 잘 모르겠는데, 그게 대체 뭐야?"
"문자와 숫자입니다. 그론스펠트는 발신인과 수신인 양쪽이 똑같은 문자와 숫자의 조합을 갖는 방식입니다. 외부인은 암호를 해독하기 불가능하게 하려고요."

 

- 몽타주에 잘못은 없었다. 마찬가지로 목격자의 제보에도 잘못이 없었다. 문제는 그게 누구라도 될 수 있다는 점이었다. 하루 사이에 900통의 제보 전화가 쇄도했다. 누구는 그녀가 이웃사람이라고 하고 누구는 직장 동료라고 했다. 조카라고 한 사람도 있고 전날 유람선을 타려고 줄을 섰을 때 봤다는 사람도 있었다. 경찰청의 교환원들은 눈코 뜰 새가 없었다. 업무를 폐쇄하고 휴식을 취해야 할 정도였다. 통화를 하려면 대기시간이 두 시간이라는 소문이 돌았다. 

 

- 이건 너의 책임이야. 만약 그 소녀들이 죽으면 네 잘못이야. 

 

- 혈흔을 조사했더니 소녀들의 피가 아니었다. 사람의 피가 아니었다. 돼지 피였다. 범인은 그들을 조롱했다. 그 여자가 지금 그런 짓을 하고 있었다. 아니, 남자일 수도 있다. 미아는 의심이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뭔가 맞지 않는 점이 있었다. 스컬러루드에서 목격된 여자. 몽타주. 처음부터 끝까지 각본이 짜인 게임이라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봐, 나한테는 얼마나 쉬운지 몰라. 나는 원하는 대로 할 수 있어. 내가 이겼어. 너희는 지고.

 

- 아기가 실종된 병원의 직원은 860명이나 됐다. 환자와 방문객, 친척처럼 쉽게 접촉할 수 있었던 사람들은 말할 것도 없었다. 그들까지 더하면 잠재적인 용의자는 수천 명에 이르렀다. 감시카메라에 잡힌 사람들도 조사했지만 별 소득이 없었다. 그런데 당시 산부인과 병동에는 카메라가 없고 출입문 근처에만 있었다. 미아는 여러 시간 동안 기록물을 살폈지만 실패했다. 아무것도 없었다. 당시 면담기록과 진술서만 해도 몇 상자였다. 의사, 간호사, 환자, 물리치료사, 사회복지사, 친척들, 접수원, 청소부...

 

- "왜 그랬는지 알아요?"
"왜 그가 뛰어내렸느냐고?"
미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카를리에는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몰라, 이곳은 거친 세상이야. 내가 말할 수 있는 건 그게 전부야. 정상적이 되는 것은 정말 괴로운 일이지. 자기 몸은 다르게 말하는데 사회에서 어떤 사람이 되라고 강요할 때는 더 괴롭고."
"당신만큼 정상적인 사람도 없어요." 미아는 카운터에서 맥주잔을 들어 올렸다. 
카를리에가 낄낄 웃었다.

"내가? 맙소사, 난 30년 전에 모든 걸 내려놓았지만 모두가 나와 같지는 않아. 누군가는 죄책감과 수치심, 양심의 가책으로 가슴이 벌집처럼 숭숭 뚫리지. 휴대전화로 인터넷에 접속하고 화성에 우주선도 보내는 시대지만 정신적, 정서적으로는 아직 중세를 살고 있어. 하지만 자기는 그런 거 다 이해할 거야."
"제가요?" 미아가 물었다.
"그래, 자기는 똑똑하니까. 그래서 내가 자기를 좋아하는 거야. 예쁘고(그 이유가 더 크지만, 정말이야) 똑똑하고. 자기한테 이런 것까지 시시콜콜 설교할 필요도 없는데. 미아, 총리가 되는 건 어때? 총리가 되어 이 나라에 한두 가지만 교육시키는 거야. 어때?"
"별로 좋은 아이디어 같지는 않아요."
"그럴지도 몰라. 자긴 너무 착해서." 

 

- 한쪽은 푸른 눈, 다른 한쪽은 갈색 눈의 여인은 욕실 거울 앞에서 있었다. 그녀는 욕실 캐비닛을 열고 렌즈를 꺼냈다. 오늘은 푸른색이다. 직장에서는 푸른색을 착용했다. 직장에서는 두 눈 색깔이 다르지 않았다. 그곳에서는 진정한 자신이 아니었다. 직장에선 내가 누구인지 아무도 몰라. 어차피 그곳은 진짜 일자리도 아니었다. 그렇지 않은가? 단지 위장을 위한 것, 보여주기 위한 것일 뿐이었다. 그녀는 머리를 말총 모양으로 단단히 묶은 다음 거울 쪽으로 몸을 기울였다. 눈에 조심스럽게 렌즈를 낀 뒤 깜빡거렸다. 거짓 미소를 지어 보기도 하면서 자신을 꼼꼼히 살폈다. 

 

- 안녕하세요, 말린이에요. 말린 스톨츠, 여기에서 일하죠. 당신들은 나를 안다고 생각하지만 진짜 내 모습은 모를 걸요. 내가 얼마나 거짓말을 잘하는지 모를 걸요. 미소 짓기. 상대의 말에 주의를 기울이는 척하기. 어머, 기르는 개가 아프다고? 딱하기도 해라. 지금쯤 나아졌기를 빌어. 스쿼시 한 잔? 당연히 좋지. 

 

- "폐암 안 걸렸어요?" 미아가 자기 쪽 차창을 열며 말했다.

"누가 누굴 얘기하는 거야." 뭉크가 쏘아붙였다. "난 술도 안 마셔. 또..."
"커피는 입에도 안 대고. 그러니 제발, 담배는 피우게 내버려 둬. 이 말씀이죠?" 미아가 웃었다.
"오늘 아주 즐거워 보이는데, 왜지?"
"이유는 없어요. 뭔가 알게 될 것 같아요. 어쩌면."

 

- "심볼리즘에 대해 잘 아시죠?"
"그건 왜?"
"그게 어느 정도 정확하다고 하지 않으셨어요?"
"그랬을 거야. 하지만 그거야 미아의 전문 분야지."
"아니요. 전 진지하게 말하는 거예요."
"그래, 알아. 다만 나는 미아의 두뇌에서 일어나는 온갖 반전을 따라갈 수 없어. 머리가 빙글빙글 돈다고."

 

- "왜 그게 첫 번째 단서지?"
"왜냐하면 그것만 어울리지 않아요. 다른 건 모두 어울리는데. 그렇죠? 더 큰 그림의 일부일 수는 있지만 우리가 반드시 봐야 하는 것은 아니에요. 우리는 그 너머의 것을 봐야 해요.”
"아하!" 뭉크는 더욱 흥미를 느끼며 감탄했다.
"그렇다면 어울리지 않는 첫 번째 단서는?"
"교과서에 적힌 이름."
"맞아요. 그건, 명백한 신호예요."
"무슨 신호?"
"의도가 있다는 신호. 자, 좀 더 깊이 생각해 보세요."

 

- "좋아. 의도. 다른 상징들은 모두 위조야, 아이를 씻기는 것, 드레스, 학교와 관련된 물건들. 그런데 토니 J.W. 스미스는 의도를 가지고 꾸며낸 거란 말이지? 계획을 가진 누군가가?"
"잘했어요!" 미아는 다소 빈정거리듯 박수를 쳤다.
"그래, 그렇군, 난 전혀 몰랐어."
"그렇다면 토니 J. W 스미스는 무엇을 의미할까요?"

"회네포스." 

 

- 회비크바이엔 양로원은 의심할 여지없이 부유층을 위한 시설이었다. 문을 열고 환기가 잘 되는 환한 접수대로 걸어 들어가며 미아는 서부 오슬로의 전형적인 시설이라는 생각을 했다. 먼지 하나 없이 청결하고, 산뜻한 가구에 현대적인 조명시설, 벽에 걸린 원화까지 고급스럽고 쾌적했다. 미아가 알고 있는 화가의 그림도 여러 점 보였다. 엄마 에바는 미술에 관심이 많아서 기회가 닿을 때마다 딸들을 여러 전시회에 데려가주었다. 

- 벽에는 다양한 활동을 찍은 사진들도 전시되어 있었다. 캐비닛 진열장은 트로피들로 가득 차있었다. 노르웨이뿐만 아니라 해외여행 기념품, 브리지대회와 볼링대회 트로피. 인생의 마지막 정거장임에도 이곳에는 그런 사실을 암시하는 것들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사해에서 수영을 하거나 호박 기르기 대회에서 우승하는 한 회비크바이엔 양로원에서의 삶은 끝나지 않았다.


- "행운을 빌어줘." 홀거가 복도 끝으로 사라지며 한숨을 쉬었다. 

개인 침실로 가는 거라고 미아는 추측했다. 욕실과 텔레비전, 라디오가 갖춰져 있고 24시간 서비스를 받는 양로원. 이곳 노인들은 음식이나 물을 거르고 지저분한 기저귀를 찬 채 며칠 동안 누워있는 일은 없으리라. 미아는 안락의자 한 곳에 앉아 잡지를 둘러보았다. '60 플러스' '인생에서 최고의 시기를 보내는 당신을 위한 잡지.' '가벼운 운동이 치매를 예방한다.' '자동차와 어울리는 토벤 베크(1939~, 노르웨이의 여배우 주)의 립스틱.' 미아는 자신의 할머니가 살아계셔서 이런 곳이나 잡지를 보면 무슨 말씀을 하셨을지 짐작이 가고도 남았다. 문득 웃음이 나왔다.  

 

-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요양원의 분위기와 잘 어울리는 요양사였다. 혈색 좋은 얼굴에 친절하고 아름다웠다. 아무래도 실내디자인과 어울리는 사람만 채용되는 것 같았다. 아마도 지친 표정으로 부엌 뒤편에서 담배를 뻐금거리며 모여있는 직원들은 없으리라. 이 여자 요양사는 미아 또래처럼 보였다. 자세가 반듯하고 연푸른색 눈동자에 검은 머리를 뒤로 끌어모아 말총처럼 묶은 매력적인 여자였다.

- 오늘 정오에 기자회견이 예정되어 있었다. 미아 크뤼거는 그 임무를 맡지 않게 된 걸 가슴 쓸어내리며 다행스러워했다. 예전부터 언론사 기자들과 긴장된 관계를 유지해 온 미아는 그들과 함께 있는 게 여간 불편하지 않았다. 마치 두 얼굴을 가지고 진짜 생각을 절대로 말하지 말아야 할 것처럼 여겨졌다. 바로 그 점이 문제였다. 미아에게는 체질적으로 맞지 않았다. 그녀는 솔직한 게 좋았다. 그런 일은 연극을 하는 것이나 다름없다고 생각했다. 남의 시선을 끌고 싶어 하는 사람도 있는 반면 어떻게든 피하려는 사람도 있었다. 

 

- 미아는 맥주를 한 잔 마실까 하다 패리스를 주문했다. 그리고 생각을 정리할 필요가 있을 때 늘 그러듯 펜과 종이를 꺼내 테이블에 펼쳐놓았다. 과거에는 뭐든지 더 정확히 보고 더 빠르게 처리했다. 전성기에는 눈을 감기만 해도 머릿속에서 잘 처리되었지만 오래전의 일이었다. 트뤼반 사건, 히트라에서 보낸 몇 개월. 그 사이에 눈은 장막에 가려지고, 뇌세포에 안개가 끼어 흐릿해졌다. 미아는 휴식을 취하라는 처방을 받았다. 오래 휴식을 취하고 어떤 종류의 압박도 받지 않게 하라. 미아는 스스로 약을 먹는 방법을 택했다. 거의 죽도록. 지금 그 대가를 치르고 있었다. 

- 미아는 앞에 놓인 종이에 메모를 시작했다. 펜이 제 역할을 하도록 애를 썼다. 뒤죽박죽 혼란 상태에 일종의 질서를 부여하기 위해서였다. 생각하는 일은 거의 고통에 가까웠다. 두 여자아이가 죽었다. 두 여자아이는 실종상태다. 그것은 자신의 책임이었다. 뭉크, 이유는 모르지만 뭉크가 이 사건과 연관이 있는 것은 분명했다. 미아는 그 점을 확신했다. 아니, 정말 그럴까?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아주 쉬웠던 어떤 일이 지금은 불가능해 보였다. 이럴 줄 알았으면 섬을 떠나겠다고 절대 동의하지 말았어야 했다. 자신의 계획을 고수했어야 했다. 

 

- "더 주문하실 거 없으세요?"
"맥주 한 잔 줘요." 미아는 짜증스럽게 툭 말을 뱉었다. "라체푸츠 두 잔도."
있어야 할 곳으로 돌아가려면 무언가의 도움이 필요했다.

 

- 겉으로 보이는 모습의 이면 드러내기는 미아의 특기였다. 아무도 보지 못하는 것을 보는 일. 자신을 압박하지 말아요. 무조건 쉬어요. 어디로든 가요. 그래서 섬에 숨었고, 세상과 단절했다. 넌 네 역할을 다했어. 하지만 그렇지 않았다. 현실이 계속해서 노크했다. 악이 자꾸만 그녀를 괴롭혔다. 갈매기가 있던 곳에 자동차가 보였다. 별 대신 가로등과 네온이 있었다. 미아는 지금 예민해져 있었다. 피부가 거의 들여다보일 지경이었다. 그녀는 이렇게 가혹한 것에 익숙했다. 

 

- 막 잠이 들려는데 휴대전화 벨이 울렸다. 무시하는 게 최선이었다. 쉬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어. 휴대전화 벨이 계속 울렸다. 중요하지 않은 전화일 수도 있었다. 하지만 휴대전화 벨이 다시 울렸다. 이윽고 벨소리가 그쳤다. 

 

- 왜 어른들은 제대로 키우지도 못하면서 아이를 낳을까? 언젠가 노르웨이어 수업이 끝난 후 에밀리에 선생님은 토비아스에게 왜 목덜미에 멍이 들었느냐고 물으셨다. 팔에도 들어있었다.

"선생님한테 털어놔도 돼." 선생님은 매우 다정하게 토비아스의 어깨를 쓰다듬어주었다. "선생님한테 말해, 선생님한테 말하는 것은 안전해."

하지만 토비아스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선생님 잘못이 아니었다. 선생님은 그저 도우려 했을 뿐이다. 하지만 선생님은 그러면 어떻게 되는지 모르셨다. 토비아스가 집으로 돌아가고, 고자질한 것을 부모님이 알게 되었을 때쯤 선생님은 그 자리에 안 계실 것이다. 그렇지 않은가? 말해봤자 더 나빠질 뿐이었다. 모든 게 더 최악으로 치달을 뿐이다. 그랬다. 토비아스는 어떻게 될지 잘 알았다. 중요한 것은 인내였다. 참고 살아남는 것. 무슨 일이 있어도 동생은 자신처럼 두드려 맞지 않도록 하는 게 중요했다.  

 

- 토비아스는 최대한 몸을 작게 웅크린 채 젖은 풀밭을 기어갔다. 무릎이 젖었지만 상관없었다. 이까짓 것 얼마든지 참을 수 있었다. 힘들 때는 그저 입을 다물고 있는 게 나았다. 절대 말대꾸하지 마. 그러면 더 나빠질 뿐이야. 고개를 끄덕거려 고개를 숙이고 알았다고 대답해. 토비아스는 두렵지 않았다. 더 이상 겁나지 않았다. 그들은 라켈의 머리에 두건을 씌웠다. 당신들, 그러면 안 되지, 어른은 아이한테 그런 짓 하면 안 돼.

 

- 뭉크가 신분증을 내밀자 방금 침대에서 나온 듯 머리가 부스스한 젊은 경관이 저지선을 통과시켜 주었다. 그들은 카페 갈레이엔이라고 불리는 작고 붉은 건물 밖에 주차를 한 뒤 그곳에서 쿠리를 만났다. 쿠리는 그들을 고풍스러운 석조벽을 따라 안내했다. 가는 길에 동상이 세워질 맞은편 해안가 산책로가 보였다. 에드바르 뭉크의 어머니 로라 카트린 뭉크와 이모 카렌 뵐스타. 미아는 에드바르 뭉크에 대해 잘 알았다. 오스고르드스트란 출신이면 대부분 그랬다. 그 작은 마을의 주민들은 뭉크가 거기 살았다는 사실을 언제나 자랑스러워했다. 비록 당시의 점잖은 부인들은 평판 나쁜 예술가와 마주치면 언짢아하며 재빨리 양산으로 얼굴을 가렸지만 말이다. 언제나 그렇지 뭐. 안 그래? 이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경찰관들이 쳐놓은 범죄현장의 흰색 비닐천막이 눈에 들어왔다.  

 

- 노르웨이의 위대한 예술가들은 모두 그랬을까? 그들은 제대로 평가받기 전에 죽었을까? 미아는 이런 생각을 자신이 먼저 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것은 엄마한테 들은 이야기였다. 어린 시절 집안에서는 언제나 예술과 문학을 높이 평가했다. 미아는 종종 식탁에서 엄마한테 이야기를 들었는데, 학교 강의와 다름없었다. 시그리와 미아는 포리지 그릇을 앞에 둔 학생이었고, 엄마 에바는 열성적인 교사였다. 

 

- 쿠리는 잔뜩 긴장해서 천막으로 가는 내내 쉬지 않고 떠들었다. 경험이 많은 데다 근육질 몸매에 머리칼을 면도한 탓에 차갑고 강인한 인상을 주는 그였지만 미아는 잘 알았다. 생김새나 행동은 불독 같지만 쿠리가 매우 유능한 강심장이라는 사실을. 

 

- 미리암 뭉크는 아버지의 승용차 뒷좌석에 앉아 감정을 억누르려 애썼다. 아버지가 명령해서 털모자를 귀까지 내려쓰고 커다란 선글라스도 걸쳤다. 마리온은 웅크린 작은 몸을 담요로 감싼 채 옆자리에 누워 있었다. 이틀 전 아버지가 전화로 잠을 깨워 문이란 문은 모두 잠그라고 했을 때 미리암은 영문을 몰랐다.

아무나 집에 들이지 마라. 마리온은 유치원에 보내지 말고 집에만 있게 해. 
무슨 말씀이세요. 유치원에 보내지 말고 집에만 있게 하라뇨? 

제발, 미리암, 아빠가 시키는 대로 해!

 

- 불현듯 어떤 생각이 떠올랐다. 미리암은 바보가 아니었다. 아니 정반대였다. 미리암은 학교에서 언제나 가장 똑똑한 학생이었다. 어릴 때부터 다른 아이들이 어려워하는 것을 놀랄 정도로 수월하게 해냈다. 아시아의 강이나 남미의 수도 이름 외우기, 분수, 대수학, 영어, 노르웨이어. 하지만 모든 시험에서 1등을 하지 않고, 수업시간에 손을 너무 자주 들지 말며, 자신의 똑똑함을 지나치게 드러내지 말아야 한다는 것도 일찌감치 터득했다. 미리암은 감성 지능도 뛰어났다. 친구와 사귀는 것을 좋아했고, 교만하지 않았다. 
 
- 그런 생각은 진작 했다. 딸 마리온은 이번 가을에 학교에 들어갈 예정이었다. 게다가 아버지는 소녀 네 명이 살해된 사건 수사를 지휘하고 있었다. 그녀는 바보가 아니었다. 미리암은 그런 면에서 완강했다. 가만히 앉아서 위협당하지 않겠다고 결심했다. 어떤 미친 인간 때문에 삶이 파괴되도록 가만히 보고 있지 않겠다고 생각했다. 물론 매사에 조심했다. 누구라도 그렇지 않을까?  

 

- 그해 가을학교에 입학하는 여자아이들의 부모는 물론 유치원 교사들과 함께 유치원 내 모임도 결성했다. 어떤 부모는 아이를 유치원에 보내는 게 두려워서 휴직을 했다. 유치원을 일시적으로 폐쇄하자는 의견도 나왔다. 어떤 학부모는 아이와 함께 유치원에 등원하기도 했다. 그야말로 대혼란이었지만 미리암은 그들을 진정시키려고 갖은 노력을 했다. 무엇보다 아이들을 위해 가능한 정상적으로 생활하는 게 중요하다는 확신을 주려고 했다. 하지만 뒤통수에서는 항상 잔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았다. 넌 엄청난 위험에 처할 수도 있어, 겁을 내야 해. 그런 일이 실제로 일어났다. 

- 경찰관 아버지의 편집증은 10대 딸의 일상생활을 세세한 부분까지 간섭했다. 덕분에 친구들 사이에서 지위는 올라갔다. 집에서 고달프게 지내는 아이들은 학교에서 친구들에게 동정을 많이 받았다. 게다가 미리암은 아버지가 얼마나 훌륭한 경찰이든 그의 눈을 속이는 방법을 알고 있었다. 세월이 흐를수록 아버지는 집을 비우는 일이 잦아졌고, 그건 딸에게 아버지가 문제 될 게 별로 없어졌다는 의미였다. 어머니는 어머니대로 자신만의 관심사에 푹 빠져있었다. 맙소사, 어른이나 부모나 그들은 정말로 아이들이 아무 눈치도 없는 줄 알까? 미리암은 집안에 폭발이 일어나기 전에 롤프라는 남자의 존재를 알고 있었다. 그 전만 해도 어머니의 일과는 오죽하면 거기에 시간을 맞출 수 있을 정도로 규칙적이었다. 그런 사람이 갑자기 '친구를 만나야 한다'고 나간다면 누군들 이상하지 않을까? 그토록 많은 전화를 받고도 그 전화가 모두 '잘못 걸려온 전화'라고 하면 누가 믿을까? 오, 이런. 

 

- 미리암은 고개를 끄덕였다. 미리암은 언제나 미아가 좋았다. 미아의 성격에는 좀 특별한 데가 있었다. 카리스마가 강했다. 존재감이 대단했다. 다소 거리감을 느끼게 하고 별나 보이기도 했지만 미리암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미리암은 미아에게서 자신을 떠올렸다. 똑똑하고 강해 보이지만 쉽게 상처받는 성격이 비슷했다. 그래서 미아에게 끌리는지도 몰랐다. 

 

- 아네트는 전화 상의 그 여직원보다 훨씬 친절했다. 사라는 적잖이 안심이 됐다. 사실은 오래 지난 지금에야 신고했다고 비난받을까 봐 두려웠다. 그녀는 평생 비난을 받았다. 더 이상은 비난받고 싶지 않았다. 

 

- 교사나 경찰에 여러 부류가 있는 것처럼 기자도 여러 부류가 있다. 어떤 기자는 유명인사의 신변잡기를 쓴다. 또 어떤 기자는 부조리를 파헤친다. 미리암이 원하는 기자 상은 후자였다. 뭔가를 위해 싸우는 기자. 어떤 유명인사가 크리스마스 때 무엇을 먹고, 누가 베스트드레서인지 등수를 매겨 독자들의 머리를 둔하게 만들기보다 자신의 두뇌를 이용해 사람들을 일깨우는 기자였다. 

 

- "컴퓨터에서 동영상을 삭제했다고요?" 젊은 남자가 물었다.
사라가 고개를 끄덕이며 반문했다. "뭐가 잘못되었나요?"
"갖고 있었으면 더 좋았겠지만 우리가 복구할 수 있을 거예요. 랩톱은 가지고 오셨죠?"
사라 키에서는 가방에서 랩톱을 꺼내 젊은 남자에게 건넸다.
"메모리스틱은 갖고 있지 않은 거죠?"
"네. 집에 있는 쓰레기통에 버렸어요."
"하하, 안타깝게도 그건 찾기 불가능할 것 같군요." 젊은 남자가 이렇게 말하며 사라에게 윙크를 했다.
사라는 그제야 웃었다. 여기 사람들은 매우 친절했다. 어깨에서 거대한 짐을 내려놓은 듯 느껴졌다. 그들이 전화상의 그 여자처럼 무뚝뚝하게 호통을 칠까 봐 겁을 먹은 터였다. 

 

- "그 소년을 언제 마지막으로 봤대요?" 
"잘 모르겠어요. 쪽지를 써놓고 집을 나갔는데, 그게 지난 토요일에 발견되었어요. 쪽지에는, 숲으로 뭘 찾으러 간다고 적혀있어요. 숲에 있는 낡은 재활시설을 사들인 종교집단인데, 혹시 그들에 대한 얘기를 들어보셨어요?" 
"네." 경찰관이 대답했다. 
그는 손으로 전화기 마이크를 가린 듯 잠시 말이 없었다. 어쩌면 자기 동료와 의논을 하는 중인지도 몰랐다.
"그러니까 말씀하시는 소년이 실종되었고, 그 아이의 부모도 사라졌다는 거죠? 그런 말씀이죠?"
에밀리에는 점점 그가 싫어지기 시작했다.
"맞아요. 그렇게 말씀드렸어요." 그녀가 쌀쌀맞게 대답했다.

"그렇다면 아이가 부모와 함께 있지 않다는 건 어떻게 아셨죠?"

"그건 저도 모르죠."
"그럼 그 아이가 부모와 함께 있을 수도 있지 않을까요?"
"아니요. 그 아이는 지금 숲에 있어요!"
"누가 그래요?" 그 목소리가 물었다.
"그 아이가 동생한테 쪽지를 남기고 집을 나갔다구요."
전화 속의 남자는 한숨을 내쉬었다.
"이것 보세요." 에밀리에는 인내심을 잃기 시작했다. "전 일주일째 혼자 지내고 있는 일곱 살 아이와 여기 있어요. 그 아이의 형은 없어졌고요. 아이의 부모도 없어졌어요. 그러니까 지금 저한테 실종 접수를 못 받겠다고 하시는 거예요?" 

그녀는 분노가 치밀어 오르는 것을 느꼈다. 대화를 더 이어나가기 위해서 심호흡을 해야 했다.

"아니요. 할 수 없다는 게 아니고. 그 사실을 고지하고, 내일 조치할 수 있는 방법을 강구해 보죠. 오늘 늦게 아무 때나 경찰서에 출두하실 수 있습니까?"
"내일이라고요?" 에밀리에가 소리쳤다. "일주일째 숲에 있는 아이를 하루 더 바깥에서 지내게 하시겠단 말이에요? 그 아이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면 어쩌려고요?" 
"압니다. 하지만 무턱대고... 그러니까 제 말은 부모가 휴가를 떠났는데 그 아이를 데리고 갔다면 어떻게 되는 거죠?"
"일곱 살 난 아이는 혼자 집에 두고요?"
"더 나쁜 일이 일어났을지도 모르죠. 일단 전화번호를 남겨주십시오. 이쪽에서 더 알아보고 나중에 사람을 시켜 전화드리죠."
"댁이 전화하세요." 에밀리에가 소리쳤다.
그녀는 전화번호를 알려준 뒤 전화를 끊었다.

 

- 가브리엘 뫼르크는 환대는커녕 아파트 안으로 들어가지도 못한 채 프로그네르의 고급 아파트 밖에서 서성거리고 있었다. 자신을 이곳으로 보낸 루드비에게도 슬슬 화가 나기 시작했다. 설마 식료품이나 사다 나르는 일을 하게 될 줄은 몰랐다. 물론 특수수사대의 고참 직원이 아니라는 것은 이해하지만 (어쨌든 이제 막 들어온 신입이었다) 장을 보러 가다니? 다른 직원 같으면 그런 일을 할까? 그는 아파트를 올려다보며 다시 초인종을 눌렀다. 여전히 반응이 없었다. 그곳은 고급 주택가로 오슬로 서부에서 가장 살고 싶은 동네였다. 아파트마다 커다란 창문에 공원을 마주 보는 테라스가 있었다. 문득 여자친구와 그녀의 뱃속에 든 아기 생각이 났다. 처음에는 걱정이 많았다. 어디에서 살아야 할까? 아이가 태어났을 때 병원비는 어떻게 할까? 사야 할 것도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 그는 자신의 무지함이 부끄러웠다. 정말이지 아빠가 된다는 것에 대해 한 번도 생각하지 않았다. 아기 침대와 유모차는 시작에 불과했다. 하지만 이젠 달라졌다. 그는 일자리를 구했다. 갑작스럽기는 했지만 마음에 드는 일자리였다. 자신이 이런 세계를 보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경찰은... 솔직히 말하면 지금까지 적으로 여겼다. 그가 알기로 모든 해커가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그들은 경찰이 무슨 이야기를 나누는지 모를 것이다. 미아 크뤼거도 직접 만난 적이 없을 것이다. 홀거 뭉크도. 쿠리, 아네트, 퀴레, 루드비, 킴 그리고 다른 모든 경찰들도. 동료가 있다는 게 어떤 것인지 그들은 모를 것이다. 출근을 하고 미소 띤 얼굴로 아침인사를 나누고, 자신을 격려해 주고, 자신이 이루어낸 성과를 존중해 주는 조직의 일원이 된다는 게 어떤 것인지 모를 것이다. 가브리엘은 어쨌든 자신이 뉴스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돕고 있다고 느꼈다. 예전에는 뉴스에 별로 신경을 쓰지 않았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그랬다. 하지만 그게 자신의 일이 된 지금은 완전히 달라졌다. 게다가 그뢴란의 기술자들이 제공해 준 기기는 뛰어났다. 자신이 이런 기기를 사용하게 될 줄은 정말 몰랐다. 처음 며칠은 크리스마스 선물을 받은 어린아이처럼 신이 났다. 

 

- 가브리엘은 다시 초인종을 누르며, 자신과 여자친구가 살게 될 집의 종류를 상상했다. 분명 이 지역의 집을 구할 형편은 안 됐다. 하지만 시내 어딘가에서 그런대로 쓸 만한 집을 구할 수 있지 않을까? 마당은 없어도 자신들만의 공간은 있을 것이다. 가브리엘은 자신이 얼마나 기대에 차있는지 새삼 느꼈다. 자신의 이름이 달린 문패가 있는 집. 우리 여기에 살고 있어요. 가브리엘과 토브 그리고, 음, 아기 이름은 아직 상의하지 않았다.  

 

- 그 사이에 목사는 루카스를 응시했다. 목사는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그저 두 손을 앞에 포갠 채 벤치에 앉아 인자하고 부드러운 눈으로 바라보기만 했다. 루카스는 아직도 겁이 났지만 아까보다는 한결 안심이 되었다. 목사는 잠시도 그에게서 눈길을 떼지 않았다. 평상시에는 루카스의 머리 위, 허공의 어디쯤을 응시하곤 했다. 어쨌든 루카스를 정면으로 바라보는 법은 없었고, 지금처럼 시선을 고정시키는 일도 없었다. 루카스의 몸이 천천히 따뜻해졌다. 목사와 시선을 마주치려고 노력했지만 어쩌다 성공할 뿐이었다. 샌드위치를 다 먹고 핫초콜릿을 세 잔 마셨을 때 목사가 입을 열었다. 

"하나님은 세상의 악과 싸우기 위해 직접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셨다." 목사가 말을 이었다. "사람들은 예수를 구할 기회가 있었지만 대신 도둑 바라바(그리스도 대신 석방된 도둑의 이름)를 선택했다." 
루카스가 살며시 고개를 끄덕였다.
"이 이야기는 사람들이 어떻다는 뜻이냐?" 목사가 물었다.
루카스는 대답하지 않았다. 틀린 대답을 해서 다시 물속에 들어가고 싶지 않았다. 아직도 그 순간의 오싹한 공포가 남아있었다.

- "사람들은 자신에게 무엇이 좋은지 모른다." 목사는 이야기를 계속했다. "따라서 스스로 결정하게 놔둬서는 안 된다. 알아들었느냐, 루카스?"
루카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목사는 전에도 이런 이야기를 했다. 사람들은 대체로 어리석다. 자신에게 무엇이 좋은지 모른다.  

- "아뇨. 거기까지는 접근하지 않습니다." 가브리엘이 대답했다. 
"그렇다면 반장님이 그런 통로로 메시지를 받았을 수도 있겠네요." 아네트가 말했다. "만나는 장소에 혼자 나오게 하려고 그런 게 아닐까요?" 
미켈손이 한숨을 내쉬었다. "이런 식으로 일하고 있나?"
여전히 원하는 반응을 얻지 못하자 미켈손이 모여있는 대원들을 불만스럽게 둘러보았다.

- "이게 우리가 일하는 방식이냐고?" 그가 더 크게 다시 물었다. "아니. 이건 아니지. 우리는 팀이라고. 우린 개성 강한 열성분자들의 조직까지 지원할 여유는 없네. 우리는 수사의 진척상황에 대해 서로 정보를 주고받으며 함께 일하고 있어. 이제 보니 당신들이 아무 해결책도 내놓지 못하는 게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군." 
"실제로 우린 꽤 많은 것을 알아냈습니다." 루드비가 기침을 하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 킴은 루드비 그뢴리에를 진심으로 좋아했다. 그는 이 특수수사대에 소속되기 위해 필요한 덕목을 정확히 갖추고 있었다. 참으로 이상한 게 그동안 여러 명이 팀에 합류했지만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금세 떠났다. 누구도 그게 무엇인지 딱 꼬집어 말하지 못했다. 능력과 나이, 배경, 전문성 그 이상의 것이 있었다. 소위 화학반응이라는 거였다. 어떤 것은 하고, 하지 말아야 하는지 말하지 않아도 서로 이해하는 것. 그는 팀에 들어왔다 적응하지 못하고 떠난 재능 있는 수사관들을 여러 명 보았다. 그들은 뭉크 밑에서 도저히 견디지 못하거나 미아 크뤼거가 또래의 수사관들보다 과대평가되었다고 여겼다. 킴은 오랜 시간 뭉크와 미아, 두 사람들을 도와 일했다. 그리고 다른 일을 하는 자신을 상상할 수 없었다. 

- 루드비 그린리에가 미켈손에게 지금까지의 수사내용을 간략하게 설명했다. 말린 스톨츠. 거울로 뒤덮인 아파트. 회비크바이엔 양로원과 회네포스의 불임부부. 서포터즈 그룹 간 연결고리. 키에세의 동영상은 미켈손이 대원들을 말썽쟁이 취급하며 여기 모아놓지 않았다면 스톨츠가 마리온 뭉크를 감금하고 있는 은신처 위치와 더불어 진작 그들에게 공개되었을 것이다. 

 

"좋아. 좋아." 미켈손이 안경을 올려 쓰며 말했다. "그럼 현재 어떤 상황인가?"
"이제 나가봐도 됩니까?"
그렇게 말한 사람은 가브리엘 뫼르크였다. 킴 콜쇠는 남몰래 씩 웃었다. 그는 이 젊은이가 마음에 들었다. 뭉크가 특별 채용한 가브리엘은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나 금세 이 팀의 중요한 멤버가 되었다. 뭉크는 미아 크뤼거도 같은 방법으로 채용했다. 당시 미아는 경찰학교에서 정규교육도 제대로 수료하지 않았다는 소문이 돌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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